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관련 기사 목록입니다.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그 때는 잘 몰랐다

2012년 4월에 치러진 19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 간 최대 쟁점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의 재협상 문제였다. 당시 민주통합당은 재협상을 촉구했다. 한미 FTA가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4월 2일 타결됐다는 점에서 이는 민주통합당의 어처구니없는 자기부정이었다. 민주통합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 추진을 적극 찬성했기 때문이다. 당시 한명숙 총리는 "한미 FTA를 반대하는 불법, 폭력집단 주동자뿐만 아니라 적극 가담자, 배후 조종자까지 법과 원칙에 따라 엄단하겠다"고까지 했다.이런 사실이 드러나면서 자기들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는 찬성해 놓고 이제 와서 반대하는 것은 무슨 의도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민주통합당은 곤혹스러웠다. 어떻게든 이런 비판을 피해갈 묘안이 필요했다. 그래서 강구해낸 논리가 '그때는 잘 몰랐다'였다. 한미 FTA 찬성할 때는 몰랐지만 이제 와서 보니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는 구차한 변명이었다.당시 정동영 민주통합당 의원의 '고백'이 대표적이다. 그는 2011년 10월 20일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끝장토론에서 "저도 까맣게 몰랐습니다. 2008년 월가가 무너지고 나서야 '아 이게 신기루구나. 우리가 금융허브, 우리도 돈장사해서 미국같이 홍콩같이 돈을 벌 수 있다라고 생각했던 FTA가 환상이구나' 하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라고 했다.노무현 정부 때 법무부 장관으로 한미 FTA 비준을 위한 합동 담화문에 서명까지 했던 당시 천정배 의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2011년 11월 한 토론 프로그램에서 "법무부 장관이었음에도 협상이나 과정을 제대로 알기 힘들었다"고 했다.국방부가 대규모 군사훈련과 무력 증강을 남북이 협의한다는 9·19 남북군사합의서 1조 1항 내용의 수정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무력 증강이란 표현이 옛날식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지만 실제로는 예비역 장성들의 비판대로 이 조항이 군사주권의 침해에 해당하는 것임을 뒤늦게 인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결국 군사 합의는 졸속이었다는 것인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 역시 그때는 잘 몰랐기 때문일까?

2018-12-18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윤창호법

지난 2006년 일본 법원은 우체국 직원을 치어 식물인간으로 만든 음주 운전자에게 징역 2년 4개월을 선고했다. 함께 진행된 민사소송에서는 3억엔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지금 환율로 30억원에 이르는 액수다. 당시 일본 내 교통사고 소송에서 이례적인 고액 판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2006년은 '음주운전과의 전쟁' 평가가 나올 정도로 일본에서 음주운전이 큰 이슈가 된 해다. 이듬해 일본 국회는 도로교통법 등을 개정해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을 한층 강화했다. 음주운전 적발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엔 이하의 벌금으로 바꿨다. 또 음주운전을 방조한 동승자는 물론 음주운전을 할 우려가 있는 사람에게 차량 또는 주류를 제공한 사람도 처벌하도록 법을 개정했다.지난해 한국에서 음주운전 사고로 모두 439명이 숨졌다. 하루 1.2명꼴이다. 2013년 727명, 2014년 592명과 비교하면 감소하는 추세다. 하지만 지난해 상반기 음주운전으로 재판에 넘겨진 2천164명 중 173명만 실형 판결이 났다. 음주운전 사고와 후속 과정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소리다.최근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관련 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도 이런 사회적 우려 때문이다. 이른바 '윤창호법'으로 불리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냈을 경우 법정형을 현행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서 3년 이상의 징역 혹은 무기징역으로 형량을 늘렸다. 함께 개정된 도로교통법의 운전면허 정지 및 취소 기준도 훨씬 엄격해졌다.음주운전이나 보복운전 등 사회 안정을 위협하는 범죄를 보는 일본 사회의 시선은 냉혹하리만큼 단호하다. 한 사람의 일탈로 피해를 입은 사람과 그 가족의 고통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가해자 보호법'으로 불릴 정도로 무르기만 했던 우리의 관련 법규가 이제 개정된 만큼 법 적용 관행도 달라져야 한다. 엄한 처벌만이 음주운전을 줄인다고 통계는 이미 증명했다.

2018-12-15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할머니의 가훈

'너희들은 청렴하게 살거라!'경북 예천이 고향인 류우순(86) 할머니가 50여 년 전, 고향 초등학교 앞에서 가게를 하며 한 초교생의 학용품값 500원의 거스름돈을 주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뒤늦게 그 학생을 찾아 사과하려는 사연을 '야고부'에 소개(본지 10월 29일 자)했다. 그 인연으로 지난달 할머니의 '평생일기'를 아들 정완영 부경대 교수로부터 받았다.할머니가 평생 쓴 일기를 2012년 책으로 엮은 자서전인 셈이다. 하지만 책을 보니 아들의 고민이 컸음을 짐작할 만한 내용이 숱했다. 집안의 아픈 상처나 감추고 싶은 일이 수두룩해서다. 그러나 정 교수는 '한 번은 정리하고 가야 한다'는 어머니 뜻을 차마 거스르지 못해 그대로 옮겼다고 한다.그런데 할머니의 책 마지막 부분이 돋보였다. 마치 결론처럼 실은 가훈으로, 스스로 배운 서예 실력으로 적은 가훈은 한자로 된 '청렴'(淸廉)이었다. 서애 류성룡의 후손이란 자긍심에다 사별한 교사 남편에 이어 5남매 자녀 가족이 초·중·고·대학교에 몸을 담은 탓인지 청렴 두 글자가 책의 마지막을 장식했다.류 할머니의 가훈 '청렴'이 돋보이는 까닭은 '정신수도'를 외치던 경북 안동시청이나 안동·예천에 걸쳐 둥지를 튼 경북도청 주변에서 일어난 여러 일들이 세상 사람 입방아에 오르내려서다. 안동시청 공직자 비리 소식은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지만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그 상위 기관들의 실망스러운 행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그런 탓인지 이철우 도지사 취임 뒤 옛 모습을 바꾸는 작업이 한창이다. 5천만원 상당의 값이 나간다는 돌에 새겨진 '사람 중심'이란 도청 입구 글귀 교체나 해마다 2천500만원 넘는 관리비로 골머리였던 높이 30~33m 높이의 5개 깃발 게양대 철거도 그렇다. 대대적인 사람 교체도 곧 있을 모양이다.이런 흐름이 경북도의 거듭나기로 이어지길 바란다. 특히 청렴도 평가에서 마침 올해는 중간 성적이었지만, 만년 하위에 맴돌던 과거를 정리하고 부패를 막는 계기로 삼으면 금상첨화이겠다. 류 할머니가 옛일을 잊지 않도록 일기를 책으로 남기고, 자녀들에게 청렴을 가훈으로 남겼듯이 말이다.

