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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현 경제부 차장

[청라언덕] 분양가상한제, 보약일까 독약일까

"3.3㎡당 3천500만원을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듣는 순간, 혹했죠." 대구 수성구 범어동 대구법원 인근에 140㎡ 규모의 단독주택을 갖고 있는 지인은 얼마 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자신을 정비업체 관계자로 소개한 상대방은 재개발 부지를 매입 중이라며 집 팔기를 권했다. 이 일대 시세가 3.3㎡당 1천만원 초·중반인 점을 고려하면 시가의 두 배 이상을 주고 사겠다는 것이다.그러나 지인은 집을 팔라는 제안을 거절했다. 계약 방식이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최근 재개발·재건축을 위해 '땅 작업'을 하는 시행사나 정비업체들은 토지나 건물주와 매매계약서를 쓰면서 계약금을 주지 않고 통상 1년가량 유예 기간을 둔다.재개발 부지의 토지 계약서를 95% 이상 확보해 사업이 가능하게 되면 시공사에 매각하고 토지 대금을 받은 후에야 매매 대금을 주는 식이다.유예 기간을 넘기고도 돈을 주지 못하면 계약은 자동 파기된다. 계약서에 특약도 넣는다. 계약서를 쓴 토지 및 건물 소유주가 변심하지 않도록 돈을 받지 않아도 법원 공탁을 통해서라도 계약이 성사된 것으로 인정한다는 식이다. 정비업자나 시행사 입장에서는 용역비나 기본 운영비 외에 '땅 작업'에 따른 비용 부담이 없고, 사업 성공 여부에 따라 대금을 지급하면 되기 때문에 큰 손해를 피할 수 있다.다만 이런 방식으로 계약까지 끌어내려면 적어도 시세의 2~3배는 제시해야 한다. 당연 택지 조성 비용은 급상승한다.토지나 건물주는 적어도 1년 이상 재산권이 묶이게 된다. 사업이 무산되면 한 푼도 손에 쥘 수 없다.분양가상한제가 민간택지에 적용되면 이 같은 방식의 '땅 작업'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표준지공시지가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감정평가금액을 택지공급가격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올해 표준지공시지가의 시세 반영률은 64.8%에 그친다.분양가상한제 적용을 앞두고 예기치 못한 피해도 나타나고 있다.한 토지 소유주는 3.3㎡당 2천200만원을 받기로 시행사와 구두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하지만 분양가상한제 적용 시 3.3㎡당 1천400만원 이상은 사업성이 없다는 판단이 선 업체 측은 3.3㎡당 1천400만원에 맞춘 매매대금을 보낸 뒤 버티고 있다고 했다. "그나마 시세보다 비싸게 쳐줬다"는 것이다. 토지 소유주 입장에서는 계약을 파기하려면 송사를 벌여야 할 판이다.수성구 일부 정비구역에서는 분양가상한제 전에 토지 매매 계약을 끝내기를 독려하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주택 가격은 구·군 내에서도 수억원의 차이가 난다. 수성구 내에서도 집값이 최고 수준인 '범4만3'(범어4동, 만촌3동)과 파동은 집값이 두 배 가까이 벌어진다.학군, 교통 등 입지에 따라 청약경쟁률도 천양지차다. 정부의 부동산규제 정책은 이런 차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 분양가상한제에 맞춰 각종 재개발·재건축 사업 방식도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애꿎은 주택 소유자가 피해를 볼 가능성도 있다.대구 분양가, 분명 올라도 너무 올랐다. 대구는 2014년 이후 전국에서 분양가가 가장 많이 오른 지역이다. 그러나 획일적인 가격 제한 정책으로는 분양가 상승을 막을 수 없다.수성구가 막히면 다른 지역이 오르는 '풍선 효과'도 나타날 것이다. 정부가 강남 집값만 바라보지 않고 비수도권에도 들어맞는 '핀셋 규제'를 내놓기를 기대한다.

2019-08-29 18:57:13

이창환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잃어버린 8개월

수출 규제를 둘러싼 한·일 간 갈등이 장기화될 조짐이다. 대법원의 강제 징용 판결에 아베 정권이 수출 규제 조치로 대응하는 것은 치졸하기 짝이 없는 행태다. 과거사를 둘러싼 분쟁을 무역과 연결한 조치는 일본이 절대 일류 국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장기적으로 소재, 부품, 장비 분야에서 일본 의존도를 줄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이 시점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 직전 상황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한국 정부는 대법원 판결 이후 8개월 동안 무대책으로 일관했다. 신일철주금(과거 신일본제철)이 일본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을 지급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것은 지난해 10월 30일이다. 일본 정부는 즉각 항의했다. 그로부터 8개월 뒤인 지난 7월 1일, 일본은 반도체 소재·부품 3개 품목 수출 제한을 발표했고 한달 뒤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명단에서 제외했다.8개월 동안 일본의 경제 보복 가능성이 줄곧 예고됐다. 많은 일본 전문가들이 아베 정권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경고했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가 지난 3월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했고 100여 개의 제재안을 마련했다는 현지 언론 보도도 나왔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최종안은 5월 중에 대부분 완성됐다"고 보도했다.한·일 경제 전문가인 박상준 일본 와세다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상반기 내내 소문이 무성했다. 일본 정부와 일을 하는 동료 교수들로부터 '관료들이 한국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벼른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일본 주재 한국 기자들이 어떤 품목으로 보복할 것 같으냐고 물어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국내 언론도 '정부가 대일 외교를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을 수없이 했다.돌이켜보면 위험 신호가 곳곳에서 울렸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나? 청와대, 여당, 외교부가 일본의 동향을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무시했다면 직무유기다. 일본 주재 한국 대사관은 현지 분위기를 어떻게 보고 했나? 보고를 했다면 여권의 어느 선까지 올라갔나? 정상적인 정부라면 8개월간 다양한 시나리오를 두고 대비책을 만들어야 했다.정부는 지난 6월 말 일본 언론들이 보복 조치 예고 기사를 내놓을 때까지도 전혀 예상을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이었다. 최소한 그간의 경과를 설명하고 정부 대책을 차분하게 설명해 국민을 안심시키는 자세로 나왔어야 했다.세간에는 일본의 도발을 정부가 방조한 것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나오고 있다. 야권에서 "그동안의 태만이 의도된 것이라면 묵과할 수 없다"고 지적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일본과 갈등이 내년 총선에 유리하다는 보고서를 만든 여당의 행태로 볼 때 여러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라도 정부의 8개월간 행적이 드러나길 기대한다. 정부를 믿고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동참하는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2019-08-22 18:22:45

임상준 경북부 차장

[청라언덕] 봉오동 전투의 승리는, 지기(知己)부터

일본은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전, 조선 팔도에 수백 명의 세작을 보냈다. 이들은 조선의 주요 지형지물을 베끼고 민정을 염탐했다. 하지만 '왕만 잡으면 백성은 항복할 것'이라는 사실과 동떨어진 보고를 한다. 손자병법에 비춰볼 때 '지피'(知彼)에 무지했다.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대망(大望)에 따르면 일본 다이묘(봉건 영주)는 전투에서 지면 할복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부하인 사무라이가 자신의 죽음으로 영주를 지키는 경우는 드물었다. 영주를 잃은 휘하의 무사들은 낭인으로 떠돌다가 새 주인을 만나는 게 보통이었다.반면 조선은 고려 때부터 계속된 일본의 약탈 행위에 이골이 났다. 이런 불만은 민족 저항운동(의병 봉기)으로 승화됐다. 관군만 상대하면 된다고 여겼던 일본은 민간 의병 봉기에 전략적 혼선이 생겼다. 결국 패전이 이어졌다.199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일본을 향해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돌파, 일본처럼 선진국에 올랐다는 자신에 찬 발언이었다. 얼마 뒤 우리 경제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를 맞는다. 이 과정에서 일본 자금이 가장 먼저 빠졌고 '고치려던 버르장머리'가 IMF를 불렀다는 주장이 나왔다.지난 2일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뺐다. 문재인 대통령은 같은 날 긴급 국무회의에서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고 결의했다. 정부의 대(對)일본 강경 기조에 맞춰 국민도 '일본 제품 불매'로 호응했다. 국민 DNA(유전자)에 뿌리 박힌 반일 감정은 들불처럼 번졌고 거세졌다. 대일본 감정이 이성적으로 제어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까지 왔다.하지만 정부나 우리 국민이 일본과 마주 달리는 기차가 돼서는 안 된다. 경제 규모가 일본의 3분의 1 수준인 우리나라가 더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데다, '욱'하는 감정에 자칫 우리의 위치를 바로 보지 못하는 누를 범할 수 있어서다. 축구를 이긴다고 경제까지 승리할 수는 없고 유니클로 티셔츠 한 장 안 사고, 사케를 마시지 않는다고 극일(克日)이 될 수는 없다. 한 발짝 물러서 우리부터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하다.물론 대한민국은 1910년 무기력하게 불법적으로 병탄을 당한 100여 년 전의 대한제국이 아니다. 세계 11위권의 경제 대국이며, 일본만큼이나 많은 우호 국가를 두고 있다. 비록 경제력으로는 일본에 비해 모자라지만 국제 명분에서는 우리가 우위에 있다.차분히 국제적 동의를 얻고 우방 국가와 함께 일본의 불공정 무역 규제의 부당함을 알리고 대처해 나가야 한다. 반(反)일본과 반아베를 분리해 압박해가는 프레임 작업도 필요하다. 일본이 수출규제 카드를 꺼냈다고 우리까지 '함무라비 법전'(이에는 이, 눈에는 눈)을 들이댄다면 그 나물에 그 밥밖에 안 된다.일본의 특성을 가장 잘 연구했다는 '국화와 칼'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 근대화를 이끈 메이지 정치가들이 국가와 국민 간의 '알맞은 위치'를 세밀히 규정했다고 봤다. 바꿔 말해, 일본은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다하는 것을 근대국가의 주춧돌로 놓았다.하물며 이런 일본을 이기려는 데 우리가 우리를 모른다면 미래의 '봉오동 전투'는 담보되지 않는다. 감정은 살짝 누르되 정치는 정치를, 경제는 경제를, 가계는 가계를 냉철하게 바라보는 가슴을 가져야 한다. 상대가 일본일 때는 더더욱 '지피지기'(나를 알고 적을 아는)가 병법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

