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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부문 당선소감]노병의 증언/김길영

나에게도 상복이 돌아왔다.논픽션부문과 시 부문까지 겹상을 받고 보니 여기저기 자랑하고픈 생각이 앞선다. 나이 들어서 상을 받는 다는 게 쑥스럽기도 하지만 한편 기쁘기도 하다. 글쓰기 도반뿐만 아니라 그동안 소원했던 친척에게까지도 알리고 말았다. 칭찬이라는 게 어른 아이 막론하고 좋은 것이다.나는 늦깎이 문학도다. 지난 9년 동안 여러 선생님을 찾아다니며 글 동냥하듯 시와 수필을 배웠다. 그것도 부족하여 지금 나는 문예창작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이 상으로 인해 지금까지의 글쓰기 결과물을 얻은 것 같아 기쁘고 감개가 무량하다.매일신문시니어문학상이 벌써 4회째를 맞는다. 대한민국 시니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제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시니어문학상에 참여할 수 있는 연령층은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태어났거나 6.25전후 세대들이다. 우리들은 광복을 맞고 6.25전쟁을 겪었으며 4.19와 5.16, 12.12 같은 불행한 사건들이 우리 곁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IMF라는 국가부도 사태를 겪으면서도 대한민국을 여기까지 끌어올린 세대들이다. 이제 매일신문사에서 큰 판을 벌여 놓았다. 굽은 허리를 쭉 펴고 희미해진 정신을 가다듬어 실컷 즐겨볼 일만 남았다.나는 오늘 이 상에 만족하지 않겠다. 늦깎이로 시작한 글쓰기인 만큼 다음에도 다른 장르에 또 도전하여 문학성 있는 작품으로 알찬 열매를 거두고 싶다.이 기쁨을 시와 수필을 지도해주신 여러 선생님과 수필사랑문학회, 텃밭시인학교, 푸른시창작원, 경희미디어문예창작과 교수님과 학우들,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나누고자 한다.대한민국시니어들에게 문학상을 제정해 주신 매일신문사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면서 졸작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여러분께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2018-11-12 11:52:34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부문 당선작]노병의 증언/김길영

이 글은 예비역 하사 이규락의 6.25전쟁 참전기(參戰記)이다. 필자에게 수차례 들려준 이야기를 종합하여 「노병의 증언」이란 제목을 붙이고 글을 완성해서 그에게 전달하려 했으나 연락이 끊겼다. 6.25전쟁 발발 65년 만에 '판문점선언'으로 종전이 눈앞에 온듯하다. 전쟁의 참상이 어떠했는지 이 시점에 알리고 싶다.◆군 입대내가 군에 입대한 것은 경주공업중학교 3학년 때였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중앙학련회 간부들이 내려와 학련회 중심으로 학도병 입영을 독려했다. 나는 학급장이었고 그 땐 학생들도 좌우로 갈라져 갈등을 빚을 때였다. 내가 학도병을 지원하지 않고 징집명령에 따라 입영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앞서 학도병으로 입영한 경주지역 학생들이 안강전투에 참전하여 참패를 당했다. 군인은 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시상황이 워낙 다급한 나머지 사격연습 몇 번 시켜서 안강전투에 투입시켰던 것이다. 전투에 참여한 학도병들이 안강전투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거의 없었다.50년 8월 28일. 나는 할머니를 비롯한 부모형제, 그리고 신혼의 아내와 헤어져 집결지인 경주향교로 갔다. 경주향교강당에는 경주중학생과 경주공업중학생, 경주문화중학생 등, 수십 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얼핏 보면 학도병들의 출정식 같았다. 이때 징집에 응해서 작별인사를 나눈다는 것은 사지로 가는 마지막 인사나 다름없었다. 그러기에 보내는 사람이나 떠나는 사람 모두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먼 산을 바라만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주먹밥 한 덩이씩 받아먹고 트럭에 분승하여 대구로 갔다. 초행길인 대구는 어디가 어딘지 잘 몰라서 마치 전쟁터로 가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집결지가 대구남산초등학교였다. 대부분 학생들이었는데, 모인 숫자가 수백 명은 되는 것 같았다. 점호를 마친 후에 분산 배치되었다. 경주에서 징집되어 온 우리들은 동인로터리 부근에 있는 제사공장(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가다구라'제사공장)에 수용되었다. 그곳이 임시 훈련소였다. 군대 조직을 편성하고 내무반도 배치 받았다. 교복에서 군복으로 갈아입고 보니 군인이 다된 기분이었다. 내무반에서 내무규율이나 근무요령 등 기초교육만 받고 밤 10시경 소등과 동시에 취침에 들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앞으로 닥쳐올 일들이 소름끼치도록 무서웠기 때문이다. 전투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어느 전선에 배치될 것인지 두려움뿐이었다. 안강전투에서 맥없이 죽어간 학도병들처럼 나도 어느 산천에 묻힐지 모르는 불안감이 잠을 설치게 했다. 앞서 학도병으로 입대한 선배들의 많은 희생을 본 터라 내가 적군과 대치상황에서 총을 겨눠 적을 사살하고 내 목숨을 지켜낼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생각보다 밤은 길었다.◆영천전투50년 8월 29일. 아침 5시에 나는 기상나팔소리를 들었다. 한 번도 긴장상태에서 살아보지 않은 나는 흥분이 되어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자 신체검사를 받고 하루를 보냈다. 그 다음 날은 왼 종일 제식훈련만 받았다. 9월 1일이 되어서야 봉덕동에 있던 국방군 6연대 사격장에서 M1소총과 실탄을 지급 받고 3일 동안 사격훈련을 받았다.50년 9월 4일. 한 밤중에 출동명령이 떨어졌다. 우리 부대는 대구역에서 기차를 탔다. 밤중에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다. 캄캄한 어둠을 헤치고 기차선로를 확인해보았다. 복선이 아닌 걸로 봐서 경주방향으로 간다고 지레짐작했다. 하양역에서 내려 어느 과수원창고에서 하룻밤을 세우고 아침밥을 먹었다.50년 9월 5일. 하양에서 금호 소재지를 지나 일본군이 경비행기 저장방카로 사용하던 격납고에 분산 배치되었다. 하루 종일 폭풍우가 몰아쳤다. 이틀간 꼼짝하지 않고 대기하면서 출전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개 너머 영천 쪽에서는 포탄 터지는 소리와 총성이 요란했다. 비가 오는 밤하늘엔 전폭기가 떠서 요동을 치고 있었다.50년 9월 6일 새벽. 8사단 16연대는 영천시가지 탈환작전에 돌입했다. 시가지는 모두 피난을 떠난 뒤여서 인기척 없이 주인 잃은 개들만 총소리에 놀라 이리저리 뛰어 다녔다. 우리는 첫 전투로 소규모의 적을 만나 접전 끝에 격퇴시키는 데 성공했다. 시내 곳곳에 인민군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아직 목숨이 붙어있는 부상자들은 여기저기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쳤다. 저항하던 인민군 잔병들은 보현산 방향으로 물러갔다. 영천 시내를 탈환한 여세를 몰아 고경초등학교 뒷산에 집결해서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2018-11-12 11:52:09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시니어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 ]씨름 혹은 싸움-정경용

