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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아이, 어른의 거울답다

[야고부] 아이, 어른의 거울답다

'…14세 상노(床奴) 김육봉 구화 1원, 9살 이용봉 세뱃돈 신화 4원 90전, 9살 이덕봉 세뱃돈 1환과 용돈 1환, 10세 김쾌문 신화 50전, 10세 김홍동 학자금 500냥, 9세 방경룡 1원, 인력거군 정화선의 10세 딸 구화 15전, 품팔이 과부의 10세 딸 구화 20전, 김치홍의 14세 딸 바느질 품삯 1원, 박처간의 8세 여종 시월이 60전, 이주현의 6세 딸 세뱃돈 3환, 수원 6세 어린이 신천동 세뱃돈 50전, 서울의 10세 김갑경이 9세 안옥남·김병돌과 함께 각 20전씩….'과연 놀랄 만하다. 우리 역사에서 나라 언론이 이처럼 어린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미주알고주알 나날이 드러내 알린 일이 있었던가. 또 이렇게 어린이들이 세상과 어른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적이 있었던가. 무엇보다 이리도 어린아이들이 나라의 어려움에 보탬이 되겠다면서 고사리손으로 소중한 돈을 모아 바친 일이 세상 어디에 있었던가.그러나 모두 사실이다. 1907년 3월부터, 당시 발간된 신문 여기저기에는 자고 나면 새로운 어린이 이름이 숱하게 등장했고, 그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온 백성을 들끓게 만든, 일제에 진 나라의 빚 1천300만원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한 이 나라 어린이들의 상상하지 못한 기부였다. 드러난 신분과 행적을 보면 가슴이 아린다.역사에 길이 남을 옛 아이들의 기부 행렬은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의 세계기록유산등재추진위원회에 의해 지난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2천475건의 국채보상운동기록물에서 확인됐다. 사업회 김지욱 전문위원에 따르면, 특히 이들 아이를 포함한 학생·청소년의 기부만 최소 120건이 넘어 전체의 5%여서 더욱 놀라울 뿐이다.지난달 경북도와 한국국학진흥원이 한국 보유 16종의 세계기록유산에 대해 소개한 책 '이야기로 보는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에 처음 공개된 김 위원의 분석 자료는 '아이는 어른의 거울'임을 더욱 실감하게 한다. 특히 현재의 인색한 기부 문화를 살피면 100년 전 한국 어린이들의 기부는 오늘날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어른들의 알량한 기부가 판을 치는 오늘, 옛 어린이들의 때묻지 않고, 신분과 빈부 등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의젓함이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다. 새해 벽두 확인한 옛 아이들의 일, 널리 알릴 만하지 않은가.

2020-01-09 06:30:00

[야고부] 아시시의 장미

[야고부] 아시시의 장미

아시시의 성(聖) 프란치스코(1181~1226)는 '빈자(貧者)의 성인'이라 불린다. 이탈리아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방탕한 10대 시절을 지낸 그는 수도자가 된 이후 온 생애를 철저한 금욕과 절제, 청빈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했다. 마하트마 간디가 "백 년마다 한 번 성 프란치스코가 태어난다면 세상의 구원은 보장될 것"이라고 말한 것만 봐도 그의 생애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만하다.그런 성 프란치스코도 사람인지라 성욕 때문에 괴로워했다. 성욕이 일 때마다 그는 하느님에게 자신의 음욕을 없애달라고 기도하며 피투성이가 되도록 장미 덤불 위를 뒹굴었다. 프란치스코 사후 아시시의 성당 마당의 장미들은 가시가 없다고 전해진다. 아시시의 장미를 다른 곳에 심으면 가시가 생겨나고, 아시시에다 옮겨 심으면 가시가 없어진다고 하니 신기한 일이다.현 교황의 이름은 바로 이 성 프란치스코에서 딴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콘클라베(교황 선거)에서 3분의 2 이상 표를 얻었을 때 옆자리에 있던 클라우디오 우메스 추기경이 "가난한 사람을 잊지 마십시오"라고 말하며 자신을 껴안는 순간 성 프란치스코가 떠올랐다고 한다. 즉위 이후에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몸에 밴 겸손과 탈권위적인 행보를 보이며 역대 여느 교황들이 경험치 못한 큰 사랑을 대중들로부터 받고 있다.그런데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로마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던 중 크게 화를 내는 모습이 포착돼 화제가 됐다. 한 여성이 자신의 팔을 확 잡아당기자 여성의 팔을 두 번 내리치는 모습이었다. 평소 인자한 이미지와 상반된 모습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논란이 일었고, 교황이 순간적으로 인내심을 잃었다고 공식 사과하기에 이르렀다.가톨릭계에서는 '교황 무오류설'이라는 용어가 있다.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황의 공식적 선언에는 오류가 없다는 시각인데, 교황도 사람일진대 모든 언행이 완전무결할 수는 없다. 누가 신체적 고통을 갑자기 가하면 '억!' 소리가 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다. 성 프란치스코조차도 음욕과 싸웠듯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버럭 화내는 모습이 오히려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2020-01-08 06:30:00

[야고부] 문 정권의 입법독재

[야고부] 문 정권의 입법독재

1951년 수정헌법 제22조가 발효되기 전까지 미국 헌법은 대통령의 연임 제한 규정이 없었다. 이를 축자적(逐字的)으로 해석하면 무한정 연임해도 헌법 위반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등 후임 대통령들이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연임하고 물러난 선례를 존중하고 따른 것이다.제퍼슨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의 임기가)헌법에 의해, 혹은 관습에 의해 제한받지 않는다면 명목상 4년 임기는 종신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나는 훌륭한 전임자가 남긴 선례를 무시하면서까지 두 번의 임기를 연장한 첫 사례가 되고 싶지 않다."이런 연임 제한 전통은 남북전쟁의 전쟁 영웅으로 인기가 높았던 제18대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 때 재확인됐다. 그랜트의 측근들이 3연임을 주장하면서 의회에서 찬반 논쟁이 일자 하원은 이렇게 결의했다. "워싱턴을 비롯한 미국 대통령이 남긴…두 번의 임기 후 물러났던 선례는 미국 공화국 시스템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이 유서 깊은 전통을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고 비애국적인 행위가 될 것이며, 미국 자유주의에 대한 위협이 될 것이다."역설적이게도 이런 전통을 위반한 첫 대통령이 미국 민주주의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으로, 4연임했다. 이는-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헌법의 맹점을 파고든 '내용적 위헌'이었다. 이에 민주·공화 양당은 1947년 대통령 임기를 4년씩 2연임으로 제한하는 수정헌법 제22조를 합의 통과시켰다.이런 사실은 의회의 법률 제정권에 시사하는 바 크다. 헌법의 맹점을 이용한 '내용적 위헌'은 민주주의의 보전과 발전에 더 큰 위험이라는 것이다. 위헌 소지가 있다는 비판에도 공수처법을 강행 처리한 데 이어 민변, 참여연대 등 친여 인사들이 법관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까지 발의한 문재인 정권의 '입법 독재'는 그런 위험이 눈 앞의 현실임을 잘 보여준다.이런 입법 독재를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무법적 공권력 행사'로 규정했다. "입법부가 정한 법이면 무엇이든, 이런 법 아래서 정부가 내리는 결정은 무엇이든, 이를 법이라고 부르는 것, 이런 것만큼 웃기는 코미디가 없다. 이는 무법적 공권력 행사다."