2019-08-15 17:54:04

박상전 서울정경부 차장

[청라언덕 ] 황교안 대표의 희생

김태호 전 경남지사의 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 출마가 확정적이란 소식이다. 고향인 그곳은 험지가 아니고 안방 격이다. 그는 최근 출마 결심을 하면서 "일단 원내에 들어와야 훗날을 도모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한다.자유한국당 내에 '일단 금배지를 단 뒤 앞날을 도모하자'는 주자들이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홍준표 전 대표가 대구 텃밭에서 호미질하는 모양새다.대권 주자 대상을 좀 더 넓혀보면 권영진 대구시장이 차기 대권 도전을 시사하고 있고,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도 보수 주자로 부상하기 위해 안간힘이다. 조원진 우리공화당 공동대표도 정계 개편 결과에 따라 언제든 두각을 나타낼 전망이다.여권을 포함하면 영남권은 그야말로 대권 잠룡들의 온상이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영남의 맏형 노릇을 하면서 건재를 과시하고 있고,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차기 주자로 오르내리는 가운데 김경수 경남지사, 김영춘 의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까지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인사들이 넘쳐난다.이런 가운데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지난 2월 한국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차기 대권을 노리고 있다. 이를 위해선 한국당 강세 지역인 영남권을 반드시 차지해야 한다.그런 황 대표에게 영남권 대권 주자가 많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첫째는 차기 대권 주자로 영남권에서 뿌리를 내리려면 수많은 경쟁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야권 잠룡들과 치르는 예선도 버겁지만 여권 주자들과의 본선 경쟁은 더욱 어려워 보인다.두 번째는 총선 결과의 중요성이다. 황 대표의 경쟁자들은 대부분 안정권 지역에서 원내 복귀를 노리지만 황 대표는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에 입성하더라도 비참한 총선 성적표를 받는다면 책임론에 휩싸이게 된다.결국 어려운 상황 속에서 총선 승리를 완수한 뒤에도, 수많은 경쟁자들과 결전을 치러야만 보수 정당의 차기 대권 주자로서 안착할 수 있는 현실이다.심각한 상황이지만 정작 황 대표와 측근들의 생각은 달라 보인다. 중진 의원이 탈당을 하고, 친박 회귀를 비판하는 여론이 늘고 있으나 모두 남 탓으로 일관하면서 여유롭다.한 측근은 "어차피 대선이 다가오면 황 대표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재편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근거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영남권 구심력을 예로 들었다.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면 '우리가 남이가' '그래도 한국당'이란 정서가 되돌아올 것이라는 자의적 해석이다.하지만 황 대표는 자신의 정치 스토리 부재 현실을 철저히 자각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처럼 총탄으로 부모님을 여읜 적도 없고 백주대낮에 면도칼로 좌상을 입으면서 '대전은요?'라며 당을 걱정하는 희생정신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보수 정권에서 장관·국무총리 등 따뜻한 자리를 거쳐, 특별한 기여 없이 대표 자리까지 무혈입성한 수준에 불과해 보일 수도 있다.이런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어떤 희생적 모습을 보일지는 황 대표 본인의 몫이겠으나 많은 지지자들과 의원들은 황 대표가 당을 위해 뭘 던질 수 있을지 고대하고 있다.그것이 대선 불출마든지 비례대표 후순위든지 상관 없다. '그 정도면 됐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황 대표가 자신을 던지는 모습에 지지자들은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될 것이다. 황 대표의 팬들이 늘어나고 총선 결과까지 만족스럽다면, 싸늘해진 당내 의원들의 시선도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다.

2019-08-01 19:07:32

최두성 정치부 차장

[청라언덕] 명분 없는 '잠룡'들의 대구행

'총선은 대구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대구에서 자유한국당 공천은 당선을 의미해 일찍부터 공천 전쟁이 벌어지는 까닭에서다.21대 총선도 예외가 아니다. 총선을 8개월여 앞두고 대구가 총선의 시작을 알리는 총성을 울렸다.한국당 주자들이 대구에 깃발을 꽂고자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다.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잦은 대구행으로 출마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고, 최근에는 홍준표 전 대표의 대구 입성설도 나돈다.김 전 위원장은 보수 진영 내의 역할론을 강조하며 출마 의향을 내비친다. 대구를 선택지로 두고 있다는 뉘앙스도 풍긴다. 홍 전 대표는 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대구도 고려 대상"이라며 좀 더 적극적으로 '노크'를 한다.실제로 이들이 도전장을 낼지는 알 수 없으나 여론 탐색전에 들어간 건 분명해 보인다.정치인의 손동작 하나를 보고 '소설책'을 쓰는 곳이 정치권이니 이들의 행보에 호사가들은 벌써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어낸다. 김 전 위원장과 홍 전 대표의 '몸집'을 감안했을 때 여권의 차기 대선 주자인 김부겸 의원(대구 수성갑)과의 매치를 필두로 해 이들의 특정 지역구 정착 시 일어날 주자들의 이동 전망 등이 쓰여지고 있다. 그럴듯한 이유가 붙으니 관심을 끌기 충분하다.'거물급' 인사의 대구 입성이 꼭 나쁠 건 없다. 선수(選數), 경력 따지는 국회, 정치권에서 중량감은 소위 '말빨'이 먹혀 지역에 뭐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문제는 명분이다. 저마다 무너진 보수를 일으켜 세우겠다고 하나 뻔한 속셈만 보인다.대구는 전국 어느 곳보다 한국당 지지율이 높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감까지 더해진 상황이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은 어렵지 않다는 계산이 선다.대구를 지원군으로 둔다는 것은 또한 보수 진영에서 힘을 갖는다는 의미다. 앞선 여러 대통령의 사례가 그랬다. 당선만 되면 보수층의 상당한 지분을 가지니 이만한 선택지도 없다.그럼 보수 재건은? 한국당은 지난 총선 패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대선 패배, 지방선거 패배 등 계속된 '카운터펀치'를 맞고 그로기 상태로 내몰렸다. 이제 겨우 링의 줄을 잡고 몸을 일으켜 세울 정도가 된 한국당에 내년 총선은 다시 링을 지배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할 승부처다. 그 힘은 의석수 확보다.한국당은 여당이던 지난 20대 총선에서 122석(비례 17석 포함) 확보에 그치며 원내 2당으로 내려앉았다. 많은 의석이 걸린 수도권에서의 부진이 원인이 됐다. 한국당은 122석(서울·경기·인천)이 걸린 수도권에서 27대 82로 더불어민주당에 대패했다.그렇게도 외친 보수 재건의 운명이 걸린 전선을 놔두고 소위 '장수'라 불렸던 이들이 국지전에 나서는 건 누가 봐도 모양새 빠지는 일이다.그 과정에서의 반발과 분란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지난 총선 패배는 공천 실패에서 비롯됐다. 감별사까지 등장해 '진박'(진짜 친박) 공천을 자행했고, 그들의 행선지가 대구가 되면서 비난과 반발을 사지 않았던가.그런 이유에서 지역 민심의 '낙하산 공천' 경계심은 극도로 높아진 상황이다."정부에 대한 민심이 사납지만, 내년 총선에 거는 기대는 크다. 지방선거를 통해 지방의회에 진입한 민주당 의원들의 역할, 덧붙여 한국당 공천이 불러일으킬 낙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인사의 말이다.

