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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10대 국가대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만큼 유머러스한 인물도 드물다. 1980년대 어느 날 은퇴한 축구선수 펠레를 접견했다. "제 이름은 로널드 레이건입니다. 저는 미합중국의 대통령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본인이 누구인지 밝힐 필요가 없습니다. 펠레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요."'축구 황제' 펠레는 타고난 천재다. 실내축구팀에서 성인들과 뛰기 시작한 것이 14세 때였고, 명문 산토스 클럽에 입단한 것은 15세 때였다. 1958년 17세의 나이에 국가대표에 선발됐지만, 하마터면 스웨덴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할 뻔했다.브라질 대표팀에 동행한 심리학자가 펠레와 '드리블의 마술사' 가린샤를 놓고 '선발 불가'라며 가로막고 나섰다. 이유는 두 사람의 정신 수준이 10대 초반에도 못 미쳤기 때문이다. 비센치 페올라 대표팀 감독은 이렇게 반박했다. "당신의 의견이 맞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당신은 축구를 알지 못하고, 나는 펠레의 플레이를 보았다." 펠레가 스웨덴월드컵 8강전 웨일스전에서 월드컵 최연소 골(17세 244일), 4강전 프랑스전에서 최연소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우승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0대 선수 멀티골은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 프랑스의 킬리안 음바페(19세)가 기록할 때까지 깨지지 않았다.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는 17세 때인 1978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 선발되지도 못했고, 리오넬 메시도 18세 때인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3경기에 교체 멤버로 출전했다. 영국의 웨인 루니는 18세 232일의 최연소 기록으로 유로 2004에서 4경기 4골의 경이적인 활약을 펼쳤으나 3차례의 월드컵에서는 단 1골에 그쳤다.18세에 축구 대표팀에 선발된 이강인(발렌시아)이 화제다. 22일 볼리비아전에 출전하면 18세 31일로 한국 최연소 기록이다. 10대가 발군의 활약을 보이는 이유는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펠레나 마라도나처럼 무학력에 가까운 이들은 주입식 교육을 받지 않아 창의성 있는 플레이가 가능했다고 한다. 어쨌든, 한국에도 운동과 학벌, 두 마리 토끼를 좇던 시대는 지난 것 같다.

2019-03-21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먹방

거센 조세 저항 때문에 벽난로세(Hearth Tax)를 폐지한 영국 의회는 세금 징수에 큰 타격을 입자 1696년 '창문세'를 신설했다. 건물의 창문 수에 따라 세금을 매겼는데 당시만 해도 유리 가격이 매우 비싸 창문 있는 집에 사는 서민이 드물었다고 한다.그런데 부자들도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창문을 아예 없애거나 창문 수를 줄이면서 박쥐 소굴처럼 어두컴컴한 건물이 크게 늘었다. 불합리한 조세 정책이 실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창문세는 1851년 주택세 도입과 함께 150여 년 만에 폐지됐다.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먹방'이 사회·경제적 현상의 한 축으로 등장했다. 먹방은 창문이 없어 컴컴한 방이나 실내 공간을 지칭하는 속어다. 신호가 끊긴 전화기를 두고 먹통이라고 하듯 햇빛이 들지 않아 깜깜한 공간을 이르는 말이다.먹방의 대표적인 사례가 고시원이다. 빈민가 쪽방이나 PC방·만화방·찜질방 등 비주택 거주민 숙소들의 형편도 별반 다를 바 없지만 고시원은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독신 저소득층 주거시설의 대명사다. 벌집처럼 수십 개의 방을 촘촘하게 잇댄 탓에 최소한의 주거 요건도 갖추지 못한 곳이 더 많다. 보안이나 건축비 절감을 이유로 창문을 따로 내지 않기 때문이다. 고시원은 현대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이자 기형적인 주거 공간 현상의 하나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서울시가 고시원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고시원 주거기준'을 전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 그제 발표했다. 고시원 화재로 인명 피해가 계속 이어진 때문이다. 방 면적은 7㎡(2.12평) 이상 되어야 하고, 창문 설치도 의무화했다. 노후 고시원에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 비용도 지원한다. 현재 전국 1만2천 곳 고시원의 절반이 서울에 몰려 있는데 74%가 먹방이다.먹방은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선 우리나라 복지정책의 둔한 방향 감각을 잘 보여준다. 국민 주거 복지를 위해 세금을 아끼지 않는 게 바로 선진국이다. 고시원 등 다중생활시설의 구조 개선은 인간다운 주거 공간에 대한 사회적 성찰이라는 점에서 건축법 개정도 서둘러야 할 때다.

2019-03-20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집권 3년 차 징크스

문희상 국회의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지지율이 떨어진다고 쫄 것 없다"고 했지만 중도층 이탈 등 실상을 들여다보면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쫄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로 떨어진 것은 역대 대통령들에 비교하면 높은 수준이라고 변명할 여지가 있다. 문제는 지지율을 반등시킬 마땅한 카드가 없다는 데 있다. 시쳇말로 북한 이슈는 '약발'이 다 떨어졌다. 오히려 악재로 바뀌었다. 경제·민생에서 성과를 내 지지율을 끌어올리기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문 대통령이 여러 난관에 봉착하자 문 정부 역시 역대 정부처럼 집권 3년 차 징크스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집권 3년 차에 여러 악재가 돌출하면서 지지율이 하락하고 민심 이반이 일어나는 현상이 앞선 정부에서 어김없이 되풀이됐다. 김영삼 정부는 삼풍백화점 붕괴 및 대구 지하철 공사장 폭발 사고, 김대중 정부는 정현준·진승현 게이트와 의약분업 사태,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값 폭등이 집권 3년 차에 일어났다. 이명박 정부는 세종시 수정안 부결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박근혜 정부는 '정윤회 문건 파동' '성완종 리스트' '최순실 사태'로 몰락을 재촉했다.집권 3년 차 이후 선거에서 여당이 대부분 패한 것도 징크스로 꼽힌다. 네 번의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모두 패했다. 다섯 번의 총선에선 여당이 네 번을 졌다. 노무현 정부는 3년 차인 2005년 27곳 재·보선에서 전패(全敗)했다.이 같은 이유에서 다음 달 3일 치러지는 경남 창원 성산, 통영·고성 두 곳의 국회의원 보궐선거 결과에 주목하게 된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 앞날이 달렸다. 민주당이 두 곳 모두 패하면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문 대통령은 급격한 레임덕이 불가피하다. 민주당은 텃밭을 내주게 돼 내년 총선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역대 정부의 집권 3년 차 징크스에서 챙겨야 할 교훈이 하나 있다. 임기 중반을 넘어서면 국민의 시선이 냉철해진다. '남 탓'만 해서는 국민 지지를 받기 힘들다.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를 내는 것만이 집권 3년 차 징크스를 피하는 비결이다.

