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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언덕] 와이담 유감

[청라언덕] 와이담 유감

모임에 가면 꼭 '와이담'을 펼치는 이들이 있다. 성을 소재로 한 야한 유머다. 으레 술자리에선 그 농도가 더 짙어지고, 여자가 끼었을 때는 은근히 더 '음담패설' 쪽으로 기울며 미묘한 줄타기를 한다. 자칭타칭 '와이담 대가'도 부지기수다. 수첩에, 명함 뒤에 메모까지 해가며 와이담을 공부해 설을 풀어놓는 이들도 많다. 와이담 대가들이 많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야한 유머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 있다. '성'(性)이 우리 삶의 일부분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와이담은 일본식 표현에서 유래했다. 일본에서는 '술자리에서 함부로 떠드는 말'을 일컬어 '와이단'(わいだん)이라 했는데, 이것을 말씀 담(談)자를 붙여 '와이담'이라 했고, 로마자로 표기해 'Y담'이라고 쓰기도 한다. 이 글에서 굳이 와이담이라고 한글로 적은 것은, Y라는 로마자 표기에서 다시 한 번 여성을 희롱하는 불순한 의도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주로 야한 유머를 구사하는 이들의 '변'(辯)은 이렇다. '분위기를 유화시키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단지 '변명'에 불과하다. 분위기를 좋게 하는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는데 굳이 왜 성에 대한 우스갯소리를 고른 것일까. 그들의 의도가 미심쩍은 것은 나뿐인가? 와이담으로 입담을 떨친 이들은 '도를 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도'라는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본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듣는 이들이 판단해야 하는 것이고, 다른 동석자가 불편함과 불쾌감을 느낄 정도라면 순식간에 '유머'가 아니라 '성희롱'이 된다. 함부로 야한 유머를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이유다. 와이담 자체로는 도를 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것이 술자리 화젯거리가 되는 순간, 순식간에 여러 사람의 입을 거치면서 성희롱을 넘나드는 표현의 문제가 발생할 소지도 다분하다. 누가 들어도 낯 뜨거운 음담패설을 쏟아내면서 스스로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이들도 많다. 그가 나이 어린 후배라면 날카롭게 지적이라도 하겠지만 선배나 고위직, 연장자 등 예의를 갖춰야 할 상대인 경우엔 자리가 파할 때까지 가시방석이다. 와이담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서로 친밀함과 공감대가 형성된 이들 사이에선 정말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된다. 서로 이해하는 사이이니 도를 넘든 말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끼리 판단할 사안이다. 조선시대 문장가였던 서거정도 외설을 모은 '골개전'을 쓰기도 했고, 외설을 모은 책 '고금소총'도 있다. 이런 책을 혼자 읽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으며, 친한 친구 사이에 웃음의 소재로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사회적 공간 속에 들어왔을 때는 다르다. 이 순간부터는 더 이상 '유머'라고만 할 수 없다.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어보겠다는 자의적 미명 아래 친밀감 없는 관계,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 처음 보는 관계에서도 무시로 행해지는 야한 유머는 젠더(생물학적인 성이 아니라 사회적 의미의 성) 폭력일 뿐이다. 최근 '미투'(Me Too)가 뜨거운 관심과 지지를 얻으면서 "어떻게 저럴 수 있나"며 혀를 차는 보통의 남성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죄에서 온전히 자유로운지 말이다. 음담패설에 낄낄대며 박수를 치고, 그 자리의 누군가에게 모멸감을 줬던 적이 분명 없는가? 속으로 불편했지만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묵인했던 책임은 없는가? 회식 자리, 골프 회동에서 여성을 '꽃'이라 부르며 술을 따르고 안주를 먹여주길 강요하고, 러브샷을 요청하고, 은근슬쩍 스킨십을 시도했거나 아니면 이런 모습을 수없이 목격하고도 웃어넘기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당신들 역시 유죄다. 제발 당신들의 고루한 젠더 감수성을 업데이트 하자. 조심하고 예의를 지켜 손해볼 일은 없으니 말이다.

