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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도. 매일신문DB

[계산동기획] 대구시 신청사 건립, 인천·광주·대전은 어땠나?

대구시청 신청사 유치전이 뜨겁다. 단순히 시청 건물을 새로 올리는 차원이 아니라는 판단이 그 열기의 바탕으로 보인다.과거를 살펴보면, 그 지역에서 가장 큰(대표하는) 행정기관이 이전하면 그 지역 1번지 골목도 달라졌기 때문이다.그래서 현재 나와 있는 후보지 4곳 가운데 북구의 시청별관, 달서구의 두류정수장 부지, 달성군의 화원읍 설화리 부지에 신청사가 지어지면, 그 일대에 새 도심이 형성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고, 나머지 후보지 1곳인 중구의 현 시청 자리에 신청사가 지어지면, 동성로로 대표되는 지금의 도심이 좀 더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대구 첫 시내 '향촌동·북성로'삼성을 세운 이병철을 배출했다지만, 그럼에도 큰 기업이 한 번도 자리한 적 없는 대구는, 그래서 큰 행정기관의 이전이 곧 1번지 골목을 형성한 역사를 갖고 있다.대구의 1번지 골목은 일제강점기에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북성로·향촌동이었다. 대구에서 가장 큰 행정기관인 경북도청이 이곳에 존재했다.(당시 대구의 지명은 '경상북도 대구부') 여기에 금융(조선은행 및 조선식산은행의 대구지점), 상권(미나카이백화점), 교통거점(대구역)이 딸려 지근거리에 자리하면서 번화가를 형성했다.실은 서울도 그랬다. 광화문에 당시 국내 최고 행정기관인 조선총독부가 있었고, 인근 명동'종로를 중심으로 주변에 금융(조선은행(현 한국은행)), 상권(미쓰코시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본점)), 교통거점(경성역(현 서울역))이 모여 서울은 물론 국내 최대 번화가를 이뤘다.◆대구시내의 동진 '동성로'그랬던 대구는 1980년대 전후로 1번지 골목이 향촌동 바로 동남쪽 동성로로 이전하게 된다. 경북도청이 1966년 대구 북구 산격동(현 대구시청 별관 자리)으로 이전한 후 10여년쯤 걸려 향촌동은 구도심이 됐고, 동성로는 대구의 '시내'로 떠오른 것이다.이를 두고 동성로 바로 동북쪽 동인동에 위치한 대구시청이 '끌어당겨서'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역학 관계는 이랬다. 대구시청은 1956년 현 대구시의회 청사에 둥지를 틀었다. 이후 10년 동안 대구 한복판에 대구시 청사와 경상북도 청사가 공존했는데, 존재감에서 신참 대구시청이 일제강점기까지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는 경북도청에 '밀렸던' 셈이다.그러다 경북도청이 떠나면서 대구시청이 주도권을 잡았고, 시내 역시 점차 향촌동에서 동성로로 이동했다는 해석이다.이어 1980년대는 동성로가 본격적으로 대구 1번지 골목으로 등극한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게 대구시의 몸집이 눈에 띄게 커진 시기와 궤를 같이 했다. 1980년 수성구 신설, 1981년 직할시 승격 및 월배·성서·칠곡·공산·안심·고산 지역 편입, 1988년 달서구 신설, 1995년 광역시 승격 및 달성군 편입. 이렇게 점점 몸집이 커지는 대구시의 행정을 소화하고자 1993년 현재의 대구시 청사가 건립된 것이다.즉, '대구시청-동성로'의 관계를 설명하려면 지역 대표 행정기관이 큰 상권을 가까이 형성하는 법칙을 과거와 마찬가지로 적용하면 된다.(그런데 경북도청이 옮긴 산격동은 그렇지 못했다. 경북이 아닌 대구에 경북도청이 있었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풀이다. 그래서 주변엔 밥집, 술집만 많았을 뿐.)그렇다면 금융과 교통거점은 어디로 간 걸까.우선 과거에 은행이 행정기관 바로 옆에 자리했던 건 조선은행, 조선식산은행 같은 행정기관 산하 특수은행의 경우이다. 상업은행이라면, 가령 행정을 맡은 시청과 입법을 맡은 시의회가 물리적으로 가까이 자리해 긴밀히 소통해야 하는 것과 달리, 은행 건물이 행정기관 가까이 위치하는 것보다는 지정 금고 입찰을 따내는 것 따위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그리고 출장소나 지점을 행정기관에 입점시키면 되는 일이다.기차역도 대구는 대구시청 가까이 대구역의 기능이 점점 줄어드는 대신 동쪽 멀리 동대구역(1969년 신설)이 지역 대표 기차역이 됐는데, 이는 과거와 달리 교통거점이 도심에 있으면 되려 과밀을 만들기 때문이고, 대구의 경우 고속버스터미널까지 포함해 동대구를 대구 관문으로 키우려 한 도시계획의 영향으로 봐야한다.다른 지역도 비슷한 모습인데, 그러나 상권만큼은 과거나 현재나 큰 행정기관에 따라 붙는 경우가 많다.◆시청 따라 상권 온다그래서 여러 대도시가 대표 행정기관, 즉 시청을 이전시켜 신도심 및 상권을 생성,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시도를 한 바 있다.인천시청, 광주시청, 대전시청 이전이 대표 사례이다.인천시청은 1985년 인천항 인근 중구 인현동에서 남동구 구월동으로 이전한 바 있다. 그러면서 인현동은 구도심이 됐고, 구월동이 인천 1번지 골목이 됐다.광주시청은 일제강점기 동구 광산동에 있다가 1969년 같은 동구 내 계림동으로 이전한 뒤, 2004년 신도시인 상무지구로 이전했다. 이후 10여년 동안 다른 공공기관, 기업들도 상무지구로 따라왔다. 그러면서 계림동 바로 아래 금남로와 충장로는 구도심이 됐다. 이곳엔 2015년 아시아문화전당이 들어서 점점 비어가던 구도심을 채웠다. 일종의 보상 사례로 해석할만하다.대전시청 이전은 광주시청과 비슷한 사례다. 중구 대흥동에 있던 게 둔산신도시를 개발하면서 1999년 둔산동으로 이전했다.아울러 인천시청·대전시청 이전 사례의 닮은 점도 있다. 옛 인천시청 자리에 인천 중구청이, 옛 대전시청 자리에 대전 중구청이 들어서 있는 게 똑같다.◆구도심 쇠퇴 문제도 분명그런데 시청 이전이 긍정적 효과만 만든 건 아니다. 상권이 이동하면서 인구도 함께 빠져나가서다.인천 구도심 상권은 시청이 있는 구월동은 물론 송도·청라 등 신도시로도 계속 옮겨가고 있다. 대전도 시청이 있었던 대흥동을 중심으로 그 서쪽 은행동 및 동쪽 대전역이 함께 모으던 유동인구가 점점 시청이 있는 둔산동, 또 다른 신도시인 도안신도시(둔산동 서쪽) 등으로 빠져나가고 있다.그러면서 구도심 공동화가 발생, 교육(학습권 보장)과 복지(의료서비스 질)를 위해 어느 정도는 필요한 학교와 병원이 자꾸 신도심으로 가려고 해 관련 뉴스가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 광주 구도심의 높은 공실률 문제는 광주 언론이 꾸준히 다루는 기사 소재이다.이에 최근 '도시재생'이 구도심 살리기의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이게 시간이 제법 걸리는 일이며, 만능도 아니라서 이런저런 부작용도 나오고 있다.◆신청사 건립, 완벽한 답은 없다?결국 대구는 다행히 먼저 진행됐기 때문에 선례로 삼을 수 있는 인천·광주·대전시청 이전 사례를 따지고 또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인천은 80년대 성장시대에 개발 흐름을 탄 것은 물론 도심 과밀에도 대비해 시청을 이전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시청 이전에 이어 신도시도 잇따라 건설한 선택은 서울의 베드타운이기도 하거니와 이제는 대도시 중 서울, 부산 다음으로 꼽히는 등 자신감이 바탕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면서 도시 안 여러 곳에 번화가를 만들어 도시 발전을 꾀하는 모습이다.광주와 대전은 IMF 시기를 기점으로 성장시대가 종료된 후 도시 활성화를 위해 시청을 이전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둘 다 신도시 개발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대구와 단순 비교는 할 수 없다. 광주의 경우 시청 외에도 여러 공공기관과 기업 등이 함께 이전했고, 시청이 있었던 구도심엔 분명 보상이 주어진 점이 참고할만한 부분이다.그러고 보면 앞서 언급한 사례들 가운데 가장 늦은(2004년) 광주시청 이전에서도 15년이 더 지난 지금은, 인구 감소 등 저성장 흐름이 더욱 짙어져 도시에겐 오히려 도시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축소가 요구된다고도 할 수 있고, 그러니 차라리 기존 도심을 질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있는 도심 잘 고쳐 쓰자는 얘기다.그럼에도 여러 도시의 역사를 살펴보면, 도심은 마치 생물처럼 계속 이동한 게 사실이다. 도심에도 수명이 있어서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게 섭리일 수 있다. 서울 같은 수도(인프라 집중)나 울산 같은 공업도시(공장, 공단 입지가 더 중요) 등의 경우가 아니라면, 시청 같은 행정기관 이전이 도심의 변화를 주도 및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결국 어떤 답을 선택하더라도, 장점은 최대로 단점은 최소로 하는 행정력, 주민 합의, 유관기관 협조 등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세상에 완벽한 답은 없어서다.그래서 답을 고르긴 했는데 그걸 제대로 추진하지 못해 지금도 난항을 겪고 있는 인천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후보지 선정 이후가 어쩌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얘기다.인천시는 시청을 이전한 후 30여년만에 시설 노후를 이유로 현 청사 바로 인근에 신청사를, 재개발 단지인 루원시티(서구 소재, 청라국제도시 바로 동쪽, 인천시청에서는 북서쪽)에 제2청사를 건립하려고 했다. 그러나 막대한 재정 투입 부담에 신청사는 백지화했고, 제2청사만 추진키로 했다. 그랬다가 시장이 바뀌면서 제2청사에서 규모를 줄인(부지는 그대로) 복합청사 건립을 현재 추진 중이다. 이렇게 새로 지으려는 청사의 규모가 점점 줄면서 일부 주민들의 불만이 나오고 있는 등 현지에선 좀 시끄럽다.예상 밖으로 더 들 수 있는 비용, 뜻밖의 장애를 만나 느려질 수 있는 추진 속도, 시장의 임기가 미치는 영향 등 여러 시사점을 던져 준다.

2019-09-14 14:21:50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왼쪽 아래) 박희태, 김태정, 안동수 전 법무부 장관. (오른쪽)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매일신문DB

[계산동기획] 역대 법무부장관 임명 직후 누가 낙마했나?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법사위(법제사법위원회)의 인사청문회가 9월 6일 열린다. 가족 증인 채택 문제로 무마됐다가 9월 4일 여야의 극적 합의로 늑장이지만 열리긴 하는 것이다. 앞서 이틀 간(9월 2, 3일) 열릴 예정이었던 게 하루로 줄어든 것이고, 논란이 됐던 가족 증인 채택도 없다.그러면서 조국 후보자의 법무부 장관 임명 자체가 기정 사실화됐다는 전망도 나온다.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재송부 시한이 9월 6일인데, 바로 이날 청문회가 진행되기 때문에, 당락 여부 및 그에 대한 여론이 형성될 틈도 없이 임명 강행이 예상되는 것.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크고 작은 여러 임명 강행 사례를 쓴 바 있고, 더구나 이번 임명은 '청문회를 제때 개최하지 않은' 국회의 실책을 바탕에 깔고 있다.이는 청문회에서 조국 후보자가 치명적인 결격 사유만 드러내지 않는다면, 그대로 현실로 이어질 만한 수순이다.◆'임명 후 곧장 사퇴시키기'로 보수야당 작전 바뀌나?이에 세간의 시선은 조국 후보자의 법무부 장관 임명 직후 상황을 가정한다. 임명 자체를 반대하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야당은, 조국 후보자에 대해 우선은 청문회에서 치명적인 결격 사유를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지만, 이게 이뤄지지 않을 경우 임명 직후 사퇴를 목표로 하는 '플랜B'도 실행할 것이라는 관측이다.그 기반으로 최근 '조국 정국'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른 검찰이 있다. 한마디로 검찰이 정부 및 여당 편이 아닌 상황이다. 그래서 조국 및 정부와 여당 지지자들의 검찰 내지는 윤석열 검찰총장 비판이 현재 네이버 같은 온라인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정치검찰아웃' '언론검찰광기' 등)를 비롯,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반면, "이게 웬 떡이냐" 싶은 보수야당은 향후 검찰의 행보에 맞춰 숨겨둔 카드를 하나 둘 꺼낼 수 있다.보수야당에게 더는 쓸 카드가 없다 하더라도, 검찰의 조사 내지는 향후 수사로의 전환 자체가 보수야당이 원하는 방향이고, 이를 부정적 여론 형성에 이용할 수 있다.그래서 더불어민주당도 이제부턴 보수야당의 공세를 막는 것만큼, 검찰 조사가 '용두사미'로 끝나길 바라며 최근 다소 살아난 긍정적 여론 주도에 힘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 됐다.지난 9월 2일 조국 후보자의 기자간담회를 계기로 부정적 여론이 줄면서 한 여론조사 결과(9월 3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501명 대상 조사 결과 조국 임명 반대 51.5%, 찬성 46.1%, 오차범위(±4.4%p) 내 격차)를 보더라도 5대5 수준의 팽팽한 찬·반 국민여론이 형성된 상황이다. 그래서 여야 양측은 오는 9월 6일 청문회는 물론, 추석 연휴를 지나서도 이어질 검찰 조사에 촉각을 기울이며 소위 '수호 대 사퇴'의 대결을 지속할 것이라는 얘기다.예컨대 '조국 딸 동양대 총장상 가짜 논란'이 현재 및 청문회에서는 명쾌하게 확인되지 못할 수 있지만, 조국 후보자 임명 후 이어질 검찰 조사 내지는 수사에서 결국 정체가 상세히 밝혀질 경우, 이게 사실이었다면 보수야당과 조국 임명 반대자들이, 사실이 아니었다면 더불어민주당과 조국 임명 지지자들이 재차 언급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여론전은 숙지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조국 정국이 한창이기도 하지만 내년 총선 정국의 서막에 있기도 해서다.즉, 조국 후보자의 거취에는 사실상 청문회보다는 임명 후 검찰 조사 및 수사로의 전환 가능성, 보수야당의 추가 의혹 제기, 임명 자체를 두고 형성될 여론 부담 등의 변수가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청문회는 여야가 합의하면 되는 것이고, 임명은 대통령의 권한이라 정해진 것인 데 반해, 검찰의 움직임은 현재 누구도 통제할 수 없고 그 방향 역시 종잡을 수 없어 불확실성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조국 후보자가 만약 법무부 장관이 된다면, 임기 초반 피하기 어려운 고난이다.◆조국의 미래 될까? 지지자·반대자 모두 주목할 역대 법무부 장관 과거 사례들그러면서 역대 법무부 장관들의 과거에도 관심이 향한다. 역사는 반복되기에, 조국 후보자도 겪을 지 또는 극복할 지다.조국 임명 반대자들의 시선은 '임명 직후 낙마' 등 소수의 사례에 향한다.조국 임명 지지자들의 시선은 대통령 권한에 따라 임명돼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친 다수의 선례로 향한다.김영삼 대통령 때 시작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른바 문민정부 시기에 임명된 법무부 장관은 모두 24명(42대~65대)이다. 김영삼 정부 때 5명, 김대중 정부 때 8명, 노무현 정부 때 5명, 이명박 정부 때 3명, 박근혜 정부 때 2명, 그리고 문재인 정부 현재 1명이다.김대중 정부 때 8명이나 되는 이유는 아래에 나와 있다.▶임명 직후 낙마 사례는 다음과 같다. 모두 3건이다.김영삼 정부의 첫 법무부 장관인 42대 박희태(1993년 2월 26일~3월 7일)가 첫번째 사례이다. 자녀 '편법입학' 논란에 임명 후 10일만에 사임했다. 2014년 일으킨 골프장 캐디 성추행 사건만큼은 유명하지 않은 사례다.김대중 정부 때 48대 김태정(1999년 5월 24일~6월 7일)이 임명 보름 만에 해임된 게 두번째 사례이다. 이른바 '옷 로비 사건'으로 부인 옷값 대납 혐의가 쟁점이 되면서 결국 물러나야 했다.세번째 사례도 김대중 정부 때 만들어졌다. 50대 안동수(2001년 5월 21일~5월 23일)가 역대 최단시간 법무부 장관 재임 기록을 썼다. 일수로는 3일, 시간을 정확히 재면 43시간이다. 만 이틀이 안 된다. 안동수는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있다가 법무부 장관이 됐다. 대통령에 대한 일명 '충성 메모'를 기자실 팩스로 보내는 실수를 일으키면서, 그 내용이 낱낱이 언론에 공개된 바 있다.▶임명 후 수개월만에 사임한 경우 가운데 눈길을 끄는 사례도 있다.김대중 정부 때 52대 송정호(2002년 1월 29일~7월 10일)가 대표적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 씨가 구속된 후 일종의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재임 기간과 상관 없이 재임 당시 행적이 논란이 되는 경우도 있다.박근혜 정부 때 63대 황교안(2013년 3월 11일~2015년 6월 13일) 현 자유한국당 대표이다.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 수사 방해 의혹, 세월호 수사 외압 의혹 등에 대한 문제 제기가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조국 후보자가 추구하는 '사법개혁' 내지는 '검찰개혁'과 관련, 언급할 수 있는 세 인물도 시선을 모은다.노무현 정부 때 법무부 장관인 55대 강금실(2003년 2월 27일~2004년 7월 28일), 56대 김승규(2004년 7월 29일~2005년 6월 29일), 57대 천정배(2005년 6월 29일~2006년 7월 26일)이다.일명 평검사들과의 대화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이쯤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라는 발언이 나왔을 당시, 그 자리에는 강금실 법무부 장관도 함께 있었다. 판사 출신인 강금실의 검찰개혁 시도가 검찰조직에 먹혀들지 않았고 오히려 '검란'이라는 이름의 반발만 불러일으켰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결국 강금실 다음으로 검찰 출신 김승규가 법무부 장관에 임명돼 수습에 들어갔다. 그 다음으로 검사도 판사도 경력이 없는 변호사 출신 천정배가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는데, 이때 강정구 동국대 교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수사 관련 수사 지휘권을 행사했다가 김종빈 검찰총장이 항의의 표시로 사퇴한 일이 있다.이들 3인 법무부 장관 재임 기록은 참여정부의 검찰개혁 시도 및 그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료가 됐다.이에 조국 임명 지지자들은 조국이 노무현·강금실이 못 이룬 검찰개혁(또는 사법개혁)을 달성한 법무부 장관이 되길 희망하는 모습이다.▶앞서 살펴본 과거 사례들이 만일 조국 후보자가 66대 법무부 장관이 될 경우 반복되진 않을 지에는 지지자와 반대자 모두의 시선이 향한다.문재인 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2022년 5월 9일까지이다. 이때까지 2년 반 정도 남은 상황인데, 그동안 법무부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검찰개혁을 포함한 사법개혁을 상당 부분 진척시킬 수 있을 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강금실 때처럼 검란 같은 검사들의 저항이 다시 나타나 조국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고, 반대로 그걸 잘 이겨내고 문재인 정부의 2번째이자 마지막 법무부 장관 임기를 채울 수도 있다.또는 사법개혁의 기본 틀을 만든 후, 다음 법무부 장관에게 바톤을 넘길 수도 있다. 이때 다시 서울대 법대 교수 등 학자의 자리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고, 지금으로부터 겨우 8개월 남은 총선 출마 가능성은 사실상 없어진 상황이며, 2022년 6월 예정된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으로 출마하는 등의 가능성 역시 거리가 멀어 보인다.다만 사법개혁 임무를 위해 문재인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2차례 맡을 가능성에는 전례가 있어 눈길이 간다. 앞서 김대중 정부 때 김정길 49대(1999년 6월 8일~2001년 5월 20일) 및 53대(2002년 7월 11일~11월 5일) 등 2차례 법무부 장관 재임 기록이 써진 바 있다. 물론 김정길과 조국의 후보자 당시 주목도 및 논란은 그 차원이 다르다. 따라서 그럴 가능성은 희박한 편이라는 분석이다.

2019-09-05 06:00:00

세계지도. 자료. 매일신문DB

[계산동기획] 대한민국 인구가 일본의 1/3로?

