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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연탄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의 이 짧은 시구는 이기주의가 팽배한 우리 사회에 죽비와 같은 일갈이었다. 온 몸뚱이를 불태워 한겨울 아랫목에 따끈한 온기를 전하고는 하얀 재로 전락하는 연탄. 땅바닥에 나뒹구는 신세가 되고서도 빙판길 미끄럼방지용 가루로 흩어지며 마지막 봉사를 하고 사라지는 연탄재.누구나 하찮게 여겼던 연탄재에 이렇게 뜨거운 의미를 부여하며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시인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았다. 어쩌면 연탄재는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사위어 가는 부모의 모습과도 같은 것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연탄 없는 겨울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집집마다 연탄불 관리가 중요한 일상사였다. 연탄불을 꺼트리지 않기 위해 새벽에도 일어나 새 것으로 갈아 넣어야 했다.우리나라에서 연탄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의 와중이었다. 부산에 몰려든 피란민들이 석탄과 물을 섞어 만든 수타식 연탄이 전국으로 확산됐다. 그 후 태백선 철도 개통으로 석탄 생산·공급이 급증했고, 가정용 아궁이 개조도 뒤따랐다. 1970년대 산림녹화 정책 시행과 함께 농촌 지역 연탄 보급과 연탄 온수보일러 개발로 연탄 사용량은 절정을 이뤘다.연탄의 안정적인 공급과 비축은 겨울철 정부의 핵심 과제였다. 쏟아져 나오는 연탄재는 택지 조성을 위한 매립 용도로 활용했다. 그러나 연탄가스는 골칫거리였다. 겨울철 연탄가스 중독 사고로 일가족이 목숨을 잃는가 하면, 농촌에서 올라온 하숙생들도 많이 희생되었다. 한 해에 1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유명을 달리하기도 했다.지금도 연탄이 따뜻한 온기의 원천으로 남은 곳이 있다. 저소득층과 노인 가구 등 소외계층에게 특히 그렇다. 밥상공동체·대구연탄은행이 '따스한 온기를 나눠요'란 연탄나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주변에 추위에 떨고 있는 이들이 없는지 한 번쯤 되돌아보게 되는 연말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연탄이 올겨울 우리에게 묻는다. 그 누구를 위해 '한 번이라도 뜨거워 본 적이 있느냐'고….

2019-12-06 19:37:09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북한 통일부 장관'

당연한 소리지만 외교·안보 분야의 고위 공직자는 상대국과 '화'(和)해야지 '동'(同)하면 안 된다. 상대국의 정책과 여론, 국민 정서 등을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해야지 그들을 무조건 옹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당위성을 거스른 대표적 인물이 태평양전쟁 직전 주(駐)일본 미국대사였던 조지프 그루다.그루는 일본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호의적으로 바라봤다. 이런 호감은 그의 대사 활동에 그대로 연결돼 일본 제국주의 팽창 저지라는 본국의 일본 정책과 엇나가게 했다. 태평양전쟁 발발 전 전쟁을 피하기 위한 미·일 외교 교섭에서 그는 항상 일본 편을 들었다. 거칠게 말해 중국 침략과 베트남 점령 등 일본이 만든 '현상'을 인정해달라는 일본의 요구를 큰 틀에서 들어주는 것이 전쟁을 막는 길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이런 일본 편향은 태평양전쟁 종전 방식을 논의하는 과정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일본에 명예로운 항복을 제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명예로운'의 내용은 천황제 유지였다. 이런 주장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선언문 초안에 반영됐으나 트루먼 대통령의 승인 직전 당시 국무장관 제임스 F. 번스의 이의 제기로 삭제됐다.만약 그루의 주장대로 됐으면 어떻게 됐을까. 항복 후 일본이 메이지 헌법을 폐기하고 정치제도를 민주화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란 게 일본 근·현대사에 정통한 미국 역사학자 허버트 빅스의 진단이다. 그러면서 빅스는 그루와 국무부 내 그 동조자들의 일본 편향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일본이라는 국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군주제의 사회적 기반이 와해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는 것이다.(히로히토 평전)문재인 정권의 김연철 통일부 장관도 그루에 비견할 만하다. 남한보다는 북한 입장에 충실하다. 최근 한 토론회에서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억지력 강화'라고 '해설'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말대로라면 북한은 남한의 공격을 '억지'하려고 미사일을 펑펑 쏘아댄다는 것이 된다. 2년 전에 쓴 칼럼에서도 북한의 핵개발이 한국과 미국의 힘 과시의 결과라고 했다. 핵개발과 미사일 도발에 대한 북한의 주장이 바로 이렇다. 이쯤 되면 '북한 통일부 장관'이라는 호칭이 더 어울릴 듯하다.

