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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훈 경북부 차장

[청라언덕] 정신적인 아픔에 왜 그리 모질까

이달 초 '컬투쇼'를 이끌었던 방송인 정찬우 씨의 근황을 들었다. 지난해 4월 정 씨가 갑자기 방송 활동을 중단했던 이유가 공황장애와 조울증 때문이라는 것이다. 컬투쇼 애청자로서 적잖은 충격이다. 겉모습, 행동과는 다르게 '정신적인 아픔'을 겪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이 소식에 과거 만난 한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누구나 정신적인 아픔을 겪을 수 있다. 뜻밖에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거나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도 정신적인 아픔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다.누구는 짧은 기간에 극복하지만, 누구는 좀처럼 떨쳐내는 게 쉽지 않다. 그럴 때 상담과 치료가 필요한데 사람들은 정신과를 찾는 자체를 극도로 꺼린다. 그래서 병을 키운다고 했다. 상담받거나 치료받는 사람 중 대다수는 가족에게조차 철저히 비밀에 부칠 정도다. '편견의 올가미'에 묶여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15일 보건복지부는 '중증정신질환자 보호·재활 지원을 위한 우선 조치 방안'을 발표했다. 요지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24시간 응급 대응체계를 갖추고, 정신건강복지센터 인력을 대폭 확충한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사회적으로 불거진 '조현병 환자에 의한 강력범죄'에 대해 정부가 내놓은 긴급 처방이라 할 수 있다.이날 발표에서 국내에 조현병, 조울증, 재발성 우울증 등을 앓는 중증정신질환자는 50만 명 내외로 추정되지만,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환자는 17만 명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33만 명은 사실상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환자 개인이나 환자의 가족에게 전적으로 관리를 떠맡겨온 셈이다. 지금까지의 정부 무관심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조현병 범죄가 연일 보도되면서 우리는 조현병 환자들에 대한 다양한 편견을 표출했다.가장 대표적인 것이 '그들은 과연 타인에게 지극히 공격적인가'다. 통계에 따르면 사뭇 다른 결과를 알려준다. 조현병으로 인한 타해보다는 자해나 자살이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강력범죄에서 정신장애가 차지하는 비율은 0.5% 정도로 낮다.반면 세계적으로 조현병 환자의 5~10%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고 보고되고 있다. 경찰청의 2016년 자살 주요동기 자료에서는 정신적 문제가 36.2%로 가장 많았다. 숫자로는 우울증이 많았지만, 환자 수 대비해서는 조현병이 자살 동기 1위였다.강제 입원 등 격리에 대한 목소리도 높았다.일부 언론은 이번 정부 대책에서 강제 입원이 빠진 것이 아쉽다는 보도도 했다. 범죄를 저지른 이를 처벌하는 원칙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강제 입원 도입 등은 부작용을 키울 수 있어 신중해야 하는 것이 맞다.단순히 범죄를 저질러 위험하니 격리를 하겠다는 것인데 이런 시각은 '조현병 환자=잠재적 범죄자'라는 편견을 더욱 확산시킬 수 있다. 또한 힘겹게 양지로 나와 치료받는 환자들까지 음지로 숨어버리게 할 수 있다.정신적인 아픔에 대한 우리네 인식을 곱씹어봤으면 한다. 신체적 아픔에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정신적인 아픔엔 왜 그렇게 모진지. 편견과 무관심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십수 년째 이어지는 'OECD 자살률 1위'라는 오명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2019-05-16 17:24:43

권성훈 디지털뉴스 부장

[청라언덕] 김부겸의 귀책사유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총선(2016년)에서 새빨간 땅 대구에 푸른 깃발(수성갑)을 꽂았다. 문재인 첫 내각의 행정안전부 장관이자 여당 내 대구경북(TK)의 실세로 보수로 얼룩진 대구에 진보의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기세로 임했다.물론 국무위원으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최선을 다했고, 책임감 있게 일했음은 다들 인정한다. 대구에 무슨 큰 행사(신년교례회 등)가 있거나, 사건(대보사우나 화재 등)이 있을 때는 가능하면 내려와서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던 점도 평가한다.김부겸 의원은 장관 시절 나름 최선을 다했고, 내년 총선을 앞두고 대구에 돌아와 환영받기를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 TK 정서는 문재인 정권에 싸늘하고 냉랭하다. 이런 분위기는 TK 실세 김부겸 의원도 감지하고 있을 것이다.김 의원은 이런 싸늘한 여론을 직시해야 한다. 왜 이렇게 됐나. 상당 부분은 본인에게 귀책사유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TK 홀대(예타면제 사업, TK 장관 제로 시대 등)와 TK 패싱(원자력해체연구소 PK로,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 등)으로 지역 여론이 최악으로 치달았을 때, 침묵하거나 방관했기 때문이다.대구경북민들은 집권 여당의 TK 홀대 및 패싱을 김부겸이라는 여권 내 TK 실세가 어느 정도는 막아줄 수 있을 거라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TK 예산 및 인사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못 했다. 심지어 행안부 산하 경찰청 인사(치안총감 1명, 또는 치안정감 8명 자리)에서도 TK 출신은 철저히 내팽개쳐졌다. 지난 2년만 놓고 보자면, 그는 '귀머거리' 또는 '벙어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사실 많은 지역민들은 꼬마 민주당 시절 또는 참여정부, 국민의 정부에서 할 말은 하는 당찬 김부겸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상황에 맞는 합리적인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왜 문재인 정권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나.김부겸의 꿈도 대권이 아니라고 단정 짓지는 못할 것이다. 서슬 퍼런 정권 초기 '안이박김 숙청설'(안희정 날리고, 이재명 죽이고, 박원순 까불면 없애고, 김경수 주저앉히고)을 잘 목도하면서, 김부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할 말 안 하고, 잘 버티고 있으면 기회가 오지 않을까?'김부겸은 현 정권의 내부 사정과 지역 민심에 대해 오판을 했거나,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최악의 스탠스로 내몰렸다. 쉽게 말하면, 집토끼와 산토끼를 둘 다 잃을 처지에 놓여 있는 결과인 셈이다. 집권 여당에서 김부겸을 차기 대권 후보로 내세울 움직임도 전혀 없을 뿐더러 김부겸을 따르는 당내 동료 의원도 찾아보기 힘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역구 민심조차 예전 같지 않게 싸늘하다.김부겸은 내년 총선에서 재선 성공을 위해, 그저 자유한국당을 혐오하는 지지층의 강성 발언에 기대서는 안 된다. 이젠 자신을 지지해 준 중도에 가까운 지역민들의 바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들은 자신의 자랑스러운 여당 소속 지역구 국회의원이 문재인 정부에 대해 비판할 것은 과감하게 직언하고, TK 홀대나 패싱 그리고 부산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 등의 안타까운 상황에 대한 돌파구를 찾아주기를 갈구하고 있다.

2019-05-02 19:12:23

한윤조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묻지마' 이면에 숨은 불평등 상흔

인류학자인 사피어와 그의 제자이자 언어학자인 워프는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규정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사고를 바탕으로 언어를 만들어냈고, 다시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사고를 언어라는 방식을 통해 타인에게 전달한다. 그래서 사피어&워프는 사람들이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표현 방식대로 생각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최근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는 진주에서 발생한 5명을 숨지게 하고 13명을 다치게 한 방화·살해 범죄였다. 언론은 주로 이 사건을 '묻지마 범죄'라고 명명했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표적이 될지 모르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묻지마 범죄'라는 별칭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피하려야 피할 수도 없어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나도 자칫 희생양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공포심이 극대화된다.하지만 '묻지마'라고 했을 때는 그 어감 뒤에 가려 사건의 실체는 흐릿해지고 만다. 어차피 원인을 알 수 없고 예측 불가능하다 보니 굳이 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보다는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말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현병' 등 특정 질병이 유독 불거지면서 이들에 대한 집단 혐오감을 부추기기도 한다. 범죄 대상이 여성이나 어린아이 등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도 많아 사실상 불특정 다수가 아닌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사실도 쉽게 간과된다. 우리가 쉽게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되는 이유다.전문가들은 이런 유형의 범죄가 빈발하는 데 대해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로 인한 사회적 박탈감, 그리고 지나친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 탓이라고 분석한다.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표한 '묻지마 범죄자의 특성 이해 및 대응 방안 연구'에 따르면 가해자들의 범행 동기 중 ▷정신병적 증상 등의 이유로 저지른 경우(26.5%)가 가장 많았고 ▷폭력성을 과시하거나 그냥 저지른 경우(25%) ▷분풀이와 스트레스 해소(23.5%) 등이 뒤를 이었다.결국 많은 경우 정신병적 원인과 사회적 불만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 같은 범죄가 발생하고 있는 일종의 '분노 범죄'인 셈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위협 중 하나가 됐다.'불평등 트라우마'라는 책에서 리처드 윌킨스와 케이트 피켓은 "불평등이 사람들의 감정과 사회의 본질에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이들이 세계정신의학저널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소득 불평등이 심한 나라는 비교적 평등한 나라에 비해 정신질환 비율이 3배까지 높았다. 특히 소득 격차가 큰 사회에서 조현병이 더 흔하다는 연구도 있다. 50개국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소득 상위 1% 인구가 차지하는 소득 비중이 증가할수록 환각, 망상 심리, 사고 조종 망상 등을 경험하는 인구가 증가했다.이번 사건이 벌어지자 많은 언론과 시민들은 조현병에 집중했지만 결국은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만연한 불평등으로 인한 분노를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는 어느 누구나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을 막을수 없다.결국 모두의 안전을 함께 지키는 방법은 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적 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상처받고 아파하는 이들을 떠밀어내 홀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사회가 함께 이들을 껴안을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 최고의 안전망이다.

