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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성 정치부 차장

[청라언덕] 다시 읽게 된 취임사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저는 오늘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해 첫걸음을 내딛습니다.…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다시 읽게 된 건 13일 날아든 부산발(發) '여권의 동남권 관문공항 적극 지원 약속' 소식 때문이다.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등 지도부는 이날 부산을 찾아 "수도권 일극 체제를 양극체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고, 남북 평화시대에 인천공항과 역할을 분담할 수 있는 동남권 관문공항이 필요하므로 부산·울산·경남에서 힘을 모아 과감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비공개 협의회에서는 동남권 관문공항을 의제로 꺼내며 김해공항 확장안의 국무총리실 이관 재검토 지원 등의 약속도 있었다고 한다.부산시는 보도자료를 통해 "민주당 지도부가 '부울경 검증단의 결과가 발표되면, 김해 신공항을 관문공항으로 결정한 국토부보다 총리실을 주관으로 재검토해야 하며, 후속 조치 등의 속도감 있는 추진을 위해 당 차원에서 적극 지원할 것'이라 밝혔다"며 총리실 검증 이후까지 민주당의 지원 사실을 부각했다.국토부가 김해 신공항 건설 계획을 스스로 번복하기 어려울 것이니 총리실이 이를 맡아 정책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고 민주당은 가덕도 신공항이 건설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게 요지다. '총리실 검증 논의'로 동남권 신공항 논란에 불을 지핀 문 대통령의 발언이 있은 지 꼭 한 달 만에 민주당이 후속 조치를 내놓은 것은 4월 재보선과 내년 총선 때 부산경남(PK)에서 압승하기 위한 계산된 카드로 보인다.PK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역감정 타파를 위해 정치 인생을 건 곳이자 문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그런데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사상 처음으로 PK 광역단체장을 석권했던 민주당의 지지율이 최근 자유한국당에 역전당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PK에서 밀리면 내년 총선이나 2022년 대선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된다는 게 민주당 생각이니 대형 국책 결정을 뒤집어서라도 지지를 받겠다는 심산인 셈이다.대통령과 여당의 가덕도 신공항 프로세스는 정국의 시계를 '갈등의 시대'로 되돌려 놓을 만하다. 5개 시도의 합의로 외국 전문업체의 타당성 검토를 거쳐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 난 국책 사업을 뒤집어서라도 '잇속'을 챙기겠다는 발상은 '갈등' '분열'을 불러올 것이 뻔하다.대구공항 이전 작업은 지지부진하다. 아직 부지 확정도 못 했다. 이럴 때 나온 대통령여당의 가덕도 힘 싣기는 대구경북(TK)을 '패싱', '홀대'하다 못해 아예 지도에서 오려내겠다는 것을 공고히 하는 것과 다름없다. 또한 지지 세력만 챙기겠다는 분열의 정치를 천명한 것이기도 하다.정략적인 TK-PK '갈라치기'는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는 약속 또한 어기는 행보다.지난 8일 단행한 개각은 '지역 편중' '코드 인사' 'TK 배제'가 키워드였다. 내년 총선 출마자 땜질용이라는 비판도 있다."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다"는 탕평 인사 원칙 역시 취임사의 미사여구(美辭麗句)였는지.

2019-03-14 17:27:47

권성훈 디지털국 차장('야수와 미녀TV' 앵커)

[청라언덕]국민·참여 정부 때도 없던 TK 홀대

문재인 정권의 TK 홀대는 특별하다. 국민(김대중 정권)·참여(노무현 정권) 정부 때도 유례가 없던 차별을 무차별적으로 가하고 있다. '가혹하다'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다. 예산뿐 아니라 인사에서 초토화 전략을 쓰고 있는 듯하다.국민의 정부 때는 울진이 고향인 김중권 비서실장을 기용하고, 국무위원(장관)에도 인구에 비례해 지역 출신을 배려했다. 또 흐지부지됐지만 '밀라노 프로젝트'를 섬유도시 대구에 선사하기도 했다. 참여 정부 때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낸 김병준에게 청와대 정책실장이라는 중책을 맡기고,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해 이재용 환경부 장관, 이강철 청와대 수석(일명 왕수석)을 통해 대구경북의 바람을 전달했다. 또 이들을 통해 TK의 필요한 예산도 배정하고, 악화한 민심을 달래려는 노력도 했다.문재인 정권은 어떤가. 2017년 정권 초창기부터 살펴봐도, 뭐 해준 것은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홀대의 흔적은 흥건하다. 예산, 인사 곳곳에 큰 상처만 안기고, 상처가 난 곳에 소금까지 뿌리고 있다.올해 국비 예산만 해도, 타 지역은 모두 늘어난 데 비해 TK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지난달 발표된 예타 면제사업만 해도 TK를 모두 합해 1조7천억원을 배정했다. 도백(김경수 지사)이 구속된 경남만 해도 4조7천억원의 선물을 안겨줬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지난달 25일 매일신문 자체 방송인 야수와 미녀TV 속 '토크 20분'에 출연해, 대놓고 현 정부의 예타 면제사업 선정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섭섭함을 토로했다.TK의 가장 큰 바람인 통합신공항 이전과 구미 취수원 이전 문제도 국방부와 환경부의 비협조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도대체 해당 부처는 대구경북민의 강력한 바람을 알고나 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소 닭 보듯' 한다.인사는 더 말해 무엇하랴. 혈압이 뻗쳐 쓰러질 정도다. 상주 출신으로 경북고를 졸업한 TK 출신 국무위원인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대구 수성갑 국회의원)이 재임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경찰 최고위 간부는 거의 없었다. 정권 초창기에 경찰 내 치안총감(경찰청장)과 치안정감 8명 중에 TK 출신은 단 1명도 없었다가, 지난해 7월 인사에서 겨우 1명(경북 청송 출신 이상정 경찰대학장)이 탄생했다.'TK 출신 장관 0명 시대 될 듯'이라는 기사를 보고는, 서글픈 마음이 들 정도다. 시도 때도 없이 '지역균형발전'을 부르짖으면서, 이럴 수는 없다. TK 출신 유일한 국무위원인 김부겸 장관마저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내각에서 빠지면, 대구경북을 챙겨줄 인사는 아예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청와대 내 주요 인사(3실장 9수석 체제), 국정원과 검찰·경찰·국세청·감사원 등 주요 권력 기관에도 'TK의 그림자'조차 찾아보기 어렵다고 할 정도로 주요 인사에서 TK 출신을 철저히 '왕따'시키고 있다.문재인 정권은 보수의 심장 TK에 대한 홀대를 멈춰야 한다. 그래야 "북한에 퍼주는 돈보다 TK에 주는 예산을 더 아까워한다"는 대구경북민의 비아냥 섞인 푸념을 멈출 수 있다. 이틀 전 TK의 지지를 등에 업고, 큰 표 차이로 자유한국당(제1야당) 당권을 쥔 황교안 대표도 'TK 홀대'를 저지하는데,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2019-02-28 18:39:23

한윤조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아사히글라스와 검찰

'아사히이김', '연대로힘생김'을 들어본 적 있는가? 난데없는 문자 해고 통보를 받고 3년 8개월을 싸워 온 AGC화인테크노한국주식회사(이하 아사히글라스) 해고자들은 생계유지를 위해서 SNS 등을 통해 김을 팔고 후원금을 모아 간신히 투쟁을 이어왔다. 그게 아사히이'김'이다.이들이 드디어 큰 고비였던 검찰 '기소'를 얻어내며 하나의 '이김'을 맞았다. 검찰은 지난 15일 사건을 맡은 지 1년 5개월 만에 원청업체인 아사히글라스와 인력을 공급하던 하청업체, 그리고 두 회사 사장을 '파견근로자 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해고자들이 길바닥에서 한겨울 추위를 넘긴 것이 네 번이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약자의 편에서 불법을 처벌해야 할 위치에 선 검찰은 수수방관한 책임을 미루기에 급급했다. 왜 이렇게까지 기소를 미루는 것인지 수소문해봐도 "답하기 힘들다" "말조차 꺼내지 마라"고만 했다.당초 대구고용노동청 구미지청은 해고자들의 고발에 따라 위법 사항을 꼼꼼히 조사한 뒤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해고자 전원을 직접 고용할 것과 과태료 17억8천만원을 지급할 것을 결정한 것이 2017년 8월의 일이다.하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3개월 만에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후 해고자들이 항소하고 지난해 5월 대구고검이 재수사 명령을 내리자 이번에는 지난해 수사를 완료하고도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채 시간을 끌었다. 결국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를 통해 '기소 의견'을 받아들고서야 9개월 만에 겨우 기소했다. 아사히글라스 측 법률 대리인은 '법률 지존'이라 불리는 '김앤장'이었다.차헌호 금속노조 구미지부 아사히글라스 지회장은 "당시 근로조사관은 5천 페이지에 달하는 서류를 검찰로 넘겼다. 여기에는 100쪽이 넘는 분량의 조사관이 직접 쓴 내용도 함께 포함돼 있었다"고 했다. 그만큼 회사 측의 불법 증거가 차고도 넘쳤다는 해고자 측 주장이다.검찰이 시간을 끄는 동안 해고 노동자들은 피가 말랐다. 3년 8개월 동안 생업에 나서지 못하고 투쟁해 온 이들의 삶은 처참히 무너졌다. 해고자 178명 중 대다수가 새로운 밥벌이를 찾아 떠나고 이제 23명만이 남아 투쟁 중이다.이들의 죄(?)는 노조를 결성한 것이었다.차 지회장은 "노조 결성 후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아사히글라스 측에서 우리 하청업체 직원들에게만 '내일은 하루 쉬라'고 한 뒤 쉬는 날 문자로 해고를 통보했다. 회사로 달려갔지만 아사히글라스 앞에는 100명에 달하는 용역업체 직원들이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었다"고 했다. 아직도 23명은 회사 안에 그들의 짐이 그대로 남아 있다.검찰은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는 국가의 명을 받은 이들이다.하지만 현실에서의 검찰은 힘 있는 자, 돈 있는 자의 편에 서는 경우가 다수다. 툭하면 검찰을 둘러싼 비리가 터지고, 국민으로부터 뿌리 깊은 불신을 받는 이유다.이번 사안 역시 검찰이 이렇게까지 시간을 끈 이유에 대해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국민은 말로만 외치는 '검찰 개혁'이 아니라 치우침 없이 냉엄한 판단을 내리는 검찰을 원한다. 판단을 내리기 힘들 때는 '과연 누구를 위해 검찰이 존재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부터 출발해보라.

