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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의 코로나19 긴급생계자금 총선 이후 지급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지난 25일 대구시청 앞에서 더불어민주당 대구시.구 의원들이 선지급. 후검증 절차로 긴급생계자금을 3월말부터 즉시지급 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청라언덕] 위기,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 찾자

코로나19 사태를 둘러싸고 '돈의 전쟁'이 한창이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앞다퉈 저마다의 금액, 기준, 지급 방식을 통한 '재난소득', '긴급생계자금' 명목의 현금 지원을 시작하면서 국민들 사이에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여기에다 더 뜨거운 화두는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는 해묵은 논쟁이다. 전주시를 시작으로 서울·대구·경북도 등은 취약계층에 '선별적'으로 지원을 밝힌 반면, 경기도와 울산 울주군 등은 전체 도·군민에게 10만원씩 보편적 지급을 선언했다.사실 둘 다 장단점은 있다. 보편적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면 형평성이 높고 선별에 드는 행정비용을 줄일 수 있는 대신 막대한 예산이 든다. 반대로 선별적 서비스는 적은 비용으로 꼭 필요한 사람을 지원할 수 있어 효율성은 높으나, 선별 과정에서 사각지대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데다 행정비용이 상당하다.너도나도 지갑을 닫는 돈맥경색 국면에서 국가가 풀어내는 자금은 소비를 진작해 경제를 다시 돌아가게 마중물 역할을 한다. 미국과 일본 등 세계 각국이 '현금 지원' 카드를 꺼내드는 이유다. 선불카드나 상품권 등의 형태로 사용 기한을 한정하면 효과는 더욱 커진다. 지금은 어쨌든 어떤 형태로든 현금성 지원은 필요한 상황이라는 말이다.여기서 집중해야 할 것은 '속도'다. 재난 상황에서의 긴급 구호는 신속성이 생명이다. 때 늦은 지원은 아무 소용이 없다.하지만 당장 중위소득 100% 이하 가구와 중소상공인 등을 대상으로 64만 가구에 4천960억원을 지원하기로 한 대구시는 이의 집행을 놓고 혼란을 겪고 있다.공무원의 업무 과부하를 들어 총선 이후로 지급을 연기하겠다고 했다가 여론의 비판을 받았고, 은행권까지 접수와 배분 업무에 도움을 청해 놓은 상황이다. 공무원들은 방역에, 은행원들은 대출 서류에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상황이니 긴급생계비 선별과 배분에는 당연히 속도가 더뎌질 수밖에 없다.지급 기준으로 삼은 건강보험료 납부도 벌써 논란이 되고 있다. 하루아침에 매출의 90% 이상이 날아간 이들이 상당수인데 과거의 잣대로 재난 피해를 판단한다는 건 뭔가 어긋나 보인다.현재 대구시가 내놓는 4천960억원을 대구 인구 243만6천588명으로 나눠도 1인당 20만원씩이다. 4인 가족은 80만원을 받을 수 있다.대구시는 이번 긴급생계지원 수혜 대상이 64만 가구라고 했지만 대구의 모든 가구수는 103만이다. 여기서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등 기존 복지수급자를 제외한 나머지 지급 대상을 선별해내기 위해 막대한 인력과 시간을 투입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효과적인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그렇다면 이제 선별이냐 보편이냐, 포퓰리즘이냐 예산 거덜내기냐는 해묵은 논쟁은 그만두고 정말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모색해보면 어떨까.바로 최근 일부에서 제안하고 있는 '선 보편 후 선별 회수' 방식이라는 절충안이다. 일단 시급한 상황인 만큼 정책의 속도감을 위해 전체를 대상으로 지급한 뒤, 고소득층에는 세금 등의 방식으로 다시 거둬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각지대 없이, 예산은 절약하면서 빠르게 정책을 시행할 수 있다. 캐나다는 기초연금에서 이미 사용 중이다.이제와서 이미 시작돼버린 지자체들의 정책을 뒤엎을 순 없겠지만, 3차 비상경제회의를 앞두고 전 국민적 기대감과 우후죽순 터져나오는 지자체들의 정책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할 상황인 정부는 충분히 고려해볼 수 있는 방안 아닐까. 지금은 정치적 색깔 논쟁보다 위기를 넘기는 게 먼저다.

2020-03-26 15:09:35

장성현 경제부 차장

[청라언덕] 코로나19와 대공황 공포

요즘은 점심 식사를 해결하기가 만만치 않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문을 연 식당을 찾기가 어려운 탓이다. 문을 열었다 해도 포장 손님이나 배달 주문만 받는 곳도 상당수다. 막상 들어간 식당에 손님이 많아도 걱정이다. 낯모르는 이들과 가까이 붙어 앉아 마스크를 벗고 식사를 하는 게 마음이 편하진 않다.가끔 찾던 일식점이 다시 문을 열었다. 반가운 마음에 들어섰지만 가게 주인 표정은 밝지 않다. "어휴, 죽겠어요. 코로나19가 언제까지 갈까요?" 돈가스를 튀기는 표정에도 근심이 묻어났다.한 달 전만 해도 코로나19는 그저 남의 일이었다. 지난 1월 5천만 명이 사는 중국 후베이성 우한이 통째로 봉쇄됐을 때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약국마다 가격은 작년보다 조금 올랐지만 마스크가 넉넉히 걸려 있었고, 거리는 인파로 넘쳐났다.그사이,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조용하고 빠르게 지구를 점령하고 있었다. 불과 3개월 만에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는 20만 명을 넘어섰다.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상점의 불이 꺼졌으며, 사람들은 문을 걸어 잠갔다. 적막한 거리에는 침묵이 흐른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어디까지 퍼질지도 모르고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의 공포를 선사했다.코로나19보다 위세가 등등한 건 '공포 바이러스'다. 공포 심리는 글로벌 경제 시스템을 빠르게 무너뜨리는 중이다.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환율은 급등하고 있다. 19일 코스피 시장은 11년 만에 1,500선이 무너졌다. 코스피지수는 한 달 만에 35% 폭락했다.원/달러 환율도 폭등해 1천300원대에 육박하고 있다. 역시 11년 전 수준이다. 미국이 제로 수준까지 기준금리를 인하해 시중에 돈을 풀고 있는데도 달러 강세가 1주일 내내 이어지고 있다.뉴욕 증시도 속절없이 무너지는 중이다. 뉴욕 증시의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트럼프 랠리'의 출발점으로 상징되는 '2만 고지'를 힘없이 내줬다. 국제 유가는 배럴당 20달러 선이 위협받고, 전통적인 안전자산인 금과 미국 국채 가격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대구경북 실물경제도 암울하다. 대구 기업 10곳 중 7곳은 코로나19 확산으로 매출이 감소하는 피해를 입었다. 올해 대구경북의 경제성장률이 IMF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4월부터 생활밀착형 소비는 나아지겠지만 수출 시장이 무너진 제조업의 피해는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현재 경제위기는 '실물·금융의 복합 위기'라고 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실물경제가 타격을 받았고, 그 여파가 금융으로 확산됐다는 것이다.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타격을 받은 점도 특징이다. 코로나19로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지고, 덩달아 수요도 위축됐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7, 8월을 넘어서도 잡히지 않으면 세계 경제가 '대공황'을 맞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특히 세계 경제의 주요 축들이 시차를 두고 쓰러지면 세계 시장은 상당 기간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앞으로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코로나19의 악몽이 언제 끝나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이 위기를 견뎌내려면 사회적 거리두기와 일상생활의 회복을 병행하면서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 신속하고 유연한 대비책도 절실하다. 취약계층에 대한 재난 수당 지원과 과감한 경기부양책, 기업과 자영업자의 유동성 위기를 막을 금융정책이 속도감 있게 펼쳐지길 기대한다.

2020-03-19 17:28:26

미래통합당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천관리위원회 회의에 굳은 표정으로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라언덕] 非TK가 주도한 쪽박 공천

