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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증오와 분노, 댓글

'폐업합니다. 25살 편의점 말아먹기까지.'요즘 유튜브에는 29세 청년의 '편의점 폐업기'가 화제다. 25세에 편의점을 차린 한 청년은 매출 부진, 최저임금 인상 등의 요인으로 고전 끝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사연을 소개했다. 이 동영상과 관련 기사는 조회 수 50만 회와 댓글 1천여 개가 달릴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1천 개 넘는 댓글의 내용은 어땠을까? 일반적이라면 '고생했어요' '새로운 일을 하면 성공할 겁니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잖아요' 따위의 댓글이 달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측은지심이고 인정이다. 근데, 댓글의 80% 이상이 비난 일색이고, 거의 대부분 '최저임금을 탓하지 마라'는 내용이었다. '자기가 못해서 말아먹고는 최저임금 탓이네' '기승전 최저임금, 기레기(기자+쓰레기)로 전업 예상' '최저임금 말하는 자영업자들은 자유한국당 사람들' '잘 망했다. 개고생하지 말고 최저임금 받으며 알바해라'….이 청년이 동영상과 인터뷰에서 다소 튀는 부분이 있었는지 몰라도, 편의점을 운영하면서 고생했고 저축한 돈을 까먹은 것은 팩트다. 자신과 정치적 지향이나 생각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한 청년의 고생담을 이렇게 매도하고 욕해도 되는 걸까.정부 여당과 관련된 기사에 댓글을 줄줄이 다는 보수적인 네티즌들도 위의 젊은 세대들과 다르지 않다. 댓글마다 분노와 증오가 넘쳐나고 육두문자가 판을 친다. '문재앙 화형시키자' '이해창 광화문에 매달자' '주사파 빨갱이 ○○○, XXX 찢어 죽이자'….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람을 죽이자는 말을 함부로 내뱉는지 알 수 없지만, 갈수록 무섭고 살벌해진다.댓글만 보면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미쳐 돌아가는 세상'처럼 느껴진다. 상대에 대한 분노에 이성을 잃고 눈이 먼 것 같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장강명의 소설 '댓글부대'에 나오는 말처럼, 진보, 보수 모두 자신의 세를 규합하기 위해 국민을 분노와 증오로 몰아가고 있다. 댓글에서 배양된 분노와 증오의 끝은 어디일까. 그것이 더 두렵다.

2019-05-14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제행무상(諸行無常)

죽장에 삿갓 쓰고 삼천리강산을 표류했던 김삿갓. 사대부가의 후손으로 글재주가 탁월했던 그가 입신양명은 물론 처자식까지 버리고 방랑길을 떠나게 된 것은 향시(鄕試)에 장원급제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시제(試題)가 홍경래의 난 때 반란군에 항복한 고을 수령을 탄핵하는 것이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친할아버지였음을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다. 얄궂은 운명이었다.문전걸식으로 떠돈 김삿갓의 행로는 처연했지만 남긴 시(詩)들은 해학과 풍자를 넘어선 어떤 경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아향청산거(我向靑山去) 녹수이하래(綠水爾何來)'란 구절은 다분히 불교적인 풍미를 지녔다. '나는 청산으로 가는데, 녹수 너는 어디서 오느냐?' 그것은 어쩌면 구도자의 심오한 화두(話頭)에 다름아니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고'라는 우리네 삶의 근원적인 질문이기도 하다.불교에서는 삶의 본질을 제행무상(諸行無常)으로 설법한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사랑과 명예도, 돈과 권력도, 사람과 생각도 그렇다. 모든 것들은 인연 따라 잠시 왔다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는 것이다. 그것만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토록 무상한 것들을 천년만년 가질 수 있을 듯 집착하니 모든 것이 괴로운 것이다. 즉 일체개고(一切皆苦)이다.우리가 붙잡으려는 모든 대상은 고정된 실체 또한 없다. 무슨 직업을 가지거나 어느 지위에 오르면 스스로를 그것과 동일시하는데, 그 또한 아무런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인연 따라 잠시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어떤 사람도, 어떤 직위도, 어떤 것들도 고정불변한 실체적인 것은 없다는 게 제법무아(諸法無我)이다.그런데도 우리는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인 것에 집착하며 괴로움(苦)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것을 깨닫고 그것에서 벗어나 대자유를 얻기 위해 출가 수행도 하는 것이다. 불교의 역사가 오랜 우리나라는 명산유곡마다 크고 작은 사찰들이 흩어져 있다. '부처님오신날' 모처럼 절을 찾아 산길을 오른 사람들이 잠시나마 마음을 모았을 법한 사유(思惟)이다.

2019-05-13 06:30:00

이대현

[야고부] 떨고 있는 화성(火星)

지구 입장에서 보면 인류는 '미운 존재'다. 지구의 주인 행세를 하면서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슬픈 열대'의 저자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는 인류가 지구에 끼친 해악을 비판하며 "인류 없이 시작된 세계는 또 인류 없이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했다.132개국이 참여하는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가 파리에서 총회를 열고 보고서를 채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 증가와 경제 발전으로 자연환경이 크게 변하면서 약 100만 종의 동식물이 수십 년 내로 멸종할 위기에 빠졌다. 지구에 800만 종의 생물이 사는데 멸종 속도가 과거 1천만 년 평균보다 수십 배나 빠르고 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멸종 위기를 불러온 주범은 인류다. 1970년 이후 인류는 37억 명에서 76억 명으로 2배 증가했다. 늘어난 인구를 먹여 살리려 농작물 생산이 3배 늘었다. 이 탓에 육상 환경의 75%가 '심각한 변화', 해양 환경의 66%가 '매우 나쁜 영향'을 받았다.생태계 파괴는 결국 인류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1980년 이후 바다로 흘러 들어간 플라스틱이 10배나 늘어 최소 267종의 생존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결국엔 먹이사슬을 통해 인류도 나쁜 영향을 받고 있다. 생물다양성은 인류의 삶에도 불가결한 것이지만 인류는 이를 스스로 파괴하고 있다.인류 최초로 달 표면을 걸었던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 승무원 버즈 올드린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에 인류 이주를 목표로 화성 유인 탐사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화성은 이제 숨 쉬고, 걷고, 말하는 용감한 남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화성이 인류 이주 얘기를 듣고 떨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류가 망가뜨린 지구와 같은 비극이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성 이주도 좋지만 인류는 스스로 근본적인 변화를 통해 지구를 모든 종(種)이 더불어 사는 '공존의 행성'으로 바꾸는 게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인류가 망가뜨린 행성은 지구 하나로 충분하다.