2019-04-25 16:07:09

장성현 경제부 차장

[청라언덕] 대구 분양 시장 활황, 언제까지 갈까

며칠 전 만난 지역 건설사 임원은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이 건설사는 올 하반기 대구에서 5개 아파트 단지 분양을 앞두고 있다. 분양 시점과 부동산 시장 침체가 맞물릴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대구 부동산 시장이 꺾일 것이라는 건 확실한데, 과연 그 시기가 언제냐는 거죠."요즘 지역 부동산 시장을 짓누르는 건 '불안감'이다. 주택 시장 호황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이 깔려 있다. 견본주택을 가득 메운 방문객들을 보면서도 건설사들이 최대한 분양 일정을 앞당기려 애쓰는 이유다.요즘 대구 부동산 시장은 매수자와 매도자의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4월 셋째 주 대구 아파트 매매 가격은 보합으로 전주와 변동이 없었다. 거래 시장은 얼어붙었다. 지난달 대구 아파트 거래량은 1천82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천454건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다. 주택 시장 호황의 유통기한에 대해서는 시각이 엇갈린다. 긍정론을 설파하는 이들은 적어도 올해는 매매 시장이 버틸 것으로 본다. 공급과잉으로 보기엔 아직 여유가 있다는 게 이유다. 올해 대구의 입주 예정 물량은 1만3천여 가구로 평년 수준과 다르지 않다. 신규 공급 물량 역시 1만5천~1만6천 가구로 감내할 수준이라는 것이다.서비스 업종 위주인 대구는 제조업 침체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고, 수성구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대구 집값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있다는 이유도 든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의 부동산 시장 규제가 다소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섞여 있다.그러나 부정적인 신호도 끊임없이 감지된다. 우선 거래량이 줄었다. 지난달 대구의 주택 매매 거래량은 2천39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천444건)과 비교해 30.5% 감소했다. 집값 하락에 대한 우려와 정부 규제가 맞물리면서 수요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선 탓이다.집값이 너무 올랐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달 대구의 아파트 중위 매매가격은 2억6천738만원으로 1년 전보다 5.5% 상승했다. 특히 중구(3억6천만원)는 16.1% 급등했고, 수성구(3억9천750만원)도 전년 동기 대비 11.9% 올랐다. 일부에서는 주택 가격 약세와 분양 시장 호황이 이어지다가 5, 6월쯤 한계에 부닥칠 것으로 전망한다.부동산 투자에 대한 불안감은 기존 주택 매매 시장을 억누르는 요인이 된다. 과거에는 새 아파트가 분양하면 주변의 기존 아파트도 가격이 오르는 추세를 보였다. 그러나 시장 침체와 함께 기존 주택 가격은 제자리를 맴돌 가능성이 높다. 땅값과 노무비 상승으로 신규 분양가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고려하면 기존 주택을 처분하고 새 아파트로 이사가려는 이들은 더욱 부담을 느끼게 된다.시장 침체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시장이 조정기로 접어들면 정말 집이 필요한 실수요자에겐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건설사들도 신규 분양 아파트의 입지와 분양가 등 분양성을 더욱 신중하게 검토하게 돼 전반적인 상품성도 높아진다. 견본주택 공개 일정조차 하루 전에 공개하는 공급자 위주의 분양 행태도 사라지게 된다.대구 주택 시장의 '나홀로 호황'은 머잖아 막을 내릴 것이다. 중요한 건 어떻게 '연착륙 시키느냐'다. 정부의 선제 조치와 투자자들의 혜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2019-04-18 17:36:50

이창환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권력 구조, 개편해야 한다

최근 사석에서 여권 인사를 만났다. 오랜 당 생활 덕분에 여권 내부 기류에 밝았다. "정권을 뺏기면 (감옥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 소신껏 일을 해서 정권 재창출을 하면 다행이고 못하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니냐?" 적폐 청산이 가져올 후폭풍에 적잖은 부담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정권을 뺏기면 또 다른 적폐로 몰릴 것이란 우려가 강했다.여권은 정권 재창출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교육 정책까지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구체적 예산 확보 방안 없이 올해 2학기부터 고교 3년생을 대상으로 무상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내년 선거를 겨냥한 지지층 확대라는 해석이 강하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투기 논란과 부실한 장관 후보자 검증에 대한 청와대와 여권의 해명이 국민의 눈높이와 동떨어진 이유도 정권 재창출 프레임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다.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의 맹공에 밀리면 정치 일정에 차질을 빚는다는 조급함이 결기 묻은 반박에 드러난다. 어떻게 해서든 정권 재창출로 적폐로 몰리는 상황만은 피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인다.반대로 한국당이 정권을 가져와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현 정권 인사는 대거 내몰리고 정권 입맛에 맞는 인사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앞선 정권의 정책은 싫든 좋든 문패를 바꿔 달게 되고 정권 재창출에 사활을 거는 상황이 반복된다. 적폐 청산과 정치 보복이 재연될 공산이 크다.이런 극단적 정치에 언제까지 국민들은 마음을 졸여야 하나? 대한민국은 대통령 중심 국가다.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전부'를 가지거나, 아무것도 없는 '전무'인 승자 독식 구조다.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적폐로 내몰리는 비정치적이고, 대결적인 정치 문화가 일상화되고 있다.이런 정치 문화에서는 대구경북과 광주전남은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환호와 분노를 동시에 분출하는 영원한 상극 관계로 지내야 한다. 윈윈은 절대 나올 수 없다.대통령이 모든 권력의 정점에 서는 권력 구조를 바꿔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대통령이 나와도 현 권력 구조에서는 국민 통합은 요원하고 반목과 갈등이 분출한다. 대통령의 인기가 높을 때는 그나마 국정이 운영되지만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여야는 정쟁에 시간을 다 소비한다. 여야 간 악다구니로 국회의 제 기능은 사실상 마비된다.이런 국회에 실질적인 권한은 막강하다. 대통령의 핵심 정책도 국회가 거부하면 안 되고, 국무총리도 국회가 동의하지 않으면 임명할 수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정부 조직 개편안의 국회 처리가 지연되면서 취임 한 달 동안 국무회의조차 열지 못했다.대통령의 권한을 줄이고 국회가 권한만큼 책임을 가져야 한다. 국회의 책임 정치를 높이지 않고 현행 정치시스템이 지속되면 극단의 정치를 종식시킬 수 없다.대런 애스모글루 MIT 경제학과 교수와 제임스 로빈슨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저서에서 한 나라가 어떤 정치제도와 경제제도를 채택하는지에 따라 번영할 수도, 퇴보할 수도 있다고 했다. 헌법경제학 창시자로 1986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뷰캐넌(1919~2013)은 정치 실패도, 경제 실패도 근본 원인은 헌법의 실패에 있다고 강조했다. 현 헌법상 권력 구조를 바꿔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