딸을 툭! 툭! 건드렸다. "하지마!" 귀찮아 하던 딸이 곧 일어나서 나에게 달려들었다. 엎어놓고 팔을 비틀고 다리를 꺾고 어깨와 등을 흠씬 패고 나서 씩씩거리며 보일듯 말 듯한 웃음을 보였다. 한바탕 장난질이 끝나고 나서 나는 딸을 꼭 껴안았다.미용실을 경영하는 바쁜 시간 속에서 초등학교 4학년의 아들과 새로 입학한 딸의 표정에 나는 민감하게 대처를 하였다.밖에서 싸움을 한 날이나 고민이 있어 보이는 날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장만하였다. 저녁상을 차리는 동안 햄이나 계란말이 또는 고기 반찬을 지지고 볶았다. 굳었던 표정이 밝아졌다. 밥을 먹으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하여 물어보면 줄줄 풀어 놓았다.오늘은 딸이 지능이 모자라는 저능아 짝꿍에 대하여 하소연을 늘어 놓았다."짝꿍이 화장실을 갈적마다 같이 갔어요. 이쪽인데 자꾸 저쪽으로 갔어요. 왜 그렇게 고집이 센지, 말도 못 알아듣는 것인지, 그래도 다른 때는 손잡고 가면 잘 따라왔는데 오늘은 그만 옷에다 똥을 쌌어요"딸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딸은 이상한 행동을 하는 짝꿍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짝을 바꾸고 싶다고 하였다. 학교에 가서 선생님에게 말해보겠다고 하면서 볼에다 뽀뽀를 해주었다. 짝꿍을 보살피려면 참 힘들겠지만 나보다 약한 친구를 도와주는 것은 공부보다 더 중요하다고 위로해주었다.미용실 손님에 치이고 살림에 부대끼다보니 몸이 많이 지쳤다. 사지가 쑤시고 붓고 저렸다. 만만한 게 딸이었다. 초등하교 입학하기 전에는 허리나 등을 밟아 달라고 부탁하면 잘 해주었다. 딸은 점점 싫증과 부담을 느꼈고, 어느새 훌쩍 자라서 밟히는 나도 아팠다. 딸에게 밟히는 시원한 통증을 잊은 지 오래되었다.딸과 장난을 치다가 딸의 주먹질이 시원했다. 그 후 시원함을 느끼는 쾌감도 있었지만 바쁜 틈새의 오붓한 시간을 함께 하는 사랑의 표현으로 우리는 자주 장난을 하였다.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아들과 딸의 숙제를 들여다보고 나서 점포에 딸린 단칸방에 잠자리를 펴는데 딸이 갑자기 달려들어 나를 쓰러트렸다. 허우적거리는 동선을 그리며 이불 위에다 몸을 눕혔다. 나를 엎어놓고 등에 올라탔다. 팔을 뒤로 꺾어서 등에다 붙이고 자근자근 주물렀다. 주먹으로 어깨를 퉁퉁 치는 폼이 예사롭지 않았다. 다리를 꺾고 양 다리를 엑스 자로 어긋맞춰 지긋이 눌렀다."엄마! 시원해? 내가 엄마 안마해주려고 목욕관리사 아줌마가 손님에게 하는 것 찬찬히 봤어요. 엄마가 아프면 나에게 장난거는 것 다 알아요"딸이 엎드려 내 귀에 속삭였다. 속내를 들키고 말았다. 울도 담도 없는 난달 가게에서 제대로 거두지도 못하였다. 손님에게 매달려 매일 방치하다시피 할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 나돌며 동네 아이들을 때리고 툭하면 저보다 큰 애들하고 싸움을 하는 통에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어느날은 맞고 들어와서 훌쩍거렸다."울긴 왜 울고 다녀? 억울하면 때린 애 집에 가서 울어야지 가서 더 맞던지, 사과를 받던지, 네 선에서 해결하라구. 생각 좀 해봐 손님네 애들하고 싸움이나 하고 어떻게 장사를 하겠어"그렇게 막무가내인 줄만 알았는데 엄마를 읽을 줄 았았다.

