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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김중기의 필름통] 세상을 바꾼 변호인 리뷰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1933~ )는 미국 연방 대법원의 대법관이다. 빌 클린턴 시대였던 1993년 미국 사상 두 번째로 여성 대법관으로 취임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녀의 대쪽 같은 삶은 지난해 벳시 웨스트와 줄리 코헨이 감독한 다큐멘터리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나는 반대한다'로 소개되기도 했다.이번 주 개봉된 '세상을 바꾼 변호인'(감독 미미 레더)은 차별적인 상황에서도 어렵게 로스쿨을 마친 그녀의 역경과 그녀 인생의 분수령이 된 '모리츠 사건'을 그린 극영화이다.1950년대는 흑인 인종차별도 문제였지만, 여성 인권이 거의 무시되던 시대였다. 긴즈버그(펠리시티 존스)는 하버드 로스쿨에 전체 학생의 단 2%에 해당되는 9명의 여학생 중 한 명으로 입학한다. 여자 화장실도 없었고, 로스쿨은 남자의 무대였다. 학장마저 "왜 남자의 자리를 뺏으면서 입학했느냐?"고 힐난한다.로스쿨에 함께 다니던 남편이 뉴욕 법률회사에 취직을 하면서 보스턴에서 뉴욕으로 옮겨 오지만 로펌 어느 곳에서도 여자 변호사를 고용하려는 곳을 단 한 곳도 없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수석 졸업을 한 그녀는 결국 법대 교수가 된다. 그녀가 맡은 강의는 '법과 성차별'이었다. 학생들과 토론하면서 당시 사회에 만연한 남녀차별에 대해 더 큰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1972년 우연히 남성 보육자와 관련된 한 사건을 접하게 된다. 바로 '모리츠 사건'이다. 모리츠는 독신으로 병든 어머니를 돌보는 청년이다. 자신이 직장에 나갈 동안 간병인이 필요했느데 세금 공제가 안됐던 것이다. 이유는 '집에서 환자를 돌보는 것은 여성의 일'이라고 법에 명시 되어 있었기 때문. 그녀는 모리츠를 통해 남녀 차별은 비단 여성에게만 불평등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이것이 남성의 역차별 사건이며 성차별의 근원을 무너뜨릴 수 있는, 50년 전쟁의 포문을 열 열쇠임을 직감한다. 모두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 패배가 확정된 재판이라 말렸지만, 긴즈버그는 남편과 딸의 지지에 힘입어 178건의 합법적 차별을 무너뜨릴 세기의 재판에 나선다.'모리츠 사건'은 오랜 시간 지속된 남녀 불평등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만 해도 남녀의 성차별은 명문화돼 있었다. 아내는 남편의 동의 없이 통장도 만들 수 없었던 시대였다.키 155cm의 힘없고 내성적인, 그러나 진지하고 당찬 그녀의 행동은 미국 역사를 바꾼 위대한 정의였다. 긴즈버그는 법정에서 일찍이 없었던 명연설을 한다. "세상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었으면 법도 바뀌어야 합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성에 근거하여' 차별 받아서는 안됩니다."5분 32초간 이어지는 이 연설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진정성 있고 설득력 있는 연설로 기억된다. 그녀가 법조인이 된 후 '나는 반대한다'와 함께 가장 많이 쓴 용어가 '성에 근거하여'(On the basis of sex)라는 말이었다. 그것이 이 영화의 원제다.세상을 바꾼, 법의 흐름을 바꾼 정의로운 변호인이 바로 긴즈버그다. 그는 여성과 남성의 패러다임을 넘는 위대한 인간이었다.그런데 한국에서는 개봉 전 해프닝이 있었다. 홍보 이미지를 만들면서 그녀의 여성성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다. 붉은 의상을 입은 이미지에는 '러블리한 날', 검은 정장을 입은 이미지에는 '포멀한 날', 비교적 편안한 의상을 입은 이미지에는 '꾸.안.꾸한 날'이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꾸.안.꾸'는 '꾸민 듯 안 꾸민 듯'이라는 의미다.남녀의 동등한 권리를 쟁취하려 애쓴 여성 변호사의 '위대함'은 찾아 볼 수 없는 문구다. 미국 포스터에는 '영웅적인'(heroic), 정의(justice), 운동가(activist)가 명기됐지만, 한국 포스터에는 '독보적인 스타일', '데일리룩' 등 영화의 내용과는 반대로 성차별적인 단어가 쓰였다. 비난 여론이 일자 수정을 했지만, 한국 사회가 가진 천박함의 극치를 보여준 사례다.긴즈버그 역을 맡은 펠리시티 존스는 키 160cm의 작은 몸집에 말투까지 닮아 싱크로율 높은 연기를 보였다. 그녀는 직접 긴즈버그 대법관을 만났고, 녹음 파일을 들으면서 발음과 억양을 연구했다.시나리오는 긴즈버그 대법관의 조카인 다니엘 스티플만이 썼다. 그는 2010년 삼촌의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듣던 중 이 시나리오를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120분. 12세 이상 관람가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2019-06-12 13:29:15

영화 '로켓맨'

[김중기의 필름통] 로켓맨 리뷰

'그녀는 비행 전 내 짐을 꾸렸지. 발사시간은 오전 9시. 그때가 되면 나는 연처럼 하늘 높이 날겠지. 지구가 너무 그립고... 끝이 없는 비행중 우주가 너무 외로워...내 생각에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다시 돌아오기까지...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내가 아니야. 나는 로켓맨이야'팝스타 엘튼 존의 노래 '로켓맨'의 가사다. 여느 지구인과 달리 치열하고 외롭게 살아온 그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든 노래다.영화 '로켓맨'은 천재적인 음악성과 파격적인 의상과 퍼포먼스로 무대를 잡아온 엘튼 존의 삶과 성장을 그린 영화다.그는 70년대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었다. 통산 1억 6천900만장의 음반을 판매했으며 아카데미상을 비롯해 그래미 어워드 5회, 글든 글로브, 토니 등 받을 수 있는 음악상은 모두 받았다. 1970년 첫 히트곡을 낸 후 25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톱 40 히트곡을 쏟아냈고, 1998년에는 엘리자베스 여왕 2세로부터 작위를 받기도 했다.그는 피아노 신동이었다. 3살에 연주를 시작해 영국 왕립음악원에 장학금을 받으며 입학했다. 악보 4장 분량의 연주를 축음기 재생하듯 따라 연주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그는 70년대 화려한 성공으로 시작해서 80년대 초 침체기를 거쳐 80년대 말 다시 재기했고, 90년대 초 최악의 위기를 겪고 다시 일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이런 부침(浮沈)은 그를 극한으로 몰아갔다."나는 술, 마약에 섹스, 쇼핑까지 중독된 사람이야." 화려한 성공 뒤에 결핍과 외로움으로 몸이 망가진 엘튼 존(태런 에저튼)이 중독자 모임에 나타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된다.아버지는 단 한 번도 따뜻한 말을 해 주지 않는다. 아버지의 레코드 콜렉션은 손도 못 대게 한다. "언제쯤 나를 안아주실거예요?"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떠날 때도 그에게 말 한마디 없이 가버린다. 외로운 소년은 피아노에 정을 붙인다. 영국 왕립음악원에서 받아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이지만 클래식 보다는 로큰롤에 심취한다.작사가 버니(제이미 벨)를 만나면서 그의 노래는 날개를 단다. 미국 가수들의 영국 공연에 백 밴드로 시작한 그는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아티스트로 성장한다. 그러나 성공의 스포트라이트 뒤에는 외로움과 고통의 그림자가 더 길게 드리운다.'로켓맨'은 뮤지컬 스타일로 만든 영화다. 어머니와 불화로 가슴이 아플 때는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가, 버니와 헤어지고 고향집을 그리워 할 때는 'Goodbye yellow brick road'가 흐른다. 'Crocodile Rock', 'Your Song' 등이 그의 인생 고비마다 등장하며 주크박스 뮤지컬의 매력을 끌어올린다.화려하고 파격적인 엘튼 존의 무대 의상은 그 자체가 이미 뮤지컬이다. 갖가지 색상의 안경과 화려한 날개 등 소품이 그 어떤 뮤지컬보다 풍성한 볼거리를 선사한다.'보헤미안 랩소디'의 프레디 머큐리처럼 그도 성 정체성으로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냈다. 동성 연인 겸 매니저와의 아픈 기억, 이성과 결혼 실패 등을 겪었다. 엘튼 존도 자신이 직접 지은 예명이다. 영화에서 '존'은 비틀즈의 존 레논에서 따온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빌리 엘리어트'의 각본가 리 홀은 외로운 소년기를 거친 아티스트가 20대에 명예와 부를 얻지만, 외로움과 성공에 대한 부담으로 고통 받는 과정을 시나리오로 잘 그려냈다. 덱스터 플레처 감독은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아동 성추행사건으로 밀려나는 바람에 '보헤미안 랩소디'의 후반 연출을 담당하기도 했다. '로켓맨'에서는 엘튼 존의 명곡을 적재적소에 잘 배치하면서 그의 삶을 입체적으로 그려내 주고 있다.'킹스맨' 시리즈의 배우 테런 애저튼은 엘튼 존의 익살스런 몸짓과 퍼포먼스를 판박이처럼 잘 소화했다. 노래도 직접 부르지만 엘튼 존의 호소력에는 미치지 못해 엘튼 존 팬들은 아쉬울 수도 있겠다. '빌리 엘리어트'의 아역배우 출신 제이미 벨도 엘튼 존의 곁을 지키는 버니 역을 잘 연기한다.엘튼 존이 1982년 촬영한 'I'm still standing'의 뮤직비디오를 재연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여전히 건재한 엘튼 존 경(Sir)에 대한 헌사와도 같은 엔딩이다.'보헤미안 랩소디'의 웸블리 스타디움 엔딩과는 규모와 극적인 점에서 비교가 되지 않지만, 재기에 성공한 엘튼 존을 잘 상징하고 있다.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2019-06-05 13:32:21

영화 '이웃집 토토로'