대구경북(TK)은 낙하산 공천에 익숙하다. 보수 정당의 오랜 텃밭인 탓에 막대기를 꽂아도 당선된다는 자조와 체념은 TK의 정치적 정체성이 됐다. 국회의원 선거뿐만 아니다. 지방선거에서도 국회의원들은 광역·기초의원들을 막무가내로 내리꽂는다. 욕을 하면서도 막상 투표장에 가면 손이 보수 정당으로 향한다.낙하산 공천이라도 나름 기준은 있었다. 대표적인 낙하산 공천으로 평가되는 4년 전 20대 총선을 되돌아보자. 2016년 1월 20일 남구의 한 식당에 모인 대구 진박 후보 6명의 면면은 다음과 같다.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과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 하춘수 전 대구은행장, 이재만 전 동구청장. 장관급 2명, 청와대 수석 2명, 지역의 대표 금융인, 기초단체장 등이었다. 서울 TK 4명에 토박이 2명이다. 결과는 3명이 당선돼 성공률이 절반에 불과했다. 이 공천을 주도한 그룹도 이한구·최경환 의원 등 TK 출신이었다.역대 보수 정당에서 TK 낙하산 공천 주도 세력은 TK 출신이었다. TK 그룹이 주도하지 않은 TK 낙하산 공천에는 강하게 반발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틀어쥔 15대 총선이 대표적이다. YS 측근들이 행사한 TK 공천에 낙하산이 적지 않았다. 결과는 대구 13석 중 신한국당 2석, 자유민주연합 8석, 무소속 3석으로 여당의 참패였다. 대구 선거 역사에서 '자민련 돌풍'으로 유명한 선거였다.비(非)TK인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주도한 16대 총선에서도 TK 낙하산 공천이 이뤄졌다. TK 대표 정치인이었던 고(故) 김윤환 전 의원이 탈락한 선거였다. 그마나 공천 주도 그룹은 15대 총선을 반면교사로 삼을 만큼 영리했다. 김 전 의원을 날리면서 서울 TK를 내리꽂는 대신 경북도의원으로 젊고 유망했던 김성조 전 의원을 전격 발탁했다. 지역의 젊은 인재를 발굴해 반발 여론을 최대한 피하면서 개혁 공천으로 포장했다.이번 공천은 비TK인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와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이 주도했다. 공관위에 TK 인사는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물갈이에만 초점을 두고 대안 마련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얘기다. 현역 의원을 솎아낸 빈자리를 황 대표와 김 위원장이 사이좋게 나눠 가졌다. 장관급도, 청와대 수석급도, 토종 TK도 아닌 변호사를 지냈고, 우파 사회단체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해당 인물들을 무시하는 게 결코 아니다. 역대 낙하산 공천 인사와 비교하면 그렇다는 얘기다.김형오 공관위원장은 누구인가. 부산에서 보수 정당 간판으로 5선 국회의원을 달았고, 국회의장을 역임했다. 부산에서는 큰 정치인으로 대접받는지 모르겠지만, 대통령을 5명 배출한 TK 입장에서는 그냥 중진 의원일 뿐이다. 김 위원장급 정도의 정치인은 TK에서 여러 명 나왔다. TK를 모르면 잘 들어야 하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개인적으로 역대 최고의 TK 공천은 17대 총선으로 꼽는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시절이었고, 김문수 공관위원장이 주도했다. 주호영(44), 주성영(46), 이명규(48), 최경환(49) 등 40대 신진 인사를 대거 공천했다. 1년 뒤 비례대표이던 유승민(47) 의원도 대구로 자리를 옮겼다. 개혁 공천이면서 혁신 공천이었다.비TK가 주도한 이번 공천은 어떤 평가를 받을까? 대박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쪽박이었다. 정치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2020-03-12 16:33:52

임상준 경북부 차장

[청라언덕] 할배 할매들도 '호상(好喪)'은 없다

태어나 보니 숟가락이 네 개뿐이었다. 할매·할배는 나기 전부터 안 계셨다. 부모와 달랑 형제 하나가 전부였다. 그래서 할매·할배의 내리사랑은 모르고 자랐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행복의 주인공이 돼 드린 적이 없다. 동네 싸움에서도 늘 이기다 막판에 밀렸다. 옆집 철수는 매번 할머니 찬스를 썼다. 들에서 쟁기와 호미질에 바쁜 젊은 부모가 편이 돼 주기엔 너무 멀리 있었다.할매·할배 내리사랑을 못 받아서였을까. 세월이 지나 이들의 영정 앞에 슬퍼하는 친구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그를 위로했지만 도리어 그는 할매·할배 고리가 없는 날 안타까워했다.대구경북이 코로나19 감염병에 신음하고 있다.지난달 18일 첫 확진자가 나온 뒤 보름 만에 5천 명을 넘었다. 확진 판정을 받은 뒤에도 병실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는 대기자가 2천여 명에 이른다. 의사 얼굴 한 번 못 보고 자가격리 중에 사망하는 사례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기저질환이 있는 어르신들이 특히 취약하다고 하니, 코로나는 공포 그 자체다.하지만 생각해 보면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게 세간 인식이다.연일 사망자가 발생하지만 모두 고령에다 기저질환을 가진 '원래 환자'였다는 것에 사회가 안도한다. '나이가 많아서, 지병이 있어서 치명적이었어.' 덜 호들갑 떠는 분위기에선 '할매·할배라서 다행'이란 정서마저 엿보인다.세상에 호상(好喪)이 어디 있나. 할매·할배를 이렇게 돌아가시게 해서는 안 된다. 이분들이야 말로 정부의 무능에 의해 유명을 달리하면 안 될 소중한 분들이기 때문이다.코로나에 위태한 할매·할배는 오늘날 대한민국을 일으킨 주역이었다. 조국의 근대화에 이역만리 탄광 가루, 고엽제도 마다하지 않는 '과거의 청년'이었다.정부는 온갖 세금을 걷어 가더니 음압병상부터 마스크에 이르기까지 '방역의 주춧돌' 하나 놓지 않았다. 마스크를 쫓다 보니 정작 절실한 병상 확보에는 소걸음이다. 방역당국조차 고개를 가로젓는데, '신천지 잡으라'고 검찰에 생떼까지 쓴다. 초동 방역 실패에 이어 갈팡질팡하는 방역 행정에 국민들은 하루하루를 보이지 않는 공포와 싸우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서 영면할 권리도 못 갖는 나라는 '이건 나라인가'.다행히 항상 무능한 조정과 정부 뒤에는 똑똑한 백성, 지혜로운 국민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대구경북은 국란 때마다 의병과 학도병으로, 낙동강 전선을 지켜냈다. 지금도 코로나 후유증을 '휴머니즘'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다.환자를 돌보다 지쳐 쪽잠에 빠진 간호사의 얼굴에서, 하루 천 리 길을 마다 않는 수송 인력의 물집 잡힌 손에서,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시도민의 미소에서, 희망이 쏘아지고 있다. 대구경북 곳곳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내가 대구경북이다'의 외침에 역병은 이내 수명을 다할 것이다.예로부터 사람이 살아가면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다섯 가지의 복을 오복(五福)이라고 했다. 서경(書經)에 나오는 오복 중 첫 번째는 수(壽)로 천수(天壽)를 다 누리다가 가는 장수의 복을 일컬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일생을 건강하게 살다가 평안하게 생을 마칠 수 있는 고종명(考終命)을 꼽았다. 선조들은 '장수하다 고통 없이 죽는 것'을 가장 큰 복으로 여겼다.정부는 지금이라도 할매·할배의 '고종명'을 지켜드릴 수 있게 모든 행정력을 총동원하길 바란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의료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통해 모두가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나서달라.기저질환이 있거나 말거나,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모두가 시간에 의해 이별할 권리를 줘야 한다. 이별이 코로나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 역질에서 호상은 있을 수 없다.

2020-03-05 16:43:37

지난 26일 오후 '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인 대구 동산병원으로 의료진이 투입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청라언덕] '나쁜 정치', '선한 시민'

"대구 의사 5천700명이 질병과의 힘든 싸움에서 최전선 전사로 분연히 일어서자. 응급실이건 격리병원이건 각자 불퇴전의 용기로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끝까지 싸우자."지난 25일 이성구 대구시의사회장의 호소문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공포에 잠긴 대구 시민의 마음을 감동으로 물들였다 "이 위기에 단 한 푼의 대가, 한마디의 칭찬도 바라지 말고 피와 땀과 눈물로 시민들, 대구를 구하자"는 결의가 낙심과 불안에 빠진 도시에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이 회장의 호소에 대구뿐 아니라 전국 각지의 동료 의사들이 속속 응답했다. 26일 서울 강남구의 집을 출발한 여의사(60)는 가족의 만류에도 대구행 고속철도(KTX)에 올랐다. 지원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경산의 노의사(66)는 "나처럼 늙다리 내과의가 쓰일 데가 있을까 했지만 그래도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신청했다"고 말했다.불과 하루 뒤인 27일 청와대 홈페이지는 분노한 민심으로 들끓었다. '문재인 대통령 탄핵을 촉구합니다'는 제목의 국민청원 동의자가 100만 명을 넘어선 것이다. 역대 세 번째로 많은 동의자다.지난 4일 제기된 이번 청원에 불과 이틀 사이 80만 명이 넘는 동의자가 폭증한 배경에는 '나쁜 정치'가 있다.홍익표 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5일 코로나19 사태가 가장 심각한 대구경북에 대한 '물리적 봉쇄'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대구와 경북 청도 지역은 통상의 차단 조치를 넘어서는 최대한의 봉쇄 정책을 시행하기로 했다"며 "봉쇄 조치는 이동 등 부분에 대해 일정 정도 행정력을 활용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안 그래도 자발적인 외출 자제를 실천하고 있는 대구경북 시도민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지는 못할 망정 '정부가 대구경북을 버렸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은 것이다.문 대통령이 나서 "지역적 봉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19 전파·확산을 최대한 차단한다는 뜻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하루 사이 극명하게 교차하는 '선한 인술'과 '나쁜 정치'를 마주하면서 전염병과 인간의 사투를 그린 '페스트'가 떠오른다.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는 1940년 전염병 대공포가 휩쓸기 시작한 북아프리카의 항만 도시 '오랑'을 무대로 한다.소설 속 '오랑'에서 10개월간 전염병과 사투를 벌인 사람들은 정치인들이나 고위 관료가 아니라 평범한 개인이었다. 시민들과 도시의 여행객들은 탈출 대신 자원봉사 공동체 결성과 활동에 헌신하며 장렬하게 맞섰고, 시청 말단 공무원들은 묵묵히 이들을 돕는 역할을 맡았다.소설 속 이야기는 미증유의 바이러스 공포에 직면한 대구경북의 현실과 오버랩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전염병 대위기에도,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나쁜 정치'에도 시민정신만큼은 찬란히 빛나고 있다.임대료를 인하하거나 동결하는 '착한 건물주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전국 각지의 성금과 의료 물품 기부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대구시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에는 '#힘내요 DAEGU' 해시태그를 단 응원도 쇄도하고 있다. 여기에 대구경북으로 달려오는 의료인들의 헌신과 봉사가 더해지고 있다.소설 '페스트'는 비참하고 잔혹한 현실 앞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야말로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진정한 반항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대구경북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한, 대구경북을 응원하는 선한 시민들이 있는 한 대구경북은 반드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2020-02-27 16:02:20

