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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정민 사회부 교육팀 차장

[청라언덕] 오케이, 부머

꼰대는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키는 은어(隱語)다. 이젠 나이 앞에 몇 마디가 더 붙는다. '자신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이란 말이다. 작년 영국 BBC방송에서도 'kkondae'라고 소개된 적이 있다. '자신이 늘 옳다고 생각하는, 나이 많은 사람'이란 설명이 뒤따랐다.영미권에서도 꼰대와 비슷한 말이 유행이다. '부머'(Boomer)가 그것이다. 이는 2차 세계대전 후부터 1960년대 태어난 베이비부머를 일컫는 속어. 하지만 이젠 말 안 통하는 기성세대를 비꼬는 뜻으로 쓰인다. 기성세대의 부정적 행동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박이다.'오케이(Okay), 부머.' 지난해 뉴질랜드의 20대 여성 의원이 의회에서 이 말을 내뱉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없애자는 '탄소 제로 법안'이 필요하다고 발언하던 도중 일어난 일이다. 기성세대 정치인들이 기후변화 위기를 알면서도 방치하는 현실을 지적하자 중진 의원들이 야유했고, 그에 응수한 것이다.물론 이는 '알아듣겠다'는 게 아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됐거든요, 꼰대 양반' '네, 다음 꼰대' 정도 되겠다. 오랫동안 잘못돼 온 관행과 지식 등에 대해 굳이, 힘들여서,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무시하겠다는 의미다. 왜 틀렸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하나하나 얘기하는 데 힘을 빼지 않겠다는 뜻이다.만 18세 청소년들에게 선거권을 준다니 말들이 적지 않다. 학교가 정치판이 될 거라고 걱정들을 한다. 돌려 말하지 말자. 교사 일부가 아이들에게 '빨간 물'을 들일까 우려하는 것 같다. 아이들이 뭘 안다고 정치를 얘기하냐는 생각도 깔려 있다. '그래, 나 꼰대야'를 당당히 외치며 한바탕 막말을 쏟아낸, 한 일간지 논설위원의 글도 딱 그렇다.해외 사례는 들지 않겠다. 조금만 찾아보면 청소년에게 선거권을 주는 곳은 많다. 이에 반대하는 어른들 눈에는 18세 청소년이 미성숙한 존재들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걱정을 하는 어른들이 만들어낸 사회는 과연 '성숙한' 사회인가.18세 청소년의 정보력과 판단력을 의심하는 시선도 따갑다. 하지만 다른 세대가 그렇게 볼 수준이, 자격이 되는지 의문이다. 학연과 지연, 혈연에 따라 투표하는 이들이 여전히 적지 않은 판국이다. 불쌍하다고 찍어주는 게, 같은 성씨를 쓴다며 모여 누굴 밀자고 떠드는 게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물론 나이 들어가는 자체는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다만 '나잇값' 못하는 건 부끄러워해야 한다. 자신들이 '머리에 피도 안 말랐다'고 얘기한 아이들보다도 모자란 걸 반성해야 한다. 아이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없다는 걸 민망해 해야 한다. 자신들이 얼마나 나은 판단으로 투표했는지 자문하는 게 먼저다.학교가 선거운동으로 난장판이 되는 건 누구도 원치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고3이 지는 무게감을 생각하면 더욱 조심해야 할 문제다. 그래도 그건 제도로 보완하면 된다. 18세 청소년에게 선거권을 줘선 안 되는 이유라고 하기엔 궁색하다. 대구 2·28민주운동도, 4·19혁명도 '까까머리' 학생들이 주도했다. 지금의 기성세대가 젊었을 때 일어난 일이다.포퓰리즘에 대한 면역이 안 돼 있다는 말도 쓴웃음이 나온다. 유튜브 가짜 뉴스에 혹해 누구누구를 때려죽여야 한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으면서 18세 청소년더러 너무 어리다고 할 수 있을까. 자기가 지지하는 쪽을 안 찍으면 '설익은' 것인가. '넌 늙어봤냐, 난 젊어봤다'는 말에 답한다. "그런데 어쩌라고요(오케이, 부머)."

2020-02-20 18:00:5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9일 대구 남구 경북여고 앞 인도에 중구선거관리위원회가 '18세 선거권 확대'에 따른 선거정보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여 놓아 눈길을 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청라언덕]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

오는 4·15 총선부터 선거권 연령 하향으로 18세(2002년 4월 16일 이전 출생)부터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고3 수험생들도 투표장을 찾아야 한다.고3으로 연령을 낮춘 이유는 청소년들의 참정권 확대를 위해 선거권을 부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 때문이다. 이 나이 때면 결혼, 군 입대, 공무원시험 응시 등이 가능한데 투표권만 배제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논리다. 급속한 고령화사회에서 노년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청년층 의견이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도 선거 연령 조정에 일조했다.찬성론자들의 예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선거권 연령 하향은 세계적 흐름'이라며 시대적 과제임을 주장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한국만 빼고 모두 18세 이하인 점을 근거로 한다.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나라는 외국의 사정과 전혀 다르다.미국과 유럽 등 18세 선거권을 인정한 나라는 대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3학년에 해당하는 시기다. 이 때문에 대학입시 등 공부에 매진해야 할 시기인 수험생들에게 선거권과 선거운동을 허용하면, 정치 갈등과 대립이 교실로 이어질 공산이 적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실제로 이번 선거부터 학생들도 선거에 관한 의견 개진과 의사 표시가 가능하다. 이와 함께 개별적 대화와 전화를 통해서도 선거운동이 가능하다. 문자메시지·인터넷홈페이지를 활용해도 무방하다.사회에 진출하기도 전에 범법자가 될 여지도 있다. 개정된 선거법에 따르면 고3 수험생들의 선거운동 가능성을 열어 두면서도, 2개 이상의 교실을 선거 목적으로 방문하면 안 되고 동아리·학생 단체의 특정 정당·후보 지지 선언도 금지했다. 확인되지 않은 사안이나 후보자 비방 글을 게시하거나 전송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 금지 규정을 철저히 숙지하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여권 주도로 선거 연령 하향이 관철됐으나 더불어민주당 등 주도 세력들마저도 후속 조치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고3 수험생의 투표 허용으로 약 17만 명의 유권자가 늘어났으나 관련 예산은 전혀 확보되지 않은 것이다. 후보자들 입장에서는 홍보물과 문자메시지 비용 등을 더 투입해야 하지만 개정된 선거법에는 이와 관련된 비용 증가는 한 푼도 없었다.청년 정치의 부작용도 드러나고 있다. 민주당은 어머니에게 각막을 기증해 화제가 됐던 원종건(27) 씨를 청년 후보로 영입했으나 '미투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출마의 꿈을 접었다. 미투 사건의 주요 내용은 원 씨가 여자 친구를 성노리개 취급했고 여성 혐오 발언을 일삼으며 가스라이팅으로 괴롭혀 왔다는 것이다. 20대 건실(?)했던 청년이 정치라는 무대에 올라서자, 발가벗겨지면서 인생은 180도로 변했다.이런 상황에서 1955년 대구매일신문 주필로 정론직필을 생명처럼 여기던 최석채 선생의 사설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제하의 글은 "어떤 시위나 대회라도 호소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공명(共鳴)의 자의식이 발동돼야 하지만 미숙한 학생들에게 어찌 그런 자각을 기대할 수 있는가"라고 명시돼 있다.헌법재판소도 이미 지난 2013년과 2014년 연이어 "만 19세 미만 미성년자의 정치적 판단이나 의사 표현이 왜곡될 우려가 있다"며 "18세에게 선거권을 주는 방안은 위법"이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2020-02-13 17:40:59