[김중기의 필름통] 새영화

◆엑스맨:다크 피닉스감독:사이먼 킨버그출연:제임스 맥어보이, 마이클 패스벤더'엑스맨' 시리즈의 신작. 어린 시절 비극적 교통사고로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된 진 그레이(소피 터너)는 자비에 영재학교에서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게 된다. 엄청난 잠재적 능력을 지닌 그녀는 엑스맨으로 성장해 우주에서 구조 임무를 수행하던 중 목숨을 잃을 뻔한 사고를 겪는다. 예기치 못한 사고 이후 폭주하는 힘과 억눌려왔던 어둠에 눈을 뜨게 된 진 그레이는 엑스맨의 가장 강력하고 파괴적인 적, 다크 피닉스로 변하게 된다. 프로페서 X는 물론 매그니토(마이클 패스벤더)까지 능가하는 두려운 존재가 된 그녀 앞에 힘을 이용하려는 미스터리한 외계 존재가 나타나 그녀를 뒤흔들고, 지금까지 엑스맨이 이뤄온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 가운데 엑스맨은 사랑하는 친구이자 가장 강력한 적이 된 다크 피닉스와 맞서야 하는데…. 114분. 12세 이상 관람가 ◆이웃집 토토로감독:미야자키 하야오목소리 출연:히다카 노리코, 사카모토 치카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대표 애니메이션. 1988년 작품이지만 지난 2001년에 이어 이번 주 재개봉됐다. 1950년대 일본의 아름다운 시골 마을. 상냥하고 의젓한 11살 사츠키와 장난꾸러기에 호기심 많은 4살의 메이는 사이좋은 자매로 아빠와 함께 도시를 떠나 시골로 이사 온다. 사츠키가 학교에 간 뒤, 혼자 숲에서 놀고 있던 메이는 눈앞을 지나가는 조그맣고 이상한 동물을 발견한다. 그리고 뒤를 쫓아 숲속으로 들어가는데 그곳에서 메이는 도토리 나무의 요정인 토토로를 만난다. 메이는 사츠키가 돌아오지마자 토토로를 만난 것을 자랑하지만 사츠키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비가 몹시 쏟아지던 날, 정류장에서 우산을 들고 아빠를 기다리다가 사츠키도 토토로를 만나게 된다. 88분. 전체 관람가 ◆폴라로이드감독:라스 클리브버그출연:캐스린 프레스콧, 그레이스 자브리스키친구들과의 코스튬 파티에서 오래된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인증사진을 찍어주게 된 고등학생 버드(캐스린 프레스콧). 그날 이후, 친구들이 순서대로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자신이 죽음을 결정하는 카메라의 주인임을 알게 된다. 죽음의 순서를 정하는 폴라로이드 카메라 주인이 된 고등학생이 친구들의 인증샷을 찍어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현실 공포 영화이다. 사진을 찍고 나서 바로 확인하고 삭제할 수 있는 핸드폰 카메라와는 달리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는 폴라로이드 카메라 소재를 통해 원초적인 공포심을 자극하는 공포영화다. 전 세계 유수 단편영화제에서 인정받은 동명의 단편영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노트에 이름이 적히는 순서대로 죽게 되는 '데스노트'의 폴라로이드 버전. 88분. 15세 이상 관람가

2019-06-05 11:03:11

[김중기의 필름통] 반지하-대저택, 우린 공생할 수 없어…'기생충'

기생충은 다른 동물의 몸에 기생하며 영양분을 빼앗아 살아가는 생물이다. 기생충과 숙주는 공존하지만 공생은 할 수 없는 적대적인 관계다.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은 이 둘의 이질을 한국의 현대 가족에 풍자한 영화다. 숙주에 기생하는 한 가족의 비애를 유머와 위트, 조롱과 연민으로 그려내고 있다.봉준호 감독의 비트는 솜씨가 경지에 올랐다. 스타일은 정교하고, 메시지는 훨씬 완숙해졌다. '살인의 추억'과 '괴물' 같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엿보였던 긍정과 희망은 사라지고, 힐난에 가까운 차가운 페이소스가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대한민국에 반지하 종족이 있다. 지상을 끌어내려 겨우 햇볕을 쬐지만, 온갖 먼지와 취객의 오줌 세례를 받아야 하는 계층이다. 전원이 백수인 기택(송강호)의 가족. 햇볕도 잘 들지 않지만, 돈도 들어올 곳이 없다. 와이파이까지 지상 모처의 것을 끌어다 쓴다. 주인이 비밀번호를 거는 바람에 그마저도 끊어졌다."계획이 무계획이야. 계획이 없으면 실패할 이유도 없어." 무능한 가장 기택과 "돈이 다리미야. 돈이 주름을 쫙 펴줘"라며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엄마 충숙(장혜진). 4번 수능을 친 낙방생 백수 아들 기우(최우식), 서울대 서류위조학과가 있으면 수석입학 할 딸 기정(박소담). 이 넷에게 지상 종족의 꿈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그들이 꿈꾸는 지상 종족이 있다. 오르막길을 올라 큼직한 대문에 견고한 집, 볕이 잘 드는 정원이 있는 글로벌 IT 기업 박 사장(이선균) 댁이다. 착하고 예쁜 아내 연교(조여정)와 어린 남매가 부러울 것 없이 살아간다.어느 날 반지하 인생이 지상 종족에 기생할 기회가 찾아온다. 기우가 학력을 위조해서 박 사장 저택에 과외 선생으로 들어간 것. 기우의 재빠른 판단으로 아빠는 운전기사로, 엄마는 가정부로, 동생은 미술 선생으로 전원 입성한다. 드디어 반지하 종족의 기생 삶이 시작된다.봉준호 감독은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전하는 탁월한 재능이 있다. 지리멸렬한 기택 가족사와 그들의 피나는 분투가 봉 감독 특유의 생활형 유머로 버무려져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한다.'기생충'은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생긴 계층과 계급의 갈등을 그린 영화다, 부유층의 허영과 위선, 가난한 층의 파렴치와 영악함을 들추면서 공생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를 꼬집은 블랙코미디다. 박 사장은 "선을 넘는 사람들, 내가 제일 싫어하는데..."라며 아예 종족이 다름을 공언한다.지난해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도 해체된 현대 가족의 비애를 그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올해 칸이 '기생충'을 선택한 것도 가족을 통한 빈부 양극화의 문제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기생충'은 계층간의 뜯고 뜯기는 쟁탈전, 특히 반지하와 지하, 소위 희망이 없는 종족들의 처절한 육탄전이 씁쓸함을 넘어 처연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간혹 지하철을 타면 나는 냄새, 썩는 듯한 냄새 있잖아." 그 가난의 냄새를 경멸하는 지상 종족과 그런 대우를 받으면서도 '리스펙트'(존경)를 찬양하는 지하종족의 타협할 수 없는 극단이 긴 지하터널처럼 절망스럽게 다가온다. 생활무전기로 소통하는 박 사장 가족과 달리 모르스 부호로 교신을 해야 하는 그들의 낙후성은 낙오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의 메타포이다.봉 감독은 지상과 반지하, 지하의 경계를 카메라의 수직적인 시선으로 구도를 잡았다. 세계적인 대가가 지은 대저택의 수많은 계단과 그런 계단들을 한 없이 내려와 자리 잡은 반지하방, 그리고 다시 지하로 이어지는 긴 계단 들이 근접할 수 없는 한국사회의 계층을 형상화하고 있다. 계단과 함께 긴 터널과 골목, 반지하를 분할해 덩그러니 올려 있는 변기 등 공간을 통한 메시지도 탁월하게 그려낸다.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에서 시작해서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마더'(2009), '설국열차'(2013), '옥자'(2017)에 이르기까지 전작 속 장르적 스타일을 '기생충'에서 모두 쏟아낸다. 코미디와 스릴러, 액션 그리고 드라마의 특성들이 잘 버무려져 킥킥 웃다가도 긴장감으로 가슴을 졸이고, 다시 안타까움에 가슴을 찡하게 한다."선악의 이분법을 버리고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나쁜 보통의 인간을 묘사하려고 했다"고 봉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가진 자를 경멸하며 관객과의 영합하려는 자세도 취하지 않는다. 사장 부인 연교는 남의 말에 잘 속는 착한 인물로 그려진다. '이쁘면 착하다'는 미모 지상주의가 '기생충'에서는 '돈 있으면 다 착하다'는 말로 변주된다.송강호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지만, 조여정과 이선균 등 주·조연 배우들의 앙상블이 돋보인다. 선장이 뛰어나면 선원도 뛰어나는 법인가. 캐릭터들이 두루 두루 살아 펄펄 뛴다.'기생충'은 현대 한국사회의 자화상이 통렬하고도, 설득력 있게 그려진 작품이다. 재미는 있는데, 아프다. 131분, 15세 이상 관람가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2019-05-30 14:03:18

영화 '0.0㎒'

[김중기의 필름통] 새영화

◆고질라:킹 오브 몬스터감독:마이클 도허티출연:밀리 바비 브라운, 베라 파미가 2014년 '고질라'의 속편이다. 키 108m, 길이 280m, 9000톤의 육중한 체구, 방사능 불길을 내뿜는 고질라 등 거대 괴수들이 다시 지구를 초토화시킨다. 샌프란시스코 공격으로 인해 아들을 잃은 엠마(베라 파미가)와 마크(카일 챈들러), 딸 매디슨(밀리 바비 브라운) 가족은 슬픔 속에 살고 있다. 미지의 생물을 연구하는 모나크 소속 과학자인 엠마는 또 다른 공격에 대비해 거대 괴수와 소통하는 주파수를 발견한다. 그러나 괴수들을 조종해 지구를 초토화 시키려는 테러 세력에게 딸과 함께 납치되고, 주파수로 모스라, 로단, 기도라 등 고대 괴수들이 하나 둘 깨어난다. 역대급 재난 상황에서 인류의 생존 자체조차 불투명해지고, 여기에 강력한 고질라의 등장으로 괴수들의 대결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132분. 12세 이상 관람가 ◆0.0㎒감독:유선동출연:정은지, 성열 초자연 미스터리 동아리 0.0㎒ 멤버들이 귀신을 부르는 주파수를 증명하기 위해 경북 상주 우하리의 한 흉가를 찾는다. 이들은 인간 뇌파의 주파수가 0.0㎒가 되면 귀신을 만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과학적인 방법과 고전적인 강령술을 이용해 죽은 혼령을 불러낸다. 귀신을 보는 눈을 지닌 소희(정은지)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소희는 할머니부터 엄마까지 이어져 온 무당 집안에서 태어났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포털 사이트에 연재되면서 1억 2천만뷰의 조회 수를 기록하는 등 인기를 끈 공포 웹툰이다.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차용해 흥행에 성공한 영화 '곤지암'(2018)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세트장이 아닌 실제 전라북도 장수의 산 안에 있는 흉가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102분. 15세 이상 관람가 ◆그녀감독:스파이크 존즈출연:호아킨 피닉스, 스칼렛 요한슨 2014년 한국에 개봉된 미국의 SF 로맨틱 드라마로 지난 29일 재개봉했다. 2025년, 시어도어 트웜블리(호아킨 피닉스)는 낭만적인 편지를 대필해주는 전문 작가로 일하고 있다. 고독하고 내성적인 그는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아내 캐서린과 별거한 이후로 줄곧 삶이 즐겁지 않다. 시어도어는 인공지능으로 말하고 적응하고 스스로 진화하는 운영체제가 설치된 기기를 산다. 그는 처음 그 운영체제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도록 설정한다. 그리고 난 후 그녀(Her)는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사만다(스칼렛 요한슨)라고 정한다. 사만다가 심리적으로 성장하고 배워가는 능력은 시어도어를 놀라게 한다. 시어도어는 사만다와 하는 대화와 교감에 익숙해지고 점점 친밀해져서 성적인 교감에까지 이르게 된다. 125분. 15세 이상 관람가

2019-05-30 14:02:56

영화 '더 보이'

