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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언덕] ‘10조(兆)’쯤이야

[청라언덕] ‘10조(兆)’쯤이야

칠순의 촌로(村老)는 평생 못 해본 일이 하나 있다. 몇 살 덜 먹은 아내는 딱 한 번 경험했다. 스물두 살 되던 해 코 닿을 거리에서 시집온다고 이사(移徙)를 맛봤다. 그러고는 평생 그 자리서 늙었다.자식은 젊어서 이사를 했다. 학교와 직장을 찾아 도회지로 떠났다. 이들에게 '이사'는 고립을 벗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노부부(老夫婦)는 세상을 등질 때까지 해서는 안되는 금기(禁忌)처럼 여겼다.코로나19는 이사 없는 마을까지 잘도 찾아왔다. 백발의 동무들은 노닥이던 마을 회관을 떠났다. 코로나는 뜸했던 자식 발길마저 잘라냈고 마을은 더욱 적막해져 갔다.고목도 꽃 필 날이 있다 했던가. 촌가마다 공짜 돈이 생겼다. 자식들이 오지 않는 대신 코로나 긴급생계지원금이 왔다. 가지(子女)가 많아야 모을 법한 용돈만큼, 목돈이 들어왔다. 한동안 넉넉했다. 코로나가 자식보다 나은 '효자'라고 입을 모았다.굴뚝마다 고기 굽는 냄새가 배었다. 윗마을 아랫마을 할 것 없이 동네 개들이 킁킁대며 혀를 낼름거렸다. 무섭긴 해도 코로나는 사람이나 개나 모두에게 좋았다.문제는 그 한철이 지나서 생겼다. 통장을 빼꼼히 들여다보던 눈은 '또 목돈을 언제 주느냐'에 멈췄다. 쟁기와 호미는 진작에 놓았다. 코로나가 코와 혀를 마비시킨다더니, 만원에도 벌벌 떠는 촌로는 이제 큰돈 아니면 쳐다도 안 보게 됐다. 이제나저제나, 코로나 지원금만 기다리고 있다.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수천억원대 비자금을 만들었다. 세간은 천문학적 규모라며 입을 떡 벌렸다. 이제는 수천억원에 경악하는 사람은 없다.코로나가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설 비용 10조원이란 예산에 찬사(?)를 쏟아냈다. 단군 이래 최대 공사, 20년간 먹고살 재원…. 하지만 불과 몇 달 만에 10조는 명함도 못 내밀게 됐다.코로나 뉴딜에 500조, 국민기본소득 120조, '조'(兆) 단위는 이제 100단위쯤은 되어야 맛이 난다. 코로나가 '1조'를 '껌값'으로 만들었다.1조가 얼마나 큰돈인가. 6천원짜리 자장면으로 온 국민이 삼시 세끼를 해결하고도 1천만 명은 또다시 야식으로 먹어야 하는 금액이다. 장당 0.97g 나가는 5만원권 지폐는 1톤 트럭으로 열아홉 대 하고도 반 차를 더 실어야 1조가 된다.정치권은 대한민국의 40%대 부채 비율을 낮다고 보고 있다. 60%도 괜찮다고 한다. 10% 증가할 때마다 200조가 생겨난다니 20% 올리면 공돈 400조원을 만들 수 있다. 부채 비율이 한국은행 이자 도깨비방망이와 진배없다.미국·일본·유럽은 세계에서 통용되는 돈을 찍어내는 나라다. 물이 있는 고무 대야에 소금을 더 타고 빼고 한들 물과 소금이 어차피 이들 나라 것이라 농도는 문제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기축통화 '기침'에 감기 몸살을 앓는 우리나라는 그럴 수가 없다. 소금값은 언젠가는 치러야 한다.국제 신용평가사들은 한국 부채 비율의 마지노선을 46%로 보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그런데도 '아전인수'(我田引水) 통계를 들고 부채 비율 높이라며 '염전'(鹽田)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앞으로 '1조, 10조밖에 안 드네' 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코로나 청구서는 곧 날아든다. 서서히 나타나 '나와 상관 없는 일이야'라는 착시현상이 뒤따르겠지만, 연착하는 기차처럼 반드시 온다. '이사 없는 마을'까지 잘도 찾아온 코로나의 진짜 무서움은 바로 돈에 대한 무감각증(症)이 아닐까.

2020-07-02 15:24:37

[청라언덕] 누구를 위한 통합신공항인가?

[청라언덕] 누구를 위한 통합신공항인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의성·군위군 간 유치 신청 갈등으로 무산 위기까지 내몰린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 사업,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긋난 걸까? 이달 중순 통합신공항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대구시를 다녀간 국무총리 비서실 관계자들은 "예비이전후보지 선정 때부터"라고 동의했다는 후문이다.통합신공항 이전 사업을 둘러싼 숱한 갈등은 결국 최초 결정을 잘못 내렸기 때문이란 게 지역사회의 중론이다. 통합신공항 이전은 법적 절차에 따라 예비이전후보지 선정→이전후보지 선정→주민투표→유치 신청→최종 이전지 선정의 단계를 밟는다. 현재 이전 사업은 올 1월 21일 주민투표 이후 유치 신청 갈등에 발목이 잡혀 5개월째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다음 달 3일 예정의 이전부지 선정위원회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면 통합신공항 이전 사업은 '제3 이전후보지 재추진'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앞서 국방부는 지난 2017년 2월 통합신공항 예비이전후보지로 의성 비안·군위 소보 공동후보지와 군위 우보 단독후보지를 발표했다. 논란의 중심은 성주·고령 공동후보지 경우 고령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예비이전후보지에서 제외한 반면 의성·군위 공동후보지는 군위군의 반대에도 제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당시 군위군은 공동후보지에 대한 국방부의 의견 회신 요구에 '공동후보지와 단독후보지 주민 간, 지자체 간 갈등'을 이유로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공동후보지 선정을 강행했고, 여태 단 한 번도 강행 배경을 공식적으로 설명한 적이 없다.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또 다른 난맥상은 '누구를 위한 통합신공항이냐'는 점이다. 통합신공항 이전 건설 사업의 절대 명제가 대구경북 공동 번영임에도, 정작 공동 번영의 주체인 시도민 여론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지난 22일 대구시의회 통합신공항 건설 특위 결과 보고회에서도 "통합신공항 이전지 선정 과정에서 시민들의 의견은 진정 반영됐는지, 또 반영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앞서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지난해 10월 15일 대구시청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최종 선정 기준에 주민투표와 함께 시도민 여론조사를 반영하는 안을 추진한다고 밝혔지만, 여론조사 유불리를 따지는 지자체 간 갈등으로 또 무위에 그쳤다.각설하고, 이제 통합신공항 이전 사업은 '극적 합의냐' '재추진이냐' 중대 기로에 섰다. 아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여전히 최선은 지자체 합의다. 여기까지 온 이상 공동후보지가 됐든 단독후보지가 됐든 권 시장과 이 도지사가 의성·군위군 간 극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마지막까지 역할을 다해야 한다.그러나 끝내 합의에 실패한다면 더 이상 특정 지자체의 이기주의로 통합신공항 이전 사업이 표류하게 놔둘 순 없다. 제3 이전후보지, 통합신공항 이전 사업 재추진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이번에는 반드시 갈등의 여지를 원천 차단하고, 대구경북 시도민 여론을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합의 실패와 재추진에 따른 반대 급부, 이를테면 무책임 행정과 대구경북 리더십 부재에 대한 비판은 권 시장과 이 도지사가 온전히 감내해야 할 몫이다.제3 이전후보지 재추진은 지난 3년 5개월간 군위·의성군 단독·공동후보지 선정에 쏟아부은 시간과 예산, 모든 에너지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최악의 경우 시장직, 도지사직까지 내려놓겠다는 사생결단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대구경북 리더로서의 올바른 모습이다.

2020-06-25 16:10:24

[청라언덕] ‘말인따나’

[청라언덕] ‘말인따나’