2018-03-23 00:05:03

[청라언덕] 미투와 포르노그래피

[청라언덕] 미투와 포르노그래피

"정말 역겹고 괴로워요." 20대 직장인 김모 씨는 '미투(#Me Too) 운동'이 확산되면서 직장 생활이 더욱 고통스러워졌다고 했다. 매일 아침마다 "오늘은 뭐가 터졌냐"고 묻는 남성 동료들의 무례함 때문이다. '미투'에 연루된 유명 인사의 소식이 나올 때마다 "여자는 감정적이어서 건드리면 안 된다", "여자가 동의해도 남자가 다 뒤집어쓴다"는 식의 얘기를 스스럼없이 내뱉는다. 더욱 짜증이 나는 건 그다음이다. "저 선임이 뭐라고 하면 너도 미투해", "쟤 마음에 안 들면 미투해"라는 얘기를 장난처럼 건넨다. "피해자가 어렵게 피해 고백한 것을 두고 누가 또 인생을 망쳤나 싶어 구경하는 식이에요. 이게 미투를 포르노처럼 만드는 것과 뭐가 다른가요?" 미투 운동을 '젠더 감수성'을 돌아보는 계기로 보지 않고 '관음증'으로 변질시키는 또 다른 성폭력인 셈이다. 취업준비생 김모 씨도 "터질 게 터진 것"이라고 했다. "'미투'로 충격받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요. 사실 여자라면 초등학생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성폭력을 당해본 친구가 압도적으로 많아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성적인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건네는 교사들은 이름도 댈 수 있을 정도예요." 김 씨에게 성폭력은 흔하게 겪는 일상 경험인 셈이다. 생각만 해도 수치스럽기에 아예 묻어둘 뿐이다. "안희정 지사나 이윤택 연출가 같은 유명 인사들이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소식을 들어도 별로 충격받지 않았어요. 겉과 속이 다른 남성들을 워낙 많이 봤으니까요. 사실 이런 얘기를 들어도 별 충격을 받지 않는다는 게 더욱 충격적인 거죠." 거센 미투의 물결에 성차별에 둔감했던 한국 사회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용기를 낸 피해자들의 고백을 맞닥뜨린 일부 남성들의 대응은 치졸하기 짝이 없다. '미투'를 여성들의 피해망상 취급하거나 '꽃뱀론', '음모론' 등으로 폄훼한다. 자기방어 수단으로 떠돌고 있는 '펜스 룰'도 마찬가지다. 펜스 룰은 미국 부통령 마이크 펜스(Mike Pence)의 이름에서 따온 말이다. 마이크 펜스는 연방 하원의원이던 지난 2002년 한 인터뷰에서 '부인 없는 곳에서 다른 여성들과 함께 자리를 갖지 않는 것을 원칙'이라고 언급했다. 사실 이 원칙은 미국의 유명 목사 빌리 그레이엄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복음주의의 대부로 불린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남성들이 부인이 아닌 다른 여성과 단둘이 있을 때 성적인 유혹에 취약해진다며, 다른 여성과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21세기판 '남녀칠세부동석'인 펜스룰은 여성에 대한 또 다른 성차별이 된다.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보지 않고 성적 도구로 대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에 대한 과도한 경계는 여성들을 고립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는 직원 채용 시 여성을 기피하거나, 회사 업무에서 여성이 배제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고립된 여성들은 직장 내에서 친밀감과 인간관계를 형성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새로운 유리장벽으로 자리 잡는다. 남성들도 여성 앞에서 행동을 조절할 수 있고, 여성을 희롱하지 않더라도 여성과 교류할 수 있다. 그 정도 이성은 갖고 있지 않은가? SNS에서 떠도는 '몽구룰'이나 '현철룰'도 마찬가지다. 현철룰은 지난 2011년 한 유명 개그맨이 20대 여성과 성관계를 맺었다가 성폭행 혐의로 피소됐는데, 두 사람이 성관계를 갖기 전에 합의하에 관계를 맺는다는 각서를 쓴 사실이 밝혀져 사건이 무마된 데에서 비롯됐다. '몽구룰'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2009년 10월 부인 고 이정화 여사가 세상을 떠나자 자신을 보좌하고 자택을 관리하는 직원들을 모두 남성으로 교체했다는 설을 말한다. 모두 여성을 '꽃뱀' 취급하는 피해망상이나 극단적인 회피 심리에서 나온 '룰' 들이다. 미투는 우리 사회의 성차별 구조를 깨는 모난 정이다. 아픈 만큼 충분히 맞고 부서져야 한다.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보며 성적 대상으로 삼지 않는 것. 미투의 해답은 분리가 아니라 문화를 바꾸는 데 있다.

2018-03-16 00:05:00

[청라언덕] 지역정당이 필요한 이유

[청라언덕] 지역정당이 필요한 이유

지방선거가 '지방선거'가 아니다. 분명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지방의원 등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이지만 정권 중간 평가라는 정치적 의미가 더 중요하게 돼 버렸다. 인물과 정책 경쟁은 뒷전이고 중앙 정치 싸움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여타 선진국에 비해 정도가 너무 심하다. 6'13 지방선거는 현 정부의 정책 심판에다 남북관계, 북미관계까지 끼어들었다. 좌우를 비롯해 진영 간 거칠게 치고받을 기세다. 정권을 강탈당했다고 분개하는 보수 야당들은 위장 평화의 친북 세력으로, 여당은 전쟁 선동 세력으로 상대를 공격한다. 남북문제가 블랙홀이 되면 지역 이슈는 발붙일 틈이 없게 된다. 이는 결국 유권자들에게 피해로 돌아간다. 후보들의 정책과 인물을 대충이라도 따져봐야 함에도 진영 간 거세게 싸우는 분위기에 휩쓸려 투표를 하게 된다. 국가 간 경쟁보다 도시 간, 지역 간 경쟁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에 지방선거의 중요성도 커졌지만 현실은 점점 퇴행적이다. 지방선거를 지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 지역민들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 중앙 정치권이 할 일은 지방선거를 지방선거답게 만드는 것이다.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 지역정당 허용이다. 지역정당은 지역 문제 해결 또는 지역적 여론 형성에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치 결사체다. 현재와 같은 전국정당 구조로는 지방선거를 수백 번 치러도 지역 이슈가 끼어들 틈이 없다. 전국정당의 높은 문턱 탓에 유권자들의 참여 욕구도 충족시킬 수 없다. 지역정당이 허용되면 지방선거의 이슈를 그나마 지역과 인물에 붙잡아 둘 수 있다. 중앙 정치 싸움에 지방선거가 이용당하는 왜곡된 현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현재 정당법은 지역정당 설립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 정당 설립을 위해서는 중앙당을 서울에 둬야 하고, 전국 5개 이상 시'도에 시'도당 설립 및 각 시'도당별로 1천 명 이상의 당원을 보유해야 한다. 턱없이 높은 진입 장벽이고 기존 전국정당만이 누리는 거대한 특권이다. 정당법이 정당 설립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억제하고 발목을 잡고 있다. 1960년대 만들어진 정당법은 지방분권, 지방자치 시대에 전혀 맞지 않는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일 뿐이다. 기업 설립에 비유하자면 처음부터 대기업을 만들어야 허가를 내주는 꼴이다. 중소기업 또는 벤처기업이 경영 능력에 따라 큰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우리나라 정당에서는 이런 정상적인 상황이 결코 나타날 수 없다. 독일과 일본 등 지역정당이 활발한 국가는 정당법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헌법에 명시된 '결사의 자유'로 정치 활동을 보장받고 등록만 하면 정당으로 인정을 받는다. 정당 설립의 문턱을 최대한 낮춰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 욕구를 가능한 보장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지역정당의 회원 수는 30~50명 또는 50~100명가량이 일반적이다. 회원 수가 많고 적음에 구애받지 않는다. 지역에서 발생한 이슈에 대해 이념을 떠나 지역민으로서 참여하고 의사를 표출하는 것이 지방자치 정신에 부합한다. 전국 최초로 지방분권운동이 일어난 대구에서 최근 지역정당 설립 운동이 일고 있다. 과거 무소속 후보가 선거 전략으로 내세우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지방분권개헌을 이끌고 있는 지방분권론자들이 중심이 된 체계화되고 조직화된 단체가 결성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지역정당에 관심을 보이는 시민들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참여에 대한 욕구가 그만큼 커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역정당 설립을 원천 봉쇄하고 있는 정당법 개정, 헌법 소원 등 다양한 캠페인을 계획하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후보도 낸다고 한다. 지방분권운동을 전국 운동으로 확산시키고 지방분권개헌 국면까지 끌고 온 대구의 지방분권론자들이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지역정당 설립 운동에 쏟아부을 기세다. 건투를 기원한다.