[김중기의 필름통] 새영화

◆어린 의뢰인감독:장규성출연:이동휘, 유선, 최명빈인생 최대 목표가 오직 성공뿐인 변호사 정엽(이동휘)은 성공할 꿈에 부풀어 있다. 잠시 머물렀던 사회복지센터를 통해 알게 된 다빈(최명빈)과 민준(이주원) 남매를 다정히 대해주면서도 그는 자신의 꿈에만 취해 있다. 대형 로펌 회사에 취직한 뒤 햄버거를 같이 먹자는 남매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어느 날, 10살 소녀 다빈이 7살 남동생을 죽였다는 충격적인 자백 소식을 전해 듣고 엄마 지숙(유선)의 숨겨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나선다. 2013년 칠곡 계모 아동 학대 사건을 스크린에 옮겼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영화 '극한직업'에서 알 수 있듯, 능청스러운 연기가 인상적인 이동휘는 사건의 실체를 안 뒤에 진실을 파헤치려는 변호사 역을 진정성 있게 표현했다. 아역배우 최명빈, 이주원은 학대로 고통받는 모습을 리얼하게 연기했다. 114분. 12세 이상 관람가 ◆뷰티풀 보이스감독:김선웅출연:박호산, 이이경, 문지인성우들의 세계를 유쾌하게 그린 영화다. 단 하루 만에 더빙을 끝내야 하는 프로젝트를 맡은 박대표(박호산)는 이감독(연제욱)을 통해 급히 성우들을 모은다. 어렵게 성우 수를 채우고 녹음을 시작하려던 찰나, 진짜 문제가 터진다. 느닷없이 광고주가 나타난 것. 급기야 녹음을 지켜보며 하나하나 훈수를 두고, 성우들은 점점 지쳐간다. 좁은 부스 안에서 광고주가 내린 새로운 미션을 소화해야 하는 성우들의 좌충우돌 소동을 그린 영화다. 4차원 '덕후'부터 남몰래 연기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과거 톱 성우, 1인 미디어에서 더빙 아티스트로 활약 중인 청년 등이 펼치는 활약이 흥미를 자아낸다.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도를 넘는 무례한 갑질, 공채와 비공채 간의 경쟁, 사회에서 잊혀가는 존재들의 슬픔 등 다양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96분. 전체 관람가 ◆더 보이감독:데이비드 야로베스키출연:잭슨 A. 던, 엘리자베스 뱅크스슈퍼 히어로가 사악한 소년이면 어떻게 될까. 토리(엘리자베스 뱅크스)와 카일(데이비드 덴맨)부부는 아이가 없는 불임 부부다. 아이를 가지기 위해서 애를 쓰는 그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아기가 하늘에서 떨어진다. 말 그대로 하늘에서 우주선을 타고 떨어진 아기. 이 아기를 두 사람은 하늘의 축복이라 생각하고 키운다. 12세가 될 때까지 무럭무럭 자란 브랜든(잭슨 A. 던)은 조금 소심하긴 하지만 착한 아이로 자란다. 그러던 어느 날 토리는 브랜든이 이상한 증세를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 보안관은 실종사건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토리를 찾아온다. 다른 세계에서 온 특별한 힘을 가진 소년이 사악한 존재로 자라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SF 호러영화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제작진의 참여로 기획 단계부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90분. 15세 이상 관람가

2019-05-22 12:48:24

[김중기의 필름통] 디즈니 실사 영화 시리즈

만화영화에서 뮤지컬로, 그리고 다시 실사 영화로.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 변신을 거듭하며 관객의 눈길을 끌어모은다. 2017년 '미녀와 야수'에 이어 이번 주에 '알라딘'이 실사영화로 전 세계에 공개됐고, 7월에는 '라이온 킹'이 실사 버전으로 관객을 찾는다.세 편 모두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큰 성공을 거뒀고, 뮤지컬로 제작돼 히트를 쳤던 작품이다. 급기야 실사영화로 또 한 번 관객의 호주머니를 털기 위해 발진하는 것이다.'알라딘'은 1992년 개봉해서 전 세계 박스 오피스 1위에 올랐던 애니메이션이었다. 'A Whole New World' 등 빼어난 OST는 지금도 영화음악회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곡이다. 뮤지컬 붐에 힘입어 2011년 미국 시애틀에서 처음 공연됐고, 2014년에는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다. 2016년부터는 뮤지컬의 본가인 영국의 웨스트엔드에서도 공연 중이다.좀도둑인 알라딘이 우연히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의 요정 지니를 만나게 되면서 환상적인 모험을 겪게 되는 판타지 어드벤처. 공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악당까지 물리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달콤한 환상이란 환상은 모두 가진 콘텐츠다.실사영화로 가능하게 된 것은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미녀와 야수'에서도 야수의 묘사가 놀라울 정도였다. 여기에 뮤지컬로 한 번 더 정제된 의상과 무대가 더해져 성공적인 실사화가 가능했다.'알라딘'은 영국 롱크로스 스튜디오와 요르단에서 촬영됐다. 배경인 아그라비 왕국은 축구장 2개 면적의 야외 세트장을 세웠다. 건물 배치와 거리의 곡선, 집들의 방향 등 무대 공간은 뮤지컬의 분위기를 최대한 반영해 제작됐다. 특히 강렬하고 화려한 색들로 구성된 뮤지컬의 의상이 영화 속으로 들어왔다. 뮤지컬 보다 훨씬 많은 인원들이 동원돼 스펙터클한 뮤지컬 장면이 연출된다.영화 속 신비의 동굴은 실물 세트에 특수효과를 더해 만들어 냈다. 보석들은 특수효과가 아닌 실제 세공한 보석 소품들이다.음악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가장 신경을 쓰는 분야다. 오스카 주제가 상을 8번이나 수상한 알란 멘켄이 완성한 멜로디에 '미녀와 야수''라이온 킹' 등에 참여한 팀 라이스의 가사가 합류했고, 쟈스민은 영국 출신의 가수이자 배우인 나오미 스콧이 출연한다. 배우 윌 스미스가 램프 요정 지니로 등장한다.7월 개봉될 '라이온 킹'은 1994년 애니메이션으로 최고 흥행작이었다. 1997년 뮤지컬로 제작돼 1998년 토니상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고 6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현재까지 전 세계 1억 명이 관람하고 81억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거둔 최고의 흥행작이다.아기 사자 심바가 정글의 왕이 되는 과정을 그린 '라이온 킹'은 애니메이션의 전설이다. 1994년 개봉 당시 북미를 넘어 전 세계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실사 애니메이션이 지난해 말 티저 예고편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불과 24시간 만에 전 세계 누적 2억 2천400만뷰를 기록하며 대단한 관심을 끌어냈다. 1994년 오리지널의 오프닝을 그대로 차용해 'Circle of Life'의 음악을 입혀 25년 전 향수를 자극했다. 광활한 아프리카 초원과 CG로 생생하게 살아난 캐릭터들이 눈길을 끌었다.원작에서 아버지 '무파사' 목소리를 연기했던 제임스 얼 존스가 이번에도 무파사의 목소리를 맡았고, 랄라에 가수 비욘세가 캐스팅됐다. 감독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실사화 시리즈인 '정글북'의 존 파브로가 맡았다.'정글북' '미녀와 야수' '덤보' '곰돌이 푸' 등 애니메이션의 실사화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새롭게 변신하는 과정이다. 원작 콘텐츠의 인기에 실제를 덧입히는 기술력이 더해져 환상을 실제 경험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2018년 디즈니가 한 해 동안 벌어들인 흥행수익이 70억 달러(한화 약 7조 9천억원)를 돌파했다. 마블과 폭스까지 인수하면서 영화사상 최대의 콘텐츠 왕국을 완성했다.올해 또 한 번 시장을 뒤흔들 계획을 발표했다. 바로 스트리밍 서비스인 디즈니 플러스(Desney +)의 시동을 알린 것이다. 전 세계 흥행 수익을 기준으로 역대 10위 권 안에 5편이나 보유하고 있고,. 7천여 편의 TV 시리즈와 500여 편의 영화를 가진 디즈니가 이제 안방을 공략하겠다는 것이다.실사화를 통해 기존의 콘텐츠를 재생산하는 것도 이러한 전략 위에 추진된 것이고, 앞으로도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원작을 본 세대와 디지털의 옷을 입은 새로운 버전의 세대를 모두 공략할 수 있기에 디즈니로서는 놓칠 수 없는 보증수표인 셈이다.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2019-05-22 12:48:06

영화 '논-픽션'

[김중기의 필름통] 새영화

◆악인전감독:이원태출연:마동석, 김무열, 김성규중부권을 휘어잡고 있는 조폭 두목 장동수(마동석)는 늦은 밤 직접 차를 몰고 가던 중 괴한에게 칼을 맞는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습격을 당하지만 평소 싸움판에 일가견이 있기에 위기를 모면한다. 자신을 찌른 괴한이 반대 조직의 소행이 아님을 알게 된다. 한편 '미친개'로 불리는 강력반 형사 정태석(김무열)은 장동수가 칼에 찔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연쇄살인범의 범행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장동수에게 함께 범인을 쫓고 마지막에 잡은 사람이 원하는 대로 처리하자고 제안한다. 둘은 경찰의 정보와 조폭의 부하들을 공유하면서 살인범을 추적한다. 나쁜 형사와 나쁜 조폭 두목이 나쁜 살인범을 잡는 영화다. '이웃사람' '범죄도시' '성난황소' 등을 통해 힘 있는 액션을 보여준 마동석의 무게감에 의지한 영화다. 악인들의 거친 욕설과 주먹질이 난무한다. 110분. 청소년관람불가 ◆서스페리아감독:루카 구아다니노출연:다코타 존슨, 틸다 스윈튼, 클레이 모레츠 마담 블랑(틸다 스윈튼)의 무용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위해 미국에서 베를린을 찾아온 소녀 수지(다코타 존슨)는 면접 끝에 꿈을 이룬다. 곧 무용팀의 중심 멤버로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수지가 무용팀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뒤로 무섭고 해괴한 일들이 주변에서 자꾸만 생겨난다. 이 무용 아카데미에서 발생되는 이상한 일들이 과연 우연일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비거 스플래쉬' 등을 연출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작. 1977년 이탈리아 다리오 아르젠토가 연출한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했다. 원작은 미국인 무용수가 자신을 제물 삼아 젊음을 유지하려는 사악한 마녀를 물리친다는 내용이다. 루카 감독은 새로운 설정과 스토리를 입혔다. 냉전시대 베를린에서 극좌파 세력의 테러가 극에 달했던 불안한 상황을 배경으로 했다. 152분. 청소년관람불가 ◆논-픽션감독:올리비에 아사야스출연:기욤 카네, 줄리엣 비노쉬, 뱅상 맥켄 '퍼스널 쇼퍼'(2016)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프랑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신작. 전통적인 책의 형태가 전자책으로 변화되는 출판계를 배경으로 파리 사람들의 삶과 관계를 그린 영화다. 스타 배우인 셀레나(줄리엣 비노쉬)를 아내로 두고 있는 편집장 알랭(기욤 카네)은 회사의 젊은 디지털 마케터 로르(크리스타 테렛)와 불륜 관계다. 종이책과 e북 사이에서 고민하는 알랭은 '종이책의 시대는 끝났다'고 믿는 로르와 설전을 벌이다 특별한 사이로 발전한다. 매너리즘에 빠진 셀레나는 레오나르가 쓴 연애소설의 주인공이 되는 일에 짜릿함을 느낀다. 레오나르의 아내 발레리(노라 함자위)는 남편의 일탈을 눈감아준다. 표면적으로는 두 부부의 얽히고설킨 관계에 대한 드라마지만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는 지적인 감독의 시선이 돋보인다. 107분. 15세 이상 관람가