'말인따나'.외국 말이 아니다. 대구경북에서 자주 쓰는 표현이다. 표준말로는 '내키지 않겠지만 말이라도 성의 있게' 정도가 되겠다. 보통은 따뜻하고 점잖은 말 한마디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사용한다. 또 서운함을 토로할 때 상대방을 책망하면서 말의 머리에 앞세우기도 한다.예를 들면 '말인따나, 고생했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형태로 활용한다. 최근 '여의도'에서 이 말을 자주 하고 듣는다. 우리 정치인의 말본새에서 지도자의 품격이 느껴지지 않아서다. 정치인에게 무기는 말과 글인데 그동안 너무 실망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였다.지난해 3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 대변인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해 달라"고 발언하자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태극기 부대가 써준 연설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응수했다. 심지어 문정선 민주평화당 대변인은 "숫제 일본 아베 총리의 수석 대변인 나베로의 빙의였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오죽하면 조원씨앤아이가 지난달 16일부터 18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천 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29.3%가 제20대 국회가 가장 잘못한 일로 '막말 논란 등 수준 낮은 국회의원 처신 문제'를 꼽았을까!제21대 국회 전반기 원 구성 협상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도 여야는 거친 설전을 벌이고 있고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는 주변 지인들의 입에서는 '말인따나'라는 탄식이 이어진다.아울러 '말인따나'가 요즘 여의도에서 많이 회자됐다는 건 최근 정치권에서 대구경북이 섭섭함을 토로하면서 어떤 상대를 성토할 일이 많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미래통합당이 제21대 국회의원선거 공천 과정에서 '텃밭'에 대한 오만함과 무례가 도를 넘었을 때, 4·15 총선 참패 후 당의 위기 수습 방안을 논의하면서 영남 2선 후퇴 주장이 나왔을 때,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보수' 언급마저 금지하며 당의 노선을 급격하게 왼쪽으로 옮길 때는 공사석에서 '말인따나'를 입에 달고 다니면서 열을 올렸다.김형오 전 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은 "보수의 본류인 대구경북에 미리 간곡한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공천 과정에서 다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보수당을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혜량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지역민의 양해를 구했어야 했다.총선 참패 후 수도권 통합당 당선인들은 "쫄딱 망할 위기에서 건져 주신 대구경북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다만 당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중도층을 공략해야 하기 때문에 내키지 않더라도 당분간은 저희에게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부탁을 했어야 했다.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성공적인 조국 근대화로 보수당이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경제적 토대를 마련해 주신 대구경북을 존경합니다. 든든한 버팀목인 여러분을 믿고 새로운 도전에 나설 텐데, 다소 낯선 상황이 생기더라도 저를 믿고 함께해 주십시오"라고 정중하게 예의를 갖췄어야 했다.나랏일이고 명분에 동의하면 격식을 갖춘 말 한마디에도 자신의 곳간을 열어 주는 이들이 대구경북 사람들이다. 그런 마음으로 독립운동의 선두에 섰고 한국전쟁 때도 목숨을 나라에 바쳤다.대구경북이 대통령선거(2017년)-전국동시지방선거(2018년)-국회의원선거(2020년)에서 모두 참패해 위상이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통합당에 뭐 그리 대단한 걸 바랄까!'그저 말인따나….'

2020-06-18 15:02:00

[청라언덕] 친일과 반공 사이

[청라언덕] 친일과 반공 사이

친일 청산. 광복 후 7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다 풀지 못한 숙제다. 잊을 만하면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은 되풀이되고, 이에 동조하는 이들이 국내에도 활개를 친다. 이제라도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면 '정치적 탄압'이라는 딱지를 붙여 비난하는 이들이 꼭 있다.6일은 현충일이었다. 애국선열과 전몰장병을 기리는 날이다. 이 와중에 '친일 파묘(破墓·무덤을 파내는 것)' 논란이 불거졌다. 국립현충원에 묻힌 친일 인사들의 묘역을 없애자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일부는 관련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특히 '6·25 전쟁 영웅'이라는 백선엽(99) 전 장군을 두고 말이 많다. 친일 전력(그가 설립, 운영했던 사학재단 선인학원의 총체적 비리가 아니라) 때문에 눈을 감아도 현충원에 안장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는 일제강점기 독립군 토벌에 앞장선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한 이력이 있다.간도특설대는 일부 고위 간부 외엔 조선인 위주로 운영한 특수부대. 일제의 괴뢰 정부인 만주국 소속이었다. 유능했지만 잔인함으로도 악명을 떨친 것으로 알려졌다. 백 전 장군은 1943년 4월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 2년간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다.책 '간도특설대'(김효순 지음)에 따르면 백 전 장군의 회고록 '군과 나'(일본어판)에는 그곳에서 복무했던 내용이 나온다. 그는 간도특설대가 추격했던 게릴라 중 독립군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죄는 없었다. 다만 동포에게 총을 겨눈 건 사실이고 비판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지금도 사죄, 반성은 없다.일제에 부역하던 이들은 해방 후 미 군정 치하에서 권력 집단으로 모습을 바꿨다. 미 군정은 통치 편의를 위해 이들을 청산하는 대신 기용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도 한몫했다. 1949년 6월 6일 무장경찰들이 반민특위에 난입, 무력화하도록 조치했다. AP통신에 제 입으로 밝힌 얘기다.군인권센터에 따르면 현충원에 묻힌 친일 군인은 모두 56명(일본군 20명, 만주군 36명). '친일인명사전'을 참고해 파악한 숫자란다. 만주군 중 14명은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다. 이들은 모두 해방 후 국군으로 임관했고, 반공의 최전선에 섰다. 이 중 백 전 장군을 포함해 46명이 별을 달았다. 친일 행위자들이 반공주의자로 간판을 바꿔 승승장구한 셈이다.보수, 우파라는 이들은 백 전 장군을 반공에 앞장선 민족 원로라 추앙한다. 미래통합당은 그가 마땅히 서울 현충원에 묻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일본과 싸운 이순신 장군, 홍범도 장군에 견주며 영웅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마침 7일은 홍 장군이 독립군을 이끌고 일본군을 대파한 '봉오동 전투 100주년'이 되는 날. 홍 장군의 유해는 이역만리 카자흐스탄에 묻혀 있다.이 갈등은 지난해 서훈 논란을 빚은 약산 김원봉의 경우와 묘하게 대비된다. 의열단 수장이었던 그는 일제에 맞서 치열하게 무장 독립투쟁을 하다 해방 후 북한 정권에 몸담았다. 일제와 싸우다 북한으로 간 약산은 거부하면서 일제를 위해 총칼을 잡다가 북한과 싸운 백 전 장군은 품는다? 친일은 반공으로 충분히 덮을 수 있는 문제라는 건가. 반공으로도 지우지 못할 죄 아닌가.일제의 폭정에 맞선 항일 행위는 자신의 목숨에다 가족, 집안, 친구까지 파멸로 몰아갈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고난을 감내하지 않았다고 비난하긴 어렵다. 그렇다고 그 반대편에 섰던 이들을 미화해선 안 된다. 나중에 사회 지도층이 됐다면 더욱 그렇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서도 그런 역사가 반복돼선 안 된다.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2020-06-11 18:32:53

[청라언덕] 대구의 시민 의식은 세계 최고다

[청라언덕] 대구의 시민 의식은 세계 최고다

전국으로 확산된 세입자 월세 감면 운동은 지난 2월 대구에서 시작됐다. 서문시장의 한 상가 주인이 "월세를 받지 않겠다"며 20여 명의 세입자에게 돌린 문자가 발단이 됐다. 건물주는 "그동안 도움받던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돌려주는 것"이라며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끝까지 꺼렸다.이번 사례만 보더라도 코로나 정국에서 보여준 대구의 시민 의식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할 만하다. 적어도 서울에서 태어나 이제 막 대구 생활 6개월 차에 접어든 기자의 시각에선 말이다.직업 특성상 서울-대구 간 왕래가 잦은데, 가장 큰 차이점은 택시운전사들의 마스크 착용이다. 수도권에선 답답하다는 이유로 절반가량은 착용하지 않지만 지난 4개월간 대구에서는 같은 상황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좁은 차 안에서 내만 편하자고 (마스크) 벗으마 어데 내만 걸리능교. 내 손님, 그 가족들, 싹 다 안 걸리겠능교." 오랜 마스크 착용으로 귀에 진물까지 보이던 한 대구의 운전기사 말이다.대구의 거리두기 운동은 어느 지역보다 철저했다. 젊음의 상징인 동성로는 한산했고, 경로당은 폐쇄하는 등 거리두기에 남녀노소가 없었다.월세 감면에도 서문시장 상인들은 스스로 문을 닫았다. 손님의 드문 발길도 그렇지만 방역 취약 지역으로 판단해 6·25전쟁 통에도 하지 않았던 임시 폐업을 상인들이 나서서 결정한 것이다. 다른 상권도 방역을 이유로 한동안 문을 닫았고, 교회·사찰도 온라인으로 대체하는 등 대구 시민들은 한동안 금전과 '믿음'까지 양보하며 코로나와 싸웠다.마스크 미착용자에 대한 대중교통 이용 금지 등 코로나 방역 대책도 대구가 선도했다. 대책 마련을 공부하다 '역학조사' 전문가가 된 권영진 시장은 5개월째 시청 집무실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중증 치매 환자인 어머니와도 생이별 중이다. 그러면서 휴일에 제 돈 내고 지인과 골프를 쳤다는 이유로 수족과 같은 공직자를 잘라내는 등 코로나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한 행정 기준을 적용했다.이 같은 시민 의식이 '총선 싹쓸이'로 인해 또다시 '보수꼴통'으로 폄훼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총선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25곳의 TK 지역구 가운데 무려 9명의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30% 이상의 득표를 기록해, 당선 가능 고지에 올라섰다. 또 경북 경주 1곳을 제외하면 민주당 후보 전원은 15% 이상을 득표해 선거 비용을 모두 돌려받았다. 선거비 보전은 다음 총선 도전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득표 기준이다. 자칫 상대를 헐뜯는 것 같아서 정확한 수치를 비교 않겠으나, 호남에서 통합당 후보들이 얻어낸 결과와는 크게 다른 점은 확실하다.특히 중요한 점은 지역에서 진보 정당 후보자들의 득표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구경북이 어찌 꼴통일 수가 있겠는가? 오히려 1인 승자 독식 구조의 현행 선거법 허점으로 책임을 돌려야 하는 것이 더 정확한 분석이 아닐까 싶다.바닥을 치는 지역 경제를 볼 때 21대 국회에서 TK 위상은 시급한 숙제다. 민주당의 전 상임위원장 독식이 현실화되거나, 미래통합당이 중도를 표방하며 보수층을 소외시킬 경우 지역의 설 자리는 사라질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이제는 당당히 외치며 대외 설득에 나서야 한다. 더 이상 대구경북은 꼴통 보수가 아니라고! 코로나와 싸워 온 정직하고 착한 시민이 있을 뿐이라고! '개발'이란 유혹을 뿌리치고 후세대를 위한 근대 유산을 가장 많이 보전하고 있는 지역이라고! 말이다.