2018-03-09 00:05:00

[청라언덕] '영미'가 '헬미(help!美)' 될라

[청라언덕] '영미'가 '헬미(help!美)' 될라

"제우스 번개에서 불을 훔쳤다. 훔친 불을 인간에게 주었다. 제우스는 크게 화냈다. 암벽에 사슬로 묶인 채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는 벌을 받았다. 인간도 불을 얻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제우스는 대장장이 헤파이스토스를 시켜 판도라(인류 최초 여성)를 만들었다. 그녀의 손엔 유혹의 상자가 한 개 들렸다. 상자를 열자 재앙이 쏟아졌다. 상자 안 유일한 선이었던 '희망'이 함께 나와 그나마 다행이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 얘기다. 그가 평창에서 활활 타오른 불을 봤다면 어땠을까.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는 꺼졌지만 평창의 불은 국민과 세계인의 가슴속에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다. 그 불은 꽁꽁 얼어붙었던 남북 관계도 급속도로 녹였다. 백두혈통인 김여정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방남했고 남북정상 회담도 거론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양손을 맞잡은 장면도 그려진다. '평창'으로 '평화'가 열린 듯 보인다. 하지만 평창이 낳은 평화 무드가 왠지 낯설게 다가온다. 평창의 평화가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남북 화해 분위기는 당장 6월 지방선거에서 진보가 보수를 치는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 어렵게 잡은 기회를 진보가 놓칠 리 없다. 평창 다음에 펼쳐질 남북한 화해 이벤트는 다가올 지선과 맞물려 평창의 불꽃보다 더 화려하고, 성대하게 타오를 게 분명하다. 과거 선거 때마다 진보가 불평한 북풍(北風)이 이제는 보수에서 막아내야 하는 부메랑이 됐다. 문제는 지금의 보수로는 방풍림 한 그루도 심지 못한다는 데 있다. 탄핵 사태 이후 갈라선 보수의 분열이 여전한 데다 바른미래당의 출범으로 서로 으르렁대는 형국만 짙어진 까닭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선에서 안철수·유승민을 확실히 밟아버리겠다고 벼른다. 안·유도 한국당을 선거 패배로 몰아 홍을 쫓아내겠다고 맞불을 놓는다. 4개월 뒤 홍·안·유가 손을 맞잡을 가능성은 문 대통령과 김정은이 얼싸안을 확률보다 낮다. 보수가 천안함 폭침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방남을 빌미로 북풍을 차단해 보려 하지만 결과는 '글쎄올시다'다. 통일대교에 당원 동원령을 내려 '산성'을 쌓아 본들 국민 눈에는 반짝 이벤트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이미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을 거치면서 보수의 판도라 상자가 열렸기 때문이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상자 안에는 당리당략과 분열, 사리사욕만 있고 보수의 통합과 단결이란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홍 대표가 비록 지난 대선에서 25%의 국민 지지로 한국당 횃불을 훔치긴 했으나 크게 지피지는 못했다. 거친 입은 오히려 보수의 불을 화톳불 수준으로 쪼그라뜨렸다. 횃불이 새겨진 한국당 간판을 내건다고 보수의 불이 저절로 타오를리 만무하다. 그림의 떡일 뿐이다. 보수의 운명을 결정지을 지방선거는 성큼성큼 다가오지만 보수는 지리멸렬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제각각 보수의 적자임을 내세워 후보를 내면 수도권은 물론 영남에서조차 승리가 어렵다. 이래가지고서야 평화의 가면을 쓰고 배 속에 핵을 숨긴 북한을 어찌 막겠는가. 현명한 국민이 '희망'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보수 대 진보라는 프레임부터 버리자. '국민'이라는 큰 틀에서 투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촛불이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켰듯 지선을 통해 문 정부를 평가해야 한다. 홍준표가 싫고 안철수와 유승민이 미워도 문 정부의 대북 방향등이 '아니다' 싶으면 불신임해야 한다. 박근혜 전 정부와 보수에 실망해서 촛불을 들었을지언정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은 새 길을 찾아야 한다. 평창의 '영미!영미!'가 가져온 외관상의 평화가 언제든 '헬미(help!美)'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 국민들이 (평화의) 불을 훔칠 차례다.