2019-04-11 16:57:42

임상준 경북부 차장

[청라언덕] 반바지와 오보에

프랑스의 전쟁 영웅 잔 다르크가 화형된 까닭은 '마녀'란 누명이 씌워져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는 게 통설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마녀'라는 죄명 못지않게 중요한 범법 사유가 하나 더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여자인 잔 다르크가 남장을 한 불경죄다. 작금의 잣대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나 당시에는 여성의 남장은 큰 죄악에 속했다. 그녀는 전장에서 늘 활동하기 편한 남성용 재킷과 반바지 차림 갑옷을 입었다. 당시만 해도 여성이 다리를 보인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드러낸다는 의미가 강했다.결국 콩피에뉴 전투(1430년)에서 영국군에게 붙잡힌 그녀는 마녀로 몰려 종교재판에 회부됐다. 이후 수감생활 중에도 지급된 여성용 드레스를 끝끝내 거부하고 반바지를 고수했다. 꼬투리 잡기에 안달이 난 재판관들에게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그녀의 진짜 죄명은 남성복 반바지 착용이었다면 과장일까.지난달 북한 리용호 외무상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 북측 대표단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한 호텔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한 것과 관련, 사진 한 장이 화제가 됐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 회견인 터라 한 외신기자가 상의는 넥타이를 맨 정장, 하의는 미처 옷을 다 챙겨 입지 못해 반바지 차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미 하노이 회담 결렬에 따른 북한의 조급함이 사진 한 장에 고스란히 담겼다.11일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외교·안보 핵심 인사들이 잇따라 미국을 방문, 북미 협상 교착 타개를 위한 사전 조율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하노이 결렬' 이후 북한은 단계적 접근, 미국은 일괄타결식 해결을 내세우며 강경하게 대립하고 있어 꼬인 실타래가 쉽게 풀릴지는 의문이다.급할수록 돌아가라는 격언이 떠오르는 대목이다.조급함은 오히려 악수로 이어진다는 점은 이미 한미 방위비 협상 등에서 경험했 듯 경제적 손실로 돌아올 수 있다. 안달 난 쪽이 항상 더 많은 걸 내어준다는 건 연애든 외교든 진리다. 느긋하면서도 대화의 주도권을 한국이 가져올 수 있는 부드러운 협상안을 개발해야 한다. 운전석, 조수석 등 운전대에 집착하지 말고 자가용 밖으로 뛰쳐나오는 새 패러다임을 짤 필요가 있다.세계 3대 앙상블인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단원들이 매번 투표로 악장을 뽑아 공연을 이끈다. 튜닝은 관현악기인 오보에(프랑스어로 높은 음을 내는 나무라는 뜻)에 맞춘다. 오보에는 빠를 때는 중세 귀족풍의 분위기를 보이지만, 보편적으로 마음을 가라앉게 하고, 때로는 구슬픈 음색을 자아내기도 한다. 한때 중세 유럽 때는 오보에의 고운 음색이 신성함과 부딪힌다(영혼까지 빼앗긴다)는 이유로 연주가 금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천상의 소리 이면에는 너무 튀어 자칫 앙상블을 망치는 악마로 간주되기도 한다.1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때로는 귀족풍으로 당당하게, 일부 현안에선 부드러우면서도 상대의 마음과 영혼까지 가져올 수 있는 조율(튜닝)이 되길 기대한다. 그렇지 않고 빠른 결과물을 얻기 위해 조급함을 가진다면 한미 회담이란 앙상블을 그르칠 수 있다. 다소 초조하더라도 우리의 속내까지 다 드러내는 반바지 차림이어서는 곤란하다. 반바지 입을 때는 아직 한참이나 더 남았다.

2019-04-04 19:05:33

이상준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TK-PK '공항 빅딜'은 없다

'대구 간 文대통령, 대구공항 이전 살필 것…TK'PK에 신공항 다 지어주나?'(조선일보), '대구공항 이전, 잘 해결되게 살필 것…文대통령, TK-PK 신공항 다 허용하나'(동아일보)….지난 24일 대구공항 이전 문제 해결을 약속한 대통령 발언에 대해 수도권 언론이 뽑아낸 기사 제목이다.기사 제목이 암시하듯 영남권 신공항을 바라보는 수도권의 시각은 TK(대구경북)-PK(부산경남) 간 '공항 나눠 먹기'다. 정부가 대구경북 통합신공항(TK), 가덕도 신공항(PK)을 모두 지어주면 천문학적 예산 낭비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그러면서 과거와 달리 TK와 PK 자치단체장들이 대구경북 통합신공항과 가덕도 신공항을 '빅딜'하고, 청와대가 이를 승인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까지 서슴지 않는다.수도권의 이 같은 시각은 단연코 영남권 신공항 무지(無知)에서 나온 것이다.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영남권 5개 시도는 신공항 입지 선정을 놓고 부산 강서구 가덕도와 경남 밀양(대구경북)으로 갈라져 10년 동안 갈등을 빚었다.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에서야 영남권 5개 시도지사가 기존 김해공항 확장에 합의하고, 대구공항은 군공항 이전 특별법에 따라 기부 대 양여 방식으로 통합이전하는 것으로 결정돼 기나긴 갈등에 종지부를 찍었다.수도권이 분명히 인지해야 하는 사실은 대구경북 통합신공항과 가덕도 신공항의 성격이 100% 다르다는 점이다.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은 군공항 이전 특별법에 따라 군공항이 옮겨가면서 민간공항까지 통합이전하는 개념이다. K2 부지를 파는 비용으로 공항을 이전하는 기부 대 양여 방식으로 여느 국가 재정 사업과 완전히 다르다. 이에 반해 가덕도 신공항은 2016년 당시 영남권 5개 시도지사의 합의를 파기하고 천문학적 국가 재정 투입을 요구하는 사업이다.2016년 용역 당시 가덕도 신공항 사업비는 활주로 한 본짜리에만 10조원 안팎을 투입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이 원하는 두 본짜리 사업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국가 예산을 투입해야 할지 모른다. 절차상으로도 대구경북 통합신공항과 가덕도 신공항을 비교할 수 없다.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 사업은 이미 3년 가까이 이어져 왔다. 지난해 3월 이전 후보지 선정 이후 1년 넘게 표류하고 있다곤 하지만 최종 후보지 선정의 걸림돌로 작용했던 대구시-국방부 간 이전사업비 갈등이 절충점을 찾으면서 사업 추진에 가속도가 붙었다.반면 가덕도 신공항은 '허구'에 불과하다. 김해공항 재검증을 시사한 문재인 대통령조차 5개 시도 합의를 전제로 내걸었다. 부울경이 가덕도 신공항을 제 아무리 요구해도 대구경북의 합의 없이는 절대 바로 지을 수 없다는 의미다.설령 정부가 김해공항 확장을 폐기하고 영남권 신공항 입지를 새로 결정한다고 해도 입지 신청에서부터 용역 과정과 최종 입지 선정까지 도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대구경북 통합신공항-가덕도 신공항 빅딜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경제적으로도, 절차적으로도 불가능한 가덕도 신공항과 군공항 이전 특별법에 따라 이미 법적 절차를 밟고 있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을 빅딜한다는 건 그야말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2019-03-28 17:10:14

최두성 정치부 차장

[청라언덕] 다시 읽게 된 취임사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저는 오늘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해 첫걸음을 내딛습니다.…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다시 읽게 된 건 13일 날아든 부산발(發) '여권의 동남권 관문공항 적극 지원 약속' 소식 때문이다.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등 지도부는 이날 부산을 찾아 "수도권 일극 체제를 양극체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고, 남북 평화시대에 인천공항과 역할을 분담할 수 있는 동남권 관문공항이 필요하므로 부산·울산·경남에서 힘을 모아 과감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비공개 협의회에서는 동남권 관문공항을 의제로 꺼내며 김해공항 확장안의 국무총리실 이관 재검토 지원 등의 약속도 있었다고 한다.부산시는 보도자료를 통해 "민주당 지도부가 '부울경 검증단의 결과가 발표되면, 김해 신공항을 관문공항으로 결정한 국토부보다 총리실을 주관으로 재검토해야 하며, 후속 조치 등의 속도감 있는 추진을 위해 당 차원에서 적극 지원할 것'이라 밝혔다"며 총리실 검증 이후까지 민주당의 지원 사실을 부각했다.국토부가 김해 신공항 건설 계획을 스스로 번복하기 어려울 것이니 총리실이 이를 맡아 정책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고 민주당은 가덕도 신공항이 건설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게 요지다. '총리실 검증 논의'로 동남권 신공항 논란에 불을 지핀 문 대통령의 발언이 있은 지 꼭 한 달 만에 민주당이 후속 조치를 내놓은 것은 4월 재보선과 내년 총선 때 부산경남(PK)에서 압승하기 위한 계산된 카드로 보인다.PK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역감정 타파를 위해 정치 인생을 건 곳이자 문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그런데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사상 처음으로 PK 광역단체장을 석권했던 민주당의 지지율이 최근 자유한국당에 역전당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PK에서 밀리면 내년 총선이나 2022년 대선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된다는 게 민주당 생각이니 대형 국책 결정을 뒤집어서라도 지지를 받겠다는 심산인 셈이다.대통령과 여당의 가덕도 신공항 프로세스는 정국의 시계를 '갈등의 시대'로 되돌려 놓을 만하다. 5개 시도의 합의로 외국 전문업체의 타당성 검토를 거쳐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 난 국책 사업을 뒤집어서라도 '잇속'을 챙기겠다는 발상은 '갈등' '분열'을 불러올 것이 뻔하다.대구공항 이전 작업은 지지부진하다. 아직 부지 확정도 못 했다. 이럴 때 나온 대통령여당의 가덕도 힘 싣기는 대구경북(TK)을 '패싱', '홀대'하다 못해 아예 지도에서 오려내겠다는 것을 공고히 하는 것과 다름없다. 또한 지지 세력만 챙기겠다는 분열의 정치를 천명한 것이기도 하다.정략적인 TK-PK '갈라치기'는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는 약속 또한 어기는 행보다.지난 8일 단행한 개각은 '지역 편중' '코드 인사' 'TK 배제'가 키워드였다. 내년 총선 출마자 땜질용이라는 비판도 있다."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다"는 탕평 인사 원칙 역시 취임사의 미사여구(美辭麗句)였는지.

