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관련 기사 목록입니다.
[청라언덕] 되풀이되는 화풀이, 가슴이 아닌 머리로

[청라언덕] 되풀이되는 화풀이, 가슴이 아닌 머리로

90년 전인 1931년 7월 7일. 그날 동아일보는 "평양 내 중국인은 거의 전부 습격을 당했다"고 기록했다. 중국인에 대한 조선인의 습격은 앞서 같은 달 3일 인천에서부터 시작돼 전국으로 퍼졌다. 바로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난 '화교배척사건'이다. 주요 대상은 화교와 중국 노동자들이었다.평양에서 피해가 가장 컸다. 평양에서만 100명이 넘는 중국인 사망자가 나왔다고 전해진다. 평양의 중국인 소유 집은 대부분 습격을 당했다. 수천 명의 조선인 군중은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집을 부수고 중국인들을 때렸다.한 국가 안 소수 인종을 향한 혐오 범죄는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16일 미국 애틀랜타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희생자 8명 중 6명이 아시아계였다. 특히 4명은 한국계 여성으로 밝혀졌다. 용의자는 20대 백인 남성이다.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가 이번 범죄의 배경으로 지목되고 있다.두 사건은 약 한 세기의 시간 차이를 두고 있다. 이 가운데 하나는 조선인(한국인)이 가해자고, 나머지는 피해자다. 이렇듯 다른 것 같지만, 공통점도 있다. '인종'이 갈등의 발화점이라는 것. 여기서 인종을 국가나 민족, 종교 등으로 바꿔도 될 듯하다. 피부색과 언어가 다르거나, 이질적인 문화를 지닌 집단에 대한 거부감이 폭력으로 이어진 사례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처럼 혐오 폭력의 피해자는 인종·민족이라는 정체성으로 주로 규정된다.하지만, 또 하나의 사실은 대부분 피해자가 '약자'라는 점이다. 사회경제적으로 지위가 낮거나 영향력이 적은 사람들이다. 싫어하고 꺼리는 감정을 드러내더라도 안전한 대상이다. 마음껏 미워해도 뒤탈이 없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는 속담이나 돈은 위로 가고 '빠따'는 아래로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떠오르는 대목이다.화풀이(혐오) 폭력은 대물림된다. 그 대상은 진짜 뺨을 때린 사람이 아니다. 연약한 지표를 용암이 뚫고 나오듯, 약한 지점(집단)에서 폭력이 분출되기 마련이다. 사회경제적 스트레스의 삐뚤어진 발산인 셈이다.다시 화교배척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이 사건이 일어난 배경으로 여러 요인이 손꼽힌다. 그중 도시 하층민 사이의 갈등이 집단 폭행에 불을 지폈다는 분석이 있다. 당시 도시가 커지면서 사람들이 몰렸고, 이로 인해 생계가 어려운 하층민이 생겨났다. 여기에 중국 노동자들이 들어오면서 경쟁이 심해졌고, 이로 인한 묵은 갈등이 폭발했다는 것이다앞서 소개한 사건들의 무자비한 폭력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최근 대구에서도 특정 종교(문화·인종)를 거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북구 대현동의 이슬람 사원 건축을 두고 인근 주민들이 반대에 나섰다. 소음과 냄새 등으로 불편을 겪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주민의 입장에선 재산권과 주거권 피해를 충분히 염려할 수 있다.하지만 표현이 점차 과격해진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일부 사람들은 특정 인종과 종교에 대한 미운 감정을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로 사회경제적 스트레스가 높아진 상황이어서, 이러한 혐오 표현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역사에서 보듯 우리는 혐오 폭력의 피해자만이 아니라 가해자도 될 수 있다. '당한 만큼 되돌려주겠다'는 흥분은 가라앉히자. 국가와 인종, 종교 등을 둘러싼 여러 갈등 사례가 국내외로 쏟아지는 요즘,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감정을 누르고 이성의 힘을 빌리자. 폭력 뒤에 숨어 있는 '사회경제적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관심이 더 필요한 때다.

2021-04-01 17:19:26

[청라언덕] 증오와 혐오, 편견과 비하를 넘어서

[청라언덕] 증오와 혐오, 편견과 비하를 넘어서

코로나19가 들이닥친 탓에 우리네 일상은 크게 달라졌다. 1년이 지난 지금도 다들 바뀐 일상에 적응하는 데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다. 코로나19는 전 세계를 휩쓸었고, 피해 또한 크다. 백신 접종이 시작됐으나 바이러스의 위세가 숙졌다고 안심하긴 아직 이르다.한데 코로나19 못지않은 바이러스가 지구촌을 좀먹고 있다. 나와 '다른 이'에 대한 증오와 혐오, 편견, 차별이 그것이다. 이런 이들은 경제적 수준이든, 물리적 힘이든 자신과 차이가 있다는 점을 파고들어 공격한다. 그렇게 자신의 치부나 약점을 가린다. 자신에게 쏟아질 수 있는 화살을 남에게 돌린다. 민족, 인종에 따라 차별을 노골화한다.많은 이들이 찾고 즐기는 유튜브만 해도 이런 콘텐츠들이 난무한다. 각종 가짜 뉴스와 어우러져 이런 시각은 더 많은 증오와 혐오, 편견, 차별을 부채질하고 확산된다. 서구 여러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는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일본 우익의 재일교포에 대한 혐오가 그렇다. 국내로 시선을 돌려도 마찬가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 약한 학생에 대한 학교폭력도 다르지 않다.요즘 미국 등 서구에선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 범죄가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명백히 소수자에 대한 차별, 여기다 코로나19 시발점인 중국에 대한 분노가 다른 아시아계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최근 미국 애틀랜타에선 한인 여성 4명 등 아시아계 6명이 백인 남성의 총격으로 사망, 큰 충격을 줬다. 증오 범죄 항의 시위대를 향한 공격도 포착됐다.일본의 '넷 우익'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이방인 혐오, 국수주의 등의 성향을 띠는 이용자들이다. 이들은 혐한 정서, 재일동포에 대한 증오를 자극한다. '재특회'를 만든 사쿠라이 마코토도 그런 범주의 인물. 재특회는 '재일 조선인의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을 줄인 말이다. '인간은 차별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쿠라이 마코토의 발언엔 말문이 막힐 뿐이다.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그런 모습이 엿보인다. '조선족'으로 불리는 재중 동포와 아시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시선은 차갑다. 우리끼리도 혐오, 증오, 편견으로 덧칠해 버리는 일이 벌어진다. 최근 체육계와 연예계를 중심으로 학교폭력 논란이 뜨겁다. 스타들이 학창 시절 약한 이에 대해 정신적, 물리적 폭력을 가했던 일이 뒤늦게 알려져 자신의 앞길을 스스로 가로막아 버렸다.혐오는 말과 글을 통해 쉽게 퍼진다. 자격지심으로 인한 분노를 자신보다 약한 이에게 표출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극우 인사들이 그랬다. 외국인 혐오와 백인 우월주의로 무장한 지지자들이 분노하도록 말과 글로 자극했다.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동원한 낯 뜨거운 수사(修辭)들이 사회의 분열과 혼란을 초래했다.말과 글로 상대를 비판한다며 비꼬고 비아냥대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게 속 시원할 순 있다. 제 편에서 박수를 보내면 제대로 한 건 한 것처럼 신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그건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배려라 말할 수도 있을 게다. 혐오나 증오, 편견, 비하에 기대면 비판도 설 자리를 잃는다. 애초 말하려던 내용도 그 정서에 묻혀 버린다.대중에게 공개되는 말과 글이라면 촌철살인인지, 과유불급인지 더욱 곱씹어봐야 한다. 언젠가는 '잘못 꺼낸 칼이 제 목을 찌를 날이 온다'는 걸 가슴에 새겨야 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 자신부터 돌아봐야 할 일이다.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보여줄지 더 고민해야 할 때다.

2021-03-25 17:32:49

[청라언덕] SK바이오사이언스가 안동으로 간 까닭은?

[청라언덕] SK바이오사이언스가 안동으로 간 까닭은?