2019-12-06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서민 증세

매년 이맘때면 직장인들은 지난 1년의 근로소득 등 각종 소득과 지출, 세금 등을 따져보는 연말정산 준비를 서두르게 된다. 기업의 회계연도처럼 연말정산은 한 개인의 가계(家計)연도라고 할 수 있는데 '13월의 월급'으로 불리는 연말정산 기준이 12월 말이기 때문이다.현금영수증과 신용카드 사용액, 병원비, 학원비, 월세 심지어 도서구입비까지 관련 증빙 서류를 얼마나 꼼꼼하게 챙기느냐에 따라 돌려받는 세금 액수가 달라진다. 물론 소득 규모나 가계지출 구조가 연말정산 결과를 좌우하지만 노력 여하에 따라 그만큼 절세가 가능하다.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은 21.2%다. 이 수치는 가계소득의 5분의 1이 세금이라는 의미다. 국세와 지방세를 합한 총세입(377조9천억원)을 국내총생산(1천782조2천689억원)으로 나눈 값인데 2018년 조세부담률 21.2%는 사상 최대다. 덴마크(45.9%)나 스웨덴(34.3%) 등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매년 우리의 부담률이 증가하는 추세라는 점에서 연말정산을 통한 절세는 가계 부담을 줄이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유호림 강남대 교수와 이데일리가 최근 국세통계연보(2008~2018년)에 실린 세수 실적을 분석했더니 직장인 근로소득세 납세액이 지난 10년 새 두 배 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납세액의 증가는 근로소득자 증가와 소득 향상, 연말정산 감면 축소 등의 영향으로 풀이되는데 납세 증가율로 보면 지난해 경제성장률 2.7%의 3.4배에 이른다.특히 2008년 15조6천억원 규모이던 근로소득세는 2018년 39조546억원으로 무려 149.9% 늘었다. 세계금융위기 때인 2009년을 제외하면 근로소득세 수입이 매년 가파르게 증가했다. 여기에 담뱃세가 132.3%, 유류세인 교통·에너지·환경세 수입이 28.8% 증가했고, 부가가치세도 59.8%나 늘었다.반면 금융소득세는 3천230억원(6.9%) 증가하는데 그쳤고, 종합부동산세는 오히려 2천571억원(12.1%) 줄었다. 이른바 '서민 증세'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근로소득세와 간접세 수입의 빠른 증가는 자산 배분 양극화나 조세 부담의 형평성 등 논란을 부를 수밖에 없다. 보통 사람도 함께 윤택해지는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2019-12-05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77인의 '우동사리'

'과학을 두드려라!'대구경북여성과학기술인 가운데 생활과학에 관심 있는 여성 8명이 2010년 모여 어린이가 어려워하는 과학을 알기 쉽게 이해하기 위해 만든 122쪽짜리 책이다. 대구경북 어린이 대상으로 과학 전파를 위해 펴낸 과학잡지 즉 '사이진'(sciezine)인 셈이다.필진은 지난 2011년부터 구미과학관장으로 일하는 백옥경 당시 잡지 책임 운영자와 대구의 대학교 생활과학 강사, 의대 연구원, 대학원생이던 여성으로 대구경북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에서 실시한 전문 교육과정(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SC)을 마친 수료자였다.책에는 먼저 여러 거미의 삶과 일생, 꿈속에서 거미가 된 딸 이야기 등을 다룬 백 관장의 '거미가 된 아이'라는 소설이 등장한다. 이어 쇠 이야기를 담은 '보물을 찾아 떠나는 신나는 철의 여행'(홍경미), 별과 우주 탄생을 다룬 '별도 태어나고 죽어요'(서정선)가 소개된다.또 원자력에 대한 '송 샘, 원자력의 비밀을 파헤치다'(송영주), 음식으로 지구온난화를 살핀 '엄마가 들려주는 햄버거 이야기'(박진희), 녹색 성장을 다룬 '은 목걸이의 비밀'(김효정), 자연에서 인간이 배우는 '생체모방'(조현실), 치타라는 동물로 진화론을 알아보는 '치타의 진화 이야기'(이정주)가 나온다.모두 어린이 눈높이에 맞게 그림과 사진도 곁들여 알기 쉽게 과학을 풀이했다. 첫 발간 이후 발간이 중단돼 아쉬움을 남겼다. 그런데 지난 10월 28일 구미고등학교 학생들이 글 쓰고 그림까지 그린 어린이 과학 동화집 18권을 만들어 전국 초교와 도서관에 전달해 관심을 끌고 있다.77명 학생이 지난 3월부터 9개월 동안 작업한 '우동사리'(우리가 만든 동화책으로 사이언스를 전하리)의 결과물이다. 18권짜리 동화집은 땅과 하늘, 사람과 동물 등 다양한 주제를 갖고 이야기를 구성해 재미를 더하고 있다. 또한 전체 30여 쪽에 불과해 지루하지 않게 배려했다.지난 2010년 과학중점학교로 지정받아 이번에 동화책을 낸 77명의 우동사리에 이어 구미고가 내년에는 과학 내용의 현대음악을 만들 계획이라니 벌써 기대된다. 게다가 지난해는 과학 창작 연극을 만들어 무대에 올렸다니 더욱 그렇다. 구미고의 '우동사리', '사이진'과 달리 중단없이 쭉 이어지길 응원한다.

2019-12-04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동포를 외면한 죄

독일 통일은 서독이 동독을 돈으로 사버린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통일 전까지 서독에서 동독으로 흘러간 돈은 말 그대로 천문학적 규모다. 통일될 때까지 40년간 무역 이외에 서독 정부가 동독에 지급한 공적 보조금과 서독 주민이 동독의 가족에게 보낸 돈과 현물 등 사적 보조금은 모두 750억∼1천억마르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얄타에서 베를린까지' 윌리엄 스마이저)여기에는 '프라이카우프'(Freikauf)에 쓴 34억6천400만마르크도 포함된다. 프라이카우프는 '자유를 산다'는 의미로, 돈을 주고 동독 내 정치범을 서독으로 데려오는 프로젝트이다. 1962년 독일개신교연합회가 옥수수, 석탄 등 트럭 3대분의 현물을 몸값으로 주고 동독에 수감된 성직자 150명을 서독으로 데려온 것이 그 시작이었다.이에 서독 정부도 1963년 동독의 '매수'에 나서 현금 32만마르크를 주고 정치범 8명과 서독에 부모가 있는 어린이 20명을 서독으로 데려왔다. 이렇게 시작한 프라이카우프는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 직전까지 동독 정치범 33만755명과 그 가족 25만여 명을 서독으로 데려왔다.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서독에서는 우파인 기독교민주연합과 좌파인 사회민주당이 번갈아 집권하면서 6명의 총리가 나왔지만 아무도 이를 중단하지 않았다. 좌우를 막론하고 곤경에 처한 동포를 구한다는 따뜻한 동포애가 살아 있었던 것이다.한국의 좌파 정부는 이런 동포애가 없다. 오히려 북한 눈치를 살피느라 탈북민의 곤경을 외면한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 모두 그렇다. 지난달 한국으로 오려던 탈북민 14명이 베트남에서 체포돼 중국으로 추방될 위기에 처했다. 북한 인권단체가 정부에 도움을 청했지만 '기다리라'고만 했을 뿐이다. 이런 사실이 드러나자 이제 와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나자빠진다.지난 4월에도 똑같았다. 한국으로 오려던 탈북민 3명이 베트남에서 체포됐을 때 외교부가 이들이 한국인이라는 전화 한 통만 했으면 이들은 중국으로 추방되지 않았다. 북한 인권단체가 이들을 체포한 베트남 부대 지휘관의 전화번호까지 전달했지만 외교부는 꼼짝도 않았다. 이들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은 것이다. 그 죄가 참으로 무겁다.