2019-02-21 15:50:28

장성현 경제부 차장

[청라언덕] 30년 뒤 대구 도심의 모습은?

지난 주말 대구 동구의 한 견본주택 앞에 긴 행렬이 늘어섰다. 부정청약 등으로 계약이 취소된 잔여 가구 추첨에 몰린 인파였다. 70여 가구 모집 추첨에 참여한 이들만 1천여 명에 달했다. 이날 풍경은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규제에도 '나 홀로 활황'을 이어가는 대구의 청약 시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올해 대구의 청약시장은 재개발·재건축단지에 집중돼 있다. 연말까지 분양 예정인 3만744가구 가운데 70%인 2만956가구가 도심 재개발·재건축단지다.아파트 시장이 '거래 절벽' 수준인데도 청약 시장이 열기를 띠는 건 '부동산 불패'에 대한 믿음 덕분이다. 당장 집값이 주춤하더라도 청약 당첨만 되면 수천만원을 벌 수 있는 게 현실이다. 너무 올라버린 집값에 청약 당첨 외에는 내 집 마련이 어렵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깔려 있다.청약 시장 규제가 느슨한 점도 이유다. 건설사들은 대출 제한에 따른 자금 부담을 줄인다며 1차 계약금을 1천만원으로 고정하고, 중도금 무이자 혜택을 준다. 1차 중도금 납부 기한도 계약 8개월 뒤로 미뤘다. 비조정지역의 전매 제한 기간이 6개월이라는 점을 노린 것이다. 단기 투자자들이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있으니 분양 시장은 여전히 돌아간다.더욱 우려스러운 건 과열된 재개발·재건축 시장이다. 대구에 있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사업 대상지는 모두 232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사업 시행 계획 인가까지 받은 곳도 96곳이나 된다.건설업계도 앞다퉈 재개발·재건축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도심에 아파트를 지을 땅이 부족하고, 청약 시장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 건설업계는 사업성이 있는 재개발재건축 지역이 30~40곳 정도 될 것으로 본다.30년 뒤의 대구를 상상해봤다. 낡은 고층 아파트 숲이 삐죽삐죽 튀어나온 도심의 모습. 노후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홍콩이 연상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30년 뒤면 초고령화사회에 인구 절벽이 현실화된 이후다.정부는 도심이 온통 아파트로 채워지는 상황을 막고자 도심재생사업을 추진해왔다. 2010년부터 진행한 도시활력증진개발사업으로 대구에서만 29곳이 지정됐고, 19곳의 사업이 완료됐다. 이어 문재인 정부 들어 시작된 도시재생 뉴딜사업으로 대구시내 10곳에서 주거 환경 개선 및 공동체 복원 사업이 진행 중이다.그러나 도시정비구역으로 지정된 경우 도시재생사업 대상에서 제외된다. 길게는 십수년씩 지연되는 재개발·재건축사업을 기다리며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해야 하는 셈이다.방법이 없진 않다. 주민 50% 이상의 동의를 받아 정비구역에서 해제되면 재생사업 대상지가 될 수 있다. 추진위가 설립되기 전이라면 주민 30%의 동의만 있어도 해제 신청을 할 수 있다.반면 서울은 주민 동의가 없어도 정비구역 해제가 가능하다. '역사·문화적으로 보존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민간위원회를 거쳐 정비구역에서 해제할 수 있도록 시 조례로 규정했다.주민들 간 갈등이 첨예한 도시정비사업에 지자체가 개입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돼 있는 셈이다. 개발사업에 이리저리 해체되는 대구 도심을 살릴 방법은 여전히 남아 있다. 첨예한 이해관계의 충돌 속에서도 행정의 일관성을 지켜낼 대구시의 의지가 필요하다.

2019-02-14 18:20:51

이창환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 극단의 시대

대한민국 정치는 극단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적폐 청산을 내걸고 전 정권 관련자들을 대거 단죄했다. 아무리 전 정권의 실세라도 잘못이 있으면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와 공동체 발전을 위해 열정을 쏟았음에도 단지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적폐로 내몰리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는 정치 보복일 뿐이다.역사는 되풀이된다. 정권이 교체되면 현 정권에서 일했던 인사들도 또 다른 적폐로 몰리고 정치 보복이 재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한국 정치사에서 정치 보복은 사실상 금기어였다. 보수 정권 아래에서도 후계자들이 정치 보복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 없이는 정권을 계승하기 힘들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나를 밟고 지나가라"는 언질이 없었으면 노태우 전 대통령의 6·29 선언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후보 시절 정치 보복은 절대 없다는 약속을 수차례 했다. 그만큼 전임 권력자에게 후임 권력자의 정치 보복은 아킬레스건이었다.문 정부의 적폐 청산은 정치 보복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조선시대 사화를 21세기에 부활시킨 셈이다. 정권 교체에 따른 정치 보복이 일상적인 정치 행위가 될 개연성이 매우 높아졌다. 한국 정치가 극단의 시대로 접어든 배경이다.극단의 시대에 가장 위협받는 것이 민주주의다. 정권을 뺏기면 정치 보복을 당할 게 뻔한 상황에서 쉽사리 정권을 내놓지 않으려 한다. 여당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정권 재창출에 사활을 걸고, 야당은 정권 교체를 위해 온갖 방법들을 동원한다.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릴 불·탈법이 자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김경수 경남지사가 구속된 뒤 보인 여당의 반응은 놀랍다. 집권 여당의 중진들이 벌떼처럼 나서서 사법부를 공격하고 적폐로 몰아가는 행태는 정말 걱정된다.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를 무력화시킨다. 김 지사 구속에 대한 여당의 대응에서 극단의 시대의 한 면을 읽을 수 있다. 민주화를 이끈 세력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무너뜨리는 지독한 모순에 봉착한 형국이다.여권 인사의 오버는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책임이 대통령에게 향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이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사건이 20년 장기 집권 계획에 생채기를 낼 수 있다는 우려도 한몫했을 것이다. 정권 교체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여권 중진들의 목에 핏대를 세우게 했다.사화와 환국의 극심한 후유증을 겪은 조선은 탕평의 시대로 전환한다. 사화와 환국의 '제로섬 권력투쟁'이 결국은 집권당과 실권당에게 득보다는 해악을 더 끼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집권당도 언젠가는 실권으로 멸문지화를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품게 됐고, 실권당은 권력을 빼앗겼을 때 미치는 화가 너무 크다는 것을 공유한 후에야 탕평의 시대로 바뀌었다.극단의 시대에 접어든 한국 정치는 큰 계기가 없는 한 정치 보복의 일상화를 감내해야 할 것이다. 극단의 시대가 오래 갈수록 한국 정치는 어두운 터널을 장기간 지나야 한다. 누가, 무엇으로 극단의 시대를 청산할 것인가?

