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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 디지털국 디지털뉴스부장

[청라언덕] '양념 반 프라이드 반'의 마음으로

전 국민을 경악게 한 잔인한 살인(전 남편) 사건의 피의자 고유정. 뉴스에 나올 때마다, 그 사실에 약간의 상상력만 더해도 정서가 메마르고 피폐해진다. 참혹하고, 비정하고, 살벌하고, 악마 같다는 생각마저 스친다.베트남 아내를 2살 아이 앞에서 무차별 폭행한 남편. 폭행 사유는 황당 그 자체. '맛도 없는 베트남 음식 하지 말라고 했는데 했다', '말귀를 못 알아 먹는다' 등 어이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반성의 기미라곤 찾아볼 수 없다.두 가지 사건뿐 아니라 하루가 멀다하고 신문 또는 방송에 등장하는 사건 사고(고액의 보험금 타려고 가족 계획 살해 등)는 무섭기도 하고, 황당무계하다. 이런 사건을 접할 때마다, 국민 정서도 이를 데 없이 황폐해진다.'이전투구' 정치판도 한 번 돌아보자. 여야의 싸움, 끝이 없다. 오로지 소모적 정쟁만이 계속된다. 문재인 정부 들어 더 심해진 것은 권력 실세나 고위 공직자들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뻔뻔해졌다는 점이다. '야당(자유한국당)의 텃밭'이라는 이유로 특정지역(대구경북)의 핍박·홀대도 심해졌다. 고령의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은 건강이 악화되어도, 여전히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달을 가리키면, 손가락을 쳐다본다'는 말이 떠오른다. 현 집권 세력은 수많은 악재(드루킹, 김태우 전 수사관과 신재민 전 사무관의 폭로, 손혜원의 목포 투기 의혹, 북한 목선 삼척항 입항 사건, 일본과의 외교 마찰 등)가 터질 때마다, 사건의 본질이나 진실에 접근하기보다 메신저(폭로한 장본인)를 공격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현재 진행 중인 '윤석열 정국'(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도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아마도 국회 인사청문회 청문보고서 채택은 불발되고,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의 극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임명을 강행할 태세다. 타협이나 양보는 현 정치권에서 기대하기 힘든가 보다.우리 사회의 끔찍하고 황당한 사건 사고, 정치권의 아수라판 정쟁 등을 보면서 '참 해도 해도 너무한다. 양념 반 프라이드 반의 마인드가 필요한데….' 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스친다.요즘 "아~~~ 절마. 진짜 지밖에 모르네!"(경상도 사투리). 타인은 안중에도 없다는 뜻이다. 마음속에는 자신만이 가득 차 있다. 99% 아니 100% 자신의 감정과 욕심, 악한 이기심만이 가득하다고 하는 편이 맞다. 그런 마음속에 국민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런 마음속에 국익은 언제나 후순위로 밀릴 뿐이다.청와대를 비롯한 현 집권 세력, 그리고 제1 야당도 마찬가지다. 국정 운영과 견제·대안 제시를 위해 '집단 지성'을 이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타협이나 배려, 양해, 양보 등의 단어는 잊은 지 오래다. 이익단체 같은 느낌마저 든다."마음속에 딱 절반, 50%만 자신으로 채우고 살자." 이것이 '양념 반 프라이드 반'의 마음이다. 그래야 가족, 친구, 지인 그리고 타인이 내 속에 비집고 들어와 놀 수 있는 여유를 줄 수 있다. 80% 이상 자신만이 가득 차 있어도, 삶의 넉넉함이 없다. 누가 살짝만 건드려도, 분노 조절 장애를 드러내기 십상이다.대통령부터 50%만 자신(집권 세력과 그 지지층)을 위하고, 50%는 국민과 야당을 생각해주길 바란다.

2019-07-11 14:26:05

한윤조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이해와 배려, 선진국의 품격

외국을 처음 나가 본 것이 대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어학연수라는 명목으로 부모님께 목돈을 받아 8개월간 영국에서 땡땡이를 칠수 있게 된 것이다.굳이 뭔가를 배우려 하지 않아도 낯선 곳에서의 경험은 인생에 상당한 가르침을 남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8개월간의 난생처음 외국살이 속에서 정말 선연한 충격으로 뇌리에 박힌 한 사건이 있다.그중 하나가 파업을 벌이고, 이를 대하는 영국인들의 태도였다.당시 화물운송노동자들이 전국적인 파업을 벌이면서 영국 전체의 물류 기능이 완전히 멈춰 섰다. 대형마트와 슈퍼의 물건은 동이 났고, 주유소 저유고도 바닥을 드러냈다.먼저 놀란 건 화물차 운전사들이 파업을 벌인 이유였다. 이들은 '더 많은 월급과 복지 혜택을 달라'고 파업한 것이 아니라 일자리 쪼개기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를 위해서는 기꺼이 자신의 월급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겠다는 주장이었다.하나라도 더 움켜쥐기 위해 아득바득 다툼을 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그때까지 듣도 보도 못한 정말 '경이로운' 파업 사유였다. 더구나 고액 연봉을 받는 여유 있는 이들이 아니라, 고된 육체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이 펼쳐 보인 파업 '철학'이어서 더욱 충격적으로 와닿았다.파업을 대하는 시민들의 태도 역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홈스테이를 하던 집에는 두 돌 된 아이가 있었는데, 태국 출신의 호스트마더는 "아이에게 줄 우유가 없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반면 영국인인 호스트파더는 "모두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것이니 조금의 불편은 참고 견디고 응원해야 한다"고 다독였다. 주변에 "왜 파업했냐, 불편하다"고 비난을 퍼붓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그때 한창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혈기 넘치는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선진국'이란 단어에 상당한 반감을 가졌다. 경쟁으로만 내모는 정부의 '세계화, 국제화' 구호에 질렸고, 그 끝무렵 벌어진 IMF 사태를 목격하면서 "대체 롤모델로 삼아야 할 선진국이란 무엇인가"는 의문이 깊었던 탓이다.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아, 바로 이런 태도가 선진국이구나"를 체감할 수 있었다. 노동을 대하는 그들의 가치와, 사회 문화 깊숙이 배어 있는 이해와 배려가 느껴졌다.사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분야를 막론하고 파업이 벌어졌을 때 가장 먼저 들려오는 단어는 '시민 불편'이다.다행인 건 지난 20년 세월 동안 우리 시민사회가 상당히 많이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최근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들어가자 언론은 '급식 대란'을 부각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고된 노동을 하고도 9급 공무원 64% 수준의 임금을 받는 이들의 현실도 알렸다.또 '불편이기보단 누군가의 권리를 지켜주는 일이라 생각해달라'며 가정통신문을 보낸 교장 선생님에서부터, '불편해도 괜찮아요'라고 메모지를 써 응원하는 학생들을 보며 새삼 20년 전 문화 충격이 다시 떠올랐다.우린 아직 갈 길이 멀다. 넘어야 할 갈등과 반목의 숙제도 많이 남았다. 다만 이번 사태를 보며 우리 사회가 이해와 배려를 향해 한걸음씩 전진하고 있음을, 더구나 어린 학생들이 보다 넓은 포용력으로 사회문제를 바라보고 있음을 확인한 것으로도 그저 반갑다.