최두성 경제부 차장

[청라언덕] 부동산 정책과 확증편향

확증편향(確證偏向)을 국어사전은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으로 정의한다.자신의 고집 때문에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더 나아가서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성향'으로 풀이하는데, 시쳇말로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도 이런 성향에 해당된다고 한다.'불통'과 연결되는 이 단어를 차용한 예는 대부분 부정적이다. 경계하고 멀리해야 할 말이지만, 부동산시장에서 "집값은 내려갈 리 없다"는 주장에는 어째 귀가 쏠린다.천정부지로 뛰는 집값을 잡겠다는 일념으로 각종 규제를 쏟아붓는 정부 입장에서 이들은 확증편향자다. 19번의 대책을 냈고 모자란다면 더한 것을 꺼내겠다는데도 도통 듣지 않으려니 말이다.정부는 지난해 12월 16일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의 고가 주택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하며 시장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단기 급등에 따른 피로감, 2% 안팎의 정체된 경제성장률 등에다 대출을 옥죄는 등의 정부 규제로 "이제는 집값이 내려갈 것이다"고 전망한 이들도 있으나 정책 발표 두 달이 다 돼가는데도 큰 울림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12·16 대책 이후 시장이 관망세를 견지, 우상향 그래프의 상승 폭이 다소나마 꺾였다는 시세표가 그나마 정부 대책의 약발이 미친 흔적.되레 고가 아파트를 누른 탓에 그 주변이 솟아오르는 '풍선효과' 사례가 이를 상쇄해버리는 듯한 모습이다.한 부동산 전문가는 "더는 오르지 못하도록 고가 아파트에 지붕을 씌워놨으니 가격이 정체된 중저가 아파트나 그간 가격 상승의 '단맛'을 보지 못한 지역은 이번 기회에 값을 올리라고 정부가 길을 터주는 것 같다"고 했다.그러는 사이 "결국 올해도 집값은 오른다"는 확신에 찬 주장이 많은 사람에게 신념처럼 굳혀져가고 있다.이들은 1%대 저금리, 부동산 외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1천여조원의 부동자금, 분양가 상한제발(發) 공급 축소에 따른 신축 또는 준신축 아파트 열기 지속, 자사고 폐지 등 고교 체계 및 정시 확대로 말미암은 학군지역 집값 강세, 각종 개발 이슈가 등장할 총선 등을 그 근거로 든다.물론 핵심은 부동산 정책 자체에 대한 불신이다. 역대 여러 정부도 투기 근절을 부동산 정책의 근간으로 내세워 왔다.박정희 정부는 잇단 인프라 개발로 일명 '복부인'들의 투기가 극성을 부리자 부동산 투기억제 특별조치법과 토지거래 허가제를 도입했다. 전두환 정부는 양도세 인하를 포함한 규제 완화와 부양책을 썼으나 시장이 과열 조짐을 보이자 투기과열지구 지정, 채권입찰제 등 억제 카드를 빼들었다.그 후로도 각 정부는 시장이 얼어붙으면 완화하고 뜨겁게 달아오르면 규제책을 내는 등 '냉·온탕'을 수시로 오갔다."정부만 믿고 따랐다 재산 증식의 수많은 기회를 날렸다"는 사람들은 "그때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말한다. 확증편향자가 되지 못했음을 땅을 치며 후회한다.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서민들이 대통령을 믿고 집 안 사고 기다려도 되느냐"는 질문에 "대답이 불가능한 질문이다. 강력한 의지라고 믿어달라"고 했다.'투기와의 전쟁'은 선포했으나 승리는 자신 못한다는 뉘앙스로만 들리고 "규제는 언젠가는 풀린다. 그때는 고가 주택이 더 뛰니 좋은 매물을 눈여겨보라"는 어느 부동산 중개사의 귀띔에 끌림이 더한 건 확증편향 때문일까.

2020-02-06 16:11:21

전창훈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대학판 벚꽃 엔딩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할 겁니다."요즘 대학들을 다니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다. 이 말인즉,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대부터 차례로 도산할 거라는 자조 섞인 비유다. 씁쓸한 '대학판 벚꽃 엔딩'인 셈이다.수년 전부터 예고됐던 학령인구 급감의 쓰나미가 올해 대학가를 덮쳤다. 각 대학 입학처 관계자들은 2020학년도 신입생을 모집하면서 그 위력을 실감했다고 입을 모았다. 2019학년도까지는 그럭저럭 버텼는데 이번에는 정말 힘들다고 토로했다.대구경북에서는 2020학년도 입학 자원이 6천여 명 줄어들고 2021학년도에도 비슷한 규모로 감소할 것으로 점쳐진다. 현재 대학마다 추가 모집을 진행하고 있는데, 상당수 학과는 정원 미달 사태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문제는 이런 학령인구 급감 사태가 앞으로 수년간 이어진다는 점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0학년도 입학 자원은 2019학년도보다 4만6천여 명 줄어들어 처음으로 모집 정원보다 적은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이런 추세는 수년간 계속돼 5년 뒤인 2024학년도에는 지금보다 입학 자원이 12만여 명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일반적으로 신입생이 3천 명 이상이면 대형 대학으로 여겨지는 점을 감안하면 5년간의 학생 수 감소 추세는 실로 어마어마하다.하지만 대학마다 이런 위기를 느끼는 온도차는 확연하다. 학령인구 감소로 서울지역 4년제대 입성이 과거보다 수월해지면서 고3 수험생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혹자는 지금의 위기는 지방대의 위기라고 지칭하기도 한다.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의 역할을 한 번 따져보자. 교육부는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해 2015년부터 대학구조개혁평가를 통해 대학들의 정원 감축을 유도해왔다. 그러나 획일적인 잣대로 인해 지방대의 정원 감축 규모가 서울지역 대학보다 4배 이상 많았다.대학교육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서울시내 대학 정원은 3.5% 감소(9만771명→8만7천572명)한 반면 수도권 이외 지역의 대학 정원은 13.6%나 감소(34만3천715명→29만6천835명)했다.지난해 8월 교육부가 대학 자율을 강조하면서 대학구조개혁 방향을 달리한다는 발표했지만 실상은 벼랑 끝에 몰린 지방대를 더욱 압박한다는 비판도 있다. 표면상으로는 자율을 내세우지만, 진단지표 가운데 '충원율' 비중이 확대돼 사실상 지방대 죽이기 정책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결국 충원율 경쟁에서 지방대는 수도권 대학을 이기기 힘들기 때문이다.우리나라의 대학 생태계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애초부터 공정하지 않은 환경에서 대학들은 교육부가 제시한 일률적인 기준에 따라 무한 경쟁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경쟁력이 없는 대학들이 퇴출되는 사례도 있었지만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지방대들이 지역적 한계 탓에 성장 동력을 잃는 부작용도 심했다.최근 교육부가 지역혁신 플랫폼 구축사업을 발표했다. 지방대와 지방자치단체가 서로 협력해 지역의 미래 먹거리사업을 만들고 청년 일자리까지 만들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6월까지 비수도권 3개 지역을 선정해 7월부터 내년 4월까지 시범사업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무엇보다 과거 지방대를 옥죄는 방식에서 벗어나 비수도권 대학을 지원한다는 관점에서 사뭇 기대된다. 부디 단발성이나 전시성 정책으로 그치지 말았으면 한다. 더 나아가 이번 정책이 교육부 '지방대 살리기 프로젝트'의 불쏘시개였으면 한다.

2020-01-30 18:41:25

한윤조 경제부 차장

[청라언덕]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가

데이터 홍수 시대다. 아침 출근길 교통 이동 경로부터 카드 결제, 메시지를 주고받은 내용, 스마트폰 검색 내역 등 한 개인에게서만도 매일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새롭게 생성되고 그 내역들은 대부분 기업·정부 등에 의해 차곡차곡 쌓인다.이렇게 특정 개인에게서 파생되는 다양한 디지털 정보는 과연 '내 것'일까, 아니면 소유권 개념을 논의할 수 없는 무형물일까.과거에는 '자원'이라고 하면 석탄·석유·광물 등을 맨 먼저 떠올렸지만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데이터가 황금알을 낳는 최고의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결합을 통해 다양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낼 수 있다. 여기서 디지털 데이터는 '원유'에 비유되기도 하고, '21세기 자본'으로 불리기도 한다.얼마든지 돈이 되는 데이터는 우리 사회에 이미 넘쳐난다. 비즈니스의 데이터화에다 사물통신 사용 등이 급증하는 가운데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조사기관 IDC는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연간 디지털 데이터가 2025년에는 163조 기가바이트(GB)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풀HD급 영화 44조 편에 달하는 분량이다.계속 국회를 표류하던 '데이터 3법'이 연초 통과하면서 빅데이터를 활용한 4차 산업혁명의 혁신적 발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 가장 먼저 정리해야 할 숙제가 '데이터 소유권'이다.앞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 '가명정보'는 지금까지의 '익명정보'와는 그 양상이 사뭇 달라 일각에서는 그 부정적인 영향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기 때문이다.익명정보는 식별자가 완전히 삭제되고 범주화된 정보이지만 가명정보는 좀 더 자세하다. 이름·주민등록번호 등 민감한 개인정보만 암호화해 알아볼 수 없게 처리했을 뿐 실존하는 인물의 정보 그대로인 것이다. 그래서 가명정보 데이터들은 몇 번의 분석과 처리 과정을 거치면 누구 정보인지 특정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터져 나온다.은행이나 포털사이트, SNS 등을 통한 대량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빈발한 탓에 우리나라의 가장 고유한 개인식별정보인 주민등록번호까지도 나만의 것이 아닌 현실을 감안한다면 가명정보를 통한 개인 식별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임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더구나 지금까지 개인정보 이용은 동의하에 이뤄졌지만 가명정보는 동의 없이도 활용될 수 있다 보니 내 정보를 누가 어떤 목적으로 쓰고 있는지도 알 수 없어 불안감을 키운다.이번 데이터 3법 통과로 나에게서 생성된 소비 패턴부터 민감한 신용·의료정보까지 온갖 정보들이 기업의 돈벌이에 이윤 창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정부는 시행령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근본적인 문제가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것이다. 정부와 산업계는 데이터 자원이 가진 가능성으로 기술 경쟁에서 앞서 나갈 장밋빛 전망만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가장 근본적인 '데이터 소유권' 문제부터 공론의 장에 올려 시민사회 합의를 이끌어내는 작업을 선행해야 한다.이미 국회에서는 이와 관련해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의한 민법상 '물건'의 개념에 데이터를 포함하는 법안이 발의돼 있기도 하다.또 데이터와 개인정보 규제 완화가 개인의 생활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충분한 논의의 장이 마련돼야 한다. 데이터는 잘 쓰면 삶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만들지만, 반대로 삶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양날의 검이다.