2019-05-15 13:16:26

영화 '배심원들'

[김중기의 필름통] 배심원들

배심원을 소재로 한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 시드니 루멧 감독의 '12명의 성난 사람들'(1957)이다.빈민가 출신의 18살 소년이 아버지를 살해했다. 흉기인 칼이 발견됐고, 목격자도 있다. 살해 동기도 뚜렷하다. 이제 유무죄만 배심원들이 평결하면 된다. 12명의 배심원들이 더운 여름 에어컨이 고장 난 방에 모인다. 너무나 쉬운 일이다. 그러나 투표 결과 11:1. 한 명이 무죄를 주장한 것이다. 11명은 의아하다. 그들은 빨리 끝내고 야구구경을 가야되고, 주식 중개 이야기를 하고, 껌을 씹고... . 그들의 결정에 따라 18살 소년이 사형을 당할 수도 있는데 이들은 이기적인 생각에 몰두한다.1명의 무죄 추정. 그는 자신의 의심을 하나 둘 검증해 나간다. 소년의 키와 상처의 높이, 목격자의 시력과 현장 상황, 누구나 쉽게 살 수 있는 흉기... . 배심원들의 점점 그의 무죄 주장에 힘을 보태면서 10:2, 7:5, 4:8... . 결국 0:12로 무죄를 결론 짓는다.그 와중에 사람들이 가진 편견과 선입견, 법에 대한 가치관, 정의에 대한 신념 등이 드러나면서 미국 사법제도와 인간 삶의 태도 등이 함축적으로 그려진다.당시 33살이었던 시드니 루멧 감독이 불과 20일 만에 만들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법과 정의, 사실과 거짓을 정교하고 치밀하고 파헤치고, 인간 군상의 욕망과 이기심까지 폭로하는 역작이다.정의가 실현되고, 갑갑하던 방을 나오는 순간 폭우가 쏟아진다. 13번째 배심원인 관객들에게 후련함과 청량감을 던져주는 멋진 결말이었다.영화 '배심원들'(감독 홍승완)을 보면서 계속 오버랩되는 영화이기에 길지만 설명을 늘어놓았다.국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역사적인 재판이 열린다.나이, 직업, 성별도 다양한 일반 사람들 8명이 배심원으로 선정된다. 그들 앞에 놓인 사건은 너무나 뚜렷한 것이었다. 노모를 살해한 존속 살인사건으로 증거도 있고, 증인도 있고, 범인의 자백까지 명백하다. 피의자에게 몇 년형을 선고할지 양형 결정만 남은 상황. 말하자면 '쉬운' 재판이었고, 국민들에게 사법기관의 멋진 이벤트를 보여 줄 수 있는 기회였다.그러나 8번 배심원 남우(박형식)는 결정을 하지 못한다. 어눌하던 그가 계속 문제를 제기하면서 재판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배심원들'은 2008년 처음 열린 국민참여재판을 소재로 한 영화다. 배심원 제도가 없는 한국이다 보니 영화는 낯선 제도와 다양한 캐릭터들의 성격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똑똑한 대기업 비서실장, 시신만 30여년 수습한 장의사, 빨리 집에 가야되는 엄마, 일당만 챙기자는 청년 등이 등장하고, 사법부는 정의의 실현보다는 시스템화된 형식을 홍보하는데 주력한다.우유부단한 8번 배심원이 나오면서 갑자기 피고인이 혐의를 부인하고, 재판은 유무죄를 재판하는 양상으로 바뀐다.'변호인'이나 '부러진 화살'처럼 굵은 메시지를 우직한 연출로 그려낸 뛰어난 한국 법정 영화가 있지만, '배심원들'은 가볍고 유쾌하고, 그래서 안일해 보이는 법정 드라마다. 안일하다는 이야기는 치밀하거나 개연성을 구축하기보다 감정에 호소하는, 관객에게 영합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배심원'도 아닌 '배심원들'이라고 제목을 지었다면 이 영화는 캐릭터들이 생명인 영화여야 한다. 그러나 캐릭터들이 너무 전형적이다. '12명의 성난 사람들'의 헨리 폰다는 정의을 지키는 원형적인 인물이라면 '배심원들'의 남우는 결정 장애를 가진 전형적인 인물이다. 허술한 증거와 정황을 우연한 기회에 획득해서 영웅적인 캐릭터로 변신해 버린 것이다. 길을 잃고 복도를 헤매다가 어머니를 잔인하게 살해한 피의자를 만난다는 설정은 남우의 캐릭터가 얼마나 허술한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강한 목소리로 유죄를 확신하던 캐릭터들이 뚜렷한 계기 없이 남우의 의심에 동조해버리는 것도 안일하고, 대국민 이벤트를 강조하며 판에 박힌 너스레를 떠는 법원장(권해효), 쉽게 가려다가 뒤통수를 맞은 재판장 김준겸(문소리)의 막판 뒤집기(?)도 구태를 의연하게 보여주는 캐릭터들이다.범인이 자백하는 바람에 모든 증거가 허술하다는 설정이지만, 배심원들의 정의에 대한 각성 변화 효과를 높이기 위해 증거를 교묘하게 흐리거나, 부풀리는 것도 진실성 추구의 법정영화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기교다.캐릭터들의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법과 정의를 일일이 말로 웅변하고, 또 반복해서 리와인드시키는 것도 안일한 연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배심원들'은 실제로 있었던 국민참여재판에 허구의 사건을 뒤섞은 영화다. 그러나 법정 드라마가 가져야 할 덕목 대신 판에 박힌 신파를 녹여 넣으면서 이도 저도 아닌 영화가 돼버렸다. 스릴러적인 카메라 워크에 휴먼 가족 드라마같은 캐릭터, 관객의 입맛에 들기 위해 갈 방향을 잃은 연출, 진정성을 잃어버린 메시지까지. 20여명의 주요 캐릭터 중에서 유일하게 공감되는 인물이 짧게 나온 피의자의 딸 소라(심달기)라고 하면 심할까?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2019-05-15 13:16:09

[김중기의 필름통] 새영화

◆미스 스티븐스 감독:줄리아 하트출연:릴리 레이브, 티모시 샬라메 세 명의 아이들이 선생님과 주말 3일 동안 열리는 연극대회에 참가하면서 서로 차츰 알아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연기는 잘 하지만 학교에서는 요주의 학생인 빌리(티모시 샬라메)와 발랄하고 직설적인 소녀 마고(릴리 라인하트), 귀엽고 친근한 소년 샘(앤서니 퀸틀), 그리고 이들의 영어 선생님 스티븐스(릴리 레이브). 넷은 오래된 차를 타고 대회 현장으로 향한다. 서로 다른 아이들은 처음부터 불편함을 느낀다. 빌리는 스티븐스 선생님에게 자신과 비슷한 점을 보고 위로를 건네려 하고, 선생님은 마음 속 벽을 허물고 자신의 상처를 털어놓는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으로 국내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티모시 샬라메의 풋풋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더 어린 모습의 2016년 영화이기 때문이다. 2016년 북미에서만 제한 상영됐지만, 이번에 한국 관객의 개봉 요청에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정식으로 극장에서 선보인다. 86분. 12세 이상 관람가 ◆어글리 돌 감독:켈리 애스버리출연:켈리 클락슨, 닉 조나스, 자넬 모네 못 생겨서 더 귀여운 인형 어글리 돌. 그들이 살아가는 행복한 마을 어글리 빌. 주인공 인형 모씨는 마을 바깥에 어떤 세상이 있을지 늘 궁금해 한다. 모씨는 친구들과 함께 파이프 건너편으로 모험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외모와 성격이 완벽한 퍼펙션 스쿨의 친구들과 만나 짜릿한 세상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이들은 인형들의 숨겨진 진실을 마주한다. 어글리 돌은 한국과 미국 작가의 러브스토리에서 탄생한 봉제 인형이다. 한국의 김선민 작가와 미국의 데이비드 호바스 작가의 연애 시절 서로 주고받은 손편지 속 그림이었다. LA의 한 캐릭터 용품점에서 판매를 시작해서 미국에서는 1천만 개 이상 판매되며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슈렉2'와 스머프:비밀의 숲'을 연출한 켈리 애스버리 감독이 연출했다. 모씨 목소리 연기를 맡은 켈리 클락슨의 노래 등 13곡의 음악들이 한 편의 뮤지컬 같은 느낌을 준다. 87분. 전체 관람가.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감독:기예르모 델 토로출연:이바나 바쿠에로, 더그 존스 2006년 영화로 재개봉했다. 꿈 많은 소녀, 오필리아는 만삭인 엄마와 함께 군인인 새아버지의 부대 저택으로 이사를 간다. 하지만 자신을 못마땅해 하는 냉혹한 새아버지와 신비한 숲으로 둘러싸인 저택의 이상한 분위기에 잠을 못 이루던 오필리아에게 요정이 나타난다. 신비로운 모습에 이끌린 오필리아는 요정을 따라 미로로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판'이라는 기괴한 요정을 만난다. 판은 오필리아에게 그녀가 지하왕국의 공주였으나 인간세계로 나왔다 돌아가지 못하고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다시 공주로 돌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세 가지 미션을 제안한다. 2006년 개봉 당시 칸 영화제에서 22분간 기립박수를 받았고, 200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촬영상, 미술상, 분장상을 수상하며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기괴하면서도 슬픈고 잔혹한 기예르모 델 토로의 판타지 영화다. 119분. 15세 이상 관람가.