2019-07-25 17:18:33

전창훈 경북부 차장

[청라언덕] 우리 곁의 GPGP

에메랄드빛 망망대해를 자랑하는 태평양. 그러나 그 가운데엔 우리가 예상치 못한 끔찍한 지대가 있다. 1997년 미국의 환경운동가 '찰스 무어'가 이 지대를 발견하자, 세계는 경악했다. 이곳은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이 모여 만들어진 거대한 더미였기 때문이다.뉴욕타임스는 이곳이 약 1조8천억 개의 크고 작은 플라스틱 조각으로 이뤄졌고 면적 또한 캘리포니아주의 4배인 160만㎢에 달한다고 전했다. 사람들은 이 지대를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GPGP·Great Pacific Garbage Patch)라 부른다.최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의료폐기물 사태'는 GPGP의 축소판이다. 폐기물 처리 업체의 무단 투기가 뒤늦게 알려진 점이나 폐기물 처리가 난제라는 점 등이 사뭇 GPGP를 닮았다.특히 경북 지역은 의료폐기물 유입이 다른 지역보다 많아 의료폐기물의 최대 피해지로 밝혀졌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전국 의료폐기물 발생량은 모두 21만9천t으로 이 중 대구경북에서는 1만9천547t이 발생, 불과 9%에 그쳤다. 반면 전체의 30%쯤이 경북으로 몰린 것으로 드러났다.지난 3월 말 고령군 다산면에서 불법으로 보관된 의료폐기물 80t이 주민들에 의해 적발된 이후 대구 달성군과 문경시, 김천시 등 주로 경북 지역에서 잇따라 무단 의료폐기물이 발견된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앞서 같은 달 3일에는 의성군에 방치된 거대한 '쓰레기 산' 문제가 미국 CNN 방송에 집중적으로 보도된 바 있다. 경북 곳곳이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것이다.이번 사태에 불을 지핀 고령에서는 100여 일이 지나도록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주민들은 무더위와 장마 등으로 2차 감염 피해를 우려하는 등 속을 태우고 있다.이번 사태는 폐기물 처리업체의 불법 행태가 1차적 원인이지만 정부의 느슨한 관리 또한 사태를 키운 주범이다. 폐기물 처리에 있어 환경부의 안일한 접근법도 문제다. 어느 지방자치단체도 원치 않는 '소각장 건설'에만 목을 매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환경 문제를 접근할 때 이제 유연성과 과감성이 필요한 때다.먼저 대형 의료기관 내에 자가멸균시설을 설치해 의료폐기물을 멸균 분쇄하도록 하고 감염성이 없는 상태로 만들어 일반 소각장에 태우는 방안이 있다. 이는 법적 제한에 걸려 있기 때문에 정치권이 힘을 보태야 한다.또 다른 방안은 정부가 직접 나서 의료폐기물 처리를 공공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지자체마다 소각장이 혐오시설로 인식돼 유치를 꺼리지만, 과거 경주 방폐장 건설을 참고할 만하다. 방폐장도 대표적인 혐오시설이었지만, 공론화와 다양한 경제적 지원, 고용 창출 등이 뒷받침되면서 당시 지자체 간 유치 경쟁까지 벌어졌다.78,000. 태평양의 거대한 쓰레기 지대인 GPGP를 모두 처리하는 데 필요하다는 햇수다. 사실상 '처리 불가'다. 이곳의 수많은 플라스틱 조각은 얼마나 오랫동안 해양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 이 숫자는 어찌보면 인간의 탐욕과 외면이 켜켜이 쌓여 재앙이 수치화된 것일 수도 있다.의료폐기물 사태는 우리 곁에도 언제든 GPGP가 자랄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이는 우리가 이번 사태를 흐지부지 넘겨서는 안 되는 분명한 이유다.

2019-07-18 18:52:01

권성훈 디지털국 디지털뉴스부장

[청라언덕] '양념 반 프라이드 반'의 마음으로

전 국민을 경악게 한 잔인한 살인(전 남편) 사건의 피의자 고유정. 뉴스에 나올 때마다, 그 사실에 약간의 상상력만 더해도 정서가 메마르고 피폐해진다. 참혹하고, 비정하고, 살벌하고, 악마 같다는 생각마저 스친다.베트남 아내를 2살 아이 앞에서 무차별 폭행한 남편. 폭행 사유는 황당 그 자체. '맛도 없는 베트남 음식 하지 말라고 했는데 했다', '말귀를 못 알아 먹는다' 등 어이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반성의 기미라곤 찾아볼 수 없다.두 가지 사건뿐 아니라 하루가 멀다하고 신문 또는 방송에 등장하는 사건 사고(고액의 보험금 타려고 가족 계획 살해 등)는 무섭기도 하고, 황당무계하다. 이런 사건을 접할 때마다, 국민 정서도 이를 데 없이 황폐해진다.'이전투구' 정치판도 한 번 돌아보자. 여야의 싸움, 끝이 없다. 오로지 소모적 정쟁만이 계속된다. 문재인 정부 들어 더 심해진 것은 권력 실세나 고위 공직자들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뻔뻔해졌다는 점이다. '야당(자유한국당)의 텃밭'이라는 이유로 특정지역(대구경북)의 핍박·홀대도 심해졌다. 고령의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은 건강이 악화되어도, 여전히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달을 가리키면, 손가락을 쳐다본다'는 말이 떠오른다. 현 집권 세력은 수많은 악재(드루킹, 김태우 전 수사관과 신재민 전 사무관의 폭로, 손혜원의 목포 투기 의혹, 북한 목선 삼척항 입항 사건, 일본과의 외교 마찰 등)가 터질 때마다, 사건의 본질이나 진실에 접근하기보다 메신저(폭로한 장본인)를 공격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현재 진행 중인 '윤석열 정국'(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도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아마도 국회 인사청문회 청문보고서 채택은 불발되고,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의 극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임명을 강행할 태세다. 타협이나 양보는 현 정치권에서 기대하기 힘든가 보다.우리 사회의 끔찍하고 황당한 사건 사고, 정치권의 아수라판 정쟁 등을 보면서 '참 해도 해도 너무한다. 양념 반 프라이드 반의 마인드가 필요한데….' 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스친다.요즘 "아~~~ 절마. 진짜 지밖에 모르네!"(경상도 사투리). 타인은 안중에도 없다는 뜻이다. 마음속에는 자신만이 가득 차 있다. 99% 아니 100% 자신의 감정과 욕심, 악한 이기심만이 가득하다고 하는 편이 맞다. 그런 마음속에 국민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런 마음속에 국익은 언제나 후순위로 밀릴 뿐이다.청와대를 비롯한 현 집권 세력, 그리고 제1 야당도 마찬가지다. 국정 운영과 견제·대안 제시를 위해 '집단 지성'을 이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타협이나 배려, 양해, 양보 등의 단어는 잊은 지 오래다. 이익단체 같은 느낌마저 든다."마음속에 딱 절반, 50%만 자신으로 채우고 살자." 이것이 '양념 반 프라이드 반'의 마음이다. 그래야 가족, 친구, 지인 그리고 타인이 내 속에 비집고 들어와 놀 수 있는 여유를 줄 수 있다. 80% 이상 자신만이 가득 차 있어도, 삶의 넉넉함이 없다. 누가 살짝만 건드려도, 분노 조절 장애를 드러내기 십상이다.대통령부터 50%만 자신(집권 세력과 그 지지층)을 위하고, 50%는 국민과 야당을 생각해주길 바란다.