2018-10-22 11:17:38

신송우 씨

[시니어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소감 ]신송우 '이름 짓기'

◆내가 선택하는 행복한 삶지하철을 타고 가는 중에 당선 소식을 접했다.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던 터라 지하철 바퀴 구르는 소리보다 더 가슴에서 쿵쾅 소리가 나는 듯 했다.중학교 때였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내 기행문이 교내 방송으로 나갔다. 그때부터 글쓰기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문학도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하지만 누구나 꿈을 꾼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일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문학도의 꿈을 접고 현실에 충실해야만 하였다.퇴직을 앞두고 고향 가는 길에 동생이 "형님! 퇴직하면 무엇 하며 지내시렵니까?" 그동안 학교 일에 전념하며 지내던 터라 "이제 좀 쉬어야지" 통상적인 대답으로 얼버무렸다. 그때부터 퇴직 후에 무엇을 하며 지낼 것인가, 고민이 시작되었다.이 세상을 등질 때까지 행복한 삶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에 용기 내어 늦깎이로 문학에 발을 들여놓았다.문학아카데미 개강식 날,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대부분 나보다는 젊은 사람들이라 놀라며 머뭇거리다 겨우 용기를 내어 뒷자리에 앉았다.문학 분야에 초보인 나는 그들에게 뒤질세라 강의 내용을 놓치지 않으려고 두 눈을 부릅뜨고 귀를 쫑긋 세웠다. 문학에서 나를 찾아보겠다는 마음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였다.지금까지 안전한 레일 위에서 앞만 보고 달려온 지하철과 같은 삶이었다면, 이제는 버스를 타고 부대끼며 전후, 좌우, 사방을 두루 살피면서 쉬지 않고 나아가리라.끝으로 부족한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과 매일신문사에 고개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글쓰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저를 아껴주신 분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 여기고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2018-10-08 10:39:45

[시니어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 ]이름짓기

며느리가 임신하였다는 기쁜 소식이 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이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였다. 며느리가 빙판길에서 넘어지면서 한 차례 실패가 있고 난 뒤라 너무 서두른다고 나무랐다. 내심으로는 손자를 얻는다는 반가움에 좋은 이름을 지어보려고 궁리를 하였다. 본관의 같은 항렬자에 부르기 쉽고 적기 쉬운 것으로 짓기로 하였다. 그리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이름을 지으려고 노력하였다.오래전 N 학교에 도서관을 신축하고 이름을 공모하였다. '한울'이라고 응모를 한 결과 그 이름이 채택되어 현판식을 했다. 그때 특정 종교 신자로부터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중학교 동기생들이 모여 산악회를 조직하고 이름을 지었다. 학교가 자리한 곳이 높은 산이기도 했고 높은 산을 오른다는 뜻으로 고산회(高山會)라고 지었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둘레길이나 공원을 산책하는 정도이니 어울리지 않는 명칭이 되고 말았다.학교 관리자가 되고 운동장 동편에 다목적 건물을 지었다. 개관을 앞두고 이름을 공모하였다. 고심 끝에 제출한 '미래관'이 채택되었다. 그곳을 가끔 지나가다 현판을 보며 학생들이 저마다 미래의 꿈을 갖고, 가꾸어 간다고 여기니 가슴이 뿌듯하였다.퇴직하고 건강을 챙기기 위하여 파크골프를 배웠다. 클럽에 가입하고 첫 모임을 했다. 임원에 선정되지 않았으나 클럽을 상징하는 이름을 '한마음'이라고 정하였다. 골프 회동 시 가끔 의견 충돌이 있을 때는 우리 클럽 이름이 뭐냐고 들먹이면 이내 수그러들기도 한다.내 이름에는 항렬자 외에 소나무 송자가 들어간다. 백부님께서 나무 목(木)에 귀족의 작위를 일컫는 공(公)을 합하여 만든 글자로 지었단다. 한학을 공부한 대구의 K 교육장은 나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란다. 그때마다 백부님에게 감사했다. 그렇지만 내 이름을 소개할 때 제대로 듣거나 쓰는 사람은 별로 없어 아쉬움이 있다.어릴 때 동네 여자 이름 끝 자가 대부분 숙, 순, 옥, 자였다. 그네들이 시집을 가더니 고상하고 아름다운 느낌이 나는 '보람' '아라' 등으로 이름을 지었다. 우리 반 출석부를 작성하다 깜짝 놀랐다. 이름이 '아라'인데 하필이면 성이 박씨가 아닌가. 그가 어른이 되었을 때 놀림감이 될까 염려가 되었다. 학생 어머니와 의논하여 개명 절차를 밟아 주었다. 그 학생의 어머니가 고맙다며 연신 고개를 조아리던 모습이 떠올랐다.아들 이름을 족보의 항렬자에 맞게 지었다. 가운데 한 글자만 짓다 보니 쉽사리 해결되었다. 딸 이름 짓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서 부르기 쉽고 쓰기 쉬운 이름으로 지었다.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의 일이다. 딸은 자기 반에 같은 이름이 셋이나 있다며 몇 날을 뽀로통했다. 시집을 가서 딸이 태어나자 직접 예쁜 이름을 지어 주었다.출산 예정일이 다가오자, 아들은 연일 독촉을 하였다. 지금까지 여러 이름을 짓는데 자부심을 가졌다. 막상 내 손자 이름을 짓는 일에는 선뜻 내키지 않았다. 평소에 본인의 사주와 맞는 이름에 복을 더하기 위하여 짓는다고 알고 있었던 터라, 너희 부부가 의논하여 짓든지 아니면 철학관을 방문하여 상담하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아들은 할아버지가 지어야 한다며 물러설 기미가 없었다.출산일은 수도꼭지 틀어 놓은 양동이에 물이 차오르듯 다가오는데 그럴듯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친구 중에는 이름을 이태나 늦게 지어 두 살이나 적은 이도 있었다. 이름을 짓겠다고 서점에 가서 작명에 관한 책을 모두 샀다. 산책을 하나하나 정독을 해봐도 기준이 제각각이었다. 읽은 책 내용의 공통점을 나 나름대로 정리하였다.먼저 본관에 돌림자가 같은 훌륭한 사람을 찾아보았다. 고심 끝에 선대에 훌륭하신 분의 이름으로 내정하고 여러 사람에게 자문했다. 모두의 긍정적인 반응에 힘입어 드디어 손자의 이름을 '신채호'라고 지었다.아들과 며느리를 집으로 불러 앉혔다. 이름을 짓게 된 연유를 차근차근 설명해주면서 그분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훌륭하게 키우라고 당부하였다. 아들과 며느리가 마주 보더니 이내 얼굴이 보름달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무거운 등짐을 내려놓았다. 손자가 자라서 반드시 이름값을 하리라 기대해 본다.신송우