2019-05-11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기승전 대북 식량 지원

9·11테러 당시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세계무역센터 건물에서 솟아오르는 연기 속에서 악마의 형상을 봤다고 주장했다. 허무맹랑한 소리지만 인간은 무작위적인 패턴에서 구체적인 패턴을 찾아낸다. 인류가 진화 과정에서 습득한 생존 기술 중 하나다. 수풀이 움직이면 일단 달아나는데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 포식자가 있다는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그렇다면 왜 수풀이 움직이는지 확인될 때까지 기다리면 이미 늦다.전문 용어를 빌리자면 패턴이 없는데 있다고 인식하는 '양성반응 오류'의 피해가 패턴이 있는데 없다고 인식하는 '음성반응 오류'의 피해보다 작았으며, 그 결과 구체성보다 민감도를 높이는 패턴 인식이 진화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 방법을 '휴리스틱'(어림짐작)이라고 한다. 이는 때로는 오판을 낳기도 하지만 불확실한 상황을 헤쳐나가는, 불완전하지만 효율적인 방법임은 부정할 수 없다.휴리스틱은 전쟁에서도 유효할 수 있다.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다. 적의 의도를 신속히 알아내는 것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이는 말처럼 쉽지 않다. 이런 난점을 해소하는 방법은 적이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를 보이면 공격 의도라고 '간주'하고 즉시 대응 태세를 취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렇게 해서 손해 보는 것은 비상대기에 따른 공포나 긴장뿐이다. 아무 일도 없으면 맥이 빠지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 앉아서 당하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그런 점에서 지난 4일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군 당국이 즉시 '미사일'이라고 발표한 것은 적절했다. 그러나 그 뒤로는 참으로 이상했다. 40분 뒤에는 '발사체'로, 다음 날에는 '전술유도무기'로 바뀌었다. 오전 9시에 발사했으니 '도발'이 아니라고도 했고, 발사체가 무엇인지도 여전히 '분석 중'이라고 한다.왜 이러는지 의아했지만 이제야 알 것 같다. 대북 식량 지원 때문인 듯하다. 발사체가 미사일이면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다. 대북제재에 걸려 식량 지원을 못하게 된다. 결국 국민은 지난 4일부터 지금까지 '기승전 대북 식량 지원'이라는 시나리오의 저질 연극을 보고 있는 셈이다.

2019-05-10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90초 룰

며칠 전 모스크바 국제공항에 비상착륙하던 러시아 여객기 화재 사고로 모두 41명이 숨졌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모두 78명을 태운 이 여객기는 이륙 30여 분 만에 벼락을 맞고 긴급 회항해 활주로에 내리다 불이 나면서 많은 인명 피해를 냈다. 사고 직후 공개된 영상을 보면 기체 꼬리 부분이 화염에 휩싸였고 승객이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피해가 커졌다.그런데 외신과 항공안전 전문가들이 주목한 대목은 일부 승객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피해를 키웠다는 생존자 증언이다. 비상 탈출 상황인데도 소지품을 챙기려다 대피 통로를 막으면서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인데 이른바 '90초 룰'을 넘겨 피해가 커진 것이다.이 90초 룰은 세계 어느 항공사든 사고에 대비해 승객에게 교육하는 안전 규정 중 하나다. 탈출을 방해하는 수하물에 손을 대는 것 자체가 다른 승객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2013년 7월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하다 화재가 발생한 아시아나 214편 사고 때도 일부 승객이 수하물을 챙겨 탈출하는 장면이 TV 중계에 포착됐다. 기체가 전소되는 큰 사고였으나 희생자가 2명에 그친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다.앞서 2005년 8월 에어프랑스 358편이 캐나다 토론토 피어슨 공항에 착륙하다 활주로를 벗어난 사고에서도 기체가 모두 불에 탔으나 탑승자 309명 전원이 살아남았다. 비상 탈출까지 90초 정도밖에 시간이 없는 상황에서 승객이 침착하게 대응한 결과다.영국 항공당국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238건의 항공기 사고 사례를 조사해보니 승객의 6%는 안전벨트를 풀지 못해 대피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이런 마당에 가방을 챙기다가 다른 승객의 대피길마저 막는 이기적인 행동은 화를 키울 수밖에 없다.중국 노동절 연휴나 일본의 '10연휴' 등 골든위크에 맞춰 입국하는 관광객과 해외로 나가는 우리 국민들로 하늘길이 크게 붐비는 시점이다. 이럴 때 일수록 항공기 사고 시 행동요령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위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미리 생각하는 승객이 가장 먼저 탈출하는 승객'이라는 전문가의 지적이 새삼스럽다.

2019-05-09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아, 5월!