2020-01-23 15:28:40

장성현 경제부 차장

[청라언덕] CES, 참가만이 능사는 아니다

지난 8일(현지시간) 'CES 2020'이 한창이던 미국 라스베이거스 테크 이스트(Tech East) 내 사우스플라자(South Plaza). 18만 명이 몰려드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가전·IT 박람회'답지 않게 전시장 안은 꽤 한산했다.주로 디자인과 조달 분야 업체들이 배치되는 사우스플라자는 가건물에 테크 이스트 내에서도 외곽에 있어 관람객들의 발길이 뜸한 편이었다.이곳에 마련된 대구경북공동관을 찾는 해외 바이어들도 기대만큼 많지 않았다. 스타트업이나 아직 해외 시장 인지도가 높지 않은 업체들이 다수인 점도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역시 중견·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밀집한 '테크 웨스트'(Tech West) 내 샌즈 엑스포로 들어서자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전시장은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통로를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인파가 붐볐다.이곳에는 3D 프린팅과 무선 디바이스, 드론, 건강, 웨어러블, 피트니스, 센서, 스마트홈, 수면 분야 업체들이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중견기업인 바디프렌드와 코웨이가 전시장을 꾸렸고, 대구테크노파크 스포츠융복합산업지원센터가 마련한 홍보관에도 10개 업체가 전시 부스를 마련했다.설립 5년 미만의 스타트업 기업들로 구성된 '유레카관'도 인산인해였다. 올해 처음 CES에 참가한 서울시는 '스마트시티, 스마트라이프'를 주제로 공동관을 차리고 수많은 관람객을 맞았다.한국정보통신기술산업협회(KICTA)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한국국제협력단(KOICA). 삼성전자 C-랩,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의 지원을 받은 국내 업체들도 'KOREA'라는 이름 아래 유레카관에서 기술을 선보이고 있었다.그렇다면 대구경북공동관은 왜 한산한 사우스플라자에 자리를 잡았을까. CES를 주최하는 CTA(전미소비자기술협회)가 대구경북공동관을 사우스플라자에 배정한 건 공동관의 참가 주체가 지방정부이기 때문이다.CES는 철저하게 기업과 기술 위주의 전시다. 분야별 참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 전시는 주요 전시장에 들어가기 어렵다. 서울시가 '유레카관'에 공동관을 차린 건 설립 5년 미만의 스타트업만 모은 덕분이다.공동관에 참가한 대구 기업 25곳 중 10곳은 설립 5년 이하의 스타트업이었다. 제품과 기술도 AI와 진단 및 의료기기, 스마트도시, 드론, 사물인터넷, AR 등 분야별로 다양했다.대구경북이 만약 분야별로 기업들을 모아 여러 곳의 공동관을 마련했다면 사우스플라자가 아닌 본 전시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국내 지자체 중 가장 일찍부터 CES에 참가했지만, 성과를 거둘 전략은 부실했다는 뜻이 된다.다행히 'CES 2021'에서는 대구경북공동관이 가건물 신세를 면할 가능성이 높다. CTA는 내년 CES에서 국가관을 사우스플라자 대신 테크 이스트 내 사우스홀로 옮기기로 정책을 수정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안심할 건 아니다. 사우스홀 역시 관람객들의 주목도가 떨어지는 전시장 중 하나다. CES 2021은 전체 부스 중 절반 이상이 이미 자리 배치도 끝난 상태다.대구시는 벌써 3회째 CES에 참가했다. 참가에 의의를 둘 시기는 지났다.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전략 수립이 절실하다. 대구경북공동관을 분야별·주제별로 묶어서 참가하는 방법도 대안이 될 수 있다.목 좋은 자리는 참가 횟수가 늘어날수록 차지할 가능성도 커진다. 내년 CES에서는 대구경북 기업들의 전시장이 관람객들로 붐비길 기대한다.

2020-01-16 17:29:47

정치부 차장 이창환

[청라언덕] 보수대통합을 바라보며

4·15 총선을 앞두고 대통합이 보수 진영의 화두로 떠올랐다. 대한민국 보수를 대표하는 지역인 대구경북(TK) 유권자들도 보수대통합 성공 여부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보수 진영의 큰집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갈지자 행보로 인해 우여곡절을 겪은 보수대통합은 선거일 97일을 남기고서야 혁신통합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보수대통합을 향한 첫걸음을 겨우 내디딘 셈이다.분열된 채 치른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보수는 참패했다. 이대로 총선을 치른다면 보수의 패배는 불 보듯 뻔하다. 대선의 전초전인 총선에서 완패한다면 정권 교체도 물 건너갈 공산이 크다. 범여권으로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그나마 균형을 맞추게 할 최소한의 장치가 보수대통합이다.최근 일부 서울 언론이 TK 정치권을 '반(反)통합 진원지'로 지목하는 것은 우려할 일이다. TK 정치권이 "영남권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다면 (수도권을 일부 잃어도) 총선에서 자력으로 해볼 만하다"는 분위기라고 전하고 있다. 유승민 의원이 주도하는 새로운보수당에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기도 한다는 것이다.이 보도를 접하면서 4년 전인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불거졌던 '존영 파동'이 떠올랐다. 당시 유승민·주호영·류성걸·권은희 의원은 새누리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자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선거전이 가열되던 3월 28일 새누리당 대구시당은 이들 의원 당원협의회 사무실에 걸린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을 철거해 반납해 달라고 요구했다. 당의 예산으로 제작해 배포한 사진은 정당 자산이라는 이유에서다.이날 오전 대구시당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 사진 철거를 요구한 데 이어 오후 관계자가 직접 공문을 들고 당협 사무실을 찾아갔다. 권은희 의원 측 관계자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유치하고 치사하다"며 울분을 토하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존영 파동의 후유증은 컸다. TK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엄청난 역풍이 불었고, 특히 수도권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다.새누리당 내부에서조차 "4석을 얻으려다 수도권에서 20석 이상 날아갔다"며 자조했다. 취재기자로서도 낯뜨거웠던 기억이다. 비상이 걸린 TK 의원들은 두류공원에 모여 '한 번만 살려달라'며 무릎 꿇고 읍소했지만 돌아선 민심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TK 보수 정치권은 지역 정서에 의지해 꽃길을 걸어왔다. 꽃길에 취해 변화와 혁신을 거부하고 반통합 세력으로 비치면 TK 정치권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TK 탓에 통합이 되지 못하고 총선에서 패했다는 평가가 나와선 안 된다.TK는 보수 진영의 본진이다. 보수 정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도덕적 해이에 빠질 때 회초리를 들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다. 오히려 TK에서 보수 정당의 혁신과 변화의 바람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참신하면서 보수의 가치에 동의하는 젊은 층이 선거에 많이 나와야 한다. 중앙당은 파격적인 공천으로 이들에게 힘을 실어야 한다. 그래야 TK 정치권에 미래가 있고 보수도 살아남을 수 있다.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민주주의를 보편화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제도가 선거라는 의미다. 정당 입장에서 선거는 총성 없는 전쟁이다. 승리를 위해서는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정당이 가진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해야 한다. 보수대통합은 보수 진영이 완패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TK 정치권이 앞장서지는 못하더라도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

2020-01-09 18:41:59

[청라언덕] '녹풍다경(綠風多慶)'

이철우 경상북도지사가 신년 화두로 '녹풍다경'(綠風多慶)을 제시했다. '綠塞風'(녹새풍·높새바람)과 '多幸多福'(다행다복·운이 좋고 복이 많음)을 조합했다. 푸른 새바람으로 경북에 좋은 일을 많이 만들겠다는 염원이 네 글자에 고스란히 담겼다.2019년 경북도정을 사자성어로 표현한다면 어떤 말이 어울릴까. 경북 도정은 'TK(대구경북) 패싱은 없다'는 선로 위를 쉬지 않고 달린 기관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철우표 '새바람' 엔진을 단 기차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의 대내외 환경 속에서 좌표를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경북은 그간 인구 감소와 경기 침체, 그리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사면초가'(四面楚歌) 상황이었다.하지만 이 도지사가 '모피지부'(毛皮之附·근본은 뒷전이고 중요하지 않은 문제만 해결하려는 것)를 해부하고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절박한 심정으로 변화와 혁신, '변해야 산다'라는 슬로건 아래 개혁에 개혁을 시도했다.매주 화요일 오전 전국 최고의 전문가를 초청해 특강, 토론을 통해 시대 트렌드를 배웠다. 침체된 조직에 활력과 창의성을 불어넣고자 '해피 댄스' '황톳길 걷기' '청춘데이' 등으로 직원들의 끼와 재능을 이끌어 냈다. 투명한 인사로 복지부동(伏地不動)하기 쉬운 공무원 조직의 심복지환(心腹之患)부터 없애 나갔다.이러한 노력은 풍성한 결과물로 되돌아왔다. 경주에는 '혁신원자력기술연구원'을 유치했다. 또 포항의 '강소연구개발특구' '차세대배터리 규제자유특구' '가속기 기반 신약클러스터', 구미의 1조원 이상 '스마트산단' 조성, '홀로그램 기술개발' 예타사업 통과, '5G 테스트베드' 국가사업 등도 꼽을 수 있다.관광 인프라 구축도 괄목상대(刮目相對)할 만하다. 도산서원 등은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20여 년 학수고대(鶴首苦待)해 온 '신라왕경특별법'은 마침내 국회를 통과했다. 경주는 이탈리아 로마에 버금가는 천년 수도로서 관광의 보고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에는 포항 영일만 관광특구 지정과 함께 영일만항을 출발하는 크루즈선이 만선을 이루는 쾌거를 이뤄 앞으로 해양관광 콘텐츠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변화와 혁신은 2020년 국비 예산 확보 분야에서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었다. 연초부터 이 도지사는 "더 이상 TK 패싱이라는 말을 하지 말자. 차라리 실력이 없다고 하자"며 노력과 헌신을 주문했다.도지사부터 지난 1년 동안 36차례에 걸쳐 청와대, 총리실, 기획재정부 등의 인사들을 만나며 솔선수범(率先垂範)했다. 경북도청 공무원들도 하나가 돼 국궁진췌(鞠躬盡瘁·마음과 몸을 다하여 나랏일에 이바지함)했다.도지사부터 직원에 이르는 일심동체(一心同體)는 4조4천664억원(2019년 대비 21.1% 증가)이란 국비를 맺게 했다. 자동적으로 지원되는 국비까지 합산하면 8조8천억원 규모로 대폭 늘어난다. 경기도를 제외하고 전국 최고 수준이다. 학립계군(鶴立鷄群)이다.경북도 공무원들도 거일반삼(擧一反三·하나를 알려주면 셋을 안다는 뜻)의 경지에 이르렀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인사 역시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인사가 '대공무사'(大公無私)하니 공무원끼리 손방투지(孫龐鬪智·대등한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 지모를 다하여 경쟁하는 것)한다.2020년 새해에도 구성원 하나하나가 '주마가편'(走馬加鞭)을 다짐한다. 경북도민, 나아가 국민 모두가 '고침무우'(高枕無憂·높은 베개를 베고 근심 없이 지냄)하길 바란다.

