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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의 희열' 현장사진.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씨름·농구…스포츠 예능의 화려한 변신

최근 씨름, 축구, 농구 같은 스포츠를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 때 '스포츠 예능은 망한다'는 속설이 있을 만큼 기피되기도 했던 스포츠 예능. 도대체 뭐가 달라진 걸까.◆명절스포츠 씨름의 변신…'씨름의 희열'씨름은 명절스포츠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만큼 씨름이라는 종목이 그간 대중들의 시선에서 멀어졌고, 그나마 민속스포츠라는 점 때문에 명절에 하는 경기가 방송에 나오곤 했기 때문이다. 물론 씨름도 화려한 시절이 있었다. 만 가지 기술을 가졌다는 이만기 같은 스타가 있었고, 인간 기중기 이봉걸,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 모래판의 야생마 강호동같은 캐릭터가 확실한 선수진들이 있었던 시절 이야기다. 그 때는 씨름방송도 펄펄 날았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무려 6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으니까.그랬던 씨름이 명절에나 가끔 방송되는 스포츠가 된 건 이만기, 강호동 같은 스타들이 모래판을 떠나면서 그 뒤를 잇는 차세대 스타들이 발굴되지 않았던 면도 있지만, 시대가 바뀌고 있는데 늘 똑같은 씨름 중계방송의 구태의연함 때문이기도 했다. '천하장사 만만세'로 트레이드 마크된 씨름 중계방송은 너무 민속의 분위기를 유지하느라 세련되지 못한 스포츠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렇게 씨름은 점점 대중들의 시선에서 멀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씨름에 대한 관심은 의외의 지점에서 생겨났다. SNS와 달라진 팬덤이 그것이다. 씨름 선수들을 마치 아이돌처럼 바라보고 좋아하는 팬덤들이 SNS를 통해 생겨났던 것.KBS '씨름의 희열'은 바로 이 지점에 착안해 기획되었다. 과거 이만기 시절의 씨름 스타들이 주로 중량급에 있었다면 지금의 팬덤은 잘생긴 외모에 조각 몸매를 가진 경량급에서 생겨났다는 점을 감안해 태백장사, 금강장사 각각 8명씩을 선출해 모래판 위에 세웠다. 체중 차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비슷하게 맞춘 후 서로 대결을 벌여 최종 승자를 뽑는 것. 이 모래판을 비추는 연출 방식도 오디션 방식을 취했다. 출연자가 그냥 나와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스토리를 엮어주고 불렀을 때 더 효과가 있는 것처럼, 씨름 선수들도 캐릭터와 스토리가 더해졌다.경량급 경기의 특징인 순식간에 끝나는 경기를 포착하기 위해 많은 카메라가 설치되었다. 이러자 씨름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젊은 세대들은 "씨름이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어?"하고 반색했다. 선수들은 저마다의 팬덤이 더 공고해졌다. 금강 트로이카 이승호, 모래판의 헤라클래스 윤필재, 열정 독기를 보여주는 최정만, 씨름 천재 임태혁 등. 캐릭터가 살아나니 경기도 더 쫀쫀해졌다. 방송이 지금의 세련됨을 더해주면서 씨름이라는 종목의 이미지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것. 더 이상 명절스포츠라는 말이 필요 없게 만든 씨름의 대변신이었다.◆'슬램덩크' 시절을 꿈꾸는 '핸섬 타이거즈'"손은 거들 뿐." '슬램덩크'라는 만화가 큰 화제가 됐을 때 거의 유행어처럼 돌던 그 말이 최근 SBS '진짜 농구, 핸섬타이거즈(이하 핸섬타이거즈)'에 등장했다. 감독으로 출연하는 서장훈이 팀원인 차은우에게 슛 동작을 가르쳐주며 그렇게 말했던 것. '핸섬타이거즈'는 그 앞에 굳이 '진짜 농구'라고 이름붙인 것처럼 적당한 예능 스포츠 그 이상을 추구한다. 그것은 이 팀이 향후 대전을 선출을 제외한 전국 1·2위, 대학 1·2위, 직장 1·2위와 벌이겠다고 밝힌 것만 봐도 알 수 있다.보통 이런 스포츠 예능이 처음 시작할 때는 오프닝을 하기 마련이지만, '핸섬타이거즈'는 거두절미하고 곧바로 시합을 보여준다. 어느 체육관에 모인 출연자들은 그래서 관중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에 놀라고 갑자기 서장훈의 모교였던 중등농구 최강자 휘문중학교 선수들과 한 판 대결을 벌인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시작부터 휘문중학교 선수들이 던지는 3점 슛이 계속 들어가며 현저한 실력 차가 드러나지만 의외로 승부근성을 발휘하며 조금씩 따라붙는 그 과정에서 출연자들의 강점이 소개된다.체력과 근성이 좋은 줄리엔 강은 골밑 센터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고, 모델 문수인은 현역 선수를 방불케 하는 골 결정력을 보여준다. 이상윤은 전체 게임의 흐름을 파악하며 전략을 짜고 키 작은 쇼리는 빠르고 재치 있는 패스로 기회를 만든다. 든든한 골밑 슛을 보여주는 김승현과 승부욕과 순발력을 드러내는 차은우 등 핸섬타이거즈 선수들의 캐릭터가 경기 자체를 통해 고스란히 보여지고 동시에 원 포인트로 경기의 흐름을 바꾸고 예측하는 서장훈의 감독으로서의 면모도 소개된다.첫 시범경기를 끝내고 이뤄지는 훈련은 강도 높게 이어진다. 예능 프로그램이 아닌 진짜 경기를 준비하는 팀의 모습 그대로다. '핸섬타이거즈'는 그래서 과거 '슬램덩크' 시절 허재와 서장훈 같은 스타들을 탄생시켰던 그 명장면들을 그려내고 싶어한다. 진짜 농구의 묘미를 스포츠 중계가 아닌 예능 프로그램의 형식으로 담아내겠다는 것이다.◆달라진 시청자의 눈, 스포츠 중계도 변신해야스포츠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항상 뜨거운 소재였다. 특히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스포츠 축제가 열릴 때면 예능 프로그램들도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이벤트적인 스포츠 예능을 빼고 나면 사실 이 소재가 그리 성공적인 적은 그다지 없었다. 야구를 소재로 했던 KBS '천하무적 야구단'도 그랬고 다양한 스포츠에 뛰어들었던 '우리동네 예체능'도 그랬다. 그건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불리는 스포츠 자체가 스포츠 예능보다 훨씬 재밌기 때문이다.물론 이것은 지금이라고 해서 달라지진 않았다. 다만 씨름이나 농구처럼 점점 스포츠 중계방송 자체가 관심을 잃어가는 종목의 경우 그 종목을 재조명해주는 스포츠예능은 충분히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 MBC '무한도전'에서 봅슬레이나 조정 경기 같은 비인기종목을 조명했을 때 대중적 관심을 받았던 것처럼 말이다.나아가 '씨름의 희열'이나 '핸섬타이거즈' 같은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우리네 스포츠 중계방송 자체가 너무 고전적인 틀에 묶여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너무 예능적으로 갈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스포츠를 더 즐길 수 있게 선수들을 캐릭터화해 보여주고 경기도 여러 카메라를 통해 찍혀진 다양한 영상들을 다각도로 보여주고 분석해주는 것으로 더 몰입을 높여줄 수 있지 않을까.프로스포츠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한 접근방식이 요구된다고 여겨진다. 시청자들의 달라진 관전 포인트를 만족시켜주는 스포츠 중계방송이라면 방송으로서도 스포츠로서도 또 시청자들에게도 모두 좋은 일이 될 테니 말이다. 명절이나 특정 스포츠 축제에 잠깐 반짝하는 방송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즐길 수 있는 스포츠 방송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0-01-24 06:30:00

드라마 '스토브리그' 스틸컷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스토브리그', 야구를 몰라도 빠져드는 야구드라마라니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는 프로야구라는 다소 전문적일 수 있는 소재를 가져왔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야구를 몰라도 빠져든다는 반응들이 나온다. 무엇이 이런 반응들을 가능하게 만든 걸까.◆야구를 몰라도 열광하는 야구드라마의 탄생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가 방영된다고 했을 때 시청자들은 반신반의했다. 그 첫 번째는 이 작품이 프로야구 프런트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프로야구라는 소재 자체도 마니아적인 성격을 띠게 마련이다. 적당하게 다뤘다가는 전문가 뺨치는 시청자들에게 질타를 받을 수 있고 그렇다고 너무 전문적으로 다루면 야구를 모르는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지나치게 낯설게 다가갈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야구선수들의 이야기도 아닌 프런트들의 이야기라니 더더욱 난감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더 전문적인 이야기를 풀어내야 하면서도 그 낯설음을 상쇄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내야 하는 미션을 이 드라마는 소재적으로 안고 있었다.그런데 이런 우려는 드라마 첫 회가 방영된 후 금세 깨져버렸다. 첫 회 시청률이 5.5%(닐슨 코리아)로 시청자들이 막연히 느끼는 그 장벽이 나타났다면 4회 만에 11.4%로 치솟은 수치는 이 드라마가 그 장벽을 간단히 무너뜨렸다는 걸 방증한다. 이게 가능했던 건 드림즈라는 만년 꼴찌 프로야구단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이들의 뒤에서 팀을 운영하고 다음 해를 준비하는 프런트들의 일상을 우리가 일반적으로 겪는 회사생활처럼 담아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드라마는 야구 소재를 하고는 있지만 마치 '미생' 같은 오피스물처럼 다가왔다.물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촘촘한 취재가 아니면 좀체 다룰 수 없는 프로야구의 뒷얘기들이 소재였다. 선수 트레이드 문제나 스카우트 비리 문제, 용병 기용 문제는 물론이고 연봉협상까지 마니아들도 공감하고 몰입할만한 전문적인 소재들을 가져왔던 것. 하지만 그걸 다루는 방식은 오피스물에서 흔히 등장하는 계파들 간의 갈등이나 상명하복 구조에서 발생하는 불합리한 시스템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야구를 몰라도 어떤 조직이든 발생하는 그런 시스템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재미를 선사했다. 야구라는 소재의 장벽을 훌쩍 뛰어넘으면서 시청률은 지속적으로 상승해 15.5%까지 올랐다. 애초 우려와 달리 보편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이야기다.◆백승수라는 시스템 개혁 판타지의 등장이러한 보편적 공감대를 가능하게 한 가장 큰 역할은 백승수(남궁민)라는 캐릭터가 있어 가능했다. 만년 꼴찌 드림즈에 새롭게 부임한 백승수 단장은 씨름팀 같은 다른 분야에서 여러 번 우승을 한 전적이 있었지만 야구는 처음이었다. 그러니 야구를 모르는 입장에서 드림즈에 들어와 꼴찌 탈출을 위해 일련의 선택들을 하는 백승수는 시청자들에게는 훌륭한 가이드 역할이 된다. 그는 야구는 몰라도 결국 스포츠팀이라는 게 어떤 동일한 시스템이며 따라서 만년 꼴찌라는 건 그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걸 파악한다.그 첫 번째는 드림즈의 간판스타로 자리매김하고 있던 임동규(조한선) 선수가 실질적으로 팀 기여도가 낮은 데다 사실상 드림즈를 자신을 위한 팀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백승수는 임동규는 물론이고 코치진과 운영진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들을 설득해 임동규를 트레이드시킨다. 그를 내보내고 대신 드림즈에서 나가 바이킹스 최고의 투수로 자리한 강두기를 데려온 것.두 번째 시스템의 문제는 스카웃 비리였다. 고세혁(이준혁) 스카웃 팀장이 돈을 받고 스카웃을 해온 일을 백승수와 운영팀이 찾아내 그를 해고시킨 것. 세 번째는 용병 기용문제였다. 예산이 부족해 계약하려던 용병선수를 놓친 백승수는 대신 메이저리거였지만 군 복무를 기피하고 귀화했다는 이유로 비난받는 길창주(이용우)를 과감히 기용한다. 또 연봉협상에 있어서도 무려 30%나 예산을 삭감한 권경민 상무(오정세)에 맞서 백승수는 최단기간에 협상을 마무리해낸다.백승수라는 인물이 하나의 판타지가 되는 건 그가 '시스템의 개혁자'라는 점이다. 보통 조직이 성적을 내지 못하면 그 책임은 개인으로 전가되는 게 우리네 사회의 현실이다. 하지만 백승수는 이 문제가 개인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그는 좀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이성적으로 사안을 들여다보고 판단하며 선택한다. 이를 통해 하나하나 그 시스템을 개혁하는 것으로 조직 또한 성적을 낼 수 있을 거라는 걸 기대하게 만든다. 그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다.◆철저한 취재와 극적인 스토리텔링이 만났을 때'스토브리그'가 특히 우리네 드라마에 의미있는 시도로 여겨지는 건 이 작품이 가진 두 가지 요인 때문이다. 그 하나는 철저한 취재다. 물론 최근 들어 드라마작가들은 어떤 분야를 다룰 때 취재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워낙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은 데다 해당 직업군의 반응들 또한 쉽게 온라인을 통해 전파되는 환경이기 때문에 어설픈 소재 접근은 실패의 지름길이다. 하지만 '스토브리그'는 무려 자문위원만 18명에 달하는 철저한 취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실제 같은 이야기들이 가능해진 것이다.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이처럼 리얼한 소재들을 가져온다 해도 그것을 극적으로 엮지 않는다면 그만한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어떤 경우에는 너무 깊이 그 현실을 알고 있어 극적인 이야기구성을 시도하지 못하는 일도 적지 않다. '스토브리그'는 그런 점에서 보면 철저한 취재와 더불어 극적인 스토리텔링 또한 적절하게 균형을 만든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이야기 구조를 보면 이런 균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프로야구 구단에서 벌어질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백승수라는 신임단장에게 하나의 숙제처럼 던져지고 문제가 갈등을 점점 키워 올리는 상황까지는 현실 그대로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게 침묵하며 무언가 혼자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내는 백승수가 준비한 것들을 꺼내놓고 한 방에 판을 뒤집는 이야기는 드라마틱한 스토리텔링이 아닐 수 없다. 그건 현실성이 다소 떨어지는 판타지일 수 있지만 고구마 현실을 계속 목도한 시청자들에게는 속이 시원해지는 사이다가 된다.'스토브리그'의 성취는 그래서 향후 보다 다양한 전문 분야들을 다루는 드라마의 훌륭한 성공방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철저한 취재가 던지는 현실문제와 더불어 현실적 갈증을 해소해주는 캐릭터와 솔루션의 제공이 어떤 전문 분야라도 충분히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020-01-17 06:30:00

가수 양준일이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서울 광진구 세종대 대양홀에서 열린 팬미팅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양준일은 1990년대 활동했지만 큰 빛을 보지 못하고 잊혀졌으나 최근 뉴트로 열풍에 재조명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연합뉴스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시간여행자' 양준일 신드롬

매일신문 | #양준일 #JTBC #슈가맨거의 30년 가까운 세월을 지나 다시 무대에 서게 된 양준일. 그에게는 '시간여행자'라는 호칭이 붙었다. 20대 때는 배척받고 차별받던 그가 50대가 되어서 다시 서게 된 무대에서 신드롬에 가까운 열광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무엇이 이런 열광을 만들어낸 것일까.◆'슈가맨3'가 소환해낸 탑골 GD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지만 그렇다고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지는 않은 느낌. JTBC '슈가맨3'에 양준일이 나와 '리베카'를 다시 불렀을 때 아마도 당대를 살았던 중년들은 그런 느낌이지 않았을까.실제로 양준일과 '리베카'라는 곡은 노래가 나왔던 91년도만 해도 어느 정도 인지가 될 정도였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가수와 곡은 아니었다. 그러다 우리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가수와 노래. 그런데 '슈가맨3' 무대에서 다시 그 노래를 들어보니 지금의 감성에 더 어울리는 곡으로 다가온다. 그 때는 너무 앞서가 있어 낯설게까지 느껴졌지만 지금은 세련된 곡으로 느껴지는 것. 거기에 양준일이 살짝 살짝 흔들어가며 곁들이는 춤은 무대를 더 멋지게 만들어낸다."나는 노래를 목소리로 10% 표현하고 90%는 몸으로 표현한다"고 스스로 말했듯이 가창력 중심의 가수들이 넘쳐나던 90년대에 양준일이 주목받기는 어려웠다. 심지어 파격적인 퍼포먼스에 거침없는 표현을 담은 곡은 그에게 선입견과 편견을 심어 주었고, 재미교포로서 노골적인 차별도 받았다.그런 그가 '슈가맨3'에 등장하자마자 뜨거운 반응을 일으킨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건 최근 '온라인 탑골공원'이라는 유튜브 콘텐츠 덕분이다. 90년대 KBS '가요톱10'이나 SBS '인기가요' 같은 가요프로그램 영상을 올려놓고 함께 보며 댓글을 다는 이 콘텐츠를 통해 양준일은 일찌감치 '탑골GD'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화제가 된 인물이었다. 그래서 세대별로 가수와 음악을 알아보는 관객들을 나누어 보여주는 '슈가맨3'에서 10대와 40대가 이례적으로 양준일을 알아본 건 '온라인 탑골공원'의 영향이 컸다.중요한 건 과거의 그 힙한 음악과 춤이 50대의 지금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양준일은 이 부분에 있어서도 시간의 흐름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여전히 멋진 춤동작과 트렌디한 노래. 게다가 무엇보다 나이 들어 훨씬 원숙해진 아티스트로서의 면면이 묻어나는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지금의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미국에서 음식점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고 있다는 양준일은 그렇게 방송이 끝나고 생업으로 돌아갔지만 이 방송이 만들어낸 여파는 그를 끝내 놔주지 않았다. 그를 다시 국내로 소환시킨 건 팬들이었다. 새롭게 팬덤이 만들어졌고 그는 콘서트를 겸한 팬 미팅을 위해 국내로 돌아왔으며 가는 곳마다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양준일 신드롬에 담긴 아티스트에 대한 갈증'슈가맨3'에 나온 양준일은 우리가 연예계에서 좀체 보지 못했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줬다. 그는 무대 위에서 자신의 음악에 푹 빠져 하고픈 대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자유로움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이야기를 할 때는 지극히 평범한 서민 가장의 태도를 드러냈다.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특별한 계획을 갖고 살지는 않는다"며 "겸손한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계획이라면 계획이라 하는 말이 특히 대중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건 대단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는 아니지만 자신 스스로 자족하는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면서, 한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평범하고 소박한 삶이 가진 가치를 드러낸 말이었다.저마다 가슴 한 편에 꿈을 갖고 살아왔지만 그게 꺾어진 채 하루하루의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보통의 서민들에게 이만한 위로가 있을까. 양준일 신드롬은 이런 서민들이 가진 갈증들을 툭툭 건드리며 점점 커져갔다.양준일은 아이돌 강박에 빠져 있는 우리네 가요계가 가진 갈증 또한 건드리는 존재가 되었다. 10대부터 20대까지 마치 모든 걸 쏟아내고 얻어야 그 삶이 인정받는 것처럼 치부되는 사회 속에서 우리네 가요계도 아이돌에 집착해온 흐름이 만들어졌던 게 사실이다.하지만 그러면서 생겨난 반작용이 아티스트에 대한 요구다. 젊은 날의 한때가 아니라 평생 동안 추구된 어떤 것으로 삶을 인정받고픈 욕망들이 우리네 사회에 생겨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20대에 활동했고 그러다 다시 50대에 소환됐지만 여전히 자기 스타일대로 살아가며 음악을 하는 그 모습은 바로 우리가 찾던 아티스트의 초상이었으니 말이다.너무 많은 가수와 음악들이 쏟아져 나오고 상업화된 음악들은 어떤 패턴을 보이기까지 하며 쉽게 다운로드 받아 소비되는 복제 음원의 시대에 그 음악의 가치는 점점 사라져 간다. 그래서 나타난 반작용은 시대가 지나도 변함없이 사랑받는 아티스트와 예술에 대한 욕망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이나 양준일 신드롬은 맞닿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뉴트로와 빈티지 문화에 대한 기대양준일 신드롬의 기저에 깔려 있는 건 최근 젊은 세대들의 트렌드로 자리하기 시작한 뉴트로(New+Retro)다. '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것처럼 뉴트로는 레트로가 보여주는 추억이나 회고, 복고와는 다른 현상이다. 과거를 경험했던 기성세대들이 그 과거를 향수하는 것이 레트로라면 뉴트로는 그 경험을 하지 않은 젊은 세대들이 옛 것이 가진 가치를 재해석하고 재조명하는 현상이다.이것은 우리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 낡은 것은 지워버렸던 과거의 삶의 방식이자 문화 소비 방식에 대한 반작용으로 볼 수 있다. 즉 옛것과 새로운 것을 단절시켜 새것으로 옛것을 대치하던 문화 소비에서 그 연계성을 찾고 그 시간의 흐름이 주는 가치를 찾는 노력이 바로 뉴트로라는 것이다.양준일 신드롬은 그래서 단절되어 있던 많은 것들을 하나로 엮어낸다. 과거와 현재가 엮어지고 옛것과 새로운 것이,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그 안에서 연결된다. 우리에게 그간 부재했던 빈티지 문화(과거와 현재를 단절이 아닌 연속성으로 보는 문화)가 그 안에서 어른거린다. 이런 변화된 문화 소비 방식과 삶의 방식이 묻어난다는 것만으로도 양준일 신드롬이 가진 가치는 충분하다 여겨지는 면이 있다. #양준일 #JTBC #슈가맨