2018-12-14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첫눈이 내리면

첫눈이 오면 무엇을 할까?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이를 만나고 싶다. 친구도 좋고, 옛 애인도 좋고, 스승도 좋다. 그와 함께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눈 내리는 풍경을 한없이 지켜보겠다. 첫눈이 내리는 날, 일상에서 벗어나 낭만에 젖고 싶은 것은 누구나 소망하는 일이다.시인 정호승은 '첫눈 오는 날 만나자'에서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고 했다. 정겹고 낭만적인 시구다.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몇 년 전에는 대구에 첫눈이 오면 영화 '닥터 지바고'를 함께 보는 작은 이벤트가 열리곤 했다. 굳이 연락하지 않아도 '닥터 지바고'를 좋아하고, 추억에 빠져들고픈 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였다. 3시간 20분의 상영 시간에 몇 번씩 본 영화지만, 끝없이 펼쳐지는 시베리아의 설원과 자작나무, 오마 샤리프·줄리 크리스티의 애절한 사랑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뒤풀이로 눈을 안주 삼아 소주잔 기울이면 그야말로 환상이었다.첫눈은 누군가에게는 낭만이고 추억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고통이고 악몽일 수 있다. 군에 갔다 온 이들은 눈을 두고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 '악마의 X가루'라고 했다. 눈만 내리면 온종일 삽 들고 제설작업을 했던 고통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첫눈을 보고 좋아했다가 고참들에게 맞아 죽을 뻔했다'는 이도 있다.11일 대구에 첫눈이 내렸다. 아침부터 내린 눈이 금세 비로 바뀌어 눈도 아니고 비도 아닌 '싸락눈'이 됐다. 다음 날, 곳곳이 얼어붙거나 진창길로 바뀌었다. 통행에 불편하기 짝이 없으니 짜증 섞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길가의 얼음은 아이들에게는 스케이트 타는 즐거움을 주지만, 노인들에게는 낙상의 위험을 준다. 그렇더라도 눈 내리는 날이 좋다. 올겨울, 옛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2018-12-13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노이무공' '탈'

연말이면 올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무엇이 선정될지 관심을 두게 된다. 촌철살인의 묘미를 지닌 사자성어가 뽑히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설문조사플랫폼 두잇서베이와 함께 '올 한 해 자신의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한 사자성어'를 물었더니 다사다망(多事多忙·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이 1위로 꼽혔다. 그다음으로는 고목사회(枯木死灰·형상은 고목과 같고 마음은 재와 같아 무기력함) 노이무공(勞而無功·온갖 애를 썼지만 보람이 없다)이 선정됐다. 각자 살길을 찾아간다는 각자도생(各自圖生)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룬다는 전전반측(輾轉反側) 수중에 가진 돈이 하나도 없다는 수무푼전(手無分錢)도 이름을 올렸다. 힘들고 팍팍한 삶을 반영하는 사자성어들이다.자영업자들이 가장 많이 고른 게 노이무공이다. 갖은 애를 썼지만 보람을 찾기 어려운 자영업자들의 처지를 대변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경기 침체에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위기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의 심경이 고스란히 느껴진다.노이무공은 문재인 대통령의 올해를 표현하는 사자성어로도 들어맞는 것 같다.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 등 미국과 북한을 오가며 온갖 애를 썼지만 보람을 느낄 만한 결과를 끌어내지 못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지 않는 등 남북 간 평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을 결과로 내세울지 모르지만 애초 목표한 북한 비핵화는 전혀 진척되지 않았다. 일자리를 만들겠다며 수십조원에 이르는 세금을 쏟아부었지만 고용지표가 참담한 수준으로 추락한 것도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노이무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다.사자성어 대신 한 글자로 올해를 정리한다면 '탈' 자를 꼽고 싶다. KTX가 탈선(脫線)해 국민 불안이 증폭하고 있다. 사고 전 이상 징후가 수차례 나타났는데도 시정이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사고가 나지 않은 게 이상할 지경이다. 또 탈(脫)원전 정책에 따른 전력 수급 불안을 막으려고 한국전력이 중국·러시아에서 전기를 수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탈원전 부작용이 속출하는데도 문 대통령과 정부는 엉뚱한 길로만 가고 있다. 대한민국이 단단히 탈이 났다.

