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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중재자? 아니 당사자

1908년 9월 러시아 외무장관 이즈볼스키와 오스트리아 외무장관 에렌탈은 양국 모두에 좋은 밀약(密約)을 맺었다. 러시아는 그 얼마 전에 있었던 오스트리아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병합을 인정하고 오스트리아는 오스만 터키의 영토 안에 있는 보스포루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에 대한 러시아의 '권리'를 용인한다는 것으로, 1905년 미국과 일본이 필리핀과 대한제국의 지배권을 상호 인정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유라시아판(版)이었다.독일의 폭로 위협으로 없었던 일이 되기는 했지만, 이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문제의 당사자였던 세르비아에 대한 러시아의 배신이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수복해야 할 영토로 여겼던 세르비아는 병합을 인정하지 않았고, 러시아는 남 슬라브인의 '큰 형님'으로 자처하며 그런 세르비아를 후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스만 터키에도 이 밀약은 자국의 영토에 대한 러시아의 점령을 인정한 범죄행위였다.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인이 다수 거주하는 체코슬로바키아 수데텐란트를 독일에 넘겨준 1938년 뮌헨협정도 당사자를 배제한 제3국끼리의 더러운 거래였다. 이즈볼스키-에렌탈 밀약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당사자인 체코슬로바키아가 공개리에 배제됐다는 것이다.그 바탕은 자국을 위해서라면 우방국도 팔아넘긴다는 추잡한 이기심이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프랑스의 동맹국이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항거했지만, 영국과 프랑스에 체코슬로바키아의 운명은 관심 밖이었다. 당시 프랑스의 한 언론 보도는 이를 잘 보여준다. "에드바르트 베네시(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를 위해 프랑스인이 죽어야 하나?"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론'이 미국과 북한 모두에게 사실상 거부당했다. 김정은에게서는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하지 말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중재자론은 처음부터 난센스였다. 우리는 북핵 문제 당사자이지 중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당사자가 자신의 의지에 반해 자기 문제에서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소외시킨다는 것이다. 제발 주제 파악 좀 했으면 좋겠다.

2019-04-16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김부겸의 현수막

귀향(歸鄕)의 의미는 누군가에게는 각별하고 누군가에게는 잔인하다. 군대에서 '고향 앞으로'라는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뛰었다. 오랜 외국 생활이나 타지에서 고생할 때도 마찬가지 심정일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는데, 잘나가던 공직자에게 '고향 앞으로'는 '옷을 벗으라'는 최악의 순간이다. 고려시대만 해도 '귀향'은 형벌의 일종이었다. 관리·승려가 죄를 지으면 '본관(本貫)으로 돌려보내는' 벌을 내렸는데, 도성에서의 지위와 특권을 박탈하는 의미였다.요즘 김부겸 국회의원(대구 수성갑)의 귀향이 화제다. 22개월간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내고 지역구 의원으로 복귀해 '잠룡' 행보에 나섰으니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지역구 곳곳에는 '김부겸, 장관직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라는 큼직한 현수막이 내걸려 귀향 소식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근데, 김 의원의 발걸음은 그리 가볍지 않을 것 같다. 대구가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전국 최저인 데다, 김 의원이 자유한국당의 표적이 돼 있어 악전고투할 가능성이 높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수성갑에 뜻이 없다'고 했지만, 재대결을 고심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고,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도 뜻이 없지 않다고 전해진다.3년 전 총선에서는 김 의원은 대구시민에게 더불어민주당 정치인 가운데 반드시 당선시켜야 할 사람으로 통했다. 이제는 그런 공감대가 많이 퇴색됐고, 오히려 쫓기는 상황이 됐다. 더욱이 김 의원은 국회의원으로 대구를 위해 한 일이 거의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장관직에 오래 머물면서 시간이 부족한 것도 있고, 정권의 'TK 패싱' 기조에 제동을 걸지 못하는 당내 위상과도 관련이 있다. 김 의원이 지역의 소중한 인적 자산임은 분명하지만, 그의 성패는 대구를 위해 얼마나 뛸 수 있을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에 달려 있다.오늘 아침만 해도 김 의원의 '귀향 신고' 현수막이 도로변에 걸려 있더니 오후에는 보이지 않았다. 낮에 바람이 세게 불었기 때문에 그런가 했는데, 알고 보니 허가받지 않은 불법 현수막이라 구청 단속을 받은 모양이다. 김 의원의 귀향이 순탄치 않음을 예고하는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2019-04-15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화목(花木)