2020-01-07 06:30:00

[야고부] 휴머니튜드

[야고부] 휴머니튜드

'정면으로 다가가 시선을 맞춘다. 3초 이내에 "안녕하세요? 기분이 어떠세요?" 말을 건넨다. 어깨나 등에 손을 올린다. 3분이 지나도 당신을 거부하면 "오늘은 그만 할게요. 다시 봐요" 인사하고 돌아나온다.'프랑스의 치매 케어 전문가 이브 지네스트의 책 '휴머니튜드 혁명'에 나오는 '인간관계를 만들기 위한 다섯 단계'의 내용이다. 병원과 복지시설에서 흔히 발생하는 치매 환자와의 소통 장애 해결법을 전파해온 그는 최근 국내 TV 다큐 프로그램에도 소개된 인물이다. 그는 인천 시립 노인치매요양병원 중증 치매 환자 14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휴머니튜드 케어'를 통해 치매 환자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과 소통의 문제점을 직접 증명한다.휴머니튜드는 '인간다움' 뜻을 가진 조어다. '보고, 말하고, 만지고, 서고 걷는' 네 가지 기본 특성에 기초한 대화가 막힌다면 치매 환자와의 소통이 어렵다는 점을 이브 지네스트는 강조한다. 화를 내고 욕하며 공격하는 치매 노인의 행동이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데 대한 방어적 행동이라는 사실을 시청자가 깨닫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치매 환자와의 소통 첫 단계는 '눈 맞추기'다. 정상인의 시야 범위는 120도이지만 치매 환자는 시야각이 매우 좁다. 정면에서 환자의 눈을 응시하고 얼굴 간격도 25~30㎝를 유지해야 소통이 가능해진다. 인천 치매요양병원에서 60일간 진행한 휴머니튜드 실험 결과 눈을 맞추고 어루만져 주는 것만으로도 환자의 태도는 달라졌다. 환자를 침대에 묶는 구속 띠도 사라졌고, 신경안정제 약물 사용도 절반으로 줄었다. 누워만 있던 노인이 일어나 걷게 되고, 입을 닫았던 할머니는 간호사와 대화를 시작했다. 통제와 억압이 아닌 존중과 사랑이 가져온 치유력이다.대구의 한 장애인시설에서 사회복지사가 이용자들을 상습 폭행하고 학대해 온 사실이 적발됐다. 사건 은폐 등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자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이 사례에서 국내 병원과 사회복지시설이 안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점은 환자나 이용자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늘 그들과 마주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휴머니튜드 케어는 국내 약 75만 명의 치매 환자만을 위한 케어 방식이 아니다. 장애인도 마찬가지다.

2020-01-06 06:30:00

[야고부] 달구벌의 음향(音香)

[야고부] 달구벌의 음향(音香)

조선 후기 동편제 판소리를 확립한 송홍록은 데뷔 시절 경상감영의 명창 선발전에 나왔다가 창피를 당했다. 심사위원인 한 기생에게 몇몇 대목이 신통치 못하다는 지적을 받은 것이다. 절치부심하며 고향 남원으로 돌아간 송홍록은 피를 토하는 소리 공부를 다시 하고서야 득음(得音)하여 국창의 반열에 올랐다.조선시대 대구의 경상감영 선화당은 판소리 경연대회 본선이 열린 무대였다. 전주대사습놀이 예선을 거친 다음 경상감영의 명창 선발전을 통과해야 한양에 가서 전국적인 명창으로 행세할 수 있었다. 대구는 날뫼북춤과 영제시조가 흥행한 곳이다. 대구는 박태준, 현제명, 권태호 등 유명 음악가들에 의해 우리나라 근대의 서양음악이 태동한 곳이기도 하다.대구는 대한민국 제1호 클래식 감상실 '녹향'이 문을 열어 지금껏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6·25전쟁 중에도 음악감상실 '르네상스'에서 바흐의 음악이 흘렀던 기적의 공간이었다. 대구는 또한 대중가요의 메카였다. 많은 유명 가수를 배출했고, 대구에서 탄생한 노래들이 온 국민의 애창곡이 되었다. 주옥같은 노래를 작곡한 김희갑, 김영광, 배상태 등이 대구에서 활약했다.'봄날은 간다' '전선야곡' '굳세어라 금순아' 등의 히트곡도 대구의 오리엔트레코드사에서 나왔다. '비나리는 고모령'은 대구가 무대이다. 백년설(나그네 설움), 신세영(전선야곡), 남일해(빨간 구두 아가씨), 곽순옥(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여운(과거는 흘러갔다), 이용복(그 얼굴에 햇살을), 김광석(일어나)에 이어 양파와 방탄소년단(BTS)의 뷔와 슈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요즘 대구 출신 가수들은 팔방미인이다. 아이돌 가수 양파는 예쁜 모습에다 공부도 썩 잘해 인기가 높았다. 지구촌의 문화 아이콘으로 등극한 BTS의 멤버 7명 중 2명이 대구 출신이다. TV매일신문이 특집으로 마련한 뷔와 슈가의 특별영상이 역대급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멋진 비주얼과 다재다능한 재능에 해외 팬들의 호응도 뜨겁다. 음악의 도시 달구벌의 숨결이 낳은 초특급 월드 스타들이다.

