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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엄창석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27>-엄창석

서석림은 솜을 받친 두툼한 두루마기를 입고 뱃머리에 앉았고, 계승은 돛대 밑 배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횡목에 엉덩이를 걸쳤다. "돛을 올릴까요?" "올릴 거 없네. 물이 흐르는 데로 가게 둬." 사공 방씨는 배 꽁무니에 서서 긴 노를 좌우로 조금씩 틀며 배가 내려가는 물살을 자연스럽게 타도록 했다. 겨울이지만 눈이 많이 내려 수량은 풍부했다. 다행이었다. 수심이 얕으면 배 밑이 솟아오른 강바닥에 걸릴 때가 있었다. 그러면 얼음 같은 강물에 뛰어들어 고딧줄을 당겨야한다. 배에는 삼으로 엮은 굵은 고딧줄을 준비해 놓았다. 왜 갑자기 여행을 가지고 했을까. 남은 성벽을 마저 무너뜨릴 거라는 뒤숭숭한 소문들, 의병들이 대구를 치러올 거라는 다급한 이야기, 불이 번지듯 한인들의 땅을 먹어치우는 일인들, 화폐 교환으로 가진 돈이 쇳조각으로 변한 상인들, 계승이 혼자 맡은 이와세 상점에 불을 지르는 일까지. 도시는 곳곳이 불안했다. 이런 때에 서석림은 왜 한적한 강에다 배나 띄울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사문진이 아뜩히 멀어지면서 인가(人家)는 보이지 않았다. 남으로 갈수록 눈이 더 많이 쌓여 있었다. 하얀 산비탈 사이로 굽이돌아가는 강물은 푸른 거울처럼 투명했다. 하늘 높이 치솟은, 군락을 이룬 흰 미루나무가 맑은 강물에 길게 비쳤다. 흰빛을 눈부시게 발산하는 섬세한 가지들이 강물 속으로 거꾸로 뻗어서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냈다. 수십 년 동안 이 강을 누벼서겠지. 계승이 보기에는 뱃머리에 앉은 서석림이 흡사 배의 일부처럼 자연스러웠다. 물살의 흔들림에 몸을 맡기며 장죽을 입에 물고 노를 잡은 방씨를 보거나 눈 덮인 강안으로 무심히 시선을 던졌다. 서석림이 상선을 탄 게 20살 즈음이라던가. 계승이 태어나기 전이지만 당시 낙동강은 뱃전이 서로 부딪칠 지경으로 상선들이 붐볐다고 한다. 낙동강 삼각주인 명지도에서 안동까지 이어지는 수십 군데의 나루에는 수만 명의 보부상들이 집결했다. 상선에서 하역한 물품들을 내륙으로 옮기고 내륙의 산물들을 나루로 가져왔다. 강은 척추와 같았다. 강으로부터 굵고 가는 신경망이 큰도시와 두메산골까지 미세하게 뻗어 있었다. 서석림이 사문진과 개포를 중심으로 낙동강의 허리를 움켜잡던 1876년에 일본이 부산항을 열었다. 그간 막혔던 일본과 서양 물산이 낙동강으로 밀려들었다. 모든 나루에는 성냥, 손거울, 종이 같은 편리한 물건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어염미두(魚鹽米豆)에 한정된 보부상의 짐짝에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서석림이 거느리는 보부상들이 일본과 서양 물건들을 각처로 뿌렸을 것이다. 철도가 들어서기 전부터 일상에 쓰는 매혹적인 물건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그토록 사로잡았을 것이다. "임군, 자네 올해 몇 살인가?" "스물여섯입니다." "스물여섯......임오년(壬午年, 1882년) 생이군. 열 살 무렵에 뭘 했지?" "저의 집이 달배인데 사문진 객주에 나가 심부름하거나 물동이를 나르고 아궁이에 불도 넣고......방우노릇 했습니다." "사문진에서?" "예......" 그저께 광문사 인쇄실에 들른 서석림이 탁자에 둔 교정쇄를 손으로 쓱쓱 넘기다 계승에게 나이를 물었었다. 멀리 개포가 눈에 들어오자 갑자기 그때의 대화가 떠올랐다. 생각지도 못한 거였다. 어느 때인가, 사문진 아래인 개포 나루에서 서석림을 본 적이 있었다. 당시 사문진이나 개포에는 서석림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한번은 객주에 드나드는 여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개포로 간 적이 있었다. 화장품이나 옷가지 따위를 들고 그녀들을 따라간 것 같았다. 지붕을 갖춘 배였고, 같이 탄 십여 명의 여자들이 계승에게 화장함을 들라 해놓고 그의 고추를 만지며 까르르 웃어댔다. 개포 나루에는 소금배가 백여 척이나 몰려 있었다. 서로 뒤엉켜 강물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11월이었다. 낙동강 어귀인 명지에서 가마솥으로 생산한 자염(煮鹽)이, 김장철을 앞두고 한창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오던 시기였다. 이듬해 봄까지 사용할 소금도 이때 거래되었다. 소금은 식량과 다름없었다. 가령 들판에 있는 쑥도 소금이 있어야 절여서 먹을 수 있는 거니까. 거기서 계승은 소금 하역을 지휘하던 서석림을 보았다. 갓을 쓰고 도포를 입었고, 붉은 천이 달린 긴 막대기를 허공에 그으며 소금배들을 질서 있게 도선을 시켰다. 계승은 말로만 듣던 서석림의 모습이라 어린 나이에도 감동에 젖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키가 큰 서석림 곁에서 그를 흉내 내며 짧은 막대기를 휘두르는 어린 아이 하나를 보았다. 마치 서석림을 축소시켜놓은 듯 자세마저 비슷했다. 그 광경은 퍽 인상적이었다. 조금 전에 가졌던 감동은 서석림이 아니라 그 아이에게 받은 것 같았다.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나와 도선과 장삿술을 가르치고 있었지만,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한다기보다 어떤 자부심을 가진 듯 당당했다. 아이는 자기 아버지의 지시를 잊거나 틀리게 받아들이는 사공들에게 다시 지시를 하고 시정을 할 때까지 소리치곤 했다. 그 아이가 서요였다.

2017-06-12 15:22:34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엄창석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26>-엄창석

무엇을 주시하고 있었다는 것인지. 갑자기 들이닥친 서석림 앞에서 계승은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흰 두루마기를 입은 쉰여덟 살의 남자는 등이 조금도 굽지 않은 꼿꼿한 풍채를 띠고 있었다. 계승은 너울대는 불빛에 비친 그의 얼굴을 보았다. 갸름한 얼굴에 입술이 얇고 광대뼈가 약간 튀어나와 있었으며, 늘어진 눈꺼풀 아래로 크고 맑은 눈동자에는 초로(初老)에 이르도록 겪은 갖은 풍상에서 그를 살아남게 해준 어떤 투명한 열정이 담겨 있는 듯했다. 장사치들의 심부름꾼으로 시작해서 보부상 상단을 거느린 대상인으로 성장하여 마침내 낙동강 무역을 손에 넣은 그가 아닌가. 이어 대구로 돌아와 대성당(大聖堂)을 짓고, 교육사업과 금융업, 광대한 수목원 사업에 몰두했다. 격한 시민들 사이에는 그를 비난하는 이도 있었다. 일본 통감부가 주도하는 신구(新舊) 화폐 교체 사업에 서석림이 한몫을 맡았다는 것이다. 1905년부터 시행된 화폐 교체로 전황(錢荒)이 일어나서 갑자기 돈을 잃은 사람들이 잇달아 자살했다. 지금껏 그 여파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추풍령을 기준으로 남쪽과 북쪽에서 통용되는 돈이 달라 타지방 사람들이 거래를 할 때 물건보다 돈 가치를 헤아리는 게 더 까다로운 실정이었으니까. 어떻게든 화폐를 통일할 필요가 있었는데 일본 통감부가 그 일을 했다. 경제생활의 효율성과 일본 침략의 길이 될 위험성은 언제나 손바닥과 손등처럼 맞붙어 있었다. 밤중에 찾아온 그를 만난 감격이 한쪽에서 날카롭게 들리는 비난의 소리와 겹쳐져 오히려 더해진 서석림의 위엄에 압도된 탓일까. 계승은 좁은 인쇄실에서 그와 겨우 1미터 떨어져서 한참동안 마주보고 서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이틀 후, 계승은 석림을 배종(陪從)하여 사문진으로 가게 되었다. 삼 년 전, 경부선 철도공사 당시에 갖가지 재료를 나르느라 사문진과 대구 정거장 사이에 깔아놓은 레일이 아직도 드문드문 남아 있는 길을 따라, 서석림은 조랑말을 타고, 계승은 걸어서 사문진으로 향했다. 사문진은 대구 서쪽의 화원에 있는 낙동강 나루였다. 오전 열시쯤에 사문진에 도착했다. 금호강이 합류하는 사문진에는 광활한 늪지대를 끼고 낙동강이 흘렀다. 며칠 간 내릴 눈으로 강가는 햇살을 받아 미광을 길게 내뿜었고 미루나무 왕벗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가지에 쌓인 눈을 털고 있었다. 계승의 집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달배(월배)였다. 어릴 때 나루로 나와 객주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동전을 모았던 기억이 났다. 소달구지를 타고 대구로 간 게 열한 살 때였다. 그 뒤로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다시는 달배에 오지 않았다. 사문진에 와 본 게 14년이 되는 셈이었다. 눈앞의 풍광은 기억에 담긴 것과 많이 달랐다. 강안 안쪽, 낮은 산비탈 아래로 납작하게 엎드린 초가들은 그대로였지만 길가에 즐비하게 늘어섰던 기와집들은 이제 낡고 흉물스러웠다. 사오십 간이나 되는 그 집들은 죄다 보부상들이 오가는 객주였다. 그때는 이른 아침부터 돛을 높이 쳐든 배들이 나루로 모여들고, 강안 공터에는 대마장, 무계장, 성주장, 대구 큰장으로 떠나기 위해 짐을 챙기는 상인들이 들끓었다. 청나라 전쟁에 나갔던 수백 마리의 일본 말들이 배에서 내릴 적도 있었다. 말들이 대구로 들어가고 그놈들이 떠난 자리에 똥이 산더미처럼 쌓여 한동안 상선에서 하역한 물건을 놓을 자리가 없었다. 밤에는 일대가 불야성이었다. 객주 담장에 끝없이 기대놓은 지게들, 시끌벅적한 노래 소리와 고함소리, 어느 집에서 싸움이 붙어 옹기를 마당에 던져 박살내는 소리가 퍽퍽 들렸었다. 겨울이라 한산한가. 하지만 계승의 기억에 있는, 상인들보다 아낙들이 더 자주 들락거렸던 느릅나무 객주집은 기와가 헐러 내리고 담장이 무너져 있었다. 그래도 수십 척 상선들이 강둑에 코를 대고 정박해 있어서 계승은 은근히 반가웠다. 눈이 덮인 탓에 오랫동안 띄우지 않은 것으로 보이긴 했다. 상류인 안동 대창나루까지 거슬러 올랐다가 남해 바다 어귀까지 내려가는 상선들일 거다. 사문진은 낙동강의 중간 지점이었다. 인구가 밀집한 대구와 성주로 물건이 빠져나가거나, 그곳의 물건들이 모여들어 어느 때든 상선이 정박해 있었다. "시찰 어른, 이제 오십니까?" 강둑 가까이에 있는 길가 집에서 중년 하나가 황망히 뛰쳐나왔다. 솜옷을 두툼하게 껴입은 사공이었다. 10년 전 외획제(外劃制)가 시행될 때 서석림이 경상도 시찰관을 맡은 적이 있어서 웬만한 사람들은 그를 시찰어른이라 불렀다. "요새 장이 안 서는가?" 서석림은 자신이 한때 전쟁을 치르듯이 견뎌냈던 보부상들의 시황(市況)을 묻지 않고 오일장만 입에 올렸다. 아무리 변해도 오일장은 서지 않을 리가 없는 것이다. "내일이 8일이니까 안언 장날입니다. 삼량에서 솜과 무명이 들어온답니다. 부탁하신 배는 대놓았습니다." 서석림은 미리 사람을 보내 배를 준비하라고 시킨 모양이었다. 계승과 서석림은 중년 남자를 따라 선착장으로 내려섰다. 눈이 쌓인 상선들 사이에 말끔히 정돈된 작은 돛배 하나가 물살에 흔들리고 있었다. 뒤에서 남자의 아내로 보이는 아낙이 점심을 드시지 않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중년 남자가 서석림의 눈치를 살피고는 손으로 뱃머리를 잡았다. 서석림이 훌쩍 배에 올랐다. "떠날 준비 됐으면 노를 잡게. 점심은 개포(고령에 있는 나루)에서 먹을 거네." 계승은 이때까지도 서석림이 무슨 일로, 어디를 가는지 알지 못했다.

2017-06-08 14:04:34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엄창석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25>-엄창석

"앞으로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몰라." 장상만이 흙이 담긴 가마니를 밖으로 옮기면서 계승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게 우리 중에 누군가의 목숨을 구해줄 거야." 구덩이 안에서 흙을 뒤집어 쓴 얼굴 하나가 불쑥 마구간 바닥으로 솟아올랐다. 그걸 보고 다른 이가 농담을 했다. "두더지인 줄 알았잖아. 흐흐 노새가 빠져 허우적대면 어쩌지?" 둘러 선 사람들이 어깨를 흔들며 웃었다. 구덩이 안에는 두 명이 들어가 있었다. 하나가 곡괭이질을 하면 다른 이가 흙을 가마니에 담아 위로 올려 보냈다. 계승을 허리를 굽혀서, 구덩이 안의 짙은 어둠과 진흙 덩어리 같은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마구간 바닥 밑의 컴컴하고 은밀한 공간. 그것은 마치 암흑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사람들이 몸부림치는 이 도시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현재의 상황보다 앞날에 대한 불안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 몰랐다. 사실 달성회 회원 중에 형장으로 끌려간 이는 아무도 없었다. 대구성 철거 업자 살해 사건으로 몇몇이 조사받긴 했지만 하루가 지나도록 구금을 당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젊은 장사꾼들은 미리 숨을 곳을 만들까? 그들은 도시 안에 이런 은신처를 몇 군데 더 꾸며놓았다. 왜 그럴까? 아마 도시의 절반을 점유한 일인 상인들이 앞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들을 파산시켜버릴 것이고, 그 파산 끝에 자신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어떤 사태가 올 것이다, 하는 예감에 몸서리를 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노새의 발밑에나 두어야 하는 그런 종류가 아닐까. 실제로 몇 년후 마구간 구덩이를 팠던 몇몇 회원들은 이 도시에서 결성한 대한광복회의 조직원이 되었고 이 마구간과 더불어 도시의 몇몇 은신처도 절묘하게 활용되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그것은 막연한 예감이었고 터무니없이 휘젓다가 사그라지는 불안감이어서, 구덩이를 파면서도 사내끼리의 농담이 끊이지 않았다. "야, 너 구멍 잘 파네? 아주 요령이 있어." 하나가 안에다 대고 히죽거렸다. "흥, 원래 사내는 구멍을 좋아하는 거야." "앞으로 이 방 사용할 놈은 방값을 톡톡히 내야 돼." "흐흐흐 그렇지. 노새 밑에서 일을 치르니까 짐승 같은 맛을 즐기게 될 거다." 이런 와중에서도 계승은 간간히 애란을 생각했다. 그녀가 어느 거리를 지나가지 않을지, 광문사에 언제 신문을 사러 올지, 드물게 마주치는 인력거에 혹 그녀가 타고 있지 않는지. 계승의 머릿속에는 그날, 폭설 속에서 다람쥐처럼 달리는 인력거에 타고 있던 그녀가 자꾸 떠올랐다. 어느 일본인 요릿집에 갔을 거다. 그들의 더러운 돈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비싼 인력거를 타고 돌아가는 길이겠지. 얼굴을 숙이고 자색 치마 속으로 다리를 모은 채, 사선으로 긋는 함박눈을 가슴과 다리에 맞으면서도 얌전히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계승은 말할 수없는 질투와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이와세 상점에 불을 지르기로 한 계획은 다시 연기됐다. 1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눈은 그쳤지만 이어진 폭설로 곳곳에 눈 무더기가 쌓였고 공기는 무척 습했다. 불을 지르기가 마땅치 않았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 비밀스런 계획을 미룰 수밖에 없는 게 갑자기 광문사에 일정이 잡혔기 때문이었다. 광문사 부사장인 서석림이 낙동강으로 여행을 가는데 계승에게 자신과 동행을 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그 즈음 계승은 인쇄 일에 제법 능숙해졌다. 채자를 하는 눈이 빨라졌고, 조판 작업하는 손도 꾸물대지 않았다. 그러나 어찌된 건지 교정쇄를 들여다보는 데는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되었다. 글자에 대한 조심성이 커졌기 때문인지 모른다. 채자와 조판은 환한 낮 시간에 해야 하지만 교정쇄를 검토하는 것은 오히려 밤이 편했다. 계승은 다른 일이 없으면 모두가 퇴근한 뒤에 혼자 인쇄실에 남아 석유등을 켜놓고 교정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서석림이 깊은 밤에 인쇄실에 들렀다. 계승이 중등(中等) 생리학(生理學)의 교정쇄를 살피다가, 지겨워 보성관에서 간행된 월남망국사를 뒤적이던 참이었다. 서석림은 밤늦게까지 그가 혼자 인쇄실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계승도 늘 하인을 데리고 다니던 서석림이 이 밤에 광문사에 혼자 왔기 때문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네를 눈여겨보았네." 서석림이 인쇄실에 서서 계승이 펴놓은 월남망국사에 눈을 던지며 입을 열었다.

