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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철 서울정경부장

[청와대통신] 구름위의 산책

한 달이 좀 더 지난 일이다. 추석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던 지난 9월 11일 오후, 청와대에서 추석맞이 농수산물 직거래 장터가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도 장터를 찾았다. 행사를 주최한 농협 관계자가 문 대통령에게 올해 과일의 작황과 가격 현황에 대해 설명하자 문 대통령은 김 여사를 가리키며 "여기 구매자를 상대로"라고 했다. 안주인 김 여사가 자신보다 훨씬 잘 안다는 뜻으로, 김 여사에게 설명해 달라는 의미였다.농협 관계자가 "올해 냉해 피해를 봐서 사과가 많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러자 김 여사는 "여덟 개에 4만8천원이면 한 개에 얼마야, 한 개에 6천원이네요"라고 한 뒤 "제가 청와대에 온 뒤로 시장을 안 봐서 물가가 비교가 안 돼요"라고 솔직히 털어놨다. 장을 보지 않다 보니 한 개 6천원이라는 가격이 평소보다 비싼 것인지, 싼 것인지 구분이 어렵다는 의미였다.청와대가 배포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지나간 추석 장터 행사에서 문 대통령 부부가 언급한 내용을 우연히 다시 읽게 됐다. 그리고 청와대에 온 뒤로 장을 보지 않았다는 김 여사의 한마디에 또 한 번 눈길이 멈췄다.청와대라는 집은 대통령 부부에게 찰나의 사생활도 허락하지 않는 곳일 터. 김 여사는 시장 장보기는커녕, 청와대 근처 상점에 들르기도 어려울 것이다. 살림꾼으로 알려진 김 여사가 과일 가격에 대해 자신 없어 하는 부분에 공감이 갔다.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탈원전 정책을 들고나와 밀어붙였다. 국가가 직접 나서 나라 곳간을 활짝 열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또 최저임금을 올리는 등의 방법으로 소득주도성장을 하겠다며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하고 나섰다.정책은 현실에 발을 딛고 서 있어야 한다. 위에 열거된 정책들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을 자꾸만 까먹는 이유라는 데 이견이 별로 없다. 장터에 나온 김 여사의 발언에 묻어 있는 것처럼 청와대라는 구중궁궐(九重宮闕)은 살림도사·주부구단의 안테나도 무디게 만든다.문 대통령은 이를 미리 파악한 듯 지난해 그의 취임사에서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했고,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하겠다"고도 말했다.현장 파악이 힘든 '청와대 대통령'의 구조적 난관을 뚫는 것이 숙제다. 숙제를 풀지 못하면 경제정책 등 문재인 정부의 내치(內治) 행보가 구름 위의 산책이 될 뿐이다.

2018-10-18 19:28:45

최경철 서울정경부장

[청와대 통신] 원칙의 함정

연휴 마지막날 아침, 동대구역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택시 기사는 "40년 동안 대구에서 택시를 몰았는데 이번 추석 연휴처럼 손님이 없었던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택시 기사는 말을 이어갔다. "명절 연휴에는 식당가가 몰려 있는 대구시내 큰 네거리마다 젊은 승객이 많아 밤이면 택시 잡기 경쟁이 나타났는데 이번 추석에는 이런 모습이 사라졌다. 정말 경기가 안 좋다. 길거리를 다녀보면 식당 장사가 안 되고 인건비가 너무 올라 문을 닫는 가게가 속출하는 중이다."동대구역에 닿아 기자가 내리기 직전, 예상했던 대로 그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험담을 통해 바닥으로 떨어진 실물경제 상황의 원인에 대해 최종 결론을 내렸다.서울행 기차에 올라 추석 연휴기간 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얘기를 떠올려봤다. 기업인들도 이구동성이었다. 주문은 없는데 임금은 올라가고 근로시간 단축은 임금 인상 효과는 물론, 납기 일정 차질도 불러온다고 기업인들은 하소연했다.건설이나 설비 업종의 CEO들은 일감이 사라지는 것도 문제지만 일손이 없다고 아우성이었다. 임금이 너무 올라 일손 구하는 데 애를 먹는다는 것이었다. 일당 20만원을 줘도 일손을 못 구하는 지경이라는 게 이들의 얘기였다.이들의 결론 역시 경제 실상을 모르고 소득주도성장(소주성)에 매달리는 청와대가 문제라는 거였다. "머하노? 거 가서 좀 캐라(청와대에 가서 실상을 좀 전해라)."대구에 있는 동안 기자의 귀가 따갑도록 비난의 대상이 됐던 문 대통령은 사실 추석 연휴도 쉬지 못했다. 2박 3일 동안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오자마자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트럼프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했다. UN총회에 나가 다자 외교 무대에서 우리나라의 국익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늘어지는 일정을 찾아보기 어렵고 3박 5일이라는 그야말로 숨 돌릴 틈 없는 일정이었다. 문 대통령의 지론은 "해외에서 하루라도 더 머물면 국민들이 낸 아까운 세금을 더 써야 하니까 최대한 일정을 촘촘하게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그의 순방 일정이 보여주듯 문 대통령은 원칙에 충실하다. 그러나 경제에서만큼은 영생불멸의 원칙이 없다.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이 항상 그러하듯 모순이 발견되면 그에 대한 비판과 변용, 그리고 수정이 필요하다. 이를 알지 못하면 함정에 빠진다.늦지 않았다. 이제 취임 500일을 갓 넘겼을 뿐이다. 진짜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2018-09-27 11:24:19