2020-06-04 17:59:16

[청라언덕] ‘빈대’ 잡기 후폭풍

[청라언덕] ‘빈대’ 잡기 후폭풍

분양권 전매 제한 강화를 골자로 한 정부의 5·11 정책 발표 후 지역 건설·부동산 관계자들의 말이 부쩍 많아졌다. 정확하게는 불만과 우려가 늘었다.규제지역에 한정했던 전매 금지(소유권 등기 이전 때까지)를 대구 등 지방 광역시 전체로 확대하겠다는 정부 발표는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정책 21탄으로 정부는 이를 담은 주택법 시행령 개정을 8월까지 완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비규제지역의 짧은 전매 제한 기간을 악용해 전매를 목적으로 청약 시장에 투기 수요가 유입, 청약이 과열되고 이 탓에 실수요자들의 당첨 확률이 낮아지는 등 피해를 본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곁들여 수도권과 광역시 민간택지 단지의 고경쟁률을 뚫은 당첨자 4명 중 1명이 전매 제한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분양권을 매도했다는 자료를 내밀며 "전매 제한 기간이 늘어나면 실수요자의 당첨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청약 시장에서 가수요, 투기 요소를 걷어내겠다는 정부 방침은 그른 게 없다.실제로 코로나19에 대구의 부동산 거래 시장이 얼어붙었지만 신규 분양 단지들의 나 홀로 '불패'는 이어지고 있다. 청약 경쟁률이 두 자리, 세 자리에 이르렀으니 정부 말대로 실수요자의 당첨은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다.그럼에도 "빈대(투기 세력) 잡자고 초가삼간(지역 부동산 시장)을 태우는 꼴"이라 힐난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업계 이기주의로만 치부할 수 없다.정부는 집값을 잡겠다고 수많은 정책을 내놨고 지금까지의 방식은 과열지구를 콕 집어 규제를 가하는 '핀셋' 방식이었다. 그러나 과열은 규제를 피한 주변으로 옮겨가는 '풍선 효과'가 나타났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예 지역 특성, 사정 살피지 않는 '뭉뚱그리기식' 정책을 꺼냈다.전매 금지를 대구 전역으로 확대하면서 나타날 현상은 '수성구'와 '비(非)수성구', '달구벌 라인'과 '비달구벌 라인' 간 양극화 심화다.투기과열지구로 묶인 수성구는 대출 규제와 함께 전매 금지라는 제약을 받아왔는데, 대구 전역이 전매 금지가 되면 수성구를 옥죈 규제 하나가 떨어져 나가는 셈이 돼 수성구 쏠림 현상이 다시 가속할 것이라는 건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예상해볼 수 있는 결과다.대출 규제 장벽은 존재하니 자금력이 수성구 진입의 자격 요건이 되고 수요가 집값 상승을 부를 것이라는 건 상식이다.한국감정원의 주간 아파트 동향에 따르면 3월 이후 하락 후 보합을 이어가던 수성구 매매가는 정책 발표 뒤 일주일(18일) 만에 대구서는 가장 큰 폭인 전주 대비 0.08% 상승한 데 이어 25일에도 0.07% 뛰었다.비인기 지역은 반대 상황에 몰릴 게 뻔하다. 청약 당첨 기회가 높아졌다고는 하나 가격 상승이 예상되지 않는 곳에 애써 쌓은 청약 가점을 사용하려는 이들이 많지 않아 미분양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시장 반응에 사업 외면·포기, 부도 사태 등이 발생하면 주택 공급의 지역적 불균형은 물론 코로나19로 휘청거리는 지역 경제 전반이 침체할 수 있다는 건 기우일까.이런 지역 사정을 잘 아는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구 단위 규제의 광범위함을 지적하며 읍·면·동 단위로 축소하는 내용의 주택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청약시장에서 통상 투기 수요 유입 여부를 경쟁률 20대 1로 본다. 규제의 칼은 이런 곳에 휘두르면 된다. 빈대 잡자고 너른 지역 불을 지르는 건 무모함이며 편의주의적 발상이다. 지역 사정 살피기가 귀찮았다면 부지런함이 요구된다.

2020-05-28 15:19:50

[청라언덕] 구독경제와 대학 교육

[청라언덕] 구독경제와 대학 교육

대구의 한 대학 관계자(50대)는 요즘 귀가하면 '넷플릭스'를 시청하기 바쁘다. 지난달에 새 TV를 장만한 기념으로 출가한 딸이 넷플릭스에 가입해 줬는데 영화나 드라마 등 콘텐츠를 마음껏 선택해 볼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주말에 '미드'(미국 드라마의 준말)를 보고 있노라면 반나절이 금세 간다며 너스레를 떨었다.코로나19 사태로 넷플릭스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외부 활동이 크게 줄고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넷플릭스가 새삼 주목받은 것이다. 미국 기업인 ㈜넷플릭스로서는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고객을 사로잡는 데 큰 전환점이 된 듯하다.넷플릭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구독경제'라는 개념이 빠지지 않는다. 구독경제의 대명사로 넷플릭스가 꼽히기 때문이다. 구독경제는 일정액을 내면 사용자가 원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공급자가 주기적으로 제공하는 신개념 유통 서비스. 매월 1만원 내외(서비스에 따라 차등)를 내면 각종 콘텐츠를 볼 수 있는 넷플릭스의 운영 체제가 대표적이다.넷플릭스의 세계적인 성공은 구독경제 보편화에 가속을 붙였다. 세계적인 기업인 아마존이나 구글 등이 이미 구독경제를 활발하게 활용하고 있으며 최근 네이버나 카카오 등 국내 플랫폼 기업들도 구독경제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구독경제는 이용자에게 크게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매달 비용을 내면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운영 기업에는 따박따박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구독경제는 대학생들과도 떼려야 뗄 수 없다. 요즘 20대들은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을 손쉽게 접하다 보니 누구보다 디지털과 친숙하다. 이들에게는 인터넷을 통한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일상화돼 있다. 방송이나 영화, 음악은 물론, 배달이나 배송까지 크고 작은 구독 서비스를 이용 중이다. 대학생 A(22) 씨는 "유료인 것이 다소 부담은 되지만 언제 어디서나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데다 맞춤형 서비스가 이뤄져 대접받는 느낌도 있다"고 말했다.구독경제가 대학생에게 친숙한 만큼 대학들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영남대는 올해 1학기부터 구글 기반의 G-Suite 서비스를 시작했다. 대학 이메일 계정을 사용하는 모든 구성원이 무료로 구글 드라이브와 메일을 무제한으로 이용하고 구글 미트(Meet)를 활용, 실시간 온라인 화상 강의나 자료 공유 등을 할 수 있는 것이다.원래 이 서비스는 유료지만 교육기관에 한해 구글이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이 대학 계정을 사용하는 한 누구나 공짜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구글이 대학생들을 잠재 고객으로 보고 펼치는 일종의 마케팅이지만 대학 입장에서는 이를 잘 활용하는 사례다. 당연히 학생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찾아보면 이처럼 무료나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글로벌 IT 기업들의 서비스가 많을 것이다.더 나아가 기업들의 구독경제 방식을 벤치마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대학 특유의 콘텐츠를 개발해 재학생이나 아니면 졸업 후 사회인이 된 졸업생이라도 정기적으로 구독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볼 만하다.최근 대학마다 진행하고 있는 온라인 강의도 양질로 제작한다면 하나의 좋은 구독경제 콘텐츠가 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대학이 일정 부분의 수익을 올릴 수도 있고 자연스레 대학 인지도를 높이는 효과도 볼 수 있다. 구독경제가 앞으로 대학 교육의 트렌드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2020-05-21 18:19:28