2019-12-02 19:55:49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더부살이 동물

반려동물 인구 1천만 명 시대라고 한다. 국내 전체 2천만 가구 중 대략 25%인 500만 가구가 각종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는 조사 결과다. 한 민간 연구소가 조사해보니 대표적인 반려동물인 개의 양육 비중이 약 75%로 가장 많고 고양이가 30%, 열대어 등 어류가 약 11%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1천만 명 시대'가 말해주듯 반려동물의 개체수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고 좀체 접하기 힘든 희귀 동물까지 그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사람의 영역 가까이에서 더부살이하는 동물도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 비둘기나 까치, 까마귀, 멧돼지 등은 우리 생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생동물이다. 인간의 손길에서 벗어난 길고양이나 들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문제는 야생동물 개체수가 크게 늘면서 사람을 해치거나 각종 시설과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는 점이다. 매년 피해 사례가 늘고 있는 '멧돼지' 문제가 대표적이다. 도심 외곽이나 농촌지역의 경우 고압 전류가 흐르는 펜스나 미끼를 넣은 대형 포획 틀을 설치하는 사례도 부쩍 늘고 있다는 보도다.송전선에 피해를 주고 단전을 야기하는 까치에 이어 요즘에는 까마귀도 큰 골칫거리다. 울산과 제주도 등에서는 까마귀로 인한 피해가 커지자 지방자치단체마다 퇴치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비둘기 배설물 피해가 큰 유럽의 도시들은 그물망 포(砲)까지 동원해 비둘기 포획에 나서는 등 유해 조수 문제가 이제 지구촌 공통의 관심사가 됐다.최근 경북대 본교 캠퍼스에 서식하는 수많은 비둘기 때문에 불편이 커지자 대학 측에서 '참매'를 방사해 화제다. 천연기념물인 참매는 청둥오리·멧비둘기 등을 먹이로 하는 맹금류로 대학 구내에 모습을 드러낸 참매에 비둘기가 쫓겨가는 보기 드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물론 참매를 동원한 것은 야생 조수 피해를 줄이려는 적극적인 대응책의 하나이지만 그 효과나 지속성에서는 회의적이다. 평소 야생 조수의 개체수를 줄이기 위해 먹이 공급을 조절하는 등 근원적인 대책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자연 생태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일시적인 대책으로는 효과를 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지금부터 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키워나갈 필요가 있다.

2019-12-02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선거 독재

선거는 민주주의 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공산 독재국가에서도 선거는 한다. 정부가 지정한 1인에 대한 찬반투표가 그런 것이다. 그러나 이는 독재체제에 민주적 정당성이란 외피를 씌우기 위한 사기(詐欺)일 뿐이다. 이를 '선거 독재'라고 부를 수 있겠다.이렇게 노골적이지 않고 좀 더 세련된 선거 독재도 있다. 다당제를 허용하면서도 공산당 지배에는 전혀 손상이 가지 않는 방식으로, 구 동독이 좋은 예다. 1963년 동독은 인민의회 의석을 재배분했다. 지배 세력인 독일사회주의통합당은 100석에서 110석, 사통당 2중대인 대중조직 대표체는 110석에서 144석으로 각각 늘리고 자유민주당 등 3개 비공산주의 정당은 이전과 똑같이 각각 45석을 배정했다. 범(汎)공산당이 비공산당을 압도하도록 '제도화'한 것이다.공산국가 출현 이전에도 선거 독재는 있었다. 재산 규모에 따라 투표권을 불균등 배분하는 것이다. 재산이 많은 극소수의 첫 번째 계급과 이들보다 재산은 적고 수는 더 많은 두 번째 계급, 재산이 거의 없는 대다수의 세 번째 계급이 각각 동일한 수의 대표를 갖는 프로이센의 '3계급 투표제'가 대표적이다.이는 과두(寡頭) 지배 체제의 유지가 목적으로, 당연하지만 극단적인 정치적 차별을 낳았다. 1913년 선거에서 지지율 17%인 보수당은 50% 의석을 차지했지만 28%의 지지를 받은 사민당의 의석은 2%에 불과했다.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하려는 선거법 개정안도 '선거 독재'를 겨냥하고 있다. 명분은 사표(死票) 방지이지만 속셈은 범여권 군소정당을 장기 집권을 위한 들러리로 세우는 것이다. 그 미끼가 비례대표 의석수 증가이다. 어떻게 조정하든 지금보다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대표를 늘리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군소정당 특히 정의당은 어쨌든 득을 본다.정의당이 28일 선거법 개정안 원안보다 지역구를 약간 늘리고 비례대표를 줄이는 수정안을 제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의석수 욕심에 선거 독재 구축에 합세하려는 그 모습이 참으로 역겹다. 이러니 '정의당'에는 '정의'가 없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 아니겠나.