서른을 넘기지 못하고 요절한 시인 이장희는 다섯 살 때 여읜 어머니 생각에 사무쳤다. 대구의 친일파 부자인 이병학을 남편으로 둔 어머니 박금련을 그리는 절절한 마음은 '어머니 어머니라고/ 어린 마음으로 가만히 부르고 싶은'으로 시작되는 그의 시 '청천(靑天)의 유방'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두 명의 계모 자녀까지 모두 21남매의 셋째였던 그는 시로써 보고 싶고, 부르고 싶은 그리운 어머니를 떠올렸다. 또 아버지의 무관심과 4남매를 남기고 일찍 떠난 탓에 미처 호적에도 오르지 못한 생모 이름을, 계모 박강자를 밀어내고 바로잡아 올리는 일, 즉 어머니의 당당한 자리 찾아 주기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채웠다.시인 윤동주에게도 어머니는 그리움이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을 보며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를 떠올렸으니 말이다. 시 '별 헤는 밤'에서 윤동주가 그리운 어머니를, 이장희가 '푸른 하늘'을 보며 어머니의 '불룩한 유방이 달려 있'는 것을 본 까닭은 어찌할 수 없는 간절함 때문이었으리라.어머니를 먼저 떠올릴 가정의 달, 5월이나 우울하다. 노인 학대 증가가 그렇다. 2008년 3천897건이 10년 만인 2017년 7천287건으로 배쯤 불었다. 학대 장소가 대부분 가정(89.3%)이라니 놀랍다. 가해자 역시 네 명 가운데 한 명꼴(26.3%)로 아들이라니 부모 여읜 사람에겐 안타까운 소식이다.이런 즈음에 지난달 경북 영천의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 보티미디엔이 오랜 세월 앓고 있는 시부모를 보살피고 살림을 맡는 등 효행(孝行)으로 대구의 (재)보화원이 주는 60년 넘는 역사의 권위 있는 '보화상'을 받은 소식은 돋보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멀리 낯선 이국땅으로 시집온 여성의 아름다운 행적은 기릴 만하다.인도에서 건너온 허황옥이 가야국 김수로왕과 부부 인연을 맺은 뒤, 허 황후를 따라 뿌리내린 신하(신보)의 딸(모정)이 다시 수로왕 아들(거등왕)과 부부가 된 이후 다문화가정은 이제 한국 가정의 든든한 한 축이 됐으니 어쩌면 이번 일은 마땅한지도 모를 일이다.가정의 달 5월에 돋보인 올해의 보화상 수상을 한 주인공에게 뒤늦게나마 축하를 보낸다.

2019-05-08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전술유도무기'라는 말장난

"명료한 언어의 대적(大敵)은 위선이다. 진짜 목적과 겉으로 내세우는 목적이 다를 경우 사람은 거의 본능적으로 긴 단어와 진부한 숙어에 의존하게 된다. 마치 오징어가 먹물을 뿜어내듯이 말이다." 조지 오웰의 에세이집 '나는 왜 쓰는가'의 한 구절이다. 요약하자면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는 소리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 '다언삭궁'(多言數窮)이다. 말이 많으면 자주 곤란한 처지에 빠진다는 뜻으로, 말은 짧고 명료해야 한다는 것이다.정치판의 언어는 그렇지 않다. 불순한 의도나 목적을 감추기 위해 기상천외한 표현을 동원하거나 특정한 사실이나 상황을 표현하는 역사적·사회적으로 확립된 단어가 있는데도 회피한다. 1차 걸프전 당시 미 국방부가 폭격을 "목표물에 대한 서비스"로, 폭격의 표적이 된 민간인과 건물을 각각 "부드러운 목표물"과 "딱딱한 목표물"이라고 표현한 것은 좋은 예다.이런 사례는 끝이 없다. 미 국무부는 과거 세계 인권현황 보고서에서 '살해'를 "불법적이거나 자의적인 생명의 박탈"이라고 했으며 국방부는 민간인 사상자를 "부수적 피해", 1983년 그레나다 침공을 "동트기 전 수직 개입"으로 표현했다. 또 테러 용의자에 대한 고문을 CIA(중앙정보국)는 "정보 획득을 위한 특이한 방법", 미국 정부는 "공격적 심문"으로 각각 표현한 사례도 있다. "오징어가 먹물을 뿜어내듯이"란 오웰의 표현이 딱 들어맞는, 본질을 감추는 말장난이다.문재인 정부의 말장난도 수준급이다. 모두 세어보려면 열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다. 이제는 북한이 발사한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체"라거나 "신형 전술유도무기"라고 규정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전술유도무기라는 표현은 북한의 발표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그런다고 미사일이 미사일이 아닌 것으로 둔갑하지 않는다. 전술유도무기가 곧 미사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장난은 이번만이 아니다. 2017년 8월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을 당시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300㎜ 방사포로 추정된다"고 안개를 피웠다. 이러니 대통령이 '김정은 대변인'이란 소리를 듣는 것이다.

2019-05-07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야만의 시대

"때려치워라! 물러가라!"대구 두류공원 운동장은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욕설과 고함이 진동했고 주먹만한 돌멩이가 비처럼 쏟아졌다. 유인물과 현수막은 불탔다. 1987년 11월 15일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13대 대선 유세 때였다. 당시 대학생인 기자는 생생하게 그 광경을 지켜봤다.기억에 남는 것은 위험하고 긴박한 순간에도 끝까지 연단을 지킨 DJ의 모습이었다. DJ는 돌 던지는 이들을 향해 "내게 돌을 던지세요" "우리 이겨냅시다"라고 연신 호소했다. 만고풍상(萬古風霜)을 겪은 거목답게 꿋꿋하고 당당했고, 30분 가까운 연설을 마쳤다. DJ를 '빨갱이' '거짓말쟁이'라고 여기던 대구의 어르신들조차 그 장면을 보고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돌을 던진 군중은 누구일까. 당연히 일반 시민은 아니었다. 그들은 머리가 짧고 운동화를 신고 눈매가 매서운, 정체불명의 집단이었다. DJ가 연단에 오르자마자 100명이 넘는 무리가 갑자기 튀어나와 조직적으로 폭력 행위를 자행했다. 야당 총재가 '깡패 집단'에 의해 테러를 당하는데도, 경찰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날 밤 TV 뉴스를 보니 돌 던진 무리는 일반 시민으로 바뀌어 있었다.노태우 민정당 후보도 그해 11월 29일 광주 유세 중 돌멩이·계란 세례를 받고 10여 분 만에 유세를 중단했다. 뒤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두 사건 모두 안기부가 '지역감정 조장'을 위해 조직폭력배를 동원한 '기획 폭력'이었다. 그 시절은 정권 차원에서 야당 총재의 연설을 방해하고 폭력배를 동원한 '야만의 시대'였다.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3일 광주에서 집회하다 욕설·물세례를 받았다. 한국당이 518정신을 폄하했다는 이유였지만, 폭력으로 야당 총재를 공격하는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정당하지 않다. 상당수 언론은 '혼쭐났다' '찬물 먹다' '거센 항의'라고 황 대표를 은근히 비하했을 뿐, 민주주의의 가치를 언급한 곳은 드물었다.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과 생각·사상이 다르다고 폭력을 옹호하면 30년 전과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또 다른 '야만의 시대'가 시작된 것인가.