2019-07-03 19:26:24

장성현 경제부 차장

[청라언덕]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25일 대구시와 이래AMS 노사, 한국산업은행, KEB하나은행, DGB대구은행,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발표한 미래형 일자리 상생 협약. 협약식은 1시간 만에 끝났지만 이 자리에 오기까지 과정은 험난했다.이래AMS의 시작은 1984년 대우그룹과 GM이 합작 설립한 대우자동차부품과 대우HMS다. 1989년 두 회사는 합병해 대우기전공업으로 사명을 변경했고,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2000년 한국델파이로 이름이 변경됐다.한국델파이는 2011년 이래CS로 주인이 바뀌었다. 2015년에는 사명을 이래오토모티브시스템으로 변경했다.이래오토모티브는 한국GM의 실적 하락과 함께 경영난에 직면했다. 2014~2017년 직원 연봉을 동결했고, 2015년에는 400여 명을 구조조정했다. 그래도 경영난은 계속됐다.2017년에는 이래오토모티브시스템의 공조사업부를 분할해 이래AMS라는 법인을 신설했다. 하지만 이래AMS의 매출은 2017년 4천820억원에서 지난해 4천606억원으로 떨어졌다. 회사 존폐가 위협받던 지난해 11월, 이래AMS는 크라이슬러와 폭스바겐으로부터 1조4천억원 규모의 부품 납품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1천억원에 이르는 추가 설비 자금과 경영 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이래그룹은 또다시 회사 분할을 시도했다. 이래AMS의 핵심 사업 분야인 구동사업부를 분할한 뒤 지분 매각을 추진한 것. 구동사업부가 생산하는 하프 샤프트(휠을 구동하는 독립 현가장치의 차축)의 경쟁력을 감안하면 독자 생존이 가능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구동사업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껍데기로 전락할 처지였다. 노조는 강하게 반발했다. 이전에 회사 분할과 구조조정을 겪은 터라 물러설 곳이 없었다.이래AMS의 처지는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문 대통령은 "1조원 수주를 한 기업이 설비 투자 비용 때문에 문을 닫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도와줄 방법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벼랑 끝에 몰린 금속노조 이래오토모티브지회 관계자들도 대구시를 찾아가 "일자리를 잃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회사 측과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유보하는 내용의 상생 협약도 맺었다.따지고 보면 놀랄만한 일이다. 금속노조는 민주노총 내 산별노조 중에서도 가장 강성으로 통한다. 이래오토모티브지회는 대구 금속노조 산하 지회 중 가장 규모가 큰 사업장이다.대구시도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은행, 청와대를 문지방이 닳도록 찾아가 읍소했다. 막상 실사를 한 산업은행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3년 연속 적자라 신규 대출이 안 되는데다 이미 부채가 많아 담보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어렵사리 기존 담보 대출을 대환을 통해 청산한 뒤 이래AMS와 모회사인 이래CS, 이래CS의 미국법인까지 묶어서 담보 대출을 하는 유례없는 방식으로 해법을 찾았다. 자금을 마련한 사측은 '원·하청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신규 일자리 창출, 상생펀드 조성을 약속했다.대구 미래형 일자리는 암흑 같은 터널을 노·사·정이 손을 잡고 통과한 성과다. 그 길에는 희생을 감수하며 회사 살리기에 나선 노동자들과 경영 안정화를 위해 땀을 쏟은 사용자, 기업과 일자리 살리기를 위해 땀을 쏟은 대구시, 정부, 금융기관의 의지가 있었다.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격언, 여기에 있다.

2019-06-27 19:59:46

이창환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태극기 신당, 가능성 있나?

태극기 신당이 꿈틀거리고 있다. 태극기 집회를 이끌고 있는 대한애국당과 자유한국당 친박계 탈당 국회의원이 손을 잡고 신당을 창당한다고 밝혔다. 친박계 4선인 홍문종 의원이 한국당을 탈당한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홍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TK(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한국당보다 태극기 신당이 (내년 총선에서) 더 유리하다는 민심이 있다. (이런 민심이) 서울에 북상하면 태극기 신당 공천받는 게 한국당보다 유리하다고 판단할 것이다"며 TK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서는 태극기 신당을 두고 2008년 18대 총선에서 소위 '대박'을 친 친박연대를 떠올리고 있다.2008년 18대 총선 즈음으로 시간을 돌려보자.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의 공천은 친이계가 진두지휘했다. 공천에서 친박계가 대거 탈락하자 국회의원이던 박근혜 전 대통령도 비분강개해 "살아서 돌아오라"며 힘을 실었다. 공천에서 탈락한 친박계 의원들은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친박연대 또는 친박 무소속 이름으로 한나라당 후보와 맞붙었다. TK 민심은 오락가락했다. 한나라당 후보와 탈락 친박 후보 사이에서 어정쩡한 태도였다. 박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친박 후보 지원도, 한나라당 후보를 돕기도 애매모호했다. 선거 기간 달성에 칩거했다.그런 박 전 대통령이 선거일을 16일 앞둔 3월 24일 한마디를 던졌다.매일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그분들은 당을 나가고 싶어서 나간 게 아니라 쫓겨나서 그렇게 한 것이다. 다시 들어와야 한다." 소위 복당 허용 발언이었다. 한마디의 힘은 컸다. 갈팡질팡하던 여론은 급속히 친박 후보로 쏠렸다.대구경북에서 친박연대 후보자 4명(박종근·홍사덕·조원진·김일윤)이 당선됐고 전국적으로 6명이 배지를 달았다. 친박 무소속 후보도 5명이 등원했다. 더 놀라운 건 정당 득표율이었다. 친박연대는 13.2%를 얻어 한나라당(37.5%), 민주당(25.2%)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득표율을 얻었다. 비례대표 54석 중 8석을 차지했다. 선거를 앞두고 급조된 정당이었고, 일부 후보들은 '짝퉁 친박' 논란을 일으켰지만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뒀다. 사실상 한나라당 차기 대권 후보였던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자는 민심이 만들어낸 성적표였다.지금은 어떤가? 태극기 세력이 중심이 된 대한애국당이 지난 지방선거에서 거둔 성적표는 초라했다. 대구경북에서 얻은 정당 득표율이 1%를 조금 넘었다. 보수 분열의 비난을 감수하고 태극기 신당이 친박연대 이상 성과를 내려면 박 전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을 돕는 게 아니라 자칫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친박연대만큼 성공을 거둔다고 가정하자. 십수 명의 국회의원들이 박 전 대통령을 청와대에 다시 모실 수 있나? 그렇지 않으면 명예 회복이라도 가능한가? 정치인이 당을 만들고 선거에서 후보자를 내는 건 자유다. 다만 무엇을 위한 신당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2019-06-20 15:43:24

임상준 경북부 차장

[청라언덕] 경북도지사 호화 관사 논란의 아쉬움

'지금 집에 아버지 계셔'란 말은 금세 까치발을 부른다. '왁자지껄'했던 대청마루도 숨죽인다. 까까머리 친구들은 하나같이 총총걸음이다. '삐걱' 마룻귀틀 엇나는 소리가 날라치면 퀭한 눈만 껌뻑거린다. 당시 잘 놀다가도 과하다 싶을 때 내뱉는 '아버지 계신다'는 말 한마디는 '군기 반장'이었다. 개구쟁이들마저 긴장하고, 바르게 하고, 겸손해지게 하는 '마술 램프'와도 같았다.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고 그 또래의 아이가 있는데도 언제나 그 '아버지 계셔'는 묵직하게 다가온다.이철우 경북도지사가 민선 7기 출범 1주년을 맞아 관사 반납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청 뒤편 한옥 스타일의 현 관사가 '호화 관사' 논란을 불렀기 때문이다. 도백(道伯) 관사는 바로 옆 잡아센터(옛 대외통상교류관)와 외형상 한 건물로 보인다.도지사 관사의 호화 논란은 억울한 측면이 있다. 지난해만 해도 관사는 도청신도시 내 전용면적 85㎡ 아파트가 유력했다. 전임 도지사는 안동시에 있는 대형 아파트를 관사로 썼지만 이 도지사는 거리가 멀고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대신 마땅한 사용처가 없어 입방아에 오르던 대외통상교류관의 게스트 하우스(방 2칸, 거실)를 관사로 결정, 입주했다. 그러면서 같은 건물로 보이는 관사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고자 대외통상교류관 연회장을 '잡아센터'로 바꿨다. 지번도 떼냈다. 조례에 따라 지원하는 가스·전기·수도요금 등 주거비 일체도 자비로 부담하고 있다.결론적으로 호화 관사 논란이 불거지는 데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벗었고 참외밭에선 신발까지 벗어 던졌는데도 케케묵은 관사 이슈가 소모적 논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이 도지사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자정까지 업무를 보기로 유명하다. 국회의원 시절부터 '일철우'라는 별명이 붙었다.오전 6시면 관사를 나서 도청 주위 도보 순찰로 일을 시작한다. 이른 출근길에 마주하는 직원을 격려하고 야근하는 부서를 깜짝 방문해 치킨도 쏜다. 그래서 도청은 항상 깨어 있고 긴장해 있다. 도청 안에 관사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도지사가 외부에서 출퇴근한다면 여러 불리한 점이 생길 수 있다. 출퇴근 차량 유류비를 차치하고서도 길에서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다. 영국 워릭대 이안 워커 교수는 평균 1분의 경제적 가치를 약 9펜스(180원)라고 계산한 바 있다.긴급 상황 발생 시 청내 관사에선 걸어서 3분이면 상황실도 닿을 수 있다. 도백이 도청에 상주함으로써 오는 '공무원 긴장감'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경쟁력이다.중국 진(秦)나라 시황제는 아방궁을 지었다. 주왕은 주지육림(酒池肉林·사치스러운 주연)을 즐겼다. 진나라는 반백 년도 못 가 망했고 주왕은 은나라의 마지막 임금이 됐다. 하지만 도청 안의 관사는 아방궁도 주지육림도 아니다. 도청의 한옥 풍 건축 양식과 어울리게 지었을 뿐이다. 관사 면적도 제한적이다.안이든 밖이든 어느 관사가 도정에 도움이 될지는 면밀히 따져볼 일이다. 보이는 것만으로 호화 관사 딱지를 붙여 논쟁만 벌여서는 안 될 것이다. 청사 내 도백 관사에서 어린 시절 '아버지 계시는 집'이 떠오르는 이유가 뭘까.