최경철 서울 정경부장

[청와대 통신] 복심(腹心)의 엄지

지난달 30일 청와대 본관 충무실. 문재인 대통령과 시도지사들과의 일자리 창출 간담회가 진행됐다. 기자는 시도지사별 프레젠테이션이 있기 전 가장 관심을 둔 단체장이 있었다. 문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불리는 김경수 경남도지사였다.매일신문 기자로서 임무를 생각한다면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상북도지사의 발표에 귀를 쫑긋 세워야 했지만 기자의 안테나 방향은 자꾸만 김경수 지사를 향하고 있었다. 문 대통령의 복심답게 '소주성'(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열렬한 지지 의사를 표명한 뒤 이런 연장선에서 경남 도정의 소주성 동참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을까?예상은 빗나갔다. 마이크를 잡은 김 지사는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내내 소주성이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제조업을 살리지 않으면 답이 없다, 제조업 경쟁력이 하락하는 이상 자영업도 살아나기 어렵다." 김 지사는 발표 내내 제조업 부흥을 강조했다.그는 제조업 부흥의 해법으로 '스마트 공장'을 내밀었다. 정보통신기술(ICT)을 제조업 생산의 전 과정에 적용, 생산성과 품질, 고객 만족도를 동시에 향상시키는 지능형 생산공장인 스마트공장이 제조업을 다시 일으키는 열쇠라는 것이다.김 지사는 자신이 직접 방문했던 경남 김해의 스마트 공장인 '신신사'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최근 수년간 스마트 공장 시스템을 구축한 신신사는 스마트 공장으로의 변신을 통해 매출이 24% 늘어났고 일자리도 20% 증가했다는 것. 스마트 공장을 하면 자동화의 진전으로 일자리가 줄어들 것 같지만 실제는 생산성 매출의 쌍끌이 향상으로 인해 오히려 인력 고용이 늘어나는 선순환으로 이어진다고 김 지사는 강조했다.스마트 공장은 지난 박근혜 정부 때 본격화한 제조업 혁신 3.0 정책의 하나다. 박근혜 정부는 대구경북은 물론, 전국에 만든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해 중소기업들의 스마트 공장화 작업에 나섰다.'영원한 적폐'로 낙인 찍혀 있는 박근혜 정부가 제조업 혁신모델로 제시하면서 확산 작업에 시동을 걸었던 스마트 공장. 다른 사람도 아닌 문 대통령의 복심 김경수 지사가 문 대통령 앞에서 그 효과에 대해 얘기했다. 세월이 흘러 여야가 뒤바뀐 뒤, 훗날의 대통령 복심이 지나간 문재인 정부의 경제산업정책 중 "바로 이것"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만한 것은 무엇일까? 소주성일까? 또 다른 히트작이 나올까? 몹시 궁금하다.

2018-09-06 19:23:28

최경철 서울정경부장

[청와대통신] 대박사건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1982년 봄, 보스턴대학 명예경영학 박사학위 수여식 참석차 20여 년 만에 미국을 찾았다. 그런데 그의 눈앞에는 20여 년 전 미국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일본의 철강·자동차가 미국 시장을 휩쓸고 있었고, 미국 생산 설비를 도입했던 일본은 미국 반도체 시장도 침식하고 있었다. 미국은 위기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었다." 세계 최강 미국이 흔들리는 장면을 목격한 호암의 당시 고백이다. 호암은 1980년 봄 일본 방문 때 들은 얘기가 새삼 떠올랐다. 1973년 오일쇼크를 겪은 직후 일본은 제철·조선·화학·섬유 등 기존 기간산업 비중을 줄이고 반도체와 광통신신소재 등 첨단기술 분야로의 전환을 시도, 수출이 획기적으로 늘었다는 설명이었다.호암은 미국 방문을 통해 결심했다. 전통산업에 치우쳐 있는 삼성의 새판을 짜야 한다고. 그리고 바로 다음 해인 1983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그룹 차원에서 반도체 사업을 키우겠다"며 본격 진출을 선언했다. 이른바 28 도쿄 선언. 호암이 만 73세에 내린 결단이었다.한국CCO(최고소통책임자)클럽이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국내 주요 국책민간연구소 11곳의 CEO를 대상으로 '한국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이 무엇인가?'라고 최근 물었더니 1위가 호암의 2·8 도쿄 선언이었다.컬러 TV 생산도 막 시작했던 시절, 최첨단 산업인 반도체에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고 선언한 호암의 당찬 도전은 경제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한국경제 대박사건'으로 규정하듯 35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경제를 지탱하는 기둥을 만들어냈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우리나라 누적 수출액은 역대 최고치인데 그 수출 증가세를 반도체가 이끌었다. 지난달에만 전체 수출액의 20%가 반도체였다.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3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입국장 면세점 도입 방안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하면서 혁신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과 호흡을 맞췄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한미 FTA 체결과 공공기관 지방이전 등의 정책을 통해 혁신을 보여줬다.호암의 반도체처럼 35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먼 훗날, 모든 이들이 '대박사건'으로 기억하는 업적이 문재인 정부에서도 나와야 한다. 문 대통령이 "결코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국민들의 간절한 소망과 염원이 바로 그것이다.

2018-08-16 18:58:43

최경철 서울정경부장

[청와대 통신] 신음에서 탄성으로

아직도 그 기억이 선하다. 깔끔하게 청소된 새 아파트였다. 주방을 보니 가스레인지 위에는 금방이라도 보글보글 끓을 것 같은 찌개가 든 냄비가 있었고, 전기밥솥에는 따뜻한 밥이 들어 있었다. 외환위기가 터져 온 나라가 신음하던 20년 전, 1998년 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구 달서경찰서를 출입하던 기자는 가장이 아내와 자녀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집 안을 목격해야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끔찍한 사건 현장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온기 가득한 주방 풍경을 봤다. 아무것도 모르고 세상을 떴을 어린아이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경찰조사를 보니 가장은 카센터를 차렸고, 새 아파트도 장만했다. 대출을 냈던 그 가장은 외환위기 직후 폭등한 금리에다, 얼어붙은 경기로 영업 부진에 빠졌다. 더는 버틸 수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을 터. 기자는 외환위기 발생 직후였던 그해, 일가족이 한꺼번에 세상을 뜬 아파트의 비극처럼 유독 끔찍한 현장을 많이 봐야했다. 기자란 직업을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가 들기도 했다.기자가 목격한 현장처럼 수많은 비극을 만들어낸 외환위기의 배경에는 정치적 무능이 있었다. 1997년 해가 밝자마자 5조원가량의 부채를 안고 있던 한보철강이 부도를 냈다. 하지만 당시 김영삼 정부는 수습을 하지 못했다. 3월엔 삼미그룹, 4월 진로그룹, 5월 대농과 한신공영이 자금난으로 법정관리 및 화의 신청에 들어갔고 7월엔 재계순위 8위 기아자동차그룹이 도산했다. 한국의 국제신인도는 급락했다. 외국인들은 앞다퉈 돈을 빼갔다. 1997년 1월 한보의 부도로 경제 전반에 비상등이 들어왔음에도 당시 정치 시스템은 이에 대한 해결책을 작동시키지 못했다. 결국 IMF 구제금융체제로 들어갔고 거의 모든 국민들이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올해 2분기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0.7%로 떨어졌고, 설비투자는 2년3개월 만에 최악 수준이며, 건설업은 6년1개월 만에 최저 성장률이라는 지표가 나왔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소통 행보'에 나서겠다고 했다. 지난 23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 노동계와 직접 만나겠다"고 발언한 것이다. 그리고 26일 저녁엔 서울 광화문 한복판으로 나섰다. 현장을 아는 유능한 대통령,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으로 담아낼 수 있는 대통령, 국민의 신음(呻吟)을 탄성(歎聲)으로 바꿔놓는 힘이다.