2018-12-12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부메랑

10년 전 세계적인 광고제인 뉴욕 페스티벌에서 한국인이 내놓은 공전의 히트작은 적을 향해 겨눈 병사의 총구가 결국 자신의 뒤통수로 되돌아오는 것을 담은 반전(反戰) 포스터였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의미(What goes around comes around)의 문구도 눈길을 끌었다. 그것은 상대를 향해 던진 부메랑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적나라한 메시지였다.'부메랑'(Boomerang)이란 말의 유래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이 사냥을 하거나 다른 부족과 전투를 벌일 때 사용하던 도구에서 비롯되었다. 활등처럼 굽은 이 나무 막대기는 던지면 회전하면서 날아가는데 목표물에 맞지 않으면 되돌아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어떤 행위가 행위자의 의도를 벗어나 자신에게 위협적인 결과로 되돌아오는 상황을 부메랑 효과라고 한다.부메랑 효과는 다양하게 존재한다. 무분별한 환경 파괴가 자연재해가 되어 돌아오는 현상도 그렇고, 선진국의 경제 원조나 자본 투자로 개발도상국에서 만든 제품이 역수출되어 원조국의 상품과 경쟁하는 것도 그렇다.심리적 측면에서는 일방적인 설득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는 현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전문 용어로 '저항의 심리학'이라는 개념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과도한 강요를 하면 오히려 반감을 가지고 더 삐딱선을 타는 것도 일종의 부메랑 효과이다. 오늘 우리나라의 일방통행식 경제정책과 남북 화해 또한 그 예외가 아닐 수도 있다.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투신과 관련,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이 '과도한 적폐청산의 칼춤, 스스로에게 칼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제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 때 로베스피에르의 단두대가 생각난다'고 덧붙였다.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는 '불호사 방차사'(不好事 紡車似)라는 말이 있다. '악의 보복은 물레바퀴와 같다'는 뜻이다. 공자의 도(道)를 계승한 춘추시대 유학자 증자(曾子)는 일찍이 '경계하고 경계하라. 너에게서 나온 것이 너에게로 돌아간다'(戒之戒之 出乎爾者 反乎爾者)고 설파했다.

2018-12-11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어느 죽음의 평가

'동생을 대신해 죽어서(代弟而死) 어버이의 뒤를 잇게 하다(爲親之嗣).'대구에서 청도로 가는 도로를 따라가다 달성군 가창면 냉천의 한 산속 포장길을 오르면 소나무 숲 한 야산의 무덤 앞에 작은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다. 행정 당국에서 세운 안내 간판도 옆에 있는 '의로운 누이(義姊) 이 낭자(李娘) 무덤'이다.간판 설명을 보면, 무덤의 주인공은 조선 순조 때 이씨 성의 냉천 산골 아가씨이고, 부모가 밖으로 나가고 없는 사이 집에서 불이 나자 방 안의 젖먹이 남동생을 몸으로 감싸 안고 불길을 막아 자신은 끝내 숨졌으나 대신 동생은 살렸다는 사연의 내용이다.그런데 이를 기리는 추모 글에서, 앞의 비문에 어울리는 문구 즉 '감라의 나이(甘羅其齡), 섭앵의 뜻(聶嫈乃志)'이 예사롭지 않다. 중국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뛰어난 소년 재상 '감라'와 의로운 자객이라는 '섭정'과 그의 누이 '섭앵'이 등장하니 말이다.당시 대구의 관리였던 조종순(趙鍾淳)이란 판관이 이런 사연이 깃든 소녀의 죽음을 의롭게 보고 무덤 앞에 비석을 세우면서 기리는 시를 새겨 넣을 당시, 중국 역사 속 인물인 두 사람을 굳이 넣은 까닭은 그만큼 소녀의 행위를 잊을 수 없는 일로 생각했을 터이다.특히 소녀가 12세여서 12세에 재상이 돼 죽은 감라를, 동생을 대신한 죽음은 자객으로서 임무 완수 뒤 혹 누이에 해가 될까 스스로 낯가죽까지 벗기고 죽은 동생(섭정)을 모른 체 않고 동생의 의로움을 세상에 떳떳이 밝히고 자결한 누이(섭앵)에 빗댔으니 말이다.지난 8일, 꽃다운 12세에 죽음을 맞은 소녀의 무덤과 비문을 살피면서 세월호 사찰 혐의로 전날(7일) 자살로 60년 삶을 마친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소식이 떠올랐다. 투신한 곳에는 '당신의 죽음은 조국을 위해 헛되지 않을 것'이란 추모 글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이 전 사령관은 유서에서 '모든 부하들은 선처됐으면 좋겠다. 우리 군과 기무사는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일했다'는 내용을 적어 둔 모양이다. 한 소녀의 죽음조차도 평가된 옛 역사를 보면 뒷날 그의 죽음 역시 가늠되고 기록될 것이다.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2018-12-10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장례식 유머

한 달에 3, 4차례 정도 부고가 날아오니 상가를 자주 찾는다. 드물게 상주가 실실 웃으며 문상객을 맞는 상가가 있다. 그런 곳은 예외 없이 고인이 천수를 누렸거나 오랜 병치레 끝에 돌아가신 경우다. 유족들이 유교 제례에 따라 삼베 상복을 입고 죽장을 짚고 있는 상가도 가끔 있다. 영정 앞에서 조의를 표하고 있는데, 상주들이 입을 맞춰 '아이고, 아이고~' 하고 곡(哭)을 할 때면 왠지 어색하다.그때마다 오래전에 친구에게 들은 얘기가 생각난다. "그는 형제가 많은 집안의 막내였는데, 중학생 때 부친상을 당했다. 며칠간 '아이고, 아이고~'를 하고 있으니,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날 큰형에게 죽지 않을 만큼 매타작을 당했다고 한다." 수십 년 전 에피소드지만, 절대로 잊지 못할 부친상일 게다.5일 미국 워싱턴에서 있은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한국과 서양의 장례 문화가 얼마나 다른지 보여준다. 추도사를 하는 이들은 추모의 말 가운데 유머 한둘을 꼭 준비한다. 역사학자 존 미첨은 "고인은 선거 유세 때 한 백화점에서 많은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다 마네킹과도 악수했다"고 했다. 앨런 심슨 전 공화당 상원의원은 "고인은 고개를 뒤로 젖혀 실컷 웃고 난 뒤 자신이 왜 웃었는지 핵심 포인트를 늘 기억하지 못했다"고 말해 웃음바다로 만들었다.어느 글에서 본 한국인의 장례식 목격담이다. 10여 년 전 미국 골프 선수가 비행기 사고로 요절했는데, 장례식장은 슬픔 대신 웃음과 유머로 가득했다고 한다. 고인에 대한 기록영화를 보고, 그가 불렀던 노래를 친구들이 부르고, 가족들이 나와서 재미있던 일화를 소개했다.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은 풍속과 문화에 따라 다르다. 그렇다고, 억지로 울거나 웃을 필요는 없다. 지난 8월 조 바이든 전 미국 부통령이 존 메케인 전 상원의원의 장례식장에서 한 인상적인 추도사가 있다. "그 사람(고인)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오기 전에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될 것이다."