2017-06-05 14:35:00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엄창석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24>-엄창석

제7장 그녀를 보았다는 사실을 애란은 알고 있을까? 임계승이 기차 정거장 옆에 있는 마쓰하코 상점에서 석유를 사서 들고 오던 길이었다. 북문에서 남문으로 이어지는 길과 관풍루에서 달서문으로 가는 길이 교차하는 사거리에서 인력거 하나가 빠르게 지나갔다. 눈이 펑펑 쏟아져 온통 하얗게 보이는 기와집들과 거리에서 조그마한 인력거가 미끄러지지도 않고 다람쥐처럼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내달리고 있었다. 길에 나와 있는 아이들과 병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인력거꾼은 멋진 운행 솜씨를 과시했다. 아마 눈(目)이 속이지 않았다면, 소형 수레의 작은 지붕 밑에 앉아 있던 여자가 바로 애란이었다. 그녀는 한 순간에 도시 곳곳에서 출현했다. 수창사 낮은 담장 위에서, 어느 날 신문을 사러 광문사로 온 구독자들 틈에서 그녀가 보였다. 그런 현상은 대구에 오기 전에도 있었다. 청도 성현 터널 공사장에서 컴컴한 동굴에 누워 있을 때 문득 그녀의 얼굴이 또렷이 보였다. 홀로 밤길을 걸으며 별을 헤아릴 때, 인부들이 숙소로 돌아간 후 황량하던 초량의 바다 매립 공사장에서도 그녀가 나타나는 마법 같은 순간이 있었다. 그래서 폭설이 쏟아지는 꿈결 같은 거리에서 인력거 지붕 밑에 앉아 있는 애란을 보자, 실체가 아니라 흡사 초량 왜관 앞 잡화점에서 사려고 집어 들었던 조그만 손거울에 비쳤던 그녀가 떠오르는 것이다. 인력거를 타고 있던 그녀는 환각이 아닌 게 분명했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노랗고 붉은 저고리와 자색 치마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승은 그녀가 기생이 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금릉이라는 기명을 가진 것도. 장상만이 그녀의 소식을 알려주었다. 광문사 직원인 권종성도 그녀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 지난 주에 광문사에 신문을 사려 왔을 때 여염집 규수인 양 무명 장옷을 목까지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애란은 계승이 그것을 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계승은 그녀를 태운 인력거가 서문 방향으로 꼬리를 감춘 뒤에도 한참동안 인력거가 남긴 궤적을 바라보았다. 폭설이 두 가닥 깊은 줄을 지울 때까지. 계승은 석유통을 들고 서서, 자신이 기생 옷을 입을 그녀를 보았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고 지나갔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돌아서면 이런 궁금함은 사그라지고 말거다. 그런 생각은 너무나 여리고 감정적이다. 도시는 지금 거대한 불아궁이와 같았다. 어느 한쪽에서 일촉즉발의 위험이 숨죽이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이었다. 계승은 작은 피리를 품에 넣고 곱사등이 오돌매를 만났다. 오일장이 서는 날이었다. 달서교를 지나 큰장에 들어설 때 한 걸음 뒤에서 어기적어기적 걷던 오돌매가 계승의 혼몽한 감정을 일깨웠다. "눈이 그치지 않아 불을 놓지 못하겠어." "......." "이와세가 운이 좋군." 1월 11일에 이와세 상점에 불을 찌르려던 계획이 자꾸 연기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준비가 덜 된 까닭이었고, 기회가 되자 폭설이 쏟아졌다. 계승도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그것만은 결행한다는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 성곽을 무너뜨린 죄책감 때문만 아니었다. 일인 상인들이 곧 남은 성곽을 모두 무너뜨릴 거라는 정보가 그를 사로잡았다. 지난 해 북쪽 성곽을 허문 뒤 대한제국 정부는 책임을 물어 박중양 관찰사 서리를 잡아들이려 했으나 이토 히로부미 통감이 막아주었을 뿐더러 크게 칭찬했다는 것이다. "야마모토(박중양)가 과감하고 기막힌 일은 저질렀군. 도심에 있는 성을 없애야 일본인과 한국인이 물에 물이 들어간 것처럼 어울리지." 지방 도시의 성곽이 일본의 침략에 대비해서 축조된 것이라 성곽 자체가 반일 감정을 일으키지 않느냐는 것이다. 일인 상인들이 장삿길을 넓히려고 성곽을 허문 것이고 박중양이 허락한 것이지만, 그것을 정치적으로 해석한 이는 이토 총독이었다. 앞으로 전국 각처에 있는 읍성들을 다 헐지 않을까. 계승이 오돌매를 따라 간 곳은 큰시장 안쪽, 달성토성 방향에 있는 초가였다. 닷새 만에 서는 장이지만 폭설로 큰 시장은 한산했다. 일찌감치 상인들이 짐을 챙긴 썰렁한 시장 안, 계승과 오돌매는 주변을 살핀 후에 마구간을 갖춘 초가로 들어갔다. 우시장 주변에는 이 집과 유사한 초가가 많이 있었다. 장상만과 몇몇 달성회 회원들이 손을 들고 인사를 했다. 그들은 마구간 아래에 구덩이를 파서 서넛 사람이 숨을 수 있는 방을 만들고 있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은닉처 입구를 감쪽같이 마구간 바닥으로 덮고 노새들을 묶어 놓으면 누군들 알아챌 수 없었다.

2017-05-31 15:08:19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엄창석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23>-엄창석

짓누르던 사내들이 갑자기 용수철처럼 튕겨나간다. 돌처럼 빳빳한 허리가 풀어지고 몸이 아뜩하게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다. 그러고 얼마나 있었지? 주위가 어둡다. 금릉은 오싹 추위를 느낀다. 바닥을 짚고 가까스로 윗몸을 일으킨다. 방에 탁자가 있고 술병과 안주 접시가 그대로 놓여 있다. 숯이 탄 잿속에 희붐한 잔불이 담긴 화로가 보인다. 방에 아무도 없어 다행스럽다. 허벅지 안쪽을 철사가 찌르듯이 쩌릿, 통증이 일어난다. 금릉은 흩어진 옷을 주워 몸에 걸친다. 옷을 입는 게 음부와 가슴을 가리는 짓이라는 자괴감이 든다. 이게 무슨 일이지? 아 기생이니까. 앞으로 기생이 시와 노래를 버리고 몸을 팔아야 하니까. 금릉은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때 문이 드르륵 열린다. 한인 집사가 얼굴을 들이밀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밝은 음성으로 집에 돌아가도 된다고 말한다. "손님들이 눈이 온다고 자네 인력거 비용까지 계산해 줬어. 편히 돌아가게." 금릉은 어정쩡하게 집사 뒤를 따라 댓돌에 내려선다. 눈이 내리고 있다. 저녁 어스름이 끼고 있는데도 커다란 눈송이에 작은 불빛이라도 담긴 듯 마당이 환하다. 넓은 마당에 인력거가 들어와 있다. 인력거는 대구에 유입된 게 최근이어서 아직 타본 적이 없다. 레이스가 달린 지붕으로 장식된 소형 마차 모양의 인력거가 그녀를 태우고 성 안을 쏜살같이 달린다. 함박눈이 비스듬히 흩날리며 금릉의 무릎과 뺨에 달라붙는다. 기루로 돌아오자 금릉은 발소리를 죽여 방으로 들어간다. 어두운 침상 위에 몸을 던진다. 그러다 힘을 내어 저고리와 겉치마를 벗고, 이번엔 이불을 뒤집어쓴다.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죽고 싶다. 이대로 사라졌으면 좋겠다. 몸이 훼절되어 목숨을 버렸던 기녀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던가. 아니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자 아련한 기억 하나가 가슴에 차고 오르는 것이다. 아주 어릴 때였다. 해성재 학우들과 소풍을 다녀올 때였으니까 열 살 무렵인 것 같다. 남문 밖, 아미산 비탈을 내려오다가 그만 미끄러진 적이 있었다. 비탈은 꽤 가팔랐다. 신발이 벗겨지고 치마가 훌러덩 뒤집혔다. 앞서 가던 임계승이 놀라 뒤돌아보았다. 넘어진 일이나 무릎에 피가 나는 것보다, 허벅지 살결이 한 뼘이나 드러났던 게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무릎이 아파 걷지 못하는 그녀를 임계승이 업었다. 금릉은 걸을 수만 있었으면 절대로 업히지 않았을 것이다. 계승이 나중에 결혼하자고 했을 때 고개를 끄덕였던 것도 그 때문이었지. 사내에게 허벅지 맨살을 보였으니까. 그날 등에 업혀 가다 큰시장에서 잠시 쉬었는데 피가 치마를 적셨지. 계승의 엉덩이에도 피가 묻었어. 피를 닦아주려고 치마를 걷으려는 계승의 손목을 세게 후려쳤지. "오빠, 손대지 마!" 계승은 바보같이 우물우물하다 등을 보이며 앉았어. "업혀, 얼른 가야지." "필요 없어. 걸어갈 거야." 그녀가 앙칼지게 내뱉었지만 계승은 한참 그렇게 앉아 기다렸어. 계승의 등을 생각하자 왜 그런지 울음이 터졌다. "금릉아, 왔니?" 밖에서 앵무 아주머니의 음성이 들린다. 예, 금릉은 입술만 달싹 뗀다. "목욕물을 데워놓을 게. 씻고 쉬어라." 괜찮아요, 금릉의 대꾸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아주머니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를 거야. 아주머니를 원망하는 마음이 치솟는다. 하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솟구치던 화가 거품 꺼지듯 풀썩 내려앉는다. 금릉은 자신의 감정을 알 수 없다. 앵무 아주머니가 일꾼 김씨에게 목욕통을 옆방에 갖다놓으라고 지시하는 소리가 들린다. 대나무로 짠 둥근 목욕통은 평소에 거꾸로 뒤집어 뒤안에 놓아둔다. 조금 시간이 흐른 뒤, 옆방에 등이 켜지고, 물을 끼얹는 소리가 들린다. 목욕통에서 김이 피어오르는 듯 금릉의 침상 방까지 더운 습기가 전달된다. 그때까지 금릉은 꼼짝 않고 엎드려 있다. 준비 다했다는 김 씨의 말이 들리고, 금릉은 장지문을 열었다. 속속곳과 단속곳을 벗고 욕통으로 몸을 넣는다. 일인 사내들의 흔적을 샅샅이 씻는다. 난봉쟁이들이 휘저어놓은 가슴과 다리 안쪽을 손으로 빡빡 문지른다. 추잡한 입으로 자극했던 유두에 비누 거품을 듬뿍 묻혀 씻고 또 씻는다. "금릉아." 문밖에서 아주머니가 얼씬거린다. 문이 열리고 아주머니가 들어온다. 그림자처럼 방으로 육박해 목간통 앞, 그녀의 등 뒤로 다가선다. 금릉은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석유등 불빛에, 벽에 비치는 그림자로 아주머니의 동작을 감지한다. 아주머니가 옆에 놓인 조롱박으로 물을 어깨에 끼얹으며 손으로 씻어준다. 아주머니가 그녀의 목욕을 도와준 적이 없었다. 동갑내기 설루나 다른 기녀 동생들이 등을 밀어주기는 했지만 아주머니가 그러진 않았다. 아주머니는 씻는 게 아니라 쓰다듬는 시늉이다. 앵무의 손바닥에서, 목덜미를 쓰다듬는 손길의 조심스러움에서, 문득 금릉은 오늘 오후의 사건을 아주머니가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참 예쁘네. 허리와 젖가슴이 너처럼 고운 아이는 처음 본다." 금릉은 아주머니의 얼굴을 보려고 고개를 돌리려다 그만둔다. 앵무가 그녀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일어서라는 듯이 힘을 준다. 금릉은 마지못한 듯 욕통에서 일어선다. 몸에 묻은 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앵무 아주머니가 앞으로 와서 그녀의 배와 가슴에 손을 대는 모습을, 금릉은 벽에 비친 그림자로 바라본다. 앵무가 또 말한다. "내가 열여덟 살일 때 너만큼 어여쁘지 않았어." 금릉은 아무 말도 않고 눈을 감는다. 아주머니가 묻는다. "무슨 일이 있었니?" 아주머니의 그 목소리는 낮고 잠잠한 투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 하는 목소리가 아니다. 어떤 분노도 서려 있지 않다고 금릉은 느낀다. 감사의 명령조차 거절했다는 지조가 강한 앵무 아주머니였다. 그런 아주머니마저 맞설 수 없는 거대한 힘이 몰려오고 있는가. "아니요." 금릉은 조금 음성을 돋워 대답한다. 석유등불이 얼굴에 비치지 않게 얼굴을 튼다. 금릉은 다시 입속으로 아무 일도 없었어요, 대답한다. 금릉은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눈을 깜빡인다. 맞은 벽에 두 여자의 검은 그림자가 휘청 휘청, 포개지다 떼어지는 것을 바라본다. 지난밤에 석재 선생이 그녀의 속치마에 그렸던 풍죽(風竹)이 떠오른다. 거센 바람을 맞아 활처럼 휘어지는 대나무, 풍죽이.

2017-05-29 13:08:32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엄창석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22>-엄창석

늦은 아침이다. 금릉은 침상에서 눈을 뜬다. 비단 이불 위로 허연 허벅지가 비져나와 가위처럼 걸쳐져 있다. 어맛, 누가 문 열지 않았나. 금릉은 기겁하고 이불 밑으로 다리를 감춘다. 창호지에 걸러진 빛이 이불에 수놓인 붉은 목단 위로 옹송그린다. 골목을 지나가는 방물장수 소리, 말발굽 소리가 창호지를 두드린다. 지게에 얹힌 놋그릇이 달그닥달그닥 서로 부딪치는 소리도. 금릉은 아직 일어날 생각이 없다. 머릿속에 어젯밤 일이 꿈결처럼 너울댄다. 석재 선생이 소매 자락을 흔들며 치마 위로 휙휙 치올리던 대나무가 눈앞에 아슴아슴하다. 그 기억으로, 마치 사내와 일이라도 치른 듯 뼈마디가 기분 좋게 나른해진다. 점심이 다 되어 금릉은 침상에서 일어난다. 대충 세면을 하고 점심상에 가서 앉는다. 상이 차려지는 동안 기녀 아이들과 흥겹게 재잘댄다. 흰 쌀밥에 김이 몽실몽실 피어오른다. 반찬은 동치미와 김치뿐이다. 술상에 올랐던 잔안주는 일하는 아낙들이 집으로 가져갔지만 기녀들도 술상 안주가 식탁에 오르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술 냄새가 덮인 반찬은 맛이 느끼한 것이다. "금릉아, 명화에서 널 찾네. 나가 볼래?" 명화는 읍성의 동북쪽, 동장대 앞에 있는 일인 요릿집이다. 앵무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굳이 강제하는 투가 아니다. 이즘 들어 기루에 손님들이 줄어서 살림이 팍팍하다는 걸 금릉은 잘 알고 있다. 게이샤들이 대구에 꽤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앵무 아주머니가 막무가내로 지시했으면 어떤 핑계라도 댔을 테지만 궁한 살림을 표내지 않으려는 아주머니의 목소리에 금릉은 활짝 웃으며 가겠다고 대답한다. "가야금을 가져 오래요?" "아니다. 일식집이라도 장구는 있을 거야." 장구는 가야금을 돕기도 하지만 노래에 장단을 맞출 때도 필요하다. 세시가 되어 금릉은 기루를 나선다. 점심 나절에 하늘이 침침하다 싶었는데 눈이 조금씩 흩날린다. 솜옷을 받쳐 입어 춥지 않으나 눈이 오면 오히려 포근하다. 서문 앞 삼거리에 이르자 잠깐 갈등에 싸인다. 어느 쪽으로 갈까. 북문 길로 가면 흉하게 무너져 있는 성을 봐야 한다. 성 안으로 가는 것도 일본 군인들이 많아 꺼려진다. 갈팡질팡 하면서도 금릉의 걸음은 서문을 통과한다. 성 안을 가로지르는 게 지름길이다. 성 안에는 일인들이 부쩍 늘었다. 성곽의 북쪽 면이 헐어져 있어, 그 바깥에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일인들이 이미 문턱처럼 낮아진 성곽 터를 밟고 드나들었다. 성 안은 경상북도 관찰부와 대구군아, 일본 이사청과 경시청, 수비대가 뒤섞여 있었다. 금릉은 일본 수비대가 보초를 서는 이사청 앞을 빠르게 지나간다. 이사청만 아니라 곳곳에서 목덜미에 총을 세운 채 부슬부슬 내리는 눈을 맞고 있는 기병과 보병들을 만난다. 수성창(修城倉) 지붕에 가지를 드리우는 아름드리 회나무를 지나 동문(東門)으로 빠져나간다. 금릉은 그제야 우산을 편다. 눈이 많이 내리진 않지만 머리가 젖을 것 같다. 동문 밖에는 지난 가을부터 일식 점포들과 큰 규모의 의료원이 속속 지어지고 있었다. 지금은 혹한기라 공사가 중단되어 거리가 어수선하다. 요릿집 명화는 교전동이 끝나는, 기차 정거장 물류창고가 보이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금릉은 일식 건물인 명화 안을 기웃거리다 요릿집 주인과 마주친다. 주인을 따라 마당으로 들어서서, 우산을 마루 기둥에 세워 둔다. 겉문이 열리고, 그녀는 유리문 안으로 길게 놓인 장마루를 사뿐사뿐 디딘다. 안쪽에서 두 번째 방으로 들어가라고 주인이 손짓한다. 방 안의 광경에 금릉은 놀라워 한다. 이미 상이 차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음식도 휘저어져 있다. 두더지 모양으로 둥글게 말은 돈돈야키가 절반이나 뭉개져 있고 생선을 튀긴 가라아게도 접시에 한두 점만 담겨 있다. 남자가 넷이고 여자는 셋이다. 이미 술에 취해 있었다. 여자는 하나만 기모노를 입었고 나머지는 평상복 차림이다. 한 남자가 금릉의 팔을 잡고 끌어당긴다. 금릉은 아연해 하면서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남자 곁에 앉는다. 자옥한 담배 연기에다 억센 일본어가 술상 위로 질펀하게 오고 간다. 거칠고 빠른 일본어는 마치 욕설처럼 들린다. 옆 남자가 금릉에게 술을 따른다. 독주는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다. 사래가 들어 컬럭컬럭 기침한다. 장구가 보이지 않는다. 금릉은 장구로 장단을 맞추지 않는 노래를 불러본 적이 없다. 떠들썩하던 방 안이 일순 쥐죽은 듯하다. 그녀의 노래를 기다리는 시늉이다. 저들이 바라는 건 잡가일 거다. 그녀는 판소리나 잡가를 부르지 못한다. 그렇다고 노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잔기침으로 간신히 목젖을 다스린 뒤, 느린 정악(正樂)인 '죽지사'를 입술에 띄운다. 이내 방 안이 왁자하게 소란해진다. 그녀는 중간에 노래를 그친다. 그런 일이 몇 차례 되풀이 되고, 남자와 여자들이 짝을 맞추어 옆방으로 자리를 옮긴다. 혼자 남은 남자가 그녀의 치마를 들친다. 그녀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저고리를 풀지 못하게 완강히 어깨를 움츠린다. 그녀는 남자를 힘껏 밀친다. 다급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뒤에서 남자가 그녀의 허리를 잡아 방에 내동댕이친다. 치마끈이 풀리면서 몸이 빙그르르 돌아간다. 남자의 손바닥이 얼굴에 철썩 달라붙는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는다. 몇 개의 손이 달려들어 옷을 벗긴다. 옆방으로 갔던 다른 남자가 돌아온 듯하다. 금릉은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한다. 절벽에서 뛰어내린 듯, 몸 어딘가에 거친 충격을 받는다.