2019-03-14 17:27:47

권성훈 디지털국 차장('야수와 미녀TV' 앵커)

[청라언덕]국민·참여 정부 때도 없던 TK 홀대

문재인 정권의 TK 홀대는 특별하다. 국민(김대중 정권)·참여(노무현 정권) 정부 때도 유례가 없던 차별을 무차별적으로 가하고 있다. '가혹하다'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다. 예산뿐 아니라 인사에서 초토화 전략을 쓰고 있는 듯하다.국민의 정부 때는 울진이 고향인 김중권 비서실장을 기용하고, 국무위원(장관)에도 인구에 비례해 지역 출신을 배려했다. 또 흐지부지됐지만 '밀라노 프로젝트'를 섬유도시 대구에 선사하기도 했다. 참여 정부 때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낸 김병준에게 청와대 정책실장이라는 중책을 맡기고,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해 이재용 환경부 장관, 이강철 청와대 수석(일명 왕수석)을 통해 대구경북의 바람을 전달했다. 또 이들을 통해 TK의 필요한 예산도 배정하고, 악화한 민심을 달래려는 노력도 했다.문재인 정권은 어떤가. 2017년 정권 초창기부터 살펴봐도, 뭐 해준 것은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홀대의 흔적은 흥건하다. 예산, 인사 곳곳에 큰 상처만 안기고, 상처가 난 곳에 소금까지 뿌리고 있다.올해 국비 예산만 해도, 타 지역은 모두 늘어난 데 비해 TK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지난달 발표된 예타 면제사업만 해도 TK를 모두 합해 1조7천억원을 배정했다. 도백(김경수 지사)이 구속된 경남만 해도 4조7천억원의 선물을 안겨줬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지난달 25일 매일신문 자체 방송인 야수와 미녀TV 속 '토크 20분'에 출연해, 대놓고 현 정부의 예타 면제사업 선정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섭섭함을 토로했다.TK의 가장 큰 바람인 통합신공항 이전과 구미 취수원 이전 문제도 국방부와 환경부의 비협조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도대체 해당 부처는 대구경북민의 강력한 바람을 알고나 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소 닭 보듯' 한다.인사는 더 말해 무엇하랴. 혈압이 뻗쳐 쓰러질 정도다. 상주 출신으로 경북고를 졸업한 TK 출신 국무위원인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대구 수성갑 국회의원)이 재임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경찰 최고위 간부는 거의 없었다. 정권 초창기에 경찰 내 치안총감(경찰청장)과 치안정감 8명 중에 TK 출신은 단 1명도 없었다가, 지난해 7월 인사에서 겨우 1명(경북 청송 출신 이상정 경찰대학장)이 탄생했다.'TK 출신 장관 0명 시대 될 듯'이라는 기사를 보고는, 서글픈 마음이 들 정도다. 시도 때도 없이 '지역균형발전'을 부르짖으면서, 이럴 수는 없다. TK 출신 유일한 국무위원인 김부겸 장관마저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내각에서 빠지면, 대구경북을 챙겨줄 인사는 아예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청와대 내 주요 인사(3실장 9수석 체제), 국정원과 검찰·경찰·국세청·감사원 등 주요 권력 기관에도 'TK의 그림자'조차 찾아보기 어렵다고 할 정도로 주요 인사에서 TK 출신을 철저히 '왕따'시키고 있다.문재인 정권은 보수의 심장 TK에 대한 홀대를 멈춰야 한다. 그래야 "북한에 퍼주는 돈보다 TK에 주는 예산을 더 아까워한다"는 대구경북민의 비아냥 섞인 푸념을 멈출 수 있다. 이틀 전 TK의 지지를 등에 업고, 큰 표 차이로 자유한국당(제1야당) 당권을 쥔 황교안 대표도 'TK 홀대'를 저지하는데,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2019-02-28 18:39:23

한윤조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아사히글라스와 검찰

'아사히이김', '연대로힘생김'을 들어본 적 있는가? 난데없는 문자 해고 통보를 받고 3년 8개월을 싸워 온 AGC화인테크노한국주식회사(이하 아사히글라스) 해고자들은 생계유지를 위해서 SNS 등을 통해 김을 팔고 후원금을 모아 간신히 투쟁을 이어왔다. 그게 아사히이'김'이다.이들이 드디어 큰 고비였던 검찰 '기소'를 얻어내며 하나의 '이김'을 맞았다. 검찰은 지난 15일 사건을 맡은 지 1년 5개월 만에 원청업체인 아사히글라스와 인력을 공급하던 하청업체, 그리고 두 회사 사장을 '파견근로자 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해고자들이 길바닥에서 한겨울 추위를 넘긴 것이 네 번이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약자의 편에서 불법을 처벌해야 할 위치에 선 검찰은 수수방관한 책임을 미루기에 급급했다. 왜 이렇게까지 기소를 미루는 것인지 수소문해봐도 "답하기 힘들다" "말조차 꺼내지 마라"고만 했다.당초 대구고용노동청 구미지청은 해고자들의 고발에 따라 위법 사항을 꼼꼼히 조사한 뒤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해고자 전원을 직접 고용할 것과 과태료 17억8천만원을 지급할 것을 결정한 것이 2017년 8월의 일이다.하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3개월 만에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후 해고자들이 항소하고 지난해 5월 대구고검이 재수사 명령을 내리자 이번에는 지난해 수사를 완료하고도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채 시간을 끌었다. 결국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를 통해 '기소 의견'을 받아들고서야 9개월 만에 겨우 기소했다. 아사히글라스 측 법률 대리인은 '법률 지존'이라 불리는 '김앤장'이었다.차헌호 금속노조 구미지부 아사히글라스 지회장은 "당시 근로조사관은 5천 페이지에 달하는 서류를 검찰로 넘겼다. 여기에는 100쪽이 넘는 분량의 조사관이 직접 쓴 내용도 함께 포함돼 있었다"고 했다. 그만큼 회사 측의 불법 증거가 차고도 넘쳤다는 해고자 측 주장이다.검찰이 시간을 끄는 동안 해고 노동자들은 피가 말랐다. 3년 8개월 동안 생업에 나서지 못하고 투쟁해 온 이들의 삶은 처참히 무너졌다. 해고자 178명 중 대다수가 새로운 밥벌이를 찾아 떠나고 이제 23명만이 남아 투쟁 중이다.이들의 죄(?)는 노조를 결성한 것이었다.차 지회장은 "노조 결성 후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아사히글라스 측에서 우리 하청업체 직원들에게만 '내일은 하루 쉬라'고 한 뒤 쉬는 날 문자로 해고를 통보했다. 회사로 달려갔지만 아사히글라스 앞에는 100명에 달하는 용역업체 직원들이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었다"고 했다. 아직도 23명은 회사 안에 그들의 짐이 그대로 남아 있다.검찰은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는 국가의 명을 받은 이들이다.하지만 현실에서의 검찰은 힘 있는 자, 돈 있는 자의 편에 서는 경우가 다수다. 툭하면 검찰을 둘러싼 비리가 터지고, 국민으로부터 뿌리 깊은 불신을 받는 이유다.이번 사안 역시 검찰이 이렇게까지 시간을 끈 이유에 대해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국민은 말로만 외치는 '검찰 개혁'이 아니라 치우침 없이 냉엄한 판단을 내리는 검찰을 원한다. 판단을 내리기 힘들 때는 '과연 누구를 위해 검찰이 존재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부터 출발해보라.

2019-02-21 15:50:28

장성현 경제부 차장

[청라언덕] 30년 뒤 대구 도심의 모습은?