2020-01-10 06:30:00

2019 MBC 연예대상을 수상한 코미디언 박나래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2020년 예능 트렌드 전망

2020년에는 어떤 예능프로그램들이 트렌드를 만들어낼까. 트렌드 전망이라는 것이 변수가 많기 마련이지만 2019년의 흐름들을 들여다보면 새해의 트렌드 역시 어느 정도는 그려볼 수 있다.◆김구라 일침, 지상파 예능도 달라질까2019년 지상파 예능들이 생각만큼 선전하지 못했다는 건 연말에 열린 방송3사의 '연예대상' 결과를 보면 단박에 드러난다. 특히 대상 수상자만큼 큰 화제가 된 김구라의 일침은 현재 지상파 예능이 처해있는 위기감을 실감하게 한다. "연예대상도 물갈이를 해야 될 때가 아닌가 싶다. KBS도 시청률이 안 나왔다. 5년, 10년 된 국민 프로가 많다보니 돌려막기 식으로 상 받고 있다. 더 이상 대상 후보 8명 뽑아놓고 콘텐츠 없이 개인기로 1~2시간 때우는 거 하면 안 된다." 김구라의 이 말은 그다지 지상파 예능프로그램들이 새로운 성취를 이룬 게 많지 않았다는 걸 공감하게 한다.지상파들은 이제 관찰카메라 형식을 예능의 중심축으로 세우고 있다. 'KBS 연예대상'이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대상과 최고의 프로그램상을 준 사실이나, SBS가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최우수프로그램상을 받은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물론 거의 유일하게 MBC가 '놀면 뭐하니?'나 '같이펀딩', '구해줘 홈즈' 같은 신규 예능 프로그램을 성공시켜 성과를 냈지만, MBC도 역시 '나 혼자 산다'같은 관찰카메라가 대표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을 박나래 대상을 통해 입증시켰다.2020년에도 관찰카메라는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의 중심 형식으로 자리할 전망이다. 케이블, 종편에 유튜브나 넷플릭스까지 등장해 프로그램들이 다양해지는 상황 속에서 지상파는 그 플랫폼에 가장 효과적인 형식으로 관찰카메라를 버리기가 어렵다. 가족, 친구, 자녀, 반려동물 같은 관찰카메라가 담아내는 보편적인 일상의 소재들은 그간 지상파들이 주로 보여줬던 관전 포인트와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KBS가 '1박2일'을 버리지 못하고 SBS가 '런닝맨'을 못 버리는 것처럼 장수프로그램이라는 안전한 선택도 지상파는 계속 이어갈 전망이다. 그나마 MBC처럼 '놀면 뭐하니?' 같은 유튜브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시도들이 변화에 대한 갈증을 채워줄 전망이다.◆비지상파 시즌제 예능, 그 이상의 시도 나올까사실 2019년에는 tvN이나 JTBC 같은 비지상파 강자들도 예능 프로그램에 있어서 이렇다 할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tvN은 여전히 나영석표 예능 프로그램들이 시즌을 바꿔 약간의 스토리텔링 방식 변화들을 가미하면서 등장했고, JTBC 역시 시즌제 예능 프로그램들이 대거 등장했을 뿐 신규 예능프로그램의 성취를 보기는 쉽지 않았다. 물론 tvN은 '스페인하숙' 같은 새로운 시도가 주목받았고, '삼시세끼' 산촌편이 여성 출연자들을 세워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주며 호평 받았으며 나아가 '신서유기'의 외전으로서 '아이슬란드 간 세끼'나 '라끼남' 같은 프로그램이 유튜브 버전으로 주목받았지만 전반적으로는 여행과 먹방이라는 소재를 벗어나진 못했다.그나마 JTBC는 조금 성적이 나은 편이다. '슈퍼밴드'라는 신규 프로그램과 '비긴어게인3', '슈가맨3'가 연달아 성공을 거두며 금요일 밤 JTBC만의 음악 프로그램 블록을 만들었고, 이효리는 물론이고 핑클 멤버들을 모두 끌어 모아 시도한 '캠핑클럽'은 큰 성취를 거뒀으며 '뭉쳐야 찬다'는 스포츠 스타들을 대거 기용해 스포츠 예능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특히 '슈가맨3'는 최근 뉴트로 열풍과 맞물리면서 이전 시즌보다 더 큰 화제를 불러오고 있다. 또 새롭게 런칭한 '이태리 오징어순대집'과 '막나가쇼'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하지만 JTBC 역시 몇몇 레귤러 장수 프로그램들은 종영하거나 정체된 상황이라 초창기 JTBC 예능이 해왔던 참신한 시도들이 절실해지는 시점이다.tvN은 새해를 맞아 달리기 리얼리티 'Run', 추억을 소환하는 음악 프로그램 '좋은가요', 고양이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냐옹은 페이크다', 아이들을 사회생활의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나의 첫 사회생활' 그리고 나영석 PD가 도전하는 숏폼 옴니버스 예능 '금요일 금요일 밤에' 등이 새롭게 시작한다. 특히 유튜브 시대의 짧아지는 콘텐츠 트렌드를 반영한 '금요일 금요일 밤에'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오디션 타고 온 종편 예능의 약진 계속될까올해 예능가에 가장 큰 파장은 Mnet '프로듀스' 시리즈의 조작 파문이다. 한때는 오디션의 명가로 불렸던 Mnet이 주춤하는 사이, 오디션 형식은 이제 종편의 성공 형식으로 자리해가고 있다. TV조선 '미스트롯'이 최고시청률 18%(닐슨 코리아)라는 놀라운 기록을 거두며 '송가인 신드롬'을 일으켰던데 이어, MBN '보이스퀸' 역시 8%를 넘기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과거 종편이 '황금알', '동치미' 같은 프로그램들이 화제를 모으며 이른바 '집단 토크쇼' 붐을 이뤘던 것처럼 이제는 중장년층을 집중적으로 겨냥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또 하나의 종편 트렌드로 자리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TV조선이 '미스트롯'의 성공에 힘입어 시즌2라고 할 수 있는 '미스터트롯'을 1월2일부터 방송하는 건 단적인 사례다.종편이 시도하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Mnet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미스트롯'처럼 중장년층의 음악 장르를 시도하거나, '보이스퀸'처럼 주부들의 현실을 오디션 형식에 엮어 노래만이 아닌 감동적인 스토리로 그려내는 방식이 그것이다. '보이스퀸'은 마치 과거 '주부가요열창'의 종편 버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지만, 그 플랫폼의 고정시청층과 잘 맞아 떨어져 좋은 반응이 나오고 있다. 종편 예능은 이처럼 지상파나 케이블이 해온 완성도 높고 스타일도 세련된 형식을 추구하기보다는 종편의 시청층에 맞는 눈높이를 찾아감으로써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2019년의 예능은 전반적으로 지상파, 케이블, 종편 등이 저마다의 플랫폼 성격에 맞는 효과적인 방식들을 모색했던 해였다. 거기에는 일정한 성과들도 있었지만 한계 또한 분명히 존재했다. 올해는 그 모색한 결과들이 플랫폼에 맞는 예능 형식으로 등장해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과연 올해는 어떤 프로그램들이 화제가 될까.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2020-01-03 06:30:00

SBS 드라마 'VIP'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종영 'VIP' 예상 깨고 선전

종영한 SBS 드라마 'VIP'는 애초 이 정도의 기대작이 아니었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보란 듯이 15%를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화제성도 뜨거웠다. 도대체 이 작품의 무엇이 이런 결코 적지 않은 성취를 가능하게 했을까.◆별 기대가 없었던 작품, 그러나SBS 드라마 'VIP'는 방영 전까지만 해도 굉장한 기대를 갖게 만드는 작품은 아니었다. 물론 장나라 같은 신뢰를 주는 배우에 대한 기대는 있었지만 작가와 감독 모두 첫 입봉작이라는 사실이 그랬다. 이 대본을 쓴 차해원 작가는 공모전에 당선된 후 첫 작품이고, 이정림 감독 역시 첫 연출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큰 기대를 가질 수는 없었다.이런 낮은 기대감 속에서도 첫 회 시청률이 6.8%(닐슨 코리아)를 기록한 건 꽤 선전한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VIP'는 단 몇 회 만에 시청자들을 주인공 나정선(장나라 분)의 시선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날아온 문자 메시지 하나를 통해서였다. 같은 VIP 전담팀의 팀장인 남편 박성준(이상윤 분)이 팀내 내연녀를 뒀다는 메시지. 나정선은 그 후 팀원들을 하나하나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고, 시청자들도 누가 내연녀일까 하는 궁금증에 빠져들었다.이런 궁금증은 결국 '불륜'이라는 소재가 가진 힘일 수 있었다. 그래서 관심은 증폭되었지만 그것만으로 'VIP'가 순항하기는 어려웠다. 여기서 'VIP'는 또 다른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불륜'이라는 소재에 사회적 함의를 담아 넣을 수 있는 우리네 사회의 돈으로 구분되는 계급구조의 현실이었다. 성운백화점의 VIP들을 위해 파티를 열어주기도 하고 그들만을 위한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전담팀의 일은 심지어 그들의 불륜까지 덮어주는 것이었다.부부이자 팀장과 팀원인 박성준과 나정선의 관계는 그래서 사적인 관계와 공적인 관계가 중첩되며 애매해진다. 자신들에게 벌어진 불륜은 사적인 관계로서 용서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러면서도 VIP들의 불륜은 감춰주는 게 그들의 일이 된다. 불륜이란 소재가 자본화된 세상의 사회적 의미를 끄집어내는 불쏘시개 역할을 해주게 된 것이다. 'VIP'는 이처럼 통속적일 수 있는 불륜이란 코드를 가져와 자본으로 서열화된 우리네 사회의 적나라한 민낯을 꺼내놓는다.◆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의 현실과 판타지'VIP'는 여기에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의 현실에 대한 공감과 판타지를 그려 넣는다. 결코 호락호락하게 밀려나지 않는 나정선 같은 리더십을 가진 여성을 중심으로, 시크한 매력으로 전담팀의 모든 일을 척척 해내는 에이스 이현아(이청아 분)라는 든든한 걸크러시 캐릭터와, 육아문제로 회사에서 승진하지 못하고 만년 사원으로 살아가는 송미나(곽선영 분) 그리고 누구보다 동료로서 함께 아파하고 즐거워해주는 강지영(이진희 분) 같은 여성들을 포진시킨다.물론 이 드라마는 전면에 페미니즘적 관점을 내세우지는 않지만 남성들의 세계와 여성들의 세계를 병치해 놓는다. 박성준과 그를 끌어주는 하재웅 부사장(박성근 분) 라인이나 배도일(장혁진 분)처럼 권력을 위해서는 뭐든 하고 심지어 성추행까지 일삼는 남성들의 세계가 그 라인문화에 의해 세워져 있다면, 나정선과 친구이지만 팀원인 이현아와 송미나, 강지영은 이 성운백화점에서 늘 한 걸음씩 밀려나 있지만 서로를 토닥이며 동지의식의 끈끈한 연대를 보여준다. 드라마가 보여주는 전담팀에서 실제로 일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여성들이지만 이들의 팀장이 박성준이라는 점은 우리네 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담아낸다.물론 성차별적인 현실만을 드라마가 강조한 건 아니다. 거기에 바람직한 남성상의 판타지들을 대안적으로 채워 넣음으로써 드라마는 균형감각을 유지했다. 장관 아들이지만 신분을 속이고 건실하게 팀원으로 일하며 나정선을 때로는 위로해주기도 하는 마상우(신재하 분)나, 성추행 사건을 미투 폭로한 일로 사내에서 편견의 시선을 받는 이현아를 든든하게 지지해주고 바라봐주는 차진호(정준원 분) 그리고 워킹맘으로서의 고충을 뒤늦게 이해하고 아내 송미나를 돕기 위해 나서는 이병훈(이재원 분) 같은 남성들이 그들이다.◆두 개의 세계, 당신에게 진짜 소중한 사람은그래서 드라마는 두 개의 세계를 병치시킨다. 하나는 VIP들과 그들을 보좌하는 수직적 관계로 이뤄진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수직적 세계 속에서 겪는 어려움과 서러움들을 서로 공감하며 보듬어주는 수평적 세계다. 박성준은 하재웅 부사장의 내연녀들과 차명계좌를 관리함으로써 이사로 승진하지만 그 수직적 세계가 그를 행복하게 해줄 지는 미지수다. 그는 자신의 연민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부사장의 딸인 하유리(표예진 분)와 내연관계를 이어가지만, 갑자기 다쳐 쓰러진 아내 나정선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아내를 보살핀다. 수직적 세계가 만들어내는 막연한 사랑과 성공이라는 판타지가 실상은 불륜이자 욕망이었다는 그를 통해 드러난다.반면 이 힘겨운 현실 속에서 이현아는 차진호와 드디어 마음을 열고 가까워지고, 송미나는 남편 이병훈과 위기를 이겨내고 알콩달콩한 가정으로 돌아온다.'VIP'는 그래서 이 두 개의 세계 속에 존재하는 두 개의 VIP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현실에서 우리가 갑이라 부르며 고개를 숙이고 그들의 허물조차 감춰주던 저 VIP와, 그런 현실에서 돌아와 서로를 다독이는 진짜 VIP 중 어느 쪽이 더 소중한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 답은 이미 나와 있지만 우리는 종종 그걸 잊는다. 자본화된 사회가 주는 화려해보이기만 하는 저들의 겉모습에 눈이 멀어서.'VIP'는 첫 입봉작이라고 믿기 힘든 작가와 감독의 역량이 묻어난 작품이다. 이렇게 불륜이라는 소재를 과감하게 가져와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어 모은 후 거기서 확장해 사회적 함의까지 끄집어내는 대본이 그렇고, 대단히 섬세한 감정 표현을 인물들의 손짓 하나 대사 하나에도 집중하게 만든 연출이 그렇다.게다가 김준석 음악감독의 효과적인 배경음악은 드라마 매회 말미마다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 압축적이면서 호기심을 자아내는 연출과 더해져 폭발적인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여기에 장나라와 이청아, 곽선영 같은 연기자들의 호연이 더해져 대본, 연출, 연기의 삼박자를 갖춘 작품이 될 수 있었다. 애초 예상을 훌쩍 깨는 결코 적지 않은 성취를 이뤄낸 작품이 아닐 수 없다.대중문화평론가

2019-12-25 13:14:56

백종원, 김희철, 양세형, 김동준이 출연하는 SBS '맛남의 광장'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한상 푸짐 '백종원표 예능' 참 맛있지유~