2020-01-02 16:49:25

이상준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가덕신공항은 없다

여야 간 국회 대치 공방이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로 번지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 전 국회의장을 총리 후보자로 지명하자 김재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권력분립의 원리가 몰락했다. 입법부 수장을 지낸 분이 대통령의 밑에 들어가 행정부에서 일하겠다는 발상이냐. '시다바리'라는 말이 생각난다"며 청문회 공방을 예고했다.이 와중에 때아닌 '가덕신공항'이 정 후보자 뉴스에 가세했다. 25일 자 부산 지역 언론에 '정세균, 알고 보니 가덕도신공항 적극 찬성'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린 것이다.지난 2012년 8월 24일 당시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자격으로 대구를 찾은 정세균 의원은 "영남지역에 신공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입지는 냉정하게 정치적 배려를 고려하지 않아야 하며 개인적으로는 가덕도가 적지라고 생각한다"고 해 대구경북 지역사회의 거센 반발을 샀다.영남권 신공항 입지를 두고 가덕도(부산)와 밀양(대구경북)으로 갈라져 치열한 갈등을 거듭하던 시절, 여야 대권후보 중 유일하게 가덕도 지지 입장을 밝힌 것이다.이에 부산 지역 언론은 "과거 정 후보자가 부산뿐만 아니라 가덕신공항에 적대적인 대구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밝힌 것으로 볼 때 가덕신공항에 긍정적인 입장을 가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는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놨다.그러나 정 후보자의 과거 발언은 지난 2016년 국토교통부가 영남권 신공항 갈등에 종지부를 찍고, 김해공항 확장을 발표하기 훨씬 이전이다.정치인이라면 모를까, 국정 2인자로 영남권 5개 시·도가 합의하고 정부가 발표한 국책사업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고, 또 영남권 신공항 갈등을 조장할 순 없는 노릇이다.지난 6월 김해신공항 재검증에 착수한 총리실은 이미 외부 전문가를 통한, 중립성과 전문성을 최우선으로 한, 기술적 검증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다.영남권 신공항 입지 재선정(가덕신공항 건설) 등 부산·울산·경남(부·울·경)의 정무적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설령 정 후보자가 국회 청문회를 통과해 총리에 오른다고 해도 더 이상 부산 지역 언론과 정치권이 기대하는 가덕신공항 재점화는 '없다'는 얘기다.무엇보다 과거와 달라진 점은 부산 지역사회 여론이다. 지난 24일 부산MBC가 연말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보도에 따르면 부산 시민들은 가덕신공항 건설보다 지금의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방안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지난 19~22일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성인 남녀 1천2명을 대상으로 신공항 건설안을 여론조사한 결과, 김해공항을 확장해야 한다는 응답(41.1%)이 가덕신공항을 건설해야 한다는 답변(37.6%)보다 더 많이 나온 것이다.부산MBC는 "오차범위 안이라 하더라도 예상보다 김해공항 확장 안에 대한 시민 선호도가 높다"며 "가덕신공항이냐 김해공항 확장이냐, 선거 때마다 정치 쟁점이 된 이 사안에 시민들의 피로감이 커 보인다"고 분석했다.같은 여론조사에서 취임 이후 1년 6개월간 오거돈 부산시장에 대한 시정 수행 평가에서도 부정적인 반응이 훨씬 많았다.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26.7%, 반대로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46.2%로, 20%포인트 가까운 큰 격차를 보였다.각설하고, 선거 때마다 되살아나는 정치적 산물로 부산 지역사회 내에서도 돌아선 여론, 가덕신공항을 다시 끄집어낸 시장이 정작 시민에게 외면받고 있는 상황, 이것이 바로 부산 '가덕신공항'의 현주소다.

2019-12-26 16:06:16

채정민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주머니돈은 쌈짓돈이 아니다

'사학(私學)이 사악(邪惡)하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사립학교를 둘러싼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예외가 없다. 잊을 만하면 사학 비리 뉴스가 터진다.건국 이후 오랫동안 한국의 교육 인프라는 척박했다. 민간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역대 정부가 사재를 털었다는 사학 설립자들 앞에선 약해졌던 이유다. 사학들은 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폭 넓게 인정받았다. 그게 독이 됐다. 사립학교를 제대로 감사하면 비리가 고구마 줄기처럼 이어진다.박용진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0월 국정감사 때 전체 사학 비리 규모를 공개한 바 있다. 2014년부터 현재까지 사립유치원부터 사립고교까지 발생한 비위 건수는 2만4천300건, 금액은 1천402억원에 달했다. 사립대학의 비위 금액은 4천771억원이었다.'숨 막힐 것 같은 규모', '나라가 망할까 봐 겁날 정도'. 이 통계를 밝히며 박 의원이 덧붙인 말이다.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간다. 다른 곳도 아닌, 학교가 이 상태라는 게 믿기지 않을 수준이다. 특히 아이를 학교에 맡긴 부모 마음이 편할 리 없다.대구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대구시교육청이 사립학교법인 두 곳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내용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비리로 물러난 전 이사장은 여전히 학교이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사회 이사들도 한통속. 학교 교육에 쓸 돈으로 이사장실을 꾸미는 등 공금 횡령도 예사였다. 교내 비리 제보자를 협박하기도 했다.자연스레 사학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른바 '유치원 3법'도 그런 조치 중 하나. 박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것으로 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이다. 국가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사립유치원의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는 게 핵심이다.문제는 이 법안이 아직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유치원 돈을 제멋대로 펑펑 써댄 사립 원장들이 공분을 불러일으킬 때만 해도 곧 시행될 것 같았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발목을 잡았다. '패스트트랙' 열차에 가까스로 올라탔지만 이번에도 통과할지는 미지수다.자유한국당의 반대 논리는 사립유치원 단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의 주장과 흡사하다. 한유총은 국가 회계 시스템(에듀파인) 도입에 반발했다. 물건을 파는 점포도 아닌데 임대료 성격인 시설 사용료를 달라고 요구한다. 모두 사유재산이라는 게 이유다.자유한국당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나경원 전 원내대표가 사학을 운영하는 집안 출신이고, 황교안 대표는 한유총 고문 변호사였던 게 자꾸 눈에 밟힌다. 사학 운영자와 관련된 이는 그들 외에 더 있다.사학이 사유재산이긴 하다. 그래도 운영의 공공성, 투명성은 담보돼야 한다. 세제상 각종 혜택이 주어지고 교직원 인건비 등 재정 지원을 받는 만큼 책임이 뒤따르는 게 당연하다. 대구만 해도 사립유치원 1곳당 연평균 지원액은 5억1천여만원이나 된다. 사립고는 더 많다. 이번 감사에서 적발된 사립고 2곳의 올해 지원액은 각각 82억5천여만원, 56억3천여만원에 이른다.한 한유총 관계자가 이런 말을 한 바 있다. "유치원 폐원 시 학부모 3분의 2 이상 동의가 필요하다는 건 치킨집 문을 닫는데 종업원 3분의 2 동의를 받으란 것과 같은 꼴"이라고. 당시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반문했다. "유치원이 치킨집입니까?"사립유치원은 단순한 사유재산이 아니다. 비영리기관인 학교다. 아이들의 학습권이 보장돼야 한다. 또 사학의 주머닛돈은 쌈짓돈이 아니다. 그 돈 대부분은 국민의 혈세다.

