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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진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아쉬워 우물 파니 댐까지 지어달라?

A씨는 요즘 지옥 속에서 살고 있다. 동구 한 아파트에 거주 중인 그는 층간 소음에 안하무인격으로 나오는 위층 B씨 때문에 병이 날 지경이다. A씨의 기막힌 하소연을 들어보자.사연은 B씨의 아이가 태어나면서 생겼다. 늦은 밤까지 뛰어다니는 탓에 '쿵쾅'거리는 소리가 아랫집으로 고스란히 전달돼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정도가 됐기 때문이다. 관리실에도 항의해봤지만, 그때뿐이었다. 관리실 측에서도 B씨에게 '민원이 있으니 자제해달라'는 말 이외엔 할 수 있는 방도가 없다고 했다.시간이 가도 B씨 집 소음은 줄지 않았고, 아이가 뛰어다니는 시간도 점점 늘어났다. 견디다 못한 A씨는 장고 끝에 기막힌 '묘수'를 생각해냈다. B씨에게 이사를 권유한 것이다. 대신 B씨가 이사 갈 좋은 조건의 집도 구해주고 이사 비용 전액도 대주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B씨도 손해가 없다고 판단해 승낙했다.이후 A씨가 'B씨 이사 갈 집 구하기'에 전력을 다하면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괜찮은 조건의 이사할 곳도 여럿 생겼다. 이 조건, 저 조건 꼼꼼히 따져 가장 좋은 가격을 제시한 두 집으로 압축까지 해놨다. B씨가 둘 중 하나만 고르면 모든 일은 해결될 것으로 보였다.하지만 갑자기 B씨가 시큰둥해졌다.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A씨는 어리둥절했다. 인근 같은 조건의 아파트 중에 최고 조건을 제시한 집인지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보니 B씨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답답한 A씨에게 B씨는 현재 사는 집보다 더 넓은 평수로 옮기고 싶다는 언질을 슬쩍 보이는 게 아닌가.B씨는 "이왕 내보낼 거면 더 크고, 더 좋은 집으로 보내달라. 그렇지 않을 거면 잘살고 있는 이 집에서 내가 나갈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했다. A씨는 "그동안 소음 피해는 내가 고스란히 받았는데, 억울해서 잠을 못 이룰 지경이다"고 한탄했다.지금 대구시가 A씨 꼴이다. 통합 대구공항 이전사업이 지난 3월 14일 두 곳의 이전후보지(군위 우보면, 의성 비안면군위 소보면)를 선정한 이후 8개월가량 감감무소식이다. 진척이 없다 보니 지역 사회에선 다시 이전 반대 운동까지 불거지고 있다.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이전 반대를 외치던 목소리가 사그라졌지만, 또다시 지역 여론이 둘로 갈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특히 최근엔 대구시와 국방부가 통합 대구공항 이전사업비 규모를 두고 현격한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대구시가 제시한 K2 공군부대 건설비를 국방부가 거부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국방부가 추가 요구하는 사업비 증액 규모가 대구시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아예 넘어서, 통합이전 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지역 한 인사는 "통합 대구공항 이전사업은 특별법에 따른 '기부 대 양여' 방식이어서 종전 부지 매각대금으로 이전사업비를 모두 충당해야 한다"며 "그런데 '이왕 옮길 거면 좀 더 넓고, 화려한 시설을 갖췄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고집한다면 사업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했다.'좋은 곳으로 보내주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냥 여기 살래' 식의 태도는 수십 년간 소음 고통 속에 살아야 했던 대구 시민들을 두 번 죽이는 처사다. 국방부와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2018-11-08 23:00:00

경제부 차장

[청라언덕] '지방소멸', 정책 새 판 짜자

최근 후지산과 온천으로 유명한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2층짜리 별장이 1엔(약 10원)에 매물로 나와 세계 언론에 회자됐다. 이 집의 주인은 관리 비용이 부담스러워 수차례 매각을 시도하다 팔리지 않자 결국 공짜로까지 내놨지만 세금과 수리비 부담 때문에 이 집을 사겠다는 이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는 주인이 버리거나 세상을 떠나면서 생긴 빈집이 2013년에만 820만 채가 넘어 전체 주택의 13%를 차지할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이런 뉴스는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 초 이탈리아의 사르데냐섬의 작은 소도시 올로라이(Ollolai)시에서는 버려진 석조 주택을 단돈 '1유로'(한화 약 1천300원)에 내놨다. 인구 감소에 따른 유령 마을화를 막으려 시가 선택한 고육책이다. 이 외에도 이탈리아 라치오의 파트리카(Patrica), 토스카나의 몬티에리(Montieri), 시칠리아섬의 간지(Gangi) 등 9개 도시가 1유로 주택을 팔고 있으며, 영국 리버풀시도 2013년부터 '1파운드 주택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도 빈집이 수두룩한 대한민국의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시골의 소도시들은 이미 정착지원금까지 지급해가며 거주 인구를 늘리기 위해 안간힘이다. 올여름 한국고용정보원의 고용동향브리프 7월호에 실린 '한국의 지방소멸 2018' 보고서는 지방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줬다. 228개 시·군·구 가운데 지방소멸 89개(39%), 지방소멸위험 1천503개(43.4%)로 분석됐다.하지만 '지방소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자치단체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아무리 기를 써도 바뀔 기미조차 없다. 여전히 젊은이들은 서울로만 향하고, 지역에 뿌리내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대구 혁신도시로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하게 된 한 공기관 직원은 인터뷰에서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이 되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다시 서울로 가겠다. 모든 기회는 서울에 있다. 내 자녀가 더 많은 기회를 갖도록 해주고 싶다"고 했다. 입맛이 썼지만 이것이 지방이 처한 현실이다.이제는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신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구호로만 외치는 국토균형발전, '시혜성'으로 찔끔 던져주는 지방소비세 소폭 인상 등의 땜질식 처방이 아니라 국정운영의 틀을 바꾸는 수준의 대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일본은 2014년 우리와 마찬가지의 지방소멸 위험을 경고한 '마스다 리포트' 이후 이른바 '지방창생전략'이라는 국가 차원의 대책을 진행 중이다.젊은 세대의 도쿄 집중을 막고, 도쿄권에서 지방으로 이동하는 인구를 늘려 2020년에는 전입전출의 균형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도쿄권에서 지방으로 이전하는 기업에 대해 법인세 우대와 인재알선사업 등 유인책을 제시하고, 정부 관계기관의 지방 이전, 지방대학의 강화 등과 함께 젊은 세대에 매력 있는 지역 거점 핵심 도시를 만드는 정책도 함께 추진됐다. 이 정책은 현재도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2017년 20대의 25%가 지방 거주를 희망할 정도로 상황이 바뀌었다고 한다.우린 언제까지 '지방소멸'을 남의 일로만 치부한 채 수수방관할 것인가?

2018-11-01 19:43:17

사회부 차장 이창환

[청라언덕] 한 노(老) 사장의 노심초사

"대구시의 산업 정책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역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공인된 기술이 있는데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니까 경기가 더 침체되는 것 아닙니까?"배전반 제작 업체를 운영하는 60대 노(老) 사장은 답답함을 숨기지 못했다. 평생 중소기업을 운영하며 기술 개발에 열정을 쏟은 늙은 사장은 2년 전 10여 년간 공들여 개발한 배전반 제조 특허를 한국표준협회의 기술표준에 등록시켰다. 기술표준에 등록되면 누구나 해당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아무런 대가 없이 특허를 일반에 공개한 것이다. 지역 배전반 업체들도 이 기술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배전반은 고압의 전기를 받아 저압으로 배분하는 데 필요한 변압기, 차단기 등 각종 기기들을 넣어 놓는 패널이다. 아파트나 공장 등 전기를 사용하는 대형 건물에는 필수 설비다. 10억여원을 투자해 그가 개발한 자연대류형 배전반은 기존 폐쇄형 배전반의 열 정체 문제를 크게 개선했다. 기존 배전반은 전체 전기설비 화재의 45%를 차지할 정도로 화재에 취약하다. 대부분의 화재는 배전반의 과부하로 인한 열이나 절연 파괴로 단락이 생기면서 발생한다. 팬(Fan), 냉각수, 에어컨 등을 이용해 공기를 강제 순환시키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전기업계가 배전반 사용 연한의 법제화를 검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자연대류형 배전반은 이런 문제를 손쉽게 해결한다. 원리는 간단하다. 배전반 하부의 흡입구로 유입된 공기가 상승기류를 통해 상부 배출구로 빠져나가면서 열을 외부로 자연스럽게 배출시키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내부 열 10℃ 이상 하락, 제작 원가 12% 절감, 이산화탄소 배출 12% 감축, 변압기 이용률 12% 증가 등 여러 효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늙은 사장은 이 기술로 국내 각종 녹색기술 인증을 휩쓸었다.기술을 공개한 이유는 뭘까? "혼자만 이렇게 좋은 기술을 사용하면 내가 사업을 접으면 없어지게 된다. 배전반 업계 전체와 공유하기 위해 특허권을 포기했다."늙은 사장은 자연대류형 배전반 기술 확산을 위해 팔을 걷었다. "내 전공인 배전반 제조 분야만큼은 대구를 전국의 메카로 만들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이를 위해 조례 제정이 급선무다. 대구시의회가 조례를 통해 국내 기술표준이 된 자연대류형 배전반의 사용을 권장하면 지역 건설업계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타 지역에 앞선 기술 선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역의 배전반 제작 업체들은 올 초 시의회에 조례 제정을 청원했다. 조례가 제정되면 지역 업체들의 수주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직 시의회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최근 대구에 분양 열기로 재건축, 재개발 사업이 줄을 잇고 있지만 10억원 이상 관급, 민간 공사 가운데 외지업체의 지역 하도급 비율이 최근 수년간 40% 안팎에 불과하다는 보도가 있었다. 2017년 이후 재건축 재개발 총공사액 3조원 가운데 60%(1조8천억원)가 외지로 빠져나간다는 의미다.대구시는 지역 건설 산업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다. 찾아보면 대구가 경쟁력 있는 분야도 적지 않다. 이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게 급선무다.