2018-03-02 00:05:00

[청라언덕] 위기의 경상북도

[청라언덕] 위기의 경상북도

경상북도의 위상이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 SOC 예산 축소 등 주요 정책과 예산 배정에서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다. 경북 정치권과 경북도청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고, 정부와 각 정당은 경북의 현안에 대해 관심이 없는 듯하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최근 대구에서 '광역단체장 후보 대구 취수원 이전 각서 발언'을 해 구미시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당시 경북 국회의원 누구도 그 자리에서 "노"(NO)라고 말하지 못했다. 경북 의원들은 경북도지사 선거에 대거 나서거나, 비리로 줄줄이 기소되면서 자기 앞가림하기 바쁘다. 김광림·박명재·이철우 의원은 도지사 출마 선언을 한 뒤 경북 곳곳을 누비며 선거운동에 올인하고 있다. 4선의 최경환 의원은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3선의 김재원 의원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경북도당 위원장직을 잃었다.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기소된 재선의 이완영 의원은 검찰로부터 징역 6월형을 구형받았다. 이들 3명은 법원에서 유죄가 최종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경북도청 분위기는 더 암울하다. 김관용 도지사는 12년의 도정을 마무리하는 데 치중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김 도지사는 '민선 12년의 소회와 경북의 길'을 주제로 23개 시·군 순회 특강을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등 외국도 잇따라 방문할 예정이어서 도정의 공백이 염려된다. 행정'경제를 책임진 두 부지사는 도정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도정을 살펴야 함에도 선거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김장주 행정부지사와 우병윤 경제부지사는 지난해 말부터 각종 선거 여론조사에 언급되면서 출마 예정자로 꼽혔다. 경북도 공무원 사이에서는 두 부지사를 두고 '언제 그만두나' '출마는 과연 할까'라는 말이 인사말이 된 지 오래다. 지난달 정기인사에서 적지 않은 국장급 간부 공무원들이 교육을 떠나면서 '도정 정권 교체'로부터 도피가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왔다. 도정 핵심 부서에서 근무한 이들이 서둘러 교육을 신청하면서 업무 공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시각이 있었다. 이 지경이면 도청은 비대위 체제로 가야 할 정도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사드 보상 문제, 원전, 지진 대책, 국비 확보 등 경북에는 해결해야 할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최근 규모 4.6의 포항 지진 여진이 발생했지만 긴급재난문자 발송이 최초 관측 후 7분 정도 지연돼 대구경북민들이 불안에 떨었다. 경북은 '원전 딜레마'에 빠져 있다. 전체 원전 24기 중 절반인 12기가 있는 경북도는 원자력클러스터 사업을 추진해왔다가 탈원전 정책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원전해체센터 유치로 정책 방향을 선회했지만 지역민들은 불안하다. 지진이 발생한 경주와 포항 주변에 원전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잇단 지진에도 한수원과 정부는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지역 경제를 위해서 원전이 존속돼야 한다는 주장과 안전을 위해 탈원전해야 한다는 반박 사이에서 경북도는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매년 7천여 명의 지역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 등지로 떠나고 있다. 인구 감소가 극심해 앞으로 30년 내 지방 소멸 위기가 오는 지역은 경북 23개 시·군 중 17개 시·군이나 된다고 한다. 전국 일부 기초자치단체가 이미 인구 100만 명을 달성했거나, 달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황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백척간두의 '경북호'를 움직여 나가야 할 컨트롤타워인 국회의원과 경북도 고위 공직자들은 자신들의 앞날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비난을 경청해야 한다. 선거 정국에서 공무원들도 선거 판세에 대한 관심보다는 소신껏 일 처리에 집중하기를 바란다. 경북도민들은 경북 의원들과 공무원들이 다가오는 안팎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보여주는 리더십을 원하고 있다. 리더십조차 어렵다면 함께 걸어가고 협력하겠다는 '파트너십'이라도 보여주기를 고대하고 있다.