2018-07-26 19:22:11

[청와대 통신] 담장 너머 이야기

"박근혜 전 대통령 때 이후 처음인데, 여기 왔다 가면 맛이 개운치가 않다. 그때는 정무수석이 질문도 못 하게 했다." 지난 3월 7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의 여야 대표 회동에서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고압적 태도를 지칭하며 한 발언이다.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5월 23일 자신의 첫 재판에서 다스 소송비를 삼성이 대납했다는 혐의에 대해 "어디 삼성 부회장이 약속도 없이 청와대에 오겠나"라며 청와대는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는 취지로 반박했다. 우리나라 최고 기업 2인자가 와도 청와대 철문 자물통은 열리지 않는다는 의미였다."청와대는 국민들이 보기에 가장 높은 곳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지난달 1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고압적 청와대, 권위적 청와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이같이 언급했다. 여전히 국민들의 일반적 시선은 청와대를 '높디 높은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문 대통령도 공개 석상에서 밝힌 셈이다.청와대 담장은 마주하고 있는 경복궁 담장보다 훨씬 낮지만 심리적 정서적 담장의 높이는 교도소 담장보다 훨씬 더 높은 것이 사실이다.지난 주말 대구에 갔다가 만난 기업인들도 기자에게 청와대 담장 얘기를 꺼냈다. 이달부터 시작된 근로시간 단축이 가져올 지역 산업현장의 아우성에 대해 청와대가 못 들은 척 담장을 쳐놓고 있다는 것이었다.건설업체 CEO는 "날씨에 민감한 건설업종은 비가 와서 일을 못하면 공기를 맞추기 위해 단기간에 몰아서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일괄적 근로시간 단축이 말이 되느냐"고 했고, 성주의 한 제조업체 CEO는 "성주에는 외국인 근로자가 아니면 일손이 없는데 근로시간 단축을 하면 도대체 어디서 새 일손을 구한다는 말인가"라고 따져 물었다."제가 대통령입니까?" 기자는 역공을 펴면서 화제를 돌렸지만 그들의 하소연에는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영국의 정치철학자 D. 라파엘은 민주주의 정부에 대해 얘기하면서 "통치자는 국민을 위해 가장 좋으리라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국민도 원해야 한다고 추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혹시 라파엘의 분석에 부합하는 것이 아닌지, 국민들은 걱정하고 있다.청와대 담장을 낮추고 대통령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얘기 듣는 기회를 늘리는 것이 어떨까.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기자는 학교에서 배웠다.

2018-07-06 05:00:00

최경철 서울정경부장

[청와대통신] 그대 이름은? '變德'!

요즘 프로야구에서 한화는 모든 팀의 주목 대상이다. 12일 기준으로 24회의 역전승을 기록, 리그 역전승 1위를 달리기 때문이다. 뒤집기의 달인들이다.세계적 범위로 시야를 넓혔을 때 뒤집기 달인은 단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직후 느닷없이 편지 한 장을 날리면서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했다. 한미 정상회담을 막 마치고 웃으며 귀국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적 결례 중의 결례를 했다는 지적까지 낳았다.소동이 빚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트럼프 대통령은 또다시 말을 뒤집었다. 북미 정상회담을 예정대로 하겠다는 것이었다.트럼프는 대통령은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종전의 입장을 뒤엎어버렸다. 북한 비핵화의 핵심적 원칙으로 내세웠던 CVID를 공동합의문에 넣지 않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원론적 수준으로 한발 물러선 것이다.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직후 북한에 대한 강력한 군사적 억제책인 한미 연합훈련 중단 방침도 내놨다. 비용 문제를 거론하며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까지 했다. 혈맹(血盟) 수준인 한미동맹을 근본적으로 뒤집을 수 있는 언급이었다.사실 미국은 힘이 떨어질 때마다 '미국답지 않은' 변덕을 부려왔다. 베트남전쟁에서 패배를 맛본 세계최강 미국은 1969년 닉슨 대통령이 괌 독트린을 발표, "두 번 다시 아시아대륙에 지상군을 파견해 전쟁에 개입할 생각이 없다"고 선언했다. 이후 1970년대 들어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를 실제 시도했다.트럼프의 변덕은 계속될지 모른다. 아니 미국의 변덕이 지속될 것이다. 변덕을 만들어내는 원인은 동맹국의 이익이 아닌 미국의 국가 이익이다. 2차 대전 이후 미소 양극 체제하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샤를 드골은 "미국은 궁극적으로 유럽을 위해 싸우지 않을 것"이라며 소련의 위협에 맞서 독자적 핵개발에 나섰다. 드골은 미국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마침내 핵보유국이 된 뒤 핵무기를 통해 소련과 이른바 '공포의 균형'을 이뤄냈다. 핵을 통한 역설적 평화의 시대를 만들어낸 것이다.'설마'라는 희망적 관측만으로 국제평화가 유지된 적은 없다. 드골의 프랑스가 이를 보여줬다.문 대통령이 또다시 시작된 미국의 변덕 앞에 섰다. 만약 문 대통령의 판단이 잘못된다면 자유 대한민국이 기댈 것은 무엇일까? 무기화된 핵을 갖고 있는 북한의 자비(慈悲)뿐이다

2018-06-14 11:49:49

[청와대 통신] TK 등신론(論)

하루에도 수십 건의 정보가 전자우편으로, 카톡으로, 문자로 쏟아져 들어온다. 며칠 전 저녁식사 자리에서도 장문의 글이 들어왔다. 언뜻 보니 제목이 일단 깜찍했다. '대구경북(TK) 등신론'이다. TK가 등신이라고? 내용은 이랬다. 서울 여의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떠도는 이야기인데 TK는 청와대의 새 주인을 고르는 데 있어서 전략적 투표도 할 줄 모르는 등신이라는 것이 글의 요지다. 글을 풀어보면 각종 여론조사에서 TK 지지율 1위인 안철수 바람에 대한 해석이다. TK 보수층이 문재인 당선을 막으려고 안철수를 찍겠다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는데 TK 보수층의 안철수 지지가 'TK 보수정치의 몰락'을 부른다는 역설을 TK는 모르고 있다, 그러니 TK가 등신이라는 것이다. TK가 등신이니 '홍찍문'(홍준표 찍으면 문재인 된다), '유찍문'(유승민 찍으면 문재인 된다)과 같은 단순논리에 반응하고 있다는 비판도 들어 있었다. 'TK 등신론'은 다음과 같은 통사적 이론도 담았다. '대선과 같은 대형 선거에서 특정 지역이 캐스팅보트를 쥐려면 단순 지지가 아니라 발언권이 필요하다는 것이 정치권의 정설이다. 충청이 오랫동안 전국 단위 선거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것은 충청의 표심이 아니라 김종필이라는 상징적 정치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대구경북은 자기 지역을 대표하는 차세대 정치인을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1991년 3당 합당에 임했다가 2007년 이전까지 15년 동안 TK 대선 후보를 내기는커녕 보수 정당 내부에서도 배척을 당해 자민련으로 분화되거나, 민국당을 창당했다가 수모를 당한 전력이 있다.' 결국 이번 대선에서도 TK의 상징적 정치인을 만들지 못한 채 다른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게 되면 대선 이후 정국에서 TK의 정치적 이익은커녕 발언권조차 얻지 못한 채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할 것이라고 이 글은 단언했다. 이 글에 따르면 유승민 등 TK 후보는 전략적으로 키우려 하지 않으면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일방적으로 짝사랑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TK 등신이라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근거라는 것이다. 최근 몇 주간 주말마다 기자가 만난 대구의 택시기사들도 홍찍문'유찍문을 얘기하면서 안철수 후보를 찍겠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은 "TK는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찾고 있다"고 했다. 정치학을 전공한 기자가 학교에서 배운 선거는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을 찾는 것인데 TK는 정녕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인가? TK는 정말 등신인가?