2018-10-08 10:39:24

[시니어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소감 ]지심도 동백/류재홍

수필 – 류재홍 '지심도 동백' - 당선소감수필 밭에 이름을 올린 지 내년이면 십 년입니다. 돌이켜보면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 동안 해 놓은 게 별로 없습니다. 작가다운 프로 근성이 부족했다고 할까요. 아예 손 놓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치열하게 매달리지도 못했으니까요. 몸이 따라주지 못한 점도 있겠지만, 타성에 젖어버린 마음 탓이 더 크리라 봅니다.마냥 주저앉고 싶던 차에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공모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좀 망설였습니다. 내 주제에 무슨, 자괴감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때 책 한 권 내겠다며 덤벼들었던 '책 쓰기 포럼'의 열정이 떠올랐고, 다시금 그 맛을 보고 싶었습니다. 아니, 밑바닥까지 내려간 정신력을 끌어올릴 무언가가 절실했다고 봐야 더 옳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며칠을 글과 씨름했습니다.덕분에 일어설 힘을 얻었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수필다운 글에 매진하라는 채찍으로 여기겠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 보렵니다. 내 안의 틀을 깨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이 꿈이 한낱 욕심으로 끝나더라도 너그럽게 봐 주십사 미리 부탁드립니다.내 글의 근간이 되어준 가족과,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뭉친 여세주 교수님을 비롯한 수요반 문우들께 이 공을 돌립니다. 늘 아껴주시는 달구벌수필 선생님과도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시니어 문학상'을 제정한 매일신문사에 경의를 표합니다.

2018-10-02 05:00:00

[시니어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 ]지심도 동백/류재홍

지심도 동백류재홍 불현듯 눈을 떴습니다. 시계가 네 시를 막 지나고 있습니다.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지만,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엎치락뒤치락하다 결국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직 깜깜합니다. 창문을 열려다 밀려오는 바람에 놀라 얼른 닫고 맙니다. 봄이라지만, 아직은 바람이 차갑습니다. 양팔을 벌려가며 스트레칭을 합니다. 어떤 이는 글쓰기로 새벽을 밀어내고 누구는 독서로 하루를 연다고 하는데, 나는 이렇게 몸부터 풀어야 합니다. 한 번 망가진 몸은 좀체 돌아오지 않아서 어르고 달래가며 쓸 수밖에 없습니다.부부 동반으로 지심도에 가기로 한 날입니다. 낮부터 따뜻할 것이라는 일기예보에 남편이 봄옷을 꺼냅니다. 조금 이른 게 아닌가 싶지만, 모른 체했습니다. 일찌감치 세탁해서 넣어둔 겨울옷을 꺼내기도 싫었거니와, 추운 것보다 더운 걸 더 못 견디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남편은 집을 나서자마자 어깨를 웅크립니다. 차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버스 안을 아무리 훈훈하게 해 놓아도 자꾸만 웅숭그립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차는 쉼 없이 달려 거가대교 휴게소에 다다랐습니다. 모두 전망대로 올라간 틈을 타 휴게소에 있는 옷가게로 들어갔습니다. 오리털 조끼를 본 남편이 반색하며 입어봅니다. 시중보다 훨씬 비싼 값을 치르고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그가 조금은 낯설어 보입니다. 추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더니, 나이는 못 속이나 봅니다.지심도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하늘에서 본 섬 모양이 마음 심(心)을 닮아서 지심도라 한다는데 마음에 와닿지는 않습니다. 또 다른 이름인 동백섬이 더 정감 있게 다가옵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도 동백이었습니다. 어디서 그렇게 많이 왔는지 섬은 사람들로 만원입니다. 모두 봄바람에 신명이 나 있습니다. 우리도 콧노래를 부르며 둘레 길을 올랐습니다. 섬 전체를 둘러보는데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하니 서두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작년 이맘때 보았던 사량도 동백이 생각납니다. 사량도에는 온갖 종류의 봄꽃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곳을 지나다 무엇에 끌린 듯 멈춰 섰습니다. 나무도 땅도 온통 검붉게 물들어 있는 게 묘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수많은 동백꽃이 한데 어우러져 아우라를 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달렸거나 누웠거나 한결같은 색이었는데, 조석으로 변하는 인간에 대한 경고 같기도 해 섬뜩함마저 들었습니다.이곳에서도 그런 동백꽃을 만날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강렬한 힘으로 나를 잡아당기는 꽃을 볼 수도 있을 거야. 여기는 말 그대로 동백섬이 아닌가. 마음은 벌써 부풀어 오른 풍선입니다. 둘레길 초입에 조그만 카페가 보입니다. 많은 이들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곳이 있어 나도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한 무리의 붉은 꽃이 하트 모양으로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습니다. 카페주인이 손님을 끌려고 일부러 만들어 놓은 것 같습니다. 아무려면 이것뿐일까. 인위적인 것에 코웃음 치며 발길을 돌렸습니다.군데군데 동백꽃은 피어있었습니다. 땅에는 더 많은 꽃이 서로를 껴안고 누워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 감흥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붉은빛도 분홍도 아닌 희멀건 색은 내 마음을 빼앗지 못했습니다. 비수처럼 꽂히는 무언가가 있을 줄 알았는데 허망했습니다. "날씨 탓인가 아니면 끝물이라 그런가, 꽃이 왜 이래." 지나가는 사람들도 투덜거렸습니다. 맛도 멋도 잃어버려 휘적휘적 걷기만 했습니다.한 바퀴 빙 돌아 다시 하트 모양의 동백꽃 앞에 섰습니다. 아직도 선홍색 그대로 환합니다. 아까는 보지 못했던 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지막하고 여린 아기 동백이 몇 개의 꽃을 달고 바람에 하늘거립니다. 그제야 떠올랐습니다. 지심도 동백은 수백 년 이상 된 아름드리나무라고 말한 것을. 이곳은 원래 국방부 소유의 땅이라 오래된 나무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늙을 대로 늙은 몸에서 청춘의 힘을 맛보려 했으니 참으로 어리석었습니다.새삼 지나온 산을 뒤돌아봅니다. 장대한 거목들이 손에 손을 잡고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꽃은 그저 꽃일 뿐인데 미우니 고우니 하며 호들갑 떨게 무어냐며 일갈하는 것 같습니다. 희미하거나 선명하거나 다 같은 동백꽃이라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