2019-02-07 17:36:25

임상준 경북부 차장

[청라언덕] HI SK, OK SK

지난해 일본 출장 때 만난 와세다 대학의 한 지한파 여교수는 말했다."소니는 삼성을 절대 이길 수 없다."잠깐의 자부심. 이어지는 그의 '경제 논리'는 되레 핀잔으로 돌아왔다. 여교수의 도발(?)은 대충 이렇다.소니는 평생 고용을 보장하거나 노력하고 있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노동의 경직성'은 최대 약점이다. 한국 대기업처럼 사람을 자르는 일에는 능숙하지 않다. '노동 유연성'이 강한 삼성에 뒤질 수밖에 없다.뒷말은 더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젊은 나이에 일자리를 잃고 불가역적으로 자영 업계로 쏟아지는 한국의 사오정(40, 50대 퇴직). 콧구멍 만한 치킨집이라도 차려 잘되면 좋으련만, 열 중 여덟이 망한다. 기업에서 과장님, 부장님으로 불리던 아버지, 어머니 때보다 더 큰 사회적 비용이 수반된다. 반면 일본 기업들은 평생 고용으로 국가의 짐을 더는 데 힘을 보탠다. 세계 1위보다 착한 2등이 낫다는 자부심이 기업의 생존 이유다.논리적 비약이 있지만 수긍이 간다.대구경북이 대기업인 'SK하이닉스'를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다.이철우 경북도지사, 권영진 대구시장, 장세용 구미시장의 하이닉스 유치 삼각편대가 연일 한강을 넘나들며 '플리즈 하이닉스'를 부르짖는다. 경쟁사인 GS칼텍스에까지 '구미는 SK를 사랑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을 정도다.하지만 SK는 이런 '열망'을 외면하고 있다. '경제 논리'만 들이대며 수도권을 기웃거린다.시대적 그늘이야 있었겠지만 경제 논리만 앞세웠다면 오늘날 세계를 호령하는 SK는 없었을지 모른다. SK그룹이 과거 정권의 덕을 봤다는 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 정·관계에 떠도는 단골 메뉴다. 현 SK이노베이션은 1980년, 당시 재계 1위인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한 게 초석이 됐다. 새우가 고래를 삼킨 격이었으니 호사가들은 정권 실세의 보이지 않는 손을 지목하며 입방아를 떨었다.국가주도성장 이면에는 늘 국민의 희생과 헌신이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다녔다. 그런데도 재벌은 '경제 논리'란 병풍 뒤에 숨어서 책임 있는 행동을 좀체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만능 열쇠(경제 논리)를 무기로 수도권 진입의 문까지 열어젖힌다.물론 대구경북의 경쟁력이 딱히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경북은 통일 한반도 시대를 맞아 대륙을 잇는 환동해 물류의 허브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구미 5산단에서 코닿을 거리(직선거리 14㎞)에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활주로도 깔린다. 대학의 도시 대구와 경산에는 반도체 인력이 차고 넘친다. 지방 경쟁력을 위해 결단하는 SK의 모습에서 오는 착한 기업 이미지는 '구미행의 덤'이다.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는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를 세뇌시키는 돼지가 등장한다. 이 구호 앞에선 어떠한 논쟁도 무의미하다. 한국 대기업들도 신규 투자가 있을 때면 "수도권은 좋고, 지방은 나쁘다"는 논리를 절대 선인 양 밀어붙인다. 하지만 국토균형발전을 뛰어넘는 명분은 없다. 이제야 말로 SK가 착한 경제 논리의 첫 페이지를 써내려 가야 할 때다. 대구경북이 'HI' 한다면 SK가 'OK' 했으면 좋겠다.

2019-01-31 19:12:41

이상준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누가 신공항 갈등을 부추기는가

'영남권 신공항 갈등', '새누리당 텃밭 표심 양분', '국론 분열 부채질 신공항'…. 지난 2016년 6월 정부의 신공항 입지 발표를 앞두고 수도권 언론들이 쏟아낸 '헤드라인'이다.당시 수도권 언론과 정치권은 신공항 유치 경쟁을 영남권 전체의 갈등과 분열인 양 호도했다. 밀양(대구경북)-가덕도(부산) 입지 경쟁을 대구경북과 부산의 갈등 구도로 몰아가는 데 급급했다.당시 정부는 결국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결정했다. 다만 '김해공항 확장-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대구공항 통합이전)'을 대안으로 제시했고, 영남권 5개 광역자치단체장이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수용했다.영남권 신공항을 지역 갈등 구도로 몰아간 수도권 언론들은 김해공항 확장안에 대해선 '용비어천가'를 불렀다. 김해공항 확장을 최선의 방안으로 치켜세웠고, '콜럼버스의 달걀'이라는 둥 김해공항 확장의 장점을 부각하는데 집중했다.돌이켜보면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는 수도권 중심 사고가 빚어낸 파국의 연속이었다. 수도권 언론은 앞서 2011년 4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신공항 백지화 발표 역시 국익과 나라를 위한 주장으로 미화했다.이명박 전 대통령의 발표 내용은 '공약 버리고 국익 선택했다…MB 고뇌의 결심' 등으로 포장한 반면 신공항 건설을 염원하는 영남권은 지역 이기주의에 매달리는 집단으로 깎아내렸다.안타까운 현실은 연이은 백지화 과정에서 불거진 수도권 언론의 '갈등' 프레임이 또 먹히고 있다는 점이다.오거돈 부산시장이 지난해 선거 기간은 물론 당선 이후에도 "가덕도 신공항을 재추진하겠다"고 재차 입장을 밝히면서, 수도권 언론들은 "자칫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을 둘러싸고 영남 지역 5개 지자체들이 지난 10년간 빚어 온 극심한 마찰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갈등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이즈음에서 대구경북과 부산이 더 이상 해묵은 갈등관계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지난 민선 7기 출범과 함께 대구시와 경북도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설 사업에 따른 민간·군사공항 통합 이전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또 현재 부산의 가덕도 신공항 추진은 대구경북뿐 아니라 부산·울산·경남의 이해관계 역시 첨예하게 얽혀 있다는 점에서 밀양과 가덕도의 입지 경쟁 양상으로 치달았던 지난 갈등과는 출발부터 다르다.특히 경남은 소음 피해를 이유로 김해공항 확장안에 반대했지만, 그렇다고 가덕 신공항 재추진에 가타부타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경남 내부적으로도 지리산권과 남부해안권, 중부권과 동부권 등 지역에 따라 이해관계가 달라 섣불리 의견을 내세웠다간 심각한 반발에 부딪힐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대구경북은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이달 16일 제안한 '선(先)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후(後) 가덕도 신공항 논의'라는 전략·전술을 고민해볼 가치가 충분하다.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대로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 사업을 먼저 확정 지은 뒤 부산의 가덕도 신공항 문제 등을 차례대로 풀어나가자는 의미다.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대구경북과 부산이 더 이상 적(敵)으로 만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의 최우선 당면 과제는 대구경북과 부산이 '지방공항 무용론'의 수도권 중심 사고부터 타파하는 것이다.

2019-01-24 16:22:11

최두성 정치부 차장

[청라언덕] 예천군의회 사태의 교훈

지방의원을 지낸 한 인사에게 물었다. 되돌아본 의원 시절, 가장 후회스러운 게 뭐냐고.그는 "딱히 자랑할 만한 것을 해놓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데도 탈 없이 의원 생활을 마무리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고 했다.세비를 축냈다는 데 대한 참회를 하면서 최근 물의를 빚은 예천군의회 사태에서와 같은 지탄을 피해간 것에 대한 안도감을 에두른 것이었다.그 역시 문제가 되고 있는 '외유성' 해외연수(공무 국외여행)의 경험자였다. 그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해외연수를 떠나지만 준비 부족과 현지 사정 등으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여행사를 통하다 보니 여행 스케줄에 연수 일정을 끼워 넣는 방식이어서 수박 겉핥기식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그럼에도 당시에는 그런 연수가 의정 활동의 보상으로 인식돼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의원'이라는 직함이 부지불식간에 특권 의식을 잉태했고 느슨한 감시가 특권 의식의 실행을 부추겼다"고 고백했다.군의원의 가이드 폭행으로 촉발된 예천군의회의 해외연수 파문이 공분(公憤)을 사면서 지방의원 해외연수 무용론이 확산하고 있다.베트남으로 떠났던 경북시군의회 의장들은 여론의 뭇매에 서둘러 귀국했고, 전국 곳곳에서 부적절한 해외연수 사례도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여러 의회가 계획했던 해외연수를 취소하고, 급기야 임기 내에는 해외연수를 가지 않겠다는 의원들의 선언도 나온다.그간의 지방의원 해외연수가 단단히 잘못 운용됐음을 의회가 자인하는 것 같아 어이가 없다. 또한 거기에 예산이 허투루 쓰였으니 세금 낸 입장에서 화도 난다.물난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해외연수를 떠났다가 이를 질타하는 국민을 한 의원이 들쥐의 일종인 '레밍'에 비유해 국민적 공분을 샀던 일이 불과 2년도 안 됐는데.이럴 때 "우리는 해외로 연수를 간다"며 떳떳하게 밝히는 사례라도 있다면 부적절한 사례가 일부의 '일탈'이라 여기기라도 하겠건만 한 곳도 없다는 것이 지방의회의 실정 같아 서글프기까지 하다.그나마 의회의 자정 노력이 펼쳐지고 있고 정부도 ▷셀프 심사 차단 ▷부당 지출 환수 방안 마련 ▷정보공개 확대 ▷페널티 적용 등의 내용을 담은 '지방의회의원 공무 국외여행 규칙' 개선 방안을 내놓겠다고 하니 또다시 속는 셈치고 지켜보는 수밖에.문제는 이번 사태로 폐지론까지 들먹여지고 있는 지방의회의 앞날이다.문재인 정부 들어 국가 사무의 지방 이양 확대와 지방재정 확충 등 지방분권을 강화하고 있고 지방분권, 지방자치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될수록 지방의회 역할은 막중해질 수밖에 없다. 거시적 시각이 아니더라도 지방의회는 지방정부가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감시와 지원을 하고, 또 주민의 의사가 지방정책에 제대로 포함될 수 있도록 추동하는 일꾼이다.내 삶과 직결된 지방의회가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의원 개개인의 노력이 있어야겠으나, 우리 또한 전직 의원의 말처럼 감시에 소홀함이 없었는지, 지난 지방선거 때 신중하지 못했던 나의 한 표가 만들어낸 결과물은 아닌지 되짚어보자."군의원을 잘못 뽑은 우리의 잘못"이라며 속죄의 108배를 올린 예천군민들의 절규는 이번 사태가 우리에게 던진 진정한 교훈이 아닐까.