2019-07-11 14:26:05

한윤조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이해와 배려, 선진국의 품격

외국을 처음 나가 본 것이 대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어학연수라는 명목으로 부모님께 목돈을 받아 8개월간 영국에서 땡땡이를 칠수 있게 된 것이다.굳이 뭔가를 배우려 하지 않아도 낯선 곳에서의 경험은 인생에 상당한 가르침을 남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8개월간의 난생처음 외국살이 속에서 정말 선연한 충격으로 뇌리에 박힌 한 사건이 있다.그중 하나가 파업을 벌이고, 이를 대하는 영국인들의 태도였다.당시 화물운송노동자들이 전국적인 파업을 벌이면서 영국 전체의 물류 기능이 완전히 멈춰 섰다. 대형마트와 슈퍼의 물건은 동이 났고, 주유소 저유고도 바닥을 드러냈다.먼저 놀란 건 화물차 운전사들이 파업을 벌인 이유였다. 이들은 '더 많은 월급과 복지 혜택을 달라'고 파업한 것이 아니라 일자리 쪼개기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를 위해서는 기꺼이 자신의 월급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겠다는 주장이었다.하나라도 더 움켜쥐기 위해 아득바득 다툼을 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그때까지 듣도 보도 못한 정말 '경이로운' 파업 사유였다. 더구나 고액 연봉을 받는 여유 있는 이들이 아니라, 고된 육체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이 펼쳐 보인 파업 '철학'이어서 더욱 충격적으로 와닿았다.파업을 대하는 시민들의 태도 역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홈스테이를 하던 집에는 두 돌 된 아이가 있었는데, 태국 출신의 호스트마더는 "아이에게 줄 우유가 없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반면 영국인인 호스트파더는 "모두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것이니 조금의 불편은 참고 견디고 응원해야 한다"고 다독였다. 주변에 "왜 파업했냐, 불편하다"고 비난을 퍼붓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그때 한창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혈기 넘치는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선진국'이란 단어에 상당한 반감을 가졌다. 경쟁으로만 내모는 정부의 '세계화, 국제화' 구호에 질렸고, 그 끝무렵 벌어진 IMF 사태를 목격하면서 "대체 롤모델로 삼아야 할 선진국이란 무엇인가"는 의문이 깊었던 탓이다.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아, 바로 이런 태도가 선진국이구나"를 체감할 수 있었다. 노동을 대하는 그들의 가치와, 사회 문화 깊숙이 배어 있는 이해와 배려가 느껴졌다.사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분야를 막론하고 파업이 벌어졌을 때 가장 먼저 들려오는 단어는 '시민 불편'이다.다행인 건 지난 20년 세월 동안 우리 시민사회가 상당히 많이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최근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들어가자 언론은 '급식 대란'을 부각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고된 노동을 하고도 9급 공무원 64% 수준의 임금을 받는 이들의 현실도 알렸다.또 '불편이기보단 누군가의 권리를 지켜주는 일이라 생각해달라'며 가정통신문을 보낸 교장 선생님에서부터, '불편해도 괜찮아요'라고 메모지를 써 응원하는 학생들을 보며 새삼 20년 전 문화 충격이 다시 떠올랐다.우린 아직 갈 길이 멀다. 넘어야 할 갈등과 반목의 숙제도 많이 남았다. 다만 이번 사태를 보며 우리 사회가 이해와 배려를 향해 한걸음씩 전진하고 있음을, 더구나 어린 학생들이 보다 넓은 포용력으로 사회문제를 바라보고 있음을 확인한 것으로도 그저 반갑다.

2019-07-03 19:26:24

장성현 경제부 차장

[청라언덕]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25일 대구시와 이래AMS 노사, 한국산업은행, KEB하나은행, DGB대구은행,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발표한 미래형 일자리 상생 협약. 협약식은 1시간 만에 끝났지만 이 자리에 오기까지 과정은 험난했다.이래AMS의 시작은 1984년 대우그룹과 GM이 합작 설립한 대우자동차부품과 대우HMS다. 1989년 두 회사는 합병해 대우기전공업으로 사명을 변경했고,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2000년 한국델파이로 이름이 변경됐다.한국델파이는 2011년 이래CS로 주인이 바뀌었다. 2015년에는 사명을 이래오토모티브시스템으로 변경했다.이래오토모티브는 한국GM의 실적 하락과 함께 경영난에 직면했다. 2014~2017년 직원 연봉을 동결했고, 2015년에는 400여 명을 구조조정했다. 그래도 경영난은 계속됐다.2017년에는 이래오토모티브시스템의 공조사업부를 분할해 이래AMS라는 법인을 신설했다. 하지만 이래AMS의 매출은 2017년 4천820억원에서 지난해 4천606억원으로 떨어졌다. 회사 존폐가 위협받던 지난해 11월, 이래AMS는 크라이슬러와 폭스바겐으로부터 1조4천억원 규모의 부품 납품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1천억원에 이르는 추가 설비 자금과 경영 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이래그룹은 또다시 회사 분할을 시도했다. 이래AMS의 핵심 사업 분야인 구동사업부를 분할한 뒤 지분 매각을 추진한 것. 구동사업부가 생산하는 하프 샤프트(휠을 구동하는 독립 현가장치의 차축)의 경쟁력을 감안하면 독자 생존이 가능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구동사업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껍데기로 전락할 처지였다. 노조는 강하게 반발했다. 이전에 회사 분할과 구조조정을 겪은 터라 물러설 곳이 없었다.이래AMS의 처지는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문 대통령은 "1조원 수주를 한 기업이 설비 투자 비용 때문에 문을 닫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도와줄 방법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벼랑 끝에 몰린 금속노조 이래오토모티브지회 관계자들도 대구시를 찾아가 "일자리를 잃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회사 측과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유보하는 내용의 상생 협약도 맺었다.따지고 보면 놀랄만한 일이다. 금속노조는 민주노총 내 산별노조 중에서도 가장 강성으로 통한다. 이래오토모티브지회는 대구 금속노조 산하 지회 중 가장 규모가 큰 사업장이다.대구시도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은행, 청와대를 문지방이 닳도록 찾아가 읍소했다. 막상 실사를 한 산업은행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3년 연속 적자라 신규 대출이 안 되는데다 이미 부채가 많아 담보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어렵사리 기존 담보 대출을 대환을 통해 청산한 뒤 이래AMS와 모회사인 이래CS, 이래CS의 미국법인까지 묶어서 담보 대출을 하는 유례없는 방식으로 해법을 찾았다. 자금을 마련한 사측은 '원·하청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신규 일자리 창출, 상생펀드 조성을 약속했다.대구 미래형 일자리는 암흑 같은 터널을 노·사·정이 손을 잡고 통과한 성과다. 그 길에는 희생을 감수하며 회사 살리기에 나선 노동자들과 경영 안정화를 위해 땀을 쏟은 사용자, 기업과 일자리 살리기를 위해 땀을 쏟은 대구시, 정부, 금융기관의 의지가 있었다.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격언, 여기에 있다.

2019-06-27 19:59:46

이창환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태극기 신당, 가능성 있나?

태극기 신당이 꿈틀거리고 있다. 태극기 집회를 이끌고 있는 대한애국당과 자유한국당 친박계 탈당 국회의원이 손을 잡고 신당을 창당한다고 밝혔다. 친박계 4선인 홍문종 의원이 한국당을 탈당한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홍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TK(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한국당보다 태극기 신당이 (내년 총선에서) 더 유리하다는 민심이 있다. (이런 민심이) 서울에 북상하면 태극기 신당 공천받는 게 한국당보다 유리하다고 판단할 것이다"며 TK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서는 태극기 신당을 두고 2008년 18대 총선에서 소위 '대박'을 친 친박연대를 떠올리고 있다.2008년 18대 총선 즈음으로 시간을 돌려보자.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의 공천은 친이계가 진두지휘했다. 공천에서 친박계가 대거 탈락하자 국회의원이던 박근혜 전 대통령도 비분강개해 "살아서 돌아오라"며 힘을 실었다. 공천에서 탈락한 친박계 의원들은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친박연대 또는 친박 무소속 이름으로 한나라당 후보와 맞붙었다. TK 민심은 오락가락했다. 한나라당 후보와 탈락 친박 후보 사이에서 어정쩡한 태도였다. 박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친박 후보 지원도, 한나라당 후보를 돕기도 애매모호했다. 선거 기간 달성에 칩거했다.그런 박 전 대통령이 선거일을 16일 앞둔 3월 24일 한마디를 던졌다.매일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그분들은 당을 나가고 싶어서 나간 게 아니라 쫓겨나서 그렇게 한 것이다. 다시 들어와야 한다." 소위 복당 허용 발언이었다. 한마디의 힘은 컸다. 갈팡질팡하던 여론은 급속히 친박 후보로 쏠렸다.대구경북에서 친박연대 후보자 4명(박종근·홍사덕·조원진·김일윤)이 당선됐고 전국적으로 6명이 배지를 달았다. 친박 무소속 후보도 5명이 등원했다. 더 놀라운 건 정당 득표율이었다. 친박연대는 13.2%를 얻어 한나라당(37.5%), 민주당(25.2%)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득표율을 얻었다. 비례대표 54석 중 8석을 차지했다. 선거를 앞두고 급조된 정당이었고, 일부 후보들은 '짝퉁 친박' 논란을 일으켰지만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뒀다. 사실상 한나라당 차기 대권 후보였던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자는 민심이 만들어낸 성적표였다.지금은 어떤가? 태극기 세력이 중심이 된 대한애국당이 지난 지방선거에서 거둔 성적표는 초라했다. 대구경북에서 얻은 정당 득표율이 1%를 조금 넘었다. 보수 분열의 비난을 감수하고 태극기 신당이 친박연대 이상 성과를 내려면 박 전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을 돕는 게 아니라 자칫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친박연대만큼 성공을 거둔다고 가정하자. 십수 명의 국회의원들이 박 전 대통령을 청와대에 다시 모실 수 있나? 그렇지 않으면 명예 회복이라도 가능한가? 정치인이 당을 만들고 선거에서 후보자를 내는 건 자유다. 다만 무엇을 위한 신당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2019-06-20 15:43:24