2019-11-29 19:54:27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소환되는 새마을운동

"임자, 잠깐 기차를 세워! 내가 뭐 좀 봐야겠어. 뒤쪽으로 후진시켜. 여기가 어디야?" "청도군 신도리라는 곳입니다."1969년 8월 4일. 기습 폭우로 전국 농촌이 신음하던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전용열차로 경부선을 타고 청도를 지나 홍수 피해가 컸던 경남지역을 둘러보러 가던 길이었다. 그런데 창밖에 비친 농촌 모습이 어딘가 달랐다. 수행원들이 둘러본 마을은 청도읍 신도리였다.마을 주민들이 무너진 제방을 복구하고 동네 안길을 고치고 있었다. 마을 뒷산은 산림이 우거졌고, 집은 개량된 지붕으로 말끔히 단장됐다. 마을 안길도 비좁지 않아 우마차가 시원스레 지날 정도였다. 흔히 보는 그런 농촌이 아니었다. 주민들이 전한 그 비결은 '주민 스스로' 총회를 거쳐 마을을 가꾼 데 있었다.이어 1970년 4월 22일. 한해(旱害)대책 전국 지방장관회의가 열렸다. 박 전 대통령은 '새마을가꾸기 사업'을 제안했다. '5천년 묵은 가난을 몰아내도록'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이렇게 '새마을가꾸기'로 모습을 드러냈다. 청도군이 지난 5월 펴낸 책 '청도사람들의 새마을운동'에는 이런 일화와 새마을운동에 앞장선 40명의 지도자·주민·출향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새마을운동 발상지'를 자부하는 청도로선 책을 펴낼 만큼 자랑스러울 터이다.우리 역사 속 새마을운동은 나라 밖에 수출도 됐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찬밥 신세였다. 박정희·근혜 전 대통령 부녀의 흔적이 어린 탓이었으리라. 홀대의 새마을운동은 그러나 지난 2017년 11월 문재인 대통령의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 정상회의 방문으로 대접받았다. 그나마 이들 나라의 남다른 새마을운동 평가 덕분이긴 하지만 말이다.그리고 부산에서 25~27일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새마을운동이 다시 소환됐다. 문 대통령이 27일 아세안 10개국 중 베트남·태국 등 메콩강 인접 5개국 정상회의에서 "새마을운동을 전파한 농촌개발사업 등도 전개할 것"이라며 새마을운동을 끄집어내서다.비록 나라 밖에서 인정받아 다시 나라 안으로 소환되기에 이르렀으나 어찌 반갑지 않을 수 있겠는가. 늦었지만 새마을운동의 끊임없는 소환으로, 나라 밖으로 훨훨 널리 퍼지길 기대하면 헛된 꿈일까.

2019-11-29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가야(伽倻)문명과 아리랑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만약에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아직 임금이 없던 가락국의 추장 9명이 구지봉에 백성들을 모아놓고 이 노래(龜旨歌)를 부르니 하늘에서 6개의 황금알이 내려와 귀공자로 변했는데 그들이 각각 6가야의 왕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큰 알에서 나온 사람이 수로왕이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전하는 난생설화이다.어떤 학자는 이 난생설화에서 우리 겨레의 대표적인 민요인 '아리랑'의 유래를 찾기도 한다. 아리랑의 어원 중 '아리'가 알(卵)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이다. 고대의 난생설화에서 '알'은 태양을 상징하며 우두머리를 나타낸다. 알은 신성하고 거룩한 것이다. '아리랑'을 '왕이랑'으로 해석하고, '아라리요'를 '아프다'는 우리 옛말 '알흐리요'와 연계하는 근거로 삼는 것이다.따라서 '아리랑 아라리요'는 '왕과 함께 앓으리요'란 뜻으로 왕과 민중의 하나됨을 의미한다. 제정일치였던 고대에는 나라의 흥망이 구성원인 민중의 생사를 가름했다. 유랑 민족의 심리적 격동과 승화된 한(恨)의 집단 반응이 아리랑을 낳았을 것이라는 학설이다. 가야 제국의 멸망 또한 그랬을 것이다. 기원 전후에서 6C에 이를 무렵, 한반도 남쪽 낙동강 일대에 번성했던 가야 연맹 왕국은 신라에 병합되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고분군 발굴과 함께 그 실체가 드러나면서 가야의 재조명이 본격화된 것은 불과 30여 년 전이다. 2010년에는 드라마 '김수로왕'이 등장하고, 학계의 연구와 출판도 잇따랐다. 동아시아 고대사의 미스터리를 간직한 '철의 제국'이 '잃어버린 왕국'에서 '제4의 제국'으로 부상할 태세이다. '철의 강국' '해상교역 대국' '다문화 문명국'으로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이다.가야 문화권 시장·군수협의회가 가야의 역사·문화 복원을 위한 국회의 특별법 통과를 재촉하는 가운데, 12월부터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야본성-칼(劒)과 현(絃)' 특별전을 개최한다. 상당수 가야 고분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기다리고 있다. 벼농사와 토기 제작 그리고 철기문명과 가야금으로 한반도 역사와 일본 문화에 깊게 스며든 가야인의 아리랑을 새삼 주목한다.

2019-11-28 06:30:00

[관풍루]대구 상용근로자, 전국 특별·광역시 7곳 중 가장 오래 일하고 월급은 가장 적게 받아.

○…대구 상용근로자, 전국 특별·광역시 7곳 중 가장 오래 일하고 월급은 가장 적게 받아. 많은 젊은이들이 버리고 떠날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민주당 홍의락 의원, 한국당내 TK다선 의원 물갈이론에 '장기판의 졸' 키운다 비판. 다선 중 열심인 의원 찾기 어렵고 초선 중 열심인 의원 많은 것은 어찌 설명하오.○…올들어 조세·준조세 부담 증가로 가계소득 증가가 가계부채 증가 속도 못미쳐. 파이 키울 생각은 않고 있는 파이 잘게 쪼게 나누는 소득주도성장의 그늘.