통계청이 2일 세계 국가 인구 순위 및 미래 전망을 발표했다. 전망은 올해 6월 UN(유엔)이 발표한 201개국 기준 세계인구전망과 통계청의 2017∼2067년 장래인구특별추계가 바탕이 됐다.2019년 기준 세계 인구수 30위권 국가는 이렇다.〈순위 / 국가 / 인구 / 세계 인구 대비 비율〉1위 / 중국 / 14억3천400만명 / 18.6%2위 / 인도 / 13억6천600만명 / 17.7%3위 / 미국 / 3억2천900만명 / 4.3%4위 / 인도네시아 / 2억7천100만명 / 3.5%5위 / 파키스탄 / 2억1천700만명 / 2.8%6위 / 브라질 / 2억1천100만명 / 2.7%7위 / 나이지리아 / 2억100만명 / 2.6%8위 / 방글라데시 / 1억6천300만명 / 2.1%9위 / 러시아 / 1억4천600만명 / 1.9%10위 / 멕시코 / 1억2천800만명 / 1.7%11위 / 일본 / 1억2천700만명 / 1.6%12위 / 에티오피아 / 1억1천200만명 / 1.5%13위 / 필리핀 / 1억800만명 / 1.4%14위 / 이집트 / 1억명 / 1.3%15위 / 베트남 / 9천600만명 / 1.3%16위 / 콩고민주공화국 / 8천700만명 / 1.1%17위 / 독일 / 8천400만명 / 1.1%18위 / 터키 / 8천300만명 / 1.1%19위 / 이란 / 8천300만명 / 1.1%20위 / 태국 / 7천만명 / 0.9%21위 / 영국 / 6천800만명 / 0.9%22위 / 프랑스 / 6천500만명 / 0.8%23위 / 이탈리아 / 6천100만명 / 0.8%24위 / 남아프리카공화국 / 5천900만명 / 0.8%25위 / 탄자니아 / 5천800만명 / 0.8%26위 / 미얀마 / 5천400만명 / 0.7%27위 / 케냐 / 5천300만명 / 0.7%28위 / 한국 / 5천200만명 / 0.7%29위 / 콜롬비아 / 5천만명 / 0.7%30위 / 스페인 / 4천700만명 / 0.6%54위 / 북한 / 2천600만명 / 0.3%또한 2067년 예상 세계 인구수 10위권 국가는 이렇다.〈순위 / 국가 / 2067년·2019년 인구 및 순위 변화〉1위 / 인도 / 16억4천만명 (2019년 2위(13억6천600만명)에서 인구는 증가, 순위는 ▲1 )2위 / 중국 / 12억8천만명 (2019년 1위(14억3천400만명)에서 인구 감소, 순위는 ▼1) 3위 / 나이지리아 / 5억2천800만명 (2019년 7위(2억100만명)에서 인구 증가, 순위도 ▲4)4위 / 미국 / 4억명 (2019년 3위(3억2천900만명)에서 인구는 증가, 순위는 ▼1)5위 / 파키스탄 / 3억8천200만명 (2019년 5위(2억1천700만명) 인구는 증가, 순위는 〓)6위 / 인도네시아 / 3억3천700만명 (2019년 4위(2억7천100만명) 인구는 증가, 순위는 ▼2)7위 / 콩고민주공화국 / 2억6천100만명 (2019년 16위(8천700만명)에서 인구 증가, 순위도 ▲9)8위 / 에티오피아 / 2억5천만명 (2019년 12위(1억1천200만명)에서 인구 증가, 순위도 ▲4)9위 / 브라질 / 2억1천900만명 (2019년 6위(2억1천100만명)에서 인구는 증가, 순위는 ▼3)10위 / 이집트 / 1억8천900만명 (2019년 14위(1억명)에서 인구 증가, 순위도 ▲4)15위 / 러시아 / 1억3천만명 (2019년 9위(1억4천만명)에서 인구는 증가, 순위는 ▼6)24위 / 일본 / 9천300만명 (2019년 11위(1억2천700만명)에서 인구 감소, 순위도 ▼13)28위 / 독일 / 7천700만명 (2019년 17위(8천400만명)에서 인구 감소, 순위도 ▼11)29위 / 영국 / 7천600만명 (2019년 21위(6천800만명)에서 인구는 증가, 순위는 ▼8)56위 / 한국 / 3천900만명 (2019년 28위(5천200만명)에서 인구 감소, 순위도 ▼28)◆한국 인구, 일본 3분의 1 수준으로2019년 세계 인구 순위에서 한국은 28위(5천200만명)이다. 그런데 2067년에는 56위(3천900만명)로, 현재 순위만큼인 28계단 하락할 예정이다. 48년 동안 1천300만명이 줄어드는 것이다. 지난해 0명대 출산율(0.98명)을 처음 겪은 한국은 이어 9년 뒤인 2028년까지만 인구가 증가하고, 2029년부턴 감소세로 전환하게 된다.지금도 인구가 계속 줄고 있는 나라인 일본은 2019년 1억2천700만명인 것이 1억대 인구가 깨져 2067년 9천300만명이 되는데, 이는 그래도 세계 24위 수준이다. 그런데 인구수를 따져보면 현재 일본의 절반 수준인 한국은 48년 뒤에는 일본의 1/3 수준이 돼 버린다. 인구가 국력에 늘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영향을 예상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은 늘 여러 영역에서 경쟁 구도를 만들기 때문에, 인구 변동에 따른 경쟁력 변화가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다만 통일을 염두에 두고 북한 인구까지 통합해 계산하면, 사정이 좀 나아진다. 2019년 대한민국 인구가 5천200만명, 북한 인구가 2천600만명으로 총 7천800만명이다. 이게 2067년에는 6천500만명(대한민국 3천900만명, 북한 2천600만명(단독으로는 세계 71위)이 되고, 이는 세계 36위이다. 오히려 일본을 따라잡는 구도가 만들어진다.다만 이번 전망에서는 북한 인구 자체가 48년간 거의 변화가 없다고 봤고(2038년부터 소폭 감소세 시작 예상), 따라서 이를 그대로 인구 총합에 합산하긴 부적합할 수 있다. 아무래도 북한 인구도 예상보다 더 감소한다고 봐야 한다.사실 미래 전망을 살펴보면 향후 인구가 감소할 나라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2019년 30위권 내 국가들 가운데 중국, 러시아, 일본, 독일, 태국, 프랑스, 이탈리아, 한국, 스페인 등 9개 나라에 불과하다. 과거부터 이어진 유럽의 저출산 추세만큼, 아시아는 물론 세계 경제의 한 축이 된 동북아 3국 한·중·일의 인구 감소세로의 전환이 눈길을 끈다.◆2067년 세계 인구 1위 인도·2위 중국·3위 나이지리아중국은 세계 인구 추정 및 집계가 이뤄진 때부터 세계 인구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데, 향후 우리나라와 함께 감소세로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2027년에는 아예 인도에 1위 자리를 넘겨주고 줄곧 2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불과 8년 뒤이다.2067년까지 인구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 나라는 미국,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에티오피아, 필리핀, 이집트, 콩고민주공화국, 영국, 남아프리카공화국, 탄자니아, 케냐 등이다. 이 가운데 나이지리아가 2019년 7위에서 2067년 3위로 크게 증가하게 된다. 2019년 3위인 미국을 2067년 4위로 밀어내게 된다.나이지리아를 비롯해 콩고민주공화국(16위→7위), 에티오피아(12위→8위), 이집트(14위→10위)도 순위가 크게 올라 2067년 세계 인구 10위권 안에 진입하면서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인구 대국이 된다. 10위 안에 아시아가 네 나라, 그리고 아프리카도 네 나라가 드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프리카 총인구는 2019년 13억800만명에서 2067년 31억8천만명으로, 3배 가까이로 규모가 커지게 된다. 아시아의 경우 인도와 파키스탄 및 동남아 다수 국가들은 늘어나는데 한·중·일 등 동북아 다수 국가들은 줄어들어 서로 상쇄되는 영향으로, 총인구가 2019년 46억명에서 2067년 52억3천만명으로 6억여명 증가하는 데 그치는 것과 비교된다.◆아프리카 인구 폭증 "기회 or 부담"아프리카는 미래에 인구가 크게 증가하는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젊어지기도 한다. 2067년 예상 생산연령인구(15~64세) 비중이 64.3%로 모든 대륙 가운데 가장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 고령인구(65세 이상) 비중은 겨우 7.9%로 전 대륙 중 가장 낮아질 전망이다. 풍부해지는 노동력 및 커지는 시장 등의 '활력'을 세계 경제가 주목할 것으로 보인다.물론 이런 전망은 일부 국가에만, 그런 국가에서도 몇 개 번화한 도시 지역 정도에만 국한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대륙과 달리 아프리카는 인구 증가를 조금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한다. 현재 전 세계 기아의 20%를 차지해 기아가 가장 많은 대륙이고, 높은 빈곤율, 에이즈 같은 질병, 기상이변에 따른 가뭄과 홍수 등의 재해, 일부 국가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 등의 문제는 좀처럼 고쳐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인구 증가는 대부분 국가에 오히려 부담 요소일 수 있다. 인구 증가에 따른 국가 발전의 기회는 결국 그 나라의 정치가 좋은 정책을 만들어 마련할 수 있을 전망인데, 향후 아프리카에서 자유민주주의 수준이 높아지는 국가가 누릴 수 있다는 얘기로도 해석할 수 있다.◆"48년 뒤 노인이 절반" 너무 늙은 대한민국한국은 아프리카와 정반대 상황을 겪는다. 2067년 예상 대한민국의 연령별 인구 비중은 이렇다. 유소년인구(0~14세) 비중이 8.1%, 생산연령인구(15~64세) 비중이 45.4%, 고령인구(65세 이상) 비중이 46.5%.이는 같은 시점 예상 기준 아시아의 유소년인구 비중이 16.3%(한국은 절반), 생산연령인구 비중이 61.4%(한국은 3분의 2), 고령인구 비중이 22.3%(한국은 2배 이상)인 것과 비교하면 심각한 노동력 부족 및 고령화 상태를 짐작케 한다.특히 고령인구 비중은 세계 상위권도 아니고 1위가 된다. 46.5%란 수치는 세계에서 유일한 40%대이다. 같은 시점 기준으로 일본(38.1%)도 넘어서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의 생산연령인구 100명당 부양할 고령인구를 가리키는 노년부양비는 2019년 20.4명에서 2067년 102.4명으로 5배로 급증, 세계 최고 수준의 부양 부담을 보일 전망이다.그만큼 노동력이 부족해지는 한국에서의 취업, 결혼이민 등 목적 외국인 유입도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의 순유입 인구는 2005~2010년 연평균 5만2천명정도였던 게, 2015~2020년 연평균 9만7천명정도로 약 2배 수준으로 늘어났다. 이는 동남아 다수 국가들의 인구 증가와도 계속 연결고리를 맺을 전망이다. 지난해만 봐도 한국의 순유입 국가 순위 1위가 태국(4만1천여명), 2위가 베트남(2만8천여명), 3위가 중국(1만9천여명)이었다.

2019-09-03 06:00:00

(중앙)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위) 법사위 소속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국회의원들 (아래) 법사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 및 무소속 박지원 국회의원. 매일신문DB

[계산동기획] 조국 인사청문회 "조국+박지원·김진태·표창원 호화 캐스팅→이틀 밤낮 '특집' 생중계?"

9월 2, 3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진행된다.법무부를 소관 기관으로 둔 국회 법사위(법제사법위원회)가 이 청문회를 맡는다. 법사위 소속 여·야 의원들이 이틀에 걸쳐 창과 방패를 부단히 맞댈 전망이다.◆조국+유명 국회의원 많은 법사위 인지도 감안 "청문회 생중계=시청률 보장"그런데 법사위는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꽤 높은 국회의원이 여럿 소속된 위원회라서 눈길을 끈다.모두 18명인 법사위 소속 국회의원 명단(법사위 직책, 이름, 소속 정당, 국회의원 선출 횟수, 나이, 졸업 대학)은 다음과 같다.※소속 정당. 자=자유한국당, 더=더불어민주당, 바=바른미래당, 무=무소속.▷위원장 여상규 (자) 3선 나이 72세 서울대 법학과▷간사 송기헌 (더) 초선 나이 57세 서울대 법학과▷간사 김도읍 (자) 재선 나이 56세 동아대 법학과▷간사 오신환 (바) 재선 나이 49세 한예종, 고려대 정책대학원 석사▷위원 금태섭 (더) 초선 나이 53세 서울대 법학과▷위원 김종민 (더) 초선 나이 56세 서울대 국문과▷위원 박주민 (더) 초선 나이 47세 서울대 법학과▷위원 백혜련 (더) 초선 나이 53세 고려대 사회학과▷위원 이철희 (더) 초선 나이 56세 고려대 정외과▷위원 정성호 (더) 3선 나이 59세 서울대 법학과▷위원 표창원 (더) 초선 나이 54세 경찰대 행정학, 엑시터대학교 대학원 석·박사▷위원 김진태 (자) 재선 나이 56세 서울대 법학과▷위원 이은재 (자) 재선 나이 68세 서울교대 교육학, 건국대 대학원 행정학 석사, 클레어몬트대학 대학원 행정학 박사▷위원 장제원 (자) 재선 나이 53세 중앙대 신방과,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석사▷위원 정점식 (자) 초선 나이 55세 서울대 법학과, 서울대 대학원 법학 석사▷위원 주광덕 (자) 재선 나이 60세 고려대 법학과▷위원 채이배 (바) 초선 나이 45세 고려대 행정학과, 고려대 대학원 법학 석사▷위원 박지원 (무) 4선 나이 78세 광주교대, 단국대 상학 등여기에 청문 대상인 조국 후보자의 높은 인지도까지 더해지니, 청문회 생중계 출연진이 꽤 화려하다. 그래서 청문회가 열리는 이틀 동안은 청문회 중계 방송 및 이를 해설해주는 '특집 아닌 특집' 뉴스가 여느 드라마, 예능보다 큰 관심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이 일꾼인 국회의원들을 시켜 조국 후보자가 일꾼이 될 만한 지 진지하게 검증하는 한편, 청문회 자체를 '세치 혀'의 '썰전'으로 즐길 것으로 전망되는 것. 이렇게 '의미'와 '재미' 모두 담아낼 수 있는 콘텐츠는 흔치 않다.더구나 법사위에는 조국 후보자의 서울대 법대 동문이 여럿 있어 이목을 집중시킨다.조국 후보자는 1965년생으로 올해 나이 55세이다. 석·박사도 한 서울대 법학과에서 학사로는 82학번 출신이다.조국 후보자의 동문은 자유한국당 여상규·김진태·정점식, 더불어민주당 송기헌·금태섭·박주민·정성호 등 총 7명이다. 법사위 전체 18명 중 38.8%를 차지한다.그런데 조국 후보자의 선배는 2명이다. 여상규(자)·정성호(81학번, 더) 의원이다.후배는 4명이나 된다. 김진태(83학번, 자)·정점식(84학번, 자)·금태섭(86학번, 더)·박주민(93학번, 더) 의원이 조국 후보자의 후배들이다. 그리고 동기가 1명 있다. 송기헌(82학번, 더) 의원이다.◆김진태·주광덕 한국당 공격진 차·포…민주당 정책 설명으로 방어 예상…박지원 실질적 조정자?이렇듯 법사위는 조국 후보자의 동문들 특히 후배들로 가득하지만, '그런 거 상관 없이' 서로 창으로 찌르고 방패로 막을 이번 청문회의 관전 포인트는 이렇다.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조국 후보자 공격 전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최근 조국 후보자 검증 자료를 발표한 바 있고 조국 후보자를 고소·고발도 한 김진태, 주광덕 의원이 바로 법사위 소속이다. 이미 확보한 '총알'이 두둑할 것인 만큼, 장기로 치면 '차'와 '포'로 김진태, 주광덕 의원이 분할 것으로 보인다.국정감사, 청문회, 방송 등 국회 안팎을 가리지 않고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TV 화면에 자주 잡히고 있는 장제원 의원도 주목할만하다. 김도읍 의원 역시 요즘 장제원 의원만큼 '센' 화력을 보여준 바 있다.바른미래당에서는 공인회계사 출신 이력을 살려 최근 조국 후보자의 사모펀드 관련 비판을 한 데 이어 관련 법 개정 검토 의사도 밝힌 채이배 의원이 자신만의 특색을 담은 청문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를 맡아 존재감이 '확' 달라진 오신환 의원에 대한 관심도 높다.법사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표창원·이철희·박주민·금태섭 등 법사위는 물론 당에서도 스타급인 의원들을 중심으로 달변 및 논리로 무장, 스크럼을 짜고 일명 '우주방어'(모든 기량을 방어에 쏟아 상대를 지치게 만드는 작전을 가리키는 온라인 게임 용어)에 임할 것으로 보인다.조국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각종 의혹에 대한 해명만큼, 그간 준비해 온 사법개혁 등의 정책 설명에도 집중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한 지원사격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맡을 것으로 보인다.여와 야를 구분하면, 여는 더불어민주당 8명이다. 야는 자유한국당 7명, 바른미래당 2명, 비교섭단체(무소속 박지원 의원) 1명 등 총 10명이다.즉, 10 대 8. 야당이 여당보다 2명 더 많다.그런데 이번 조국 후보자 청문회를 단순히 여야 대결 구도로만 볼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법사위 터줏대감, 가장 '짬'이 높은 4선의 박지원 의원이 변수이다. 법사위 위원장(여상규)이 따로 있지만, 박지원 의원이 실질적인 조정자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여서다. 박지원 의원은 앞서 조국 후보자의 검찰개혁에 대한 지지 입장을 보이면서도, 각종 의혹에 대해서는 청문회를 열어 조국 후보자가 철저히 해명해야 국민이 납득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적격·부적격 판단을 하겠다는 언급을 하는 등 여야 의원들 가운데 꽤 합리적인 입장을 밝혀온 바 있다. 중립 내지는 다소 조국 후보자를 지지한다는 인상을 계속 내비치고 있다.이어 박지원 의원은 조국 후보자 청문회 일정이 결정된 26일 저녁 올린 페이스북 글에서도 '역시 국회는 싸우다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고 조정과 합의로 살아오는 정치의 장입니다. 합의되었으면 하면 됩니다. 유불리를 따지고 딴지를 걸면 안됩니다. 후보자도 석명하겠다고 합니다. 정치를 살리는 집권여당의 모습을 기대합니다"라고 밝히면서 조정과 합의를 강조했다.또한 이번 청문회는 조국 후보자의 법무부 장관 임명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싸움이면서, 법사위 소속 의원들의 내년 총선 출마(공천) 및 당선을 염두에 둔 이미지 쌓기와도 연결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는 분석이다.◆"조국 청문회 생중계 탓 황금시간대 드라마·예능 '결방' 가능성은?"아무튼 국민들의 관심은 조국 후보자 및 법사위 소속 의원들의 면모만큼, 그걸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생방송 중계 일정으로 다시 향한다.우선 청문회 일정은 어떻게 될까? 앞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지난 7월 8일 하루 진행된 바 있는데, 당시 오전 10시에 시작됐다. 그런데 이게 하루를 넘긴 9일 새벽에 끝났다. 장장 16시간이 소요됐다. 임명 자체가 핫 이슈였던 윤석열 검찰총장 청문회도 이랬기에, 온갖 의혹이 불거져 '조국 정국'이라는 수식까지 만들어 낸 조국 후보자는 그보다 더한 수준의 청문회를 겪을 것으로 충분히 전망할 수 있다.조국 후보자 청문회 진행 요일은 월·화요일이다. 그래서 월요일인 9월 2일 오전에 시작, 화요일인 9월 3일을 모두 채우고, 수요일인 9월 4일 새벽까지 종료 시점이 늦춰질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다양한 의혹을 따지고자 이틀이라는 시간을 할애키로 여야가 합의한 것이고, 청문회 전개 양상에 따라 윤석열 청문회 때처럼 일정이 초과될 수 있다는 얘기다.그러면서 지상파, 종편, 전문보도채널 등 방송사들이 파격적으로 청문회 상당 부분 일정을 생중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보통 시청자 규모가 적은 낮 시간대에는 청문회 생중계로 '도배' 편성을 하곤 하지만, 인기 교양·예능·드라마가 몰려 있는 저녁 시간대에는 그게 부담스러워 가급적 생중계보다는 청문회 하이라이트만 모아 뉴스 프로그램에서 해설을 곁들여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그런데 이번 청문회의 경우 그 '급'이 지금까지의 인사청문회와는 다르다는 평가다. 조국 후보자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꽤 높은 상황이기 때문에, 이 같은 관심을 그대로 시청률로 치환하고자, 각 방송사들이 이틀 간 조국 후보자 청문회의 '저녁 안방 프로그램화'를 시도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과도한 시청률 경쟁을 벌이는 것이라기 보다는, 해당 사안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 그만큼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준다는 공적 의미가 부각된다.그래서 9월 2, 3일 저녁 시간대 일부 프로그램이 결방하는 것은 아닌 지 여부에 대한 관심도 나올만 하다. 윤석열 검찰총장 청문회 때처럼 야간에도 청문회가 열띤 공방을 펼치며 이어질 경우, 방송사 입장에서는 "정규 방송을 미루고 청문회 생중계로 시청자를 끌어들여볼까"하는, 즉 '물 들어올 때 노 젓고자 하는' 유혹에 직면할 수 있다. 가령 초저녁에 배치된 교양 프로그램들은 늦은 저녁에 편성된 드라마, 예능 등의 프로그램들보다 시청률이 낮은 편이라 청문회 생중계를 위해 결방시켜도 부담이 적을 수 있다. 실제로 방송사들은 초저녁에 열리는 아이돌 콘서트, 영화제 개막식, 이런저런 시상식 따위의 중계를 위해 같은 시간대 교양 프로그램들을 곧잘 결방시킨다.다만 이번 청문회가 이미 이슈가 돼 널리 알려진 조국 후보자 관련 의혹들을 의원들이 재차 언급할뿐인 전개를 보일 수 있고, 이럴 경우 청문회 자체의 신선함이 떨어져 예상보다 관심이 낮아질 수 있다. 이러면 자칫 지루할 수 있을 청문회 생중계보단 주요 내용만 잘 편집해 전해주는 뉴스가 더 큰 관심을 얻을 수도 있다.◆국회방송 또 히트 칠까? 조국 청문회 생중계 '올인'?그럼에도 최근 여러 인사청문회와 비교해 조국 후보자 청문회에 대한 관심은 분명 독보적일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서 국회 본회의, 청문회, 국정감사 등 주요 회의를 생중계해주는 케이블 채널 '국회방송'이 큰 주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그 전례가 있다. 2016년 2월 박근혜 정권 시절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테러방지법 국회 통과를 막고자 무제한 토론 즉 필리버스터를 진행한 바 있는데, 이게 국민들로부터 큰 관심을 얻으면서 이를 가장 충실하게 중계한 국회방송이 '반짝' 인기를 얻은 바 있다. 당시 192시간 필리버스터 연속 생방송 기록이 작성된 바 있다.그때 다른 방송사에서는 정규 프로그램들 때문에 국회방송 수준의 파격적인 생중계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국회방송도 예정된 정규 프로그램이 좀 있긴 했지만, 국회 상황을 국민들께 그대로 보여드리는 채널의 정체성을 감안해 과감하게 편성에 변화를 줬고, 이게 효과를 냈다는 평가다. 그래서 조국 후보자 청문회의 경우도 다른 방송사들이 국회방송만큼 밀도 높게 생중계할 순 없을 것으로 보이고, 이에 따라 청문회가 진행되는 이틀 동안 시청자들이 국회방송으로 채널을 돌리는 빈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2019-08-27 05:00:00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왼쪽)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자료사진. 연합뉴스

[계산동기획] 지소미아 종료 다음 '경우의 수'는?