2019-01-17 17:09:22

권성훈 문화부 차장

[청라언덕]양두구육과 지록위마

시중에는 문재인 정부를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정권이라 비꼬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 지인들과 술자리를 하다 보면 이 말로는 뭔가 성에 안 찬다고 불평하는 이들이 많다.지난 연말 자유한국당 새 원내 사령탑이 된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해 마지막 날 열린 '청(靑) 민간인 사찰 의혹 규명' 국회 운영위원회 자리에서 현 정부를 향해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험한(?) 사자성어를 동원해, 일침을 날렸다. 지역의 보수적인 인사들은 이 사자성어로 인한 스트레스 해소 점수를 80점 정도 줬다. '양의 머리를 문에 걸어 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이 말은 현 정부의 이중성(겉은 선한데, 속은 거짓과 속임수로 꽉 참)을 드러내는 데에는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했다.'양두구육'의 유래를 살피자면,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 영공(靈公) 때의 남장 여인 스토리다. 영공이 궁 안에서 남장 여인을 만들어 즐긴다는 소문이 퍼져, 나라 도처에 유행처럼 남장 여인이 넘쳐났다. 이 소문을 듣고 영공은 왕명으로 남장 여인을 금지했는데, 영이 서지 않았다. 지혜로운 충신인 안자는 "폐하(陛下)께서 궁중 안에 남장 여인을 허용하시면서, 궁 밖에서는 금하시는 것은 마치 양의 머리를 문에 걸어 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파는 것과 같다"고 조언했다.'지록위마'(指鹿爲馬) 정권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라는 뜻이다. 사전적으로는 사실(事實)이 아닌 것을 사실(事實)로 만들어 강압으로 인정하게 만드는 의미다.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제기한 '청와대 직원의 업무추진비 사용내역', 김태우 전 청와대 감찰반원이 폭로한 '청와대 각종 비리의혹 폭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발설한 '적자국채 발행 의혹 및 KT&G 사장 교체 부당개입' 등의 사태를 지켜볼 때, 현 정권과 여당(더불어민주당)은 '지록위마'라고 미리 해석·판단을 다 내린 후에 메신저(내부 고발자)를 무차별 공격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지록위마'는 사기(史記)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나오는 얘기다. 진나라 시황제가 죽자, 환관 조고(趙高)는 태자 부소(扶蘇)를 죽이고 어린 호해(胡亥)를 황제로 삼았다. 조고는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폐하(陛下), 말(馬)을 바치오니 거두어 주시오소서." 이후 조고는 '말'이라고 긍정한 이들은 살려두고, '사슴'이라고 부정한 이들은 누명을 씌워 다 죽였다. 그 후 궁중에는 조고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권력은 양날의 칼이다. 전 정권을 적폐로 몰아세워 휘둘렀던 서슬 퍼런 칼이 도로 현 정부를 향하고 있는 형국이다. 차라리 '견두구육'(개의 머리를 올려 놓고, 개고기를 판다)이라고 하면, 그나마 '양두구육'이라는 조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정부에 불리한 사건이나 사태가 발생했을 때, 메신저나 내부 고발자를 공격하기보다 실체 파악이 우선이라는 자세를 가질 때 '지록위마'라는 비꼼을 피해갈 수 있다. 적어도 도덕적이고 깨끗한 정부를 지향한다면, '내로남불'이라는 단어조차 입 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진실하게 국민 앞에 다가서야 한다.

2019-01-10 12:20:11

정욱진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새해엔 희망의 언어들만 가득했으면…

2019년 새해 아침이 밝았다. 매년 이맘때는 주변 사람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며 희망을 빌어주는 시기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낸 대구경북에도 똑같이 빌어주고 싶다. '한 해 마무리 잘했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새해 1월 1일 영천 고경면 국립영천호국원서 합동 참배를 했다. 두 사람이 새해 벽두부터 손을 맞잡은 것은 올해를 대구경북 상생협력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특히 시장과 도지사가 새해 첫날 나라를 위해 희생한 호국 영령들에게 함께 참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이날 참배가 끝나고 시장·도지사는 물론 양 시·도 고위 공무원들은 영천시내 한 전통시장에서 국밥으로 점심식사를 했다고 한다. 한 참석자에 따르면 한창 국밥을 먹던 이 도지사가 "오전에 참배하면서 호국 영령들께 올해는 반드시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사업이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빌었다"고 했단다.그러자 권 시장도 "요즘은 오로지 대구경북의 상생, 교류, 발전밖엔 생각하지 않는다. 경북이 잘돼야 대구가 잘산다"라고 화답해 웃음꽃을 피웠다고 다른 참석자가 전했다. 이어 권 시장과 이 도지사는 1월 16일 시장·도지사 교환근무 때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이 이전할 경북 군위와 의성을 함께 찾아 이전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기로 약속했다.이렇듯 새해 들어 양 시·도가 차려 놓은 밥상에 기대가 부푼다. 새해 벽두부터 시작한 시장도지사의 합동 참배에 이어 시·도는 국·과장급 인사 교류, 1월 16일 시·도지사 교환근무와 구미문화예술회관에서 대구경북 상생협력 신년음악회를 열 예정이다. 아울러 공동 관광상품 개발 및 공동 관광기금 조성, 상생장터 개설 등 다양한 협력 과제를 1월부터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또 경제산업·문화관광·사회인프라·환경·행정 등 5개 부문에 걸쳐 기존 도입한 35개 과제에다 올해도 13개 과제를 추가해 모두 48개의 상생협력 과제를 추진할 방침이다. 특히 문화관광 분야가 빛날 전망이다. 2021년까지 대구경북 상생협력관광 정책을 추진해 대구경북을 하나의 관광권역으로 발전시킨다는 구상인 것. 오페라, 뮤지컬, 서문야시장 등 찾아보는 대구의 관광 상품에다 안동, 경주, 고령의 전통과 유서 깊은 문화재를 연계하면 인구 550만 명의 메가 관광시티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게 복안이다.대구시 관계자는 "지난 2016년 대구경북은 '중화권 대구경북 방문의 해'를 선정하고 중화권 관광객 20만 명을 포함한 모두 56만 명의 외국 관광객을 유치해 전년 대비 관광객 규모가 43% 성장하는 등 광역 관광지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대구의 현안인 대구경북 통합신공항과 대구 취수원 이전 등은 대구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경북과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 하지 않으면 문제 해결이 힘들다. 일자리를 만드는 일이나 국비 확보를 위한 행정시스템을 갖추는 일 등에서도 협력하면 효과가 배가된다. 앞으로의 시대는 광역행정 및 협업행정이 필수다. 시장·도지사의 새해 상생 행보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황금돼지의 해' 2019년은 돼지의 기운을 받아 대구경북에 희망의 언어들만 가득하길 기대해 본다.