2019-12-19 15:57:43

박상전 서울정경부 차장

[청라언덕] 황교안과 심재철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읍참마속'을 외치며 당직 쇄신을 단행한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심재철 국회의원이 새로운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한 명은 당을 이끌고, 다른 한 명은 당내 의원들을 대표한다. 전통 있는 보수 정당의 명실상부한 두 명의 장수이다.두 사람의 스타일은 너무 다르다. 대여 투쟁, 그 가운데 '단식'을 예로 들자.황 대표는 평생 두 번의 단식을 했다. 최근 마친 8일간의 단식이 하나이고, 고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한 게 전부다. 황 대표는 고시 공부 장소를 지방의 한 기도원으로 잡았는데, 기도원 규율이 3일 금식 이후 정식 입소여서 할 수 없이 단식에 임했다. 금식 후 "머리가 너무 맑아졌다"는 게 추경호 국회의원의 전언이다.황 대표는 최근 '목숨을 건 단식'에 돌입했다. 8일을 꽉 채우고 정신을 잃기까지 했다. 고시 합격 후 평생 공안검사와 고위 공직자로 살던 그에게는 다소 파격적인 행보인 셈이다.반면 심재철 원내대표는 전형적인 386 운동권 세대이다. 광주 출신인 그의 정치적 뿌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민주화운동으로 투옥돼 지금도 고문 후유증으로 시달린다고 한다.단식을 밥 먹듯 했다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 그래서 심 원내대표에게 단식 투쟁은 더 이상 강공으로 보여질 리 없다. 소속 의원을 이끌고 대여 투쟁의 선봉에 서야 할 그의 투쟁 리더십 수위가 어디까지일지 벌써부터 대중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두 사람의 당 내 지지 세력도 극명하게 갈린다.황 대표는 두 번의 당직 개편을 단행하면서 초·재선을 전면에 내세웠다. 공천 혁신을 부르짖으며 중진 물갈이론에 앞장섰고 현역 의원 50% 공천 탈락이라는 수치까지 제시했다.당장 중진들이 불안했다. 불안 심리를 활용해 심 원내대표가 등장했다. 그는 '공천 대학살론' 대신 "여러 의원님들의 다음 총선 승리를 위해 힘을 합치겠다"며 의원들의 불안한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결과 중진들이 대거 몰렸고, 원내대표 1차 경선에서 39표에 불과하던 그의 득표 수가 2차 결선에선 52표로 늘어났다.정치 경력 면에서도 심 원내대표는 5선으로 김무성 의원을 제외하면 당 내 최다선이고 황 대표는 배지를 한 번도 달아 본 적이 없다.황교안·심재철.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의 관계를 놓고 우려와 기대가 동시에 나온다.한편에선 두 사람의 전혀 다른 경력과 정치 스타일을 놓고 상보 관계로 보는 이들이 있다. 각자의 장점을 부각하면서 부족한 점은 서로 채워줄 수 있다는 희망 섞인 분석이다. 중앙당과 원내 운영에 견제가 생겨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감을 찾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반대로 각기 다른 스타일과 당 내 지지 세력 탓에 사사건건 부딪칠 것이라는 우려도 함께 나온다. 특히 공천 문제에서 양보할 수 없는 혈전을 치른다면 당은 복잡한 내홍으로 빠져들게 된다.공천 문제는 중앙당 대표 권한이지만 심 원내대표는 이미 "공천에 개입해 황 대표에게 직언할 것"을 천명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월권 논란이나 항명으로 비칠 수도 있다. 황 대표 측의 강력 반발이 예상되지만 심 원내대표 입장에선 당을 위한 일이라고 주장할 것이 뻔해 양측의 대립은 불가피해 보인다.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당장 17일부터는 예비후보 등록이다. 공천 문제를 두고 두 사람이 상호 보완 공생 관계로 발전할지, 분당까지 가는 시발점으로 악화할지의 문제는 의외로 빠른 시일 내에 드러날지 모른다.

2019-12-12 16:40:06

최두성 정치부 차장

[청라언덕] '꼰대' 지수 쌓는 국회

어느 때부터인가 '멋있다'는 말을 듣기보다 '꼰대'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젊은 시절 늘어놓던 무용담이 이제는 '꼰대'의 척도가 되니, 나이가 들수록 입을 더 무겁게 하라는 선인들의 말을 생활 제1덕으로 삼아 실천할 때가 된 듯하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꼰대'를 은어로 '늙은이'로 정의하며 덧붙여 학생들 은어로 '선생님'을 이르는 말로 규정했다. 권위를 행사하는 어른이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뜻을 담고 있는 말로 요약한 것이다.이 '꼰대'는 해외에 알려지기도 했는데, 영국 BBC방송은 지난 9월 23일 자사 페이스북에 오늘의 단어로 'kkondae'를 소개하며 'An Older person who believes they are always right(And you are always wrong)'라 했다. 풀이하면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나이 든 사람(그리고 당신은 항상 틀렸다)이다.인터넷을 뒤져 얻은 꼰대에 관한 좀 더 긴 해석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 젊은 사람에게 어떤 생각이나 행동 방식 따위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권위주의적 기성세대'다."나 때는 말이야"를 입에 달고 다닌다고 해서 'Latte is horse'(라테는 말이야)라는 유행어도 만들어졌단다.꼰대는 적어도 젊은 세대들에겐 기피 대상이다. 기성세대의 경험과 공(功)마저 깡그리 무시하며 세대를 구분 짓는 잣대같아 씁쓸하지만 나이로, 직책 등 권위로 아랫 세대를 누르며 일방통행을 강요했던 관습을 더는 인정치 않겠다는 젊은 세대의 선언같기도 해 꼰대가 되지 않아야겠다, 이미 꼰대가 됐다면 벗어나야겠다는 동기를 불러일으킨다.젊은 세대가 지목하는 '꼰대 집합소'는 단연 정치권이다. 최근 몇몇 정치인의 꼰대 인식은 그런 면에서 울림이 있다.일찌감치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치권에 포진한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를 향해 "마지막 역할은 젊은 세대에게 문을 열어주는 산파역이다. 국회에 연연해 이를 불쾌하게 여긴다면 꼰대스러운 일"이라고 일침했다.자유한국당의 최연소 3선 개혁파이면서 이제는 전직이 됐지만 당의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장이기도 했던 김세연 의원 역시 불출마 선언문을 통해 "한국당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다. 생명력을 잃은 좀비 같은 존재라 손가락질 받는다. 창조를 위해서는 먼저 파괴가 필요하다. 깨끗하게 해체해야 한다"고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내부 총질, 배은망덕 등 비판과 반발이 쏟아졌으나 비호감 역대급 1위인 한국당에 내린 그의 진단이 틀린 것 같진 않다.그러나 아쉽게도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극대화하고 있지만 정당, 정치인들의 꼰대 탈출 노력은 나아감이 없다.여야는 꼰대의 1강령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다 네 탓이다'를 내세워 국회를 마비시키고 있다. 공직선거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안 등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에 올려진 법안을 두고 극강의 대치를 벌이고 있다.시급한 민생법안 처리를 뒷전으로 한 채 나의 주장만 강변하는 모습은 '꼰대' 마일리지 쌓기 경쟁을 보는 듯하다.내년 총선 승리를 위한 포석이라면 큰 착각이다. 좋아서 찍는 표보다 상대가 싫어서 주는 표가 더 많다는 것을 여러 번 선거에서 경험하지 않았던가.직전 20대 총선에서 야권 분열의 호재에도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원내 2당으로 전락한 데는 공천 파동, 계파 패권주의, 오만이 불러일으킨 비호감의 결과였다는 것을.

2019-12-05 19:30:07

전창훈 경북부 차장

[청라언덕] 오징어의 귀환을 바라며

오징어는 참 친숙하고 만만했다. 한때 땅콩과 찰떡궁합을 이루며 맥주의 대표적인 안주로 이름을 날렸다. 오징어회 한 접시는 꽁치구이와 함께 횟집에서 대표적인 '쓰키다시'였다.그러나 몇 년 사이 오징어는 '금(金)징어'가 됐다. 이제 한 마리에 1만원은 우습다. 오징어회를 '쓰키다시'로 내는 횟집도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가끔 오징어회가 먹고 싶어 횟집에 가도 허탕치는 경우가 잦다.이런 현상에 대해 '덜 잡히니 자연스레 비싸졌겠지'라고 치부할 일이 아니다. 그 배경에 중국 어선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어선들이 우리 서해에서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고 동해상에서도 수산자원을 초토화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오징어의 서식지가 북상하면서 불법 조업을 일삼는 중국 어선들이 북한을 통해 북한 수역과 울릉도 인근을 기습적으로 오가며 오징어의 씨를 말리는 것이다.한국해양수산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2004년 1차 북중어업협정 체결로 북한 수역에 들어간 중국 어선은 114척에 불과했지만 매년 그 수가 급증해 지난해에는 2천161척에 달했다. 북한은 대가로 중국 어선들로부터 수역 입어료를 받는다. 그 수입이 최대 7천만달러에 육박하는 것으로 점쳐진다. 북한과 중국이 '짝짜꿍'하는 동안 우리 어민들과 국민이 피해를 고스란히 보는 것이다.어처구니없는 것은 중국이 싹쓸이한 오징어 상당수를 우리나라에 수출하는 것으로 의심된다는 점이다. 동해안 오징어를 닥치는 대로 잡은 뒤 오징어값이 비싸진 우리나라에 되팔아 큰 이익을 챙기는 셈이다.통계청 등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중국에서의 오징어 수입량은 6만9천889t으로 우리나라 어획량(4만6천274t)의 1.5배를 넘었다.중국 어선들의 조직화·과학화도 위협적이다.오징어는 군집의 크기와 위치 추적이 쉽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인공위성과 탐사선 등을 활용, 오징어에 대한 정보를 대량 수집해 중국 어선들에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중국 어선들의 오징어잡이 추적 정확도는 최대 90%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나라 어선들이 이에 맞서 오징어잡이 경쟁을 한다는 것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나 다름없다.어민들이나 관련 산업 종사자들은 절로 한탄이 나온다.울릉도의 한 어민은 "중학교 졸업 후 60여 년간 오징어산업에 종사했지만 올해처럼 오징어가 없는 경우는 처음이다"고 털어놨을 정도다. 이들은 관련 산업의 공멸까지도 우려하고 있다.어민들은 스스로 우리 바다를 지키겠다고 나섰다. 전국 일선 수협장과 어업인단체, 국회 농수산위원회 위원 등은 최근 '우리바다살리기 중국어선 대책 추진위원회'를 출범하고 중국 어선 불법 조업 등 수산업의 위기 타파를 위해 강력하게 대응할 작정이다.상황이 이렇게 절박한데도 정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북한과 중국의 행태는 국제적으로 명백한 위반행위인데도 눈을 감고 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어업권 판매가 주요 외화벌이 창구로 지목되자, 2017년 12월 대북제재 결의 2397호로 북한의 어업권 판매를 금지한 바 있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중국 어선들이 북한과 우리 수역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포항의 한 수협 관계자는 "동해에는 서해보다 어민들이 상대적으로 적어 표로 연결이 덜 되다 보니 정부에서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가뜩이나 북한과 중국에 편향된 정부인데 우리가 아무리 떠들어도 애써 이런 문제를 외면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날 선 지적이 부디 허투였으면 좋겠다.