8월 22일 저녁 청와대가 한국과 일본 간 맺은 지소미아(군사정보보호협정, GSOMIA) 종료 방침을 밝혔다.지난 7월 초부터 우리나라를 상대로 경제 보복 조치를 취하고 있는 일본 정부를 향해 강수를 둔 것이다.이날 일부 언론이 "청와대의 결정이 지소미아 유지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설레발을 쳤는데, 빗나갔다. 그럴 만도 했던 게 지난 8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 일본에 대화와 협력을 제안했는데, 딱 1주일 만인 오늘 이를 뒤집는 뉘앙스의 지소미아 연장 불가 결정이 나온 것이다.◆정부의 대일 경제 압박 카드 이어질까?이에 지소미아 종료를 시작으로 우리 정부가 압박 카드를 계속 내놓을 지, 내놓는다면 어떤 카드일지에 관심이 향한다. 그러면서 일본은 무슨 카드를 준비하고 있을 지에도 관심이 집중된다.우선 우리의 일본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제외 카드가 있다.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한 일본에 대해 우리도 지난 8월 12일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실제 실행은 9월 중 이뤄질 예정이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백색국가 제외 조치는 8월 28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우리 기업들이 우려했던 반도체 관련 품목 수급 등 경제 관련 문제가 당장은 현실로 나타나지 않고 있고, 오히려 일본 기업들이 관련 품목 수출이 막힐까 우려를 나타내는 모습이다. 또한 일본산 맥주와 유니클로 등 의류, 일본 여행 등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불매운동이 큰 규모로 끊임 없이 이어지고 있어 경제 관련 분야는 이른바 '역공'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지금껏 양 정부는 '경제' 관련 카드를 계속 꺼내왔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지소미아가 좀 특이하게도 '안보' 관련 카드였는데, 이는 공교롭게도 갱신 시점이 임박한 데 따른 것이었다.다만 반도체 관련 품목 수출 규제나 서로 한번씩 주고 받은 백색국가 제외 조치처럼 '임팩트'가 큰 카드는 이제는 서로 내놓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수출 규제 조치만 봐도 WTO 제소 같은 부담이 큰 '설거지'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은 점을 이미 경험해서다. 서로 군사력을 맞대는 카드는 더욱 부담스러운 데다, 실행 가능성이 극히 낮다. 다만 독도 등을 매개로 과거 있었던 도발 움직임이 재현될 가능성은 제기된다.◆지소미아 사실 별 쓸모 없다? 한반도 안보 영향은? 박근혜 지우기?다만 크게 보면 이번 지소미아 종료 역시 일종의 회유책이라고 볼 수 있다. 청와대가 오늘 발표에서 "일본이 보복 조치를 철회하면 지소미아(유지)도 재검토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지소미아는 지금 당장 종료되는 게 아니라 11월 23일까지는 유효하다. 이때까지 종료 조치 철회도 가능한 상황이다. 이는 지난 8월 12일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일본 정부가 관련 협의를 요청하면 언제, 어디서건 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역시 여지를 준 점과 닮았다.즉,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일본을 압박하면서도 퇴로는 계속 열어주고 있는 구도이고, 이게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지소미아 종료 자체만 따지면 자칫 우리 안보에 구멍이 생기는 것은 아닌 지에도 시선이 쏠린다. 청와대의 지소미아 종료 발표 직후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한미일동맹 약화를 우려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실질적으로 한반도 안보 환경을 해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일단 우리 정부는 "한미동맹과는 별개로 내린 결정이며 한미동맹은 계속 공조를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또한 한국과 일본 간에 지소미아를 매개로 하는 정보 교류 대상이 많지 않고 중요성 역시 낮다는 언급도 나온다. 한국보다 일본이 얻는 게 더 많은 시스템이라는 얘기도 있다. 즉, 지소미아 체결 후 운용을 해보니 큰 실익이 없었다는 주장이다. 사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미국과의 동맹에 함께 속해 있고, 한미일 정보공유약정 '티사'(TISA)도 5년 전인 2014년부터 운용되고 있어, 한일 간 정보 동맹 격인 지소미아는 '군더더기'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일 간 지소미아는 3년 전 2016년 체결됐는데, 이게 그동안 한반도 주변 안보 환경을 개선하거나 좌우하는 요인이 되지는 않았다는 평가도 더해진다.일본으로부터 지소미아 체결 제안을 받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일본 과거사 문제 해결 없이는 지소미아 체결도 있을 수 없다는 여론이 형성돼 논란이 된 바 있는데, 2016년 박근혜 정부의 지소미아 체결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취지도 지녔다는 해석 역시 있다. 위안부 합의 백지화와 함께 이번 지소미아 종료에도 '박근혜 지우기' 내지는 '적폐 청산'이라는 수식을 붙일 수 있다는 얘기다.◆장기전 선택했나? 향후 변수는?지난 8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결기를 가지되 냉정하면서 또 근본적인 대책까지 생각하는 긴 호흡을 가져야 합니다"라고 모두발언을 마무리한 바 있다. 이게 이번 지소미아 종료의 힌트였다는 해석도 나온다.같은 날 우리의 일본 백색국가 제외 조치 발표가 있기도 했는데, 결국 한국과 일본이 고심 끝에 서로 여러 장의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는 만큼, 이를 회수하는 것 역시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서 장기전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맥락을 전한 것일 수도 있다.따라서 우리의 지소미아 종료 카드에 일본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항복'을 선언하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양국 간 크고 작은 공방이 몇 차례 더 이뤄진 다음, 서로가 나름의 출구전략을 실행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지소미아 종료 카드를 꺼내 들었기에, 우리도 이전에 비하면 출구전략 실행에 대한 부담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현재 한일갈등이 경제 싸움 구도가 된 만큼, 아무래도 향후 한일 간 경제 지표들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나오는 게 좋다. 두 정부 싸움의 또 다른 체력이라고 할 수 있는 여론 형성에 특히 큰 영향을 줄 전망이다.결정은 분명 한일 양국의 몫이기에 간섭할 수 없겠으나 윤활유 역할은 할 수 있는 미국의 중재 역시 가능성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데, 최근 다시 물살을 타고 있어 곧 수면 위로 드러날 것으로 보이는 북미대화가 변수가 될 수 있다.◆민심 업데이트 되는 추석 전 갈등 완화 국면 돌입 목적?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 시작 후 우리 정부는 점차 대일 대응 수위를 높여왔고, 오늘 지소미아 종료는 꽤 도드라지는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이게 곧 있을 추석 때 업데이트 될 민심을 감안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맥락에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정부는 지난 8월 12일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지만, 사흘 뒤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유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렇게 강경책과 유화책을 번갈아 실행했지만 일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는 평가다. 더구나 어제인 8월 21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일 3국 외교장관 회담에 참석,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만났지만 별 소득을 얻지 못했다. 이를 오늘(8월 22일) 열린 청와대 NSC(국가안전보장회의) 회의에서 감안, 일본이 움직일만한 좀 더 강한 카드인 지소미아 연장 불가 결정을 도출했다는 풀이다.또,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관련 여론이 최근 악화하면서 정부 지지율 역시 떨어지게 생겼는데, 이를 만회하기 위한 용도로도 이전에 비해 강경한 수준의 대일 대응을 보인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물론 이는 주 목적이 아니라 부수적 목적일 수 있다. 과거 일부러 반일 기조를 지지율 높이기에 써 먹던 행태와는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아무튼 이를 통해 정부가 9월 중순 추석 전에는 최소한 일본과의 대화 모드 시작이라는 결과는 얻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꼭 추석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지금과 같은 갈등 자체는 득이 될 게 없어 오래 끌 이유가 없다.

2019-08-22 19:55:54

열화상 카메라 촬영 8월 7일 대구 도심 모습. 우태욱 기자

[계산동기획] 대구 가을 날씨 언제 시작되나? "여름 언제 끝날까?"

최근 한반도 동쪽을 스쳐 지나간 태풍 크로사의 영향으로 전국적으로 비가 쏟아졌다. 아울러 태풍이 서쪽 중국에서 한반도로 불어오는 더운 공기를 막아주면서 기온이 하강, 흡사 가을 날씨 같다는 얘기가 확산됐다. 실제로 심한 무더위는 꺾였다는 날씨 뉴스도 16일쯤부터 나오고 있다.그러면서 본격적인 가을이 언제부터 시작될 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대프리카' 더위로 유명한 대구는 언제 가을에 돌입할까?낮 최고기온이 여름을 상징하는 기온인 30도 밑으로 내려가 이후 20도대를 계속 유지, 다시는 30도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이를 초가을이라고 가정해보자.이 같은 설정 및 지난 10년(2009~2018년)을 기준으로 대구의 가을 시작일을 살펴봤다.▶2009년 9월 25일(낮 최고기온 27도) 9월 초·중순 20도 후반~30도 초반 정도의 낮 최고기온이 반복해 나타남.▶2010년 9월 22일(28.4도)▶2011년 9월 17일(29.8도) 9월 12일 31.8도, 13일 32.2도, 14일 33.5도, 15일 34.2도 등 한여름을 방불케하는 늦더위가 9월 중순 잠시 나타남.▶2012년 9월 9일(23.5도)▶2013년 9월 22일(29.6도)▶2014년 9월 10일(29.5도)▶2015년 9월 5일(26.6도)▶2016년 9월 8일(29.2도)▶2017년 9월 13일(28.2도)▶2018년 9월 6일(27.1도)대구는 지난 10년간 모두 9월까지 여름이 지속됐다. 가을의 시작이 가장 빨랐던 해가 2018년(9월 6일)이고, 가장 늦었던 해는 2009년(9월 25일)이다. 9월 초부터 가을이 시작된 해가 4차례로 가장 많긴 하지만, 9월 중순 시작이 3차례, 9월 말 시작도 3차례이다.지난해 여름은 40도 턱밑 낮 최고기온을 수차례 기록한 대구는 물론 전국적으로 폭염이 나타났는데, 이게 금방 식었다는 기록이 쓰인 것이라 특히 눈길을 끈다.'더위 총량'의 법칙을 가정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 지표로 연간 폭염일수가 기준이 될 수 있다. 기상청은 올해 봄 한반도 무더위의 주범인 티베트 고기압이 예년보다 기세가 약한 것을 근거로 "지난해에 비해 올해는 더위가 심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지만, "폭염일수 자체는 지난해와 올해가 비슷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2018년 폭염일수는 31.5일이었다. 그런데 2019년 8월 15일까지 기준 폭염일수는 13.2일이다. 기상청이 예측한대로라면 향후 10여일의 폭염일수를 더 채울 가능성이 높은데, 이를 8월은 물론 9월에도 채워야 하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그만큼 더위가 지속되며 '늦더위'가 나타날 수 있는 것. 즉, 지난해는 '여름은 더웠으나 가을은 빨리왔다'면, 올해는 '여름은 더위가 좀 견딜만했으나 가을 늦더위가 지속될 수 있다'는 얘기다.아무튼 지난 10년 통계대로라면, 다른 지역의 경우 빠르면 8월 말쯤부터도 낮 최고기온이 30도 아래로 내려가 20도대의 가을철 기온을 지속하는 모습을 보여온 것과 달리, 대구는 예외 없이 8월을 여름 날씨로 꽉 채울 전망이다. 다만 낮 최고기온이 30도 중반대까지 오르는 한여름 무더위는 올해 더 이상 없을 것으로 예보됐다. 예년처럼 20도 후반~30도 초반 수준의 낮 최고기온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것. 또한 가을 늦더위 여부는 9월에 올라오는 태풍 등 다른 기상 요소의 영향도 받아 결정될 전망이다.

2019-08-16 16:53:33

14일 오전 서울 성동구 중랑천 송정 제방 산책로에서 여름방학을 맞은 어린이들이 매미를 관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계산동기획] 서울 가을 날씨 시작일은? "여름 언제 끝나나?"

최근 일본을 관통한 태풍 크로사의 영향으로 전국적인 비가 내린데다, 서쪽 중국에서 오는 더운 공기를 태풍이 막으면서, 기온이 내려가 흡사 가을 날씨 같다는 얘기가 나왔다. 한여름 무더위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날씨 뉴스도 16일쯤부터 이어지고 있다.이에 본격적인 가을 날씨가 언제부터 시작될 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다.서울은 언제부터 가을이 시작될까? 낮 최고기온이 여름을 상징하는 기온인 30도 밑으로 내려가 이후 20도대를 유지하는데다 30도 위로 올라가지 않으면, 가을이라고 볼 수 있다.이 같은 정의 및 지난 10년(2009~2018년)을 기준으로 그 시작일을 살펴봤다.서울의 가을 시작일은 다음과 같았다.▶2009년 8월 24일(낮 최고기온 29.4도)▶2010년 9월 19일(23.8도) 8월 말 낮 최고기온이 30도 아래로 내려갔으나, 이후 30도 초반부터 20도 초반까지 낮 최고기온이 '널뛰기'를 함. 즉,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 해. 그러더니 9월 말 낮 최고기온이 10도 중반까지 급히 떨어지기도 함.▶2011년 9월 18일(26.4도) 9월 19일은 낮 최고기온이 18.2도를 기록, 9월 17일 31도→18일 26.4도→19일 18.2도로 3일동안 급격한 기온 하강이 이뤄짐.▶2012년 8월 28일(29.4도)▶2013년 9월 20일(28도) 실은 8월 말부터 20도대 낮 최고기온이 이어졌으나 9월 18일 31.1도, 19일 30.2도 등으로 '반짝' 늦더위 날씨가 이어져 가을 시작일이 늦어진 경우.▶2014년 9월 9일(28.2도)▶2015년 9월 25일(29.8도) 실은 낮 최고기온이 9월 초순 및 중순 내내 20도 후반~30도 초반을 유지함.▶2016년 9월 14일(28.9도)▶2017년 9월 27일(27.3도) 낮 최고기온이 9월 초순 및 중순 내내 20도 중후반~30도 초반에서 머무름.▶2018년 9월 2일(29.6도) 8월 중순까지 40도 턱밑까지 오르는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린 해. 그러나 더위가 금방 식어 9월초 빠르게 가을 날씨가 시작됨.살펴보면, 여름이 8월 말에 종료된 경우가 2차례, 9월 초에 종료된 경우가 2차례이다. 여름이 제때 끝난 경우이다.반면 여름이 9월 중순에 종료된 경우가 4차례, 9월 말에 종료된 경우가 2차례이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 경우이다.2009년(8월 24일) 가장 빨랐고, 2017년(9월 27일) 가장 늦었다.지난해 기록이 특히 인상 깊다. 8월까지 전국적인 불볕더위가 이어진 가운데, 9월 초부터는 언제 그랬느냐는듯이 기온이 빠르게 하강했기 때문이다.이를 '더위 총량'의 법칙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한해의 폭염일수가 기준이 될 수 있는데, 올해 봄 기상청이 지난해에 비해 올해는 더위가 심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지만, 폭염일수 자체는 지난해와 올해가 비슷할 것으로 내다본 바 있다.2018년 폭염일수는 31.5일이었는데, 2019년 8월 15일까지 기준 폭염일수는 13.2일이다. 즉, 기상청 전망대로라면 앞으로 10여일 정도 폭염일수를 더 채워야 하는데, 이를 8월은 물론 9월에도 채워야 하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고, 이게 바로 '늦더위'의 가능성이다. 그러나 9월에 동북아시아로 오는 태풍 등 늦더위 관련 변수는 가미될 수 있다.

2019-08-16 16:32:16

방응모, 홍진기, 김성수. 매일신문DB

[계산동기획] 친일파 언론인은 34인…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조중동' 다수 연관