2018-02-23 00:05:00

[청라언덕] 부동산, 규제가 능사 아니다

[청라언덕] 부동산, 규제가 능사 아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의 남자 화장실 소변기 안에는 파리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파리 한 마리의 효과는 뜻밖에 강력하다. 파리 한 마리를 그린 이후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의 양이 80%나 준 것이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남자들이 자연스레 파리 한 마리를 정조준한 결과다. 자동차회사 '폭스바겐'은 스웨덴 스톡홀름 지하철역에서 '피아노 계단' 캠페인을 진행했다. 피아노 건반 모양의 계단을 밟을 때마다 여러 높낮이의 음이 나오는 장치를 도입했다. 피아노 계단 역시 놀라운 효과를 냈다. 피아노 계단을 이용하라거나 장치를 설명하는 어떤 공지도 내걸지 않았지만 바로 옆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이 66%나 증가했다. 암스테르담 파리 그림과 스톡홀름 피아노 계단은 이른바 '넛지'(Nudge) 이론을 설명할 때 종종 등장하는 사례다. 사전적 의미로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위를 환기시키다'라는 뜻의 넛지는 행동경제학 용어로 훨씬 유명하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와 법률가 캐스 선스타인은 지난 2009년 함께 펴낸 동명의 책에서 '사람들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고 넛지를 새롭게 정의했다. 행동경제학에서 '넛지'는 '강압'과 '지나친 규제'를 경계한다.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거나 명령하지 않고도 사람들의 행동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정책이나 기업 마케팅 측면에서 지나친 규제에 따른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다. 이즈음에서 국내 부동산시장으로 화제를 돌려보자. 우리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는 '넛지'가 없다. 오로지 '규제'가 있을 뿐이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지난해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대출 제한,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부활 등 역대 가장 강력한 규제책만 쏟아내고 있다. 문제는 규제 일변도의 정부 정책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투기꾼으로 낙인찍은 다주택자들이 지방 보유주택을 처분하는 대신 미래가치가 높은 서울 강남권의 '똘똘한 한 채'에 집중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 결과 지난해 지방 집값은 침체일로에 빠진 반면 강남을 필두로 한 서울 집값은 사상 유례없는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투기 또는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한 서울 전역과 과천시, 세종시, 성남시 분당구 등 수도권 집값은 규제 적용 이후 오히려 오름세가 더 가팔라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다. 이제 정부가 부동산 정책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고민할 때가 왔다. 반드시 잡고 말겠다는 아집만으로는 부동산시장을 바로잡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규제 일변도 정책을 쏟아내고도 결국 강남 집값 상승만 부추긴 참여정부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당장 일선 공인중개업소 사이에서는 '이번에도 기다리면 이긴다', '다음 정부 땐 분위기가 바뀐다' 등 정부 부동산 정책을 조롱하는 목소리가 공공연하게 들린다. 공익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규제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본래의 목적과 반대의 결과를 발생시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당장 '최저임금'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최저임금 제도가 시장에서는 정반대로 작용하고 있다.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오히려 노동자들을 궁지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경제 현상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정치, 사회문제뿐 아니라 소비자 심리 등 다양한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결코 규제로만 풀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규제의 환상에서 벗어나 규제의 역효과와 부작용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2018-02-09 00:05:01

[청라언덕] 축복받은 문화예술 도시

[청라언덕] 축복받은 문화예술 도시

대구는 축복받은 문화예술 도시다. 정치는 소외되고, 경제도 보잘것없지만 문화예술만큼은 부산'인천'대전이 부럽지 않다. '제3의 도시'도 이제 옛말이 되어가지만 문화예술은 서울에 이어 '제2의 도시'라 자부할 만하다. 주관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몇 가지 근거들을 풀어보겠다. 공연 기획자들은 서울을 제외하고 뮤지컬, 오페라 공연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도시가 '대구'라고 입을 모은다. 15만원 안팎의 값비싼 VIP석이 대구에서는 유료 관객으로 꽉 찬다. 뮤지컬 또는 오페라의 해외 오리지널 팀 공연(오페라의 유령, 캣츠, 노트르담 드 파리, 태양의 서커스, 아이다)은 서울 그리고 대구가 끝이다. 공연 전문가들은 대구와 경북을 중심으로 한 마니아층을 뮤지컬 3만~5만 명, 오페라 1만 명 안팎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공연 마니아들이 대구의 티켓 파워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대구는 뮤지컬, 오페라의 단일 축제를 갖고 있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대구에는 클래식 마니아들의 열정도 대단하다. 대구시립교향악단 정기공연의 경우 수년째 티켓 판매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4년째 대구시향을 이끌고 있는 줄리안 코바체프 상임지휘자는 아예 '대구에서 죽을 때까지 살겠다'는 각오로 대구 시민들과의 스킨십을 강화하고 있다. 대구 출신의 성악가들 역시 지난 연말 각종 무대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관객에게 선사하며 크고 작은 무대에서 맹활약했다. '대구가곡사랑모임'(테너 김남수, 음악코치 이선경)은 벌써 26회째 작은 무대를 열어, 성악가가 들려주는 대중적인 가곡을 일반인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대구 연극판 역시 서울 대학로 다음으로 활성화되어 있을 정도로 365일 소극장이 돌아가고 있다. 대명공연문화거리는 서울 대학로의 축소판이다. 오래된 소극장과 신설 극장이 20곳 안팎이나 문을 열고 있으며, 매년 실험적인 연극이나 상업적인 작품들이 공연 마니아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반월당, 동성로, 대구역 등 시내 한복판에 포진하고 있는 송죽시어터, 아트플러스시어터, 공연예술전용극장CT 등이 트렌드 연극으로 팬들을 맞이하고 있다. 매년 열리고 있는 대한민국 소극장 열전, 지난해 대구에서 처음 열린 대한민국 연극제는 대구 연극의 위상을 전국에 알린 쾌거였다. 인천 출신이지만 3년째 대구의 연극'뮤지컬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배우 이서하 씨는 "고향 인천에서는 설 무대가 없다"며 "대구는 제 꿈을 이뤄가는 발판을 마련해준 고마운 도시"라고 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에 대한민국 문학의 중심이었던 대구는 21세기에도 문인들의 도시다. 시와 소설, 수필, 시조, 정가 등 동호인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근대 시기처럼 우뚝 솟은 유명 작가나 시인이 나오지 않고 있지만 그 저변은 여전히 문인의 도시라 평가받을 만하다. 올해 1월 매일신문사의 신춘문예도 이를 뒷받침한다. 전국에서 4천500여 편이 응모할 정도로 뜨거웠다. 대구 무용도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데 앞장서고 있다. 대구에서 2014 세계무용대회, 2016 세계안무대회가 열렸으며, 대구시립무용단과 사설 무용단 등이 해마다 세계대회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시립무용단은 매년 대구의 각 초등학교를 찾아가 무용을 가르치고 있다. 대구의 국악인들 역시 대한민국의 전통 정서를 바탕으로 우리 음악의 소중함을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대구가 지금까지 쌓아온 문화 인프라는 세계 어떤 도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패거리 문화, 남 헐뜯기, 기득권 세력, 짜고 치기 등 요즘 유행어가 된 다소의 '적폐'(積弊)도 있겠지만 대구는 문화예술 축복도시임에 틀림없다. 적어도 문화예술면에서만큼은 대구 시민들은 풍요롭다.