2019-01-03 13:31:21

한윤조 경제부 차장

[청라언덕] '사람을 갈아넣는' 경제는 그만

찰스 다윈의 1859년 '종의 기원'을 시작으로,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모든 생물의 행동은 적자생존과 약육강식 원칙에서 시작한다"고 설파했다. 도킨스에 앞서 '적자생존'이라는 문구를 사용한 이도 있었다. '생물학의 원리'(1864)라는 책을 쓴 허버트 스펜서다. 그는 '적자생존' 이론을 자연과학을 넘어 사회과학, 특히 경제 이론에 접목시켰다.동물의 진화를 설명한 이들의 과학 이론은 경제 논리에도 상당 부분 '이용'됐다. 이들이 원한 바는 아니었을 테지만 '무자비한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적 배경에 생물학적 이론이 자주 동원되는 탓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을 짓밟고 이겨야 하는 것이 당연한 원리고, 최고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하며,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극단적 이기심에 일종의 면죄부마저 제공한다.인간의 편리한 생활을 위해 만들어낸 '돈'은 사람을 배신했다. 급기야는 돈을 위해 사람이 죽는 처연한 풍경이 일상화했다. 올 한 해 읽은 수많은 기사 중 마치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멍하게 만든 표현이 있었다. 바로 '사람을 갈아 넣는'이라는 수식어였다. 저임금과 위험한 노동현장에 사람을 혹사시키는 자본주의의 비정함을 드러내는 적나라한 표현이다.비용을 줄이기 위해 2인 1조의 근무 원칙을 지키지 않고 혼자 근무하다 참변을 당한 비정규직 김용균 씨 사건은 돈의 논리에 사람의 목숨이 희생당한 대표적 사례다. 이 외에도 우리 주변에는 사람을 희생시켜 돈을 버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빨리빨리'를 외치는 국내 음식 배달시장은 피 튀기는 전쟁터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7년 6월까지 음식업 배달원의 산재 사고 사상자 규모는 8천447명에 달하며, 사망자는 164명이다. 이마저도 배달 대행업체와 계약을 맺은 이들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당일 배송'을 앞세운 온라인 배송시장도 '사람을 갈아 넣는' 대표적 업종 중 하나이고, 밤샘 노동이 기본이지만 정당한 대가조차 받지 못하는 게임산업, 기술교육 등을 명목으로 최저임금조차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며 혹사당하기 일쑤인 미용업계, 여전히 '태움'을 강요하면서 살인적인 업무와 열악한 처우를 감당해 내고 있는 간호사 문제 등 경제 전반에 걸쳐 사람을 희생시켜 한 푼이라도 더 벌려는 악한 경쟁 논리가 판을 치고 있다.하지만 이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 인류 문화의 발전을 이끌어온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윤리와 도덕을 지키는 이타적인 협력 행위라는 사실이다. 혼자만 살아남겠다고 무한경쟁만 벌였다면 이미 오래전 인류는 멸망하지 않았을까. 최근 '수축사회'라는 책을 통해 한국의 사회경제 현실을 진단한 홍성국 전 대우증권 사장은 "자크 아탈리 등 석학들이 주장하는 지구촌 차원에서의 공생과 이타적인 삶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수축사회 해결의 유일무이한 방안"이라고 진단했다.며칠 전 본 영화 '더 포스트'에서 워싱턴포스트지의 사주였던 캐서린의 남편은 신문을 두고 '역사의 초고'라고 했다. 2019년에는 제발 역사의 초고인 신문 지면에 더 이상 돈을 위해 '사람을 갈아 넣는' 기사가 쓰여지지 않고 '공존'의 사례가 가득 기록되길 바란다.

2018-12-27 17:41:47

사회부 장성현 차장

[청라언덕] 보일러가 고장났다

보일러가 고장 났다. 엄동설한에 보일러가 고장 나다니 이렇게 난감한 일이 없다. 집 안에는 냉기가 감돌고 수도꼭지에는 찌릿한 찬물이 흘러나왔다. 열두 살이 된 낡은 보일러는 팔순 노인처럼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부랴부랴 수리를 문의했다. 이것저것 고장 난 부품을 교체하는 데에만 수십만원이 든단다. 이참에 새 보일러로 교체하기로 했다.보일러는 기깃값도 비싸지만 설치비도 만만치 않다. 반드시 보일러 관련 면허를 소지한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가스보일러 설치는 반드시 고압가스 자격증과 온수 온돌 자격증 등 관련 자격증을 갖추고, 가스안전공사의 안전교육을 받은 뒤 지방자치단체의 가스시설시공업 허가를 받은 사람이 해야 한다.보일러를 설치하러 온 설비업체 대표는 강릉 펜션 참사 얘기를 꺼냈다. 10대 청소년 3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의 원인으로 보일러 본체와 배기관 사이로 누출된 배기가스가 지목됐기 때문이다. 업체 대표는 "평소보다 신경이 쓰인다"며 배기관 사이의 연결 부위를 바짝 조이고 실리콘으로 꼼꼼하게 마감했다. 가스 배관에는 비눗방울을 발라 가스 누출 여부도 확인했다. 설치가 끝난 보일러 본체에는 시공자와 시공자 등록번호, 시공관리자 이름 등을 적어 단단하게 붙였다.그는 "강릉 펜션에 설치된 보일러는 분명 무자격 업체나 건축주가 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업체 대표의 확신은 단 하루 만에 사실로 확인됐다. 강릉 펜션에 보일러를 설치한 업체는 가스통 판매 자격만 있고, 가스시설시공업에 등록하지 않은 무자격 업체였다. 십수만원을 아끼려 전문 지식도 없는 업체에 시공을 맡긴 게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는 끔찍한 결과로 나타난 셈이다.배기관과 보일러 본체가 어긋나 있던 것 외에도 무자격 업체의 시공 자체가 잘못됐다는 의견도 있다. 강제급배기 방식의 보일러 연통은 끝에 배기구가 있고 주름관으로 된 급기관이 있다. 급기관은 반드시 메인 급배기연통의 위쪽으로 연결돼야 한다. 급기관이 아래로 처지거나 구부러져서도 안 된다. 연통을 통해 결로나 들이친 빗물이 급기관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다.하지만 사진상에서 본 강릉 펜션의 보일러는 급기관이 약간 옆으로 연결돼 있고, 급기관이 아래로 처져 있다. 급기 통로를 통해 보일러 내부로 물기가 들어갈 수 있는 구조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거나 매뉴얼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무자격 업체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설치한 셈이다.문제는 위험하게 설치된 보일러가 대구에 얼마나 있을지 파악조차 어렵다는 점이다. 보일러를 시공해준 업체 대표는 "노후된 단독주택에 설치된 LPG 보일러는 인테리어 업체나 무자격 설비 업체가 보일러를 달아주는 경우가 많다"고 걱정했다. LPG를 연료로 쓰는 대구의 단독주택은 7만2천 가구나 된다.사고가 터지면 누구나 규정 미비를 내세운다. 하지만 이번 사고는 규정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비용을 아끼려는 건축주의 안일한 인식과 연통을 잘못 연결한 무자격 설치업자의 책임이 가장 크다. 일산화탄소 경보기나 안전 규정 강화는 부차적인 문제다.안전은 누군가가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사고 예방의 가장 큰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집에 설치된 보일러 연통을 한두 번 쓱 살펴보기만 해도 끔찍한 사고는 막을 수 있다.

2018-12-20 19:36:56

사회부 차장 이창환

[청라언덕] TK 신당, 명분없다

대구경북(TK) 신당론이 연말 지역 정치권을 술렁이게 하고 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비박계가 자유한국당을 장악할 경우 TK를 중심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앞세운 신당이 만들어진다는 시나리오다. 박 전 대통령이 내년 4월 일부 혐의에 대해 구속 만기로 출소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신당론은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결론적으로 TK 신당론은 박 전 대통령과 지역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TK 신당을 만들어서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탄핵에 수감까지 온갖 수모를 겪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회한과 연민을 TK 신당을 통해서라도 표출하고 싶다는 심정은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렇다고 적전 분열이 불 보듯 뻔한 TK 신당이 해답이 될 수 없다.친박계를 중심으로 한 TK 신당이 만들어지면 누가 참여하겠는가? 한국당 공천에서 탈락한 정치적 낭인들이 모여 박 전 대통령의 치맛자락을 붙잡게 될 것이다. 참신하지도 능력도 없는 공천 탈락자들이 전직 대통령을 소수파의 수장으로 옹립하려는 것은 명분 없는 행위다. 국회의원 몇 명을 보유한다고 박 전 대통령의 명예가 회복되겠는가. 친박계가 자신들의 정치 생명 연장을 위해 박 전 대통령을 이용하려는 얄팍한 정치 술수로밖에 비치지 않는다.시간을 작년으로 돌려보자. 박 전 대통령이 탄핵에 이어 구속 수감되는 과정에서 스스로 희생한 친박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의원직을 사퇴하고 정계를 떠난 친박 국회의원도 없었다. 수장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 제 몸 살기에 바빴던 게 친박계 인사들이었다.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참여 정부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고 친노조차 지리멸렬하자 '폐족'이라며 참담한 반성문을 썼다. 이런 반성문은 고사하고 총선이 다가오고 자신들이 정치적으로 어려움에 빠지자 다시 박 전 대통령에게 기대려고 한다.정치인들이 정당을 만드는 것은 자유다. 그래도 염치는 있어야 한다. 무슨 염치로 박 전 대통령의 옷자락을 다시 잡으려고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그럼에도 TK 신당론은 한국당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원내대표 선거 과정에서 TK 신당론은 친박계 지지를 등에 업은 나경원 신임 원내대표가 승리하는 데 도움이 됐다. 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나 원내대표가 압승한 데는 분당을 우려한 초재선 의원들과 중도파들이 지지한 게 한몫했다.TK 신당론 연기만 피웠을 뿐인데 한국당이 움찔하는 꼴이다. 원내대표 선거에서 TK 신당론의 파급을 확인한 친박계는 내년 2월 전당대회와 다음 총선 과정에서도 연기를 피우려 할 것이다. 하지만 TK 민심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다.TK 신당론은 애초 여권의 정국 운영 전략이다. 정권 지지율이 떨어지고 민심 이반이 가속화되면 '국민 통합'이라는 명분으로 박 전 대통령을 출소시켜 보수 분열을 노린다는 게 여권 인사들의 계산이다. 보수가 분열하면 다음 총선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TK 신당론이 여권의 '꽃놀이패'인 이유다.지금의 TK 신당론은 여권이 박 전 대통령 거취 카드를 만지지도 않았는데 한국당 스스로 제 발이 저린 형국이다. 명분 없는 정치가 당장은 성공한 듯 보이지만 결국 흔적 없이 사라진 사례는 무수히 많다.