먹방에 쿡방은 물론이고 지역 농수산물을 살리기 위한 솔루션에 공익성까지 담았다. SBS '맛남의 광장'은 그래서 지금껏 백종원이 시도해온 다양한 음식프로그램의 모든 것들이 녹아들어 있는 느낌이다.◆풍년일수록 힘들다, '맛남의 광장'이 나선 이유11월부터 1월까지 잡히는 양미리는 지금이 제철이다. 그래서 동해안에 가면 양미리가 지천이다. 하지만 이런 풍어를 맞고도 어민들의 한숨은 깊어간다. 양이 많아도 그만한 수요가 없는데다, 냉동하면 상품성이 없어지기 때문에 그렇다. 맛도 좋고 영양도 좋은 생선이지만 수요가 없는 건 주로 구워먹거나 말려 먹는 것 이외에 다양한 요리방식의 저변이 없어서다. 그러니 소비자들이 찾지 않고 상품성이 없어 유통도 되지 않게 된 것.SBS '맛남의 광장'에서 백종원은 한창 양미리를 그물에서 떼내고 있는 동해안 어촌을 찾아 양세형과 맛있게 양미리를 구워먹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게 마치 KBS '6시 내 고향' 같다고 양세형이 말하자, 백종원은 우리 프로그램은 "10시 내 고향"이라고 말한다. 그 장면은 지방의 제철음식을 찾아나선 '6시 내 고향'이 줄곧 보여주곤 하는 먹방을 연출한다.갓 구워낸 양미리를 통째로 씹어 먹는 장면은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인다. 그리고 백종원은 양미리를 구입해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양미리 조림 조리법을 알려준다. 그건 일종의 쿡방이다. 백종원 특유의 쉬운 레시피가 빛을 발한다.다음 날 옥계휴게소에서 백종원과 출연자들(김희철, 양세형, 김동준)이 그렇게 탄생한 양미리 조림을 대량으로 만들어 판매한다. 이미 사전 정보를 알고 찾아온 손님들의 반응이 전파를 탄다. 마치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등장했던 백종원 특유의 음식 솔루션과 그걸 손님들에게 내놓고 보여지는 리액션 영상이 채워진다.아이러니하게도 풍년일수록 더 힘들어지는 지역의 농수산물들은 의외로 넘쳐난다. 강원도의 양미리는 물론이고 살이 적어 상품성이 떨어지는 홍게, 심지어 감자 같은 대표적인 지역 작물도 못생겼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현실이다. 백종원은 홍게로 홍게라면을 만들고 못난이 감자로 감자 치즈볼을 만들어 손님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도시와 지역을 연결하자 생긴 시너지이제 중요해지는 건 집에서 TV를 보는 시청자들이 지역까지 가지 않고도 양미리를 인근 마트에서 사먹을 수 있게 유통의 길을 열어 주는 일이다. 여기서도 백종원은 자신의 인맥을 100% 활용한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선뜻 그 뜻에 동참했다. 백종원은 못생겼다는 이유로 상품성이 없어 버려지는 양이 30t이 넘는 어느 강원도 농가의 이른바 '못난이 감자'를 보는 즉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30t을 사달라고 했다. 정용진 부회장은 전량을 수매했다. 안 팔리면 자기가 다 해먹겠다며.하지만 안 팔리기는커녕 수많은 소비자들이 이마트 매장과 쇼핑몰 SSG닷컴으로 못난이 감자를 샀다. 못생겼지만 맛과 영양은 그대로인 못난이 감자는 900g 당 780원에 팔린다. 결국 소비자들도 수혜를 입었다고 볼 수 있다.백종원은 정용진 부회장이 이 프로그램의 취지에 크게 공감했다는 뜻을 전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수매가 필요한 농수산물들을 이마트에서 소비자들이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약속도 전해졌다. 결국 이 프로그램이 가장 중요했던 부분인 유통 문제가 백종원의 전화 한 통과 그 뜻에 동참한 정용진 부회장의 약속으로 해결된 것이다.여기서 한번 생각해봐야할 문제가 있다. 결국 이 프로그램이 한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준 것으로 누가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수혜를 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너무 많아 버려지던 농수산물을 팔 수 있게 된 지역 주민들은 물론이고, 그런 좋은 물건들을 전량 받아 팔 수 있게 된 마트로서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무엇보다 이런 일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기업 이미지는 그 어떤 것으로도 살 수 없는 가치를 만들어낸다. 또한 이런 상품들을 그간 가까이서 구매할 수 없어 TV로 보기만 했던 소비자들에게도 혜택을 주는 일이다. 도시와 지역을 방송이 연결시키는 것만으로 생겨난 놀라운 시너지다.◆방송에 머물지 않고 현실을 바꿔나가는 백종원의 진화백종원은 지금껏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하지만 아무 프로그램이나 나온 건 아니었다. 그는 음식연구가로서 음식 관련된 프로그램에 특화된 방송인으로 맹활약했다. 처음 백종원이 했던 건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나와 간편하게 레시피를 알려주던 레시피 방송이었다. 그건 쿡방보다는 백종원의 방송적응기에 가까웠다.그러다 그는 tvN '집밥 백선생'으로 본격 쿡방을 선보였고, SBS '백종원의 삼대천왕'을 통해 먹방을, '백종원의 푸드트럭'과 '백종원의 골목식당'으로 자신의 프랜차이즈 경험이 녹아난 음식점 솔루션 프로그램을 시도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tvN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처럼 세계의 음식을 소개하며 인문학적 정보를 더하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최근 백종원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간 진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맛남의 광장'은 그가 지금껏 해온 먹방, 쿡방, 솔루션 프로그램의 노하우가 모두 녹아든 공익적 성격이 강한 프로그램으로 그의 진화를 가장 잘 드러내는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맛남의 광장'이 아이디어로 나온 건 이미 3년 전이라고 한다. 당시 방송 프로그램 때문에 지역을 다니다가 휴게소에서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로 방송을 준비하려 했지만 미뤄졌다고 한다. 그래서 오래 기다린 만큼 '맛남의 광장'에 대한 백종원의 애착은 특히 크다.'맛남의 광장'이나 '백종원의 골목식당' 같은 프로그램이 보여주듯이 백종원이 하는 방송의 또 다른 특징은 방송이 방송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을 바꿔간다는 점이다. 이건 그가 방송 소재로 잡고 있는 음식이라는 아이템이 가진 파괴력 때문이다. 본래 방송의 힘은 한때 음식 프로그램에서 홍보 논란이 일어날 정도로 강력하다는 게 입증된 바 있다. 하지만 이 힘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틀면 모두가 윈윈할 수 있다는 걸 백종원은 보여주고 있다.여기서 가장 중요해진 건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다. 어려움에 처한 골목식당을 살린다는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취지처럼, '맛남의 광장'의 지역을 살린다는 취지가 중요한 이유다.

2019-12-18 11:18:12

SBS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하는 김건모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연예인 관찰카메라 시대의 빛과 그림자

지금 지상파에서 최고의 시청률과 화제성을 가진 예능 프로그램은 MBC '나 혼자 산다'나 SBS '미운 우리 새끼' 같은 연예인 관찰카메라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김건모 사태를 보면 연예인 일상을 들여다보는 관찰카메라의 맹점이 보인다.◆김건모 논란으로 후폭풍 맞은 '미운 우리 새끼'SBS '미운 우리 새끼'는 최근 이례적이라 할 수 있는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내는 예능프로그램이다. 나이가 들었지만 미혼으로 살아가는 중년들의 철없는 일상을 그 부모들이 관찰하는 콘셉트로 주목받았다. 김건모는 이 프로그램의 시작부터 함께 해온 개국공신으로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기괴한(?) 일상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다.집에다 정수기에 물 대신 소주를 가득 담아 이른바 '정술기'를 만들기도 하고, 소주 기행을 떠나기도 하는 그런 모습들은 시청자들에게 때론 불편한 느낌을 주기도 했지만, 이를 상쇄시켜준 건 다름 아닌 엄마들이었다. 스튜디오에 나와 자신의 아들이 하는 일상의 '해괴한 짓들'을 보면서 혀를 쯧쯧 차거나 "뭐하는 짓인지"하며 한탄 섞인 한 마디를 던지는 모습은 시청자들이 가진 불편함을 대신 털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미운 우리 새끼'의 초반 전성기를 만든 주역들은 출연자들보다는 그 엄마들이었다.하지만 엄마들의 아들이 결혼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때론 과하게 등장하면서 시청자들의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엄마의 시선으로 자식 챙기는(?) 그 멘트들도 점점 호응을 잃기 시작했다. 그래서 '미운 우리 새끼'는 자식만이 아니라 자식 같은 다른 연예인들의 일상을 엄마들이 들여다보는 연예인 관찰카메라를 더하기 시작했다.최근 생활고를 토로했던 슬리피가 이상민을 만나 선배(?)로서의 조언과 위로를 듣는 광경이나, 배정남이 이성민과 함께 화보를 찍는 장면, 임원희와 정석용이 해돋이를 보러 정동진에 가서 펼쳐지는 짠내 가득 여행이 '미운 우리 새끼'에서 소개됐다. 그렇게 초반의 인기를 이어가는 듯싶었다. 김건모 논란이 터져 나오기 전까지는.강용석 변호사는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에서 김건모의 성폭행 의혹을 제기했고 피해주장 여성을 대리해 고소장을 제출했다. 아직 사실관계가 밝혀진 사안이 아니지만 이런 의혹제기는 공교롭게도 '미운 우리 새끼'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마침 김건모의 결혼소식이 전해졌고, '미운 우리 새끼'는 그의 프로포즈 장면이 나갈 거라는 예고를 내보낸 상황이었다.논란이 터진 후 '미운 우리 새끼'는 방송을 내도, 또 내지 않아도 곤란한 처지가 됐다. 내지 않는다면 마치 김건모 논란이 사실인 것처럼 비춰질 수 있고, 낸다면 시청자들의 반발이 만만찮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미운 우리 새끼'는 편집 없이 방송을 강행했다.◆김건모 사태가 끄집어낸 관찰카메라의 맹점해외의 리얼리티쇼가 국내에서 '관찰카메라'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불리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리얼리티쇼는 말 그대로 리얼한 누군가의 일상을 엿보는 프로그램 형식이다. 해외의 리얼리티쇼들은 일반인들을 주로 대상으로 하고 때론 폭로에 가까운 자극적인 영상을 내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우리네 정서에는 맞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관찰'이라는 다소 유화된 표현을 쓰기 시작했고, 담는 내용도 폭로라기보다는 그 일상을 공감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중요해진 게 관찰의 주체다. 누가 관찰하느냐에 따라 똑같은 장면도 달리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MBC '나 혼자 산다'가 한 때 15%가 넘는 시청률을 내며 승승장구했던 건 출연자들이 스튜디오에 앉아 관찰 영상에 대해 이런 저런 멘트를 덧붙이면서다. '나 혼자 산다'의 관찰 주체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그 시선으로 영상을 보며 던지는 짓궂은 농담들은 프로그램을 유쾌하게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미운 우리 새끼'에서 관찰의 주체는 엄마들이었기 때문에 어떤 행동도 밉게 보이긴 하지만 거기에는 애정이 담길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관찰카메라는 관찰 주체의 호감과 애정이 기본 전제가 되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김건모 사태는 이런 관찰 주체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호감이 일순간 가짜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만들었다. 아직 사건의 진위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런 구설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랬다. 그간 엄마의 시선이 상쇄시켜줬던 김건모의 갖가지 기행들은 호감이라는 필터가 치워짐으로써 달리 보일 수도 있게 되었다.이런 문제는 '미운 우리 새끼'만이 아니라 '나 혼자 산다'나 MBC '전지적 참견 시점'같은 관찰카메라들도 벌어졌던 일들이다. '나 혼자 산다'는 기안84의 기행들이 호감의 시선으로 그려지며 웃음을 줬지만, 때때로 그의 작품이나 행동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전현무와 한혜진의 연애와 결별도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의 색깔과 부딪히며 구설이 되기도 했다. '전지적 참견 시점'은 연예인에 대한 매니저의 과한 관리(?)가 오히려 논란을 일으켰다. 본래는 연예인과 매니저 사이의 인간적인 관계가 관찰의 초점이었지만, 그것이 결국은 매니저의 연예인 띄우기가 아니냐는 시점으로 바뀌면서 시청자들의 호감은 조금씩 식어버렸다.◆연예인 관찰카메라 득만큼 실도 커연예인 관찰카메라는 그 일상을 공감하는 것으로 해당 연예인의 호감을 키운다는 점에서 특별한 끼나 예능감이 없는 연예인들도 인기를 끌 수 있는 형식이다. 출연자는 그저 일상을 공개하는 것이지만 거기에 이를 관찰하는 이들의 호감어린 멘트들이 덧붙고, 자막과 편집까지 마술을 부리면 그 연예인은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을 올리는 인물이 되기도 한다.하지만 관찰카메라는 결국 그 일상을 담아내기 때문에 그 호감어린 시선이 지워지는 어떤 사건이 터질 때 고스란히 그 후폭풍을 맞게 된다. 관찰카메라를 통해 커진 호감은 그것이 거짓이었다는 게 드러날 때 더 큰 실망감으로 돌아간다. 그건 해당 연예인에게도 큰 타격이지만 그에게 호감의 시선을 만들어낸 프로그램에도 직격탄이 된다.'미운 우리 새끼' 김건모 사태는 그래서 지금 예능의 트렌드로 자리한 연예인 관찰카메라가 가진 빛과 그림자를 드러내는 면이 있다. 한껏 집중된 관찰카메라의 조명을 그 연예인을 반짝반짝 빛나게 하지만, 조명이 꺼져버리고 드러나는 또 다른 실체는 더더욱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게 만든다. 이것이 마치 도깨비 방망이처럼, 출연만 하면 존재감을 확 키워줄 것 같은 연예인 관찰카메라의 실체다.대중문화평론가

2019-12-11 11:31:00

'유 퀴즈 온 더 블럭'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유 퀴즈 온 더 블럭', 유재석이 만난 위대한 서민들

길거리에서 무수히 많은 인생들을 만났던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12월 3일부로 일단락을 맺었다. 내년 봄을 기약하며 겨울 휴지기에 들어간 것. 그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어떤 성취를 거두었을까.◆'유 퀴즈 온 더 블럭'이 만난 사람들인천의 어느 마을, 꽃이 만개한 꽃밭의 아름다움에 이끌린 유재석과 조세호는 그 길에서 한 어르신을 만난다. 그리고 그 어르신으로부터 마치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한 가운데 꽃밭도 있고 원두막도 있는 특이한 그 마을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들어보니 그 꽃밭은 본래 마을을 관통하는 8차선 도로 부지였다. 도로 하나가 마을들 사이에 놓여져 왕래를 끊어버릴 수 있다는 소식에 어르신과 마을 몇 분이 뭉쳐서 반대를 했고, 그 곳에 꽃을 심기 시작했다는 것. 그 작은 손길에 마을 사람들이 사비를 들여 동참했고 무려 7-8년 간이나 가꿔져 지금의 그 아름다운 꽃밭이 되었다는 것이었다."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아요. 꽃 피워주고 새싹 피워주고 내가 해준 것만큼 저 꽃송이들이 커요. 내가 물 주고 사랑 준 것만큼... 사는 게 뭐 별거 있나. 여기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참 좋아요." 어르신의 그 한 마디가 유재석과 조세호를 감탄하게 만든다.어느 작은 마을에서 만난 이름 모를 어르신이지만 이토록 위대한 이들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는 넘쳐난다. 매번 어느 동네를 가든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분들이 나타난다.어려서부터 아팠다는 딸에게 "건강하게 태어나게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엄마와 그런 엄마에게 오히려 너무나 감사함을 표하는 딸, 요양원에서 돌아가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볼 때 가장 마음 아프고 좀 더 자세히 살피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하다는 어느 요양사, 먹고 살기 힘들어 공부도 제대로 시키지 못하고 어려서부터 생업에 뛰어들게 한 장남에 대해 지금도 미안함을 갖고 있는 백발의 엄마에게 어쩔 수 없었던 시대의 흐름 아니냐며 섭섭하거나 서운해 한 적 없다고 말하는 칠순이 다 되어가는 아들, 자식들을 위해 시멘트바닥이 패일 정도로 수십 년을 하루도 변함없이 그 곳에 서서 세탁 일을 해온 아버지...아주 평범해 보이는 우리네 이웃 같은 사람들의 '보석 같은' 삶의 이야기가 화수분처럼 쏟아져 나온다. 그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어떤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하게 빠져들고, 그 어떤 코미디보다 유쾌한 웃음을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힘은 바로 그 놀라운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들려주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이었다.◆길거리 퀴즈쇼에서 진솔한 토크쇼로의 진화처음부터 '유 퀴즈 온 더 블록'이 '사람여행'이런 콘셉트를 제대로 추구했던 것은 아니었다. 작년 8월 처음 시작된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물론 사람들과의 토크가 주된 내용이긴 했지만 어딘지 퀴즈쇼에 더 집중하는 느낌이 컸다. 100만원의 상금을 얻기 위해서 당시만 해도 다섯 문제를 연달아 맞춰야 했다. 문제를 내고 맞추는데 그만큼 이 프로그램이 초반 신경을 썼다는 의미다.하지만 추운 겨울 길거리 토크쇼 자체가 어려워 휴지기를 갖고 봄에 다시 돌아오면서 이제 한 문제만 맞춰도 100만원의 상금을 드리는 쪽으로 룰이 바뀌었다. 즉 퀴즈 그 자체보다는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이야기에 더 집중하겠다는 뜻이었다.당연히 유재석과 조세호가 퀴즈쇼라는 형식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웃음의 포인트는 줄어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온전히 마이크를 길거리에서 만나는 보통 서민들에게 넘기자 의외로 보석같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유재석과 조세호는 코미디언보다 더 웃기는 언변에 박장대소하기도 했고, 달달한 첫 만남과 사랑이야기에 광대가 승천하기도 했으며, 너무나 가슴 먹먹한 이야기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이 위대한 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유재석과 조세호는 입보다는 귀가 되어주는 것으로 더더욱 그 존재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처음에는 막막했던 그 길이 이제는 언제 어디서 어떤 위대한 이야기를 듣게 될까 설레는 길이 됐다. 유재석과 조세호는 그 길을 계속 걸어갔고, 차츰 그들을 알아보고, 프로그램을 알아보는 이들이 저들 스스로 마음을 열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기꺼이 털어놨다. 프로그램은 갈수록 풍성해졌다. 길거리 퀴즈쇼가 진솔한 토크쇼가 되면서 프로그램은 제 색깔을 내기 시작했다.◆우리가 간과했던 사람의 위대함'유 퀴즈 온 더 블럭'은 늘 정해진 틀에서 정해진 출연자들과 함께 예능을 만들어오던 그 방식을 탈피한 것이기 때문에 쉽지 않은 도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방송에 익숙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을 카메라 앞에 세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들로부터 내밀하고 진솔한 이야기까지 끄집어낸다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유재석과 조세호가 전면에서 사람들을 만나 그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노력이 무엇보다 컸지만, 그만큼 연출자의 보이지 않는 정성이 촬영, 편집, 자막에 들어갔다.시그니처 편집처럼 되어 있는, 유재석과 조세호가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넘고 또 나뭇잎을 타고 날아오르기도 하는 CG 처리는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영상에 역동감을 만들어줬다. PD의 감수성 넘치는 자막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다 잘 정리해서 효과적으로 전해지게 만들어줬다. 또 유재석과 조세호만의 인터뷰에 더해 추가로 더 내밀한 인터뷰를 따로 붙여넣어 이야기의 심도를 높여줬다.무엇보다 눈에 띠었던 건 어느 한 지역을 찾아가 만난 사람들의 저마다 다른 이야기들을 하나의 맥락으로 꿰어 한 편을 하나의 스토리로 엮는 구성의 힘이었다. 예를 들어 문래동의 공장지대를 찾아가 만난 시민들의 이야기를 부제 'Don't stop me now'로 엮어내는 식이다. 한 때 IMF를 맞아 철공소들이 도산하기도 했지만 지금도 버텨내고 있는 그 지역의 공통된 분위기를 그 부제로 묶어낸 것.이런 제작진과 출연자들의 노력보다 이 프로그램을 완성시킨 건 결국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 프로그램은 그토록 많은 위대한 서민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일까. 그건 사실 어떤 사람이든 수십 년의 세월을 살아오며 저마다 드라마 몇 편씩에 해당하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지녔기 때문이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위대하다는 걸 증명해주었다. 이름 없이 묵묵히 제 삶의 현장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그 누구라도.대중문화평론가