2020-01-03 19:23:45

[야고부] 18세 학생 선거의 덫

[야고부] 18세 학생 선거의 덫

법(法)의 한자를 풀면 물(水)과 간다(去)가 된다. 물처럼 흐르는 게 법이다. 물은 앞길을 막는 장애물을 만나면 둘러 가기도 하지만, 웅덩이나 파인 곳에 이르면 흐르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법이 사람과 만나면 고약한 존재가 되곤 한다.대한민국 법의 역사를 잘 살펴보면 그렇다. 특히 근대적 의미에서 서양식 잣대의 법이 많이 들어온 시기로 볼 만한 일제강점기의 암흑기를 돌아보면 더욱 분명히 깨달을 수 있다. 일제는 나라를 삼키기 전부터도 그랬지만 1910년 한국을 지배하면서 자고 나면 새로운 법을 발표할 만큼 온갖 법을 등장시켰다.이유는 너무나 뻔했다. 새로운 법의 지배 틀을 밤낮으로 내놓은 까닭은 법에 낯선 한국인을 얽어매고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일제가 얼마나 많은 법을 만들었는지 당시 총독부 기관지(매일신보)는 '매일 비 오듯이 쏟아졌다'고 할 정도였다. 그들 멋대로 만든 법이니 한국인은 날마다 죄인으로 붙들려 갔다.이런 아픈 역사적 배경을 안고 출발한 많은 오늘날의 법이기에 그때처럼 지금도 힘이 약하거나 가난한 사람 편이 아닌 때가 일쑤였다. '돈 없으면 유죄요, 돈 있으면 무죄'인 '무전유죄(無錢有罪), 유전무죄(有錢無罪)'라는 서글픈 유행어가 없어지지 않고 생명력을 잇는 까닭이다.지난달 27일 국회의 선거법 개정으로 오는 4월 15일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만 18세가 되는 50여만 명이 첫 투표의 행운을 누린다. 종전 19세의 선거 연령이 낮춰져서다. 고교 3학년도 5만 명쯤으로 추정되는데, 자칫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휩싸일 우려가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선거법은 전문가도 헷갈릴 정도로 복잡해 자칫 학교 안팎에서 잘못 말하거나 행동했다가 낭패를 당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나라 법 적용의 악명도 감안하면 미리 경계해야 한다. 18세로 투표 나이를 낮춘 것을 마냥 반길 수만 없게 됐다. 생애 첫 선거 투표, 잘 대처해야 한다.무엇보다도 이번 선거는 어느 때보다 여야 경쟁이 치열해 이들 18세 젊은 새로운 유권자 포석을 위한 유혹도 커질 것이다. 그렇더라도 여야 모두 이들 18세 학생 유권자들을 전과자로 모는 짓은 말아야 한다. 18세 첫 유권자 역시 덫에 걸려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현실을 몸소 체험하는 모험은 피할 일이다.

2020-01-03 06:30:00

[야고부] 새로운 온을 꿈꾸며

[야고부] 새로운 온을 꿈꾸며

올 한 해는 온 나라가 우리말로 100을 뜻하는 '온'을 앞세운 날들이었다. 독립운동의 분수령을 이룬 3·1운동 100주년을 비롯하여 상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과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무장 항일 투쟁에 한 획을 그은 의열단(義烈團) 결성 100주년, 구상 시인 등 인물 탄생 100주년에다 한국 영화 탄생 100주년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이를 기념했다.온은 숫자 100을 뜻하기도 하지만 '모두'를 나타내는 순수한 우리말이기도 하다. 이처럼 백(100)의 온은 '전부'를 일컫기도 하지만, 흔하지 않거나 이뤄지길 바라는 어떤 대상이나 목표와 관련해서 쓰인 단어로 볼 수도 있다. 백(百)의 글자가 들어간, 백세(百歲) 시대나 백년(百年) 손님 또는 백년(百年) 해로(偕老), 백년(百年) 하청(河淸) 등 숱한 단어들을 살펴보면 알 만하다.우리에게 100의 남다른 기억 속에는 '100억불(弗) 수출'이란 구호도 뚜렷하게 한 자리를 잡고 있다. 지난 세월, 선진국 눈에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여겨졌던 한국이 상상과도 같았던 '100억불' 수출 목표를 세워 이뤄낸 일은 '한강의 기적'으로 평가되기에 이르렀다. 갓 태어난 아이의 '100일'을 축하하듯 우리에게 100은 기릴 만한 숫자였던 것이 틀림없다.특히 대구경북에서는 엄혹했던 망국의 일제강점기 때인 1919년 거국적 자발적으로 일으킨 3·1만세운동의 기억을 되살리고, 다시는 그런 불행한 흑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며 각오를 다진 100년 행사가 넘쳤다. 어느 곳보다 많은 희생을 치렀고 압도적인 독립운동가를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나라의 위기에는 기꺼이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대구경북이었기에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그런 뜻깊은 2019년을 맞아 준비했던 갖가지 100주년 기념과 축하 행사도 이제 오늘로 막을 내리고 역사 속으로 묻히고 다시 올 새로운 온을 기다리게 됐다. 그리고 2020년의 첫날인 내일이면 새로운 온의 100을 맞는 일들이 또다시 온 나라 곳곳에서 펼쳐질 것이다. 2019년 돼지띠의 해는 지고, 쥐띠의 해가 뜨는 2020년에는 2019년 뭇 온을 계기로 다진 각오를 바탕으로 국운(國運) 상승을 가져올 여러 온 기념이 활짝 펼쳐지길 꿈꾼다. 정치적 혼란 때마다 제 역할을 했던 대구경북이 앞장을 서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2019-12-31 06:30:00