2019-05-01 13:20:20

영호 '나의 특별한 형제'

[김중기의 필름통] 리뷰 '나의 특별한 형제'

어벤져스의 광풍 속에 가슴 따뜻한 휴먼드라마 한 편이 개봉했다.'나의 특별한 형제'(감독 육상효). 장애를 가진 두 청년의 특별한 형제애를 그린 영화다. 이런 스토리는 낯설지 않다. '오! 브라더스'(2003)는 조로증으로 겉늙은 동생과 철없는 형의 좌충우돌 코믹을 그렸고, '형'(2016)과 '그것만이 내 세상'(2018)도 뒤늦게 만난 장애 형제를 주인공으로 그린 영화였다.그러나 이들 영화들은 장애인의 비범함을 강조하면서 오히려 장애를 차별하는 듯 하는 자세를 취해 불편함을 전해주기도 했다. '나의 특별한 형제'도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관람했다. TV 영화프로그램에서 그 점만 부각해서 홍보하는 통에 더 그랬다.그러나 '나의 특별한 형제'는 그 보다 더 따뜻했다.사회복지시설 '책임의 집'에는 한 형제가 살고 있다. 비상한 머리를 가졌지만, 온 몸이 마비돼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지체 장애인 세하(신하균). 뛰어난 수영 실력을 자랑하지만 5세 수준의 지적 장애인 동구(이광수). 둘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지만 20년간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형제처럼 살고 있다.그러나 원장 신부님(권해효)이 세상을 떠난 후 난관에 부딪친다. 정부의 지원금이 끊기고 둘은 장애 유형이 달라 헤어져야 할 처지에 놓인다. 세하는 '책임의 집'을 지키고 동구와 떨어지지 않기 위해 구청 수영장 알바생인 미현(이솜)을 수영코치로 영입하고, 동구를 수영대회에 출전시켜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인물이 형제 앞에 등장하면서 새로운 위기를 맞게 된다.이 영화도 기본 틀은 장애라는 플롯이고, 그 장애가 극적 감동을 주는 구조다. 그러나 다른 영화들처럼 인간 승리로 극한 감동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보살펴 주고 이해해 줘야 된다고 웅변하지도 않는다.원장 신부님은 원생들이 비록 장애를 안고 태어났지만, 태어난 책임을 다해야 한다면서 시설 이름도 '책임의 집'이라고 지었다. 장애와 비장애의 선입견과 우려를 벗어내고 함께 살아가야 하고, "같이 살 수 있기에 강하다"고 말한다.동구와 함께 살기 위해, 동구를 지키기 위해 세하는 돈을 받고 '가짜' 봉사 확인증도 만들어준다.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브 앤 테이크 좀 했기로 뭐가 문제냐?"며 강변한다. 마냥 약자가 아니라는 항변이다.동구와 세하를 둘러싼 캐릭터들에 대한 묘사도 상투적이지 않다. 동구가 떠난 뒤 남은 세하를 간병하는 복지사는 일반적인 청년이다. 휴대폰을 보면서 숟가락을 얼굴에 끼얹어도 적대적인 인물로 그리지 않는다. 미는 휠체어 대신 전동 휠체어를 권하면서 "우리도 생각해 줘요"라고 세하에게 말한다.세하와 동구를 연결하는 소품들도 돋보인다. 동구는 매일 새벽 3시에 알람시계에 맞춰 세하의 몸의 방향을 바꿔준다. 동구가 없이 울리는 알람시계, 세하가 없는 침대에 붙여진 사진, 세하를 위해 평소에 준비해 둔 빨대 등이 그 어떤 절절한 대사보다 설득력 있게 둘의 그리움을 보여주고 있다.이 영화는 십여 년을 한 몸처럼 살아온 두 청년의 실화에서 출발했다. 지체 장애인 최승규 씨와 지적 장애인 박종렬 씨의 실화다. 1996년 광주의 한 복지원에서 처음 만난 둘은 한 명은 머리가 되고 다른 한 명은 몸이 되어, 친형제나 다름없이 생활했다. 2002년에는 광주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한 최 씨를 위해 박 씨가 4년 동안 휠체어를 밀고 등교했고, 그 도움으로 최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해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감독은 이들의 이야기를 기획 단계까지 포함해 무려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영화로 완성했다. 육상효 감독은 '방가방가',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 등 소외된 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카메라에 담아왔다. 이 영화가 유독 따뜻한 것도 그 이유다.세하역의 신하균의 연기도 잘 어울리고, 이광수도 특유의 이미지로 극의 재미를 더한다. 과장된 일면도 없지 않지만, 희화화 보다 관객에 대한 배려로 이해될 정도다.재판 장면 등 몇몇 억지스러운 면도 있지만 '나의 특별한 형제'는 적절한 유머와 감독의 따뜻한 시선, 배우들의 호연으로 감동을 주는 휴먼 드라마다. '어벤져스:엔드게임'이라는 광란의 극장가에 선전이 기대되는 5월의 영화다. 114분. 12세 이상 관람가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2019-05-01 13:19:51

영화 '어벤져스:엔드게임'

[김중기의 필름통] 어벤져스 : 엔드게임

'어벤져스'는 영웅 액션 활극이 아니었나?시간 떼우기 용 '어벤져스' 군단이 왜 이렇게 근사해졌지? 개봉 첫날 첫 시간에 관람한 후 든 생각이다. 아주 작정하고 만들었구나. 전작인 '어벤져스:인피니티 워'까지 다시 보고 간 터라 더욱 확연했다.'어벤져스:엔드게임'은 슈퍼 히어로물의 역작이다. 10년간 어벤져스 역사를 3시간에 쏟아 넣어 비장미 넘치는 서사극을 만들어냈다.악의 화신 타노스가 6개의 인피니티 스톤을 모은 뒤 우주 생명체의 절반을 재로 사라지게 한다. 그 후 5년 뒤, 살아남은 히어로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어느 날 앤트맨(폴 러드)이 되살아난다. 그는 양자 공간에 있다가 우연히 현재로 튀어나온 것이다.이를 계기로 살아남은 어벤져스들이 다시 뭉친다. 양자역학을 통해 과거로 되돌아가 타노스의 손에 넘어가기 전 인피니티 스톤을 차지해 사라진 사람들을 돌아오게 할 계획을 꾸민다.슈퍼 히어로물답게 아주 단순한 줄거리다. 그러나 극적인 이야기 전략을 구사하면서 다채롭고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3시간에 걸친 이야기를 나누면 3개의 구조로 구분된다.1막은 상실이다. 페이드인 되면 호크 아이(제레미 레너)가 딸에게 활을 가르친다. 햇살이 드는 야외에서 가족 피크닉. 그러나 눈앞에서 가족들이 모두 재로 날아가 버린다. 이후 히어로들은 모두 지리멸렬한 일상을 살아간다. 헐크(마크 러팔로)는 몇 차례의 자기 실험 끝에 안경을 쓴 덩치 큰 초록 아저씨가 됐고, 토르(크리스 헴스워스)는 배가 나온 술꾼이 됐다. 매몰차던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마저 홀로 눈물을 훔치며 후회와 슬픔에 가득 차 있다.1막은 액션에 치중했던 내러티브에 비장미 넘치는 서사구조를 담는 과정이다. 어벤져스 군단의 평면적인 캐릭터들이 애련한 서정성까지 담아 살아 숨 쉬게 한다.2막은 다시 희망이다. 앤트맨의 귀환으로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과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 등 살아남은 히어로들이 결집한다. 영화는 다시 색깔을 환하게 갈아입는다. 마블 히어로 특유의 유머들이 살아난다. 스타로드(크리스 프랫)와 수다스러운 로켓(브래들리 코퍼 목소리)은 물론이고, 타르와 헐크까지 가세해 곳곳에서 폭소를 자아낸다."22편의 영화가 집대성된 작품"이라고 말한 케빈 파이기 마블 스튜디오 대표의 말처럼 '아이언맨'(2008)부터 10년간의 마블 영화 속을 헤집는 즐거움을 준다. 아이언맨은 1970년으로 되돌아가 아버지와 상봉하는 감동을 선사하기도 한다.그리고 3막. 최후의 일전과 고별이다. 특히 3막은 연출을 맡은 안소니 루소와 조 루소, 그리고 마블 제작진의 마블 히어로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한껏 묻어난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비롯해 '어벤져스:엔드게임'을 끝으로 계약이 끝나는 배우들에 대한 최고의 예우를 보낸다. 캡틴 아메리카의 퇴장과 새로운 방패 주인의 세대교체는 아쉬움과 함께 애잔한 마음까지 나게 한다. 1세대 어벤져스의 퇴장은 한 세대와의 작별과도 같은 것이어서 감독은 특히 에필로그를 반복해서 그려낸다.'어벤져스:엔드게임'은 이제껏 틈만 나면 액션으로 떼우던 것과는 달리 액션을 무척이나 아끼는 편이다. 서사 구조를 위한 것이지만, 액션 팬들에게는 아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대결에서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어벤져스 어셈블'(Assemble)'!"이라고 외치는 캡틴 아메리카의 구호는 극의 절정을 만들어낸다.마블사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외 출연배우들에게 조차도 전체 시나리오를 보여주지 않을 정도로 보안에 철저했다. 예고편을 만들면서 단 하나에도 타노스(조슈 브롤린)를 등장시키지 않을 정도였다. 전작에서 닥터 스트레인저(베네딕트 컴버배치)는 1천400만 605개의 미래를 읽고 그 중 단 하나만 성공한다고 예고했다. 불가능에 가까운 경우의 수다. 이를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노력이다.그동안 마블 영화들은 쿠키 영상으로 다음 편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했다. 쿠키 영상은 영화가 끝난 후 짧게 추가되는 영상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쿠키 영상이 없다. 이는 한 세대와의 끝을 보여주는 것이고, 어벤져스의 새로운 시작을 예고하는 것이다.틸다 스윈튼, 미셀 파이퍼, 마이클 레드포드도 까메오로 출연하고, 앤트맨을 만들었던 행크 핌 박사역의 마이클 더글러스의 젊은 시절 모습도 나와 재미를 더한다.'어벤져스:엔드게임'은 현재 할리우드 영화의 현주소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한다.화려한 액션과 현란한 편집, 극한의 세밀함을 보여주는 특수효과, 극의 강약을 조절하는 긴장과 유머. 그리고 여기에 약자들의 정의감과 다인종의 융합, 거기에 서정성까지 더한다. 미국 영화가 보여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스크린에 그려낸 것이다. 장르가 슈퍼 히어로물이라는 것도 미국적이지 않을 수 없다. 180분. 12세 이상 관람가.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2019-04-24 13:10:56

[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프리즘> '어벤져스'와 옛날 극장의 풍경

'어벤져스:엔드게임'(이하 엔드게임)이 모든 극장의 스크린을 집어 삼켜버렸다.개봉 전 예매 티켓이 200만장이나 팔려나갔으니 흥행 '돌풍'이 아니라 '광풍' 수준이다. 필자도 지난 수요일(24일) 오전 7시 영화관을 찾았는데, 그 시간에 앞 줄을 빼고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예매율 96.9%. 게임은 끝이다.'흉탄'을 피해 개봉일을 연기하는 바람에 굵직한 새 영화도 없는 셈.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다큐멘터리 영화 '안도 타다오'와 아일랜드 두 소년의 사랑을 그린 '하트 스톤'이 개봉했지만, 언제 '엔드게임'으로 바뀔지 모르는 상황이다.'엔드게임'의 전편인 '어벤져스:인피니티 워'가 지난해 2천460개 스크린으로 시작해서 개봉 며칠 만에 2천550개까지 늘렸다. '엔드게임'은 약 2천800여개 스크린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국 스크린 2천890개(2018년 통계)에서 100여개를 뺀 나머지가 모두 한 영화로 채워지는 것이다.당연히 독과점 시비가 인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시장논리를 내세우고, 한국 영화인들은 할리우드 영화의 이런 스크린 독점이 반문화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급기야 지난 22일 '스크린 상한제' 도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스크린 상한제'는 관객이 몰리는 주요 시간대에 특정 영화의 스크린 수룰 제한하는 제도다.이 제도의 도입을 담은 개정안이 총 3건이나 국회에 계류중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여야 쟁점 법안으로 분류돼 2년 넘게 국회에만 머물고 있다.과거에는 어땠을까?70,80년대 한일극장에서 상영하는 성룡영화를 보기 위해 대구백화점까지 줄을 섰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때는 전국에 상영되는 영화 프린트 벌수가 제한돼 있었다. 16개만 전국 극장에 유통되도록 법으로 정해 놓았다. 그래서 대도시에 1~2개, 중도시에 1개 정도 겨우 돌아갈 여유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구에는 1개 영화관에서만 상영될 수 있었다.이런 경우에 당연히 암표가 성행했고, 대형 극장이 유리하다 보니 극장 좌석수가 1천 석이 넘었다. 스크린 사이즈도 커 영화를 보는 맛이 지금보다는 훨씬 좋았다.이 규정이 없어진 것이 1994년 이었다. 이때 이런 기사가 보도됐다. '올해부터 직배사들은 흥행성이 높아 보이는 영화를 20∼30벌씩 복사, 한꺼번에 풀어놓고 있으며, 이 같은 경향은 극장가가 뜨거워지면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월트 디즈니의 새 만화영화 '라이언 킹'은 32벌의 프린트를 들여와 내달 9일(1994년 7월)부터 약 한 달동안 서울지역 7개, 지방 25개 극장을 점령하게 되는데 이는 전국적으로 시설과 규모면에서 개봉관으로 사용될 수 있는 영화관 1백60개의 20%에 해당된다.'(1994년 6월 24일)문화는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시장논리는 경제적 관점이지 문화적 관점이 아니다. 95%가 독점하는 것은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2019-04-24 13:10:40