2018-10-02 05:00:00

김철순

[시니어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소감 ]김철순 '매화 향기를 배다'

동네 솔밭을 들어서는데 당선소식을 받았다. 풋풋한 솔향이 묻어 싱그럽고 흡족한 마음이었다.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새로운 힘을 생기게 한다. 부단한 노력은 아니지만 꾸준히 즐긴 덕분이라 믿고 싶다. 글쓰기에서 멀어지고 싶을 때도 있지만 글을 쓰지 않으면 허전해졌다, 일상이 되어버린 친구 같은 존재다. 수필을 알고 지내면서 사색을 자주 한다. 사람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남다른 느낌이나 감정, 시시각각 달라지는 풍경은 내 감흥을 일으키고 설레게 한다. 그것들이 나를 인내하게 하고 지탱하게 해주는 원천이다. 잘 익은 삶에 발효된 희로애락이 들어있듯이 내게도 그런 성찰이 기다려진다.

2018-09-10 11:52:40

[시니어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 ]매화 향기를 배다/김철순

매화 향기를 배다 베개를 밴다. 수면에 좋다고 해서 만든 매실베개다. 딱딱하면서도 안정된 촉감이 목 언저리에 전해온다. 몸을 뒤척일 때마다 다글다글 구르는 소리에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약간 거북했지만 길들이니 이제 솜을 채운 베개보다 편안하다. 고향 집 마당에는 매화나무가 있었다. 십여 년 자란 나무는 함박눈에도 혹독한 추위에도 끄떡없었다. 겨울 삭풍에 서 있는 매화나무는 움츠려 있지만은 않았다. 한 해 동안 꽃 피우고 열매 맺느라 굽어지고 상처 난 가지는 햇살을 모아 추스르고 다독였다. 연명할 만큼의 물만 빨아올리며 삼동을 건너온 매화나무는 눈보라 속에서 향기를 머금으면 그 자태가 선연했다. 꽃샘바람까지 이겨내고 꽃이 만발하면 마당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매화나무는 철철이 색다른 풍경을 그렸다. 꽃 진자리에 매실이 열렸다. 매실은 이가 시리도록 상큼하고 붉지도 달콤하지도 않았다. 매실은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이고 갈증이 가셨다. 잘 익은 매실은 살구 맛이 났다. 하지가 되면 어머니는 매실을 따서 항아리에 넣었다. 상큼한 향기는 집안에 며칠 동안 머물렀다. 매실청은 배앓이 상비약으로 보관했다. 더부룩한 속을 달래주는 속청이었다. 매실청으로 차를 만들었다. 여름날은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끈하게 몸을 다스렸다. 양념으로 나물 무침과 조림요리에 엿물 대신 넣으면 향긋한 맛이 났다. 백일 동안 숙성된 매실 향은 매화 향보다 진했다. 나이든 매화나무는 곡선이 부드럽다. 이른 봄 묵은 가지에 매화 한두 송이 툭툭 터지면 고요한 선율이 흐른다. 꽃이 지면 그 자리가 허전해질까 봐 새순이 금방 돋아 어느새 무성해진다. 꽃이 피어 열매 맺기까지 매화나무의 절정기를 지나면서 휘어지고 부드러워져 그 모양새도 낮게 갖추어진다. 산고를 거친 여인의 완숙한 매력이듯. 매실 속에는 많은 것이 들어있다. 한여름 번개와 천둥의 놀람이 새겨지고. 나무에 둥지를 튼 참새의 지저귐과 곤줄박이의 울음도 들어있다. 매실 알알이 겨울의 인내와 봄의 정취와 여름의 번성도 들어있으리라. 씨앗 한 알을 들여다보면 점점이 박힌 숨구멍이 있다. 바람, 이슬, 눈, 비, 까지 마신 흔적이다. 단단한 껍데기로 싸고 있는 씨앗은 겹겹이 주름이 잡힌 입을 꽉 오므리고 있다. 그 속에는 생명 하나가 잉태되어 있다. 한 알의 씨앗이 자라 세상을 푸르고 생기롭게 한다. 매실을 모아 베개를 만든다. 육즙을 우려낸 말캉해진 매실은 푹 삶아내어 대소쿠리에 박박 문질러 육질을 벗겨낸다. 그러고는 여름 볕에 널어 이리저리 굴린다. 바싹 말린 씨앗은 눈부시도록 뽀얗게 또록또록해진다. 씨앗의 뾰족한 침은 무딘 칼로 다듬으면 동글동글하게 얌전해진다. 씨앗을 베개 속통에 넣으면 매실베개가 된다. 매실베개를 흔들면 딸각거리는 소리가 정겹다. 꿈같은 신혼, 원앙금침 속에는 신랑과 내가 머리를 뉘이고도 남을 구봉침 베개가 들어있었다. 양 베갯모에는 암수 봉황 한 쌍과 새끼 일곱 마리가 명주실로 수 놓였다. 부귀와 다복 그리고 장수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문양이었다. 그 기억의 집합이 내 가슴속에 진한 매화 향기로 남아있다. 친정어머니는 신랑과 다투더라도 잠은 꼭 한 베개를 배고 자라고 당부했다. 서로 생각의 높이를 같이하라는 깊은 마음이었으리라. 중매로 만나 낯가림도 있었지만 한 베개에 머리를 뉘이며 정이 들었다. 불같은 남편과 물 같은 나는 베갯머리에서 밀고 당기며 서로를 맞추어갔다. 어머니는 베개를 꿈을 꾸는 자리라고 함부로 밟거나 던지지도 말라고 했다. 살면서 늘 꿈을 꾸었다. 매화나무가 이름다이 꽃을 피우듯 예술을 향한 소망들이 자꾸만 돋아났다. 그것은 내 삶을 지탱하는 줄기였기에 잘 가꾸고 싶었다. 하지만 팍팍한 현실 앞에서 자꾸만 시들어갔다. 삶이 나아지고 나서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나는 지천명 고개를 훌쩍 넘고 있었다. 틈틈이 글공부를 했다. 못다 읽은 책을 읽으며 감성을 가다듬었다. 펜을 들고 써내려갔다. 서툴지만 한 줄기 두 줄기 써내려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작은 열매도 맺었다. 자랑거리는 아니라도 가슴에 영근 알맹이들이 지금은 밀알이 되어 또 다른 발아를 꿈꾼다. 다음 해에 싹 틔울 매실 씨앗처럼. 어언 수많은 계절을 순환했다. 따뜻한 봄날인가 하면 어느새 폭염의 여름이고 서늘한 가을인가 하면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이었다. 그 숱한 계절을 지나오는 동안 나는 얼마나 향기롭게 꽃을 피우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은 나무로 성장했을까. 가끔 고향 집에 들러 매화나무를 볼 때마다 내 삶의 향기를 생각한다. 잘 익은 삶에는 발효된 희로애락이 들어있다. 인내, 눈물, 슬픔, 외로움 같은 것들은 나를 단단하게 했고 그 안에는 물과 바람과 하늘과 내가 사는 세상의 모든 소리까지 들어있다. 매실 베개에 머리를 누이면 인생의 사계를 배는 기분이다.