채정민 사회부 교육팀 차장

[청라언덕] 오케이, 부머

꼰대는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키는 은어(隱語)다. 이젠 나이 앞에 몇 마디가 더 붙는다. '자신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이란 말이다. 작년 영국 BBC방송에서도 'kkondae'라고 소개된 적이 있다. '자신이 늘 옳다고 생각하는, 나이 많은 사람'이란 설명이 뒤따랐다.영미권에서도 꼰대와 비슷한 말이 유행이다. '부머'(Boomer)가 그것이다. 이는 2차 세계대전 후부터 1960년대 태어난 베이비부머를 일컫는 속어. 하지만 이젠 말 안 통하는 기성세대를 비꼬는 뜻으로 쓰인다. 기성세대의 부정적 행동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박이다.'오케이(Okay), 부머.' 지난해 뉴질랜드의 20대 여성 의원이 의회에서 이 말을 내뱉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없애자는 '탄소 제로 법안'이 필요하다고 발언하던 도중 일어난 일이다. 기성세대 정치인들이 기후변화 위기를 알면서도 방치하는 현실을 지적하자 중진 의원들이 야유했고, 그에 응수한 것이다.물론 이는 '알아듣겠다'는 게 아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됐거든요, 꼰대 양반' '네, 다음 꼰대' 정도 되겠다. 오랫동안 잘못돼 온 관행과 지식 등에 대해 굳이, 힘들여서,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무시하겠다는 의미다. 왜 틀렸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하나하나 얘기하는 데 힘을 빼지 않겠다는 뜻이다.만 18세 청소년들에게 선거권을 준다니 말들이 적지 않다. 학교가 정치판이 될 거라고 걱정들을 한다. 돌려 말하지 말자. 교사 일부가 아이들에게 '빨간 물'을 들일까 우려하는 것 같다. 아이들이 뭘 안다고 정치를 얘기하냐는 생각도 깔려 있다. '그래, 나 꼰대야'를 당당히 외치며 한바탕 막말을 쏟아낸, 한 일간지 논설위원의 글도 딱 그렇다.해외 사례는 들지 않겠다. 조금만 찾아보면 청소년에게 선거권을 주는 곳은 많다. 이에 반대하는 어른들 눈에는 18세 청소년이 미성숙한 존재들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걱정을 하는 어른들이 만들어낸 사회는 과연 '성숙한' 사회인가.18세 청소년의 정보력과 판단력을 의심하는 시선도 따갑다. 하지만 다른 세대가 그렇게 볼 수준이, 자격이 되는지 의문이다. 학연과 지연, 혈연에 따라 투표하는 이들이 여전히 적지 않은 판국이다. 불쌍하다고 찍어주는 게, 같은 성씨를 쓴다며 모여 누굴 밀자고 떠드는 게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물론 나이 들어가는 자체는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다만 '나잇값' 못하는 건 부끄러워해야 한다. 자신들이 '머리에 피도 안 말랐다'고 얘기한 아이들보다도 모자란 걸 반성해야 한다. 아이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없다는 걸 민망해 해야 한다. 자신들이 얼마나 나은 판단으로 투표했는지 자문하는 게 먼저다.학교가 선거운동으로 난장판이 되는 건 누구도 원치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고3이 지는 무게감을 생각하면 더욱 조심해야 할 문제다. 그래도 그건 제도로 보완하면 된다. 18세 청소년에게 선거권을 줘선 안 되는 이유라고 하기엔 궁색하다. 대구 2·28민주운동도, 4·19혁명도 '까까머리' 학생들이 주도했다. 지금의 기성세대가 젊었을 때 일어난 일이다.포퓰리즘에 대한 면역이 안 돼 있다는 말도 쓴웃음이 나온다. 유튜브 가짜 뉴스에 혹해 누구누구를 때려죽여야 한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으면서 18세 청소년더러 너무 어리다고 할 수 있을까. 자기가 지지하는 쪽을 안 찍으면 '설익은' 것인가. '넌 늙어봤냐, 난 젊어봤다'는 말에 답한다. "그런데 어쩌라고요(오케이, 부머)."

2020-02-20 18:00:5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9일 대구 남구 경북여고 앞 인도에 중구선거관리위원회가 '18세 선거권 확대'에 따른 선거정보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여 놓아 눈길을 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청라언덕]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

오는 4·15 총선부터 선거권 연령 하향으로 18세(2002년 4월 16일 이전 출생)부터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고3 수험생들도 투표장을 찾아야 한다.고3으로 연령을 낮춘 이유는 청소년들의 참정권 확대를 위해 선거권을 부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 때문이다. 이 나이 때면 결혼, 군 입대, 공무원시험 응시 등이 가능한데 투표권만 배제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논리다. 급속한 고령화사회에서 노년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청년층 의견이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도 선거 연령 조정에 일조했다.찬성론자들의 예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선거권 연령 하향은 세계적 흐름'이라며 시대적 과제임을 주장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한국만 빼고 모두 18세 이하인 점을 근거로 한다.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나라는 외국의 사정과 전혀 다르다.미국과 유럽 등 18세 선거권을 인정한 나라는 대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3학년에 해당하는 시기다. 이 때문에 대학입시 등 공부에 매진해야 할 시기인 수험생들에게 선거권과 선거운동을 허용하면, 정치 갈등과 대립이 교실로 이어질 공산이 적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실제로 이번 선거부터 학생들도 선거에 관한 의견 개진과 의사 표시가 가능하다. 이와 함께 개별적 대화와 전화를 통해서도 선거운동이 가능하다. 문자메시지·인터넷홈페이지를 활용해도 무방하다.사회에 진출하기도 전에 범법자가 될 여지도 있다. 개정된 선거법에 따르면 고3 수험생들의 선거운동 가능성을 열어 두면서도, 2개 이상의 교실을 선거 목적으로 방문하면 안 되고 동아리·학생 단체의 특정 정당·후보 지지 선언도 금지했다. 확인되지 않은 사안이나 후보자 비방 글을 게시하거나 전송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 금지 규정을 철저히 숙지하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여권 주도로 선거 연령 하향이 관철됐으나 더불어민주당 등 주도 세력들마저도 후속 조치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고3 수험생의 투표 허용으로 약 17만 명의 유권자가 늘어났으나 관련 예산은 전혀 확보되지 않은 것이다. 후보자들 입장에서는 홍보물과 문자메시지 비용 등을 더 투입해야 하지만 개정된 선거법에는 이와 관련된 비용 증가는 한 푼도 없었다.청년 정치의 부작용도 드러나고 있다. 민주당은 어머니에게 각막을 기증해 화제가 됐던 원종건(27) 씨를 청년 후보로 영입했으나 '미투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출마의 꿈을 접었다. 미투 사건의 주요 내용은 원 씨가 여자 친구를 성노리개 취급했고 여성 혐오 발언을 일삼으며 가스라이팅으로 괴롭혀 왔다는 것이다. 20대 건실(?)했던 청년이 정치라는 무대에 올라서자, 발가벗겨지면서 인생은 180도로 변했다.이런 상황에서 1955년 대구매일신문 주필로 정론직필을 생명처럼 여기던 최석채 선생의 사설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제하의 글은 "어떤 시위나 대회라도 호소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공명(共鳴)의 자의식이 발동돼야 하지만 미숙한 학생들에게 어찌 그런 자각을 기대할 수 있는가"라고 명시돼 있다.헌법재판소도 이미 지난 2013년과 2014년 연이어 "만 19세 미만 미성년자의 정치적 판단이나 의사 표현이 왜곡될 우려가 있다"며 "18세에게 선거권을 주는 방안은 위법"이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2020-02-13 17:40:59