2018-12-13 15:32:04

임상준 경북부 차장

[청라언덕] 사투리의 품격(品格)

대학 시절 남도에서 상경한 동무와 실랑이를 벌인 적이 있다. 친구는 조선시대는 전라도 말이 표준어였다는 논리를 폈다. 경상도 짝꿍과 함께 단번에 '머라카노'로 응수했다. '경상도' 사투리가 임금이 사용하는 언어였다고 큰소리쳤다.골치 아픈 상소가 거듭 있으면 "제발 쫌(그만 좀 하시오)"이라 했으며 중전에게는 "밥 뭇나, 아는, 자자"라고 속삭였다고 우겼다. 부부싸움이라도 할라치면 "가스나, 자꾸 이 칼래, 치아라 고마"로 꼰대 남편임을 스스로 자임했다는 억지도 곁들였다. 어쨌거나 지방에서 올라온 서울 새내기들의 사투리 자존심이 벌인 일화로 기억된다.경상도 사투리가 전국에서 먹힐 때가 있었다. 경상도 말을 쓰면 사윗감으로 80점은 먹고 들어간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수십 년간 TK(대구경북) 정권을 가지면서 국가 요직 등은 TK 인사들이 꿰찼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다.요즘은 경상도 조폭들의 걸걸한 사투리도 스크린에 걸리고 전파를 탄다. 말의 흥망성쇠는 곧 그 지역의 부침과도 연관이 있다는 점을 실감케 한다.라틴어(교황청 공용어)는 현대의 영어에 필적할 정도로 번성했다. 현재는 교황청 바티칸의 언어로 통하며 극히 제한적으로만 사용하고 있다. 규칙이 많고 외울 게 많아 언어의 경제성에서 실패했기 때문이다.하지만 라틴어는 여전히 품격 높은 언어로 인정받고 있다. 다양한 격 변화가 철저한 규칙 속에 이뤄지는 까닭에 '신의 말씀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언어'란 찬사가 붙는다.언어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소쉬르는 '언어 가치'(linguistic value)란 개념을 설파했다. 각 낱말의 대립에 의해 낱말의 언어 가치가 보장된다고 봤다. 화폐에 비유하자면 10원짜리 동전은 100원짜리나 5원짜리 같이 높거나 낮은 동전과 대비된 위치에 의해 가치를 지닌다.이는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사투리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 것과 맥락을 함께 한다. 이 지사는 "경상도 사람은 진짜 뛰어나다. 사투리도 잘 쓰고 표준말도 잘 알아 듣는다"는 농담을 자주한다. 지난 경북도 국정감사 때는 일부러 사투리를 섞어 쓰기도 했다. 그만큼 경상도 말의 가치를 올리려 노력한다. 잃어버린 경북을 되찾겠다는 투지(?)가 말에 녹아 있다.말이 행동을 규정한다는 소쉬르의 주장처럼 사투리로 투영된 경북의 기질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여는 데 일조했다고도 할 수 있다. 경북은 한반도에서 처음 통일국가(신라)를 세웠고, 낙동강 전투를 승리로, 새마을 운동으로 한국의 근대화를 이끌었다.경북의 위상이 현재보다 더 추락한다면 '우리 사투리'가 품격을 깎아먹는 말로 치부될 수 있다. 나라가 흥해야 말이 흥하기 때문이다. 사투리가 쇠퇴할수록 우리의 기질도 잃게 된다.하지만 라틴어처럼 도백은 도백답게, 도민은 도민답게 각자 주어진 역할에 맞게 행동한다면 경상도 말은 품격 높은 언어로 경북 기질을 계승하지 않을까. 나아가 대통령도, 민정수석도, 대법관도, 광주시장도, '~답게'를 할 때 대한민국의 격도 저절로 올라갈 것이다. 사투리의 품격을 기대한다.

2018-12-06 17:47:44

이상준 경제부 차장

[청라언덕] 대구 아파트 브랜드 10개 키우기

#우방, 청구, 보성…. 1990년대 빅3를 내세운 대구 아파트 브랜드는 전국 최고의 지명도를 자랑했다. 연극인 박정자가 등장한 '우방에서 살아요' 광고 카피는 우방을 국내 최고 아파트 브랜드로 각인시켰다.당시 우방 등 대구 주택건설업체가 구축한 아성은 외지 건설사가 넘볼 수 없었다. 수도권 대형업체들도 대구에 내려오면 자체 브랜드로 영업이 안 돼 지역 업체 브랜드를 빌려야 할 정도였다.#2018년 현재, 대구 아파트 브랜드의 아성이 무너져 내렸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대구 토종 건설사들의 경쟁력이 점점 약화한 때문이다.유례없이 뜨거웠던 올해 분양시장에서 대구 아파트 브랜드는 아예 종적을 감췄다. 매일신문과 주택건설 광고대행 전문업체 ㈜애드메이저 분석 결과(본지 10월 11일 자 1'3면 보도) 9월 현재 올해 26개 대구 아파트 단지 분양 총액 4조3천792억원 가운데 대구 아파트 브랜드 몫은 4개 단지 2천588억원, 5.9%에 불과했다. 나머지 4조1천204억원, 94.1%를 역외 브랜드가 가져갔다.대구 아파트 브랜드가 불과 20년 만에 지리멸렬한 근본 원인은 수적 열세에 있다. 올해 전국 시공능력평가(시평) 100위권 대구 주택건설사 브랜드는 화성산업(43위)의 화성파크드림, 서한(46위)의 서한이다음, 태왕(91위)의 태왕아너스 등 불과 3개뿐이다. 현재 500가구 이상의 아파트 사업을 진행할 만한 대구 기업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이에 반해 1990년대 대구 주택건설사 브랜드는 차고 넘쳤다. 우방 등 7개 지정업체와 14개 등록업체를 합쳐 모두 21개 업체가 시평 100위권 수준의 브랜드 파워를 자랑했다.지역 주택건설업계는 대구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면 최소 10개 이상의 아파트 브랜드를 다시 키워내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전남·광주 지역 경우 올해 시평 100위 이내에 호반건설주택(13위) 등 무려 13개사가 이름을 올리며 서로 밀고 끌어주는 상생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다행스러운 점은 젊은 경영자가 운영하는 토종 업체들이 나름 기반을 다지며 주택건설업의 기반을 넓혀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 전국 최고의 주택건설 도시로 명성을 떨친 지역에는 성장 잠재력을 보유한 군소 업체가 여전히 적지 않다는 의미다.대구 아파트 브랜드 키우기에는 지방정부의 역할도 절대적이다. 대구시는 이미 이달 12일 재건축 사업에 대한 지역 업체 용적률 인센티브를 전국 최대(20%)로 확대하는 등 다양한 정책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이에 더해 업계는 민간 영역에서 수도권 거대 자본과 경쟁하기 어려운 토종 업체에 지방정부가 추진하는 공공택지 분양만큼이라도 우선 참여권을 주는 등 실질적 제도 마련과 지원 방안을 주문하고 있다.건설은 경기 부양에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 산업이다. 후방 연쇄 및 네트워크 효과가 강력한 산업으로, SOC나 공공택지 조성 과정에서 지방정부의 지원과 개입이 충분히 가능하다.여기에 지역 업체 스스로 수도권 거대 자본과 맞서 지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변화의 노력을 뒷받침한다면 대구 아파트 브랜드 10개 키우기가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2018-11-29 16:35:22