2019-03-19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송사, 대통령과 그 사람들

"할아버지는 8형제 가운데의 여섯 번째이다…하동 지방에선 8형제 8천 석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내가 태어날 무렵엔 거의 몰락 상태에 있었다…중부(仲父)의 독립운동이 그 원인이었다. 3·1운동에 관여하여 대구 감옥에 수감된 중부를 구출하기 위해…자금을 일본인 고리대금업자로부터 빌렸다…변호사 사례금 등 꽤 많은 돈을 백 두락 이상의 토지를 저당 잡히고…속수무책으로 빼앗겼다."소설가 이병주는 1921년 태어나 부자 집안이 몰락한 까닭을 글로 남겼다. 작은아버지를 구하려다 일본인 농간에 말린 사연이다. 돈을 기일에 맞춰 갚으러 갈 때마다 일본인이 자리를 피했고, 결국 기일을 넘겨 땅은 강제 차압됐고 오늘날 공탁제도처럼 달리 길이 없어 땅을 앗긴 사연이다. '그 무렵 일본인들은 그런 술책으로 조선인의 토지를 빼앗은 모양'의 '그 술책을 알아차렸을 때 이미 늦었다'.당시 이런 일은 그럴 만했다. 일제가 만든 겹겹의 족쇄 탓이다. '새 법령이 매일 비 오듯이 쏟아진다'는 말과 총독부 기관지 보도처럼 '오늘에 한 법이 나오고 내일에 또 한 법이 나오'니 미처 적응할 틈조차 없던 백성은 그저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큰소리를 내도', '솔잎을 긁어도' 죄가 되니 온통 죄인이지만 돈 없으면 변호사는 그림의 떡이고, 그냥 볼기짝 맞는 태형(笞刑)만이 해결이었다.게다가 393명의 변호사 자격인(1932년 기준)도 일본인 173명, 한인 220명이나 한국인조차 통감부와 총독부 판·검사 출신이 122명이었으니 재판은 이미 기운 운동장이었다. 소송에 말린 백성이 몸과 재산을 지키기는 그야말로 독립운동만큼 난제였을 것이다.지금도 소송은 늘 돈 싸움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변호사 비용을 대느라 자택(95평)을 팔았고,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자택(83평)을 내놓고 거제도 집(25평)은 넘겼고,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역시 집(43평)을 판 모양이다.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에 여럿 사람들이 송사로 부동산 매각 등 돈 마련에 나선 소식이다. 이병주의 증언과 다르지만 소송의 재산 손실 결과는 고금이 같은 듯하다. 송사! 돈 없으면 피하고 멀리 하라는 가르침인가, 경책인가?

2019-03-18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100년 전 그랬듯이

"지금 어떤 사람이 남의 땅을 빼앗았다고 합시다. 빼앗긴 사람이 땅을 다시 찾으려고 한다면, 빼앗은 사람이 도적이오 찾으려는 사람이 도적이오? 찾으려는 사람과 빼앗은 사람이 재판소에 와서 송사를 한다면, 재판관은 장차 누구를 도적이라 하겠소?"(장석영 지음·정우락 옮김, '국역 흑산일록-대구감옥 127일, 그 고난의 기록', 2019년)한국의 독립을 외치는 글 서명으로 일제는 1919년 3월 16일(음력) 국법을 어겼다며 유학을 배운 경북 성주의 장석영을 감옥에 가뒀다. 검사가 '죄'를 묻자 그가 '도적'인 일제에 들려준 대답이다. 사실 일제 도적은 주인 노릇이었고 친일파를 뺀 백성은 '짐승보다 못한' 삶이었다.19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호국의 고을답게 대구경북에서는 여러 행사가 열렸다. 대구에서는 불교 1월 17일, 기독교 2월 22일, 천주교 3월 5일 각각 기념 학술행사를 가졌다. 저마다 만세운동에 나선 교계 사람들의 활동과 용기를 기리고 그날의 함성을 잊지 않고 앞으로의 각오를 다지기 위해서였다.대구경북은 여러 종교가 어울려 지내고, 믿음을 위해 목숨조차 버린 흔적과 나라를 위해 힘을 보탠 역사적 자산을 가진 곳이다. 불교의 이차돈 순교, 평등 세상을 바란 동학 최제우의 순도, 천주교 신자들의 희생이 그랬다. 일제 시절엔 여러 종교인들이 뛰어난 독립운동을 펼쳤다.유림도 빠지지 않는다. 137명이 서명한 파리장서운동이 그렇다. 서명자에는 대구경북 사람이 62명으로 가장 많고, 대구 출신은 13명으로 성주(15명) 다음이다. 이처럼 대구의 종교인들은 믿음은 달라도 바라는 독립은 같았던 셈이다.이런 대구경북의 종교 자산은 귀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이해가 엇갈린 사회 갈등을 풀고 종교 간 화합으로 이을 고리가 됨직하다. 이를 엮어 또 다른 힘으로 바꾸는 일은 '도적'을 쫓고 '주인'이 된 오늘의 우리들 몫이다. 정치적으로 어두운 요즘, 이런 역사적 자산을 잘 쓰는 지혜가 기다려지는 대구경북이다.