광복절이 다가오면서 친일파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친일파의 공식 명칭은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관련 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에 따르면, 친일반민족행위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행한 다음 각호(총 20개)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말한다.1. 국권을 지키기 위하여 일본제국주의와 싸우는 부대를 공격하거나 공격을 명령한 행위2.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단체 또는 개인을 강제해산시키거나 감금·폭행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 단체 또는 개인의 활동을 방해한 행위3. 독립운동 또는 항일운동에 참여한 자 및 그 가족을 살상·처형·학대 또는 체포하거나 이를 지시 또는 명령한 행위4. 독립운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의 장 또는 간부로서 그 단체의 의사결정을 중심적으로 수행하거나 그 활동을 주도한 행위5. 밀정행위로 독립운동이나 항일운동을 저해한 행위6. 을사조약·한일합병조약 등 국권을 침해한 조약을 체결 또는 조인하거나 이를 모의한 행위7.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행위. 다만, 이에 해당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작위를 거부·반납하거나 후에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사람 등으로 제3조에 따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결정한 사람은 예외로 한다.8. 일본제국의회의 귀족원의원 또는 중의원으로 활동한 행위9.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고문 또는 참의로 활동한 행위10. 일본제국주의 군대의 소위(少尉) 이상의 장교로서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11. 학병·지원병·징병 또는 징용을 전국적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선전(宣傳) 또는 선동하거나 강요한 행위12. 일본군을 위안할 목적으로 주도적으로 부녀자를 강제동원한 행위13. 사회·문화 기관이나 단체를 통하여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운동을 적극 주도함으로써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14. 일본제국주의의 전쟁수행을 돕기 위하여 군수품 제조업체를 운영하거나 대통령령이 정하는 규모 이상의 금품을 헌납한 행위15. 판사·검사 또는 사법관리로서 무고한 우리민족 구성원을 감금·고문·학대하는 등 탄압에 적극 앞장선 행위16. 고등문관 이상의 관리, 헌병 또는 경찰로서 무고한 우리민족 구성원을 감금·고문·학대하는 등 탄압에 적극 앞장선 행위17. 일본제국주의의 통치기구의 주요 외곽단체의 장 또는 간부로서 일본제국주의의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18. 동양척식회사 또는 식산은행 등의 중앙 및 지방조직 간부로서 우리민족의 재산을 수탈하기 위한 의사결정을 중심적으로 수행하거나 그 집행을 주도한 행위19.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하여 포상 또는 훈공을 받은 자로서 일본제국주의에 현저히 협력한 행위20. 일본제국주의와 일본인에 의한 민족문화의 파괴·말살과 문화유산의 훼손·반출에 적극 협력한 행위우리 정부는 2006년 106명, 2007년 195명, 2009년 705명 등 총 1천6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을 발표한 바 있다.이 가운데 언론인이 33명이다. 신조어였던 '기레기'(기자+쓰레기)가 이젠 사전에 실릴만큼 널리 퍼진 현재 되돌아보면, 그들을 '원조 기레기'로도 볼 수 있는 셈이다.◆'친일 기레기' 매일신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출신이 다수리스트를 살펴보기 전 참고할 내용이 좀 있다.우선 매일신보(현 서울신문 전신), 조선일보, 동아일보 출신이 다수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국내 언론은 지금처럼 많지 않았는데, 그 중 조선총독부 기관지 격의 매일신보, 1920년 같은 해에 창간한 조선일보 및 동아일보가 제법 큰 규모였다. 이와 함께 몇 개의 신문 및 여러 잡지들, 라디오 방송을 한 경성방송국 등이 있었다. 매일신보는 영국인 베델이 발행하던 대한매일신보가 전신인데, 이때는 반일 성향이었지만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즉 한일강제병합 직후 조선총독부 운영 경성일보에서 인수, 이름도 매일신보로 바뀌어 사실상 조선총독부 관제 신문으로 발행되기 시작했다. 이어 1945년 광복 직후 서울신문으로 또 다시 이름을 바꿔 지금에 이르고 있다.그런데 일제강점기 매일신보, 조선일보, 동아일보에 재직했다고 해서 친일파 언론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재직 중 쓴 기사 및 기고, 강연을 비롯한 친일단체 활동, 그리고 신문 제작 및 발행의 책임 소지를 가늠할 수 있는 지위 따위를 따져야 한다.또한 일제의 2차 세계대전 패망(우리의 광복) 전까지 줄곧 조선총독부의 '나팔수' 역할을 한 매일신보에 비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일제강점기 초반에는 민족지의 면모를 보이다가 후반에 친일 성향이 짙어진 점을 감안해야 한다. 1930년대 전후부터 일본이 여러 침략 전쟁을 일으키면서 징병 및 징용 선동, 전쟁 찬양 등의 내용을 노골적으로 담은 글 게재를 점차 늘린 것이다.◆1937년 중일전쟁 계기로 친일파 언론인 득세1937년 중일전쟁 발발이 친일 언론이 활개를 치기 시작한 주요 전환점이다. 당시 조선총독부가 중일전쟁 관련 여러 신문의 보도 내용을 두고 "매일신보의 보도 내용이 조선일보, 동아일보에 비해 솔선적, 지도적이라고 높이 평가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즉, 당시 세 신문이 서로 비교 대상이 되는 대표적 친일 언론이었다는 근거로 볼 수 있다.이들 3곳 언론사 외에 이완용 내각 친일 정책 홍보지 '대한신문', 친일단체 일진회 기관지 '국민신보', 친일단체 국민협회 기관지 '시사평론'(시사신문), 만주일보, 간도신문, 내선일체실천사 등도 꼽힌다.친일파 언론인의 활동 무대로 친일 잡지도 있었다. 친일 신문사에서 자매지 격으로 만들기도 했다. 삼천리, 조광, 태양, 동양지광, 신시대, 반도지광, 신민, 내선일체, 춘추 등이다. 친일파 언론인들이 이들 잡지에 기고를 많이 했다. 1930년대 전후부터 일본의 침략 전쟁이 시작되면서, 관련 선동 및 찬양 내용이 다수였다.친일 단체에서 활동한 언론인도 꽤 확인된다. 잘 알려진 친일 단체는 임전대책협의회, 대화동맹, 협성구락부, 국민협회, 국민총력조선연맹, 대정친목회, 동민회, 국시유세단, 구일회, 조선언론보국회, 조선임전보국단,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배영동지회 등이다.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언론인들도 있는데, 이 역시 친일파 언론인으로 규정할 수 있는 근거이다.◆친일반민족행위자 언론인 34인 리스트이름, 생몰연도, 주요 이력(친일 이력 중심) 등▷김동진 (金東進, 1902~?) 동아일보 기자, 조선일보 도쿄지국장, 매일신보 총무국장·발행인 겸 편집인, 임전대책협의회·대화동맹 등 친일 단체 활동▷김상회 (金尙會, 1890~1962) 시사평론 편집인 겸 발행인·사장 겸 주필, 매일신보 편집국장·논설부 주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김선흠 (金善欽, ?~?) 매일신보 기자·편집인 겸 발행인▷김성수 (金性洙, 1891~1955) 3.1운동 참여 등 독립운동→변절→동아일보 사장, 경성방송국 시국강좌 연설,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국민총력조선연맹·흥아보국단·조선임전보국단 등 친일 단체 활동, 춘추 등 친일잡지·매일신보 등 기고▷김환 (金丸, ?~?) 국민신보 기자, 매일신보 근무, 협성구락부·국민협회 등 친일 단체 활동▷노성석 (盧聖錫, 1914~1946) 신시대 발행인, 조선임전보국단·대화동맹 등 친일 단체 활동▷노창성 (盧昌成, 1896~1955) 국민총력조선연맹·임전대책협의회 등 친일 단체 활동▷민원식 (閔元植, 1886~1921) 시사신문 사장, 친일 단체 국민협회 조직▷박남규 (朴南圭, 1905~) 내선일체실천사 사장, 내선일체 편집인 겸 발행인▷박희도 (朴熙道, 1889~1952) 3.1 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변절→친일 잡지동양지광 창간▷방응모 (方應謨, 1883~1950) 조선일보 사장, 친일잡지 조광 창간▷방태영 (方台榮, 1885~ ?) 매일신보 발행인 겸 편집인·편집국장, 대정친목회·동민회 등 친일 단체 활동, 삼천리·신시대·조광 등 친일 잡지 기고▷변일 (卞一, ?~?) 자주독립사상 고취 제국신문 주필→변절→매일신보 발행인 겸 편집인▷서춘 (徐椿, 1894~1944) 도쿄 2.8 독립선언 9인 대표 참가→9인 대표 중 소설가 이광수와 함께 변절→동아일보 기자, 조선일보 기자, 매일신보 주필, 조광 등 친일 잡지 기고, 친일 잡지 태양 창간▷선우일 (鮮于日, 1881~1936) 매일신보 발행인 겸 편집인, 만주일보 창간 및 간도신문 경영, 조선일보 편집국장, 대정친목회 등 친일 단체 활동▷송순기 (宋淳夔, 1892~1927) 매일신보 기자·발행인 겸 편집인·논설부장▷신광희 (申光熙, 1877~?)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1기 졸업→변절→대한신문 사장·발행인 겸 편집인, 국시유세단 등 이완용 계열 친일 단체 활동 ▷심우섭 (沈友燮, 1890~1946) 매일신보 기자·편집고문, 동민회·구일회·조선임전보국단 등 친일 단체 활동▷양재하 (梁在廈, 1906~1966) 조선일보 기자, 동아일보 기자, 조선임전보국단 등 친일 단체 활동, 춘추 등 친일 잡지 기고▷유광렬 (柳光烈, 1898~1981) 동아일보 사회부장, 조선일보 사회부장, 매일신보 편집국장, 친일잡지 조광 필진, 조선임전보국단·조선언론보국회 등 친일 단체 활동▷이기세 (李基世, 1888~1945) 시사신문 근무, 국민협회 등 친일단체 활동, 매일신보 사회부장·편집인 겸 발행인▷이상협 (李相協, 1893~1957) 매일신보 발행인 겸 편집장, 동아일보 편집국장, 조선일보 편집고문,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조선임전보국단 등 친일 단체 활동▷이원영 (李元榮, 1910~1985) 매일신보 도쿄 특파원·논설위원, 동양지광 등 친일 잡지 기고▷이윤종 (李允鍾, 1896~?) 매일신보 편집국장·논설부장, 신시대·조광 등 친일 잡지 기고▷이익상 (李益相, 1895~1935) 조선일보 학예부장, 동아일보 학예부장, 매일신보 편집국장▷이장훈 (李章薰, ?~?) 매일신보 발행인 겸 편집인 ▷이정섭 (李晶燮, 1895~?) 조선일보 정치부장, 시중회 등 친일 단체 활동, 삼천리 등 친일 잡지 및 조선일보 기고▷이창수 (李昌洙, 1909~?) 매일신보 통신부장·논설위원, 조광·춘추·신시대 등 친일 잡지 기고, 조선언론보국회 등 친일 단체 활동▷정우택 (鄭禹澤, 1889~?) 매일신보 편집인 겸 발행인, 동아일보 정리부장▷정인익 (鄭寅翼, 1902~1955) 조선일보 기자, 매일신보 사회부장·도쿄지부장, 조선언론보국회 등 친일 단체 활동▷최영년 (崔永年, 1859~1935) 일진회 등 친일 단체 활동▷함상훈 (咸尙勳, 1903~1977) 친일 잡지 조광 필진, 배영동지회·조선임전보국단·조선언론보국회 등 친일 단체 활동▷홍순기 (洪淳起, 홍양명(洪陽明), 1906~?) 조선일보 기자·논설위원, 매일신보 신징 지사장▷홍승구 (洪承耉, 1889~1961) 조선총독부 소속 관리, 매일신보 도쿄 특파원·논설부장, 신민·반도지광·신시대 등 친일 잡지 기고※일제강점기 조선일보 부사장 및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소설가 이광수는 2곳 언론사 시절 이후인 193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친일파로 변절했다. 따라서 친일파 언론인이 아닌 친일파 예술인 리스트에 등재돼 있다. ※김성수의 경우 친일파 교육인 리스트에 등재돼 있으나, 동아일보 창간 이력을 감안해 친일파 언론인 리스트에 넣어 소개한다.◆'조중동' 현 사주와 직·간접 연관 눈길중복 집계를 포함, 친일파 언론인은 매일신보 출신 22명, 조선일보 출신 12명, 동아일보 출신 8명 순이다.3곳 언론사 모두 거친 친일파 언론인도 있다. 김동진, 서춘, 유광렬, 이상협, 이익상 등 5명이다.전 조선일보 사장 방응모는 방상훈 현 조선일보 사장의 할아버지라서 눈길을 끈다. 방응모의 장남이 방일영 전 조선일보 사장이고, 방일영의 장남이 바로 방상훈이다.그런데 방응모가 조선일보 초대 사장인 것은 아니다. 초대 사장은 조진태이며, 조진태를 비롯한 친일경제단체 '대정실업친목회'가 중심이 돼 1920년 조선일보를 창간했다. 이후 조선일보는 친일파 송병준이 소유했다가도, 이상재와 안재홍 등의 독립운동가들이 사장을 맡기도 하는 등 친일 언론으로만 규정할 수는 없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안재홍 사장이 구속되고, 사장 자리가 공석이 되는 등의 혼란기를 겪다 사장을 맡은 독립운동가 조만식으로부터 1933년 방응모가 조선일보를 인수한 것이다.동아일보를 창간한 김성수도 함께 시선을 모은다. 일제강점기 초중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전신)를 인수해 운영한 교육자로서의 업적이 있지만, 일제강점기 말기 친일 활동이 그를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등재하도록 만들었다는 평가다.그간 독립유공자와 친일파 양쪽에 모두 발을 걸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 김성수에 대한 논란은,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자 등재에 이은 2011년 건국훈장 서훈 취소 결정 후에도 이어졌다. 그를 기리는 인촌기념사업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한 것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해서다. 그러나 2018년 대법원 판결에서 김성수의 친일행적이 확정되면서, 이 논란 역시 매듭지어졌다.현 동아일보 및 채널A 대표이사 김재호는 김성수의 증손자이다. 김성수의 장남 김상만이 동아일보 회장을, 김상만의 장남 김병관 역시 동아일보 회장을 역임했고, 이어 김병관의 장남 김재호가 현재 동아일보 및 채널A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참고로 조선일보, 동아일보와 함께 '조중동'이라는 수식에 함께 묶이는 중앙일보의 경우 초대 중앙일보 및 동양방송(현 JTBC 전신) 회장 홍진기가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 편찬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있다.(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상 '친일반민족행위자'와는 구분된다.)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후 전주지방법원 판사를 맡은 등의 이력이 있어서다. 중앙일보 창간은 광복 후인 1965년 이뤄졌다.홍진기는 현 중앙홀딩스·중앙일보·JTBC 대표이사 홍정도의 할아버지이다. 홍진기의 장남 홍석현이 전 중앙일보 대표이사이자 현 중앙홀딩스 회장이고, 그의 장남이 바로 홍정도이다.재계까지 범위를 넓히면, 홍진기의 장녀 홍라희로 인해 삼성그룹과 연결된다. 홍라희 남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홍진기의 사위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이건희와 홍라희의 자녀들이자 홍진기의 외손주들.다만, 일제강점기에 신문사를 경영했고 친일 행적도 확인된 방응모·김성수와 비교해, 홍진기의 경우 일제강점기 판사 이력과 광복 후 중앙일보 창간 이력을 직접적으로는 연관 지을 수 없다는 반론을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중앙일보를 두고 '친일파로 평가 받은(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 창간한 신문'이라는 수식 자체가 가능하다. 약한 연결고리임에도 친일 자체와 무관한 현존 다수의 언론사들과 비교하면 분명 도드라져 보이는 부분이다. 사실 홍진기는 일제 법관 출신 인물이면서 이승만 대통령 시절 법무부 및 내무부 장관을 지내는 등 정부 요직에 임명된 이력이 더 논란이 된 바 있다. 만약 이승만 대통령 시절인 1948년 친일파 처벌을 위해 구성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등에서 법관 등 관리로 일제에 부역한 인물들에 대한 처벌 내지는 최소한 사회활동을 막는 조치라도 있었다면, 정부 요직 임명은 물론 중앙일보 창간도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가정'이 충분히 가능하다.물론,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및 친일인명사전 등의 등재 여부와는 별개로 방응모, 김성수, 홍진기에 대해서는 사회 발전에 기여한 과거 업적에 대한 평가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이 같은 '공'이 친일 행적이라는 '과'를 상쇄할 수 없다는 반론이 가능하다.공, 과를 '따로' 또한 '있는 그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그 모범 사례가 있다. 실은 조선일보·동아일보보다 더 많은 친일파 언론인을 배출한 매일신보, 즉 현재의 서울신문이다. 조선총독부가 사주인 셈이었던 매일신보는 광복 후 서울신문으로 이름을 바꾸며 과거와도 결별했다. 간판만 바꿔 단 게 아니었다. 광복 후에도 조선일보·동아일보는 친일을 한 사주 및 그 후손이 계속 회사를 경영했지만, 매일신보는 3.1 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에 포함된 독립운동가 오세창이 새 사장으로 취임하는 등 180도 다른 모습을 보인 것.과거와 결별했다고 해서 과거의 부끄러운 모습을 숨기는 것은 아니다. 서울신문 홈페이지 연혁 소개 코너를 살펴보면 매일신보 제호 변경 당시를 두고는 '총독부 입장을 대변하고 일제의 한반도 통치 합리화를 선전하기 위한 황국신민화의 도구로 전락'했다고, 서울신문 제호 변경 때에 대해서는 '대한매일신보의 위대한 유산과 매일신보의 아픈 유산을 모두 물려받는다는 취지'라고, 과거 신문사 역사의 빛과 그림자를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있다.◆프랑스는 나치 부역 언론인 대대적 청산 "우리와 딴판"친일파 언론인들은 언제, 어떻게 죽었을까?일부는 광복 전에 죽었다. 자연사 한 경우가 있고, 요즘 기자들이 스트레스로 직업병을 겪듯이 암 등 각종 질환 때문에 일찍 사망한 경우도 있다. 또한 광복 후 곧장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납북을 당한 데 따라 사망 시기를 특정할 수 없어 실종 기록만 있거나, 은퇴 후 행방을 알 수 없어 역시 사망 기록이 전해지지 않는 경우가 꽤 확인된다.그런데 광복 후 정부의 요직, 기업의 수장, 국회의원 등을 맡은 경우도 적잖다. 반민특위가 흐지부지되며 친일 행적에 대한 처벌을 피한 인물들이다.외국은 어땠을까? 프랑스가 나치 부역 언론인을 잘 청산한 대표적 국가로 꼽힌다.샤를 드골 장군의 프랑스 임시정부는 1944년 언론계 숙청 훈령을 발표, 나치에 부역한 언론사에 대한 발행 금지 조치를 했다. 언론사 538개 가운데 115개가 재판을 거쳐 폐쇄됐다.언론사만 처단한 게 아니었다. 상당수 언론인이 사형과 무기징역 등의 강도 높은 처벌을 받았다.대표적으로, 잡지 '오토' 사주이자 여러 지역신문 발행인이었던 신문재벌 알베르 르죈느가 친나치 행위로 사형에 처해졌다. '오르주디' 주필 조르주 쉬아레즈도 글은 물론 연설로 나치 찬양을 해 사형 선고를 받고 총살됐다. '라레볼리숑 나쇼날' 주간으로 있으면서 나치에 협력해야 한다는 내용의 논설을 쓴 뤼시앙 콩벨은 15년형을 판결 받았다. 여러 신문에 친독기사를 쓴 기자 피에르 드리유 라 로셀의 경우 자신이 숙청당할 것을 예상,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인물이다.즉, 프랑스 나치 부역 언론인들의 경우 다수가 제명에 죽지 못하고 2차 세계대전 종료 직후 재판을 거쳐 죗값을 치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반민특위 실패 이후 수십년 동안 친일파 언론인을 단죄하려는 시도가 없었고, 이에 따라 천수를 누린 친일파 언론인이 제법 있었다는 평가다.

2019-08-13 20:48:07

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 '수석보좌관 회의' 글. 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계산동기획] 광복절 연설문 초안일까? 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 "사흘 후면 광복절입니다"

광복절이 사흘 뒤로 다가온 12일 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이 광복절을 언급했다.지난달 초부터 일본의 경제보복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내용이 어떨지, 그 수위가 예년과 비교해 좀 더 강해질지에 관심이 쏠리는데, 3일 뒤의 광복절을 언급한 장문의 글이 혹여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읽을 광복절 연설문의 초안 격은 아닌지, 관심이 향하고 있다.▶이날 오후 올라온 글의 제목은 '수석보좌관 회의'이다. 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은 '수석보좌관 회의'와 '국무회의' 등의 단어를 넣은 제목의 글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문재인 대통령이 회의 때 한 모두발언을 글로 옮긴 것이다.그래서 글 제목만 봐서는 광복절에 대한 글인지 알 수 없지만 글의 첫 문구가 "사흘 후면 광복절입니다"이다.이 글의 진짜 제목인 셈이다.해당 글은 3개 문단으로 나뉘어져 있다.※글 전문은 기사 맨 하단 참조우선 첫번째 문단은 일본의 경제보복을 매우 엄중한 일로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한 대응은 감정적이기보다는 냉정하게 긴 호흡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이어 두번째 문단에서는 독립운동을 펼친 100년 전 선조들을 언급하고 있다. 선조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기리면서, 이를 지금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는 국민들도 보여주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경제보복 조치에 대해서는 결연히 반대하면서도 양국 국민 간 우호관계는 훼손하지 않으려는 의연하고 대승적인 모습을 언급하고 있다.마지막 세번째 문단에서는 국민들이 걱정하고 있는 일본의 경제보복에 따른 경제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경제보복을 우리 경제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겠다고 밝히고 있다.▶이번 수석보좌관 회의 모두발언은 그동안 임진왜란 관련 키워드(12척의 배, 이순신 장군)들도 언급하며 다소 강경한 어조를 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들과 비교하면 수위를 좀 낮춘 모습이다.이 같은 수위의 언급이 사흘 후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이어진다면, 이는 2017년과 2018년, 2차례 광복절 때 문재인 대통령이 읽은 연설문에서 연결되는 흐름이라는 분석이다.2차례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연설 속 한일관계에 대한 언급은 하나의 흐름 위에 있다. 한일관계 발전 및 남북관계 개선을 연결지어 동북아시아 평화를 도모하겠다는 구상이다.2017년 취임 후 처음 맞은 광복절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해마다 광복절이 되면 한일관계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면서 일본 정부에 대해 얘기했는데, "양자관계를 넘어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함께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라면서도 "역사문제를 덮고 넘어갈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임기 첫 해 광복절 연설이었던만큼, 대통령 임기 내 목표를 밝힌 것으로도 해석됐다.이어 2018년 광복절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아베 총리와도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나가고,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번영을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기로 했다"며 "그 협력은 결국 북일관계 정상화로 이끌어 갈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광복절은 남북정상회담 일정 중간에 자리했고, 따라서 이때 연설은 남북정상회담 관련 대국민 보고의 형식을 취했는데, 이에 일본의 고민인 북일관계도 곁들여 언급하며 동북아시아 평화 정착 구성 요소의 하나로 지칭한 것이다. 이 부분은 사실상 일본 정부에 보낸 메시지였다.▶그런데 광복절 연설문은 보통 때의 대통령의 발언, 글과는 다른 결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권의 비전을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일관계에 대한 언급 역시 최근의 한일갈등 사안만 감안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리고 공식적인 경축사의 특성상 수위 높은 단어나 표현을 쓰는 게 무리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앞서 나온 2건의 광복절 연설문이 놓인 맥락과 올해 광복절,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의 남은 임기 중 광복절 연설문이 놓일 '하나의 맥락'이 중요하게 고려된다는 분석이다.그러면서도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연설은 한일 정상 간 소통이 닫힌 상황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및 정부에 보내는 메시지 역할도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초반 일본 정부가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며 우리의 위기감이 치솟았지만, 이후 한국 국민들의 일본 제품·여행 등 불매운동이 거세진 데다 일본으로부터 수입하지 못할 것 같아 우려하던 반도체 관련 소재들의 해외 수급이 가능해지면서, 오히려 일본의 우려가 높아진 상황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먼저 싸움을 건' 일본 정부가 출구 전략을 어떻게 실행할 지 고심하고 있다는 일본 정부 관계자의 전언이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나오기도 했다.이에 사흘 뒤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연설은 일본에 재차 던지는 경고 메시지이면서, 길게 가면 양국 모두 좋을 게 없는 이번 사태의 빠른 종결을 선제적으로 제안하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이전과 비교해 다소 수위가 낮아진, 문재인 대통령의 12일 자 수석보좌관 회의 모두발언이 바로 그 힌트라는 것.▶물론 이는 이날 우리 정부가 일본을 우리의 화이트리스트 격인 '전략물자수출입고시'에서 제외한 조치와는 다른 어조를 취하고 있어 함께 주목된다.산업통상자원부는 이 고시상 화이트리스트인 '가' 항목을 '가의1'과 '가의2'로 나누면서, 기존 화이트리스트 국가들은 가의1에, 일본은 가의2에 새롭게 분류했다.이 조치는 이날 오후 2시쯤 공식 발표됐는데, 문재인 대통령의 수석보좌관 회의 진행 및 모두발언 글 페이스북 게재가 비슷한 시각에 이뤄진 점이 눈길을 끈다.이에 대해서는 압박과 유화의 메시지를 함께 던지는 전술을 취했다는 평가가 나올만하다.우리의 일본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는 당장이 아니라 9월 중 시행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일본 정부가 협의를 요청하면 언제, 어디서건 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즉, 9월 전까지 시한을 준다는 이 카드는 늦어도 8월 말까지는 한일갈등 완화 국면의 시작을 이끌어내려는 목적을 갖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서로가 득이 될 게 없는 갈등 자체를 오래 끌 이유가 없기도 한 데다, 현 상황이 지속되면 9월 중순 추석 때 업데이트 될 민심 또한 나빠질 가능성이 높기에 정부가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분석도 곁들여진다.다만 이번 수석보좌관 회의 모두발언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결기를 가지되 냉정하면서 또 근본적인 대책까지 생각하는 긴 호흡을 가져야 합니다"라고도 밝힌 만큼, 한일갈등이 장기간 이어질 가능성도 염두에 둔 카드도 함께 준비되고 있다는 관측이다. 이번처럼 이후에도 압박책과 유화책은 함께 시도될 것으로 전망된다.▶다음은 12일 올라온 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 '수석보좌관 회의' 글 전문.사흘 후면 광복절입니다. 올해는 3.1독립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로 그 의미가 더욱 뜻깊게 다가옵니다. 과거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큰 고통을 받았던 우리로서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본의 경제 보복을 매우 엄중한 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제 보복은 그 자체로도 부당할 뿐 아니라 그 시작이 과거사 문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광복절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한층 결연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감정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결기를 가지되 냉정하면서 또 근본적인 대책까지 생각하는 긴 호흡을 가져야 합니다.우리 선조들은 100년 전 피 흘리며 독립을 외치는 순간에도 모든 인류는 평등하며 세계는 하나의 시민이라는 사해동포주의를 주창하고 실천하였습니다. 적대적 민족주의를 반대하고 인류애에 기초한 평등과 평화공존의 관계를 지향하는 것은 지금도 변함없는 우리의 정신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국민들께서 보여주신 성숙한 시민의식에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일본 정부의 부당한 경제 보복에 대해 결연하게 반대하면서도 양국 국민 간의 우호관계를 훼손하지 않으려는 의연하고 대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양국 국민이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민주인권의 가치로 소통하고 인류애와 평화로 우의를 다진다면 한일관계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입니다.정부는 일본의 경제보복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우리 경제를 더욱 내실 있게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을 정교하고 세밀하게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꼼꼼하게 살피면서도 우리 국민과 기업의 역량을 믿고 자신 있게 임하겠습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고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단순히 경제 강국이 아닙니다. 우리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며 사람을 중시하는 평화협력의 세계 공동체를 추구해 나갈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국제사회와 연대하면서 책임과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경제력뿐 아니라 인권이나 평화 같은 가치의 면에서도 모범이 되는 나라로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2019-08-12 19:00:56

봉오동 전투(우측 상단) 및 청산리 전투(좌측 하단) 관련 지도. 두산백과

[계산동기획] 영화 '봉오동 전투' 홍범도…김좌진과 '청산리 전투' 등장한다면?