우리 국민들이 맞고 있는 코로나19 백신을 경북 안동에서 생산하고 있는 SK바이오사이언스(SK바사)가 18일 국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공모주 일반청약에서 무려 64조 원이라는 역대 최고 증거금을 기록하고 상장 첫날 공모가의 2배를 시초가로 기록 후 상한가로 이어지는 이른바 '따상'을 기록할 만큼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은 초우량 기업이다.주변 지인들은 "우리 동네에 이렇게 알토란 같은 기업이 있었어? 지역의 100년 먹거리를 책임질 기업이네! 그런데 이런 최첨단 고부가가치 기업이 어떻게 수도권이 아니라 경북 안동에 둥지를 틀 수 있었지?"라는 반응을 보인다.지난 2019년 2월 SK하이닉스(하이닉스) 경북 구미 유치가 무산되던 날의 기억을 더듬으면 '어떻게 안동에 둥지를 틀었지?'라는 질문의 의미가 더 크게 와 닿는다. SK바사는 유치에 성공하고 하이닉스는 실패한 이유가 뭘까?먼저 SK바사가 안동에 공장을 짓기로 결정한 2010년은 국내 백신산업이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시절이다. 반면 2019년 반도체산업은 명실 공히 우리 경제의 중추였다.SK바사 유치전은 경쟁이 아예 없거나 잘 알려지지 않아 아직 경합이 약한 미개척 시장, 즉 블루오션(blue ocean)이었다. 반면 하이닉스 유치전은 레드오션 (red ocean) 그 자체였다. 경쟁이 치열해 성공을 낙관하기 힘든 시장에서 힘겨운 승부를 펼친 것이다.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미래성장산업에 일찍 투자하는 방식으로 승부를 걸어야 성과로 연결된다는 결론이다. 엄청난 모험이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no risk, no return) 냉혹한 조건이다.'싹수'가 보이는 산업 영역을 선택했다면 다음은 해당 산업 생태계 전반에 대한 장악력을 높여야 한다. 이른바 '대장 기업'은 물론 해당 영역에 종사하는 전문 연구 인력까지 완전히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어느 날 갑자기 정치권력을 등에 업은 지역이 숟가락을 얹겠다고 덤벼들 수도 있고 정부가 효율 극대화를 위해 수도권에 해당 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고 나설 수도 있다. 이때 지역의 우군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사전에 관리한 전문가 그룹이다.파격적인 '당근'도 필요하다. 기업은 이윤을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기업에 '제발 와 주십시오'라고 읍소하는 형편인지라 지방정부는 가용 자원을 모두 동원해 파격적인 유인책을 준비해야 한다.기존 '지역 산업 활성화 정책'에 투입하던 재원까지 유치전에 몰아 붓는 선택과 집중도 필요하다. SK바사는 안동을 선택하면서 '최악의 경우에도 부동산 투자 수익은 건질 수 있겠다'는 계산을 했다는 후문이다.이와 함께 서울로 왕래하기 좋은 교통 인프라는 미리 구축해 놓아야 한다. SK바사는 중앙선 고속전철화 사업(안동~서울 2시간)의 실현 가능성을 수도 없이 점검했고 반드시 관철할 것을 주문했다.그렇다면 앞으로 대구경북에서 SK바사 같은 초일류 기업을 또 유치할 수 있을까?지역의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미래 유망 산업 중 하나를 콕 집어서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집중적으로 지원을 쏟아 붓는 곳이 있다면 기대할 수 있다.자동차 튜닝과 드론 산업에 각별한 공을 들이고 있는 송언석 국민의힘 국회의원(경북 김천)의 행보를 주목한다.경북혁신도시는 경부선고속철도(KTX) 김천구미역을 품고 있고 송 의원은 SK바사를 안동에 유치한 김광림 전 국회의원과 마찬가지로 기획재정부 출신 경제 전문가다.

2021-03-18 11:44:13

[청라언덕] 학원 뺑뺑이 없는 세상

[청라언덕] 학원 뺑뺑이 없는 세상

아이는 망설임 없이 교문 안으로 들어선다. 학생회장 선거 유세로 떠들썩한 아이들을 지나 그저 성큼성큼 걸어간다. 학교 앞까지 손잡고 온 아빠 얼굴 한 번 돌아볼 법하건만, 그저 쌩하니 떠난다. 괜히 서운하다.학교 정문에는 입학을 축하하는 오색 풍선 아치가 며칠째 서 있다. 작은 등에 매달린 분홍색 가방이 시야에서 꽤 멀어진 뒤에야 발길을 돌렸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와 함께한 등굣길. 앞으로 몇 년간은 매일 마주쳐야 할 일상이다.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맞벌이 부모들은 전쟁 같은 3월 한 달을 보내야 한다. 오후 1시, 하교 시간에 맞춰 돌봄 대책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방과후교실도 오후 2, 3시면 끝나고, 오후 6시까지 운영하는 돌봄교실은 선발 인원에 제한이 있다.결국 돌봄 공백을 막으려면 사교육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입학식 날 아이의 목에 키즈폰을 걸어주고 가장 먼저 알려준 것도 학원 등하원 차량을 타는 장소였다. 아이가 교문으로 들어서는 날부터 '학원 뺑뺑이'의 시간이 시작되는 셈이다.부모 중 한 명이 육아를 전담한다고 아이가 쳇바퀴 신세를 면하는 건 아니다. 아이가 혼자 놀도록 뒀다가 뒤처질 수 있다는 불안감도 학원을 순례하는 이유가 된다. 심지어 선행 학습을 하는 학원에 보내려 아이에게 과외 교습을 시키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진다.부모들은 '학원엔 우리 아이 말고도 다른 아이들이 많으니까' '보는 눈이 많으니까 함부로 하진 못할 것'이라는 생각, '학원에 있으면 뭐라도 하나 배우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아이를 학원으로 등을 떠밀며 죄책감을 달랜다.그러나 학원이라는 환경도 완전히 안심할 건 못 된다. 얼마 전 지인에게 들은 충격적인 소식. 한 교습소에서 초등학생 여자아이들이 강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얘기였다.아이들은 몸을 바짝 붙이거나 자신을 무릎 위에 앉히는 등의 행동이 불쾌했다고 털어놨고, 놀란 부모들이 강사를 아동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 조사는 진행 중이고, 아직 정확한 사실관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부모들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기엔 충분하다.이런 상황을 겪다 보면 왜 우리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이 최저 수준인지 이해가 된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84명으로 2019년(0.92명) 대비 0.08명 감소했다.우리나라는 지난 15년간 225조4천억원에 달하는 저출산 예산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아이를 기르는 과정 자체인 공공 가족급여 지출 비중은 37개국 중 32위에 그쳤다.저출산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집값이 폭등하고 안정된 일자리가 없으며 보육과 교육, 노후에 대한 커다란 불안감이 출산 기피로 나타난 것이다. 주거와 일자리, 보육 및 근무 환경, 입시를 포함한 교육 제도 전반에 걸친 사회 구조적 변혁 없이는 해결이 어렵다는 뜻이다.대선 출마가 유력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맞벌이 부부의 육아와 교육 부담을 덜어줄 복지제도로 '온종일 초등학교제'를 제안했다. 2030년까지 모든 초등학생이 부모의 퇴근 시간에 맞춰 하교할 수 있도록 공교육을 강화한다는 것이다.그러나 아이를 학교에 오래 붙잡아둔다고 엄마와 아빠가 함께 일하고 돌보는 사회가 되진 않는다. 정밀한 공교육 시스템과 경쟁적 입시 제도의 변화, 유연근무제의 일반화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너무나 많다. 이 대표의 공언이 겉만 번지르르한 돌봄 정책에 머물지 않길 기대한다.

2021-03-04 18:40:13

[청라언덕] 2월 21일 대구시민의 날

[청라언덕] 2월 21일 대구시민의 날

"애국심이여, 애국심이여/ 대구 서공(徐公) 상돈(相敦)일세// 1천300만원 국채 갚자고/ 보상동맹 단연회 설립했다네// 지금 우리 국가 간난(艱難)한데/ 누가 이런 열성 가질 건가// 경상도 대구의 서공 등/ 사람마다 찬미하도다// 복주관(福州館) 아래 우리 동포여/ 대구 땅만 나라 땅이냐."(이하 생략) 1907년 4월 14일 자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국채보상가다.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서상돈에 대한 찬양과 국채보상운동을 일으킨 대구에 대한 부러움이 느껴진다.국채보상운동 기록을 살펴보면 대구에 대한 자부심이 생겨난다. 일제가 경제 침략을 위해 대한제국에 떠안긴 나랏빚이 1천300만원. 1906년도 대한제국의 1년 예산에 버금가는 금액이다. 당시 공무원인 주사의 봉급이 15원, 신문 한 달 구독료가 30전 정도임을 감안할 때 현재 금액으로 환산하면 3천300억원가량이다.서상돈은 1907년 1월 19일 열린 대구 광문사 특별회의에서 국채보상운동을 건의한다. 한 달쯤 뒤인 2월 21일 대구읍성 서문 밖 북후정(대구콘서트하우스 위치)에서 군민대회를 개최했다. 그곳에서 '나랏빚을 갚기 위해 3개월간 담배를 피우지 말고, 그 대금을 수납하자'는 연설이 있었다. 호응한 군중들이 십시일반 내놓은 돈이 500원을 넘었다.당시 담배는 일본 상인들이 폭리를 취하는 대표적인 상품이었고, 이로 인한 경제적 폐해가 속출했다. 금연을 통해 일본 상인의 상권 침탈을 견제하고 그 돈으로 나랏빚을 갚자는 것이다.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유명한 장지연은 그날 군민대회를 이렇게 기록했다. '달구벌 내외 일향 유지신사 서상돈 등 제씨가 북후정에서 대회하니 모인 사람이 남녀노소 수백 명이라, 신사 박정동 씨가 연단에 올라 국채 문제를 통론하기를… 우리가 일용에 무익한 연초를 석 달 기한으로 끊고 그 돈을 모아 국채를 갚자 하니, 만장일치로 박수 갈채하고 모두가 주머니를 풀어 의연하니… 아, 사람의 마음 감발이 이처럼 굳은 것인가.'대구를 중심으로 경북 41개 군 모든 지역에 국채보상의연금 수합소가 만들어졌다. 국채보상운동의 파장은 컸다. 언론이 연일 대서특필했고, 대구에서 시작된 지 불과 3개월 만에 전국의 면 단위까지 국채보상회가 조직됐다. 외국인들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일"이라며 돈을 기부했다.국채보상운동을 IMF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과 비교하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금 모으기 운동은 나중에 금을 환율과 국제 금시세로 평가해 원화로 돌려주었다. 국채보상운동은 그야말로 대가 없는 기부였다. 양반 관료와 지식인뿐만 아니라 여성, 노비, 지게꾼, 콩나물 장수, 기생 등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백성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구걸한 돈을 기부한 앉은뱅이 걸인도 있었다.일제의 방해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국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분연히 일어났던 '시민적 책임 정신'을 눈물겹게 보여줬다.국채보상운동은 충(忠)과 의(義)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대구 정신이 발현된 대표적인 운동이다. 대구시는 북후정에서 국채보상운동의 기치를 내걸었던 1907년 2월 21일을 기념해 2월 21일을 대구시민의 날로 새로 정했다. 이미 작년에 결정했지만 코로나19 탓에 미뤘던 선포식을 지난 21일 개최했다.대구시민의 날이 새로 정해지면서 국채보상운동에 대해 대구시민들이 갖는 의미도 남다르게 됐다. 매년 2월 21일, 100여 년 전 북후정에서 금연을 통해 나랏빚을 갚자며 사자후를 토하던 선조들의 정신을 되새기는 날이 됐으면 좋겠다.