도심을 수놓던 벚꽃도 이제 붉은 기운만 조금 남았다. 산불과 폭설의 시련에도 화사한 꽃의 향연은 계속 이어진다. 라일락과 철쭉, 복사꽃, 진달래, 이팝나무꽃이 색과 향기로 가득 채울 것이기 때문이다.이맘때 경산 남산면 반곡지는 전국의 상춘객이 찾는 명소다. 진분홍 복사꽃과 푸릇푸릇한 왕버들 세상이다. 대구 도심 동네 주변에도 꽃구경 명소들이 많이 생겨났다. 시청 별관 앞 신천동로변 벚꽃이 입소문을 타면서 매년 3월 말 만개한 벚꽃을 보려는 시민들로 붐빈다.달구벌대로도 변신을 시작한다. 싱그러운 잎을 뻗어내는 느티나무와 조금씩 움을 틔우는 양버즘나무도 봄맞이가 한창이다. 5월 초 입하(立夏) 무렵 남산동 인쇄골목길 등 시내 곳곳의 이팝나무가 하얗게 거리를 수놓을 것이다.이팝나무는 요즘 크게 뜨는 화목이다. 최근 10년간 대구시 가로수 식재 현황을 보면 이팝나무는 약 1만8천 그루가 늘어 가장 인기 있는 가로수로 이름을 올렸다. 수목 특성상 옮겨심기가 어려웠지만 수종 개량에 성공하면서 가로수로 가능해진 때문이다. 전체로 보면 여전히 은행나무가 23.3%로 가장 많고 느티나무(20.9%), 양버즘나무(13.5%), 벚나무(12.3%), 이팝나무(10.6%) 순이다.지난해 벚꽃 구경(하나미·花見)을 위해 일본을 찾은 외국 관광객 중 한국인이 120만 명으로 가장 많았다는 보도다. 600여 개 벚꽃 명소에서 일본인 포함 6천300만 명의 관광객이 쓴 돈만 3조원, 모두 6조6천억원의 경제효과가 있단다. 이쯤 되면 꽃구경이 그냥 꽃놀이가 아니다.달성군 옥포면 교항리 이팝나무 군락지에는 300년이 넘는 33그루 등 약 500그루가 자생한다. 경산 자인면 계정숲도 50여 그루의 이팝나무 군락지다. 이제는 이팝나무를 가로수뿐 아니라 대규모 군락지를 조성해 관광자원으로 키워나가면 어떨까. 산림유산자원으로 보호만 할 게 아니라 지역 전체로 확산해 상징물로, 경제 활력을 키우는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2019-04-13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말이야? 방귀야?"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는다"고 했다. 그러나 청와대 참모들의 발언은 천 냥 빚을 갚기는커녕 오히려 국민 부아만 치밀게 한다. 시쳇말로 "말이야? 방귀야?"란 비판까지 나온다.문재인 정부 출범 후 설화(舌禍)를 일으킨 청와대 참모가 한둘이 아니다.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은 낙마한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와 관련 "집을 세 채 보유했다는 것이 과연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 것인지는 이론의 여지가 많을 것"이라고 했다. '포르셰 논란'과 함께 그의 발언은 국민 정서와 동떨어졌다. 장관 후보자 두 명이 동시에 낙마했으면 국민에게 사과하는 게 청와대 홍보책임자 역할일 텐데 그런 자세는 찾기 힘들었다. 직함에서 '소통'을 떼야 하지 않나.재임 중 문제 발언으로 숱한 논란을 일으킨 김의겸 전 대변인은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물러나면서 "아내가 저와 상의하지 않고 내린 결정이었다"고 했다. 국민 대다수가 "그게 가능한 일이냐. 말이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청와대 참모는 국민 눈높이에 맞춰 발언해야 한다. 개인 생각을 강조하다 보면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인사가 "젊은이들은 '헬조선'이라고 하지 말고 신남방국가로 가라"고 했다가 사퇴한 김현철 전 경제보좌관이다. "모든 국민이 강남에 살 필요가 없다. 저도 거기 살고 있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한 장하성 전 정책실장도 마찬가지다.같이 통음했다는 윤 수석과 김 전 대변인처럼 586세대가 주축인 청와대 참모들은 퇴근 후 술자리에서 자주 토론할 것이다. 그 자리에선 숱한 말들이 오갈 게 분명하다. 문제는 지난밤 오간 말들이 전혀 정제되지 않은 채 다음 날 청와대 참모들 입을 통해 국민을 향해 나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윤 수석과 김 전 경제보좌관 발언이 딱 그렇다.더 큰 우려는 문재인 대통령이 평소 생각하고 말한 바를 참모들이 발언하는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청와대 내부 논리에 매몰된 발언들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 이런 추측이 안 나오는 게 이상하다. 청와대 사람들끼리는 통할지 몰라도 국민 공감은 하나도 얻지 못하는 청와대 참모들의 발언, 그만 나오기 바란다.

2019-04-11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우리 아버지는 이렇게 했다

지난 2014년 83세를 일기로 작고한 A씨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고교 졸업 후 고향인 경북 북부지방의 한 군청 수습 공무원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얼마 안 돼 6·25가 터졌고, 그의 고향을 점령한 인민군은 낙동강 전투에 투입할 의용군을 징집하기 시작했다. A씨는 이를 피해 숨어 지냈으나 개천에 몸을 씻으러 나왔다가 발각돼 의용군 행렬에 서야 했다.그렇게 끌려가다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 도망쳐 고향으로 몰래 들어왔다. 그 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인민군은 후퇴하기 시작했고 A씨의 고향도 수복돼 국군 3사단 예하 연대가 진주했다. A씨는 이 부대의 행정 보조 인력으로 '징발'돼 강원도 철원까지 갔으나 1953년 초 중공군의 춘계 대공세로 3사단이 궤멸하면서 걸어서 태백산맥을 넘어 강릉까지 후퇴하는 등 갖은 고생 끝에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생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고향에서 공무원으로 재직하던 중 1961년 쫓겨난 것이다. 5·16 직후의 '병역 미필자'의 공직 추방 조치 때문이다. 3사단의 군번 없는 군인이었다고 호소했으나 소용없었다. 이를 입증할 기록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2년 뒤 '구제'되긴 했으나 '병역 미필자'라는 낙인은 그에게 평생의 한이 됐다.비군인 참전자도 두 사람의 인우(隣友)보증이 있으면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는 제도가 1995년 시행되면서 마침내 명예를 회복하게 됐다. 하지만 이것도 엄청난 인내를 요구했다. 같이 근무한 군인들이 어디 사는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수소문 끝에 그들을 찾아 2003년 '국가유공자증'을 받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무려 8년이 걸렸다.부친이 특혜를 받아 독립유공자로 선정됐다는 야당의 의혹 제기에 손혜원 의원이 지난 4일 SNS에 '니들 아버지는 그때 뭐 하셨지'라고 쓴 뒤 SNS에는 '우리 아버지는 이렇게 했다'는 내용의 글이 대거 올라왔다고 한다. 기자도 한마디 해야겠다. "손 의원 부친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기자나 기자의 아버지는 유공자로 선정되려 로비를 하거나 특혜를 받지는 않았다"고 말이다. A씨는 기자의 아버지다.