2017-05-24 15:32:15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엄창석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21>-엄창석

"너희들이 가엽네. 갈고 닦은 시와 노래, 검무와 악기가 소용없는 날이 오고 말았으니. 수백 년 동안 양반들의 수종을 드느라 얼마나 힘겨웠나. 그렇지만 선비들과 멋을 나눈다는 자긍심이 있었겠지. 가장 높은 수준의 가락과 수많은 사랑의 노래가 너희들이 없었으면 처음부터 생기지도 않았을 거야. 이제는 들어줄 이가 없고 애틋한 시를 지어 함께 희롱할 선비들도 사라졌네. 사막 같은 세상이 오고 있어. 시와 가야금이 아니라 몸을 팔아야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는 건지......." 석재가 낮고 우울한 음성으로 길게 말을 잇는다. 금릉은 석재의 처연한 모습을 처음 본다. 풍류를 즐겼던 석재여서 일류 기생이 사라지는 게 안타까운지 모른다. "자자, 한 잔씩 받게." 석재는 기녀들에게 안동주를 직접 따라준다. "이런 변화는 누구도 막을 수 없어. 세상은 조선이 홀로 있도록 허락하지 않았어. 한때 조정에서 우리 것을 지키려고 나라의 모든 항구를 닫았지만 헛된 일이었지. 차라리 처음부터 열어놓는 게 나았을 지경이야. 모든 나라들이 우리를 겨냥하고 있었네. 우리를 노리고 있었지. 일본이 나서서 중국과 전쟁을 벌이고 급기야 대제국인 러시아하고도 싸웠네. 우리나라를 차지하려고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지. 이제 저들은 피를 흘린 대가를 여기서 찾으려 해." "일본이 우리 황제를 폐하고 직접 다스릴 거라는 뜻입니까?" 우울한 목소리로 앵무가 말한다. "지배의 뜻이 바뀌었지요. 청조 이전에는 땅을 차지하려고 전쟁을 일으켰다면 지금은 돈을 벌려고 전쟁을 치릅니다. 돈을 위해 칼을 쓰는 거지. 영국이 인도를 차지한 것이나 프랑스가 월남을 침공한 것도 돈을 벌기 위해서지요. 칼보다 돈이 무섭습니다. 우리나라 곳곳에서 선비와 농민들이 칼을 들고 일어서지만 일본은 군인들이 아니라 상인들을 내보내고 있거든. 상인들을 위해 길을 넓히고 상인을 보호하려고 경찰서를 세우지. 이제 상인들이 도시를 장악하고 있어요. 칼을 쓰지 않으니까 도시는 스스로 그들을 찬양해. 칼에는 맞서 저항을 하지만 돈에는 고개를 숙여. 도리어 개화 물결이 온 도시들을 휩쓸고 있어요. 호롱불보다 전깃불이 얼마나 밝은지 아는가? 꼴을 먹일 말을 타지 않고도 대구에서 의주까지 하루면 당도해. 일전에 이일우 공의 말씀이, 돈이 대구성을 파괴했다 하였는데, 틀리지 않은 소리야. 너희들도 어찌 몸을 지키겠는가." 알아들을 수 있는 석재의 말은 여기까지이다. 열이 치민다는 듯 배자 단추를 풀고 몸을 휘청인다. 그 사이에 일을 마친 기녀들이 하나씩 들어와 방을 가득 매운다. 그는 그윽한 눈빛으로 어린 기녀들을 맞으며 "어서와, 어서와." 손짓을 하는데 마치 이 자리를 끝으로 작별하겠다는 시늉이다. 그는 기녀들에게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게 하고 가야금을 타게 한다. 앵무 아주머니도 일어나 춤을 춘다. 술에 취했으나 여전히 고운 자태를 잃지 않은 채 빈 손으로 검무(劍舞)를 했다. 조령(鳥嶺) 아래를 통틀어 그녀의 춤은 압권이다. 처연히 바라보던 석재의 눈빛에 생기가 반짝 돋는다. "상해에서 말이오. 운미공의 집에 나라 잃은 서화가들이 모여 이렇게 술을 마시고 시를 읊었지요." "선생님께서는 무슨 시를 지어셨습니까?" "나요? 음.....퉁소 소리 끊어져 빈 담에 몸을 기댔네,(玉簫聲斷椅空墻)라 했지요." "호호, 선생님. 그건 앵무의 시가 아닙니까? 빈담에 기댄다(椅空墻)는 것은 사랑을 잃은 남자를 가리켰지요." "하하, 사랑하는 남자나 사랑하는 나라나 다 뜻이 통하지." 술 취한 석재가 크게 웃는다. 무릎을 안고 앉아 있는 어린 기녀들은 앵무 아주머니와 석재가 주고받는 희롱에 경탄하는 표정이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달성 앵무와 선비의 시담(詩談)을 눈앞에서 보듯이 배시시 웃는다. 도화라는 기녀가 만나기로 약조한 선비가 오지 않아 담에 기대서 기다렸다는 시를 앵무가 먼저 짓고는, 나중에 다른 시에서 한 선비를 '의공장'(椅空墻, 빈담에 기댐)이라고 별명을 붙여 놀렸다는 이야기였다. 기녀들은 아름다움과 자태, 시와 노래를 가지고 있어서 권력을 휘두르는 대감도 두렵지 않았다. 이제 그런 시절은 오지 않을 것이다. 방에 모인 어린 기녀들도 그것을 예감한다. 교묘한 비유로 남녀의 사랑을 노래하는 한시도 필요 없을 거다. 잡가를 부르거나 유행가 한곡이면 될 것이다. 사내들도 시흥(詩興)을 알지 못하니 남녀 사이에는 몸뿐이지 않는가. 그런 생각에 어린 기녀들도 주는 잔을 마다하지 않는다. 자청해서 일어나 가사(歌詞)를 부른다. 하지만 아무도 잡가 따위는 부르지 않는다. 아직은 지조 있는 기생이니까. 두 번째 들어온 술 항아리가 비워졌을 즈음이다. 한 아이가 부르는 '어부가'를 듣다말고 석재가 대뜸 소리를 지른다. "붓이 있느냐?" "예, 선생님. 여기 있습니다." 누군가 비켜 앉으며 등 뒤로 밀쳐둔 벼루를 내보인다. 마침내 석재가 휘호라도 할 기색이다. 기녀들이 눈을 번쩍 뜨고 숨을 죽인다. 벼루가 방 한가운데로 옮겨지고 석재가 몸을 일으킨다. 아까 펴놓았던 백당지는 보이지 않는다. 늦게 들어온 기녀 아이들의 엉덩이에 깔려 찢긴 채 구석에 박혀 있다. 누군가 벽장에서 종이를 꺼내려고 일어서자 석재가 손사래를 친다. "종이 찾을 거 없다." "선생님. 먹도 거의 굳었습니다." "흥, 굳은 먹을 초묵(焦墨)이라 하지." 석재는 붓에 뻑뻑한 먹을 묻히며 "오늘 누가 속치마를 내놓겠느냐" 하고 기녀들을 둘러보았다. 아까 먹을 갈 때 이런 사태를 마음에 두었던 금릉이 쪼르르 나선다. 금릉은 자색 치마를 걷고 흰 속옷을 내보인다. 몇이 금릉을 도와 치마를 팽팽하게 당기자 제법 종이 같다. 석재가 치마에 붓을 댄다. 석재의 난(蘭)과 죽(竹)은 유명했다. 으레 난을 치겠지. 난은 여자를 뜻하기 때문이다. 석재의 붓에서 흘러나온 것은 뜻밖에도 대나무다. 그것도 곧은 대나무가 아니라 활처럼 대가 휘어지고 이파리도 몹시 한쪽으로 쏠려 있다. "풍죽(風竹)이다." 가만히 건너보던 앵무 아주머니가 조심스럽게 입을 뗀다. "선생님. 풍죽은 처음 봅니다. 몽고족에 나라를 잃고 은거했던 송나라 소남(所南, 정사초)이 그린 노근란(露根蘭, 망국의 비탄을 담은 뿌리가 드러난 난초)과 같은 이치입니까?" "이 아이들 마음을 그린 겁니다." 석재는 어린 기녀들을 둘러보며 말한다.

2017-05-23 11:50:32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엄창석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20>-엄창석

제6장 금릉은 술상에서 살며시 빠져나온다. 벼루에 물을 붓고 먹을 간다. 중국 광둥에서 난다는 원판형 단계연(端溪硯)인데 가장자리에 난초가 양각되어 있다. 오래전 석재 선생이 앵무 아주머니에게 선물한 벼루이다. 물빛이 점점 짙어지면서 벼루에서 묵향이 흘러나온다. 서(書)는 곧 몸이라네. 동파(東坡, 소동파)가 말하길 글씨는 신기골육혈(神氣骨肉血)을 갖추어야 한다고 했지. 이 다섯 가지의 묘리는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니 서는 곧 사람을 이르는 것이네. 벼루도 그럴까. 벼루가 몸이라면 어느 부분에 해당될까. 금릉은 검고 단단한 먹을 움켜쥐고, 먹을 타고 전해지는 벼루의 질감을 느낀다. 먹은 남자이고 벼루는 여자겠지. 금릉은 얼굴이 붉어지는 듯하다. 여인의 가슴이나 둔부, 치골이 떠오른다. 짙은 먹을 농묵이라 하고 옅은 먹은 담묵, 마른 먹은 건묵이라 한다. 초묵(焦墨)과 습묵(濕墨)과 숙묵(宿墨)도 있다. 애무도 이러지 않을까. 짙게 할 수도 있고, 옅게 할 수도 있고, 마른 애무도 있겠지...... 금릉은 흠칫, 했다. 하마터면 벼루에서 먹물이 튈 뻔했다. 옆의 술상에서 석재가 호탕하게 웃는다. 오후에 몇 사람이 함께 있었으나 모두 가고 석재만 남아 잔을 더 기울이고 있었다. 석재가 홀로 남는 경우는 종종 있는 일이었다. 워낙 술을 좋아하는 데다 기루 주인인 앵무가 "한잔 더 하시고 가시지요." 하고 소매를 잡으면 못 이긴 척 주저앉고 만다. 합석을 마친 다른 방의 기녀들이 석재와 한 자리에 있기를 사모하니까 앵무 아주머니가 석재에게 술을 권하는 핑계로 기녀들의 소망을 풀어주는 셈이었다. 기루의 여자들은 눈이 부시도록 흰 옷을 입고 갸름한 얼굴에다 수염이 곧은 석재를, 전설의 기녀인 명월(明月,황진이)이 사랑한 화담(花潭, 서경덕)쯤으로 여긴다. 명기로 이름을 떨친 앵무가 명월이라면 석재는 화담인 것이다. 젊었을 때 앵무가 석재와 몇 달을 함께 보냈다고 하니까 화담이 아니라 벽계수 쪽에 어울릴지 모른다. 그러나 앳된 소녀들에겐 고아한 기품을 지닌 석재를 화담인 양하는 것이다. 소녀들은 석재가 취하기를 기다렸다가 벼루에 먹을 갈고 종이를 꺼내놓는다. 술잔을 기울이던 석재는 물을 만난 고기처럼 "오호! 흥을 술에 다 담지 못하면 그것이 서(書)가 되고 변하면 화(畵)가 된다네." 하며 펴놓은 종이로 몸을 옮긴다. 이미 소년 때부터 황제 폐하의 부친인 석파(石坡, 이하응)의 운현궁에 드나들 만큼 뛰어났던 글씨로 휘호를 하거나, 나라에서 최고 간다는 난초와 대나무를 그리는 진귀한 광경을 눈앞에서 목격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이 취한 석재는 붓에 먹을 듬뿍 묻혀서, 종이 위에다 손목을 휙휙 꺾으며 "이건 추사(秋史, 김정희)의 괴(怪)야. 괴하지 않으면 글씨가 아니란 걸 아느냐?" 하고는 내쳐 써내려간다. 또 어느 때는 당나라의 장욱(張旭)을 가져온다. "두보의 음주팔선(飮酒八仙)에 이백은 한 말 술에 백 편 시를 쓰고, 장욱은 석 잔 술에 초서(草書)의 성인이 된다 했네." 하며 광서(狂書)를 쓰는데, 사뭇 '붓이 노래하고 먹이 춤춘다.'(筆歌墨舞) 말이 저런 모습을 아닐까, 둘러 앉아 무릎을 꿇은 소녀들은 감동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데 이날은 먹을 갈았는데도 석재는 술상을 벗어날 기색이 없다. 석재의 등 뒤로 펴진 종이 위에 밝은 불빛만 어룽거린다. 방 안은 묵향과 술내가 자욱하다. 새로 장만한 상에는 어렵게 장만한 두루미 회와 안동주(安東酒)가 놓여 있다. 석재의 맞은편엔 앵무가 앉았고 석재 옆에는 설루가 분홍 옷소매를 받쳐 들고 잔을 친다. 먹을 다 간 뒤, 금릉은 앵무 옆으로 다가가 속삭인다. "아주머니. 선생님께서 글을 쓰실 생각이 없으신가 봐요. 제가 그냥 가야금이라도 뜯을 까요?" 가야금도 석재에게 배운 것이다. 앵무는 시와 춤의 명가이지만 금릉의 가야금 솜씨는 그예 못 미쳤다. 석재 앞에 내놓기가 부끄러웠다. 앵무가 상 건너 석재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선생님. 아이들이 선생님의 중국 얘기를 듣고 싶어 해요. 상해의 운미 댁에서 만났던 중국 명서가들의 이야기 말이에요." 앵무는 교묘하게 말을 틀어 석재에게 붓 들기를 충동질한다. 석재는 몇 해 전에 5년 간 중국을 다니다가 운미(芸楣, 민영익)의 집에 머물며 중국 명서가들을 사귄 적이 있었다. 그때 석재 나이 38세였다. 이 시기는 석재에게 시화나 정신에서 가장 중요한 때였다. 명성황후의 조카인 운미가 정가의 중심인물로 되풀이되는 정변에 따라 망명과 환국을 반복했는데, 마침 석재가 중국에 갔을 때 운미는 상해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었다. 서화에 뛰어난 운미는 천심죽재라는 이름을 붙인 저택에서 중국 서화가들을 초대하여 문묵을 교류했다. 당시 상해는 '해파'(海派)라 불리는 직업 서화가들의 중심지였다. 그러니까 앵무는 '해파' 서화가들과 운미란(芸楣蘭, 민영익의 난초 그림)을 직접 보았던 때의 이야기를 꺼내다 보면 석재가 붓을 들고 말 거라고 짐작한 것이다. 실제로 석재는 상해 시절에 받았던 운미란과 해파의 영향으로 그즈음 이름을 크게 떨치고 있었다. 석재가 별 말이 없자 앵무가 웃으며 다시 종용했다. "운미란은 잎이 곧으며 끝이 뭉툭하다고 하셨지요. 포화(蒲華, '해파'의 서화가)의 대나무는 아래로 잎이 쳐지는 우죽(雨竹) 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만 두세요. 농산(앵무)은 오늘 술이나 하시오." 석재는 흰 얼굴을 들고 낮고 단호한 음성을 내뱉는다. 석재는 앵무보다 두 살 아래지만 기녀에게 예대하는 것은 그녀를 명기로 대접하기 때문이었다. 석재가 형형한 눈으로 앵무를 보며 잔을 권한다. 그때 금릉은 석재의 긴 눈썹에 눈물이 슬쩍 맺히는 것을 보았다.