2021-02-25 18:24:28

[청라언덕] 동물농장의 자업자득(自業自得)

[청라언덕] 동물농장의 자업자득(自業自得)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살 오른 돼지가 말했다. 그래서 인간을 적으로 삼았다. 농장에서 이들을 쫓아낸 뒤에는 원칙을 내걸었다. "동물은 모두 평등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농장은 변질됐다. 같은 동물도 평등하지 않았다. 권력을 잡은 돼지만 무소불위(?)의 삶을 누렸다. 당초 금과옥조로 여겼던 규율은 "모든 동물은 평등하지만 일부는 더 평등하고, 특히 두발로 걸어도 된다"로 바뀌었다.조지 오웰이 동물을 의인화해 권력의 속성을 경고한 '동물농장'에서 작금의 한국 사회가 오버랩된다.돼지들은 인간을 몰아내자는 기치로 혁명을 했지만 그 순수성이 훼손돼 간다. 출범 당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던 문재인 정부의 현실은 어떤가. 행정부와 의회 권력을 거머쥔 집권 세력은 여러 장르에서 오만한 '권력상'을 연출한다.1심 판결에서 드러난 조국 전 장관의 자녀들이 가졌던 기회는 출발선부터 불평등했다. 표창장 위조와 인맥·학맥으로 쌓은 거짓 스펙은 공정하지 못했다. 결과 역시 '독수의 독과'다. '평등→공정→정의' 시스템 중 어느 하나 제대로 작동한 게 없다. 오히려 수사한 검사와 검찰총장을 징계하고 축출하려 끊임없이 시도했다.잇따라 터져 나오는 성추문은 '피해 호소인'이라는 생경한 단어를 생산했고, 야당을 패싱한 29번째 장관이 탄생했다. 부모 몰래 자사고에 등록한 자립심이 강한 딸과 머리를 직접 손질하며 생활비를 아낀 아내의 지극한 내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혼한 전처 집에 어머니를 모시고, 임대아파트에서는 처제와 함께 살고, 부동산이 있는지 몰라 수차례 재산 신고를 누락했지만, 하나같이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의 정수를 보여준다.'묻고 더블'로 가는 일도 새로울 게 못 된다.'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라는 사법부가 비틀댄다. 사법부 수장이 '거짓의 명수'로 통하는 판에 간판이 부끄럽다.'무죄추정의 원칙'은 진작에 '1심 판결'에 면죄부를 줬다. '1심은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다. 3심서 보자'는 '오만함'으로 변질됐다. 판결 유불리에 따라 판사 징계, 탄핵의 '집단 언어 린치'는 '1+1 패키지'처럼 따라온다.블랙리스트로 구속된 전 환경부 장관과 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을 받는 전 산업부 장관 스토리는 꺼내기조차 민망하다. 세계 1위였던 원전 경쟁력은 시나브로 '루비콘강'을 건너 '영영 작별'을 고하고 있다.스무 번이 넘는 부동산 정책은 내 집 마련이라는 서민의 꿈까지 뺏었다. 오죽하면 청년들이 주식에 영혼을 바치겠는가. 그렇게 자랑하던 '코로나19 K-방역'은 17일 현재 주요 선진국은 물론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미얀마, 몰타 등 개발도상국까지, 78개국이 접종을 시작했다는 소식에 손이 오글거린다.국민은 딱 그 수준만큼의 지도자를 가진다고 했다.'풍차 건설'의 신기루 앞에서 독재에 순응하는 농장 동물들에게 '돈키호테'(풍차로 돌진)의 기질이 있었더라면 돼지들의 독재가 가능했을까. 결국 모순된 체제에 순응하는 동물 스스로가 탐욕과 특권의 울타리를 치게 했다면 과장일까.이런 면에서 'TK 농장'도 암울하다. 위천국가산단에서 삼성자동차, 가덕도신공항에 이르기까지 부산·경남에 쥐여 터질 때마다 말로만 정치권을 타박한다. 정작 표는 또 준다. 정치권이 시도민을 개·돼지로 취급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동물농장의 주인은 동물이다. 풍차를 짓든, 부수든 동물 구성원 하기에 달렸다. 입법 독주, 도덕적 해이, 탈원전으로 치닫는 '코리아 농장'과 쪼그라드는 'TK 농장'도 주권자인 '우리 하기' 나름인 것을 명심해야 한다.

2021-02-18 16:31:54

[청라언덕] 탁점(琢点)을 기대하며

[청라언덕] 탁점(琢点)을 기대하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전 대구 주택건설 업체들의 시장 장악력은 대단했다. 전국 주택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으며, 지역에선 80%를 싹쓸이했다. 당시 "대기업도 필요 없다. 우방과 청구 같은 회사만 지역에 남아 있어도 먹고살 길은 충분하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그런 위세는 불과 30년도 안 돼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대구에서 향토 기업이 차지하는 시장 점유율이 15%대로 하락해 예년에 외부 업체가 간신히 붙들고 있던 시장보다도 작게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쪼그라든 시장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는 지역 업체들로서는, 이제 변화를 모색하는 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과 직결된다.다행히 최근 지역에서는 여러 가지 신선한 변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우선 지역 주택건설 업체에 용적률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대신 청년 등 특정 계층을 지원하는 소규모 아파트 건설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주목된다.현재 20%대에 머물러 있는 지역 업체 용적률 인센티브를 최대 30%까지 늘리고, 늘어난 용적엔 신혼부부와 청년 등을 위한 소규모 주택 건설을 강제화하는 방안이다. 그렇게 되면 지역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고,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은 소규모 아파트 공급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주목되는 부분은 민간 업체를 대표해 이동경 도원투자개발 대표가 아이디어를 냈고, 김창엽 대구시 도시재창조국장이 즉각 검토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변화를 꾀하는 민간의 노력에 시정이 즉각 응답하는 시스템이 작동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두 사람은 빠르면 다음 주 중 만나 일을 매듭짓는다.일부 젊은 인재들이 대구로 회귀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40대 초반인 장덕용 제이에프개발 대표는 최근 경산에 사무실을 열었다. 그는 미국 뉴욕과 수도권에서 부동산 개발·건설업을 하면서 자본금 1천억원대 회사를 구축했다. 지역에 뿌리를 두고자 미국 컬럼비아대 유학을 마친 뒤 고향에서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주택·건설업 쪽으로 사업 확장을 시도하고 있는 2세들이 서울 유수의 대기업을 포기하고 대구에 둥지를 튼 점도 주목된다. 금강엘이디와 한창실업 사장의 아들들은 최근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등 굴지의 회사에 사표를 내고 가족과 함께 대구로 이사해 부친의 사업을 이끌고 있다.오랜만에 지역에 젊은 인재가 몰리고 건설업계 쪽 민·관 시스템에 변화가 생긴 가운데, 정부는 대대적인 공급 정책을 발표하는 등 기존의 '세금 폭탄' 부동산 정책에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세금 부담 정책은 원래 목적인 투기 방지보다 원재료(아파트)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기에 이번 정부의 전향적 부동산 정책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초선 의원 시절 줄탁동시(啐啄同時)란 말을 인용하면서 '탁점'(琢点)을 강조한 바 있다. 밖에서 어미 닭이 부리로 쪼는 점과 안에서 병아리가 쪼는 위치가 맞아떨어져야 달걀 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때 어미 닭이 밖에서 너무 세게 쪼면 병아리가 다치고, 안에 있는 병아리는 아무리 쪼아 봐야 껍질을 깨기에는 힘에 부쳐 안과 밖의 부리가 한 점에서 적절한 힘으로 부딪쳐야 부화에 성공한다.모처럼 지역 건설업계에 부는 변화와 정부의 전향적 정책이 한 점에서 만나 지역 건설업이 알을 깨고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국토부와 대구시, 부동산 시장과 지역 업체 변화상의 부리가 한곳에서 만나 껍질이 시원하게 깨지는 '탁점'을 기대한다.

