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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순

[시니어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소감 ]김철순 '매화 향기를 배다'

동네 솔밭을 들어서는데 당선소식을 받았다. 풋풋한 솔향이 묻어 싱그럽고 흡족한 마음이었다.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새로운 힘을 생기게 한다. 부단한 노력은 아니지만 꾸준히 즐긴 덕분이라 믿고 싶다. 글쓰기에서 멀어지고 싶을 때도 있지만 글을 쓰지 않으면 허전해졌다, 일상이 되어버린 친구 같은 존재다. 수필을 알고 지내면서 사색을 자주 한다. 사람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남다른 느낌이나 감정, 시시각각 달라지는 풍경은 내 감흥을 일으키고 설레게 한다. 그것들이 나를 인내하게 하고 지탱하게 해주는 원천이다. 잘 익은 삶에 발효된 희로애락이 들어있듯이 내게도 그런 성찰이 기다려진다.

2018-09-10 11:52:40

[시니어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 ]매화 향기를 배다/김철순

매화 향기를 배다 베개를 밴다. 수면에 좋다고 해서 만든 매실베개다. 딱딱하면서도 안정된 촉감이 목 언저리에 전해온다. 몸을 뒤척일 때마다 다글다글 구르는 소리에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약간 거북했지만 길들이니 이제 솜을 채운 베개보다 편안하다. 고향 집 마당에는 매화나무가 있었다. 십여 년 자란 나무는 함박눈에도 혹독한 추위에도 끄떡없었다. 겨울 삭풍에 서 있는 매화나무는 움츠려 있지만은 않았다. 한 해 동안 꽃 피우고 열매 맺느라 굽어지고 상처 난 가지는 햇살을 모아 추스르고 다독였다. 연명할 만큼의 물만 빨아올리며 삼동을 건너온 매화나무는 눈보라 속에서 향기를 머금으면 그 자태가 선연했다. 꽃샘바람까지 이겨내고 꽃이 만발하면 마당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매화나무는 철철이 색다른 풍경을 그렸다. 꽃 진자리에 매실이 열렸다. 매실은 이가 시리도록 상큼하고 붉지도 달콤하지도 않았다. 매실은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이고 갈증이 가셨다. 잘 익은 매실은 살구 맛이 났다. 하지가 되면 어머니는 매실을 따서 항아리에 넣었다. 상큼한 향기는 집안에 며칠 동안 머물렀다. 매실청은 배앓이 상비약으로 보관했다. 더부룩한 속을 달래주는 속청이었다. 매실청으로 차를 만들었다. 여름날은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끈하게 몸을 다스렸다. 양념으로 나물 무침과 조림요리에 엿물 대신 넣으면 향긋한 맛이 났다. 백일 동안 숙성된 매실 향은 매화 향보다 진했다. 나이든 매화나무는 곡선이 부드럽다. 이른 봄 묵은 가지에 매화 한두 송이 툭툭 터지면 고요한 선율이 흐른다. 꽃이 지면 그 자리가 허전해질까 봐 새순이 금방 돋아 어느새 무성해진다. 꽃이 피어 열매 맺기까지 매화나무의 절정기를 지나면서 휘어지고 부드러워져 그 모양새도 낮게 갖추어진다. 산고를 거친 여인의 완숙한 매력이듯. 매실 속에는 많은 것이 들어있다. 한여름 번개와 천둥의 놀람이 새겨지고. 나무에 둥지를 튼 참새의 지저귐과 곤줄박이의 울음도 들어있다. 매실 알알이 겨울의 인내와 봄의 정취와 여름의 번성도 들어있으리라. 씨앗 한 알을 들여다보면 점점이 박힌 숨구멍이 있다. 바람, 이슬, 눈, 비, 까지 마신 흔적이다. 단단한 껍데기로 싸고 있는 씨앗은 겹겹이 주름이 잡힌 입을 꽉 오므리고 있다. 그 속에는 생명 하나가 잉태되어 있다. 한 알의 씨앗이 자라 세상을 푸르고 생기롭게 한다. 매실을 모아 베개를 만든다. 육즙을 우려낸 말캉해진 매실은 푹 삶아내어 대소쿠리에 박박 문질러 육질을 벗겨낸다. 그러고는 여름 볕에 널어 이리저리 굴린다. 바싹 말린 씨앗은 눈부시도록 뽀얗게 또록또록해진다. 씨앗의 뾰족한 침은 무딘 칼로 다듬으면 동글동글하게 얌전해진다. 씨앗을 베개 속통에 넣으면 매실베개가 된다. 매실베개를 흔들면 딸각거리는 소리가 정겹다. 꿈같은 신혼, 원앙금침 속에는 신랑과 내가 머리를 뉘이고도 남을 구봉침 베개가 들어있었다. 양 베갯모에는 암수 봉황 한 쌍과 새끼 일곱 마리가 명주실로 수 놓였다. 부귀와 다복 그리고 장수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문양이었다. 그 기억의 집합이 내 가슴속에 진한 매화 향기로 남아있다. 친정어머니는 신랑과 다투더라도 잠은 꼭 한 베개를 배고 자라고 당부했다. 서로 생각의 높이를 같이하라는 깊은 마음이었으리라. 중매로 만나 낯가림도 있었지만 한 베개에 머리를 뉘이며 정이 들었다. 불같은 남편과 물 같은 나는 베갯머리에서 밀고 당기며 서로를 맞추어갔다. 어머니는 베개를 꿈을 꾸는 자리라고 함부로 밟거나 던지지도 말라고 했다. 살면서 늘 꿈을 꾸었다. 매화나무가 이름다이 꽃을 피우듯 예술을 향한 소망들이 자꾸만 돋아났다. 그것은 내 삶을 지탱하는 줄기였기에 잘 가꾸고 싶었다. 하지만 팍팍한 현실 앞에서 자꾸만 시들어갔다. 삶이 나아지고 나서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나는 지천명 고개를 훌쩍 넘고 있었다. 틈틈이 글공부를 했다. 못다 읽은 책을 읽으며 감성을 가다듬었다. 펜을 들고 써내려갔다. 서툴지만 한 줄기 두 줄기 써내려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작은 열매도 맺었다. 자랑거리는 아니라도 가슴에 영근 알맹이들이 지금은 밀알이 되어 또 다른 발아를 꿈꾼다. 다음 해에 싹 틔울 매실 씨앗처럼. 어언 수많은 계절을 순환했다. 따뜻한 봄날인가 하면 어느새 폭염의 여름이고 서늘한 가을인가 하면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이었다. 그 숱한 계절을 지나오는 동안 나는 얼마나 향기롭게 꽃을 피우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은 나무로 성장했을까. 가끔 고향 집에 들러 매화나무를 볼 때마다 내 삶의 향기를 생각한다. 잘 익은 삶에는 발효된 희로애락이 들어있다. 인내, 눈물, 슬픔, 외로움 같은 것들은 나를 단단하게 했고 그 안에는 물과 바람과 하늘과 내가 사는 세상의 모든 소리까지 들어있다. 매실 베개에 머리를 누이면 인생의 사계를 배는 기분이다.