2017-05-19 00:05:01

[연재소설]새들의 저녁 -엄창석

[연재소설]새들의 저녁 <19>-엄창석

꿩 암컷인 까투리가 한 마리씩 그릇에 들어 있었다. 밤 대추 인삼 황기를 넣은 탓에 향기가 은은하게 어려 있고 맛이 고소했다. 꿩 고기가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겨울 음식으로 제격이라고 서요가 말했다. 후루쇼는 조선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전주에서 당나귀 고기를, 봉화에서 두루미 회를 먹었고, 홍천에서 기러기 고기를 먹었는데 대구는 마땅한 게 없다며 투덜댔다. 꿩고기는 어디서든 즐기지 않느냐고 했다. 온돌방이 훈훈하게 달아올랐다. 조금 전 마흔 살쯤 된 여주인이 들어와 생글생글 웃으며, 며칠 전에 야마모토 각하께서 오셨다고 일렀다. 야마모토는 박중양의 일본 이름이다. (그 무렵 박중양은 대구 군수와 겸직하던 관찰사 서리에서 물러나고 그 자리에 백남준 임명되었다.) 서요가 짐짓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오, 그래요? 고기만 드시고 그냥 가셨나요?" "에이, 그냥 가실리가요." 여주인이 고개를 젖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식탁 위로 음탕한 웃음이 흘렀다. 아무튼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정종도 몇 순배가 돌았다. 권종성은 취기를 얼큰히 느끼며, 불쑥 임계승을 입에 올렸다. 저번에 광문사 신입사원으로 들어온 임계승을 보고한 적이 있었다. "아, 달배(월배) 사람 말이지." 후루쇼는 임계승을 잘 기억했다. "부산 초량에서 바다 매립을 하다가 대구로 왔지요. 여기가 고향이라 금방 옛 친구들과 어울렸는데, 그게 대체로 달성회 회원들인 것 같습니다." 후루쇼가 꿩 날개를 빨다가 고개를 들었다. "달성회?" 후루쇼의 눈빛이 순간 번쩍였다. 10여 년 전인 1898년에 설립한 수창사가 이제 거부가 된 한때의 상인들 출신의 모임이라면 달성회는 장사 경력이 일천한 이삼십 대 젊은 상인들의 회합체였다. 공교롭게도 달성회는 일인 상인들이 대구로 대거 진출한 시기에 만들어졌다. 그러다보니 점차 결사체 성격을 띠었다. 그게 수창사와 큰 차이점이었다. "읍성이 무너진 뒤로, 달성회 동향은 예사롭지 않은데 말이야....." 서요는 달성회가, 자기 아버지가 관여하는 광문사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듯 혼잣말을 했다. "최근에 달성회가 모임 장소를 옮겼습니다. 남문 밖 교남상회에 모이다가 요즘 큰시장 안에 장소를 정했습니다." 그때 후루쇼 옆에 앉은 사내가 일어로 말했다. 그 사내는 그때껏 탁자 귀퉁이에 앉아 고기만 뜯고 있었다. 권종성은 여기서 그를 처음 보았다. 쓰시마 출신으로 이름이 우치타라고 했다. 읍성을 허물 때 부산에서 대구로 왔다가 그 후 이곳에서 죽 머무는가 보았다. 권종성은 뒤늦게 그와 수인사를 나눴다. 악수를 하는데 손바닥이 놈의 눈빛처럼 차가웠다. 밀정인가? 후루쇼가 데리고 왔으니 그럴지 모른다. 그가 달성회의 활동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게 기분이 나빴다. 후루쇼가 둘을 경쟁시키고 있지 않나 싶었다. 사실 밀정이나 첩자는 어디에든 있었다. 관청에도, 상가에도, 심지어 감영의 진위대 안에도. 다만 암살이 일어나고 전투가 벌어지지 않는 한, 밀정이 하는 것은 정보를 수집하는 일에 그칠 것이다. 감옥에 갔을 때 후루쇼가 말하지 않았던가. 도시는 의병이 거병하는 장소가 아니라 시장이라고. 의병을 만들면 시장은 파괴된다고. 그러나 언제까지 시장으로만 볼 것인가? 지난 달 그런 일이 있었다. 대구의 전환(錢換) 상인 한 명이 상주에서 화적에 당한 사건이었다. 한국인 여관에서 자다가 습격을 받아 피투성이가 된 채로 마차에 실려 대구로 왔다. 증거가 잡히지 않았지만 달성회가 상주 의병들에게 비밀리에 통보를 한 사건으로 일경은 의심하고 있었다. 후루쇼가 싸늘한 목소리로 권종성에게 말했다. "권 군도 알고 있었나?" "뭘...... 말입니까?" "달성회 아지트 옮긴 거 말이야." "아, 처음 들었습니다." 권종성은 황황히 고개를 저었다. 뱀눈을 번뜩이는 우치타란 사내와 정보력을 타투고 싶지 않았다. 한발 물러서는 게 나을 것이다. 물론 우치타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했다. "잘 살펴보게. (서요를 돌아보며) 사람들 눈을 피하려고 오히려 시장으로 옮긴 거 아니겠습니까? 장이 서면 발 디딜 틈도 없이 혼잡하니까요. 누가누군지 어떻게 알겠어요." 후루쇼가 입술에 비웃음을 띄웠다. 권종성은 새로 옮긴 달성회의 아지트를 알고 있었다. 장상만의 면포가게 뒤쪽, 물품 창고였다. 오일 시장이 설 때 곱사등이 오돌매와 지물포 사 씨와 마부 정 씨가 창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것뿐이었다. 사실 더 이상 캐고 싶지 않았다. 달성회가 지방 의병과 연결되어 있다면 여간 두려운 게 아니었다. 어쩌면 큰시장을 뒤흔드는 뇌관이 될지 모른다. 후루쇼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요즘 하타모토 씨가 대구에 와 있어요. 중국 여순에서 무역상을 했는데, 러시아 군의 포대 위치나 방어선을 정탐해서 우리 군에 알려주었지요. 우리 함정이 러시아 군항을 기습할 때 크게 공을 세웠어요. 전쟁은 힘으로만 하는 게 아니에요. 하타모토 씨 같은 분들이 있어서 이기는 거요." 하타모토와 같은 짓을 하라는 것인가, 권종성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이상한 취기에 휩싸였다. 앞에 놓은 정종을 거푸 마셨다. 갈등의 골을 술만큼 손쉽게 매워주는 것도 없었다. 두려움이 까닭모를 흥분으로 바뀌고 갈등은 느닷없는 자신감으로 전환되는 기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에서 보니까 우치타는 다리를 조금 절고 있었다. 좀 전과 다르게 놈이 아주 하찮게 보였다. 홀에 나와 보니 손님들을 배웅하려고 여관주인과 여급들이 모여 있었다. 어느새 바깥은 컴컴했다. "하하, 우린 가고, 권 군은 내일 아침에 나오게." 후루쇼가 어깨를 툭 쳤다. 권종성은 깜짝 놀랐다. 홀을 휘둘러보았다. 안쪽 페치카 옆에 기모노를 입은 여자가 다소곳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식사를 하기 전에 차를 따르던 일본 여자, 흰 손등에 파란 정맥이 그어져 있던. 권종성이 얼어붙어 있는데 다들 현관을 빠져나갔다. 여관 인부가 뒤채에서 말 두 마리를 끌고 왔다. 후루쇼와 서요가 말에 올랐다. 인력거는 보이지 않았다. 화려한 인력거는 서요가 아니라 기모노가 타고 온 것 같았다. 후루쇼와 서요를 태운 말이 점점 멀어졌다. 우치타는 약간 절뚝거리며 영선못 옆으로 난 길을 걸어갔다. 어둠 속에서 매운 바람이 꽝꽝 얼은 영선못을 핥으며 불어왔다. "도우죠, 오헤야니." (저어, 방으로 들어가셔요) 여자의 나긋한 목소리가 바로 등 뒤에서 들렸다.

2017-05-15 15:23:30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엄창석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18>-엄창석

"언제 왔어?" 권종성이 후루쇼와 감옥으로 갔던 그때 일을 회상하고 있는데 서요가 꿩 사육장을 빠져나오면서 소리쳤다. 서요는 노란 여우 모피로 된 원통형 러시아 모자를 쓰고 있었다. 도리우찌 모자를 쓴 후루쇼는 사복 차림이었다. "날씨가 추워요. 오다가 입안의 침이 다 얼었죠." 권종성은 추운 날씨에 여기까지 오게 하느냐는 불평 섞인 농담을 했다. 후루쇼가 피식 웃었다. 그러곤 권총을 건네받으며 서요를 위로했다. "피스톨로 꿩을 맞추는 게 결코 간단하지 않아요. 저놈들이 워낙 예민해요." 아까는 눈에 띄지 않았는데 후루쇼 뒤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 키가 무척 작고 몸매가 탄탄한 일본인이었다. 서요가 그래도 아쉽다는 듯 사육장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솜씨가 모자란 거예요. 권형에게 선물하려고 몇 놈 더 잡았으면 했는데 말이오." "두 마리면 실큰 먹죠. 방으로 들어갑시다." 현관을 들어서자 실내가 훈훈했다. 홀에는 일인들의 취향에 맞게 창을 따라가며 고무나무와 세베리아, 난초가 즐비했다. 페치카에서 흘러나오는 열기와 식물들이 뿜는 습기로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홀에 다른 손님이 없었지만 넷은 긴 복도를 걸어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여급이 들어와 서요의 외투와 사프카 모자를 벗겨 주었고, 후루쇼에게 권총이 든 웃옷을 받으면서 바들바들 떨었다. 여관 주인이 서요와 꿩 요리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자리를 떴다. 나중에 들어온 기모노를 입은 다른 여급이 잔에 우롱차를 따랐다. 권종성은 조심스럽게 잔을 채우는 여급의 손등에 파란 정맥이 돋은 것을 보면서, 기모노 소매 자락이 팔락일 때마다 향기가 일어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요새 광문사 문턱이 자주 닳는 거 같아." 후루쇼가 능숙하게 우리말을 하며 권종성을 돌아보았다. "아, 예. 1월 4일에 회의를 했습니다. 여덟 분이 모였는데...... 춘당께서도......" 권종성은 서요를 의식하며 어색하게 입을 뗐다. 서요의 부친이 모인 여덟 중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었다. "아, 괜찮아. 내가 부친을 존경하는 거 알잖아. 후루쇼 상도 다 아시죠, 안 그래요?" 서요는 스물다섯 살 청년이었다. 맨손으로 장사해서 대구 최고의 거부가 된 아버지를 두었다고 해서, 도박이나 사냥질을 일삼는 놈팡이가 아니었다. 서요는 아버지인 서석림과 다르긴 하지만, 성격이 뚜렷했고 자신의 할 일을 알고 있었다. "서석림 옹은 훌륭한 분이시죠." 후루쇼도, 서요의 아버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다는 투로 웃어보였다. 후루쇼는 차 한 잔을 마시고 바로 본론을 꺼냈다. "여덟 명이 모였다고? 이번 취회의 요지는 뭐던가?" "해가 바뀌어서 신년 인사를 나눌 겸, 금년 계획도 살펴보는 자리였습니다." 권종성은 보고를 할 때마다 추측성의 말투보다 단정적이고 직접적인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 자리를 알고 있는 사람은 혼자였다. 있는 사실만 보고한다고 해도, 어떤 시선으로 그것을 보느냐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었다. 객관적인 보고도 주관이 깔려 있는 것이다. 사실 그날 모임에서 금년 계획을 논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1월 29일에 전체 문회를 개최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김광제 사장이 도내 각 지역을 대표하는 2백여 명의 회원들에게 '문회소집' 통문을 발송하라고 지시했다. 편지는 김광제가 직접 썼다. "계획이야 만날 모여서 세우지. 뭐 다른 얘긴 없었어?" 후루쇼가 실망한 표정으로 잇소리를 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문명국가도 이루고 외세 침입을 막는 길은 없을까 하는 얘기도 있었죠. 그러니까 일정한 한계를 인정하면서, 양쪽을 크게 손상시키지 않는 균형점이 어딘가? 그런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 균형점에 대해 사람마다 주장하는 게 달라서 나라가 쪼개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누가 그런 말씀을 하시던가?" 서요가 의자 등받이에서 몸을 일으켰다. "서병오 선생입니다." "음....석재(서병오) 선생도 존경하오." 후루쇼가 어깨를 들썩 올렸다. 석재는 당대 최고의 서예가였다. 시, 글씨, 그림, 가야금, 장기, 바둑, 구변, 의학에 뛰어나 팔능거사(八能居士)로 불렸다. 다방면의 천재성이 시국에 대한 관찰에서도 발휘되는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은 오른쪽으로 더 가야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왼쪽으로 더 가야 균형을 이룬다고 합니다. 이 판단의 차이로 생기는 분열이 현재도 그렇지만 앞으로 조선의 숙명이 될 것이라고 석재가 말했습니다." "오, 그런가? 그렇다면 서요 상은 어디쯤으로 봅니까?" 후루쇼가 궁금하다는 듯 서요를 빤히 바라보았다. 글쎄요, 서요는 손으로 짧은 머리를 쓸었다. 서요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문이 열렸다. 여급들이 음식이 날라 왔다. 꿩 백숙이 놓였고, 접시에는 꿩 육회가 조금씩 담겼다. 권종성은 자신이 정탐꾼인 사실을 잠시 잊었다. 후루쇼를 만나러 오며 가졌던 긴장감이 막상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 어느새 풀어지곤 했다. 그날, 후루쇼를 따라 일경이 관할하는 성안의 감옥에 갔을 때였다. 감옥은 일자형 맞배지붕 기와로 된 곳간 같은 건물이었다. 벽돌조인 대구감옥을 짓기 전이었다. 일인 간수가 두터운 목재 문에 채워진 굵은 자물통을 열었다. 지린내가 풍기는 내부에 십여 명이 목에 칼을 쓰고 앉아, 갑자기 들어온 둘을 주시했다. 후루쇼가 가래 끓은 목소리로 이죽거렸다. "청송에서 화적질하다 잡혀온 놈들이지." 앞에 있는 산발한 사내가 나무판을 흔들며 고함을 질렀다. 일본을 저주하는 욕설이었다. 후루쇼는 "어차피 내일 큰시장에서 형을 집행할 거야."하더니 권총을 꺼내 사내를 쏘아버렸다. 이마에 총을 맞고 사내가 꼬꾸라졌다. 비좁은 실내였다. 사내가 쓰러지면서 어느 부분이 권종성의 발등을 찍었다. 권종성은 소스라쳤다. 열린 문으로 횃불이 비쳐들었다. 칼 위로 사내들의 얼굴이 공포에 젖은 채 번들거렸다. 낮고 느린 후루쇼의 목소리가 들렸다. "광문사, 광학회, 달성회 등의 조직원들을 모조리 잡아들일 수 있어. 압슬(壓膝), 단설(斷舌), 포락(炮烙), 고형(刳刑), 자자(刺字) 들을 가하면 어떤 저항도 싹이 말라버리지." 후루쇼가 감방을 나와 순사에게 문을 잠그라고 하고 이어 말했다. "내 말을 잘 듣게. 하지만 도시는 의병이 거병하는 장소가 아니야. 여하히 해서 의병을 만들면 도시는 파괴돼. 총검으로 도시를 제압할 수 있으나 시장은 죽어버리지. 도시는 시장이야. 대구는 무척 큰 시장이지. 죽은 도시에는 시골 사람들도 오지 않고, 일인들도 모여들지 않아. 시장이 죽었으니까." 후루쇼가 총을 가슴에 넣으며 덧붙였다. "지난해 경성에서 한인 상인들이 어음으로 돈놀이를 했어. 일본 경찰에서 단속 하자 종로상인들이 모두 철시를 했지. 삽시간에 경성이 죽음의 도시처럼 변해버렸어. 광무 황제폐하와 일본 경시청까지 나서서 가까스로 수습한 거야. 그렇다네. 총으로는 의병이나 화적을 떼려 잡을 수야 있지만, 상인들 호주머니에 들어있는 돈 1전도 꺼내게 할 수가 없네." 후루쇼의 말은 광문사나 수창사 달성회 회원들에게는 어떤 위해도 주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되면 시장이 닫히니까. 시장이 닫히면 일본인들이 한국으로 건너오지 않으니까. 권종성이 광문사를 정탐해서 보고한다고 해도 그 정보는 단순히 일본 경찰에 비치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거였다.