2019-03-16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관치 미학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TV 프로에서 한 외국인 출연자가 이런 말을 했다. 서울을 둘러보고 느낀 첫인상을 그는 '거칠다'고 표현했다. 맥락상 고층빌딩 등 건축물에서 자연미나 세련미를 느끼지 못했다는 의미로 들렸다.그가 사는 북유럽 도시의 공간 구성과 미학이 서울과는 차별되고 생소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현대적 아름다움과 개성이 결여된 우리의 건축 감각에 대한 솔직한 평가라는 점에서 한국적 공간 건축에 대한 해석과 표현, 디테일의 현주소를 되돌아보게 한다.개인적으로 지방 소도시 중 가장 자주 찾은 곳은 무주군이다. 우선 덕유산을 빼놓을 수 없지만 무주 곳곳에 들어선 공공건축물이 제시하는 여유로움과 정결한 소읍 풍경 때문이다. 기억에 남는 무주 나들이만도 10여 차례가 넘는다.무주는 6개 읍면에 인구 2만4천 명의 작은 농촌 지역이다. 대구로 치면 동(洞) 인구 규모와 비슷하다. 그런 무주가 공공건축의 실험장이 된 것은 2001년 무렵으로 건축가 정기용이 '작은 사회운동'으로 평가한 '무주 프로젝트'가 배경이다. '진도리 마을회관'을 처음 설계하고 완성하면서 마을과 사람과의 관계 재편 등 새로운 공간 해석에 골몰했다.정기용은 한 보고서에서 '무주 프로젝트는 고통스러운 노동과 희생 위에서 가능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 고통의 결실은 컸다. 공공건축과 디자인의 힘이다. 단순히 멋이 아니라 사람이 주체가 되는 공간, 그런 철학을 반영한 건축의 중요성에 주목한 것이다. 사람이 중심에 서는 도시공간 재창조를 모토로 공공건축가 제도를 도입한 영주시 도시재생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서울시가 최근 아파트 재건축·재개발 시 구획과 층수, 디자인 등의 지침을 따르지 않으면 허가를 않겠다고 선언했다. 민간 건축물에까지 도시계획 결정권을 확대한다는 방침인데 도시 경관의 관치(官治) 우려가 불거지며 논란이 거세다. '성냥갑' 오명을 벗는 돌파구가 될 수도 있지만 부작용도 만만찮다는 것이다. 자고나면 불쑥 솟아오르는 대구시내 '닭장' 아파트 단지들을 보면서 문득 대구의 도시공간 전략이 궁금해진다.

2019-03-15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조선(造船)의 운명

기원전 480년 그리스 함대가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왕이 이끄는 대전함을 무찔렀다. 그렇게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한 그리스는 황금기를 구가한다. 당시 집정관이었던 테미스토클레스가 포퓰리즘 정책을 거부하고 전함을 구축해 전투를 지휘한 결과였다.1592년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한산도에서 학익진을 펼치며 일본 함대와 싸워 대승을 거뒀다. 임진왜란의 전세를 크게 바꿔 놓은 이 대첩에 등장한 전함이 거북선이었다. 1805년 넬슨 제독의 영국 함대는 나폴레옹의 전선을 트라팔가 해전에서 물리쳤다. 나폴레옹의 날개를 꺾은 싸움이었다. 이때 활약한 주력 전함이 98개의 대포로 무장한 테메레르호이다.역사의 물줄기를 돌려놓은 해전과 그 승전의 배경에는 해군력을 뒷받침한 조선술(造船術)이 있었다. 서양의 조선술과 항해술은 신대륙을 발견하고 식민지를 건설했다. 해양력을 상실한 동양은 서세동점(西勢東漸)의 대상이 되었을 뿐이다. 중국은 명나라 때 인도양을 거쳐 이슬람권에까지 이른 정화의 대원정 이후 바다를 외면하고 말았다. 한반도의 백제가 해양세력을 구축하고, 통일신라의 장보고가 해상왕국을 건설한 것도 조선술이 바탕이 되었다.거북선도 우연히 나타난 것이 아닐 것이다.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에서 살아온 우리에게는 조선(造船)의 DNA가 흐르고 있다. 한국의 조선업을 세계 1위로 끌어올린 원동력이다. 그것이 무역 대국 대한민국을 견인했을 것이다. 최근 우리 조선업이 중국을 제치고 다시 '수주 1위'를 탈환했다는 소식이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합친다는 빅뉴스도 들린다. 조선업은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이면서 최첨단 기술을 요하는 기술집약적 산업이기도 하다.세계적인 브랜드를 갖춘 대기업과 고품질의 후판(厚板)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철강 업체도 있어야 한다. 기술력이 뛰어난 기자재 업체의 지원과 창의적인 엔지니어들의 손재주가 필요한 종합예술이다. 인해전술을 펼치는 중국과 좀비처럼 되살아나는 일본 조선업을 누르고 다시 조선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2019-03-13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대통령들의 비극