2018-10-18 16:18:53

경북부 차장

[청라언덕] 도지사의 운동화, 그리고 권력이동

최근 경북도청 공무원 사이에서 간 큰 공무원 일화가 화제였다.한 사무관(5급)이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아끼는 운동화를 구겨 신은 게 발단이 됐다. 지사와 함께 회식을 하던 공무원 A씨는 용무가 급한 나머지 신발장에 있던 운동화를 골라잡고는 화장실로 내달렸다.하필, 그가 꺾어 신은 운동화는 도백의 것이었다. 경북도 공무원 노조위원장이 '도정을 위해 열심히 뛰어 달라'는 의미에서 취임과 동시에 선물한 것. 더 하필, 화장실에는 이 지사가 먼저 와 볼일을 보고 있었다. 지사는 모른 체하고 자리에 돌아왔다.그리고는 "아끼는 운동화를 어느 간 큰 공무원이 구겨 신고 있더라"며 그 직원을 골려 줬다. 이후에도 여러 행사 때 이 얘기를 두고두고 꺼냈다.이후 도백의 운동화를 '테러'한 공무원이 누구냐는 이야기가 도청 회식 자리의 단골 메뉴가 됐고 '소통 도정'의 한 에피소드로 남아 있다.앨빈 토플러는 1990년대 초 저서 '권력 이동'(Power shift)에서 "21세기의 권력은 힘 있는 자로부터 정보를 가진 자에게로 이동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권력 이동의 단계를 물리력→금력(돈)→지력(지식)→정보력 등으로 나눴다.고인이 된 그가 지금 권력 이동을 집필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권력의 마지막 한 단계를 추가했을지 모른다. 매력(魅力)이다. 매력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끄는 힘을 말한다. 돈도, 배운 것도, 정보마저 없어도 그냥 잘해주고, 친해지고, 따르고 싶은 사람이 있다. 반대로 아무리 잘나도 가까이하기 싫은 이가 있다. 매력을 끌어오지 않고선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다.이런 점에서 이 지사는 '매력'을 무기로 하고 있는지 모른다. 도백 역시 "나하고 일하면 다 내 편이 된다"고 자주 말한다. 이 말에는 국정원, 3선 국회의원(정보위원장), 제1야당 최고위원, 그리고 현재 도지사의 자리보다 더욱 중요한 건 인간 '이철우'라는 의미가 담겼다.부하 직원의 실수를 골려먹는 화젯거리로 만들어 공무원 간 소통을 이끌어내고, 실력 하나만 있다면 남자든, 여자든 인사 팀장이 될 수 있으며 산하 공기관장 자리에까지 오르는, 매력이 있는 경북도. 일단 취임 100일간 이철우의 매력은 통했다.하지만 하회탈의 미소만으로, 공정한 인사로만 지사의 매력이 머물러서는 안 된다. 대기업이 투자 매력을 느끼고, 외국 자본이 오고 싶어하는 '경제적' 매력까지 키워야 한다.여기에 인정까지 더해야 한다. 특히 정과 매력이 넘치는 경북 만들기의 과정에서 불거지는 인적 쇄신에서 코드가 맞지 않는다고, 전임 지사 사람이라고 해서, 능력이 평가절하되어서는 안 된다. 실력만 있다면 실수로 운동화를 구겨 신은 것처럼 골려주면 그뿐이다.일본의 300년 에도막부 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인생의 늘그막인 70세를 넘어 2대 쇼군인 아들 히데타다를 조용히 불러 세운다. 그리고 원리 원칙의 쇼군에게 정의와 정직을 넘어서는 것이 인정이라고 가르친다.조조는 경쟁자인 원소를 이긴 뒤 자기 수하들이 원소와 내통한 편지를 발견했지만 모든 것을 불문에 부쳤다. 군주론, 정략론, 전략론을 쓴 마키아벨리도 르네상스 희극의 걸작으로 통하는 '만드라골라'를 남겼다. 이 모든 게 인정 없이는 어려운 것들이다.

2018-10-11 17:54:28

이상준 경제부 차장

[청라언덕] 누구를 위한 주택공급 정책인가

정부 부동산 정책이 가관이다. 서울 집값을 잡겠다며 내놓은 9·21 수도권 주택 공급 정책에 정작 해당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반대하는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1일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통해 서울시 옛 성동구치소 지역을 비롯해 경기도 광명 하안2, 의왕 청계2, 성남 신촌, 시흥 하중, 의정부 우정 등에 신규 공공택지를 개발한다고 밝혔다.그러나 지난달 27일 경기도 광명을 시작으로 시흥, 서울 강동·송파구 등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들 4곳 지자체장은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여당 지자체장들까지 정부 정책에 등을 돌린 것이다.정부가 발표한 수도권 신규 공공택지 지역주민과 지방자치단체들이 해당 지역 주택 공급 정책을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집값 하락 공포가 가장 큰 원인이다. 이미 집값이 떨어진 수도권 신도시가 수두룩한데 또다시 신규 공급이 대규모로 이뤄지면 기존 지역주민 집값 하락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들 지역주민은 "부동산 광풍이 불고 있는 곳은 서울과 인근 지역인데 이미 공급과잉인 외곽 지역과 수도권에 신도시를 조성하기로 한 것은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앞서 역대 정부에서도 수도권 주택 공급 정책은 실패를 되풀이해 왔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은 당·정·청이 한목소리로 주택 공급 확대를 외친 지난달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공급 확대가 필요 없다"고 썼다.그는 "지금까지 역대 정부가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해서 집값이 안정된 적이 없다"며 노무현 정부의 판교 개발 등을 실패 사례로 언급했다.선 소장은 수도권에서 공급 확대는 투기 세력의 배를 불려주는 정책이라고 평가한다. 투기적 가수요 때문에 집값이 뛰는 상황에서 공급을 확대하면 투기 세력에게 먹잇감을 제공해 개발지 주변의 집값 상승을 더 부추길 뿐이라는 것이다.비수도권 입장에서도 이번 수도권 주택 공급 정책은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더욱 벌릴 수밖에 없는 졸속 대책이다.이미 정부는 지난해 말 발표한 주거복지 로드맵에서 매년 20만 호씩 5년간 모두 100만 호의 공공임대와 공공분양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당시 로드맵에서도 정부 주택 공급 목표의 62%가 수도권에 몰려 자칫 비수도권 부동산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잇따랐다.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가 서울 인구 분산에 따른 집값 하락보다는 오히려 비수도권 인구를 수도권으로 빨아들이는 '빨대현상'을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돌이켜보면 이번 9·21 수도권 주택 공급 정책까지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아홉 번의 부동산 대책에는 오로지 수도권과 서울이 있을 뿐이다. 서울 집값 잡기에만 혈안이 돼 지방소멸에 직면한 비수도권 주거 복지나 대책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수도권, 서울 위주의 부동산 대책은 필연적으로 수도권 집중 심화와 지방소멸의 가속화라는 양극화 현상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문재인 정부의 지방분권 기조가 유독 부동산시장에서는 수도권 일극화로 치닫는 현실이 안타깝다.