2018-09-10 11:52:29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사과를 깎는 시간/당선소감

그간에 누군가 내게 시집을 건네 준 적이 있었던가, 시집을 읽어본 기억이 없다. 숨 가빴던 초등교원생활 어느 날, 정년퇴직 공문이 떨어졌다. 그때 까지도 내가 시를 쓰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내 속을 꺼내 보이는 일, 얼굴 뜨겁다. 결코 쓰고 싶은 대로 써지지 않는다. 타고 난 시인처럼 수월하지 않다. 시도 배워서 쓴다는 것을 알았다. 그간의 수상실적으로 바우처 혜택을 받아 문예창작전문가과정을 한 학기 해보고, 지난 이태동안 학사편입으로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시집이나 시론, 철학과 미학에 관하여 읽었다. 여전히 시는 어렵고, 쓸수록 더 난해하다. 한창때 빛나는 젊은 시인들은 가히 아름답다. 기대 또한 무한하다. 나는 평생 주어진 일에만 매진했으나, 비로소 시를 쓸 여유, 세계를 바라다보는 인식을 바탕으로 사유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처음 운전을 배워 올림대로를 달릴 때의 불안을 극복한 통쾌함처럼. 시를 쓰는 일 또한, 고통을 극복한 기쁨이다. 시 한 편의 환희는 오래간다. 그간의 여정은 쉽지 않았지만, 꾸준히 써나갈 것이다. 내안에 있을 내가 만나본 적 없는 수많은 어릿광대 타자(他者)들을 환대할 것이다. 꼭 시詩가 아니어도, 시詩 이상으로 살아가는 분들은 더 많이 있다. 내가 쓴 시가 나 자신을 구원시키는 일은 물론, 누군가를 위로받게 하고 견디게 하는 살만하게 하는 시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8-08-20 11:28:16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햇반의 온도/당선소감

문득, 여고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백일장에서 입상하고 가슴 설렜던 그때 그 시간이 먼 길 돌아 당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찾아 왔습니다. 늦깎이로 시 공부를 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갈등과 방황으로 몇 번이고 접을까도 생각 했지만, 어느덧 詩는 내 삶의 중심이 되어 나를 이끌어가고 있었습니다. 올해도 벌써 하반기를 향해 달리고 있지만, 뜻 있는 한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가족이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같이 공부하며 힘이 된 문우들께도 고마움을 보냅니다. 길을 열어 주신 대구매일 신문사와 부족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2018-08-20 11:25:45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자작나무 훈민정음/당선소감

내겐 기쁜 소식을 듣고, 잠시 뒤에 갖는 버릇이 하나 있다. 이후에 나는 어디에 사용 될 수 있는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쓸 만한 걸 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이번 시니어작품 공모전에도 이순(耳順)의 세대가 그나마 감성의 나무를 심을 수 있는 곳이구나 싶어 응모를 했다. 당선 통지를 받고 나서 잠시 뒤에, 이 만년의 감성이 어디를 향해서 어떻게 전달되는 것일까. 그리고 어느 현실에 적용되는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는지도 궁금했다. 인공지능이 더 멋진 글을 쓰는 시대에 시니어의 감성과 정신이 어떻게 작품 세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 회의가 앞서는 투지를 느꼈다. 뭐니뭐니해도 시니어 감성을 눈여겨보는 매일신문사에 경의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자칫 저녁의 그늘 속으로 사라져 가는 땅거미를 지면으로 불러내어 서쪽 하늘에 개밥바라기 반짝이게 독려하는 것 같다. 다시 불을 붙일 수 있는 불쏘시개를 모아 전등불 아끼는 부엌에 쌓는 것 같다. 어려운 시각을 맞춰 준 선자께 감사를 드리며 유월의 녹음 짙은 가로수 아래를 활기차게 걷는다.