지난 주말 대구 동구의 한 견본주택 앞에 긴 행렬이 늘어섰다. 부정청약 등으로 계약이 취소된 잔여 가구 추첨에 몰린 인파였다. 70여 가구 모집 추첨에 참여한 이들만 1천여 명에 달했다. 이날 풍경은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규제에도 '나 홀로 활황'을 이어가는 대구의 청약 시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올해 대구의 청약시장은 재개발·재건축단지에 집중돼 있다. 연말까지 분양 예정인 3만744가구 가운데 70%인 2만956가구가 도심 재개발·재건축단지다.아파트 시장이 '거래 절벽' 수준인데도 청약 시장이 열기를 띠는 건 '부동산 불패'에 대한 믿음 덕분이다. 당장 집값이 주춤하더라도 청약 당첨만 되면 수천만원을 벌 수 있는 게 현실이다. 너무 올라버린 집값에 청약 당첨 외에는 내 집 마련이 어렵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깔려 있다.청약 시장 규제가 느슨한 점도 이유다. 건설사들은 대출 제한에 따른 자금 부담을 줄인다며 1차 계약금을 1천만원으로 고정하고, 중도금 무이자 혜택을 준다. 1차 중도금 납부 기한도 계약 8개월 뒤로 미뤘다. 비조정지역의 전매 제한 기간이 6개월이라는 점을 노린 것이다. 단기 투자자들이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있으니 분양 시장은 여전히 돌아간다.더욱 우려스러운 건 과열된 재개발·재건축 시장이다. 대구에 있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사업 대상지는 모두 232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사업 시행 계획 인가까지 받은 곳도 96곳이나 된다.건설업계도 앞다퉈 재개발·재건축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도심에 아파트를 지을 땅이 부족하고, 청약 시장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 건설업계는 사업성이 있는 재개발재건축 지역이 30~40곳 정도 될 것으로 본다.30년 뒤의 대구를 상상해봤다. 낡은 고층 아파트 숲이 삐죽삐죽 튀어나온 도심의 모습. 노후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홍콩이 연상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30년 뒤면 초고령화사회에 인구 절벽이 현실화된 이후다.정부는 도심이 온통 아파트로 채워지는 상황을 막고자 도심재생사업을 추진해왔다. 2010년부터 진행한 도시활력증진개발사업으로 대구에서만 29곳이 지정됐고, 19곳의 사업이 완료됐다. 이어 문재인 정부 들어 시작된 도시재생 뉴딜사업으로 대구시내 10곳에서 주거 환경 개선 및 공동체 복원 사업이 진행 중이다.그러나 도시정비구역으로 지정된 경우 도시재생사업 대상에서 제외된다. 길게는 십수년씩 지연되는 재개발·재건축사업을 기다리며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해야 하는 셈이다.방법이 없진 않다. 주민 50% 이상의 동의를 받아 정비구역에서 해제되면 재생사업 대상지가 될 수 있다. 추진위가 설립되기 전이라면 주민 30%의 동의만 있어도 해제 신청을 할 수 있다.반면 서울은 주민 동의가 없어도 정비구역 해제가 가능하다. '역사·문화적으로 보존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민간위원회를 거쳐 정비구역에서 해제할 수 있도록 시 조례로 규정했다.주민들 간 갈등이 첨예한 도시정비사업에 지자체가 개입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돼 있는 셈이다. 개발사업에 이리저리 해체되는 대구 도심을 살릴 방법은 여전히 남아 있다. 첨예한 이해관계의 충돌 속에서도 행정의 일관성을 지켜낼 대구시의 의지가 필요하다.

2019-02-14 18:20:51

이창환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 극단의 시대

대한민국 정치는 극단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적폐 청산을 내걸고 전 정권 관련자들을 대거 단죄했다. 아무리 전 정권의 실세라도 잘못이 있으면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와 공동체 발전을 위해 열정을 쏟았음에도 단지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적폐로 내몰리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는 정치 보복일 뿐이다.역사는 되풀이된다. 정권이 교체되면 현 정권에서 일했던 인사들도 또 다른 적폐로 몰리고 정치 보복이 재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한국 정치사에서 정치 보복은 사실상 금기어였다. 보수 정권 아래에서도 후계자들이 정치 보복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 없이는 정권을 계승하기 힘들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나를 밟고 지나가라"는 언질이 없었으면 노태우 전 대통령의 6·29 선언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후보 시절 정치 보복은 절대 없다는 약속을 수차례 했다. 그만큼 전임 권력자에게 후임 권력자의 정치 보복은 아킬레스건이었다.문 정부의 적폐 청산은 정치 보복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조선시대 사화를 21세기에 부활시킨 셈이다. 정권 교체에 따른 정치 보복이 일상적인 정치 행위가 될 개연성이 매우 높아졌다. 한국 정치가 극단의 시대로 접어든 배경이다.극단의 시대에 가장 위협받는 것이 민주주의다. 정권을 뺏기면 정치 보복을 당할 게 뻔한 상황에서 쉽사리 정권을 내놓지 않으려 한다. 여당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정권 재창출에 사활을 걸고, 야당은 정권 교체를 위해 온갖 방법들을 동원한다.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릴 불·탈법이 자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김경수 경남지사가 구속된 뒤 보인 여당의 반응은 놀랍다. 집권 여당의 중진들이 벌떼처럼 나서서 사법부를 공격하고 적폐로 몰아가는 행태는 정말 걱정된다.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를 무력화시킨다. 김 지사 구속에 대한 여당의 대응에서 극단의 시대의 한 면을 읽을 수 있다. 민주화를 이끈 세력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무너뜨리는 지독한 모순에 봉착한 형국이다.여권 인사의 오버는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책임이 대통령에게 향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이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사건이 20년 장기 집권 계획에 생채기를 낼 수 있다는 우려도 한몫했을 것이다. 정권 교체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여권 중진들의 목에 핏대를 세우게 했다.사화와 환국의 극심한 후유증을 겪은 조선은 탕평의 시대로 전환한다. 사화와 환국의 '제로섬 권력투쟁'이 결국은 집권당과 실권당에게 득보다는 해악을 더 끼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집권당도 언젠가는 실권으로 멸문지화를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품게 됐고, 실권당은 권력을 빼앗겼을 때 미치는 화가 너무 크다는 것을 공유한 후에야 탕평의 시대로 바뀌었다.극단의 시대에 접어든 한국 정치는 큰 계기가 없는 한 정치 보복의 일상화를 감내해야 할 것이다. 극단의 시대가 오래 갈수록 한국 정치는 어두운 터널을 장기간 지나야 한다. 누가, 무엇으로 극단의 시대를 청산할 것인가?

2019-02-07 17:36:25

임상준 경북부 차장

[청라언덕] HI SK, OK SK

지난해 일본 출장 때 만난 와세다 대학의 한 지한파 여교수는 말했다."소니는 삼성을 절대 이길 수 없다."잠깐의 자부심. 이어지는 그의 '경제 논리'는 되레 핀잔으로 돌아왔다. 여교수의 도발(?)은 대충 이렇다.소니는 평생 고용을 보장하거나 노력하고 있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노동의 경직성'은 최대 약점이다. 한국 대기업처럼 사람을 자르는 일에는 능숙하지 않다. '노동 유연성'이 강한 삼성에 뒤질 수밖에 없다.뒷말은 더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젊은 나이에 일자리를 잃고 불가역적으로 자영 업계로 쏟아지는 한국의 사오정(40, 50대 퇴직). 콧구멍 만한 치킨집이라도 차려 잘되면 좋으련만, 열 중 여덟이 망한다. 기업에서 과장님, 부장님으로 불리던 아버지, 어머니 때보다 더 큰 사회적 비용이 수반된다. 반면 일본 기업들은 평생 고용으로 국가의 짐을 더는 데 힘을 보탠다. 세계 1위보다 착한 2등이 낫다는 자부심이 기업의 생존 이유다.논리적 비약이 있지만 수긍이 간다.대구경북이 대기업인 'SK하이닉스'를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다.이철우 경북도지사, 권영진 대구시장, 장세용 구미시장의 하이닉스 유치 삼각편대가 연일 한강을 넘나들며 '플리즈 하이닉스'를 부르짖는다. 경쟁사인 GS칼텍스에까지 '구미는 SK를 사랑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을 정도다.하지만 SK는 이런 '열망'을 외면하고 있다. '경제 논리'만 들이대며 수도권을 기웃거린다.시대적 그늘이야 있었겠지만 경제 논리만 앞세웠다면 오늘날 세계를 호령하는 SK는 없었을지 모른다. SK그룹이 과거 정권의 덕을 봤다는 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 정·관계에 떠도는 단골 메뉴다. 현 SK이노베이션은 1980년, 당시 재계 1위인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한 게 초석이 됐다. 새우가 고래를 삼킨 격이었으니 호사가들은 정권 실세의 보이지 않는 손을 지목하며 입방아를 떨었다.국가주도성장 이면에는 늘 국민의 희생과 헌신이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다녔다. 그런데도 재벌은 '경제 논리'란 병풍 뒤에 숨어서 책임 있는 행동을 좀체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만능 열쇠(경제 논리)를 무기로 수도권 진입의 문까지 열어젖힌다.물론 대구경북의 경쟁력이 딱히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경북은 통일 한반도 시대를 맞아 대륙을 잇는 환동해 물류의 허브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구미 5산단에서 코닿을 거리(직선거리 14㎞)에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활주로도 깔린다. 대학의 도시 대구와 경산에는 반도체 인력이 차고 넘친다. 지방 경쟁력을 위해 결단하는 SK의 모습에서 오는 착한 기업 이미지는 '구미행의 덤'이다.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는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를 세뇌시키는 돼지가 등장한다. 이 구호 앞에선 어떠한 논쟁도 무의미하다. 한국 대기업들도 신규 투자가 있을 때면 "수도권은 좋고, 지방은 나쁘다"는 논리를 절대 선인 양 밀어붙인다. 하지만 국토균형발전을 뛰어넘는 명분은 없다. 이제야 말로 SK가 착한 경제 논리의 첫 페이지를 써내려 가야 할 때다. 대구경북이 'HI' 한다면 SK가 'OK' 했으면 좋겠다.