2019-06-13 19:59:07

이상준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그들만의 김해신공항 백지화

문재인 정부는 출범 100일을 맞은 2017년 8월 1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신설했다.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모토로, 별도 가입 없이 SNS 계정으로 로그인해 누구나 청원을 제기할 수 있다.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은 청원의 경우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들의 답변을 받을 수 있다.올해 2월 25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김해신공항 반대 100만 국민청원운동'이라는 청원 글이 올랐다. 부산·울산·경남(부울경) 3개 자치단체의 김해신공항 백지화 요구에 편승한 부울경 시민단체가 추진한 청원운동이다.그러나 3월 27일까지 한 달간 청원 기간에 참여한 최종 인원은 고작 4천905명. 100만 명 목표치의 0.5%에 불과한 수치로, 청와대 답변을 들을 수 있는 20만 명 동의에도 완전히 실패했다.김해신공항은 기존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국책 프로젝트로, 2016년 6월 영남권 5개 시도가 영남권 신공항의 대안으로 합의했다. 지난 10여 년간 밀양(대구경북·경남·울산) 대 가덕도(부산)로 갈라진 영남권 신공항 갈등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차선책이었다.이후 국토교통부가 2026년 완공을 목표로 기본계획 수립에 들어간 김해신공항 건설 사업은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난항을 맞았다.대통령과 여권을 등에 업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부산·울산·경남 3개 자치단체장이 김해신공항 백지화를 끈질기게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대통령과 여권이 다가오는 총선을 겨냥해 부울경 지역 '표끌이' 수단으로 1단계 김해신공항 백지화→2단계 가덕도 신공항 건설이라는 시나리오를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짙어지고 있다.이 대목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건 '김해신공항 백지화'가 그들만의 정치 논리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대통령과 여권은 몰라도 결코 국민 여론을 등에 업을 순 없다는 의미다. 이것이 바로 김해신공항 반대 청원운동이 철저하게 실패한 이유다.대구시에 따르면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기치로 내건 동남권 관문공항 추진위원회가 최근 여론조사기관을 통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동남권 관문공항 건설을 위해 김해공항 확장안 폐기 등 국가정책을 바꾸는 데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잘하는 일'이라고 답한 비중은 33%에 불과했다. 절반에 달하는 50% 이상이 '잘못된 일'이라고 응답했다.경남과 울산 지역민을 대상으로 김해공항 확장과 가덕도 신공항 건설 가운데 한쪽을 선택하는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에서는 '김해공항 확장'(52%)이 '가덕도 신공항 건설'(41.8%)을 앞질렀다.여기에 김해공항과 가덕도를 지역구로 둔 노기태 부산 강서구청장조차 최근 기자간담회를 통해 "되지도 않을, 돼서는 안 될 일(가덕도 신공항)로 돈과 시간, 국력을 소모하는 걸 중단하고 김해신공항 건설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비판했다.무엇보다 김해신공항 백지화 요구에는 '대구경북'이 없다. 김해신공항 건설은 영남권 신공항을 둘러싼 오랜 갈등 끝에 해당 영남권 5개 시도가 합의한 국책사업이다. 대구경북은 5개 시도 합의 정신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김해신공항 백지화에 절대 동의할 수 없고, 동의해서도 안 된다.

2019-06-06 17:27:26

박상전 서울지사 정경부 차장

[청라언덕] 황교안과 각설이

2007년 11월쯤이다.당시 한나라당 비례대표였던 서상기 의원은 기자와 차를 마시다 갑자기 걸려 온 전화 한 통화에 황급히 외투를 걸쳤다. 2008년 총선에 나서려는 지역구 행사에 참석해야 한다며 양해를 구했다.기자가 알기엔 행사 주최 측의 공식 초청은 없었다. '초청도 받지 못한 행사인데 왜 굳이 가려느냐'고 묻자 숨도 쉬지 않고 대답했다."어데요. 각설이가 구걸하러 가는데 주인 허락 맡고 다닙니까. 무조건 가서 주인 기분 맞춰 주고 와야죠."'정치인=각설이' '주인=지역 주민' '구걸=득표 행위'로 표현한 명쾌한 비유였다.각설이는 통상 '있어 보이는 집'을 찾아 주인장의 기분을 '염탐'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어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타령을 목이 터져라 불러 젖힌다. 그렇게 주인의 흥을 한껏 돋운 후에야 겨우 찬밥 한 덩이를 얻을 수 있었다.정치인을 각설이로 보는 시선이라면, 득표 활동은 장소와 상황에 맞춰 최대한 실례되지 않게 유권자들의 기분을 맞추면서 진행해야 하는 법이다.그런 면에서 보면 경북 은해사를 찾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끝까지 '합장'을 하지 않은 점은 충분히 비판 대상이 될 법하다. 남의 집에 찾아간 각설이가 노래도 안 하고 주인의 흥을 돋워주기는커녕 오히려 불쾌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배고프니 밥 달라'는 일방적인 떼쓰기만 한 셈이 됐다.논란이 확산되자 황 대표는 뒤늦게 "다른 종교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사과드린다"며 진화에 나섰다.하지만 불교계의 반응은 여전히 미온적이다. 특히 사과를 하면서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이라고 가정해 아직도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지 못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합장 논란 발생 지점이 TK였다는 것은 우려감을 더욱 증폭시킨다. TK는 한국당의 전통적 지지층이자 불심 또한 강한 지역이다. 외연 확장을 꾀하는 한국당과 황 대표는 이번 '합장 논란'으로 자칫 집토끼까지 놓칠 위기에 처했다.곽대훈 대구시당 위원장은 지난 22일 기자와 만나 "로마법을 제대로 인지하거나 지키지 않을 거면서 왜 로마(사찰)로 갔는지 모르겠다"며 "차라리 (합장 논란이 벌어진) 영천 은해사를 방문하지 않았던 것이 나을 뻔했다"고 지역 분위기를 전했다.합장 논란은 발생한 지 20여 일이 지나 핵심 이슈로는 더 이상 부상하지 않는 분위기지만, 언제든 재발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문제다.황 대표의 '사과' 표명이 있기 전 불교계와 친분이 두터운 주호영 의원은 "(사찰 예절을) 모르고서 안 했다면 몰라도 알고서도 하지 않았다면 문제"라며 "본인이 끝까지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려고 한다면 주변에서 아무리 좋은 말로 설득하려 해도 소용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다양한 종교가 성행하고 세대와 지역으로 다분화된 대한민국의 야당 수장이자 나아가 대통령까지 되려고 한다면, 국민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기꺼이 민초들의 눈높이에도 맞출 줄 알아야 한다.