2018-09-10 11:52:29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사과를 깎는 시간/당선소감

그간에 누군가 내게 시집을 건네 준 적이 있었던가, 시집을 읽어본 기억이 없다. 숨 가빴던 초등교원생활 어느 날, 정년퇴직 공문이 떨어졌다. 그때 까지도 내가 시를 쓰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내 속을 꺼내 보이는 일, 얼굴 뜨겁다. 결코 쓰고 싶은 대로 써지지 않는다. 타고 난 시인처럼 수월하지 않다. 시도 배워서 쓴다는 것을 알았다. 그간의 수상실적으로 바우처 혜택을 받아 문예창작전문가과정을 한 학기 해보고, 지난 이태동안 학사편입으로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시집이나 시론, 철학과 미학에 관하여 읽었다. 여전히 시는 어렵고, 쓸수록 더 난해하다. 한창때 빛나는 젊은 시인들은 가히 아름답다. 기대 또한 무한하다. 나는 평생 주어진 일에만 매진했으나, 비로소 시를 쓸 여유, 세계를 바라다보는 인식을 바탕으로 사유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처음 운전을 배워 올림대로를 달릴 때의 불안을 극복한 통쾌함처럼. 시를 쓰는 일 또한, 고통을 극복한 기쁨이다. 시 한 편의 환희는 오래간다. 그간의 여정은 쉽지 않았지만, 꾸준히 써나갈 것이다. 내안에 있을 내가 만나본 적 없는 수많은 어릿광대 타자(他者)들을 환대할 것이다. 꼭 시詩가 아니어도, 시詩 이상으로 살아가는 분들은 더 많이 있다. 내가 쓴 시가 나 자신을 구원시키는 일은 물론, 누군가를 위로받게 하고 견디게 하는 살만하게 하는 시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8-08-20 11:28:16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햇반의 온도/당선소감