[야고부] 원수와 동지

[야고부] 원수와 동지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왕자 규와 소백은 왕위를 두고 형제간에 싸움을 벌였다. 이때 규를 받들던 관중은 화살을 날려 소백을 죽이려 했다. 곧 제나라 환공으로 즉위한 소백이 관중을 처형하려 하자 충신 포숙아가 막아섰다. 관중의 인물됨을 역설하며 오히려 재상으로 삼으라고 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관중을 중용한 환공은 춘추시대의 패자로 부상했다. 고사성어 관포지교(管鮑之交)의 내용이다.당 태종 이세민은 현무문(玄武門)의 변을 일으켜 황태자인 형 이건성을 제거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일찌감치 이세민을 경계하며 죽여야 한다고 주청했던 사람이 바로 이건성의 책사였던 위징(魏徵)이었다. 쿠데타에 성공한 이세민이 위징을 잡아다 "왜 형제를 이간질해 참변을 초래했느냐"고 호통을 치자, 위징은 오히려 "옛 태자가 내 말을 들었더라면 이 지경이 되었겠느냐"고 당당하게 맞섰다.위징의 충심과 강단이 마음에 들었던 이세민은 자신의 신하가 되어 달라고 했고, 위징은 '어떠한 간언(諫言)도 받아들일 것'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이후 위징은 황제에게 수없이 쓴소리를 했고, 당 태종은 숱한 갈등과 불같은 화를 참으며 위징의 직언을 받아들였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태평성세로 일컫는 '정관의 치'는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다.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변호사 시절부터 자신을 노골적으로 모욕하고 경멸하던 에드윈 스탠턴을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스탠턴의 능력을 주목했기 때문이다. 스탠턴은 링컨을 도와 남북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링컨이 암살당했을 때 가장 슬퍼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당선 직후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박근혜 국회의원을 통일부 장관에 기용하는 방안을 추진한 적이 있다.국리민복을 위해서 원수를 동지로 포용하며 직언을 정책으로 반영하려는 통합의 정치술이었다. '임금이 밝으면 신하가 곧다'(君明臣直)고 했다. '충언(忠言)은 귀에 거슬리고, 양약(良藥)은 입에 쓰다'고 했다. 제 편만 챙기고 사탕 발린 소리만 들으며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다가 망하는 것은 임금과 간신들의 업보라고 치자. 모진 세월을 피눈물로 감내해야 하는 국민은 어찌할 것인가. 그렇게 또 한 해가 저물었다.

2019-12-30 06:30:00

[야고부] '형·아우가 원수'

[야고부] '형·아우가 원수'

도사자란 도법자치(道私者亂 道法者治). "사사로운 길을 따르는 자는 어지러워지고, 법의 길을 따르는 자는 다스려진다"는 뜻이다. 전국시대 법가인 한비자(韓非子)가 지은 '한비자' 궤사(詭使) 편에 나오는 문구다.정권을 위기로 몰아넣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청와대 감찰 중단 의혹을 지켜보면서 '도사자란'이 떠올랐다.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이라는 사사로운 길을 따랐다가 몰락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오버랩된다. 송철호 울산시장과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은 문 대통령에겐 사사로운 길로 보지 않을 수 없다.'형' '아우'라는 코드가 아니고서는 두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당선 직후 송 시장의 언론 인터뷰 중 일부다. "저는 집도 이사하고 더 이상 (선거) 안 한다고 했다. 그런데 문재인 변호사가 찾아왔다. 만났더니 '형, 이사했다며? 다시 이사 가소' 그래서 '내는 내 맘대로 못 사나?' 하니까 '그게 운명인데 어쩝니까?' 그래서 다시 이사를 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행비서를 지낸 유 전 부시장은 문 대통령을 '재인이 형'이라고 불렀다.송 시장이 문 대통령의 '형'이 아니었다면 정권 차원의 뒷받침을 받아 시장에 당선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구속이 되고도 남을 비리를 저지른 유 전 부시장이 문 대통령의 '아우'가 아니었다면 청와대 감찰 중단을 넘어 국회 수석전문위원, 부산시 경제부시장으로 승승장구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아우'이자 '형'인 문 대통령이라는 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다.촛불로 태어났다는 정권이 국기 문란에다 민주주의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사건들에 휘말렸다는 사실 자체가 국민을 볼 면목이 없게 됐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권에서 '아우 찬스' '형님 찬스'가 횡행한 것도 가증스럽다. '권력은 측근이 원수'라는 법칙이 다시금 확인됐다.형·아우에서 촉발한, 정권을 휘청거리게 할 사건들이 줄을 이을 개연성이 크다. 정권을 장악한 586들이 형·아우로 끈끈하게 맺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사로움으로 말미암은 국가 혼란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걱정이다.

2019-12-27 18:54:00

[야고부] 정치 좀비들

[야고부] 정치 좀비들

민주주의는 그 향유자들이 지키려는 의지가 없으면 언제든 사멸한다. 가장 비극적 사례가 1933년 3월 24일, 모든 법률의 제정·개정·폐지 권한을 행정부에 일임한 '수권법'(授權法·정식 명칭은 '국가와 민족의 위기를 제거하기 위한 법')의 독일 의회 통과다. 이는 히틀러 독재의 헌법적 장애물을 깨끗이 치워버린, 독일 민주주의의 '자살'이었다.자살인 이유는 사회민주당과 이미 의원들이 체포돼 의회에 출석할 수 없었던 독일 공산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특히 나치당, 사민당, 공산당에 이은 원내 제4당인 가톨릭중앙당의 찬성은 뼈아팠다. 이 당이 반대표를 던졌다면 수권법은 통과될 수 없었다.자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수권법 통과 후 중앙당을 시작으로 모든 정당이 자진 해산했다. 사민당과 공산당은 그전에 불법화됐다. 정당들이 자발적으로 나치 일당 독재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슬프게도 정당들은 이를 편안해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치적 혼란이 야기한 민주주의에 대한 염증이 그 배경이었다.히틀러를 피해 영국으로 건너간 언론인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그 심리를 이렇게 기술한다. "이것은 매우 광범하게 퍼져 있던 감정, 민주주의에서 구원되고 해방되었다는 감정이었다. 국민 대다수가 원치 않는 민주주의란 게 대체 무엇인가? 당시 대부분의 민주주의 정치가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권좌에서 물러나자. 우리가 정치적 삶에서 물러난다. 우리가 없어져야 한다."('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문재인 정권의 공수처법 수정안을 밀실에서 합의해 준 이 땅의 군소정당의 행위도 민주주의의 자살이다. 수정안은 문 정권의 권력형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의 원천 봉쇄를 겨냥하고 있다. 이를 위해 법조계 친위 세력들이 공수처에 대거 포진하는 길을 닦아놓았다. 그리고 외부건 내부건 견제 장치는 모두 없앴다. 말 그대로 문 정권의 '정치보위부'이고 '게슈타포'이다.군소정당들은 '밥그릇' 욕심에 눈이 멀어 이에 합의해줬다. 무엇이 옳고 그르며, 무엇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모르는 '정치 좀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좀비들이 툭하면 '민주주의'와 '국민의 뜻'을 입에 올린다. 이젠 웃음도 안 나온다.