2019-05-31 06:30:00

최두성 정치부 차장

[청라언덕] '막말' 쏟아내는 정치인

한동안 미세먼지가 숨을 쉬기 어렵게 하더니 최근엔 정치인들의 험한 말이 귀를 따갑게 한다. '좌파 독재' '도둑놈들' '사이코패스' '한센병 환자' '달창' '독재자의 후예'…. 내뱉는 말마다 가시가 돋쳤고 되받아치는 말은 더욱 자극적이다. 아무리 말로 먹고사는 정치인이라지만, 서민 시름을 내팽개치고 '막말 배틀'로 국회를 공회전시키며 매연을 뿜고 있으니 정치가 민생난 오염원이요, 반목과 혐오를 부추기는 진앙이라 불릴 만하다.말(언어)이 지닌 힘과 중요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강조돼 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이야기하는 동물'이라 일컬었고, 하이데거는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철학적 함의가 있지만, 말이 사람의 됨됨이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과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수많은 사자성어와 속담, 격언이 입(말)조심을 당부하고, 세 치 혀를 잘못 놀렸다 혹독한 대가를 치른 이야기도 수두룩하다.다섯 왕조, 열 한 명의 군주를 모신 중국 재상 풍도(馮道)는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고,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고 했고, '설망어검'(舌芒於劍·혀는 칼보다 날카롭다)은 말조심을 각인시키고자 자주 인용되는 사자성어다.그럼에도 정치인의 극언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막말이 끊이지 않는 것은 '득'(得)이 '실'(失)보다 크다고 여기는 인식 탓이다. 무리한 비유, 정제되지 않은 단어, 상대를 자극하는 말이 일으킬 파장을 알면서도 그것으로 주목받으니 관종(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서는 남는 장사다. 여기에 환호하는 지지자도 있으니 지지층 결집 면에서도 나쁠 게 없다.막말이 반복되는 건 잠시 숙이면 그뿐이라는 학습 효과도 기인한다. 분란을 일으켜놓고 '사과' 한마디로 퉁 치려는 경우를 수없이 봐 오지 않았는가.저급한 막말이 지지층에게 갈증을 풀어주는 '사이다'가 될지 모르나 마셔보지 않았던가, 탄산음료가 주는 청량함은 그때뿐인 것을. 과다 음용 시에는 이가 썩는 등의 부작용이 있다는 것도 알지 않나.막말로 홍역을 치른 일본의 집권 여당 자민당은 최근 '실언 방지 매뉴얼'을 만들어 소속 의원이나 예비 후보들에게 돌렸다고 한다. 7월에 있을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부적절한 발언으로 표를 까먹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데 여기에는 약자에 관한 표현이나 지지자들 사이에서 쓰는 특정 표현을 유의하라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링컨-더글라스' 일화는 국회 문을 닫고 막말 경연을 일삼는 우리 정치권에 교훈을 준다.미국의 링컨 전 대통령은 1858년 상원의원 선거 토론회에서 정적인 스티븐 더글라스가 자신을 이중인격자라고 비난하면서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라고 하자 "제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 이 얼굴(못생긴)을 하고 있겠냐"고 응수했다.이후 링컨은 미국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 됐지만 더글라스는 그의 생애를 넘어 그의 후손대까지, 160여 년 넘게 막말의 대명사로 회자되고 있다.국가 번영과 국민 안녕을 위해서라면 정치인은 싸워야 한다. 무기는 논리와 설득이 돼야 한다. 잘못 놀린 혀로 대대손손 소환되는 우를 범해서야 되겠는가.

2019-05-23 16:49:49

전창훈 경북부 차장

[청라언덕] 정신적인 아픔에 왜 그리 모질까

이달 초 '컬투쇼'를 이끌었던 방송인 정찬우 씨의 근황을 들었다. 지난해 4월 정 씨가 갑자기 방송 활동을 중단했던 이유가 공황장애와 조울증 때문이라는 것이다. 컬투쇼 애청자로서 적잖은 충격이다. 겉모습, 행동과는 다르게 '정신적인 아픔'을 겪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이 소식에 과거 만난 한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누구나 정신적인 아픔을 겪을 수 있다. 뜻밖에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거나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도 정신적인 아픔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다.누구는 짧은 기간에 극복하지만, 누구는 좀처럼 떨쳐내는 게 쉽지 않다. 그럴 때 상담과 치료가 필요한데 사람들은 정신과를 찾는 자체를 극도로 꺼린다. 그래서 병을 키운다고 했다. 상담받거나 치료받는 사람 중 대다수는 가족에게조차 철저히 비밀에 부칠 정도다. '편견의 올가미'에 묶여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15일 보건복지부는 '중증정신질환자 보호·재활 지원을 위한 우선 조치 방안'을 발표했다. 요지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24시간 응급 대응체계를 갖추고, 정신건강복지센터 인력을 대폭 확충한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사회적으로 불거진 '조현병 환자에 의한 강력범죄'에 대해 정부가 내놓은 긴급 처방이라 할 수 있다.이날 발표에서 국내에 조현병, 조울증, 재발성 우울증 등을 앓는 중증정신질환자는 50만 명 내외로 추정되지만,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환자는 17만 명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33만 명은 사실상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환자 개인이나 환자의 가족에게 전적으로 관리를 떠맡겨온 셈이다. 지금까지의 정부 무관심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조현병 범죄가 연일 보도되면서 우리는 조현병 환자들에 대한 다양한 편견을 표출했다.가장 대표적인 것이 '그들은 과연 타인에게 지극히 공격적인가'다. 통계에 따르면 사뭇 다른 결과를 알려준다. 조현병으로 인한 타해보다는 자해나 자살이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강력범죄에서 정신장애가 차지하는 비율은 0.5% 정도로 낮다.반면 세계적으로 조현병 환자의 5~10%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고 보고되고 있다. 경찰청의 2016년 자살 주요동기 자료에서는 정신적 문제가 36.2%로 가장 많았다. 숫자로는 우울증이 많았지만, 환자 수 대비해서는 조현병이 자살 동기 1위였다.강제 입원 등 격리에 대한 목소리도 높았다.일부 언론은 이번 정부 대책에서 강제 입원이 빠진 것이 아쉽다는 보도도 했다. 범죄를 저지른 이를 처벌하는 원칙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강제 입원 도입 등은 부작용을 키울 수 있어 신중해야 하는 것이 맞다.단순히 범죄를 저질러 위험하니 격리를 하겠다는 것인데 이런 시각은 '조현병 환자=잠재적 범죄자'라는 편견을 더욱 확산시킬 수 있다. 또한 힘겹게 양지로 나와 치료받는 환자들까지 음지로 숨어버리게 할 수 있다.정신적인 아픔에 대한 우리네 인식을 곱씹어봤으면 한다. 신체적 아픔에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정신적인 아픔엔 왜 그렇게 모진지. 편견과 무관심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십수 년째 이어지는 'OECD 자살률 1위'라는 오명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2019-05-16 17:24:43

권성훈 디지털뉴스 부장

[청라언덕] 김부겸의 귀책사유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총선(2016년)에서 새빨간 땅 대구에 푸른 깃발(수성갑)을 꽂았다. 문재인 첫 내각의 행정안전부 장관이자 여당 내 대구경북(TK)의 실세로 보수로 얼룩진 대구에 진보의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기세로 임했다.물론 국무위원으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최선을 다했고, 책임감 있게 일했음은 다들 인정한다. 대구에 무슨 큰 행사(신년교례회 등)가 있거나, 사건(대보사우나 화재 등)이 있을 때는 가능하면 내려와서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던 점도 평가한다.김부겸 의원은 장관 시절 나름 최선을 다했고, 내년 총선을 앞두고 대구에 돌아와 환영받기를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 TK 정서는 문재인 정권에 싸늘하고 냉랭하다. 이런 분위기는 TK 실세 김부겸 의원도 감지하고 있을 것이다.김 의원은 이런 싸늘한 여론을 직시해야 한다. 왜 이렇게 됐나. 상당 부분은 본인에게 귀책사유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TK 홀대(예타면제 사업, TK 장관 제로 시대 등)와 TK 패싱(원자력해체연구소 PK로,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 등)으로 지역 여론이 최악으로 치달았을 때, 침묵하거나 방관했기 때문이다.대구경북민들은 집권 여당의 TK 홀대 및 패싱을 김부겸이라는 여권 내 TK 실세가 어느 정도는 막아줄 수 있을 거라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TK 예산 및 인사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못 했다. 심지어 행안부 산하 경찰청 인사(치안총감 1명, 또는 치안정감 8명 자리)에서도 TK 출신은 철저히 내팽개쳐졌다. 지난 2년만 놓고 보자면, 그는 '귀머거리' 또는 '벙어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사실 많은 지역민들은 꼬마 민주당 시절 또는 참여정부, 국민의 정부에서 할 말은 하는 당찬 김부겸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상황에 맞는 합리적인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왜 문재인 정권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나.김부겸의 꿈도 대권이 아니라고 단정 짓지는 못할 것이다. 서슬 퍼런 정권 초기 '안이박김 숙청설'(안희정 날리고, 이재명 죽이고, 박원순 까불면 없애고, 김경수 주저앉히고)을 잘 목도하면서, 김부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할 말 안 하고, 잘 버티고 있으면 기회가 오지 않을까?'김부겸은 현 정권의 내부 사정과 지역 민심에 대해 오판을 했거나,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최악의 스탠스로 내몰렸다. 쉽게 말하면, 집토끼와 산토끼를 둘 다 잃을 처지에 놓여 있는 결과인 셈이다. 집권 여당에서 김부겸을 차기 대권 후보로 내세울 움직임도 전혀 없을 뿐더러 김부겸을 따르는 당내 동료 의원도 찾아보기 힘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역구 민심조차 예전 같지 않게 싸늘하다.김부겸은 내년 총선에서 재선 성공을 위해, 그저 자유한국당을 혐오하는 지지층의 강성 발언에 기대서는 안 된다. 이젠 자신을 지지해 준 중도에 가까운 지역민들의 바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들은 자신의 자랑스러운 여당 소속 지역구 국회의원이 문재인 정부에 대해 비판할 것은 과감하게 직언하고, TK 홀대나 패싱 그리고 부산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 등의 안타까운 상황에 대한 돌파구를 찾아주기를 갈구하고 있다.