2021-02-04 14:13:51

[청라언덕] 로맨틱하지 않은 벚꽃엔딩

[청라언덕] 로맨틱하지 않은 벚꽃엔딩

희망, 생명, 환희. 보통 봄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단어들이다. 봄을 이렇게 표현한 시도 많고 사람들도 그리 여긴다. 추운 겨울도 이제 끝이 보인다. 새 생명이 싹을 틔우는 봄이 한 달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새로운 시작을 꿈꿀 시기다.하지만 지금 교육 현장의 낯빛은 밝지 않다. 새 학기에 대한 기대를 말하기가 민망한 형편이다. 코로나19 탓만은 아니다. 인구가 급감해 학생이 모자라서다. 특히 대학은 더 심각한 상황이다. 앞으로 그런 현상이 더 심화할 것으로 보이니 표정이 어두울 수밖에 없다.출산율이 너무 낮다는 게 하루이틀 나온 얘기가 아니다. 지난해부터는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보다 많아졌다. 2018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0명대(0.98명)로 곤두박질쳤고, 2020년 3분기엔 0.84명으로 더 떨어졌다.문제는 이런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11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출생아 수는 2만85명으로 2019년 같은 기간보다 3천642명 줄었다. 월별 출생아 수로 따지면 2015년 12월 이래 60개월 연속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감소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구절벽'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그 충격파가 교육 현장부터 흔들고 있다. 학령인구가 감소해 학교가 존폐 위기에 몰리는 상황이 낯설지 않다. 최근 들어선 지역 대학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신입생 모집에서부터 난항이다. 수년 전부터 수도권에서 먼 대학부터 사라진다며 '대학은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고들 읊었다. 이젠 그게 현실이 될 판이다.대학의 위기감은 커지는데 상황을 반전시키기도 어렵다. 대구경북은 교육열이 높은 지역이라고들 하지만 그것만으론 희망을 얘기하기엔 역부족이다. 이번 2021학년도 대학입시 상황만 봐도 대학의 미래는 암울해 보인다. 등록금 동결, 장학금 확대 등 당근책을 내놓아도 모집 정원을 채우기 어렵다.대구시교육청에 따르면 2021학년도 대입 시행 주요 사항 등을 근거로 한 대구경북 대학 모집 정원은 6만1천886명(4년제 대학 3만7천856명, 전문대학 2만4천30명) 수준. 그런데 지역 고3 학생 수는 4만3천889명(대구 2만1천822명, 경북 2만2천67명)에 그친다. 모집 정원보다 수험생 수가 1만7천997명이나 적다. 신입생을 모집하기 힘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그렇다고 앞으로 수험생 수가 늘어 활로가 열릴 것도 아니다. 3년 뒤 대입 수험생이 되는 지역 중3 숫자는 4만105명(대구 2만239명, 경북 1만9천866명) 정도다. 현재 고3 숫자보다 3천 명 이상 적다. 대학들이 그냥 꾹 참고 버틴다고 넘길 수 있는 위기가 아닌 셈이다.대학이 쓰러지면 일자리가 줄고, 인근 상권은 몰락하며, 인재는 지역을 빠져나간다. 지역사회는 활력을 잃고 휘청이게 된다. 물론 대학들이 강점을 살린 특성화, 대학 간 연계 등 자구책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만 기댈 게 아니다. 행정·재정적 지원이 뒤따를 수 있게 물꼬를 트고 청사진을 그릴 필요가 있다. 학계와 지방자치단체, 정치권 등 지역사회 전체가 힘을 모을 일이다.입춘(立春)이 다음 주다. 봄이면 많이 들려오는 노래 중 하나가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 가사는 로맨틱하고 선율은 산들바람처럼 부드럽다. 하지만 곧 다가올 봄 분위기에 이 노래가 잘 녹아들지는 의문이다. 이달 28일 추가 모집을 포함한 2021학년도 대입 일정이 마무리되고 각 대학의 신입생 모집 결과도 나온다. 이번 벚꽃엔딩은 슬플 것 같다.

2021-01-28 18:02:05

[청라언덕] ‘백지’에 대한 기대, 그리고 현실 직시

[청라언덕] ‘백지’에 대한 기대, 그리고 현실 직시

인천국제공항을 향해 대구에서 출발한 차가 3시간 정도 달리면 차창 밖으로 '신천지'가 나타난다. 인천대교로 접어들 무렵 왼쪽으로 보이는 인천 송도국제도시(이하 송도)를 두고 하는 말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치솟은 마천루도 절경이지만 잘 정비된 도시 전경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겉만 번지르르한 것이 아니다.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 6위와 9위(20일 현재)를 달리는 삼성바이오로직스(52조6천억원)와 셀트리온(42조원) 본사를 품고 있다. 탄탄한 일자리 기반에 누구나 부러워하는 국제학교와 공원, 그리고 풍부한 녹지까지. 비결을 물었더니 철저한 계획도시, 그것도 가장 최근에 설계한 도시라서 그렇다는 설명이 돌아온다.대구국제공항이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부지로 이전하면 대구 시내에 694만여㎡의 빈 땅이 생긴다. 여기에 경북도청·대구시청 이전터까지 포함하면 송도 크기(신항만과 매립예정지 제외)만 한 공간을 새롭게 구축할 수 있다. 이 '가능성'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대구와 경북의 30년 후 모습은 달라진다.그래서 지역에서 고민이 많다. 지역 국회의원들도 이번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대구경북이 재기에 성공할 수 없다는 절박함을 갖고 있다.관건은 '어떻게'다. 주민 의견을 청취하고 도시계획 전문가에게 관련 연구용역을 맡기는 방식이 기본이다. 실제로 칼자루를 쥔 대구시의 움직임도 이렇다.송도 형성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인연이 있어서 몇 가지 생각을 적는다. 대구가 송도보다 훨씬 악조건이다. 그래서 더욱 꼼꼼하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먼저 대구는 빈 땅을 활용해 번 돈의 상당액을 공항 이전 비용으로 사용해야 한다. 매립만 하면 새로운 땅이 생기고 그 땅을 전적으로 개발에 활용하는 송도와는 완전히 다른 여건이다.시간도 우리 편이 아니다. 송도는 개념의 변화가 있긴 했지만 1980년대에 구상한 내용을 찬찬히 가다듬으면서 20년째 구축 중이다. 대구는 통합신공항 건설을 앞당기기 위해선 이전 지역 개발 얼개도 서둘러서 마련해야 한다.아울러 송도는 인천대교로 연결된 바다 건너편에 '세계공항서비스평가'(ASQ)에서 12년 연속 1위를 차지한 인천국제공항이 있고, 사람과 돈 그리고 정보가 몰린 수도권이 배후 시장이다. 대구공항 부지가 기댈 수 있는 사회간접자본은 동대구역 정도이고 배후 시장과 산업 기반은 안타까운 수준이다.이와 함께 최근 도시의 핵심 혁신 역량으로 꼽히는 관용도 측면에서도 인천에 밀린다. 인천은 자유의 바람이 부는 개항장의 유산을 머금고 있는 지역이다. 반면 내륙 분지에서 구성원 간 탄탄한 유대를 강조해 온 대구는 아직 외부에서 다가서기를 꺼리는 지역으로 통한다.현실을 직시하자는 뜻일 뿐 고향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런데도 굳이 이렇게 접근하는 이유는 여건 좋은 인천에서조차 송도가 애초 설계에서 벗어난 실패 사례라는 자조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계획보다 산업·문화·여가 공간은 줄어들었고 그 자리를 아파트가 채웠다는 지적이다. 특히 일자리, 산업유발효과가 거의 없다는 비판까지 나온다.매립만 하면 새로운 땅이 생기고 엄청난 배후 수요로 부동산 경기가 펄펄 끓는 수도권임에도 '경제성 측면에서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아파트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는 고백이 나온다.대구시가 쳐다보지도 않는 송도를 내세워 기를 죽이려는 뜻이 아니다. 제대로 하려면 아주 어려운 숙제라는 점을 공유하고자 한다. 허황된 청사진도 찌질한 패배주의도 정답이 아니다.

2021-01-21 16:37:38

[청라언덕] 언제까지 간호사들의 ‘헌신’만 요구할 건가

[청라언덕] 언제까지 간호사들의 ‘헌신’만 요구할 건가

의료진이 전 세계적인 '영웅'으로 칭송되는 시대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월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때부터 3차 팬데믹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까지 수많은 의료진이 감염병과의 전쟁 최전방에서 긴 사투를 벌이고 있다.특히 가장 많은 시간을 환자들과 부대끼는 이들이 바로 간호사들이다. 감염병이라는 특성상 '격리'가 기본이 되다 보니 간호사에게 주어지는 노동의 강도는 몇 배 더 가중될 수밖에 없다.입고 벗기 힘든 데다 호흡까지 벅찬 레벨D 방호복도 문제지만, 거동이 힘들거나 치매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요양병원 이송 환자들의 수발까지 모조리 이들의 몫이 됐다.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랄 판국이다. 걸핏하면 문을 열고 뛰쳐나가는 환자도 있고, 물도 떠다 주고, 대소변 수발까지 해야 한다.현장에서 일했던 한 간호사는 "간호·간병 업무만도 힘든데 택배와 사식 업무가 이렇게까지 많을 줄 몰랐다"고 혀를 내둘렀다. 기사들이 건물 밖에 놓아두고 간 택배를 옮겨 환자들에게 일일이 전달하는 일부터, 환자식이 맛없다며 주문한 음식을 반입해주는 일 등 가욋일도 무시 못할 업무량이란다.원래도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의 간호사는 상당히 고된 직업으로 꼽힌다. 교대 근무에다 생명을 다룬다는 직업적 특성과 턱없이 모자란 인력 탓에 지금껏 막무가내식 '살신성인'을 강요받아왔다.우리나라에서 간호사는 '장롱면허'가 많은 대표적 직업이다. 2018년 기준 전체 면허 소지자는 39만5천 명에 육박하지만 실제 병의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20만 명에도 못 미쳐 실제 활동 인력은 49.1%(OECD 평균 68.2%)에 불과하다. 간호사 정원을 늘리는 데만 급급했을 뿐 정작 그들의 호소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어렵게 간호사 면허증을 취득하고도 일을 포기하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열악한 노동환경이다. 우리나라는 인구 1천 명당 간호사 수는 3.5명으로 OECD 평균 7.2명의 절반 수준이다. 일이 힘들다 보니 퇴직률이 높고, 인력 공백은 경험이 부족한 신규 인력 혹은 기존 동료들에게 가중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더구나 코로나19 사태로 노동강도는 더욱 극한으로 치달았다.그런데 코로나19 위기가 1년 가까이 지속되는 동안 정부는, 그리고 우리 사회는 과연 이들의 희생에 감사하는 것 외에 무엇을 해줬던가. 간호사 인력 정원을 정한 의료법 시행규칙은 50년 넘게 개정되지 않고 있다.눈물로 하루를 버티고 탈진을 거듭하면서도 사명감으로 버티다 끝끝내 현장을 이탈할 때까지 간호사들의 노동현장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더 악화됐을 뿐이다. 지난해 봄 이후 3차 팬데믹이 폭증할 때까지 반년 가까운 시간이 있었지만 정부는 인력 충원에는 손을 놓고 있었다. K방역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도외시했던 것이다.이제는 더 이상 말로만, 마음으로만 이들을 위로할 때는 지났다. 의료는 결국 사람의 일이다. 병상과 장비 확보도 중요하지만 결국 이들을 돌보는 인력이 생명을 살리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의료진이 무너지면 환자의 안전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지난 3월 간호사를 돕기 위해 코로나 병실 근무를 자처했던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교수는 당시 경험담을 담은 '당신이 나의 백신입니다'란 책에서 "간호사들의 희생이 있어야만 유지되는 방역과 보건의료체계는 이미 정상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간호사들의 노동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고 있는지, 그리고 적절한 보상을 하고 있는지부터 짚어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2021-01-14 16:52:14