2019-04-10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한 손에 드므 들고

'한 손에 마실 물, 또 한 손에 드므를!'봄날 등산철, 산불로 전국이 비상이다. 지난 4일 강원도 고성과 강릉·삼척을 비롯한 곳곳에서 일어난 산불로 4월의 시작부터가 잔인하다. 강원도에는 정부가 5일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하기에 이르렀고 피해와 후유증이 만만찮아 걱정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강원도로서는 봄날을 맞아 긴장의 날들이 아닐 수 없다.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489년 2월 양양 산불로 낙산사와 4백여 호가 탔다. 1672년 4월 강릉·삼척 등 네 고을 산불 때는 65명이 숨지고 1천900여 민가가 불타고, 1804년 3월 삼척·강릉·양성·고성 등 여섯 고을 산불로는 61명이 죽고 2천600여 호가 재가 됐다. 또 2000년 4월 삼척·강릉·고성 등에서, 2005년 양양 산불 등으로 이어졌으니 몸서리칠 만하다.산악지역이 많은 경북은 특이하게 가장 오래 탄 산불 역사를 갖고 있다. 1436년 2월 일어난 영해 산불은 6년 넘게 계속, 1442년 3월 겨우 꺼졌다. 3년 뒤 1445년 4월 다시 들불로 애를 먹었는데 비가 내려도 꺼지지 않는다고 조정에 보고할 정도였다. 이후 2013년 포항의 산불은 도심까지 위협했으니 강원도처럼 악몽이다.기록처럼 산불은 세월을 뛰어넘어 재앙이다. 사람 힘으로 모든 산불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잘만 대비하면 피할 수도, 피해를 줄일 수도 있다. 이는 오로지 우리 몫인 셈이다. 그 지혜는 찾기 나름이다. 우리 조상들이 궁궐과 사찰 등에 설치한 크고 넓은 항아리의 방화 수통인 '드므'도 그럴 수 있다. 오늘에 맞게 바꾸면 말이다.산불은 실수에 자연 원인 등이 맞물려 번지고 커지기 마련이다. 작은 불씨도 건조하면 속수무책이다. 우리는 유난히 산을 즐기는 문화인 만큼 산을 오르는 사람마다 한 손에 마실 물을 갖추듯, 다른 한 손에는 물이 든 휴대용 드므를 들고 등산길 주변에라도 뿌리면 어떨까.마른 땅은 물론 수목조차 반기지 않겠는가. 물방울로 냇물이 되고, 내(川)가 강이 되는 것만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산불로 답답한 요즘, 이런 공상까지 드는 까닭은 나만은 아닐 터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당할 수는 없는 일이다보니 온갖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2019-04-09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위기대응력

9·11 직후 미국 의회는 정보방첩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에 착수했다. CIA와 FBI는 물론 DIA (국방정보국), NSA(국가안보국) 등 방대한 인력과 예산, 정보 수집력을 자랑하는 여러 정보기관들이 있었음에도 사상 초유의 테러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비판 여론이 빗발치면서다.2002년 11월 공식 출범한 국토안보부는 그 결과물이다. 국가 긴급사태를 관리하는 연방재난관리청(FEMA) 등 22개 기관을 산하에 재배치했다. 흔히 DHS로 줄여 부르는 국토안보부는 테러나 사이버 보안, 재난 등 국가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총괄기구다.현재 DHS 소속 직원 수만 20만 명이 넘는다. 교통안전청(TSA)과 이민세관단속청(ICE), 이민국(USCIS), 관세국경보호청(CBP)에다 해안경비대와 대통령을 경호하는 비밀경호국까지 산하에 두고 있다. 지나친 보안 통제나 조직 비효율성 등 문제점이 없지 않으나 '슈퍼예산'(약 470조원)으로 불리는 우리나라 전체 예산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쓰는 초대형 연방기관으로 자리 잡았다.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이런 국토안보부 골격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를 확대 개편해 2013년에 만들었다. 국가 외교 안보와 국민 안전을 위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는 총괄기구다.그제 속초·고성지역 산불이 빠르게 번지는데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국회 운영위 업무보고 때문에 발이 묶이자 자유한국당을 향한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위기 대응 책임자인 안보실장의 공백에 대한 질책이 나경원 원내대표를 겨눈 것이다. 홍영표·나경원 원내대표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공방을 이어갔지만 여야를 떠나 상황을 오판한 국회의 잘못이 크다.정의용 안보실장도 문제가 있다. 그동안 국가안보실이 북미 회담 등 외교 안보 쪽에 치중하면서 국가재난사태에 대한 주의력이 크게 떨어진 때문이다. 산불 등 재난은 시시각각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에 국회 양해를 구해서라도 서둘러 제자리로 돌아가는 게 옳았다. 재난은 시간과 장소를 따지지 않는다. 더는 이런 난맥상이 없도록 관례를 만들어야 한다.