영화 '봉오동 전투'가 요즘 화제다.지난 7일 개봉 후 일일 관객수 1위를 줄곧 기록하는 등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독립군이 일본군에 승리한 실제 봉오동 전투를 다룬 작품이다. 그래서 광복절을 앞둔 시기인 것은 물론,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인한 국민들의 분노가 더해지며 영화 흥행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청산리 전투 승리, 김좌진과 홍범도 함께 이끌었다그러면서 역사 속 봉오동 전투를 이끈 인물인 독립운동가 홍범도(1868~1943)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요즘 여느 역사 영화가 그렇듯이, 이 영화도 한 사건 속 익히 알려진 위인보다는 이름 없이 활약한 주변 인물들을 그린다. 교과서로 봉오동 전투의 주역이라고 배운 홍범도보다는 한마음으로 뭉쳤던 독립군, 민초들을 비춘다.그럼에도 영화 말미 '조연' 홍범도의 등장은 꽤나 강렬하다. 의외의 배우가 특별출연한 것은 물론, 사건의 기승전결을 모두 기획한 주인공이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어서다.(물론 이 영화의 제작자가 누구인지 아는 관객들에겐 충분히 예상했던 캐스팅일 수 있다) 그래서 관객들은 영화 관람 후 자연스럽게 '봉오동 전투'와 '홍범도'를 검색해보게 마련이다.또한 영화를 계기로 독립군이 대승을 거둔 또 다른 전투인 '청산리 전투'에 대한 관심도 생겨나고 있다. 극중 홍범도가 다음 전장으로 '청산리'를 언급하기도 했다.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에, 청산리 전투는 4개월 뒤인 1920년 10월에 벌어졌다.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다.그런데 영화 봉오동 전투의 제작자가 영화 '명량'의 감독 김한민이기 때문에,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장군 3부작'(명량, 한산, 노량)처럼 청산리 전투도 봉오동 전투의 차기작으로 제작되는 것은 아닌지, 추측도 만들어지고 있다.이럴 경우, 흥미로운 등장인물 구성이 가능하다. 홍범도와 독립운동가 김좌진(1889~1930)이다. 교과서에는 청산리 전투의 주역이 김좌진이라고 설명돼 있는데, 사실 역사 속 청산리 전투에는 홍범도도 참여해 활약했다. 실은 봉오동 전투부터 흩어져 있던 독립군들이 본격적으로 연합 작전을 펼쳤고, 청산리 전투는 독립군의 연합이 절정에 달한 사건이다. 그 수많은 독립군 수장들 가운데 특히 김좌진과 홍범도가 빛났다는 평가다.즉, 만약 청산리 전투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홍범도와 김좌진이 의기투합해 전략을 짜고 실행에 옮기고 위기도 겪는 끝에 승리를 거두는 등 동고동락하는 모습이 극의 중심에 자리할 수 있다. 영화 봉오동 전투처럼 두 사람이 짧게 출연하더라도, 그 임팩트는 클 수 있다.◆머슴·포수·의병 출신 흙수저 홍범도 VS 육군무관학교 나온 군인 김좌진사실 홍범도와 김좌진은 여러모로 비교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대척점에 있기 보다는 '끈끈한' 동지 관계가 어울린다. '동지'이면서 실은 '라이벌'일지도 몰랐다는 콘셉트로 영화의 매력을 높일 수 있는 부분.우선 홍범도는 머슴 집안 출신, 김좌진은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대비된다. 다만 김좌진은 15세 때 집안의 종 30명이 보는 앞에서 종문서를 불태우고 그들에게 논과 밭을 나눠 준 이력이 눈길을 끈다. 실제 그랬던 각색을 하건 두 사람의 향후 유대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이다.또한 홍범도는 젊은 시절부터 포수(사냥꾼) 생활을 하며 실전에서 명사수로, 또 의병 및 독립군 대장으로 성장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그러면서 '백두산 호랑이'라는 별칭을 얻은 홍범도는 삼국지연의의 장비 같은 인물이다. 홍범도가 총을 잘 쐈고 지휘관으로서도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한 점은 "장수 목 베기를 자기 주머니에서 물건 꺼내듯 했다"는 장비의 무예에 비유할 수 있다. 물론 삼국지연의에서 장비는 힘만 강하고 지혜는 다소 부족한 인물로 그려지기는 하는데, 이와 별개로 장비가 유비군과 유장군의 전쟁 당시 적장 엄안을 지략 및 지구전을 펼쳐 생포한 게 유인 작전이 핵심이었던 봉오동 전투를 지휘한 홍범도와 닮았다.반면, 김좌진은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해 나름 엘리트 군인 코스를 밟은 인물이다. 또한 재산을 털어 학교를 세우는 등 애국계몽운동에 앞장 선 지식인이기도 하다. 무오독립선언서 39명 지도자 중 1인으로 서명하는 등 향후 지도자(정치인)로 성장할만한 면모도 일찍부터 보여준 바 있다. 본격적으로 독립군 활동에 나선 후로는 육군무관학교 경험을 살려 사관연성소에서 독립군을 양성한 이력도 눈길을 끈다.즉, 김좌진은 삼국지연의의 관우(노련한 지휘관,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던 교육자), 미축 또는 노숙(부자였던 미축과 노숙은 각 주군인 유비와 손권을 재산의 상당 부분을 써 가며 지원했고, 이게 유비의 촉나라 및 손권의 오나라가 태동하는 기반이 됐다) 등의 캐릭터를 합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또한 두 인물은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독립군을 이끌고 끊임 없이 일본군과 맞섰다는 점에서 선대 제갈량의 유지를 이어 받아 촉나라 후기 강국 위나라를 상대로 북벌을 지속했던 문무 겸비 지휘관 강유 같은 인물로도 볼 수 있다. 실은 당시 홍범도와 김좌진 말고도 다수의 독립군 수장들이 그런 힘겨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럼에도 그러한 처지를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강유도 그랬다.◆조국 독립 못 보고 눈 감은 홍범도와 김좌진1920년대 전성기가 지나고 독립군 활동도 쇠퇴하면서 두 사람이 나아간 행보도 서로 달랐다.홍범도의 독립군은 약소민족의 독립을 원조한다고 선동하던 소련 정부의 지원을 받았고. 이후 소련군에 속하기도 했지만, 소련 공산당의 배반으로 무장해제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홍범도는 1930~40년대 소련에서 한인 지도자로 활동하며 고려인으로 정착했다. 1943년 카자흐스탄에서 7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청산리 전투 이후 홍범도와 함께 대한독립군단 부총재가 된 김좌진도 소련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지원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여러 독립운동가와 함께 소련으로 갔지만, 다시 만주로 돌아와 신민부를 창설, 총사령관이 됐다. 성동사관학교를 세워 독립군 양성에도 힘썼다. 이어 신민부 후신 한국총연합회의 주석이 됐지만, 1930년 41세의 나이에 북만주 산시역 앞에서 암살당했다.두 사람 모두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홍범도와 김좌진은 인생의 후반부, 이념이 대립하던 시대의 풍파 속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걷긴 했지만, 그 목적은 똑같은 조국의 독립이었다는 평가다.이처럼 이념 문제가 얽히면 과거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쉬이 다루지 못했다. 공산당, 사회주의, 좌파, 북한 등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인물, 사건은 영화 소재가 될 수 없었다.그러나 지금은 영화가 이념 문제와 상관 없이 오롯이 인물과 사건을 바라보려 노력하고 있다. 광복 후 월북한 인물이라는 이유로 영화가 외면했던 독립운동가, 의열단장 김원봉을 최근 영화 '밀정'과 '암살'에서 잇따라 다룬 게 대표적 시도이다.따라서 과거 교과서에서 김좌진은 본받아야 할 위인으로 다뤘으나 홍범도는 상대적으로 등한시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청산리 전투라는 하나의 사건 안에서 힘을 모은 두 사람을 영화가, 부담 없이, 함께 조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그런 점에서 영화 봉오동 전투의 흥행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전작의 성공 없이 차기작은 제작에 돌입하기 힘들어서다.

2019-08-09 20:28:39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에서 일본 수출규제 대책 논의를 위한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계산동기획] 문재인 대통령 광복절 연설문 수위 "과거 어땠나?"