영화 '벤허'에 나왔듯이 로마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개선장군은 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황제가 있는 곳까지 행진했다. 개선식에서 장군을 뒤따르며 노예가 계속 외친 말이 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의역하면 '너도 언젠가 죽는다는 걸 잊지 마라'는 뜻이다. 전쟁에 한 번 이겼다고 해서 교만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23년 만에 법정에 다시 선 전두환 전 대통령을 보며 역대 대통령들의 비극이 떠올랐다. 제왕에 버금가는 권력을 휘두른 대통령들은 대부분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 1996년 내란수괴·내란·내란목적살인 등 13개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던 전 전 대통령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법정에 또 나왔다. 보석으로 풀려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주거지 및 접견·통신 제한을 받아 '자택구금' 신세다.유일하게 탄핵을 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직 옥중에 있다. 탄핵 2년째인 10일 지지 단체들이 전국 곳곳에서 석방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하지만 조만간 석방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구속 재판 기간이 끝나거나 현직 대통령으로부터 사면을 받는 방법이 있지만 두 가지 모두 어려운 상황이다.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 중 극단적 선택을 했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아들이 구속됐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년가량 복역하다 사면조치로 풀려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8년간 장기 집권했지만 부하에 의해 시해됐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장기 독재 집권을 하다 4·19혁명으로 하와이로 망명해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청와대 본관엔 역대 대통령들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다. 전직 대통령들의 초상화를 보면서 현직 대통령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나간 대통령들의 영광만 기억했을 뿐 역대 대통령들의 비극은 돌아보지 않았지 싶다. 그랬다면 대통령들의 비극은 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대통령을 따라다니며 '메멘토 모리'를 외쳐줄 수도 없고, 역대 대통령들의 비참한 순간을 청와대에 초상화로 남겨둘 수도 없고…. 대통령들의 비극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마음이 무겁다.

2019-03-12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비핵화의 정의(定義)

미국의 군사전략가 버나드 브로디는 1946년 핵무기를 "절대무기"(absolute weapon)라고 했다. 핵무기의 위력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극치라는 뜻이다. 그러나 핵무기의 '절대성'은 이런 의미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재래식 무기처럼 양이 많고 위력이 클수록 우위에 서는 '상대성'이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도 '절대적'이다.미국 정치학자 스티븐 침발라는 이런 핵무기의 절대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매우 작은 핵무기라도 목표물을 뚫을 수 있고 그 목표물이 아주 정밀하게 설정된다면 그것은 매우 위협적인 존재다." 극단적으로 단 한 발만 적국의 인구 밀집 지역에 명중시킬 능력만이 있어도 핵 억지력을 갖는다는 것이다.프랑스와 영국의 핵무장은 이런 '절대성'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어차피 소련의 핵전력을 따라잡을 수 없으니 소련을 멸망시키지는 못해도 고통을 줄 정도의 핵전력은 유지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이른바 '모스크바 기준'은 이런 전략 개념을 잘 보여준다. 어떤 상황에서도 모스크바 하나는 확실하게 파괴할 핵전력은 유지한다는 뜻이다. 영국이 선제 핵공격에 가장 생존성이 뛰어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만 남기고 나머지 핵전력은 모두 포기한 이유다.('전쟁의 경제학' 권오상)이런 사실은 무엇이 '북한 비핵화'인지 분명히 정의(定義)하게 한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과거·현재·미래를 통틀어 핵탄두·핵물질·핵시설을 포함한 핵과 관련된 모든 것의 폐기이다. 지금까지 이에 가장 근접한 것이 비핵화를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핵 계획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명시한 2005년 6자 회담 '9·19 공동성명'이다.2차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가 비핵화의 본래적 정의는 물론 9·19 공동성명에도 못 미친다는 것을 확인해줬다. 비핵화할 뜻이 없다는 소리다. 더 헛웃음이 나오는 것은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가 불가역적 비핵화 단계로 접어드는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태평스러운 인식이다. 영변 핵시설은 북한 전역에 널린 핵시설 중의 하나일 뿐이다. 문 대통령은 비핵화란 말뜻부터 다시 공부하기 바란다.

2019-03-11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屍身을 위한 '돈질'

러시아 10월 혁명을 이끈 레닌은 숨을 거두면서 자신을 어머니 묘지 옆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하지만 소련 공산당은 이를 무시하고 시신을 영구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냉장 방식이 채택됐다. 그러나 당시 소련의 기술적 한계 때문에 시신은 부패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독일에서 더 나은 냉장시설을 수입했지만 부패를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레닌장례위원회는 방부 처리로 방향을 바꾸었다. 어떤 기술이 사용됐는지는 여전히 비밀이지만 이 시도는 성공해 레닌의 시신은 지금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누워 있다.소련 공산당이 레닌의 시신을 영구 보존키로 한 배경에는 '건신주의'(建神主義)가 있었다. 건신주의란 과학의 힘으로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는 현대판 주술(呪術)로, 건신주의자들은 비유적 의미가 아닌 실제 육신의 부활(復活)을 믿었다. 소련 공산당이 레닌의 시신을 영구 보존키로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레닌이 현세에서 부활할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레닌장례위원회의 명칭도 '불멸화위원회'였다.불멸화 시도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소련 공산당이 1973년 당 문서를 정리하면서 제일 먼저 발급한 것은 레닌의 당원증이었다. 체제 전환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러시아 당국은 18개월마다 특수 제작한 새 양복으로 레닌의 시신을 갈아입혔다. 이렇게 레닌의 시신을 생전 모습 그대로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을 러시아는 2016년 처음 공개했는데 연간 20만달러라고 한다.러시아가 여전히 북한 김일성과 김정일 시신 방부 처리를 하고 있으며 그 비용은 연간 40만달러(약 4억5천만원)라고 미국 뉴욕포스트가 보도했다. 러시아는 김일성·김정일 사망 때 전문가팀을 보내 방부 처리를 한 바 있으며 김일성 시신 처리에 100만달러가 들었다고 한다. 헛웃음이 나오는 '돈질'이다. 그 돈으로 인민을 먹였으면 '이밥에 고깃국'은 아니라도 주린 배는 조금이나마 채워졌을 것이다. 김일성·김정일은 죽어서도 인민들을 굶겼다는 소리가 나올 법하다.

2019-03-09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황교안의 답'은?