2019-12-04 14:13:08

최근 화제가 된 유튜브 채널 EBS '자이언트 펭TV'의 캐릭터 펭수가 경기도 고양시 일산 EBS사옥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대빵 나와"…펭수가 뭐길래, 이토록 열광하나

여기저기 펭수 이야기가 떠돈다. 펭수에게 몰려드는 방송가의 러브콜에 이어, 최근에는 광고계에서도 서로 끌어가기 위해 난리가 났다고 한다. 물론 계보가 있을 정도로 EBS 캐릭터들은 많지만 신드롬까지 일으킨 캐릭터가 있었을까 싶다. 도대체 무얼 건드린 걸까.◆남극 '펭' 씨에 빼어날 '수', 펭수 신드롬"펭수의 인기에 숟가락을 얹고 싶다."최근 영화 '백두산'의 제작보고회에서 하정우는 그렇게 말했다. 이 한 마디는 최근 펭수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뜨거운 지를 잘 말해준다. 펭수는 영화 '백두산'은 물론이고 '천문'에도 영화 홍보를 위한 콜라보 작업에 투입되었다. 하정우가 그렇게 말한 건 그저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진심이었다는 얘기다.최근 나영석 PD도 펭수를 거론했다. 그가 개설한 유튜브 채널 십오야에서 '신서유기 외전 : 삼시세끼 –아이슬란드 간 세끼'의 첫방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100만 구독자가 넘으면 은지원, 이수근을 달나라 보내겠다고 한 공약이 실제로 이뤄질 것 같자 구독 취소 방송을 하면서 그는 "펭수를 구독하라"고 독려했던 것. 그만큼 펭수가 뜨거운 캐릭터라는 걸 반증하는 사례다.나이는 열 살. 키는 210cm로 큰 남극 유일의 자이언트 펭귄, 펭수. BTS 같은 우주대스타가 되는 게 꿈이라는 이 펭귄 캐릭터는 머리에 미역 줄기를 매달고 오디션을 봐 EBS 연습생으로 발탁되었다. EBS 캐릭터지만 지난 3월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를 개설하고 다양한 현장에서 활약하는 모습으로 조금씩 화제가 된 이 캐릭터는 지난 9월 드디어 빵 터졌다. 'EBS 아이돌 육상대회(이육대)'라는 동영상이 업로드되면서다.물론 조금씩 그 귀여우면서도 할 말은 하는 캐릭터가 존재감을 만들어내고 있었지만, '이육대'는 펭수의 인기를 훨씬 더 폭넓은 세대로 확장시켰다. MBC의 '아이돌 육상 대회'를 패러디한 이 영상에는 번개맨, 뚝딱이, 뿡뿡이 같은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EBS 캐릭터들이 총출동했다. 그 캐릭터들은 지금도 인기가 있지만, 그걸 보고 자란 세대들이나 그 부모들에게도 향수와 추억을 자극했다. 이렇게 모든 캐릭터를 한 자리에 모아놓은 펭수라는 존재가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2030 성인들은 열광했다. '이육대' 영상은 1,2부를 합쳐 3백만 조회 수를 훌쩍 넘기며 본격적인 펭수 신드롬을 촉발시켰다.◆방송사 대통합에 이어 어디든 환영받는 펭수펭수의 인기는 지상파 같은 타 방송사 프로그램들이 앞 다퉈 펭수를 모시는(?) 기현상을 만들어냈다. 물론 최근 들어 방송사 간의 프로그램 영상 공유는 일상화되고 있을 정도로 그 벽은 얇아졌지만 그래도 EBS 캐릭터가 MBC, SBS를 종횡무진 넘나든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펭수는 SBS 라디오 '배성재의 텐', MBC 라디오 '여성시대 양희은, 서경석입니다'는 물론이고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에도 출연해 맹활약했다. 이른바 방송사 대통합을 이룬 것.펭수는 방송에 이어 앞서 말했던 영화계에도 진출했고 최근에는 광고업계에서도 블루칩으로 모셔지고 있다. 특히 펭수가 좋아한다는 참치와 가장 좋아하는 과자라 밝힌 빠다코코넛을 만드는 회사들의 광고모델 제의가 쏟아졌다. 또 최근 이랜드의 스파오는 펭수 나이와 같은 10주년을 맞아 내달 펭수 콜렉션을 선보인다고 발표했다. EBS 캐릭터인지라 광고모델 제의에도 신중히 접근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펭수가 나선다면 어디든 환영하는 분위기다.펭수에 대한 러브콜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있다. 지난 23일 공개된 '펭수 외교부 장관 만난 썰' 편은 외교부 같은 정부 부처에서도 펭수의 인기에 숟가락을 얹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알리기 위한 영상이기도 했지만 펭수의 외교부에서의 맹활약은 이 캐릭터의 대체불가 매력을 끄집어내기에 충분했다. 외교부 앞에서 일정을 치르러 나가는 강경화 장관을 보고 "여기 대빵이 어디 있냐?"고 묻는 펭수라니. 그 한 마디에 강경화 장관조차 빵 터졌다. 외교부에 입성해 6개 지역 외교관들을 만나 가진 펭수 해외진출 방안 토론회에서도 펭수 특유의 순발력에 외교관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펭수가 어디서든 환영받는 캐릭터가 됐다는 걸 잘 보여주는 영상이었다.◆유튜브 시대에 부응한 캐릭터, 펭수도대체 무엇이 펭수의 이런 어마어마한 신드롬을 만든 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딱 하나만 짚어 얘기하라면 유튜브 시대에 부응한 캐릭터라는 점이다. '이육대'에 대거 EBS 캐릭터들이 등장했지만 펭수는 그들 캐릭터들과는 사뭇 다르다. 물론 교육방송에 걸맞는 교육적 메시지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것보다는 재미와 공감을 더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다. 특히 직장인들까지 펭수에게 빠져드는 건 수직적 사고 자체가 없어 어디든 거침없이 치고 들어가는 '사이다 화법' 때문이다. EBS 사장 김명중을 아랫사람 대하듯 이름을 부르고, MBC에 가서는 "최승호 사장님 밥 한 끼 합시다" 같은 말을 툭툭 던진다. 무엇보다 자신을 연출하는 PD 같은 '직속상관'을 마치 로드매니저 부리듯 한다는 건, 상하조직생활에 익숙해진 직장인들에게는 속 시원한 대리만족을 줄 수밖에 없다.그런데 펭수의 이런 화법과 거침없고 재미있으며 때론 귀여운 캐릭터는 어떻게 탄생하게 된 걸까. 물론 PD의 고민의 결과물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유튜브라는 새로운 생태계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다른 EBS 캐릭터들과 차별화된 건 애초 펭수가 유튜브라는 새로운 공간을 통해 대중들과 만남을 이어왔다는 점이다. 새로운 매체나 채널은 그 자체로 새로운 캐릭터를 요구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잘 아는 연예인도 유튜브를 하게 되면 또 다른 모습과 캐릭터를 보이게 된다. 그건 그 채널이 요구하는 어떤 캐릭터가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펭수는 어찌 보면 '유튜버' 혹은 '1인 크리에이터' 같은 캐릭터를 입게 되었다. 거침없이 할 말은 하고, 때론 공감 가득한 말로 대중들을 위로하며, 스튜디오가 아닌 현장으로 뛰어들어 그 곳에서 부딪치며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런 유튜브 스타 같은 면모는 어째서 펭수가 방송사 대통합 같은 걸 보다 쉽게 이뤄냈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EBS가 강조되기보다는 유튜브 스타 같은 면모 때문에 자연스럽게 지상파들조차 펭수 섭외에 너도 나도 나서게 됐다는 것이다.그래서 펭수 신드롬을 잘 들여다보면 유튜브 같은 새로운 매체가 만들어가는 대중들의 새로운 욕망의 양상을 발견할 수 있다. 저마다 할 말은 하고 싶고 또 공감 받고 싶으며 나아가 유튜브 스타 같은 걸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그런 욕망들이 거기에는 어른거린다. 물론 그런 욕망을 건드린다고 해도 견고한 현실은 결코 바뀌지 않겠지만.대중문화평론가

2019-11-27 13:36:35

KBS 2TV 1박2일 시즌4 출연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종민, 연정훈, 문세윤, 라비, 딘딘, 김선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시즌4로 돌아오는 '1박2일', 부활할 수 있을까

KBS '1박2일'이 시즌4로 돌아온다. 새로운 PD와 새로운 출연진들이 진용을 갖췄다. 정준영 논란에 김준호, 차태현 내기 골프 보도까지 나오면서 무기한 중단되었던 '1박2일'. 과연 시즌4는 부활할 수 있을까.◆'1박2일 4'가 익숙함을 선택한 까닭KBS '1박2일'이 오는 12월 8일 시즌4 첫 방송을 시작한다. 지난 10월 말 시즌4로 돌아온다고 공식발표가 나왔고, 그 후 누가 새로운 출연자가 될 것인가에 대한 추측들이 쏟아져 나왔다. 결과적으로 '1박2일 4'는 김종민만 남기고 모든 출연자를 교체했다.지금껏 예능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연정훈에, 최근 '맛있는 녀석들'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문세윤,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2'와 '유령을 잡아라'로 호감도를 높여온 김선호, 래퍼지만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더 많은 딘딘과, 막내로 가수이자 음악감독인 라비가 합류했다.티저로 나온 영상을 보면 아직까지 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펼쳐나갈지 종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며, 자신은 구멍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티저 영상 속에서 이들의 색다른 조합이 만들어낼 케미는 분명 기대되는 면이 있다.기대감과 함께 남는 우려도 적지 않다. 편성시간대를 늘 방영했던 일요일 저녁으로 잡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1박2일 4'에 대한 가장 큰 우려는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을 선택했다는 점이다.2007년부터 방영한 '1박2일'은 햇수로 벌써 12년이 훌쩍 지난 장수 프로그램이다. 시청자들은 대부분 이 프로그램의 패턴을 알고 있다. 여행과 복불복의 적절한 조합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인데, 여행이 소재적으로 익숙해지자 점점 복불복 게임에 집착하는 양상을 띠었다. 그래서 '1박2일'은 출연진을 교체하며 시즌을 거듭해왔다. 나영석 PD가 했던 최고의 출연진 조합 이후, 게임화되어가는 '1박2일'에 그나마 새로움을 더했던 건 '1박2일' 시즌2와 시즌3에서 유호진 PD가 합류했을 때 정도였다. 나머지는 대부분 익숙한 패턴을 반복했던 것.'1박2일 4'는 결국 전 시즌들이 그랬던 것처럼 초반에는 새로운 출연자들의 캐릭터를 소비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새로움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새로운 캐릭터가 새로운 여행 형식이나 이야기 틀을 더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 변별력을 찾기 어렵게 될 가능성이 높다.그런데 왜 '1박2일 4'는 새로움이 아닌 익숙함을 택했을까. 그건 여전히 KBS라는 채널에 맞게 고정 시청층이 존재한다는 점 때문이다. 새로운 시청층을 유입시키기보다는 고정층을 만족시키는 것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는 걸 '1박2일 4'의 선택은 보여주고 있다.◆복병은 비슷한 여행 예능이 너무 많다는 것일요일 저녁 그다지 뜨거운(?) 프로그램이 없다는 사실은 '1박2일 4'의 선택에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무작정 안도하기에는 외부 환경들이 많이도 변했다.가장 큰 복병은 KBS를 떠난 '1박2일' 출신 PD들이 바깥에서 유사한 프로그램들을 계속 만들고 있고 또 만들어질 거라는 점이다. 물론 원조논쟁을 벌일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나은 여행 예능의 다양함을 보여주고 있는 나영석 사단은 '1박2일 4'가 옛날 프로그램 같은 이미지를 갖게 만드는 존재가 아닐 수 없다.나영석 PD는 '1박2일'을 정점에 올려놓고 tvN으로 옮겨와 다양한 여행 예능 실험을 했다. 국내에만 국한되는 한계를 넘어 해외 여행으로 소재를 확대했고, 출연진도 어르신들부터 여성, 젊은 세대들까지 넓혔다. 그냥 지나가는 여행이 아닌 정착형 여행을 시도했고, 창업 소재까지 더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의 외국인들과 소통하는 새로운 지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특히 최근 방영하는 '신서유기7'은 국내 복고 콘셉트로 만들어 '1박2일' 전성기 시절의 풍경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해외와 국내를 자유롭게 오가고, 다양한 여행 콘셉트를 더해 각이 세워진 나영석 사단의 예능들은 그래서 '1박2일 4'의 그 익숙한 세계에는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1박2일 3'에 합류했다 MBN으로 이적한 유일용PD의 '자연스럽게'도 '1박2일'의 유전자가 섞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지방의 점점 비어가는 집들을 찾아가 그 곳에서 정착해 살며 지내는 모습을 담는 방식이다. '1박2일'보다는 나영석 사단이 만들었던 '삼시세끼'에 더 가깝기도 하지만, 김종민과 은지원이 고정으로 출연하고 최근 김준호까지 이 프로그램에 들락거리는 건 어딘지 '1박2일'의 그림을 떠올리게 만든다.다른 콘셉트라고 해도 이렇게 유사한 프로그램들이 많아졌고, 어떤 면에서는 더욱 다양한 새로움도 시도되고 있음은 새로 시작하는 '1박2일 4'에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1박2일 4'에 남은 가능성은 뭘까이런 부담감들을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박2일 4'가 가진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것은 점점 이탈하고 있다고는 해도 그래서 더 끈끈해진 남은 고정 시청층들을 이 프로그램이 확실하게 집어낼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이다.워낙 브랜드 가치가 높은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기본 이상은 무조건 할 수 있는 게 사실이다. 그 기반 위에 매회 지금 시대에 맞는 이슈들을 더해 색다른 스토리텔링을 한다면 고정층을 기반으로 신규 유입까지 가능할 수 있다.또한 최근 예능 트렌드 중 뉴트로 같은 복고 콘셉트가 유행한다는 건 '1박2일 4'가 제대로 스타일만 갖춘다면 의외로 힙한 예능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걸 말해준다. 여기서 전제되는 건 뉴트로가 갖고 있는 것처럼 과거의 어떤 것을 가져오되 현재 시점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지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온라인 탑골공원' 같은 뉴트로의 열풍은 과거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현재에 어떻게 소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최근 예능 주요 트렌드가 된 관찰카메라가 재미보다는 의미에 집중하자 그 반작용으로 웃음에 더 초점을 둔 예능프로그램에 대한 갈증이 커지는 것도 '1박2일 4'로서는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웃음의 강도를 확실히 높여 일요일 밤 제대로 웃게 해줄 수 있다면 집 나간 시청자들도 돌아오지 않을까.새로 시작하는 '1박2일 4'는 우려를 어떻게 기대감으로 바꿀 것인가에 관건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앞선 시즌의 익숙함 위에 어떻게 새로움을 더할 것인가. 충분한 웃음 그 자체만으로도 어떤 의미까지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1박2일 4'의 부활 여부는 이런 질문들에 제대로된 답을 내느냐에 달려 있다.