2018-10-04 15:45:14

최두성 경북부 차장

[청라언덕] 지방소멸과 청년마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번 추석 연휴,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고자 고향을 찾은 자식·친지들을 맞은 촌로(村老)가 간절한 바람을 담아 읊조린 말이 아니었을까.원래 이 말은 배곯던 시절, 일 년에 단 한 번 풍성하게 차려진 차례상 덕분에 배불리 먹을 수 있음을 감사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뜨거운 여름을 보낸 과일들이 익어 제맛을 내고, 들판의 곡식들을 수확해 곳간을 채우니 추석은 풍성함의 대명사였다.조선 순조 때 사람, 김매순이 열양, 즉 한양의 연중행사를 편찬한 세시풍속 자료집 '열양세시기'에 8월 중추는 추석의 넉넉함을 설명하고 있다."가위란 명칭은 신라에서 비롯됐다. 이달에는 만물이 다 성숙하고 중추는 또한 가절이라 하므로 민간에서는 이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아무리 가난한 벽촌의 집안에서도 예에 따라 모두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 찬도 만들며, 또 온갖 과일을 풍성하게 차려놓는다. 그래서 더도 말도 덜도 말고 늘 한가위 같기만 바란다."주린 배 걱정을 않게 된 요즘, 되레 기름진 음식에 불어날 체중을 염려하게 됐으니 이제 이 말은 촌로의 읊조림처럼, 명절이 돼야 '사람 구경'할 수 있는 시골 마을, 지방자치단체의 기도문으로 더 어울릴 듯하다.심각해지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시골 마을, 더 나아가 '지방'이라 불리는 울타리가 사라지게 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전망은 무시무시하다.한국고용정보원의 '한국의 지방소멸 2018' 보고서는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로 30년 안에 전국 시·군·구 10곳 중 4곳이 소멸위험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89개 지역이 해당됐다. 특히 의성·군위·청송·영양군은 소멸 고위험지역으로, 안동·영주·영천·상주·문경·영덕·청도·고령·성주·예천·봉화·울진·울릉 등 13개 시·군은 소멸 진입지역으로 분류했다. 경주·김천시가 올해 추가돼 경북에서만 19개 지역에 '경고등'이 켜졌다.지난해 4월 국토연구원이 인구주택총조사 자료를 토대로 발표한 '저성장 시대의 축소도시 실태와 정책방안' 보고서 역시 지방소멸을 기정 사실화하고 있다. 특별·광역시를 제외한 전국의 도시 가운데 최근 20년(1995~2015년)간 연속해서 인구가 감소하고 또 최근 40년(1975~2015년)간 정점 대비 인구가 25% 감소한 20곳의 지방 중·소도시를 '축소도시'로 분류했는데 경북에서 7곳이 포함됐다.경북에서는 지난해 신생아가 한 명도 태어나지 않은 읍·면·동이 김천 증산, 안동 녹전, 영주 평은, 영덕 축산 등 4곳에 이르기도 했다.존립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질 처지에 놓인 경북도는 인구 구성의 체질 개선을 통해 길을 찾고자 지난 20일 '이웃사촌 청년 시범 마을' 기본 구상안을 내놨다. 일자리·주거·복지체계가 갖춰진 청년마을 조성이 골자다. 지방소멸지수 1위 기초 지방자치단체인 의성군이 그 대상지로 사업은 내년부터 시작된다. 도는 이 프로젝트가 '청년유입→지역 활성화→지방소멸 극복'이라는 선순환 구조의 모델이 되길 기대하며 1천700억원의 예산을 쏟아붓는다.부디 고식지계(姑息之計)가 아니길 바라본다.

2018-09-27 18:34:10

권성훈 문화부 차장

[청라언덕] 역설의 경제, 고용 약자들 설 곳이 없다

올여름, 대구시 수성구 들안길의 한 식당에서 여고생 아르바이트생을 만났다. 우리 일행의 테이블에서 열심히 서빙하고 있기에, "대학생이냐"고 물었다. 해맑게 웃으며 "고등학교 2학년인데요"라고 답했다. 대견해 보였다. 함께한 일행과 각 1만원씩 꺼내어 2만원을 팁으로 줬다. 더불어 자동차 뒷좌석에 있던 미래의 직업(진로) 관련 책도 선물해줬다. 식사를 끝내고 나올 때는 그 여고생에게 "파이팅!"이라고 살짝 외쳤다.한 달쯤 후에 우연히 다시 그 식당에 갔는데, 그 여고생이 보이지 않길래 "아르바이트 여고생은 오늘 쉬는 날인가요?"라고 물었다. 주인의 대답은 "인건비 부담 때문에 고교생 아르바이트생은 다 정리했습니다"였다. 이를 전적으로 최저임금 인상 탓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씁쓸했다. 그 여고생은 그때 대화 도중에 '어머니가 아프다'는 얘기를 살짝 했었다.시내 한 한정식집에서 만난 친절한 직원도 지난달 이후에 이제 더 이상은 볼 수가 없다. 올 초부터 단골이라 한 달에 서너 번 방문했는데, 갈 때마다 반갑게 맞이해주던 직원이었다.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항상 웃는 얼굴을 하는 직원이었다. 스페셜 안주라며 '계란 프라이'를 해주기도 했다. 손님과 직원 사이에 오가는 정(情)이 느껴졌다. 갈 때마다 반갑게 맞아줬던 그 직원은 지금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이제 그 한정식집에는 주인 식구들과 주방에서 일하는 직원 1명만 남아 있다. 아직도 한 달에 한두 번씩 가지만, 그 직원과 만날 수가 없으니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최근 수개월 사이 단골 식당에서 친근감을 느꼈던 아르바이트생 그리고 직원과 두 번의 이별을 했다. 누굴 탓하겠는가. 식당 주인 역시 손해 보는 장사를 할 수는 없었던 탓에 당연히 직원을 줄여야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주변의 지인들 얘기를 들어봐도, 식당 등 자영업을 하는 이들이 최저임금 인상 이후에 직원을 더 늘렸다는 사례를 거의 듣지 못했다. 영세한 식당, 편의점, 프랜차이즈 대리점은 이미 소규모 가족 경영 체제로 들어선 지 오래 됐다. 그나마도 경기가 좋지 못해 본인 인건비조차 벌지 못하는 곳이 대다수라고 하니, 서민 경제의 어려움이 얼마나 뼛속까지 시리게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경제정책이 서민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이 가정은 100%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양극화가 심각한 대한민국 현 경제 상황에 대입시킨다면, 상당 부분 부정적 결과를 야기시킨 주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 경제 주체들 중에 약자들의 고용 상황을 겉잡을 수 없이 악화시켰으며, '보이지 않는 손'(공급과 수요에 따른 원리)에 의해 작동되는 시장경제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나서서 막아버린 셈이다.대한민국 중산층이 두텁고,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5만달러가 넘는 나라였다면, 소득주도성장의 부작용이 이처럼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 등 서민근로자를 위한 경제정책이 도리어 부메랑이 되어 경제 약자들의 일할 자리를 뺏어버리는 역설을 문재인 정부는 알아야 한다.남북 정상회담으로 평화에 대한 기대가 한껏 높다. 백두산 천지의 하늘도 맑았다. 부디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땀과 열정이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는데도 발휘되길 간절히 바란다.

2018-09-20 15:49:14

정욱진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육아휴직 썼다고 승진 포기 마세요

최근 대구시가 11월 1일 시행을 목표로 대규모 조직개편을 예고했다. 시가 공개한 조직개편안에서 눈에 확 띄는 부분이 있다. 바로 여성가족청소년국을 확대·신설하는 것이다. 이전에도 여성가족정책관이라는 비슷한 업무를 하는 조직이 있었지만 이번에 탄생하는 국(局)은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저출산 극복과 일·가정 양립을 현실화시키겠다는 것이 시가 내세우는 신설 이유다. 그래서 국 밑에 출산보육 정책만 전담하는 출산보육과를 새롭게 선보인다고 했다. 지난달 대구시는 2018년도 상반기 승진·보직 인사를 단행했다. 인사 발표가 난 날, 7급 여성 공무원 A씨는 직속 상사가 일하는 방문을 열고 들어와 펑펑 울었다. 눈물을 흘린 사연은 무엇일까. 몇 년 전 아이를 낳은 A씨는 석 달가량의 출산휴가를 다녀왔다. 아이를 낳은 기쁨은 잠시, 출산휴가 석 달 동안 아이 보는 재미에 흠뻑 빠졌지만 복귀 이후 승진 누락의 아픔을 내내 겪어야 했다. 첫해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해에도 A씨는 열심히 일했지만 출산휴가로 쓴 석 달에 발목이 잡혀 근평에서 최하점을 받아 승진에서 멀어지게 됐다. 이후에도 열심히 일했지만, 출산휴가로 인해 비운 공백 기간이 승진 점수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기에 내심 포기하고 있었다. 아기를 얻었으니 승진은 잃는다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씁쓸함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부지런함을 알아준 상사가 인사 부서에 강력히 건의한 것이 반영돼 A씨는 그토록 바라던 승진을 하게 된 것이다. 승진은 꿈도 꾸지 않던 A씨가 이날 기쁨의 눈물을 흘린 이유다. 저출산은 국가적으로도 절체절명의 숙제다. 최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1.05명을 기록했다.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최저 수준이며, 조만간 1명 미만으로 떨어지는 '인구 몰락'이 머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는 최근 10년간 저출산 정책에만 130조원을 쏟아부었다. 복지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중앙정부와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만든 저출산 관련 제도만 2천 개쯤 된다고 하니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 선보일 대구시의 저출산 극복과 일·가정 양립을 위한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관련 정책 개발을 전담할 여성가족청소년국 신설 외에도 저출산 극복을 위한 인사혁신제도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요약하자면 A씨처럼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으로 인해 근평 등에서 손해를 보지 않도록 인사제도를 확 바꾸겠다는 것이다. 오히려 남녀 직원 모두 육아휴직을 가면 인사에서 가산점을 주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시 관계자는 "법에서 규정된 육아휴직이지만 정작 마음 놓고 쓰기가 쉽잖은 것이 현실이다. 일단 시청부터 시작해 구·군, 산하기관, 공공기관 등으로 확산시킬 예정이다. 이런 풍조가 점점 자리를 잡아 사회 전반으로 확대된다면 저출산 극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육아보육 분야에서 무거운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경우 제2, 제3의 출산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했다. 엄마나 아빠가 된다고 해서 포기해야 할 것은 조급증이지 승진이 아니다. 일도 가정도 행복한 사회, 대구가 먼저 만들어보자.