2017-05-10 13:34:37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엄창석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17>-엄창석

제 5 장 뼈가 시리는 추운 날씨였다. 드넓게 펼쳐진 수면은 얼음으로 덮여 우윳빛이었다. 저수지 가장자리는 보트들이 둑에 코를 박고 있고, 포플러나무에서 빠져나온 붉은 석양이 보트와 얼음에 꽂힌 죽은 새들을 비추고 있었다. 저수지 얼음 밑으로 물이 숨을 쉬는 듯, 보트가 얼음을 약간씩 떠밀면서 흔들흔들했다. 권종성은 저수지 남쪽 제방에 우뚝 솟은 여관으로 들어섰다. 바라크로 지붕을 덮고 나무로 벽을 친 일본식 단층 여관이었다. 여관 주인은 팔조령 가는 길에 있는 파잠(巴岑, 파동) 사람으로 일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던 시기에 영선못으로 와서 여관을 열었다. 대구는 평지에다 드문드문 구릉만 있는 삭막한 도시였다. 강이라 해봤자 바닥이 훤히 보이는 몇 가닥 개천이 전부였고, 명소인 팔공산까지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나마 남문에서 대덕산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3만평 넓이의 영선못이 도심과 가깝고 경관이 빼어나 나들이객이 많이 몰렸다. 봄부터 가을가지 보트를 띄우거나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지금은 겨울이라 저수지가 얼어붙고 주변도 을씨년스러웠다. 권중성은 여관 마당 한가운데 세워진 인력거를 보았다. 바퀴가 크고 뒤가 높다랗게 들린 멋진 인력거였다. 서요가 먼저 왔나 보네. 인력거가 들어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대구는 길이 좁아 인격거가 다니기에 불편했다. 아니면 일경 경부보(警部補)인 후루쇼가 왔나? 그렇게 짐작하는데 튱튱, 총소리가 들렸다. 엽총이 아니라 권총 소리였다. 권종성은 현관 앞을 돌아 뒤뜰로 나갔다. 그물이 크게 쳐져 있고 서요가 날아다니는 꿩을 권총으로 쏘고 있는 게 보였다. 서요 옆에 후루쇼가 팔짱을 끼고 있다가 간간히 꿩을 가리키며 웃어댔다. 권종성은 몇 걸음 물러서서 서요와 후루쇼가 자신을 볼 수 없도록 몸을 숨겼다. 아직 약속 시간 전이었다. 일찍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서요는 김광제와 함께 광문사를 설립한 서석림의 둘째 아들이었다. 서요가 다섯 살이나 아래였지만 말을 틀 수 없었다. 거부의 아들인 데다 그를 광문사에 넣어주었기 때문이다. (광문사에 오기 전에 수창사에서 근무했으니까 서요가 권종성을 수창사에 취직시켰다는 게 옳을 것이다.) 서요는 히자쓰키라는 일본인이 세운 일어학교를 다녔고, 많은 일인 친구들을 사귀고 있었다. 박중양 관찰사와 마찬가지로 일어에 능통했다. 그의 아버지 서석림이 대구 신흥세력의 중심인물이라면 그도 어떤 면에서 새로운 중심인물이었다. 아버지는 민족운동을 하고 아들은 일인들의 친구인 것이다. 그가 일어학교를 다니게 된 게 아버지가 권유해서라고 하니까 쉽게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였다. 그 일만 아니었으면..... 권종성은 그때 일을 생각했다. 여동생이 아기를 가진 것을 왜 몰랐을까. 진즉 낌새를 알아챘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여동생은 겨우 열다섯 살이었다. 큰시장 북쪽인 북후정을 돌아 흐르는 개천에 갓난아기가 버려진 사건으로 시장이 시끄러웠다. 개들이 사납게 짖어대고 비가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그의 집으로 순검들이 들이닥쳤다. 여동생이 맨발로 마당을 내려서다 쓰러졌고 순검 하나가 짐짝처럼 동생을 어깨에 둘러메었다. 그가 동문 앞의 비어홀에서 서요를 만난 게 동생이 감옥에 갇힌 다음 날이었다. "요즘 뇌물이 먹히지 않아." 서요는, 한두 해 전만 해도 간수에게 돈을 주면 웬만한 죄수는 빼낼 수 있지만 이젠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말이 맞을 거다. 잡혀오는 화적들이 늘어나면서 형의 집행은 가차 없었다. 지난해 한일 간에 새 조약(을사조약)이 체결된 후, 무수한 곳에서 폭발하듯 의병이 일어났고, 의병을 빙자해서 도적떼도 들끓었다. 일본경찰은 의병과 도적을 구분하지 않았다. 그것은 교묘한 전략이었다. 의병을 도적이라 해서 명분을 제거해 힘을 빼앗았고, 잡범들에겐 그만큼 가혹해서 일본이 얼마나 백성의 편인지를 뽐냈다. 서요를 만나고 나흘 후, 여동생이 풀려났다. 그는 집에 돌아와 누워 있는 동생에게 미음을 떠먹이며 말했다. 걱정마라. 학교에 가서 일어를 배워. 그러면 일인 상점에 취직할 수 있고 나중에 유학도 갈 수 있어. 아마 서석림을 흉내 내서 내뱉은 말인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전 같으면 애를 낳은 동생이 기방으로 가서 삼패(三牌)기생이나 되었겠지만 이런 격한 일은 오히려 조선의 묵은 관습에서 벗어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그날 비어홀에서 한껏 맥주를 마셨다. 서요와, 서요가 불러낸 일본 경찰 후루쇼도 함께 잔을 비웠다. 동생이 풀려나는 대가로 광문사에서 벌어지는 일을 일경에게 보고하기로 한 것이다. 그딴 건 어렵지 않았다.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그러나 무서웠다. 동료나 회사를 배신하는 짓이 아닌가. 그들이 끌려가서 도적 취급을 받으며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지 모른다. 여동생을 풀어주겠다고 약속한 후루쇼가 껄껄 웃었다. "염려 놓게. 광문사에 어떤 위해도 없을 거네." "그걸 어떻게 믿습니까?" "하하, 한 시간만 지나면 믿게 될 거야." 그날 비어홀을 나서면서 후루쇼가 따라오라고 했다. 권종성이 간 곳은 성안에 있는 감옥이었다.

2017-05-08 15:37:55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엄창석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16>-엄창석

"소남공은 돈을 얘기한 겁니다. 돈은 높은 곳에서 낮은 데로 흐르는 물과 같은 거지요. 물길이 막히면 바위를 부수고 산도 무너뜨려요. 칼로써는 만리장성을 허물지 못하나 돈은 그것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서석림이 장죽을 놋쇠 화로에 탁탁 두드리며 말했다. 과거를 떠올리는 듯 시선을 허공에 두고 이맛살에 주름을 지었다. 열한 살 때부터 상인들의 심부름을 하여 장삿술을 익힌 뒤 불과 마흔 살에 엄청난 규모의 보부상 조직을 거느리며 낙동강 무역을 휘어잡았으니까 온갖 파란을 겪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일우에 대한 김광제의 말은 어딘가 맞지 않았다. 곁에서 잠자코 있던 서병오가 찻잔을 입술에 적시며 입을 뗐다. "우리가 신교육운동을 하고 있지만 문명이 전부가 아닐 거요. 전에는 서방에서 기(己)를 얻고 우리의 도(道)를 지키자 했으나 이젠 아무도 그런 말을 입 밖에 꺼내지 않습니다. 전기, 전차, 기차, 전화, 이런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있어요. 지금 이것이 전부 일본을 통해 들어오고 있으니,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침입을 거부하기가 어렵습니다." 서병오의 말에 방 안이 잠잠해졌다.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침입은 거부한다는 논리적 모순에 공감한다는 게 아니라 바로 그 때문에 지난 수십 년을 피 흘린 무수한 사건을 떠올리는 표정이었다.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김광제가 목소리를 높였다. "문명과 침탈의 모순을 이겨내고자 나온 게 양계초의 '신민설'입니다. 서방 제국주의가 필연적으로 도래한 거라면 우리도 공공의 정신을 가진 신민(新民)을 키워야한다는 얘기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현실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침입을 막는 것과 문명을 받아들이는 것의 경계가 어딥니까? 침입도 막고 기술력도 얻을 수 있는 균형점이 어디인가요? 그 균형점을 어디로 보느냐에 따라 우리가 분열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왼쪽으로 더 가야한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오른쪽으로 더 옮겨져야 백성이 산다고 주장합니다." 서병오가 투덜대듯 내뱉었다. 좌중이 수런거렸다. 아무도 드러내놓고 그 말에 답변하지 못했다. 몇은 장죽에 연초를 얹거나 화로를 뒤적였다. 몇은 찻잔에 홍차를 부어 마시기만 했다. 그것은 균형점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문명을 얻되 침입은 피할 수 있는가 하는 난제가 갑자기 등장한 균형이라는 말로 인하여, 마치 해결이 된 듯한 느낌을 주면서도 그 지점이 어딘지 답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봐, 여기 중(中)자와 여(呂)자가 거꾸로 박혔잖아." 권종성이 계승의 어깨를 툭 쳤다. 열린 장지문으로 옆방을 힐끔대면서 조판을 짜던 계승이 끔쩍 놀랐다. 손톱 반쪽만 한 활자가 잘못 놓여 있었다. "정신을 어데 팔아. 글자가 틀리면 누가 이 책을 믿고 보겠소? 옛날에는 한 자를 잘못 꽂으면 곤장 서른 대를 맞았어." 계승은 조판틀을 풀고 활자를 바로 세웠다. 한문을 능숙하게 읽지 못해 형태를 보고 활자를 넣다가 실수를 한 것이다. 원고인 '소물리학'에 한문과 한글, 숫자와 선이 섞여 있어 판짜기가 무척 더뎠다. 선과 선 사이의 벌어진 공간에 적당한 크기로 나무를 채워 넣어 압지를 할 때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권종성이 말했다. 계승은 해가 기웃할 즈음에야 한 판을 완성했다. 권종성이 인쇄기에서 나온 교정쇄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계승이 짠 조판을 실로 단단히 묶어 고정을 시켜주었다. 인쇄는 내일 하자고 했다. 조금만 어두워도 잉크가 고루 먹는지, 활자가 비꾸러지지 않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옆방에 있던 사람들이 일어나면서 인쇄실로 얼굴을 잠시 내밀었다. 광문사 부사장인 서석림이 저녁을 사먹으라며 신화(新貨) 반 원(半圜,50전)을 두고 갔다. 관청에서는 신화를 쓰라고 하지만 식점에서는 엽전을 선호했다. 신화는 화폐가치가 변한다고 해서 받기를 꺼려했다. 화폐가치가 변하는 건 엽전이지만 어차피 서로 교환하는 것이어서 어느 한쪽을 쓰더라도 가치변동이 생길 수밖에 없는 셈이었다. 신화 반 원은 엽전 5냥에 해당됐다. 다섯 명이 밥을 먹고 술도 마실 수 있는 넉넉한 돈이었다. 계승은 직원들과 함께 남문 밖에서 저녁을 먹고 혼자 광문사로 돌아왔다. 약간 취해 있었고 피로가 머리끝까지 차 있었다. 꽤 늦은 시간이었다. 사방이 적막했다. 멀리서 부엉이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계승이 툇마루 밑으로 뚫린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 잠을 자려고 인쇄실 뒷방으로 들어갈 참이었다. 밖에서 대문을 흔드는 소리가 들렸다. 권종성인가? 한 잔 더 하자고 술병을 차고 오는 건지 몰랐다. 오후 내내 함께 앉아 식자를 했으니까. 계승이 대문을 열다가 술이 확 깨었다. 문밖에 서 있는 이가 곱사등이 오돌매였다. "밤중에 웬일로......" 오돌매가 마당으로 서슴없이 들어왔다. 아궁이에 불어 넣고 있었다며 곧 자려고 한다고, 계승이 짜증난 목소리로 말했다. 오돌매가 슬금슬금 아궁이 앞으로 걸어갔다. 계승도 주춤주춤 오돌매를 따라갔다. "지난밤에 말이오, 아무래도 비밀이 누설된 거 같단 말이야." "무슨 일이 있었어요?" 그때 갔던 달성회 회원들이 잡혀 갔느냐고 다시 물었다. 오돌매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모르지......근데, 마욱진의 집까지 자경단이 지킬 리가 없거든." "......" 오돌매의 굽은 등이 아궁이의 불빛을 받아 기괴하게 튀어나와 보였다. "임형이 읍성을 허물었잖소?" "......" 물이 끼얹어지듯 등이 서늘했다. "성을 허물려고 했던 최가가 칼 맞은 거 알죠?"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거요? 난 지난밤 계획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달성회 회원들이지. 피로 맹세했어." "난 절대 아니오." 계승은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오돌매가 낮은 소리로 이죽거렸다. "음, 아니라고? 아니라면 당신이 불을 질러보시요. 마욱진의 집은 아니오. 자경단을 이끄는 이와세 상점에 불을 지르시오." 오돌매의 눈이 파랗게 빛을 뿜었다.

2017-05-04 13:01:05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엄창석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15>-엄창석

이즈음 광문사는 대구뿐 아니라 경상도 각처의 지식인들과 상업 자본가들이 집결하는 장소였다. 동래 경무관을 지낸 김광제가 광문사를 설립한 게 1906년 1월이었다. 1905년 11월에 2차 한일협약(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김광제는 경무관 직을 사임하고 곧장 대구로 올라와서 출판사를 설립했다. 충청도 보령 출신인 그가 대구로 올라온 것은 일인들이 이곳으로 몰려든 것과 같은 이치였다. 일인들은 상권을 개척하기에 가장 적절한 곳으로 대구를 선택했고, 이에 맞선 김광제도 신교육 운동의 터전으로 대구를 꼽은 것이다. 그의 활약을 접한 광무황제는 자금과 교육칙유를 내려 보냈고, 당시 신태휴 관찰사도 성 안의 취고수청 건물을 제공했다. 광문사를 세운 지 6개월 만에 이룬 성과였다. 그런 뒤로 일본 통감부의 지방 조직인 이사청이 성 안에 들어오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도움을 주던 관찰사가 이임을 했고, 광문사는 일본 수비대로 둘러싸이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도 상업 자본가들과 지식인들이 모여서 자강운동의 방법과 방향을 두고 토론을 벌였다. 계승은 화로에 숯을 넣어 불을 피우면서 바깥의 동향을 살폈다. 감영 정문인 관풍루에서 중삼문을 거쳐 징청각에 이르는 곧은 길로 일본 수비대가 척척 발을 맞추며 행군을 했다. 제복을 입은 기마병들도 위세를 떨며 관청 앞을 지나갔다. 다행스럽게도 수비대의 행군에서 별다른 기미를 찾을 수 없었다. 계승은 화로를 회의실로 옮기고, 청소를 하고, 동료들과 둘러앉아 밥을 먹었고, 인쇄실로 돌아왔다. 채자 상자에서 활자를 뽑는 일은 김이, 교정쇄를 검토하는 일은 최가, 조판은 권종성이 맡고 있었다. 권종성이 인쇄실로 들어선 계승에게, "오늘부터 임형도 판을 짜보시오."하고 말했다. 계승이 김과 최보다 나이가 많아 허드렛일만 시킬 수 없다는 투였다. 계승은 권종성과 나란히 식자대에 앉아 원고를 들여다보면서 김이 뽑아온 활자를 작은 조판틀에 하나씩 집어넣었다. 그러는 사이 옆방에서 분주한 소리가 들리고 장지문도 몇 차례 열고 닫혔다. 회의를 하러 들어온 인사들은 대체로 쉰 살 안팎의 초로들이었다. 마흔한 살인 김광제가 가장 젊었다. "이사람, 새로 들어왔나 보네?" 누군가가 다가와 계승의 등을 두드렸다. 계승은 한문을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양, 활자를 틀에 정교하게 맞추는 데 골똘하는 척했다. 인사들이 우르르 방을 나갔다. 뜨거운 홍차를 후루루 마시는 소리, 안부를 주고받는 화통한 목소리, 장죽 대가리로 화로 끝을 때리는 소리, 두루마기를 휘휘 젖히는 소리, 가래를 긁는 소리가 닫힌 장지문으로 들려왔다. "황제폐하께서 도성을 아예 뜯어고칠 작정인가 봅니다. 길을 크게 넓히고 전염병이 돌지 않도록 청결하게 한답니다. 경북궁 안, 집옥재에 4만 권의 책을 들여놓고 신문명을 어떻게 도입할지 모색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조금 전 계승의 등을 두드린 이일우의 목소리였다. 그는 두 해 전, 망경루 건너에 우현서루(友弦書樓)라는 의숙을 세우고 수천 종의 서적을 구비하여 젊은이들을 모으고 있었다. 날카로운 김광제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황제의 정치력은 믿을 수 없어요. 오래전 얘기지만 심야를 타서 독립협회를 제거하신 것도 황제폐하지요. 물론 교활한 러시아 여우들이 뒤에서 책략을 쓴 거지만. 문제는 권력이 황제, 한곳에만 집중되어 있으니, 황제만 잡히면 나라가 무너지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소남(이일우)께서 말씀하신 경복궁 앞 대로도, 제가 서울에 가보니 일본 수비대의 행군 장소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참 어렵소. 단발령도, 단발역복(斷髮易服)이라 해서 일본이 자국의 면포를 수출하기 위해 꾀를 낸 거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얽히고설켜 있어요. 정책의 뿌리를 캐려고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정책의 효과를 살피는 게 더 현실적이지 않겠어요?" 다소 느긋한 말투인 서석림의 목소리였다. 나이가 가장 많은 그의 말에 김광제는 음음, 밭은기침을 하다가 좀 전의 말을 이었다. "물론 황제의 권력은 우리 백성에게나 통할 겁니다. 양계초의 '신민설'을 읽어보셨지요? 적자(適者)만이 살아남는다는 거예요. 생물처럼 나라도 진화한다고 합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먹어삼키는 서방의 민족제국주의는 그런 점에서 필연이라고 합니다. 허약한 민족은 지구에서 지워질 수밖에 없지요." "글쎄요, 그것을 잘 들여다봐야 해요. 서방 군대가 북경에 도착했을 때 먼저 상권부터 차지하겠다고 협상을 벌였어요. 일본도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면서 군인과 보급품을 나르려고 경부선 경의선을 놓았다지만, 사실은 일본 상인들에게 길을 터주려고 노선을 짠 거예요. 민족제국주의가 필연인가요? 그렇다면 그건 정치나 군대가 아니라 경제적으로 필연일 겁니다." 서석림이 다시 대꾸를 했고, 김광제는 답답한 듯 장지문을 열고 "김권, 여기 차를 하나 더 내오게." 소리쳤다. 김이 주전자에 물을 받아 홍차를 넣고 화로에 올렸다. 계승은 조판을 하다가 옆방을 힐끔거렸다. 김이 문을 닫지 않았는지, 언제부터 회의실과 인쇄실 사이의 장지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회의실에는 여덟 명이 둘러앉아 있는데, 가운데 놓인 세 개의 화로에서 간간히 연기가 피어올랐다. 좌장격인 서석림이 북쪽 벽에 앉아 있고, 양 옆으로 정규옥과 정재학이, 문쪽에는 이일우, 김광제, 서병오가 앉아 있었다. 장지문을 등진 이도 몇몇 보였다. 그러고 보니 사장인 김광제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낙동강 수운을 활용해서 장사를 했던 한때의 상인들이었다. 낙동강 무역이 쇠퇴할 조짐이 번지자 대구에 와서 도시 자본가가 된 것이다. 인근의 논밭을 사들이는가 하면, 양잠업이나 은행업에 관여하고, 엄청난 부로 학교를 세웠다. 도시는 이들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는 셈이었다. 조선의 명문가 선비들은 산수(山水)가 빼어난 곳에서 시(詩)를 읊거나 기울어지는 나라를 보고 비분강개하고 있었지만, 도시는 한갓 저자거리일 뿐이었다. 대구도 대부분의 지역이 장터였다. 사람들은 장터로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불어나는 일본 상인들과 자금으로 맞서는 것도 낙동강 무역상 출신인 이들뿐인 셈이었다. "새로운 게 들어오면 낡은 것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구 읍성을 무너뜨린 게 일인들 짓이지만, 사실은 돈이 읍성을 부순 거예요. 읍성 때문에 돈이 흐르지 않았으니까." 우현서루를 세운 이일우의 말이 귀를 당겼다. 이일우는 낙동강 무역과 채금사업을 해서 수십만 평의 논밭을 소유한 이동진의 장남이었다. "소남(이일우)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새것이 낡은 것을 파괴하지만 근거를 살펴야 합니다. 월남망국사를 보면 프랑스가 참혹하게 베트남을 짓밟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어떤 이들은 그 책을 읽고도 프랑스가 베트남을 개화시켰다고 말합니다."