[청라언덕] 공익과 프라이버시의 위험한 줄타기

[청라언덕] 공익과 프라이버시의 위험한 줄타기

대구 수성구 수성알파시티 내 대구디지털진흥원에는 '5G 스마트시티 통합관제센터'가 구축돼 있다. 이곳에서는 수성알파시티 내 실증도로 운영과 지능형도로안전 시스템 도로 위험 정보 제공, 불법 주정차 무인 관제, 스마트 가로등, 차량번호 인식, 스마트 워킹, 지하 매설물 관리 등 사물인터넷을 이용한 모든 서비스를 관장한다.일렬로 설치된 모니터에는 무단 횡단하는 보행자와 불법 주정차, 범죄 발생 여부, 통과 차량 수, 과속 건수, 유동 인구 숫자까지 등장한다. 이 같은 정보는 100여 개의 서버에서 수합하고 인공지능이 정보를 분석한다.또한 실시간으로 행인의 얼굴을 분석해 동일인 여부를 판단하고 특정 지역 내에서 행인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사람의 움직임을 분석해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있는지도 감지할 수 있다.만약 이 관제 시스템이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일어난 서울 이태원 일대에 구축돼 있었다면 어땠을까. 정부가 이 시스템에 정부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신분증 얼굴 사진을 제공했다면 행인의 얼굴 영상과 대조해 이태원을 찾은 이들의 신원을 모두 특정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명백한 불법이지만 중국에서는 이미 시행하고 있는 생체 감시 방식이다.인공지능 CCTV가 아니더라도 개인을 추적할 수 있는 기술은 굉장히 많다. 이태원발 코로나19 확산에서 보듯 휴대전화와 기지국의 통신 기록과 수많은 CCTV, 신용카드 결제 기록, 모바일 기기의 와이파이나 블루투스 통신 기록 등으로도 개인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지금과 같은 비상사태에서 사생활 보호와 인격권에 대한 요구는 생명을 위협하는 바이러스 확산 공포를 이길 수 없다. 시민들은 공익을 위해 통제를 용인하며, 감시에 협조한다. 방대한 개인정보는 막강한 힘을 부여하고, '빅브라더'를 택한 정부는 그 편리한 권력을 놓기 주저한다.세계 각국은 코로나19라는 위기 상황에서 시민 감시를 확대하고 있다. 확진자 동선 추적이 인권 침해라고 비난하던 유럽 국가들도 휴대전화 위치 추적 정보를 이용할 수 있도록 비상조치를 발동했다.정부도 코로나19 경제 위기 대응을 명분으로 개인정보 빗장 풀기에 나섰다. 개인의 정치적 견해나 정당·노동조합 가입 여부, 진료기록, 성생활 등 사생활과 연관된 개인정보라도 가명으로 처리하면 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정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결합되고 가공돼 어딘가에서 쓰일 수 있는 셈이다.'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코로나 위기를 맞아 인류는 특별히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고 말했다. 전체주의적 감시 체제와 민족주의적 고립의 길로 갈 것인지 아니면 시민사회의 역량 강화와 글로벌 연대의 길로 갈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되면 정보 보호 분야에서 공익과 개인의 사생활 보호가 충돌할 때 타협점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증폭될 것이다. 기존의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인식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악용이 두려워 사용자 인식 기술의 발달을 막을 순 없다. 그러나 개인정보에 어느 수준까지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규정하고 어길 경우 확실하게 책임을 묻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경제 회복을 이유로 방치하면 사생활 보호와 인격권이라는 기본권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수 있다.

2020-05-14 16:54:24

[청라언덕] 야누스(코로나19)와 프로메테우스(산불)

[청라언덕] 야누스(코로나19)와 프로메테우스(산불)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인간사의 천태만상(千態萬象)이 녹아 있다.인기 방송 드라마 '부부의 세계'서부터 세계를 '팬데믹 공포'로 몰아넣은 코로나19까지…. 신화 속 신(神)들의 삶과 닮았다.해당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으로 손색 없는 바람둥이 '제우스'. 그의 여성 편력을 쫓아다니며 보복하는 아내 '헤라'는 극 중 여배우를 연상시킨다.코로나19는 얼굴이 두 개인 '야누스'와 비슷하다. 건강한 청장년층은 경증으로 지나치지만 고령자, 기저질환자는 치명적이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조차 '두 얼굴을 가진 바이러스'라고 표현했을 정도다.'코로나'란 병명을 태양의 corona(왕관)에서 따왔다는 데, 태양신이자 의술의 신인 '아폴론'이 통곡할 노릇이다.'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위해 제우스로부터 훔쳤다는 불이 '화'가 된 사례도 잇달았다. 특히 지난달 발생한 안동의 대형 산불은 도민 가슴을 아프게 했다.이철우 경북도지사의 '산불 만찬' 논란에선 '프로크루스테스' 침대가 엿보인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침대의 길이에 맞춰 나그네의 키를 늘이거나, 잘라 죽인다. 미리 답을 정해 놓고 자기 생각에 맞추는 '편견'을 빗댈 때 자주 쓴다.이 도지사는 이날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도지사 특별보좌관'으로 데리고 있던 젊은 당선인에게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국비 협조를 구하며 '상전' 모시듯 떠받들었다. 국토교통부 차관을 지낸 한 당선인에겐 차질 없는 통합신공항 사업을 간청했다. 디오니소스(술의 신)가 함께 했더라면 '국비 확보', '통합신공항' 건배주가 고작 두세 잔에 끝나지 않았을 거다.그럼에도 일부 언론은 야당 도지사에게 '산불 술판 프레임'을 걸었다.신화에서 영웅의 헌사 뒤에는 늘 형벌이 따라다닌다.프로메테우스는 불을 절도한 죄로 끊임없이 재생되는 자신의 간을 독수리에게 쪼여 먹힌다. 이 도지사는 비록 억울한 지적일지라도 '도백의 헌사'로 삼고 '뚜벅이' 도정 행보를 이어 가야 한다.성추행으로 낙마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저승의 신 '하데스'(보이지 않는 자)를 불러낸다. 숨어 지내며 '모습을 감추고 있는' 오 전 시장과 흡사하다. 그가 쓰고 다니는 '퀴네에'(보이지 않게 하는 투구)에선 "사람 잘못 봤다"며 얼굴을 가린 오 전 시장의 '선 캡'이 떠오른다.미래통합당은 미노왕의 미궁(迷宮)이 재현된 듯하다.막장 공천이 부른 총선 패배와 당 수습은 꼬일대로 꼬였다. 출구를 찾아 줄 아리아드네(크레타의 공주)의 실타래도, 이카루스의 밀랍 날개도 없다.코로나 긴급생계지원금, 코로나 뉴딜 등 빚을 내 '선물 보따리'를 안기는 정부는 '판도라'(온갖 선물을 다 받은 여자)도 말릴 지경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판도라 상자'에 마지막 남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지난 총선에서 여당을 전폭적으로 밀어줬다. '바다 거품'에서 태어난 '아프로디테'(미의 여신)의 유혹처럼 '퍼주기'가 '거품 경제'일지라도….정작 문제는 K방역(코로나19)에 성공한 이후인 K경제다. 나랏빚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만 가는 데다 나라마다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있기 때문이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대한민국호는 난파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해답은 하나다.정부의 탈원전과 소득주도성장 등 한국 경제의 걸림돌로 지적돼 온 여러 정책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또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과 반목은 모두 '레테의 강'(망각의 강)에 띄워 보내고 협치 속에서 올바른 항로를 찾아야 한다. 경제와 서민의 삶이 순항할 수 있다면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아니라 제우스의 번개라도 훔쳐 낼 일이다.

2020-05-07 16:40:43

[청라언덕] 낭랑 18세

[청라언덕] 낭랑 18세

역시 '4월은 잔인한 달'인가 보다. T.S.엘리엇이 시 '황무지'에서 읊은 것처럼. 우리 과거만 돌이켜봐도 그랬다. 제주 4·3 사건, 세월호 침몰 사건 등 가슴 아픈 일들이 4월에 일어났다. 올해라고 다르지 않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우리 학교는 사상 처음으로 '온라인 개학'했다.엘리엇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참혹하고 공허한 현실을 마주했다. 삶의 의욕을 잃은 사람들의 모습과 봄을 맞아 만물이 잠을 깨고 화사해지는 세상을 비교하면 역설적이다. 그러한 4월의 현실을 두고 쓰라릴 만큼 잔인하다고 표현한 것 아닐까.사람은 주관적이다. 자기 앞에 놓인 벽이 남들보다 더 높다, 자기가 겪고 있는 고난이 더 힘들다고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 그렇지 않더라도 말이다. 지금 삶을 대하는 태도와 현실 모두 엘리엇이 시를 썼을 때보다는 낫다 해도 마음이 아픈 건 매한가지다. 그래서 올해 4월도 참 잔인해보인다.세파에 시달리다 보면 고통에 대한 감각도 무뎌진다. 힘들지 않은 게 아니라 그러려니 한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사회에 막 발을 들였거나 사회 진출을 눈앞에 둔 세대라면 아픔이 더 크게, 어깨가 더 무겁게 느껴질 법도 하다. 만 18세 얘기다.18세 앞에는 '낭랑'(朗朗)이란 말이 종종 따라붙는다. '발랄한 18세 청춘'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현실은 발랄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이번에 만 18세까지 선거권이 확대돼 4·15 총선에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었던 정도가 긍정적 변화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는 이들의 삶도 뒤흔들었다.18세 고3은 초조하다. 대학입시가 코앞인데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 건지 불안하다. '온라인 개학'이 그런 마음을 달래주진 못한다. 대면 수업과는 질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18세 대학 1학년도 마찬가지다. 대학생활의 낭만 생각은 사치다. 온라인 강의로만 첫 학기를 보내야 할 판이다. 비싼 등록금 생각에 속이 더 쓰리다.그래도 희망은 보인다. 이들은 소극적이지 않았다. '낭랑 18세'의 노랫말처럼 저고리 고름 말아쥐고서 누구를 기다리지도, 버들잎 지는 앞개울에서 소쩍새 울 때만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이번 총선에서 이들은 보수보다는 진보를 택했다. 이 선택이 옳다는 게 아니다. 적극적으로 변화를 바라는 패기가 돋보인다는 의미다.이번 총선에서 전체 유권자 중 1.2%(54만9천여 명)가 만 18세였다. 이 중 14만여 명은 고3. 지상파 방송사 3곳의 총선 당일 출구조사 결과 비례대표 투표에서 이들 중 38.2%가 더불어시민당, 15.6%가 정의당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의당 지지율이 다른 세대보다 높다는 것도 눈에 띈다. 반면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은 17.2%에 머물렀다.보수를 표방한 제1 야당은 '공성'(攻城)에 실패했다. 촉 없는 화살을 날렸다. 이미 '제대로 된' 독재를 경험한 이들이 많은데 '독재 타령'이 먹힐 거라 생각했는지 의문이다. '온라인 개학'이 주요 이슈였는데 써먹지도 못했다. 최소한 준비 부족, 장기적인 대응 계획, 쌓여가는 노하우의 사후 활용 방안은 얘기할 수 있었다. 18세는 물론 학부모의 관심도 끌 수 있었다.제1 야당은 참패했다. 그런데도 '비례 정당 중엔 우리가 1등'이란다. 선거 직후 한 방송사 토론에서 야당 당선인 1명이 해맑게 웃으며 한 말이다. 어이가 없다. 첫 투표에 나선 만 18세도 안 찍길 잘했다고 느낄 만하다. 이들이 변화를 택한 패기를 잃지 않고 '낭랑'하게 잔인한 4월을 잘 견디길 빈다.