2018-09-13 16:58:03

한윤조 경제부 차장

[청라언덕] 돈의 중앙집권화, 대구 경제 잠식한다

아침 출근길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에 들러 모닝커피를 산다. 점심은 백화점 혹은 마트 내 식당가 등에서 동료들과 함께 해결한다. 오후에는 편의점에 들러 소소한 간식거리를 즐긴다. 퇴근길에는 장을 보기 위해 대형 마트로 향한다. 마트 내에 있는 저렴한 프랜차이즈 세탁소에 빨랫거리를 맡길 수도 있어 일석이조다. 아이들 학교 준비물도 동네 문구점보다는 대형마트에서 구매하는 것이 편리하다. 아마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살아가는 패턴일 것이다. '규모의 경제'가 돈을 벌어들이는 구조가 되면서 자영업자들은 거대 기업의 단가 낮추기 전략에 속수무책이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서민 입장에서는 편리하고 저렴한 것을 선호하는 것이 당연하다. 익히 얼굴을 아는 동네 가게를 외면하고 '규모의 경제'에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자기 간판을 내건 가게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대형 프랜차이즈들만이 거리에 가득하다. 문제는 이렇게 지출된 돈은 대부분 서울에 기반을 둔 거대 기업의 몫이 된다는 점이다. 대구에서 소비했는데 정작 지역에서 도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대구 경제가 20년째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갈수록 취약해지는 이유 중 하나다. 돈을 거머쥔 그들에게 '지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매출을 빼가야 할 대상일 뿐 굳이 지역에 재투자할 이유가 없다. 프랜차이즈 업주 손에 쥐어지는 이익은 쥐꼬리다. 단가 후려치기, 갑질 등 어떤 꼼수를 써서든 대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극대화한다. '고용을 창출해 주지 않느냐'고 하지만 이미 대한민국의 기업들은 '고용 없는 성장'이 굳어진 지 오래다. 대구 시민 너도나도 "먹고 살기 힘들다"고 푸념을 쏟아내지만 그렇다고 소비 패턴이 달라지진 않는다. 이젠 브랜드 중심의 생활이 익숙해져 솔직히 변화하기도 힘들다. 대구 경제는 마치 초대형 빨대라도 꽂혀 있는 것처럼 서울로 쭉쭉 빨려들 뿐이다. 경제의 서울 쏠림 현상이 심해도 너무 심한 상황이다. 돈의 중앙집중화다. 최근 경제지표가 최악이라는 언론의 보도가 쏟아지면서 서민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모든 칼날이 정부를 향해 있다. 하지만 엄밀히 들여다보자. 과연 자영업자의 위기는 이번 정부만의 일인가? 고용 한파는 원래 없었던 이야기인가? 경제 대통령을 자임하며 친기업 정책을 폈던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자영업 몰락', '중산층 붕괴', '고용쇼크'라는 단어들이 연일 주요 언론의 머리를 장식했었다. 결국 자영업 위기와 일자리 문제는 한국 경제의 '고질병'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다 대구는 기업 규모가 영세하고 자영업 비중이 유독 높은 지역적 특성에다, 중앙으로 돈이 집중되는 쏠림현상까지 더해지면서 더 이상 짜낼 피고름조차 없는 형국이다. 우리는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지만 어느 누구도 지역에서 돈이 도는 선순환 구조를 고민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현재 대구의 극심한 자영업 및 소상공인의 위기를 가중시켰음은 분명하다. 경제는 생물이다. 돈이 돌고 돌아야 활기를 띠고 살아난다. 쓰는 족족 외지로 빠져나가서는 대구 경제가 좋아질 리가 없다. 이제라도 지역 사람들의 돈이 지역 사회로 환원되는 구조 개선을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2018-09-06 18:30:06

[청라언덕] 도대체 날씨가 왜 이래?

올여름 날씨는 참 이상하다. 사상 최악의 폭염이 끝나는가 싶더니,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폭우를 쏟아붓는다. 한쪽에서는 하루 500㎜가 넘는 물 폭탄이 쏟아지는데, 다른 지역은 낮 최고기온이 30℃를 훌쩍 넘어 폭염 특보가 발효된다.이번 폭우의 배경에는 전국을 뜨겁게 달군 폭염이 도사리고 있다. 북쪽 찬 공기가 내려오는 시점에 북태평양 고기압이 힘을 유지하면서 정체전선이 생겼다. 한반도 주변의 높은 해수면 온도는 대기 중에 풍부한 수증기를 공급해 강수량을 늘렸다.폭염과 폭우, 가뭄, 산불 등 기후변화는 서로 상승효과를 낸다. 올여름 한국과 일본, 중국 등 아시아는 물론 북미와 유럽, 아프리카 등 북반구의 4개 대륙이 모두 불볕더위로 몸살을 앓았다.북극권에 가까운 북유럽 국가들은 이상 고온과 가뭄으로 막대한 산불 피해를 겪었다. 미국도 캘리포니아주 북부에서 발생한 멘도시노 산불로 서울 면적(605㎢)보다 2배가 넘는 삼림이 불탔다. 계속되는 산불 연기에 시애틀의 대기 오염이 중국 베이징보다 3배나 더 나쁠 정도다.수온 상승으로 원전 가동도 줄줄이 중단됐다. 핀란드는 발트해 바닷물 수온이 오르면서 원전 냉각수로 쓰지 못해 원전 가동을 중단했다. 독일과 프랑스, 스위스 등에서도 강 수위가 낮아져 강물을 냉각수로 사용할 수 없게 됐다.이 같은 이상기후는 새로운 기준, 즉 '뉴노멀'(new normal)이 될 가능성이 높다. 뉴노멀은 가까운 미래 사회의 변화를 의미하는 키워드다. 기후 분야에서 뉴노멀 시대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기후의 흐름이 바뀌고 새로운 표준이 생성되는 시대다. 올해와 같은, 혹은 더 심한 이상기후가 매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이상기후의 근본적인 원인은 온실가스 증가에 따른 지구온난화다. UN2050 미래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에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현재보다 2.5배가 넘고, 지구 표면 온도는 1도 정도 상승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 과정에서 생물 종의 6분의 1이 사라지고 농지 중 20%는 사막화된다.실제로 대구도 20년 뒤면 아열대기후로 변한다는 예측도 나온다. 아열대기후는 월 평균 기온이 10도 이상인 달이 8개월 넘게 이어지고, 가장 추운 달도 평균 기온이 18도를 밑돌면서도 얼음이 얼지 않는 기후다.국립원예특작과학원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혀 줄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2041년부터 대구에서도 올리브 열매를 수확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동성로의 가로수가 야자수로 바뀌고 바나나를 따 먹는 일이 더 이상 '농담'이 아닌 셈이다.바다도 뜨거워지고 있다. 우리나라 연안의 해수 온도는 대부분 해역에서 28도를 넘었다. 국립수산과학원이 최근 4년 동안 제주 연안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잡힌 물고기 10마리 중 4마리는 아열대성 물고기였다.기상청은 장기적으로는 도시 계획까지 바꿔야 할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뜨거워진 바다가 해수면 상승으로 이어지고, 태풍이나 해일 등 기상이변이 잦아지면서 해안가 침식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전 세계 기후 과학자들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해 반복해서 경고해 왔다. 일상을 덮친 극한의 폭염 등 이상기온은 기후변화를 내다본 전문가들의 예측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지독했던 올여름 더위는 내년에 더욱 강력한 모습으로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폭염이 뉴노멀이 되는 시대에 맞게 삶의 기본적인 방식과 사회·경제 시스템을 재조정할 시점이 됐다. 국가가 나서 근본적인 대응 체계 마련도 나서야 한다. 우리는 과연 바뀌는 기후 환경에 적응할 준비가 돼 있는 것일까?