2019-05-02 19:12:23

한윤조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묻지마' 이면에 숨은 불평등 상흔

인류학자인 사피어와 그의 제자이자 언어학자인 워프는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규정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사고를 바탕으로 언어를 만들어냈고, 다시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사고를 언어라는 방식을 통해 타인에게 전달한다. 그래서 사피어&워프는 사람들이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표현 방식대로 생각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최근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는 진주에서 발생한 5명을 숨지게 하고 13명을 다치게 한 방화·살해 범죄였다. 언론은 주로 이 사건을 '묻지마 범죄'라고 명명했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표적이 될지 모르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묻지마 범죄'라는 별칭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피하려야 피할 수도 없어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나도 자칫 희생양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공포심이 극대화된다.하지만 '묻지마'라고 했을 때는 그 어감 뒤에 가려 사건의 실체는 흐릿해지고 만다. 어차피 원인을 알 수 없고 예측 불가능하다 보니 굳이 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보다는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말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현병' 등 특정 질병이 유독 불거지면서 이들에 대한 집단 혐오감을 부추기기도 한다. 범죄 대상이 여성이나 어린아이 등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도 많아 사실상 불특정 다수가 아닌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사실도 쉽게 간과된다. 우리가 쉽게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되는 이유다.전문가들은 이런 유형의 범죄가 빈발하는 데 대해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로 인한 사회적 박탈감, 그리고 지나친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 탓이라고 분석한다.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표한 '묻지마 범죄자의 특성 이해 및 대응 방안 연구'에 따르면 가해자들의 범행 동기 중 ▷정신병적 증상 등의 이유로 저지른 경우(26.5%)가 가장 많았고 ▷폭력성을 과시하거나 그냥 저지른 경우(25%) ▷분풀이와 스트레스 해소(23.5%) 등이 뒤를 이었다.결국 많은 경우 정신병적 원인과 사회적 불만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 같은 범죄가 발생하고 있는 일종의 '분노 범죄'인 셈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위협 중 하나가 됐다.'불평등 트라우마'라는 책에서 리처드 윌킨스와 케이트 피켓은 "불평등이 사람들의 감정과 사회의 본질에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이들이 세계정신의학저널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소득 불평등이 심한 나라는 비교적 평등한 나라에 비해 정신질환 비율이 3배까지 높았다. 특히 소득 격차가 큰 사회에서 조현병이 더 흔하다는 연구도 있다. 50개국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소득 상위 1% 인구가 차지하는 소득 비중이 증가할수록 환각, 망상 심리, 사고 조종 망상 등을 경험하는 인구가 증가했다.이번 사건이 벌어지자 많은 언론과 시민들은 조현병에 집중했지만 결국은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만연한 불평등으로 인한 분노를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는 어느 누구나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을 막을수 없다.결국 모두의 안전을 함께 지키는 방법은 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적 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상처받고 아파하는 이들을 떠밀어내 홀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사회가 함께 이들을 껴안을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 최고의 안전망이다.

2019-04-25 16:07:09

장성현 경제부 차장

[청라언덕] 대구 분양 시장 활황, 언제까지 갈까

며칠 전 만난 지역 건설사 임원은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이 건설사는 올 하반기 대구에서 5개 아파트 단지 분양을 앞두고 있다. 분양 시점과 부동산 시장 침체가 맞물릴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대구 부동산 시장이 꺾일 것이라는 건 확실한데, 과연 그 시기가 언제냐는 거죠."요즘 지역 부동산 시장을 짓누르는 건 '불안감'이다. 주택 시장 호황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이 깔려 있다. 견본주택을 가득 메운 방문객들을 보면서도 건설사들이 최대한 분양 일정을 앞당기려 애쓰는 이유다.요즘 대구 부동산 시장은 매수자와 매도자의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4월 셋째 주 대구 아파트 매매 가격은 보합으로 전주와 변동이 없었다. 거래 시장은 얼어붙었다. 지난달 대구 아파트 거래량은 1천82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천454건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다. 주택 시장 호황의 유통기한에 대해서는 시각이 엇갈린다. 긍정론을 설파하는 이들은 적어도 올해는 매매 시장이 버틸 것으로 본다. 공급과잉으로 보기엔 아직 여유가 있다는 게 이유다. 올해 대구의 입주 예정 물량은 1만3천여 가구로 평년 수준과 다르지 않다. 신규 공급 물량 역시 1만5천~1만6천 가구로 감내할 수준이라는 것이다.서비스 업종 위주인 대구는 제조업 침체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고, 수성구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대구 집값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있다는 이유도 든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의 부동산 시장 규제가 다소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섞여 있다.그러나 부정적인 신호도 끊임없이 감지된다. 우선 거래량이 줄었다. 지난달 대구의 주택 매매 거래량은 2천39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천444건)과 비교해 30.5% 감소했다. 집값 하락에 대한 우려와 정부 규제가 맞물리면서 수요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선 탓이다.집값이 너무 올랐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달 대구의 아파트 중위 매매가격은 2억6천738만원으로 1년 전보다 5.5% 상승했다. 특히 중구(3억6천만원)는 16.1% 급등했고, 수성구(3억9천750만원)도 전년 동기 대비 11.9% 올랐다. 일부에서는 주택 가격 약세와 분양 시장 호황이 이어지다가 5, 6월쯤 한계에 부닥칠 것으로 전망한다.부동산 투자에 대한 불안감은 기존 주택 매매 시장을 억누르는 요인이 된다. 과거에는 새 아파트가 분양하면 주변의 기존 아파트도 가격이 오르는 추세를 보였다. 그러나 시장 침체와 함께 기존 주택 가격은 제자리를 맴돌 가능성이 높다. 땅값과 노무비 상승으로 신규 분양가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고려하면 기존 주택을 처분하고 새 아파트로 이사가려는 이들은 더욱 부담을 느끼게 된다.시장 침체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시장이 조정기로 접어들면 정말 집이 필요한 실수요자에겐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건설사들도 신규 분양 아파트의 입지와 분양가 등 분양성을 더욱 신중하게 검토하게 돼 전반적인 상품성도 높아진다. 견본주택 공개 일정조차 하루 전에 공개하는 공급자 위주의 분양 행태도 사라지게 된다.대구 주택 시장의 '나홀로 호황'은 머잖아 막을 내릴 것이다. 중요한 건 어떻게 '연착륙 시키느냐'다. 정부의 선제 조치와 투자자들의 혜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2019-04-18 17:36:50

이창환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권력 구조, 개편해야 한다

최근 사석에서 여권 인사를 만났다. 오랜 당 생활 덕분에 여권 내부 기류에 밝았다. "정권을 뺏기면 (감옥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 소신껏 일을 해서 정권 재창출을 하면 다행이고 못하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니냐?" 적폐 청산이 가져올 후폭풍에 적잖은 부담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정권을 뺏기면 또 다른 적폐로 몰릴 것이란 우려가 강했다.여권은 정권 재창출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교육 정책까지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구체적 예산 확보 방안 없이 올해 2학기부터 고교 3년생을 대상으로 무상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내년 선거를 겨냥한 지지층 확대라는 해석이 강하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투기 논란과 부실한 장관 후보자 검증에 대한 청와대와 여권의 해명이 국민의 눈높이와 동떨어진 이유도 정권 재창출 프레임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다.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의 맹공에 밀리면 정치 일정에 차질을 빚는다는 조급함이 결기 묻은 반박에 드러난다. 어떻게 해서든 정권 재창출로 적폐로 몰리는 상황만은 피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인다.반대로 한국당이 정권을 가져와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현 정권 인사는 대거 내몰리고 정권 입맛에 맞는 인사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앞선 정권의 정책은 싫든 좋든 문패를 바꿔 달게 되고 정권 재창출에 사활을 거는 상황이 반복된다. 적폐 청산과 정치 보복이 재연될 공산이 크다.이런 극단적 정치에 언제까지 국민들은 마음을 졸여야 하나? 대한민국은 대통령 중심 국가다.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전부'를 가지거나, 아무것도 없는 '전무'인 승자 독식 구조다.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적폐로 내몰리는 비정치적이고, 대결적인 정치 문화가 일상화되고 있다.이런 정치 문화에서는 대구경북과 광주전남은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환호와 분노를 동시에 분출하는 영원한 상극 관계로 지내야 한다. 윈윈은 절대 나올 수 없다.대통령이 모든 권력의 정점에 서는 권력 구조를 바꿔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대통령이 나와도 현 권력 구조에서는 국민 통합은 요원하고 반목과 갈등이 분출한다. 대통령의 인기가 높을 때는 그나마 국정이 운영되지만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여야는 정쟁에 시간을 다 소비한다. 여야 간 악다구니로 국회의 제 기능은 사실상 마비된다.이런 국회에 실질적인 권한은 막강하다. 대통령의 핵심 정책도 국회가 거부하면 안 되고, 국무총리도 국회가 동의하지 않으면 임명할 수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정부 조직 개편안의 국회 처리가 지연되면서 취임 한 달 동안 국무회의조차 열지 못했다.대통령의 권한을 줄이고 국회가 권한만큼 책임을 가져야 한다. 국회의 책임 정치를 높이지 않고 현행 정치시스템이 지속되면 극단의 정치를 종식시킬 수 없다.대런 애스모글루 MIT 경제학과 교수와 제임스 로빈슨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저서에서 한 나라가 어떤 정치제도와 경제제도를 채택하는지에 따라 번영할 수도, 퇴보할 수도 있다고 했다. 헌법경제학 창시자로 1986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뷰캐넌(1919~2013)은 정치 실패도, 경제 실패도 근본 원인은 헌법의 실패에 있다고 강조했다. 현 헌법상 권력 구조를 바꿔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