DJ(김대중)와 YS (김영삼)를 국민 누구나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DJ는 죽을 뻔한 교통사고를 당했고, 두 번이나 사형선고를 받았다. YS는 여당을 박차고 나와 스스로 가시밭길을 걸었고, 23일간의 단식 투쟁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이들이라고 약점과 치부가 없겠는가. 이들이 현대 정치의 거목으로 평가받는 것은 자기희생과 헌신의 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이들은 한국 정치에 이러한 대통령의 자격 준거를 유산으로 남겼다. 대통령이 되려면 인물·치적도 중요하지만, 자기희생과 헌신을 필요로 함을 국민에게 알게 모르게 심어줬다. 대통령의 자격 준거를 차기 대선후보 여론조사 1위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들이대면 흥미로울 것 같다.황 대표는 반듯하고 부티 나는 느낌을 주지만, 어릴 때 무척 가난했다고 한다. 지난해 출간한 에세이 '황교안의 답'에는 '월남한 고물상의 막내아들이다. 유년시절 도시락을 제대로 챙겨가지 못해 담임 선생님과 나눠 먹어야 했고, 산에서 나물을 직접 따와 식구들의 반찬으로 삼았다'고 했다. 이 책에는 보수에 대한 가치를 언급한 대목이 여럿 있다. '우리가 지켜야 할 바른 가치에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그리고 법치주의 등이 있으며 이러한 바른 가치를 지키려는 것이 바로 참된 보수다.' 황 대표의 출신, 표방하는 가치관만 보면 어느 정도 합격점이다.그러나 황 대표의 약점은 상당히 많다. 첫 번째는 희귀 피부병의 일종인 '만성 담마진'으로 인한 병역면제다. 두 번째는 법무부 장관 취임 전 변호사로 17개월간 15억6천만원의 수임료를 번 점이다. 세 번째는 음습하고 이념 편향적 분위기를 풍기는 '공안통'이라는 점이다. '실패한 정권의 총리'라든가 '특정 종교 편향' 논란은 의견이 갈리기 때문에 논외로 치자.황 대표의 삶에서 자기희생과 헌신의 미덕을 얼마나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현재 여론조사 선두를 달리는 이유는 보수 세력의 결집 덕분이다. 중도 세력의 외연을 확장하지 않고는, 대선은 꿈꾸기 어렵다. 황 대표의 정치 생명은 앞으로 얼마나 자기희생과 헌신의 자세를 보여줄 수 있는가에 달려 있지 않겠는가.

2019-03-08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미피(未避)

어김없이 절기는 경칩(驚蟄·6일)이지만 정작 천지를 놀라게 한 것은 화사한 봄기운이 아니라 불청객 미세먼지다. 초미세먼지 공습으로 전국이 일주일째 가쁜 숨을 몰아쉬는 처지다. 올 들어 초미세먼지 '나쁨' 일수를 꼽으면 대구는 25일, 경북은 22일을 기록할 만큼 먼지 끼는 날이 일상이 됐다.한 주 전만해도 미세먼지 때문에 백두대간 너머 영동지방으로 피신한다고 해서 '피미'(避微)라는 말이 유행했다. 그런데 더 이상 피미할 곳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5일 제주까지 첫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상황이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피미는 가짜 뉴스, '미피'(未避)가 팩트인 것이다.한반도를 뒤덮은 '먼지 돔'의 원인은 다양하다. 석탄화력발전에다 2천만 대가 넘는 자동차가 내뿜는 배기가스와 난방, 산업체 배출가스 등이 진원이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책이라곤 긴급재난 문자 발송이 고작이다. 근본 해결책 마련 없이 중국 탓하며 '중국 프레임'에 기대는 사이 일회성 이벤트에 수백억원의 예산(서울시 사례)을 쏟아붓는 일이 다반사다.콩 심은 데 콩 난다고 했다. 문제를 풀려면 현상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수다. 무리한 탈원전과 값싼 석탄화력발전 확대, 경유 차량 급증 등 정책 역행에서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책을 찾는 게 순서다.미세먼지 상황이 우리보다 훨씬 나은 일본 사례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일단 중국과 멀리 떨어진 지형적 특성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크게 달라진 일본 국민의 환경 의식이 희비를 갈랐다. 전 세계적인 디젤 붐으로 경유차 비중이 조금 오르기도 했지만 가솔린·경차를 선호하는 일본 시장 구조는 우리와 판이하다. 2018년 기준 이륜차를 뺀 전체 자동차 보유 대수 약 7천800만 대 중 경유차 비중이 6%도 안 된다는 통계의 의미는 크다.반면 우리는 공공기관 주차장 폐쇄나 차량 2부제, 노후 경유차 운행 금지, 인공 강우 등 대증요법이 전부다. 구조 전환이라는 공식 없이는 미세먼지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말로는 '재난'이라면서 비와 바람만 쳐다보는 천수답 방식이라면 '365일 초미세먼지 나쁨'도 머지않았다.