2019-01-31 19:12:41

이상준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누가 신공항 갈등을 부추기는가

'영남권 신공항 갈등', '새누리당 텃밭 표심 양분', '국론 분열 부채질 신공항'…. 지난 2016년 6월 정부의 신공항 입지 발표를 앞두고 수도권 언론들이 쏟아낸 '헤드라인'이다.당시 수도권 언론과 정치권은 신공항 유치 경쟁을 영남권 전체의 갈등과 분열인 양 호도했다. 밀양(대구경북)-가덕도(부산) 입지 경쟁을 대구경북과 부산의 갈등 구도로 몰아가는 데 급급했다.당시 정부는 결국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결정했다. 다만 '김해공항 확장-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대구공항 통합이전)'을 대안으로 제시했고, 영남권 5개 광역자치단체장이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수용했다.영남권 신공항을 지역 갈등 구도로 몰아간 수도권 언론들은 김해공항 확장안에 대해선 '용비어천가'를 불렀다. 김해공항 확장을 최선의 방안으로 치켜세웠고, '콜럼버스의 달걀'이라는 둥 김해공항 확장의 장점을 부각하는데 집중했다.돌이켜보면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는 수도권 중심 사고가 빚어낸 파국의 연속이었다. 수도권 언론은 앞서 2011년 4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신공항 백지화 발표 역시 국익과 나라를 위한 주장으로 미화했다.이명박 전 대통령의 발표 내용은 '공약 버리고 국익 선택했다…MB 고뇌의 결심' 등으로 포장한 반면 신공항 건설을 염원하는 영남권은 지역 이기주의에 매달리는 집단으로 깎아내렸다.안타까운 현실은 연이은 백지화 과정에서 불거진 수도권 언론의 '갈등' 프레임이 또 먹히고 있다는 점이다.오거돈 부산시장이 지난해 선거 기간은 물론 당선 이후에도 "가덕도 신공항을 재추진하겠다"고 재차 입장을 밝히면서, 수도권 언론들은 "자칫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을 둘러싸고 영남 지역 5개 지자체들이 지난 10년간 빚어 온 극심한 마찰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갈등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이즈음에서 대구경북과 부산이 더 이상 해묵은 갈등관계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지난 민선 7기 출범과 함께 대구시와 경북도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설 사업에 따른 민간·군사공항 통합 이전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또 현재 부산의 가덕도 신공항 추진은 대구경북뿐 아니라 부산·울산·경남의 이해관계 역시 첨예하게 얽혀 있다는 점에서 밀양과 가덕도의 입지 경쟁 양상으로 치달았던 지난 갈등과는 출발부터 다르다.특히 경남은 소음 피해를 이유로 김해공항 확장안에 반대했지만, 그렇다고 가덕 신공항 재추진에 가타부타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경남 내부적으로도 지리산권과 남부해안권, 중부권과 동부권 등 지역에 따라 이해관계가 달라 섣불리 의견을 내세웠다간 심각한 반발에 부딪힐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대구경북은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이달 16일 제안한 '선(先)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후(後) 가덕도 신공항 논의'라는 전략·전술을 고민해볼 가치가 충분하다.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대로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 사업을 먼저 확정 지은 뒤 부산의 가덕도 신공항 문제 등을 차례대로 풀어나가자는 의미다.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대구경북과 부산이 더 이상 적(敵)으로 만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의 최우선 당면 과제는 대구경북과 부산이 '지방공항 무용론'의 수도권 중심 사고부터 타파하는 것이다.

2019-01-24 16:22:11

최두성 정치부 차장

[청라언덕] 예천군의회 사태의 교훈

지방의원을 지낸 한 인사에게 물었다. 되돌아본 의원 시절, 가장 후회스러운 게 뭐냐고.그는 "딱히 자랑할 만한 것을 해놓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데도 탈 없이 의원 생활을 마무리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고 했다.세비를 축냈다는 데 대한 참회를 하면서 최근 물의를 빚은 예천군의회 사태에서와 같은 지탄을 피해간 것에 대한 안도감을 에두른 것이었다.그 역시 문제가 되고 있는 '외유성' 해외연수(공무 국외여행)의 경험자였다. 그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해외연수를 떠나지만 준비 부족과 현지 사정 등으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여행사를 통하다 보니 여행 스케줄에 연수 일정을 끼워 넣는 방식이어서 수박 겉핥기식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그럼에도 당시에는 그런 연수가 의정 활동의 보상으로 인식돼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의원'이라는 직함이 부지불식간에 특권 의식을 잉태했고 느슨한 감시가 특권 의식의 실행을 부추겼다"고 고백했다.군의원의 가이드 폭행으로 촉발된 예천군의회의 해외연수 파문이 공분(公憤)을 사면서 지방의원 해외연수 무용론이 확산하고 있다.베트남으로 떠났던 경북시군의회 의장들은 여론의 뭇매에 서둘러 귀국했고, 전국 곳곳에서 부적절한 해외연수 사례도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여러 의회가 계획했던 해외연수를 취소하고, 급기야 임기 내에는 해외연수를 가지 않겠다는 의원들의 선언도 나온다.그간의 지방의원 해외연수가 단단히 잘못 운용됐음을 의회가 자인하는 것 같아 어이가 없다. 또한 거기에 예산이 허투루 쓰였으니 세금 낸 입장에서 화도 난다.물난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해외연수를 떠났다가 이를 질타하는 국민을 한 의원이 들쥐의 일종인 '레밍'에 비유해 국민적 공분을 샀던 일이 불과 2년도 안 됐는데.이럴 때 "우리는 해외로 연수를 간다"며 떳떳하게 밝히는 사례라도 있다면 부적절한 사례가 일부의 '일탈'이라 여기기라도 하겠건만 한 곳도 없다는 것이 지방의회의 실정 같아 서글프기까지 하다.그나마 의회의 자정 노력이 펼쳐지고 있고 정부도 ▷셀프 심사 차단 ▷부당 지출 환수 방안 마련 ▷정보공개 확대 ▷페널티 적용 등의 내용을 담은 '지방의회의원 공무 국외여행 규칙' 개선 방안을 내놓겠다고 하니 또다시 속는 셈치고 지켜보는 수밖에.문제는 이번 사태로 폐지론까지 들먹여지고 있는 지방의회의 앞날이다.문재인 정부 들어 국가 사무의 지방 이양 확대와 지방재정 확충 등 지방분권을 강화하고 있고 지방분권, 지방자치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될수록 지방의회 역할은 막중해질 수밖에 없다. 거시적 시각이 아니더라도 지방의회는 지방정부가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감시와 지원을 하고, 또 주민의 의사가 지방정책에 제대로 포함될 수 있도록 추동하는 일꾼이다.내 삶과 직결된 지방의회가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의원 개개인의 노력이 있어야겠으나, 우리 또한 전직 의원의 말처럼 감시에 소홀함이 없었는지, 지난 지방선거 때 신중하지 못했던 나의 한 표가 만들어낸 결과물은 아닌지 되짚어보자."군의원을 잘못 뽑은 우리의 잘못"이라며 속죄의 108배를 올린 예천군민들의 절규는 이번 사태가 우리에게 던진 진정한 교훈이 아닐까.