[청라언덕] 특별법의 끝판왕

[청라언덕] 특별법의 끝판왕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138명이 서명해 국회에 제출한 '가덕도 신공항 건설 촉진 특별법'은 특별법의 끝판왕이다. 개발독재 시대에서도 보기 힘든 법안이다. 행정부 견제를 넘어 아예 무시한 입법 독재의 실체를 보여준다.예비타당성 조사 면제(7조 3항) 조항부터 문제투성이다. 1999년 김대중 정부 당시 도입된 예타 제도는 대규모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의 정책적·경제적 타당성을 사전에 면밀하게 검증·평가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예산 낭비 방지에 큰 역할을 했다. 6천여억원이 드는 대구도시철도 엑스코선 건설 사업이 기획재정부 예타 심사를 통과하는 데 무려 4년이나 걸렸다. 그만큼 엄정하게 평가한다. 10조원 이상 재원이 투입되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여당은 특별법을 앞세워 정책적·경제적 타당성 문제를 아예 무시했다. 입법부가 행정부를 통제했다. 입법 독재와 다름없다. 입법부의 역할은 행정부 통제가 아닌 견제다.논의의 절차와 의견 수렴 없이 특정 지역을 못 박아 특별법을 만드는 것도 상식에서 한참 벗어났다. 특별법은 동남권 신공항을 가덕도 일원에 건설되는 공항(2조 1항)으로 단정했다. 해당 지역이 공항 건설지로 적합한지 여부에 대한 논의를 원천 차단시켰다. 신공항을 건설해 국토균형발전과 지방의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대의명분은 사라지고, '가덕도'라는 특정 지역을 위해 국가적 재원을 쏟아붓겠다는 발상이다. 인천국제공항 건설에 가속도를 붙인 수도권신공항건설촉진법 제정 당시 '인천'이라는 명칭이 없었다. 해당 법에 '인천'이 등장한 것은 법이 제정된 지 7년 8개월여 만이었다.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천국제공항의 경우 건설에서 운영까지 3개의 관련 법이 제정됐다. ▷수도권신공항건설촉진법 ▷수도권신공항건설공단법 ▷인천국제공항공사법 등이다. 앞의 두 법안은 공항 완공 뒤 개정·폐지됐다. 가덕도 특별법은 이 세 개 법안 내용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토목계의 유신헌법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수도권신공항건설촉진법을 원용했다지만 두 법안을 비교하면 가덕도 특별법은 한발 더 나갔다. 신공항 건설 사업자에게 법인세, 소득세, 관세, 취득세, 개발부담금, 교통유발부담금 등 17종류의 조세 및 부담금을 감면 또는 부과하지 않도록 했다.(16조) 신공항 건설 지역에 입주하는 기업과 연구기관은 최대 50년 동안 사용허가를 받고, 추가 50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19조) 외국인투자기업에 대한 세제 및 자금 지원도 가능하다.(25조) 특별법으로 향후 불거질 모든 걸림돌을 단번에 제거하겠다는 의도다.가덕도 특별법을 시샘하는 게 아니다. 행정부를 왕따시킨 채 180석이 넘는 범여당이 '묻지마 특별법'을 만드는 게 국가 장래를 위해 바람직하냐는 것이다.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국가의 미래를 발목 잡아야 할 만큼 절박한가를 묻고 있다.이 특별법은 우리가 힘겹게 쌓아온 삼권분립 원칙, 법의 원칙과 행정의 합리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근거한 법치주의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입법부의 권한이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질문도 던진다. 민주주의에 젊음을 바쳤다고 자임하는 여당 국회의원들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기로 내몰고 있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단언하건대 가덕도 특별법이 제정되면 판도라의 상자는 열릴 것이다. 앞으로 선거를 앞두고 전국 각지에서 이 특별법에 준하는 특혜를 요구할 게 뻔하다. 민주당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2020-12-31 17:37:58

[청라언덕] 공룡은 살아 있다?

[청라언덕] 공룡은 살아 있다?

공룡은 멸종(滅種)했다.하지만 이 거대한 종은 장난감으로, 영화 속 주인공으로, 살아 있는 동물보다 때론 더 친숙하다. 평생을 공룡 연구에 바치는 학자들도 많으니 가히 공룡은 죽어도, 죽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다.공룡을 뜻하는 영어 dinosaur(다이노소어)는 '무서운 도마뱀'(terrible lizard)을 의미하는데 멸종설도 화산 폭발, 운석 충돌, 대지진 등 무서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 중 지름이 10㎞쯤 되는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해 공룡이 사라졌다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을 갖는다.엉뚱하지만 흥미로운 주장도 있다.바로 '방귀멸종설'이다.공룡이 뿜어내는 방귀가 쌓여 지구온난화가 시작됐고 가뭄으로 인해 공룡이 몰살됐다는 논리다. 방귀에 포함된 메탄, 이산화탄소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는 건 과학적 상식이다. 사람이 뀌는 방귀는 양이 많지 않아서 영향이 거의 없지만 동물 방귀의 경우 상황이 달라진다.초식 동물들이 배출하는 가스의 양은 연간 1억t쯤 된다. 소 4마리가 방출하는 가스는 자동차 1대가 내뿜는 가스의 양과 비슷하다고 하니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그런 소보다도 몇 배나 큰 초식 공룡이 배출하는 가스의 양이 어마어마했다는 데서 '방귀멸종설'은 출발한다. 실제 브라키오사우루스라는 공룡은 하루 동안 인간보다 3천400배 이상 방귀를 뀌었다고 한다.방귀(?) 추종자들은 공룡이 배출했던 가스의 양이 무려 5억t이나 됐을 것으로 추정하며 '방귀대장' 공룡이 지구온난화를 불렀고, 종이 멸종했다고 보고 있다.경북도청 앞마당을 지키고 있던 공룡 뼈 조형물(길이 10.5m, 높이 3.5m 크기·이하 공룡)도 최근 사라져 방문객들의 궁금증을 낳고 있다.이 공룡은 1년 반 전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미국의 구글 본사(정원에 공룡 뼈 조형물이 있다)를 방문한 뒤 같은 해 12월에 설치했다. 이 도지사는 "세계 최고의 기업도 변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우리 경북도도 변하지 않으면 공룡처럼 없어질 것"이라며 변화를 강하게 주문했다.이후 공룡 조형물은 '변해야 산다'는 도정 슬로건을 대표하는 상징물이 됐다. 방문객도 웅장한 도청 본관을 배경으로 공룡을 '연인' 삼는 사진 명소로 떠올랐다. 이런 공룡이 없어졌으니….사실 공룡은 본관 옆 건물인 어린이집 주변으로 옮겨졌다. 경북도정이 활기차고 유연하게 변했다는 객관적 성과와 평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이 도지사는 공룡을 설치하면서 도정이 변화했다고 생각되면 공룡을 치우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경북도정은 코로나19로 답답한 대내외 여건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일궜다.수년간 답보 상태에 있던 대구경북통합신공항 이전 부지를 확정(8월 28일)했으며 매번 하위권에 머물렀던 정부합동평가에서도 '평가 부문 1위'에 올랐다. 특히 전국 최하위 수준이던 청렴도는 처음으로 최고 등급을 받았다.내년 국비 예산도 모두 5조808억원을 확보해 민선 7기 이후 반 가까이(42.8%) 늘었다. 이 외에도 해피댄스, 화공특강 등 조직에 새바람을 불어넣는 기분 좋은 변화가 줄기차게 이어졌다.도청 앞마당을 떠난 공룡도 '변했다나 어쨌다나'.뼈만 앙상했던 공룡이 얼마 전부터 흰색 마스크에다 빨간 산타클로스 모자를 썼다. 그러자 어린이집 꼬맹이들 사이에선 공룡이 밤에 살아 움직여 선물을 주러 다닌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만개하고 있다. 아이들다운 발상이지만 이런 '동심'이 어른들에게까지 전달되어 마음이 훈훈해진다.내년 이맘때는 경북도정에 어떤 또 다른 변화가 생길까. 어게인(again) 경북도정,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기대해 본다. 메리 크리스마스~.