2019-03-07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소망적 사고

1941년 6월 22일 터진 독소전(獨蘇戰)에서 소련은 초반에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히틀러의 침공을 강력히 암시하는 정보가 넘쳐났음에도 스탈린이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스탈린의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가 낳은 오판이 자리 잡고 있다. 스탈린은 자본주의 국가는 최후의 승자가 나올 때까지 혈투를 벌일 수밖에 없다는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신봉해 히틀러가 영국을 격파하기 전까지는 소련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스탈린이 1939년 체결된 독소 무역협정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독일의 침공 직전까지 식량, 연료, 목재, 광물 등 전쟁 물자를 독일로 보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일을 도와 영국과 끝까지 싸우도록 하고, 독일과 영국 모두 기진맥진해지면 힘들이지 않고 세계혁명을 완수한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히틀러는 영국 침공이 좌절되자 총부리를 소련으로 돌렸다.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기습을 기획한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도 소망적 사고의 포로였다. 물론 야마모토는 일관되게 미국과 전쟁에 반대했다. 미국 유학과 주미 일본대사관의 해군 무관 근무 경험으로 미국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전(開戰)이 결정되자 신념을 버리고 전쟁 수행으로 방향을 튼다.그의 전쟁 구상은 철저히 자기본위적이었다. 진주만 기습으로 미 태평양 함대의 전투력을 일정 기간 마비시킨 다음 미국이 기력을 되찾기 전에 강화협상으로 전쟁을 종결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었으니 오판도 이런 오판이 없었다.이런 패착을 문재인 대통령에게서 다시 본다. 문 대통령은 4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에서 "판문점 선언과 평양 공동선언에서 합의된 남북 협력사업을 속도감 있게 준비하라"고 했다. 지난달 '하노이 핵 담판'에서 재확인됐듯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전혀 없는데 이에 대한 대책은 고민하지 않고 또다시 남북 경협 타령만 한 것이다. '남북 관계 개선이 비핵화를 견인한다'는 문 대통령의 생각은 근거 없는 소망적 사고임이 이미 판명났다. 이젠 이런 미몽(迷夢)에서 깰 때도 됐다.

2019-03-06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우리말과 글의 현주소

연초에 개봉한 영화 '말모이'는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일제와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인 조선어학회의 이야기를 담았다. 우리말과 글이 금지된 시대였지만, 조선어학회가 온 마음으로 우리말을 모아 말모이(사전)까지 만들어 낸 것은 국어학자로서 당연한 민족사적 책무였다고 치자. 과학계에서도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조선박물연구회 사람들이었다. 일제의 우리말 탄압으로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옥고를 치를 당시에 이들은 우리 땅에서 새로 발견한 동식물에 우리말을 붙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괴불주머니' '애기똥풀' '바람꽃' '등칡' 등의 이름이 그렇게 태어났다. 일본식 이름 '야인과'(野人瓜)를 '멀꿀'로, 중국식 한자명인 '전추라'(剪秋羅)를 '동자꽃'으로 바꾼 것도 이들이다. '각시멧노랑나비' '떠들썩팔랑나비'라는 이름도 이때 생겼다.본지 2월 16일 자 '주말 돋보기' 코너에서는 '동성로 점령한 일어 간판'이란 내용의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대구 중심가의 음식점 간판과 요리 명칭에 일본식 외래어가 범람하고 있어 우리 언어를 잠식하고 우리 언어 습관을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어디 일본어뿐인가.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와 스페인어 계열까지 국적 불명의 외래어가 횡행하는 이 땅의 '짬뽕 언어문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즘 같은 국제화시대에 상당수 외래어가 혼용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조류라고 하자. 그런데 억지로 서양식 상호를 붙여야 글로벌 기업이 되고, 따라 읽기조차 어려운 외래어를 달아야 아파트가 팔리는 세태가 되었다. 구태여 서양말을 써야 품격 있는 지식인 대접을 받는 나라가 되었다.방송과 언론조차 그것을 자성하고 개선하기는커녕 되레 혼탁을 부채질하고 있다. 우리말과 글에는 우리의 얼과 넋이 배어 있다. 선인들이 혼신으로 지키고 살려온 말과 글을 잘 가꾸고 다듬어 나가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런데 온갖 외래어에 오염되어 표류하고 있는 우리말과 글의 혼탁하고 혼란한 현주소를 방관하고 조장하면서 3·1운동 정신을 운운할 자격이나 있는지 의문이다.

2019-03-05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협상의 기술

'인간은 하루에 수십, 수백 번 협상한다.'혹자들은 '내가 무슨 협상을?'이라고 의문을 갖겠지만, 협상 전문가들은 협상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 말을 즐겨 쓴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협상을 벌이는 존재라고 한다. 지금 밥을 먹을지, 공부를 계속할지 결정하는 자체가 작은 범주의 협상이다. 인간관계도 끝없는 협상의 연속이다. 인간관계는 적게 주고 많이 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협상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성공하려면 협상을 배워라'는 말이 나온 모양이다.서점에는 협상과 관련한 자기계발서가 넘쳐나지만, 요즘 가장 화제가 되는 책은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1987년)이다. 도널드 트럼프·토니 슈워츠가 함께 쓴 이 책은 비즈니스 관련 서적으로 역대 5위 안에 드는 베스트셀러다. 당시 트럼프는 대통령이 될 생각이 없었고, 한창 사업 재미에 빠져 있던 때여서 그의 성향이 잘 드러난다. '상대방이 협상을 주도하려 할 때는 끌려다니지 말고 판세를 뒤집는 것이 중요하다.' '언제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와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트럼프 대통령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회담 결렬을 선언한 것과 관계있는 대목이다. 결렬 직후,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 측이 침통한 분위기를 보이는 것을 보면 협상의 키는 트럼프가 잡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5월 한미 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을 옆에 앉혀 놓고 기자들에게 이렇게 설교를 했다. "당신들은 거래를 모른다. 100% 확실해 보이던 거래가 깨지고, 전혀 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거래가 성사되기도 한다. 나는 숱한 거래를 성사시켰다. 나는 그 누구보다 거래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전문가임을 자임하고 있고, 자신감도 넘친다. 그가 향후 북한과 어떻게 협상할지 예측할 수 없지만, '거래의 기술'을 한껏 발휘할 공산이 크다. 목적을 위해 판을 깰지도 모른다. 한반도의 미래가 미국 대통령의 협상력에 달려 있으니 약소국의 비애인지, 북한의 자업자득인지 판단하기도 어려운 국면이다.