2019-05-06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대구, 독수리 대신 수달?

'삼국유사'에는 수달 때문에 스님이 된 사연이 실려 있다. 신라 혜통 스님이다. 스님이 살던 집 부근 시냇가에서 놀다 수달 한 마리를 잡아 죽여 뼈를 버렸다. 그리고 이튿날 가보니 뼈는 없고 핏자국만 남았다. 따라가니 수달이 예전 살던 굴이었다. 뼈는 새끼 다섯 마리를 안고 쭈그린 모습이었다.놀란 스님은 마침내 출가, 오늘에까지 이름을 남겼고 이런 수달 이야기는 흔히 부모와 자식 간 정(情), 특히 뜨거운 모정(母情)을 나타내는 글감으로 다뤄지고 있다. 7세기 신라 때 활동한 혜통 스님이 남긴 수달에 얽힌 사연은 천년 넘는 세월을 두고 잊히지 않고 이어지는 셈이다.그러나 수달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시대 변화와 인간이 만든 환경오염 등으로 점차 우리 곁을 떠났으니 말이다. 대구 같은 도심 하천에서는 더욱 보기 힘든 존재가 된 지 오래다. 살 만한 터가 되지 못한 탓이다. 정부가 1982년 수달을 멸종위기 야생동물로 보고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하려 할 만하다.이런 수달이 신천 등 대구 곳곳에서 2006년 이후 최근 확인한 결과, 모두 24마리가 사는 것으로 파악됐다. 오랜 수난사 속에 대구 도심에서 살아가는 수달이 2006년 16마리 관찰에서 이제 8마리 가족을 더 늘린 결과다. 대구 사람들의 수달 보호 노력이 결실을 거둔 셈이다.이런 대구 수달들의 생존과 증가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수달의 존재는 대구가 그만큼 깨끗하고 달라진 환경을 갖춘 곳이자, 이런 환경을 가꾸는 도시라는 인상을 줄 척도일 수도 있어서다. 아울러 신라 혜통 스님 이래 수달과 사람 사이 인연에 깃든 남다른 이야기까지도 곁들이면 더없이 좋을 터이다.이참에 대구시청 앞 독수리 동상을 수달로 대신하면 어떨까. 독수리가 어떤 특별한 연결 고리로 대구 상징의 새로 뽑혔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환경과 모정을 떠올릴 수달도 대구에 어울릴 만한 동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대구 수달, 아픈 사연만큼이나 사랑을 받으면 좋겠다.

2019-05-04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기·승·전·장기 집권

문재인 정권의 정책에는 나라의 앞날을 염려하는 고심(苦心)의 흔적이 없다는 지적은 통렬하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국가 미래에 대한 고심은 없는 대신 다른 고심이 똬리를 틀고 있다. 나라는 망가져도 장기 집권만 하면 된다는 고심의 흔적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면서까지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법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강행한 더불어민주당의 속셈은 분명하다. 내년 총선에서 한국당 의석을 형편없는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게 목표다. 민주당 의석이 줄 수도 있지만 정의당과 같은 '우군 정당' 의석수가 늘어 정국을 끌어가는 데 문제가 없다. 민주당에다 정의당, 민주평화당, 바른미래당 일부까지 더하면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말한 것처럼 내년 총선 260석도 불가능하지 않다. 한국당을 '궤멸'시킬 최적의 방안이다. 공수처는 문 정권이 목을 메는 적폐청산의 또 다른 칼이 되기에 충분하다.정부와 산하단체, 입법부, 사법부,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 중앙선관위 등 국가기관에 코드·진보 인사들을 포진시키고 공공기관에 '캠코더 인사'를 꽂아 넣은 것도 장기 집권 플랜의 하나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을 깎아 먹으면서 무리한 인사를 하는 이유를 이것이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반(反)기업 정책 등 숱한 부작용이 드러났는데도 이를 고집하고 세금 퍼주기에 열을 올리는 것 역시 정권을 이어가려는 포석이다.집권 세력이 정권을 계속 잡겠다는 것은 탓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집권 세력의 모습은 정도(正道)를 벗어났고 앞뒤가 바뀌었다. 국정에서 성과를 내 국민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고, 그 결과 표를 더 얻어 집권을 계속한다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선거제 등 정치 구조를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바꾸고 나라의 앞날을 내팽개치면서 나랏돈을 펑펑 퍼붓는 포퓰리즘 정책을 써 정권을 계속 차지하려는 것을 용납할 국민은 없다.급기야 '좌파독재'란 말까지 등장했다. 이승만, 박정희, 군사정부에서나 들었던 단어가 독재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독재에다 남한에서도 독재라니…. 21세기 한반도의 안타깝고 서글픈 현실이다.