올해 74주년 광복절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경축사)이 어떤 내용을 담을 지 주목된다.▶7월 초부터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가 지속 중인 가운데, 3.1절과 함께 매년 한국의 반일 감정이 크게 치솟는 시기에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의 광복절 연설이 과거와 좀 다른 내용을 담을 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올해는 한껏 치솟은 한일 갈등 때문에 세계의 시선도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연설문에 쏠릴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의 주된 내용이 세계 1위 한국 반도체 산업 흔들기이기 때문에, 세계 관련 업계가 주시할 수밖에 없는 것.광복절(8월 15일)이 1주일 남은 현재(8일) 청와대에서는 이미 연설문 내용 구성에 한창일 것으로 보인다.연설문 내용 평가와 관련 '수위'도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광복절 연설문의 경우 한일관계를 언급하는 내용에 쓰인 단어들과 표현 어조 등이 그것. 문재인 대통령의 올해 광복절 연설문의 경우 과거 2건의 광복절 연설문이 비교 대상이 된다.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 후 2017, 2018년 등 2번의 광복절을 맞아 연설을 한 바 있다.※2017, 2018년 문재인 대통령 광복절 연설문 전문은 기사 하단 첨부.▶2017년 72주년 광복절 연설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이자 첫 광복절이었기 때문에 큰 관심을 얻은 바 있다.우선 박근혜 정권에 종지부를 찍은 촛불혁명과 과거 독립운동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시켜 눈길을 끌었다. 광복절 연설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이른바 '촛불 정체성'을 국민에게 설명했다는 분석이다.아울러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인 안동 임청각을 언급하면서 독립운동가 및 그 후손에 대한 예우를 약속했다. 또 분단을 일제강점기 식민지 시대의 유산으로 보면서, 북한과의 대화 기조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과의 협력 사안 가운데 하나로 남북 공동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실태조사를 언급했다.이어 문재인 대통령은 "해마다 광복절이 되면 한일관계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면서 일본 정부에 대해 얘기했는데, "양자관계를 넘어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함께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라면서도 "역사문제를 덮고 넘어갈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임기 첫 해 광복절 연설이었던만큼, 대통령 임기 내 목표를 밝힌 것으로도 해석됐다. ▶2018년 73주년 광복절 연설은 1년 전 광복절 연설문, 또는 과거 역대 대통령의 광복절 연설문과 비교하면 대북관계 관련 비중이 꽤 높았다.물론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2018년 광복절 3달여 전인 4월 27일 하루 동안 1차 남북정상회담 및 광복절 약 2달 전인 5월 26일 2차 남북정상회담(대국민 예보 없이 개최)이 열렸고, 이어 광복절로부터 불과 한 달여 후인 9월 18~20일 3차 남북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었다.즉, 광복절이라는 시기 자체가 남북정상회담 관련 대국민 보고를 경축사에 담기 적절했던 것. 따라서 2018년 광복절만큼은 연설문 내용이 독립운동, 한일관계 등에 대한 언급이 적더라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었다는 평가다.물론 한일관계 관련 언급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때 연설에서 "아베 총리와도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나가고,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번영을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기로 했다"며 "그 협력은 결국 북일관계 정상화로 이끌어 갈 것"이라고 밝혔다.2017년과 2018년 광복절 연설문 속 한일관계 관련 내용은 하나의 흐름 위에 있다. 한일관계 발전과 남북관계 개선을 연결지어 동북아시아 평화를 도모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불과 1년 후 한일관계가 크게 악화하면서 이 구상은 자칫 수정될 여지도 만들고 있다.따라서 문재인 대통령의 2019년 광복절 연설문은, 그래도 과거 2건의 광복절 연설문에서 이어지는 뉘앙스를 보여줄 지, 아니면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후 문재인 대통령이 여러 발언에서 보여 준 강경 모드를 취할 지, 또는 새로운 화두를 던질 지 등이 주목된다.▶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여러 발언에서 인용하고 있는 '임진왜란' 테마를 올해 광복절 연설에서 재차 사용할 지도 관전 포인트이다.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7월 4일로부터 8일 지난 12일 전남도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전남 주민은 이순신 장군과 함께 불과 열두 척의 배로 나라를 지켜냈다"고 강조해 화제가 됐다. 이때 처음으로 임진왜란 주제를 차용했다. 당시 발언은 자연스럽게 과거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본과 현재 경제보복 조치에 나선 일본을 매치시켰다는 해석이다.이어 문재인 대통령은 7월 30일 시민들과 함께 경남 거제 저도를 방문, "저도는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큰 곳"이라며 "저도 일대 바다는 옛날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께서 첫 번째 승리를 거둔 옥포해전이 있었던 곳"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또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을 밝힌 8월 7일 당일 경기 김포 SBB테크를 찾았는데, 이 회사는 2015년 국내 최초로 로봇 핵심 부품인 정밀 감속기를 양산하는 데 성공한 중소기업이다. 이곳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임진왜란 때 일본이 가장 탐을 냈던 것도 우리의 도예가와 도공이었다고 한다"고 했는데, 이는 한국의 높은 기술력을 강조하는 대일 메시지로 해석됐다. SBB테크가 생산하는 감속기의 핵심 부품인 베어링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품목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는 품목이다.아울러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 담긴 것은 아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7월 24일 부산에서 전국 시·도지사들과 간담회 후 오찬을 위해 '거북선횟집'이라는 식당을 찾은 게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이렇게 임진왜란, 이순신 장군, 거북선 등 우리나라가 일본의 침략을 극복한 역사 기록 속 키워드들이 지난 한달여간 대통령의 발언 및 행적에서 포착되고 있는데, 이게 광복절 연설문에도 들어갈 지 주목되는 상황이다.▶광복절 연설문은 매년 광복절 경축식 직전 급히 수정될 여지를 맞이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일본 정치인들이 우리에게는 광복절, 그들에게는 패전일이지만 공식적으로는 '종전기념일'이라고 하는 8월 15일 또는 그 직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곤 해서다.일본의 여러 신사들 가운데 호국의 성격을 지닌 야스쿠니 신사에는 2차 세계대전 일본제국 A급 전범 14명이 합사돼 있다. 따라서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전범=국가영웅'의 맥락을 형성하기 때문에 늘 비판 받는다. 이는 독일 정치인들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의 무덤에 참배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인 셈이다.2006~2007년에 이어 2012년부터 현재까지 일본 총리로 있는 아베 신조 총리는 2013년 12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한국은 물론 역시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중국 등 주변 국가들의 거센 반발을 산 바 있다. 이후 아베 총리는 참배 대신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보내고 있다.다만 이후에도 일부 일본 정치인들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왔다. 그러다 아베 내각 각료들의 경우 2017, 2018년 이렇게 2년 연속으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올해는 불과 우리나라 광복절 한 달여 전인 7월 초부터 일본 정부 및 여당 자민당 등 상당수 정치권이 경제보복 조치에 동참하고 있는 모양새이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국제적 비판을 감수하더라도 아베 총리가 6년 만에 야스쿠니 신사를 찾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지층 결집의 일환이다.8일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여부를 묻는 질문에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총리 자신이 적절하게 판단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불과 1주일 전임에도 "참배하지 않는다"는 확답을 내놓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 관련 하나의 카드로 쓰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만약 이럴 경우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연설문 내용도 수위가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2017년 72주년 광복절 경축사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촛불혁명으로 국민주권의 시대가 열리고 첫 번째 맞는 광복절입니다. 오늘, 그 의미가 유달리 깊게 다가옵니다.국민주권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처음 사용한 말이 아닙니다. 백 년 전인 1917년 7월, 독립운동가 14인이 상해에서 발표한 '대동단결 선언'은 국민주권을 독립운동의 이념으로 천명했습니다. 경술국치는 국권을 상실한 날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주권이 발생한 날이라고 선언하며, 국민주권에 입각한 임시정부 수립을 제창했습니다. 마침내 1919년 3월, 이념과 계급과 지역을 초월한 전 민족적 항일독립운동을 거쳐, 이 선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국민주권은 임시정부 수립을 통한 대한민국 건국의 이념이 되었고, 오늘 우리는 그 정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세우려는 선대들의 염원은 백 년의 시간을 이어왔고, 드디어 촛불을 든 국민들의 실천이 되었습니다.광복은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름 석 자까지 모든 것을 빼앗기고도 자유와 독립의 열망을 지켜낸 삼천만이 되찾은 것입니다. 민족의 자주독립에 생을 바친 선열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독립운동을 위해 떠나는 자식의 옷을 기운 어머니도, 일제의 눈을 피해 야학에서 모국어를 가르친 선생님도, 우리의 전통을 지켜내고 쌈짓돈을 보탠 분들도, 모두가 광복을 만든 주인공입니다.광복은 항일의병에서 광복군까지 애국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이 흘린 피의 대가였습니다. 직업도, 성별도, 나이의 구분도 없었습니다. 의열단원이며 몽골의 전염병을 근절시킨 의사 이태준 선생, 간도참변 취재 중 실종된 동아일보 기자 장덕준 선생, 무장독립단체 서로군정서에서 활약한 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 여사, 과학으로 민족의 힘을 키우고자 했던 과학자 김용관 선생, 독립군 결사대 단원이었던 영화감독 나운규 선생, 우리에게는 너무도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습니다.독립운동의 무대도 한반도만이 아니었습니다. 1919년 3월 1일 연해주와 만주, 미주와 아시아 곳곳에서도 한 목소리로 대한독립의 함성이 울려 퍼졌습니다.항일독립운동의 이 모든 빛나는 장면들이 지난 겨울 전국 방방곡곡에서, 그리고 우리 동포들이 있는 세계 곳곳에서, 촛불로 살아났습니다. 우리 국민이 높이든 촛불은 독립운동 정신의 계승입니다.위대한 독립운동의 정신은 민주화와 경제 발전으로 되살아나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희생하고 땀 흘린 모든 분들, 그 한 분 한 분 모두가 오늘 이 나라를 세운 공헌자입니다.오늘 저는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그리고 저마다의 항일로 암흑의 시대를 이겨낸 모든 분들께, 또 촛불로 새 시대를 열어주신 국민들께, 다시금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아울러 저는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이 날이 민족과 나라 앞에 닥친 어려움과 위기에 맞서는 용기와 지혜를 되새기는 날이 되기를 희망합니다.존경하는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경북 안동에 임청각이라는 유서 깊은 집이 있습니다. 임청각은 일제강점기 전 가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무장 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입니다. 무려 아홉 분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산실이고,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공간입니다. 그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는 그 집을 관통하도록 철도를 놓았습니다. 아흔 아홉 칸 대저택이었던 임청각은 지금도 반 토막이 난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이상룡 선생의 손자, 손녀는 해방 후 대한민국에서 고아원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임청각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일제와 친일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했습니다.역사를 잃으면 뿌리를 잃는 것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을 더 이상 잊혀진 영웅으로 남겨두지 말아야 합니다. 명예뿐인 보훈에 머물지도 말아야 합니다.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사라져야 합니다. 친일 부역자와 독립운동가의 처지가 해방 후에도 달라지지 않더라는 경험이 불의와의 타협을 정당화하는 왜곡된 가치관을 만들었습니다.독립운동가들을 모시는 국가의 자세를 완전히 새롭게 하겠습니다. 최고의 존경과 예의로 보답하겠습니다. 독립운동가의 3대까지 예우하고자녀와 손자녀 전원의 생활안정을 지원해서 국가에 헌신하면 3대까지 대접받는다는 인식을 심겠습니다.독립운동의 공적을 후손들이 기억하기 위해 임시정부기념관을 건립하겠습니다. 임청각처럼 독립운동을 기억할 수 있는 유적지는 모두 찾아내겠습니다. 잊혀진 독립운동가를 끝까지 발굴하고, 해외의 독립운동 유적지를 보전하겠습니다.이번 기회에 정부는 대한민국 보훈의 기틀을 완전히 새롭게 세우고자 합니다. 대한민국은 나라의 이름을 지키고, 나라를 되찾고, 나라의 부름에 기꺼이 응답한 분들의 희생과 헌신 위에 서 있습니다. 그 희생과 헌신에 제대로 보답하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젊음을 나라에 바치고 이제 고령이 되신 독립유공자와 참전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강화하겠습니다. 살아계시는 동안 독립유공자와 참전유공자의 치료를 국가가 책임지겠습니다. 참전 명예수당도 인상하겠습니다.유공자 어르신 마지막 한 분까지 대한민국의 품이 따뜻하고 영광스러웠다고 느끼시게 하겠습니다. 순직 군인과 경찰, 소방공무원 유가족에 대한 지원도 확대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자긍심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보훈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분명히 확립하겠습니다. 애국의 출발점이 보훈이 되도록 하겠습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지난 역사에서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해 국민들이 감수해야 했던 고통과도 마주해야 합니다.광복 70년이 지나도록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고통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강제동원의 실상이 부분적으로 밝혀졌지만 아직 그 피해의 규모가 다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밝혀진 사실들은 그것대로 풀어나가고,미흡한 부분은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마저 해결해야 합니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풀리면 남북이 공동으로 강제동원 피해 실태조사를 하는 것도 검토할 것입니다.해방 후에도 돌아오지 못한 동포들이 많습니다. 재일동포의 경우 국적을 불문하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고향 방문을 정상화할 것입니다. 지금도 시베리아와 사할린 등 곳곳에 강제이주와 동원이 남긴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그 분들과도 동포의 정을 함께 나누겠습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해외 동포 여러분,오늘 광복절을 맞아 한반도를 둘러싸고 계속되는 군사적 긴장의 고조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분단은 냉전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 힘으로 우리 운명을 결정할 수 없었던 식민지시대가 남긴 불행한 유산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스스로 우리 운명을 결정할 수 있을 만큼 국력이 커졌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도, 분단 극복도, 우리가 우리 힘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오늘날 한반도의 시대적 소명은 두말 할 것 없이 평화입니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통한 분단 극복이야말로 광복을 진정으로 완성하는 길입니다.평화는 또한 당면한 우리의 생존 전략입니다. 안보도, 경제도, 성장도, 번영도 평화 없이는 미래를 담보하지 못합니다. 평화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반도에 평화가 없으면 동북아에 평화가 없고, 동북아에 평화가 없으면 세계의 평화가 깨집니다. 지금 세계는 두려움 속에서 그 분명한 진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가야할 길은 명확합니다. 전 세계와 함께 한반도와 동북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의 대장정을 시작하는 것입니다.지금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입니다. 정부는 현재의 안보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안보위기를 타개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안보를 동맹국에게만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정부의 원칙은 확고합니다. 대한민국의 국익이 최우선이고 정의입니다. 한반도에서 또 다시 전쟁은 안 됩니다.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정부는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입니다. 어떤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북핵문제는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이 점에서 우리와 미국 정부의 입장이 다르지 않습니다.정부는 국제사회에서 평화적 해결 원칙이 흔들리지 않도록 외교적 노력을 한층 강화할 것입니다. 국방력이 뒷받침되는 굳건한 평화를 위해 우리 군을 더 강하게, 더 믿음직스럽게 혁신하여 강한 방위력을 구축할 것입니다. 한편으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도록 군사적 대화의 문도 열어놓을 것입니다.북한에 대한 제재와 대화는 선후의 문제가 아닙니다. 북핵문제의 역사는 제재와 대화가 함께 갈 때 문제해결의 단초가 열렸음을 보여주었습니다.북한이 미사일 발사시험을 유예하거나 핵실험 중단을 천명했던 시기는 예외 없이 남북관계가 좋은 시기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럴 때 북미, 북일 간 대화도 촉진되었고, 동북아 다자외교도 활발했습니다. 제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반도 문제의 주인은 우리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북핵문제 해결은 핵 동결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적어도 북한이 추가적인 핵과 미사일 도발을 중단해야 대화의 여건이 갖춰질 수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강도 높은 제재와 압박의 목적도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지 군사적 긴장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점에서도 우리와 미국 정부의 입장이 다르지 않습니다.북한 당국에 촉구합니다. 국제적인 협력과 상생 없이 경제발전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대로 간다면 북한에게는 국제적 고립과 어두운 미래가 있을 뿐입니다. 수많은 주민들의 생존과 한반도 전체를 어려움에 빠뜨리게 됩니다. 우리 역시 원하지 않더라도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더욱 높여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각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 핵 없이도 북한의 안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돕고 만들어 가겠습니다. 미국과 주변 국가들도 도울 것입니다.다시 한 번 천명합니다. 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원하지 않습니다.흡수통일을 추진하지도 않을 것이고 인위적 통일을 추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통일은 민족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합의하는 '평화적, 민주적'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북한이 기존의 남북합의의 상호이행을 약속한다면, 우리는 정부가 바뀌어도 대북정책이 달라지지 않도록, 국회의 의결을 거쳐 그 합의를 제도화할 것입니다.저는 오래전부터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밝힌 바 있습니다. 남북간의 경제협력과 동북아 경제협력은 남북공동의 번영을 가져오고, 군사적 대립을 완화시킬 것입니다. 경제협력의 과정에서 북한은 핵무기를 갖지 않아도 자신들의 안보가 보장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쉬운 일부터 시작할 것을 다시 한 번 북한에 제안합니다. 이산가족 문제와 같은 인도적 협력을 하루빨리 재개해야 합니다. 이 분들의 한을 풀어드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산가족 상봉과 고향 방문, 성묘에 대한 조속한 호응을 촉구합니다.다가오는 평창 동계올림픽도 남북이 평화의 길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남북대화의 기회로 삼고, 한반도 평화의 기틀을 마련해야 합니다. 동북아 지역에서 연이어 개최되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2020년의 도쿄 하계올림픽, 2022년의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한반도와 함께 동북아의 평화와 경제협력을 촉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저는 동북아의 모든 지도자들에게 이 기회를 살려나가기 위해 머리를 맞댈 것을 제안합니다. 특히 한국과 중국, 일본은 역내 안보와 경제협력을 제도화하면서 공동의 책임을 나누는 노력을 함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뜻을 모아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해마다 광복절이 되면 우리는 한일관계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일관계도 이제 양자관계를 넘어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함께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과거사와 역사문제가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지속적으로 발목 잡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정부는 새로운 한일관계의 발전을 위해 셔틀외교를 포함한 다양한 교류를 확대해 갈 것입니다. 당면한 북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을 위해서도 양국 간의 협력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일관계의 미래를 중시한다고 해서 역사문제를 덮고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역사문제를 제대로 매듭지을 때 양국 간의 신뢰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그동안 일본의 많은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양국 간의 과거와 일본의 책임을 직시하려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 노력들이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에 기여해 왔습니다. 이러한 역사인식이 일본의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 바뀌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한일관계의 걸림돌은 과거사 그 자체가 아니라 역사문제를 대하는 일본정부의 인식의 부침에 있기 때문입니다.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한일 간의 역사문제 해결에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국민적 합의에 기한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보상, 진실규명과 재발방지 약속이라는 국제사회의 원칙이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이 원칙을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 일본 지도자들의 용기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해외 동포 여러분,2년 후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내년 8.15는 정부 수립 70주년이기도 합니다.우리에게 진정한 광복은, 외세에 의해 분단된 민족이 하나가 되는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보훈은, 선열들이 건국의 이념으로 삼은 국민주권을 실현하여 국민이 주인인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지금부터 준비합시다. 그 과정에서, 치유와 화해, 통합을 향해 지난 한 세기의 역사를 결산하는 일도 가능할 것입니다.국민주권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 보수, 진보의 구분이 무의미했듯이 우리 근현대사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세력으로 나누는 것도 이제 뛰어넘어야 합니다.우리는 누구나 역사의 유산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모든 역사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며, 이 점에서 개인의 삶 속으로 들어온 시대를 산업화와 민주화로 나누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의미 없는 일입니다. 대한민국 19대 대통령 문재인 역시 김대중, 노무현만이 아니라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모든 대통령의 역사 속에 있습니다.저는 우리 사회의 치유와 화해, 통합을 바라는 마음으로 지난 현충일 추념사에서 애국의 가치를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이제 지난 백년의 역사를 결산하고, 새로운 백년을 위해 공동체의 가치를 다시 정립하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정부의 새로운 정책기조도 여기에 맞춰져 있습니다. 보수나 진보 또는 정파의 시각을 넘어서 새로운 100년의 준비에 다함께 동참해 주실 것을 바라마지 않습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오늘, 우리 다함께 선언합시다. 우리 앞에 수많은 도전이 밀려오고 있지만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고 헤쳐 나가는 일은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세계에서 최고라고 당당히 외칩시다. 담대하게, 자신 있게 새로운 도전을 맞이합시다. 언제나 그랬듯이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이겨 나갑시다.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완성합시다. 다시 한 번 우리의 저력을 확인합시다.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독립유공자들께 깊은 존경의 마음을 드립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2018년 73주년 광복절 경축사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해외동포 여러분,오늘은 광복 73주년이자 대한민국 정부수립 70주년을 맞는 매우 뜻깊고 기쁜 날입니다.독립 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우리는 오늘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마음 깊이 경의를 표합니다. 독립유공자와 유가족께도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구한말 의병운동으로부터 시작한 우리의 독립운동은 3.1운동을 거치며 국민주권을 찾는 치열한 항전이 되었습니다.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우리의 나라를 우리의 힘으로 건설하자는 불굴의 투쟁을 벌였습니다.친일의 역사는 결코 우리 역사의 주류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국민들의 독립투쟁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치열했습니다.광복은 결코 밖에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선열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함께 싸워 이겨낸 결과였습니다.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힘을 모아 이룬 광복이었습니다.그리하여 광복의 그날 우리는, 모두가 어울려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에 높은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것입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오늘 광복절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가 함께하고 있는 이곳은 114년 만에 국민의 품으로 돌아와 비로소 온전히 우리의 땅이 된 서울의 심장부 용산입니다. 일제강점기 용산은 일본의 군사기지였으며 조선을 착취하고 지배했던 핵심이었습니다.광복과 함께 용산에서 한미동맹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용산은 한반도 평화를 이끌어온 기반이었습니다.지난 6월 주한미군사령부의 평택 이전으로 한미동맹은 더 굳건하게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습니다.이제 용산은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와 같은 생태자연공원으로 조성될 것입니다.2005년 선포된 국가공원 조성계획을 이제야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중심부에서 허파역할을 할 거대한 생태자연공원을 상상하면 가슴이 뜁니다.그처럼 우리에게 아픈 역사와 평화의 의지, 아름다운 미래가 함께 담겨있는 이곳 용산에서 오늘 광복절 기념식을 갖게 되어 더욱 뜻깊게 생각합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용산이 오래도록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것처럼 발굴하지 못하고 찾아내지 못한 독립운동의 역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특히 여성의 독립운동은 더 깊숙이 묻혀왔습니다.여성들은 가부장제와 사회, 경제적 불평등으로 이중삼중의 차별을 당하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평양 평원고무공장의 여성노동자였던 강주룡은 1931년 일제의 일방적인 임금삭감에 반대해 높이 12미터의 을밀대 지붕에 올라 농성하며, "여성해방, 노동해방"을 외쳤습니다.당시 조선의 남성 노동자 임금은 일본 노동자의 절반에도 못 미쳤고, 조선 여성노동자는 그의 절반도 되지 못했습니다.죽음을 각오한 저항으로 지사는 출감 두 달 만에 숨을 거두고 말았지만, 200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습니다.1932년 제주 구좌읍에서는 일제의 착취에 맞서 고차동, 김계석, 김옥련, 부덕량, 부춘화, 다섯 분의 해녀로 시작된 해녀 항일운동이 제주 각지 800명으로 확산되었고, 3개월 동안 연인원 1만7천명이 238회에 달하는 집회시위에 참여했습니다.지금 구좌에는 제주해녀 항일운동기념탑이 세워져 있습니다.정부는 지난 광복절 이후 1년 간 여성 독립운동가 이백 두 분을 찾아 광복의 역사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 중 스물여섯 분에게 이번 광복절에 서훈과 유공자 포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머지 분들도 계속 포상할 예정입니다.광복을 위한 모든 노력에 반드시 정당한 평가와 합당한 예우를 받게 하겠습니다. 정부는 여성과 남성, 역할을 떠나 어떤 차별도 없이 독립운동의 역사를 발굴해낼 것입니다. 묻혀진 독립운동사와 독립운동가의 완전한 발굴이야말로 또 하나의 광복의 완성이라고 믿습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은 우리 국민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힘을 보태 함께 만든 나라입니다.정부수립 70주년을 맞는 오늘,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었습니다.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해방된 국가들 가운데 우리나라처럼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에 함께 성공한 나라는 없습니다.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에 촛불혁명으로 민주주의를 되살려 전 세계를 경탄시킨 나라, 그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의 모습입니다.분단과 참혹한 전쟁, 첨예한 남북대치 상황, 절대빈곤, 군부독재 등의 온갖 역경을 헤치고 이룬 위대한 성과입니다.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전 세계에서 우리만큼 역동적인 발전을 이룬 나라가 많지 않다는 사실만큼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선대들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세대가 함께 이뤄냈습니다.우리는 우리의 위상과 역량을 스스로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그러나 외국에 나가보면 누구나 느끼듯이, 한국은 많은 나라들이 부러워하는 성공한 나라이고, 배우고자 하는 나라입니다.그 사실에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그리고 그 자부심으로 우리는 새로운 70년의 발전을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지금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며,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길입니다. 분단은 전쟁 이후에도 국민들의 삶속에서 전쟁의 공포를 일상화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막대한 경제적 비용과 역량소모를 가져왔습니다.경기도와 강원도의 북부지역은 개발이 제한되었고, 서해 5도의 주민들은 풍요의 바다를 눈앞에 두고도 조업할 수 없었습니다.분단은 대한민국을 대륙으로부터 단절된 섬으로 만들었습니다. 분단은 우리의 사고까지 분단시켰습니다.많은 금기들이 자유로운 사고를 막았습니다. 분단은 안보를 내세운 군부독재의 명분이 되었고, 국민을 편 가르는 이념갈등과 색깔론 정치, 지역주의 정치의 빌미가 되었으며, 특권과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었습니다.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반드시 분단을 극복해야 합니다.정치적 통일은 멀었더라도, 남북 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자유롭게 오가며,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이루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광복입니다.저는 국민들과 함께 그 길을 담대하게 걸어가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국민들의 힘 덕분입니다.제가 취임 후 방문한 11개 나라, 17개 도시의 세계인들은 촛불혁명으로 민주주의와 정의를 되살리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가는 우리 국민들에게 깊은 경의의 마음을 보냈습니다. 그것이 국제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되었습니다.가장 먼저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한미동맹을 '위대한 동맹'으로 발전시킬 것을 합의했습니다. 평화적 방식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독일 메르켈 총리를 비롯해 G20의 정상들도 우리 정부의 노력에 전폭적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아세안 국가들과도 '더불어 잘사는 평화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가기로 했습니다.시진핑 주석과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기로 했고 지금 중국은 한반도 평화에 큰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푸틴 대통령과는 남북러 3각 협력을 함께 준비하기로 했습니다.아베 총리와도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나가고,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번영을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그 협력은 결국 북일관계 정상화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판문점 선언'은 그와 같은 국제적지지 속에서 남북 공동의 노력으로 이뤄진 것입니다.남과 북은 우리가 사는 땅, 하늘, 바다 어디에서도 일체의 적대행위를 중단하기로 했습니다.지금 남북은 군사당국간 상시 연락채널을 복원해 일일단위로 연락하고 있습니다.'분쟁의 바다' 서해는 군사적 위협이 사라진 '평화의 바다'로 바뀌고 있고, 공동번영의 바다로 나아가고 있습니다.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비무장화, 비무장지대의 시범적 감시초소 철수도 원칙적으로 합의를 이뤘습니다.남북 공동의 유해발굴도 이뤄질 것입니다.이산가족 상봉도 재개되었습니다. 앞으로 상호대표부로 발전하게 될 남북공동연락사무소도 사상 최초로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대단히 뜻깊은 일입니다. 며칠 후면 남북이 24시간 365일 소통하는 시대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북미 정상회담 또한 함께 평화와 번영으로 가겠다는 북미 양국의 의지로 성사되었습니다.한반도 평화와 번영은 양 정상이 세계와 나눈 약속입니다.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행과 이에 상응하는 미국의 포괄적 조치가 신속하게 추진되길 바랍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이틀 전 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해 '판문점 회담'에서 약속한, 가을 정상회담이 합의되었습니다.다음 달 저는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모아 평양을 방문하게 될 것입니다.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정상 간에 확인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한 담대한 발걸음을 내딛을 것입니다.남북과 북미 간의 뿌리 깊은 불신이 걷힐 때 서로 간의 합의가 진정성 있게 이행될 수 있습니다.남북 간에 더 깊은 신뢰관계를 구축하겠습니다.북미 간의 비핵화 대화를 촉진하는 주도적인 노력도 함께 해 나가겠습니다.저는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인이라는 인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남북관계 발전은 북미관계 진전의 부수적 효과가 아닙니다.오히려 남북관계의 발전이야말로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시키는 동력입니다.과거 남북관계가 좋았던 시기에 북핵 위협이 줄어들고 비핵화 합의에까지 이를 수 있던 역사적 경험이 그 사실을 뒷받침 합니다.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어야 본격적인 경제협력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평화경제, 경제공동체의 꿈을 실현시킬 때 우리 경제는 새롭게 도약할 수 있습니다.우리 민족 모두가 함께 잘 사는 날도 앞당겨질 것입니다.국책기관의 연구에 따르면, 향후 30년 간 남북 경협에 따른 경제적 효과는 최소한 17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합니다.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에 철도연결과 일부 지하자원 개발사업을 더한 효과입니다.남북 간에 전면적인 경제협력이 이뤄질 때 그 효과는 비교할 수 없이 커질 것입니다.이미 금강산 관광으로 8천9백여 명의 일자리를 만들고 강원도 고성의 경제를 비약시켰던 경험이 있습니다.개성공단은 협력업체를 포함해 10만 명에 이르는 일자리의 보고였습니다. 지금 파주 일대의 상전벽해와 같은 눈부신 발전도 남북이 평화로웠을 때 이뤄졌습니다. 평화가 경제입니다.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가 정착되면 경기도와 강원도의 접경지역에 통일경제특구를 설치할 것입니다.많은 일자리와 함께 지역과 중소기업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철도, 도로 연결은 올해 안에 착공식을 갖는 것이 목표입니다. 철도와 도로의 연결은 한반도 공동번영의 시작입니다.1951년 전쟁방지, 평화구축, 경제재건이라는 목표 아래 유럽 6개국이 '유럽석탄철강공동체'를 창설했습니다.이 공동체가 이후 유럽연합의 모체가 되었습니다.경의선과 경원선의 출발지였던 용산에서 저는 오늘, 동북아 6개국과 미국이 함께 하는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제안합니다.이 공동체는 우리의 경제지평을 북방대륙까지 넓히고 동북아 상생번영의 대동맥이 되어 동아시아 에너지공동체와 경제공동체로 이어질 것입니다.그리고 이는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로 가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해외동포 여러분,식민지로부터 광복, 전쟁을 이겨내고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이뤄내기까지 우리 국민들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해왔습니다.국민들이 기적을 만들었고, 대한민국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로 가고 있습니다.독립의 선열들과 국민들은반드시 광복이 올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서로를 격려하며 고난을 이겨냈습니다.한반도 비핵화와 경제 살리기라는 순탄하지 않은 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만 지금까지처럼 서로의 손을 꽉 잡으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은 우리가 어떻게 하냐에 달렸습니다. 낙관의 힘을 저는 믿습니다. 광복을 만든 용기와 의지가 우리에게 분단을 넘어선, 평화와 번영이라는 진정한 광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감사합니다.

2019-08-08 17:09:17

코스피는 51.15포인트(2.56%) 하락한 1,946.98, 코스닥은 45.91포인트(7.46%) 급락한 569.79로 장을 마감한 5일 오후 서울 중구 KEB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가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계산동기획] 코스피·코스닥 어디까지 떨어져봤니?