2019-04-08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대통령 성격과 골프

골프만큼 사람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스포츠도 없다. '백악관에서 그린까지'(아카넷 간)의 저자 돈 반 나타 주니어(뉴욕타임스 기자)는 "누가 최고의 대통령 후보인가를 판단하려면, 모든 경쟁자를 골프장으로 모이게 하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성격과 인격, 심지어는 대통령으로서의 자질까지 드러날 것이라고 했다.최악의 대통령 골퍼는 빌 클린턴이다. 클린턴이라면 멀리건(벌타 없이 다시 치는 것)부터 떠올리게 한다. 18홀 동안 수십 개 이상의 '빌리건'(빌+멀리건)을 썼는데, 티샷뿐만 아니라, 아이언샷, 칩샷까지 내키는 대로 쳤다. 그때마다 '대통령이 사면을 허락하노라!'며 너스레를 떨었기에 모두 웃고 넘겼다. 그러나, 퇴임 후 뉴욕주로 이사해 동네 골프장에 회원 등록을 하러 갔다가 여러 골프장에서 거부당하는 창피를 당했다. 권력욕과 성취욕은 지극히 높으면서 윤리 의식은 바닥에 가까운 유형이다.〈안문석, 대통령과 골프〉'워터게이트' 사건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도 반칙형이다. 공이 러프 지역으로 가면 발로 차 내고 손으로 던지는 경우도 있었다. 클린턴처럼 스코어카드를 속임수로 적었다. 무엇이든 지기 싫어하다 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유형이다.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규칙적이고 소박한 스타일이다. 파4홀에서 11타를 치면 스코어카드에 그대로 적었고, 멀리건도 없다. 골프를 정치 행위와 연결시키지 않고 친구 지인끼리 1달러를 걸고 즐겼다.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골프장 소유주인 만큼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고 실력자다. 핸디캡 2.8에 19번의 클럽 챔피언십 우승 경력이 있다. 그런데, 칼럼니스트 릭 라일리는 그를 '속임수의 제왕'이라고 칭했다. 골프공을 발로 차 페어웨이에 올려놓는 일이 잦아 '골프장의 펠레'로 불린다고 썼다. 닉슨, 클린턴처럼 윤리 의식이 없는 유형이다. 이런 성격을 가진 대통령은 언젠가 대형 사고를 치기 마련인데,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2019-04-06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족보

2015년 겨울 개봉한 세태 풍자 범죄영화 '내부자들'에는 빽(?) 없고 족보가 없어 늘 승진에서 밀리지만, 야심 있는 검사가 등장한다. 여기서 '족보'란 일류 대학을 나와 검찰 내 인맥이 튼튼한 경우를 말할 것이다. 그러나 족보(族譜)란 원래 한 가문의 계통과 혈연관계를 부계(父系) 중심으로 정리한 도표 형식의 책을 이른다.가문의 단합과 조상에 대한 공경이라는 유교적 가족관을 바탕으로 제작한 것이어서 신분 사회에서는 족보가 생명줄이나 다름없었다. 항렬과 촌수를 따지는 것도 족보 문화의 한 전형이다. 왕조시대의 족보는 왕족이나 귀족 등 극소수 집안의 전유물이었다. 조선 초기만 해도 족보를 가진 양반의 수는 겨우 몇%에 불과했다.그런데 임진왜란 후 사회 혼란과 세수 부족으로 공명첩이나 납속책 등을 통해 평민과 천민들이 대거 성씨와 족보에 편입되면서, 나중에는 양반의 후손 아닌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니 '족보가 무슨 소용인가. 언행이 반듯하면 양반이고, 하는 짓이 개차반이면 상놈이지'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던 것이다.아무튼 해방 후 1960, 70년대까지만 해도 농촌 사회에는 족보를 따지는 풍습이 남아있어서 성씨와 가문의 귀천을 따지는 문화가 없지 않았다. 명문가의 족보를 둔 것만으로도 이른바 '금수저'가 될 수 있었던 시대에 대한 향수이거나, '족보 없고 근본 없는 사람'도 돈만 있으면 행세를 하는 세태에 대한 상실감의 반영일 수도 있겠다.이제는 가문을 따지는 사람도 드물고 친인척이 모일 일도 잘 없으니 족보는 일상 속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족보가 대접받는 시대가 다시 올 일은 없을 듯하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족보 타령을 하는 바람에 족보가 새삼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문 대통령이 최근 청와대에서 열린 한 간담회에서 "'소주성'(소득주도성장)이란 말은 세계적으로 족보 있는 이야기"라고 발언한 게 그 발단이다. '소주성'을 비판하는 많은 국민들은 '소주성'을 오히려 '족보가 없는 경제적 망상이자 도박'이라고 폄하한다. 설령 '소주성'이 족보가 있다한들 경제적 현실과 맞지 않으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2019-04-05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장관 구인난'

"링컨 대통령 흉내 좀 내려고 김근태·정동영 씨를 내각에 기용했는데 재미가 별로 없었다. 비슷하게 하고도 인사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고 사니까 힘들다." 2006년 12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장관 인사를 두고 한 '폭탄 발언'이다. 두 사람이 여권 대선주자로서 적절치 않다는 의견 표현이자 정부를 공격하는 데 대한 섭섭함에서 나온 발언이었지만 장관 인사 어려움을 토로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노 전 대통령이 닮고자 한 링컨은 경쟁자는 물론 정적(政敵)까지 장관 등 요직에 임명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링컨을 고릴라에 비유하는 등 모욕적 발언을 쏟아낸 에드윈 스탠턴이었다. 스탠턴을 전쟁 장관에 임명할 때 '내각에 왜 적을 임명하나'란 질문을 받은 링컨은 이렇게 얘기했다. "원수는 죽여서 없애는 게 아니라 마음속에서 없애야 한다. 그를 기용하면 나는 적이 없어져 좋고 국민은 능력 있는 사람의 봉사를 받으니 좋다." 스탠턴은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링컨이 암살당했을 때 가장 슬퍼했다.문재인 대통령이 2기 장관 임명 파동으로 곤경에 처했다. "인사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고 사니까 힘들다"는 노 전 대통령 말을 문 대통령이 읊조릴지도 모를 일이다.문 대통령의 장관 인사는 원초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요인을 갖고 있다. 장관으로 쓸 만한 인사 100명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링컨처럼 통합에 중점을 두는 대신 문 대통령은 '코드'란 잣대를 들이댄다. 100명 중 절반가량이 코드가 안 맞아 배제되고 만다. 코드가 맞는 인사 50명 중 5대 인사 배제 원칙에 걸려 상당수가 또 도태된다. 남은 인사 중에서도 고사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청문회에서 만신창이가 될까 봐, 국정 운영이 대통령과 청와대 중심이다 보니 장관은 허수아비에 그칠까 봐, 정권이 바뀌면 '적폐'로 몰려 탈탈 털릴까 봐 손사래를 치는 사람이 줄을 잇는다. 남는 사람이 없다."왜 이런 사람을 추천했느냐"는 여권 질책에 청와대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코드에 맞는 사람만 고르다 보니 제대로 된 장관 후보자를 내놓기 어렵다. 탕평 인사를 하지 않는다면 장관 구인난과 인사 참사는 정권 내내 계속될 것이다.