최두성 경제부 차장

[청라언덕] 부동산 정책과 확증편향

확증편향(確證偏向)을 국어사전은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으로 정의한다.자신의 고집 때문에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더 나아가서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성향'으로 풀이하는데, 시쳇말로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도 이런 성향에 해당된다고 한다.'불통'과 연결되는 이 단어를 차용한 예는 대부분 부정적이다. 경계하고 멀리해야 할 말이지만, 부동산시장에서 "집값은 내려갈 리 없다"는 주장에는 어째 귀가 쏠린다.천정부지로 뛰는 집값을 잡겠다는 일념으로 각종 규제를 쏟아붓는 정부 입장에서 이들은 확증편향자다. 19번의 대책을 냈고 모자란다면 더한 것을 꺼내겠다는데도 도통 듣지 않으려니 말이다.정부는 지난해 12월 16일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의 고가 주택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하며 시장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단기 급등에 따른 피로감, 2% 안팎의 정체된 경제성장률 등에다 대출을 옥죄는 등의 정부 규제로 "이제는 집값이 내려갈 것이다"고 전망한 이들도 있으나 정책 발표 두 달이 다 돼가는데도 큰 울림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12·16 대책 이후 시장이 관망세를 견지, 우상향 그래프의 상승 폭이 다소나마 꺾였다는 시세표가 그나마 정부 대책의 약발이 미친 흔적.되레 고가 아파트를 누른 탓에 그 주변이 솟아오르는 '풍선효과' 사례가 이를 상쇄해버리는 듯한 모습이다.한 부동산 전문가는 "더는 오르지 못하도록 고가 아파트에 지붕을 씌워놨으니 가격이 정체된 중저가 아파트나 그간 가격 상승의 '단맛'을 보지 못한 지역은 이번 기회에 값을 올리라고 정부가 길을 터주는 것 같다"고 했다.그러는 사이 "결국 올해도 집값은 오른다"는 확신에 찬 주장이 많은 사람에게 신념처럼 굳혀져가고 있다.이들은 1%대 저금리, 부동산 외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1천여조원의 부동자금, 분양가 상한제발(發) 공급 축소에 따른 신축 또는 준신축 아파트 열기 지속, 자사고 폐지 등 고교 체계 및 정시 확대로 말미암은 학군지역 집값 강세, 각종 개발 이슈가 등장할 총선 등을 그 근거로 든다.물론 핵심은 부동산 정책 자체에 대한 불신이다. 역대 여러 정부도 투기 근절을 부동산 정책의 근간으로 내세워 왔다.박정희 정부는 잇단 인프라 개발로 일명 '복부인'들의 투기가 극성을 부리자 부동산 투기억제 특별조치법과 토지거래 허가제를 도입했다. 전두환 정부는 양도세 인하를 포함한 규제 완화와 부양책을 썼으나 시장이 과열 조짐을 보이자 투기과열지구 지정, 채권입찰제 등 억제 카드를 빼들었다.그 후로도 각 정부는 시장이 얼어붙으면 완화하고 뜨겁게 달아오르면 규제책을 내는 등 '냉·온탕'을 수시로 오갔다."정부만 믿고 따랐다 재산 증식의 수많은 기회를 날렸다"는 사람들은 "그때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말한다. 확증편향자가 되지 못했음을 땅을 치며 후회한다.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서민들이 대통령을 믿고 집 안 사고 기다려도 되느냐"는 질문에 "대답이 불가능한 질문이다. 강력한 의지라고 믿어달라"고 했다.'투기와의 전쟁'은 선포했으나 승리는 자신 못한다는 뉘앙스로만 들리고 "규제는 언젠가는 풀린다. 그때는 고가 주택이 더 뛰니 좋은 매물을 눈여겨보라"는 어느 부동산 중개사의 귀띔에 끌림이 더한 건 확증편향 때문일까.

2020-02-06 16:11:21

전창훈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대학판 벚꽃 엔딩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할 겁니다."요즘 대학들을 다니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다. 이 말인즉,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대부터 차례로 도산할 거라는 자조 섞인 비유다. 씁쓸한 '대학판 벚꽃 엔딩'인 셈이다.수년 전부터 예고됐던 학령인구 급감의 쓰나미가 올해 대학가를 덮쳤다. 각 대학 입학처 관계자들은 2020학년도 신입생을 모집하면서 그 위력을 실감했다고 입을 모았다. 2019학년도까지는 그럭저럭 버텼는데 이번에는 정말 힘들다고 토로했다.대구경북에서는 2020학년도 입학 자원이 6천여 명 줄어들고 2021학년도에도 비슷한 규모로 감소할 것으로 점쳐진다. 현재 대학마다 추가 모집을 진행하고 있는데, 상당수 학과는 정원 미달 사태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문제는 이런 학령인구 급감 사태가 앞으로 수년간 이어진다는 점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0학년도 입학 자원은 2019학년도보다 4만6천여 명 줄어들어 처음으로 모집 정원보다 적은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이런 추세는 수년간 계속돼 5년 뒤인 2024학년도에는 지금보다 입학 자원이 12만여 명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일반적으로 신입생이 3천 명 이상이면 대형 대학으로 여겨지는 점을 감안하면 5년간의 학생 수 감소 추세는 실로 어마어마하다.하지만 대학마다 이런 위기를 느끼는 온도차는 확연하다. 학령인구 감소로 서울지역 4년제대 입성이 과거보다 수월해지면서 고3 수험생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혹자는 지금의 위기는 지방대의 위기라고 지칭하기도 한다.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의 역할을 한 번 따져보자. 교육부는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해 2015년부터 대학구조개혁평가를 통해 대학들의 정원 감축을 유도해왔다. 그러나 획일적인 잣대로 인해 지방대의 정원 감축 규모가 서울지역 대학보다 4배 이상 많았다.대학교육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서울시내 대학 정원은 3.5% 감소(9만771명→8만7천572명)한 반면 수도권 이외 지역의 대학 정원은 13.6%나 감소(34만3천715명→29만6천835명)했다.지난해 8월 교육부가 대학 자율을 강조하면서 대학구조개혁 방향을 달리한다는 발표했지만 실상은 벼랑 끝에 몰린 지방대를 더욱 압박한다는 비판도 있다. 표면상으로는 자율을 내세우지만, 진단지표 가운데 '충원율' 비중이 확대돼 사실상 지방대 죽이기 정책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결국 충원율 경쟁에서 지방대는 수도권 대학을 이기기 힘들기 때문이다.우리나라의 대학 생태계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애초부터 공정하지 않은 환경에서 대학들은 교육부가 제시한 일률적인 기준에 따라 무한 경쟁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경쟁력이 없는 대학들이 퇴출되는 사례도 있었지만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지방대들이 지역적 한계 탓에 성장 동력을 잃는 부작용도 심했다.최근 교육부가 지역혁신 플랫폼 구축사업을 발표했다. 지방대와 지방자치단체가 서로 협력해 지역의 미래 먹거리사업을 만들고 청년 일자리까지 만들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6월까지 비수도권 3개 지역을 선정해 7월부터 내년 4월까지 시범사업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무엇보다 과거 지방대를 옥죄는 방식에서 벗어나 비수도권 대학을 지원한다는 관점에서 사뭇 기대된다. 부디 단발성이나 전시성 정책으로 그치지 말았으면 한다. 더 나아가 이번 정책이 교육부 '지방대 살리기 프로젝트'의 불쏘시개였으면 한다.

2020-01-30 18:41:25

한윤조 경제부 차장

[청라언덕]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가

데이터 홍수 시대다. 아침 출근길 교통 이동 경로부터 카드 결제, 메시지를 주고받은 내용, 스마트폰 검색 내역 등 한 개인에게서만도 매일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새롭게 생성되고 그 내역들은 대부분 기업·정부 등에 의해 차곡차곡 쌓인다.이렇게 특정 개인에게서 파생되는 다양한 디지털 정보는 과연 '내 것'일까, 아니면 소유권 개념을 논의할 수 없는 무형물일까.과거에는 '자원'이라고 하면 석탄·석유·광물 등을 맨 먼저 떠올렸지만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데이터가 황금알을 낳는 최고의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결합을 통해 다양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낼 수 있다. 여기서 디지털 데이터는 '원유'에 비유되기도 하고, '21세기 자본'으로 불리기도 한다.얼마든지 돈이 되는 데이터는 우리 사회에 이미 넘쳐난다. 비즈니스의 데이터화에다 사물통신 사용 등이 급증하는 가운데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조사기관 IDC는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연간 디지털 데이터가 2025년에는 163조 기가바이트(GB)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풀HD급 영화 44조 편에 달하는 분량이다.계속 국회를 표류하던 '데이터 3법'이 연초 통과하면서 빅데이터를 활용한 4차 산업혁명의 혁신적 발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 가장 먼저 정리해야 할 숙제가 '데이터 소유권'이다.앞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 '가명정보'는 지금까지의 '익명정보'와는 그 양상이 사뭇 달라 일각에서는 그 부정적인 영향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기 때문이다.익명정보는 식별자가 완전히 삭제되고 범주화된 정보이지만 가명정보는 좀 더 자세하다. 이름·주민등록번호 등 민감한 개인정보만 암호화해 알아볼 수 없게 처리했을 뿐 실존하는 인물의 정보 그대로인 것이다. 그래서 가명정보 데이터들은 몇 번의 분석과 처리 과정을 거치면 누구 정보인지 특정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터져 나온다.은행이나 포털사이트, SNS 등을 통한 대량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빈발한 탓에 우리나라의 가장 고유한 개인식별정보인 주민등록번호까지도 나만의 것이 아닌 현실을 감안한다면 가명정보를 통한 개인 식별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임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더구나 지금까지 개인정보 이용은 동의하에 이뤄졌지만 가명정보는 동의 없이도 활용될 수 있다 보니 내 정보를 누가 어떤 목적으로 쓰고 있는지도 알 수 없어 불안감을 키운다.이번 데이터 3법 통과로 나에게서 생성된 소비 패턴부터 민감한 신용·의료정보까지 온갖 정보들이 기업의 돈벌이에 이윤 창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정부는 시행령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근본적인 문제가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것이다. 정부와 산업계는 데이터 자원이 가진 가능성으로 기술 경쟁에서 앞서 나갈 장밋빛 전망만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가장 근본적인 '데이터 소유권' 문제부터 공론의 장에 올려 시민사회 합의를 이끌어내는 작업을 선행해야 한다.이미 국회에서는 이와 관련해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의한 민법상 '물건'의 개념에 데이터를 포함하는 법안이 발의돼 있기도 하다.또 데이터와 개인정보 규제 완화가 개인의 생활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충분한 논의의 장이 마련돼야 한다. 데이터는 잘 쓰면 삶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만들지만, 반대로 삶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양날의 검이다.