2019-11-28 17:19:30

지난 7월 영남대의료원 응급센터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해고 노동자. 왼쪽이 송영숙 부지부장. 매일신문 DB.

[청라언덕] 당신의 관심을 조금만 이웃 가까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겨울이 훌쩍 다가오면서 괜스레 마음이 더 후달린다. 개인적으로 올 한 해 지역에서 벌어진 일들 중 가장 마음의 빚이 큰 사건 중 하나가 영남대의료원 사태이기 때문이다.사람이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는데 뭐 하나 도움된 것이 없다. 그저 날이 궂기만 하면 내내 하늘만 쳐다봤다. 누가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이들이 별 탈 없이 안전하기만을 기원했다.여성 해고노동자 2명의 고공 농성은 한창 더위가 심해지는 7월 1일 시작됐다. 이들은 장마와 이글거리는 한여름 뙤약볕을 견디고, 불어닥치는 태풍을 맨몸으로 그대로 받아냈다. 이후 낙엽이 다 떨어지고 영하의 찬바람이 불어닥친 지금까지도 고공 농성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2명의 고공 농성자 중 1명이 건강 문제로 중도에 내려오면서 1명만 홀로 남아 외롭고 위험천만한 나날을 버티고 있다. 오늘로 벌써 144일째다. 이대로라면 해를 넘길 기세다.영남대의료원 사태에 유달리 미안함이 쌓이는 이유는 목숨 내놓고 투쟁하는데도 영 시민들의 관심을 얻지 못해 언론의 탓도 있는 것 같아서다. 지역 언론조차 지속적인 조명을 이어가진 못했다.반면 이들에게 미안함이 커질수록 모든 것을 함몰시키는 정치 이슈에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모든 것이 서울 중앙 집중 일색인 우리나라지만, 이 중에서도 유독 정치 분야는 거대 담론이 모든 것을 잠식하는 현상이 빈발하는 곳이다.얼마 전 모든 정국을 휩쓸어 버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가 그랬고, 현재 진행 중인 검찰 개혁을 둘러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논란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더해 뉴스만 틀면 친정권과 반정권의 세력 다툼이 쏟아지고 또 쏟아진다.사람들은 모여 앉았다 하면 나랏님과 정권 이야기다. 국가와 민족을 걱정하기 바쁘고, 정치와 국정 운영,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전문가적인 식견을 과시한다. 그 와중에 편 가르기도 곧잘 벌어진다.이 틈바구니 속에서 정작 우리 삶에 맞닿아 있는 '미시 정치'는 그 존재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정작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일들에 관심을 쏟는 이들은 많지 않다. 경악할 만한 사건이 벌어져 봤자 잠시의 가십으로 지날 뿐이다.'공정함'을 논하는 시대지만 의외로 내 바로 주변에 누가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당했는지는 관심 밖이다. 내가 사는 동네 의원들은 제대로 의정 활동을 하고 있는지, 직접 혜택을 받는 청년정책은 지역 실정에 맞는지, 재개발로 인해 내쫓긴 사람들은 어디로 떠나갔는지를 논하기에 이미 우리의 스케일은 너무 크다. 워낙 시대적 담론에 익숙해지는 사회 분위기가 되다 보니 거창한 세상 이야기를 하면 통찰력과 사고가 깊은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현실적이고 지엽적인 문제를 꺼내 들면 시시껄렁하게 여기는 분위기마저 느껴진다.세상사는 복잡다단하다. 거대 패러다임이 전환되면 세상이 확 바뀔 것 같지만 수많은 일들은 거미줄처럼 미묘하게 얽혀 있다. 더욱이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진보와 보수로 양분된 이념 논리에 매몰돼서는 현실의 모든 문제를 절대 '한 방'에 해결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미시 정치, 생활 정치에 대한 많은 이들의 관심이 필요한 것이다.제발 중앙으로만, 특히 정치 편향된 당신들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내 가까운 곳으로 돌려보면 어떨까. 큰 정치판 바꾸기에 대한 관심도 중요하지만 작은 불공정함, 불편, 비리, 악습 등을 바로잡아 나가는 노력이 병행돼야 진정으로 좀 더 나아진 세상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2019-11-21 16:11:48

장성현 경제부 차장

[청라언덕] 펭하! 넌 커서 펭수가 되고 싶니?

"아빠, 난 커서 '키즈 크레이터'가 될 거야." "응? 뭐라고?" 잠시 귀를 의심했다. 여섯 살 딸이 되고 싶다는 게 아직 본인이 발음도 제대로 못하는 '키즈 크리에이터'를 말하는 건가? 한 달 전까지 딸아이의 첫 번째 꿈은 '집에서 책 보며 일하는 사람'이었다. 작가나 시인을 말하는 것 같진 않다. 일은 한다니 그러려니 했다.그런데, 갑자기 '크리에이터'란다. 연간 수십억원을 번다는 유튜버 '보람튜브'를 말하는 건 아닐 테다. 딸아이는 보람튜브를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때 머릿속에 누군가 떠올랐다. 요즘 그야말로 '힙'하다는 크리에이터, 남극에서 온 '펭수'다.아이는 유튜브를 자주 본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대신 IPTV를 통해 유튜브를 본다. 한참 즐겨보던 '개구쟁이 뽀로로'나 '엉뚱발랄 콩순이'를 거쳐 '헤이지니'와 캐리TV '엘리가 간다'에 빠져 있다가 '허팝TV' '흔한 남매' '아리키친' 등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유튜브 채널로 넘어갔다.펭수가 나오는 '자이언트 펭TV'는 사실 필자가 찾아준 채널이었다. 아이에게 유튜브를 틀어줄 땐 같이 보는 편이다. 어떤 내용의 유튜브 채널을 보는지 확신할 수 없어서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유튜브 채널들이라도 유아가 보기엔 위험한 실험이 많았고, 거친 표현이나 몰래카메라 등 따라하기 십상인 내용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런데 EBS에 제대로 속았다. 착하고 교훈적인 메시지를 줄 것 같던 EBS에서 'B급 펭귄'이라니. 펭수가 랩을 쏟아내며 등장하는 도입부부터 심상치 않았다. 열 살짜리 펭귄이라더니 군필자스러운 행동이라니. 이상한데, 정말 이상한데. 아이와 함께 보며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순간이란. 아이보다 더 펭수를 좋아하게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딸아이의 꿈이 돼버린 '키즈 크리에이터'는 사실 펭수의 꿈이다. 남극 '펭'에 빼어날 '수', 남극 출신의 펭수의 나이는 열 살. 키는 210㎝다. 큰 키와 독특한 눈 모양 때문에 남극에서는 따돌림을 당했지만, 뽀로로와 BTS의 나라 한국에서 우주대스타로 성장하고 싶어 남극에서 왔다. 현재 EBS 연습생 신분으로 EBS 소품실에서 산다. 벌써 구독자가 41만3천 명을 넘어선 대세 중의 대세다.어설프게 보였던 펭수가 스위스에서 배워왔다는 요들송을 기막히게 부르고, 흥겨운 비트박스를 쏟아내니 이런 반전이 없다. 열 살짜리 펭귄이 즐겨 먹는 차는 뜨거운 녹차이고, 비타민과 영양제를 빼먹지 않는다. 아파서 먹는 게 아니라 건강하려고 먹는단다. 좋아하는 소설은 '삼국지', 좋아하는 과자는 '빠다코코넛'이라니 남극의 시간은 한국과 다르게 가는가 싶다.펭수의 매력은 자신만만하면서도 현실적이고 거침 없는 입담에 있다. 스트레스 받고,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 대신 '응원'을 건넨다. "내가 힘든데, 힘내라고 하면 힘이 납니까?"'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은 꼰대들이나 하는 말이다."참치는 비싸, 비싸면 못 먹어, 못 먹을 땐 김명중"이라며 김명중 EBS 사장의 이름도 스스럼 없이 부른다. "갈팡질팡하는 게 고민"이라는 20대 시청자에게 "주변 눈치 보지 말고 원하는 대로 살아. 눈치 아껴"라고 돌직구를 날린다. MBC에 가선 '최승호 사장님, 밥 한 끼 합시다'라고 제안한다. 그게 펭수 스타일이다.착하면서도 거침없고, 시니컬하면서도 따뜻한 펭수, 권위에 주눅 들지 않고,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하는 당돌한 모습. 다시 딸을 돌아본다. 네가 되고 싶다는 크리에이터가 펭수처럼 '갇힌 틀을 깨는 창조자'라면 무조건 OK다.