2019-05-03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졸(卒) 운전

1960, 70년대 '국민학교'를 다닌 베이비붐(1955~1963년생) 세대는 표어·포스터에 익숙하다. 이는 정부 시책이나 캠페인을 대중에게 전달하고 각인시키는 데 유용한 수단이었다. 그 당시 교사들은 '1980년 수출 100억불, 국민소득 1만불' '1가구 1승용차'와 같은 장밋빛 국가 정책 목표를 아이들에게 주입시켰다. 특히 '1가구 1승용차' 슬로건은 당시 어려운 현실에 비춰볼 때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았다. 그런데 이 꿈이 현실이 되는 데는 채 반세기가 걸리지 않았다. 2014년 10월, 자동차 등록 대수가 2천만 대를 넘어선 것이다. 1945년 광복 무렵 7천386대였던 등록 차량이 70년 만에 2천700배나 증가했다.이런 '마이카' 꿈에 처음 접근한 세대가 베이비붐 세대다. 이들은 경제 발전과 라이프 사이클 변화에 맞춰 자가 운전에 익숙한 최초의 세대였다. 게다가 베이비붐 이전 세대의 면허 취득자 수도 적지 않다. 현재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전체 면허 소지자의 9%, 약 300만 명으로 상당수 '장롱면허'를 감안해도 무시하기 힘든 숫자다.문제는 베이비붐 세대도 '만년 청년'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도 노령의 기준점인 65세가 코앞이다. 나이가 들면 순발력과 인지능력이 떨어져 운전에 적지 않은 지장을 준다. 최근 고령 운전자 사고가 빈발하는 것도 이를 증명한다. 특히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65~74세보다 중앙선 침범, 신호 위반 등으로 사고를 내는 비중이 훨씬 더 높다는 통계다. 각 지자체마다 고령 운전자 면허 반납 시 교통비 지급 등을 조례로 정하고 대책을 서두르는 것도 고령 운전의 고민이 크다는 방증이다.요즘 '졸혼'(卒婚)이 하나의 사회 흐름으로 떠오르고 있다는데 고령자의 미련 없는 '운전면허 포기' 즉 '졸운전'도 생각해 볼 문제다. 이를 유도하는 정책적 수단도 필요하나 고령자 스스로의 결단이 중요한 이유다. 그러려면 무작정 면허증 반납을 종용하기보다 현실적인 정책 대안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2018년 대구 전체 65세 이상 면허 소지자 15만6천여 명 중 면허 반납자 비율이 고작 0.26%(422명)라는 점은 분명히 벅찬 현실이다.

2019-05-02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이 총리의 '천황님'

"천황(天皇)이라고 부르기 싫다. 일왕(日王)이다."한국인이라면 일본 천황을 호칭할 때 대개 비슷한 생각을 한다. 식민지 역사와 껄끄러운 한일 관계를 떠올리면 욕을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구시대적인 호칭까지 쓰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북한은 일본이 못마땅할 때마다 조선시대처럼 왜왕(倭王)이라 칭하지만, '막가파식' 표현에 가깝다.사실 천황 호칭의 역사는 일본 제국주의 성장 과정과 맞물려 있다. 일본이 천황 칭호를 처음 사용한 것은 7세기 후반 덴무 천황(天武天皇) 때다. 당나라 고종의 '천황' 칭호를 흉내내 '대왕'(大王) 대신 '천황'으로 개명하면서 현인신(現人神·살아있는 인간 신)으로 신격화했다. 왕권이 융성하던 100여 년 동안 쓰였지만, 왕권 추락과 함께 귀족·막부의 견제로 천황 칭호는 오래된 골동품처럼 사라진 듯했다.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천황 신격화가 시작되면서 이 칭호가 다시 등장했다. 루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에서 "메이지유신은 고대에 일시적으로 사용했던 천황 칭호를 부활시켰다"고 썼다. 1889년 메이지헌법에 천황이 공식 칭호로 사용됐지만, 황제(皇帝) 칭호에도 미련이 있었다. 1910년 한일병합 조약에는 '일본황제폐하'라고 써 있다. 천황 칭호만 쓰도록 공식화한 것은 일본이 독자적인 제국주의 길로 접어든 1935년이었다. 전 세계에서 영어 명칭으로 'King'(왕)이 아니라 'Emperor'(황제)를 아직까지 쓰는 것도 일본이 유일하다.이런 역사를 아는 한국인이 무작정 천황이라고 부르기에는 난감하다. 그렇다고 일본식으로 '덴노'라고 하기에도 찜찜하다. 한국 언론은 '일왕'이라고 표기하지만, 일본인은 이를 불쾌하게 여긴다. 아무래도 한·일이 가까워지려면 호칭 장벽부터 없애야 할 것 같다.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달 29일 자신의 트위터에 '아키히토 천황님'이라고 표기해 논란을 불렀다. 김대중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도 '천황'이라고 했다가 이런저런 구설에 올랐지만, 거기에 '님'까지 붙인 것은 너무 과하다. 외교 관례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호칭에 얽힌 역사는 알고 외교를 했으면 좋겠다.

2019-05-01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핑계

미국에서 목회 활동을 하고 있는 어느 교포 신학자가 쓴 '핑계-죄의 유혹'이란 책은 현대인들이 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면서도 갖가지 핑계를 되풀이하고 있는 양상이 성경 속 인물들이 살던 시대에도 다르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구약성서 속의 핵심 인물인 모세조차 신의 계시와 인도에도 불구하고 핑계를 대는 모습을 적시한 게 흥미롭다.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문장가였던 홍길주의 독서 노트 '수여연필'(睡餘演筆)에는 변명과 핑계와 관련한 재미있는 구절이 나온다. '역사를 기록하는 붓을 쥔 사람에게 그대의 일을 쓰게 한다면, 단지 어떤 일을 했다고 적을 뿐, 일은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서 이러쿵저러쿵 둘러댄 핑계까지 잡다하게 기록에 남기지는 않네. 실패한 선인들의 졸렬한 자취인들 어찌 변명이 없겠는가.'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제가 올해 1분기에 -0.3% 성장률을 기록하며 외환 위기 이후 최저를 나타냈다. 이렇다 할 대외적인 위기도 없었는데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이 같은 마이너스(-) 성적표를 정책의 실패로 보지 않고 대외 경제 여건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다. 지난해 6월에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탓을 하더니, 이번에는 근거도 없는 국외 여건을 핑계로 삼은 것이다.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조선시대 정조가 세상을 떠난 후 219년 동안,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10년과 문재인 대통령 2년 등 12년을 빼놓고는 전부 일제강점기 또는 독재이거나 극우 세력이 이 나라를 통치해 왔다"는 역사관을 드러냈다. 현재의 어떠한 실책과 실패에 대해서도 일단 핑계를 댈 수 있는 세월의 지평을 200년으로 늘려 놓은 셈이다. 작가 박완서가 소설 '미망'에서도 기술했듯이 '핑계 없는 무덤 없다'지만, 정말 대단한 핑계의 공력이다.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페이스북에서 밝힌 '핑계로 성공한 사람은 가수 김건모밖에 없다'는 말이 새삼 관심을 끄는 이유이다. 예나 지금이나 성공하는 사람과 조직은 가능한 방법을 찾는 데 진력하고, 실패하는 쪽은 말도 안 되는 핑계를 찾는 데 전전긍긍하기 마련이다.