2019-04-04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숙청은 면죄부?

1937년 4월 멕시코에서 미국 철학자 존 듀이의 주재로 트로츠키의 재심 재판이 열렸다. 이는 자기를 옹호하는 좌파들의 성원을 바탕으로 트로츠키가 존 듀이에게 직접 요청한 것으로, 1936년 소련이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선고하면서 트로츠키에게 적용한 '국가전복 기도혐의'의 타당성 여부를 심사했다. 결론은 '그 혐의는 날조, 트로츠키는 무죄'였다.이 재판은 각국의 민간인들로 구성된 국제조사위원회가 마련한 것으로 법적 구속력이 없었다. 그러나 '무죄' 판결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트로츠키에게 전혀 가당치 않은, 혁명 러시아가 1인 독재체제로 타락하는 것을 막으려 스탈린에게 맞섰으나 패한, 불운한 혁명가라는 이미지를 입힌 것이다.재판 3년 뒤인 1940년 트로츠키가 망명지인 멕시코에서 스페인 출신 소련 비밀요원인 라몬 메르카데르에게 살해된 사건은 이런 희생자 이미지를 확대 재생산한 것은 물론 그를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의 상징으로 치켜세우는 희한한 유행을 낳기도 했다. 이들 모두 트로츠키의 실체와 전혀 무관한 상상력의 산물이었다.트로츠키는 숙청당했지만, 그것이 그가 스탈린 못지않은 폭력 숭배자이며 민주주의를 적대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공통된 결론이다. 그의 전기를 쓴 영국 역사학자 로버트 서비스는 그를 '권력을 잡지 못한 스탈린'으로 묘사한다. 그가 권력을 잡았어도 스탈린과 똑같았을 것이란 얘기다. 폴란드 출신 영국 철학자로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흐름'이란 방대한 저서를 쓴 레셰크 코와코프스키도 같은 의견이다.국가보훈처가 1일 개최한 '김원봉 독립운동 업적' 토론회에서 "북한 정권에 기여했어도 숙청 등으로 배제된 자들은 (독립운동) 공적을 평가해줄 필요가 있다"는 소리가 나왔다. 항일 무장 활동을 했지만, 해방 후 월북해 북한 정권 수립에 핵심 역할을 한 김원봉을 독립유공자로 지정하기 위한 자락 깔기다. 김원봉이 1958년 김일성의 연안파(延安派) 숙청 때 제거됐다고 그의 반(反) 대한민국 행적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숙청은 숙청일 뿐이지 면죄부가 아니다.

2019-04-03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완장의 날들

'일제강점기…방우는 왜놈들과 어울려 다니더니 연락책(連絡責)이란 감투를 얻어냈다. 붉은색 완장을 차고 다녔다…그는 대단한 행세를 부렸다. 머슴살이 시절에 업신여김을 당했거나 조금이라도 서운하게 했던 사람에게 앙갚음을 시작했다. 심지어 없는 죄를 꾸미거나 부풀려서 일본 순사(巡査)에 일러바쳤다…평화롭던 시골이 온통 벌집을 쑤셔놓은 듯하였다….'(심성택, 『우리들의 봄날』, 2019년)'사농공상'(士農工商). 조선은 신분 사회로 백성은 완장을 찬 양반이 다스렸고, 양반은 과거시험으로 벼슬에 올라 감투를 쓰고 행세했다. 완장 두른 양반이 과거와 돈, 권력을 무기로 감투를 쓰면 대대로 영화를 누렸고 그들만의 삶을 이어갔다. 그렇게 양반의 완장과 감투는 이 땅의 신화가 됐다.이런 신화를 일제는 한민족 이간책으로 썼다. 높은 사람은 그들대로, 낮은 사람은 밀정과 헌병 보조원, 순사(보) 등 앞잡이로 완장과 감투를 준 일이다. 경상도 옛 머슴처럼 완장과 감투는 퍽 유용했다. 머슴은 일본을 믿고 온갖 횡포였고 다른 삶을 누렸다. 물론 광복이 되자 마을에서 그는 사라졌지만.완장과 감투 문화는 이어졌다. 자유당 말기가 배경인 이문열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속 초등학교 이야기도 다르지 않다. 힘으로 학교 '반장' 완장을 찬 엄석대가 담임을 믿고 학급을 주무르는 횡포도 같은 맥락이다. 담임이 바뀌고 반장 횡포도 끝나고 엄석대도 학교를 떠나지만 완장의 폐해는 어른 세계와 마찬가지다.완장과 감투 집착 모습은 오늘도 그대로다. 또 완장과 감투에 걸맞지 않으면서도 욕심이다. 최근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와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낙마 등 지난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8명의 인사검증 실패 인물들도 그렇다. 모두 각종 의혹으로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은 일들이 들통나서다.머슴과 엄석대의 완장 피해는 한 마을과 한 교실에 그쳤지만 나랏일을 보는 자리 완장은 이와 다르다. 완장을 채우는 사람이나 완장 차고 싶은 사람 역시 스스로 자격이나 있는지부터 되돌아볼 일이다. 완장과 감투, 이제는 결코 아무에게나 주는 '떡'이 아니다.