2019-11-07 10:27:42

[청라언덕] '조국'발(發) 기회비용

#1. 광화문 중앙청사 시절, 부처 장관들은 여의도로 가기 위해 한강을 건너려면 마포대교와 서강대교를 주로 이용했다. 공무원 사이에서 이 다리들은 한때 '토끼교'로 불렸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별주부전'의 토끼처럼 간을 떼어 놓고 건너와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불호령에 배알이 꼬여도 참고 견뎌야 했기 때문이다.#2. "장관은 국회의원만 없으면 좋은 직업이고, 국회의원은 기자들만 없으면 해볼 만한 일이다. 국회의원 신분을 유지한 채 일국의 장관이 됐지만 견제하려는 국회의원들은 여전히 무섭다." 열린우리당 시절 한 중진 의원이 장관으로 발탁돼 국정감사를 받는 도중 친한 의원과 나눈 대화이다. 두 가지 일화처럼 장관들은 국회의사당이 두렵고 떨리는 곳이다.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벌떼같이 달려들어 환부를 후벼 파기 때문에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통상 정기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긴장감은 극에 달한다. 하지만 올해 대정부질문에서 일부 장관들은 쾌재(?)를 불렀을지 모른다. 여야 모두 법무부장관과 국무총리에만 집중한 탓에 다른 장관들은 예봉을 피해갔기 때문이다.경직된 모습으로 언제 호출될지 모르면서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국무위원석이 올해만큼 휑할 정도로 빈 곳을 보인 적은 없었다. 일부 장관들은 아예 행사를 핑계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에 불참을 통보하고 대정부질문에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도 알려졌다. "대정부질문 기간만은 본인상 아니면 국무위원의 불참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예년의 모습에 비춰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대정부질문에서 정책 질의가 상실된 데는 여야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조국 법무부 장관의 의혹 제기에 집중했고, 이낙연 국무총리의 책임론에만 매달렸다. 민주당 의원들은 조 장관 방어와 엄호에 나서면서 정책 실종 의정활동에 맞장구를 쳤다. 대안정치를 표방하며 국민중심 의정활동을 다짐하던 바른미래당과 정의당도 '조국 블랙홀'에 너무 쉽게 빨려 들어갔다.결국 나흘간 진행된 대정부질문은 온통 '조국판'이었고 여야 공방의 장으로 변질됐다. 경제 분야 질문에도 조국 의혹이 등장했고, 사회·문화·교육 분야에도 조 장관과 그의 딸만 거론됐다. 바닥을 치고 있는 경제나 대일 외교 문제, 안보, 교육, 사회 분야에는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문제의 발단을 문재인 대통령에 두는 이들이 적지 않다. '조국'을 기준으로 대한민국이 양분된 이유를 법무부 장관 임명 강행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80%에 육박하던 대통령 지지율은 반 토막이 났고, 반대 여론이 지지 여론을 앞지른지 오래다.대통령의 취임사 가운데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는 부분은 이제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인다.취임사의 또 다른 부분인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겠다. 야당은 국정 운영의 동반자다",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삼고초려하겠다"는 부분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세상을 다스리는 가장 으뜸은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것'이고 '가장 못난 정치는 백성과 다투는 일'이란 사마천의 이야기를 충고 삼아 취임식 때의 초심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게 대통령께 바라는 일각의 요구이다.이대로라면 국가의 양분화는 심화될 게 불 보듯 뻔하다. 그러면 또 다른 희생이 따를 테고, 급기야 희생할 것이 없을 정도로 경제는 빈약해질지 모른다. 위정자들의 변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2019-10-03 18:23:37

최두성 정치부 차장

[청라언덕] 한국당에 두는 훈수

자유한국당 인사들에게서 모처럼 '활기'를 본다. 말이 많아졌고, 목소리도 예전에 없던 힘이 들어간다. '조국 정국'이 바꿔 놓은 변화다.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의혹을 사실로 확정하며 그를 '위선자'로, 그를 두둔하는 여당과 청와대를 질책하는 재미로 하루를 보낸다는 인사도 있다.당원 A씨는 여권 인사의 조 장관 옹호 발언, 검찰 비판 말을 들을 땐 화가 나지만 받아칠 말이 있고 맞장구쳐주는 주변 사람들이 있어 즐겁다고 했다."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서 보수 진영에 등 돌렸던 언론이 '우리 편'이 된 듯하고 불공정과 불법, 비리 등 기득권의 적폐 청산을 내세우며 '개혁과 공정성, 도덕성'의 깃발을 든 진보 진영의 실상이 조국 사태로 그 민낯이 까발려지는 것 같아 통쾌함을 느낀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기력한 당 모습에 정치 이야기는 입 밖에도 꺼내지 않던 그였다.한국당은 '조국' 하나만 보고 가고 있다. 조 장관 임명에 삭발·1인 시위 릴레이로 모은 당심을 정기국회에 쏟아부을 태세다. 국정감사를 '조국 청문회 2라운드'로 끌고가겠다는 선언도 했다.한국당으로선 청와대가 점화한 조국 사태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건수다. 21대 총선을 6개월여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이만한 선거운동도 없다.그런데 민심은 '꿈에서 깨라'고 한다.청와대가 조 장관 임명을 강행하고, 여당은 이를 비호하기 위해 비상식적 발언과 행동을 일삼아 싫으나 한국당도 아니란다.칸타코리아가 SBS 의뢰로 이달 9~1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무당층이 38.5%로 한 달 사이 3.7%포인트 증가한 반면 한국당 지지율은 18.8%로 사실상 제자리걸음이었다는 게 그 방증이다.무당층은 정치적 무관심층이 아니다. 다만 지금은 '지지할 정당이 없다'는 정치 참여 행동파다. 이들은 기성정당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당이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무당층 B씨는 "자주 가는 식당에 문제가 생겨 실망했다고 해서 맛 없고 먹을 것 없는 식당의 단골이 될 수는 없지 않느냐"고 했다.B씨 말대로 한국당은 탄핵이 휩쓴 식당을 정리하지도, 손님 입맛을 끌 신메뉴 개발도 하지 않았다.문재인 정부의 경제 파탄, 패스트트랙 파동, 외교 실패, 북한 어선 삼척항 입항 등 많은 호재에도 한국당은 지지율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인재 영입은 전무했고, 당과 보수 재건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인사도 한 명 없었다. 격 없는 막말 퍼레이드로 되레 비난을 받고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7월에 있은 여론조사서 한국당의 비호감 지수는 65%에 달했다.인적 쇄신을 이룰 공천룰, 선거 구도를 좌우할 수 있는 보수 대통합 문제, 공직선거법 개정안 처리 문제 등 총선 과제가 발 앞에 놓여 있는데도 옆 식당에 문제 있다고 고함만 친다.삭발로, 장외집회 참석으로 공천 충성도를 체크해선 혁신, 인적 쇄신은 물 건너간다.세대 교체에 방점이 찍힌 1996년 총선(15대), '차떼기당' 오명과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을 맞아 최대 위기에 빠졌지만 40대 정치 신인들을 전진 배치하며 돌파구를 찾았던 2004년 17대 총선 공천은 본보기다.매력적인 비전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투쟁으로 일관하면 민심을 끌어올 수 없다. 상대의 허물 캐기가 득이 되는 시대도 지났다. 지금은 자신을 찍게 만드는 매력 발산 시대다.한국당에 두는 훈수다.