2019-12-27 06:30:00

[야고부] 키다리와 빅슈

[야고부] 키다리와 빅슈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디펜딩 챔피언 독일은 조별 리그 탈락이라는 수모를 당했다. 개막 때만 해도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에다 FIFA 랭킹 1위를 자랑하며 우승 확률이 가장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멕시코와 한국에 잇따라 패하며 독일 축구 사상 80년 만에 1라운드 탈락이라는 굴욕을 맛본 것이다.예상 밖의 결과에 독일은 발칵 뒤집혔다. 팬들은 '카잔의 치욕'에 머리를 감싸쥐었다. 여론이 들끓고 메수트 외질, 일카이 귄도안 등 몇몇 선수와 감독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터키계인 이들은 대회 직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에게 유니폼을 전달하고 인증샷을 찍는 등 돌출 행동으로 대표팀 퇴출 요구가 빗발치기도 했다. 당시 에르도안 대통령은 독일 기자 감금 등 여러 차례 외교 마찰을 빚으며 독일에서 비호감 인물로 찍힌 때문이다.영국 프리미어리그 아스날 소속인 외질에게 러시아 월드컵은 빨리 잊고 싶은 악몽이었다. 결국 그는 대표팀 유니폼을 벗었다. 그런 외질이 이번 성탄절을 앞두고 외신의 초점이 됐다. 그는 트위터에 "지난 6월 전 세계 어린이를 대상으로 1천 번의 수술을 돕겠다고 발표했는데 219번의 수술이 끝났다"고 알렸다. 그는 2014년부터 스포츠 스타와 팬 단체인 '빅슈'(Big Shoe)를 통해 국제의료 프로젝트를 후원해왔는데 즉 '키다리 아저씨'가 된 것이다.대구의 '키다리 아저씨' 성탄절 이야기도 중단되지 않았다. 그제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60대 노부부가 내민 봉투에는 2천300만원의 성금이 담겨 있었다. 그가 2012년부터 모금회에 익명으로 전달해온 성금은 모두 10억원으로 대구모금회 역대 누적 개인 기부액 중 가장 많다.앞서 9월 대구모금회에 '앞으로 5년간 1억원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한 수성구청 7급 공무원 김영익 씨의 사연도 25일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그는 대구 공무원으로는 처음 '아너 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기부자 모임) 회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이런 사례에서 보듯 세상에 대한 열린 마음과 나눔의 정신이 없다면 남을 돕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기부는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일'이라는 김영익 씨의 말은 주저하는 손길을 붙잡아 주는 힘이 된다. '빅슈'나 '키다리 아저씨'처럼 나눔을 향한 도전이다.

2019-12-26 06:30:00

[야고부] 어른 없는 대한민국

[야고부] 어른 없는 대한민국

1987년 6월 항쟁 당시 대학생들이 '6·10 규탄대회'를 마치고 경찰에 쫓겨 서울 명동성당으로 피신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가 경찰력을 투입할 것을 통보하자 김수환 추기경이 단호하게 말했다.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이오. 그다음에는 농성 중인 신부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수녀들을 만나게 될 것이오. 학생들은 수녀들 뒤에 있소. 학생들을 체포하려면 나를 밟고, 그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시오." 김 추기경의 단호한 모습에 정부는 학생들의 안전 귀가를 보장하고 경찰을 해산했다.지인들을 만날 때면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어른이 없다"는 말이다. 가정은 물론 직장·단체, 대구경북, 국가적으로 어른이 없다는 것이다. 김 추기경처럼 어둠을 밝히는 한 줄기 빛과 같은 역할을 하는 어른의 부재(不在)를 절감하는 시절이다.어른이 없는 세상이 된 데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우선 나이 든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다. 나이 든 사람들이 '꼰대'라는 비아냥을 받게 된 데엔 자초한 측면이 많다. 오죽하면 나이 든 사람들의 행태를 비꼬는 "나 때는 말이야"를 뜻하는 '라떼 이즈 어 호스'(Latte is a horse)가 유행할까.더 근본적인 문제는 어른을 인정하지 않고 만들지 않는 사회 풍토가 팽배해진 것이다. 할아버지 말씀을 귓등으로 듣고 무시하는 아버지를 지켜본 손자가 할아버지를 존경할 리가 없다. 그렇게 한 아버지가 아들로부터 존경을 받기도 어렵다.정치 지도자들의 책임도 크다. 대통령은 원로들을 청와대에 불러놓고선 그들의 얘기를 듣는 시늉만 할 뿐 국정에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당 대표들도 원로의 쓴소리를 경청하지 않는다. 대통령과 정당 대표들이 한 정파의 수장으로 머무는 한 그들은 나라의 어른이 될 수 없다.아프리카 속담에 '죽어가는 노인은 불타는 도서관과 같다'고 했다. 지금 이 나라에선 지혜의 보고인 도서관이 허망하게 불타고 있다. 세대 간에 지혜가 전해져야만 가정과 지역, 나라가 건강해지고 영속(永續)할 수 있다. 어른이 없다고 개탄만 하지 말고 어른을 만드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젊은이들은 나이 든 사람을 '꼰대'로, 나이 든 사람은 젊은이들을 '버르장머리 없는 것들'이라고 서로 비난만 해서는 나라의 미래가 너무나 암울하다.

2019-12-25 06:30:00

[야고부] 김의겸의 기부 약속

[야고부] 김의겸의 기부 약속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는 '아너 소사이어티 클럽' 회원 자격이 주어진다. 이것이 '통 크게' 나눔을 실천한 사람이 당연히 받아야 할 개인적인 명예이자 기부 문화 확산을 위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너 소사이어티클럽 회원이란 명예를 폄훼하려는 의도가 아님을 분명히 밝혀 두면서 기부를 하고 그런 명예를 얻는 것이 과연 '순수한' 기부인지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이를 위해 프랑스의 해체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기부론은 참고할 만하다. 기부가 기부이려면 기부자와 수혜자는 서로 주고받은 행위를 기부행위로 인지해서는 안 되며, 그렇지 않으면 기부는 '경제적 교환 행위'로 변질된다는 것이다.아너 소사이어티 클럽 회원에 적용하면 기부자는 수혜자에게 도움을 주는 대가로 사회적 존경이라는 반대급부를 얻는 것이 된다. 기부가 사회적 존경이 목적이 아니라 남을 돕는다는 순수한 마음의 발로였다고 해도 교환 행위이긴 마찬가지다. 너무 엄격하다.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조금 완화된 의견을 제시한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기부에서 기부자는 '주는' 주체가 되고 수혜자는 '받는' 객체의 위치에 선다. 사르트르는 이런 기부자의 '주체성'이 기부행위의 독(毒)이며 이를 제거해야 '순수한' 기부가 실현된다고 주장한다. 그 방법은 '익명 기부'이다.아너 소사이어티 클럽 회원의 기부도 순수한 기부이겠지만 '대구 키다리 아저씨' 같은 이들의 익명 기부가 '진짜로' 순수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서울 흑석동 상가 투자 차익을 기부하겠다는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약속은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 기부하겠다고 밝힌 것 자체부터 이미 '익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 출마를 앞두고 나온 약속이란 점도 순수성을 의심케 한다.곤혹스럽게도 기부 약속을 지켜도 문제다. 그는 지난 19일 총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기부처에 대해 "마음에 두고 있는 곳은 있는데 실행을 한 뒤 밝히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기부처를 밝힌다면 그 즉시 순수한 기부가 되지 않는다. 기부처를 밝히지 않으면 더 곤혹스러워진다. '말로만' 기부한 게 아니냐는 입방아를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19-12-24 06:30:00