2018-08-20 11:23:39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자작나무 훈민정음

자작나무 훈민정음 조성연 인제군 원대리의 자작나무 숲에 가면 닥티눈 점점 박힌 설화지雪花紙가 천진데요 못하는 먹 글씨라도 한 번 쓰고 싶어지죠 색깔에 눈 빠지고 내음에 씻긴 마음이 티눈으로 써 내려간 해례본을 읽는데요 집현전 모필 넋들이 수천 자루 일어나요 허파를 활짝 열면 가슴 차는 니은 디귿 반포 시절 떠오르는 흥분과 밝은 해가 빛나는 글자 사이에 맑은 공기 널리 붓죠

2018-08-20 11:19:52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사과를 깎는 시간/당선소감

그간에 누군가 내게 시집을 건네 준 적이 있었던가, 시집을 읽어본 기억이 없다. 숨 가빴던 초등교원생활 어느 날, 정년퇴직 공문이 떨어졌다. 그때 까지도 내가 시를 쓰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내 속을 꺼내 보이는 일, 얼굴 뜨겁다. 결코 쓰고 싶은 대로 써지지 않는다. 타고 난 시인처럼 수월하지 않다. 시도 배워서 쓴다는 것을 알았다. 그간의 수상실적으로 바우처 혜택을 받아 문예창작전문가과정을 한 학기 해보고, 지난 이태동안 학사편입으로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시집이나 시론, 철학과 미학에 관하여 읽었다. 여전히 시는 어렵고, 쓸수록 더 난해하다. 한창때 빛나는 젊은 시인들은 가히 아름답다. 기대 또한 무한하다. 나는 평생 주어진 일에만 매진했으나, 비로소 시를 쓸 여유, 세계를 바라다보는 인식을 바탕으로 사유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처음 운전을 배워 올림대로를 달릴 때의 불안을 극복한 통쾌함처럼. 시를 쓰는 일 또한, 고통을 극복한 기쁨이다. 시 한 편의 환희는 오래간다. 그간의 여정은 쉽지 않았지만, 꾸준히 써나갈 것이다. 내안에 있을 내가 만나본 적 없는 수많은 어릿광대 타자(他者)들을 환대할 것이다. 꼭 시詩가 아니어도, 시詩 이상으로 살아가는 분들은 더 많이 있다. 내가 쓴 시가 나 자신을 구원시키는 일은 물론, 누군가를 위로받게 하고 견디게 하는 살만하게 하는 시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8-08-20 11:19:18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햇반의 온도/당선소감

문득, 여고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백일장에서 입상하고 가슴 설렜던 그때 그 시간이 먼 길 돌아 당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찾아 왔습니다.   늦깎이로 시 공부를 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갈등과 방황으로 몇 번이고 접을까도 생각 했지만, 어느덧 詩는 내 삶의 중심이 되어 나를 이끌어가고 있었습니다.   올해도 벌써 하반기를 향해 달리고 있지만, 뜻 있는 한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가족이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같이 공부하며 힘이 된 문우들께도 고마움을 보냅니다.   길을 열어 주신 대구매일 신문사와 부족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2018-08-20 11:18:47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햇반의 온도

햇반의 온도 여호진 어둠과 형광불빛이 통성명을 하는 늦은 저녁 식탁은 벼랑도 없는 사막을 펼쳐놓았다 창문 밖으로 사람들이 유령처럼 흘렀다 나의 취항이 끼어들 틈이 없는 완벽한 레시피 뜨거움 속에 없는 온기를 찾아, 돌아서면 허기가 부풀어 오른다 풍경을 밀어낸 편의점 뒤쪽에서 면벽하는 내일이 된 시간 몸을 있는 대로 구겨 넣은 가파른 등에 방부된 푸른 불빛이 그렁그렁 파문을 그린다 허기의 집은 텅빈 유곽처럼 밤과 함께 깊어진다 피가 따뜻해지는 골목이 있었다 자꾸만 거짓말이 되어가는 오늘의 온도 말고 집밥이라는 말을 따라 조팝꽃처럼 퍼지던 식구들 기억 속의 집은 너무 멀어 발목을 내놓은 채 갇혀버렸다 입김처럼 흩어지는 만개한 적막 온몸에 오돌토돌 열꽃을 피운다 제풀에 익은 꽃이 물집처럼 터지고 늘 공복인 그림자가 뜯겨나간 손톱으로 밤을 할퀴며 선회 한다 꾸역꾸역 나를 파먹고 있다 한 세계를 욱여넣고도 속일 수 없는 허기로 밀폐된 바깥이 너무 멀다

2018-08-20 11:18:09

박윤우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전화번호를 지우는데-박윤우 당선소감

접는다 해도 억울할 것 없는 나이, 이 나이에도 가만가만 찾아오는 기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귀한 상 주셔서 감사합니다. 궁금해 몇 발짝 들여놓았다가 그만 길을 잃은 골목 같은 것, 길을 잃을수록 환해지는 불빛 같은 것, 제겐 그게 시였습니다. 쓸모없는 짓 좀 하며 살자고 마음먹은 후 가장 쓸모 있는 일이었던 셈입니다. 제대로 한 줄을 쓰지 못해 자괴감이 앞서면서도 걷다 보면 도달할 곳이 생길 거라는 믿음, 그 믿음에 한발 다가선 기분입니다. 자신을 다그치라는 격려와 충고로 알고 더 열심히 읽고 생각하겠습니다. 벙긋벙긋 입모양은 보이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거기 유리가 있고 창밖이 생기듯이, 창 너머에 네가, 혹은 내가 서 있듯이, 너머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의 삶의 모습일 텐데요. 삶의 어떤 국면을 쓰는 게 시일 텐데요. 삶에 다가서면 시가 되질 않고, 시에 다가서면 삶의 진정성이 훼손되는 것이 제 시의 모양새였습니다. 발표도 하지 않을 시를 왜 쓰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을 때마다 누군가 뒤에서 내 시를 읽고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그 누군가가 매일신문사의 시니어문학상이 된 셈이라 더욱 기쁩니다. 자란 곳이고, 젊어 일한 곳이고, 아픔을 나눈 곳이어서 받은 상이 제겐 더 값지게 생각됩니다. 아는 것을 쓰는 것이 시가 아니라는 말씀, 세상은 표면, 표면이 아름다운 거라는 말씀, 쓰지 말고 쏟아내라는 말씀, 말씀들이 다 과제였습니다. 더 깊이, 멀리 말씀 속을 헤매보겠습니다.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세상을 버려 아쉽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기뻐해 줄 딸이 둘이나 있어 행복합니다. 가르쳐주신 여러 선생님들 뵙고 인사 올리겠습니다. 시의 길로 이끌어준 황 시인 고맙습니다. 함께 고민하는 종각 문우님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심사위원님 감사드립니다. 시니어문학상의 의미를 되새기며 매일신문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2018-08-14 05:00:00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물의 과외공부-당선소감