2018-02-02 00:05:01

[청라언덕] 한 뿌리, 썩어가나?

[청라언덕] 한 뿌리, 썩어가나?

살아오는 동안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들었던 때는 서울 근무 시기였다. 특히 대구경북(TK) 출신 출향 인사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라면 어김없이 질문받았다. 간혹 질문자와 동향인 것이 확인될 때라면 이후 한 시간 정도는 고향에 대한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고향을 떠난 지 십수 년이 넘는다면 당연히 최근 고향 소식이 궁금했을 테지만, 대구에서 태어나 줄곧 살아온 본인에게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많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고 자란 고향 경북 영천에 대해 공부까지 했던 우스운 일도 있다. TK 사람들의 뿌리에 대한 애착은 타시도 사람들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3년간 서울생활을 하면서 느낄 수 있었다. 한 예로 국회에 가면 '보리 모임'이라는 것이 있다. 2000년대 중반 TK 출신 국회 보좌진들의 친목단체로 시작한 이 모임은 지금은 국회 내에서 상당한 세(勢)를 과시하는 단체가 됐다. 예산철만 되면 보리 모임은 큰 역할을 한다. 대구시와 경상북도가 해마다 가져가는 국비 중 상당 부분은 이 모임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적잖기 때문. 다른 지역에도 이런 비슷한 모임이 있지만 활성화가 되지 않아 TK의 단합력은 언제나 타시도의 부러움 대상이 되곤 한다. 지난 19일 통합 대구공항 이전후보지 선정을 위한 대구시·경북도·군위군·의성군 4개 지방자치단체장들의 간담회가 열렸다. 지역민들은 우리 스스로 군공항과 민간공항이 함께 이전할 적지를 정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통 큰 합의'를 고대해 왔다. 다른 지역이 부러워하는 TK의 단합력이 또 한 번 빛을 발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최종 합의에는 실패한 채 예비이전후보지 2곳을 모두 이전후보지로 격상하자는 급조된 결론만 냈다. 회의 직후 4명의 지자체장들은 이전후보지를 정했으니 앞으로 국방부의 이전 절차가 앞당겨질 수 있어 시간을 많이 벌었다며 손을 맞잡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완벽한 실패다. 이후 관계자들이 전해준 얘기는 기가 막힐 정도다. 4개 지자체는 애초부터 한곳으로 뜻을 모을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종합된다. 실무진이건, 지자체장이건, 그들이 만났던 회의장은 불신의 공기로 꽉 차 있었던 듯하다. 서로 믿지 못하는데 합의안이 나올 리가 없다. 차라리 제3자인 국방부가 정하는 것이 지역 갈등을 없앨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달 29일 대구시청에서 열렸던 두 번째 4개 지자체장 간담회 때 있었던 일이란다. A지자체장이 회의 모두에 "지역 소이기주의나 사사로운 정치적 이해관계에도 휘둘리지 말자. 오로지 대구경북의 미래만 보고 협상에 나서라는 것이 지역민의 민심"이라고 말하자, B지자체장이 "대구경북은 잘 모르겠다. 오로지 우리 지역만 생각할 뿐"이라고 맞받았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그동안 협상 과정에서의 4개 지자체 입장을 각각 한 글자로 표현해보면 '반대', '냉무(내용 없음)', '안달', '무관심'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도 했다. 대구경북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이 지역은 예로부터 '한 뿌리'라는 의식이 굳건했던 곳이다. 지난 2014년에는 '대구경북한뿌리상생위원회'를 만들어 양 지역의 공동과제를 발굴'점검하며 공동보조의 손발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통합 대구공항 이전후보지 선정을 두고 벌인 불협화음이나 수년간 낙동강 취수원 이전을 둘러싼 대구시'구미시 갈등을 놓고 보면 전혀 한 뿌리라고는 볼 수 없는 장면만 거듭되고 있다. 대구와 경북의 지자체장들은 '대구경북이 한 뿌리 상생을 통해 지역 발전을 도모하자'며 공염불로 일관하지 말고, 지역의 현안에 대해 무엇이 대구경북의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인지 고민했으면 한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여전히 갈 길이 먼 통합 대구공항 이전사업과 난제 중 난제며 지역 갈등의 대표적 사례인 대구취수원 문제 해결 방안을 대구경북 한 뿌리 상생 협치의 모델로 도출되길 기대한다.