2018-12-08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지명 전쟁

지명은 식별 기호다. 요즘에는 고유 브랜드나 부가가치 높은 정보와 동일시하는 인식이 커지면서 지명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는 추세다. 단순히 정보 전달 차원이 아니라 지명을 통한 '아이덴티티'(정체성) 고도화나 차별화 전략으로 진화하는 것이다.전국 지방자치단체마다 '이름 바꾸기'에 열을 올리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지명 변경은 자치사무다. 결격 사유가 없는 한 조례를 만들고 시행하면 된다. 지명 변경에 따른 수십억원의 행정 비용만 감당하면 더 큰 부가가치와 이미지 개선 등을 노려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기초 지자체들이 발 빠르게 움직인다.2007년 강원 평창군 도암면이 대관령면으로 바뀐 것을 시작으로 영월군 하동면이 김삿갓면, 영월군 서면은 한반도면으로 지명 개칭이 줄을 이었다. 최근 지역 지자체도 이 흐름에 합류했다. 2015년 고령읍이 대가야읍으로, 울진군 서면이 금강송면, 원남면이 매화면으로 각각 현판을 바꿔 달았다. 올 7월 인천시 남구가 미추홀구로 바꿔 광역시 자치구로는 첫 사례다.하지만 지명 개편이 모두 가능한 것은 아니다. 2012년 영주시 단산면이 추진한 '소백산면' 변경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충북 단양군이 '고유명사 독점'을 이유로 제동을 걸면서 대법원 판결까지 4년여를 끌다가 끝내 무산됐다. 강원 양양군 서면의 대청봉면 추진도 사정은 같다. 전남 담양군 남면의 경우 '가사문학면'으로 바꾸는 것을 놓고 내부 불만이 쏟아지면서 주춤한 상태다.그제 청송군 부동면의 '주왕산면' 개칭에 관한 주민 투표에서 98.9%의 찬성 결과가 나왔다. 조례 개정 절차를 거치면 부동면은 주왕산면으로 다시 태어난다. 1914년 일제가 청송도호부(현 청송읍) 동쪽에 있다는 이유로 부동면으로 바꾼 지 100여 년 만이다.아직도 동서남북 방위에 기초한 일본식 지명이 수두룩하다. 1946년 행정지명 개편 당시 그 흔적이 남은 데다 1963년 시행된 분구(分區) 체제에도 이런 방식이 그대로 이어졌다. 지명 변경에 따른 혼란만 줄인다면 언제든 지명도 바꿀 수 있다. 우리 삶의 터전인 이 땅의 정주 여건 등 경쟁력을 더 높인다면 더 바랄 게 없다.

2018-12-07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색(色)의 위력

'명상록'을 남긴 로마의 철인(哲人)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영혼은 생각의 색으로 염색된다'는 말을 남겼다. 곳곳에 있으면서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고 알게 모르게 감정과 사고와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색(色)의 개념을 간파한 명언이다.자연에서 비롯된 색은 19세기 인공합성 안료가 개발된 이래 다양하고 화려한 색채의 변주를 이어왔다. 모든 기업은 시장에 상품을 내놓을 때 어떤 색으로 포장해서 소비자의 눈길과 관심을 이끌어낼지에 대해 고민을 한다. 색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이른바 '컬러 마케팅'(Color Marketing)이다.컬러 마케팅은 1920년대 미국에서 남성 위주였던 검은색 만년필에 빨간색을 입혀 여성층을 공략한 것이 그 출발이었다. 시원한 맛의 음료수를 파란색 병에 담고 새콤한 맛의 음료는 노란 용기에 담는 것도 컬러가 지닌 스토리를 제품의 특성과 결합시킨 것이다. 유통업계를 거쳐 전자통신업계를 석권한 컬러 마케팅은 이제 정치권으로도 확산되었다. 현대 정치에서는 각 정당도 저마다의 색깔이 있다. 그 속에 정치적 지향성과 지지자들과의 일치감이 내포되어 있다.더불어민주당은 파란색이고 자유한국당은 빨간색이며 정의당은 노란색이다. 민주당이 노랑에서 파랑으로 바뀌고, 레드 콤플렉스가 있는 한국당이 파란색을 버리고 빨간색을 택한 것을 보면, 시대와 상황에 따라 색의 상징성도 변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색의 파워는 지구촌 곳곳에서 실증되고 있다. '흰 두건'을 쓴 아르헨티나의 어머니회, 태국의 '옐로 셔츠'와 '레드 셔츠' 시위대, 폴란드의 '검은 시위', 미국의 '핑크 모자 시위', 홍콩의 '노란 우산 시위' 등이 그랬다.프랑스에서 '노란 조끼' 시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거침 없는 개혁 드라이브를 펼치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노란 조끼'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유류세 인상을 반대하는 노란색 물결에 서민과 중산층까지 동참하며 반정부 시위로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일방통행이 횡행하는 오늘 한반도에는 무슨 색깔이 빛을 잃었고 또 어떤 색깔이 득세하고 있을까?