2019-11-20 12:10:06

MBC '놀면 뭐하니?' 스틸컷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판 제대로 벌인 김태호 PD, 판 제대로 살린 유재석

MBC '놀면 뭐하니?'로 김태호 PD가 돌아온다고 했을 때, 많은 대중들은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최근 '놀면 뭐하니?'는 '유플래쉬'에 이어 '뽕포유'로 드럼 지니어스이자 트로트 영재로 거듭난 유재석으로 연일 화제다. 이건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놀면 뭐하니?'가 쏘아 올린 두 개의 공어째서 '무한도전' 시즌2가 아니라 '놀면 뭐하니?'인가. 1년 여 간의 휴지기를 거쳐 복귀한 김태호 PD에게 이런 질문과 의구심은 당혹감을 느끼게 했을 게다.사실 리얼 버라이어티쇼라고 불리는 캐릭터쇼의 시대가 지나간 건 업계 사람들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무한도전' 시즌2를 하라는 이야기는 이미 지나간 시대의 것을 다시 하라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물론 '무한도전' 시즌2는 당장 수익이 되는 일이고, 그다지 큰 리스크도 없는 선택일 수 있었다. 그래서 MBC에서도 시즌2를 하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그럼에도 김태호 PD가 선을 긋고 굳이 '놀면 뭐하니?'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예능 실험을 하게 된 건, 그저 지나간 향수와 추억만을 만지작거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유튜브 시대에 걸 맞는 새로운 예능 형식의 틀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릴레이 카메라라는 실험이다. 김태호 PD는 유재석에게 건네진 카메라가 다음 사람으로 계속 이어지면서 어디로 누구에게 갈지 알 수 없는 1인 미디어적인 영상이 색다른 예능의 틀이 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실제로 이 형식 실험은 지금껏 예능에 출연하지 않던 많은 배우들을 등장시키기도 했다.문제는 지향점이었다. 릴레이 카메라가 새롭기는 해도 무한 확장될 뿐 어떤 목표나 지향점이 생기지 않는다는 건 프로그램의 완결성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실험이 유재석이 친 드럼 비트를 갖고 다양한 음악들을 만들어가는 릴레이 음악으로 시도된 이른바 '유플래쉬'로 가면서 하나의 지향점이 만들어졌다.유재석의 드럼 독주회가 그 최종 무대로 세워지고, 비트 하나가 다양한 갈래의 음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들이 채워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들이 독주회에서 소개되고 거기에 고 신해철의 5주기 추모곡까지 더해지며 하나의 완성도 높은 엔딩이 만들어졌다. 김태호 PD의 실험이 드디어 어떤 성과를 내는 지점이다.그리고 이어진 '뽕포유'는 유재석의 트로트 가수 데뷔라는 새로운 지향점을 향해 달려간다. 트로트업계의 무수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놀라운 매력과 예능감이 뒤섞이면서 동시에 유재석이 부를 '사랑의 재개발'과 '합정역 5번출구'가 완성된다.아직 발표되기도 전이지만 벌써부터 대박 조짐을 보이는 이 곡들은 아마도 유재석의 트로트 신인 데뷔의 화려한 대미를 장식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놀면 뭐하니?'가 쏘아 올린 두 개의 공, '유플래쉬'와 '뽕포유'는 김태호 PD와 유재석의 진화가 거둔 어떤 성과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김태호 PD와 유재석의 시너지가 의미하는 것물론 유재석은 '놀면 뭐하니?'를 하기 전에도 새롭게 변해가는 예능 환경 속에서 적응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들을 해왔던 게 사실이다.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유재석의 포지션은 과거와는 다른 위치에 놓여진다. 항상 중심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위치가 아니라, 이제 그 마이크를 길거리에서 만나는 보통 사람들에게 건네주고 자신은 옆 자리로 비켜난다. 그 듣는 위치와 늘 함께 하던 연예인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그 화자라는 사실은 유재석이 찾아낸 새로운 포지션이었다.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프로그램인 '범인은 바로 너' 같은 프로그램도 유재석의 새로운 도전의식을 잘 보여준다. 물론 '런닝맨'의 확장판 같은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10부작으로 완결된 스토리를 갖는 예능 프로그램의 시도인데다, 글로벌한 대중들을 겨냥한다는 점이 그렇다.하지만 이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유재석의 존재감을 가장 잘 끄집어내 이 시대에 맞는 스토리텔링과 형식으로 보여준 건 '놀면 뭐하니?'가 되었다. 그건 유재석처럼 토크면 토크, 콩트면 콩트 그 어떤 것이든 발군의 기량을 가진 인물도 제대로 된 판을 깔아줬을 때 더 빛난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한 마디로 김태호 PD가 판을 제대로 깔았고 유재석은 그 판 위에서 제대로 놀았다. 그렇다고 이것이 김태호 PD 덕 뿐만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김태호 PD 역시 고백하듯, 유재석이 있어 이런 실험들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즉, 김태호 PD도 또 유재석도 시대가 달라졌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고 서로 달라진 시대에 맞는 새로운 걸 시도해야 한다는 동일한 목표의식 속에서 이런 시너지가 가능했다는 것이다.◆연출자도 예능인도 한 시대를 넘는다는 건지난 2일 한국기업평판연구소에서는 '예능방송인 브랜드평판' 2019년 11월 빅데이터 분석 결과 유재석이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연구소 측은 유재석 브랜드에 대해 "다양한 에능을 통해 익숙함과 차별성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관심을 높이고 있다"며 "링크 분석을 보면 '공연하다, 만나다, 다양하다'가 높게 나왔고, 키워드 분석은 '일로 만난 사이', '놀면 뭐하니', '나영석'이 높게 분석됐다"고 말했다. 물론 유재석의 브랜드 평판 1위 같은 소식은 늘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건 아니지만, 최근 들어 확실히 그의 예능 존재감이 커진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중요한 건 한 시대를 구가한 예능인이나 연출자가 새로운 시대를 만나 적응해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많던 스타 PD들과 예능인들이 그 시대가 지나가면 대중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건 그래서 당연한 일처럼 여겨진다. 이경규처럼 그 오랜 시대를 여러 차례 건너며 현재진행형의 활동을 보여주는 특별한 사례를 제외하면 다른 대부분이 그렇다는 이야기다.그런 점에서 유재석이 뛰어넘은 한 시대는 보다 큰 의미로 다가온다.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에 최고 주가를 올렸던 스타가 이제 리얼리티 시대에도 여전히 최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으니 말이다.이건 또한 '무한도전'으로 예능사에 한 획을 그은 김태호 PD가 유튜브 시대에도 여전한 저력을 보여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놀면 뭐하니?'의 성공은 앞으로도 김태호 PD와 유재석이 만들어낼 많은 세계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즐거운 신호탄처럼 보인다. 새로운 예능의 재미와 웃음을 열망하는 대중들에게 이보다 좋은 소식이 있을까.

2019-11-13 11:08:07

영화 '82년생 김지영'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82년생 김지영', 악역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소설 원작 때도 그랬지만 영화 개봉 전부터 성 대결 갈등 양상으로 인한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심지어 평점테러까지 이어졌던 영화는 그러나 개봉과 함께 그 반응이 사뭇 바뀌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오게 한 걸까.◆'82년생 김지영'이라는 적지 않은 무게감영화 '82년생 김지영'은 그 원작 소설이 가진 적지 않은 무게감을 부담으로 안고 제작됐다. 2년 만에 백만 부를 돌파한 베스트셀러. 조남주 작가의 원작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순전한 소설적 성취라기보다는 이 소설이 던지는 성차별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만든 신드롬에 가까웠다.MBC 'PD수첩'의 메인 작가로 일하다 육아문제 때문에 전업 작가가 된 작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거기에는 우리네 사회가 그간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했던 무수한 사례들이 김지영이라는 인물의 가족사와 또 사회 경험을 통해 그려졌다. 여성들은 일제히 공감을 표했고, 이 소설은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의 화두로 등장했던 젠더 문제를 상징하는 작품처럼 회자됐다. 한 작가가 솔직하게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던진 목소리는 그렇게 비슷한 현실을 경험한 여성들의 공감대를 통해 신드롬이 됐다.흥미로운 건 이것이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라 아시아권 전체에서도 벌어질 신드롬의 예고였다는 점이다.2018년 12월 일본에서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은 이틀 만에 아마존 재팬 아시아문학 부문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이 소설은 일본에서 2019년 8월까지 13만 부 이상 판매됐다.지난 9월 중국에서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반응도 심상찮다. 10월16일 기준으로 중국 최대 규모 온라인 서점인 당당에서 소설 부문 1위를 기록하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중국의 소설에 대한 반응 중에는 "동아시아에 살아가고 있는 거의 모든 여성들은 김지영 안에서 자기 자신을 볼 것"이라는 흥미로운 댓글들도 있었다.그만큼 젠더 문제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그간 가부장적 체계 속에서 억압된 삶을 살아온 아시아권에 보편적인 공감대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하지만 이런 무게감은 일반적인 대중을 상대해야 하는 영화로서는 고스란히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실제로 영화는 영화화가 결정되던 2017년부터 지금껏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2018년에 정유미가 주연배우로 결정됐을 때도 비난의 목소리가 배우에게 향한 바 있고, 영화 개봉에 즈음해서는 평점 테러가 이어졌다.이유는 이 콘텐츠가 남녀 간의 성대결을 통해 갈등을 부추긴다는 것. 영화가 개봉되기도 전부터 쏟아져 나온 선입견과 젠더의식이 성대결을 야기한다는 오인은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발목을 잡는 듯 싶었다.◆'82년생 김지영', 개봉 후 공감으로 돌아선 이유하지만 영화는 개봉 후 반전을 일으켰다.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가 평점테러를 할 만큼 성별 갈등을 부추기는 영화가 아니라는 걸 공감하게 되면서다. 사실 이건 젠더 문제에 대한 오인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사실 여성들이 겪어온 성차별의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하려는 건, 남성들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여성과 남성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적 현실 속에서, 여성의 불행은 또한 성별을 떠나 우리네 사회 구성원 모두의 불행이기도 하기 때문이다.영화는 젠더 문제가 바로 이렇게 어느 한 쪽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가야 하는 문제라는 걸 오롯이 드러낸다. 육아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경력 단절이 된 김지영(정유미 분)이 별 문제 없다고 스스로도 생각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른 사람에 빙의돼 버리는 정신과적 문제를 얻는다. 이를 알게 된 가족들(남편을 비롯해 엄마, 아빠, 동생, 언니 등)이 그를 돕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가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구성과 내용만으로 보면 사회극이라기보다는 가족극에 더 걸맞다. 실제로도 영화는 가족 간의 과거사가 현재의 결과들과 부딪치면서 만들어내는 후회와 화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화를 보며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는 지점은 그래서 여성들이 겪는 공감대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살아왔던 시절의 가부장적 분위기가 현재 그 결과로서 만들어낸 자식의 비극을 목도하는 지점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이 적지 않다.◆'82년생 김지영'이 악역을 세우지 않은 건무엇보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소설보다 훨씬 담담하게 그려진다. 소설은 마치 르포에 가깝게 당대의 여성들이 겪은 차별의 에피소드들이 김지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줄줄이 나열했다. 영화는 그보다 김지영의 문제를 다루면서도 그 주변 가족들이 가진 저마다의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또한 그 문제는 굉장한 사건을 통해 보여지기보다, 지극히 일상적인 삶 속에 우리도 모르게 먼지처럼 누적되어 있는 소소한 차별과 편견, 선입견 등의 디테일들을 통해 그려진다.김지영이 집안에서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육아의 풍경들을 짧게 보여준 후, 저녁 노을이 퍼져가는 시간 베란다에 앉아 멍하니 앉아 있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하는 건 그래서 이 영화가 가진 스토리텔링의 담담함을 잘 보여준다. 성차별의 문제는 사실 특별한 사건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일상 속에서 잘 들여다보지 않으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넘어가는 그런 것이라는 걸 그 장면이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이다.특히 이 영화에서 주목되는 건 악역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시어머니나 아버지는 시대착오적인 말들을 김지영에게 하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악역으로 그려지진 않는다. 악의가 없이 습관적으로 내뱉는 말들이라는 것. 그건 어쩌면 그 가부장적 시대를 살아왔던 분들이 당연히 감내해왔던 것들이 사실은 그 시대에서도 비극이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김지영의 남편 정대현(공유 분)도 어떻게든 아내를 돕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그 누구보다 그 아픔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육아를 전혀 책임지지 않는 사회와 그래서 경력단절 같은 희생을 여성이 감내해야 하는 그 현실 앞에서 남편도 아내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게 된다.결국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성별 갈등을 부추긴다기보다는 우리네 사회가 만들어낸 비극을 온전히 떠안고 있는 김지영이라는 인물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며 그 고통을 공감해보는 것이다. 김지영을 둘러싼 남편의 시선과 부모 그리고 남매, 직장 상사와 동료의 다양한 시선으로 그를 들여다보면 이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는 더더욱 분명해진다. 김지영의 문제는 그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것. 그걸 이 영화는 지극히 차분한 어조로 담담히 보여주고 있다.

2019-11-06 13:57:43

tvN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2' 스틸컷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먹방에도 이런 완성도가?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2'

먹방에도 이런 완성도가 가능할 거라고 그 누가 생각했을까. 물론 해외의 유명 음식 다큐멘터리에는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영상이 적지 않다. 하지만 우리네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 정도의 깊이와 재미 그리고 연출미학이 균형을 이룬 프로그램은 많지 않다.◆'바람의 파이터'가 도장 깨기 하듯tvN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라고 하면 비교적 젊은 세대는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를 먼저 떠올릴 것 같다. 하지만 실상 이 프로그램이 그 제목과 캐릭터 연출 방식으로 차용한 건, 나이든 세대가 기억하는 고우영 화백의 '대야망', 또 그 다음 세대가 아는 방학기 화백의 '바람의 파이터' 속 최배달(본명 최영의)일 것이다.도복 하나 달랑 어깨에 들쳐 메고 일본은 물론 중국 그리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도장 깨기'를 했던 전설적인 실존인물. 어딘지 풍성한 몸에 도복 대신 백팩을 한쪽 어깨에 둘러매고 가판 음식들이 즐비한 거리를 어슬렁어슬렁 걸어 들어가는 백종원의 모습은 이제 그 현지 '음식 깨기'를 할 것이라는 일종의 신호와 같은 연출이다.최배달이 그 엄청난 정권과 발차기로 소의 뿔을 꺾고 넘어뜨렸듯, 백종원은 잘 알지 못하면 시도하기조차 어딘지 꺼려지는 시장 골목 음식들이나 길거리 음식들을 너무나도 맛있게 먹어치워 버린다.물론 그건 일종의 유머를 품고 있지만, 거기에는 의미도 담겨있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분들이 점점 늘고 있어 외국에 대한 감수성도 이제는 달라졌지만, 그렇다고 현지인들이 먹는 음식을 먹어본다는 건 꽤 만만찮은 도전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현지 길거리에서 풍겨 나오는 낯선 음식 냄새들과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조차 알아보기 힘든 음식 앞에서 머뭇거려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못 먹는 음식이 들었을 것 같고,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맛일 것 같은 불안감. 게다가 현지인들이 가는 음식점들은 우리네 맛집들이 그러하듯이 잘 꾸며진 레스토랑과는 거리가 멀다.심지어 길거리 노점이거나,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 들어가야 찾을 수 있고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다. 그러니 먹기도 전에 마음부터 불편해진다.백종원이 '바람의 파이터'가 되어 그 골목으로 들어가 '음식 깨기'를 한다는 연출적 미학과 유머는 그래서 통한다. 심지어 이 사람은 쉽게 도전하지 못할 현지식들을 너무나 맛있게 먹어치운다. 그러면서 그 곳에 가면 밤에 잠을 못 이룬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에 뭘 먹을까 설레고 고민돼서.◆먹방도 백종원이 하면 다르더라물론 백종원이 '음식 깨기' 하듯 음식만 잘 먹는 건 아니다. 그는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2에서 찾은 터키, 하노이, 뉴욕, 시안, 멕시코시티, 타이베이의 해박한 현지 음식에 대한 식견을 알려준다.터키 하면 떠올리는 음식이 케밥 정도지만 백종원은 귀국길에 발목을 잡는 터키식 해장국 이시켐베 초르바스라는 음식을 소개해준다. 이시켐베가 내장을 뜻하고 초르바스가 국이나 수프를 뜻한다는 걸 알려주는 것으로 대충 이 음식이 내장탕에 해당한다는 걸 말해준 뒤 소금과 후추, 고춧가루 같은 걸 자기 입에 맞춰 먹는다며 먹는 방법 또한 상세히 설명해준다.하노이라고 하면 베트남 쌀국수만 떠올리겠지만, 백종원은 길거리에서 찹쌀밥에 녹두를 썰어 얹어 만든 쏘이 쎄오를 소개한다.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라는 제목에 걸맞게 길거리 한 편에 쪼그리고 앉아 현지 꼬마와 함께 맛나게 그 음식을 먹는 모습은 우리에게도 베트남에 갔을 때 편견어린 시선으로 어딘지 불결할 것 같아 시도조차 못해봤던 현지인들의 아침 식사 풍경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멕시코시티라고 하면 타코를 먼저 떠올리지만 백종원은 시장 통에서 파는 판시따라는 국물이 걸쭉한 음식에 푹 빠진 모습을 보여준다. 멕시코 속 한국이라며 이른바 '멕시코리아'라고 자막이 붙은 이 음식을 국물 맛만 본 백종원은 우리네 시장통에서 나올 법한 "아따-"라는 감탄사로 친근하게 만들어버린다. "끝내준다. 여기 한국이에요"라는 그의 한 마디는 아마도 멕시코시티를 찾는 이들이 이 음식을 찾아 시장통을 어슬렁대게 만들지 않을까.'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했던가. 그가 음식을 이토록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이유는 경험과 정보를 통해 이미 아는 맛이기 때문이다. 백종원은 바로 자신이 아는 맛을 정보로 제공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도 간접적으로 그 맛을 유추하게 만든다. 이러니 현지에서는 낯설어 도전조차 하기 꺼려졌던 음식을 보며 침이 고이는 기이한 경험을 시청자들은 하게 된다.또한 백종원 특유의 유머감각은 음식은 물론이고 현지인들에 대한 어색함이나 불편함도 지워낸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옆 사람과 눈빛만으로 함께 그 음식에 대한 기대감을 공유하고, 때론 현지인들이 먹는 방식을 따라함으로써 어떤 공감대를 만들기도 한다.◆거의 예술적인 다큐 수준의 연출미학하지만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을 그저 먹방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건 예술적인 수준의 연출미학 덕분이다. 이미 시즌1에서부터 화제가 됐던 카메라를 역으로 돌려 그 음식의 재료를 찾아가는 연출방식은 시즌2에서도 여전히 흥미롭게 보인다.우리에게 흑당밀크티로 잘 알려진 타이베이의 전주나이차의 '진주'에 해당하는 알갱이가 남미가 주산지인 카사바 전분으로 만들어진다는 백종원의 설명에 따라 카메라는 밀크티 위에 얹어진 진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뒤로 돌아가는 영상을 통해 보여준다.무수히 많은 과정들을 거치고 결국은 맨 마지막에 드론으로 촬영된 푸르른 자연이 비춰지는 모습은 우리가 먹는 음식들이 걸어온 길을 새삼 환기시킨다. 자연 어딘가에서 자라고 채취되어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조리되어 만들어져 우리 밥상에까지 올라온 재료들이 남다른 친근감으로 다가온다.자연 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바뀐 결과물을 그 원형과 이어주는 이런 연출방식은 음식에 대한 친근함을 살리는 효과도 만들어준다. 이를 테면 끓이고 튀기고 해서 그 형체를 알 수 없는 음식이 주는 낯설음을 그 원재료를 보여줌으로써 친숙하게 해주는 것.또 특정 지역의 어떤 음식에 얽힌 역사를 알려주기 위해 옛날 사진을 가져와 거기 등장하는 인물들과 요소들을 CG를 활용해 동영상으로 재구성하는 연출방식도 사용된다. 이런 연출은 보다 쉽게 그 음식의 역사를 알게 해주고, 나아가 음식을 통해 그 나라와 지역의 문화 또한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게 해준다.백종원이라는 먹방 파이터와 그의 식견을 통해 깨버리는 외국 현지 음식에 대한 선입견 그리고 정보를 영상화하는 효과적이고 예술적인 연출방식.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는 먹방에도 이런 완성도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외국에 나가 바로 실전에도 쓸 수 있을 만큼의 실용성까지 가진.