2018-05-26 23:06:59

[청와대 통신] 門 연 文

청와대가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첫날인 10일에는 북적거린다는 표현을 넘어서 인산인해였다. 닫혀 있던 춘추관(청와대 프레스센터) 내부 곳곳의 문은 일제히 활짝 열렸고, 그 문으로 수많은 취재진이 오고 간다. 춘추관 내 식당은 손님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대통령 측은 대통령의 브리핑이 있을 때만 열었던 춘추관 2층 브리핑룸도 활짝 개방할 방침이라고 했다. 기자들이 이 공간도 취재 공간으로 활용하라는 것이다. 권위의 상징이었던 청와대는 문 대통령 취임 이후 곳곳에 문을 열고 있다. 춘추관 분위기만 봐도 국회 프레스센터인 정론관처럼 하루종일 사람이 오가는 기자실 풍경으로 바뀌고 있다. 문 대통령은 10일 첫 기자회견에서 총리'대통령 비서실장 등의 인사 발표를 직접 했다. 비서가 건네주는 자료가 아니라 대통령 본인이 안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낸 뒤 자료를 들고 직접 설명했다. 기자들의 일문일답을 직접 받지 않아 아쉽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불만을 터뜨리는 기자들은 거의 없었다. 대통령의 일정을 모두 공개한 덕분이었다.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 직전엔 사의를 표한 황교안 국무총리와 오찬 회동을 했고 기자회견 직후엔 일자리 관련 1호 업무 지시가 예정돼 있었다. 빡빡한 일정이라 취재진의 일문일답은 기자들이 봐도 무리였다. 온라인 취재의 문(門)도 문 대통령 취임 이후 활짝 개방됐고, 하루 종일 열려 있다. 청와대가 출입기자단을 대상으로 카톡방을 만들어 친절하게 응답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일정부터 보도자료 등을 이 카톡방을 통해 제공하고 있고, 기자들이 특정 사안에 대해 물으면 문 대통령의 선거운동 기간 '입' 역할을 해왔던 권혁기 춘추관장(보도지원비서관) 등이 24시간 친절하게 응답하는 중이다. 열린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주도했다. 그는 첫날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중요한 내용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직접 말하겠다"고 밝혔다. 비서실장 인선 배경을 얘기할 때도 격의없는 청와대를 만들기 위해 임종석 비서실장을 뽑았다고 했다. 청와대를 떠나 광화문으로 나가겠다는 공약도 정말 실천하겠다고 취임 첫날 재확인했다. 대한민국은 참모를 직접 만나지 않고 전화로만 얘기했던 '인터폰 대통령'의 비극을 체험했다. 닫힌 문이 초래한 결과를 국민들은 목격했다. 문 대통령도 마찬가지였을 터. 문(門)을 연 문 대통령이 이 나라를 변화의 문(門)으로까지 인도할 수 있을지, 국민들은 두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2018-05-26 23:06:41

[청와대 통신] '똥볼'에 대한 기대?

요즘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만나면 '똥볼' 얘기를 많이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잘한다"는 평가가 많지만 언젠가는 헛발질, 즉 속된 말로 '똥볼을 찬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당의 '기대'와는 달리 좀처럼 문 대통령은 '똥볼'을 차지 않고 있다. 취임 초 인기를 그대로 이어가는 중이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80%를 훌쩍 넘어서 있다. 지난 대선에서 문 대통령에게 가장 낮은 지지율을 보여줬던 대구경북(TK)에서조차 8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기록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왔다. 똥볼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문 대통령의 첫 번째 똥볼은 이낙연 국무총리 인선에서 나올 여지가 보였다. 한국당과 바른정당 등은 위장 전입 등을 들고 나오며 강하게 압박했지만,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은 애초부터 이 총리 카드를 거부하기 힘든 구도였다. 이 총리 낙마를 기대했던 한국당 등은 힘을 보여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 구도를 읽는 능력도 모자랐다. 사드 보고 누락을 들고 나왔을 때도 "이번엔 정말 똥볼 차는 것 아닌가"라는 예측이 나왔지만, 들춰보니 오히려 국방부의 보고에 의문이 가는 사항이 여러 가지 드러났다. 지난해 성주로 사드 배치가 결정됐을 때도 국방부는 비밀주의로 일관, 지역민들의 원성을 들은 바 있는데 국방부는 정권이 바뀌고도 이런 습성을 버리지 못했다. 이를 간파한 문 대통령은 제대로 파헤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아무리 국방에 관련된 것이지만 정부는 국민에게 알릴 책무가 있다는 것이 문재인정부의 일관된 주장이다. 똥볼이 나오기만 기다리는 한국당이지만 정신 차린 목소리도 있다. 한국당 원내대표를 지낸 정진석 의원은 지난달 "(한국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똥볼 찰 것만 기다리고 있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 라디오방송에 나와서였다. 이어 "이제 보수도 새로운 설계를 해야 한다. 젊고 잠재력 있는, 역량 있는 인물을 발굴하고 영입하고 키워야 한다. 우리는 그런 걸 참 등한시했다"고 고백했다. 한국당의 반성처럼 문재인정부는 사람 키우는 데 능하다. 당장 이낙연 총리는 국회의원'도지사'총리 경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차기 대권 후보로 떠오를 것이다. 문 대통령은 박원순 서울시장을 외교 특사로 보내기도 했다. 외교 무대 경험을 준 것이다. 사람을 키우는 문재인정부는 두터운 선수층, 그리고 다양한 선수 훈련 방식을 바탕으로 국정(國政)이라는 경기에 임하고 있다. 똥볼 가능성이 줄어드는 이유다.