영화 '왓칭'

[김중기의 필름통] 새영화

◆유랑지구감독:곽범출연:굴초소, 오경, 조금맥가까운 미래. 태양계가 소멸되면서 지구는 영하 70도까지 떨어지고, 사람들은 지상을 버리고 지하도시를 건설해서 살아가고 있다. 전 세계 연합정부는 지구 곳곳에 추진엔진 1만개를 달아 지구를 통째 태양계 밖으로 이동시키려는 계획을 세운다. 오랜 세월 유랑하던 지구는 목성 근처에 도착하지만 목성의 중력 때문에 충돌위기를 맞는다. 남은 시간은 37시간. 인류 대재앙을 막기 위한 사투가 벌어진다. 중국 최초의 SF 재난 블록버스터. SF 소설계의 노벨 문학상으로 불리는 휴고상을 받은 류츠신 작가의 단편 소설이 원작이다. 그동안 할리우드의 전유물이었던 재난 블록버스터에 중국이 야심차게 도전장을 내민 작품이다. 4년 동안 7천명의 스태프가 동원됐고, 5천만 달러(57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125분. 12세 이상 관람가 ◆왓칭감독:김성기출연:강예원, 이학주회사에서 인정받는 커리어우먼 영우(강예원). 그녀는 늦은 시간까지 일하고 밤늦게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다. 영우는 수십 개의 CCTV로 둘러싸인 지하주차장에서 정신을 잃는다. 눈을 뜬 그녀는 평소 안면 있던 회사 경비원 준호(이학주)를 보게 된다. 평상복이던 그녀는 붉은 드레스로 갈아 입혀진 모습에 놀란다. 그동안 준호는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CCTV로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하 주차장을 탈출하기 위해 애를 쓰지만 번번이 가로 막히면서 사투를 벌인다. 회사 주차장에서 납치당한 여자가 탈출을 감행하는 공포 스릴러물이다. 익숙한 공간이 어느 순간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 되어버린 공포를 그리고 있다. 몰래카메라와 스너프 필름(실제 범행을 담은 영상) 등의 요소를 담고 있다. 미국 영화 'P2'를 리메이크했다. 98분. 15세 이상 관람가 ◆요로나의 저주감독:마이클 차베스출연:린다 카델리니, 패트리샤 벨라즈퀘즈1973년, 사회복지사인 애나는 남편 없이 두 아이와 살고 있다. 그녀가 담당하던 한 여인의 아이들이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자, 아이들의 엄마는 이것이 요로나의 짓이라면서 애나에게도 똑같은 저주가 내릴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후 요로나가 애나의 집에 나타나 딸을 위협하는 일이 벌어지고, 애나는 유명한 주술사를 불러 집안에 숨어 있는 요로나의 망령을 쪽으려고 한다. '컨저링'의 제임스 완이 제작을 맡은 공포영화. 스페인어로 우는 여자라는 뜻의 요로나는 멕시코 괴담의 주인공. 바람난 남편에 대한 복수로 자신의 아이들을 죽이고 강가의 몸을 던져 물귀신이 된 괴담이다. 애니메이션 '코코'에도 주제가로 등장한다. 귀족의 아들과 몰래 결혼한 원주민 여인의 한 많은 전설이다. 93분. 15세 이상 관람가

2019-04-17 13:21:57

영화 '다시, 봄'

[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다시, 봄' 리뷰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이 판타지는 시간과 관련된 무수한 영화들을 만들었다. 아내와 자식의 죽음, 또는 잃어버린 연인, 아버지와의 따뜻했던 시간… . 소중한 것을 되살리고 싶은 애틋함과 그리움은 타임리프, 타임워프, 타임슬립 등 여러 영화들로 세분화되면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다시, 봄'은 타임슬립 형 영화다. 시계가 거꾸로 가듯이 하루씩 시간이 되돌아가는 것이다.싱글맘 은조(이청아)는 소중한 딸이 살해당하면서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다. 수련회에 간 유치원생 딸이 치매 노인의 잘못으로 물에 빠져 죽지만 그 노인은 병을 이유로 요양원에서 잘 지내고 있다. 은조는 이를 바꾸기 위해 1인 시위도 벌이지만 세상은 아무도 그녀의 고통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결국 그녀는 자살을 결심하고, 온라인으로 만난 이들과 결행에 옮긴다. 그러나 도중에 포기하는 이가 생기면서 그녀는 다시 눈을 뜬다. 그러나 함께 했던 호민(홍종현)은 세상을 떠난다. 다시 하루가 시작되는데, 바로 어제. 그 다음날은 그저께. 매일 하루씩 되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은조는 사고가 난 그날로 돌아가 딸을 구하려고 결심한다.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7년 전 딸을 낳기 전으로 되돌아간다. 그녀는 호민의 인생까지 바꾸기 위해 목숨을 건다.'다시, 봄'은 자식을 살려내기 위한 엄마의 간절함과 어느 덧 그녀의 일상에 들어온 남자를 구하기 위한 여자의 노력을 시간 판타지에 녹여 놓은 영화다. 시간의 소중함 속에서 현재의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 시간여행을 그린 영화의 단골 레퍼토리이고, 이 영화 또한 그런 의도를 보이고 있다.그러나 쉽게 공감되지 않는 것이 아쉽다. 주인공 은조는 딸을 구하는 엄마 은조와 남자를 구하기 위한 여자 은조, 그리고 다시 현재로 되돌아가고 싶은 사람 은조의 세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셋 모두 절박함이 생명이다.주인공 이청아는 맑고 깨끗한 이미지의 싱글맘이다. 기자라는 직업에 1인 시위까지 불사하는 거친 이미지는 아니다. 모성애를 표현하는 감성연기는 눈길을 끈다. 특히 호민을 대하는 애틋함은 잘 묻어난다. 그러나 세 캐릭터가 보여줘야 할 절박함은 묻어나지 않고, 그래서 캐릭터에 몰입이 쉽지 않다.'다시, 봄'은 동명의 웹툰이 원작이다. 웹툰은 줄거리 보다 생략과 상상으로 그려내는 이미지들이다. 이를 영화로 옮기기 위해서는 만화적 프레임 밑에 있는 개연성과 내러티브를 살려내야 된다. 그러나 영화는 이 부분 보다 로맨스와 멜로, 여고생 감수성 트랜드만을 쫓고 있다. 그래서 만화의 컷처럼 한 장면에만 신경 쓴 듯 전체의 조화는 보이지 않는다.정용주 감독은 엄정화 주연의 '오로라 공주'(2005)의 조감독과 각본을 거쳐 '네버엔딩 스토리(2011)로 후쿠오카아시아영화제 대상을 받기도 했다.'다시, 봄'은 예쁜 그림이 그려진 여고생의 노트같은 영화다. 꽃잎이 떨어지는 책상에 놓아두면 좋을 예쁘기만 한 그림책이다.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시간여행을 다룬 용어들을 살펴보자.1. 타임루프(Timeloop)타임루프는 고리처럼 특정한 시간 속에 갇혀 맴도는 것을 말한다. 그 시간을 벗어나지 못하고 똑같은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나면서 벌어지는 설정이다. 빌 머레이 주연의 '사랑의 블랙홀'(1993)과 톰 크루즈 주연의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가 대표적이다. 2. 타임리프(Timeleap)자신의 의지대로 과거와 미래로 시간을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시간을 설정할 수 있는 '타임머신' 도 타임리프 영화인 셈. '백 투더 퓨처'(1985)와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 '어바웃 타임'(2013)이 여기에 해당된다. 3. 타임워프(Timewarp)타임워프는 시간이 왜곡(warp)되는 것을 뜻한다. 현재의 시간에서 과거나 미래가 혼재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영화들이다. 사건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프리퀀시'(2000), '동감'(2000), '나비효과'(2004)가 그런 영화다. 4. 타임슬립(Timeslip)미끄러지다는 뜻의 슬립처럼 시간이 미끄러져 어느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1994년 무라카미 류의 소설 '5분 후의 세계'에서 처음 등장한 신조어다.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시간의 흐름에 올라탄 케이스다. '시간여행자의 아내'(2009)가 대표적이다.