2020-04-23 17:13:44

[청라언덕] 늦은 후회의 대가

[청라언덕] 늦은 후회의 대가

인간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대표적인 수단은 '당근'과 '채찍'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어떤 때 당근을 쓰고 채찍은 언제 써야 하는 지다.최근 한 심리보고서는 당근과 채찍의 사용 시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목적이 시간상으로 멀리 있을 때는 당근을, 가까운 시제에 놓인 목적을 위해서는 채찍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어린 아들과의 약속을 예로 들자. 10년 뒤 아들이 좋은 대학 가기를 희망한다면 '만약 명문대학에 입학할 경우 스포츠카를 한 대 사줄게'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먼 미래를 위한 동기 부여는 그에 상응하는 달콤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반대로 당장 밥상머리에서 반찬 투정을 중단시키고 싶다면 혼을 내야 한다. 밥투정은 나쁜 것이고 반복되면 강한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각인시켜야 한다. 먼 미래의 일은 '보상'을, 가까운 시점의 변화 유도는 '제약'을 둬야 효과적으로 타인의 행동을 유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이 같은 논리는 사람들의 심리로 돈을 버는 보험업계가 즉각 도입했다. 각종 보험 상품의 광고에 적용한 것이다. '먼 미래에는 보상이 따라야 한다'는 조항은 종신보험, 연금 상품 등에 활용했다. 10년 이상 후에 수급할 수 있는 상품의 광고에는 모두 '가입 후 큰 결실을 보게 된다'는 식의 스토리가 있다.빠른 시일 내에 가입을 유도하는 상품은 암·상해보험이 대표적이다. 이들 광고에는 '당장 상해보험을 들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식의 위기감 고취가 반드시 저변에 깔려 있다. 4·15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대패했다. 결과적이지만 '당근과 채찍'의 논리와는 반대로 선거운동을 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우선 통일이나 대북 문제 같은 먼 미래의 사안에는 달콤한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오히려 반대와 비난으로 일관하며 '당근'을 제시해야 할 때 '채찍'을 들었다. 대북 문제와 관련해 통합당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면서 '통일 문제에 있어서만은 우리와 함께하면 여권이 제시한 그림보다 훨씬 더 큰 열매를 거둘 수 있다'고 달콤하게 접근했으면 결과가 어땠을지 궁금하다.'채찍' 전략이 주효했던 선거 직전일인 14일에는, 유권자에게 각인시켜야 할 위기감 조성을 엉뚱하게 했다. 황교안 대표는 이날 '세월호 막말 논란'을 벌인 차명진 후보를 '더 이상 우리당 후보로 보지 않는다'며 내부 징계를 거듭 강조했다. 투표일 직전 유권자를 상대로 들어야 할 '채찍'을 내부에 휘두르며 상대 진영의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촌극이 벌어진 것이다.황 대표는 15일 개표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선거 패배를 시인하고 대표직에서 자진 사퇴했다. 사퇴의 변을 통해 그는 "우리 당이 국민께 믿음을 드리지 못했다. 국민을 만족스럽게 하지 못했다"며 그제야 선거 전략이 잘못됐음을 시인했다.황 대표가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으나 선거 결과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앞으로 여권은 무려 180석의 의석을 무기로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국정 운영에 커다란 날개를 달게 됐다.반대로 통합당이 그토록 주장해 왔던 '견제와 균형' 논리와 '정권 심판론'은 소리 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정계 개편 바람 속에서 당을 해체해야 할 상황과도 직면할 수 있다.후회와 깨달음이 조금 늦은 대가로는, 통합당 입장에선 너무 큰 타격이다.

2020-04-16 17:22:49

[청라언덕] 미덥지 못한 전향(轉向)

[청라언덕] 미덥지 못한 전향(轉向)

4·15 총선 과정에서 여야 거대 양당의 수상한 행적 두 가지가 눈에 보인다. '긴급재난지원금'과 '종합부동산세'에 대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전향(轉向)이다. 표를 얻겠다는 돌변이어서 미덥지도 않고, 총선 뒤가 걱정인 행적이다. 지난 주말, 황교안 통합당 대표의 "전 국민 50만원 지급" 주장에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나머지 30%도 주자"고 맞받으며 재난지원금은 여야 대표의 의기투합으로 '보편적 지급'에 합의가 이뤄졌다.코로나19 사태가 심화한 후 국민 주머니에 직접 현금을 꽂아주는 재난지원금 논의에 불이 붙었을 때 "표 구걸 행위"라며 정부 여당을 비판한 황 대표의 돌변으로 민주당은 '포퓰리즘 공약'이란 공세를 피하고, 통합당은 당장 먹고살기 어렵단 국민 목소리를 반영하게 돼 서로 윈윈이 될 수 있겠으나 뒷맛은 개운치 않다.정부 발표(소득 하위 70% 지급) 전 정치권이 중지를 모았다면 정책 혼란도, 국민이 헷갈릴 일도 없을 것이다. '돈 문제'도 그렇다. 민주당 안대로라면 애초 9조원에 4조원이 더해져야 하고, 통합당 안은 16조원을 더 마련해야 한다.지원금 규모가 커지는 바람에 국채 발행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해 국가부채가 1천700조원을 돌파하는 등 재정수지가 악화한 상황에서 지원금 예산을 확보하고자 국채를 또 발행한다면 국가 재정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뻔하다.재난지원금 논의가 우왕좌왕하고 '퍼주기'로 가닥이 잡힌 건 닷새 앞으로 다가온 총선 때문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당정청 합의를 무시하고 전 국민 지급 주장이 여당에서 나오지 않았을 테니.종로에 출마해 여당 간판으로 전체 선거를 이끄는 이낙연 민주당 공동상임선거대책위원장의 '종부세' 뒤집기 발언도 귀를 의심케 한다. 이 위원장은 지난 2일 방송기자클럽초청토론회에서 "1가구 1주택 실수요자가 뾰족한 다른 소득이 없는데도 종부세를 중과하는 것이 큰 고통을 준다는 하소연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종부세 완화를 시사했다. 연이은 그의 발언과 앞서 강남 3구 민주당 출마자들의 감면 법안 처리 선언, 여기에 이인영 원내대표까지 나서 힘이 실리고 있다.문재인 정부는 지금껏 수요 억제를 핵심으로 한 19차례의 부동산 정책을 내놨고 대통령은 "투기와의 전쟁에서 지지 않겠다"며 시장에 경고하기도 했다. 곧 회수됐으나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주택거래허가제' 언급을 되짚어보면, 국정 운영 책임을 공유하는 여당이 정부 정책 기조에 정면 배치하며 '표(票)퓰리즘'을 주도하는 것 아닌가 싶다.이 위원장은 국무총리이던 2018년 9월 종부세 강화 등을 담은 고강도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직후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일부 언론과 정당은 세금 폭탄이라고 비판하는데 사실에 맞지 않고 다수 국민의 생각과도 어긋난다. 종부세 중과되는 사람은 전체 주택 보유자의 1.1%다"고 했던 당사자다.종부세를 처음 도입한 참여정부는 '세금 폭탄' 프레임에 갇혀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이후 2006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까지 내리 3연속 패배를 당했다.이런 까닭에 민주당의 돌변은 총선 과정에서 국민의 세금 부담 가중 논란이 확산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의심을 받는다. 정부가 기조를 바꾸기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우세하고 이를 추진할 주체가 뚜렷하지 않은데다 자칫 부동산 시장에 다시 기름을 부을 수 있어서다. 무엇보다 며칠 뒤면 총선이 끝나기 때문이다.