2019-03-04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노동가동연한

흔히 사람 얼굴과 성격, 입맛은 시간에 따라 바뀐다고 말한다. 세월의 무게 탓에 이마에는 주름살이 생기고, 나이가 들면서 성격이 조금씩 무뎌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한결같던 입맛도 시간 앞에서는 그 일관성을 장담하기 힘들다.'꼴'이라 부르는 인상의 변화도 극적이다. 정약용은 '상론'(相論)에서 상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는데 '공부하는 이는 그 상이 어여쁘다. 장사치는 상이 시커멓다. 목동은 상이 지저분하다. 노름꾼은 상이 사납고 약삭빠르다'고 했다. 즉 사람은 생긴 대로 노는 것이 아니라 노는 대로 생긴다는 점을 강조했다. 어떤 마음가짐을 가졌느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상이 달라진다는 뜻이다.신체 능력도 마찬가지다. 평소 꾸준히 운동을 하고 몸을 단련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체력이 낫다. 또 위생에 각별히 신경 쓰고 적정 수준의 영양을 섭취하는 것도 신체 노화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된다. 생활 수준의 향상이 신체 능력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대법원이 최근 육체노동이 가능한 최고 연령을 뜻하는 '가동연한'을 현행 만 60세에서 만 65세로 올렸다. 1989년 60세 판결 이후 30년 만에 기준을 5년 상향한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발전하면서 개개인의 신체 능력도 개선됐다는 의미다.돌이켜보면 일할 수 있는 나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념은 1956년 이전은 고작 50세, 1989년 이전은 55세였다. 60여 년 만에 15년 늘어난 것은 큰 변화다. 문제는 그 후속 조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손해배상액 산정이나 보험 등은 그렇다 쳐도 연금 지급 시기나 정년 연장, 노인 연령 기준 등 난제가 수두룩하다.가장 큰 변수는 저출산고령화다. 한국 사회 좌표와 꼴이 달라지는데 관련 기준은 꼼짝하지 않는다면 불일치의 문제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성급하게 결정할 일은 아니지만 다음 세대를 위해 지금부터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20년, 30년 뒤를 보고 미리 준비하는 게 혼선을 줄이는 방법이다.

2019-03-02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비즈니스맨' 트럼프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됐지만 도널드 트럼프는 베트남에서 큰 선물을 챙겼다. 비즈니스맨 출신 대통령답게 23조원에 달하는 번외(番外) 성과를 거뒀다.트럼프는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국가주석에게 미국을 연내 국빈 방문해 달라고 요청했다. 베트남으로부터 받은 선물에 대한 답례였다. 베트남 항공사 비엣젯은 미국 보잉사로부터 항공기 100대를 사들이는 127억달러 초대형 계약을 맺었다. 다른 항공사 뱀부에어웨이스도 30억달러의 항공기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두 정상은 계약 체결식에 직접 참석했다. 비엣젯은 미국 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과도 53억달러 계약을 맺었다. 양국이 서명한 무역 거래가 210억달러(약 23조5천억원)를 넘는다.베트남에서 트럼프가 챙긴 선물은 더 있다. 응우옌 쑤언 푹 총리와의 회담에서 트럼프는 "베트남이 (미국의) 군사 장비(구입)도 고려하고 있다는 것도 감사하다"고 했다. 베트남으로부터 미국 농산품에 대한 무역장벽을 제거한다는 약속도 받아냈다. 트럼프가 "우리는 친구"라고 너스레를 떨 정도로 베트남에서 많은 선물을 얻어냈다.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조차 비즈니스 관점에서 접근한 게 트럼프다. 그는 "우리는 한국을 방어하고 엄청난 양의 돈을 잃고 있다. 미국은 한국에 연간 50억달러(약 5조6천억원)의 비용을 들이고 있지만 한국은 5억달러만 (미국에) 지불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 측 지출분을 부풀리는 꼼수까지 썼다는 비판까지 나왔다.북한 김정은 위원장과의 협상에서도 트럼프는 비즈니스맨을 방불케 하는 화법을 구사했다. 북한의 경제적 잠재력을 여러 차례 부각하며 비핵화 합의를 간접적으로 압박하는 전술을 들고나왔다. "북한이 비핵화한다면 매우 빠른 속도로 베트남처럼 번영하게 될 것"이라는 식이었다.트럼프의 비즈니스맨식 협상법이 김정은에게 제대로 먹혀들지 않아 회담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을 수 있다. 아니면 이리저리 주판알을 튕겨본 사업가 트럼프가 합의를 거부했을 가능성도 있다. 베트남에서 트럼프만 선물을 잔뜩 챙겼을 뿐 한반도는 다시 안갯속으로 들어가게 됐다.

2019-03-01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고령 운전

운전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노익장 영감님이 승용차를 몰고 나갔다. 한사코 만류하는 할머니의 손길도 뿌리친 채 기어이 차를 몰고 장거리 운행에 나선 것이다. 한참 뒤에 집에서 TV를 보던 할머니가 깜짝 놀라서 영감님께 전화를 했다. '고속도로에 역주행하는 차량이 있으니 주의하라'는 뉴스 속보가 계속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할머니는 "고속도로에 역주행하는 차량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거듭 당부했다. 그런데 전화기를 통해 들려온 영감님의 신바람 난 목소리에 할머니는 기절할 뻔했다. 영감님의 말인즉 "알고 있어! 안 그래도 지금 나 빼고 전부가 역주행이야…"라는 것이었다. 노인 운전과 관련된 우스갯소리이다. 그런데 최근 90대 운전자의 차량에 행인이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문제가 새삼 도마 위에 올랐다.지난 24일 밤에는 고속도로에서 70대 운전자가 시속 30㎞로 운전을 하다가 뒤따라오던 차가 추돌하면서 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또 발생했다. 60, 70대 운전자들이 늘어나면서 노인 사고 비율과 사망자 수도 점점 증가하는 추세이다. 그러다 보니 고령 운전 제한론과 기본권 침해 주장이 동시에 제기되기도 했다.운전을 잘하는 노인들도 많지만, 아무래도 고령이면 사물 인지능력은 물론 돌발 상황에 대한 반응 속도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고령 운전자를 위한 교통환경 개선에 나서고 있다. 운전면허증을 자진 반납하는 노인도 적지 않다. 자발적인 운전 졸업자에게는 일정 기간 교통비를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 탤런트 양택조(79) 씨는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하면서 도로교통공단의 '어르신 교통사고 예방 홍보대사'에 위촉되기도 했다.가장 현실적인 정책은 만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의 면허증 갱신과 적성검사 주기를 단축하고 인지능력 진단과 안전운전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다. 고령 운전은 본인은 물론 주변 차량과 사람들에게도 위협이 될 수 있다. 초고령화사회로의 진입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교통안전과 행복추구권이란 상반된 가치를 아우를 수 있는 사회적인 합의와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2019-02-28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당(黨)과 파(派), 또