2019-04-11 16:57:42

임상준 경북부 차장

[청라언덕] 반바지와 오보에

프랑스의 전쟁 영웅 잔 다르크가 화형된 까닭은 '마녀'란 누명이 씌워져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는 게 통설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마녀'라는 죄명 못지않게 중요한 범법 사유가 하나 더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여자인 잔 다르크가 남장을 한 불경죄다. 작금의 잣대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나 당시에는 여성의 남장은 큰 죄악에 속했다. 그녀는 전장에서 늘 활동하기 편한 남성용 재킷과 반바지 차림 갑옷을 입었다. 당시만 해도 여성이 다리를 보인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드러낸다는 의미가 강했다.결국 콩피에뉴 전투(1430년)에서 영국군에게 붙잡힌 그녀는 마녀로 몰려 종교재판에 회부됐다. 이후 수감생활 중에도 지급된 여성용 드레스를 끝끝내 거부하고 반바지를 고수했다. 꼬투리 잡기에 안달이 난 재판관들에게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그녀의 진짜 죄명은 남성복 반바지 착용이었다면 과장일까.지난달 북한 리용호 외무상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 북측 대표단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한 호텔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한 것과 관련, 사진 한 장이 화제가 됐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 회견인 터라 한 외신기자가 상의는 넥타이를 맨 정장, 하의는 미처 옷을 다 챙겨 입지 못해 반바지 차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미 하노이 회담 결렬에 따른 북한의 조급함이 사진 한 장에 고스란히 담겼다.11일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외교·안보 핵심 인사들이 잇따라 미국을 방문, 북미 협상 교착 타개를 위한 사전 조율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하노이 결렬' 이후 북한은 단계적 접근, 미국은 일괄타결식 해결을 내세우며 강경하게 대립하고 있어 꼬인 실타래가 쉽게 풀릴지는 의문이다.급할수록 돌아가라는 격언이 떠오르는 대목이다.조급함은 오히려 악수로 이어진다는 점은 이미 한미 방위비 협상 등에서 경험했 듯 경제적 손실로 돌아올 수 있다. 안달 난 쪽이 항상 더 많은 걸 내어준다는 건 연애든 외교든 진리다. 느긋하면서도 대화의 주도권을 한국이 가져올 수 있는 부드러운 협상안을 개발해야 한다. 운전석, 조수석 등 운전대에 집착하지 말고 자가용 밖으로 뛰쳐나오는 새 패러다임을 짤 필요가 있다.세계 3대 앙상블인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단원들이 매번 투표로 악장을 뽑아 공연을 이끈다. 튜닝은 관현악기인 오보에(프랑스어로 높은 음을 내는 나무라는 뜻)에 맞춘다. 오보에는 빠를 때는 중세 귀족풍의 분위기를 보이지만, 보편적으로 마음을 가라앉게 하고, 때로는 구슬픈 음색을 자아내기도 한다. 한때 중세 유럽 때는 오보에의 고운 음색이 신성함과 부딪힌다(영혼까지 빼앗긴다)는 이유로 연주가 금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천상의 소리 이면에는 너무 튀어 자칫 앙상블을 망치는 악마로 간주되기도 한다.1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때로는 귀족풍으로 당당하게, 일부 현안에선 부드러우면서도 상대의 마음과 영혼까지 가져올 수 있는 조율(튜닝)이 되길 기대한다. 그렇지 않고 빠른 결과물을 얻기 위해 조급함을 가진다면 한미 회담이란 앙상블을 그르칠 수 있다. 다소 초조하더라도 우리의 속내까지 다 드러내는 반바지 차림이어서는 곤란하다. 반바지 입을 때는 아직 한참이나 더 남았다.

2019-04-04 19:05:33

이상준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TK-PK '공항 빅딜'은 없다

'대구 간 文대통령, 대구공항 이전 살필 것…TK'PK에 신공항 다 지어주나?'(조선일보), '대구공항 이전, 잘 해결되게 살필 것…文대통령, TK-PK 신공항 다 허용하나'(동아일보)….지난 24일 대구공항 이전 문제 해결을 약속한 대통령 발언에 대해 수도권 언론이 뽑아낸 기사 제목이다.기사 제목이 암시하듯 영남권 신공항을 바라보는 수도권의 시각은 TK(대구경북)-PK(부산경남) 간 '공항 나눠 먹기'다. 정부가 대구경북 통합신공항(TK), 가덕도 신공항(PK)을 모두 지어주면 천문학적 예산 낭비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그러면서 과거와 달리 TK와 PK 자치단체장들이 대구경북 통합신공항과 가덕도 신공항을 '빅딜'하고, 청와대가 이를 승인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까지 서슴지 않는다.수도권의 이 같은 시각은 단연코 영남권 신공항 무지(無知)에서 나온 것이다.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영남권 5개 시도는 신공항 입지 선정을 놓고 부산 강서구 가덕도와 경남 밀양(대구경북)으로 갈라져 10년 동안 갈등을 빚었다.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에서야 영남권 5개 시도지사가 기존 김해공항 확장에 합의하고, 대구공항은 군공항 이전 특별법에 따라 기부 대 양여 방식으로 통합이전하는 것으로 결정돼 기나긴 갈등에 종지부를 찍었다.수도권이 분명히 인지해야 하는 사실은 대구경북 통합신공항과 가덕도 신공항의 성격이 100% 다르다는 점이다.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은 군공항 이전 특별법에 따라 군공항이 옮겨가면서 민간공항까지 통합이전하는 개념이다. K2 부지를 파는 비용으로 공항을 이전하는 기부 대 양여 방식으로 여느 국가 재정 사업과 완전히 다르다. 이에 반해 가덕도 신공항은 2016년 당시 영남권 5개 시도지사의 합의를 파기하고 천문학적 국가 재정 투입을 요구하는 사업이다.2016년 용역 당시 가덕도 신공항 사업비는 활주로 한 본짜리에만 10조원 안팎을 투입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이 원하는 두 본짜리 사업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국가 예산을 투입해야 할지 모른다. 절차상으로도 대구경북 통합신공항과 가덕도 신공항을 비교할 수 없다.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 사업은 이미 3년 가까이 이어져 왔다. 지난해 3월 이전 후보지 선정 이후 1년 넘게 표류하고 있다곤 하지만 최종 후보지 선정의 걸림돌로 작용했던 대구시-국방부 간 이전사업비 갈등이 절충점을 찾으면서 사업 추진에 가속도가 붙었다.반면 가덕도 신공항은 '허구'에 불과하다. 김해공항 재검증을 시사한 문재인 대통령조차 5개 시도 합의를 전제로 내걸었다. 부울경이 가덕도 신공항을 제 아무리 요구해도 대구경북의 합의 없이는 절대 바로 지을 수 없다는 의미다.설령 정부가 김해공항 확장을 폐기하고 영남권 신공항 입지를 새로 결정한다고 해도 입지 신청에서부터 용역 과정과 최종 입지 선정까지 도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대구경북 통합신공항-가덕도 신공항 빅딜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경제적으로도, 절차적으로도 불가능한 가덕도 신공항과 군공항 이전 특별법에 따라 이미 법적 절차를 밟고 있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을 빅딜한다는 건 그야말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2019-03-28 17:10:14