2018-08-30 19:01:25

이창환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보수가 사는 길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보수 혁신을 주도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다. 김 위원장 취임은 현실 정치에서 보수 가치의 완전한 몰락을 상징한다. 박근혜 정부의 붕괴가 보수 정치의 몰락을 상징했다면 '원조 친노'인 김 위원장의 취임은 한국당이 추구해 온 보수 가치의 청산을 의미한다.김 위원장이 누구인가. 참여정부의 주요 정책인 행정도시 건설, 공공기관 이전, 부동산 정책, 전자정부 등의 입안 단계부터 집행과 점검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참여정부에서 행정자치부 장관, 감사원장, 대통령 비서실장 등 고위직 인사가 있을 때마다 유력 후보로 거론됐고, 청와대 정책실장과 교육부총리를 지냈다. '원조 친노'이자 참여정부의 보기 드문 '정책통'이었다.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그를 인간적으로, 정치적으로, 정책적으로 모욕했다. 교육부총리 재직 당시 숱하게 인간적 모멸감을 안겼고, 이명박 정부는 심혈을 기울였던 종합부동산세를 단번에 무너뜨렸다.그랬던 한국당이 보수 혁신의 키를 그에게 맡겼다. 지지율 고공 행진을 이어가던 문재인 정부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한국당이 고심 끝에 내놓은 카드다. 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는 속설을 단적으로 보여준 경우다.김 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문재인 정부를 '국가주의' 프레임에 가둬 일격을 가했다. 동시에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하향 곡선을 그렸다. 정치는 말싸움이다. 적확한 언어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것은 전쟁에서 포탄 수백 발을 명중시키는 것만큼이나 짜릿하다.취임 한 달이 지나면서 김 위원장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이지만 갈 길이 멀다. 그는 당내 갈등을 수면 아래로 가라앉히면서 정부 여당에 정책적 대립각을 세워 제1 야당의 존재감을 보여줬다. 당 지지율이 20% 안팎의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도 드러냈다. 인적 청산 등 화끈한 변화를 보이는 게 지지율 상승의 지름길이지만 당내 기반이 전무한 상황에서 자칫 분란만 자초할 수 있다. 결국 보수 가치 재정립에 성공하느냐가 관건이다. 반공과 친기업, 기득권 옹호에 기대온 한국당에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 내로라하는 정책통인 김 위원장에게 기대를 걸게 하는 대목이다.미국 공화당은 1974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에 휘말려 사임하면서 최악의 위기에 빠졌다. 도덕성 위기에 처하며 "보수와 공화당은 끝났다"는 자조가 흘렀다. 민주당이 백악관과 상·하원을 모두 장악했다. 공화당은 포기하지 않았다. 위기 모면을 위한 반대가 아니라 민주당이 추구하는 정책에 대한 정교한 반박, 보수 세력의 체계적 규합에 나섰다.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도 만들었다. 헤리티지재단은 복지 비용 삭감, 국방비 증액 등을 근간으로 하는 부국강병 노선을 개발했다. 보수 진영은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공부 모임을 조직하도록 지원하는 등 영역을 넓혀갔다. 보수 진영이 내놓은 각종 정책은 '진보는 이상론을 외치지만 보수는 현실적 이슈를 선점한다'는 이미지를 굳히도록 했다. 공화당은 끝내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을 탄생시켰고, 레이거노믹스는 미국을 초강대국 자리에 올려놓았다.한국당은 김 위원장을 이이제이(以夷制夷)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국면의 타개책으로 친노였던 김 위원장을 활용하겠다는 얄팍한 꾀로서는 절대 보수 혁신에 성공할 수 없다. 2012년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당 정강 정책에서 보수를 빼자'고 했다가 난리가 났던 적이 있다. 한국당 구성원들은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스스로 혁신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면 누가 운전대를 잡더라도 결국은 도로 아미타불에 그친다.

2018-08-23 16:37:59

임상준 경북부 차장

[청라언덕] 영풍제련소와 노란 가운

그리스신화에서 남편을 뺏긴 마녀 메디아는 신부를 잔혹하게 살해한다.메디아는 그녀에게 '노란 독(毒) 가운'을 선물하는 데 가운을 입은 신부는 골격(骨格)이 틀어지며 고통스럽게 죽는다. 일종의 독살인 셈이다.인공적으로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노란색을 흔히 '카드뮴 옐로'라 부른다. 인체에 치명적 중금속인 카드뮴은 물에 녹아 있을 때는 코발트색이다. 이를 화학 처리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카드뮴이 도금을 거치면 메디아가 살인 도구로 썼던 노란 가운처럼 황홀한 노랑(카드뮴 옐로)이 된다.최근 경북에서 잊혔던 '카드뮴 공포'가 되살아나고 있다.아연을 제련하는 경북 봉화 영풍석포제련소가 주변 토양과 낙동강을 카드뮴 등으로 오염시키고 있다는 의혹이 일고 있어서다. 환경단체에 따르면 지난 4월 제련소 인근 토양 오염 조사를 실시한 결과 카드뮴이 기준치의 179배나 넘게 검출됐다. 이들은 48년간 영풍이 1천300만 영남인의 식수원과 인근 토양을 중금속으로 오염시켜왔다고 주장하고 있다.이 소식이 전해지자 낙동강을 식수로 하는 대구는 물론 부산까지 '아연실색'하고 있다. 제련소가 위치하는 봉화군 석포리는 낙동강 물줄기가 시작되는 곳인 탓이다. 세 살 때부터 귀가 닳도록 들은 '윗물(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격언이 여든 할아버지까지 몸서리치게 만든다.제련소와 카드뮴 키워드가 맞물리면서 '이타이이타이병'까지 회자하고 있다.1968년 일본 도야마현의 강물을 농업용수로 이용하는 주민들 사이에서 뼈마디가 풀리고 금이 가는 병에 걸렸다. 환자들은 하나같이 통증이 너무 심해 '아프다'는 말을 반복했고 병명도 '이타이이타이(일본어로 아프다는 뜻)병'으로 불렀다. 후에 한 젊은 의사가 병의 원인을 카드뮴 중독에서 찾아냈다.영풍이 낙동강 최상류인 봉화군에 아연제련소를 세웠을 때(1970년)는 일본 열도가 카드뮴 공포로 들끓을 때와 맞물린다. 당시는 일본이 '이타이이타이병'의 원인으로 아연제련소가 내뿜은 카드뮴을 지목, 아연공장을 대거 퇴출하던 시기다. 과거 봉화 주민이 이 병에 걸렸다는 확인되지 않은 괴담이 아직까지 떠도는 이유이기도 하다.환경단체가 오버를 했든 안했든, 카드뮴이 있건 없건 간에 분명한 사실은 시도민들이 식수 불안에 떨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더해 반세기 가까이 영풍석포제련소가 환경문제에 대해선 '무풍지대'였다는 사실이다. 제련소는 수십 년간 꽁꽁 문을 걸어 잠그고 비밀스럽게 영업한 부분이 적지 않다. 인간은 은밀하고 비밀스러울 때 불안함을 느낀다. 심지어 제련소는 지난 2월 기준치를 초과한 폐수 70여t을 인근 하천으로 내보내다 들켜 불안을 키우기도 했다.영풍석포제련소는 이제라도 공장 문을 활짝 열어 젖혀야 한다. 짜인 각본대로 보여주는 공장 개방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환경단체와 지도 감독 기관이 드나드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공개를 해야 한다. 그리고 무방류시스템과 같은 선진 환경 정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은밀함이 불러온 불신의 원죄는 오로지 제련소에 있기 때문이다. 제련소가 묵은 불신을 씻는 정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언제 낙동강의 '노란 가운 복수극'이 펼쳐질 지 모른다.

2018-08-16 19:31:55

이상준 경제부 차장

[청라언덕] '대구 건설 패싱'을 넘어라!

패싱(passing)은 개인이나 단체, 국가 간 등에서 '열외'(列外) 취급을 당하는 경우를 빗대어 이르는 말로 자주 쓰인다.요즘 대구 주택건설업계에서도 '패싱'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오르내린다. 업계에 따르면 2018년 대구 분양시장 규모는 38개 단지 2만7천여 가구로, 이 가운데 80%를 외지 건설업체가 수주했다.단위 사업당 수천억원의 공사비가 걸린 대구 재건축·재개발 시장은 사정이 더 심각하다. 2017년 이후 지난 1년 7개월여간 13개 단지 1만6천131가구, 무려 3조738억원어치에 달하는 대구 재건축·재개발 공사 수주를 외지 건설업체가 싹쓸이했다.이 같은 대구 건설 패싱은 올해 전국 시공능력평가 순위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발표한 전국 시공능력평가 순위에 따르면 10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린 대구경북 건설사는 경북 포스코(7위), 대구 화성산업(43위) 등 6곳에 불과하다.1997년 IMF 사태 이전만 하더라도 대구는 청구, 우방, 보성 등 7개사가 시공능력평가 순위 100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전국적인 명성을 쌓았다.지역 주택건설업계에 불어닥친 패싱 현상의 첫 번째 원인으로는 메이저 건설사의 무차별 공세가 꼽힌다. 해외 수주 감소에 직면한 메이저 건설사들이 지방 주택시장으로 눈을 돌리면서 브랜드 파워와 자본 규모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는 토종 건설사들이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대구 주택시장은 전국 중견 건설사의 각축장으로 변모한 지 오래다.그러나 냉정하게 바라보면 지역 주택건설업계의 현실 안주도 한 요인이다. 올해 대구 주택시장에만 전남 영무토건(95위), 대전 계룡건설산업(18위)·금성백조주택(50위), 부산 동원개발(39위)·삼정(70위) 등이 잇따라 분양에 나섰다.지난 수년간 토종 건설사들이 지나치게 몸을 사린 것과는 대조적이다.이와 관련, 대구 주택건설업계가 광주·전남 건설사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질타가 나온다. 올해 시공능력순위 평가에서 전국 100위권에 이름을 올린 광주·전남 건설사는 ㈜호반건설주택(13위)을 필두로 혜림건설(96위)에 이르기까지 무려 13곳에 달한다.이들 광주·전남 건설사는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기회로 만들어 급성장했다. 다른 지역 건설사들이 투자에 문을 걸어 잠글 때 오히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토지를 대거 확보했고, 이후 건설 경기가 회복세를 보일 때 아파트를 분양했다.이 과정에서 광주·전남 건설사들은 개별 경쟁을 벌이기보다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밀약 아닌 밀약을 통해 상생 발전을 도모했다. 반면 지역 주택건설사들은 현실 안주도 모자라 각개전투를 벌이며 뒤처졌다.건설시장도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벗어날 수 없다. 대구시 등 행정기관이 일정 부분 개입할 순 있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결국 건설회사 스스로 경쟁력을 높여가야 한다.지역 주택건설업계가 먼저 소극적, 수세적, 방관자적 자세에서 벗어날 때 '대구 건설 패싱'을 극복하는 길이 열린다.