2019-04-30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대구, 이 봄을 보내며

100년 전 1919년 3·1만세운동을 떠올리면 대구의 올봄 3, 4월은 남다르고 아쉬움도 진하게 겹쳤다. 3월엔 대구경북 만세운동의 촛불이 된 대구 서문시장 첫 만세시위가 시작됐다. 4월은 대구 마지막 만세운동이 펼쳐졌고, 대구경북의 유림을 중심으로 서명, 해외에 보낸 독립청원서(파리장서)운동이 드러난 달이다.남다른 기억으로 먼저, 대구 3·8만세시위의 범시민적 재연을 들 수 있다. 또 대구에서 결성된, 역사에 길이 남을 독립운동단체를 다룬 책 '소설 대한광복회'(정만진 지음), 파리장서 서명자 장석영의 투옥 일기인 '국역 흑산일록-대구감옥 127일, 그 고난의 기록'(장석영 지음·정우락 옮김) 발간 등도 있다. 두 책 모두 3·1운동 100주년 기념이다.'대한광복회'는 대구의 독립운동가 우재룡 중심으로, 1명을 빼고 모두 실존 인물이 등장하며, 광복 뒤 친일파 득세로 독립운동가가 목숨을 지키려 산골로 피신한 서글픈 시대 상황도 실려 있다. '흑산일록' 경우 파리장서운동의 대표 인물인 경북 성주 출신 유림 장석영의 감옥 투쟁 생활 등을 경북대 정우락 교수가 옮기고 분석했다.대구 동구 미대마을 만세시위 청년 8명 가운데 홀로 서훈을 받지 못한 1명(권재갑)에 대한 포상 신청 작업도 남달랐다. 후손이 없는 탓인지 지금까지 잊힌 그를 위해 마을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여기저기 흩어진 자료를 모아 뒤늦게나마 3월 27일 이뤄진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의 힘든 과정만큼은 분명 돋보인 일이다.그러나 아쉬움은 더욱 진하다. 팔공산 미대마을 8명 청년의 활동을 기린 기념비 건립(4월 26일)이 무산되어서다. 만세운동길 조성에다 100년 전 마을 청년들의 뜻을 새기려 주민 중심으로 3천만원쯤 모아 추진한 기념비 건립이 이달 15일 대구시 심의 때 몇몇 이해할 수 없는 문제로 좌절됐으니 말이다.3·1만세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은 대구는 이런 남다른 사연을 간직한 채 이제 3, 4월의 봄을 보내게 됐다. 그리고 오는 8월 15일 광복절에도 이어질 남다른 기억을 바라고, 특히 미대동 기념비 건립의 완성을 기대하며 남은 5월의 봄을 맞이하게 됐다.

2019-04-29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집이 뭐길래

1592년 임진왜란 이후 조선 임금들의 꿈이 하나 있었다. 바로 전란의 북새통에 불타 빈터가 된 경복궁을 다시 짓는 일이었다. 조선의 얼굴이자 심장부로 소실된 경복궁 중건에는 273년을 기다려야 했다. 흥선대원군이 1865년 나설 때까지.떨어진 왕실의 존엄과 권위 회복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경복궁 중건의 그늘은 짙었고 백성의 고통은 컸다. 돈이 문제였다. 처음엔 원납전이란 그럴듯한 명분의 기부금에 기댔지만 결국 벼슬도 팔고 당백전 발행 등 폐단으로 물가가 오르고 백성들의 원성은 늘어 되레 대원군의 몰락을 재촉했다.입는 옷과 먹는 음식, 사는 집은 사람의 삶에 꼭 필요한 기본 요소였다. 그래서 아예 '의식주'(衣食住)라는 한 묶음 단어로 쓰였다. 그러나 시대 변천과 함께 의식주의 개념도 달라졌다. 단순히 삶을 이어가기 위한 요소에서 이제는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에 이르렀다.의식주 가운데 특히 집이 그렇다. 경복궁처럼 존엄과 권위를 나타내는 공간도, 안식의 쉼터가 아니라 이제는 부(富)를 셈하는 잣대나 사는 사람을 과시하는 상징으로 바뀌고 있다. 요즘 들어서는 집이 정부 인사청문회 때 고위 관료들의 발목을 잡는 굴레가 되기에 이르렀다.관공서도 이런 흐름을 탄 탓인지 경쟁적으로 번듯한 공간 마련과 건물 치장에 한창이던 때가 있었다.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 존엄과 권위가 되살아날 것이라 여긴 대원군처럼, 곳곳의 관공서 새 건물이 문제 해결사라도 될 듯이 선을 보였다.지금 대구는 시청 신청사 문제가 점입가경이다. 신청사 유치를 위한 4개 구·군의 경쟁이 뜨겁고 신청사 문제를 맡은 신청사건립추진공론화위원회는 과열 유치 활동을 감점하겠다며 호통을 친다. 그런데 25일 '대구시 신청사 건립의 성공 추진을 위한 대구시 및 8개 구·군 협약'을 중구청이 거부했다.2004년 이후 15년 동안 표류했다는 신청사 문제가 끝나면 청년이 떠나고 수십 년 꼴찌인 대구 경제지표는 어떤 모습일까. 집이 바뀌면 대구 모습도 다를까. 궁금할 뿐이다.