2019-10-30 11:05:16

JTBC '비긴어게인3' 출연진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비긴어게인', 금요일 밤의 고막힐링 시간

금요일 밤, 불금이라며 친구, 연인과의 약속이 없는 분들은 이제 TV 앞에 앉아 조용히 귀를 열어 놓는다. 거기 이제 고막을 간지럽히는 힐링의 시간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고막힐링의 시간을 만든 JTBC '비긴어게인'. 무엇이 시청자들을 이 음악 프로그램에 푹 빠뜨렸을까.◆영화 '비긴어게인'이 모티브가 된 음악 프로그램JTBC '비긴어게인'은 동명의 영화로 화제가 됐던 존 카니 감독의 '비긴어게인'이 모티브가 됐을 거라 여겨진다. 물론 '국내의 아티스트들이 해외에서 벌이는 버스킹'이라는 이 프로그램만의 고유성과 차별성이 없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영화 '비긴어게인'에서 댄(마크 러팔로)의 기획대로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가 거리 밴드를 결성하고 뉴욕의 거리를 스튜디오 삼아 노래를 녹음하는 그 과정은 충분히 이 프로그램에 영감을 줬을 게다.길거리에서 들려오는 사람들 소리와 지나는 자동차 소리 같은 현장의 소리들이 녹음과정에 들어가면서 훨씬 더 일상적으로 느껴지는 음악의 질감은 영화 속에서나 이 예능 프로그램에서나 모두 음악이 달리 들리게 되는 중요한 포인트이기 때문이다.거기에는 그간 우리가 무대 위에서만 들어왔던 음악에 원천적으로 막혀 있던 일상성과 즉흥성이 더해진다. 음악은 그렇게 우리가 올려다보는 무대 위에 존재하던 어떤 것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다.'비긴어게인3'에서 이탈리아 피에트라 다리에서 피아노를 놓고 연주하는 한 외국인 버스커 옆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다, 갑자기 즉흥으로 하는 연주에 헨리가 바이올린을 얹는 장면이나, 이태리 아말피 성안드레아 성당 앞 계단에 앉아 '오 솔레 미오(O' Sole Mio)'를 주변에 앉아 있던 아말피 사람들과 함께 부르는 장면 같은 건 무대에서 우리가 발견하기 쉽지 않은 기적 같은 순간들이다.누군가 그 공간에서 노래나 연주를 시작했고, 그것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함께 참여하게 만든다. 또 헨리가 가르다 호수를 배경으로 홀로 버스킹을 하고 있을 때 한 이태리 아이가 즉석에서 브레이크댄스를 하겠다고 나서 헨리의 연주와 춤이 어우러지는 장면도 그렇다. 그런 건 맞춘다고 나올 수 있는 음악의 풍경이 아니다. 무작정 악기 들고 현장으로 나섰기에 만날 수 있는 보석 같은 우연의 순간일 뿐.◆여행과 음악의 만남, 버스킹 예능의 매력여행이 갖는 우연적 요소는 리얼을 추구하기 시작한 예능 프로그램이 여행을 소재로 했던 중요한 이유였다. 이제 음악 프로그램 역시 여행이란 소재를 더해 우연적인 음악의 탄생을 끄집어내고 있다. 2017년 시작한 '비긴어게인'은 처음에는 이소라, 유희열, 윤도현, 노홍철이 함께 하는 음악여행처럼 꾸려졌다.노홍철 같은 비음악인이 참여했던 건, 이 음악 예능이 자칫 너무 음악적인 것으로만 흐르지 않고 예능적인 맛 또한 더해주길 바랐기 때문이었을 게다. 실제로 그 첫 시즌에는 윤도현과 유희열, 노홍철이 게임 같은 걸로 만들어가는 예능적 케미의 재미가 압도적인 음악의 맛과 어우러졌다.하지만 2018년 돌아온 '비긴어게인2'는 예능적인 강박을 벗어내고 김윤아, 이선규, 윤건, 로이킴이, 그리고 박정현, 하림, 헨리. 이수현이 각각 팀을 꾸려 온전히 특정 외국의 어느 지역에서 버스킹을 하는 그 순간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올해 새로이 시작한 '비긴어게인3'는 이전 시즌에서 호평 받았던 박정현, 하림, 헨리, 이수현에 임헌일과 김필을 더해 막강한 라인업을 꾸렸고, 이적, 태연, 폴킴, 적재, 김현우가 또 한 팀을 꾸려 또 다른 색깔의 버스킹을 보여줬다. 오롯이 음악 버스킹의 순간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이제 '비긴어게인'을 알게 됐고, 실제로 금요일 밤 한 주의 피로를 이 프로그램을 보며 풀어내는 새로운 관전 문화까지 생겨났다.왜 국내에서는 버스킹을 하지 않느냐는 대중들의 요구에 이번 시즌3에서는 떠나기 전 포장마차와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보다 해외가 더 큰 감흥을 주는 건, 그 곳의 이국적인 풍광과 문화 속에서 우리네 아티스트들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그 순간의 짜릿함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나라와 언어는 달라도 음악으로 하나 되는 그 순간이 주는 공감의 쾌감은 이른바 버스킹 예능이 끄집어낸 음악의 또 다른 매력이 되었다.◆경쟁보다는 하모니를 더 원하게 된 대중들사실 한 동안 음악 예능 프로그램의 트렌드는 오디션이었다. Mnet '슈퍼스타K'가 그 화려한 성공의 막을 올렸고, 그 후로 지상파에서도 SBS 'K팝스타' 같은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왔다. 또 Mnet 아이돌 오디션 '프로듀스101'은 많은 논란들이 있었지만 여기서 배출된 워너원이나 아이오아이 같은 아이돌 그룹들은 단기간에 엄청난 인기를 끌어 모으는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프로듀스101'의 투표 조작 논란이 벌어지면서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급속도로 식어가고 있다.이러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들의 냉담한 반응은 단지 조작 논란 때문에 생겨난 게 아니다. 이미 이전부터 오디션이 갖는 경쟁적인 분위기에 대중들도 지쳤던 것이 진짜 원인이다. 논란이 생기기 이전부터 준비했던 Mnet이 새로 내놓은 'World Klass'가 스무 명의 연습생을 모아놓고 경쟁이 아닌 협력을 강조하고 평가도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를 하게 된 건 이런 대중들의 달라진 정서 때문이다.JTBC는 일찍이 경쟁 오디션을 하는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경쟁보다는 하모니를 추구하는 방식을 시도한 바 있다. 예를 들어 '팬텀싱어' 같은 음악 프로그램은 크로스 오버 남성 중창단을 꾸리고 대결하는 오디션으로 만들어졌지만, 대결보다는 서로 함께 하모니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더 집중했다. 계속 팀원이 바뀌는 시스템은 지금의 경쟁자가 훗날의 동료가 된다는 의식을 심어주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고 박수쳐주는 오디션이 가능했던 것.여러 악기 연주자와 아티스트들이 모여 밴드를 구성한다는 '슈퍼밴드'도 같은 기조 위에서 만들어졌다. 그들은 대결하지 않았다. 함께 다양한 악기 연주와 목소리들을 맞춰보고 거기서 나오는 독특한 음악의 다채로운 색깔을 보여줬을 뿐이다.'비긴어게인'은 바로 이런 음악 프로그램의 새 경향인, 경쟁이 아닌 하모니에 초점이 맞춰진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음악을 통한 힐링'까지 담아내는 프로그램으로 자리했다. 음악은 방송 프로그램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본질적인 소재지만, 그걸 담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다. 한때는 쇼였고, 한때는 순위 프로그램이었으며 때론 오디션 경쟁이었지만 지금은 다양성과 공감과 힐링이 그것이다. 금요일 밤을 기대하게 하는 고막 힐링의 시간. '비긴어게인'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문화평론가

2019-10-23 11:12:58

'나의 나라' 이성계 역 김영철. JTBC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나의 나라', 조선 건국을 청춘들의 관점으로 보면

조선 건국은 사극의 단골소재다. 그런 점에서 최근 방영하고 있는 JTBC '나의 나라'는 소재적 약점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막상 뚜껑을 연 '나의 나라'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어떤 점이 이런 반응을 만든 걸까.◆무수히 많았던 조선 건국 사극, 그 이유1996년부터 1998년까지 무려 159부작으로 방영한 KBS '용의 눈물'은 최고시청률 49.6%를 기록해 이른바 정통사극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용의 눈물'이 1년 반에 걸쳐 다양한 이야기를 몰입도 있게 끌어갈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을까. 그건 고려 말 조선 초 역사적 사실에 담긴 드라마틱한 소재에 있다.구세력의 적폐를 깨치고 새 나라를 세운다는 웅장한 목표가 담겨 있고, 그 과정에서 이성계라는 인물의 위화도 회군, 그 과정에서 부딪치는 최영 장군과의 일전, 왕좌에 앉은 태조와 야심가인 아들 이방원의 팽팽한 대결구도까지 역사 자체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졌다.'용의 눈물'의 성공 이후, 조선 건국의 역사는 사극의 단골소재가 됐다. 특히 대선이나 총선 같은 정치적 이슈들과 맞물려 조선 건국의 사극은 당대의 대중들이 원하는 리더상이나, 세상에 대한 갈망을 담아내는 그릇처럼 등장했다.예를 들어 2014년 방영한 KBS '정도전'은 조선 건국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왕보다는 조선의 시스템을 만들어낸 정도전에 집중했다. 이것은 당시 대선으로 대통령이 바뀌어도 그다지 근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우리네 현실에 대한 대중들의 갈증이 투영된 것이었다. 세상은 리더 한 사람에 의해 바뀌는 게 아니라, 법 제도 같은 시스템이 제대로 정비됨으로서 바뀔 수 있다는 의식이 '정도전'에는 담겨 있었다.2015년 방영한 SBS '육룡이 나르샤'는 조선 건국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단지 이성계나 이방원, 정도전 같은 역사적 인물들 만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걸 분이(신세경 분), 땅새(변요한 분), 무휼(윤균상 분) 등 가상의 민초 조력자들을 더해 그려냈다. 촛불집회 등을 통해 부각된 시민의식 영향으로, 실제 역사의 주인공은 그 현장에 있었던 무수한 민초들이라는 관점이 투영된 것이다.이처럼 사극에서 조선 건국 이야기가 여러 차례 반복되면서도 시청자들 사랑을 받았던 건, 그 특수한 역사적 시점이 가진 서사의 매력 자체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때 그 때 달라진 대중들의 정서나 관점들로 재해석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19년 다시 조선 건국을 다루는 JTBC '나의 나라'는 어떤 관점을 담았을까.◆청춘들의 절망과 야망, 생존이 투영된 '나의 나라''나의 나라'는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이 조선이라는 새 나라에 대한 욕망이 저마다 다른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거기에는 '육룡이 나르샤'처럼 역사적 인물과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인물들이 포진해 저마다 각가 꿈꾸는 나라에 대한 신념을 드러낸다.예를 들어 위화도 회군을 해 결국 왕좌를 차지하는 이성계(김영철 분)나 그의 가장 강력한 오른팔이면서 동시에 그를 두렵게까지 만드는 야망을 가진 이방원(장혁 분)에게 조선은 권력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할 목표가 된다. 따라서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이방원이 앞장서지만, 그것은 훗날 역사가 말해주듯이 부자 간, 또 왕자들 간에 벌어지는 권력 투쟁으로 이어진다. 국가라는 대의가 아니라 자신이 왕좌를 차지하는 권력의 의미로서 그들은 '나의 나라'라는 표현을 쓴다.하지만 이 사극의 실질적인 주인공들이자 민초로 등장하는 서휘(양세종 분), 남선호(우도환 분) 그리고 한희재(김설현 분)이 저마다 꿈꾸는 '나의 나라'는 그와 다르다. 이들 청춘들은 저마다 날개가 꺾여있다. 고려제일검으로 불렸으나 억울한 누명을 쓴 채 팽형을 당한 아버지 때문에 무엇 하나 할 수 있는 일이 막혀 버린 서휘, 서얼이라는 이유로 어머니는 자결하고 자신은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야 하는 남선호. 그리고 고려의 무능을 벽서로 써 붙이고 다니는 한희재가 그렇다.이들은 모두 새로운 나라를 희구하지만 그건 권력에 대한 야심이 아니다. "밥이 나라"라며 "쌀이 뒷간에서 나면 뒷간이 내 나라"라고 말하는 서휘가 꿈꾸는 나라는 생계 걱정하지 않게 해주는 나라이고, 서얼 팔자가 지긋지긋한 남선호에겐 그 팔자를 뒤집을 수 있는 새로운 나라다. 한희재는 기생집에서 정보장사를 하며 살아가지만 그것이 결국 권력에 빌붙어 살아가는 거라는 걸 깨닫고 스스로 힘을 갖겠다 마음먹는다. 그에게 나라란 종속에서 벗어난 주체적인 삶을 의미하는 셈이다.결국 '나의 나라'가 조선 건국 이야기에 투영한 건 지금의 청춘들의 정서다. 물론 태생적으로 많은 걸 가진 청춘들은 이방원처럼 권력의 야망을 꿈꾸겠지만, 그렇지 못한 청춘들은 어떻게든 서휘나 남선호, 한희재처럼 저마다 꿈꾸는 나라의 의미가 다를 것이다. 이처럼 앞길이 막혀버린 청춘들의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나의 나라'가 그리는 조선 건국의 이야기는 현재적 의미와 공감을 갖게 된다.◆역사와 상상력의 균형으로서의 '나의 나라''나의 나라'는 최근 들어 사극이 역사를 벗어버리고 심지어 판타지로 흘러가는 경향에서 벗어난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최근 들어 KBS '조선로코-녹두전'이나 MBC '신입사관 구해령', JTBC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처럼 로맨스 판타지에 빠져버린 사극들이 쏟아져 나온 상황에, 역사의 진중함과 상상력의 확장을 적절히 균형 있게 잡아낸 '나의 나라'는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면이 있다.한때 사극이 역사를 벗고 상상력을 더하는 것이 하나의 시대적 조류처럼 여겨진 적 있었다. 그래서 정통사극에서 퓨전사극으로 또 판타지 사극이나 장르 사극, 팩션으로 진화해왔다. 하지만 이처럼 역사를 벗어버리자 사극 특유의 진중함이 사라지면서 힘이 빠져버린 것도 사실이다. 특히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로맨스 사극들은 사극이라기보다는 조선 배경의 로맨틱 코미디에 가깝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나의 나라'는 이미 '육룡이 나르샤'가 시도한 것처럼 인물 구성 면에서 역사와 상상력의 적절한 균형을 만들었다. 그래서 조선을 세운 역사적 인물들의 묵직한 이야기를 그려가면서도 그 안에서 상상력으로 덧붙인 새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역사와 상상력 사이의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이미 다 알고 있는 팩트임에도 색다른 스토리가 시너지를 만든 것. '나의 나라'가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이유다.문화평론가

2019-10-16 11:34:28

tvN '쌉니다 천리마마트' 스틸컷. 문석구(이동휘 분) 천리마마트 점장과 정복동(김병철 분) 천리마마트 사장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쌉니다 천리마마트', 의외로 강력한 B급 병맛의 세계