2018-12-06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질문 받지 않는 대통령

"대통령 각하, 귀하는 공산주의자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자본주의자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사회주의자이신가요?" "(도대체 왜 이런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아닙니다" "그러면 각하의 철학은 무엇입니까" "철학이라? 나는 기독교인이고 민주주의 신봉자입니다. 그게 다요!"루스벨트 대통령과 기자의 질의응답 내용이다. 미국의 대통령 기자회견은 이렇게 '살벌한' 장면이 자주 연출된다. 기자들이 질문 대상과 내용에 '성역'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미국 정부가 기자들을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감시하는 '워치독'(watchdog·감시견)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백악관 대변인이었던 아리 플라이셔는 백악관 출입기자단은 백악관의 일부이며, 불편하고 긴장된 때가 있을지라도 모든 정부는 워치독이 필요하다고 했다.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한 말은 이러한 철학을 잘 보여준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일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쓴 기사를 즐겼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게 바로 이 관계의 특징이죠…여러분은 저한테 곤란한 질문을 해야 하는 분들입니다. 여러분은 칭찬이 아니라 엄청난 권력을 쥐고 있는 인물에게 비판적 잣대를 들이댈 의무가 있는 분들입니다. 우리를 여기로 보내준 사람들에게 책임을 다하도록 말입니다.'이것이 미국 민주주의가 건강한 이유의 하나다. 그런 점에서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사에 질문 기회를 주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은 미국 민주주의에 큰 우려를 던져주고 있다.문재인 대통령이 2일 뉴질랜드로 가는 전용기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국내 현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외교 문제만 물으라"며 답변하지 않았다.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은 받지 않은 것이다. 케네디부터 오바마까지 10명의 대통령을 취재했던 여기자로 2010년 타계한 헬렌 토머스는 "기자들이 질문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왕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 질문을 받지 않는 대통령은? 마찬가지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2018-12-05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한 초부의 구미 사랑

"구미라는 말에는 '붓다' 즉 부처라는 뜻이 깃들어 있습니다."구미 금오산 정상의 모습을 일컫는 '와불상' 또는 '거인상'을 두고 필자가 쓴 '야고부'(11월 5일 자)를 보고, 구미에 사는 이종원(82) 전 구미문화원 이사는 긴 설명과 함께 구미의 지명에 얽힌 흥미로운 내용을 전했다.과거 문화원 일을 보면서 16년 동안 연구한 결과를 모아 2009년 '구미의 지명 유래'라는 44쪽짜리 자료집까지 냈다는 그는 지금의 구미(龜尾)는 1914년 일제강점기 때부터 썼고 그 이전에는 '仇彌'였다고 했다.고려(989년)부터 조선(1896년)까지 뭇 사료에 나오는 구미(仇彌)는 인도 출신 가야 왕후 허황옥이 이 땅에 온 것처럼 불교 역시 북쪽으로 들어오기 전 남쪽에서 먼저 온 만큼 인도 범어와 관련이 있다고 했다.'붓다' 즉 부처를 뜻하는 한자인 불(佛)이 없던 터라 구(仇)를 썼을 것이라 추정했다. 옛날 가야와 백제, 신라의 왕과 왕족들에 구(仇)가 여덟 번이나 쓰인 것도 지금처럼 원수의 뜻인 구(仇)와 달리 붓다를 의미한 때문이라 덧붙였다.따라서 과거 저명 사학자처럼 '신라 이두문자로 뜻이 없어 구미(仇彌)를 구미(龜尾)로 바꿨다'는 주장은 믿기 어렵고, 당시 일본 사전의 원수(仇)란 풀이 탓에 멋대로 거북(龜) 글자로 바꾼 일제의 잘못을 이제라도 제대로 유래를 따져 걸맞은 이름을 찾을 때라 강조했다.스스로 '나무하는 늙은이'라며 '초부'(樵夫)라 밝힌 그는 "옛 구미 이름에 깃든 사연과 금오산 정상의 부처 모습에다 이후 산업화 시절 구미의 역할까지 따지면 구미는 예사 고을이 아니다"라며 자신의 고장에 대한 자부심마저 감추지 않았다.그의 이야기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살필 일이다. 그러나 한 초부의 사연을 굳이 꺼낸 까닭은 자신의 고장을 아끼고 역사를 알려는 관심이 놀라워서다. 16년 발품으로 책자까지 낸 초부의 정성과 사랑은 결코 만만히 볼 일이 아니다. 어느 시인의 노래를 빌려 '한 초부가 있어 구미는 다행입니다'라고 하면 지나칠까.

2018-12-01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플라스틱의 역습

인류의 문명이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를 거쳤다면 현대는 플라스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플라스틱 없는 현대 문명이 존재할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 같다. 일상용품이 모두 플라스틱 아닌 것이 없고, 첨단과학 소재 또한 플라스틱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미국의 저명한 과학 저널리스트 수전 프라인켈이 쓴 '플라스틱 사회'는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플라스틱과 연결되어 있는지 실감 나게 한다.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단 하루라도 살 수 있을까'란 한국어판 부제 그대로이다.이렇게 우리 현대인들의 삶과 깊게 닿아 있는 플라스틱의 합성과 진화는 어디까지일까. 그러나 문제는 이처럼 곳곳에 존재하며 우리에게 물질적 풍요와 일상적 편리를 보장해온 플라스틱 또한 환경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마구 쓰고 함부로 버리는 수많은 플라스틱으로 지구의 환경이 오염되고 있는 현실에 이제야 인류가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플라스틱은 자연 상태에서는 저절로 분해되지 않는다. 따라서 인류가 지금까지 생산한 어마어마한 양의 플라스틱은 어떤 형태로든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땅 밑에 묻혀 있거나 바닷속에 떠다니거나…. 해마다 전 세계의 바다로 유입되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800만t에 이른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앞바다에서 발견된 죽은 향유고래의 배 속에서 플라스틱 컵 115개와 생수병 4개, 비닐봉지 25개가 나왔고, 전북 부안 앞바다에서 잡힌 아귀의 배 속에서 플라스틱 페트병이 나온 게 우연한 일이 아니다.20여 년 전 내분비 교란 화학물질 연구의 권위자인 테오 콜본 등이 쓴 역작 '도둑맞은 미래'가 환경호르몬의 위험성을 경고했을 때도 '설마…'라는 반응도 적잖았다. 플라스틱 또한 환경호르몬처럼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의 위험이 되었다. 분해되지 않고 잘게 부서진 미세 플라스틱이 어떤 경로를 통해 이미 우리의 식탁에 올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플라스틱과의 관계 재정립이 필요한 시기가 닥쳤다. 환경오염으로 몸살을 앓는 지구가 일회성의 낭비적인 플라스틱 문화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2018-11-30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크레디트 사회