문득, 여고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백일장에서 입상하고 가슴 설렜던 그때 그 시간이 먼 길 돌아 당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찾아 왔습니다. 늦깎이로 시 공부를 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갈등과 방황으로 몇 번이고 접을까도 생각 했지만, 어느덧 詩는 내 삶의 중심이 되어 나를 이끌어가고 있었습니다. 올해도 벌써 하반기를 향해 달리고 있지만, 뜻 있는 한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가족이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같이 공부하며 힘이 된 문우들께도 고마움을 보냅니다. 길을 열어 주신 대구매일 신문사와 부족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2018-08-20 11:25:45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자작나무 훈민정음/당선소감

내겐 기쁜 소식을 듣고, 잠시 뒤에 갖는 버릇이 하나 있다. 이후에 나는 어디에 사용 될 수 있는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쓸 만한 걸 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이번 시니어작품 공모전에도 이순(耳順)의 세대가 그나마 감성의 나무를 심을 수 있는 곳이구나 싶어 응모를 했다. 당선 통지를 받고 나서 잠시 뒤에, 이 만년의 감성이 어디를 향해서 어떻게 전달되는 것일까. 그리고 어느 현실에 적용되는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는지도 궁금했다. 인공지능이 더 멋진 글을 쓰는 시대에 시니어의 감성과 정신이 어떻게 작품 세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 회의가 앞서는 투지를 느꼈다. 뭐니뭐니해도 시니어 감성을 눈여겨보는 매일신문사에 경의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자칫 저녁의 그늘 속으로 사라져 가는 땅거미를 지면으로 불러내어 서쪽 하늘에 개밥바라기 반짝이게 독려하는 것 같다. 다시 불을 붙일 수 있는 불쏘시개를 모아 전등불 아끼는 부엌에 쌓는 것 같다. 어려운 시각을 맞춰 준 선자께 감사를 드리며 유월의 녹음 짙은 가로수 아래를 활기차게 걷는다.

2018-08-20 11:23:39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자작나무 훈민정음

자작나무 훈민정음 조성연 인제군 원대리의 자작나무 숲에 가면 닥티눈 점점 박힌 설화지雪花紙가 천진데요 못하는 먹 글씨라도 한 번 쓰고 싶어지죠 색깔에 눈 빠지고 내음에 씻긴 마음이 티눈으로 써 내려간 해례본을 읽는데요 집현전 모필 넋들이 수천 자루 일어나요 허파를 활짝 열면 가슴 차는 니은 디귿 반포 시절 떠오르는 흥분과 밝은 해가 빛나는 글자 사이에 맑은 공기 널리 붓죠

2018-08-20 11:19:52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사과를 깎는 시간/당선소감

그간에 누군가 내게 시집을 건네 준 적이 있었던가, 시집을 읽어본 기억이 없다. 숨 가빴던 초등교원생활 어느 날, 정년퇴직 공문이 떨어졌다. 그때 까지도 내가 시를 쓰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내 속을 꺼내 보이는 일, 얼굴 뜨겁다. 결코 쓰고 싶은 대로 써지지 않는다. 타고 난 시인처럼 수월하지 않다. 시도 배워서 쓴다는 것을 알았다. 그간의 수상실적으로 바우처 혜택을 받아 문예창작전문가과정을 한 학기 해보고, 지난 이태동안 학사편입으로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시집이나 시론, 철학과 미학에 관하여 읽었다. 여전히 시는 어렵고, 쓸수록 더 난해하다. 한창때 빛나는 젊은 시인들은 가히 아름답다. 기대 또한 무한하다. 나는 평생 주어진 일에만 매진했으나, 비로소 시를 쓸 여유, 세계를 바라다보는 인식을 바탕으로 사유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처음 운전을 배워 올림대로를 달릴 때의 불안을 극복한 통쾌함처럼. 시를 쓰는 일 또한, 고통을 극복한 기쁨이다. 시 한 편의 환희는 오래간다. 그간의 여정은 쉽지 않았지만, 꾸준히 써나갈 것이다. 내안에 있을 내가 만나본 적 없는 수많은 어릿광대 타자(他者)들을 환대할 것이다. 꼭 시詩가 아니어도, 시詩 이상으로 살아가는 분들은 더 많이 있다. 내가 쓴 시가 나 자신을 구원시키는 일은 물론, 누군가를 위로받게 하고 견디게 하는 살만하게 하는 시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8-08-20 11:19:18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햇반의 온도/당선소감