2020-04-09 15:38:15

[청라언덕] '온라인 강의' 실험

[청라언덕] '온라인 강의' 실험

교육 현장이 시쳇말로 '난리'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몰고 온 개강 연기 사태에다 비대면 온라인 강의까지. 그야말로 교육 현장은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대학에 이어 초·중·고등학교에서도 '온라인 개학'을 한다는 소식에 연일 뜨겁다. 물론 제대로 교육이 될지에 대한 걱정이 다수다. 이미 온라인 강의 체제를 경험하고 있는 대학에서도 혼란은 진행형이다. 사상 처음하는 온라인 강의 체제에 대학가는 갖가지 '시행착오'에 몸살을 앓고 있다.경북대 총학생회가 최근 재학생 2천914명을 대상으로 비대면 온라인 강의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의 57.2%가 불만족하다고 응답했다. 주요 이유로는 ▷많은 과제물 ▷강의 내용 부실 ▷강의 환경 미흡 등으로 조사됐다.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변화의 바람은 분명 감지된다. 온라인 강의를 통해 새로운 교수법에 눈을 뜨는 교수들이 생겨나고 있다. 단순히 동영상을 제작해 학생들에게 시청하도록 하는 방식을 넘어 온라인을 통해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쌍방향 강의를 지향하는 교수들이 꽤 있다는 것이다.이를 가능케 하는 대표적인 주자가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이다. 동시에 최대 100명이 모니터에 나타나 서로 대화하고 채팅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화상회의용으로 개발됐으나 최근 들어 교육 현장에서 화상 강의용으로 각광받고 있다. 줌은 최근 들어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 등에서 가장 많이 내려받은 앱 중 하나다. 대학들도 교수들에게 줌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경산의 모 대학 A(58) 교수도 줌을 사용해 특정 시간에 학생들과 화상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처음 화상 강의를 준비할 때는 강의 내내 혼자만 떠드는 것이 아닌지, 준비한 콘텐츠를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을지 등 걱정이 많았다. 처음 시도해보는 것이라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강의를 이어가면서 '의외로 할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오히려 강의실에서 수업을 진행할 때는 듣기만 했던 학생들이 채팅을 통해 활발하게 질문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다.대학가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교육 생태계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기술적 교육 바람은 진작부터 있었다. 대학생 누구나 무료로 강좌를 들을 수 있게 한다는 'K-무크' 시스템이 있었고, 대학들도 기존 LMS(Learning Management System·온라인으로 학생들의 성적과 진도, 출석 등을 관리해주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었다. 단지 대학 구성원 대부분으로부터 외면받아온 것이다.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더라도 온라인 강의는 새로운 교수법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교수들 중에는 오프라인 강의에 온라인 강의를 병행하거나 아예 온라인 강의를 주요 교수법으로 채택하는 경우도 생겨날 수 있다. 온라인 강의를 얼마나 잘 구현하는지에 따라 온라인 생태계에 익숙한 학생들의 만족도를 더욱 높일 수 있다. 이와 함께 정부가 온라인 교육 20% 법정 비율 제한을 폐지하고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등 정책적인 지원도 필요하다.지금의 온라인 강의 체제가 여전히 낯설고 불편하며 버겁다. 그러나 진보는 불편함 속에서 태어난다고 한다. 앞으로 이런 불편함이 대학 현장의 변화와 혁신을 가져올 '트리거'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2020-04-02 16:44:21

[청라언덕] 위기,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 찾자

[청라언덕] 위기,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 찾자

코로나19 사태를 둘러싸고 '돈의 전쟁'이 한창이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앞다퉈 저마다의 금액, 기준, 지급 방식을 통한 '재난소득', '긴급생계자금' 명목의 현금 지원을 시작하면서 국민들 사이에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여기에다 더 뜨거운 화두는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는 해묵은 논쟁이다. 전주시를 시작으로 서울·대구·경북도 등은 취약계층에 '선별적'으로 지원을 밝힌 반면, 경기도와 울산 울주군 등은 전체 도·군민에게 10만원씩 보편적 지급을 선언했다.사실 둘 다 장단점은 있다. 보편적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면 형평성이 높고 선별에 드는 행정비용을 줄일 수 있는 대신 막대한 예산이 든다. 반대로 선별적 서비스는 적은 비용으로 꼭 필요한 사람을 지원할 수 있어 효율성은 높으나, 선별 과정에서 사각지대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데다 행정비용이 상당하다.너도나도 지갑을 닫는 돈맥경색 국면에서 국가가 풀어내는 자금은 소비를 진작해 경제를 다시 돌아가게 마중물 역할을 한다. 미국과 일본 등 세계 각국이 '현금 지원' 카드를 꺼내드는 이유다. 선불카드나 상품권 등의 형태로 사용 기한을 한정하면 효과는 더욱 커진다. 지금은 어쨌든 어떤 형태로든 현금성 지원은 필요한 상황이라는 말이다.여기서 집중해야 할 것은 '속도'다. 재난 상황에서의 긴급 구호는 신속성이 생명이다. 때 늦은 지원은 아무 소용이 없다.하지만 당장 중위소득 100% 이하 가구와 중소상공인 등을 대상으로 64만 가구에 4천960억원을 지원하기로 한 대구시는 이의 집행을 놓고 혼란을 겪고 있다.공무원의 업무 과부하를 들어 총선 이후로 지급을 연기하겠다고 했다가 여론의 비판을 받았고, 은행권까지 접수와 배분 업무에 도움을 청해 놓은 상황이다. 공무원들은 방역에, 은행원들은 대출 서류에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상황이니 긴급생계비 선별과 배분에는 당연히 속도가 더뎌질 수밖에 없다.지급 기준으로 삼은 건강보험료 납부도 벌써 논란이 되고 있다. 하루아침에 매출의 90% 이상이 날아간 이들이 상당수인데 과거의 잣대로 재난 피해를 판단한다는 건 뭔가 어긋나 보인다.현재 대구시가 내놓는 4천960억원을 대구 인구 243만6천588명으로 나눠도 1인당 20만원씩이다. 4인 가족은 80만원을 받을 수 있다.대구시는 이번 긴급생계지원 수혜 대상이 64만 가구라고 했지만 대구의 모든 가구수는 103만이다. 여기서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등 기존 복지수급자를 제외한 나머지 지급 대상을 선별해내기 위해 막대한 인력과 시간을 투입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효과적인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그렇다면 이제 선별이냐 보편이냐, 포퓰리즘이냐 예산 거덜내기냐는 해묵은 논쟁은 그만두고 정말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모색해보면 어떨까.바로 최근 일부에서 제안하고 있는 '선 보편 후 선별 회수' 방식이라는 절충안이다. 일단 시급한 상황인 만큼 정책의 속도감을 위해 전체를 대상으로 지급한 뒤, 고소득층에는 세금 등의 방식으로 다시 거둬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각지대 없이, 예산은 절약하면서 빠르게 정책을 시행할 수 있다. 캐나다는 기초연금에서 이미 사용 중이다.이제와서 이미 시작돼버린 지자체들의 정책을 뒤엎을 순 없겠지만, 3차 비상경제회의를 앞두고 전 국민적 기대감과 우후죽순 터져나오는 지자체들의 정책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할 상황인 정부는 충분히 고려해볼 수 있는 방안 아닐까. 지금은 정치적 색깔 논쟁보다 위기를 넘기는 게 먼저다.

2020-03-26 15:09:35

[청라언덕] 코로나19와 대공황 공포

[청라언덕] 코로나19와 대공황 공포

요즘은 점심 식사를 해결하기가 만만치 않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문을 연 식당을 찾기가 어려운 탓이다. 문을 열었다 해도 포장 손님이나 배달 주문만 받는 곳도 상당수다. 막상 들어간 식당에 손님이 많아도 걱정이다. 낯모르는 이들과 가까이 붙어 앉아 마스크를 벗고 식사를 하는 게 마음이 편하진 않다.가끔 찾던 일식점이 다시 문을 열었다. 반가운 마음에 들어섰지만 가게 주인 표정은 밝지 않다. "어휴, 죽겠어요. 코로나19가 언제까지 갈까요?" 돈가스를 튀기는 표정에도 근심이 묻어났다.한 달 전만 해도 코로나19는 그저 남의 일이었다. 지난 1월 5천만 명이 사는 중국 후베이성 우한이 통째로 봉쇄됐을 때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약국마다 가격은 작년보다 조금 올랐지만 마스크가 넉넉히 걸려 있었고, 거리는 인파로 넘쳐났다.그사이,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조용하고 빠르게 지구를 점령하고 있었다. 불과 3개월 만에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는 20만 명을 넘어섰다.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상점의 불이 꺼졌으며, 사람들은 문을 걸어 잠갔다. 적막한 거리에는 침묵이 흐른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어디까지 퍼질지도 모르고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의 공포를 선사했다.코로나19보다 위세가 등등한 건 '공포 바이러스'다. 공포 심리는 글로벌 경제 시스템을 빠르게 무너뜨리는 중이다.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환율은 급등하고 있다. 19일 코스피 시장은 11년 만에 1,500선이 무너졌다. 코스피지수는 한 달 만에 35% 폭락했다.원/달러 환율도 폭등해 1천300원대에 육박하고 있다. 역시 11년 전 수준이다. 미국이 제로 수준까지 기준금리를 인하해 시중에 돈을 풀고 있는데도 달러 강세가 1주일 내내 이어지고 있다.뉴욕 증시도 속절없이 무너지는 중이다. 뉴욕 증시의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트럼프 랠리'의 출발점으로 상징되는 '2만 고지'를 힘없이 내줬다. 국제 유가는 배럴당 20달러 선이 위협받고, 전통적인 안전자산인 금과 미국 국채 가격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대구경북 실물경제도 암울하다. 대구 기업 10곳 중 7곳은 코로나19 확산으로 매출이 감소하는 피해를 입었다. 올해 대구경북의 경제성장률이 IMF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4월부터 생활밀착형 소비는 나아지겠지만 수출 시장이 무너진 제조업의 피해는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현재 경제위기는 '실물·금융의 복합 위기'라고 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실물경제가 타격을 받았고, 그 여파가 금융으로 확산됐다는 것이다.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타격을 받은 점도 특징이다. 코로나19로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지고, 덩달아 수요도 위축됐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7, 8월을 넘어서도 잡히지 않으면 세계 경제가 '대공황'을 맞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특히 세계 경제의 주요 축들이 시차를 두고 쓰러지면 세계 시장은 상당 기간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앞으로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코로나19의 악몽이 언제 끝나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이 위기를 견뎌내려면 사회적 거리두기와 일상생활의 회복을 병행하면서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 신속하고 유연한 대비책도 절실하다. 취약계층에 대한 재난 수당 지원과 과감한 경기부양책, 기업과 자영업자의 유동성 위기를 막을 금융정책이 속도감 있게 펼쳐지길 기대한다.