2019-11-28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이순신, 회초리 들다

이순신 장군을 뵐 면목이 없어지고 말았다. '열두 척의 배'를 들먹이고 '거북선횟집'에서 오찬을 하며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큰소리가 빈말이 됐다. 나라를 뒤흔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 소동으로 잃어버린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일본엔 타격도 못 줬고 한·미 동맹만 균열이 갔다. 국론 분열에다 국민 자존심에도 금이 갔다.바둑·장기에서도 몇 수 앞을 내다봐야 승산이 있다. 하물며 국가 간 분쟁에서는 몇십 수 앞을 내다보는 혜안(慧眼)과 전략이 있더라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일본에 대한 보복 카드로 지소미아 파기를 들고나왔던 문 대통령과 청와대·정부는 한 수 앞도 내다보지 못했다. 애초부터 '다시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지소미아를 한·일 간 단순한 협정 정도로 오판(誤判)한 문 대통령과 청와대·정부 잘못이 크다. 지소미아는 한·미·일 동맹을 지탱하는 축이자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틀 가운데 하나다. 미국이 한국을 상대로 전방위 압박에 나선 것도 지소미아 파기가 3국 동맹을 허물어뜨리기 때문이다. 수출 규제를 한 일본에 대한 맞불 조치로 지소미아 종료를 꺼내 들었던 문재인 정권은 지소미아 의미를 잘 몰랐거나 알고도 무시했을 것이다. "지소미아는 한·미 동맹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청와대는 참으로 무지했다. '죽창가'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파기 이후 몰려올 후폭풍이 보일 리 만무했다.'손자병법'에 '선승구전'(先勝求戰)이란 말이 있다. 미리 이겨 놓고 싸운다는 말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23번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전과를 올린 핵심 전략이 선승구전이다. 이미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모두 만들어 놓고 전투에 나선 덕분에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할 수 있었다.지소미아 종료가 유예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한 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채 나라를 이리저리 끌고 가는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 탓에 국민은 불안하다. 지소미아 파기 소동과 같은 오판과 전략 부재, 그로 말미암은 실패, 구차한 변명이 나라 곳곳에서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정권이 열두 척의 배와 같은 이순신 장군의 겉만 봤을 뿐 선승구전의 지혜와 전략을 배우지 못한 탓이다. 이순신 장군이 회초리를 들 지경이다.

2019-11-27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대구, 두 음악이 물처럼

"14살에 소리 공부를 시작했으니, 벌써 육십여 년을 우리 음악과 함께 산 셈이다. 철부지 코흘리개 소녀가, 대구극장에서 명창 소리를 들으면서 시작한 나의 국악 인생도 이제는 황혼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하고 싶은 일도 많고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는데…."1921년 경북 칠곡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국악 공연을 보며 우리 음악 세계에 첫발을 들여놓았고, 가야금 병창 인간문화재로 살다 1993년 73세로 삶을 마치기 전인 1992년, 60년 국악 인생을 돌아본 박귀희 명창이 자서전 '순풍에 돛달아라 갈길 바빠 돌아간다'에 남긴 회고담이다.박귀희는 뒷날 대구에서 대학 3년 과정을 수료하기도 했을 만큼 대구에 국악 인생의 흔적을 남겼다. 물론 국악인의 대구 인연은 숱하다. 조선 8도에서 가장 넓은 경상도 중심으로, 감영이 자리하고 관찰사(감사)가 머문 데다 국악에 밝은 '귀명창'도 많은 곳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특히 대구 국악은 이름난 예기(藝妓)를 통해 맥을 이어갔다. 기생조합과 달성권번(뒷날 대동권번)은 이들 양성소였다. 이들은 국악 공연은 물론, 국권을 되찾는 항일 항쟁과 교육 투자 등에 나선 의기(義妓) 활동도 이어갔다. 염농산 자매를 비롯해 김울산, 정칠성, 현계옥, 김연수 등은 바로 그런 인물이다.무엇보다 대구의 국악은 오랜 역사와도 맥이 닿아 있다. 대구를 둘러싼 경북은 신라 만파식적의 대금과 옛 가야의 가야금을 낸 땅이었다. 숱한 국악기 가운데 탄생 출처가 분명한 대금과 가야금의 발상지가 경북이다. 그런 경북의 중심이 대구였으니 대구경북은 국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고을이다.이런 대구가 지난 2017년 11월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네트워크 가입 이후 음악을 화두로 '일'을 벌이고 있다. 음악회를 열고, 정책을 개발하고, 지난 22일엔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대구포럼'도 개최했다. 정치·경제 등에서 활력을 잃은 대구 모습을 음악으로 바꾸는 일, 생각만 해도 반갑고 설렐 만하다.이왕이면 대구의 풍부한 국악 자산과 오랜 역사를 활용하자. 국립국악원 같은 전문기관의 유치도 좋다. 대구만의 국악 시설이라도 갖춰 동서의 음악이 물처럼 고루, 새의 두 날개처럼 짝이 되어 흐르는 음악창의도시로 거듭나면 좋지 않겠는가.

2019-11-26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김천과 철도

조선 중종 때 대제학까지 지낸 묵계 강혼은 경상감사로 지방을 순행하다 성주 관기 은대선과 각별한 정이 들었다. 작별이 아쉬웠던 두 사람은 김천 부상역까지 올라가 애틋한 밤을 함께 보냈다. 강혼이 그날의 정취와 정념을 '부상역춘야(春夜)'라는 시로 남겼는데 그 내용이 농염하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도 김천도역 찰방으로 부임했다가 당쟁에 휘말리는 바람에 관직을 포기하고 팔도 유람에 나섰다.그렇게 실의와 좌절의 방랑길 끝에 탄생한 것이 '택리지'라는 인문지리서이다. 김천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사모바위' 얘기도 김천역과 관련이 있다. 용두산(모암산) 위에 사모(관복 입을 때 쓰는 모자) 형상의 바위가 있어 과거 급제자가 많았다. 자연히 고관대작들의 고향 나들이가 잦아 역리들의 고초가 심하자 그 바위를 떨어트려 버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김천의 내력에서 역(驛)을 빼면 임자 없는 명월이 된다.고려시대부터 김천역, 부상역, 작내역, 장곡역 등이 등장했으며, 조선 초기 역참제 정비에 따라 김천역은 20여 개의 속역을 관장하는 도역(道驛)으로 부상했다. 중심 역인 도역에는 종6품 관리인 찰방이 부임해 역무를 관장했던 까닭에 김천에는 '찰방골'이라는 지명도 생겨났다. 퇴역한 역마들을 모아 연자방아를 돌리게 했다는 '뒷방마'도 역에서 비롯된 마을 이름이다.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한반도 남부 중앙에 위치한 김천은 사통팔달 교통의 중심지로 더욱 발전하게 된다. 역촌(驛村)의 생성과 함께 시장이 형성되면서 김천시장은 전국의 5대 시장으로 번성했다. 삼도봉(三道峯) 자락의 김천은 경상·전라·충청 3도 특산물과 남해안의 해산물이 집결하는 백화점이었다. 김천의 철도와 역 특수는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위축되었다.KTX 시대를 맞이한 김천은 혁신도시 유치와 더불어 재도약의 꿈을 키우고 있다. 이 또한 철도와 역의 역사적인 배경 덕분이다. 김천과 철도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최근 김천시가 철도 관련 기업을 잇따라 유치하면서 철도산업의 메카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해와 서해 쪽으로 철도 연결도 추진하고 있다. 역참(驛站)의 내력이 1천 년에 이르는 김천의 굴기(崛起)가 예사롭지 않다.