'크레디트 카드'로 불리는 플라스틱 화폐가 국내에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외환은행이 비자카드를 처음 발급한 때가 1978년이니 꼭 40년이다. 백화점 직원·고객카드까지 쳐도 50년이 채 안 된다. 국내 최초의 신용카드는 1969년 신세계백화점 카드다.크레디트 카드는 현금 대신 신용(Credit)으로 결제하는 수단이다. 쉽게 말해 지불 기한을 정한 외상 거래다. 사용 금액을 한 달 내에 갚아야 하는 '차지'(Charge) 카드도 있으나 대부분의 신용카드는 할부나 리볼빙을 통해 외상 거래를 유지한다. 믿고(entrust) '빚'을 남겨 두는 이런 장점이 크레디트 카드 확산을 부추겼다.미국 최초의 은행계 신용카드인 비자카드 출범이 1958년, 일본 6개 은행이 설립한 저팬크레디트뷰로(JCB) 카드가 1961년이다. 우리보다 신용카드 거래가 더 일찍 시작됐지만 이용률은 한국이 한참 앞선다. 2016년 한국 신용카드 이용률이 54%, 미국 41%, 신용카드 발급이 까다로운 일본은 겨우 17%다.재미있는 통계는 인구 1억2천만 명이 넘는 일본의 국민 1인당 평균 카드 보유 수는 21장이다. 단순 셈으로도 26억 장의 카드가 일본인의 지갑을 채우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카드는 상점마다 발행하는 '포인트(마일리지) 카드'다. 현금 선호도가 높은 일본에서 포인트를 고객을 끄는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생긴 현상이다.이 통계는 한국이 신용카드가 지배하는 크레디트 사회임을 말해준다. 하지만 무분별한 발행과 절제되지 않은 사용, 높은 수수료는 사회 문제로 직결된다. 2003년 '신용카드 대란'은 그 사례 중 하나다.정부가 연매출 5억원 초과 30억원 이하 24만 자영업자의 카드수수료 인하를 발표했다. 이로써 중소 규모 가게의 카드 수수료율은 1.6%(신용), 1.3%(체크)로 내려갔다. 따지고 보면 일본의 포인트 할인율은 대략 물건값의 1~2%다. 우리의 카드 수수료율과 큰 차이가 없다. 깎아주느냐, 떼이느냐 차이다. 하지만 포인트카드를 두툼하게 넣어다니는 일본과 달랑 신용카드를 챙기는 한국이 마주하는 사회현상은 다르다. 어느 쪽이 더 크레디트에 가까운지는 알 수 없지만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다.

2018-11-29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공산당이 좋아요"

베트남 전쟁의 결정적 전환점은 남베트남 공산주의자 즉 베트콩이 1968년 1월에 개시한 '테트(음력설) 공세'이다. 사이공의 미국 대사관을 포함해 남베트남 전역의 100여 개 주요 시설과 도시, 촌락이 공격당한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북베트남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미국 여론을 지배하게 됐다.당시 미국 언론은 테트 공세로 미군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고 보도했다. 사실은 정반대였다. 이 공세에서 베트콩은 막대한 피해를 입으면서 조직과 무장력은 사실상 소멸됐다. 북베트남군을 지휘한 전쟁 영웅 보 응우옌 지압 장군은 이를 인정했다. 1974년 사이공 함락 당시 북베트남군의 선봉 부대 지휘관으로 남베트남의 마지막 대통령 두옹 반 민에게 항복을 받아낸 부이 틴 대령의 회고에 따르면 보 응우옌 지압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테트 공세는 군사적 패배였다. 남쪽의 우리 군사력은 1968년의 전투로 거의 전멸했다."그러나 북베트남은 전쟁에서 이겼다. 그것은 군사적 승리가 아닌 정치적 승리였다. 테트 공세의 목표도 이것이었다. 미국 내 반전 여론 형성을 노린 것이다. "우리의 의도는 전쟁을 계속 수행하려는 미국 정부의 의지를 꺾는 것이었다…만약에 우리가 군사력에 집중했다면 우리는 아마 두 시간 안에 패배했을 것이다." 보 응우옌 지압의 회고다.미국 여론은 이에 넘어갔다. 심지어 북베트남을 방문해 북베트남과 함께 미국에 대한 투쟁을 벌이겠다고 한 제인 폰다 같은 '개념 연예인'들은 적국의 지도자인 호찌민을 영웅화하기까지 했다. 이러고서야 전쟁에 이길 수는 없다. 미국은 북베트남에 패한 것이 아니라 내부의 적에 패한 것이다.친북 단체의 북한 김정은 방한 환영 운동이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이제는 김정은이 "겸손하고 배려심 많고 결단력 있고 배짱 좋고 실력 있는 지도자였다. 나이를 떠나 진정한 위대한 인물"이라는 우상화와 함께 "나는 공산당이 좋아요"라는 소리까지 나왔다. 이런 언동이 백주에 벌어지는 것이 우리 사회가 이런 일탈도 소화할 만큼 건강하다는 지표일까 아니면 북베트남에 패배한 미국처럼 내부에서 무너지는 징후일까.