2020-03-19 17:28:26

[청라언덕] 非TK가 주도한 쪽박 공천

[청라언덕] 非TK가 주도한 쪽박 공천

대구경북(TK)은 낙하산 공천에 익숙하다. 보수 정당의 오랜 텃밭인 탓에 막대기를 꽂아도 당선된다는 자조와 체념은 TK의 정치적 정체성이 됐다. 국회의원 선거뿐만 아니다. 지방선거에서도 국회의원들은 광역·기초의원들을 막무가내로 내리꽂는다. 욕을 하면서도 막상 투표장에 가면 손이 보수 정당으로 향한다.낙하산 공천이라도 나름 기준은 있었다. 대표적인 낙하산 공천으로 평가되는 4년 전 20대 총선을 되돌아보자. 2016년 1월 20일 남구의 한 식당에 모인 대구 진박 후보 6명의 면면은 다음과 같다.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과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 하춘수 전 대구은행장, 이재만 전 동구청장. 장관급 2명, 청와대 수석 2명, 지역의 대표 금융인, 기초단체장 등이었다. 서울 TK 4명에 토박이 2명이다. 결과는 3명이 당선돼 성공률이 절반에 불과했다. 이 공천을 주도한 그룹도 이한구·최경환 의원 등 TK 출신이었다.역대 보수 정당에서 TK 낙하산 공천 주도 세력은 TK 출신이었다. TK 그룹이 주도하지 않은 TK 낙하산 공천에는 강하게 반발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틀어쥔 15대 총선이 대표적이다. YS 측근들이 행사한 TK 공천에 낙하산이 적지 않았다. 결과는 대구 13석 중 신한국당 2석, 자유민주연합 8석, 무소속 3석으로 여당의 참패였다. 대구 선거 역사에서 '자민련 돌풍'으로 유명한 선거였다.비(非)TK인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주도한 16대 총선에서도 TK 낙하산 공천이 이뤄졌다. TK 대표 정치인이었던 고(故) 김윤환 전 의원이 탈락한 선거였다. 그마나 공천 주도 그룹은 15대 총선을 반면교사로 삼을 만큼 영리했다. 김 전 의원을 날리면서 서울 TK를 내리꽂는 대신 경북도의원으로 젊고 유망했던 김성조 전 의원을 전격 발탁했다. 지역의 젊은 인재를 발굴해 반발 여론을 최대한 피하면서 개혁 공천으로 포장했다.이번 공천은 비TK인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와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이 주도했다. 공관위에 TK 인사는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물갈이에만 초점을 두고 대안 마련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얘기다. 현역 의원을 솎아낸 빈자리를 황 대표와 김 위원장이 사이좋게 나눠 가졌다. 장관급도, 청와대 수석급도, 토종 TK도 아닌 변호사를 지냈고, 우파 사회단체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해당 인물들을 무시하는 게 결코 아니다. 역대 낙하산 공천 인사와 비교하면 그렇다는 얘기다.김형오 공관위원장은 누구인가. 부산에서 보수 정당 간판으로 5선 국회의원을 달았고, 국회의장을 역임했다. 부산에서는 큰 정치인으로 대접받는지 모르겠지만, 대통령을 5명 배출한 TK 입장에서는 그냥 중진 의원일 뿐이다. 김 위원장급 정도의 정치인은 TK에서 여러 명 나왔다. TK를 모르면 잘 들어야 하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개인적으로 역대 최고의 TK 공천은 17대 총선으로 꼽는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시절이었고, 김문수 공관위원장이 주도했다. 주호영(44), 주성영(46), 이명규(48), 최경환(49) 등 40대 신진 인사를 대거 공천했다. 1년 뒤 비례대표이던 유승민(47) 의원도 대구로 자리를 옮겼다. 개혁 공천이면서 혁신 공천이었다.비TK가 주도한 이번 공천은 어떤 평가를 받을까? 대박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쪽박이었다. 정치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2020-03-12 16:33:52

[청라언덕] 할배 할매들도 '호상(好喪)'은 없다

[청라언덕] 할배 할매들도 '호상(好喪)'은 없다

태어나 보니 숟가락이 네 개뿐이었다. 할매·할배는 나기 전부터 안 계셨다. 부모와 달랑 형제 하나가 전부였다. 그래서 할매·할배의 내리사랑은 모르고 자랐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행복의 주인공이 돼 드린 적이 없다. 동네 싸움에서도 늘 이기다 막판에 밀렸다. 옆집 철수는 매번 할머니 찬스를 썼다. 들에서 쟁기와 호미질에 바쁜 젊은 부모가 편이 돼 주기엔 너무 멀리 있었다.할매·할배 내리사랑을 못 받아서였을까. 세월이 지나 이들의 영정 앞에 슬퍼하는 친구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그를 위로했지만 도리어 그는 할매·할배 고리가 없는 날 안타까워했다.대구경북이 코로나19 감염병에 신음하고 있다.지난달 18일 첫 확진자가 나온 뒤 보름 만에 5천 명을 넘었다. 확진 판정을 받은 뒤에도 병실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는 대기자가 2천여 명에 이른다. 의사 얼굴 한 번 못 보고 자가격리 중에 사망하는 사례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기저질환이 있는 어르신들이 특히 취약하다고 하니, 코로나는 공포 그 자체다.하지만 생각해 보면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게 세간 인식이다.연일 사망자가 발생하지만 모두 고령에다 기저질환을 가진 '원래 환자'였다는 것에 사회가 안도한다. '나이가 많아서, 지병이 있어서 치명적이었어.' 덜 호들갑 떠는 분위기에선 '할매·할배라서 다행'이란 정서마저 엿보인다.세상에 호상(好喪)이 어디 있나. 할매·할배를 이렇게 돌아가시게 해서는 안 된다. 이분들이야 말로 정부의 무능에 의해 유명을 달리하면 안 될 소중한 분들이기 때문이다.코로나에 위태한 할매·할배는 오늘날 대한민국을 일으킨 주역이었다. 조국의 근대화에 이역만리 탄광 가루, 고엽제도 마다하지 않는 '과거의 청년'이었다.정부는 온갖 세금을 걷어 가더니 음압병상부터 마스크에 이르기까지 '방역의 주춧돌' 하나 놓지 않았다. 마스크를 쫓다 보니 정작 절실한 병상 확보에는 소걸음이다. 방역당국조차 고개를 가로젓는데, '신천지 잡으라'고 검찰에 생떼까지 쓴다. 초동 방역 실패에 이어 갈팡질팡하는 방역 행정에 국민들은 하루하루를 보이지 않는 공포와 싸우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서 영면할 권리도 못 갖는 나라는 '이건 나라인가'.다행히 항상 무능한 조정과 정부 뒤에는 똑똑한 백성, 지혜로운 국민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대구경북은 국란 때마다 의병과 학도병으로, 낙동강 전선을 지켜냈다. 지금도 코로나 후유증을 '휴머니즘'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다.환자를 돌보다 지쳐 쪽잠에 빠진 간호사의 얼굴에서, 하루 천 리 길을 마다 않는 수송 인력의 물집 잡힌 손에서,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시도민의 미소에서, 희망이 쏘아지고 있다. 대구경북 곳곳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내가 대구경북이다'의 외침에 역병은 이내 수명을 다할 것이다.예로부터 사람이 살아가면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다섯 가지의 복을 오복(五福)이라고 했다. 서경(書經)에 나오는 오복 중 첫 번째는 수(壽)로 천수(天壽)를 다 누리다가 가는 장수의 복을 일컬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일생을 건강하게 살다가 평안하게 생을 마칠 수 있는 고종명(考終命)을 꼽았다. 선조들은 '장수하다 고통 없이 죽는 것'을 가장 큰 복으로 여겼다.정부는 지금이라도 할매·할배의 '고종명'을 지켜드릴 수 있게 모든 행정력을 총동원하길 바란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의료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통해 모두가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나서달라.기저질환이 있거나 말거나,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모두가 시간에 의해 이별할 권리를 줘야 한다. 이별이 코로나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 역질에서 호상은 있을 수 없다.

2020-03-05 16:43:37

[청라언덕] '나쁜 정치', '선한 시민'

[청라언덕] '나쁜 정치', '선한 시민'