5일 한국 증시가 '쇼크'를 먹었다. '블랙 먼데이'였다.▶이날 장마감 기준 코스피 지수는 전일 대비 51.15(2.56%) 떨어진 1946.98, 코스닥 지수는 전일 대비 45.91(7.46%) 하락한 569.76을 기록했다.코스피와 코스닥에서 모두 합쳐 49조2천10억원이 증발했다.코스피는 3년 2개월여 만의 최저 기록을 썼다. 코스닥도 3년여 만에 하락장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사이드카는 전일 종가 대비 5% 이상 변동(등락)한 시세가 1분간 지속될 경우 주식시장의 프로그램 매매 호가는 5분간 효력이 정지되는 것을 가리킨다.이날 한국뿐 아니라 일본(니케이225)과 중국(상해종합) 증시도 하락했다. 일본 니케이 지수는 전일 대비 366.87(1.74%) 떨어진 20720.29를, 중국 상해 지수는 전일 대비 46.34(1.62%) 감소한 2821.50을 기록했다.모두 미중 무역분쟁 악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한국의 경우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등 경제 보복 조치 장기화 조짐 영향도 받았다는 분석이 더해진다. 가령 한국 증시를 떠받치는 주요 투자 종목인 '반도체'와 관련, 향후 전망을 좀 더 어둡게 본 결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 밖에도 여러 요인으로 외인 매도가 이어지며 자금이 빠져나가 원/달러, 원/엔, 원/유로 등 주요 환율이 지난 2일 금요일부터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풀이다.▶그러면서 코스피와 코스닥의 하루 기준 역대 하락 기록에 눈이 쏠린다.하락율만 따지면 우선 코스피의 경우 1981년 1월 5일 13.2%(13.92) 하락한 게 최고 기록이다. IMF 시기인 1998년 6월 12일 8.1%(26.61) 떨어진 기록도 회자된다. 21세기 들어서는 2001년 9월 12일 12.02%(64.97) 감소한 게 주목된다.하락한 지수 자체만 따지면 2007년 8월 16일이 단연 눈길을 끈다.코스피 지수가 하루만에 126.50(9.44%) 떨어져 1691.98을 기록한 날이다. 이날은 코스닥 지수가 10.15%(77.85) 떨어져 689.07를 보이며 최대 낙폭을 기록한 날이기도 하다.▶코스피와 코스닥이 함께 '흑역사'를 쓴 2007년 8월 16일. 오늘인 8월 5일이므로, 거의 12년 전이다. 이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바로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여파가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하던 일명 '세계 금융위기'의 서막이 걷히던 시기이다. 굳이 구분하자면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는 2007년, 금융위기는 2008년에 발생한 것으로 다수 언론 보도에 적혀 있지만, 하나의 흐름을 공유하는 두 사건에 대한 구분이 큰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당시 코스닥은 이렇게 움직였다.2007년 8월 9일 812.69에서 ▷8월 10일 24.28 ▷8월 13일 2.21 ▷8월 14일 19.28 ▷8월 16일 77.85 ▷8월 17일 15.59 이렇게 5영업일 동안 지수가 총 ‭139.21‬가 하락한 바 있다. 다음 날인 8월 20일 지수가 48.11 급상승한 것에 이어 10월 4일에야 814.72로 하락세 시작 당시쯤의 지수를 다시 채웠다.이후 코스닥 지수는 700 중후반대와 800 초반대 안에서 움직이더니 12월 21일에는 697.46을 기록하며 700대가 깨지기도 했다. 이어 다음 해인 2008년 1월 30일에는 603.11을 기록하고 다시 3월 17일에는 600.68을 기록하는 등 600대 벽이 깨질 뻔한 위기를 거듭했다.그러나 결국 6월 27일 594.63으로 600대 벽이 깨진 데 이어, 8월 21일에는 495.15로 500대 벽이 깨졌고, 추락을 멈주치 못해 10월 27일 261.19까지 내려가 바닥을 찍기도 했다.▶같은 시기 코스피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2007년 8월 9일 1908.68에서 ▷8월 10일 80.19 (8월 13일은 20.77 상승) ▷8월 14일 31.37 ▷8월 16일 125.91 ▷8월 17일 53.91 등 5영업일 간 지수가 270.61 하락했다. 역시 다음 날인 8월 20일 지수가 93.20 급등한 데 이어 9월 20일에야 1908.97로 하락세가 시작된 시점의 지수를 회복했다.이후 10월 2일에는 지수가 2000을 돌파했다가도, 한달여 뒤인 11월에는 또 다시 급락을 지속, 11월 23일 1772.88까지 무섭게 떨어지기도 했다.2007년 12월 한국 증시에 찬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했다. 코스닥이 700대가 깨졌던 12월 21일에 1주일 앞선 12월 14일, 코스피는 1900대가 깨졌다. 이날 1895.05의 지수를 기록했다. 이어 다음 해인 2008년 1월 11일에는 1800대가 깨져 1782.27의 지수를 기록했다. 이어 불과 열흘 뒤인 1월 21일 지수 1683.56으로 1700대가 무너졌다. 또한 역시 약 열흘 뒤인 1월 30일에는 1600대마저 놓치며 1589.06의 지수를 기록했다.봄은 오는둥 마는둥 했다. 즉, 회복하는듯 착시를 일으켰던 코스피는 2008년 6월부터 코스닥과 연동돼 지수 하락세를 급히 또는 서서히 재차 또 재차 겪어나갔다. 6월 10일 1800대(1774.38), 6월 27일 1700대(1684.45), 7월 4일 1600대(1577.94), 8월 22일 1500대(1496.91), 9월 16일 1400대(1387.75)가 잇따라 깨졌다.▶이어 지수 1400대에 주로 머무르던 코스피 앞엔, 2008년 10월 한 달 동안의 정신이 아찔할 급락장이 기다리고 있었다.1400대에서 900대까지 순식간에, '날개 없이' 추락했다. 물론 급락장이 이어지며 일시적으로 매수가 몰린 급등장도 있긴 했지만, 대세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당시 주요 하락장 기록만 따지면 이랬다.▷10월 6일 지수 1400대 깨짐(당일 종가 1358.75)▷10월 8일 1300대 깨짐(1286.69)▷10월 17일 1200대 깨짐(1180.67)▷10월 23일 1100대 깨짐(1049.71)▷10월 24일 1000대 깨짐(938.75)이후 회복세라고는 할 수 없는 지루한 등락을 거듭하던 코스피는 다음 해인 2009년 봄~여름쯤에 이르러서야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분명 그때와 지금의 위기 상황은 다르다. 2007년 8월 당시는 1년 후 닥칠 세계 금융위기의 조짐이 서서히 드러나던 시기였고, 이번 코스피·코스닥 급락은 한창 진행돼 온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전쟁이 좀 더 악화한 게 영향을 미쳤는데 이런 수준이 잠깐에 그칠 지 아니면 장기화할 지 가늠하기 힘들다는 게 차이점이다.그러나 원인이야 어쨌든 당시 한국 증시가 2년 동안 하락세에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 양상이, 이번에도 비슷하게 나타날 지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향하고 있다. 이미 여러 전문가들이 2008년 금융위기 때를 언급하며 한국 경제의 체급 및 체력, 즉 펀더멘탈을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1년 앞서 금융위기의 조짐을 보여준 2007년의 흐름도 살펴봐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2019-08-05 17:57:49

고(故) 김성재. 매일신문DB

[계산동기획] "미국은 사전 방송금지 X" 결방 '그것이 알고싶다 김성재 편' 향후 편성 가능성은?

3일 방송 예정이었던 SBS '그것이 알고싶다' 듀스 출신 가수 고(故) 김성재 편 방영 무산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높다.앞서 1일 김성재 전 여자친구 김모씨가 방송금지가처분신청을 했고, 이를 2일 법원이 인용함으로써, 김성재 사망 사건의 의혹을 다룰 예정이었던 해당 방송은 제작진의 손에만 남게 됐다. 이에 따라 3일 오후 11시 10분 방송 예정이었던 그것이 알고싶다는 초유의 결방 사례를 쓴다.▶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안타깝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고, 법원 판결이 나온 후 곧장 2일에 '고 김성재님의 사망 미스테리를 다룬 그것이 알고싶다 방영하게 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다만 이 국민청원은 최근 바뀐 규정에 따라 사전동의 100명 이상 및 관리자 검토를 거쳐야 정식으로 등록될 수 있다. 검토 과정 중에도 청원에 참여할 수는 있다.(3일 오후 6시 8분 기준 2만7천724명 참여)또,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인 배정훈 PD는 3일 낮 자신의 SNS에 "이번 방송 절대 포기 안한다"며 해당 국민청원 사전동의 링크를 올리기도 했다.사실 이 같은 시사교양프로그램에 대한 방송금지가처분신청은 꾸준히 있어 왔다. 그런데 대부분 법원이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기각했다. 이번은 명예훼손 등 인격권 침해 방지를 위해 신청을 인용한 '희소한' 경우이다.▶향후 이 같은 일을 방지하려면 시사교양프로그램 스스로도 나름의 '묘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법원의 판단이 어디로 향할 지 알 수 없고, 최근 흐름을 본다면 국민의 알 권리보다 개인의 인권을 좀 더 중시하는 판결도 종종 보여서다.예고편을 아예 내보내지 않는 게 한 방법일 수 있다. 이번과 같은 경우 지난 7월 27일 그것이 알고싶다 고유정 편 방송 종료 직후 김성재 편에 관한 예고편이 나왔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늘 이렇게 다음 주 방송 예고편을 프로그램 말미에 내보내고 있다. 이어 김성재 전 여자친구 김모씨 측은 예고편이 나간 지 4~5일 정도만에 방송금지가처분신청을 했던 것.물론 방송금지가처분신청은 국민 누구나 할 수 있는 법적 권리임은 틀림 없다. 그럼에도 제작진 입장에서는 공들여 만든 방송을 안정적으로 내보내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예고편 없이 매주 방송을 이어나가는 방법도 취해볼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매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국내 가장 인기 있는 시사교양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즉, 예고편 없이도 안정적으로 방송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예고편의 홍보 효과는 포기해야 하지만, 시사교양프로그램이기에 떠안을 수밖에 없는 방송금지가처분신청 '리스크'는 다소나마 예방할 수 있는 것.▶국민의 알 권리 충족 및 시사교양프로그램이 맡고 있는 언론 기능을 감안하면, 언론의 자유 측면에서 방송과 신문이 현실적으로는 차별 아닌 차별을 받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신문의 경우 독립된 편집권을 기반으로 독자에게 전할 기사를 선택하고, 기사가 나간 후 관계자들의 이의 제기가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때부터 신문사가 책임을 지고 대응하는 데, 이는 편집권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이와 관련, 출판금지가처분신청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사실상 이미 출판된 책 등에 대해 더 이상의 판매 및 추가 출판을 막는 것은 가능하나, 매일 어떤 내용이 실릴 지 알 수 없고 그것을 외부에서 들여다 봐서도 안 되는 신문에 대해 '사전에' 제기되기는 힘들다. 가령 취재원이 자신을 취재했다는 이유로 자신과 관련된 보도가 나올 것에 대해 신청을 제기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쉽지 않다는 얘기이고, 이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맥락과 연결된다.그런데 그것이 알고싶다 같은 방송 프로그램의 경우 다음 주 나갈 방송분에 대해 방송금지가처분신청이 제기되는 것은 일종의 사전 검열 맥락에 있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제작진이 어떤 내용을 방영할 지 선택, 실제 방영 후 관계자들의 이의 제기가 있다면 당연히 책임을 지고 대응하면 되는 것인데, 이런 게 쉬이 이뤄질 수 없다는 얘기다.▶외국은 어떨까?표현의 자유만큼 그에 대한 책임도 중요시하는 미국은 명예훼손을 이유로 표현의 전파를 사전에 금지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군사기밀에 대한 큰 피해가 예상되는 표현, 국가 등 공동체의 치안을 방해하는 표현, 음란 표현 등에 대해서만 금지 명령이 허용된다.다만, '사후'에 명예훼손 등의 판결이 나온 경우, 이를 무시하고 추가로 출판·방송 등을 고집하는 경우에만 법원이 금지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이번 그것이 알고싶다 김성재 편의 경우 '사전'에 금지된 것이고, 만일 미국에서였다면 있을 수 없는 사례라는 해석이다.▶그것이 알고싶다 김성재 편은 추후 방송될 수 있을까?앞서 방송금지가처분신청 인용 판결이 나온 직후 제작진은 "범인을 쫓기보다는 사인이 무엇인가에 집중해서 취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가령 그간 취재한 내용을 김성재나 전 여자친구 김모씨 등은 주로 언급하지 않은 채로, 여러 미제사건을 다루는 꼭지의 주변 사례로 담는 식의 '재편집'을 거쳐 대중에 공개할 수도 있다. 방송금지가처분신청 인용 판결이 이미 나온 만큼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또한 앞서 그것이 알고싶다 고유정 편이 뉴스를 제작하는 SBS 보도국과 '검거 당시 영상' 등 콘텐츠를 공유했듯이(7월 27일 오후 11시 10분 그것이 알고싶다 고유정 편 방송 2시간 전 SBS 8 뉴스에서 먼저 고유정 검거 당시 영상 보도) SBS 내부의 다른 자원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이는 SBS 말고도 MBC 보도국과 'PD수첩', KBS 보도국과 '추적 60분' 등 다른 방송사들이 뉴스 속에 시사교양프로그램 예고편 격 보도 꼭지를 배치하는 형식으로 꾸준히 쓰고 있는 방법이다.이 밖에도 어떤 방법을 쓸 수 있을 지, 방송 내용을 궁금해 하는 그것이 알고싶다 시청자들의 관심이 쏠린다. 아울러 이번 방송금지 사태를 계기로 오히려 해당 방송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만큼, 향후 방송이 이뤄질 경우 '비 온 뒤에 땅 굳는' 격으로 더욱 큰 관심을 얻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019-08-03 18:46:51

대구고 상징. 매일신문DB

[계산동기획] 대통령배 통산 3회 제패 '대구고' "매일신문 대붕기 최다 우승 기록 눈길"

대구 야구가 1일 빛났다.이날 롯데 자이언츠에 4대9로 지고 리그 7위를 기록 중인 삼성 라이온즈 얘기가 아니다.이날 충북 청주야구장에서 열린 제53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대구고가 서울 충암고를 9대2로 꺾고 우승한 것.대구고는 지난해 52회 대회에서도 경기고를 10대2로 제압하고 우승한 바 있다.아울러 2003년 37회 대회 때 처음으로 우승한 후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대통령배 대회 통산 3회 우승 기록을 쓴 것이다.◆'경북고' 초반 휩쓴 대통령배, 이젠 '대구고'가 평정일단 최근 2회 연속 우승 기록 자체가 대구 고교야구의 저력을 전국에 다시 알린 셈이다. 이는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초반기에 경북고가 대구 고교야구를 전국 최고로 평가 받게 만든 것과 닮았다.(대구 사람들 말고는 잘 모를 수 있는 사실인데, 경북고는 경상북도가 아니라 대구(수성구 황금동)에 있다.)경북고는 대통령배 1회(1967) 및 2회 대회에서 연속 우승한 것을 시작으로, 4·5·6회 3차례 연속 및 8회(1974년) 대회까지 제패하며 당시 전국 고교야구계를 평정한 바 있다. 다만 경북고는 이후 단 한 차례도 우승하지 못했다.이후 27회(1993년) 대구상고(현 대구상원고)가 대통령배 대회에서 우승한 게 대구 소재 고교의 대통령배 제패 기록이다.※그보다 앞서 대구상고는 7회(1973) 대회에서도 경북고를 이기고 우승한 바 있다. 즉, 대통령배 대회 1회부터 8회까지는 3회 대회 때 서울 선린상고가 우승한 것을 제외하면, 7차례 '대구 고교야구'가 정상에 오르며 대한민국 고교야구를 대표했다. 경북고가 우승한 8회 대회 대구상고의 준우승 기록도 있다. 즉, 7·8회 대회 결승전은 대구 고교야구 잔치였다.대통령배 대회에서의 대구 고교야구의 침체라면 침체였던 이런 흐름을 21세기 들어 깨 나간 게 바로 대구고이다. 2003년 대통령배 대회 우승, 다소의 침체기, 2010년 봉황대기 대회 우승, 이후 다시 다소의 정체기를 보내고, 2018년 시쳇말로 '포텐'(잠재력(포텐셜)을 가리키는 신조어)을 터뜨리며 엄청난 성과를 냈다.그 해 대구고는 황금사자기 대회 준우승, 대통령배 대회 우승, 봉황대기 대회 우승 등 우승 2회 및 준우승 1회를 달성하며 1960년 창단 이후 최고의 성과를 냈다.이어 올해도 대통령대 대회를 제패, 그동안 우승과 공백기를 거듭하며 아쉬움을 만든 흐름에서 벗어나 당분간 대구 고교야구를 대표하는 강팀의 면모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대붕기 8회 최다 우승 저력, 다시 발휘할까?그러면서 대구고가 '훨훨' 날았던 대붕기 고교야구대회 기록도 '소환'되고 있다.매일신문 주최로 1979년부터 2010년(32회)까지 매년 열리다 폐지된 이 대회에서 통산 8회이자 최다 우승을 기록한 고교야구팀이 바로 대구고여서다. 과거 대붕기에서처럼 앞으로 대통령배 등 현존 여러 고교야구 대회에서 선전할 지에 기대가 쏠린다.대구고는 모두 32개 대붕기 우승컵의 1/4을 쓸어갔다. 3회(1981) 대회 때 첫 우승을 기록했다. 1983·1984·1985년 열린 5~7회 대회에서는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어 1987년(9회), 1997년(19회), 2003년(25회), 2006년(28회) 등 꾸준히 우승을 달성한 바 있다.대구고가 만일 내년 대통령배 대회에서도 우승한다면, 2개 고교야구 대회(대통령배, 대붕기) 3회 연속 우승이라는 진기록도 쓰게 된다.

2019-08-01 22:26:29

김성재 사망사건 당시 살해혐의로 긴급구속됐던 김성재 여자친구. 온라인 커뮤니티

[계산동기획] 김성재 살해 혐의 여자친구 긴급구속 당시 '초동수사 소홀' 보도 분석

3일 방송될 예정인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대해 이틀 전인 1일 방송금지가처분신청이 나와 화제다.▶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1995년 11월 20일 사망한 가수 듀스 출신 고(故) 김성재의 죽음 원인을 다룰 예정인데, 앞서 김성재 살해 혐의로 사형을 구형 받아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으나 이후 최종 무죄 선고를 받은 바 있는, 당시 김성재 여자친구 김모씨 측 변호사가 이날 법원에 해당 방송을 내보내지 말아줄 것을 요구하는 신청을 한 것이다. 채권자(여자친구 김모씨)의 명예 등 인격권 침해가 신청 사유이다.가처분신청 결과는 내일인 2일 오후에 나올 예정이다.다만 이날 방송금지가처분신청이 화제가 되면서, 특히 살해 혐의를 받았지만 무죄 선고를 받은 바 있는 당시 여자친구 측이 '무죄를 선고받았음에도 왜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지더라도 해당 사건 및 관련 인물들은 화제가 될 전망이다.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가처분신청 자체가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의 시청률을 높이는 등 관심을 더욱 모으는, 방송 예고편보다 더 효과적인 홍보 수단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그러면서 김성재 사망 사건 관련 과거 기사들도 다시 읽히고 있다.단순히 사건 개요 내지는 수사 및 재판 과정 정도만 알린 기사가 대부분이지만, 좀 더 파고든 기사도 있어 눈길을 끈다.그 가운데 한겨레 1995년 12월 9일 자에 실린 ''김성재씨 살해혐의 여자친구 긴급구속 안팎 초동수사 소홀 물증확보 '구멍'' 기사를 소개한다.전문은 다음과 같다.▶'경찰이 8일 인기 댄스그룹 '듀스' 멤버였던 김성재(22) 씨를 살해한 혐의로 김씨의 애인 ㄱ(25·사진)씨를 긴급구속한 것은 여러 정황 증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그러나 ㄱ씨가 범행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데다 경찰도 정황 증거 이외에 확실한 물증을 아직 확보하지 못한 상태이다.경찰은 "ㄱ씨는 김성재 씨가 자신을 멀리하는 것에 앙심을 품고 지난 11월 초 ㅂ동물병원에서 "애완견을 폐사시키겠다"며 동물용 마취제를 구입했다"면서 "ㄱ씨는 사건 뒤인 지난 1일 이 동물병원 원장을 찾아가 "내가 약품을 사지 않았다고 진술해달라"고 부탁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경찰은 "ㄱ씨가 "헤어지자"고 말하는 김성재 씨에게 극단적으로 반항하거나 콘서트 무대에 갑자기 올라가는 등 평소 숨진 김씨에게 강한 집착을 보였다고 김씨 동료들이 진술했다"며 "이것이 살해 동기일 것"이라고 추정했다.당시 호텔 방에는 김씨와 ㄱ씨, 운전사와 댄스팀 등 모두 9명이 있었으나, 운전사 등 나머지 사람들은 새벽 1시께 자신들의 방으로 들어가 잠든 상태였다고 경찰은 밝혔다.그러나 단지 애인에 대한 집착을 살해 동기로 보는 것은 어딘가 석연치 않다. 경찰은 ㄱ씨를 상대로 이 부분을 집중 추궁하고 있지만, ㄱ씨는 범행 자체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ㄱ씨는 약물 구입 이유에 대해 "치과의사 국가고시에 떨어진 뒤 자살하려고 샀다가 다음 날 바로 버렸다"고 말했다. ㄱ씨는 또 "성재 씨와 아주 사랑하는 사이였고, 그가 헤어지자는 말을 한 적도 없다"며 "사건 당시 김씨가 잠든 것을 보고 곧바로 호텔을 나왔다"고 주장했다.경찰의 초동수사 소홀도 물증 확보를 어렵게 하고 있다.경찰은 사건 직후 김씨의 사망원인을 심장마비로 추정하고 함께 투숙했던 미국인 무용수 2명이 사건 다음 날인 11월 21일 출국하도록 방치했다.경찰은 지난 5일 '약물중독사'라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결과를 통보받은 뒤부터 호텔 복도에 설치된 폐쇄회로 필름을 찾는 등 부랴부랴 수사에 나섰으나 이미 폐쇄회로 필름은 지워진 상태였다.숨진 김씨의 사체에서 시반(시체에 나타나는 외부압력 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점도 의문이다. 경찰 주장대로 ㄱ씨가 김씨의 손목을 잡고 주사를 놓았다면 사체 손목 부분에 시반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게 법의학자들의 대체적 의견이다.'▶이 기사에 따르면 우선 ㄱ씨(김성재 전 여자친구 김씨)가 동물용 마취제(졸레틸)를 구입한 사실에 대해 사지 않았다고 진술해 줄 것을 동물병원 원장에게 요구했다는 부분에서 의구심이 향한다. 또한 ㄱ씨가 졸레틸 구입 관련 애완견 폐사를 목적으로 댄 점과 다시 치과의사 국가고시 불합격에 따른 극단적 선택이 이유라며 번복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호텔 복도 폐쇄회로, 즉 CCTV 영상이 사건 발생 며칠 뒤 지워졌다는 내용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이다. 당시 사건은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스위스 그랜드 호텔' 별관 객실에서 벌어졌다. 이곳은 현재 '그랜드 힐튼 서울'로 상호가 변경됐다.반면 김성재의 사체에서 시반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은 ㄱ씨가 범인이 아니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줬을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다.경찰이 김성재, ㄱ씨와 함께 투숙한 미숙인 무용수들 등 주변인들의 신병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점, CCTV 영상을 비롯한 여러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점을 두고는 경찰 수사 자체가 미흡했는지, 아니면 어떤 외압이 있었던 것인지 등에 대한 '조금 과할 수 있는' 의혹을 이 사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 만들어내고 있다는 분석이다.다만, 해당 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됐던 ㄱ씨는 최종 대법원의 무죄 판결을 받은 상태이다. 따라서 이 사건 관련 의혹은 개인들이 관심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는 있겠으나, ㄱ씨에 대한 직접적인 문제 제기 등으로 이어지는 것은, 앞서 방송금지가처분신청에서도 사유로 들었던 인격권 침해 등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2019-08-01 19:44:55

올해 전국 최장 열대야를 겪고 있는 포항시의 번화가인 북구 중앙상가 실개천거리 '영일만친구 야시장'. 연합뉴스

[계산동기획] 포항 열대야 연속 11일 "역대 최고 기록은?"