김규삼의 웹툰 원작을 드라마화한 tvN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드라마로서는 낯설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B급 병맛 코드를 전면에 내세워 한 마디로 황당한 장면들이 연달아 펼쳐진다. 그런데 의외로 이 작품은 꽤 강력한 호응을 얻고 있다. 그 이유는 도대체 뭘까. ◆원작 웹툰의 드라마화, 오랜 시간 걸린 까닭최근 방영되고 있는 tvN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지난 2010~2013년 네이버 웹툰에 연재됐던 원작을 드라마화한 작품이다. 원작은 당시 누적 조회수 11억 뷰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사실 2013년에 연재가 끝난 작품이 이제 2019년에 들어서야 드라마화됐다는 건 조금 이례적인 느낌을 준다. 실제로 이 작품은 이미 2013년에 김종학프로덕션이 영상화 판권을 구매해 시트콤으로 만들려 했으나 무산됐다. 최근 네이버가 스튜디오N을 설립해 웹툰의 드라마화를 전격적으로 추진하고 나서면서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드라마화가 성사됐다.만일 2013년에 이 작품이 드라마화되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화제에 호응까지 얻어갈 수 있었을까. 그렇지 못했을 것 같다. 지금이 훨씬 더 B급 병맛 코드에 대한 대중적 이해와 지지가 높아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진지함만이 드라마의 미덕처럼 여겨지던 2013년이었다면 이른바 '저세상 유머'를 보여주는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성공을 쉽게 장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쌉니다 천리마마트'는 시작부터 당혹스러운 B급 유머로 문을 열었다.대뜸 대마그룹 회장이란 사람이 자사 주력 상품이라며 '털이 나는 광택제'를 소개한다. 그 말도 안되는 상품에 회장 눈치 보며 동조하는 이사진들 사이에서 오로지 한 사람 정복동(김병철 분)만이 반대의사를 내놓고, 회장은 갑자기 이것이 이사들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충언을 한 정복동을 추켜세운다.그런데 이 상황은 실제로 '털이 나는 광택제'가 출시되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오면서 역전된다. 결국 정복동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 때문에 대마 그룹의 유배지나 다름없는 '천리마 마트' 사장으로 좌천된다.이런 식이니 병맛을 소재로 하는 웹툰을 잘 모르는 시청자라면 '이게 뭐지'하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개연성을 찾기 힘들어 허무하고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세계에 자꾸만 빠져든다. 도대체 무슨 마법을 쓴 것일까.◆대충해도 잘 된다는 의외의 카타르시스정복동이 천리마마트로 오면서 하는 일련의 행보들은 더더욱 황당하다. 망하기 일보직전인 마트에 직원들을 더 뽑는 정복동은 가수 지망생, 명퇴자, 전직 깡패 심지어는 빠야족 족장과 부족들까지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한다.게다가 부족한 카트 대신 카트 역할을 빠야족들에게 시키고 고객만족센터에 전직깡패 오인배(강홍석 분)에게 왕이 입던 곤룡포를 입혀 왕좌에 앉게 함으로써 불만을 가진 고객들이 무릎 꿇고 불만 사항을 얘기하게 만들며, 취직을 하지 못하고 죽은 아버지를 취직시켜달라며 온 아이에게 아버지는 물론이고 아이까지 취직시켜 서점 겸 공부방을 만든다.이 같은 정복동의 행위는 한 마디로 천리마마트를 망하게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어렵게 대학을 졸업해 시험을 치러 천리마마트에 취직한 점장 문석구(이동휘 분)가 정복동의 이런 선택과 결정에 반대의사를 내놓는 건 그래서 당연해 보인다.하지만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이렇게 황당한 결정과 선택들을 하면서도 의외로 잘 되는 천리마마트를 그려낸다. 빠야족들은 광어 해체쇼를 하는 등 놀라운 숨은 재주들을 선보이고, 마트에서 열린 문화행사에서 가수지망생 조민달(김호영 분)의 모두를 놀라게 한 데스메탈 공연은 갑자기 오인배가 무대를 제압(?)하려 하자 조민달의 아들이 올라와 눈물로 호소하는 장면을 연출하면서 성공적으로 끝이 난다. 한 편의 뮤지컬 퍼포먼스라 여기게 만들었던 것.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이들이 정직원이 되고, 그들이 하는 이상한 행위들이 오히려 마트의 매출을 쑥쑥 올리는 결과로 나타나는 과정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그건 우리가 흔히 드라마를 통해 봐왔던 스토리텔링의 개연성이나 현실성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개연성을 파괴하고 기승전결이 아닌 '기승전병(병맛)'으로 끝나는 과정이 주는 의외의 통쾌한 카타르시스가 만들어진다. 그건 한 마디로 말해 '대충 해도 잘 된다'는 상황이 주는 카타르시스다.◆B급 병맛 코드가 가진 매력의 정체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하고 또 치밀한 계획을 짜야 하며 누군가의 정치적 음모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항상 촉을 세워야 한다. 아마도 우리는 현실에서 이렇게 배웠을 게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 현실의 작동방식이기도 하다.하지만 과연 우리네 현실은 엄청난 노력을 하면 성공을 보장해줄까.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천해 나가면 성공할 수 있을까. 지금의 청춘들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즉 노력을 해도 애초에 출발선상을 달리 만드는 태생적 한계가 존재하고, 그래서 이른바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 있다는 걸 실감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 누구보다 능력이 갖추고 있어도 정직원이 되지 못해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취직이 어려워 창업을 해도 이런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기껏 열심히 해서 가게를 살려놓으면 건물주가 세를 올려 결국 나갈 수밖에 없게 되는 게 우리네 현실이 아닌가.바로 이 지점에서 B급 병맛 코드의 카타르시스가 만들어진다. 이를테면 저들이 사는 세상이 A급이고 거기에는 그들만의 룰이 존재한다면, 이곳에 사는 스스로를 B급이라 여기는 이들은 그 룰 자체를 비웃는 것으로서 병맛 코드의 카타르시스가 생겨난다.노력하지 않아도 성공하고, 대충해도 잘 되고, 심지어 망하는 선택을 하는데도 잘 되는 천리마마트는 그래서 그 자체로 불공평한 현실의 아이러니를 담아낸다. 그건 거꾸로 말해 누구는 노력해도 안 되고 열심히 성실하게 해도 안 되지만 누군가는 대충해도 잘 되는 현실세계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쌉니다 천리마마트'는 기존 드라마들 속 리얼리티와의 부조화를 드러내며 처음엔 낯설고 당혹스럽게 다가오지만, 시청자가 차츰 리얼리티를 포기하는 순간부터 기묘한 병맛의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마치 A급의 세계에서 늘 개연성의 금과옥조로 여기던 '기승전결'의 구조를 '기승전병'으로 포기하게 만들면서 생겨나는 해방감 같은 것이다.무엇보다 거기에는 우리네 현실을 병맛으로 풍자하는 속 시원한 웃음이 있다. 제 아무리 노력해도 하늘의 별따기가 된 정직원이 되는 길이나 한번 엇나가면 다시는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 나아가 외국인 노동자의 차별받는 현실을 꼬집는 날카로운 풍자가 거기에는 어른거린다.또한 '고객이 왕'이라는 때때로 갑질을 정당화하는 명제를 뒤집어 '직원이 왕'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돈으로 갈음되는 갑을 관계에 대한 통렬한 비판까지 느껴진다. 이것이 처음에는 '이게 뭐지?' 했다가도, 차츰 낄낄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B급 병맛의 매력이 아닐까.문화평론가

2019-10-09 13:23:51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스틸컷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동백꽃 필 무렵', 촌므파탈 드라마의 탄생

소소하고 볼거리도 그리 없어 보이는데다, 배경도 어느 시골마을에 불과하고 인물들도 소외된 인물들 천지인 드라마. KBS '동백꽃 필 무렵'은 가진 것보다 못 가진 게 더 많은 드라마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10% 시청률을 내며 열광적인 반응을 얻는 건 왜일까.◆김유정의 소설이 아니다, '동백꽃 필 무렵'김유정의 소설인 줄 알았다는 시청자들이 적지 않지만 '동백꽃 필 무렵'은 그 소설과는 무관하다. 다만 분위기는 여러 모로 비슷하다. 어느 작은 바다를 낀 지방 작은 마을의 풍광과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만들어내는 '촌스러움' 때문일 게다. 그런데 보통 우리가 '촌스럽다'고 말할 때 느껴지는 부정적인 뉘앙스는 없다. 그것보다는 작은 마을이 갖는 사람냄새가 더 느껴진다.사실 엄밀히 말해 도시가 아닌 시골마을이 배경이 되는 드라마가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농촌 배경의 드라마나, 사투리가 전면에 등장하는 드라마 같은 것들이 최근 들어 잘 보이지 않는 건 그래서다. 가끔 시골마을이 등장하는 건 스릴러 같은 살인사건들이 벌어지는 장소로서 나오는 정도랄까. 이렇게 된 건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도 어떤 편견이나 틀 같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기획에서부터 될 드라마들의 요소들을 꼽는데 시골이나 농촌은 아무래도 트렌드와는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그런 점에서 보면 마치 김유정 소설에 나올 것 같은 배경과 구수한 사투리가 대사에 묻어나는 '동백꽃 필 무렵'은 특이한 드라마다. 도대체 무슨 용기로 이런 시도를 한 것이고 기획을 허용한 것일까. 거기에는 KBS '쌈마이웨이'를 쓴 임상춘 작가에 대한 신뢰가 느껴진다. '쌈마이웨이'에서도 중심에서 밀려난 청춘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위로를 담았던 작가가 아닌가. 그에게서는 이런 작은 지방 마을도 너무나 아름다워 '한번쯤 저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할 것 같은 든든함이 있다. 특히 소외된 존재들에게서 반짝반짝 빛나는 가치를 끄집어내는데 있어서는 더더욱.◆'쌈마이웨이'에 이은 '동백꽃 필 무렵'의 따뜻한 시선'쌈마이웨이'는 제목에 다양한 의미들이 담겨 있었던 드라마다. 그것은 본래 태권도가 꿈이었지만 동생 병원비 때문에 부정경기를 하고 영원히 퇴출되어 근근이 살아가던 고동만(박서준 분)이 쌈(싸움), 즉 격투기로 마이웨이, 즉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는 제목이면서, 이른바 별 볼일 없는 3류를 뜻하는 일본어에서 유래된 '쌈마이' 취급을 받는 청춘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웨이'를 간다는 뜻을 담은 제목이기도 하다. 드라마에서 모든 청춘들은 마이너 취급을 받고, 메이저는 항상 저 편에 존재하며 손에 잡히지 않는다. 태권도 선수가 꿈이지만 현실은 진드기 잡는 일을 하는 고동만이나, 백지연 같은 아나운서가 꿈이었으나 현실은 백화점 안내원 일을 하는 최애라(김지원 분)는 각각 격투기 선수와 격투기장에서 선수를 소개하는 아나운서로서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이 바로 '메이저'라고.'동백꽃 필 무렵'은 '쌈마이웨이'의 이런 시각의 연장선이 있는 드라마다. '쌈마이웨이'의 청춘들이 꿈이 꺾여 마이너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동백꽃 필 무렵'은 옹산이라는 가상의 시골 마을의 삶 자체가 소외되어 있다. 드라마는 그 곳에서 술집을 내고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미혼모 동백(공효진 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작은 마을인 만큼 남녀가 길거리를 단 몇 분만 함께 걸어도 둘이 이제 곧 결혼할거라는 소문이 나는 그런 곳이다. 그러니 이 곳에서 미혼모로 술집을 한다는 사실이 동백에게 얼마나 큰 편견과 선입견을 만들겠는가. 그래서 스스로 마치 죄인이나 된 것처럼 버티고 살아가지만 그도 가끔씩 울컥 울컥 넘어오는 설움 같은 걸 느낀다. 그런데 모든 마을 사람들이 동백을 그렇게 비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오직 단 한 사람 황용식(강하늘 분)만은 다르다. 순박하고 촌티 풀풀 날리는 이 옹산의 순경인 황용식은 도서관에서 동백을 보고는 첫눈에 반해 그를 보호한다는 미명 하에 졸졸 따라다닌다. 그런데 이 황용식의 촌스럽지만 대책 없는 순박함이 조금씩 동백의 마음을 건드린다. 미혼모에 술집을 한다는 편견을, 혼자서도 저렇게 훌륭하게 아이를 키워내고 게다가 번듯한 자영업을 하고 있다고 추켜세우며 '장하다'고 말해준다. 그 누구에게도 칭찬을 들어보지 못했던 동백은 그렇게 치명적인 촌스러운 매력으로 다가오는 황용식에게 눈이 간다. 이른바 촌므파탈의 탄생이다.◆어째서 이 촌스러움에 빠져들게 된 걸까그런데 이 촌스러움에 시청자들도 점점 빠져들었다. 6.3%(닐슨 코리아)로 시작했던 시청률은 금세 10%를 찍었다. 입소문도 점점 나기 시작하면서 화제성도 커졌다. 무엇이 이런 기적 같은 일을 만들어냈을까. 이것은 '동백꽃 필 무렵'이 가진 독특한 스토리텔링 구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드라마는 동백이라는 소외된 인물에 시청자들이 점점 연민하게 만들고 나아가 공감하고 동일시하게 만들어놓고는, 거기에 황용식이라는 엄청난 돌직구만을 던지는 인물의 거의 찬양에 가까운 동백에 대한 상찬을 늘어놓는다. 동백이 시청자라면, 황용식은 작가인 셈이다. 즉 임상춘 작가는 황용식의 입을 빌어 소외된 서민을 대변하는 동백이 얼마나 가치있고 아름다운 인물인가를 말하고 있는 것. 그러니 촌스럽지만 돌려 말하지 않고 솔직하게 직언을 날리는 황용식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가슴이 먹먹해질 수밖에 없다.졸졸 따라다니는 황용식을 단념시키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공유라고 하자, "사람이 어떻게 도깨비를 이겨요?"하고 충격을 받지만 황용식은 자신도 "다이애나 비가 살아온대도 임수정이 저 좋다고 덤벼도" 동백과는 안 바꾼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늘 백안시당하며 살아와 자존감이 바닥인 동백은 황용식의 말 한 마디가 공유의 그 멋진 대사들보다 더 가슴을 건드린다. 그건 판타지라기보다는 더욱 일상적인 현실에 맞닿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대중들이 원하는 건 어쩌면 손에 잡히지 않는 판타지가 아니라 바로 가까이 있는 행복이 아닐까. 이른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트렌드가 된 시대, 촌스러워도 솔직하게 진심을 다해 말하는 황용식에게 우리가 빠져드는 이유다.그런데 이것은 또한 드라마에도 적용되는 일이다. 최근 들어 수백억씩 들여 제작되는 이른바 블록버스터 드라마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눈은 한없이 즐겁지만 그럼에도 남는 헛헛함은 무엇 때문일까. 그건 거대한 판타지가 주는 욕망에 사로잡히다가도 문득 우리의 현실과는 겉도는 저 세계에 허무함이 느껴지기 때문일 게다. 대신 '동백꽃 필 무렵'은 지극히 현실이다 못해 더 바닥처럼 살아가는 이들을 소환해놓고 세상의 속물적 시선으로는 한없이 비천하게 여겨지는 그들이 그걸 벗겨내고 들여다보면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 있는 존재들인가를 말해준다.'동백꽃 필 무렵'은 그래서 결코 꽃을 피우지 못할 것 같은 삶조차 사실은 꽃이 피어가는 ' 무렵'에 서 있다고 말해준다. 시골 마을의 촌스러움이 도회지의 세련됨을 이겨내는 순간이다. 그것은 또한 지금의 서민들이 스스로 각성하고 있는 시대적 변화와도 맞물리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2019-10-02 16:01:49

MBC '놀면 뭐하니?'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한 시간 방송 위협하는 10분짜리 웹 콘텐츠들

최근 나영석 PD는 유튜브에 '채널 나나나'를 개설하고 '아이슬란드 간 세끼'라는 웹 콘텐츠를 선보였다. 김태호 PD도 복귀 후 새 예능으로 '놀면 뭐하니?'를 유튜브를 통해 선보인 바 있다. 어째서 이 스타 PD들이 유튜브의 10분짜리 웹 콘텐츠에 뛰어들고 있는 걸까. ◆나영석 PD의 유튜브 실험, '아이슬란드 간 세끼'지난 9월20일 tvN '삼시세끼' 산촌편이 끝나고 이어진 이른바 '아이슬란드 간 세끼'는 5분짜리 정규편성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파격을 선보였다. 본래 원 제목은 '신서유기 외전: 삼시세끼-아이슬란드 간 세끼'인 이 프로그램은 5분이라는 짧은 방송분량 때문에 시작하자마자 방송이 곧 끝난다는 자막을 담아 의외의 웃음을 안겼다. 과연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이 5분짜리 방송은 앞뒤로 광고가 붙었을 만큼 어엿한 예능 프로그램의 성취를 보였다. 어떻게 이런 방송이 가능했을까.이 프로그램의 시발점은 '신서유기'가 '윤식당'과 퓨전해 만들어낸 '강식당3'에서 강호동이 농담처럼 던진 말로부터 비롯되었다. '신서유기 외전'을 '삼시세끼' 뒤에 매주 5분씩 붙여 내보내자고 했던 것. 그리고 '신서유기6'에서 게임 도중 이수근과 은지원이 아이슬란드 여행권을 상품으로 얻게 되자 이 농담 같은 말은 현실이 됐다.여기서 중요한 건 이 5분짜리 정규 편성된 '아이슬란드 간 세끼'의 방영분은 유튜브에 공개될 전편의 예고편 같은 성격이라는 점이다. 첫 방송이 되는 20일 나영석 PD는 이 프로그램을 본방 사수하며 이벤트를 넣는 유튜브 방송을 자신이 개설한 '채널 나나나'를 통해 선보였다. 그리고 정규 편성된 5분짜리 방송이 나간 후, 유튜브에 12분, 8분짜리 동영상 두 편을 공개했다. 그 동영상에는 정규 방송에서 볼 수 없는 내용들이 모두 들어있었다. 상품 노출에 대한 제한이 없는 유튜브의 성격을 그대로 살린 아시아나 항공 비즈니스 클래스에서 보여주는 '언박싱' 영상 같은 게 그것이다.나영석 PD의 유튜브 실험은 우리에게 또 한 인물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MBC '무한도전'이 시즌 종영하고 1년여의 공백기를 거쳐 다시 돌아온 김태호 PD의 행보다. 그 역시 유튜브를 통한 '놀면 뭐하니?'라는 릴레이 카메라 형식의 웹 콘텐츠를 먼저 선보였고, 그 후 그것을 TV 버전으로 진화시켰다. 지금도 유튜브에 개설된 '놀면 뭐하니?'라는 채널에서는 TV 방송과 공조해 예고영상을 보여주거나 때로는 미방영분을 내보내기도 하고 있다. 어째서 국내 예능PD 중 양대 스타라고 할 수 있는 나영석 PD와 김태호 PD는 모두 TV 방송과 더불어 유튜브를 공조하고 있는 걸까. ◆플랫폼의 변화가 만든 형식과 내용의 변화그것은 최근 젊은 세대들이 점점 TV로부터 이탈해 인터넷과 모바일로 콘텐츠를 즐기는 경향이 생기면서 방송보다는 유튜브 같은 플랫폼을 더 많이 이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플랫폼만 옮겨간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면서 이 젊은 세대들이 소비하는 콘텐츠의 내용이나 형식도 달라졌다는 점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저 '아이슬란드 간 세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방송 분량이다. 사실상 본방에 해당하는 유튜브에서의 '아이슬란드 간 세끼'의 방송 분량은 12분, 8분으로 10분 내외다. 이것은 모바일로 주로 많이 보는 웹 콘텐츠들의 특성이 반영된 분량이라고 볼 수 있다. 김태호 PD가 처음 유튜브에 공개했던 '놀면 뭐하니?' 릴레이카메라의 분량도 10분 내외. 이렇게 분량이 10분 내외가 된 건 모바일 같은 특성상 그 이상을 집중해서 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영상 자체가 짧아지자 그걸 담는 편집 방식도 달라진다. 굉장히 압축적이고 속도감 있는 전개를 보여주고, 세세하게 기승전결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구조도 바뀌어버린다. 거두절미하고 시작하는 이야기와 상황 속에서 즉각적으로 나오는 이른바 '드립' 형태가 이 짧아진 영상 속에서는 더 효과적으로 활용된다.영상이 짧아지면서 내용과 스토리텔링 방식이 달라진 대표적인 사례는 웹 드라마다. 우리가 TV시대에 드라마라고 하면 보통 60분 내외를 떠올리지만 웹 드라마는 10분에서 15분 분량으로 한 회가 만들어지면서 기승전결의 전통적인 스토리텔링 방식 대신 거두절미하고 상황을 보여준 후 바로 바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서두를 길게 가기보다는 공감 가는 특정 상황을 끌어와 바로 바로 갈등을 일으키고 해결하는 이야기방식을 추구하게 된 것. 물론 웹드라마는 2010년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적은 제작비, 인지도 낮은 출연자, 짧은 영상 등으로 '드라마의 마이너리그'처럼 치부되기도 했지만, LTE서비스가 시작된 2013년부터 모바일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조금씩 인기를 끌기 시작하다 2017년에는 가파른 성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유튜브 사용이 일반화된 대중들의 웹 드라마 시청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대표적인 성공작으로 꼽히는 '연애플레이리스트'는 2017년 시작해 시즌4까지 만들어진 웹 드라마로 누적 재생수가 무려 4억 뷰를 돌파하기도 했다. 웹 예능에 이어 웹 드라마의 기존 TV 콘텐츠들과는 다른 형식과 내용들이 조금씩 대중들, 특히 모바일과 인터넷을 더 많이 사용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웹 콘텐츠에 익숙해진 대중들의 달라진 미디어 감성유튜브 같은 새로운 플랫폼이 내놓는 웹 콘텐츠들에 지금의 대중들이 익숙해져가고 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한 때 TV가 주도했던 방송 콘텐츠의 시대가 조금씩 저물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미 이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걸 알 수 있는 건, TV 시대의 성패를 가름하던 본방 시청률의 수치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TV 앞에 온 가족이 모여 앉아 특정 편성시간대에 본방하던 시절, 심지어 50%가 넘는 드라마가 나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드라마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 시청률 10%를 넘기는 일 조차 어려워졌고 심지어 5% 미만의 드라마들도 적지 않다.TV 앞에 앉았던 시청자들은 이제 저마다 개인화된 미디어, 즉 모바일이나 인터넷을 통해 콘텐츠들을 접하기 시작했다. 이미 젊은 세대들 중에는 TV를 보지 않는 일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미디어 이동은 그 미디어의 특성에 맞는 새로운 감성들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10분에서 15분 사이로 압축 편집되어 보여지는 웹 콘텐츠는 분량만 줄어든 게 아니라 내용도 형식도 달라졌다.이처럼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대중들의 감성들을 겪으면서 김태호나 나영석 같은 스타 PD들도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대중들이 달라지고 그 새로운 감성을 읽어내지 못한다면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는 금세 외면 받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기존 TV 방송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웹 콘텐츠를 연동하고 경험하려 애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미래의 콘텐츠는 TV가 아니라 웹에 있다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점점 영화 같은 완성도가 높아지는 콘텐츠들을 네트워크로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있는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라는 세계도 열리고 있다. 미디어의 격변기 속에서 여러모로 TV 영상들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2019-09-25 13:09:55

tvN '삼시세끼 산촌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삼시세끼', 출연자를 여성으로 바꿨더니 달라진 이야기