2020-01-23 15:28:40

장성현 경제부 차장

[청라언덕] CES, 참가만이 능사는 아니다

지난 8일(현지시간) 'CES 2020'이 한창이던 미국 라스베이거스 테크 이스트(Tech East) 내 사우스플라자(South Plaza). 18만 명이 몰려드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가전·IT 박람회'답지 않게 전시장 안은 꽤 한산했다.주로 디자인과 조달 분야 업체들이 배치되는 사우스플라자는 가건물에 테크 이스트 내에서도 외곽에 있어 관람객들의 발길이 뜸한 편이었다.이곳에 마련된 대구경북공동관을 찾는 해외 바이어들도 기대만큼 많지 않았다. 스타트업이나 아직 해외 시장 인지도가 높지 않은 업체들이 다수인 점도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역시 중견·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밀집한 '테크 웨스트'(Tech West) 내 샌즈 엑스포로 들어서자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전시장은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통로를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인파가 붐볐다.이곳에는 3D 프린팅과 무선 디바이스, 드론, 건강, 웨어러블, 피트니스, 센서, 스마트홈, 수면 분야 업체들이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중견기업인 바디프렌드와 코웨이가 전시장을 꾸렸고, 대구테크노파크 스포츠융복합산업지원센터가 마련한 홍보관에도 10개 업체가 전시 부스를 마련했다.설립 5년 미만의 스타트업 기업들로 구성된 '유레카관'도 인산인해였다. 올해 처음 CES에 참가한 서울시는 '스마트시티, 스마트라이프'를 주제로 공동관을 차리고 수많은 관람객을 맞았다.한국정보통신기술산업협회(KICTA)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한국국제협력단(KOICA). 삼성전자 C-랩,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의 지원을 받은 국내 업체들도 'KOREA'라는 이름 아래 유레카관에서 기술을 선보이고 있었다.그렇다면 대구경북공동관은 왜 한산한 사우스플라자에 자리를 잡았을까. CES를 주최하는 CTA(전미소비자기술협회)가 대구경북공동관을 사우스플라자에 배정한 건 공동관의 참가 주체가 지방정부이기 때문이다.CES는 철저하게 기업과 기술 위주의 전시다. 분야별 참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 전시는 주요 전시장에 들어가기 어렵다. 서울시가 '유레카관'에 공동관을 차린 건 설립 5년 미만의 스타트업만 모은 덕분이다.공동관에 참가한 대구 기업 25곳 중 10곳은 설립 5년 이하의 스타트업이었다. 제품과 기술도 AI와 진단 및 의료기기, 스마트도시, 드론, 사물인터넷, AR 등 분야별로 다양했다.대구경북이 만약 분야별로 기업들을 모아 여러 곳의 공동관을 마련했다면 사우스플라자가 아닌 본 전시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국내 지자체 중 가장 일찍부터 CES에 참가했지만, 성과를 거둘 전략은 부실했다는 뜻이 된다.다행히 'CES 2021'에서는 대구경북공동관이 가건물 신세를 면할 가능성이 높다. CTA는 내년 CES에서 국가관을 사우스플라자 대신 테크 이스트 내 사우스홀로 옮기기로 정책을 수정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안심할 건 아니다. 사우스홀 역시 관람객들의 주목도가 떨어지는 전시장 중 하나다. CES 2021은 전체 부스 중 절반 이상이 이미 자리 배치도 끝난 상태다.대구시는 벌써 3회째 CES에 참가했다. 참가에 의의를 둘 시기는 지났다.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전략 수립이 절실하다. 대구경북공동관을 분야별·주제별로 묶어서 참가하는 방법도 대안이 될 수 있다.목 좋은 자리는 참가 횟수가 늘어날수록 차지할 가능성도 커진다. 내년 CES에서는 대구경북 기업들의 전시장이 관람객들로 붐비길 기대한다.

2020-01-16 17:29:47

정치부 차장 이창환

[청라언덕] 보수대통합을 바라보며

4·15 총선을 앞두고 대통합이 보수 진영의 화두로 떠올랐다. 대한민국 보수를 대표하는 지역인 대구경북(TK) 유권자들도 보수대통합 성공 여부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보수 진영의 큰집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갈지자 행보로 인해 우여곡절을 겪은 보수대통합은 선거일 97일을 남기고서야 혁신통합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보수대통합을 향한 첫걸음을 겨우 내디딘 셈이다.분열된 채 치른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보수는 참패했다. 이대로 총선을 치른다면 보수의 패배는 불 보듯 뻔하다. 대선의 전초전인 총선에서 완패한다면 정권 교체도 물 건너갈 공산이 크다. 범여권으로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그나마 균형을 맞추게 할 최소한의 장치가 보수대통합이다.최근 일부 서울 언론이 TK 정치권을 '반(反)통합 진원지'로 지목하는 것은 우려할 일이다. TK 정치권이 "영남권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다면 (수도권을 일부 잃어도) 총선에서 자력으로 해볼 만하다"는 분위기라고 전하고 있다. 유승민 의원이 주도하는 새로운보수당에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기도 한다는 것이다.이 보도를 접하면서 4년 전인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불거졌던 '존영 파동'이 떠올랐다. 당시 유승민·주호영·류성걸·권은희 의원은 새누리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자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선거전이 가열되던 3월 28일 새누리당 대구시당은 이들 의원 당원협의회 사무실에 걸린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을 철거해 반납해 달라고 요구했다. 당의 예산으로 제작해 배포한 사진은 정당 자산이라는 이유에서다.이날 오전 대구시당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 사진 철거를 요구한 데 이어 오후 관계자가 직접 공문을 들고 당협 사무실을 찾아갔다. 권은희 의원 측 관계자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유치하고 치사하다"며 울분을 토하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존영 파동의 후유증은 컸다. TK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엄청난 역풍이 불었고, 특히 수도권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다.새누리당 내부에서조차 "4석을 얻으려다 수도권에서 20석 이상 날아갔다"며 자조했다. 취재기자로서도 낯뜨거웠던 기억이다. 비상이 걸린 TK 의원들은 두류공원에 모여 '한 번만 살려달라'며 무릎 꿇고 읍소했지만 돌아선 민심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TK 보수 정치권은 지역 정서에 의지해 꽃길을 걸어왔다. 꽃길에 취해 변화와 혁신을 거부하고 반통합 세력으로 비치면 TK 정치권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TK 탓에 통합이 되지 못하고 총선에서 패했다는 평가가 나와선 안 된다.TK는 보수 진영의 본진이다. 보수 정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도덕적 해이에 빠질 때 회초리를 들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다. 오히려 TK에서 보수 정당의 혁신과 변화의 바람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참신하면서 보수의 가치에 동의하는 젊은 층이 선거에 많이 나와야 한다. 중앙당은 파격적인 공천으로 이들에게 힘을 실어야 한다. 그래야 TK 정치권에 미래가 있고 보수도 살아남을 수 있다.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민주주의를 보편화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제도가 선거라는 의미다. 정당 입장에서 선거는 총성 없는 전쟁이다. 승리를 위해서는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정당이 가진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해야 한다. 보수대통합은 보수 진영이 완패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TK 정치권이 앞장서지는 못하더라도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

2020-01-09 18:41:59

[청라언덕] '녹풍다경(綠風多慶)'

이철우 경상북도지사가 신년 화두로 '녹풍다경'(綠風多慶)을 제시했다. '綠塞風'(녹새풍·높새바람)과 '多幸多福'(다행다복·운이 좋고 복이 많음)을 조합했다. 푸른 새바람으로 경북에 좋은 일을 많이 만들겠다는 염원이 네 글자에 고스란히 담겼다.2019년 경북도정을 사자성어로 표현한다면 어떤 말이 어울릴까. 경북 도정은 'TK(대구경북) 패싱은 없다'는 선로 위를 쉬지 않고 달린 기관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철우표 '새바람' 엔진을 단 기차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의 대내외 환경 속에서 좌표를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경북은 그간 인구 감소와 경기 침체, 그리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사면초가'(四面楚歌) 상황이었다.하지만 이 도지사가 '모피지부'(毛皮之附·근본은 뒷전이고 중요하지 않은 문제만 해결하려는 것)를 해부하고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절박한 심정으로 변화와 혁신, '변해야 산다'라는 슬로건 아래 개혁에 개혁을 시도했다.매주 화요일 오전 전국 최고의 전문가를 초청해 특강, 토론을 통해 시대 트렌드를 배웠다. 침체된 조직에 활력과 창의성을 불어넣고자 '해피 댄스' '황톳길 걷기' '청춘데이' 등으로 직원들의 끼와 재능을 이끌어 냈다. 투명한 인사로 복지부동(伏地不動)하기 쉬운 공무원 조직의 심복지환(心腹之患)부터 없애 나갔다.이러한 노력은 풍성한 결과물로 되돌아왔다. 경주에는 '혁신원자력기술연구원'을 유치했다. 또 포항의 '강소연구개발특구' '차세대배터리 규제자유특구' '가속기 기반 신약클러스터', 구미의 1조원 이상 '스마트산단' 조성, '홀로그램 기술개발' 예타사업 통과, '5G 테스트베드' 국가사업 등도 꼽을 수 있다.관광 인프라 구축도 괄목상대(刮目相對)할 만하다. 도산서원 등은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20여 년 학수고대(鶴首苦待)해 온 '신라왕경특별법'은 마침내 국회를 통과했다. 경주는 이탈리아 로마에 버금가는 천년 수도로서 관광의 보고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에는 포항 영일만 관광특구 지정과 함께 영일만항을 출발하는 크루즈선이 만선을 이루는 쾌거를 이뤄 앞으로 해양관광 콘텐츠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변화와 혁신은 2020년 국비 예산 확보 분야에서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었다. 연초부터 이 도지사는 "더 이상 TK 패싱이라는 말을 하지 말자. 차라리 실력이 없다고 하자"며 노력과 헌신을 주문했다.도지사부터 지난 1년 동안 36차례에 걸쳐 청와대, 총리실, 기획재정부 등의 인사들을 만나며 솔선수범(率先垂範)했다. 경북도청 공무원들도 하나가 돼 국궁진췌(鞠躬盡瘁·마음과 몸을 다하여 나랏일에 이바지함)했다.도지사부터 직원에 이르는 일심동체(一心同體)는 4조4천664억원(2019년 대비 21.1% 증가)이란 국비를 맺게 했다. 자동적으로 지원되는 국비까지 합산하면 8조8천억원 규모로 대폭 늘어난다. 경기도를 제외하고 전국 최고 수준이다. 학립계군(鶴立鷄群)이다.경북도 공무원들도 거일반삼(擧一反三·하나를 알려주면 셋을 안다는 뜻)의 경지에 이르렀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인사 역시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인사가 '대공무사'(大公無私)하니 공무원끼리 손방투지(孫龐鬪智·대등한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 지모를 다하여 경쟁하는 것)한다.2020년 새해에도 구성원 하나하나가 '주마가편'(走馬加鞭)을 다짐한다. 경북도민, 나아가 국민 모두가 '고침무우'(高枕無憂·높은 베개를 베고 근심 없이 지냄)하길 바란다.