2018-08-10 05:00:00

최두성 경북부 차장

[청라언덕] 면책사유 안 될 TK 예산 홀대론

'예산 전쟁'이 시작됐다. 이미 각 지방자치단체가 요구한 내년도 국비안이 부처에서 기획재정부로 넘어가 1, 2차 심의까지 끝났으니 진행 중이라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7일까지 미결·쟁점 사업 심의가 이뤄진다니 다음 주 초쯤엔 지자체의 사활을 건 국비 확보 전쟁 1차 성적을 가늠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국비 확보 가능성을 점치려면 여기에 국비 요청 사업이 반영돼야 한다. 정부안에 담지 못한 사업을 국회 심의 과정에서 담아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치단체장이나 국회의원이 이 심의 과정에 필요사업을 언급해 놔야 그 사업은 나중에라도 다뤄질 수 있다.그래서 시도 예산 담당자들은 이 기간을 가장 긴장된 시기로 꼽는다.기재부가 함구하니 예산 담당자들은 기재부는 물론 부처에서 나오는 한마디를 듣고자 촉각을 곤두세운다. 이를 위해 이른 시기부터 여의도로, 세종으로 '발품'을 팔아 왔다. 치열한 '첩보전'은 진행 중이다.유독 이 시기에 지자체장이 기재부를 찾아간다느니, 국회의원을 만난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많이 들리는 것도 실무자들이 현장에서 수집한 정보가 바탕이 됨은 물론이다.내년에 완공해 2020년 문을 여는 울진의 국립해양과학교육관은 기재부의 '벽'에 귀를 댄 경북도 예산 실무자들이 빚어낸 성과의 한 예다. 이 사업은 2012년 말 기재부 예비타당성 조사대상 사업에 이름을 올렸으나 사업의 확정 여부는 안갯속이었다. 1천억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이어서 경북도와 울진군은 사활을 걸다시피 했으나 예타의 결과를 가늠할 수 없었다. 예타가 통과되더라도 서둘러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면 하세월 될 판이었으니 답답함은 커져갔다.그때 기재부의 한 관계자가 당시 경북도 국비 담당 사무관이던 김일곤 경북도 예산담당관에게 "조금만 힘을 실으면 된다"는 팁을 줬다. 김 담당관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곧바로 울진군수에게 사실을 알리며 기재부장관 등에게 매달려 사업의 필요성과 시급성을 알리라고 귀띔해줬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기재부발(發) 짧은 이 팁 하나가 예산 확보의 결정적 '키'(Key)가 된 것이다. 그 한마디를 듣고자 김 담당관이 쏟았을 노력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무용담을 들으며 웃을 겨를도 없이, 현장에서 전해오는 지역의 내년도 국비 확보 기상도는 잔뜩 흐리다.기자가 4년 가까이 국회를 출입하며 지켜봐 왔던 예산 정국에서 국비를 가장 확실하게 확보하는 방법은 '사업의 당위성' '단체장의 의지' '정치권과의 협력', 이 세 가지 조건이 어우러질 때였다. 혹자는 합리적 설득과 건강한 채널을 꼽기도 한다.기본에 충실할 때 최고의 힘이 발휘됨은 예산 정국서도 마찬가지다.정치적으로 자유한국당이 주류인 대구경북이다보니 더불어민주당이 대세인 권력 지형서 '예산 홀대론' 우려가 나온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여당의 압승 속에 유이(有二)하게 한국당 단체장을 배출한 곳이어서 지레 예산 패싱을 감내하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안 될 일이다. 만약 국비 확보 성적이 나쁘더라도 '홀대론'이 면책사유가 될 수 없다.민주당이 야당이던 시절, 그들이 예산 정국서 보여준 활약을 시·도민들은 오롯이 봐왔다. 지역 단체장·정치인이 명심해야 할 바다.

2018-08-03 05:00:00

권성훈 문화부 차장

[청라언덕] 자살이란 선택지는 "Never, No!"

자살을 미화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주는 한 유력 정치인의 자살이 대한민국의 핫이슈가 됐다. 하지만 언론의 보도 태도는 죽음으로 모든 것을 덮으려 하고, 굳이 숭고한 죽음으로 미화하려 하는 듯하다. 이는 힘들어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 대단히 나쁜 영향을 미친다.한 인간의 선택지로 자살은 결코 환영받거나 추앙 받아서는 안 된다. 살아생전에 자신이 깨끗한 정치인이라고 강변한 것이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왔다고 해서, 그 수치심과 모욕감을 견딜 수 없어 생을 마감한 것을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포장하거나 자기 잘못에 책임지기 위한 행위로 미화해서는 안 된다.인간은 반성의 동물이다. 모든 국가(공동체)는 구성원들의 합의로 정한 법과 제도로 한 국민(개인)의 선행을 칭찬하고 잘못을 단죄한다. 부정한 돈을 받았다면, 처절하게 반성하고 법이 정한 대로 응당한 처벌을 받으면 된다.한 발짝 더 나아가, 그렇게 도덕과 양심을 중요시하는 분이라면 애초에 부정한 돈을 받았을 때 자신을 더 질책하고 책망했어야 하지 않는가. 특검의 수사로 궁지에 몰렸을 때 목숨을 끊는 선택을 어찌 숭고하고 용기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언론(방송)이 이 죽음을 아름답게 보도하는 것은 일반 국민들이 삶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더욱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2009년 5월에도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 이 나라에 폭풍 같은 파장을 가져왔다. 가족과 성향이 비슷한 정치인들을 위기에서 구한 아름다운 선택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던진 것에 대해서는 재고해 볼 여지가 많다.'돈키호테' 정치인으로 어려웠던 선택지마다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과감한 결단, 그리고 파란만장한 삶이 보여주는 스펙터클하고 감동적인 정치적 행보 등은 그를 좋아하는 지지자들이 추억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적어도 스스로 택한 죽음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봐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전직 대통령들과 유명 정치인들이 정계은퇴 후에도 과거의 잘잘못을 떠나 건강하게 웃으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 것이다.목숨을 던지는 것이 한 인간의 생애 마지막 승부수로 높이 평가받아서는 안 된다. 러시아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리나'라는 유명한 소설을 통해,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는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극복한 후에 얻는 '슈퍼 기쁨'(삶의 큰 깨달음, 고통 후의 성장)이라고 넌지시 생(生)의 교훈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성경에서도 자살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지 않지만 완곡하게 스스로에 대한 살인자로 묘사하고 있다. 가롯 유다의 자살(마태복음 27장 3~5절)에 대해, 사도행전 1장 25절에서 "제 곳으로 갔다"고 표현했다. 이를 성경 주석가들은 '천국이 아닌 곳에 갔다'는 완곡한 표현으로 해석한다. 자살자에게는 구원이 없음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는 셈이다.종교 지도자들은 믿음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아무리 사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자살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자살은 스스로를 더 큰 파멸과 더 큰 비극으로 몰아넣는 행위"라고 강변한다.