출연자가 바뀐다고 프로그램이 달라질까. 사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은 회의적이다. 무수한 프로그램들이 출연자를 교체해 시작해도 결국은 똑같은 이야기의 반복에 머무는 경우가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tvN '삼시세끼' 산촌편은 다르다. 무엇이 달라진걸까. ◆시즌 반복된 '삼시세끼', 식상할 줄 알았는데나영석 PD가 만든 tvN '삼시세끼'는 예능프로그램이 그간 해왔던 흐름을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예능사에 남을만한 프로그램이었다. 그간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일종의 불문율이 있었다. 낚시 소재는 하지 말 것, 출연자를 놀리지 말 것, 대신 뻘밭에 가면 그 뻘을 바라보기보다는 그 곳에서 뒹구는 게임을 할 것 등등이 그 불문율이었다. 그 불문율의 핵심은 '미션'과 '방송 분량'에 맞춰져 있었다. KBS '1박2일'이나 MBC '무한도전'이 그랬던 것처럼 당대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끝없이 미션을 내려 쉴 틈 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분량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었다.하지만 '삼시세끼'는 그 불문율을 깨고 정반대의 흐름으로 갔다. 한적한 자연 속으로 들어가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세 끼만 챙겨먹는 것. 애초 예능 선배들은 나영석 PD의 이런 시도를 말렸다. 하지만 나영석 PD는 강행했고, 첫 녹화를 하고 와서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번엔 정말 망한 것 같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아무 것도 하지 말라 했더니 진짜 아무 것도 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물론 그런 시골 생활이 낯선 이서진 같은 차도남이 그 곳에 적응하는 과정은 나름 미션으로 제시되며 흥미진진했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니 그다지 미션이랄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여백이 많아지면서 그 빈 여백 속으로 다른 이야기들이 들어왔다. 자연 자체가 주는 즐거움과 힐링이 그것이었다. 지금이야 ASMR이 익숙하지만 그 시기에 '삼시세끼'는 빗소리를 분할화면으로 모아 오케스트라로 들려주는 엉뚱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 할 일이 없어지면서 자연을 더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생겨난 또 다른 관전 포인트. 이른바 힐링예능의 탄생이었다.하지만 한두 번은 즐거울 수 있어도 반복되면 식상해지는 게 예능 프로그램의 생리다. 몇 차례의 시즌을 거듭한 끝에 '삼시세끼'의 스토리텔링은 이제 시청자들에게 익숙해졌다. 다시 '삼시세끼'가 산촌편으로 돌아온다고 선언했을 때 그다지 기대감이 없었던 건 그래서였다. 물론 출연자들이 염정아, 윤세아, 박소담이라는 여성들로 바뀌었다고 했지만, 그것이 과연 새로운 이야기나 관전 포인트를 제시할 수 있을까. 기대는 별로 없었다. ◆염정아, 윤세아, 박소담이 만들어낸 새로운 이야기하지만 방송이 시작되면서 이런 반응들은 조금씩 바뀌었다. 식상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새로운 재미가 있더라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염정아, 윤세아, 박소담이라는 출연자들에게서 나왔다. 염정아와 윤세아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인연이 있어 언니-동생하던 사이였고 최근에는 JTBC '스카이캐슬'로 동시에 주가가 오른 출연자들이었다. 여기에 염정아와 같은 소속사인데다 최근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던 막내 박소담이 합류해 완벽한 자매 케미가 만들어졌다.물론 초반 이런 산골에서의 일상 자체가 주는 낯설음은 분명히 있었다. 당연한 것이 집에서 인덕션에 스위치만 누르면 척척 요리를 했던 환경에서, 이제 밥 한 끼를 위해 직접 아궁이에 불을 피워야 하는 상황이니 낯설지 않을 수가 있을까. 하지만 이들은 직접 아궁이도 만들고 비 올 때를 대비해 천막도 쳐놓으면서 조금씩 산골 생활에 적응하더니 이내 손발이 척척 맞아돌아가는 놀라운 시너지를 보여줬다. 염정아가 끼니를 구상하고 전체 동선을 진두지휘하며 저 스스로도 솔선수범한다면, 윤세아는 누가 물어보지 않아도 염정아나 박소담이 필요로 할 것을 미리미리 챙겨 '보이지 않는 조력자' 역할을 해낸다. 젊은 막내 박소담은 힘쓰는 일은 물론이고 아궁이에 불 피우는 일을 전담하며 언니들의 일을 돕는다.흥미로운 건 이들이 분명한 나이차와 서열이 있지만, 그 일상 속에서 전혀 서열이 눈에 띄지 않더라는 것이다. 맏언니 염정아는 누구보다 동생들을 챙기려 애쓰고 때론 자신이 잘못 결단을 내려 일을 두 번 하게 되었을 때는 동생들에게 그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막내 박소담은 언니들의 사랑을 독차지할 정도로 싹싹한데다 털털했고, 윤세아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왼 손이 모를 정도로 보이지 않게 다양한 일들을 하면서도 생색을 내지 않았다.사실 서열은 그간 예능 프로그램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던 소재였다. 서열을 뒤틀거나 혹은 서열 구조 때문에 시키고 어쩔 수 없이 하는 그 위계로 만들어지는 웃음이 그것이다. 이것은 그간 '삼시세끼'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를테면 이서진이 나왔을 때 함께 출연한 옥택연이나, 유해진, 차승원이 출연했을 때 함께 출연한 손호준은, 남자들 특유의 서열구조 안에 존재했다. 이번 '삼시세끼' 산촌편이 다르게 느껴진 건 바로 이 지점 때문이었다. 서열 구조가 없어 모두가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쉬며 그래서 일이 척척 맞아 돌아갈 때 오히려 느껴지는 즐거움이 있었던 것이다. ◆여성들의 시선과 판타지여성 출연자들이 서게 되면서 여성 특유의 감성들이 프로그램에 더해졌다. 이를 테면 남자들끼리는 잘 못하는 서로에 대한 칭찬을 대놓고 하는 모습이라든가, 오래된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한껏 흥에 겨워하는 모습, 아름다운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며 보여주는 감성적인 리액션 같은 모습들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심은 배추가 몇 주가 지나 다시 찾아갔을 때 부쩍 자란 모습을 보며 기뻐하는 모습은 남성출연자들에게서 발견하기 어려운 리액션이었다. "캐고 우리가 수확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심은 게 자라나는 걸 보는 건 진짜... 최고다." 여성들의 시선과 리액션이 드리워지면서 '삼시세끼' 산촌편은 확연히 이전 시즌들과 다른 느낌을 주었다.하지만 무엇보다 큰 변화는 서열 없이 함께 일하고 독려하고 즐기는 그 과정들을 통해 이끌어낸 '여성들의 판타지'가 아닐까 싶다. 마침 추석 명절 시즌에 방영됐던 '삼시세끼' 산촌편은 특히나 일이 많았던 하루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아침에 도착해 아궁이 위치를 바꾸고 동선이 길었던 찬장을 가까운 곳으로 옮긴 후, 평상 위에도 그늘을 만들기 위한 차양까지 설치해놓고는 점심을 챙겨먹고 장을 보러 읍내에 나갔다 돌아와 심지어 손이 많이 가는 만두를 직접 빚었다. 아마도 만두를 빚어 전골을 해먹겠다 마음먹은 건 마침 방영일이 추석이라는 걸 염두에 둔 포석이겠지만, 그 많은 일들을 누구 한 사람의 '독박' 노동이 아닌 모두가 함께 해 즐거울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냈다는 건 명절에 전하는 특별한 판타지가 되었다. 여성들은 일하고 남성들은 술 마시는 우리네 명절의 성차별적인 풍경을 뒤집는 판타지.'삼시세끼' 산촌편이 여성 출연자들로 인물 구성을 바꿔 이처럼 다른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다는 건, 지금껏 남성들 중심으로 채워지던 예능 프로그램들에 시사하는 바도 크다고 여겨진다. 지금의 반복되어 식상해진 예능 프로그램들에 어쩌면 여성 출연자들의 그들 방식으로 보여주는 말과 행동들이 신선함을 더해줄 수 있을 지도 모르니 말이다. 기울어진 성비를 맞추는 의미도 있지만 신선함을 위해서라도 여성 출연자들의 예능은 좀 더 시도해볼 구석이 있다는 걸 '삼시세끼' 산촌편은 증명해 보여줬다.

2019-09-18 11:23:31

넷플릭스. EPA연합뉴스 제공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넷플릭스,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한때 넷플릭스는 마치 세계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OTT) 시장을 독식할 것 같은 위세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넷플릭스의 위기론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디즈니 같은 막대한 콘텐츠 자산을 가진 미디어 기업이 곧 이 시장의 판도를 바꿀 거라는 예상이 나오면서다. ◆디즈니플러스 서비스 되면 어떤 일이...최근 몇 년 간 넷플릭스라는 명칭은 우리에게 꽤 친숙해졌다. 이제 네 명이 모여 '넷플릭스 계'를 하는 건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4명의 동시접속이 가능한 프리미엄 요금제에 가입하면 각각의 계정을 따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적은 비용으로 넷플릭스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기존의 지상파나 케이블 시장으로부터의 이탈 현상이 예고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른바 '코드 커팅(Cord-cutting)' 현상이 그것이다. 미국에서는 실제로 넷플릭스 서비스 이후 생겨난 이 현상은 기존 지상파나 케이블 가입자들이 이를 해지하고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OTT) 같은 새로운 플랫폼으로 옮겨가는 걸 말한다.놀라운 건 이런 콘텐츠 소비패턴의 변화를 만든 넷플릭스의 국내 정식 서비스가 2016년에 시작됐다는 점이다. 짧은 기간에 넷플릭스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했다. 그것은 기존 채널과 콘텐츠에 공동투자하거나 아니면 국내 제작진에 100% 투자해 우리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이는 방식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 600억이 투자됐고, 김은숙 작가의 '미스터 션샤인'이나 국내 최초로 시도된 선사 배경의 드라마인 '아스달 연대기' 등에 수백 억이 투자됐다. 또 김은희 작가의 '킹덤' 같은 작품은 아예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로 제작되며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러니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은 이제 국내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도 변화를 가져왔다. 대작이거나, 글로벌 시장을 노리는 작품들이라면 응당 넷플릭스와 함께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단 3년 만에 국내의 OTT 시장을 장악하다시피해온 넷플릭스는 최근 들어 위기론이 솔솔 피어나고 있다, 그것은 디즈니 플러스(+)의 출시가 점점 임박해오면서다. 오는 11월 12일 미국에서 론칭하는 디즈니플러스는 한 마디로 말해 '캐릭터 왕국'이라고 할 수 있는 디즈니의 막강한 OTT 서비스를 예고하고 있다. 끝없는 인수합병을 통해 디즈니는 기존 디즈니 캐릭터들을 물론이고 마블 슈퍼히어로, 스타워즈, 픽사 캐릭터들까지 모두 갖춘 무소불위의 라인업을 갖게 됐다. 이러니 넷플릭스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일 수밖에. ◆넷플릭스에서 사라지는 콘텐츠들중요한 건 디즈니플러스가 서비스를 시작하면 기존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되던 일부 콘텐츠들을 볼 수 없게 될 거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마블에서 제작한 '어벤져스' 시리즈나 관련 슈퍼히어로물들은 보기 어려워진다. 또 디즈니, 픽사, 폭스의 영화나 드라마도 서서히 빠져 2021년 이후에는 아예 목록에서 지워져 버릴 운명에 처했다. 마블에서 판권을 빌려와 자체 제작한 '데어데블'이나 '제시카 존스' 같은 드라마 시리즈도 추가 시즌은 제작되지 않는다. '그레이 아나토미'나 '뉴걸' 같은 작품도 디즈니로 귀속된다. 넷플릭스로서는 디즈니 하나가 빠져나가도 큰 타격을 입는 셈이다.하지만 디즈니 작품들만이 아니다. 굵직한 콘텐츠 제작사들이 일제히 OTT 시장에 뛰어들고 있어 넷플릭스는 막강한 경쟁자가 생기는 동시에 지워지는 작품들도 갈수록 많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통신사인 AT&T가 운영하는 워너미디어는 새로운 OTT 서비스인 HBO맥스를 내년 초 정식 출범할 예정인데, HBO는 '왕좌의 게임', '섹스 앤 더 시티' 같은 세계적인 콘텐츠들을 선보여온 제작사다. 우리에게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 'E.T.'나 '쥬라기 공원' 같은 작품들로 잘알려져 있는 유니버설 픽처스를 보유하고 있는 컴캐스트도 NBC유니버설이라는 OTT서비스를 내년 초 출시할 예정이다. 이들 서비스가 생겨나면서 넷플릭스의 핫 아이템들도 빠져나갈 예정이다. '프렌즈'가 올해 말 HBO맥스로 옮겨가고, '더 오피스'나 '파크스 앤 레크리에이션'도 2021년부터 NBC유니버설로 판권이 돌아간다.지금까지는 콘텐츠 제작사들이 직접 OTT 시장에 뛰어들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새로운 글로벌 유통방식으로 끌어안은 넷플릭스는 한 마디로 독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콘텐츠 제작사들이 직접 유통에 뛰어들면서 넷플릭스는 그 많던 콘텐츠들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게 됐다. 항간에는 곧 넷플릭스의 곳간이 텅텅 빌 거라는 다소 과장된 소문까지 흘러나온다. 과연 넷플릭스의 위기는 어떤 글로벌 콘텐츠 시장의 변화를 얘기할까. ◆넷플릭스가 밀려나면 생겨날 또 다른 위기들그렇다면 넷플릭스의 위기는 '강 건너 불'에 불과할까. 그렇지 않다. 글로벌 콘텐츠 제작사들이 이제 제작만이 아닌 유통에 뛰어들어 OTT 시장을 잠식해나가는 일은 극심한 콘텐츠 집중현상과 함께 소외 현상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넷플릭스 역시 지금의 위기를 감지하며 자체 제작 콘텐츠를 늘려왔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직접 제작을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전 세계의 다양한 콘텐츠들을 발굴하고 투자하는 방식이었다. 우리의 경우만 놓고 보면 '킹덤'이나 '좋아하면 울리는' 같은 드라마나 '옥자' 같은 영화 또 '범인은 바로 너' 같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아 만들어졌다. 또 '미스터 션샤인'이나 '아스달 연대기' 같은 작품도 넷플릭스의 투자가 아니면 만들어지기 어려웠을 작품이다. 그만큼 글로벌 시장에 어울리는 덩치 큰 작품들은 넷플릭스의 투자가 필수적으로 있어 가능했다는 것이다.하지만 디즈니플러스나 HBO맥스 같은 자체 제작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OTT 서비스가 넷플릭스처럼 글로벌한 외부 제작사들에 얼마나 투자를 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물론 그 방식이 자신들의 글로벌 영향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면 이들 역시 넷플릭스 같은 투자를 통한 제작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미 보유한 캐릭터들과 작품 연작 시리즈만으로도 글로벌한 힘을 갖추고 있는 이들에게 콘텐츠 회사가 아니어서 투자를 해온 넷플릭스 같은 행보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자칫 잘못하면 이 거대한 글로벌 콘텐츠 공룡에 의해 전 세계의 콘텐츠 시장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그렇다면 우리네 콘텐츠 제작사들은 향후 이 거대한 변화 속에서 어떤 대처를 해나가야 할까. 한류가 글로벌하게 알려진 건 초기에는 이벤트적이고 사건적인 것이었다. 즉 기획된 것이 아니라 어쩌다 해외에서도 큰 반응을 얻게 된 것이 초기 한류였다. 하지만 지금은 좀 더 기획적인 한류 콘텐츠를 시도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미 글로벌 콘텐츠가 국내에서도 활발히 소비되고 있는 상황에 '우물 안 개구리'로는 우물 안에서도 살아남을 수 없는 형국이다. 글로벌한 시각을 갖추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우리 것을 접목시켜 독특한 차별성을 가진 작품들로 한류 콘텐츠의 글로벌 지분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우리는 막대한 자본과 서비스 노하우가 필요한 유통 자체보다는 콘텐츠에 승부를 거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일 수 있다. 제아무리 유통의 힘이 강하다 해도 매력적인 콘텐츠는 어디서나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넷플릭스의 위기를 우리의 현실을 각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19-09-04 09: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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