2020-01-02 16:49:25

이상준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가덕신공항은 없다

여야 간 국회 대치 공방이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로 번지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 전 국회의장을 총리 후보자로 지명하자 김재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권력분립의 원리가 몰락했다. 입법부 수장을 지낸 분이 대통령의 밑에 들어가 행정부에서 일하겠다는 발상이냐. '시다바리'라는 말이 생각난다"며 청문회 공방을 예고했다.이 와중에 때아닌 '가덕신공항'이 정 후보자 뉴스에 가세했다. 25일 자 부산 지역 언론에 '정세균, 알고 보니 가덕도신공항 적극 찬성'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린 것이다.지난 2012년 8월 24일 당시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자격으로 대구를 찾은 정세균 의원은 "영남지역에 신공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입지는 냉정하게 정치적 배려를 고려하지 않아야 하며 개인적으로는 가덕도가 적지라고 생각한다"고 해 대구경북 지역사회의 거센 반발을 샀다.영남권 신공항 입지를 두고 가덕도(부산)와 밀양(대구경북)으로 갈라져 치열한 갈등을 거듭하던 시절, 여야 대권후보 중 유일하게 가덕도 지지 입장을 밝힌 것이다.이에 부산 지역 언론은 "과거 정 후보자가 부산뿐만 아니라 가덕신공항에 적대적인 대구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밝힌 것으로 볼 때 가덕신공항에 긍정적인 입장을 가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는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놨다.그러나 정 후보자의 과거 발언은 지난 2016년 국토교통부가 영남권 신공항 갈등에 종지부를 찍고, 김해공항 확장을 발표하기 훨씬 이전이다.정치인이라면 모를까, 국정 2인자로 영남권 5개 시·도가 합의하고 정부가 발표한 국책사업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고, 또 영남권 신공항 갈등을 조장할 순 없는 노릇이다.지난 6월 김해신공항 재검증에 착수한 총리실은 이미 외부 전문가를 통한, 중립성과 전문성을 최우선으로 한, 기술적 검증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다.영남권 신공항 입지 재선정(가덕신공항 건설) 등 부산·울산·경남(부·울·경)의 정무적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설령 정 후보자가 국회 청문회를 통과해 총리에 오른다고 해도 더 이상 부산 지역 언론과 정치권이 기대하는 가덕신공항 재점화는 '없다'는 얘기다.무엇보다 과거와 달라진 점은 부산 지역사회 여론이다. 지난 24일 부산MBC가 연말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보도에 따르면 부산 시민들은 가덕신공항 건설보다 지금의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방안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지난 19~22일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성인 남녀 1천2명을 대상으로 신공항 건설안을 여론조사한 결과, 김해공항을 확장해야 한다는 응답(41.1%)이 가덕신공항을 건설해야 한다는 답변(37.6%)보다 더 많이 나온 것이다.부산MBC는 "오차범위 안이라 하더라도 예상보다 김해공항 확장 안에 대한 시민 선호도가 높다"며 "가덕신공항이냐 김해공항 확장이냐, 선거 때마다 정치 쟁점이 된 이 사안에 시민들의 피로감이 커 보인다"고 분석했다.같은 여론조사에서 취임 이후 1년 6개월간 오거돈 부산시장에 대한 시정 수행 평가에서도 부정적인 반응이 훨씬 많았다.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26.7%, 반대로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46.2%로, 20%포인트 가까운 큰 격차를 보였다.각설하고, 선거 때마다 되살아나는 정치적 산물로 부산 지역사회 내에서도 돌아선 여론, 가덕신공항을 다시 끄집어낸 시장이 정작 시민에게 외면받고 있는 상황, 이것이 바로 부산 '가덕신공항'의 현주소다.

2019-12-26 16:06:16

채정민 사회부 차장

[청라언덕] 주머니돈은 쌈짓돈이 아니다

'사학(私學)이 사악(邪惡)하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사립학교를 둘러싼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예외가 없다. 잊을 만하면 사학 비리 뉴스가 터진다.건국 이후 오랫동안 한국의 교육 인프라는 척박했다. 민간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역대 정부가 사재를 털었다는 사학 설립자들 앞에선 약해졌던 이유다. 사학들은 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폭 넓게 인정받았다. 그게 독이 됐다. 사립학교를 제대로 감사하면 비리가 고구마 줄기처럼 이어진다.박용진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0월 국정감사 때 전체 사학 비리 규모를 공개한 바 있다. 2014년부터 현재까지 사립유치원부터 사립고교까지 발생한 비위 건수는 2만4천300건, 금액은 1천402억원에 달했다. 사립대학의 비위 금액은 4천771억원이었다.'숨 막힐 것 같은 규모', '나라가 망할까 봐 겁날 정도'. 이 통계를 밝히며 박 의원이 덧붙인 말이다.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간다. 다른 곳도 아닌, 학교가 이 상태라는 게 믿기지 않을 수준이다. 특히 아이를 학교에 맡긴 부모 마음이 편할 리 없다.대구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대구시교육청이 사립학교법인 두 곳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내용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비리로 물러난 전 이사장은 여전히 학교이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사회 이사들도 한통속. 학교 교육에 쓸 돈으로 이사장실을 꾸미는 등 공금 횡령도 예사였다. 교내 비리 제보자를 협박하기도 했다.자연스레 사학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른바 '유치원 3법'도 그런 조치 중 하나. 박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것으로 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이다. 국가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사립유치원의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는 게 핵심이다.문제는 이 법안이 아직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유치원 돈을 제멋대로 펑펑 써댄 사립 원장들이 공분을 불러일으킬 때만 해도 곧 시행될 것 같았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발목을 잡았다. '패스트트랙' 열차에 가까스로 올라탔지만 이번에도 통과할지는 미지수다.자유한국당의 반대 논리는 사립유치원 단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의 주장과 흡사하다. 한유총은 국가 회계 시스템(에듀파인) 도입에 반발했다. 물건을 파는 점포도 아닌데 임대료 성격인 시설 사용료를 달라고 요구한다. 모두 사유재산이라는 게 이유다.자유한국당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나경원 전 원내대표가 사학을 운영하는 집안 출신이고, 황교안 대표는 한유총 고문 변호사였던 게 자꾸 눈에 밟힌다. 사학 운영자와 관련된 이는 그들 외에 더 있다.사학이 사유재산이긴 하다. 그래도 운영의 공공성, 투명성은 담보돼야 한다. 세제상 각종 혜택이 주어지고 교직원 인건비 등 재정 지원을 받는 만큼 책임이 뒤따르는 게 당연하다. 대구만 해도 사립유치원 1곳당 연평균 지원액은 5억1천여만원이나 된다. 사립고는 더 많다. 이번 감사에서 적발된 사립고 2곳의 올해 지원액은 각각 82억5천여만원, 56억3천여만원에 이른다.한 한유총 관계자가 이런 말을 한 바 있다. "유치원 폐원 시 학부모 3분의 2 이상 동의가 필요하다는 건 치킨집 문을 닫는데 종업원 3분의 2 동의를 받으란 것과 같은 꼴"이라고. 당시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반문했다. "유치원이 치킨집입니까?"사립유치원은 단순한 사유재산이 아니다. 비영리기관인 학교다. 아이들의 학습권이 보장돼야 한다. 또 사학의 주머닛돈은 쌈짓돈이 아니다. 그 돈 대부분은 국민의 혈세다.