2018-07-26 18:34:26

정욱진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진짜 형제가 되자

대구 취수원과 통합 대구공항 이전. 대구의 최대 관심사이지만 대구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경상북도와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면 문제 해결이 힘들다.그동안 대구와 경북은 말로는 '한뿌리'이고 '형님, 아우'라고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았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다른 광역자치단체처럼 경쟁 상대였다.10년쯤 된 일화다. 기자가 대구시 고위 공무원이었던 A씨(지금은 퇴직했다)와 차를 마시고 있었을 때다. 그때 한 직원이 경북도에서 공문이 왔다며 A씨에게 결재를 받으러 방에 잠시 들어왔다. 공문의 내용은 대략 '한국마사회가 신규 경마장 설치를 위해 후보지 공모에 나섰는데, 경북도가 신청하려고 하니 대구시의 협조를 구한다'로 요약된다. 공문을 본 A씨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흘러나왔다. "우리도 신청해."짧았지만 강렬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의아한 표정을 짓던 기자에게 그는 "제4 경마장 유치는 대구도 필요하다. 서로 경쟁하면서 살아가는 거지, 우리가 안 나간다고 경북이 유치한다는 보장은 없지 않나"라고 했다. 실제 대구시는 제4 경마장 유치전에 뛰어들었고, 경북도에서는 '이럴 수가 있냐'라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경북도도 마찬가지다. 이후 도청을 출입하면서 만난 많은 도 공무원 중 대구시 공무원을 좋게 말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의리가 없다느니, 겉과 속이 다르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등 '깍쟁이' 이미지였다.싸움을 붙이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다만 이랬던 대구와 경북이 변화의 물꼬를 트고자 하기에 응원하려는 바람이 더 크다. 요즘 권영진 시장을 만나면 이철우 도지사 얘기를 많이 한다. 그는 "대구경북이 따로따로 자기의 살길을 찾아선 안 된다. 대구가 아프면 경북이 아프고, 경북의 기쁨은 대구의 기쁨"이라는 말을 요즘 달고 산다.특히 권 시장은 대구의 경제계나 학계, 언론계 등에서 시장을 초청하려는 제안이 들어오면 꼭 '경북도지사도 함께 모시자'라며 역제안을 한다고 전해진다.대구와 경북은 하나가 돼야 하는 운명공동체인데, 양 단체장이 먼저 합심하는 모습을 자꾸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권 시장의 의중이 아닐까 생각된다.태풍 때문에 무산됐지만 지난 2일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의 '상호 출범식 참석'도 대구와 경북의 진정한 상생 의지를 다지기 위한 표현으로 보인다. 자신의 취임식을 오후로 미루면서까지 옆집 취임식에 참석해 축하하고, 오후 일정을 조정하는 수고를 무릅쓰고 답방하는 초유의 아름다운 광경이 벌어질 뻔 했으니.십수 년째 풀리지 않는 대구의 숙원들을 살펴보면 경북과 연관되는 것이 많다. 통합 대구공항 이전도 그렇고, 취수원의 구미산단 상류지역 이전은 더 그렇다. 대구신청사 건립도 어찌 보면 경북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 이런 현안들을 중앙정부의 생색내기용 도움을 받지 않고도 우리 스스로 슬기롭게 풀기 위해선 대구와 경북의 태도 변화가 절실하다. 그래서 최근 대구경북에 함께 불고 있는 상생 바람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내달 13일 경북 안동에서 민선 7기 첫 대구경북 한뿌리상생위원회가 열린다고 한다. 이번엔 좀 다를 것이란 게 실무진의 얘기다. 그간 명색만 유지하던 한뿌리상생위가 아닌 구체적 상생 협력을 위해 근본 틀부터 확 바꾸겠다고 한다. 2018년 여름, 대구와 경북이 진정한 상생의 끈을 함께 부여잡고 수도권에 비해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는 지역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2018-07-20 05:00:00

한윤조 특집부 차장

[청라언덕] 살 만한 도시를 만드는 문화예술

"문화는 우리를 더 인간답게 만드는가?" 올해 프랑스 중등교육과정 졸업시험인 바칼로레아 문화 계열 응시자들에게 출제된 문제다.문화란 인간의 창의적이고 지적인 활동의 결과물이자, 그 사회의 가치관이 반영돼 공유하는 삶의 방식을 일컫는다. 그리고 그 문화를 형성하는 근간이자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예술'이다.최근에는 이런 문화 예술의 역할이 더욱 커지고 있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문화 예술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각종 편견과 불신의 장벽에 가로막혀 '혐오'라는 단어가 팽배하고 있는 요즘 연령 간, 성별 간, 인종 간 보다 쉬운 이해와 소통의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다양성을 확장해 나가는데 문화 예술만큼 좋은 것이 없다. 이 때문에 정부는 물론이고 각 지방자치단체들까지 앞다퉈 문화 예술 활동을 장려하고 지원에 앞장서고 있다.시멘트벽으로 둘러싸인 잿빛 도시 속, 자신만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들의 황량한 가슴속에 꽃을 피워 내는 역할을 하는 것도 바로 문화 예술이다.옛날 프랑스의 '살롱'이 문화와 지성의 산실 역할을 하며 남녀와 노소, 신분과 직위를 가리지 않고 여가를 즐기며 토론하며 교제하는 공간이었다면 오늘날의 카페와 공연장, 전시장이 이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이곳에서 사람들은 예술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의 폭을 넓힌다. 최근 도시 공동체 복원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문화 예술'의 역할이 도드라지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일 것이다. 대구는 예로부터 문화 예술 기반이 탄탄한 도시로 손꼽힌다. 대구는 한국전쟁 당시 피란기 예술의 도시를 거쳐 지금은 공연 문화 및 축제의 메카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매일 수많은 공연과 전시가 쉴 틈 없이 이어진다.그리고 이런 수많은 공연들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끄는 작은 축제가 있다. 바로 10년째 이어지고 있는 전문예술단체 공간울림의 '서머 페스티벌 인 대구'다.공연 비수기인 대구의 여름을 채워주는 이 축제는 지자체나 기관이 주도하는 것이 아닌 민간 축제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있다. 몇 년간 지원금을 받기도 했지만 10년 세월 중 상당 부분을 자체 비용으로 축제를 진행해왔다. 문화 예술계에 대한 정부 지원이 늘면서 자생력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는 요즈음, 스스로 자생력과 지속 가능성을 증명해 보인 축제이다.이 축제를 기획한 공간울림 이상경 대표는 "유럽에서 공부하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이 마을 단위의 작은 축제였다"면서 "시민들이 순수 예술을 즐기면서 여유로운 여름 휴가를 보낼 수 있는 문화공동체를 위한 마을 축제를 열자고 마음 먹은 것이 10년째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이 대표가 꿈꾼 것은 예술을 통한 공동체의 회복이었다. 함께 무대를 즐기고 이야기를 나누는 열린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그의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이 공연료를 받지 않고 기꺼이 무대에 서고, 소액 기부를 하면서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올해는 '위풍당당, 영국을 만나다'는 주제로 7월 14일부터 22일까지 다채로운 무대를 만날 수 있다.'지방이라 문화생활을 즐기기가 어렵다'는 푸념만 하지 말고 관심을 가지고 주위를 한번 둘러보자. 굳이 값비싼 유명 공연을 찾아가지 않아도 소박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 예술이 곳곳에 즐비하다.그리고 당신의 작은 관심과 참여가 문화 예술을 살찌게 만들고 우리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갈 것이다. 문화는 분명 우리를 보다 인간답게 만든다.

2018-07-12 16:00:07

[청라언덕] 청와대 국민청원

지난달 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2의 광주 폭행 사건은 없어져야 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50대 부부가 20대 청년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구타당했는데도 경찰이 '쌍방폭행' 혐의로 사건을 처리했다는 내용이었다. 억울함을 호소한 이 청원은 부부가 폭행당하는 장면을 중심으로 편집된 영상과 함께 삽시간에 온라인을 달궜다. 청원 동의자 수도 급속도로 솟구쳤다.그러나 경찰이 사건 당시 상황을 담은 47분 분량의 CCTV 영상 전체를 공개하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동영상에는 20대 청년들과 50대 부부가 실랑이를 벌이다가 부인이 먼저 한 청년의 뺨을 때리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서로 뺨을 후려치거나 주먹질을 하는 장면도 이어졌다.이후 동의는 3만7천 명에서 멈춰섰다. 오히려 글을 올린 이를 무고죄로 처벌하라는 청원까지 등장했다. 논란은 잦아들었지만 양측의 갈등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집단 폭행범으로 몰렸던 청년들은 글을 올린 부부의 가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50대 부부 폭행 논란이 벌어진 후 한 달도 되지 않아 또 다른 국민청원이 지역을 달구고 있다. 집단 성폭행을 당한 중학생 딸이 가해자들에게 2차 피해까지 당하고 있다며 엄벌에 처해 달라는 청원이다.이 청원은 5일 현재 청원자 수가 23만 명을 넘어섰다. 가해자 6명 중 3명은 만 14세 미만의 '촉법소년'이고, 3명은 만 18세 미만의 미성년자인 상황. 3명은 이미 소년부로 송치돼 재판을 받았고, 3명은 6일 2차 공판을 앞두고 있다. 형사미성년자인 가해자들이 성인보다 가벼운 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아주 높다.청와대 국민청원은 문재인 정부가 선보인 '히트작'으로 꼽힌다. '20만 명의 동의가 모이면 청와대가 직접 답변한다'는 약속은 시민들의 참여의식을 절묘하게 자극했다. 시민들은 온라인 광장에서 직접 여론을 생산, 형성하며 해결까지 이끌어낸다.대구 최대 사설 유기동물 보호소인 '한나네 보호소' 폐쇄 문제가 대표적이다. 250여 마리의 유기동물이 살고 있는 이곳은 주민들의 민원과 가축분뇨법 위반 소지로 폐쇄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국민청원을 통해 여론의 중심에 섰고, 동물보호시설은 축사 등과 다르다는 유권해석을 이끌어내며 벼랑 끝에서 벗어났다.그러나 국민청원에 올라온 글들이 모두 화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역과 관련된 청원들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청와대의 답변까지 끌어냈다. 국민청원이 제기된 후, 언론이나 SNS를 통해 유통에 용이한 '미디어콘텐츠'로 바뀌었다. 이 콘텐츠는 다른 매체나 SNS를 통해 재가공돼 여론의 관심을 받았다. 뜨거워진 여론은 청원 동의자 수를 늘렸고, 눈덩이 굴리듯 확대됐다. 이 과정 중 핵심은 번데기가 성충으로 변하는 '우화'(羽化), 즉 미디어콘텐츠화였다.다양한 의견은 민주주의의 근간이지만, 비효율적이라는 부작용도 동반한다. 5일 오후 5시 현재 게시판에 오른 전체 청원 숫자는 22만9천 개가 넘는다. 매일 수십여 개씩 쏟아지는 국민청원의 홍수 속에서 중요한 정책 제안이나 애끊는 호소는 저열한 악담에 밀려나기 일쑤다.광장은 민주주의가 꽃피는 너른 밭이다. 그러나 광장에도 나름의 질서가 필요하다. 광장을 떠도는 무분별한 증오는 걷어내야 한다. 국민청원은 분명 효능이 뛰어난 즉효약이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모든 환자가 대학병원으로 몰려서는 안 된다. 질환의 경중과 종류에 따라 동네의원부터 2차병원, 상급종합병원으로 이어지듯 국가시스템도 적절한 '민원전달체계'를 갖춰야 한다. 그게 먼저다.