최두성 정치부 차장

[청라언덕] 다시 읽게 된 취임사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저는 오늘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해 첫걸음을 내딛습니다.…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다시 읽게 된 건 13일 날아든 부산발(發) '여권의 동남권 관문공항 적극 지원 약속' 소식 때문이다.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등 지도부는 이날 부산을 찾아 "수도권 일극 체제를 양극체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고, 남북 평화시대에 인천공항과 역할을 분담할 수 있는 동남권 관문공항이 필요하므로 부산·울산·경남에서 힘을 모아 과감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비공개 협의회에서는 동남권 관문공항을 의제로 꺼내며 김해공항 확장안의 국무총리실 이관 재검토 지원 등의 약속도 있었다고 한다.부산시는 보도자료를 통해 "민주당 지도부가 '부울경 검증단의 결과가 발표되면, 김해 신공항을 관문공항으로 결정한 국토부보다 총리실을 주관으로 재검토해야 하며, 후속 조치 등의 속도감 있는 추진을 위해 당 차원에서 적극 지원할 것'이라 밝혔다"며 총리실 검증 이후까지 민주당의 지원 사실을 부각했다.국토부가 김해 신공항 건설 계획을 스스로 번복하기 어려울 것이니 총리실이 이를 맡아 정책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고 민주당은 가덕도 신공항이 건설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게 요지다. '총리실 검증 논의'로 동남권 신공항 논란에 불을 지핀 문 대통령의 발언이 있은 지 꼭 한 달 만에 민주당이 후속 조치를 내놓은 것은 4월 재보선과 내년 총선 때 부산경남(PK)에서 압승하기 위한 계산된 카드로 보인다.PK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역감정 타파를 위해 정치 인생을 건 곳이자 문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그런데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사상 처음으로 PK 광역단체장을 석권했던 민주당의 지지율이 최근 자유한국당에 역전당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PK에서 밀리면 내년 총선이나 2022년 대선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된다는 게 민주당 생각이니 대형 국책 결정을 뒤집어서라도 지지를 받겠다는 심산인 셈이다.대통령과 여당의 가덕도 신공항 프로세스는 정국의 시계를 '갈등의 시대'로 되돌려 놓을 만하다. 5개 시도의 합의로 외국 전문업체의 타당성 검토를 거쳐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 난 국책 사업을 뒤집어서라도 '잇속'을 챙기겠다는 발상은 '갈등' '분열'을 불러올 것이 뻔하다.대구공항 이전 작업은 지지부진하다. 아직 부지 확정도 못 했다. 이럴 때 나온 대통령여당의 가덕도 힘 싣기는 대구경북(TK)을 '패싱', '홀대'하다 못해 아예 지도에서 오려내겠다는 것을 공고히 하는 것과 다름없다. 또한 지지 세력만 챙기겠다는 분열의 정치를 천명한 것이기도 하다.정략적인 TK-PK '갈라치기'는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는 약속 또한 어기는 행보다.지난 8일 단행한 개각은 '지역 편중' '코드 인사' 'TK 배제'가 키워드였다. 내년 총선 출마자 땜질용이라는 비판도 있다."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다"는 탕평 인사 원칙 역시 취임사의 미사여구(美辭麗句)였는지.

2019-03-14 17:27:47

권성훈 디지털국 차장('야수와 미녀TV' 앵커)

[청라언덕]국민·참여 정부 때도 없던 TK 홀대

문재인 정권의 TK 홀대는 특별하다. 국민(김대중 정권)·참여(노무현 정권) 정부 때도 유례가 없던 차별을 무차별적으로 가하고 있다. '가혹하다'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다. 예산뿐 아니라 인사에서 초토화 전략을 쓰고 있는 듯하다.국민의 정부 때는 울진이 고향인 김중권 비서실장을 기용하고, 국무위원(장관)에도 인구에 비례해 지역 출신을 배려했다. 또 흐지부지됐지만 '밀라노 프로젝트'를 섬유도시 대구에 선사하기도 했다. 참여 정부 때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낸 김병준에게 청와대 정책실장이라는 중책을 맡기고,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해 이재용 환경부 장관, 이강철 청와대 수석(일명 왕수석)을 통해 대구경북의 바람을 전달했다. 또 이들을 통해 TK의 필요한 예산도 배정하고, 악화한 민심을 달래려는 노력도 했다.문재인 정권은 어떤가. 2017년 정권 초창기부터 살펴봐도, 뭐 해준 것은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홀대의 흔적은 흥건하다. 예산, 인사 곳곳에 큰 상처만 안기고, 상처가 난 곳에 소금까지 뿌리고 있다.올해 국비 예산만 해도, 타 지역은 모두 늘어난 데 비해 TK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지난달 발표된 예타 면제사업만 해도 TK를 모두 합해 1조7천억원을 배정했다. 도백(김경수 지사)이 구속된 경남만 해도 4조7천억원의 선물을 안겨줬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지난달 25일 매일신문 자체 방송인 야수와 미녀TV 속 '토크 20분'에 출연해, 대놓고 현 정부의 예타 면제사업 선정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섭섭함을 토로했다.TK의 가장 큰 바람인 통합신공항 이전과 구미 취수원 이전 문제도 국방부와 환경부의 비협조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도대체 해당 부처는 대구경북민의 강력한 바람을 알고나 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소 닭 보듯' 한다.인사는 더 말해 무엇하랴. 혈압이 뻗쳐 쓰러질 정도다. 상주 출신으로 경북고를 졸업한 TK 출신 국무위원인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대구 수성갑 국회의원)이 재임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경찰 최고위 간부는 거의 없었다. 정권 초창기에 경찰 내 치안총감(경찰청장)과 치안정감 8명 중에 TK 출신은 단 1명도 없었다가, 지난해 7월 인사에서 겨우 1명(경북 청송 출신 이상정 경찰대학장)이 탄생했다.'TK 출신 장관 0명 시대 될 듯'이라는 기사를 보고는, 서글픈 마음이 들 정도다. 시도 때도 없이 '지역균형발전'을 부르짖으면서, 이럴 수는 없다. TK 출신 유일한 국무위원인 김부겸 장관마저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내각에서 빠지면, 대구경북을 챙겨줄 인사는 아예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청와대 내 주요 인사(3실장 9수석 체제), 국정원과 검찰·경찰·국세청·감사원 등 주요 권력 기관에도 'TK의 그림자'조차 찾아보기 어렵다고 할 정도로 주요 인사에서 TK 출신을 철저히 '왕따'시키고 있다.문재인 정권은 보수의 심장 TK에 대한 홀대를 멈춰야 한다. 그래야 "북한에 퍼주는 돈보다 TK에 주는 예산을 더 아까워한다"는 대구경북민의 비아냥 섞인 푸념을 멈출 수 있다. 이틀 전 TK의 지지를 등에 업고, 큰 표 차이로 자유한국당(제1야당) 당권을 쥔 황교안 대표도 'TK 홀대'를 저지하는데,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2019-02-28 18:39:23