경북부 최두성 차장

[청라언덕] 진영 싸움 안 될 새마을운동

2008년, 대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타지의 지인으로부터 "견딜 만하냐"는 안부를 듣는 때인 8월 초에 기자는 한낮 뙤약볕이 내리쬐는 수성구 두산오거리 인근에 서 있었다. 수성구청의 '폭염축제' 현장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구청은 두산오거리와 들안길을 잇는 10차로 도로의 5개 차로를 막아 축제의 장을 만들었고 그 공간에 다양한 즐길 거리를 채워 시민들을 기다렸다.더운 도시 대구의 부정적 이미지를 숨기지 않고 축제의 주제로 끌어낸 아이디어에 참신하다는 평가도 나왔으나, '폭염'이라는 말에 손사래 치는 사람들이 더 많아 축제의 흥행에는 의문부호가 붙었다.그러나 축제는 첫날부터 '대박'을 쳤다. 지켜본 축제 현장은 '뜨거워서 기쁘고, 뜨거워서 신나고, 화끈해서 시원한' 축제 슬로건과 흡사했다.핸디캡으로 여겼던 대구의 더위를 상품화한 '발상의 전환'이란 평가가 나왔고, 구청 측은 "축제 사흘 동안 다녀간 이들이 50만 명이나 됐다"며 도심의 대표축제로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축제는 2010년에는 80만 명을 불러들였고 초등학교 교과서에 소개되기도 했다.'명품축제' 탄생의 기대감과 달리 축제의 수명은 길지 않았다. 2010년 구청장이 바뀌자, 구청 측은 교통 체증을 이유로 잠정 중단을 선언했고, 이듬해부터 축제는 열리지 않았다.바뀐 구청장의 전임 구청장 '업적 지우기'라는 수군거림이 나왔다. 전·현직 구청장은 선거로 감정의 골이 팰 대로 팬 상태여서 추측엔 힘이 실렸다.아이러니하게도 그 폭염축제 역시 대구 대표축제로 자리 잡아가던 들안길 맛축제를 밀어내고 시작됐고 폐지 또한 도돌이표였다.10년 전 기억을 소환한 건, 최근 뜨겁게 달궈졌던 구미시의 '새마을과 폐지' 논란 때문이다.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으로, 또 '새마을운동 종주 도시'를 자부하는 구미에서 새마을과는 하나의 행정부서 의미를 넘어서기에, 진보 진영 시장의 업무 추진에 반발이 일었다. 보수 진영에서는 '박정희'와 '새마을운동'의 상징성을 송두리째 뽑아내겠다는 의도로 봤고, 거세게 저항했다.구청의 축제 이야기를 새마을운동에 끄집어낸 건 새마을운동이 진보-보수의 진영 싸움으로 다뤄져서는 안 된다는 맥락에서다.새마을운동은 개발도상국이 배우고 싶어하는 경제 발전 모델이다. UN은 2007년 새마을운동을 아프리카 빈곤 퇴치를 위한 새천년 마을 계획 프로그램으로 채택했고 관련 기록물은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하지만 국내에서는 '공'(功)과 '과' (過) 논란이 계속됐고, 정권의 성향에 따라 공과의 평가는 들쭉날쭉했다. 그래서 현 정부의 적폐 청산 기조에 '공'마저 묻혀 휩쓸려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온다.새마을운동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은 다행히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와 구미시의 새마을과 명칭 유지로 일단락됐다.하지만 언제든 다시 불거질 소지가 다분하다. 이참에 보수 진영은 새마을운동의 '과'를, 진보 진영은 '공'의 보고서를 작성해봄은 어떨까. 이를 통해 논란의 마침표를 찍을 답을 찾아보자. 어쨌든 새마을운동은 우리가 만들어낸 '글로벌 브랜드' 아닌가.

2018-11-22 16:04:00

문화부 권성훈 차장

[청라언덕] 문재인 정부는 '이대팔' 정부

지난해 5월 9일 대선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 19개월째에 접어들었다. 5년 집권 기간의 3분의 1이 지난 셈이다. 박근혜 정부가 탄핵으로 파탄나지 않았다면, 지난해 연말에 대선이 치러졌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기 5년을 무사히 마치고, 정상적으로 대선이 치러졌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그래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현 상황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임기 3분의 1이 지난 현시점에서 문재인 정부를 들여다보자.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 남북평화시대로의 문을 활짝 연 대통령, 약자를 대변하는 정부가 될 것이고, 부정적인 것을 앞세운다면 경제를 망친 정부, 과거에 집착하는 정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긍정적 평가도 내막을 보면 오히려 포장돼 있다. 한마디로 '붕 뜬' 정부다. 남북평화시대를 열었다고 하는데, 북한이 뭐가 바뀌었나. 국정원 2차장이 14일 국회 정보위에서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핵개발과 핵탄두 소형화 작업을 계속 진행 중으로 보인다"고 발언했고, 국방부 장관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런 엄중한 현실을 외면한 채 문 대통령은 핵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을 설득하기보다 오히려 해외 정상들에게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제재를 먼저 해제하는데 협조해달라고 애걸복걸한다. 그러나 외국 정상들은 대부분 고개를 저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공조는커녕 핵 문제를 풀기 위한 해법이 물과 기름 같다.약자를 대변하는 정부라는 명분도 무늬만 그럴 뿐 오히려 약자들을 더 큰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정부에서 수십조원의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일자리는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다. 영세 자영업자들과 경제적 약자들의 아우성은 하늘을 찌르고 있지만, 경제 투톱(경제부총리, 청와대 정책실장)이 바뀌어도 소득주도성장의 기조(최저임금제, 주 52시간 근무제 등)는 그대로다. 문 정부의 경제정책은 시장경제가 잘 돌아가도록 간접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개입해 '보이지 않는 손'(공급과 수요에 의해 돌아가는 시장의 기본원칙)을 무력화시켜 총체적 난국을 만들고 있다. 경제정책이 국민경제와 따로 놀고 있다는 방증이다.부정 평가에서 역설이나 반전이 있으면 좋겠지만, 실상을 보면 더 절망적이고 암담하다. 이 정부를 '이대팔' 정부라 일컫고 싶다. 이대팔은 단어 그대로 2대 8을 의미한다. '10'이라는 역량이 있을 때 미래를 위해 8을 쏟고, 과거를 반성하고 치유하는데 2를 쏟으면 미래지향적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문 정부는 정반대다. 완벽하게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아직도 박근혜 정부의 실정을 부각시키는데 온 정열을 쏟아붓고 있다. 모든 과거사를 '적폐'(積弊)로 규정 짓고, 두 전직 대통령을 평생 감옥에서 보내게 할 작정으로 몰아붙이고 있다.특히 대구경북을 낡아 빠진 보수의 근거지로 보고, 정부 예산이나 인사에서 씨를 말리는 고사작전을 구사하고 있는 듯하다. 비판 세력인 야당(자유한국당)을 보는 시각은 핵으로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북한 김정은 정권과 그 간부들보다 더 싸늘하게 느껴진다.진정 평화와 약자를 위한다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로 답해야 한다. 더불어 부디 '이대팔'에서 '팔대이' 정부로 바뀌기를 간곡하게 부탁한다.

2018-11-15 17:55:01

정욱진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아쉬워 우물 파니 댐까지 지어달라?