2019-11-25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대한민국 서민

"주로 서민들이 내놓았습니다. 잘사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1997년 외환위기 이후 1천200억달러 나랏빚 갚자는 금모으기운동 당시 서울에서 금은방을 운영하며 국민은행의 금 감정 위촉인으로 활동했던 이광재 전 대표의 말이다. 지난 15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가 연 'IMF 외환위기 극복 금모으기운동 학술행사'에 앞서 1998년 1월 13일 자 국민은행의 '금 감정인 위촉장'을 사업회에 기증한 자리에서다.이날 행사는 외환위기 때 금모으기운동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2주년 조명 및 국채보상운동기념일(2월 21일)의 대구시민의 날 지정 기념, 그리고 내년 2월 말까지 기념사업회가 벌이는 금모으기운동 관련 자료 수집과 정리, 보관 활동 홍보를 위해 마련됐다.이날 행사에서는 금모으기운동 때 225t을 모아 22억달러 상당을 수출했고, 이는 2019년 한국은행 금 보유량 104.4t보다 많다는 발표(심재승)도 있었다. 또 금모으기운동은 국채보상운동처럼 사실상 대구에서 출발했고, 대구의 금모으기운동은 전국적인 명성의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 덕분에 성공적이었고, 이는 김대중 정부의 '제2 건국운동'의 표본이 됐다는 일화(한수구)도 소개됐다.1907년 빚 1천300만원을 갚으려 일어난 국채보상운동과 1천200억달러 외채로 빚어진 1997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금모으기운동의 시작과 끝은 나라 잘못으로 진 빚을 백성이 호주머니를 털어 갚으려 나선 점과 모인 돈 규모에서 닮았다.1907년 인구 1천700만 명에 참여자 31만7천 명과 성금 20만원(추정)을 바탕으로, 1998년 4천700만 명 인구 중 351만 명이 동참해 모은 22억달러를 비교하면 그렇다. 국채보상운동 참여 인구 비율은 1.8%, 금모으기운동은 7.5%로 참여 인구는 늘었지만 모금된 돈은 1907년 전체 빚의 1.5%, 1998년은 1.8%였으니 말이다.참여자는 늘었지만 빚 규모에 비해 모인 정성의 비율은 비슷하다. 이광재 기증자의 증언처럼 '큰손'보다 서민이 많았다는 증언이 맞는 듯하지만 왠지 씁쓸하다. 그러나 대한민국 서민이여, 그대들은 위대하도다.

2019-11-22 21:10:52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지소미아 파기 이후?

2002년 9월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가 영남대에서 강연했다. 한 청중이 "왜 미국에 가지 않느냐. 반미주의자 아니냐"고 물었다. 노 후보는 "바빠서 못 갔다. 미국 한 번 못 갔다고 반미주의자냐"고 되물었다. 이어 한마디를 덧붙였다. "반미 좀 하면 어떠냐."자주 외교를 표방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한 달도 안 된 2003년 3월 미국으로부터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예상을 뒤엎고 노 전 대통령은 비전투병을 이라크에 파병했다. 이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해 미국의 협조를 얻기 위한 일종의 거래였다"고 했다. 미국에 '반미주의자'로 낙인 찍힌 노 전 대통령이 이를 탈피하려고 미국 요청을 들어줬다는 분석도 있다.문 대통령 집권 2년 반 동안 망가지고 깨진 것이 숱한데 그중 하나가 한·미 관계다. 한국은 미국 요청을 뿌리치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를 강행할 방침이다. 미국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5배나 올려 6조원을 내놓으라고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급기야 한국이 방위비 인상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미국이 주한미군 일부 철수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미국이 협상 결렬을 핑계로 주한미군 감축 혹은 철수를 할 것이란 추측이 있던 터여서 예사롭지 않다.한·미 동맹(同盟)이 흔들리게 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잘못이 크다.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돈을 더 내라고 막무가내로 압박하는 '장사꾼' 트럼프 탓에 한국이 골병들게 생겼다. "미군, 갈 테면 가라" 등 한국에서 반미 분위기가 크게 확산한 것도 트럼프 탓이다.문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 역시 한·미 동맹 균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믿음을 스스로 망가뜨렸기 때문이다.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하면서 청와대는 "미국이 종료 결정을 이해하고 있다"고 했지만 미국이 우려와 실망을 표시한 것은 단적인 사례다. 한·미·일 3국이 연계된 안보 현안인 지소미아를 일본에 대한 보복 수단으로 쓰는 잘못을 저질렀다. 김정은에 경도된 대북 자세도 미국의 신뢰를 잃게 했다. 미국이 대한민국 기둥뿌리를 뒤흔들 카드를 50개 넘게 가졌다고 하는데 지소미아 파기 이후 미국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다.