한윤조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아사히글라스와 검찰

'아사히이김', '연대로힘생김'을 들어본 적 있는가? 난데없는 문자 해고 통보를 받고 3년 8개월을 싸워 온 AGC화인테크노한국주식회사(이하 아사히글라스) 해고자들은 생계유지를 위해서 SNS 등을 통해 김을 팔고 후원금을 모아 간신히 투쟁을 이어왔다. 그게 아사히이'김'이다.이들이 드디어 큰 고비였던 검찰 '기소'를 얻어내며 하나의 '이김'을 맞았다. 검찰은 지난 15일 사건을 맡은 지 1년 5개월 만에 원청업체인 아사히글라스와 인력을 공급하던 하청업체, 그리고 두 회사 사장을 '파견근로자 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해고자들이 길바닥에서 한겨울 추위를 넘긴 것이 네 번이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약자의 편에서 불법을 처벌해야 할 위치에 선 검찰은 수수방관한 책임을 미루기에 급급했다. 왜 이렇게까지 기소를 미루는 것인지 수소문해봐도 "답하기 힘들다" "말조차 꺼내지 마라"고만 했다.당초 대구고용노동청 구미지청은 해고자들의 고발에 따라 위법 사항을 꼼꼼히 조사한 뒤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해고자 전원을 직접 고용할 것과 과태료 17억8천만원을 지급할 것을 결정한 것이 2017년 8월의 일이다.하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3개월 만에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후 해고자들이 항소하고 지난해 5월 대구고검이 재수사 명령을 내리자 이번에는 지난해 수사를 완료하고도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채 시간을 끌었다. 결국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를 통해 '기소 의견'을 받아들고서야 9개월 만에 겨우 기소했다. 아사히글라스 측 법률 대리인은 '법률 지존'이라 불리는 '김앤장'이었다.차헌호 금속노조 구미지부 아사히글라스 지회장은 "당시 근로조사관은 5천 페이지에 달하는 서류를 검찰로 넘겼다. 여기에는 100쪽이 넘는 분량의 조사관이 직접 쓴 내용도 함께 포함돼 있었다"고 했다. 그만큼 회사 측의 불법 증거가 차고도 넘쳤다는 해고자 측 주장이다.검찰이 시간을 끄는 동안 해고 노동자들은 피가 말랐다. 3년 8개월 동안 생업에 나서지 못하고 투쟁해 온 이들의 삶은 처참히 무너졌다. 해고자 178명 중 대다수가 새로운 밥벌이를 찾아 떠나고 이제 23명만이 남아 투쟁 중이다.이들의 죄(?)는 노조를 결성한 것이었다.차 지회장은 "노조 결성 후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아사히글라스 측에서 우리 하청업체 직원들에게만 '내일은 하루 쉬라'고 한 뒤 쉬는 날 문자로 해고를 통보했다. 회사로 달려갔지만 아사히글라스 앞에는 100명에 달하는 용역업체 직원들이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었다"고 했다. 아직도 23명은 회사 안에 그들의 짐이 그대로 남아 있다.검찰은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는 국가의 명을 받은 이들이다.하지만 현실에서의 검찰은 힘 있는 자, 돈 있는 자의 편에 서는 경우가 다수다. 툭하면 검찰을 둘러싼 비리가 터지고, 국민으로부터 뿌리 깊은 불신을 받는 이유다.이번 사안 역시 검찰이 이렇게까지 시간을 끈 이유에 대해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국민은 말로만 외치는 '검찰 개혁'이 아니라 치우침 없이 냉엄한 판단을 내리는 검찰을 원한다. 판단을 내리기 힘들 때는 '과연 누구를 위해 검찰이 존재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부터 출발해보라.

2019-02-21 15:50:28

장성현 경제부 차장

[청라언덕] 30년 뒤 대구 도심의 모습은?

지난 주말 대구 동구의 한 견본주택 앞에 긴 행렬이 늘어섰다. 부정청약 등으로 계약이 취소된 잔여 가구 추첨에 몰린 인파였다. 70여 가구 모집 추첨에 참여한 이들만 1천여 명에 달했다. 이날 풍경은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규제에도 '나 홀로 활황'을 이어가는 대구의 청약 시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올해 대구의 청약시장은 재개발·재건축단지에 집중돼 있다. 연말까지 분양 예정인 3만744가구 가운데 70%인 2만956가구가 도심 재개발·재건축단지다.아파트 시장이 '거래 절벽' 수준인데도 청약 시장이 열기를 띠는 건 '부동산 불패'에 대한 믿음 덕분이다. 당장 집값이 주춤하더라도 청약 당첨만 되면 수천만원을 벌 수 있는 게 현실이다. 너무 올라버린 집값에 청약 당첨 외에는 내 집 마련이 어렵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깔려 있다.청약 시장 규제가 느슨한 점도 이유다. 건설사들은 대출 제한에 따른 자금 부담을 줄인다며 1차 계약금을 1천만원으로 고정하고, 중도금 무이자 혜택을 준다. 1차 중도금 납부 기한도 계약 8개월 뒤로 미뤘다. 비조정지역의 전매 제한 기간이 6개월이라는 점을 노린 것이다. 단기 투자자들이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있으니 분양 시장은 여전히 돌아간다.더욱 우려스러운 건 과열된 재개발·재건축 시장이다. 대구에 있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사업 대상지는 모두 232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사업 시행 계획 인가까지 받은 곳도 96곳이나 된다.건설업계도 앞다퉈 재개발·재건축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도심에 아파트를 지을 땅이 부족하고, 청약 시장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 건설업계는 사업성이 있는 재개발재건축 지역이 30~40곳 정도 될 것으로 본다.30년 뒤의 대구를 상상해봤다. 낡은 고층 아파트 숲이 삐죽삐죽 튀어나온 도심의 모습. 노후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홍콩이 연상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30년 뒤면 초고령화사회에 인구 절벽이 현실화된 이후다.정부는 도심이 온통 아파트로 채워지는 상황을 막고자 도심재생사업을 추진해왔다. 2010년부터 진행한 도시활력증진개발사업으로 대구에서만 29곳이 지정됐고, 19곳의 사업이 완료됐다. 이어 문재인 정부 들어 시작된 도시재생 뉴딜사업으로 대구시내 10곳에서 주거 환경 개선 및 공동체 복원 사업이 진행 중이다.그러나 도시정비구역으로 지정된 경우 도시재생사업 대상에서 제외된다. 길게는 십수년씩 지연되는 재개발·재건축사업을 기다리며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해야 하는 셈이다.방법이 없진 않다. 주민 50% 이상의 동의를 받아 정비구역에서 해제되면 재생사업 대상지가 될 수 있다. 추진위가 설립되기 전이라면 주민 30%의 동의만 있어도 해제 신청을 할 수 있다.반면 서울은 주민 동의가 없어도 정비구역 해제가 가능하다. '역사·문화적으로 보존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민간위원회를 거쳐 정비구역에서 해제할 수 있도록 시 조례로 규정했다.주민들 간 갈등이 첨예한 도시정비사업에 지자체가 개입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돼 있는 셈이다. 개발사업에 이리저리 해체되는 대구 도심을 살릴 방법은 여전히 남아 있다. 첨예한 이해관계의 충돌 속에서도 행정의 일관성을 지켜낼 대구시의 의지가 필요하다.

2019-02-14 18:20:51

이창환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 극단의 시대

대한민국 정치는 극단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적폐 청산을 내걸고 전 정권 관련자들을 대거 단죄했다. 아무리 전 정권의 실세라도 잘못이 있으면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와 공동체 발전을 위해 열정을 쏟았음에도 단지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적폐로 내몰리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는 정치 보복일 뿐이다.역사는 되풀이된다. 정권이 교체되면 현 정권에서 일했던 인사들도 또 다른 적폐로 몰리고 정치 보복이 재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한국 정치사에서 정치 보복은 사실상 금기어였다. 보수 정권 아래에서도 후계자들이 정치 보복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 없이는 정권을 계승하기 힘들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나를 밟고 지나가라"는 언질이 없었으면 노태우 전 대통령의 6·29 선언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후보 시절 정치 보복은 절대 없다는 약속을 수차례 했다. 그만큼 전임 권력자에게 후임 권력자의 정치 보복은 아킬레스건이었다.문 정부의 적폐 청산은 정치 보복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조선시대 사화를 21세기에 부활시킨 셈이다. 정권 교체에 따른 정치 보복이 일상적인 정치 행위가 될 개연성이 매우 높아졌다. 한국 정치가 극단의 시대로 접어든 배경이다.극단의 시대에 가장 위협받는 것이 민주주의다. 정권을 뺏기면 정치 보복을 당할 게 뻔한 상황에서 쉽사리 정권을 내놓지 않으려 한다. 여당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정권 재창출에 사활을 걸고, 야당은 정권 교체를 위해 온갖 방법들을 동원한다.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릴 불·탈법이 자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김경수 경남지사가 구속된 뒤 보인 여당의 반응은 놀랍다. 집권 여당의 중진들이 벌떼처럼 나서서 사법부를 공격하고 적폐로 몰아가는 행태는 정말 걱정된다.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를 무력화시킨다. 김 지사 구속에 대한 여당의 대응에서 극단의 시대의 한 면을 읽을 수 있다. 민주화를 이끈 세력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무너뜨리는 지독한 모순에 봉착한 형국이다.여권 인사의 오버는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책임이 대통령에게 향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이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사건이 20년 장기 집권 계획에 생채기를 낼 수 있다는 우려도 한몫했을 것이다. 정권 교체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여권 중진들의 목에 핏대를 세우게 했다.사화와 환국의 극심한 후유증을 겪은 조선은 탕평의 시대로 전환한다. 사화와 환국의 '제로섬 권력투쟁'이 결국은 집권당과 실권당에게 득보다는 해악을 더 끼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집권당도 언젠가는 실권으로 멸문지화를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품게 됐고, 실권당은 권력을 빼앗겼을 때 미치는 화가 너무 크다는 것을 공유한 후에야 탕평의 시대로 바뀌었다.극단의 시대에 접어든 한국 정치는 큰 계기가 없는 한 정치 보복의 일상화를 감내해야 할 것이다. 극단의 시대가 오래 갈수록 한국 정치는 어두운 터널을 장기간 지나야 한다. 누가, 무엇으로 극단의 시대를 청산할 것인가?

2019-02-07 17:3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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