임상준 경북부 차장

[청라언덕] 경북도지사 호화 관사 논란의 아쉬움

'지금 집에 아버지 계셔'란 말은 금세 까치발을 부른다. '왁자지껄'했던 대청마루도 숨죽인다. 까까머리 친구들은 하나같이 총총걸음이다. '삐걱' 마룻귀틀 엇나는 소리가 날라치면 퀭한 눈만 껌뻑거린다. 당시 잘 놀다가도 과하다 싶을 때 내뱉는 '아버지 계신다'는 말 한마디는 '군기 반장'이었다. 개구쟁이들마저 긴장하고, 바르게 하고, 겸손해지게 하는 '마술 램프'와도 같았다.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고 그 또래의 아이가 있는데도 언제나 그 '아버지 계셔'는 묵직하게 다가온다.이철우 경북도지사가 민선 7기 출범 1주년을 맞아 관사 반납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청 뒤편 한옥 스타일의 현 관사가 '호화 관사' 논란을 불렀기 때문이다. 도백(道伯) 관사는 바로 옆 잡아센터(옛 대외통상교류관)와 외형상 한 건물로 보인다.도지사 관사의 호화 논란은 억울한 측면이 있다. 지난해만 해도 관사는 도청신도시 내 전용면적 85㎡ 아파트가 유력했다. 전임 도지사는 안동시에 있는 대형 아파트를 관사로 썼지만 이 도지사는 거리가 멀고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대신 마땅한 사용처가 없어 입방아에 오르던 대외통상교류관의 게스트 하우스(방 2칸, 거실)를 관사로 결정, 입주했다. 그러면서 같은 건물로 보이는 관사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고자 대외통상교류관 연회장을 '잡아센터'로 바꿨다. 지번도 떼냈다. 조례에 따라 지원하는 가스·전기·수도요금 등 주거비 일체도 자비로 부담하고 있다.결론적으로 호화 관사 논란이 불거지는 데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벗었고 참외밭에선 신발까지 벗어 던졌는데도 케케묵은 관사 이슈가 소모적 논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이 도지사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자정까지 업무를 보기로 유명하다. 국회의원 시절부터 '일철우'라는 별명이 붙었다.오전 6시면 관사를 나서 도청 주위 도보 순찰로 일을 시작한다. 이른 출근길에 마주하는 직원을 격려하고 야근하는 부서를 깜짝 방문해 치킨도 쏜다. 그래서 도청은 항상 깨어 있고 긴장해 있다. 도청 안에 관사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도지사가 외부에서 출퇴근한다면 여러 불리한 점이 생길 수 있다. 출퇴근 차량 유류비를 차치하고서도 길에서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다. 영국 워릭대 이안 워커 교수는 평균 1분의 경제적 가치를 약 9펜스(180원)라고 계산한 바 있다.긴급 상황 발생 시 청내 관사에선 걸어서 3분이면 상황실도 닿을 수 있다. 도백이 도청에 상주함으로써 오는 '공무원 긴장감'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경쟁력이다.중국 진(秦)나라 시황제는 아방궁을 지었다. 주왕은 주지육림(酒池肉林·사치스러운 주연)을 즐겼다. 진나라는 반백 년도 못 가 망했고 주왕은 은나라의 마지막 임금이 됐다. 하지만 도청 안의 관사는 아방궁도 주지육림도 아니다. 도청의 한옥 풍 건축 양식과 어울리게 지었을 뿐이다. 관사 면적도 제한적이다.안이든 밖이든 어느 관사가 도정에 도움이 될지는 면밀히 따져볼 일이다. 보이는 것만으로 호화 관사 딱지를 붙여 논쟁만 벌여서는 안 될 것이다. 청사 내 도백 관사에서 어린 시절 '아버지 계시는 집'이 떠오르는 이유가 뭘까.

2019-06-13 19:59:07

이상준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그들만의 김해신공항 백지화

문재인 정부는 출범 100일을 맞은 2017년 8월 1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신설했다.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모토로, 별도 가입 없이 SNS 계정으로 로그인해 누구나 청원을 제기할 수 있다.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은 청원의 경우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들의 답변을 받을 수 있다.올해 2월 25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김해신공항 반대 100만 국민청원운동'이라는 청원 글이 올랐다. 부산·울산·경남(부울경) 3개 자치단체의 김해신공항 백지화 요구에 편승한 부울경 시민단체가 추진한 청원운동이다.그러나 3월 27일까지 한 달간 청원 기간에 참여한 최종 인원은 고작 4천905명. 100만 명 목표치의 0.5%에 불과한 수치로, 청와대 답변을 들을 수 있는 20만 명 동의에도 완전히 실패했다.김해신공항은 기존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국책 프로젝트로, 2016년 6월 영남권 5개 시도가 영남권 신공항의 대안으로 합의했다. 지난 10여 년간 밀양(대구경북·경남·울산) 대 가덕도(부산)로 갈라진 영남권 신공항 갈등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차선책이었다.이후 국토교통부가 2026년 완공을 목표로 기본계획 수립에 들어간 김해신공항 건설 사업은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난항을 맞았다.대통령과 여권을 등에 업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부산·울산·경남 3개 자치단체장이 김해신공항 백지화를 끈질기게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대통령과 여권이 다가오는 총선을 겨냥해 부울경 지역 '표끌이' 수단으로 1단계 김해신공항 백지화→2단계 가덕도 신공항 건설이라는 시나리오를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짙어지고 있다.이 대목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건 '김해신공항 백지화'가 그들만의 정치 논리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대통령과 여권은 몰라도 결코 국민 여론을 등에 업을 순 없다는 의미다. 이것이 바로 김해신공항 반대 청원운동이 철저하게 실패한 이유다.대구시에 따르면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기치로 내건 동남권 관문공항 추진위원회가 최근 여론조사기관을 통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동남권 관문공항 건설을 위해 김해공항 확장안 폐기 등 국가정책을 바꾸는 데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잘하는 일'이라고 답한 비중은 33%에 불과했다. 절반에 달하는 50% 이상이 '잘못된 일'이라고 응답했다.경남과 울산 지역민을 대상으로 김해공항 확장과 가덕도 신공항 건설 가운데 한쪽을 선택하는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에서는 '김해공항 확장'(52%)이 '가덕도 신공항 건설'(41.8%)을 앞질렀다.여기에 김해공항과 가덕도를 지역구로 둔 노기태 부산 강서구청장조차 최근 기자간담회를 통해 "되지도 않을, 돼서는 안 될 일(가덕도 신공항)로 돈과 시간, 국력을 소모하는 걸 중단하고 김해신공항 건설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비판했다.무엇보다 김해신공항 백지화 요구에는 '대구경북'이 없다. 김해신공항 건설은 영남권 신공항을 둘러싼 오랜 갈등 끝에 해당 영남권 5개 시도가 합의한 국책사업이다. 대구경북은 5개 시도 합의 정신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김해신공항 백지화에 절대 동의할 수 없고, 동의해서도 안 된다.