2019-09-26 18:18:45

장성현 경제부 차장

[청라언덕] 분양가상한제, 보약일까 독약일까

"3.3㎡당 3천500만원을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듣는 순간, 혹했죠." 대구 수성구 범어동 대구법원 인근에 140㎡ 규모의 단독주택을 갖고 있는 지인은 얼마 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자신을 정비업체 관계자로 소개한 상대방은 재개발 부지를 매입 중이라며 집 팔기를 권했다. 이 일대 시세가 3.3㎡당 1천만원 초·중반인 점을 고려하면 시가의 두 배 이상을 주고 사겠다는 것이다.그러나 지인은 집을 팔라는 제안을 거절했다. 계약 방식이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최근 재개발·재건축을 위해 '땅 작업'을 하는 시행사나 정비업체들은 토지나 건물주와 매매계약서를 쓰면서 계약금을 주지 않고 통상 1년가량 유예 기간을 둔다.재개발 부지의 토지 계약서를 95% 이상 확보해 사업이 가능하게 되면 시공사에 매각하고 토지 대금을 받은 후에야 매매 대금을 주는 식이다.유예 기간을 넘기고도 돈을 주지 못하면 계약은 자동 파기된다. 계약서에 특약도 넣는다. 계약서를 쓴 토지 및 건물 소유주가 변심하지 않도록 돈을 받지 않아도 법원 공탁을 통해서라도 계약이 성사된 것으로 인정한다는 식이다. 정비업자나 시행사 입장에서는 용역비나 기본 운영비 외에 '땅 작업'에 따른 비용 부담이 없고, 사업 성공 여부에 따라 대금을 지급하면 되기 때문에 큰 손해를 피할 수 있다.다만 이런 방식으로 계약까지 끌어내려면 적어도 시세의 2~3배는 제시해야 한다. 당연 택지 조성 비용은 급상승한다.토지나 건물주는 적어도 1년 이상 재산권이 묶이게 된다. 사업이 무산되면 한 푼도 손에 쥘 수 없다.분양가상한제가 민간택지에 적용되면 이 같은 방식의 '땅 작업'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표준지공시지가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감정평가금액을 택지공급가격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올해 표준지공시지가의 시세 반영률은 64.8%에 그친다.분양가상한제 적용을 앞두고 예기치 못한 피해도 나타나고 있다.한 토지 소유주는 3.3㎡당 2천200만원을 받기로 시행사와 구두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하지만 분양가상한제 적용 시 3.3㎡당 1천400만원 이상은 사업성이 없다는 판단이 선 업체 측은 3.3㎡당 1천400만원에 맞춘 매매대금을 보낸 뒤 버티고 있다고 했다. "그나마 시세보다 비싸게 쳐줬다"는 것이다. 토지 소유주 입장에서는 계약을 파기하려면 송사를 벌여야 할 판이다.수성구 일부 정비구역에서는 분양가상한제 전에 토지 매매 계약을 끝내기를 독려하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주택 가격은 구·군 내에서도 수억원의 차이가 난다. 수성구 내에서도 집값이 최고 수준인 '범4만3'(범어4동, 만촌3동)과 파동은 집값이 두 배 가까이 벌어진다.학군, 교통 등 입지에 따라 청약경쟁률도 천양지차다. 정부의 부동산규제 정책은 이런 차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 분양가상한제에 맞춰 각종 재개발·재건축 사업 방식도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애꿎은 주택 소유자가 피해를 볼 가능성도 있다.대구 분양가, 분명 올라도 너무 올랐다. 대구는 2014년 이후 전국에서 분양가가 가장 많이 오른 지역이다. 그러나 획일적인 가격 제한 정책으로는 분양가 상승을 막을 수 없다.수성구가 막히면 다른 지역이 오르는 '풍선 효과'도 나타날 것이다. 정부가 강남 집값만 바라보지 않고 비수도권에도 들어맞는 '핀셋 규제'를 내놓기를 기대한다.

2019-08-29 18:57:13

이창환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잃어버린 8개월

수출 규제를 둘러싼 한·일 간 갈등이 장기화될 조짐이다. 대법원의 강제 징용 판결에 아베 정권이 수출 규제 조치로 대응하는 것은 치졸하기 짝이 없는 행태다. 과거사를 둘러싼 분쟁을 무역과 연결한 조치는 일본이 절대 일류 국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장기적으로 소재, 부품, 장비 분야에서 일본 의존도를 줄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이 시점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 직전 상황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한국 정부는 대법원 판결 이후 8개월 동안 무대책으로 일관했다. 신일철주금(과거 신일본제철)이 일본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을 지급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것은 지난해 10월 30일이다. 일본 정부는 즉각 항의했다. 그로부터 8개월 뒤인 지난 7월 1일, 일본은 반도체 소재·부품 3개 품목 수출 제한을 발표했고 한달 뒤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명단에서 제외했다.8개월 동안 일본의 경제 보복 가능성이 줄곧 예고됐다. 많은 일본 전문가들이 아베 정권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경고했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가 지난 3월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했고 100여 개의 제재안을 마련했다는 현지 언론 보도도 나왔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최종안은 5월 중에 대부분 완성됐다"고 보도했다.한·일 경제 전문가인 박상준 일본 와세다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상반기 내내 소문이 무성했다. 일본 정부와 일을 하는 동료 교수들로부터 '관료들이 한국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벼른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일본 주재 한국 기자들이 어떤 품목으로 보복할 것 같으냐고 물어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국내 언론도 '정부가 대일 외교를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을 수없이 했다.돌이켜보면 위험 신호가 곳곳에서 울렸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나? 청와대, 여당, 외교부가 일본의 동향을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무시했다면 직무유기다. 일본 주재 한국 대사관은 현지 분위기를 어떻게 보고 했나? 보고를 했다면 여권의 어느 선까지 올라갔나? 정상적인 정부라면 8개월간 다양한 시나리오를 두고 대비책을 만들어야 했다.정부는 지난 6월 말 일본 언론들이 보복 조치 예고 기사를 내놓을 때까지도 전혀 예상을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이었다. 최소한 그간의 경과를 설명하고 정부 대책을 차분하게 설명해 국민을 안심시키는 자세로 나왔어야 했다.세간에는 일본의 도발을 정부가 방조한 것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나오고 있다. 야권에서 "그동안의 태만이 의도된 것이라면 묵과할 수 없다"고 지적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일본과 갈등이 내년 총선에 유리하다는 보고서를 만든 여당의 행태로 볼 때 여러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라도 정부의 8개월간 행적이 드러나길 기대한다. 정부를 믿고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동참하는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2019-08-22 18:22:45

임상준 경북부 차장

[청라언덕] 봉오동 전투의 승리는, 지기(知己)부터

일본은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전, 조선 팔도에 수백 명의 세작을 보냈다. 이들은 조선의 주요 지형지물을 베끼고 민정을 염탐했다. 하지만 '왕만 잡으면 백성은 항복할 것'이라는 사실과 동떨어진 보고를 한다. 손자병법에 비춰볼 때 '지피'(知彼)에 무지했다.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대망(大望)에 따르면 일본 다이묘(봉건 영주)는 전투에서 지면 할복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부하인 사무라이가 자신의 죽음으로 영주를 지키는 경우는 드물었다. 영주를 잃은 휘하의 무사들은 낭인으로 떠돌다가 새 주인을 만나는 게 보통이었다.반면 조선은 고려 때부터 계속된 일본의 약탈 행위에 이골이 났다. 이런 불만은 민족 저항운동(의병 봉기)으로 승화됐다. 관군만 상대하면 된다고 여겼던 일본은 민간 의병 봉기에 전략적 혼선이 생겼다. 결국 패전이 이어졌다.199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일본을 향해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돌파, 일본처럼 선진국에 올랐다는 자신에 찬 발언이었다. 얼마 뒤 우리 경제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를 맞는다. 이 과정에서 일본 자금이 가장 먼저 빠졌고 '고치려던 버르장머리'가 IMF를 불렀다는 주장이 나왔다.지난 2일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뺐다. 문재인 대통령은 같은 날 긴급 국무회의에서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고 결의했다. 정부의 대(對)일본 강경 기조에 맞춰 국민도 '일본 제품 불매'로 호응했다. 국민 DNA(유전자)에 뿌리 박힌 반일 감정은 들불처럼 번졌고 거세졌다. 대일본 감정이 이성적으로 제어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까지 왔다.하지만 정부나 우리 국민이 일본과 마주 달리는 기차가 돼서는 안 된다. 경제 규모가 일본의 3분의 1 수준인 우리나라가 더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데다, '욱'하는 감정에 자칫 우리의 위치를 바로 보지 못하는 누를 범할 수 있어서다. 축구를 이긴다고 경제까지 승리할 수는 없고 유니클로 티셔츠 한 장 안 사고, 사케를 마시지 않는다고 극일(克日)이 될 수는 없다. 한 발짝 물러서 우리부터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하다.물론 대한민국은 1910년 무기력하게 불법적으로 병탄을 당한 100여 년 전의 대한제국이 아니다. 세계 11위권의 경제 대국이며, 일본만큼이나 많은 우호 국가를 두고 있다. 비록 경제력으로는 일본에 비해 모자라지만 국제 명분에서는 우리가 우위에 있다.차분히 국제적 동의를 얻고 우방 국가와 함께 일본의 불공정 무역 규제의 부당함을 알리고 대처해 나가야 한다. 반(反)일본과 반아베를 분리해 압박해가는 프레임 작업도 필요하다. 일본이 수출규제 카드를 꺼냈다고 우리까지 '함무라비 법전'(이에는 이, 눈에는 눈)을 들이댄다면 그 나물에 그 밥밖에 안 된다.일본의 특성을 가장 잘 연구했다는 '국화와 칼'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 근대화를 이끈 메이지 정치가들이 국가와 국민 간의 '알맞은 위치'를 세밀히 규정했다고 봤다. 바꿔 말해, 일본은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다하는 것을 근대국가의 주춧돌로 놓았다.하물며 이런 일본을 이기려는 데 우리가 우리를 모른다면 미래의 '봉오동 전투'는 담보되지 않는다. 감정은 살짝 누르되 정치는 정치를, 경제는 경제를, 가계는 가계를 냉철하게 바라보는 가슴을 가져야 한다. 상대가 일본일 때는 더더욱 '지피지기'(나를 알고 적을 아는)가 병법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

2019-08-15 17:5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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