-하늘을 날고 싶은 물고기- 보이지 않는 벽은 뚫기도 어렵다, 만 리길도 아닌 한 길속에 있다는 언어를 잡기위해 손바닥보다 작은 낚시대 가냘픈 손잡이에 숨어있는 언어를 부르며 낚시 끝에 쉽게 모습을 주지 않는 시어를 찾아 멀고 깊은 하늘에 낚시를 던진다. 별빛아래 까만 피를 흘리며 시리도록 눈을 끌고 점점 깊이 빠져들어 낚시 대와 나란히 하얀 바다를 걸어가고 있다, 고기야 차라리 낚시 대로 나를 낚아가라, 진한 커피향의 구수함 같은 연륜이 있고 중후하며 깊이 있는 노년의 향기를 같기 위해 글을 쓰면서 중도에서 좌절의 벼랑을 닥칠 때 마다 도망하고픈 날이 많았지만 안개를 벗은 태양은 더 맑고 찬란하다는 학교 선배님 위로에 용기를 내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온 길, 점심시간에 걸려온 시니어 문학상 당선 소식은 혹시 잘못 들었나 하고 멍하게 귀에 남은 여운을 확인하고서 가슴이 뛰기 시작 했습니다. 시니어 문학상 당선소식은 고기가 하늘을 날 것 같습니다.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에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큰상을 주셔서 뒤늦게 용기를 잃지 않고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큰 힘이 됩니다. 무엇보다 해야 할 일이 점점 잃어가는 노후를 뜻있고 보람을 가질 수 있는 글쓰기는 건강과 자부심을 불어넣는 맑은 샘물 같아 다시 한 번 매일신문에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용기를 주시며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꾸준히 지도를 해주신 마경덕 선생님, 그리고 좀 더 깊고 세심한 글을 강조하시는 맹문재 교수님과 시는 시어가 쉽고 감동할 수 있어야 하는 새로운 발견이라고 말씀을 늘 해 주시는 공광규 선생님께 진심으로 큰 절을 올립니다. 그리고 많이 부족한 저의 글에 빛을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자만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여 오래토록 남을 수 있는 글을 쓰도록 힘쓰겠습니다.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2018-08-14 05:00:00

민윤숙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함박눈이 내리는 밤이면-민윤숙 당선소감

6.25전쟁으로 부산에서 피난 생활을 했었다. 나는 구덕산 밑 부산여중으로 갔다. 천막으로 교실을 짓고 피난 학생들은 천막에서 수업을 했다.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무릎 위에 책을 놓고 수업을 했다. 그러던 차에 진해로 소풍을 갔고, 소풍 기행문을 썼다. 월요일 아침 조회시간에 전교생이 다 모인 자리에서 최우수작품에 대한 낭송이 있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 작품을 또박또박 읽어나가던 그 때, 내 마음에 문학에 대한 열망의 씨앗이 심겨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러나 서울로 환도한 나는 그 싹을 꽃 피우지 못하고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다. 많은 형제에 맏딸인 나는 대학 국문과에 합격은 했으나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의용군에 갔다온 바로 위에 오빠와 같은 해에 대학을 가게 되었고, 내가 양보를해야 했다. 밑에 동생이 다섯 명이나 있으니 대학은 꿈도 꾸지 못할 집안 형편이었다. 일찍 결혼을 했다. 아이 셋을 낳고 기르느라 작가의 꿈은 꾸지도 못했고, 또 남편 사후, 남편 사업을 대신 하느라 문학에 대한 열망은 접어 두었다. 회사 일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늦은 나이임에도 공부를 시작했다. 문화센터에서 시 창작 수업을 듣고, 수필반에서 수필을 쓰고, 드디어 학교로 갔다. 중앙 대학교 문예 창작과에서 6년 동안 단편을 썼다. 교수님이 이번에는 장편을 한 번 써 보자고 했다. 장편 첫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 가장 감명 깊은 장면, 이렇게 세 장을 써오라고 했다. 정말 심혈을 기울여서 썼다. 다음 시간, 선생님은 많은 작품 중 소설이 될 만한 작품은 내 작품 하나뿐이라고 했다. 그러던 중 2018매일 시니어 문학상 공모전에서 논픽션과 시, 두 부문에서 수상을 하게 되었다. 이제부터라도 더 열심히 창작활동에 매진할 것이다. 2013년도 노벨문학상, 여성 수상자, 앨리스 먼로도 나와 같은 나이인 83세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른 때라는 말도 있다. 하면 된다!!! 하면 된다!!!

2018-08-14 05:00:00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전화번호를 지우는데

전화번호를 지우는데 박 윤 우 우리 집에는 고양이 한 마리와 묵은 이명씨(耳鳴氏)가 산다 오늘따라 내가 흔하다 나는 계단참이고 우산이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풍경이다 우스운 일에만 웃는다 인적 드문 내소삿길, 인중 긴 꽃을 내려다보며 눈으로 만졌다 무슨 계획 같은 게 있을 리 없는 꽃 풀 먹인 모시 적삼 같은 녀석에게 안녕하세요? 정중하게 인사를 건넨다 거기, 매발톱 꽃은 폭발이 아니라 함몰이다 사월의 허리를 부축하는 미나리아재빗과 누두채(漏斗菜) 대궁 위의 푸른 뿔, 안으로 안으로 구부리는 저 푸른 화판 저희끼리 붐비며 함몰 중이다 잎도 안 난 노루귀가 매발톱 따라 고개를 꺾는, 매발톱과 노루귀 사이 너를 묻으며 비를 맞았다 돌아와, 식은밥에 물 말아먹고 수첩을 꺼내 전화번호를 지우는데, 이명씨(耳鳴氏)가 어딜 그렇게 쏘다니느냐며 속삭인다

2018-08-13 11:5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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