2017-05-01 12:21:21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엄창석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14>-엄창석

참 이상한 일이야. 계승은 바로 지난밤에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도, 이 번다한 상황을 비집고 그녀의 생각이 끓어올랐다. 장상만의 권유로 달성회 회원들과 어울리던 날, 애란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 여자가 애란이라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날, 수창사에서 달성회 회원들과 서로 인사를 나눈 뒤 젊은 장사꾼들의 얘기를 듣고 있을 때였다. 골목에서 한 여자가 담장 위로 얼굴을 내밀어 수창사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당연히 저 여자가 애란이 아니지 하면서도, 열 한 살인 소녀가 지금 열여덟이 되었으면 바로 저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애란일 리가 없었다. 볕에 새카맣게 그은 얼굴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여자의 흰 얼굴은 부유한 양반집의 규수에 가까웠는데 애란의 집은 지독히 가난했다. 계승은 슬그머니 청년들에게서 빠져나와 담장으로 다가갔다. 여자는 골목 안쪽으로 종종 걸음을 치고 있었다. 장옷을 무릎 아래까지 늘어뜨리고 우산은 든 채로 걸어가는 걸음걸이마저 열한 살 애란의 모습이 어려 있다고 여겼던가. 그렇다. 어딘가 그랬다. 7년 전, 그녀가 열한 살일 때, 멀리 그 아이의 모습이 겨우 손가락만큼 작게 보이는 곳에서 걸어올 때 애란인 걸 알아챈 적이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몸의 흔들림이나 아이를 둘러싼 어떤 대기(大氣)가 그녀임을 속삭여주는 것이다. 이윽고 여자는 골목으로 사라졌고, 계승은 진눈깨비가 내려 질벅거리는 흙 위에 찍힌 발자국을 유심히 내려다보았다. 대감집 규수가 사뿐사뿐 걸어간 것처럼, 발자국은 유별히 가지런했고 손바닥으로 누른 듯이 가볍게 찍혀 있었다. 짚신이 아니고 가죽신을 신은 듯했다. "흣, 그런 여자 못 봤어." 아까 담장 밖에 서 있던 여자가 누군지 아느냐고 계승이 묻자, 장상만이 무슨 쓸데없는 소리냐는 투로 코웃음을 쳤다. 장상만은 지금이 기회라는 듯, 계승을 데리고 안채 대청마루로 갔다. 거기에 서석림이 있었다. 계승의 일자리를 부탁하기 위해 서석림에게 소개를 시키려는 것이다. 서석림은 갓을 쓰고 티 없이 흰 두루마리를 입은 고귀한 풍치를 띠고 있었다. 계승은 서석림을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어릴 때 사문진에서 상인들의 심부름을 하면서, 보부상으로 큰 상단(商團)을 거느리던 서석림을 본 적이 있었다. 당시 사문진 사람치고 서석림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서석림은 당연히 계승을 알지 못했다. "김광제 선생, 이 사람 광문사에서 일하면 어떨까요?" 곁에 있는 중년이 차가운 눈길을 계승에게 보냈다. "자네 글은 아는가?" "저……해성재에 다녔습니다. 언문은 읽고 쓸 줄 압니다." "언문만으로 안 되지." 김광제가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서석림이 나서 말했다. "눈빛이 살아 있군. 일단 나와서 일을 배워봐. 한자를 모르면 안 되네. 부지런히 공부하게. 우리가 일손이 부족하잖습니까? 채자(採字)를 못하면 장작이라도 패게 하지요." 다음날부터 계승은 광문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잠자리가 마땅치 않았는데 인쇄실에 붙은 도장방을 얻을 수 있게 된 것도 여간 다행스럽지 않았다. 대구로 돌아온 지 보름 만이었다. 마당에 서리가 걷힐 무렵에 직원들이 출근했다. 모두 여섯 명으로 두 명은 아직 스무 살이 되지 않았고 한 명은 서른 살이었다. 나머지는 계승과 비슷한 또래였다. 계승은 일을 배운 지 한 달쯤 되었지만 청소를 하거나 책을 포장하고 송달하는 잡일을 맡았다. 계승은 숯을 넣어 불을 지핀 화로를 인쇄실로 옮기면서 식자를 하는 권종성에게, 혹시 오던 길에 다른 일이 없었냐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지난밤 사건에 가담했던 것이 자꾸 꺼림칙했기 때문이었다. "뭐요?" "글쎄, 일본 수비대나 헌병들이 평소와 다르게 움직인다든가……." "광문사 주위를 수비대가 둘러싸고 있는데, 뭔 일이 생기면 먼저 알게 되잖소." 하긴 그랬다. 광문사의 앞과 뒤 관청은 모두 일본 수비대가 점거한 상태였다. 지난해 5월 광문사가 성안으로 이건할 때는 일인 관리들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불과 몇 달 후 일본 이사청이 감사 집무실인 징청각(澄淸閣)에 들어서게 되면서 일본수비대가 따라 들어와 감영 정문(관풍루) 주변의 관청을 점거해 버렸다. 천연두를 주사를 놓는 종계소와 광문사만 빼면 일본수비대로 가득 차게 된 것이다. 계승은 이날 아침에도 일본 군인들의 호령 소리와 말 울음소리가 여느 때와 같았다고 생각했다. 화로가 놓여지고, 전날 작업했던 문서들과 채자 상자와 교정쇄들이 착착 인쇄기 앞으로 배열되었다. 이즘에 소물리학(小物理學) 교과서를 간행하는 중이었다. 도내에는 41개군에 370여 학교가 있었다. "책을 찍어내면 뭐해. 학교에서 사용하지 않는데. 요샌 학교도 점점 줄어들잖아. 광문사에 종이 살 돈도 없대. 우리들 급료는 나올라나 몰라." 서른 살 먹은 권종성이 교정쇄를 들여다보며 투덜댔다. 다른 직원들도 게으르게 채자 상자에서 활자를 고르고 조판작업을 했다. 그러다 시린 손을 화로 위에 탁탁 털며 시간을 보냈다. 계승이 처음 광문사에 오던 날, 직원들은 자부심에 찬 표정을 지으며 계승에게 기름 냄새가 밴 방으로 안내해서, 채자 상자 속의 활자들과 가압기에서 한 장씩 빠져나오던 인쇄물을 보여주었었다. 도시의 변화만큼 직원들의 자세도 빠르게 변했다. 서석림 댁의 심부름꾼 아이가 광문사로 달려온 것은 다들 화롯가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하고 있을 때였다. "오늘 문회가 열린 답니다. 오후 한시에요." "그래? 몇 분이 오신대?" "아참, 전체 문회는 아니고요, 시찰님과 회장님, 또 여러 어른들이 오시니까 화로를 여러 개 피워놓으라고 하셨습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승은 잠을 못 자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2017-04-26 00:05:01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엄창석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13>-엄창석

제 4 장 계승은 풀섶에 숨어서 허리춤에 손을 넣어보았다. 단도가 만져졌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풀섶 사이로 허연 입김이 뿜어졌다. 코끝에 고드름이 맺힐 정도로 추운 밤이었다. 장상만과 오돌매는 어디로 갔을까. 다른 달성회 회원들도 보이지 않았다. 백 미터쯤 앞에, 최욱진의 기와집은 어둠 속에서 학이 날개를 펴듯 우아한 자태로 서 있었다. 최성달의 집 앞에 모여 있던 일인 자경단(自警團)들이 횟불을 들고 계승이 숨은 숲 쪽으로 오고 있었다. 계승은 허리춤에 찬 단도를 풀어 바닥에 던졌다. 저들과 맞설 자신이 없었다. 만약 잡힌다면 순순히 투항해버릴 참이었다. 왜 자신이 덜컥, 이번 일에 동참하겠다고 말했던가. 대구에 돌아온 지 사흘째, 장상만과 술을 마시다 큰시장에서 장사하는 젊은 상인들의 모임인 달성회를 알게 되었지만, 이런 사건까지 가담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일의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었다. 밀려드는 파도를 몇 명의 손으로 막을 수 없지 않은가. 마욱진은 53세인 칠성리 사람으로, 기차로 들어오는 물자를 각 일인 상점으로 보내는 수화물 취급자였다. 수하에 20여명을 거느리고 수십 마리의 우마를 이용해 대구는 물론이고 경산, 청도, 포항까지 물건들을 보냈다. 그의 역할로 일인의 무역상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다. 마욱진에게 치명상을 가해야 해. 달성회 회원들의 결의는 단호하고 명료했다. 새벽 두시쯤에 마욱진의 집 앞에 도착했다. 담장 네 귀퉁이마다 한 명씩 피리와 단도를 지니고 망을 보았다. 계승은 동쪽 귀퉁이를 맡았다. 미리 짜놓은 대로 세 사람이 담을 넘으려고 할 때였다. 낌새를 느꼈던지, 일인 요릿집 쪽에서 횃불이 훤하게 밝아진다 싶더니 발자국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동쪽과 남쪽 사이에서 들리는 발소리였지만, 계승은 피리를 불지 못했다. 어디선가 휘파람새처럼 짧은 피리소리가 울렸고 젊은 상인들은 그림자처럼 벽 아래로 흘러내렸다. 계승은 가까운 수풀로 몸을 숨겼다. 자경단의 횃불이 계승이 망을 보았던 모퉁이에서 돌아나갔다. 계승은 횃불의 움직임을 주시하느라 가까이서 흔들리는 수풀을 보지 못했다. 눈앞에서 불쑥 뭔가가 몸을 드러냈다. 곱사등이 오돌매였다. "왜 피리를 불지 않았소?" 오돌매는 단도를 꺼내 손끝으로 쓱쓱 쓸며 말했다. "모두 어디로 갔어요?" "튀었지. 빠져나갈 골목은 어디로든 있소." "아……." 계승은 다행이라는 한숨이 신음처럼 들리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설핏 들었다. "비밀이 누설된 거야. 자경단 놈들이 마욱진 집까지 지킬 리가 없는데 말이야." 계승은 가슴이 서늘했다. 일본 상인들이 자경단을 결성한 것은 러일전쟁이 끝난 지난해 7월이었다고 한다. 전쟁에 승리한 후로 일반 한인들이 유화적으로 바뀌었는데도 화적들의 공격은 더 잦아졌다는 것이다. 자경단들이 조금만 늦게 도착했으면 마욱진의 집 담장을 타넘었을 거고, 곧 도착한 저들에게 잡혔거나, 적어도 소동이 벌어졌을 것이다. 잡힌다면 가차 없이 사형에 처해지지 않을까. 계승은 대구에 돌아온 지 닷새 만에 잡혀온 화적들이 서문시장 뒤로 끌려가는 것을 목격했었다. 읍성 철거를 하청 받은 사람을 죽였던 게 달성회요? 계승은 그것을 곱사등이에게 물으려다 멈칫했다. 자신도 성 철거에 한몫했기 때문이었다. 도리어 곱사등이에게서 그 말이 나올까 조마조마했다. 아까 버린 단도가 보이지 않았다. 억새 줄기가 빽빽하게 자라 있어서 어디에 떨어졌는지 알 수도 없었다. 오돌매가 칼등으로 계승의 어깨를 툭 쳤다. "담에는 제대로 피리를 부시오." 오돌매가 수풀을 손으로 저으며 나가자고 했다. "난....뒤로 돌아갈렵니다." 계승은 먼저 가라고 손짓했다. 오돌매와 같이 가는 게 끔찍했고, 자경단 횃불이 보이지 않았지만 충분히 시간을 끌 필요가 있다고도 생각했다. 오돌매가 수풀을 뚫고 나아갔다. 수풀 위로 머리도 보이지 않아 그가 나가는 자리에 풀만 흔들렸다. 계승이 밀양가도로 돌아 읍성 남문으로 들어왔을 때는 날이 희붐해지고 있었다. 성 안은 아직 잠을 깨기 전이었다. 광문사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계승은 잠시 눈을 붙이려고 광문사 인쇄실 뒷방으로 들어갔다. 잠이 오지 않았다. 마당에는 새벽에 내린 서리가 녹으면서 낙엽이 눅눅하게 젖고 있었다. 12월말인데도 백양나무에 아직 입이 남아 있었다. 직원들이 출근하려면 한 시간은 지나야 할 것이다. 광문사는 방이 두 칸이고, 왼쪽으로 정자 모양의 마루가 붙어 있는 기와 건물로 조선조 때 취고수청으로 사용되던 곳이었다. 악사를 양성하고 관리하는 취고수청이 폐지되자 전임 관찰사가 광문사에 차여(借與)해준 게 지난 5월이었다. 광문사는 가운데 방을 회의를 하는 곳으로, 우측 방을 인쇄실로, 본채와 기억자로 붙은 건물을 서고로 사용했다. 계승은 마당으로 나가 낙엽을 갈퀴로 끌어 모았다. 집 둘레를 한 바퀴 돈 뒤, 인쇄실로 들어갔다. 직원들이 오기 전에 청소라도 해놓을 참이었다. 어차피 잠을 자긴 틀린 것이다. 수건을 들고 넉 자짜리 장롱 크기인 인쇄기를 꼼꼼히 닦았다. 가압기와 식자판이 놓인 곳에 묻은 잉크를 제거했다. 어디선가 총포 소리가 탕탕 울렸다. 말 울음소리가 마치 광문사에 말이 들어온 듯이 가까이서 들렸다. 아무 일 없을 테지. 달성회 청년들은 무사할까? 설령 잡힌다 해도 가담자들이 누군지 실토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위안을 하는데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호주머니에 거치적거리는 게 있었다. 손바닥만 한 피리였다. 숨어 있을 때 단도는 버렸지만 피리는 여태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피리를 산산이 부수어버리고 싶었다. 숨길 곳이 마땅히 없었다. 도장방 이불 속에 피리를 집어넣었다.

2017-04-24 09:33:59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엄창석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12>-엄창석