2019-04-27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마약공화국'

마약 투약 혐의로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가 구속됐다. 하늘에서 손자를 내려다보며 정 명예회장이 이렇게 한탄할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물려준 돈이 독(毒)이 됐구나!"한국이 '마약공화국'으로 전락했다. 인구 10만 명당 마약 사범이 20명을 넘지 않으면 유엔 범죄마약국(ODC)이 마약 청정국으로 분류한다. 우리나라는 기준선인 1만 명을 2015년부터 4년간 넘었고 올해도 초과할 것이 확실하다. 한 해 마약 사범이 1만2천 명에서 1만6천 명이나 검거된다. 최근엔 경찰이 마약 범죄 집중 단속에 나서 두 달 만에 1천746명을 검거했다.연령, 직업을 가리지 않고 마약이 전방위로 퍼져 나간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재벌 3세와 연예인은 물론 대기업 임원, 일용직 노동자, 미취업 청년과 주부까지 마약에 빠져들고 있다. 마약 중독자가 20만~40만 명에 달하고 마약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7조원으로 추산된다.마약에 대해 무감각해진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는 현상이 김밥과 같은 음식에 마약 수식어가 붙는 것이다. 맛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지만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허물어뜨린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된 프로포폴을 성형과 미용을 이유로 유행처럼 투약하는 것도 문제다. 국민 5명 중 1명이 자신이 마약의 위험성에 노출돼 있다고 느낀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한 사람을, 한 국가를 망가뜨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마약이다. 마약 범람은 망국(亡國)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것이 청나라다. 19세기 청나라는 마약의 일종인 아편 때문에 영국과 두 차례 전쟁하며 망국의 길을 걸었다. 당시 4억 인구의 20%가 아편에 취했다. 펄 벅의 '대지'와 영화 '연인'에서 아편 중독으로 몰락하는 중국이 생생하게 그려졌다.1997년 IMF 외환위기, 2009년 금융위기 때 마약 사범이 크게 늘었다.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기대비 -0.3%를 기록했다. 10년 3개월 만의 최저치이자 1분기 기준으로는 16년 만의 마이너스다. 추락하는 경제에 대한 걱정과 함께 마약이 더욱 확산할 것으로 보여 우려가 크다.

2019-04-26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펠레와 찌질이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의 별명은 '펠레'다. 축구를 잘해서가 아니다. '펠레의 예언은 저주'라는 말처럼 정치적 결단을 내릴 때마다 번번이 빗나갔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한 인터넷 매체가 손 대표의 징크스를 정리한 것을 보면 '참으로 운이 없는 정치인'임을 알 수 있다. '2006년 대선 경선을 위한 100일 민심대장정→북한 1차 핵실험, 2007년 한나라당 탈당→한미 FTA 타결, 2011년 민간인 사찰 농성→연평도 포격 사태, 2016년 정계 복귀 및 개헌 제안→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손 대표가 한 인터뷰에서 야심 차게 진행한 민심대장정이 얼마나 처참하게 마무리됐는지 밝힌 적이 있다. "민심대장정 마지막 날, 전국의 방송 카메라와 모든 기자들이 나왔어요. 하필 그날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했어요. 다음 날 신문에 한 줄도 안 나왔어요."지지리도 불운한 손 대표에게 2016년 마지막으로 기회가 찾아왔다. 2년 가까이 전남 강진군 만덕산에서 칩거하던 중 20대 총선을 앞두고 다급해진 더불어민주당이 간곡하게 지원 유세를 요청했다. 손 대표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거절 이유는 그만의 정치 셈법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크게 패하면 자연스레 민주당 대선 후보로 추대될 것을 노렸다는 분석이다. 총선 결과는 예상 밖으로 민주당이 제1당으로 올라섰으니, 명분과 실리를 날려버린 셈이다. 손 대표가 찬란한 경력과 참신한 이미지를 겸비하고도, 대선 문턱에서 좌절한 것을 보면 '운도 실력'이라는 말이 떠오른다.그런데, 손 대표가 24일 같은 당 오신환 의원이 공수처법 패스트트랙에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선언하자, "사보임 해달라는 요청"이라 우기며 교체를 주장했다. 익히 알려진 손 대표의 합리성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행위다. 일부에서 손 대표가 뚜렷한 대선 주자가 없는 민주당과 합당해 대선 후보로 추대될 생각에 '무리수를 둔다'는 말까지 나왔다. 과거 행적을 생각하면 전혀 근거가 없는 예상은 아니다. '대권욕' 때문에 원칙과 순리를 저버린다면 이언주 의원의 말처럼 '찌질이'라는 별명을 새로 얻을지도 모르겠다.