2019-11-22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문 대통령의 '쇼통'

현대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대(對)국민 소통'으로 평가되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노변정담'(fireside chat, 爐邊情談)은 1933년 3월 12일 라디오 전파를 탄 '은행 위기에 대하여'가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는 루스벨트는 민주당 소속 뉴욕주지사로 있던 1929년부터 그렇게 했다. 그 목적은 매우 정략적이었다. 주정부가 제출한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도록 다수당인 공화당 의원들을 압박하기 위해서였다.그러나 루스벨트가 대통령이 되면서 성격이 확 바뀌었다. 정적에 대한 정략적 공격의 수단에서 대공황을 극복하고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소통의 장이 된 것이다. 노변정담은 엄밀히 말해 대담이 아니라 연설이었다. 이것이 '벽난로 앞에서 가족이나 친구끼리 편안하게 이야기한다'는 뜻의 노변정담으로 불리게 된 것은 루스벨트의 참모 스티븐 얼리의 아이디어로 언론인 해리 버처가 두 번째 담화인 '유럽 전쟁에 대하여'의 보도자료에 그렇게 표현하면서부터다.루스벨트의 연설은 이런 명칭에 꼭 맞았다. 친구를 대하듯 정감 어린 말투로 주요 정책과 미국이 처한 현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현실 상황을 유리하게 포장하거나 정책 실패나 불리한 문제에 대해 변명하거나 궤변을 늘어놓지 않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했다.1942년 2월 23일 방송된 '전쟁의 경과에 대하여'는 좋은 예다. 연설에 앞서 루스벨트는 전 국민에게 세계지도를 준비해달라고 했다. 미국이 세계 어디에서 싸우고 있으며 현재 전황은 어떻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전 국민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변정담의 청취율이 평시 18%, 전시 58%로 당시 인기 절정의 라디오 쇼보다 높았던 것은 이런 진정성 때문이었다.19일 방송된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는 인내심을 시험할 좋은 기회였다. 채널을 돌리거나 TV를 끄고 싶은 충동을 몇 번이나 억누르게 한, 시쳇말로 '자뻑'의 '쇼통'이었기 때문이다.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젠 첫 단어만 들어도 무슨 말을 할지 알게 됐는데 똑같은 말로 국민을 다시 '고문'했다. 그래서 문 대통령에게 권한다. 진정으로 '국민과의 대화'를 하고 싶으면 노변정담의 원고라도 구해 읽어보라고 말이다. 어떤 것이 '소통'인지 알게 될 것이다.

2019-11-21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금호강 수달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남미 아마존에는 수많은 생물이 산다. 어떤 종류의 동식물이 얼마만큼 아마존에 서식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학계에서는 대략 200만 종의 생물이 아마존에 기대어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지구상에 존재하는 전체 생물종은 어림잡아 1천500만 종에 이를 것으로 학계는 본다. 하지만 지금까지 기록된 종은 약 170만 종에 불과하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확인한 생물보다 그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미지의 생물이 지구에 훨씬 더 많다는 소리다. 이로 볼 때 아마존은 생물다양성이 아주 높은 열대우림지역 이른바 '핫 스팟'(Hot Spot) 가운데 하나다. 중앙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 아마존 서부, 동남아 열대우림 지역이 대표적인 핫 스팟이다.그러나 아무리 많은 생물종이 지구에 존재하더라도 그 다양성이 빠르게 감소해 멸종 위기에 처한 생물이 부지기수다. 20세기 들어 생물종의 멸종 속도가 이전과 비교해 50~100배 빨라졌다는 보고는 지구의 생물종이 처한 상황을 말해준다. 대다수 전문가들이 지구가 마주한 가장 심각한 환경문제로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감소'를 꼽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수달'도 멸종위기에 처한 생물종의 하나다. 수질오염 등 환경의 변화와 남획이 수달 개체수 감소의 주원인이다. 현재 대구 주변 하천에서 사는 수달은 모두 24마리다. 지난해 대구시가 조사했더니 신천 8마리, 금호강 7마리, 동화천 7마리, 팔거천 2마리로 확인됐다.특히 서식지 면적 대비 수달의 개체수가 크게 부족하다는 조사 결과가 눈에 띈다. 개체수가 적다는 말은 유전자 다양성 문제와 바로 연결된다. 이런 차에 작년 8월 전남 무안과 여수에서 구조된 암수 수달 두 마리가 그제 금호강 안심습지에 방사됐다는 소식이다.국립생태원과 대구시는 풍부한 먹이 자원과 양호한 서식 조건을 들어 안심습지를 수달 방사 최적지로 판단했다. 현재 11만㎡ 규모의 안심습지에는 수달과 삵, 백로, 황조롱이 등 동물 176종, 식물 198종이 산다. 대길이와 구순이, 새 수달 가족의 대구 이주는 금호강 생물다양성 확대 측면에서 반가운 일이다. 이곳 환경에 잘 적응하고 식구 수도 빨리 늘려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9-11-20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또 망가진 유시민