2018-01-26 00:05:00

[청라언덕] 함께 가자, 멀리 가기 위해

[청라언덕] 함께 가자, 멀리 가기 위해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공존', '상생'을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문구다. 이 말은 항공레저스포츠인 패러글라이딩에서도 적용된다. 패러글라이딩은 동력이 없는 기껏 천 쪼가리에 불과한 날개를 가지고 상승기류를 탐색해가며 수십, 수백 킬로미터를 날아 게임을 펼친다. 여기서 인간은 거대한 자연 앞에 그저 작은 존재일 뿐이다. 파일럿들은 수십 년의 비행 경험을 가지고 어디서 바람이 불어오는지, 어느 쪽의 땅이 먼저 데워질지, 기류가 어떻게 움직일지를 과학적으로 추측하고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계산과 경험치일 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을 탐색하는 데에 '완벽'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어느 곳의 상황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몸으로 부딪쳐 봐야 아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파일럿들은 여럿이 함께 레이싱을 펼치며 각자 흩어져 여기저기 기류를 탐색한다. 직접 부딪쳐 얻는 현장 정보를 서로 주고받는 방식이다. 한쪽에 열기류가 탐지되면 곧장 그곳으로 모여들어 다음 목적지를 향해 함께 일보 전진한다. 혼자 일등 해보겠다고 일찌감치 치고 나가며 과욕을 부리다가 충분치 않은 정보로 인해 낙오되는 일도 흔히 벌어진다. 조금 더 멀리 가기 위해서는 경쟁자라 할지라도 손잡고 함께 나아가야 하는 이유다. 최근 최저임금 논란이 뜨겁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영세 자영업자들과 중소기업이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아르바이트생들의 일자리가 줄며 고용 불안이 심화됐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보자. 과연 누구를 위해 저임금을 유지해야 하는가? 그 수혜를 가져가는 것은 누구인가? 최저임금 인상의 피해를 가장 크게 입고 있다는 사례로 자주 등장하는 편의점을 살펴보자. '빅4'가 잠식하고 있는 우리나라 24시간 편의점 업계의 최근 5년 연평균 성장률은 15%에 이른다고 한다. 그 단맛은 대기업의 몫이었다. 반면 가맹점주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3%도 채 되지 않으며, 그마저도 본사의 무분별한 출점 경쟁과 각종 불공정 거래로 손실을 보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자영업자의 눈물'을 이야기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합당하지 않다. 더구나 한 개인을 중심으로 본다면 그 저임금에 시달리는 누군가는 내 자녀나 형제자매, 이웃일 수도 있다. 빈곤에 허덕이며 인간답지 못한 생활을 해야 하는 그 누군가가 먼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때 "기업이 살아야 국가 경제도 살아나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논리가 지배했다. 다들 조금 희생하면 더 큰 밝은 미래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기업은 자신들의 수익을 극대화하는데 혈안이 됐을 뿐, 고용도, 투자도 증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용의 질을 하락시켜가며 이윤을 쥐어짜는데만 골몰했을 뿐이다. 낮은 임금에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젊은 아르바이트생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계속 빈곤한 삶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저임금을 견디며 참고 산 결과는 더욱 허망하다. 쥐꼬리만한 월급이라도 아쉬워 버티고 버틴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10년 사이 '88만원'보다도 더 비참한 '77만원 세대'라는 암담한 현실이다. 경제는 인체의 혈액 흐름과 같이 순환을 통해 건전하게 유지될 수 있다. 임금이 낮으면 소비 여력이 생겨나지 않는다. 기업이 제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고 생산에 열을 올려봤자 이를 소비할 이들이 없다면 무용지물일 뿐이다. 기업이 살아야 경제가 살아난다고? 직원들은 모두 허리띠 졸라매고 가난에 허덕이며 소비는 얼어붙는데, 부유한 회사가 존재한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저임금의 악순환 고리를 끊고 늘어난 가계소득이 소비로 이어지고 골목상권을 중심으로 한 내수를 살찌워야 튼튼한 성장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결국 답은 '공존'과 '상생'에 있다.

2018-01-19 00:05:00

[청라언덕] 또 다른 준희 양 만나지 않길

[청라언덕] 또 다른 준희 양 만나지 않길

'삐리릭 철컥'. 현관문을 열자 TV를 보고 있던 아이가 한달음에 뛰어왔다. 아빠가 오는 소리를 귀 밝은 아이가 놓칠 리 없다. "아빠!"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벌린 아이를 번쩍 안아 올렸다. 티없이 웃는 아이의 표정을 보며, 고통 속에 눈을 감았을 고준희 양이 떠올랐다. 숨질 당시 준희 양의 나이는 고작 다섯 살. 내 아이와 동갑이다. 부모의 품에 안겨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을 나이. 가슴 한쪽이 아렸다. '아동학대' 뉴스를 접할 때마다 심장이 툭 터지는 것만 같다. 부모가 되기 전과 비교하면 체감 정도가 수십 배 차이 난다. 전에는 '약한 아이를 때리다니 이런 나쁜 사람 같으니' 정도였다면 이젠 나도 모르게 험한 욕설이 튀어나올 수준이다. 내 아이가 맞은 것 같고, 상처 입은 내 아이가 울고 있는 것 같다. 이토록 가슴을 후벼 파는 아동학대 사고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아동학대 건수는 지난 2013년 6천796건에서 2016년 1만8천700건으로 3년 만에 3배 가까이 늘었다. 대구경북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상반기 대구의 아동학대 사건은 552건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무려 80% 증가했다. 경북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같은 기간 36%가 늘었다. 인간은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해야 한다는 본능에 따른다. 그런 부모가 자녀를 학대하거나 방치하는 일은 보통의 상식을 벗어난 행위다. 하지만 아동학대 가해자 10명 중 7명은 부모다. 왜 그들은 자녀를 죽음으로 몰아갈까. 가장 큰 원인은 빈곤이다. 불안정한 수입 상태는 아동학대 확률을 높인다는 보고가 있다. 코넬 대학은 2014년 소아과학저널에서 수입 불균형이 아동학대와 방치를 이끄는 요인이 된다고 주장했다. 부모의 불우한 어린 시절이 아동학대로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다. 부모에게서 제대로 배운 자녀 교육 방식이 없다 보니 양육 과정에서 갈등을 겪을 때 폭력적인 방식으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피해 아동은 또 다른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이는 분노나 화 등 부정적 감정에 민감해진다.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느끼고 불안해하며, 충동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계선 성격장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는 보육 교사도 예외는 아니다. 지인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폭력적인 보육교사는 어린 시절에 가정폭력을 경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성장기에 학대를 경험하면서 상실감을 겪은 이들 중 일부는 '나는 아이들을 잘 돌보겠다'며 보육 현장에 뛰어듭니다. 하지만 보육은 정말 고되죠. 아이들이 잘 통제되지 않고요. 그러면 잠들어 있던 폭력의 상처가 비슷한 형태로 발현될 수 있어요." 아동학대는 초기에 발견해 가해자와 격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일 "아동학대 발견율이 OECD 국가들에 비하면 까마득히 낮은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아동학대 발견율은 아동 1천 명당 1.32명으로 미국의 9.4명(2014년), 호주의 8명(2014년)보다 현저히 낮다. 아동학대 신고는 아동학대 범죄를 알게 됐거나 의심되는 경우 누구나 할 수 있다. 특히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교직원, 의료인, 아동복지시설 종사자, 학원 강사 등 25개 직군은 아동학대 신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전체 신고 건수 중 신고 의무자들의 신고 비율은 27.9%(2016년 기준)로 전체의 4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적극적인 아동학대 신고를 유도하는 법안들은 이미 여러 건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아동학대 피해자와 신고자 등을 학대 가해자와 격리 조사하는 방안도 있고, 신고 포상금 제도나 13세 미만 및 장애아에게 중상해를 입히면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하는 안도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딘가에서 또 다른 준희 양이 고통받고 있을지 모른다. 앞으론 아이를 괴롭히는 부모를 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깔깔 웃는 아이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바라봤다.