2019-06-06 17:27:26

박상전 서울지사 정경부 차장

[청라언덕] 황교안과 각설이

2007년 11월쯤이다.당시 한나라당 비례대표였던 서상기 의원은 기자와 차를 마시다 갑자기 걸려 온 전화 한 통화에 황급히 외투를 걸쳤다. 2008년 총선에 나서려는 지역구 행사에 참석해야 한다며 양해를 구했다.기자가 알기엔 행사 주최 측의 공식 초청은 없었다. '초청도 받지 못한 행사인데 왜 굳이 가려느냐'고 묻자 숨도 쉬지 않고 대답했다."어데요. 각설이가 구걸하러 가는데 주인 허락 맡고 다닙니까. 무조건 가서 주인 기분 맞춰 주고 와야죠."'정치인=각설이' '주인=지역 주민' '구걸=득표 행위'로 표현한 명쾌한 비유였다.각설이는 통상 '있어 보이는 집'을 찾아 주인장의 기분을 '염탐'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어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타령을 목이 터져라 불러 젖힌다. 그렇게 주인의 흥을 한껏 돋운 후에야 겨우 찬밥 한 덩이를 얻을 수 있었다.정치인을 각설이로 보는 시선이라면, 득표 활동은 장소와 상황에 맞춰 최대한 실례되지 않게 유권자들의 기분을 맞추면서 진행해야 하는 법이다.그런 면에서 보면 경북 은해사를 찾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끝까지 '합장'을 하지 않은 점은 충분히 비판 대상이 될 법하다. 남의 집에 찾아간 각설이가 노래도 안 하고 주인의 흥을 돋워주기는커녕 오히려 불쾌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배고프니 밥 달라'는 일방적인 떼쓰기만 한 셈이 됐다.논란이 확산되자 황 대표는 뒤늦게 "다른 종교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사과드린다"며 진화에 나섰다.하지만 불교계의 반응은 여전히 미온적이다. 특히 사과를 하면서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이라고 가정해 아직도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지 못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합장 논란 발생 지점이 TK였다는 것은 우려감을 더욱 증폭시킨다. TK는 한국당의 전통적 지지층이자 불심 또한 강한 지역이다. 외연 확장을 꾀하는 한국당과 황 대표는 이번 '합장 논란'으로 자칫 집토끼까지 놓칠 위기에 처했다.곽대훈 대구시당 위원장은 지난 22일 기자와 만나 "로마법을 제대로 인지하거나 지키지 않을 거면서 왜 로마(사찰)로 갔는지 모르겠다"며 "차라리 (합장 논란이 벌어진) 영천 은해사를 방문하지 않았던 것이 나을 뻔했다"고 지역 분위기를 전했다.합장 논란은 발생한 지 20여 일이 지나 핵심 이슈로는 더 이상 부상하지 않는 분위기지만, 언제든 재발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문제다.황 대표의 '사과' 표명이 있기 전 불교계와 친분이 두터운 주호영 의원은 "(사찰 예절을) 모르고서 안 했다면 몰라도 알고서도 하지 않았다면 문제"라며 "본인이 끝까지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려고 한다면 주변에서 아무리 좋은 말로 설득하려 해도 소용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다양한 종교가 성행하고 세대와 지역으로 다분화된 대한민국의 야당 수장이자 나아가 대통령까지 되려고 한다면, 국민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기꺼이 민초들의 눈높이에도 맞출 줄 알아야 한다.

2019-05-31 06:30:00

최두성 정치부 차장

[청라언덕] '막말' 쏟아내는 정치인

한동안 미세먼지가 숨을 쉬기 어렵게 하더니 최근엔 정치인들의 험한 말이 귀를 따갑게 한다. '좌파 독재' '도둑놈들' '사이코패스' '한센병 환자' '달창' '독재자의 후예'…. 내뱉는 말마다 가시가 돋쳤고 되받아치는 말은 더욱 자극적이다. 아무리 말로 먹고사는 정치인이라지만, 서민 시름을 내팽개치고 '막말 배틀'로 국회를 공회전시키며 매연을 뿜고 있으니 정치가 민생난 오염원이요, 반목과 혐오를 부추기는 진앙이라 불릴 만하다.말(언어)이 지닌 힘과 중요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강조돼 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이야기하는 동물'이라 일컬었고, 하이데거는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철학적 함의가 있지만, 말이 사람의 됨됨이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과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수많은 사자성어와 속담, 격언이 입(말)조심을 당부하고, 세 치 혀를 잘못 놀렸다 혹독한 대가를 치른 이야기도 수두룩하다.다섯 왕조, 열 한 명의 군주를 모신 중국 재상 풍도(馮道)는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고,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고 했고, '설망어검'(舌芒於劍·혀는 칼보다 날카롭다)은 말조심을 각인시키고자 자주 인용되는 사자성어다.그럼에도 정치인의 극언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막말이 끊이지 않는 것은 '득'(得)이 '실'(失)보다 크다고 여기는 인식 탓이다. 무리한 비유, 정제되지 않은 단어, 상대를 자극하는 말이 일으킬 파장을 알면서도 그것으로 주목받으니 관종(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서는 남는 장사다. 여기에 환호하는 지지자도 있으니 지지층 결집 면에서도 나쁠 게 없다.막말이 반복되는 건 잠시 숙이면 그뿐이라는 학습 효과도 기인한다. 분란을 일으켜놓고 '사과' 한마디로 퉁 치려는 경우를 수없이 봐 오지 않았는가.저급한 막말이 지지층에게 갈증을 풀어주는 '사이다'가 될지 모르나 마셔보지 않았던가, 탄산음료가 주는 청량함은 그때뿐인 것을. 과다 음용 시에는 이가 썩는 등의 부작용이 있다는 것도 알지 않나.막말로 홍역을 치른 일본의 집권 여당 자민당은 최근 '실언 방지 매뉴얼'을 만들어 소속 의원이나 예비 후보들에게 돌렸다고 한다. 7월에 있을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부적절한 발언으로 표를 까먹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데 여기에는 약자에 관한 표현이나 지지자들 사이에서 쓰는 특정 표현을 유의하라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링컨-더글라스' 일화는 국회 문을 닫고 막말 경연을 일삼는 우리 정치권에 교훈을 준다.미국의 링컨 전 대통령은 1858년 상원의원 선거 토론회에서 정적인 스티븐 더글라스가 자신을 이중인격자라고 비난하면서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라고 하자 "제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 이 얼굴(못생긴)을 하고 있겠냐"고 응수했다.이후 링컨은 미국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 됐지만 더글라스는 그의 생애를 넘어 그의 후손대까지, 160여 년 넘게 막말의 대명사로 회자되고 있다.국가 번영과 국민 안녕을 위해서라면 정치인은 싸워야 한다. 무기는 논리와 설득이 돼야 한다. 잘못 놀린 혀로 대대손손 소환되는 우를 범해서야 되겠는가.

2019-05-23 16:49:49

전창훈 경북부 차장

[청라언덕] 정신적인 아픔에 왜 그리 모질까

이달 초 '컬투쇼'를 이끌었던 방송인 정찬우 씨의 근황을 들었다. 지난해 4월 정 씨가 갑자기 방송 활동을 중단했던 이유가 공황장애와 조울증 때문이라는 것이다. 컬투쇼 애청자로서 적잖은 충격이다. 겉모습, 행동과는 다르게 '정신적인 아픔'을 겪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이 소식에 과거 만난 한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누구나 정신적인 아픔을 겪을 수 있다. 뜻밖에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거나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도 정신적인 아픔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다.누구는 짧은 기간에 극복하지만, 누구는 좀처럼 떨쳐내는 게 쉽지 않다. 그럴 때 상담과 치료가 필요한데 사람들은 정신과를 찾는 자체를 극도로 꺼린다. 그래서 병을 키운다고 했다. 상담받거나 치료받는 사람 중 대다수는 가족에게조차 철저히 비밀에 부칠 정도다. '편견의 올가미'에 묶여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15일 보건복지부는 '중증정신질환자 보호·재활 지원을 위한 우선 조치 방안'을 발표했다. 요지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24시간 응급 대응체계를 갖추고, 정신건강복지센터 인력을 대폭 확충한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사회적으로 불거진 '조현병 환자에 의한 강력범죄'에 대해 정부가 내놓은 긴급 처방이라 할 수 있다.이날 발표에서 국내에 조현병, 조울증, 재발성 우울증 등을 앓는 중증정신질환자는 50만 명 내외로 추정되지만,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환자는 17만 명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33만 명은 사실상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환자 개인이나 환자의 가족에게 전적으로 관리를 떠맡겨온 셈이다. 지금까지의 정부 무관심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조현병 범죄가 연일 보도되면서 우리는 조현병 환자들에 대한 다양한 편견을 표출했다.가장 대표적인 것이 '그들은 과연 타인에게 지극히 공격적인가'다. 통계에 따르면 사뭇 다른 결과를 알려준다. 조현병으로 인한 타해보다는 자해나 자살이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강력범죄에서 정신장애가 차지하는 비율은 0.5% 정도로 낮다.반면 세계적으로 조현병 환자의 5~10%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고 보고되고 있다. 경찰청의 2016년 자살 주요동기 자료에서는 정신적 문제가 36.2%로 가장 많았다. 숫자로는 우울증이 많았지만, 환자 수 대비해서는 조현병이 자살 동기 1위였다.강제 입원 등 격리에 대한 목소리도 높았다.일부 언론은 이번 정부 대책에서 강제 입원이 빠진 것이 아쉽다는 보도도 했다. 범죄를 저지른 이를 처벌하는 원칙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강제 입원 도입 등은 부작용을 키울 수 있어 신중해야 하는 것이 맞다.단순히 범죄를 저질러 위험하니 격리를 하겠다는 것인데 이런 시각은 '조현병 환자=잠재적 범죄자'라는 편견을 더욱 확산시킬 수 있다. 또한 힘겹게 양지로 나와 치료받는 환자들까지 음지로 숨어버리게 할 수 있다.정신적인 아픔에 대한 우리네 인식을 곱씹어봤으면 한다. 신체적 아픔에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정신적인 아픔엔 왜 그렇게 모진지. 편견과 무관심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십수 년째 이어지는 'OECD 자살률 1위'라는 오명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2019-05-16 17:24:43