문득, 여고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백일장에서 입상하고 가슴 설렜던 그때 그 시간이 먼 길 돌아 당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찾아 왔습니다.   늦깎이로 시 공부를 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갈등과 방황으로 몇 번이고 접을까도 생각 했지만, 어느덧 詩는 내 삶의 중심이 되어 나를 이끌어가고 있었습니다.   올해도 벌써 하반기를 향해 달리고 있지만, 뜻 있는 한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가족이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같이 공부하며 힘이 된 문우들께도 고마움을 보냅니다.   길을 열어 주신 대구매일 신문사와 부족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2018-08-20 11:18:47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햇반의 온도

햇반의 온도 여호진 어둠과 형광불빛이 통성명을 하는 늦은 저녁 식탁은 벼랑도 없는 사막을 펼쳐놓았다 창문 밖으로 사람들이 유령처럼 흘렀다 나의 취항이 끼어들 틈이 없는 완벽한 레시피 뜨거움 속에 없는 온기를 찾아, 돌아서면 허기가 부풀어 오른다 풍경을 밀어낸 편의점 뒤쪽에서 면벽하는 내일이 된 시간 몸을 있는 대로 구겨 넣은 가파른 등에 방부된 푸른 불빛이 그렁그렁 파문을 그린다 허기의 집은 텅빈 유곽처럼 밤과 함께 깊어진다 피가 따뜻해지는 골목이 있었다 자꾸만 거짓말이 되어가는 오늘의 온도 말고 집밥이라는 말을 따라 조팝꽃처럼 퍼지던 식구들 기억 속의 집은 너무 멀어 발목을 내놓은 채 갇혀버렸다 입김처럼 흩어지는 만개한 적막 온몸에 오돌토돌 열꽃을 피운다 제풀에 익은 꽃이 물집처럼 터지고 늘 공복인 그림자가 뜯겨나간 손톱으로 밤을 할퀴며 선회 한다 꾸역꾸역 나를 파먹고 있다 한 세계를 욱여넣고도 속일 수 없는 허기로 밀폐된 바깥이 너무 멀다

2018-08-20 11:18:09

박윤우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전화번호를 지우는데-박윤우 당선소감

접는다 해도 억울할 것 없는 나이, 이 나이에도 가만가만 찾아오는 기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귀한 상 주셔서 감사합니다. 궁금해 몇 발짝 들여놓았다가 그만 길을 잃은 골목 같은 것, 길을 잃을수록 환해지는 불빛 같은 것, 제겐 그게 시였습니다. 쓸모없는 짓 좀 하며 살자고 마음먹은 후 가장 쓸모 있는 일이었던 셈입니다. 제대로 한 줄을 쓰지 못해 자괴감이 앞서면서도 걷다 보면 도달할 곳이 생길 거라는 믿음, 그 믿음에 한발 다가선 기분입니다. 자신을 다그치라는 격려와 충고로 알고 더 열심히 읽고 생각하겠습니다. 벙긋벙긋 입모양은 보이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거기 유리가 있고 창밖이 생기듯이, 창 너머에 네가, 혹은 내가 서 있듯이, 너머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의 삶의 모습일 텐데요. 삶의 어떤 국면을 쓰는 게 시일 텐데요. 삶에 다가서면 시가 되질 않고, 시에 다가서면 삶의 진정성이 훼손되는 것이 제 시의 모양새였습니다. 발표도 하지 않을 시를 왜 쓰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을 때마다 누군가 뒤에서 내 시를 읽고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그 누군가가 매일신문사의 시니어문학상이 된 셈이라 더욱 기쁩니다. 자란 곳이고, 젊어 일한 곳이고, 아픔을 나눈 곳이어서 받은 상이 제겐 더 값지게 생각됩니다. 아는 것을 쓰는 것이 시가 아니라는 말씀, 세상은 표면, 표면이 아름다운 거라는 말씀, 쓰지 말고 쏟아내라는 말씀, 말씀들이 다 과제였습니다. 더 깊이, 멀리 말씀 속을 헤매보겠습니다.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세상을 버려 아쉽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기뻐해 줄 딸이 둘이나 있어 행복합니다. 가르쳐주신 여러 선생님들 뵙고 인사 올리겠습니다. 시의 길로 이끌어준 황 시인 고맙습니다. 함께 고민하는 종각 문우님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심사위원님 감사드립니다. 시니어문학상의 의미를 되새기며 매일신문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2018-08-14 05:00:00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물의 과외공부-당선소감