2018-01-12 00:05:00

[청라언덕] 대구가 만만한가

[청라언덕] 대구가 만만한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끝내 대구로 내려온다고 한다. 홍 대표는 최근 대구 북구을 당원협의회 위원장 공모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애초 조원진 국회의원이 탈당하고 무주공산이 된 대구 달서병이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됐지만 좀 더 편한(?) 이웃 동네로 방향을 틀었다. 홍 대표의 대구행을 두고 찬반양론이 엇갈린다. 한국당 북구을 당원들 간에도 견해차가 적지 않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홍 대표의 대구행은 명분도, 실리도 없는 행보다. 오히려 한국당 지지자들에게 대단히 잘못된 신호를 줄 공산이 크다. 지방선거를 앞둔 현재 한국당은 사면초가에 처해 있다. 최대 격전지인 수도권에서 의미 있는 지지를 얻지 못하면 2년 후 치러질 국회의원 선거도 장담하지 못한다. 홍 대표는 지방선거에서 대구와 경북, 부산, 인천, 울산, 경남 등 6곳의 광역단체장 선거 승리를 배수의 진으로 쳤다. 6곳의 승리를 위해서라도 최전선인 수도권에서 격렬한 싸움을 피해선 안 된다. 그의 대구행은 전쟁터를 버리고 안전한 후방으로 몸을 피하려는 '꼼수'로 비친다. 한국당 지지자들에게 홍 대표의 대구행은 '수도권 포기'로 비쳐진다.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을 포기하면 결국 지방에서도 이길 수 없다. 대구경북 지지자들도 고민에 빠질 것이다. 전쟁터를 버리고 온 장수를 지켜야 할 지, 버려야 할 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기자는 등을 돌릴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대구 한국당 지지자들은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의 대구행에 냉정할 만큼 차갑게 대했다. 큰 정치인을 많이 겪어본 대구의 한국당 지지자들은 웬만한 정치인에게 휘둘릴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보여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0년 총선에서 서울 종로를 버리고 부산행을 택해 장렬히 패한 후 '바보 노무현'으로 전국적인 스타가 됐고 대권까지 거머쥐었다. 정치적 계산이 아닌 자기희생을 통해 권력의 최정점에 오르는 승부사적 기질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홍 대표는 서울 동대문에서 네 번의 국회의원을 거쳤고, 경남도지사도 지냈다. 지난 대선에서 보수 야당의 대통령 후보까지 올랐다.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더 할 게 없다. 이런 인물이 향후 정치적 일정에 따라 명분도 없이 슬그머니 보수의 안방을 차지하겠다는 것을 이해하는 당 지지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굳이 국회의원 배지가 필요하다면 도백을 지낸 경남도로 가는 게 순리다. 홍 대표가 진정 대구를 보수의 심장으로 여긴다면 TK의 좌장이 아닌 10년 앞을 내다보고 TK에서 인물을 찾고 키우는 데 심혈을 쏟아야 한다. 텃밭에서 모종을 키워 거친 들판에 옮겨심듯이 TK에서 보수 가치에 맞는 인물을 발굴하고 새 인물을 영입해 좌파 세력과 싸우는 전사를 만드는 게 대표의 역할이다. 이런 측면에서 홍 대표와 함께 달서병 당원협의회 위원장 공모에 응할 것으로 알려진 강효상 국회의원의 대구행도 명분이 없다. 대구 출신이지만 서울에서 활동한 것을 기반으로 비례대표가 됐으면 다음 총선에서 서울에서 여당 후보와 진검 승부를 펼치는 게 정치적 도의다. 한국당 내부 사정도 딱하다. 당 대표가 험지를 버리고 대구행을 선택하는 데 대해 쓴소리 한마디 나오지 않는다. 대구 국회의원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혔다는 얘기도 들어보지 못했다. 다음 총선에서 손해를 볼까 봐 눈치 보는 것으로 이해된다. 일부 의원들은 말은 못하고 속앓이만 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견제와 비판 기능이 사라진 당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착잡하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 제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한 대구 정치권이 또 다른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가 안쓰럽다.

2018-01-05 0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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