2018-11-28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영혼 없는 아부꾼

'지문 없는 인간'이란 말이 있다. 윗사람에게 손바닥을 워낙 비벼 지문이 없어진 '아부의 대가'를 일컫는 비아냥이다. 아부(阿附)는 남의 비위를 맞추려 알랑거린다는 뜻이다. '아부꾼이 지옥문에 이르면 악마가 문을 걸어 잠근다'는 서양 속담이나 '교언영색'(巧言令色) '구밀복검'(口蜜腹劍)도 아부·아첨을 경계하는 말이다.반대로 아부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 언론인 리처드 스텐걸은 '아부의 기술'(참솔 펴냄)에서 "아부는 진화 과정에서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져 전해왔다"고 했다. '내가 당신을 칭찬하면 당신은 나를 돕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함께 우리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한다.'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갈망과 칭찬받으려는 욕망은 본능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성공하려면 적절한 아부가 필요하다고 했다.사회생활을 하면 '아부는 친구를, 진실은 적을 만든다' '아부는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통설이 옳음을 안다. 문제는 그 정도다. 리처드 스텐걸의 주장처럼 서로 도와주는 '호혜적 이타주의' 수준이라면 사회를 밝고 긍정적으로 만든다. 자신의 출세와 이익만을 목표로 한 '악의적인' 아부가 횡행하면 사회를 분열시키고 망친다.과거 정부 부처의 장(長)이었던 인사들이 정권이 바뀌면서 욕먹고 고발까지 당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동상 등도 2, 3년 전만 해도 별문제가 없었는데, 이제는 심각한 사회 이슈가 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 등에서 보듯, 2년 만에 정부 판단이 완전히 달라져 엄청난 혼란을 초래한다.2,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모두 같은 공무원·직원인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완전히 판단을 달리한다. 처음 논의될 때는 뭘 했는지 모르지만 이제 와서 '정의의 심판관'을 자처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정부·세력에 대한 아부 심리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진정으로 진보 가치를 추구하는 이는 소수이고, 상당수는 어중이떠중이 아부꾼이다. '영혼 없는 출세주의자·기회주의자'가 판치는 세상이다. '내 앞에서 아첨하는 자는 내 뒤에서 (정권이 바뀌면) 비방할 것이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2018-11-27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파르시

종교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박해는 죽음과 엑소더스를 낳는다. '파르시'(Parsi)도 그런 예다. 파르시는 넓은 의미로 '페르시아인'을 뜻하지만 7, 8세기 무렵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옛 페르시아(오늘의 이란) 땅에서 중앙아시아나 인도로 피신한 조로아스터 교도를 부르는 명칭이다. 반면 이란에 남은 조로아스터 교도는 '가바르'로 불렸다. 이는 아랍어로 이교도(카피르)를 뜻한다.'마즈다교'로도 불리는 조로아스터교는 정확한 기원을 알 수 없으나 기원전 6세기 옛 페르시아의 예언자 자라수슈트라 스피타마가 창시한 고대 종교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적 산문시에 등장하는 '차라투스트라'가 그다. 사산 페르시아 왕조의 국교였고 '조장'(鳥葬)을 치르는 게 종교적 전통이었다.영국 록 밴드 '퀸'(Queen)의 간판스타이자 팝 역사상 가장 뛰어난 보컬리스트로 평가받는 프레디 머큐리도 파르시다. 그는 영국 보호령이던 동아프리카 섬, 잔지바르(현 탄자니아) 태생이나 부모는 인도 서부 구자라트 출신이다. 1964년 잔지바르 혁명 때 영국으로 이주했다. 1971년 '퀸'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름도 프레드릭 머큐리로 바꿨다.머큐리는 전 세계 약 20만 명에 불과한 조로아스터교 신도 중 가장 이름난 인사다. 인도에도 약 7만 명의 파르시가 산다. 특히 인도의 파르시는 최대 경제도시 뭄바이에 가장 많이 거주하는데 인도 국민기업인 타타그룹의 라탄 타타 회장도 파르시다. 머큐리의 묘비에 기록된 본명 '파로크 불사라'(Farrokh Bulsara)가 우리에게 낯선 것도 그의 종교와 인도라는 배경 때문이다.파로크 불사라로 태어나 조로아스터교에서 진실을 상징하는 태양과 가장 가까워 '진실의 배달부'로 여기는 '머큐리'(수성)라는 이름으로 1970, 80년대 음악계를 뒤흔든 프레디 머큐리. 24일은 그가 불사라의 이름으로 다시 돌아간 지 27년이 되는 날이다. '보헤미안 랩소디'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 등 그가 남긴 숱한 명곡은 계속 우리 귀를 울린다.