2020-12-24 14:25:31

[청라언덕] 장밋빛 부동산 정책

[청라언덕] 장밋빛 부동산 정책

문재인 정권은 2017년 출범 당시 100대 국정 과제를 통해 서민이 안심하고 사는 주거 환경 조성과 신혼부부 주거 부담 경감책을 발표했다.이를 위해 문 정부는 부동산 정책의 핵심 기조로 주택 공공성 강화를 강조했다. 경기 부양이나 경기 조절 수단이 아니라 서민 주거 안정 및 실수요자를 보호하기 위함을 확고한 원칙으로 세운 것이다. 집이 투자의 대상이 아니라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인식시키고자 투기 수요와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다.이 같은 기조가 시장에서 작동된 지 4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현재 전국 아파트 값은 수직 상승하면서 '내포'(내 집 마련을 포기)한 서민들은 늘어났다. 대출을 막아 놓아 신혼부부의 신혼집 마련도 하늘의 별 따기다. 대구에선 1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돈을 위약금으로 물고라도 매매를 해약할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아파트 가격은 뛰고 있다.수억원씩 오른 아파트 소유자들이라고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보유세와 종부세 등 예고된 세금 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문제의 근원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지만, 지금까지 정권이 '만병통치약'으로 들고 있던 과세 문제를 꼽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정부는 세금을 올리면 투기 자본이 겁을 먹고 손절매할 것이란 기대 때문에 이 기조만큼은 버리지 못한 것 같다.주택은 하루 몇천 대씩 만들 수 있는 자동차가 아니라 길게는 5년까지 걸리는 생산 기간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 아파트는 매우 비탄력적이다. 필요하다고 바로 출현하는 것이 아닌, 거시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일각에서는 이 같은 비탄력적 특성 때문에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이미 늦었고 가격 상승은 심화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내놓고 있다. 지난 3년간 공급을 중단했기에 비탄력적 공급성을 띠는 아파트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고, 정부 정책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투기 자본은 보란 듯 시장에서 활개 치고 있다. 투기 세력들은 1달러 하던 '비트코인'이 10년도 안 돼 1만 배가 오른 비현실적 상황을 예로 들면서 '공급 단절된 아파트 가격은 결코 후퇴하지 않는다'고 큰소리친다.주택 문제에 대한 원성이 높아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공공임대주택 240만 호 확대를 해법 가운데 하나로 내놨다. 수십 차례 내놓은 부동산 해법을 뒤로하고 다시 정권 초기 제시한 '주택 공공성 강화' 문제로 회귀한 것이다.3년 전으로 돌아간 부동산 정책을 보면서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혀를 찬다. 그 정도 규모로 지을 땅도 없을 뿐 아니라 이미 토지 가격이 아파트 값과 동반 상승해 공익성을 초과하는 건설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의 뒤를 이은 변창흠 장관도 초기 행보부터 우려되는 부분이 감지된다. 부동산 정책 해법에 기초해야 할 시선을 통계적 문제로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현 정권은 '소득주도성장에 맞지 않은 자료를 냈다는 이유로 통계청장을 경질했다'는 질타를 받은 바 있다.어디를 봐도 현재의 부동산 정책을 해소할 돌파구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저성장 장기화 시대에 코로나 악재까지 겹쳐 서민들의 불안은 극에 달한 상태다. 내 집 마련 기대를 걸며 이 정권 출범을 위해 기꺼이 촛불을 들어주던 서민들의 기대가 거품처럼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2020-12-17 15:30:34

[청라언덕] 올해도 '마(魔)의 수능 4교시'

[청라언덕] 올해도 '마(魔)의 수능 4교시'

해마다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이쯤 되면 운영 방식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고 봐야 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 4교시 응시 방법에 대한 얘기다. 응시 방법을 위반, 부정행위로 간주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오죽하면 '마(魔)의 수능 4교시' '끝나지 않는 수능 4교시의 저주'라 할까.2021학년도 수능시험이 치러진 3일. 강원도 한 수능시험장에서 시험을 치던 A학생은 사회탐구 영역 문제를 풀려다 당황했다. 한국지리 문제지 아래 다른 과목 문제지가 붙어 있었던 것. 감독관에게 즉시 이 사실을 알렸지만 부정행위로 간주돼 시험을 치른 뒤 인정 조서를 써야 했다.지난해 11월 14일 2020학년도 수능시험이 시행된 경상남도의 한 시험장. 4교시 과학탐구 영역 시험 종료 직전 B학생은 답안지에 잘못 옮겨 적은 답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를 고치려다 실수로 같은 답안지에 표기를 이미 마친 한국사 답안에 손을 댔다. 실수한 걸 알고 감독관에게 바로 그 사실을 알렸는데 결국 부정행위자로 분류됐다.수능시험 4교시엔 한국사와 탐구 영역 시험이 진행된다. 그런데 운영 방법이 간단하지 않다. 일단 30분 동안 필수 과목인 한국사를 푸는 게 먼저다. 이어 감독관이 10분 동안 한국사 문제지를 회수하고 탐구 과목 문제지를 나눠준다. 수험생은 탐구 영역의 선택 과목 1, 2개를 차례로 풀게 된다.선택 과목 응시 순서를 어겨선 안 된다. 한 과목을 푸는 동안 책상 위에 다른 과목 문제지를 올려둬서도 안 된다. 둘 모두 부정행위로 간주된다. 탐구 영역 문제지는 여러 과목이 1부로 묶여 나오는데 수험생은 여기서 자신이 응시한 시험지만 골라야 한다. 다른 과목이 딸려 나오는 걸 몰랐다면 부정행위가 될 수 있다. 4교시 응시 영역은 한 장의 답안지에 답을 모두 적기 때문에 각 과목 시험시간에 이미 끝난 과목 답안을 수정하는 것도 부정행위로 처리된다.4교시 응시 방법을 위반, 부정행위로 처리되는 일은 매해 반복되고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배준영 의원(국민의힘)이 지난 10월 국정감사 때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서도 이 사실이 확인된다. 2016~2020학년도 수능시험 부정행위 적발 건수 1천173건 중 44.5%에 달하는 522건이 4교시 응시 방법 위반인 것으로 나타났다.대구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에 부정행위로 적발된 5건 중 4교시 응시 방법을 위반한 경우가 3건이었다. 1, 2선택 과목 시험지를 모두 책상 위에 두고 시험을 치른 경우가 2건이었고, 두 선택 과목 응시 순서를 바꿔 시험을 치른 게 1건이었다. 지난해에도 4교시 응시 방법 위반이 2건 발생했다.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지난해부터 4교시 답안지에서 한국사, 1선택 과목, 2선택 과목 답안 작성 부분의 색깔을 다르게 했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부정행위자가 되는 사태를 방지하려는 게 목적이다. 하지만 이 시도만으론 부족했다. 여전히 4교시 응시 방법 위반 사례가 나오고 있다.고의든, 실수든 수험생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아쉽다. 수능시험 직후에만 잠시 화젯거리로 삼고 잊어버릴 게 아니다. 끊임없이 생기는 문제라면 적극적으로 해결 방법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지난해 11월엔 '수험생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수능 4교시 운영 방식을 개선해 달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모든 문제는 수능 4교시 운영 방식이 복잡한 탓'이고, '현행 방식을 고수하는 건 행정편의주의의 일종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청원인의 주장이 올해도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2020-12-10 15:39:30

[청라언덕]  ‘선출된 권력’과 ‘공부해서 얻은 권력’의 대충돌

[청라언덕]  ‘선출된 권력’과 ‘공부해서 얻은 권력’의 대충돌

'선출된 권력'과 '공부해서 얻은 권력' 사이의 힘겨루기가 절정이다. 현직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 알력(軋轢)으로 비치지만 본질은 권력 집단 간 대충돌이고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선출된 권력'의 정점에는 국민이 뽑은 문재인 대통령이 자리 잡고 있다. 고시(高試) 합격자 중에서도 사법연수원 성적이 우수한 사람들만 모인 검찰에선 윤석열 총장이 총대를 멨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양측의 사활을 건 진검승부가 진행 중이다.현 정권은 민의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 집단이 조직 이익만 좇으며 필요에 따라 정치 영역마저 뒤흔드는 상황을 종식시키겠다는 입장이다.문 대통령은 지난 2011년 쓴 책 '문재인의 운명'에서 "검찰을 장악하려 하지 않고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보장해 주려 애썼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바로 그 검찰에 의해 정치적 목적의 수사를 당했으니 세상에 이런 허망한 일이 또 있을까 싶다"는 격정을 토로한 바 있다.반면 검찰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엄존하는 상황이라 권모술수와 정파적 이해로부터 자유로운 중립적인 사정 기관이 필요하다고 맞서고 있다.윤 총장은 지난해 7월 취임식에서 "권력기관의 정치·선거 개입, 불법자금 수수, 시장 교란 반칙 행위, 우월적 지위의 남용 등 정치·경제 분야의 공정한 경쟁 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에 대해서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현장의 목소리는 더욱 적나라하다. 여당의 한 중진 국회의원은 "정치권을 진흙탕이라고 욕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주기적으로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며 "검찰은 줄 잘 잡아 충성만 하면 평생을 보장받는,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는 조직이다 보니 더욱 이기적이고 교만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하지만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구성원의 애국심, 정의감, 도덕성 등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에 검찰만 한 조직을 찾기 힘들다"며 "백보 양보하더라도 권력욕 앞에 자신의 영혼까지 서슴없이 내려놓는 정치권보다는 나라에 더 이익이 되는 집단"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역대 전적에선 검찰이 전승을 거뒀다. 그나마 참여정부가 싸움다운 싸움을 걸었지만 결과적으로 참패했고, 군에서 하나회마저 걷어냈던 문민정부도 검찰의 상대가 되진 못했다. 검찰엔 필승 공식이 있었기 때문이다.정권의 힘이 좋은 임기 전반기에는 전(前) 정권 수사에 총력을 쏟으며 살아 있는 권력의 편에 서는 방식으로 개혁 대상에서 벗어났다. 이때 현 정권 인사들의 비리와 범죄 혐의는 차곡차곡 쌓아두기만 한다.후반기에는 그동안 보관해 온 현 정권 인사들의 비리와 범죄에 대한 수사를 시작한다. 그러면 정권은 검찰을 개혁할 수 없다. 이렇게 검찰은 외부의 수술을 피하면서 점점 더 강해졌다.특히 검찰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 가운데 어떤 것이 죄가 되는지를 규정하는 막강한 권한(기소권)을 독점적·자의적으로 행사하면서 '거악척결(巨惡剔抉)의 상징'이 됐고, 조직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국민의 지지를 발판으로 상황을 반전시키는 수완도 발휘했다.이런 막강한 검찰을 상대로 현 정권이 ▷통치권자의 강력한 의지 ▷'촛불 정부' 위상 ▷절대다수 국회 의석 ▷검찰 비리(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추행 사건 등) 들추기 등을 무기로 수술을 추진 중이다.19세기 영국의 정치인이자 역사가였던 존 달버그 액턴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며,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선한 권력은 없다. 국민들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두 권력 중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 궁금하다.