진눈깨비가 차츰 드세진다. 젖은 눈송이가 우산 위로 척척 달라붙는다. 시장은 대시가 언제 열렸느냐는 듯 황량한 공터로 변한다. 진눈깨비를 피해서 점포로 들어간 사람들이 처마 밑에 일렬로 죽 늘어서서 조금씩 짓물러지는 공터 흙바닥을 바라본다. 북후정이 있는 마시장 쪽에서 일본 헌병대원 하나가 붉은 말을 타고 다가온다. 발굽을 내딛을 때마다 약간씩 미끄러지면서 흙 위로 발자국이 찍힌다. "비가 와서 오늘 사형집행 못하겠네." "뭐, 구경꾼이 없으니까." "좋은 날씨군." 옆에서 몇 사람이 빈정댄다. 금릉은 사형터가 되다시피 한 그녀의 집을 잠깐 떠올리다 처마를 빠져나온다. 원래는 남문 앞 관덕정 연병장이 사형터였는데 한두 해 전부터 큰시장 후미로 옮겼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터도 넓기 때문일 것이다. 일러 전쟁을 기점으로 모든 게 변했다. 중국 요동반도 있는 러시아 기지인 여순항이 함락되고 불과 3일 후에 대구에서 성대한 축하회가 열렸다. 전쟁이 완전히 끝난 지난봄에는 일인들이 수레에 올라 나팔을 불고 샤미센을 뜯으며 며칠 밤낮을 요란하게 휘젓고 다녔다. 대구 한인들도 꽤 섞여 있었다. 한 도시에 사는 이들의 국가가 전쟁을 이겼으니 축하해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금릉은 말 등에 얹힌 헌병의 엉덩이를 떠올린다. 말은 천천히 걷고 있었지만, 흩날리는 진눈깨비 속에서 헌병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엉덩이에 반동을 넣으며 자신을 과시하고 있었다. 전쟁 전에는 상상도 못할 광경이었다. 혼자 말을 타고 가면 어김없이 돌이 날아들었으니까. 그랬던 것이 하루아침에 변했다. 러시아를 이겼다고 우리가 겁먹은 건 아니야. 곳곳에서 더 많은 의병들이 일어나잖아. 염농산 아주머니가 한 말이었다. 그럼 왜 그래요? 전쟁이란 게 그래. 사람 마음을 흔들어 놓은 거야. 금릉은 한 곳에서 책장수를 발견한다. 처마 아래에 모인 사람들이 그녀에게 공간을 내준다. 책장수는 중국 상인이 아니고 서울 상인이다. 상인은『혈의 누』가 들어보지도 못한 소설이라고 말하면서 다른 책을 권한다. "월남패망사가 있어요. 요즘 이 책이 수호지보다 더 인기 있다오." "그건 벌써 읽었어요." 금릉은 막무가내로 알은체를 한다. 유명하다면 염농산도 읽었을 것 같다. 서포에는 책 외에 돋보기, 안경, 붓, 호롱 따위의 잡화도 진열해놓았다. 금릉은 미국산 하얀 종이와 연필, 침향가루를 샀다. 종이와 연필은 아주머니에게 선물할 거고, 침향가루는 방에 두고 향기를 맡으려는 것이다. 시장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갔지만 서포는 눈에 띄지 않는다. 진눈깨비도 그쳤다. 기루로 돌아오자 집이 텅 빈 것 같다. 여자들이 시장 구경을 갔거나 방에 틀어박혀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마당 가운데서 자라는 단풍나무 백일홍 자귀나무에 잎사귀가 죄다 떨어졌다. 노랗고 붉은 낙엽이 마당 중앙에서부터 방사형으로 날려가 마당을 물들이고 있었다. 일꾼인 정씨가 마당 저쪽에서 비질을 한다. "그냥 두어요, 예쁜 걸요." 금릉이 소릴 지른다. 정씨가 허리를 펴다가 다시 비질을 하는 게 백일홍 가지 사이로 보인다. 낙엽을 그대로 두었다간 농산 아주머니한테 혼날 것이다. 금릉은 방으로 들어와서 구입한 용기를 열고 침향가루를 만져본다. 책은 못 샀지만 종이와 연필을 산 건 잘 한 거야. 아주머니가 좋아하시겠지. 염농산은 금방 올 것 같지가 않았다. 기루로 오던 길에 수창사로 갔는데 거기에 농산 아주머니가 있었던 것이다. 부유한 상업인들의 사랑방인 수창사는 남문 앞길에서 기루로 들어오는 삼거리에 위치했다. 그녀가 수창사에 들른 것은 신문을 사기 위해서였다. 매일신보는 성 안에 있는 광문사에서 판매하지만, 거기까지 가기에는 길이 너무 질벅했다. 수창사에도 소량이지만 신문을 두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수창사 대청마루에 사람들이 가득히 앉아 있었다. 남자들 사이에서 치마 입은 여자가 눈에 띄었다. 염농산 뜻밖에도 아주머니였다. 가야금을 가르쳐준 석재선생도 있었다. 계산성당 길목에서 거지들에게 국밥을 나눠주던 서석림 노인은 언제 여기로 왔을까. 모두가 어마어마한 부자들이었다. 그래도, 들어가서 "신문 사러 왔어요." 말하려고 했지만 그만 돌아서 버렸다. 아래채 앞에 청년들이 잔뜩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금릉은 아직도 또래 남자나 오빠뻘과 마주치는 게 쑥스러웠다. 어릴 때 함께 놀다가 기루로 들어왔으니까. 금릉은 까치발을 세우고 담장 안을 훔쳐보다가 청년들 틈에 있는 오돌매와 눈이 딱 마주쳤다. 곱사등이 오돌매였다. 뭔 일이래? 곱사등이가 말을 걸어오면 어떡해? 금릉은 질겁하고 장옷을 눈 밑까지 끌어올려 얼굴을 가렸다. 얼른 수창사를 벗어났다. 몇 발짝 못 가서 퍼득 깨달아지는 게 있었다. 오늘 황량한 큰시장에서 돌아오는 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어릴 때 큰시장에서 자랐지 않았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대청에 앉은 쪽은 죄다 장사를 해서 돈을 벌었던 어른들이고, 아래채의 청년들은 요즘 큰시장에서 장사하는 이들이었다. 며칠 전 야상옥에서 긴밀히 논의를 하던 일인 상인들, 수창사에 모인 대구 상인들. 갑자기 금릉은 머릿속에 하얘진다. 곧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아. 불안감에 젖으면서도 금릉은 손바닥에 침향가루를 붓는다. 검고 보드라운 가루에서 향긋한 냄새가 피어오른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읍성도 무너뜨렸으니 더한 것도 하지 않을까? 금릉은 침향가루를 찍어 혀에 댄다. 단맛이 혀끝에 묻는다. 왠지 그때가 그립다. 금릉이 열세 살, 기루에서 처음 머리를 올리던 날이었다. 석재 선생이 곁에 있던 농산 아주머니에게 먹을 갈게 했다. 술상에도 그릇을 다 걷어내라고 한 뒤, 상 위에 침향가루를 뿌렸다. 금릉이라 했니? 발자취가 남지 않게 걸으면 상으로 너에게 글 한 폭을 써주마. 금릉은 치마를 걷어 허리춤에 안고 침향가루 위를 사뿐히 걸었다. 達成須作隴西看(달성수작농서간, 달성을 마땅히 농서로 보리라.) 그날 석재가 써 준 글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 옛날 앵무라 불리는 전설적인 기생에게 어느 선비가 준 시를 석재가 가져온 거였다. 달성은 대구를 말하고, 농서는 앵무새가 살고 있는 곳을 뜻한다. 그러니까 금릉에게 지금의 앵무인 염농산의 뒤를 잇는 명기가 되어라는 소리였다. 곁에 앉은 농산 아주머니가 수줍게 웃었다. 기루가 없어지면 앵무는 어디로 날아가지? 금릉은 눈 밑이 뜨거워진다.

2017-04-19 15:13:39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엄창석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11>-엄창석

금릉은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는다. 석유램프를 끄고 이불 위에 쓰러진다. 몸이 부르르 떨린다. 백짓장 같은 게이샤들의 흰 얼굴이 떠오른다. 그녀들에게 유곽으로 보내겠다고 윽박지르던 박중양의 음성도. 그 말을 들은 게이샤들의 표정이 어떠했지? 노래를 부르듯이, 하이 하이, 어쩜 그렇게 수긍할 수 있을까? 무릎을 꿇고 엉덩이를 까닥거리며 말이야. 히로시마에서 부산을 거쳐 대구로 왔다던가. 기껏 창기짓을 하다가 게이샤처럼 꾸몄겠지. 그런데도 그녀들의 가벼운 응수에는 묵과할 수 없는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금릉은 게이샤들의 부드러운 자신감이 무서웠다. 성이 무너지고 게이샤들이 끊임없이 몰려온다면 어떻게 되지? 허벅지에 착 달라붙는 기모노. 큰 목단 꽃잎과 자잘한 벚꽃으로 어우러진 무늬가 어깨에서 엉덩이까지 그려진 비단옷. 복부를 감고는 등 뒤로 큰 매듭을 지은 황금빛 오비도 여간 요염하고 세련되지 않아. 우리 옷은 촌스러워. 펑퍼짐한 치마에 괴죄죄한 저고리라니…… 언제부터 눈(目)이 이렇게 바뀌었을까? 구역질났던 게이샤의 모습이 언제부터 요염하게 보였을까? 금릉은 자신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침부터 날이 끄느름하다. 조금 열린 문틈으로 초겨울 찬 공기가 들어온다. 금릉은 경대 앞에 앉아 거울을 들여다본다. 이즘 들어 얼굴에 뾰루지가 돋는 게 화장을 두텁게 해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장에 나가볼 참이다. 아까 아침밥을 먹을 때 앵무 아주머니가 시장에 가서『혈의 누』란 신간 소설이 나왔으면 사달라고 부탁했다. 늦가을 대시에는 책을 파는 상인(서괘, 書儈)들이 심심찮게 다녔다. 평소 오일장에도 책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오지만, 가을 대시에는 신간이나 중국책까지 어렵잖게 살 수 있었다. 겨울은 아랫목에서 책 읽기가 그만인 계절이다. 앵무 아주머니는 책을 좋아했다. 마루에 앉아 가을볕을 받으며 책을 읽을 땐 불러도 모를 판이었다. 앵무 아주머니의 이름은 염농산이다. 은퇴한 지 오래되었지만 관기 시절에는 수많은 선비들을 애태웠다고 한다. 영조임금 이후로 대구에 앵무라고 이름을 붙인 빼어난 기생이 전설처럼 이어져오는데 지금 염농산 아주머니가 전설의 마지막 분이다. 물론 언제 또 앵무가 나타날지 아무도 모른다. 염농산 아주머니는 황진이나 동인홍처럼 시를 잘 지었고 곧은 성품은 평양의 계월향이나 가산의 연홍에 견줄 만하다는 것이다. 금릉은 염농산의 시 몇 편을 알고 있었다. 남녀의 희롱에도 단아한 멋이 있고 그리움이나 분노에도 넘치지 않는 절제가 어려 있다고, 기루에 온 손님들에게 얘기를 들었다. "비가 오면 책을 꼭 품에 넣어야 한다." 우산을 들고 금릉이 대문을 나서는데 뒤에서 염농산이 한 마디 이른다. 예, 한 방울도 안 묻게 할 거예요, 대꾸하고 골목으로 나온다. 기루가 전동에 위치해 있어서, 큰시장으로 가려면 달서문(성의 서문)과 통하는 삼거리로 쪽을 택하거나 개천 쪽으로 가는 길을 택할 수 있다. 거기까지 가서 달서교를 건너야 한다. 달서교를 건너면 곧 큰시장이다. 그녀는 개천으로 방향을 잡는다. 대시가 열린 지 열흘이 되었는데도 개천 재방은 한산했다. 지난해만 해도 사람들이 많아 걷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큰시장에서 자리를 못 잡은 상인들이 개울 건너편까지 올라왔다. 갖가지 면포와 곰과 호랑이의 모피를 가져와서 파는 중국상인들도 부지기수였다. 올해는 그렇지 않았다. 개천 재방 위로 왕버들, 붉나무, 이팝나무들이 입을 떨구고 호젓하게 늘어서 있다. 상인들이 마소를 묶을 기둥으로 쓰려고 먼저 차지하겠다고 법석 떨던 나무들이었다. 달서교 가까이에 있는 느릅나무 한 그루에만 노새가 묶여 있다. 금릉은 달서교 앞 사거리에 서서, 멀리 서문을 바라본다. 곧게 뻗은 길 끝에 누각이 서 있다. 출입하는 사람들 사이로 둥근 성문도 시야에 들어온다. 무너지지 않았네. 금릉은 안도의 숨을 내쉰다. 집에서 개천 쪽으로 에둘러 온 것도 성곽을 보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어젯밤에 성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자꾸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이다. 한산한 대시와 무너진 성곽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왠지 관계가 있을 것 같으면서도 분명히 짚이지 않는다. 금릉은 열 살 무렵에 옷을 지어서 팔던 일을 기억했다. 내가 만든 무명옷이 인기가 많았어. 10승을 넘게 짠 옷은 없어서 못 팔았으니까. 다른 애들도 노리개 몇 개를 놓고 장사를 했잖아. 그것도 없는 애들은 자기 집 창고 돌쩌귀를 뽑아서 내다팔았지. 도시의 모든 사람들은 상인이 되었어. 술집은 밤새 홍등에 불을 켰고, 기루의 대문 앞에도 차례를 기다리는 돈 많은 중국 상인들이 뿜어대는 담배연기가 자옥했어. 큰시장으로 들어서는데 진눈깨비가 내린다. 금릉은 손을 내밀었다. 비에 섞인 눈송이가 손바닥에 떨어진다. 첫눈이야. 진눈깨비라 해도 기분이 좋았다. 사람들이 바쁘게 걸어가고 노점들이 천막을 친다. 그릇 장수들은 일어나지도 않고 등에 걸친 삿갓을 머리에 쓸 뿐이다. 금릉은 우산을 펴든다. "책 파는 사람 봤어요?" 금릉이 길가 벚나무 밑에서 진눈깨비를 피하는 사람에게 묻는다. "저 안쪽으로 가 봐요." "북후정까지요?" "아니 조금만 가봐." 허름한 상투잡이가 장옷을 걸친 금릉에게 음흉한 눈을 흘끔거린다. 장옷을 입었으니까 양반집 규수인가 싶다가도 왜색 우산을 쓴 것을 보고 금세 금릉의 신분을 알아챈 듯하다.

2017-04-17 15:26:52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엄창석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10> 엄창석

금릉은 방에 앉은 예닐곱 명의 사내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상 위에 넘치는 가지가지 안주와 술잔들도 무연했다. 남자들 사이에 있는 세 명의 게이샤만 유난히 도드라졌다. 가지런히 무릎을 모으고, 붉고 푸른 기모노의 비단자락이 바닥에 닿지 않도록 품에 안고 있는, 얼굴을 희게 분칠한 게이샤들. 사내들은 회의를 마치기가 아쉬운 듯 금릉의 노래 인사가 끝나자 다시 논의에 불을 지폈다. 게이샤들의 웃음이 걷히고 지루할 정도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금릉은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알 수 없었다. 대부분이 이십대였고, 많아야 서른을 갓 넘긴 젊은 사람들이었다. 이토, 이와세, 오쿠라, 이카에, 이런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 대구에 온 지가 2년 안팎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수만 명이 거주하는 이 도시가 황야로 보이는 듯, 마치 미지의 땅에 첫발을 내디딘 개척자처럼 야망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도시를 구획 짓는 방법에 몰두했다. 아마 그런 얘기를 나누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유곽부터 지으려고 북쪽 성곽을 먼저 헐었어. 거기에 흙이 많거든." 갑자기 누군가가 한어(韓語)로 불쑥 말했다. 당연히 일본인인 줄 알았던 터라 금릉은 깜짝 놀랐다. 말한 사람은 얼굴이 반듯하고 눈썹이 가지런한 신사였다. 그제야 그가 대구의 수장인 박중양인 것을 알았다. 금릉은 당황했다. 방 안에서 한어를 쓰는 이는 그녀뿐이니까. 그녀를 위해서 해준 말이니까. 유곽이 서면, 자네들 일자리가 생겨. 그가 금릉을 돌아보며 덧붙였다. 박중양은 이미 여악(女樂)을 폐지한 상태였다. 다른 도의 관찰사들은 관기를 거느리고 있었다. 각하, 감사합니다. 금릉은 가슴 옷깃에 손을 대고 머리를 숙였다. 박중양이 관기를 이끌고 연회를 연 것은 대구의 수장으로 부임했던 지난 1월, 한 차례뿐이었다. 금릉도 그 연회에 참석했었다. 금릉은 마당에서 ㄷ자로 둘러싼 방들을 둘러본다. 방들은 모두 불이 꺼져 있다. 조금 전에 밖으로 나왔던 앵무 아주머니의 방도 어둠에 섞여 있다. 오른편 끝 방만 완자 문살에 불이 비치고 있었다. 금릉을 발소리를 죽이고 뜰 한가운데 있는 화단으로 다가간다. 키 작은 석류나무 가지가, 앞으로 내민 그녀의 손을 가볍게 찌른다. 국화 향기가 은은하게 코를 자극한다. 화단 가운데에 작은 연못이 있다. 바위와 화강석으로 둑을 만든 작은 연못이다. 금릉은 낮에 연못에 단풍이 떨어져 있는 걸 보았다. 추수(秋水)가 너무 청명해서 단풍잎 그림자가 바닥에 고스란히 어려 있었다. 각하, 감사합니다. 금릉은 그날 야상옥에서 했던 말을 입속으로 되뇐다. 수치스러웠다. 유곽에 일자리가 난다는 걸 감사해 하다니. 지난 6월이었다. 관찰부 앞, 평소 천연두를 관리하는 종계소(種繼所)로 가서 성병 검사를 했다. 주사를 맞고 그곳에 육안검사까지 받았어. 일인들은 우리를 창기 취급했지. 우린 관에 속한 예기(藝妓)야. 시를 짓고 노래와 악기를 연주했잖아. 읍성이 없어지면 경부선 철도로 들어온 일인들이 삽시간에 도심을 차지할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금릉에게 읍성이 무너지는 것은, 성병 검사와 유곽이 생기는 것을 뜻했다. 예기의 생명이 끝나는 것도. 내년 4월까지 남은 성곽을 모두 헐게 될 걸세. 박중양은 금릉에게 가야금을 타라고 명령했다. 가야금을 품은 금릉은 반듯하고 차가운 그의 얼굴에서 지긋이 눈이 감기는 것을 보았다. 관찰사가 관기에게 내리는 마지막 명령이라고 여기는 걸까. 아니는 향수를 젖고 싶은 걸까. 가야금을 타는 게 아니라 노래를 부르게 했다면 목젖이 열리지 않았을 거야. 금릉은 다행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슨 곡을 뜯었는지, 소리가 울리지 않고 자꾸 현 아래로 가라앉았다. 곡이 끝나고 일인들이 박수를 쳤지만 금릉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술상 건너에서 게이샤가 옆구리에 가벼운 율동을 넣으며 샤미센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목이 길고 소리통이 동그란 일본 악기였다. 방 안이 갑자기 밝아졌다. 빠르고 활달한 박자가 남자들이 든 투명한 유리잔 사이로 흘러 다녔다. 샤미센 소리가 얼마나 발랄한지. 갑자기 가야금이 궁색하게 느껴졌다. 이건 정말 구닥다리야. 소리도 청승스럽고. 따분하게 가슴이나 문지르잖아. 금릉은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지만, 일본 요릿집의 내부마저 아름답게 보였다. 원형의 창문, 작은 나무기둥들, 햇살이 비치는 방문 사이의 엔가와. 입술이 빨간 게이샤 옆에는 방 속의 방인 도코노마(장식방)가 있었다. 게이샤는 주걱처럼 생긴 도구로 샤미센 현을 빠르게 뜯고 있었다. 남자들이 화려한 연주자를 바라보았다. 술잔을 들고 내리는 모든 동작이 샤미센 경쾌한 소리에 오히려 압도되어, 남자들과 다른 게이샤들까지 침묵에 빠져들었다. 연주가 끝났다. 아까와 다르게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대신 술자리는 무척 활기찼다. 사내들이 큰 목소리로 노래를 했고, 게이샤들을 희롱했다. 금릉에게도 청주가 몇 잔 돌아왔다. 박중양은 일본어로만 말했다. 그가 일인들과 섞여선지, 아니면 그녀가 술에 취해선지, 누가 박중양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그럴 때 금릉 바로 옆에서 한어와 왜어가 섞인 취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야, 너희들도 유우카쿠(유곽)가 필요할 거야." 박중양이 일본 기녀들에게 하는 소리였다.