2019-04-02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기미상궁(氣味尙宮)

조선시대 왕의 죽음에는 유난히 독살설이 많다. 특히 국정이 혼미했던 조선 후기 국왕과 세자들이 젊은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아 독살설에 힘을 실었다. 어느 시대건 권력자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과 의혹 속에는 어김없이 권력과 암투 그리고 음모와 배신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마련이다.조선 왕의 독살설은 성군 세종대왕의 왕위를 물려받은 문종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양대군이 권력을 찬탈해 세조로 즉위했을 때 형인 문종에게 잘못된 음식을 처방했던 의원의 이름이 공신 명단에 올랐던 것을 근거로 삼는다.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서 볼모 생활을 하며 국제 정세를 두루 익혔던 소현세자도 석연찮은 죽음을 맞았다.조선의 개혁 군주 정조의 죽음은 독살설이 가장 유력하다. 수구 세력인 노론 벽파를 등에 업은 젊은 할머니 정순왕후와의 권력 투쟁은 TV 드라마로도 많이 소개되었다. 정조의 손자이자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의 죽음도 그렇다. 영특했던 효명세자가 뜻을 펴보기도 전에 세상을 뜨면서 조선은 세도정치에 이어 패망의 길로 접어들었다.당파 싸움과 권력 투쟁에서는 왕의 목숨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왕이 수라를 들기 전에 시좌하고 있던 상궁이 먼저 음식 맛을 보는 것이 의례적인 절차였다. 그것은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를 살피는 일종의 검식(檢食) 과정으로 '기미(氣味)를 본다'고 했다. 그 역할을 담당한 상궁을 '기미상궁'이라 했다.현대의 권력자도 마찬가지이다. 독재자일수록 그렇다. 늘 암살의 공포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나치 독일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는 수행비서에게 반드시 먼저 음식을 맛보게 했고,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도 여러 명의 검식관을 항상 대동하고 다녔다고 한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24시간 검식관이 동행하며 조미료까지도 검식한다고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북미 정상회담 때 기미상궁 역할을 한 수행원들이 있었다는 소식이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좋은 음식조차 맘놓고 먹지 못하고 뒤끝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독재자의 삶을 그래도 부러워해야 하나?

2019-04-01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文대통령의 '잔인한 봄'

문재인 대통령에게 2019년 봄은 '잔인한 봄'으로 기억될 것 같다. 올해 신년사에서 천명한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들려고 나름 애쓰고 있는 가운데 봄에 터져 나온 악재들로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문 대통령은 북미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최악의 미세먼지 사태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반대 여론은 거세졌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 칼끝은 청와대로 향하고 있고, 장관 후보자들 부실 검증에 대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책임론이 불거졌다. 버닝썬 사건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재직한 경찰 총경이 연루됐다. 설상가상으로 청와대 대변인의 부동산 투기 논란까지 터져 문 대통령으로서는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국내외 악재들을 어떻게 헤쳐나가느냐에 문 대통령의 앞날이 달렸다. 조기 레임덕에 빠져 국정 혼란이 갈수록 심해지느냐, 국정 동력을 회복해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느냐 갈림길에 섰다.부동산 투기 논란으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사퇴했다.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선택이다. 부동산 투기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엄중하다. 부동산 투기 의혹을 비롯해 하자투성이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는 문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하는 게 마땅하다. '김학의·장자연·버닝썬' 사건 수사를 지시할 때와 같은 결기를 문 대통령이 장관 임명에서도 보여줘야 국민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다음 달 한미정상 회담에선 북한 비핵화 해법 찾기는 물론 흩트러진 한미 공조를 회복하는 것도 문 대통령이 힘써야 할 일이다.2월 산업활동동향에서 생산, 소비, 투자 등 3대 경제지표가 일제히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이들 지표가 모조리 마이너스인 것은 경제 위기 때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 경제가 올해 여러 측면에서 개선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등 문 대통령 말에 동의하는 국민은 거의 없다. 바닥으로 추락한 경제를 끌어올리는 것이 문 대통령 본인도 수렁에서 끌어올리는 길이다.

2019-03-30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성추문과 정치

요즘 한국에는 온종일 섹스 스캔들로 시작해 그것으로 끝난다. '성 추문 사회'를 방불케 한다. 인터넷·방송 등에서 쏟아지는 것은 버닝썬·김학의 전 법무부차관·장자연 사건이다.이들 사건에는 폭력, 몰카, 별장 동영상, 성 접대 등 말로만 듣던 추문이 모두 들어 있다. 거기다 가수, 배우, 전 법무부차관, 언론사 사장 일가 등 잘나갔거나 높은 지위의 인물이 대거 연루돼 있다. 높이 올라간 인사들이 추락하고 폭망하는 모습은 관객에게 즐거움을 줄지 모른다. 이 때문에 스캔들은 대중에게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필요악이란 말이 있는 모양이다. '너도 별 볼 일 없구나. 역시 같은 인간이었구나'는 생각과 함께.세 사건 모두 정치적 배경을 갖고 있는 것도 이채롭다. 예상 밖에 버닝썬 사건까지 정치권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2일 국회에서 "버닝썬과 관련해 연예인 승리를 매개로 YG엔터테인먼트와 양민석 대표, 국정 농단의 차은택 감독, 조윤선 전 장관까지 연결된다"며 "이 사건의 최초 폭행자인 서현덕은 최순실의 조카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실체적인 진실인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여당은 '제2의 최순실 게이트'라고 규정한다.김학의 전 법무부차관 사건의 불똥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튀어 그 여파가 상당하다. 황 대표가 김 차관의 재임 시절 장관이었고, 곽 의원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라는 점 때문인데, 제법 그럴듯한 그물망으로 보인다. 장자연 사건은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는 조선일보와 관련된 만큼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해도 검찰이 열심히 파헤칠 것이 분명하다.우연인지, 의도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세 사건 모두 현 정권 인사는 아무 관련이 없고, 야당 혹은 정권에 적대적인 인사뿐이다. 집권 세력이 유독 깨끗하고 도덕성이 있기 때문일까. 문재인 대통령까지 이례적으로 검경의 명예를 걸고 이들 사건의 진상을 밝히라고 지시했다. '정치적 음모설'에 기름을 붓는 지시였다. 성 추문을 정치에 이용하는 것은 저급하고 정치 도의에 맞지 않다. 성 추문은 성 추문으로 놔두는 게 어떤가.