-하늘을 날고 싶은 물고기- 보이지 않는 벽은 뚫기도 어렵다, 만 리길도 아닌 한 길속에 있다는 언어를 잡기위해 손바닥보다 작은 낚시대 가냘픈 손잡이에 숨어있는 언어를 부르며 낚시 끝에 쉽게 모습을 주지 않는 시어를 찾아 멀고 깊은 하늘에 낚시를 던진다. 별빛아래 까만 피를 흘리며 시리도록 눈을 끌고 점점 깊이 빠져들어 낚시 대와 나란히 하얀 바다를 걸어가고 있다, 고기야 차라리 낚시 대로 나를 낚아가라, 진한 커피향의 구수함 같은 연륜이 있고 중후하며 깊이 있는 노년의 향기를 같기 위해 글을 쓰면서 중도에서 좌절의 벼랑을 닥칠 때 마다 도망하고픈 날이 많았지만 안개를 벗은 태양은 더 맑고 찬란하다는 학교 선배님 위로에 용기를 내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온 길, 점심시간에 걸려온 시니어 문학상 당선 소식은 혹시 잘못 들었나 하고 멍하게 귀에 남은 여운을 확인하고서 가슴이 뛰기 시작 했습니다. 시니어 문학상 당선소식은 고기가 하늘을 날 것 같습니다.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에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큰상을 주셔서 뒤늦게 용기를 잃지 않고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큰 힘이 됩니다. 무엇보다 해야 할 일이 점점 잃어가는 노후를 뜻있고 보람을 가질 수 있는 글쓰기는 건강과 자부심을 불어넣는 맑은 샘물 같아 다시 한 번 매일신문에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용기를 주시며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꾸준히 지도를 해주신 마경덕 선생님, 그리고 좀 더 깊고 세심한 글을 강조하시는 맹문재 교수님과 시는 시어가 쉽고 감동할 수 있어야 하는 새로운 발견이라고 말씀을 늘 해 주시는 공광규 선생님께 진심으로 큰 절을 올립니다. 그리고 많이 부족한 저의 글에 빛을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자만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여 오래토록 남을 수 있는 글을 쓰도록 힘쓰겠습니다.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2018-08-14 05:00:00