2018-05-26 23:06:14

[청와대 통신] 사공 많은 배

최근 만난 더불어민주당 한 국회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와 관련, "대통령이 너무 많은 시어머니를 모시는 것 같다"고 했다. 인사를 하면서 신경 써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닌 듯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오랫동안 함께했던 '자기 사람'보다 '다른 정치인들의 사람'을 청와대로 많이 불러들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박원순 서울시장 인맥이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2014~ 2015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내며 박 시장과 함께 일했다. 1년 6개월을 정무부시장으로 근무했던 그는 문 대통령의 영입 1순위로 청와대에 들어왔다. 청와대의 하승창 사회혁신수석은 임 실장의 서울시 정무부시장 후임이었다. 하 수석은 2011년과 2014년 박 시장의 서울시장 선거 캠프에서 선거 총괄을 맡아 '박원순의 복심'으로도 불렸다.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도 2014~2017년 서울시 싱크탱크인 서울연구원장으로 있으면서 박 시장을 도왔다. 조현옥 청와대 인사수석도 2011년 선거 캠프에서 박 시장을 도왔다. 박 시장 취임 직후 서울시에 들어가 여성가족정책실장을 했다. 문 대통령이 박 시장 쪽 사람들만 쓰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의 입이라 할 수 있는 박수현 대변인은 안희정 충남지사 캠프에 있었던 사람이다. 민주당 쪽 얘기로는 요즘 새로이 떠오르는 사람은 이낙연 국무총리다. 문 대통령이 책임총리를 얘기한 만큼 인사에 대한 이 총리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지명자가 나오지 않은 장관 인선의 지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민주당 사람들의 전언이다. 문 대통령과 이 총리가 매주 월요일 오찬 형식으로 회동을 정례화하기로 한 것도 이 총리의 인사 권한이 커질 것이란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오랜 측근만이 아닌 경선에서 경쟁했던 사람들의 인맥까지 폭넓게 활용하는 중이다. 그러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도 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럴 확률이 크기에 이런 말이 나왔을 터. 검찰 개혁을 하겠다며 '모셔왔던' 법무장관 후보자는 낙마했다. 한미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회담에 악영향을 주는 말을 내뱉은 특보도 나왔다. '문재인정부 인사'에 대한 국민들의 걱정이 커지는 이유다. 사공 많은 배가 산으로 가지 않고 강을 따라 바다로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문 대통령의 조타 실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이제 훌륭한 운전실력을 갖춘 대통령을 낼 때가 됐다.

2018-05-26 23:06:01

[청와대 통신] 공부하는 대통령

2002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금은 대통령이 된 친구 문재인 변호사에게 부산시장에 출마해 바람을 일으켜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문재인 변호사는 친구의 말을 듣지 않았다. 자신은 정치와 맞지 않다며 거절한 것이다.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낙선하더라도 당시 부산시장 선거에 도전해 부산 시정(市政)에 대해 공부해 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어땠을까? 문 대통령은 하지만 이 기회를 갖지 못했고, 노무현정부 시절 중앙정부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청와대에서 공직을 경험했다. 문 대통령은 19대 때 부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지만 지방정부를 제대로 들여다보는 경험은 갖지 못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구 달성군에서 1998년 국회의원이 된 뒤 15대 때부터 18대까지 내리 4선을 달성군에서 했지만 지역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았다. 서울 여의도 정치에만 몰입한 탓도 있지만, 그는 사실 지방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 어렸을 때부터 삶의 터전이 서울이었고 서울을 벗어나 산 적이 거의 없는 만큼 애초에 박 전 대통령에게 지방에 대한 관심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지방 언론과 소통을 거의 하지 않는 등 대구 달성군 국회의원 출신이라는 이력이 무색할 정도의 모습을 보였다.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관련, 같은 당 소속으로 지방정부를 이끌고 있는 안희정 충청남도지사가 날 선 비판을 했다. 대통령이 지방자치 개념을 모른다는 것이다. 안 지사는 지난 10일 충남도청에서 열린 충남지사와 도내 시장'군수 정책협의회인 '충남 지방정부 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소방직 국가직화를 약속했다. 저는 이것(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이 자치분권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지방재정을 튼튼히 지원하지 않으니까 소방대원들이 국가직화를 원하는 것이다. 대통령 공약이라고 할지라도 제2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될 수 있도록 의제를 넘겨달라"고 요청했다. 중앙정부가 틀어쥐고 있는 곳간 열쇠를 지방으로 내려주는 근본적 조치를 해야 문제가 해결되지, 국가직 공무원을 늘리는 처방은 지방분권을 해치는 시대 역행적 정책이라는 것이다. 경험만큼 좋은 스승은 없다.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직접 경험한 이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지방자치도 마찬가지다. 안 지사를 비롯해 전국에 '지방자치 선생님들'이 있다. 대통령이 물으면 하루 종일 시간을 비워서라도 설명해줄 사람들이다.

2018-05-26 23:05:43

[청와대 통신] 청와대와의 거리

"오늘의 삼성이 있기까지 모든 임직원, 많은 선배님의 피땀이 없이는 안 됐을 것입니다. 창업자인 선대 회장님…." 지난 7일 오후 3시 30분을 향해가던 시각,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311호 법정.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 측에 433억여원의 뇌물을 약속하고 이 가운데 298억여원을 건넨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후진술을 하던 중 '선대 회장님'이란 말을 꺼냈다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울먹였다. 그는 삼성의 창업주이자 자신의 할아버지인 호암(湖巖) 이병철(1910~1987)의 얼굴을 떠올렸을 터. 사람들은 '돈병철'이란 단어를 쓰며 부자를 상징하는 대명사로, 성공의 아이콘으로 호암을 사용한다. 이 부회장 역시 할아버지와 성공이란 단어를 등호로 연결할 것이다. 하지만 호암은 여러번 '쫄딱' 망할 만큼 큰 시련이 많았다. 호암은 26세 때인 1936년 봄 마산에서 정미소를 창업해 성공을 거두면서 660만㎡(200만 평)에 이르는 땅을 거느린 대지주가 된다. 하지만 이듬해 중일전쟁의 발발로 토지가격이 폭락하고 은행 대출 회수가 들어오면서 거의 모든 재산을 처분해야 했다. 남은 돈을 모두 그러모아 1937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창업, 무역업'국수제조업'양조업 등으로 다시 한 번 큰돈을 벌고 서울 진출도 성공하지만 6'25전쟁은 호암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피란민이 폭증한 대구에 '전쟁 호황'이 찾아온 덕분에 양조장 금고에 큰돈이 쌓이면서 호암은 재기에 성공, 이를 밑천으로 삼성물산을 세운다. 이를 통해 호암은 오늘날 글로벌 삼성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두 번의 대실패를 겪은 뒤 삼수 끝에 삼성의 반석을 닦은 것이다. '인간의 지식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근원적 물음에 대해 존 로크를 비롯한 경험주의 철학자들은 '경험'이라고 답했다. 불에 데인 단순한 경험이 아니라 데여서 아팠던 강력한 고통이 바로 경험이 되면서 지식으로 형성된다는 설명이다. 특검으로부터 징역 12년의 중형을 선고받으면서 삼성그룹 후계자로서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감내하기 힘든 위기에 빠진 이재용 부회장. 대한민국 권력의 핵심이라는 청와대와의 거리를 멀찍이 떨어뜨리지 못했던 삼성의 '잘못된 판단'은 이 부회장에게 큰 충격파를 안겨줬다. 그러나 호암의 생을 돌아보면 위기 속에는 기회도 숨어 있었고, 충격적인 나쁜 경험이 많아질수록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지식도 쌓였다. 존 로크는 이를 철학적 이론으로 설명해냈다.