2017-04-12 12:14:46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엄창석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9>-엄창석

새들의 저녁 제 3 장 호롱 불빛이 창호지에 부딪혀 잘게 바서졌다. 그녀는 손을 다른 쪽 팔꿈치에 대고서 창호지 위에 오리 그림자를 만든다. 호롱불이 너울대자 오리의 목이 휘청 구부러진다. 셋이 그림자놀이를 할 때가 언제였더라. 금릉은 떠나간 홍란과 자운영이 곁에 있는 듯 돌아본다. 홍란은 개를 만드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두 귀가 쫑긋 서고 혀를 내밀기도 했다. 자운영은 일본 인형과 젓가락을 사용해서 코끼리나 기린 같은 동물을 창호지에 올려놓았다. 취한 남자들이 비틀대며 대문을 빠져나가면 넓은 기와집은 이상스럽게 고요에 싸였다. 셋은 침실에서 그런 놀이를 했다. 그림자놀이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개나 오리, 코끼리가 대신해주니까. 술잔을 몰래 입술에만 축이던 홍란은 아기를 산에 묻고 돌아오지 않았다. 홍란은 이곳을 사뭇 떠났다. 기적(妓籍)이 없어져서 가능했지만 원하는 건 아니었다. 자운영은 병이 들어 나오지 못한다. 그들이 떠나고 혼자 남은 밤은 어색하다. 창호지에 오리 한 마리가 긴 목을 늘어뜨리다 사라진다. 금릉은 경대 옆에 세워둔 가야금을 당겨 무릎에 누인다. 오동나무 소리통을 쓰다듬다가 왼손으로 줄을 누르고 다른 손으로 튕긴다. 호롱 불빛으로 열두 가닥 현의 그림자가 몸통 위에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그림자가 흔들리며 영산회상 두어 마디가 풀려나온다. 소리는 그림자 같아, 금릉이 중얼거린다. 가야금 선율은 듣는 이의 귀가 아니라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자가 창호지에 스며들듯이. 그 소리는 경쾌한 휘모리라 해도 기쁘다거나 유쾌하게 들리지 않는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결이 현에서 피어난다. 슬프다와 안쓰럽다 사이에서 모호하게 떠도는, 자리 잡지 못하는 감정이 소리와 만나는 것이다. 그녀에게 가야금을 가르쳐 준 이는 석재였다. "현침 쪽 줄을 써라. 단단한 줄을 써야 감정이 자제된다." 현침은 몸통의 윗부분에서 줄을 장착하는 받침대이다. 받침대에 가까울수록 줄은 단단하다. 석재는 금릉에게 감정을 주체 못하고 흐느적대듯 줄을 튕기지 말라고 가르쳤다. 금릉은 진양조에서 중모리로, 휘모리로 점차 빠르게 현을 뜯는다. 울림판이 격하게 요동친다. 하지만 퍼져나간 소리는 정말 그림자처럼 문에 닿아 조금은 밖으로 새어나가고 나머지는 창호지에 머문다. 그래서 홍란이 생각나고 자운영이 생각난다. 그녀들이 사무쳤지만 보고 싶다든가 안타깝다든가 하는 마음은 아니다. 그냥 그런 것이다. 창호지에 어리는 가야금 소리처럼 그냥 그런 것이다. 금릉은 다시 오른손가락을 거슬러 가야금을 뜯는다. "애란아, 설루가 아직 안 왔니?" 언제 마당으로 나왔을까.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한때 그녀들의 행수였던 앵무였다. 쉰에 가까운 나이인데도 여전히 몸태가 가냘프고 목소리도 청아하다. 설루는 저녁나절에 일인 요릿집으로 불러갔다. 새벽에야 들어올지 알 수 없다. "예, 걱정 마세요. 곧 올 거예요." 앵무는, 금릉이 기루에 들어온 지 다섯 해가 지났는데도 곧잘 옛 이름을 부른다. 문밖에서 '애란아' 부르는 아이 적 이름이 이날따라 반갑고도 왠지 무참하다. 언제 기루에 들어왔지? 그녀는 엄마와 달서교 아래서 빨래를 하고 물동이를 나르던 무렵을 기억한다. 십자기와 성당에 다니던 엄마가 그녀를 해성재로 데리고 간 날, 머루색 옷을 입은 수녀 앞에서 "얘, 물레질 솜씨가 여간 아니에요. 수녀님께 손 좀 보여드려. 얘 손가락을 거쳐 물레로 돌아오면 목화가 금방 실이 돼요." 하며 학교에 넣어줄 것을 부탁했다. 부끄럽게도 옷 짜는 게 공부하는 거와 관계있다고 믿었는지. 그런데 관계가 있었다. 해성재에서 배운 것이 셈과 음악이었으니까. 여러 가지 도형의 넓이를 계산했지. 십자기와 성모당의 넓이를 셈할 때 물레로 뽑은 실을 가져갔으니까. 어느 날은 읍성을 한 바퀴 돌며 성안의 넓이를 계산한 적도 있었다. 다섯 가닥 선에 음의 높낮이를 표기한 서양 악보에 대해서는 그녀만큼 친숙한 아이가 없었다. 베틀을 짜고 풀을 먹이고 하는 과정이 모두 선 위에서 이루지는 것이니까. 우리는 모든 게 두루뭉술하지만 서양은 모든 게 자로 잰 듯 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기와 성당만 불타지 않았으면 해성재를 계속 다니지 않았을까. 지진이 심하게 일어나던 날 성모당 안의 제대에서 촛대가 넘어졌고 불이 났다. 십자가 모양으로 기와를 얹은 아름다운 성모당이 잿더미가 되자, 오랫동안 해성재는 문을 닫은 것이다. 그러고는 교방으로 왔지. 엄마는 그때 왜 나를 교방에다 밀어 넣었을까. 그녀는 완자문을 열고 살며시 마당으로 나왔다. 트인입구(ㄷ) 모양의 집. 달빛 한 점 보이 않는다. 칠흑 속에 추녀의 비장이 마당으로 코를 내밀고 있다. 차차 어둠이 눈에 익자 하늘에 기와 선이 그어져 있는 게 어슴푸레하게 보인다. 그녀는 용마루 위의 어둠을 한참 응시한다. 그날 저곳을 넘어온 소리가 있었다. 쿵쿵쿵, 어디선가 가야금 소리자락이 건너오는 것이라 여겼던가. 우르릉, 우르릉. 1현의 저음부가 울고 있는 소리. 우르릉, 우르릉. 소리가 건너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런데도 밤이 되면 그 소리가 다시 용마루를 넘어올 것 같다. 술상 앞에서도, 잠결에서도, 측간에서도 곧 들릴 것 같은 예감에 몸을 떨었다. 분명한 것은 머지않아 또 들릴 거라는 점이었다. 이번에는 더 가까이서, 소리만 아니라 우레처럼 땅을 흔들며 건너오겠지. 그러면서도 그것이 가야금 저음부의 소리와 유사할 거라는 생각은 고치지 않는다. 그 소리가 나고 나흘 뒤 금릉은 일인 요릿집인 야상옥으로 갔다. 도로를 개설하고 성을 허무는 회의를 마친 뒤, 금릉을 부른 것이다. 그녀가 가야금을 안고 야상옥 방문을 열었을 때 이미 기모노를 입은 게이샤들이 앉아 있었다. 한인은 그녀가 혼자였다.

2017-04-10 08:29:47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엄창석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 <8>-엄창석

"너 오면서 봤냐? 성이 무너졌어. 여기선 안 보이지. 밤새 도시 뒤통수를 까버리고 부산으로 튀었어." 17살 때 헤어진 장상만은 어깨가 벌어지고 고수머리에 턱수염도 꼬불꼬불한 힘깨나 쓰는 장정으로 변해있었다. 계승과 한참 얼싸안고는 그간의 안부를 주고받은 뒤, 참을 수 없다는 듯 북문에 갔다 오는 길이라면서 성 얘기를 꺼냈다. "그래?" 계승은 모른 척했다. 눈을 부리부리 뜬 장상만에게 '나도 밤새도록 성을 헐었어' 하고 실토할 수 없었다. "곧 대시가 열리잖아. 모두들 장사 준비한다고 정신없는 틈에 그걸 헐어버리네." 씹어뱉듯이 던지는 장상만의 말에 계승은 왜 그짓 하냐고 짐짓 동조하는 투로 응대했다. "돈 때문이지. 지금 대구에 와 있는 일본놈들은 전부 돈 벌 기회만 노리지. 벌써 북문 밖은 거의가 일본놈 땅이야. 이제 성을 없애고 도시를 다 차지할 참이지." 계승은 아침부터 보았던 북쪽 성벽 바깥으로 늘어선 일인 상점들을 떠올렸다. 장상만이 수년 만에 친구와 만났다는 걸 그제야 깨달은 듯 "우리 술이나 한잔하자."하고 웃다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망경루 서북쪽에 대야동 있잖아? 거기 저지대 말이야. 이놈들이 거기 유곽을 지으려고 성을 허는 거야. 성 헐은 토석으로 그걸 메워서. 그 땅 수천 평이 왜놈 소유거든." "유우카쿠를?" 계승은 유곽을 잘 알았다. 이때만 해도 초량 아미산에 있는 유곽은 특이한 장소였다. 일인 인부들이 일주일에 한번 있는 목욕을 기다리는 것도 유곽에 가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돈 버는 데는 물과 여자만 한 게 없다지만 이건 정말 혀를 내두르게 하네." 성을 부순 게 상권을 넓히기 위해서라는 건지 유곽을 짓기 위해서라는 건지 상만의 말은 애매했다. 그러나 따져보면 같은 소리였다. 성을 허는 것도, 그래서 유곽을 짓는 것도 돈을 버는 방법이니까. 상만이 종이를 가져와 "지금 왜놈 상점이 어디까지 침범해 있느냐면 말이지." 하고 붓으로 대구 지형을 그릴 때였다. 가게 앞에 무엇이 얼씬거리는 것 같았다. 계승이 뒤를 돌아보다 소스라쳤다. 곱사등이였다. 망경루부터 자신을 뒤쫓고 있었던 곱사등이. 얼핏 다리가 없고 머리만 있는 사람 같았다. 키가 앉아 있는 계승의 턱이 미쳤다. 검고 팽팽한 얼굴에 광대뼈가 불거져 살쾡이 같은 인상을 풍겼다. 자신을 뒤쫓지 않았다 해도 마주보기가 꺼려지는 얼굴이었다. "돌매야, 아까 보이지 않더니 어디 갔다 왔어?" 계승은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 곱사등이가 자신이 성을 무너뜨린 인부 중 하나란 걸 알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뒤를 밟을 리가 없었다. "임...계승입니다. 달배(월배, 月背)가 고향이에요. 예전에 사문진과 큰시장을 왔다다 하며 장사했죠. 잠시 나갔다가 돌아왔습니다." 계승은 일어나 허리를 굽혀서, 친근한 목소리로 자신이 무너진 성과 무관하다는 걸 넌지시 강조하며 인사를 했다. 곱사등이가 비웃듯 코를 벌렁거리며 "난 오돌매요." 커다란 손을 흔들고 옆자리에 앉았다. 상만은 오돌매를 보지도 않고 붓으로 성을 그린 뒤에 전체적으로 대각선을 그었다. "망경루(북장대)와 남장대를 이은 선에서 오른쪽이 죄다 일인 지역이야. 애들 빨아먹는 눈깔사탕부터 종이, 연필, 석유, 담배, 벽돌... 뭐 닥치는 대로 취급해. 러시아 전쟁 후엔 군용물자까지 가져와 우리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식아, 연초 가져와." 상만이 심부름꾼 아이를 불렀다. 아이가 연초 봉지를 가져오자 일어나서 곰방대에 잎담배를 재웠다. 장상만이 자리를 비운 틈에 곱사등이가 계승의 소매자락을 거칠게 당기며 귀엣말을 속삭였다. "난 당신이 성을 무너뜨렸다는 걸 알아." 계승은 상체가 휘청일 만큼 놀랐다. 짐작은 했지만 쇠로 바닥을 긁는 듯한 음성 때문이었다. 자신은 그냥 품을 팔았던 거다. 성을 부수든 성을 세우든, 기차비를 안내고 대구 오는 길을 택했을 뿐이었다. 계승은 침착하려고 애를 썼다. 왜 그런지 곱사등이는 곰방대를 돌리는 장상만에게 아무일도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계승만 들어라는 듯 묘한 말을 했다. "처음 성을 허물려고 인부를 구하던 칠성동 최가가 칼에 맞아 죽었소. 누가 찔렀는지 알 수 없소. 아직 범인이 잡히지 않았거든. 경무관이 나서서 수색을 지휘하고 있지만 대놓고 하지 않아. 야단을 부릴수록 관심이 커지지 않소? 살해 이유가 분명하거든. 흥, 뭔 말인지 알겠소? 성은 조금 무너졌지만 부민들은 아무도 허락하지 않았어." 곱사등이가 곰방대를 힘차게 빨았다. 그때 심부름꾼 아이가 상만에게 사문진에서 면포가 도착했다고 알렸다. 밖에 말 한 필이 수레를 끌고 오는 게 보였다. 저녁에 다시 만나자며 상만이 일어섰다. 곱사등이가 손바닥처럼 면상을 위로 젖히며 내뱉었다. "이제 전쟁이야. 끝까지 버틸 거야." 곱사등이의 말이 뭘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성을 허물었던 자를 끝까지 찾아다니겠다는 건지, 성을 허문 일본 상인 세력을 막겠다는 건지. 아무튼 계승은 끔찍한 쇳소리를 내는 곱사등이에게 겁 먹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손으로 곱사등이의 튀어나온 등을 툭 치며 지껄였다. "항아리가 들어 있는지 옷을 들쳐보고 싶네." 오돌매의 눈이 희번뜩였다. 상만이 왜 그러냐는 투로 계승의 어께에 팔을 둘렀다. 계승이 과장스럽게 미안하다는 시늉을 했다. 상만이 "다 좋은 사람이야. 저녁에 셋이서 술 한잔 하자고."하고 말했고 오돌매는 벌서 마차에 가서 이불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계승은 얼른 가계를 빠져나왔다. 곱사등이가 뒤쫓지 않을 것 같았다. 그것만 해도 숨 쉴 만했다. 계승은 시장 안으로 들어갈수록 장상만의 말을 실감했다. 예전과 많이 달랐다. 대시가 코앞인데도 빈터가 듬성듬성 있었고 가설 점포를 만드는 기색도 없었다. 시장 초입만 분주했던가 보았다. 무수한 마필을 먹일 짚이 준비된 것 같지도 않았고, 수만 명 상인들이 가져올 물건을 놓을 곳조차 없어보였다. 그만큼 일본 상설 점포들이 평시에 물건을 소화해버린 셈이었다. 철도로 운반하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시장도, 도시도, 7년 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장상만이 종이에 그린 그림이 이날 계승이 다녀본 거리를 확연히 느끼게 해주었다. 성 안팎과 성 둘레를 아울러 둘러보지 않았더라도 넉넉히 알 수 있었다. 성의 북서쪽 모퉁이인 망경루를 가운데 두고 오른쪽엔 일인이 왼쪽인 한인이 대치하고 있는 장면이 아닌가. 부채를 펴듯이 상황은 선명했다. 일인이 고작 2천명에 불과하다. 그 수가 한인에 비해 열의 하나인 셈일 테지만 힘은 대단해서 도시를 절반으로 쪼개고 있었다. 이제 전쟁이야. 곱사등이의 말이 생각났다. 곱사등이가 계승에게가 아니라 대립하는 상권을 두고 내뱉은 소리인지 모른다. 이제 성을 무너뜨렸으니까 급격하게 성안을 잠식하겠지. 곧 유곽도 세우겠고. 계승은 북문 밖에 있던 왜식 여관과 화려한 요리집과 상점들이 성벽을 부수고 들어오는 광경을 상상했다. 전쟁터의 말처럼 밀려오는 왜식 건물들, 저 나라 인종들, 풍습들. 성안의 기와집과 아직도 수천 채가 남은 도시 서쪽의 초가들이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계승은 이것이 돈의 힘으로만 가능할까 하는 의아심이 들었다. 성을 무너뜨리고 유곽을 세우는 힘의 배후가 무엇인지 생각하다 애란의 집 근처에 이르렀다. 시장 후미까지 왔지만 애란의 집이 보이지 않았다. 시장 뒤가 그렇듯이 꼴사나운 누옥 몇 채가 끝난 뒤로 집 같은 집이 없었다. 초가 한두 채가 골격만 남은 처마를 땅에 처박고 있을 뿐이었다. 그 중 하나가 애란의 집 같기도 했다. 몇 개의 기둥이 구릉에 꽂혀 있고, 부서진 낙엽이 오후 햇살을 안고 몰려다녔다. 넓은 구릉에는 푸성귀도 많이 자라지 않아 황폐해보였다. 계승은 돌아서서 담배를 물고, 성냥이나 아끼려고 아궁이에 불을 넣은 시장 끝 집으로 갔다. "저긴 뭐하는 데죠?" 갑작스런 예감이 있어 그렇게 물었다. "뭐 소를 잡지요. 저기서." 늙은 여자가 계승에게 짚에 붙은 불씨를 건네며 퉁명하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군데군데 흙빛이 붉었다. "종종 사람도 잡아요. 화적인지 의병인지 모르지만, 장날 되면 그래." 애란의 집 앞 빈터가 사형장이 되었다는 소리였다.

2017-04-05 10: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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