2018-07-06 05:00:00

[청라언덕] 민심이 바뀌었다

바닥 민심이 확실히 바뀌었다. 자유한국당의 뼈아픈 패배와 더불어민주당의 짜릿한 약진으로 대변된다. 613 지방선거에서 확인된 대구 기초의원 결과는 대구 민심의 변화를 단적으로 설명한다. 대구시장, 기초단체장, 대구시의원은 여전히 한국당 후보가 대부분 당선됐다. 민주당 후보들이 선전했지만 당선과는 거리가 있었다.기초의원에 대한 표심은 달랐다. 대구 기초의원 116명의 소속 정당을 보면 한국당 62명(53%), 민주당 50명(43%)이다. 바른미래당 2명, 정의당과 무소속이 각 한 명이 당선됐다. 4년 전 새누리당은 87명(75%)이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13명(11%)에 불과했다. 한국당의 참패와 민주당의 약진이 수치로도 확인된다.기초의원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무늬만 지방자치'인 제도적 한계에다 조례 제정, 예산 및 행정심사 권한도 적다. 기초단체 견제도 쉽지 않다. 정치적 무게도 별반 다르지 않다.하지만 정당 조직 차원에서 보면 다르다. 기초의원은 당원들과 밀접한 데다 정당의 뿌리 역할을 한다. 가지와 잎이 마를 경우 잘라내면 그만이지만 뿌리가 썩으면 나무 전체가 고사한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뿌리가 튼튼한 정당은 지금은 어려워도 미래를 기약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단명한다.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 민주당이 대구에 뿌리내리기에 성공했다. 혹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 덕분에 얼떨결에 당선됐다고 폄하하지만 간단히 볼 일이 아니다. 기초의원은 국회의원, 기초단체장과 달리 생활정치가 가능하다. 주민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소통하고 공감대를 넓혀가면 '특정 정당' 소속 여부는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민주당 수성구의원을 거쳐 대구시의원에 당선된 강민구 당선인의 말이다. "유권자들이 처음에는 민주당이라고 하면 머리에 뿔이 달린 짐승인 줄 알더라. 자주 소통하니까 자신들과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데 놀라더라." 생활정치가 끌어낸 변화다.지역 정치 주도권을 두고 벌어질 싸움 양상도 달라지게 됐다. 한국당은 공중전을 통해 기득권을 유지해왔다. 보수적인 민심의 일방적인 지지를 받은 당에 기대어 편하게 정치를 해 왔다. 앞으로는 민심을 얻기 위해 민주당 기초의원들과 치열한 백병전을 벌여야 한다. 한 표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동시에 수구 냉전적인 사고에 뼛속 깊이 젖어 있는 한국당이 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2년 후 총선에서 자멸의 길로 갈 가능성이 높다. 개인적으로 한국당 스스로 환골탈태할 가능성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희생과 헌신의 보수 가치를 망각하고 남북 대결 구도와 성장 지상주의, 온정주의에 매몰 돼 변화보다는 기득권 유지에 급급하면서 쌓인 고질병이 심각한 수준이다. 외과 수술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유권자와 정치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당 일각에서 차기 총선 '전원 불출마' 시나리오도 나오지만 소설 같은 얘기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자기와 입장이 달랐던 김문수, 이재오 등을 발탁한 창조적 파괴 수준의 리더십을 보여줄 지 회의적이다.지방선거를 치르면서 대구경북(TK)은 한국당의 인공호흡기가 됐다. TK가 손을 떼는 순간 사망선고를 받을 옹색한 처지에 빠졌다. 이는 TK 지지자들의 역할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당이 창조적 파괴를 할 수 없다면 인공호흡기 자격을 가진 TK 지지자들이 집요하게, 거칠게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끝내 변하지 않으면 버려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2018-06-29 05:00:00

[청라언덕] 경우 없는 보수에겐 희망이 없다

고희(古稀)를 앞둔 아버지는 난리통에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첫 아들을 품에 안아볼 새도 없이 낙동강 전선에 불려갔다. 나이가 비슷했던 할아버지의 큰조카도 함께 대문을 나섰다. 한참 만에 전쟁이 끝났지만 할아버지만 돌아왔다. 일찍 부모를 여읜 아버지는 줄줄이 달린 동생들과 자식을 키우느라 한평생 쟁기질을 했다. 공업도시 구미와 이웃한 덕에 농한기에는 구미 공단에서 일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한평생 전쟁을 싫어하는 보수로 살았다. 선거 때면 어김없이 보수 후보를 찍었다. 통일벼로 끼니 걱정을 잊게 하고, 구미 공단을 만든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의리였다.하지만 지난 대선에선 문재인 대통령을 선택했다. '경우가 밝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6·13 선거에서도 '경우가 있는' 무소속 후보를 찍었다. 그렇다고 '통일벼'와 '구미 공단'을 잊은 건 아니다. 박정희에 대한 '부채'를 박근혜 전 대통령 당선으로 어느 정도 갚았기에 가능한 일이다.아버지 눈에 보수는 '경우를 아는 바른 보수'다. 보수는 아들과 손자들이 평화로운 대한민국에서 행복하게 살게 하는 정치인이다. 비록 좌파 우파에 대해 잘 모르지만 누가 대한민국을 살찌울지는 안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시절에는 동생과 아들을 무사히 출가시키는 게 보수였다면 이제는 손자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는 것이 보수이고 '선'(善)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상당수 보수 표심이 아버지 마음과 비슷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자유한국당은 선거에서 처절하게 졌다. 공천을 번복하고, 사천하고, 그럴듯한 여론조사를 적용해 지지율 1위 후보를 날리고, 남의 도시를 욕하고…. 아버지는 그냥 경우가 없는 당에는 손자들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고 봤다.특히 대구경북(TK)은 보수 몰락의 원죄까지 있다. 막장 공천의 진수를 보여준 20대 총선에서 한국당 공천 감독은 대구 출신 이한구 전 의원이었다. 그 뒤에는 경북 출신 실세 스트라이커 최경환 의원이 있었다. 강제 퇴장당한 유승민 의원은 계속되는 경기에서 단독 드리블만 이어가고 있다. '친박'(친박근혜) 의원들은 축구공만 떼지어 따라다니며 '박근혜 마케팅'만으로 금배지를 달았다. 지난 총선은 진박 월드컵이나 진배없었다.한국당은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경우 없는 굿판'이 이어지고 있다. 집이 불타 이미 다 쓰러졌는데도 친박과 비박은 밥그릇 싸움에만 혈안이 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는 희망이 없다. 무릎 한 번 굽힌다고 없던 경우가 생긴다면 백 번이라도 꿇을 일이다. 우리나라를 책임질, 통일 한반도를 준비할 능력도 청사진도 없다. 오로지 자신들의 금배지 지키기에만 급급하다. 일부 중진과 초선이 거창하게 불출마 선언하는 게 무슨 대수인가. 반짝 쇼도 안 된다. 어차피 지지를 받지 못해 다음 총선을 기약하기 어려운 이들이다.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참신한 인물로 기초를 다지고 명망가를 영입해야 그나마 보수 재건의 희망이 있다.6·13 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마지막 막말을 하며 떠난 홍준표 전 대표에게 TK 버전 막말 한 자락 청한다. ▷국회의원 하면서 대구시장, 경북도지사 자리로 정치 생명을 연장하려는 사람 ▷기초단체장보다 인기도, 하는 일도 없으면서 공천 권력 가졌다고 마구 휘두르는 사람 ▷경쟁 상대를 제거하기 위해 사천을 일삼는 사람 ▷막말을 입에 올려 시도민에게 불명예를 안긴 사람 등은 반드시 21대 총선에서 심판해야 한다고. 아버지가 바라는 보수를 기대하며….

2018-06-22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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