[야고부] 이병철 동상을 보면

[야고부] 이병철 동상을 보면

'기업의 존립 기반은 국가이며 따라서 기업은 국가와 사회 발전에 공헌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지난 40년간 사업보국을 주창해왔다.' '호암 이병철 선생은…사업보국, 인재제일, 합리추구의 철학을 가진 선구자로 모든 경제인의 귀감이다.'대구의 옛 제일모직 터에는 삼성의 기업 왕국을 세운 이병철 전 회장의 동상이 있다. 동상 뒤 벽 양쪽에는 그의 생전 업적의 글을 새겨 놓았다. 앞은 1982년 4월 2일 미국 보스턴대학 박사학위 기념강연에서 따온 말이고, 뒤는 2010년 2월 12일 '호암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그를 기려 적은 글이다.나라가 망한 1910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일으켜 시작된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 삼성의 모태'가 대구임을 밝히고, '국가 민족 그리고 인류에 대하여 봉사'를 꿈꾼 그의 생각을 세상에 드러낸 현장의 증언이다. 삼성의 발상지인 대구로서는 당시 시민 뜻을 모아 동상을 세워 기릴 만했다.옛날과 달리 삼성으로는 세월이 흘러 대구의 효용 가치가 떨어지고 1세대 창업주를 지나 2세대 후계를 거쳐 3세대 손자 경영으로 바뀐 만큼 대구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은 물론 삼성 기업군의 발상지로서의 자긍심 같은 느낌도 옅을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렇더라도 대구로서는 남다르기에 동상으로 기렸을 법하다.그의 동상과 그를 읊은 글을 읽고 최근 노조와 관련된 재판부의 삼성에 대한 단죄(斷罪)를 보면 그가 생각한 '사업보국' 뒤에 가려진 숱한 일반 국민의 성원과 근로자의 피와 땀, 눈물을 새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삼성은 자본이 부족하던 시절, 고사리손으로 모은 코 묻은 용돈부터 의무적인 학생 저축 장려 등으로 쌓인 돈을 썼을 터이다. 또한 직원들은 밤잠을 설치면서까지 그와 함께 일했음이 분명하다.그의 동상 뒤 글 어디에도 이런 사연은 엿보이지 않는다. 그를 돋보이게 하는 곳인 만큼 어쩔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지난 2013년 당시 정의당 심상정 국회의원 폭로에 따른 삼성의 노조 와해 의혹에 대한 지난 17일 재판부의 '노조에 대한 반헌법적 태도' 판결은 그의 경영 철학을 되돌아보게 한다. 해고된 삼성 근로자가 서울의 철탑 위와 밑에서 농성하는 모습이 겹치는 요즘, 그의 동상과 글귀가 이리도 달리 보일까.

2019-12-22 19:02:08

[야고부] Yea or Nay

[야고부] Yea or Nay

트럼프 대통령 탄핵안이 19일 미국 하원을 통과했다. 이로써 트럼프 탄핵소추안은 내년 1월 상원으로 넘어가는데 상원에서 탄핵이 최종 결정되기 때문이다. 우리로 치면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상원이 맡는다.트럼프 탄핵에 적용된 혐의는 권력 남용과 의회 방해다. 이 중 하나라도 상원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하면 트럼프는 파면된다. 그렇지만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과 달리 상원은 공화당이 과반(100석 중 53석)을 넘어 '유죄'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미국 정치사에서 대통령 탄핵안 가결은 모두 세 차례다. 1868년 앤드루 존슨(17대·공화)과 1998년 빌 클린턴(42대·민주) 그리고 트럼프(45대·공화) 탄핵안이다. 링컨의 암살로 대통령직을 승계한 존슨은 1867년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720만달러에 사들인 일로 유명하다. 그는 에드윈 스탠튼 국방장관을 상원 동의없이 해임했다가 권한 남용으로 탄핵소추됐으나 상원 표결에서 3분의 2(총 54명 중 36명 이상)에 1명이 모자라 탄핵을 모면했다.미국 의회에서 대통령 등 고위 공직자 탄핵소추권은 하원에 있다. 반면 탄핵 심판과 결정은 상원의 권한이다. 미국 상원은 50개 주마다 2명씩 모두 100명으로 구성되는데 하원이 국민의 대표 기관이라면 상원은 주정부와 주의회를 대표한다. 상·하원이 동등하게 입법권을 갖지만 6년과 2년이라는 임기에서 보듯 기업으로 치면 하원은 이사, 상원은 대주주에 비유할 수 있다.양원제 나라 중 이름뿐인 영국 상원(House of Lords)이나 일본 참(參)의원과 달리 미국 상원은 권한이 막강하다. 미국 연방정부 예산 의결권을 비롯해 파병 동의, 외교 조약 승인, 870명의 연방판사 인준권은 상원의 권한이다.트럼프 탄핵안이 가결되자 언론은 미국의 분열을 크게 걱정한다. 탄핵이 무산되더라도 정치사회 전반에 걸쳐 후유증이 클 것이라는 여론 때문이다. 미국의 현 상황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것은 2년 앞서 우리도 탄핵 정국을 경험해서다. 'Yea'(Yes)와 'Nay'(No)를 사이에 둔 여론의 갈림이 팽팽할수록 국민 감정과 국론의 치유와 회복은 더딜 수밖에 없다.