2019-04-17 13:21:37

[김중기의 필름통] 슈퍼 히어로의 계보

지난 주 '샤잠'에 이어 이번 주에는 '헬보이'까지 등장해서 극장가에 초능력 히어로의 성찬을 벌이고 있다.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이 고작이던 것이 아이언맨, 아쿠아맨, 토르에 데드풀, 캡틴 마블, 타노스... . 수도 없는 히어로들이 출현해서 스크린을 누비고 있다. 그 바람에 과거 람보나 코난, 코만도와 같은 생활형 액션 히어로들은 모두 짐을 사고, 초능력을 가진 슈퍼 히어로들만 극장가에 난무하고 있다.과거 하나씩 등장하던 '맨' 들이 이제 단체로 등장해서 '어벤저스'니 '저스트스 리그'니 그룹화하고, 리메이크를 넘어 리부트, 프리퀄 등의 이름을 달고 나오니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 참에 슈퍼 히어로의 계보를 한번 정리해야 될 듯 싶다.시퀄(sequel)은 원작 스토리의 뒷이야기를 그린, 말 그대로 속편이란 뜻이고, 프리퀄(prequel)은 원작의 선행 이야기를 다룬 것을 말한다. '혹성탈출:진화의 시작'은 유인원이 어떻게 지능을 가지게 된 것인지를 알려주는 '혹성탈출'의 프리퀄인 것이다.'리부트'는 단순히 새로운 주인공을 내세운 리메이크와 달리 속편의 연속성을 뒤엎고 새롭게 구성한다는 의미다. 컴퓨터의 재시동(reboot)과 같다는 뜻이다. '배트맨'의 경우 배트맨 내면의 어두움을 강조하고, 악과 선의 세계관을 새로 구성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가 여기에 해당된다.슈퍼 히어로의 계보에는 두 집이 있다. 바로 마블 코믹스와 DC 코믹스다.얼마 전 개봉해 히트를 친 '캡틴 마블'이 마블, 지난주에 개봉한 '샤잠'이 DC 집안 소생이다. 슈퍼 히어로의 인기에 힘을 입어 등장했지, 인기가 없었다면 여전히 만화책 속에 있었을 캐릭터들이다.DC에는 슈퍼맨, 원더우먼, 배트맨, 아쿠아맨, 슈퍼걸, 캣우먼 등이 있고, 마블에는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헐크, 토르, 앤트맨,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타노스 등이 형제로 있다. DC 집안 자녀들은 진지하고, 약간 어둡다. 영화도 스토리를 더 중시하는 편이다.이에 비해 마블 집 형제들은 성격이 경쾌하고, 트랜드를 따르는 편이다. 영화는 스토리 보다 주인공들의 캐릭터에 치중한다.두 집안 형제들이 큰 일이 생기면 올스타팀을 구성해 대응하는데, DC집에서는 이를 '저스티스 리그'라고 하고, 마블에서는 '어벤져스'라고 이름을 붙였다.DC는 1937년 '디텍티브 코믹스'(Detective Comics)에서 출발했다. 1967년 영화사 워너 브라더스에 합병되면서 1978년 첫 슈퍼 히어로 영화 '슈퍼맨'과 1989년 '배트맨'이 제작돼 큰 인기를 모았다.마블은 1939년 타임리 코믹스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가 1961년 마블 코믹스로 바뀌었다. 1986년 마블 엔터테인먼트로 개명했고, 2009년 월트 디즈니에 인수됐다. 이쯤에서 DC와 마블의 세대주가 대형 영화사인 워너와 디즈니인 것이 드러난다.지난 달 디즈니가 20세기 폭스사를 713억달러(약 80조 6천억원)에 인수하면서 슈퍼 히어로의 계보도 변화가 생긴다. 20세기 폭스사에 소속된 슈퍼 히어로가 엑스맨, 퀵 실버, 판타스틱4, 데드풀 등이 있는데 이들이 모두 디즈니사로 주소지를 옮기게 된다. 그러면 캡틴 마블의 슈퍼 파워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양대 산맥에 신생 조직이 하나 더 가세한다. 바로 다크호스 코믹스다. 아직 생소한 세력이다. 이 집안의 가장 큰 장남이 바로 '헬보이'다.'헬보이'는 나치의 음모로 지옥에서 인간 세상으로 나온 악마의 혈통이다. 그러나 악을 상징하는 뿔을 스스로 잘라내고, 면도하듯 매일 갈아대면서 선의 편에 서서 악과 싸운다. 뒤늦게 태생의 비밀을 알면서 정체성의 고민에 휩싸이기도 하는 캐릭터다.외계의 힘, 잘못된 실험, 부의 과시 등 비이상적인 힘에 의해 생겨난 슈퍼 히어로와 격을 달리한다.다크호스 코믹스는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엄브렐러 아카데미'를 제작하기도 했다. 전 세계에서 동시에 태어난 아이들이 억만장자가 수집해 입양한다. 이들은 모두 초능력자들이다. 이 아이들이 양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파헤치며 세계 멸망의 위협에 맞서는 히어로물이다. 이들 외에 '마스크' '300' '씬 시티' 등이 다크호스 코믹스가 배출한 영화들이다.출생과 양육에 흥미로운 슈퍼 히어로 캐릭터가 하나 있으니 바로 스파이더맨이다. 스파이더맨은 소니 픽처스 집안 자식이다. 변변한 형제도 없고, 그래서 슈퍼 히어로계의 '왕따'와 같은 존재다. '어벤저스' 군단에도 포함되지 못했다.그래서 소니가 마블 집안에 입양 보낸다. 소니가 스파이더맨을 독립적으로 제작하는 것을 포기하고 마블과 합동 제작할 것을 공식적으로 합의한 것이다. 그래서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2016)부터 어벤저스와 함께 출연하게 됐다.'라이언 킹' '인어공주' 등 전통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온 디즈니가 20세기 폭스를 인수하면서 앞으로 슈퍼 히어로의 전쟁은 더욱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흥행에 눈이 멀어 눈요깃거리만 남발하는 미국 영화판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함께 말이다.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2019-04-10 14:30:10

영화 '파이브 피트'

[김중기의 필름통] 새영화

◆바이스감독:아담 맥케이출연:크리스찬 베일, 에이미 아담스 대기업의 CEO에서 펜타곤 수장을 거쳐 미국 부통령까지 오른 딕 체니(크리스찬 베일)의 재임시절을 그린 영화다. 이면에서 내린 결정들이 세계의 흐름을 바꿔 놓는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예일대에 입학한 딕 체니는 술에 쩔어 지내다 퇴학당한다. 그래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궁색하게 살아간다. 당시 여자 친구였던 부인 린 체니는 그를 포기하지 않는다. 딕 체니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국회 인턴으로 시작해 11년만에 최연소 백악관 수석에 오른다. 이후 국방부 장관, 민간 군사 기업 핼리버튼의 최고경영자(CEO)를 거쳐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통령이 된다. 아담 맥케이 감독은 2016년 '빅 쇼트'를 연출한 감독이다. 월 스트리트를 물 먹인 4명의 괴짜 천재 이야기를 밀도 있게 그렸었다. '바이스'에서도 세계 역사를 바꿔 놓는 그 순간, 백악관 가장 깊숙한 곳으로 카메라를 돌려 결정적인 장면들을 보여준다. 바이스는 미국 부통령을 의미한다. 132분. 15세 이상 관람가 ◆미성년 감독:김윤석출연:염정아, 김소진, 김혜진, 박세진배우 김윤석의 감독 데뷔작. 평온했던 일상을 뒤흔든 폭풍같은 사건을 마주한 두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같은 학교 2학년 주리(김혜준)와 윤아(박세진)가 학교 옥상에서 만났다. 최근 주리의 아빠 대원(김윤석)과 윤아의 엄마 미희(김소진) 사이에 벌어진 일을 알게 된 두 사람. 이 상황이 커지는 것을 막고 싶은 주리는 어떻게든 엄마 영주(염정아) 몰래 수습해보려 하지만 윤아는 어른들 일에는 관심 없다며 엮이지 않으려 한다. 그 때, 떨어진 주리의 핸드폰을 빼앗아 든 윤아는 영주의 전화를 받아 그 동안 감춰왔던 엄청난 비밀을 폭로해 버리고, 이를 본 주리는 충격에 빠진다. 감독은 "화목했던 가족 사이를 균열 시키는 것은 비밀과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그 비밀과 거짓말이 들통이 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고 했다. 불륜이라는 소재를 배우들의 역할로 비틀었다. 제목은 어른이 어른스럽지 못한 것을 비유하고 있다. 96분. 15세 이상 관람가 ◆파이브 피트 감독:저스틴 발도니출연:헤일리 루 리처드슨, 콜 스프로즈가까이 갈 수도 없고, 안을 수도 없고, 키스할 수도 없는 두 사람. 과연 사랑이 이뤄질까.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6피트 안으로 접근해서도, 접촉해서도 안 되는 병 낭포성 섬유증을 가진 스텔라와 윌. 첫눈에 반한 둘은 안전거리를 유지하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서로에 끌린다. 병 때문에 지켜야 했던 6피트에서 1피트 더 가까워지는 걸 선택하고 처음으로 용기를 내 병원 밖 데이트를 결심한다. 그러나 갑자기 숨을 쉬지 못하는 스텔라. 윌은 그녀를 살리기 위해 안전거리를 어기게 된다. 독특한 상황을 소재로 한 '파이브 피트'는 서로를 향한 눈빛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첫 사랑의 순수함과 애틋한 감정을 선사한다.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 했다. 낭포성 섬유증은 폐, 췌장, 소화기관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 질환이다. 북미에서 제작비의 6배에 가까운 흥행수익을 올렸다. 116분. 15세 이상 관람가

2019-04-10 12:54:29

영화 '생일'

[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생일'

불면의 밤. 20대에 절망과 불안으로 몇 차례 그런 적이 있지만 성인이 된 후 그러지 않았다. 그런데 몇 년 전 3일 밤을 뜬 눈으로 지샌 적이 있었다. 2014년 4월이었다.세월호. 첫날 오전 침몰과 구조소식이 오락가락했지만,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저 애들을 못 구할까. 눈에 보이는데, 선창을 깨고 들어가면 되는데. 금방이라도 애들을 구해 나올 것만 같아 잠을 잘 수가 없었다.그러나 구조는 없었다. 이튿날도 그랬다. 골든타임 72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못 구했다. 실망이 분노로, 다시 슬픔으로, 그리고 자책감으로 괴로웠다. 지난달 목포 신항에 덩그러니 올라 있는 세월호를 보면서 복받치는 슬픔에 손이 떨렸다. 세월호는 나에게 시간이 지나도 잊혀 지지 않는 트라우마가 됐다.세월호 참사를 다룬 첫 상업영화 '생일'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그리고 있다.사고가 난 지 2년 후인 2016년. 순남(전도연)은 아들 수호를 잃고 딸 예솔과 둘이 산다. 그동안 곁에 없었던 남편 정일(설경구)이 귀국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혼자 큰 슬픔을 겪은 순남은 정일을 반기지 않는다. 문도 열어주지 않고, 며칠 뒤 그에게 이혼서류를 내민다.순남은 웃음을 잃어버렸다. 사람과의 만남도 꺼린다. 퇴근길에 미수습자와 선체의 인양을 주장하는 거리 서명운동의 메가폰 소리가 듣기 싫어 음악을 켠다. 묘소에서 만난 부모들이 애써 밝은 척하자 "소풍 오셨어요?"라고 매몰차게 쏘아붙인다.그러나 그녀는 슬픔을 혼자 감내하며 속으로 파고든다. 철이 바뀌면 아들의 옷을 사 오고, 현관 센서등이 켜지면 아들이 온 것 아닌가 화들짝 놀란다. 모임의 대표가 수호의 생일을 준비하려고 하자 "그걸 왜 해요?"라면서 거부한다.순남의 이런 태도가 더욱 가슴 아리게 한다. 애써 눈물을 흘리게 하거나, 분노를 강요하지 않는다. 남은 가족들의 일상 속에 깊게 녹아져 있는 슬픔을 세밀하게 그려내 보여줄 뿐이다. 애써 담담하게 보내던 순남은 어느 날 밤 꿈에 아들을 만나면서 참았던 울음을 토해낸다.'생일'은 순남을 통해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얼마나 크고 이겨내기 힘든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남편과 딸, 그리고 수호의 친구들을 등장시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공유하게 한다. 오빠에게 집착하는 엄마 때문에 예솔은 언제나 뒤로 밀린다. 서운해하는 딸에게 "오빠는 밥도 못 먹는데 반찬 투정을 해?"라고 소리친다. 베트남 공장 사고 때문에 도저히 귀국할 수 없었던 남편 정일도 아내에게는 어쩔 수 없는 가해자가 되고 만다.순남은 우리 모두가 겪은 트라우마의 상징이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식의 죽음을 보상금으로 저울질하거나, '유난 떤다'는 주위의 시선, 등록금을 경감해준다는 보도에 "돈 생기면 좋지"라며 세속적인 조소를 보내는 모든 것들에 대한 항변과도 같다.모든 죽음에는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순남은 죽음을 인정할 수도 없고, 슬픔을 나울 수도 없다. 드디어 너 없는 너의 생일이 준비된다. 그리고 30여 분에 걸친 슬픔과의 맞 대면,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일상.'생일'은 슬픔을 겪어내는 과정을 통해 내상(內傷)을 회복하는 한 가정의 모습을 그린 영화다.감독(이종언)은 봉사활동으로 유가족 곁을 지키면서 겪은 일들을 기록했고, 그 느낌을 영화로 진정성 넘치게 담아 내고 있다. 세월호의 아픔은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꿈틀거리며 살아있다. 그래서 영화로 만든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토리를 위한 기교나 과장이 용납되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는 정직하게 바른 길로만 간다. 관객에게 트라우마를 일깨우며 슬픔을 나누고 함께 이겨내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영화적으로 아쉬움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이기도 하다.순남 역의 전도연은 '밀양'에서 딸을 잃은 엄마의 절절함을 '생일'에서도 내면 연기로 잘 표현하고 있다. 그녀가 아파할 때 마다 객석에서는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미국 9·11 테러 때 불타는 무역센터에서 몸을 던져 사망한 이가 200여명이나 된다. 어느 미국 심리학자의 말로는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기대하는 것은 희망이라고 했다. 천사가 나타나 나를 안아 안전하게 땅에 내려놓을 것이라는 바람이라는 것이다.차오르는 물속에서 그 애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선창 밖에 있는 많은 배들이, 거기에 있는 어른들이 나를 구해줄 것이란 믿음. 그러나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아무도 구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계속된다.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2019-04-03 13:30:21