민윤숙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함박눈이 내리는 밤이면-민윤숙 당선소감

6.25전쟁으로 부산에서 피난 생활을 했었다. 나는 구덕산 밑 부산여중으로 갔다. 천막으로 교실을 짓고 피난 학생들은 천막에서 수업을 했다.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무릎 위에 책을 놓고 수업을 했다. 그러던 차에 진해로 소풍을 갔고, 소풍 기행문을 썼다. 월요일 아침 조회시간에 전교생이 다 모인 자리에서 최우수작품에 대한 낭송이 있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 작품을 또박또박 읽어나가던 그 때, 내 마음에 문학에 대한 열망의 씨앗이 심겨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러나 서울로 환도한 나는 그 싹을 꽃 피우지 못하고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다. 많은 형제에 맏딸인 나는 대학 국문과에 합격은 했으나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의용군에 갔다온 바로 위에 오빠와 같은 해에 대학을 가게 되었고, 내가 양보를해야 했다. 밑에 동생이 다섯 명이나 있으니 대학은 꿈도 꾸지 못할 집안 형편이었다. 일찍 결혼을 했다. 아이 셋을 낳고 기르느라 작가의 꿈은 꾸지도 못했고, 또 남편 사후, 남편 사업을 대신 하느라 문학에 대한 열망은 접어 두었다. 회사 일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늦은 나이임에도 공부를 시작했다. 문화센터에서 시 창작 수업을 듣고, 수필반에서 수필을 쓰고, 드디어 학교로 갔다. 중앙 대학교 문예 창작과에서 6년 동안 단편을 썼다. 교수님이 이번에는 장편을 한 번 써 보자고 했다. 장편 첫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 가장 감명 깊은 장면, 이렇게 세 장을 써오라고 했다. 정말 심혈을 기울여서 썼다. 다음 시간, 선생님은 많은 작품 중 소설이 될 만한 작품은 내 작품 하나뿐이라고 했다. 그러던 중 2018매일 시니어 문학상 공모전에서 논픽션과 시, 두 부문에서 수상을 하게 되었다. 이제부터라도 더 열심히 창작활동에 매진할 것이다. 2013년도 노벨문학상, 여성 수상자, 앨리스 먼로도 나와 같은 나이인 83세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른 때라는 말도 있다. 하면 된다!!! 하면 된다!!!

2018-08-14 05:00:00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전화번호를 지우는데

전화번호를 지우는데 박 윤 우 우리 집에는 고양이 한 마리와 묵은 이명씨(耳鳴氏)가 산다 오늘따라 내가 흔하다 나는 계단참이고 우산이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풍경이다 우스운 일에만 웃는다 인적 드문 내소삿길, 인중 긴 꽃을 내려다보며 눈으로 만졌다 무슨 계획 같은 게 있을 리 없는 꽃 풀 먹인 모시 적삼 같은 녀석에게 안녕하세요? 정중하게 인사를 건넨다 거기, 매발톱 꽃은 폭발이 아니라 함몰이다 사월의 허리를 부축하는 미나리아재빗과 누두채(漏斗菜) 대궁 위의 푸른 뿔, 안으로 안으로 구부리는 저 푸른 화판 저희끼리 붐비며 함몰 중이다 잎도 안 난 노루귀가 매발톱 따라 고개를 꺾는, 매발톱과 노루귀 사이 너를 묻으며 비를 맞았다 돌아와, 식은밥에 물 말아먹고 수첩을 꺼내 전화번호를 지우는데, 이명씨(耳鳴氏)가 어딜 그렇게 쏘다니느냐며 속삭인다

2018-08-13 11:55:41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함박눈이 내리는 밤이면

함박눈이 내리는 밤이면 민윤숙 창이 큰 찻집에서 가스등 마주하고 차를 마신다. 창 밖에는 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다 하지 못한 사랑 녹색 등 호롱 속에 가두어 놓고 여인은, 짐짓 아무 일도 없는 듯 단단한 미소로 창가에 비켜 앉아 있다.

2018-08-13 11:52:01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수제 양복점에서

수제 양복점에서 -김선중 일생을 행사로 끌고 왔거나 끌고 갔거나 하는 일들로 의복들은 다 헤졌다. 갈수록 허물어지던 누추를 한 벌 정장으로 지탱해왔던 것이다. 수제 양복점에서 양복을 맞췄다. 그 어떤 의식도 없는 무료한 양복 한벌을 맞췄다. 자꾸 색상에서 버려진 듯 또는 신세진 듯 주변의 색과 나는 점점 구별된다. 이것은 철저한 소임인 듯 은폐술이거나 소외의 풍이다. 단추들은 인심이 후하게 바뀌었다. 주머니는 그 어떤 일탈의 비상금도 필요 없음으로 형식적이어도 무방하다. 등판은 여분의 치수를 조금 앞쪽으로 구부려야 할 것이다. 그에 맞춰 어깨는 더 이상의 상승의 힘을 주문하지 않기로 한다. 왼쪽 젖 가슴 위의 견장들, 이젠 흙냄새 좀 맡으라고 바지통을 널찍하게 잡았다. 잘 삭힌 몸, 녹이 많이 슨 몸 가봉(假縫)이 끝나고 잘 맞춤된 옷은 관(棺)을 닮았다.