2019-12-20 18:55:26

[야고부] 대통령의 망상(妄想)

[야고부] 대통령의 망상(妄想)

1. 실업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도 일하지 않는다. 2. 누구도 일하지 않는다. 하지만 경제계획은 실현되어 있다. 3. 경제계획은 실현되어 있다. 하지만 가게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4. 살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어디를 가든 줄이 늘어서 있다. 5.어디를 가든 줄이 늘어서 있다. 하지만 우리는 풍요의 문턱에 서 있다. 6. 우리는 풍요의 문턱에 서 있다. 하지만 모두가 불만족하고 있다. 7. 모두가 불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모두 '찬성!'이라고 투표한다.브레즈네프 집권기인 1970년대에 소련 인민들이 정부의 경제 성과 선전을 비웃으며 낄낄댄 '소련 사회의 일곱 가지 기적'이란 농담이다. 이런 농담이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소련 경제는 피폐할 대로 피폐했다. "사회주의가 성공적으로 창조됐으며 이제 필요한 것은 그 성과를 굳히는 것뿐"이라고 한 브레즈네프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그래서 개혁을 시도했다. 당시 총리인 알렉세이 코시긴의 이름을 딴 '코시긴 개혁안'으로, 기업인에게 더 큰 자유를 허용하고 시장 메커니즘을 더 많이 활용해 생산을 촉진한다는 것이었다. 그 전제는 '계획경제의 틀 안에서'였다. 처절하게 실패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다. 계획경제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이다.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도 마찬가지였다. 계획경제에 시장 메커니즘을 도입해 생산을 촉진하고 소비자의 수요를 충족시킨다는 것이었다. 알다시피 망상(妄想)이었다. 계획경제라는 문제 자체는 그대로 뒀기 때문이다. 시장 요소를 도입하자 소련 체제는 '개혁'이 아니라 붕괴해버렸다. 고르바초프는 훗날 "페레스트로이카의 전 과정을 내가 의도한 틀 내에서 관리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웠다"고 했는데 그럴 만했다.그저 그렇고 그런 경력의 정세균 전 국회의장을 총리로 기용해 경제를 살린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 역시 '망상'으로 끝날 것이다. 경제를 살리려면 문 대통령부터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소주성'은 한 번도 현실에서 검증되지 않은 '책상물림'의 공상일 뿐이다. 바닥을 뚫고 지하실로 추락하는 우리 경제의 현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소주성'의 틀 내에서 경제 살리기는 한마디로 '헛소리'이다.

2019-12-20 06:30:00

[야고부] 올해의 인물 조국

[야고부] 올해의 인물 조국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올해의 인물'로 스웨덴의 16세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를 선정했다. 1927년 올해의 인물로 처음 선정된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25) 이후 최연소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툰베리 선정을 두고 "아주 웃기는 일"이라며 막말을 했지만 선정 이유를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의 유일한 고향인 지구에 대한 인류의 포악한 행위를 경고했고, 분열된 세계를 향해 배경과 경계를 초월한 목소리를 냈으며, 그리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새로운 세대의 리더는 어떠한 모습일지 보여줬다."곳곳에서 올해의 인물을 앞다퉈 선정하는 것을 보면서 한 해가 저물었음을 실감한다. 82년생 김지영, 방탄소년단, 축구선수 손흥민, 영화감독 봉준호 등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거나 물망에 오르고 있다.필자의 견해로는 올해의 인물은 단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아닐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트위터 분석 결과 정치 분야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인물 키워드는 조 전 장관이었다. 작년 1위였던 문재인 대통령을 2위로 밀어냈다. '문재인 위에 조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조 전 장관의 올 한 해는 '모든 것을 얻으려 했으나 모든 것을 잃었다'로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죽창가'를 부르짖으며 일본과의 경제 전쟁 선봉에 섰고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 이후 가족을 둘러싼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단시간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사가 됐다. 장관 한 사람의 사퇴 여부를 두고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는 등 나라가 둘로 쫙 갈라졌다. 우여곡절 끝에 장관에서 물러났지만 그는 여전히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일가 비리에 이어 청와대 감찰 무마 의혹, 울산시장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 등과 관련해 검찰 수사 선상에 올라 있다.지금의 조 전 장관을 보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로스가 떠올랐다.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붙인 이카로스는 태양 가까이 날아올랐다가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아 바다에 떨어져 죽었다. 조 전 장관은 트위터 등 왕성한 SNS 활동에 힘입어 하늘로 비상했으나 결국 자신이 쏟아낸 수많은 글로 인해 추락하고 말았다. 대한민국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와 풀기 어려운 과제를 남긴 점에서 조 전 장관은 2019년 올해의 인물로 손색이 없다.

2019-12-19 06:30:00

[야고부] 청어 과메기

[야고부] 청어 과메기

'푸른 동해를 누비던 청어 떼도/ 북해도를 헤엄치던 꽁치 떼도/ 과메기가 되려면 구룡포에 와야 합니다/ 구룡포 투명한 겨울 해풍에/ 얼었다 녹았다/ 며칠을 덕장에서 참고 또 참아야 합니다/….' 매일신문 신춘문예 출신인 김현욱 시인은 '과메기'란 시에서 매운 바닷바람에 과메기의 붉은 속살이 꼬들꼬들 여물어가는 구룡포의 겨울 풍경을 담았다.미국의 해양저술가 마크 쿨란스키는 '세상을 바꾼 물고기'란 책에서 유럽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물고기로 대구를 꼽았지만, 청어 또한 강력한 경쟁력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특히 통조림과 냉동식품이 등장하기 전에는 소금에 절인 청어가 정말 중요했다고 한다. 염장 생선 수요가 폭증하면서 발트해 연안 도시들이 상업적 목적으로 결성한 한자동맹을 출범시키는 동력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 소금과 청어는 그만큼 큰 돈벌이 수단이었다.청어가 북해로 대거 이동하는 15세기에는 네덜란드가 급부상했다. 내장을 빼고 간수에 절여 오래 저장할 수 있는 염장 기술을 개발한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청어는 금 노다지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암스테르담을 한때 '청어의 도시'라 했다. 지금도 초절임 청어의 전통이 음식문화에 남아 있다. 청어를 잡기 위해 낯선 해역으로 나가던 개척 정신은 네덜란드를 해양국가로 발전시켰다.임진왜란 때 구국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는 청어를 잡아 군량미와 바꾸는 대목이 나온다. 청어가 물물교환의 중심이던 쌀과 바꿀 정도로 환전 가치가 있었다는 증거이다. 기름기가 넉넉해 맛이 좋은 데다 많이 잡혔던 청어야말로 단백질의 보급원으로 조선 수군 연전연승의 원동력이었다. 일제강점기까지는 청어가 상당히 많이 잡혔다. 동해가 '물 반 청어 반'이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그 청어를 잡아다 말려서 과메기를 만들었다. '과메기'란 말은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등장하는 '관목어'(貫目魚)에서 유래한다. 청어의 눈을 꼬챙이로 꿰어 말린 데서 나온 말이다. 청어 어획량이 늘어나면서 올겨울은 그동안의 '꽁치 과메기' 대세를 역전시킬 전망이다. 출렁이는 구룡포 파도를 권주가 삼아 원조 '청어 과메기' 안주로 소주 한잔이 맛깔스럽게 떠오르는 계절이다.