2019-03-29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울릉 대구경북 33선언

"한국의 이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항상 가난했기 때문에 경제공황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농장이나 혹은 다른 사람의 농장에서 나는 생산물에 의존하기 때문에 바깥세상은 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백인 여성으로는 1923년 처음 들른 뒤 1932년 다시 울릉을 찾은, 대구의 미국인 선교사 부해리(傅海利)의 부인 하복음(河福音)이 남긴 편지글이다. 1909년 울릉에 첫 교회가 생긴 뒤 전도를 위해 찾은 섬이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기억된 셈이다.11일 동안 머물며 총 72㎞, 많이 걸을 때는 하루 12㎞(30리)까지 다니며 5곳 교회와 2곳의 기도처를 도느라 몸무게가 2.7㎏이나 빠졌고 '산을 넘어 걷고, 산길을 오르락내리락해서' 울릉의 여러 마을(창형·천포·저동·도동·다동)을 누빌 수 있었다.이런 울릉은 고종 때 본격 재개척됐다. 1882년 6월 검찰사 이규원을 '비워둔 섬' 울릉에 보내 조사하고 그해 12월 개척령을 내리면서다. 이듬해 16가구 54명을 옮겨 살게 했고 이후 독도까지 거느린 울릉은 더욱 중요한 섬이 됐다.일제의 수탈 시절도 보낸 울릉은 1963년 종합개발계획 수립 뒤 섬 일주도로 공사 착공 등으로 다시 변화와 발전을 노렸다. 그러나 돈 문제 등으로 우여곡절을 겪다 지난해 12월, 55년 만에 완전히 뚫렸다. 울릉 개척사의 경사다.게다가 이를 축하하고 더 빛낼 행사마저 이뤄지게 됐으니 울릉은 올해 특별한 3월을 맞고 보내는 셈이다. 29~30일 대구경북의 광역·기초자치단체 33곳 대표들이 처음 울릉에 모여 대구경북의 발전과 앞날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시간을 갖기 때문이다.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유독 대구경북은 정부 인사, 예산, 각종 정책 등에서 가뜩이나 홀대와 찬밥 신세인 즈음이라 이런 모임이 더 반갑다. 100년 전, 한민족 운명을 바꾼 민족대표 33인의 3·1운동 독립선언서 같은 그런 결과물도 기다려진다. 일주도로 개통으로 울릉의 모습이 달라지듯, 이번 33인 대표 모임에서 지금의 고립에서 벗어날 대구경북의 큰 그림도 그려지길 바라면 지나칠까.

2019-03-28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월경(越境)

공항은 한 국가의 관문이자 국경이다. 정상적인 여권이나 입국사증을 가지면 누구든 절차를 밟아 통과할 수 있다. 종종 허술한 감시를 틈타 입국 심사대를 뛰어넘어 불법 월경하는 사례도 없지 않다. 하지만 공항은 항만·육상 등에 비해 통제가 잘 되는 국경이다.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터미널'(2004년)은 '경계선'으로서의 공항의 상징성을 잘 보여준다. 크로코지아라는 동유럽의 한 가상국가에서 뉴욕으로 여행 왔다가 공항에서 발이 묶인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여행 도중 자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신분 상황이 복잡해지면서 오도 가도 못 하는 처지가 되자 공항 터미널을 집 삼아 생활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앵글에 담았다.이 같은 스토리는 비단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공항에서도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최근 언론에 조명된 인천공항 1터미널 46번 게이트에서 70여 일째 머무르고 있는 콩고 출신의 앙골라인 일가족 6명의 사연은 영화보다 더 절박하다. 콩고 출신에 대한 앙골라 사회의 박해를 피해 부부와 네 아이가 지난해 연말 관광비자로 인천에 도착했지만 입국이 거부되면서 공항 터미널에 갇히는 신세가 된 것이다.현재 인천공항 내 난민인정심사 대기실이나 송환 대기실에 머무는 사례는 훨씬 더 많다. 법무부 자료에 입국이 거부돼 송환을 기다리고 있는 대기자만도 74명에 이른다. 몇 해 전 입국 거부 조치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내고 터미널에서 200일 넘게 체류한 사례도 있다.성범죄 의혹 사건으로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의 내사를 받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지난 주말 인천공항을 통해 방콕으로 몰래 빠져나가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를 확인한 법무부의 긴급 출국 금지로 탑승 게이트 앞에서 월경이 무산됐지만 국민 뒷맛이 쓰다. 잘못을 저지르고 해외로 도피하는 공직자나 범죄 혐의자의 사례가 갈수록 늘고 있어서다.긴급 출금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 논란도 없지 않다. 그러나 도피로 책임을 덮으려는 그의 행동에서 지도층 인사의 윤리 수준을 보여준다. '본인이 아닌지, 맞는지'는 다시 조사해 밝히면 될 일 아닐까.