2020-12-03 15:35:29

[청라언덕] 대학과 바이오 '찬스'

[청라언덕] 대학과 바이오 '찬스'

요즘 '코로나 백신'에 세계인들의 이목이 쏠린다. '절대악' 코로나19 사태를 종식시킬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현재까지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가 세계적으로 코로나 백신의 '3대장'이다. 이들은 백신 효능과 접종 시기를 놓고 치열한 경쟁 중이다.영국 제약 업체 아스트라제네카는 국내 SK바이오사이언스와 코로나 백신 위탁 생산 계약을 맺었다는 점 때문에 우리에겐 좀 더 친숙하다. 또 눈길을 끄는 게 있다. 아스트라제네카가 영국 옥스퍼드대와 백신 개발을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과 기업이 손을 잡고 세계적인 백신을 내놓는다는 것이 주목받고 있다.이처럼 대학과 기업의 협력을 통한 사업은 외국에서만 볼 수 있는 사례가 아니다. 국내, 더 좁혀서 대구경북에서도 이런 현상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바이오 분야가 각광받으면서 두드러지고 있다.영남대엔 국내에서 유일하게 세포 배양을 전문으로 하는 '세포배양연구소'(소장 최인호 의생명공학과 교수)가 있다. 일반적으로 백신 등 바이오 의약품은 모두 세포 배양을 통해 생산된다. 세포 배양이 의약품 생산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이 연구소는 올해 6월 교육부 대학중점연구소 지원사업에 선정돼 9년 동안 70억원을 지원받는다. 또 셀트리온 등 국내 굴지의 바이오 업체들과 협약을 통해 의약품 생산을 돕고 있다. 경북 의성에 조성 중인 세포 배양 관련 산업단지도 이 연구소가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경북대 생명공학전공 이창희 교수 팀은 동물 백신 전문 기업인 ㈜중앙백신연구소와 협력해 돼지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세계 최초로 개발, 10월에 출시했다. 돼지코로나는 폐사율 100%의 무서운 바이러스로 이를 잡을 백신 개발에만 5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포항에 있는 포스텍도 국내 코로나 백신 컨소시엄에 참여 중이다. 이 컨소시엄은 국내 바이오 기업 제넥신을 필두로 여러 기업과 대학이 손을 잡고 'GX-19'라는 백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이 컨소시엄은 국내에선 가장 빠른 백신 개발 속도를 보이고 있다.교수가 직접 창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제넥신은 성영철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가 직접 차린 기업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포스텍에 따르면 최근 바이오와 관련해서만 교수가 창업한 기업이 대표적으로 3곳이나 된다. 경북대에서도 최근까지 의대 교수 중에 10명 이상이 진단 키트나 의료 기기 분야 등의 창업을 했다.국내 바이오 산업의 전망은 밝다. 바이오 의약품 생산 세계 2위 수준, 바이오 의약품 특허 점유율 세계 2위(24.2%·2013~2017년) 등이 말해 주듯 국내 바이오·제약 분야는 세계 최고 수준이며 정부의 지원 의지도 강하다.바이오 열풍은 대학에 분명한 기회다. 기술 이전과 산학 협력을 통해 사용료 등 수익을 따박따박 창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연구진의 취업 및 시설 투자 등 다양한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학생 수 감소와 재정 압박 등 지방대들이 어느 때보다 큰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런 만큼 모처럼 맞은 바이오 '찬스'를 놓쳐서는 안 된다. 지자체 또한 대학과 머리를 맞대야 한다."대구가 코로나19 사태의 피해를 가장 심하게 받았지만 관련 기업이나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 저도 협력할 기업을 찾다가 결국 대전 기업에 손을 내밀어야 했다. 그런 현실이 안타까웠다. 관련 인재들도 결국 서울로 모두 빠져나간다"는 지역 한 교수의 탄식을 새겨봐야 한다.

2020-11-26 18:51:10

[청라언덕] 물이 흘러야 하듯 경제도 흘러야 한다

[청라언덕] 물이 흘러야 하듯 경제도 흘러야 한다

'물은 흘러야 한다.'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시민·환경단체와 이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외쳤던 구호다. 유유히 흘러야 할 물을 가둬 놓은 대가로 치수와 홍수 관리에는 효과를 얻었을지 모르나 거대한 녹조와 큰빗이끼벌레가 창궐하는 '썩은 물'을 감내해야 했기 때문이다.4대강 사업을 통해 얻는 이익보다 수생태계 파괴로 인한 피해가 더 크다고 봤던 이들은 물의 본래 속성대로 흘러갈 수 있도록 보를 열거나 해체할 것을 주장했다. 물은 흘러야 하고,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라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섭리다.그런데 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본연의 성질'을 중시하는 정부가 왜 같은 이치로 굴러가는 '경제'에 대해서는 그 근본 원칙을 무시한 채 강압적인 규제로만 접근하려는 것일까.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먼저냐, 신자유주의냐 사회적 시장경제 체제냐의 해묵은 논쟁은 일단 접어두고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 보자.경제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이익 추구라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기적 욕망 속에서 군중심리, 과시 심리, 지금 투자에 뛰어들지 않으면 나만 뒤처질 것 같은 '포모'(FOMO) 심리 등의 요소가 모두 얽히고설키며 흘러간다.어쨌거나 방향은 일관되다. 나의 이익, 그리고 미약하게나마 우리 사회의 최소한 선을 지켜 공동체의 지속성을 지키려는 쪽이다. 어떠한 정책도 이런 근본적인 흐름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거나 차단하기는 어렵다.오히려 막으려 하면 할수록 무섭게 틈새를 찾아드는 욕망의 속성이다. 수십 차례 계속된 정부의 정책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만 봐도 이는 명백하다.지난 13일 오후 정부가 고소득자 신용대출 규제를 발표하자 주말 동안에만 5대 시중 은행에 1조원이 넘는 신용대출 신청이 몰려들었다. 당장은 필요 없다 할지라도 정부 정책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서둘러 받아두자는 수요까지 가세한 탓이다. 심지어 부모 찬스, 형제 찬스까지 등장해 대출을 받으려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임대차 3법을 밀어붙인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 행사로 '전세 난민'이 되자 결국 세입자에게 이사비 명목으로 2천만원의 위로금을 준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결국 정부의 시그널이 왜곡된 방향이 될 수 있음을 몸소 증명해준 사례가 돼 버렸다.더구나 이 임대차 3법과 강력한 대출 규제 등으로 인해 시장에서는 아예 매매와 전세 물량이 자취를 감추면서 사상 초유의 전세 대란을 불러일으켰고, 정부를 비웃듯 부동산 가격은 전혀 잡힐 기미 없이 고공행진 중이다. 이 와중에 심지어 호텔을 개조해 전셋집을 공급한다는 방안이 나오자 또 시민들의 성난 목소리가 아우성치고 있다.왜 사람들이 이런 행동 패턴을 보이는지를 무시한 채 자꾸 힘을 거스르는 정책만 내놓다 보니 문제가 생기고, 또다시 땜질식 대책이 나오길 수십 번 반복 중이다. 여기에다 정책이 제 힘을 발휘하기까지는 일정 기간의 시차도 감안해야 하는데 시민들의 성난 목소리에 당황한 정부는 새로운 규제를 만들기에만 바쁘다 보니 오히려 시장의 오버슈팅을 자극하고 있다.겨울이 지나 봄이 오려면 꽁꽁 얼어붙은 땅에 온기가 돌고 물이 흘러야 하듯이 경제도 돌고 도는 순환이 잘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 당장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우리 경제가 위기에 처한 상황 속에서 경제 전반을 옥죄는 정책만 남발하다간 그나마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경제 흐름의 맥마저 끊어 놓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2020-11-19 15:57:17

[청라언덕] 마당집의 꿈, 후회 안해도 될까?

[청라언덕] 마당집의 꿈, 후회 안해도 될까?

마당 딸린 이층집은 오랜 꿈이었다. 온종일 해가 들고 바람이 통하는 거실, 언제든지 사뿐사뿐 걸으며 흙 내음을 맡을 수 있는 작은 마당.수년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도심 주택가를 다녀보고, 대구 외곽의 전원주택단지도 둘러보며 대리만족만 하다가 올해 초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교외에 땅을 구해 집을 짓고 부모님까지 3대가 함께 살기로 했다.수십 차례의 발품 끝에 땅을 구했고, 설계가 진행 중이다. 직접 집을 지으면 10년은 늙는다더니 아직 넘어야 할 고개가 첩첩 쌓여 있다.아파트에서 벗어나기로 했지만 누군가 뒷덜미를 당기는 느낌이 든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도심 아파트값을 보며 자산 형성의 기회를 날리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다.희한하게도 도심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후부터 대구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달 대구의 주택종합매매가격은 전월 대비 0.75% 상승했다. 특히 수성구는 전국 최고 수준인 1.91%나 올랐다. 수성구에서도 범어동 일대 신축 아파트들은 한두 달 만에 1억~2억원이 뛰었고, 호가는 10억원을 훌쩍 웃돈다.전세 시장도 혼돈 그 자체다. 전·월세 신고제,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제 등을 핵심으로 하는 임대차 3법 이후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은 역대 최악이다.KB국민은행이 발표한 월간 KB주택시장 동향에 따르면 10월 대구의 전세수급지수는 197.1로 2003년 7월 이후 최고였다. 수치가 높을수록 공급 부족이 심각하다는 뜻이다.일례로 수성구 두산동 967가구 규모의 주상복합아파트는 전용면적 84㎡ 아파트 전세가가 두 달 만에 1억원이 올랐고, 그나마 매물도 2건에 불과하다.상황이 이러니 부동산 투자 열풍은 잦아들지 않는다. 얼마 전 만난 지인은 올해에만 대전과 부산, 경기도 광명에 투자용으로 집을 샀다고 했다. 재건축 사업이 기대되는 오래된 아파트와 집값 상승이 예상되는 수도권 아파트다. 올 들어 아파트 매매가격이 크게 뛰면서 지인은 10억원가량의 투자 수익을 기대하고 있었다.또 다른 지인은 "씀씀이가 큰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벌었다"고 했다. 갭투자를 하거나 투자 수익이 기대되는 동네 아파트를 매입한 뒤 단기간에 시세 차익을 보고 빠지는 식이라고 했다. 양도세를 내더라도 수천만원의 수익을 남긴다는 것이다.이쯤 되면 부동산 시장 과열과 투기꾼을 잡겠다며 23차례나 내놓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백전백패'다. 세 부담을 늘리고 대출을 규제하는 대책이 나올 때마다 집값은 비이성적으로 뛴다. 보유세와 거래세, 양도소득세를 한데 묶은 우리나라 부동산 세금이 이미 OECD 평균을 훌쩍 넘는데도 그렇다.시장 참여자들은 정책 의도와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정부가 각종 규제로 집값을 잡겠다며 신호를 보내지만 수요자들은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빨리 집을 사야겠다'고 해석한다. 집값이 뛰니 다급해진 수요자들은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사고, 무주택자들은 대출 규제에 막혀 발만 동동 구른다.대구의 주택시장이 공급 확대를 통해 안정을 찾으려면 최소 2년은 걸릴 것이다. 최근 2, 3년간 쏟아졌던 분양 물량의 입주 시기까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애써 기다린 뒤에도 비싼 그 집에 들어가 살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정책은 조화와 균형이 중요하다. 단기 조절에 급급해 모든 수단을 무분별하게 쏟아버리면 오히려 심각한 부작용에 직면한다. 마당 집의 꿈이 정부의 연이은 헛발질에 아쉬운 선택으로 끝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2020-11-12 18:59:06