영화 '샤잠'

[김중기의 필름통] 새영화

◆샤잠 감독:데이비드 F. 샌드버그출연:재커리 레비, 애셔 앤젤, 마크 스트롱DC의 야심작이다. 이제까지 히어로들과 달리 사춘기 철부지 영웅이다. 열다섯 소년 빌리 뱃슨(애셔 엔젤)은 세 살 때 엄마와 헤어진다. 우연히 탄 지하철을 통해 신비로운 세계에 이끌려 간다. 그곳에서 후계자를 찾던 마법사를 만나고 슈퍼히어로 샤잠(제커리 레비)으로 다시 태어난다. '샤잠!'이라고 주문을 외치면 슈퍼히어로로 변한다. 그는 이후 7가지 대죄(분노·질투·식탐·색욕·나태·교만·탐욕)를 품은 시바나 박사(마크 스트롱)와 맞서게 된다. 샤잠(Shazam)은 여러 신들의 힘을 모아놓은 히어로다. 지혜의 솔로몬(S), 힘의 헤라클레스(H), 체력의 아틀라스(A), 권위의 제우스(Z), 용기의 아킬레스(A), 스피드의 머큐리(M). 강력한 슈퍼파워를 지닌 거구인데 마음은 10대 소년이다. 외형 자체도 우스꽝스럽다. 가슴 한가운데 노란 번개가 박힌 빨간색 쫄쫄이에 순백색 망토를 장착했다. 히어로 중에서 생소할지 모르지만 배트맨보다 출판이 6개월 정도 빠른 경력을 가지고 있다. 132분. 12세 이상 관람가 ◆로망 감독:이창근출연:이순재, 정영숙, 조한철매일 라디오를 듣는 택시 운전기사 남봉(이순재)과 매자(정영숙)는 결혼 45년차 노부부다. 박사 출신 백수 아들 진수(조한철), 학원강사로 일하는 며느리 정희(배해선), 손녀 은지(이예원)와 한 집에서 살아간다. 어느 날 매자에게 갑자기 치매가 찾아온다. 설상가상으로 남봉에게도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두 사람의 현재 기억은 잊혀져 가고, 과거의 기억이 선명해진다. 그 속에서 묻어뒀던 슬픔과 잊고 지냈던 자신들의 로망이 서서히 드러난다. 치매를 소재로 한 노부부의 이야기. 이제까지 둘 중 한쪽만 치매를 겪지만, 이 영화는 둘 다 치매에 걸린다는 것이 다르다. 이순재와 정영숙은 20대 연인에서부터 70대 부부의 모습을 구현했다. 두 사람의 현실감 넘치는 대사와 연기력이 진지하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통해 부부의 사랑을 일깨워주며 노년의 부부의 아릿한 로맨스로 감동을 전한다. 112분. 전체관람가 ◆나의 작은 시인에게 감독:사라 콜란겔로출연:매기 질렌할, 파커 세박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리사(매기 질렌할)는 따분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시를 통해 예술적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재능이 따라주지 않는다. 우연히 학생 중 다섯 살 지미가 시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고, 아이의 시를 자신의 시 수업에서 발표하게 한다. 시를 사랑하는 평범한 유치원 교사가 다섯 살 천재시인을 만나면서 잔잔했던 일상이 흔들리는 과정을 섬세하게 담은 작품이다. 여성 감독 사라 콜란겔로는 "충족되지 않은 열망을 가진 한 여성에 관한 심리 스릴러"라고 했다. 제자의 재능을 키워주고 싶다는 멘토로서의 마음과 천재적 재능에 대한 질투가 어지럽게 뒤섞이고, 결국 점점 더 위험한 생각으로 빠져 들어간다. 칸영화제 공식초청작인 나다브 라피드 감독의 원작 영화 '시인 요아브'를 재해석한 작품으로 제34회 선댄스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97분. 15세 이상 관람가

2019-04-03 12:59:38

영화 '어스'

[김중기의 필름통] 어스 리뷰

'나는 누구인가?'이 같은 근원적 물음을 다룬 공포영화들이 많았다. 평행이론과 도플갱어(닮은 분신)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대부분 그랬다. 나 이외의 모든 것은 타자 또는 적이라는 가정에서 비롯된 이야기다.1968년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걸트영화의 걸작이다. 어느 날 알 수 없는 좀비들이 인간들을 공격한다. 소수의 사람들이 가옥에 피신한다. 철저한 공간의 구분. 밖은 공포와 절망의 공간이고, 내부는 안전한 울타리이다. 1950년대 미국과 소련의 냉전, 1960년대 공산주의자를 색출하는 매카시 선풍으로 인한 철저한 이분적 사고. 모르는 타자가 아닌 내가 잘 아는 이웃이고 친구가 전화(轉化)돼 나타났을 때 진정한 공포가 좀비의 배경이다.'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고립된 사람들은 두 가지 방법으로 갈등한다. 백인 부부는 더 깊이 지하실로 숨자고 고집하고, 흑인청년은 터널이 있는 것도 아닌데 지하로 가는 것은 소통이 불가능한 고립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반대한다. 당시 미국인들의 비이성적 불안과 공포를 은유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침이 되자 흑인은 창가에 서 있다가 진압하러 온 경찰의 총에 숨져버린다. 도대체 누가 적이란 말인가?'우리는 누구인가?'영화 '어스'의 광고카피다. 조던 필 감독은 영화 '겟 아웃'(2017)으로 큰 주목을 받은 코미디언 출신 감독이다. '겟 아웃'은 미국에 아직도 만연한 인종 차별을 공포영화로 기발하게 풀어내 격찬을 받았다. 여러 장치들을 통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신선함을 주었다.'어스' 역시 여느 공포영화와 달리 다양한 상징과 은유를 품고 있으며 스타일은 세련되고 지적인 공포영화다.1986년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 크루즈 해변. 한 가족이 놀이공원에 온다. 어린 애들레이드는 아버지가 한 눈 파는 사이 '공포의 집'에 들어간다. '영혼의 여행, 당신을 찾으세요'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거울로 가득 찬 방에서 놀라운 소녀와 만난다. 바로 자신과 똑같이 닮은 도플갱어다.현재로 넘어와 성인이 된 애들레이드(루피타 뇽)는 남편 게이브(윈스턴 듀크), 딸 조라(샤하디 라이트 조셉), 아들 제이슨(에반 알렉스)과 함께 산타 크루즈 해변 별장을 찾는다. 어린 시절 악몽이 되살아나 불안한 그녀 앞에 빨간 옷을 입은 한 가족이 나타난다. 자신들과 똑같이 생긴 그들 자신이었던 것이다.우리(us)를 뜻하는 '어스'는 나를 공격하는 나가 아닌, 우리를 공격하는 우리로 진화된 공포영화다. 반응속도도 느리고, 전염성도 거친 좀비와 달리 자신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며, 이미 고도로 복제된 대상이 우리 가족을 공격하는 것이다. 타자에 대한 적대적 시선과 외부에 대한 공포가 이미 선을 넘어 내부에 들어온 그들 자신이 공포의 대상인 것이다.미국 사회의 부조리와 그들이 이미 공포의 대상이 된 것을 은유한다. 애들레이드가 자신을 공격하는 그들에게 "누구냐?"고 묻자 "우리는 미국인이다"라고 답하는 것이나, 어스(US)가 미국(US, the United States)을 연상시키는 것도 그것이다.1986년 또한 의미가 있는 시대 설정이다. "1천200만개의 눈과 9천200만개의 이빨을 가진 자"들이 산타 모니카를 비롯해 미국 전역에서 인간 띠 캠페인을 벌이던 해다. 빈곤 퇴치를 위한 것이지만, 영화는 신자유주의와 그때 초래된 불평등과 양극화를 현재의 공포로 꼬집기도 한다.1986년 인간 띠 잇기로 시작해서 빨간 옷을 입은 사람들이 손을 맞잡고 거대한 장벽을 그리며 끝난다. 외부를 모두 적으로 인식하고, 인공적 장벽을 세워 막으려는 트럼프 정부의 정책이 그려지는 대목이다.'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는 피할 집이 있지만, 이들은 갈 곳이 없다. 내가 곧 적이기 때문이다. 영화 몇 곳에 등장하는 성경 예레미아 11장 11절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그들에 피할 수 없을 것이라.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인즉'은 이 재앙이 신을 거역한 10절의 대가로 필연적임을 강조한다.'겟 아웃'처럼 인종 차별을 내세우지 않지만, 흑인 중심적인 시선은 엿보인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흑인이 죽어버리는 허무함(?)은 없다.비교적 묵직함 함의들을 품고 있지만, '겟 아웃'처럼 연출의 세련미와 경쾌함도 잊지 않는다. 죽어가는 백인 여성이 음성인식 장치에게 "경찰을 불러줘"라고 하자 힙합그룹 N.W.A의 "'F**k The Police'(경찰 엿먹어)를 불러 드릴께요"라는 장면이나, 누가 더 많이 죽였는지를 가지고 운전대 실랑이 하는 모습은 심각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자아낸다. '호두까기 인형'의 곡에 맞춰 발레하는 모습으로 둘을 극명하게 대비한 것도 애잔함을 자아내는 시퀀스다.힙합과 합창, 음울한 사운드, 천정을 불안하게 두드리는 빗소리 등 음악과 결합된 사운드들이 극적 긴장감을 높인다.'블랙 팬서'의 루피타 뇽의 연기가 돋보인다. 공포에 저린 얼굴이 일순간 싸늘한 미소로 번질 때 관객을 경악하게 한다. 116분. 15세 이상 관람가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2019-03-27 13: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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