권성훈 디지털뉴스 부장

[청라언덕] 김부겸의 귀책사유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총선(2016년)에서 새빨간 땅 대구에 푸른 깃발(수성갑)을 꽂았다. 문재인 첫 내각의 행정안전부 장관이자 여당 내 대구경북(TK)의 실세로 보수로 얼룩진 대구에 진보의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기세로 임했다.물론 국무위원으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최선을 다했고, 책임감 있게 일했음은 다들 인정한다. 대구에 무슨 큰 행사(신년교례회 등)가 있거나, 사건(대보사우나 화재 등)이 있을 때는 가능하면 내려와서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던 점도 평가한다.김부겸 의원은 장관 시절 나름 최선을 다했고, 내년 총선을 앞두고 대구에 돌아와 환영받기를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 TK 정서는 문재인 정권에 싸늘하고 냉랭하다. 이런 분위기는 TK 실세 김부겸 의원도 감지하고 있을 것이다.김 의원은 이런 싸늘한 여론을 직시해야 한다. 왜 이렇게 됐나. 상당 부분은 본인에게 귀책사유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TK 홀대(예타면제 사업, TK 장관 제로 시대 등)와 TK 패싱(원자력해체연구소 PK로,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 등)으로 지역 여론이 최악으로 치달았을 때, 침묵하거나 방관했기 때문이다.대구경북민들은 집권 여당의 TK 홀대 및 패싱을 김부겸이라는 여권 내 TK 실세가 어느 정도는 막아줄 수 있을 거라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TK 예산 및 인사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못 했다. 심지어 행안부 산하 경찰청 인사(치안총감 1명, 또는 치안정감 8명 자리)에서도 TK 출신은 철저히 내팽개쳐졌다. 지난 2년만 놓고 보자면, 그는 '귀머거리' 또는 '벙어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사실 많은 지역민들은 꼬마 민주당 시절 또는 참여정부, 국민의 정부에서 할 말은 하는 당찬 김부겸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상황에 맞는 합리적인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왜 문재인 정권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나.김부겸의 꿈도 대권이 아니라고 단정 짓지는 못할 것이다. 서슬 퍼런 정권 초기 '안이박김 숙청설'(안희정 날리고, 이재명 죽이고, 박원순 까불면 없애고, 김경수 주저앉히고)을 잘 목도하면서, 김부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할 말 안 하고, 잘 버티고 있으면 기회가 오지 않을까?'김부겸은 현 정권의 내부 사정과 지역 민심에 대해 오판을 했거나,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최악의 스탠스로 내몰렸다. 쉽게 말하면, 집토끼와 산토끼를 둘 다 잃을 처지에 놓여 있는 결과인 셈이다. 집권 여당에서 김부겸을 차기 대권 후보로 내세울 움직임도 전혀 없을 뿐더러 김부겸을 따르는 당내 동료 의원도 찾아보기 힘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역구 민심조차 예전 같지 않게 싸늘하다.김부겸은 내년 총선에서 재선 성공을 위해, 그저 자유한국당을 혐오하는 지지층의 강성 발언에 기대서는 안 된다. 이젠 자신을 지지해 준 중도에 가까운 지역민들의 바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들은 자신의 자랑스러운 여당 소속 지역구 국회의원이 문재인 정부에 대해 비판할 것은 과감하게 직언하고, TK 홀대나 패싱 그리고 부산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 등의 안타까운 상황에 대한 돌파구를 찾아주기를 갈구하고 있다.

2019-05-02 19:12:23

한윤조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묻지마' 이면에 숨은 불평등 상흔

인류학자인 사피어와 그의 제자이자 언어학자인 워프는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규정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사고를 바탕으로 언어를 만들어냈고, 다시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사고를 언어라는 방식을 통해 타인에게 전달한다. 그래서 사피어&워프는 사람들이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표현 방식대로 생각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최근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는 진주에서 발생한 5명을 숨지게 하고 13명을 다치게 한 방화·살해 범죄였다. 언론은 주로 이 사건을 '묻지마 범죄'라고 명명했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표적이 될지 모르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묻지마 범죄'라는 별칭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피하려야 피할 수도 없어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나도 자칫 희생양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공포심이 극대화된다.하지만 '묻지마'라고 했을 때는 그 어감 뒤에 가려 사건의 실체는 흐릿해지고 만다. 어차피 원인을 알 수 없고 예측 불가능하다 보니 굳이 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보다는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말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현병' 등 특정 질병이 유독 불거지면서 이들에 대한 집단 혐오감을 부추기기도 한다. 범죄 대상이 여성이나 어린아이 등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도 많아 사실상 불특정 다수가 아닌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사실도 쉽게 간과된다. 우리가 쉽게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되는 이유다.전문가들은 이런 유형의 범죄가 빈발하는 데 대해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로 인한 사회적 박탈감, 그리고 지나친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 탓이라고 분석한다.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표한 '묻지마 범죄자의 특성 이해 및 대응 방안 연구'에 따르면 가해자들의 범행 동기 중 ▷정신병적 증상 등의 이유로 저지른 경우(26.5%)가 가장 많았고 ▷폭력성을 과시하거나 그냥 저지른 경우(25%) ▷분풀이와 스트레스 해소(23.5%) 등이 뒤를 이었다.결국 많은 경우 정신병적 원인과 사회적 불만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 같은 범죄가 발생하고 있는 일종의 '분노 범죄'인 셈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위협 중 하나가 됐다.'불평등 트라우마'라는 책에서 리처드 윌킨스와 케이트 피켓은 "불평등이 사람들의 감정과 사회의 본질에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이들이 세계정신의학저널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소득 불평등이 심한 나라는 비교적 평등한 나라에 비해 정신질환 비율이 3배까지 높았다. 특히 소득 격차가 큰 사회에서 조현병이 더 흔하다는 연구도 있다. 50개국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소득 상위 1% 인구가 차지하는 소득 비중이 증가할수록 환각, 망상 심리, 사고 조종 망상 등을 경험하는 인구가 증가했다.이번 사건이 벌어지자 많은 언론과 시민들은 조현병에 집중했지만 결국은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만연한 불평등으로 인한 분노를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는 어느 누구나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을 막을수 없다.결국 모두의 안전을 함께 지키는 방법은 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적 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상처받고 아파하는 이들을 떠밀어내 홀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사회가 함께 이들을 껴안을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 최고의 안전망이다.