2018-05-26 23:05:33

[청와대 통신] 산타클로스가 못 오는 곳

문재인 정부가 짠 내년 예산안이 발표된 다음 날인 30일, 청와대 프레스센터인 춘추관에 있던 기자에게 호남에 본사를 둔 한 언론사의 기자가 다가와 물었다. "TK(대구경북)는 SOC(사회간접자본) 예산 괜찮아요? 우리는 지금 난리인데. 이 정권을 누가 만들어줬는데 이런데요?" 얘기를 듣고 나니 꼭 1주일 전이 떠올랐다. 줄어든 내년 예산 걱정에 국회로 왔던 대구경북의 한 SOC 담당 공무원을 만나 얘기를 하던 중 이 공무원이 던진 말이 꼭 1주일 만에 맞아떨어진 것이다. "TK가 문재인 정부에 지지를 적게 보냈으니 우리 지역 예산 삭감은 예견됐죠. 그런데 이 정부를 만든 호남은 강하게 반발할 겁니다. SOC 예산은 지역 인프라가 늘어나는 측면도 있지만 해당 지역 경기를 살려 일자리 유발 효과를 냅니다. 이걸 확 깎았으니…."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적잖은 국회의원들이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지방의 사정을 청와대가 모른다는 것이다. 경기도에 지역구를 둔 한 여당 국회의원은 기자 앞에서 장탄식을 했다. "이웃 도시에 IT 벤처단지가 들어오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 지역구 원룸에 입주했어요. 퇴근 후 늦은 저녁에 집을 얻으러 다닐 때는 교통체증을 몰랐죠. 그런데 막상 집을 얻어 살고 보니 출퇴근이 지옥인 겁니다. 견딜 수 없어 집을 내놔도 집이 나가지도 않고 정말 힘들어합니다. 새 일자리가 생겨 인구는 폭증하는데 도로 여건은 전혀 나아지지 않으니 주민 삶의 질이 형편없어요. 우리 지역에서 가장 급한 복지는 뻥 뚫린 도로인데 이것 참…." 내년 SOC 정부예산은 20% 줄어든 반면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한 복지 지출(146조2천억원)은 12.9% 늘어났다. 전체 예산의 34.1%다. 복지 지출이 전체 예산의 3분의 1을 넘긴 것은 처음이다. 매일신문이 대학도시 경산으로 통학하는 대학생들의 '지옥 통학길'을 없애기 위해 2012년부터 끈질긴 연속 보도를 통해 천신만고 끝에 국가투자사업으로 만들었던 도시철도 1호선 하양 연장 사업. 이 사업 역시 내년 정부 예산에 대구시 요청분의 3분의 1만 겨우 반영됐다. 개통은 또다시 늦어지게 됐다. 재정지출을 확 늘린 문재인 정부를 산타클로스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시원스레 뚫린 썰매길이 없어 '산타클로스 진입 불능 지역'이 된 마을에서 아쉬움에 울고 있는 '복지 사각지대' 아이들은 어찌해야 하나? 산타클로스는 우는 아이에게는 절대 선물을 주지 않는다고 했으니 말이다.

2018-05-26 23:05:18

[청와대 통신] 눈물바다

정호성(48)은 울었다. 지난 1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박근혜(65) 전 대통령의 속행공판에서였다. 증인으로 출석한 그는 전 대통령 부속비서관으로서, 박근혜 국회의원실 보좌관으로서 20년 가까이 모셨던 어른을 청와대'국회 의원회관이 아닌 법정에서 마주했다. 어른도 형사재판의 피고인, 자신 역시 똑같은 신세였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왜곡되고 잘못 알려진 것들이 너무나 많아 가슴이 아픕니다." 그는 이 말을 하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박 전 대통령과 정 전 비서관은 정 전 비서관 구속 이후 10개월 만에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했다.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과 함께 '문고리 3인방'으로 불렸던 정 전 비서관. 그는 시종 울먹이며 발언을 마쳤다. 박 전 대통령도 이날 끝내 눈물을 훔쳤다. 정 전 비서관이 퇴정한 이후 유영하 변호사가 의견을 진술하려다 울먹였고 결국 말을 잇지 못하자, 박 전 대통령도 눈가를 화장지로 훔쳤다. 눈물바다를 생각하니 기자는 몇 해 전이 떠올랐다. 기자 생활을 잠시 멈추고 만 4년 동안 신문사 CEO를 모신 경험이 있다. 어른을 모시는 입장에서는 노(NO)라고 하기가 힘들다. 노라고 하면 어른의 표정이 싹 달라진다. 왜 안 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할 때면 입술이 천근만근이었다. 정 전 비서관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이건 아니다 싶었을 때가 셀 수 없었을 터. 그러나 그는 나서지도, 결단할 용기를 내지도 않았다. 결과물은 참혹했다. 그는 물론 한때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던 어른도 형사재판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 있다. 대통령이 탄핵을 당해 물러난 뒤 '나라다운 나라'를 세우겠다고 외치며 새 정부가 들어선 지도 4개월이 넘었다. 나라다운 나라에 대한 기대가 컸건만 미사일에 핵탄두를 달아 날리겠다는 이들에게 "구호물품을 좀 보내드려야겠다"는 이 정부의 방침에 국민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기 시작했다. 인사검증대를 못 넘고 중도하차한 문재인 정부의 차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가 벌써 7명이나 나왔다. 역대 정부 중 가장 많은 숫자다. 국방부 장관은 평생을 전투대비 태세로 살아온 군 출신으로서 소신을 얘기했다가 청와대로부터 혼이 났다. 박 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보여주고 있는 눈물바다가 대한민국에서 또 재연되는 것은 아닌지, 국민들은 걱정하고 있다. "이건 아니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대통령의 참모가, 국무위원이 과연 있는지 국민들이 묻고 있는지 모른다. '눈물바다 2탄'을 보고 싶은 국민은 없다.