2019-12-19 15:57:43

박상전 서울정경부 차장

[청라언덕] 황교안과 심재철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읍참마속'을 외치며 당직 쇄신을 단행한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심재철 국회의원이 새로운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한 명은 당을 이끌고, 다른 한 명은 당내 의원들을 대표한다. 전통 있는 보수 정당의 명실상부한 두 명의 장수이다.두 사람의 스타일은 너무 다르다. 대여 투쟁, 그 가운데 '단식'을 예로 들자.황 대표는 평생 두 번의 단식을 했다. 최근 마친 8일간의 단식이 하나이고, 고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한 게 전부다. 황 대표는 고시 공부 장소를 지방의 한 기도원으로 잡았는데, 기도원 규율이 3일 금식 이후 정식 입소여서 할 수 없이 단식에 임했다. 금식 후 "머리가 너무 맑아졌다"는 게 추경호 국회의원의 전언이다.황 대표는 최근 '목숨을 건 단식'에 돌입했다. 8일을 꽉 채우고 정신을 잃기까지 했다. 고시 합격 후 평생 공안검사와 고위 공직자로 살던 그에게는 다소 파격적인 행보인 셈이다.반면 심재철 원내대표는 전형적인 386 운동권 세대이다. 광주 출신인 그의 정치적 뿌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민주화운동으로 투옥돼 지금도 고문 후유증으로 시달린다고 한다.단식을 밥 먹듯 했다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 그래서 심 원내대표에게 단식 투쟁은 더 이상 강공으로 보여질 리 없다. 소속 의원을 이끌고 대여 투쟁의 선봉에 서야 할 그의 투쟁 리더십 수위가 어디까지일지 벌써부터 대중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두 사람의 당 내 지지 세력도 극명하게 갈린다.황 대표는 두 번의 당직 개편을 단행하면서 초·재선을 전면에 내세웠다. 공천 혁신을 부르짖으며 중진 물갈이론에 앞장섰고 현역 의원 50% 공천 탈락이라는 수치까지 제시했다.당장 중진들이 불안했다. 불안 심리를 활용해 심 원내대표가 등장했다. 그는 '공천 대학살론' 대신 "여러 의원님들의 다음 총선 승리를 위해 힘을 합치겠다"며 의원들의 불안한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결과 중진들이 대거 몰렸고, 원내대표 1차 경선에서 39표에 불과하던 그의 득표 수가 2차 결선에선 52표로 늘어났다.정치 경력 면에서도 심 원내대표는 5선으로 김무성 의원을 제외하면 당 내 최다선이고 황 대표는 배지를 한 번도 달아 본 적이 없다.황교안·심재철.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의 관계를 놓고 우려와 기대가 동시에 나온다.한편에선 두 사람의 전혀 다른 경력과 정치 스타일을 놓고 상보 관계로 보는 이들이 있다. 각자의 장점을 부각하면서 부족한 점은 서로 채워줄 수 있다는 희망 섞인 분석이다. 중앙당과 원내 운영에 견제가 생겨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감을 찾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반대로 각기 다른 스타일과 당 내 지지 세력 탓에 사사건건 부딪칠 것이라는 우려도 함께 나온다. 특히 공천 문제에서 양보할 수 없는 혈전을 치른다면 당은 복잡한 내홍으로 빠져들게 된다.공천 문제는 중앙당 대표 권한이지만 심 원내대표는 이미 "공천에 개입해 황 대표에게 직언할 것"을 천명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월권 논란이나 항명으로 비칠 수도 있다. 황 대표 측의 강력 반발이 예상되지만 심 원내대표 입장에선 당을 위한 일이라고 주장할 것이 뻔해 양측의 대립은 불가피해 보인다.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당장 17일부터는 예비후보 등록이다. 공천 문제를 두고 두 사람이 상호 보완 공생 관계로 발전할지, 분당까지 가는 시발점으로 악화할지의 문제는 의외로 빠른 시일 내에 드러날지 모른다.

2019-12-12 16:40:06

최두성 정치부 차장

[청라언덕] '꼰대' 지수 쌓는 국회

어느 때부터인가 '멋있다'는 말을 듣기보다 '꼰대'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젊은 시절 늘어놓던 무용담이 이제는 '꼰대'의 척도가 되니, 나이가 들수록 입을 더 무겁게 하라는 선인들의 말을 생활 제1덕으로 삼아 실천할 때가 된 듯하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꼰대'를 은어로 '늙은이'로 정의하며 덧붙여 학생들 은어로 '선생님'을 이르는 말로 규정했다. 권위를 행사하는 어른이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뜻을 담고 있는 말로 요약한 것이다.이 '꼰대'는 해외에 알려지기도 했는데, 영국 BBC방송은 지난 9월 23일 자사 페이스북에 오늘의 단어로 'kkondae'를 소개하며 'An Older person who believes they are always right(And you are always wrong)'라 했다. 풀이하면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나이 든 사람(그리고 당신은 항상 틀렸다)이다.인터넷을 뒤져 얻은 꼰대에 관한 좀 더 긴 해석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 젊은 사람에게 어떤 생각이나 행동 방식 따위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권위주의적 기성세대'다."나 때는 말이야"를 입에 달고 다닌다고 해서 'Latte is horse'(라테는 말이야)라는 유행어도 만들어졌단다.꼰대는 적어도 젊은 세대들에겐 기피 대상이다. 기성세대의 경험과 공(功)마저 깡그리 무시하며 세대를 구분 짓는 잣대같아 씁쓸하지만 나이로, 직책 등 권위로 아랫 세대를 누르며 일방통행을 강요했던 관습을 더는 인정치 않겠다는 젊은 세대의 선언같기도 해 꼰대가 되지 않아야겠다, 이미 꼰대가 됐다면 벗어나야겠다는 동기를 불러일으킨다.젊은 세대가 지목하는 '꼰대 집합소'는 단연 정치권이다. 최근 몇몇 정치인의 꼰대 인식은 그런 면에서 울림이 있다.일찌감치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치권에 포진한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를 향해 "마지막 역할은 젊은 세대에게 문을 열어주는 산파역이다. 국회에 연연해 이를 불쾌하게 여긴다면 꼰대스러운 일"이라고 일침했다.자유한국당의 최연소 3선 개혁파이면서 이제는 전직이 됐지만 당의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장이기도 했던 김세연 의원 역시 불출마 선언문을 통해 "한국당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다. 생명력을 잃은 좀비 같은 존재라 손가락질 받는다. 창조를 위해서는 먼저 파괴가 필요하다. 깨끗하게 해체해야 한다"고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내부 총질, 배은망덕 등 비판과 반발이 쏟아졌으나 비호감 역대급 1위인 한국당에 내린 그의 진단이 틀린 것 같진 않다.그러나 아쉽게도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극대화하고 있지만 정당, 정치인들의 꼰대 탈출 노력은 나아감이 없다.여야는 꼰대의 1강령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다 네 탓이다'를 내세워 국회를 마비시키고 있다. 공직선거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안 등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에 올려진 법안을 두고 극강의 대치를 벌이고 있다.시급한 민생법안 처리를 뒷전으로 한 채 나의 주장만 강변하는 모습은 '꼰대' 마일리지 쌓기 경쟁을 보는 듯하다.내년 총선 승리를 위한 포석이라면 큰 착각이다. 좋아서 찍는 표보다 상대가 싫어서 주는 표가 더 많다는 것을 여러 번 선거에서 경험하지 않았던가.직전 20대 총선에서 야권 분열의 호재에도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원내 2당으로 전락한 데는 공천 파동, 계파 패권주의, 오만이 불러일으킨 비호감의 결과였다는 것을.

2019-12-05 19:30:07

전창훈 경북부 차장

[청라언덕] 오징어의 귀환을 바라며

오징어는 참 친숙하고 만만했다. 한때 땅콩과 찰떡궁합을 이루며 맥주의 대표적인 안주로 이름을 날렸다. 오징어회 한 접시는 꽁치구이와 함께 횟집에서 대표적인 '쓰키다시'였다.그러나 몇 년 사이 오징어는 '금(金)징어'가 됐다. 이제 한 마리에 1만원은 우습다. 오징어회를 '쓰키다시'로 내는 횟집도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가끔 오징어회가 먹고 싶어 횟집에 가도 허탕치는 경우가 잦다.이런 현상에 대해 '덜 잡히니 자연스레 비싸졌겠지'라고 치부할 일이 아니다. 그 배경에 중국 어선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어선들이 우리 서해에서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고 동해상에서도 수산자원을 초토화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오징어의 서식지가 북상하면서 불법 조업을 일삼는 중국 어선들이 북한을 통해 북한 수역과 울릉도 인근을 기습적으로 오가며 오징어의 씨를 말리는 것이다.한국해양수산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2004년 1차 북중어업협정 체결로 북한 수역에 들어간 중국 어선은 114척에 불과했지만 매년 그 수가 급증해 지난해에는 2천161척에 달했다. 북한은 대가로 중국 어선들로부터 수역 입어료를 받는다. 그 수입이 최대 7천만달러에 육박하는 것으로 점쳐진다. 북한과 중국이 '짝짜꿍'하는 동안 우리 어민들과 국민이 피해를 고스란히 보는 것이다.어처구니없는 것은 중국이 싹쓸이한 오징어 상당수를 우리나라에 수출하는 것으로 의심된다는 점이다. 동해안 오징어를 닥치는 대로 잡은 뒤 오징어값이 비싸진 우리나라에 되팔아 큰 이익을 챙기는 셈이다.통계청 등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중국에서의 오징어 수입량은 6만9천889t으로 우리나라 어획량(4만6천274t)의 1.5배를 넘었다.중국 어선들의 조직화·과학화도 위협적이다.오징어는 군집의 크기와 위치 추적이 쉽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인공위성과 탐사선 등을 활용, 오징어에 대한 정보를 대량 수집해 중국 어선들에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중국 어선들의 오징어잡이 추적 정확도는 최대 90%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나라 어선들이 이에 맞서 오징어잡이 경쟁을 한다는 것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나 다름없다.어민들이나 관련 산업 종사자들은 절로 한탄이 나온다.울릉도의 한 어민은 "중학교 졸업 후 60여 년간 오징어산업에 종사했지만 올해처럼 오징어가 없는 경우는 처음이다"고 털어놨을 정도다. 이들은 관련 산업의 공멸까지도 우려하고 있다.어민들은 스스로 우리 바다를 지키겠다고 나섰다. 전국 일선 수협장과 어업인단체, 국회 농수산위원회 위원 등은 최근 '우리바다살리기 중국어선 대책 추진위원회'를 출범하고 중국 어선 불법 조업 등 수산업의 위기 타파를 위해 강력하게 대응할 작정이다.상황이 이렇게 절박한데도 정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북한과 중국의 행태는 국제적으로 명백한 위반행위인데도 눈을 감고 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어업권 판매가 주요 외화벌이 창구로 지목되자, 2017년 12월 대북제재 결의 2397호로 북한의 어업권 판매를 금지한 바 있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중국 어선들이 북한과 우리 수역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포항의 한 수협 관계자는 "동해에는 서해보다 어민들이 상대적으로 적어 표로 연결이 덜 되다 보니 정부에서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가뜩이나 북한과 중국에 편향된 정부인데 우리가 아무리 떠들어도 애써 이런 문제를 외면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날 선 지적이 부디 허투였으면 좋겠다.