2018-11-24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노동조합의 타락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권리 보호와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한 사회적 장치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노조와 조합원에 좋은 것이 반드시 노조원이 아닌 사람들과 사회 전체에 좋은 것은 아니다. 노조가 이렇게 노조와 조합원에게만 좋은 것에 매몰될 때 노조는 반사회적 기득권 집단으로 전락하게 된다.1980년대 중반까지 영국 국가 경쟁력의 총체적 저하를 가져온 영국 노조의 행태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중에서도 인쇄공 조합의 '반사회성'은 특히 두드러졌다. 당시 인쇄공 조합은 식자공(植字工)으로 이뤄진 전국인쇄협회(NGA)와 인쇄 업계의 육체 노동자들로 구성된 '인쇄 및 동업협회 ʼ82' (SOGAT ʼ82)가 있었다.이들 조직은 런던지역에서 까다로운 가입 조건의 클로즈드숍(사용자가 노조 가입자만 고용하는 제도)을 운용하고 있었다. 이는 조합원에 대해서는 엄청난 지배력을, 사용자에 대해서는 막강한 협상력을 인쇄공 노조에 부여했다.이런 힘을 바탕으로 한 인쇄공 노조의 오만은 하늘을 찔렀다. 식자공들이 뉴스 기사와 논평까지 검열했던 것이다. 그들은 동의할 수 없는 문구를 찾으면 바로 삭제해버렸다. 또 툭하면 파업으로 신문 발행을 중단시켰다. 경제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는 1983년 6월 1일부터 8월 8일까지, '더 타임스'를 비롯한 전국의 모든 신문도 같은 해 11월 25일부터 27일까지 발행되지 못했다.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더 타임스와 파이낸셜타임스지만 그들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인쇄공 노조라는 말이 나온 이유다.인쇄공 노조는 더 나아가 새로운 일간지 '투데이'의 발간을 저지하려 했고, 인쇄공 노조원을 쓰지 않는 루퍼트 머독의 최신식 인쇄공장의 가동을 막기 위해 공장이 들어선 지역을 폐쇄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비노조원에 대한 폭행은 물론 발행자에 대한 살해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민주노총 소속 노조의 고용 세습 사실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민주노총이 이기적이고 반사회적인 노동귀족 집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고용 세습은 나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도덕적 타락이다. 그 끝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2018-11-23 06:30:00

[야고부] 보헤미안 랩소디

관객 300만 명을 돌파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이래저래 화제다. 이번엔 주연 배우 라미 말렉의 인터뷰 사진이 이슈가 됐다. 말렉이 한 주간지와 인터뷰하고 그 주간지를 들고 사진을 찍었는데 잡지 표지에 '나는 왜 文정부에 등을 돌렸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사진만 보면 말렉이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리게 됐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오해할 만하다. 영화 배급사가 "배우가 이 문구의 뜻을 알고 사진을 찍은 것은 아니다"고 했고, 취재진도 "이전에도 배우와 인터뷰 후 관례적으로 잡지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고 해명해 해프닝으로 일단락됐다.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흥행 가도를 질주하고 있다. 국내에 개봉한 음악 영화 '라라랜드' '비긴어게인' '맘마미아!' 등의 기록을 깨고 가장 빠른 속도로 300만 명을 넘었다. 영화는 음악에 대한 꿈을 키우던 아웃사이더에서 전설이 된 프레디 머큐리와 '퀸'의 음악, 삶을 담았다.'퀸'의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는 1989년까지 우리나라에서 금지곡이었다. 1975년 발표된 이 곡은 사형수에 관한 노래다. 살인을 묘사하는 부분이 가사에 포함돼 있어 금지곡이 됐다. 보헤미아라는 지명이 당시 사회주의 국가인 헝가리·체코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금지곡이 됐다는 웃픈 설(說)도 있다.1970, 80년대 '퀸'은 일류는 아니었다. '레드 제플린'이나 '딥퍼플'보다 아래로 여겨졌다. 하지만 메탈, 록, 팝 어느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그들의 음악은 독특한 매력이 있다.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와 무대 매너,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는 팬들을 열광하게 했다.장노년층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며 '퀸' 노래를 떼창한다.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도 관람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스포츠에서 우승팀이 결정되면 꼭 나오는 노래 '위 아 더 챔피언'으로 '퀸'을 알고 있다. 영화를 통해 세대 간 소통과 공감을 한다.우리에게도 '퀸'과 같은 존재가 있다. 조용필, 방탄소년단은 세대를 연결하는 아이콘이 되기에 충분하다. 중학생 아들이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싶다는데 슬쩍 동행해 영화를 같이 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야겠다.

2018-11-22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대기오염의 공포

이상화 시인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라며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울분을 토로했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는 미세먼지에 하늘을 빼앗겨 봄을 잃은 지 오래다. 봄뿐만 아니다. 천고마비의 가을이 사라지고 삼한사온의 겨울조차 뒤틀렸다.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은 옛말이 되었고, 겨울도 사흘은 춥고 나흘은 미세먼지로 고통을 겪는 '삼한사미'(三寒四微)로 변했다. 무더운 여름은 오존의 공포가 엄습한다.미세먼지는 이렇게 사시사철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고 동·식물의 생육을 저해하는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군림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성인 3천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국민을 가장 불안하게 하는 위험 요소는 바로 대기오염이었다.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초미세먼지로 인한 조기 사망자 수가 1만 명을 넘었다.오존은 더 위험하다. 장기간 노출되면 기침과 호흡 곤란, 눈의 통증 등을 일으킬 수도 있는데 실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미세먼지는 입자 상태이지만 오존은 기체이기 때문에 마스크로도 차단이 어렵다. 그래서 오존 농도가 높은 날은 호흡기 환자나 노약자 및 어린이들에게는 치명적이다.그런데도 우리는 오로지 마스크 하나를 방패막이로 삼아 폐 질환 공포에 떨며 살아간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대책이라는 게 대기오염 모니터링 시설 확충이나 신속한 문자 발송 서비스는 외면한 채 마스크 착용과 외부 활동 자제만 외치기 때문이다. 일본과 대만의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과 대처는 우리와는 질적으로 다르다.일본은 지자체마다 미세먼지와 오존 등 오염물질을 실시간 감시하는 '대기오염 상시 감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를 위한 5~10개의 측정소도 여러 곳에 분산 배치하고 있다. 이렇게 모니터링한 내용을 다양하고 신속한 방식으로 일반 시민은 물론 각 기관단체와 학교 등에 전파한다. 가능한 빠른 대처로 노약자를 비롯한 주민 건강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다. 대만 정부는 연구기관 및 시민들과 함께 미세먼지 측정기 보급 운동을 벌여 도시 곳곳의 대기오염 농도를 실시간 확인하고 있다. 이런 게 선진 행정이다.

2018-11-21 06:30:00

기획 & 시리즈 기사

[매일TV] 협찬해주신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