2019-01-17 17:09:22

권성훈 문화부 차장

[청라언덕]양두구육과 지록위마

시중에는 문재인 정부를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정권이라 비꼬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 지인들과 술자리를 하다 보면 이 말로는 뭔가 성에 안 찬다고 불평하는 이들이 많다.지난 연말 자유한국당 새 원내 사령탑이 된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해 마지막 날 열린 '청(靑) 민간인 사찰 의혹 규명' 국회 운영위원회 자리에서 현 정부를 향해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험한(?) 사자성어를 동원해, 일침을 날렸다. 지역의 보수적인 인사들은 이 사자성어로 인한 스트레스 해소 점수를 80점 정도 줬다. '양의 머리를 문에 걸어 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이 말은 현 정부의 이중성(겉은 선한데, 속은 거짓과 속임수로 꽉 참)을 드러내는 데에는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했다.'양두구육'의 유래를 살피자면,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 영공(靈公) 때의 남장 여인 스토리다. 영공이 궁 안에서 남장 여인을 만들어 즐긴다는 소문이 퍼져, 나라 도처에 유행처럼 남장 여인이 넘쳐났다. 이 소문을 듣고 영공은 왕명으로 남장 여인을 금지했는데, 영이 서지 않았다. 지혜로운 충신인 안자는 "폐하(陛下)께서 궁중 안에 남장 여인을 허용하시면서, 궁 밖에서는 금하시는 것은 마치 양의 머리를 문에 걸어 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파는 것과 같다"고 조언했다.'지록위마'(指鹿爲馬) 정권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라는 뜻이다. 사전적으로는 사실(事實)이 아닌 것을 사실(事實)로 만들어 강압으로 인정하게 만드는 의미다.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제기한 '청와대 직원의 업무추진비 사용내역', 김태우 전 청와대 감찰반원이 폭로한 '청와대 각종 비리의혹 폭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발설한 '적자국채 발행 의혹 및 KT&G 사장 교체 부당개입' 등의 사태를 지켜볼 때, 현 정권과 여당(더불어민주당)은 '지록위마'라고 미리 해석·판단을 다 내린 후에 메신저(내부 고발자)를 무차별 공격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지록위마'는 사기(史記)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나오는 얘기다. 진나라 시황제가 죽자, 환관 조고(趙高)는 태자 부소(扶蘇)를 죽이고 어린 호해(胡亥)를 황제로 삼았다. 조고는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폐하(陛下), 말(馬)을 바치오니 거두어 주시오소서." 이후 조고는 '말'이라고 긍정한 이들은 살려두고, '사슴'이라고 부정한 이들은 누명을 씌워 다 죽였다. 그 후 궁중에는 조고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권력은 양날의 칼이다. 전 정권을 적폐로 몰아세워 휘둘렀던 서슬 퍼런 칼이 도로 현 정부를 향하고 있는 형국이다. 차라리 '견두구육'(개의 머리를 올려 놓고, 개고기를 판다)이라고 하면, 그나마 '양두구육'이라는 조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정부에 불리한 사건이나 사태가 발생했을 때, 메신저나 내부 고발자를 공격하기보다 실체 파악이 우선이라는 자세를 가질 때 '지록위마'라는 비꼼을 피해갈 수 있다. 적어도 도덕적이고 깨끗한 정부를 지향한다면, '내로남불'이라는 단어조차 입 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진실하게 국민 앞에 다가서야 한다.

2019-01-10 12:20:11

정욱진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새해엔 희망의 언어들만 가득했으면…

2019년 새해 아침이 밝았다. 매년 이맘때는 주변 사람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며 희망을 빌어주는 시기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낸 대구경북에도 똑같이 빌어주고 싶다. '한 해 마무리 잘했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새해 1월 1일 영천 고경면 국립영천호국원서 합동 참배를 했다. 두 사람이 새해 벽두부터 손을 맞잡은 것은 올해를 대구경북 상생협력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특히 시장과 도지사가 새해 첫날 나라를 위해 희생한 호국 영령들에게 함께 참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이날 참배가 끝나고 시장·도지사는 물론 양 시·도 고위 공무원들은 영천시내 한 전통시장에서 국밥으로 점심식사를 했다고 한다. 한 참석자에 따르면 한창 국밥을 먹던 이 도지사가 "오전에 참배하면서 호국 영령들께 올해는 반드시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사업이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빌었다"고 했단다.그러자 권 시장도 "요즘은 오로지 대구경북의 상생, 교류, 발전밖엔 생각하지 않는다. 경북이 잘돼야 대구가 잘산다"라고 화답해 웃음꽃을 피웠다고 다른 참석자가 전했다. 이어 권 시장과 이 도지사는 1월 16일 시장·도지사 교환근무 때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이 이전할 경북 군위와 의성을 함께 찾아 이전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기로 약속했다.이렇듯 새해 들어 양 시·도가 차려 놓은 밥상에 기대가 부푼다. 새해 벽두부터 시작한 시장도지사의 합동 참배에 이어 시·도는 국·과장급 인사 교류, 1월 16일 시·도지사 교환근무와 구미문화예술회관에서 대구경북 상생협력 신년음악회를 열 예정이다. 아울러 공동 관광상품 개발 및 공동 관광기금 조성, 상생장터 개설 등 다양한 협력 과제를 1월부터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또 경제산업·문화관광·사회인프라·환경·행정 등 5개 부문에 걸쳐 기존 도입한 35개 과제에다 올해도 13개 과제를 추가해 모두 48개의 상생협력 과제를 추진할 방침이다. 특히 문화관광 분야가 빛날 전망이다. 2021년까지 대구경북 상생협력관광 정책을 추진해 대구경북을 하나의 관광권역으로 발전시킨다는 구상인 것. 오페라, 뮤지컬, 서문야시장 등 찾아보는 대구의 관광 상품에다 안동, 경주, 고령의 전통과 유서 깊은 문화재를 연계하면 인구 550만 명의 메가 관광시티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게 복안이다.대구시 관계자는 "지난 2016년 대구경북은 '중화권 대구경북 방문의 해'를 선정하고 중화권 관광객 20만 명을 포함한 모두 56만 명의 외국 관광객을 유치해 전년 대비 관광객 규모가 43% 성장하는 등 광역 관광지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대구의 현안인 대구경북 통합신공항과 대구 취수원 이전 등은 대구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경북과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 하지 않으면 문제 해결이 힘들다. 일자리를 만드는 일이나 국비 확보를 위한 행정시스템을 갖추는 일 등에서도 협력하면 효과가 배가된다. 앞으로의 시대는 광역행정 및 협업행정이 필수다. 시장·도지사의 새해 상생 행보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황금돼지의 해' 2019년은 돼지의 기운을 받아 대구경북에 희망의 언어들만 가득하길 기대해 본다.

2019-01-03 13:31:21

한윤조 경제부 차장

[청라언덕] '사람을 갈아넣는' 경제는 그만

찰스 다윈의 1859년 '종의 기원'을 시작으로,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모든 생물의 행동은 적자생존과 약육강식 원칙에서 시작한다"고 설파했다. 도킨스에 앞서 '적자생존'이라는 문구를 사용한 이도 있었다. '생물학의 원리'(1864)라는 책을 쓴 허버트 스펜서다. 그는 '적자생존' 이론을 자연과학을 넘어 사회과학, 특히 경제 이론에 접목시켰다.동물의 진화를 설명한 이들의 과학 이론은 경제 논리에도 상당 부분 '이용'됐다. 이들이 원한 바는 아니었을 테지만 '무자비한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적 배경에 생물학적 이론이 자주 동원되는 탓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을 짓밟고 이겨야 하는 것이 당연한 원리고, 최고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하며,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극단적 이기심에 일종의 면죄부마저 제공한다.인간의 편리한 생활을 위해 만들어낸 '돈'은 사람을 배신했다. 급기야는 돈을 위해 사람이 죽는 처연한 풍경이 일상화했다. 올 한 해 읽은 수많은 기사 중 마치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멍하게 만든 표현이 있었다. 바로 '사람을 갈아 넣는'이라는 수식어였다. 저임금과 위험한 노동현장에 사람을 혹사시키는 자본주의의 비정함을 드러내는 적나라한 표현이다.비용을 줄이기 위해 2인 1조의 근무 원칙을 지키지 않고 혼자 근무하다 참변을 당한 비정규직 김용균 씨 사건은 돈의 논리에 사람의 목숨이 희생당한 대표적 사례다. 이 외에도 우리 주변에는 사람을 희생시켜 돈을 버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빨리빨리'를 외치는 국내 음식 배달시장은 피 튀기는 전쟁터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7년 6월까지 음식업 배달원의 산재 사고 사상자 규모는 8천447명에 달하며, 사망자는 164명이다. 이마저도 배달 대행업체와 계약을 맺은 이들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당일 배송'을 앞세운 온라인 배송시장도 '사람을 갈아 넣는' 대표적 업종 중 하나이고, 밤샘 노동이 기본이지만 정당한 대가조차 받지 못하는 게임산업, 기술교육 등을 명목으로 최저임금조차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며 혹사당하기 일쑤인 미용업계, 여전히 '태움'을 강요하면서 살인적인 업무와 열악한 처우를 감당해 내고 있는 간호사 문제 등 경제 전반에 걸쳐 사람을 희생시켜 한 푼이라도 더 벌려는 악한 경쟁 논리가 판을 치고 있다.하지만 이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 인류 문화의 발전을 이끌어온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윤리와 도덕을 지키는 이타적인 협력 행위라는 사실이다. 혼자만 살아남겠다고 무한경쟁만 벌였다면 이미 오래전 인류는 멸망하지 않았을까. 최근 '수축사회'라는 책을 통해 한국의 사회경제 현실을 진단한 홍성국 전 대우증권 사장은 "자크 아탈리 등 석학들이 주장하는 지구촌 차원에서의 공생과 이타적인 삶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수축사회 해결의 유일무이한 방안"이라고 진단했다.며칠 전 본 영화 '더 포스트'에서 워싱턴포스트지의 사주였던 캐서린의 남편은 신문을 두고 '역사의 초고'라고 했다. 2019년에는 제발 역사의 초고인 신문 지면에 더 이상 돈을 위해 '사람을 갈아 넣는' 기사가 쓰여지지 않고 '공존'의 사례가 가득 기록되길 바란다.