2019-11-28 17:19:30

지난 7월 영남대의료원 응급센터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해고 노동자. 왼쪽이 송영숙 부지부장. 매일신문 DB.

[청라언덕] 당신의 관심을 조금만 이웃 가까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겨울이 훌쩍 다가오면서 괜스레 마음이 더 후달린다. 개인적으로 올 한 해 지역에서 벌어진 일들 중 가장 마음의 빚이 큰 사건 중 하나가 영남대의료원 사태이기 때문이다.사람이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는데 뭐 하나 도움된 것이 없다. 그저 날이 궂기만 하면 내내 하늘만 쳐다봤다. 누가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이들이 별 탈 없이 안전하기만을 기원했다.여성 해고노동자 2명의 고공 농성은 한창 더위가 심해지는 7월 1일 시작됐다. 이들은 장마와 이글거리는 한여름 뙤약볕을 견디고, 불어닥치는 태풍을 맨몸으로 그대로 받아냈다. 이후 낙엽이 다 떨어지고 영하의 찬바람이 불어닥친 지금까지도 고공 농성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2명의 고공 농성자 중 1명이 건강 문제로 중도에 내려오면서 1명만 홀로 남아 외롭고 위험천만한 나날을 버티고 있다. 오늘로 벌써 144일째다. 이대로라면 해를 넘길 기세다.영남대의료원 사태에 유달리 미안함이 쌓이는 이유는 목숨 내놓고 투쟁하는데도 영 시민들의 관심을 얻지 못해 언론의 탓도 있는 것 같아서다. 지역 언론조차 지속적인 조명을 이어가진 못했다.반면 이들에게 미안함이 커질수록 모든 것을 함몰시키는 정치 이슈에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모든 것이 서울 중앙 집중 일색인 우리나라지만, 이 중에서도 유독 정치 분야는 거대 담론이 모든 것을 잠식하는 현상이 빈발하는 곳이다.얼마 전 모든 정국을 휩쓸어 버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가 그랬고, 현재 진행 중인 검찰 개혁을 둘러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논란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더해 뉴스만 틀면 친정권과 반정권의 세력 다툼이 쏟아지고 또 쏟아진다.사람들은 모여 앉았다 하면 나랏님과 정권 이야기다. 국가와 민족을 걱정하기 바쁘고, 정치와 국정 운영,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전문가적인 식견을 과시한다. 그 와중에 편 가르기도 곧잘 벌어진다.이 틈바구니 속에서 정작 우리 삶에 맞닿아 있는 '미시 정치'는 그 존재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정작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일들에 관심을 쏟는 이들은 많지 않다. 경악할 만한 사건이 벌어져 봤자 잠시의 가십으로 지날 뿐이다.'공정함'을 논하는 시대지만 의외로 내 바로 주변에 누가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당했는지는 관심 밖이다. 내가 사는 동네 의원들은 제대로 의정 활동을 하고 있는지, 직접 혜택을 받는 청년정책은 지역 실정에 맞는지, 재개발로 인해 내쫓긴 사람들은 어디로 떠나갔는지를 논하기에 이미 우리의 스케일은 너무 크다. 워낙 시대적 담론에 익숙해지는 사회 분위기가 되다 보니 거창한 세상 이야기를 하면 통찰력과 사고가 깊은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현실적이고 지엽적인 문제를 꺼내 들면 시시껄렁하게 여기는 분위기마저 느껴진다.세상사는 복잡다단하다. 거대 패러다임이 전환되면 세상이 확 바뀔 것 같지만 수많은 일들은 거미줄처럼 미묘하게 얽혀 있다. 더욱이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진보와 보수로 양분된 이념 논리에 매몰돼서는 현실의 모든 문제를 절대 '한 방'에 해결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미시 정치, 생활 정치에 대한 많은 이들의 관심이 필요한 것이다.제발 중앙으로만, 특히 정치 편향된 당신들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내 가까운 곳으로 돌려보면 어떨까. 큰 정치판 바꾸기에 대한 관심도 중요하지만 작은 불공정함, 불편, 비리, 악습 등을 바로잡아 나가는 노력이 병행돼야 진정으로 좀 더 나아진 세상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2019-11-21 16:11:48

장성현 경제부 차장

[청라언덕] 펭하! 넌 커서 펭수가 되고 싶니?

"아빠, 난 커서 '키즈 크레이터'가 될 거야." "응? 뭐라고?" 잠시 귀를 의심했다. 여섯 살 딸이 되고 싶다는 게 아직 본인이 발음도 제대로 못하는 '키즈 크리에이터'를 말하는 건가? 한 달 전까지 딸아이의 첫 번째 꿈은 '집에서 책 보며 일하는 사람'이었다. 작가나 시인을 말하는 것 같진 않다. 일은 한다니 그러려니 했다.그런데, 갑자기 '크리에이터'란다. 연간 수십억원을 번다는 유튜버 '보람튜브'를 말하는 건 아닐 테다. 딸아이는 보람튜브를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때 머릿속에 누군가 떠올랐다. 요즘 그야말로 '힙'하다는 크리에이터, 남극에서 온 '펭수'다.아이는 유튜브를 자주 본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대신 IPTV를 통해 유튜브를 본다. 한참 즐겨보던 '개구쟁이 뽀로로'나 '엉뚱발랄 콩순이'를 거쳐 '헤이지니'와 캐리TV '엘리가 간다'에 빠져 있다가 '허팝TV' '흔한 남매' '아리키친' 등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유튜브 채널로 넘어갔다.펭수가 나오는 '자이언트 펭TV'는 사실 필자가 찾아준 채널이었다. 아이에게 유튜브를 틀어줄 땐 같이 보는 편이다. 어떤 내용의 유튜브 채널을 보는지 확신할 수 없어서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유튜브 채널들이라도 유아가 보기엔 위험한 실험이 많았고, 거친 표현이나 몰래카메라 등 따라하기 십상인 내용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런데 EBS에 제대로 속았다. 착하고 교훈적인 메시지를 줄 것 같던 EBS에서 'B급 펭귄'이라니. 펭수가 랩을 쏟아내며 등장하는 도입부부터 심상치 않았다. 열 살짜리 펭귄이라더니 군필자스러운 행동이라니. 이상한데, 정말 이상한데. 아이와 함께 보며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순간이란. 아이보다 더 펭수를 좋아하게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딸아이의 꿈이 돼버린 '키즈 크리에이터'는 사실 펭수의 꿈이다. 남극 '펭'에 빼어날 '수', 남극 출신의 펭수의 나이는 열 살. 키는 210㎝다. 큰 키와 독특한 눈 모양 때문에 남극에서는 따돌림을 당했지만, 뽀로로와 BTS의 나라 한국에서 우주대스타로 성장하고 싶어 남극에서 왔다. 현재 EBS 연습생 신분으로 EBS 소품실에서 산다. 벌써 구독자가 41만3천 명을 넘어선 대세 중의 대세다.어설프게 보였던 펭수가 스위스에서 배워왔다는 요들송을 기막히게 부르고, 흥겨운 비트박스를 쏟아내니 이런 반전이 없다. 열 살짜리 펭귄이 즐겨 먹는 차는 뜨거운 녹차이고, 비타민과 영양제를 빼먹지 않는다. 아파서 먹는 게 아니라 건강하려고 먹는단다. 좋아하는 소설은 '삼국지', 좋아하는 과자는 '빠다코코넛'이라니 남극의 시간은 한국과 다르게 가는가 싶다.펭수의 매력은 자신만만하면서도 현실적이고 거침 없는 입담에 있다. 스트레스 받고,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 대신 '응원'을 건넨다. "내가 힘든데, 힘내라고 하면 힘이 납니까?"'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은 꼰대들이나 하는 말이다."참치는 비싸, 비싸면 못 먹어, 못 먹을 땐 김명중"이라며 김명중 EBS 사장의 이름도 스스럼 없이 부른다. "갈팡질팡하는 게 고민"이라는 20대 시청자에게 "주변 눈치 보지 말고 원하는 대로 살아. 눈치 아껴"라고 돌직구를 날린다. MBC에 가선 '최승호 사장님, 밥 한 끼 합시다'라고 제안한다. 그게 펭수 스타일이다.착하면서도 거침없고, 시니컬하면서도 따뜻한 펭수, 권위에 주눅 들지 않고,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하는 당돌한 모습. 다시 딸을 돌아본다. 네가 되고 싶다는 크리에이터가 펭수처럼 '갇힌 틀을 깨는 창조자'라면 무조건 OK다.

2019-11-07 10:2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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