2019-03-27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과잉 경호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부 살해는 암살 가능성에 대한 페르디난트의 무신경과 허술한 경호 대책이 초래한 비극이었다. 페르디난트가 살해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 방문 날짜부터 적당하지 않았다. 6월 28일은 '성 비투스의 날'(St Vitus'day)로, 1389년 이날 코소보 전투에서 세르비아 연합군이 오스만터키에 패배한 이후 '민족 부흥'을 염원하는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에게 가장 성스러운 날이 돼왔다.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이 '수복'할 땅으로 여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합병한 오스트리아-헝가리 황태자가 하필 이날 방문한다는 것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에게 큰 모욕으로 비쳤다. 세르비아 민족주의 테러단체인 '흑수단'(黑手團)이 이날을 거사(擧事)일로 잡은 이유다. 방문 날짜가 불길하다는 우려가 현지에서 나왔으나 페르디난트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경호 대책도 엉망이었다. 페르디난트 부부가 탄 무개차가 군중이 밀집한 대로를 지나가도록 동선(動線)을 잡아놓고도 도로 양측에 경비병을 배치하지 않았고, 경호대도 대원 대부분을 페르디난트가 처음 도착한 철도역에 머물게 한 채 경호대장만 방문단에 동행했다.흑수단의 1차 폭탄 암살이 실패한 뒤의 대처는 더 한심했다. 1차 암살을 모면한 뒤 동선을 급히 변경했으나 운전사에게 이를 알리지 않았다. 그 바람에 페르디난트를 태운 차는 처음 동선대로 움직이다 변경된 경로로 급히 우회전해야 했다. 이는 그 주변에서 기다리던 19세의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하늘이 준 기회였다. 그가 발사한 권총탄 한 발은 황태자의 목 정맥을, 또 한 발은 그 아내의 위장 동맥을 끊었다.문재인 대통령이 대구 칠성시장을 방문했을 때 청와대 경호원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댄 채 기관단총을 노출해 '과잉 경호' 논란이 일고 있다. 문 대통령의 민생 현장 방문 때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는데 하필 문 대통령 지지도가 낮은 대구에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은 대구를 '위험지역'으로 보기 때문이 아니냐는 소리도 나온다. '해프닝'인지 '기획'인지는 청와대만 알 것이다.

2019-03-26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박영선·유시민의 입

그리스 신화 속 영웅 테세우스가 처단한 악당 중 프로크루스테스가 있다. 거인인 그는 여인숙을 차려 놓고 손님이 들어오면 쇠 침대에 눕혔다. 쇠 침대는 큰 것과 작은 것 두 개였다. 키가 큰 사람에게는 작은 침대를 내주고 작은 사람에게는 큰 침대를 내줬다. 키가 침대보다 커서 밖으로 튀어나오면 침대의 크기에 맞게 머리나 다리를 톱으로 잘라내고 작으면 몸을 잡아 늘여서 죽였다. 테세우스는 똑같은 방식으로 프로크루스테스를 침대에 눕혀 밖으로 튀어나온 머리를 잘라서 죽였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을 가르쳐 주는 신화다.말 잘하기로 이름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자신이 한 말로 말미암아 곤경에 처했다. '맹자'의 '너에게서 나온 것은 너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처럼 두 사람이 뱉은 말이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다.2016년 국회에서 박 후보자는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씀씀이를 비판했다. "조 장관의 씀씀이 유명하죠. 연간 5억, 문화부 장관 되기 전에 여성부 장관 시절에는 연간 7억5천." 이번엔 박 후보자가 이번 주 청문회에서 자신의 씀씀이를 해명해야 할 처지가 됐다. 최근 5년 동안 박 후보자와 배우자가 신고한 소득은 약 33억원, 같은 기간 늘어난 재산은 9억9천여만원이다. 23억원가량이 어딘가에 쓰였다는 말이다. 자유한국당은 1년 평균 생활비가 4억6천만원에 달하는 '내로남불 씀씀이'라고 공격하고 있다.유 이사장은 2015년 마약 투약 혐의가 적발된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 사위에 대해 "마약 복용은 차고도 남는 이혼 사유다. 매우 흐뭇하게 이 사건을 보고 있다"고 했다. 유 이사장은 조카인 영화감독 S씨가 대마초 밀반입으로 실형을 확정받고 수감 중인 데 대해 별다른 얘기를 않고 있다. 알릴레오 홈페이지엔 "남의 도덕성 비판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보라" "내로남불 끝판왕" 등의 댓글이 달렸다.자업자득에서 업은 나쁜 업을 일컫는다. 가장 많이 저지르는 업이 말로 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뱉은 말이 자신을 향하는 비수(匕首)가 된다는 사실을 말 잘하는 박유 두 사람이 잘 보여주고 있다.

2019-03-25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외교 결례

과거 전두환 대통령 내외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백악관에서 레이건 미국 대통령 부부와 커피 브레이크(Coffee Break)를 가졌다. 웨이터의 주문 요구에 레이건 대통령이 "Coffee please"라고 하자, 낸시 여사가 "Me too"라고 했다. 그러자 전 대통령이 "미쓰리"라고 했는데, 옆에 있던 이순자 여사가 "왜요? 나 여기 있는데…"라고 했다.김영삼 대통령의 방미 때는 클린턴 대통령에게 "How are you?"라고 인사말을 건네고, 클린턴이 "I'm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하면, "Me too"로 마무리하라고 영어 자문을 했다. 그런데 김 대통령이 그만 "Who are you?"라고 인사를 하는 바람에 이를 조크로 받아들인 클린턴 대통령이 "I'm Hillary's husband"라고 받아넘겼다. 그런데 김 대통령이 "Me too"라고 해버린 것이다. 대통령의 방미 후 유행한 우스갯소리다.최근 동남아 3국 순방을 다녀온 문재인 대통령의 잇단 말실수가 외교적 결례 논란으로 비화했다. 말레이시아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인도네시아 말로 인사를 하고, 낮 행사에서 밤 인사를 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체코를 방문했을 때도 뒷말이 무성했다. 방문국 대통령이 외국에 나가고 없는데 정상외교를 한다고 가서는 국내에서 적폐 취급하는 원전을 팔려고 했다는 것이다.2017년 12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는 문제가 더 심각했다. 차관보가 공항 영접을 나오는 푸대접에 이어 외교부장이 팔을 툭툭 치는 결례를 서슴지 않았다. 대통령을 수행 취재하는 기자들이 집단 폭행을 당하는 참사까지 겪었다. 베이징에 머물던 대통령이 열 끼 식사 중 중국 관계자들과 함께한 것은 두 끼에 불과해 '혼밥'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현 정부 출범 이래 외교 결례와 의전 엇박자가 빈발하고 있다. 실수를 범하든 박대를 당하든 외교 결례는 나라 망신이다. 경험을 갖추고 능력이 검증된 외교관들을 적폐로 내몰고 코드 인사에 집착한 결과라는 비아냥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2019-03-23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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