2018-08-06 11:26:32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대상-논픽션]뒤로의 여행⑥

"살아 있어 고맙다." 그날 장모님은 전남 광양군 진월면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순천으로, 순천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강릉까지 종일 달려오면서 차멀미로 물 몇 모금으로 버티시고도 누워서 인사하는 자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뒤로의 여행 후기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먼저 나의 후회는 어떤 것들인가를 살폈다. 첫 번째는 효도였다. 효도는 어려운 것이 아닌데도 그동안 나는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효도란 부모님께 산해진미를 대접하는 것도, 화려한 옷을 사다 드리는 것도, 외국 여행을 시켜드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부모님의 말씀을 살갑게 들어주고, 소찬의 밥을 함께 먹고, 손을 잡고 공원을 산책하는 작은 일들에 부모님은 더 행복해하신다는 걸 몰랐다. 그런 효도를 내일 해야지, 이다음에 해야지, 하고 미루고 미루다, 어머님이 먼 길 떠나고 나서야 효도를 생각한다는 건 후회막급이었다. 두 번째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기가 더 어렵다는' 어느 신문 칼럼에서 읽었던 글이 여행 후에야 진하게 마음에 새겨졌다. 그동안 나는 곁눈질 하지 않고 열심히 가족을 위해 노력하면 가장의 의무도 가족에 대한 사랑도 일정 부분 달성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변하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 의식이었다. '표현하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말을 대입해보니 나는 가족에 대한 사랑은 밑바닥이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사랑의 말을 주고받아야 행복이 싹트는 비결임을 모르고 지냈다. 세 번째는 요즈음 유행하고 있는 말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중요성을 모르고 살았다. 소확행은 복잡하고, 다양하고, 물질만능주의인 현대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삶의 방식임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다. 소확행은 삶 속에서 사랑을 키우고 표현력과 적극성을 갖게 해준다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래서 바로 내 마음을 적응해 보기로 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첫날 세 가지 소소한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아침에 현관문을 열고 나가자 문 앞에서 작은 연초록 잎 사이로 담회색의 꽃대를 밀어 올려 연분홍 꽃을 세 송이나 피운 앵초 꽃이 앙증맞은 얼굴로 아침 인사를 했다. 평소 같으면 무심코 지나쳤을 일이었지만 소확행을 적극적으로 살핀 결과였다.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눈을 맞추자 아침 기분이 상쾌했다. 낮이었다. 책을 읽다 말고 문득 생각났다. 엊그제 손녀가 주고 간 생일축하 손 편지를 꺼냈다. 초등학교 육학년인 외손녀의 편지를 반복해 읽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생신 축하드려요. 할아버지는 우리 가족 중에서 제일 소중한 분이에요. 왜냐하면, 우리가 아프면 제일 먼저 달려와 병원도 가고 또 위로해주셨지요. 얼마 전에는 엄마 아빠 사이가 안 좋다고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안타까워하시며 바로 해결해주셨지요. ……중략…… 할아버지가 항상 강조하시는 웃어른께 인사 잘하기, 나쁜 말 쓰지 않기, 공공장소에서 예의 지키기, 친구에게 양보하기, 등을 실천하면 어른이 되었을 때 큰 장점이 된다는 할아버지 말씀 잊지 않을게요. 할아버지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가끔 길게 말씀하실 때가 있는데 짧게 말씀해주세요. 햇살 좋은 날에 사랑하는 손녀 올림' 초등학생 육학년 손녀의 솔직한 편지를 읽으며 흐뭇함이 가슴 한가득 밀려들었다. 특히 편지 끝에 '햇살 좋은 날'이라는 봄날을 표현한 편지를 들고 나는 한참 동안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었다. 오후였다.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약은 먹었느냐고, 그리고 덧붙인다. 컴퓨터 그만 좀 하라고,…… 얼마 전 안과에서 망막 정맥 폐쇄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말했다. 계속 치료를 해도 완치보다는 병의 진행을 지연시키는 데 불과하다고. 그 말을 들은 딸이 며칠 후 눈에 좋다는 영양제 두 종류를 사다 주곤 복용 여부를 챙기는 것이었다. 이 또한 소확행의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여 생각했다. 딸이 두 아이를 키우는 바쁜 와중에도 약을 고르고 약의 복용 여부를 챙기는 마음이 고마웠다. 가족이 아니라면 누가 이렇게 알뜰살뜰 챙겨주겠는가 싶었다. 나는 오늘도 가족에 대한 사랑 표현을 딸로부터 배우며 소확행 하나를 보탰다. 뒤로의 여행 후 나의 결론은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거였다. 그래서 삶은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나는 판단했다. '삶은 주문을 외우며 헤쳐 나가는 가시덤불'이라고.