2019-12-18 06:30:00

[야고부] 정치 세습

[야고부] 정치 세습

16세기 이후 1795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국의 와해로 '귀족 공화국'이 멸망할 때까지 유럽에서 귀족이 가장 많은 나라는 폴란드였다. 귀족이 전체 인구의 10%를 넘었다는 비공식 통계도 있다. 중세 유럽의 귀족 비율은 프랑스가 약 1%, 스웨덴 약 0.5%, 독일이 약 0.01% 정도였다. 18세기 유럽 전체 인구에서 귀족 비중이 약 1.5~2.3%인 것과도 대조를 이룬다.특히 귀족으로 구성된 폴란드 의회 '세임'(sejm)은 모든 권력을 쥐고 행사했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선거를 통해 국왕을 뽑고 외국인을 왕좌에 앉힐 정도로 귀족이 전권을 휘둘렀다. 폴란드 귀족은 자기 이익을 위해 다른 국가의 왕족을 폴란드 국왕으로 뽑아 '허수아비 군주'로 만들고 권력을 독점했다. 이런 구조는 '로마 황제 43%는 세습 황제가 아니라 갑자기 권좌에 오른 인물'이었다는 점과도 맥이 닿는다.현대 일본의 정치 구조도 폴란드와 닮았다. 패전 이후 일본은 화족(華族) 제도를 폐지했지만 '정치 귀족'은 갈수록 늘고 있다. 지역구를 아들에게 세습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총리에서부터 장관, 각 정당 요직 인사 상당수가 '세습 정치인'이다. 자민당뿐 아니라 군소정당에도 세습 정치인이 많다. '파벌'과 '세습'이 일본 정치를 좌지우지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2017년 일본 중의원 선거 결과 전체 의원 정수 465명 중 26%인 120명이 세습의원으로 나타났다. 열에 셋이 '금수저 정치인'인 셈인데 증조부-조부-아버지-아들 등 몇 대에 걸쳐 권력을 대물림하는 사례도 있다. 영국 하원의 세습의원이 10%가량인 점과 비교해도 일본 사례는 특이한데 지명도와 조직, 자금을 모두 물려받아 애초 '흙수저'와는 출발선이 다르다는 점에서 비판적 여론이 높다.요즘 문희상 국회의장의 '지역구 부자 세습' 문제가 관심사다. 서점을 운영 중인 문석균 씨는 현재 더불어민주당 의정부갑 지역위원회 상임부위원장으로 내년 총선을 준비 중이다. '아들 공천' 비판과 경선 과정을 넘어 당선된다면 현역 의원 아버지로부터 아들이 지역구를 바로 물려받는 사례가 된다. 여당 내에서도 '부적절한 대물림'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이고 보면 요즘 여당이 국민 눈치조차 보지 않고 막간다는 생각이 든다.

2019-12-16 19:52:17

[야고부] 홀씨 가족

[야고부] 홀씨 가족

'구개열 파열 수술 총 70명, 어린이들 발 내반증 외반증 총 10명, 피부 이식, 의족 및 특별한 수술 총 5명, 발목 절단 총 5명 수술, 의족·수족 해드릴 수 있었기에 감사드립니다.'서아프리카 '상아 해안'으로 알려진, 옛 프랑스 식민지 코트디부아르(영어로 아이보리 코스트)에서 활동 중인 박달분 프란체스카 수녀에게서 온 글이다. 안동이 본부인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 소속으로 파견된 박 수녀의 사연은 최근 나온 수녀회 해외 선교 소식지 '홀씨 되어'의 2019년 겨울호에 실려 알려졌다.복음 전파와 함께 의료 지원 활동을 펴는 그의 글은 올 1, 2월 현지 자원봉사에 나선 이춘자 아녜스 수녀 등에 대한 감사 표시였다. 이 수녀가 봉사하며 겪은, 가난으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힘든 아이, 젊은이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려 그들의 후원에 나선 많은 사람의 정성을 모아 보낸 성금으로 두루 혜택을 입어서다.일흔 넘은 노구를 이끌고 자원 봉사에 나선 이 수녀의 용기도 예사롭지 않지만 가뜩이나 어려운 사정에도 힘든 나라 밖 사람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성금을 모아 이 수녀의 도움 호소에 선뜻 응한 사람들, 특히 대구경북인의 마음은 돋보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격려의 말 한 마디에서 몇만원, 몇백만원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마음이 모여 여러 가지 고통을 덜 수 있었으니 말이다.서아프리카 기니만의 평화롭던 고을 원주민과 상아, 향료, 곡물 등 풍부한 자원을 마구 약탈했던 서구 제국주의 식민지의 하나였던 상아 해안. 그곳에서 옛 식민지의 아픔을 겪은 한국의 박 수녀 등 여러 성직자의 인류애적 헌신과 그들을 도와 우리 고유 정신인 홍익(弘益)의 가치를 널리 퍼뜨린 대구경북 후원자의 아름다운 마음은 반길 만하다.이런 대구경북인의 마음은 이 수녀의 '홀씨 가족을 위하여'라는 소식지 글이 대신하는 듯하다. '콩 반쪽 나누어 먹고/ 없는 집 제삿밥이라도 이웃에/ 돌리며/ 겨울 까치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두는/ 우리 조상들의 나눔은/ 예수님의 사랑 실천이었네.'세밑에 전해온 박 수녀의 소식과 먼 서아프리카 낯선 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나눈 모든 '은인'에게 보내는 이 수녀의 간절한 기도가 와 닿는 12월이다. '새해에는/ 은인들을 축복하소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사랑으로 감싸/ 주소서.'

2019-12-16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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