2018-05-26 23:05:02

[청와대 통신] 뉴턴의 제3법칙

1998년 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구 달성군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로 나왔을 때 기자는 그를 처음 봤다. 기자는 달성경찰서를 출입하던 병아리, 박 전 대통령도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 밑에서 잠시 퍼스트레이디 생활을 했지만 선출직 정치세계에서는 초보였다. 박 후보는 수줍음이 많았다. 개표 날이었다. 박 후보는 대구 남구에 있던 달성군청 2층 개표장에 올라왔다가 "후보는 못 들어와요"라는 선관위 직원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한마디 말도 못하고 돌아섰다. 20년 가까운 세월은 '박 후보'가 지녔던 수줍음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게 한 듯하다. 대구 달성군에서의 4선, 최대 보수 정당 대표, 제18대 대통령이라는 영광의 이력을 뒤로하고 탄핵과 구속수감이라는 치욕의 세월을 안게 된 그는 "20년, 30년 징역형을 선고할 테면 해보라"며 이른바 '옥중정치'를 선언했다. 오랜 침묵을 깬 법정 선언은 박 전 대통령의 운명을 쥐고 있는 재판부의 얼굴을 벌겋게 달궈놨다는 후문이 나올 만큼 놀라운 것이었다. 오늘날 현실에 적용되는 정치학 이론의 논리적 기초를 제공한 서구 정치사상가들은 물리학에서 종종 정치 이론을 이식해왔다. 국가의 기원을 설명해낸 '사회계약론'을 집대성했던 17세기 영국의 정치철학자 토머스 홉스. 개인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받기 위해서는 강력한 권위체인 국가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그의 역작 '리바이어던'은 갈릴레오의 역학을 근거로 삼았다. '수줍은 사람'이었던 박 전 대통령이 20년 정치판에서 배워 옥중정치에 접목시킨 물리학 이론이 있었을까? 혹시 뉴턴의 운동법칙 중 제3의 법칙, 작용과 반작용 원리가 아닐까? 뉴턴은 A물체가 B물체에 힘을 가하면(작용) B물체 역시 A물체에 똑같은 크기의 힘을 가한다(반작용)는 법칙을 정리해냈다. "'정의의 관점에서만큼은 우리가 최고'라며 보수정권에 대한 적폐청산 작업에 나선 문재인 정부의 '작용'에 대해 필연적으로 '반작용'이 나타납니다. 그건 정치해본 사람은 누구나 경험으로 압니다. 지난 추석 민심을 봐도 '반작용'이 나타날 조짐이 있습니다." 어느 정치인은 이렇게 해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정치보복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현재 처지를 정치보복으로 규정했다. 과연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 뉴턴의 제3법칙은 오늘 우리 정치판에 적용되기 시작한 것일까? 다음 달 수능을 앞둔 고3 수험생처럼 국민들의 머릿속이 복잡성의 세계로 들어섰다.

2018-05-26 23:04:32

[청와대 통신] 땡큐, Mr. 프레지던트!

얼마 전 한 국회의원과 식사를 함께한 뒤 청와대로 돌아오다 청와대 근처 미술관에 대한 설명을 그 국회의원으로부터 들었다. 거의 매일 다니는 길이지만 무심코 지나쳤던 미술관인데 그곳은 옛 국군서울지구병원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청와대 인근 안가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시해된 뒤 이곳으로 옮겨졌다가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군 의료진으로부터 사망선고를 받았던 역사적 현장"이라고 그 의원은 설명했다. 세월은 흘러 국군병원은 옮겨가고 몇 년 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 얘기 덕분에 기자는 오랜만에 박정희라는 이름을 다시 떠올렸다. 전화기를 들어 그의 약력을 검색해보니 오는 14일은 그가 태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하지만 기자가 요즘 서울에서 근무하고 있어서 그런지, 박정희를 추억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의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파면에다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 수감돼 있는 형편도 꽤 많은 영향을 미쳤을 터. 청와대 부근 건물에 대한 역사 강의를 짧게 들었던 기자는 지난 8일엔 영어로 된 한국 현대사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우리나라를 국빈 방문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회 연설이었다. 그는 박정희 집권 직전이었던 1960년대를 기준점으로 삼아 한국의 오늘날 경제 발전을 수치로 나열했다. 경제 규모는 350배에 이르고 교역은 1천900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구체적 수치를 통해 한국의 경제적 번영을 언급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말도 했다. 한국의 경제적인 탈바꿈은 정치적인 탈바꿈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었다. 경제적 발전을 이뤄낸 뒤 이를 토대로 삼아 결국 민주화에도 성공했다는 의미였다. 박정희(1917년생)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미국 비교정치학 분야 권위자 립셋(Seymour Martin Lipset·1922~2006) 전 하버드대 교수는 '경제 발전이 먼저냐, 민주주의가 먼저냐'와 관련한 논쟁에 대한 결론을 내려준 학자였다. 그는 과학적 원리를 중요시하는 미국 학자답게 꼼꼼한 통계적 분석을 통해 유럽과 북미, 남미의 경제적 발전 정도와 민주주의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끝에 민주주의의 선행조건이 바로 경제 발전이라고 결론지었다. 트럼프 강의 내용을 빌린다면 립셋의 정치학 이론은 이 땅에서 실증됐다. 박정희가 이뤄낸 경제적 근대화가 민주화로 이어진 것이다. 립셋 교수가 저승에서 박정희를 만나면 무슨 얘기를 건넬까? "땡큐, Mr. 프레지던트!"라고 하지 않을까?