2018-12-27 17:41:47

사회부 장성현 차장

[청라언덕] 보일러가 고장났다

보일러가 고장 났다. 엄동설한에 보일러가 고장 나다니 이렇게 난감한 일이 없다. 집 안에는 냉기가 감돌고 수도꼭지에는 찌릿한 찬물이 흘러나왔다. 열두 살이 된 낡은 보일러는 팔순 노인처럼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부랴부랴 수리를 문의했다. 이것저것 고장 난 부품을 교체하는 데에만 수십만원이 든단다. 이참에 새 보일러로 교체하기로 했다.보일러는 기깃값도 비싸지만 설치비도 만만치 않다. 반드시 보일러 관련 면허를 소지한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가스보일러 설치는 반드시 고압가스 자격증과 온수 온돌 자격증 등 관련 자격증을 갖추고, 가스안전공사의 안전교육을 받은 뒤 지방자치단체의 가스시설시공업 허가를 받은 사람이 해야 한다.보일러를 설치하러 온 설비업체 대표는 강릉 펜션 참사 얘기를 꺼냈다. 10대 청소년 3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의 원인으로 보일러 본체와 배기관 사이로 누출된 배기가스가 지목됐기 때문이다. 업체 대표는 "평소보다 신경이 쓰인다"며 배기관 사이의 연결 부위를 바짝 조이고 실리콘으로 꼼꼼하게 마감했다. 가스 배관에는 비눗방울을 발라 가스 누출 여부도 확인했다. 설치가 끝난 보일러 본체에는 시공자와 시공자 등록번호, 시공관리자 이름 등을 적어 단단하게 붙였다.그는 "강릉 펜션에 설치된 보일러는 분명 무자격 업체나 건축주가 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업체 대표의 확신은 단 하루 만에 사실로 확인됐다. 강릉 펜션에 보일러를 설치한 업체는 가스통 판매 자격만 있고, 가스시설시공업에 등록하지 않은 무자격 업체였다. 십수만원을 아끼려 전문 지식도 없는 업체에 시공을 맡긴 게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는 끔찍한 결과로 나타난 셈이다.배기관과 보일러 본체가 어긋나 있던 것 외에도 무자격 업체의 시공 자체가 잘못됐다는 의견도 있다. 강제급배기 방식의 보일러 연통은 끝에 배기구가 있고 주름관으로 된 급기관이 있다. 급기관은 반드시 메인 급배기연통의 위쪽으로 연결돼야 한다. 급기관이 아래로 처지거나 구부러져서도 안 된다. 연통을 통해 결로나 들이친 빗물이 급기관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다.하지만 사진상에서 본 강릉 펜션의 보일러는 급기관이 약간 옆으로 연결돼 있고, 급기관이 아래로 처져 있다. 급기 통로를 통해 보일러 내부로 물기가 들어갈 수 있는 구조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거나 매뉴얼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무자격 업체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설치한 셈이다.문제는 위험하게 설치된 보일러가 대구에 얼마나 있을지 파악조차 어렵다는 점이다. 보일러를 시공해준 업체 대표는 "노후된 단독주택에 설치된 LPG 보일러는 인테리어 업체나 무자격 설비 업체가 보일러를 달아주는 경우가 많다"고 걱정했다. LPG를 연료로 쓰는 대구의 단독주택은 7만2천 가구나 된다.사고가 터지면 누구나 규정 미비를 내세운다. 하지만 이번 사고는 규정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비용을 아끼려는 건축주의 안일한 인식과 연통을 잘못 연결한 무자격 설치업자의 책임이 가장 크다. 일산화탄소 경보기나 안전 규정 강화는 부차적인 문제다.안전은 누군가가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사고 예방의 가장 큰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집에 설치된 보일러 연통을 한두 번 쓱 살펴보기만 해도 끔찍한 사고는 막을 수 있다.

2018-12-20 19:36:56

사회부 차장 이창환

[청라언덕] TK 신당, 명분없다

대구경북(TK) 신당론이 연말 지역 정치권을 술렁이게 하고 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비박계가 자유한국당을 장악할 경우 TK를 중심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앞세운 신당이 만들어진다는 시나리오다. 박 전 대통령이 내년 4월 일부 혐의에 대해 구속 만기로 출소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신당론은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결론적으로 TK 신당론은 박 전 대통령과 지역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TK 신당을 만들어서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탄핵에 수감까지 온갖 수모를 겪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회한과 연민을 TK 신당을 통해서라도 표출하고 싶다는 심정은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렇다고 적전 분열이 불 보듯 뻔한 TK 신당이 해답이 될 수 없다.친박계를 중심으로 한 TK 신당이 만들어지면 누가 참여하겠는가? 한국당 공천에서 탈락한 정치적 낭인들이 모여 박 전 대통령의 치맛자락을 붙잡게 될 것이다. 참신하지도 능력도 없는 공천 탈락자들이 전직 대통령을 소수파의 수장으로 옹립하려는 것은 명분 없는 행위다. 국회의원 몇 명을 보유한다고 박 전 대통령의 명예가 회복되겠는가. 친박계가 자신들의 정치 생명 연장을 위해 박 전 대통령을 이용하려는 얄팍한 정치 술수로밖에 비치지 않는다.시간을 작년으로 돌려보자. 박 전 대통령이 탄핵에 이어 구속 수감되는 과정에서 스스로 희생한 친박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의원직을 사퇴하고 정계를 떠난 친박 국회의원도 없었다. 수장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 제 몸 살기에 바빴던 게 친박계 인사들이었다.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참여 정부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고 친노조차 지리멸렬하자 '폐족'이라며 참담한 반성문을 썼다. 이런 반성문은 고사하고 총선이 다가오고 자신들이 정치적으로 어려움에 빠지자 다시 박 전 대통령에게 기대려고 한다.정치인들이 정당을 만드는 것은 자유다. 그래도 염치는 있어야 한다. 무슨 염치로 박 전 대통령의 옷자락을 다시 잡으려고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그럼에도 TK 신당론은 한국당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원내대표 선거 과정에서 TK 신당론은 친박계 지지를 등에 업은 나경원 신임 원내대표가 승리하는 데 도움이 됐다. 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나 원내대표가 압승한 데는 분당을 우려한 초재선 의원들과 중도파들이 지지한 게 한몫했다.TK 신당론 연기만 피웠을 뿐인데 한국당이 움찔하는 꼴이다. 원내대표 선거에서 TK 신당론의 파급을 확인한 친박계는 내년 2월 전당대회와 다음 총선 과정에서도 연기를 피우려 할 것이다. 하지만 TK 민심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다.TK 신당론은 애초 여권의 정국 운영 전략이다. 정권 지지율이 떨어지고 민심 이반이 가속화되면 '국민 통합'이라는 명분으로 박 전 대통령을 출소시켜 보수 분열을 노린다는 게 여권 인사들의 계산이다. 보수가 분열하면 다음 총선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TK 신당론이 여권의 '꽃놀이패'인 이유다.지금의 TK 신당론은 여권이 박 전 대통령 거취 카드를 만지지도 않았는데 한국당 스스로 제 발이 저린 형국이다. 명분 없는 정치가 당장은 성공한 듯 보이지만 결국 흔적 없이 사라진 사례는 무수히 많다.

2018-12-13 15: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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