2019-04-25 16:07:09

장성현 경제부 차장

[청라언덕] 대구 분양 시장 활황, 언제까지 갈까

며칠 전 만난 지역 건설사 임원은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이 건설사는 올 하반기 대구에서 5개 아파트 단지 분양을 앞두고 있다. 분양 시점과 부동산 시장 침체가 맞물릴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대구 부동산 시장이 꺾일 것이라는 건 확실한데, 과연 그 시기가 언제냐는 거죠."요즘 지역 부동산 시장을 짓누르는 건 '불안감'이다. 주택 시장 호황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이 깔려 있다. 견본주택을 가득 메운 방문객들을 보면서도 건설사들이 최대한 분양 일정을 앞당기려 애쓰는 이유다.요즘 대구 부동산 시장은 매수자와 매도자의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4월 셋째 주 대구 아파트 매매 가격은 보합으로 전주와 변동이 없었다. 거래 시장은 얼어붙었다. 지난달 대구 아파트 거래량은 1천82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천454건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다. 주택 시장 호황의 유통기한에 대해서는 시각이 엇갈린다. 긍정론을 설파하는 이들은 적어도 올해는 매매 시장이 버틸 것으로 본다. 공급과잉으로 보기엔 아직 여유가 있다는 게 이유다. 올해 대구의 입주 예정 물량은 1만3천여 가구로 평년 수준과 다르지 않다. 신규 공급 물량 역시 1만5천~1만6천 가구로 감내할 수준이라는 것이다.서비스 업종 위주인 대구는 제조업 침체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고, 수성구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대구 집값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있다는 이유도 든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의 부동산 시장 규제가 다소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섞여 있다.그러나 부정적인 신호도 끊임없이 감지된다. 우선 거래량이 줄었다. 지난달 대구의 주택 매매 거래량은 2천39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천444건)과 비교해 30.5% 감소했다. 집값 하락에 대한 우려와 정부 규제가 맞물리면서 수요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선 탓이다.집값이 너무 올랐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달 대구의 아파트 중위 매매가격은 2억6천738만원으로 1년 전보다 5.5% 상승했다. 특히 중구(3억6천만원)는 16.1% 급등했고, 수성구(3억9천750만원)도 전년 동기 대비 11.9% 올랐다. 일부에서는 주택 가격 약세와 분양 시장 호황이 이어지다가 5, 6월쯤 한계에 부닥칠 것으로 전망한다.부동산 투자에 대한 불안감은 기존 주택 매매 시장을 억누르는 요인이 된다. 과거에는 새 아파트가 분양하면 주변의 기존 아파트도 가격이 오르는 추세를 보였다. 그러나 시장 침체와 함께 기존 주택 가격은 제자리를 맴돌 가능성이 높다. 땅값과 노무비 상승으로 신규 분양가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고려하면 기존 주택을 처분하고 새 아파트로 이사가려는 이들은 더욱 부담을 느끼게 된다.시장 침체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시장이 조정기로 접어들면 정말 집이 필요한 실수요자에겐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건설사들도 신규 분양 아파트의 입지와 분양가 등 분양성을 더욱 신중하게 검토하게 돼 전반적인 상품성도 높아진다. 견본주택 공개 일정조차 하루 전에 공개하는 공급자 위주의 분양 행태도 사라지게 된다.대구 주택 시장의 '나홀로 호황'은 머잖아 막을 내릴 것이다. 중요한 건 어떻게 '연착륙 시키느냐'다. 정부의 선제 조치와 투자자들의 혜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2019-04-18 17:36:50

이창환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권력 구조, 개편해야 한다

최근 사석에서 여권 인사를 만났다. 오랜 당 생활 덕분에 여권 내부 기류에 밝았다. "정권을 뺏기면 (감옥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 소신껏 일을 해서 정권 재창출을 하면 다행이고 못하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니냐?" 적폐 청산이 가져올 후폭풍에 적잖은 부담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정권을 뺏기면 또 다른 적폐로 몰릴 것이란 우려가 강했다.여권은 정권 재창출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교육 정책까지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구체적 예산 확보 방안 없이 올해 2학기부터 고교 3년생을 대상으로 무상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내년 선거를 겨냥한 지지층 확대라는 해석이 강하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투기 논란과 부실한 장관 후보자 검증에 대한 청와대와 여권의 해명이 국민의 눈높이와 동떨어진 이유도 정권 재창출 프레임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다.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의 맹공에 밀리면 정치 일정에 차질을 빚는다는 조급함이 결기 묻은 반박에 드러난다. 어떻게 해서든 정권 재창출로 적폐로 몰리는 상황만은 피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인다.반대로 한국당이 정권을 가져와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현 정권 인사는 대거 내몰리고 정권 입맛에 맞는 인사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앞선 정권의 정책은 싫든 좋든 문패를 바꿔 달게 되고 정권 재창출에 사활을 거는 상황이 반복된다. 적폐 청산과 정치 보복이 재연될 공산이 크다.이런 극단적 정치에 언제까지 국민들은 마음을 졸여야 하나? 대한민국은 대통령 중심 국가다.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전부'를 가지거나, 아무것도 없는 '전무'인 승자 독식 구조다.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적폐로 내몰리는 비정치적이고, 대결적인 정치 문화가 일상화되고 있다.이런 정치 문화에서는 대구경북과 광주전남은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환호와 분노를 동시에 분출하는 영원한 상극 관계로 지내야 한다. 윈윈은 절대 나올 수 없다.대통령이 모든 권력의 정점에 서는 권력 구조를 바꿔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대통령이 나와도 현 권력 구조에서는 국민 통합은 요원하고 반목과 갈등이 분출한다. 대통령의 인기가 높을 때는 그나마 국정이 운영되지만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여야는 정쟁에 시간을 다 소비한다. 여야 간 악다구니로 국회의 제 기능은 사실상 마비된다.이런 국회에 실질적인 권한은 막강하다. 대통령의 핵심 정책도 국회가 거부하면 안 되고, 국무총리도 국회가 동의하지 않으면 임명할 수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정부 조직 개편안의 국회 처리가 지연되면서 취임 한 달 동안 국무회의조차 열지 못했다.대통령의 권한을 줄이고 국회가 권한만큼 책임을 가져야 한다. 국회의 책임 정치를 높이지 않고 현행 정치시스템이 지속되면 극단의 정치를 종식시킬 수 없다.대런 애스모글루 MIT 경제학과 교수와 제임스 로빈슨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저서에서 한 나라가 어떤 정치제도와 경제제도를 채택하는지에 따라 번영할 수도, 퇴보할 수도 있다고 했다. 헌법경제학 창시자로 1986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뷰캐넌(1919~2013)은 정치 실패도, 경제 실패도 근본 원인은 헌법의 실패에 있다고 강조했다. 현 헌법상 권력 구조를 바꿔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

2019-04-11 16:57:42

임상준 경북부 차장

[청라언덕] 반바지와 오보에

프랑스의 전쟁 영웅 잔 다르크가 화형된 까닭은 '마녀'란 누명이 씌워져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는 게 통설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마녀'라는 죄명 못지않게 중요한 범법 사유가 하나 더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여자인 잔 다르크가 남장을 한 불경죄다. 작금의 잣대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나 당시에는 여성의 남장은 큰 죄악에 속했다. 그녀는 전장에서 늘 활동하기 편한 남성용 재킷과 반바지 차림 갑옷을 입었다. 당시만 해도 여성이 다리를 보인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드러낸다는 의미가 강했다.결국 콩피에뉴 전투(1430년)에서 영국군에게 붙잡힌 그녀는 마녀로 몰려 종교재판에 회부됐다. 이후 수감생활 중에도 지급된 여성용 드레스를 끝끝내 거부하고 반바지를 고수했다. 꼬투리 잡기에 안달이 난 재판관들에게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그녀의 진짜 죄명은 남성복 반바지 착용이었다면 과장일까.지난달 북한 리용호 외무상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 북측 대표단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한 호텔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한 것과 관련, 사진 한 장이 화제가 됐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 회견인 터라 한 외신기자가 상의는 넥타이를 맨 정장, 하의는 미처 옷을 다 챙겨 입지 못해 반바지 차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미 하노이 회담 결렬에 따른 북한의 조급함이 사진 한 장에 고스란히 담겼다.11일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외교·안보 핵심 인사들이 잇따라 미국을 방문, 북미 협상 교착 타개를 위한 사전 조율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하노이 결렬' 이후 북한은 단계적 접근, 미국은 일괄타결식 해결을 내세우며 강경하게 대립하고 있어 꼬인 실타래가 쉽게 풀릴지는 의문이다.급할수록 돌아가라는 격언이 떠오르는 대목이다.조급함은 오히려 악수로 이어진다는 점은 이미 한미 방위비 협상 등에서 경험했 듯 경제적 손실로 돌아올 수 있다. 안달 난 쪽이 항상 더 많은 걸 내어준다는 건 연애든 외교든 진리다. 느긋하면서도 대화의 주도권을 한국이 가져올 수 있는 부드러운 협상안을 개발해야 한다. 운전석, 조수석 등 운전대에 집착하지 말고 자가용 밖으로 뛰쳐나오는 새 패러다임을 짤 필요가 있다.세계 3대 앙상블인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단원들이 매번 투표로 악장을 뽑아 공연을 이끈다. 튜닝은 관현악기인 오보에(프랑스어로 높은 음을 내는 나무라는 뜻)에 맞춘다. 오보에는 빠를 때는 중세 귀족풍의 분위기를 보이지만, 보편적으로 마음을 가라앉게 하고, 때로는 구슬픈 음색을 자아내기도 한다. 한때 중세 유럽 때는 오보에의 고운 음색이 신성함과 부딪힌다(영혼까지 빼앗긴다)는 이유로 연주가 금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천상의 소리 이면에는 너무 튀어 자칫 앙상블을 망치는 악마로 간주되기도 한다.1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때로는 귀족풍으로 당당하게, 일부 현안에선 부드러우면서도 상대의 마음과 영혼까지 가져올 수 있는 조율(튜닝)이 되길 기대한다. 그렇지 않고 빠른 결과물을 얻기 위해 조급함을 가진다면 한미 회담이란 앙상블을 그르칠 수 있다. 다소 초조하더라도 우리의 속내까지 다 드러내는 반바지 차림이어서는 곤란하다. 반바지 입을 때는 아직 한참이나 더 남았다.

2019-04-04 19: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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