2018-05-26 23:04:16

[청와대 통신] 은밀한 유혹

문재인 대통령을 근접 취재하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꼭 1주일 전인 지난달 24일도 그랬다. 문 대통령의 사실상 첫 공식 대구경북(TK)행(行)인 포항 지진 현장 방문 때 기자는 대통령을 근접 취재했다. 대통령의 지역 방문이 이뤄지면 청와대 출입기자단 중 해당 지역 언론사가 근접 취재를 맡는 것이 관행. 기자는 이날도 '고행길'에 올랐다. 문 대통령의 특징은 듣는 것이다. 그는 포항 방문 때 지진 피해를 입은 포항여고에서 학생들의 질문을 많이 유도하더니, 이재민들의 임시 거처로 쓰이는 흥해실내체육관에서도 이재민들에게 많은 얘기를 하도록 권유했다. 이재민들에게 "나가서 말씀하시면 언론이 주목해서 좋다"는 코치까지 했다. 이재민들의 얘기를 듣는 과정에서도 문 대통령은 '대통령 폼'을 가차없이 집어던졌다. 그는 이재민들 틈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엉덩이를 바닥에 깔고 앉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내내 지지율이 올라 '잘한다'는 응답이 무려 73%(리얼미터 조사'11월 20∼22일 조사)다. 역대 대통령 취임 6개월 시점 지지율을 감안할 때 김영삼(YS) 전 대통령(83%) 다음이다. 대통령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자 청와대의 의욕도 넘쳐난다. 국민들로부터 각종 청원을 받아 청와대가 직접 답변을 해주는 등 청와대가 각 부처와 국회'지방자치단체 등을 제치고 '해결사'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이러던 중 낙태죄에 대한 국민청원과 관련, 청와대가 결국 과욕을 부렸다는 강한 비판에 직면했다. 낙태죄 폐지를 위한 공론화 가능성 시비를 부른 것이다. 지식층에서는 "국가권력에 대해 언제 '생명을 행정의 잣대로 다루라'는 권한까지 부여했느냐?"는 물음도 나왔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과 한솥밥을 먹었던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역시 지난 29일 한 강연에서 "국가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국민의 생각까지 바꿀 수 있다는 '국가주의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쓴소리를 했다. 소통 행보를 통해 지지율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문 대통령은 자신도 모르게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만기친람(萬機親覽'임금이 친히 온갖 정사를 모두 보살핌)의 유혹을 느낄 수 있다. 문 대통령의 전임자들이 모두 은밀하게 다가온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임기 초반 지지율이 역대 대통령 1위였던 YS조차 핏대를 세워가며 세계화를 맹렬히 외쳤지만 세계화에 발목 잡혀 외환위기를 맞은 뒤 한 자릿수 지지율로 임기를 마쳤다. 인기가 많을수록 유혹은 더 커지는 법임을 '대통령 잔혹사'가 가르쳐주고 있다.

2018-05-26 23:04:03

[청와대 통신] 닮은꼴 3대

1994년 6월 30일, 세상을 뜨기 불과 8일 전이었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윌프레드 마르텐스 벨기에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과 만났다. 김 주석은 이 자리에서 돈 얘기를 꺼냈다. 그는 "북과 남이 합작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신의주와 개성 사이 철길을 복선으로 만들고, 남한으로 들어가는 중국 상품을 날라 주기만 해도 1년에 4억달러 이상 벌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러시아나 중국 흑룡강성에서 수출되는 물자를 두만강역에서 넘겨받은 뒤 동해안 철길로 날라 주면 거기서도 한 해 10억달러 이상을 벌 수 있다." 김 주석은 실제 주판알을 튕겨본 듯 자세하게 설명했다. 김 주석의 아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선군(先軍)정치를 했지만 2003년 6월 시작된 개성공단 조성 과정에서 결단을 내렸다. 개성공단 용지 및 그 인근 지역에 주둔하던 북한군 2군단 소속 6사단과 62포병연대 등을 5~10㎞가량 후방 배치시킨 것이다. 6사단은 남침 주력 부대로 유사시 서울 등 수도권을 기습 공격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로 알려져 있었다. 김 주석의 손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말 남북 정상회담에서 "앞으로 자주 만나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느냐"고 했다. 김 위원장은 핵을 갖고 있는 상황을 "어렵게 사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군사적 대결보다 평화와 교류를 하는 방법이 더 쉽고 편안한 길이니, 그 길로 가겠다는 의미였다.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代)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무엇이 잘사는 길이고, 편한 길인지를. 하지만 그들은 아는 것을 실천할 수 없었다. 체제 붕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70년 세월 동안 3대를 에워쌌던 두려움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는 없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이 있던가? 하지만 남북 관계에서만큼은 이 속담 적용이 금물이다. 남북 고위급회담을 연기해 버린 북한의 모습만 봐도 427 판문점 선언이라는 '한 방'만으로는 '경기 끝'이라 할 수 없다. 지난 70년이 그랬던 것처럼 장기전이다. 외교는 내치(內治)의 연장이라는 외교가의 격언이 있다. 특정 지역 배제에 대한 하소연, "너무 힘들다"는 산업현장 소상공인들의 아우성 등 나라 안 곳곳에서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들의 손도 꼭 잡아주면 어떨까? 한반도 평화 외교전의 제트엔진이 될지도 모른다.

2018-05-24 19:32:59

[청와대 통신] Coming soon

삼성은 총성 없는 전쟁터라고 불리는 무한 경쟁 구도 속에서 기술 선진국 기업들을 잇따라 거꾸러뜨리며 세계적 기업이 됐다. 하지만 삼성도, 창업주 호암(湖巖) 이병철도, 진짜 총알이 오가는 전쟁터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꼭 80년 전인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연 호암은 창업 1년 만에 조선양조를 인수했고 대구 최고 고액납세자가 됐다. 해방 직후 대구를 방문한 이승만 박사를 대구 유지 자격으로 처음 만났던 호암은 서울에서 한 번 더 이 박사를 만난 뒤 서울행을 결심, 1947년 5월 대구의 사업체는 모두 전문 경영인들에게 맡기고 서울로 사업 근거지를 옮겼다. 그리고 1948년 무역업체인 삼성물산공사를 열었다. 서울행 2년 만에 국내 무역업체 중 순이익 규모 1위가 됐다. 그러나 6'25전쟁이 터졌다. 창고 물건은 약탈됐고, 6'25전쟁 발발 직전 구입한 쉐보레 자동차는 남로당위원장인 박헌영의 차지가 됐다. 알거지가 됐다. 인민군 치하 서울시내에서 죽음의 공포 속에 숨어 살던 호암은 인천상륙작전 직후 서울 수복이 이뤄지면서 천신만고 끝에 피란길에 올랐다. 기댈 곳은 대구뿐. 대구 사업체를 맡겨놨던 전문 경영인들에게 잠시 신세를 지려 했던 호암은 정직한 전문 경영인들 덕분에 사내 유보금 3억원을 건네받았다. 1951년, 이 돈을 들고 부산에서 삼성물산을 다시 세우면서 호암은 재기했다. 호암과 같은 최고 부자의 부(富)조차 한 방에 날려보낼 수 있는 것이 전쟁이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은 전쟁 공포 해소를 위해 끊임없이 북한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헛방망이질이었다. 6'25전쟁이 끝난 뒤 첫 대화가 이뤄졌던 1971년 이후 지난달 정상회담 직전까지, 무려 657차례의 공식 만남을 가졌지만 결과는 빈 수레였다. 그런데 북한의 젊은 지도자가 나타났고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직후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6'25전쟁의 종전(終戰) 선언을 한다는 합의를 했다. "(무력 사용은) 제 손으로 제 눈을 찌르는 것 아니냐"고 되묻기까지 했다. 칼 마르크스는 "인간이 역사를 만든다"('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고 했다. 바로 이 사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쟁 없는 한반도라는 새 역사를 만들까? 그의 속내는 곧 있을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제(美製) 현미경으로 검증될 것이다. 개봉박두다.

2018-05-04 0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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