2019-04-25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TK의 노히트 노런

며칠 전 프로야구 삼성과 한화와의 경기에서 3년 만에 '노히트 노런' 기록이 나왔다. 삼성 투수 덱 맥과이어는 9회까지 128개의 공을 던지는 동안 단 하나의 안타와 점수도 내주지 않았다. 한국프로야구 사상 14번째 대기록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노히트 노런이 어떤 진기록인지는 과거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1984년 해태 방수원이 제1호를 달성한 이후 정규 리그 경기에서 오직 14명만 이름을 올렸다. 1996년 정명원(현대)의 한국시리즈 노히트 노런까지 포함하면 15명이다. 선동열도 이 고지에 고작 1번밖에 오르지 못했다. 박철순과 최동원도 밟지 못한 영역이다.한국프로야구 38시즌 동안 무안타 무실점 승리가 14번이면 확률상 2.7년 만에 한 번꼴이다. 하지만 이는 그냥 평균치일 뿐이다. 1988년과 1993년, 한 해 두 번씩 기록한 반면 2000년 송진우 이후 국내 투수의 노히트 노런 계보가 끊긴 지는 벌써 20년이다.초점을 상대에 맞춰보면 노히트 노런은 낭패감의 다른 이름이다. 영봉패는 그렇다 쳐도 1루 베이스를 밟은 한화 선수가 고작 3명뿐이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그림이다. 이날 한화는 삼성에 23안타로 16점을 내주고 대신 볼넷 1개, 몸에 맞는 볼 1개, 1루수 수비 실책에 따른 진루가 전부였다. 대기록이 두 팀의 명암을 가른 것이다.이런 상황은 야구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대구경북의 처지 또한 대기록의 짙은 그늘에 놓인 신세다. 최적 입지인 경주를 제쳐두고 원전해체연구소가 부산울산의 본원, 경주 분원 구도로 결정된 것도 야구로 치면 사구(死球)쯤으로 보면 된다. 앞서 부산·세종에 귀착된 스마트시티 시범도시 사업이나 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 실패 등도 헛물만 켰다. 정부의 김해신공항 재검토 움직임까지 포함하면 사면초가다.이대로라면 PK만 챙기는 정부의 편향된 결정이 대구경북에 영봉패의 치욕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점에서 지역 정치권부터 분발해야 한다. 지금 대구경북은 노히트 노런 대기록에 치여 풀이 죽은 한화 이글스와 같은 처지다. 더 큰 위기의식이 없다면 진짜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는 건 시간 문제다.

2019-04-24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스튜어드십 코드

2013년 개봉한 미국 영화 '버틀러'는 '집사'의 전형을 보여준다. 흑인 배우 포레스트 휘태커 주연의 '버틀러'는 1952년부터 1986년까지 무려 34년간 백악관에서 8명의 대통령을 모신 흑인 집사 유진 앨런의 실제 일대기이다. '대통령의 집사'란 별칭을 가진 이 영화는 인종차별로 부모를 잃은 흑인 꼬마에서 미국 최고의 버틀러가 된 주인공의 가족사를 통해 집사의 삶과 애환을 감동적으로 전한다.여기서 버틀러(Butler)는 집사(執事)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에 왕궁의 일을 총괄하던 집사라는 벼슬자리가 있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집사는 고관대작이나 대부호의 금전 출납 및 토지(영지) 관리는 물론 주인이 없을 때는 대리인 역할까지 했던 최고의 심복이기도 했다.따라서 집사는 성실하고 명석해야 하며 과묵(寡默)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집사야말로 왕가는 물론 명가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입이 무거워야 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집사를 잘못 둔 격이 되었다.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이 자신의 인종차별 언행과 불륜관계 시비 그리고 '러시아 스캔들' 등 각종 비리 의혹을 폭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이명박 전 대통령도 집사 복이 없다. 40년 지기(知己)로 자신의 집사로 불리던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불리한 진술을 하며 등을 돌린 것이다. 동·서양의 뉘앙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영어로 스튜어드(Steward) 또한 집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그 직무를 충실히 수행·관리하는 정신과 자세를 스튜어드십이라고 한다.따라서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란 집사의 직무 원칙 또는 가이드라인쯤으로 해석하면 되겠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서 찬반양론이 드세다. 관건은 국민이 노후 보장을 위해 맡겨 놓은 초대형 연금기금을 집사가 충실히 운용할 수 있도록 독립성과 전문성을 보장하느냐에 있다.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스튜어드십 코드는 오히려 주인인 국민에게 손해를 입히고 국민을 배신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2019-04-23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경찰의 두 얼굴

1993년 개봉한 영화 '투캅스'는 경찰관 두 명이 주인공이다. 부패한 조 형사(안성기 분)와 강직한 강 형사(박중훈 분) 두 사람이 좌충우돌하다 범죄 소탕에 성공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10만 명이 넘는 경찰 가운데 강 형사와 같은 이들이 훨씬 많다. 하지만 같은 콩나물시루에서도 누워서 크는 콩나물이 있듯이 조 형사와 같은 이들도 없지 않다. 경찰의 버닝썬 유착 의혹을 두고 정의당이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곰팡이"라고 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진주 묻지마 살인사건'과 관련, 경찰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욕을 하고 오물을 뿌리는 피의자를 주민들이 5차례나 경찰에 신고했는데도 경찰이 제대로 대처하지 않아 비극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서로 주먹을 휘두르거나 직접적인 피해가 없다는 이유로 4건은 아예 사건 처리를 하지 않았고 오물 투척 난동에 대해서만 입건해 사건 처리가 진행 중이었다. "누구 한 명 죽어 나가야 경찰이 움직이겠다"는 말까지 사건 발생 전에 나돌았다고 한다.합동분향소를 찾은 행정안전부 장관과 경찰청장이 고개 숙여 사과했으나 유족들의 울분을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한 유족은 "만약에 우리가 임대아파트가 아니었고 부자 동네였으면 그런 일이 일어났겠어요?"라고 했다.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신을 흉내 내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 정책을 풍자한 대자보를 전국 대학가에 붙인 대학생 모임 '전대협'에 대한 경찰의 과잉 수사도 도마 위에 올랐다. 단순한 패러디를 두고 '민간인 사찰'을 방불케 하는 대대적인 수사를 하는 게 부당하다는 지적과 함께 막무가내식 수사에 대한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경찰관 두 명은 대자보를 운반한 사람의 집을 찾아가 압수수색영장도 없이 무단 가택 침입 논란까지 빚으며 수사를 했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 인권을 뭉개는 행위다.꼭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경찰이어선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없다. 국민을 범죄로부터 지키는 경찰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영화 '투캅스'에서 강 형사가 한 대사를 모든 경찰이 염두에 뒀으면 좋겠다. "경찰이 경찰다워야지."

2019-04-22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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