"대구 의사 5천700명이 질병과의 힘든 싸움에서 최전선 전사로 분연히 일어서자. 응급실이건 격리병원이건 각자 불퇴전의 용기로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끝까지 싸우자."지난 25일 이성구 대구시의사회장의 호소문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공포에 잠긴 대구 시민의 마음을 감동으로 물들였다 "이 위기에 단 한 푼의 대가, 한마디의 칭찬도 바라지 말고 피와 땀과 눈물로 시민들, 대구를 구하자"는 결의가 낙심과 불안에 빠진 도시에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이 회장의 호소에 대구뿐 아니라 전국 각지의 동료 의사들이 속속 응답했다. 26일 서울 강남구의 집을 출발한 여의사(60)는 가족의 만류에도 대구행 고속철도(KTX)에 올랐다. 지원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경산의 노의사(66)는 "나처럼 늙다리 내과의가 쓰일 데가 있을까 했지만 그래도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신청했다"고 말했다.불과 하루 뒤인 27일 청와대 홈페이지는 분노한 민심으로 들끓었다. '문재인 대통령 탄핵을 촉구합니다'는 제목의 국민청원 동의자가 100만 명을 넘어선 것이다. 역대 세 번째로 많은 동의자다.지난 4일 제기된 이번 청원에 불과 이틀 사이 80만 명이 넘는 동의자가 폭증한 배경에는 '나쁜 정치'가 있다.홍익표 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5일 코로나19 사태가 가장 심각한 대구경북에 대한 '물리적 봉쇄'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대구와 경북 청도 지역은 통상의 차단 조치를 넘어서는 최대한의 봉쇄 정책을 시행하기로 했다"며 "봉쇄 조치는 이동 등 부분에 대해 일정 정도 행정력을 활용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안 그래도 자발적인 외출 자제를 실천하고 있는 대구경북 시도민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지는 못할 망정 '정부가 대구경북을 버렸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은 것이다.문 대통령이 나서 "지역적 봉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19 전파·확산을 최대한 차단한다는 뜻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하루 사이 극명하게 교차하는 '선한 인술'과 '나쁜 정치'를 마주하면서 전염병과 인간의 사투를 그린 '페스트'가 떠오른다.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는 1940년 전염병 대공포가 휩쓸기 시작한 북아프리카의 항만 도시 '오랑'을 무대로 한다.소설 속 '오랑'에서 10개월간 전염병과 사투를 벌인 사람들은 정치인들이나 고위 관료가 아니라 평범한 개인이었다. 시민들과 도시의 여행객들은 탈출 대신 자원봉사 공동체 결성과 활동에 헌신하며 장렬하게 맞섰고, 시청 말단 공무원들은 묵묵히 이들을 돕는 역할을 맡았다.소설 속 이야기는 미증유의 바이러스 공포에 직면한 대구경북의 현실과 오버랩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전염병 대위기에도,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나쁜 정치'에도 시민정신만큼은 찬란히 빛나고 있다.임대료를 인하하거나 동결하는 '착한 건물주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전국 각지의 성금과 의료 물품 기부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대구시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에는 '#힘내요 DAEGU' 해시태그를 단 응원도 쇄도하고 있다. 여기에 대구경북으로 달려오는 의료인들의 헌신과 봉사가 더해지고 있다.소설 '페스트'는 비참하고 잔혹한 현실 앞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야말로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진정한 반항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대구경북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한, 대구경북을 응원하는 선한 시민들이 있는 한 대구경북은 반드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2020-02-27 16:02:20

[청라언덕] 오케이, 부머

[청라언덕] 오케이, 부머

꼰대는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키는 은어(隱語)다. 이젠 나이 앞에 몇 마디가 더 붙는다. '자신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이란 말이다. 작년 영국 BBC방송에서도 'kkondae'라고 소개된 적이 있다. '자신이 늘 옳다고 생각하는, 나이 많은 사람'이란 설명이 뒤따랐다.영미권에서도 꼰대와 비슷한 말이 유행이다. '부머'(Boomer)가 그것이다. 이는 2차 세계대전 후부터 1960년대 태어난 베이비부머를 일컫는 속어. 하지만 이젠 말 안 통하는 기성세대를 비꼬는 뜻으로 쓰인다. 기성세대의 부정적 행동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박이다.'오케이(Okay), 부머.' 지난해 뉴질랜드의 20대 여성 의원이 의회에서 이 말을 내뱉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없애자는 '탄소 제로 법안'이 필요하다고 발언하던 도중 일어난 일이다. 기성세대 정치인들이 기후변화 위기를 알면서도 방치하는 현실을 지적하자 중진 의원들이 야유했고, 그에 응수한 것이다.물론 이는 '알아듣겠다'는 게 아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됐거든요, 꼰대 양반' '네, 다음 꼰대' 정도 되겠다. 오랫동안 잘못돼 온 관행과 지식 등에 대해 굳이, 힘들여서,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무시하겠다는 의미다. 왜 틀렸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하나하나 얘기하는 데 힘을 빼지 않겠다는 뜻이다.만 18세 청소년들에게 선거권을 준다니 말들이 적지 않다. 학교가 정치판이 될 거라고 걱정들을 한다. 돌려 말하지 말자. 교사 일부가 아이들에게 '빨간 물'을 들일까 우려하는 것 같다. 아이들이 뭘 안다고 정치를 얘기하냐는 생각도 깔려 있다. '그래, 나 꼰대야'를 당당히 외치며 한바탕 막말을 쏟아낸, 한 일간지 논설위원의 글도 딱 그렇다.해외 사례는 들지 않겠다. 조금만 찾아보면 청소년에게 선거권을 주는 곳은 많다. 이에 반대하는 어른들 눈에는 18세 청소년이 미성숙한 존재들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걱정을 하는 어른들이 만들어낸 사회는 과연 '성숙한' 사회인가.18세 청소년의 정보력과 판단력을 의심하는 시선도 따갑다. 하지만 다른 세대가 그렇게 볼 수준이, 자격이 되는지 의문이다. 학연과 지연, 혈연에 따라 투표하는 이들이 여전히 적지 않은 판국이다. 불쌍하다고 찍어주는 게, 같은 성씨를 쓴다며 모여 누굴 밀자고 떠드는 게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물론 나이 들어가는 자체는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다만 '나잇값' 못하는 건 부끄러워해야 한다. 자신들이 '머리에 피도 안 말랐다'고 얘기한 아이들보다도 모자란 걸 반성해야 한다. 아이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없다는 걸 민망해 해야 한다. 자신들이 얼마나 나은 판단으로 투표했는지 자문하는 게 먼저다.학교가 선거운동으로 난장판이 되는 건 누구도 원치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고3이 지는 무게감을 생각하면 더욱 조심해야 할 문제다. 그래도 그건 제도로 보완하면 된다. 18세 청소년에게 선거권을 줘선 안 되는 이유라고 하기엔 궁색하다. 대구 2·28민주운동도, 4·19혁명도 '까까머리' 학생들이 주도했다. 지금의 기성세대가 젊었을 때 일어난 일이다.포퓰리즘에 대한 면역이 안 돼 있다는 말도 쓴웃음이 나온다. 유튜브 가짜 뉴스에 혹해 누구누구를 때려죽여야 한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으면서 18세 청소년더러 너무 어리다고 할 수 있을까. 자기가 지지하는 쪽을 안 찍으면 '설익은' 것인가. '넌 늙어봤냐, 난 젊어봤다'는 말에 답한다. "그런데 어쩌라고요(오케이, 부머)."

2020-02-20 18:00:50

[청라언덕]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

[청라언덕]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

오는 4·15 총선부터 선거권 연령 하향으로 18세(2002년 4월 16일 이전 출생)부터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고3 수험생들도 투표장을 찾아야 한다.고3으로 연령을 낮춘 이유는 청소년들의 참정권 확대를 위해 선거권을 부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 때문이다. 이 나이 때면 결혼, 군 입대, 공무원시험 응시 등이 가능한데 투표권만 배제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논리다. 급속한 고령화사회에서 노년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청년층 의견이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도 선거 연령 조정에 일조했다.찬성론자들의 예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선거권 연령 하향은 세계적 흐름'이라며 시대적 과제임을 주장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한국만 빼고 모두 18세 이하인 점을 근거로 한다.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나라는 외국의 사정과 전혀 다르다.미국과 유럽 등 18세 선거권을 인정한 나라는 대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3학년에 해당하는 시기다. 이 때문에 대학입시 등 공부에 매진해야 할 시기인 수험생들에게 선거권과 선거운동을 허용하면, 정치 갈등과 대립이 교실로 이어질 공산이 적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실제로 이번 선거부터 학생들도 선거에 관한 의견 개진과 의사 표시가 가능하다. 이와 함께 개별적 대화와 전화를 통해서도 선거운동이 가능하다. 문자메시지·인터넷홈페이지를 활용해도 무방하다.사회에 진출하기도 전에 범법자가 될 여지도 있다. 개정된 선거법에 따르면 고3 수험생들의 선거운동 가능성을 열어 두면서도, 2개 이상의 교실을 선거 목적으로 방문하면 안 되고 동아리·학생 단체의 특정 정당·후보 지지 선언도 금지했다. 확인되지 않은 사안이나 후보자 비방 글을 게시하거나 전송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 금지 규정을 철저히 숙지하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여권 주도로 선거 연령 하향이 관철됐으나 더불어민주당 등 주도 세력들마저도 후속 조치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고3 수험생의 투표 허용으로 약 17만 명의 유권자가 늘어났으나 관련 예산은 전혀 확보되지 않은 것이다. 후보자들 입장에서는 홍보물과 문자메시지 비용 등을 더 투입해야 하지만 개정된 선거법에는 이와 관련된 비용 증가는 한 푼도 없었다.청년 정치의 부작용도 드러나고 있다. 민주당은 어머니에게 각막을 기증해 화제가 됐던 원종건(27) 씨를 청년 후보로 영입했으나 '미투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출마의 꿈을 접었다. 미투 사건의 주요 내용은 원 씨가 여자 친구를 성노리개 취급했고 여성 혐오 발언을 일삼으며 가스라이팅으로 괴롭혀 왔다는 것이다. 20대 건실(?)했던 청년이 정치라는 무대에 올라서자, 발가벗겨지면서 인생은 180도로 변했다.이런 상황에서 1955년 대구매일신문 주필로 정론직필을 생명처럼 여기던 최석채 선생의 사설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제하의 글은 "어떤 시위나 대회라도 호소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공명(共鳴)의 자의식이 발동돼야 하지만 미숙한 학생들에게 어찌 그런 자각을 기대할 수 있는가"라고 명시돼 있다.헌법재판소도 이미 지난 2013년과 2014년 연이어 "만 19세 미만 미성년자의 정치적 판단이나 의사 표현이 왜곡될 우려가 있다"며 "18세에게 선거권을 주는 방안은 위법"이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2020-02-13 17:4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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