나치 치하의 독일 국민은 항상 불안에 떨었다. 감시의 눈을 번득이는 비밀경찰 게슈타포에 언제 체포·구금될지 몰랐다. 하지만 그 감시망의 구축은 게슈타포 정규 인력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나치즘을 전공한 미시시피 주립대학의 로버트 젤라틀리 교수에 따르면 1939년 게슈타포의 전체 인원은 독일 전체로 7천 명밖에 안 됐다.이 정도의 인원으로는 독일 국민 모두를 감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게슈타포는 엄청나게 잘 돌아갔다. 바로 일반 국민의 끊임없는 제보와 밀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치의 감시 체제를 떠받친 기둥은 일반 국민이었던 것이다.구 동독도 다르지 않았다. 동독의 보안기관 슈타지(Stasi·국가안전보위성)의 규모는 매머드급이었다. 동독이 붕괴하기 직전인 1990년 10월 31일 현재 정규 요원은 9만1천 명이었다. 이는 국민 180명당 1명으로 세계 최대였다. 절대 규모에서 세계 최대 정보기관인 소련의 '카게베'(KGB·국가보안위원회)는 600명당 1명이었다.이보다 더 무서운 존재는 일반 국민인 '비공식 요원'이었다. 동독 주민 10명당 1명이 이들이었으며, 가장 많을 때는 17만4천200명에 달했다. 그중에는 11살짜리도 있었다. 슈타지는 이들을 사회 곳곳에 심어 놓은 목적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훌륭한 비공식 요원이 있으면 우리는 풀이 자라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이든 다 알아야 한다."('슈타지: 그들의 정체는 무엇이었나?' 통일연구원)'조국 사태' 와중에 제대로 망가졌다는 비아냥을 듣는 유시민 씨가 또 망가지는 소리를 했다. 16일 대구에서 한 강연에서 "조국 사태를 통해 우리는 언제든 구속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 언제든 구속될 수 있으려면 우리 검찰이 게슈타포나 슈타지 정도 밀고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지금 검찰이 그런가?더 못 참겠는 것은 유 씨가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대다수 국민을 범죄자로 몬다는 점이다. 언제든 구속될 수 있으려면 그런 죄가 있어야 한다. 조국 일가는 죄를 지은 것은 물론 증거를 인멸하려 했기 때문에 구속됐다. 유 씨의 '우리'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국민' 대다수는 구속을 걱정하지 않는다. 입에서 나온다고 다 말이 아니다.

2019-11-19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조국(曺國) 탓에 위험해진 조국(祖國)

1950년 1월 미국 국무장관 딘 애치슨이 '애치슨라인'을 발표했다.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적화(赤化) 야욕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을 알류샨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으로 정한다고 밝혔다. 한국은 애치슨라인 밖으로 밀려났고, 2주 후 스탈린은 북한 김일성에게 남한을 침범해도 좋다는 신호를 줬다. 애치슨라인이 6·25전쟁 도화선이 됐다.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이 23일 0시 정식 종료될 가능성이 커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국방장관에게 "안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한 일본과 군사 정보를 공유하기 어렵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이 지소미아 연장 조건으로 내건 수출 규제 철회 요구에 응하지 않기로 최종 방침을 정해 미국에 통보했다. 역사·경제 문제로 촉발한 한·일 갈등이 한국 안보를 위협하는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비화했다.날로 팽창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지소미아는 한·미·일 삼각 군사 동맹의 상징이다. 지소미아 종료를 한·일 문제만이 아닌 한·미 간 문제로 봐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미국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전방위적으로 지소미아 종료 철회를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지소미아 종료 원인 제공자는 수출 규제를 한 일본이다. 그러나 종료 카드를 꺼낸 것은 문 대통령과 청와대다. 지난 8월 조국 사태가 터지자 반일(反日) 카드로 여론을 돌리려고 지소미아 파기를 결정했다는 의심을 샀다. 그때엔 나라의 운명을 한 장관 후보자와 맞바꿀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조국을 건지려고 무슨 일도 감행하는 정권의 행태에 조국 구하기 카드라는 합리적 의심을 굳히게 됐다. 조국(曺國) 탓에 조국(祖國)이 위험해지는 기가 막힌 상황이 현실로 닥쳐온 셈이다.미국 요구를 무시하고 지소미아가 종료되면 미국에서 어떤 후폭풍이 몰려올지 걱정이다. 한국이 미국의 방위선 밖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신(新)애치슨 선언'이 현실화할 것이란 우려마저 나온다. 69년 전엔 미국이 한국을 애치슨라인 밖으로 내몰아 6·25가 일어났는데 이번엔 우리 스스로 미국 방위선 밖으로 뛰쳐나가고 있다. 조국 사태가 이 나라의 안보까지 뒤흔들고 있다.

2019-11-18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페스트

14세기 중반, 유럽 전역에 이상한 역병이 돌자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1347년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시작돼 1351년까지 약 4년에 걸쳐 이 역병이 온 유럽을 휩쓰는 동안 2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유럽인은 이를 '신이 내린 형벌'로 인식해 기도와 금식으로 이겨내려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인류 역사상 최악의 돌림병인 이 '흑사병'은 '옐시니아 페스티스'라는 균에 의해 발병하는 급성 열성 감염병이다. 쥐와 쥐벼룩을 숙주로 한 페스트균에 감염돼 3~6일의 잠복기가 지나면 가슴 등의 통증과 기침, 각혈, 호흡곤란, 고열에 시달리다가 사망한다. 내출혈 때문에 피부에 검은 반점이 생겨 '흑사병'(黑死病)이라 불렸다.중세 유럽의 페스트는 몽골의 서방 원정이 그 배경으로 꼽힌다. 당시 많은 사람과 중앙아시아·중국 등에 서식하던 쥐들이 유럽으로 이동하면서 페스트를 확산시켰다는 가설이다. 페스트 때문에 당시 유럽 인구의 20%, 많게는 3분의 1이 줄었다. 유럽이 페스트 이전 인구를 다시 회복하는 데는 300년이 걸렸다는 통계도 있다.당시 페스트가 유행하는 지역에서는 사람과 물자가 들어오면 따로 격리했다. 처음에는 30일간 격리하다가 40일(quarantenaria)로 늘렸는데 영어의 '검역'(quarantine)의 기원이다. 목욕을 하면 모공으로 균이 침투한다는 인식이 퍼져 목욕을 멀리하는가 하면 '신의 분노'를 가라앉힌다며 유대인을 희생양 삼아 처형하기도 했다.며칠 전 중국 베이징에서 페스트 환자 2명이 확인돼 격리 치료 중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환자들은 네이멍구 자치구 거주자다. 현재 북미나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콩고 등도 페스트 발생 지역으로 보고돼 있다.질병관리본부는 그제 "페스트의 국내 유입 가능성이 작고 항생제 비축 등 대응 역량이 충분하다"고 발표했다. 감염되어도 2일 이내에 항생제를 투여하면 치료가 가능하고 국내에서 발병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페스트는 작은 포유동물과 접촉해도 전파되기 쉬워 감염지역 여행 시 특히 조심해야 한다.

2019-11-15 19:3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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