A씨는 요즘 지옥 속에서 살고 있다. 동구 한 아파트에 거주 중인 그는 층간 소음에 안하무인격으로 나오는 위층 B씨 때문에 병이 날 지경이다. A씨의 기막힌 하소연을 들어보자.사연은 B씨의 아이가 태어나면서 생겼다. 늦은 밤까지 뛰어다니는 탓에 '쿵쾅'거리는 소리가 아랫집으로 고스란히 전달돼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정도가 됐기 때문이다. 관리실에도 항의해봤지만, 그때뿐이었다. 관리실 측에서도 B씨에게 '민원이 있으니 자제해달라'는 말 이외엔 할 수 있는 방도가 없다고 했다.시간이 가도 B씨 집 소음은 줄지 않았고, 아이가 뛰어다니는 시간도 점점 늘어났다. 견디다 못한 A씨는 장고 끝에 기막힌 '묘수'를 생각해냈다. B씨에게 이사를 권유한 것이다. 대신 B씨가 이사 갈 좋은 조건의 집도 구해주고 이사 비용 전액도 대주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B씨도 손해가 없다고 판단해 승낙했다.이후 A씨가 'B씨 이사 갈 집 구하기'에 전력을 다하면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괜찮은 조건의 이사할 곳도 여럿 생겼다. 이 조건, 저 조건 꼼꼼히 따져 가장 좋은 가격을 제시한 두 집으로 압축까지 해놨다. B씨가 둘 중 하나만 고르면 모든 일은 해결될 것으로 보였다.하지만 갑자기 B씨가 시큰둥해졌다.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A씨는 어리둥절했다. 인근 같은 조건의 아파트 중에 최고 조건을 제시한 집인지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보니 B씨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답답한 A씨에게 B씨는 현재 사는 집보다 더 넓은 평수로 옮기고 싶다는 언질을 슬쩍 보이는 게 아닌가.B씨는 "이왕 내보낼 거면 더 크고, 더 좋은 집으로 보내달라. 그렇지 않을 거면 잘살고 있는 이 집에서 내가 나갈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했다. A씨는 "그동안 소음 피해는 내가 고스란히 받았는데, 억울해서 잠을 못 이룰 지경이다"고 한탄했다.지금 대구시가 A씨 꼴이다. 통합 대구공항 이전사업이 지난 3월 14일 두 곳의 이전후보지(군위 우보면, 의성 비안면군위 소보면)를 선정한 이후 8개월가량 감감무소식이다. 진척이 없다 보니 지역 사회에선 다시 이전 반대 운동까지 불거지고 있다.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이전 반대를 외치던 목소리가 사그라졌지만, 또다시 지역 여론이 둘로 갈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특히 최근엔 대구시와 국방부가 통합 대구공항 이전사업비 규모를 두고 현격한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대구시가 제시한 K2 공군부대 건설비를 국방부가 거부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국방부가 추가 요구하는 사업비 증액 규모가 대구시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아예 넘어서, 통합이전 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지역 한 인사는 "통합 대구공항 이전사업은 특별법에 따른 '기부 대 양여' 방식이어서 종전 부지 매각대금으로 이전사업비를 모두 충당해야 한다"며 "그런데 '이왕 옮길 거면 좀 더 넓고, 화려한 시설을 갖췄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고집한다면 사업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했다.'좋은 곳으로 보내주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냥 여기 살래' 식의 태도는 수십 년간 소음 고통 속에 살아야 했던 대구 시민들을 두 번 죽이는 처사다. 국방부와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2018-11-08 23:00:00

경제부 차장

[청라언덕] '지방소멸', 정책 새 판 짜자

최근 후지산과 온천으로 유명한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2층짜리 별장이 1엔(약 10원)에 매물로 나와 세계 언론에 회자됐다. 이 집의 주인은 관리 비용이 부담스러워 수차례 매각을 시도하다 팔리지 않자 결국 공짜로까지 내놨지만 세금과 수리비 부담 때문에 이 집을 사겠다는 이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는 주인이 버리거나 세상을 떠나면서 생긴 빈집이 2013년에만 820만 채가 넘어 전체 주택의 13%를 차지할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이런 뉴스는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 초 이탈리아의 사르데냐섬의 작은 소도시 올로라이(Ollolai)시에서는 버려진 석조 주택을 단돈 '1유로'(한화 약 1천300원)에 내놨다. 인구 감소에 따른 유령 마을화를 막으려 시가 선택한 고육책이다. 이 외에도 이탈리아 라치오의 파트리카(Patrica), 토스카나의 몬티에리(Montieri), 시칠리아섬의 간지(Gangi) 등 9개 도시가 1유로 주택을 팔고 있으며, 영국 리버풀시도 2013년부터 '1파운드 주택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도 빈집이 수두룩한 대한민국의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시골의 소도시들은 이미 정착지원금까지 지급해가며 거주 인구를 늘리기 위해 안간힘이다. 올여름 한국고용정보원의 고용동향브리프 7월호에 실린 '한국의 지방소멸 2018' 보고서는 지방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줬다. 228개 시·군·구 가운데 지방소멸 89개(39%), 지방소멸위험 1천503개(43.4%)로 분석됐다.하지만 '지방소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자치단체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아무리 기를 써도 바뀔 기미조차 없다. 여전히 젊은이들은 서울로만 향하고, 지역에 뿌리내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대구 혁신도시로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하게 된 한 공기관 직원은 인터뷰에서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이 되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다시 서울로 가겠다. 모든 기회는 서울에 있다. 내 자녀가 더 많은 기회를 갖도록 해주고 싶다"고 했다. 입맛이 썼지만 이것이 지방이 처한 현실이다.이제는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신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구호로만 외치는 국토균형발전, '시혜성'으로 찔끔 던져주는 지방소비세 소폭 인상 등의 땜질식 처방이 아니라 국정운영의 틀을 바꾸는 수준의 대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일본은 2014년 우리와 마찬가지의 지방소멸 위험을 경고한 '마스다 리포트' 이후 이른바 '지방창생전략'이라는 국가 차원의 대책을 진행 중이다.젊은 세대의 도쿄 집중을 막고, 도쿄권에서 지방으로 이동하는 인구를 늘려 2020년에는 전입전출의 균형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도쿄권에서 지방으로 이전하는 기업에 대해 법인세 우대와 인재알선사업 등 유인책을 제시하고, 정부 관계기관의 지방 이전, 지방대학의 강화 등과 함께 젊은 세대에 매력 있는 지역 거점 핵심 도시를 만드는 정책도 함께 추진됐다. 이 정책은 현재도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2017년 20대의 25%가 지방 거주를 희망할 정도로 상황이 바뀌었다고 한다.우린 언제까지 '지방소멸'을 남의 일로만 치부한 채 수수방관할 것인가?

2018-11-01 19:43:17

사회부 차장 이창환

[청라언덕] 한 노(老) 사장의 노심초사

"대구시의 산업 정책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역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공인된 기술이 있는데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니까 경기가 더 침체되는 것 아닙니까?"배전반 제작 업체를 운영하는 60대 노(老) 사장은 답답함을 숨기지 못했다. 평생 중소기업을 운영하며 기술 개발에 열정을 쏟은 늙은 사장은 2년 전 10여 년간 공들여 개발한 배전반 제조 특허를 한국표준협회의 기술표준에 등록시켰다. 기술표준에 등록되면 누구나 해당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아무런 대가 없이 특허를 일반에 공개한 것이다. 지역 배전반 업체들도 이 기술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배전반은 고압의 전기를 받아 저압으로 배분하는 데 필요한 변압기, 차단기 등 각종 기기들을 넣어 놓는 패널이다. 아파트나 공장 등 전기를 사용하는 대형 건물에는 필수 설비다. 10억여원을 투자해 그가 개발한 자연대류형 배전반은 기존 폐쇄형 배전반의 열 정체 문제를 크게 개선했다. 기존 배전반은 전체 전기설비 화재의 45%를 차지할 정도로 화재에 취약하다. 대부분의 화재는 배전반의 과부하로 인한 열이나 절연 파괴로 단락이 생기면서 발생한다. 팬(Fan), 냉각수, 에어컨 등을 이용해 공기를 강제 순환시키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전기업계가 배전반 사용 연한의 법제화를 검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자연대류형 배전반은 이런 문제를 손쉽게 해결한다. 원리는 간단하다. 배전반 하부의 흡입구로 유입된 공기가 상승기류를 통해 상부 배출구로 빠져나가면서 열을 외부로 자연스럽게 배출시키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내부 열 10℃ 이상 하락, 제작 원가 12% 절감, 이산화탄소 배출 12% 감축, 변압기 이용률 12% 증가 등 여러 효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늙은 사장은 이 기술로 국내 각종 녹색기술 인증을 휩쓸었다.기술을 공개한 이유는 뭘까? "혼자만 이렇게 좋은 기술을 사용하면 내가 사업을 접으면 없어지게 된다. 배전반 업계 전체와 공유하기 위해 특허권을 포기했다."늙은 사장은 자연대류형 배전반 기술 확산을 위해 팔을 걷었다. "내 전공인 배전반 제조 분야만큼은 대구를 전국의 메카로 만들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이를 위해 조례 제정이 급선무다. 대구시의회가 조례를 통해 국내 기술표준이 된 자연대류형 배전반의 사용을 권장하면 지역 건설업계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타 지역에 앞선 기술 선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역의 배전반 제작 업체들은 올 초 시의회에 조례 제정을 청원했다. 조례가 제정되면 지역 업체들의 수주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직 시의회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최근 대구에 분양 열기로 재건축, 재개발 사업이 줄을 잇고 있지만 10억원 이상 관급, 민간 공사 가운데 외지업체의 지역 하도급 비율이 최근 수년간 40% 안팎에 불과하다는 보도가 있었다. 2017년 이후 재건축 재개발 총공사액 3조원 가운데 60%(1조8천억원)가 외지로 빠져나간다는 의미다.대구시는 지역 건설 산업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다. 찾아보면 대구가 경쟁력 있는 분야도 적지 않다. 이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게 급선무다.

2018-10-18 16: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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