[청라언덕] 프레임 싸움

[청라언덕] 프레임 싸움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이 8년(1559~1567년)간 벌인 '사단·칠정 논쟁'은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학문적 깊이에서 근대 이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모범적인 학술 토론이었지만 의견의 불일치를 극복하지 못했다.의견의 불일치는 훗날 조선의 먹물들이 400여 년 동안 '이(理)가 먼저냐? 기(氣)가 우선이냐?'를 두고 싸우고 또 싸우는 출발이 됐다. 이 논쟁은 조선 성리학이 영남학파와 기호학파로 갈라지는 결정적인 도화선이 됐다. 심지어 같은 학파 안에서도 논쟁을 벌였고, 불화를 겪었다. 절친한 친구였던 우계 성혼과 율곡 이이도 이 논쟁으로 불편을 겪기도 했다.이 논쟁은 애초부터 합의가 될 수 없었다. 주자는 '이, 기'를 두 개념으로 설명했다. 첫째, '이=도덕 성향=사단, 기=욕구 성향=칠정'이다. 퇴계는 이 주장을 발전시켜 도덕심리학적으로 '이'에 비중을 뒀다. 둘째, '기'는 '이'(도덕 성향)를 싣거나 태워주는 존재로도 설명했다. 사람의 본성은 선하지만 현실에서 선인과 악인으로 나뉘는 것은 '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고봉은 이를 받아들여 '이, 기'를 분리할 수 없다는 존재론적 관점을 주장한다. 논쟁은 남명 조식이 끼어들면서 중단된다.논쟁이 합의를 이룰 수 없었던 이유는 서로 프레임이 달랐기 때문이다. 퇴계는 도덕심리학적 관점에서, 고봉은 존재론적 관점에서 '이와 기'를 논하면서 출발부터 달랐다. 퇴계는 고봉의 주장이 수수께끼 같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중의적 의미로 사용된 '기'의 개념도 서로 다르면서 소통이 쉽지 않았다.사용하는 화폐가 다르면 교역이 불가능한 것처럼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가 같지 않으면 대화가 진행되기 어렵다.(이승환, '횡설과 수설')460여 년 전 대학자와 젊은 유학자 간 신중한 학술 논쟁도 결국 프레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프레임이 세상을 보는 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정부 여당과 야당 간 상호 공격,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쟁,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벌어지는 싸움, '구적폐'·'신적폐'로 서로 손가락질하는 정치권 공방도 결국 프레임을 두고 벌이는 논쟁이다. 정치권이 견해가 다르고, 정책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그럼에도 프레임을 공유해야 하는 게 있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치로 건국됐다. 자유민주주의에서 3권 분립이 엄격히 지켜져야 하고,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주권이 있고, 모든 권력이 나오는 국민을 우선해야 한다. 공산주의를 채택한 북한과 대립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다.지금의 정부 여당을 보면 국민보다 팬덤에 휘둘린다. 더불어민주당이 금태섭 전 국회의원을 포용하지 못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팬덤은 '이성적 지지'보다 '정서적 유착'에 기반한다. 이성적 지지는 '옳고, 그름'을 따지지만, 정서적 유착은 '좋고, 싫음'을 우선한다. 팬덤이 정부 여당의 정치 구호와 정책에 '좋다'는 신호를 보내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다. 열성적 지지자들 외에는 별로 필요 없다고 판단하고, 이렇게 해도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정부 여당이 팬덤을 이용해서 정권을 잡았지만 이제는 팬덤에 빨려들어가 버린 형국이다.팬덤 정치와 여의도 정치는 메커니즘이 다르다. 여의도 정치가 팬덤 정치에 휘둘리는 상황을 정상화시키지 않으면 한국 정치의 후퇴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가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대한민국이 민중민주주의 방식으로 운영될 수는 없지 않은가?

2020-11-05 17:13:20

[청라언덕] 된장녀 작사, 고추장남 작곡

[청라언덕] 된장녀 작사, 고추장남 작곡

된장녀. 재산이나 소득 수준에 맞지 않게 명품 사치(奢侈)를 일삼는 여성을 비하하는 말이다. 2000년대에 만들어졌다. 한때는 인터넷 신조어와 유행어 1위에 오를 정도로 잘나갔다.고추장남(늘 같은 패션에, 잘 씻지도 않고 구질구질한 남자)이란 아류도 낳았다. 된장에 대한 명예훼손이란 목소리가 컸을 정도이니 된장녀는 가히 '메뚜기 한철'을 보냈다.명품은 한국에서는 대접을 잘 받지 못한다. 특히 정치인은 명품 걸쳤다가 망신을 사기도 한다.하지만 세계 최대 갑부인 아마존 창업자는 명품을 '끊임없는 혁신이 낳은 결과물'이라 할 정도로 대접한다. 다소 부정적 인식이 덧씌워지긴 해도 가방이든 옷이든 자동차든, 명품으로 인정받는 제품은 혁신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이견이 없다.이런 이유에서 명품 선호 현상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명품이 갖고 있는 무형의 가치를 소비하는 것만으로도 큰돈을 지불하려는 인사는 널렸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정서를 깔고 있는 우리네는 명품은 아니더라도 최소 제값은 따져봐야 직성이 풀린다.국가를 명품에 견준다면 미국, 캐나다, 유럽 등의 나라를 꼽을 수 있겠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자 나라이자 최강국이다. 세계 질서를 주도한다. 애플과 구글, 스포츠, 영화 등 '굴뚝 유무'를 떠나 made in U.S.A가 유명하다. 정치도 잘 돌아간다.유럽 유수의 나라들도 돈 빼고는 미국에 버금간다. 골프, 축구, 미술, 영화, 박물관 등 '세계 4대 메이저'란 명함은 다 갖고 있다. 오죽하면 일개 작가(셰익스피어)와 한 나라(인도)를 바꾸지 않겠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자부심인지 허세인지는 모르겠으나 '언덕에 비빌 소조차 없는 나라'는 허세도 부럽다.하지만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중국을 명품으로 보진 않는다. 어쩌다 졸부가 된 사람이 흥청망청 돈을 쓰면서 명품으로 치장한다고 품위와 격이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된장녀란 비아냥만 듣게 된다.작금의 대한민국은 어떤가. 정치나 경제나 온 나라가 '명품'과는 거리가 멀다. 개인 소득수준이 조금 나아졌다고 명품 나라가 된 것인 양 착각하고 있다. 경제는 시장경제 좌표가 모호해졌고 신뢰도 잃어가고 있다. 기업은 투자를 하지 않는다. 청년 일자리는 더욱 줄고 있다.정치는 제값 못하고 '편 가르기'에만 바쁘다. 막 끝난 국정감사는 맹탕이었다. 야당은 '자기 정치' 하느라 귀중한 '야당의 시간'을 허비했다. 국회 권력을 거머쥔 쪽은 장관, 정부 인사 등 제 식구 쉴드 쳐주기에 바빴다. 형식만 민주주의이지 대화와 타협, 소수 의견 존중이란 민주주의 명제는 온데간데없다. 협치를 기대하는 것이 사치로만 느껴진다.부동산세 등 각종 세금은 천정부지로 오른다. 짝퉁 내놓고 명품 값을 지불하라는데 '세금 한탄 시조'가 유행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미국, 유럽처럼 떡하니 내세울 수 있는 명품 국가라면 '백골징포'(白骨徵布·죽은 사람에게 매기는 세금)인들 아깝겠는가. 행정과 정치 권력을 장악한 여당은 분에 넘치는 힘을 사치하고 야당은 '여당 견제, 비전 제시'는커녕 허구한 날 재탕, 맹탕 정책으로 고추장남이 된 지 오래다.믿을 건 국민뿐이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나라가 된장과 고추장으로 범벅이 돼 가는 상황에선 더욱 잘 보고 정치를 소비해야 한다. 국민이 바로 서지 않는다면 된장녀와 고추장남에게 또 국정을 맡길 수밖에 없다. 이들이 수천 곡을 작사·작곡한들 'BTS', 나훈아 같은 명품 가수는 절대로 나오지 않는다.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는데, 1류이자 명품 국민을 기대해 본다.

2020-10-29 15:15:11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

완독률이 좋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