'이놈아! 너는 한국 북부 사람이 아니다. 너는 한국 남부 사람이 아니다. 너는 한국인이다. 알아듣겠느냐! 우리가 분열되었기 때문에 일본이 우리를 정복했다. 최가 북부 출신이라서 네가 그를 증오한다면, 네가 남부 출신이라서 최가 너를 증오한다면, 우리 한국인에게 희망은 없다. 우리는 항상 남의 나라 노예가 될 것이다.'독립운동가 현 순의 아들 준섭이 1919년 3·1운동 뒤 상해에 머물며 한국인 자녀를 위한 인성학교에서 겪은 일이다. 상해 아이들의 '망국노야!'란 놀림 속에 다닌 학교의 북부(평양) 출신 최 학생과 싸우다 들켜 통곡하며 회초리를 든 선생의 절절한 하소연이다.현준섭은 책상 위에 쓰러져 흐느껴 울던 선생님이 가르쳐 준 교훈을 언제나 잊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리고 한국 독립운동에 관한 기억을 모아 '만세'란 책을 남기며 후손들이 아픈 옛 식민지 과거 역사를 잊지 말기를 바랐다.독립운동가 서영해도 이런 하소연을 했다. 3·1운동 뒤 상해로, 다시 프랑스로 무대를 옮겨 임시정부를 대신해 힘들고 외롭지만 미국의 이승만과 쌍벽일 만큼 독보적인 외교 독립운동을 편 그가 1940년 3월 1일 쓴 심정이 그렇다.'나라를 잃고 왜놈의 총칼 밑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지가 30년이 되었다…통일 덕으로 강적을 대할 줄 몰랐던 우리는 3·1운동 이후…당파 싸움으로 원통한 실패를 얼마나 거듭하였더냐!…무슨 당, 무슨 파하고 아직도 당파 싸움을 하고 있는 분이 있으니 참 한심하다…제발 당파 싸움을 고치자!'일본은 한국을 '영원히, 완전하게' 지배하려 한국을 열등하고 미개한 나라로 낮췄다. 일부러 '당파'의 나라로 한·일 두 나라 사람에 최면을 걸었다. 하지만 앞의 글을 보면 실제 못난 당파도 더러는 있었던 모양이다. 시대 사정으로 어쩔 수 없었을 수도 있다.세월이 흐른 지금은 과연 어떤가. 정권이 바뀌면서 남북이 끊어지고, 남쪽은 동서로, 보수와 진보로, 또 대구경북과 그 밖으로 나뉜 꼴이다. 이제 나라도 있으니 당과 파로 맘껏 흩어지고 갈려 찢어져 싸워도 좋을 때인 모양이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눈앞이다.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2019-02-27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GIGO

컴퓨터 공학계에서 금과옥조로 여기는 용어 중 'GIGO'라는 게 있다.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Garbage In, Garbage Out)는 것으로, 잘못된 데이터를 입력하면 데이터도 아닌 쓰레기가 나온다는 뜻이다. 2016년 3월 마이크로소프트(MS)가 공개한 채팅 로봇 테이(Tay)는 좋은 사례다. 테이는 지대한 관심과 기대 속에 출시됐으나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조작' '히틀러는 잘못이 없다' '페미니스트는 지옥에서 불타 죽어야 한다'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이에 MS는 사과와 함께 출시 16시간 만에 테이를 회수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일부 트위터 이용자가 테이와 대화에서 그런 악성 발언을 집중 학습시킨 것이다.이런 일이 기계인 AI에서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다. 국가 운영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면 재앙이다. 1970년 사상 최초로 선거를 통해 집권한 사회주의자 살바도르 아옌데 칠레 대통령의 '사이버-신'(Cyber-Syn) 프로젝트의 실패가 바로 그랬다. 사이버-신은 '버로스 3500'이라는 슈퍼컴퓨터로 국가 경제를 관리하는 극단적 계획경제 프로젝트로, 전 세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그 방식은 현장 관리자가 매일 아침 생산량과 부족분 등 각종 정보를 중앙에 보고하고 중앙은 이를 버로스 3500에 입력해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린 다음 다시 현장에 내려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입력 데이터는 말 그대로 '쓰레기'였다. 현장 관리자가 보고하고 싶은 것만 보고하고 감추고 싶은 정보는 숨겼기 때문이다. 그러니 버로스 3500이 출력하는 데이터 역시 쓰레기일 수밖에 없었고 '사이버-신'의 실패는 당연했다.환경부 4대강 평가위가 금강·영산강의 세종·공주·죽산보(洑) 해체를 결정하면서 해체 때의 이익 지표는 부풀리고 보를 유지할 경우 생기는 경제적 효과는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으며 보 철거 시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도 감안하지 않았다고 한다. 보를 해체해 4대강 사업 이전 상태로 돌리면 보마다 국민 편익이 100억~1천억원까지 생긴다는 결론이 어떻게 나왔는지 알 만하다. 역시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오는 법이다.

2019-02-26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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