경북 포항이 어제인 7월 31일 기준 열대야 11일 연속 기록을 썼다.오늘인 8월 1일도 열대야가 지속돼 12일 연속 기록 작성이 눈 앞에 있다.▶포항은 이 기록을 지난 7월 21일부터 같은 동해안 도시 강원 강릉과 함께 써 나가고 있다. 동해안 다수 지역이 현재 전국에서 가장 심각한 '찜통더위'를 겪고 있어서다.기상청에 따르면 고기압의 영향으로 온난다습한 공기가 유입돼 포항 등 동해안 일부 지역에 낮의 폭염(최고기온 33도 이상)이 밤에 좀처럼 식지 않는 열대야(당일 오후 6시 이후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최저기온이 25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것) 현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특히나 7월 중순까지는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유입돼 오히려 선선했던 포항 등 동해안 지역은 반전 폭염에 힘겨워하고 있다.그러나 당분간은 이런 무더위가 계속될 것으로 보여 포항의 열대야 일수 기록 역시 끊김 없이 작성될 가능성이 높다.▶과거 열대야 일수 연속 기록은 어땠을까? 아직 포항은 '쨉'이 안 된다. 열대야 관측 이래 열대야 일수 연속 최고기록은 2013년에 작성됐다.바로 제주도 서귀포시가 1위 기록을 썼다. 2013년 7월 7일~8월 24일 총 49일 동안 열대야가 이어졌다. 그야말로 여름 한철이 통째로 열대야로 점철됐던 것.2위 기록도 제주도에서 써 졌다. 2016년 제주시에서 7월 18일~8월 25일, 39일 간 열대야가 이어졌다.3위도 제주시이다. 2012년 7월 21일~8월 22일, 33일 간.4위 기록은 경남 마산시(현재 창원시)와 전남 여수시가 함께 갖고 있다. 마산은 1994년 7월 19일~8월 16일, 여수는 2018년 7월 18일~8월 15일, 각 29일 간.이어 6위는 제주시로 2010년 28일 간의 열대야 일수 연속 기록을 썼다.다음 7, 8, 공동 9위(2건) 등 4건이 모두 서귀포시 소유이다. 2004년 27일 간, 1996년 26일 간, 2006년 및 2017년 각 25일 간.11위는 제주도 서부지역을 가리키는 '고산'과 서귀포시. 1995년 22일 간.'대프리카'로 유명한 대구는 12위에서야 등장한다. 2001년 21일 간 열대야가 이어졌다.이어 공동 13위는 마산시(1990년)와 제주시(1998년)이다.여기까지가 열대야 일수 연속 49일부터 20일까지의 기록이다.〈열대야 연속 일수 - 지역 및 연도〉49일 - 서귀포 201339일 - 제주 201633일 - 제주 201229일 - 마산 1994 / 여수 2018 28일 - 제주 201027일 - 서귀포 200426일 - 서귀포 199625일 - 서귀포 2006 / 201722일 - 제주도 고산·서귀포 199521일 - 대구 200120일 - 마산 1990 / 제주 1998▶종합해 보면, 제주도가 열대야의 본고장이다.20일 이상 열대야가 이어진 14건 기록 가운데 서귀포가 1위 기록을 포함해 가장 많은 5건(1995년 제주도 고산 기록 포함)을 차지하고 있다. 이어 제주가 2, 3위를 포함해 4건.제주도는 여름철 기온이 내륙과 비교해 크게 오르진 않지만 이게 잘 식지도 않는다. 낮 최고기온과 최저기온의 차이가 내륙에 비해 적다. 그러면서 열대야의 기준인 최저기온이 높게 형성된다.▶그런데 올해는 좀 다른 양상이다. 동해안의 포항과 강릉이 낮에 달아오른 열기가 좀체 식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올해 열대야 일수 연속 최고 기록을 하루하루 업데이트해나가고 있는 것.다만 이 '고통스러운' 기록 작성을 막아줄 지 모를 기상 예보가 있어 주목된다.기상청은 이틀 뒤인 8월 3일 동해안에 동풍이 유입돼 이 지역 기온 상승이 주춤할 것으로 예보했다. 이에 포항의 최저기온이 열대야 기준인 25도 밑으로 내려가 열대야 연속 기록을 끊게 될 지에 관심이 향한다.아울러 폭염이 이어지는 중 일정 수준 이상의 단비가 내릴 경우에도 열대야 일수 연속 최고기록 작성에서 탈피할 수 있다. 대기가 불안정해 소나기에 천둥, 번개가 예상된다는 소식이 곧잘 나오는 서울, 경기도, 충청도 등 중부지역이 부러운 상황이다.

2019-08-01 18:30:23

포항이 대구보다 더 덥다. 최근 포항을 비롯해 강릉과 영덕 등 동해안 다수 지역이 전국에서 가장 강한 폭염을 겪고 있다. 파란 동그라미 안 지역이 포항. 기상청 7월 31일 폭염 영향 예보

[계산동기획] '대프리카' 아니라 '포프리카'? "포항이 대구보다 더 덥다"

장마가 가고 7월 말부터 본격적인 여름 무더위가 시작된 가운데, 대구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무더운 날씨에 힘들어하는 곳이 있다. 바로 경북 포항이다.대구경북은 7월 초순 내지는 중순까지는 동해안에 위치한 오호츠크해 기단 고기압의 차갑고 습한 동풍, 늦은 장마에 따른 비 등이 기온을 내리면서 예년보다 선선한 여름 날씨를 보인 바 있다.이어 장마 후반기쯤부터는 슬슬 기온이 오르기 시작했는데, 매년 여름이면 전국 최고 기온 기록을 써 '대프리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대구보다 포항이 더 무더워 눈길을 끈다.7월 하순이라고 할 수 있는 7월 20~31일 기준 대구와 포항의 낮 최고 및 최저기온을 비교해보자.우선 낮 최고기온.7월 20일 / 대구 25.8도, 포항 26.4도7월 21일 / 대구 29.3도, 포항 30.6도7월 22일 / 대구 33.7도, 포항 33.8도7월 23일 / 대구 35도, 포항 35.1도7월 24일 / 대구 31.5도, 포항 33도7월 25일 / 대구 30도, 포항 31.1도7월 26일 / 대구 32.8도, 포항 33.4도7월 27일 / 대구 30.3도, 포항 33도7월 28일 / 대구 33.4도, 포항 34.6도7월 29일 / 대구 34.6도, 포항 35.1도7월 30일 / 대구 36도, 포항 35.7도7월 31일 / 대구 36도, 포항 36.5도이어 낮 최저기온.7월 20일 / 대구 23.5도, 포항 24도7월 21일 / 대구 21.3도, 포항 25.2도7월 22일 / 대구 23도, 포항 25도7월 23일 / 대구 25.5도, 포항 27.2도7월 24일 / 대구 25.3도, 포항 26.9도7월 25일 / 대구 25.3도, 포항 26.9도7월 26일 / 대구 26.4도, 포항 27.2도7월 27일 / 대구 26.3도, 포항 27.4도7월 28일 / 대구 26.8도, 포항 27.9도7월 29일 / 대구 24.5도, 포항 27.1도7월 30일 / 대구 24.9도, 포항 26.9도7월 31일 / 대구 26.2도, 포항 28.3도대구는 낮 최고기온은 12전 1승(굵은 글씨 부분) 11패, 낮 최저기온은 아예 12전 전패로 대프리카 명패를 내리고 포항에 '포프리카'라는 수식을 만들어줘야 할 판이다.너무 더운데 이게 잘 식지는 않다보니 포항은 눈 여겨 볼만한 기록을 더 쓰고 있다.포항에는 지난 7월 21일부터 연속으로 열대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강원 강릉과 함께 올해 전국에서 가장 긴 열대야일수 기록이다. (열대야일수: 당일 오후 6시 이후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밤새 최저기온이 25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날의 일수)또한 포항은 바로 북쪽 경북 영덕과 함께 지난 7월 26일부터 올해 전국 최장 폭염일수 기록도 쓰고 있다. (폭염일수: 일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날의 일수)그런데 앞서 언급된 포항, 강릉, 영덕 모두 동해안 지역이다. 동해안의 이런 무더위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러면 온열질환, 농·축·수산업 피해 등이 점차 번질 수 있어 더는 대프리카니 포프리카니 하며 다소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게 된다.특히 해수욕장 등 피서지가 많아 여름 한철 장사가 지역 경제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동해안 지역은 7월 초중반 저온 현상에 늦은 장마가 와서, 본격적인 피서철인 7월 말부터는 다른 지역보다 더 심각한 '찜통더위'가 이어지고 있어서, 자칫 피서객 방문이 예년만 못할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2019-07-31 21:46:10

지난해 7월 중순~하순 서울에 엄습한 '불지옥 더위'를 기억하십니까? 기상청

[계산동기획] 서울 2019년 여름 날씨, 2018년보단 '시원'? 폭염·열대야 일수 살펴보니

7월 29일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다.기상청에 따르면 28일 장마전선이 북한 지역으로 북상, 사실상 장마가 종료됐다. 이어 29일부터 맑은 날씨를 보이는 가운데 기온 역시 크게 오른 것.기상청에 따르면 29일 서울은 낮 최고기온 30도를 기록했다. 이어 점점 더워진다. 다음 주 초반 서울은 34도까지 치솟을 전망이다.그런데 이는 예년과 비교하면 '양호한' 수준이다.우선 지난해 7월 29일 서울 낮 최고기온은 36.9도였다. 이틀 뒤 기온이 더 치솟았다. 지난해 7월 31일 서울 낮 최고기온은 38.3도를 기록, 그 해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지난해 7월과 올해 7월을 통째로 비교해도 수준이 다르다. 지난해 서울은 7월 13일 30.9도를 시작으로 7월 중순부터 하순까지 곧잘 30도 중후반대의 낮 최고기온을 보였다.올해 서울은 7월 낮 최고기온이 6일 기록한 36.1도이다. 또한 올해 7월 29일까지 모두 29일동안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넘긴 날이 15일이다. 지난해 7월 같은 기간 낮 최고기온 30도를 넘긴 날은 19일인데, 단지 4일 더 많기만 한 게 아니라 30도 중후반대까지 기온이 치솟아 질적으로 달랐다.실생활에서 좀 더 체감도가 높은 폭염일수(일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날의 일수)와 열대야일수(당일 오후 6시 1분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밤새 최저기온이 25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날의 일수)를 비교해도 그렇다.폭염일수를 살펴보면, 서울은 지난해 6~8월 총 35일을 기록했는데 7월에 16일을 보였다. 그런데 올해 7월(7월 29일 기준)에는 같은 기간의 1/4에 불과한 4일을 기록했다.열대야일수도 살펴보면, 서울은 지난해 6~8월 총 29일을 기록했는데, 7월에 12일을 보였다. 그런데 올해 7월(7월 29일 기준) 동안 절반이 채 안 되는 5일에 그쳤다.원인은 무엇일까?우선 올해는 장마가 늦었다. 7월 전체에 걸쳐 한반도에 영향을 끼치며 더위를 식혀줬다. 열흘 정도 앞서 장마가 종료된데다, '마른장마'였던 지난해 7월과 비교하면 기온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또한 한반도 무더위의 주범인 티베트 고기압이 올해는 기세가 약하다. 지난해의 경우 티베트 일대에서 데워진 공기가 한반도로 와 기온을 높였다. 그런데 올해는 티베트 일대에 눈이 많이 덮혀 있어 지난해 수준으로 티베트 고기압이 더운 공기를 품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다만 기상청은 폭염일수 자체는 지난해와 올해가 비슷할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본 바 있다. 즉, 늦더위를 염두해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해 서울은 7월 중순부터 8월 초순까지 폭염을 겪었고, 이후 낮 최고기온이 30도 초반대에 머무르거나 아예 30도 밑으로 내려가기도 하는 등 '급속히' 가을로 향했다. 올해는 반대로 7월 말까지는 '견딜만했지만' 이후 무더위다운 무더위가 계속 이어질 수도 있다.

2019-07-29 20:01:09

현대백화점 대구점 야외광장에 설치된 아스팔트 위에 녹은 핸드백과 아이스크림 등 대프리카 조형물. 연합뉴스

[계산동기획] 2019년 대구 여름 날씨, 2018년보다 안 덥다? 폭염·열대야 일수 비교해보니

29일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도시 대구 시민들의 날씨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장마가 가고 이날부터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 돼서다. 여러 언론 보도에 따르면 28일까지 장마였고, 29일부터는 무더위가 시작된다.기상청에 따르면 28일 오후 장마전선이 북한 지역으로 북상, 전국의 장마가 사실상 종료됐다.이에 따라 29일 대구의 낮 최고기온은 34도가 될 것으로 예보됐다. 아울러 다음 달인 8월 초까지 대구의 낮 최고기온은 35~36도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보됐다.그런데 지난해 대구의 여름을 자세히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생각보다 많이 오르지 않네"라고 할만하다.29일(오늘) 대구는 34.6도의 낮 최고기온을 기록했는데, 1년 전인 지난해 7월 29일은 어땠을까? 36.9도였다. 다만 이날은 그나마 견딜만한 수준이었고, 이틀 전인 지난해 7월 27일 대구 낮 최고기온은 39.2도였다. 이는 지난해 통틀어 대구 낮 최고기온 기록이다.하지만 대구는 아직까지는 지난 7월 23일 보인 35도가 올해 들어 낮 최고기온 기록이다.▶사실 2018년 대구는 7월에 낮 최고기온 기록이 나왔을 정도로 6, 7, 8월 가운데 7월이 무더위의 절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2019년 대구는 7월을 늦게 온 장마 덕분에 나름 '괜찮게' 보냈다.다시 지난해와 올해를 비교해보자.낮 최고기온 '30도'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2018년 7월 낮 최고기온 30도를 넘긴 날은 24일.2019년 7월 29일 기준으로 7월 중 낮 최고기온 30도를 넘긴 날은 12일.2배 수준이다. 아울러 지난해 7월은 40도에 육박하는 기온을 보인 날이 많았던 것을 감안하면, 더위의 수준은 2배를 훨씬 넘겼다고 볼 수 있다.(아래 표 참고)▶낮 최고기온 기록보다 더 체감 되는 통계 자료가 있다. 바로 '폭염일수'와 '열대야일수'이다. (6~8월 기준)폭염일수는 '일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날'의 일수를 가리킨다.열대야일수는 '당일 오후 6시 1분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밤새 최저기온이 25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날'의 일수를 가리킨다.역시 지난해가 역대급이었다. 2018년 대구경북의 폭염일수가 30.9일, 열대야일수는 13.2일로 해당 기상 정보 관측 이래 역대 2위를 기록했다.역대 1위 기록은 1994년에 나왔다. 대구경북 폭염일수가 31.6일, 열대야일수가 14.2일. 물론 2018년과 비교해 각 하루정도씩 차이에 불과하긴 하다.1994년과 2018년은 우리나라 주변 대기 환경에 공통점이 있었다.한반도 주변 대기 상층에 티베트 고기압이, 대기 중·하층에 북태평양고기압이 강하게 발달한 것이다. 두 고기압 때문에 덥고 습한 공기가 유입됐다. 여기에 강한 일사까지 겹쳤던 것.올해는 어떨까? 지난해와 올해 폭염일수 및 열대야일수를 살펴보자.2018년 6~8월 폭염일수와 2019년 현재(7월 29일)까지의 폭염일수를 비교해보면, 올해 대구 더위가 지난해 및 예전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2018년 대구경북은 6월 3.2일 / 7월 18일 / 8월 12.1일 이었다.2019년 대구경북은 6월 1.9일 / 7월 3.1일을 기록 중이다.(아래 표 참고)열대야일수를 비교해 봐도 비슷하다.2018년 대구경북은 7월 8.2일 / 8월 6.7일 이었다.2019년 대구경북은 7월 3.4일을 기록 중이다.(아래 표 참고)▶물론 7월 말부터 8월을 거쳐 9월까지 '늦더위'가 맹위를 떨칠 수도 있다.지난 5월 기상청은 올해 여름은 지난해처럼 '불지옥 더위'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지난해와 올해의 티베트 고기압 형성 양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해의 경우 티베트 일대에서 데워진 공기가 와 한반도의 기온을 높였다. 그런데 올해는 티베트 일대에 눈이 많이 덮혀 있어 지난해 수준으로 공기가 데워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다만 폭염일수 자체는 비슷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7월에 기를 펴지 못한 더위가 8월부터 본색을 드러내는, 늦더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지금까지의 분석은 대구는 물론, 우리나라 전체 여름 날씨 전망에도 적용할 수 있다.

2019-07-29 17:31:55

왼쪽부터 김수남, 김진태, 채동욱, 한상대, 김준규, 임채진, 정상명, 송광수, 김각영, 이명재, 신승남. 매일신문DB

[계산동기획] 윤석열 IN 문무일 OUT…역대 검찰총장 퇴임 후 뭐하나? "김수남 빼고 현역 변호사"

▶문무일 검찰총장이 24일 퇴임한다.그는 2017년 7월부터 42대 검찰총장을 역임, 문재인 정부의 첫 검찰총장 기록을 썼다. 검찰총장 임기 2년을 무사히 채우고 윤석열 현 서울중앙지검 검사장에게 43대 검찰총장 자리를 넘긴다.문무일의 올해 나이는 59세이다. 1961년 광주 태생. 광주제일고,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했다.사법시험 28회(1986년) 합격 및 사법연수원 18기(1987년) 출신이다. 1992년 대구지검 검사로 첫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1부 부장검사, 광주고검 차장검사, 서울서부지검·대전지검·부산고검 검사장을 거쳐 42대 검찰총장으로 재임했다. 신정아 게이트 수사(2007년),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장 역임(2015년) 등의 이력도 눈에 띈다.한편, 퇴임 후 그의 계획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그러면서 역대 검찰총장들의 퇴임 후 행보에 관심이 향한다. 한마디로, 변호사로 활동하거나, 그렇지 않거나로 나눌 수 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며 얻은 변호사 자격증을 노후를 위해 쓰느냐 장롱 속에 묵혀 두느냐이다.그런데 21세기 들어 검찰총장에 임명된 30대 검찰총장(신승남)부터 문무일 직전 41대 검찰총장(김수남)까지 사례를 살펴봤더니, 대부분 변호사로 활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11명 가운데 김수남 빼고 10명이 현역 변호사이다.이는 개인 법률사무소 변호사로 활동하느냐, 큰 법무법인(로펌)이나 법률사무소에 소속돼 있느냐로 다시 나뉜다. 좀 더 세분화 한다면, 그냥 변호사냐 고문변호사냐도 분류 요소. 직전 41대 검찰총장 출신 김수남은 퇴임 후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고 알려진 게 여러 언론에서 언급한 최신 근황 소식이다. 후배 검사의 공문서위조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직무유기 혐의로 지난 5월 입건된 바 있다. 유일하게 퇴임 후 '아직까지는' 변호사로 활동하지 않고 있는 사례이다.물론 이는 대한변호사협회가 고위 법조계 출신 인사들의 변호사 등록을 자체적으로 2년간 제한하는 데 따라 아직 변호사 개업을 할 시기가 안 된 것이기도 하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여러 언론 보도에서는 김수남이 미국으로 떠난 게 '도피성'이라는 해석을 했고, 김수남이 퇴임한 날짜는 2017년 5월 12일이라 이미 2년이 지났다. 따라서 변호사 개업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고 있다는 풀이도 가능한 상황이다.40대 검찰총장 출신 김진태는 올해 2월 법무법인 세종에 고문변호사로 영입된 바 있다.39대 검찰총장 출신 채동욱은 법무법인 서평 변호사로 있다. 화가 활동이 종종 언론에서 언급됐다.38대 검찰총장 출신 한상대는 퇴임 후 자신의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했고, 고려대 로스쿨 초빙교수도 맡은 바 있다.37대 검찰총장 출신 김준규는 법무법인 화우의 파트너 변호사로 있다.36대 검찰총장 출신 임채진은 자신의 이름을 건 법률사무소의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35대 검찰총장 출신 정상명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법률사무소 변호사.34대 검찰총장 출신 송광수는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법률사무소인 김앤장(김&장)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이다.33대 검찰총장 출신 김각영도 자신의 법률사무소 변호사.31대 검찰총장 출신 이명재는 역시 유명한 법무법인인 법무법인 태평양의 고문변호사로 있다.▶30대 검찰총장 출신 신승남도 퇴임 후 자신의 이름을 건 법률사무소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돼 사퇴한 이력이 눈길을 끄는데, 이후 좀 더 시선을 집중시킨 이력이 있다.신승남이 운영에 참여하는 한 골프장 여직원이 신승남이 직원 기숙사에 들어와 자신을 성추행 했다며 2014년 11월 고소한 사건이다.그런데 이에 대해 신승남이 여직원을 무고 혐의로 고소했던 것. 재판에 넘겨진 여직원은 그러나 1심은 물론 지난해 12월 2심(항소심)에서도 무고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그런데 해당 사건은 현재 종결돼 있다. 당시 사건 수사를 맡은 의정부지검 형사4부가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던 것.검찰에 따르면 신승남이 직원 기숙사를 방문한 때는 2013년 5월 22일이었다. 그런데 2014년 6월 19일 성범죄 피해자 친고죄 규정이 폐지됐다. 그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라면 친고죄 조항에 따라 1년 안에 고소하도록 돼 있었는데, 여직원이 신승남을 고소한 것은 사건 발생일로부터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결국 친고죄 규정 폐지가 소급 적용되지 못해 사건이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된 이듬해, 신승남은 여직원과 그 아버지를 무고죄로 고소했다.이에 따라 해당 사건에 대해서는 '신승남 전 검찰총장 골프장 여직원 성추행 의혹'이라는 수식만 붙일 수 있는 상황이다.

2019-07-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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