2018-08-06 11:26:09

최병길 씨

[2018 매일시니어 문학상] 시 당선작 - 최병길 '파도波刀'

파도波刀 구부러지는 길목을 두고 떠다니는 것들 날을 간다, 벼린 날을 갈며 그늘에 벼리고 베인 물이랑들이 한없이 거세어진다 물줄기의 향방에 아랑곳하지 않고제 몸 상처로 물결을 이끌고 내몰아서 지느러미를 이루어 낸다어차피 밀물과 썰물의 교대는 공간너머 시간의 터울 속에 이루어지는 원리니까, 수평선을 깔고 오는 붉어짐 속에서벼랑어깨 위 축축한 것들이 말라가는 것을 지켜보며곡선의 부유浮遊권을 암시하듯 해송 옆, 가지들 되돌아온 해풍에 추적추적거리며 파도의 노도怒濤를 집요하게 지새우며 지켜보았다. 서둘러 낮달의 낯빛을 비추는 무렵길목을 거스르는 파도波刀 휘두르고 있는 연유다 오후는 저물어지고새벽의 항로는 정처 없이 깊어져서 곡선의 눈부심이 되었다. 물살에 박힌 가벼운 날로 귀밑머리 무늬에 묻혀 삼켜진 것들은 투명하지만 차갑고 날카롭지만 처량하다 이제 파도波刀라 밑줄 긋고 나면 켜켜이 풀어놓는 숨비소리가 듷숨과 날숨의 표류하며 소용돌이친다 비수를 품은 엽선들이 숨줄을 틔우고 있다 시 – 최병길 '파도(波刀)' - 당선소감 저에게 이런 큰 상을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시를 쓴지 거의 20십여 년 만에 이런 상을 받으니 과연 이 상을 받아도 될지 무안한 마음만 듭니다. 제가 이 상을 타기에는 저의 시는 좀 진부하고 낡았지만 이렇게 좋게 보시고 뽑아주신데 대해 무엇보다도 심사의원이하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 분들이 없었으면 이런 기쁨을 누리지 못했겠지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며칠 전 갑작스레 이런 귀하고 영예로운 연락을 주시니 제겐 너무나 충격이었습니다. 아마 이것은 하늘의 뜻이라 여기고 앞으로도 열심히 시를 쓰겠습니다. 언제나 시는 제게는 오랜 갈증이었고 늘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이 기쁨이었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시에 대한 애착이 있었으나 어느 순간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시를 놓았습니다. 뒤늦게 쉰이 넘어서야 조금씩 시를 쓰게 되고 특히 문학상을 탄 시들을 즐겨 읽었고 언어의 놀라움을 깨닫곤 했습니다. 늘 어려울 때나 힘들 때 제게 알 수 없는 큰 힘이 되어주었던 시가 이렇게 무한한 영광까지 주니 무어라 말씀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저보다 훌륭한 시를 쓰신 분들에게 죄송스럽지 않도록 앞으로도 시를 계속 쓸까 합니다. 사랑하는 아들 딸 손자 그리고 사위들에게 자랑하게 되어서 무엇보다도 기쁩니다. 생이 다하는 날까지 시를 쓸까합니다. 감사합니다. 2018. 6. 20 최 병 길 드림

2018-07-25 16:54:40

조성연 씨

[2018 매일시니어 문학상] 시 당선작 - 조성연 '자작나무 훈민정음'

자작나무 훈민정음 인제군 원대리의 자작나무 숲에 가면 닥티눈 점점 박힌 설화지雪花紙가 천진데요 못하는 먹 글씨라도 한 번 쓰고 싶어지죠 색깔에 눈 빠지고 내음에 씻긴 마음이 티눈으로 써 내려간 해례본을 읽는데요 집현전 모필 넋들이 수천 자루 일어나요 허파를 활짝 열면 가슴 차는 니은 디귿 반포 시절 떠오르는 흥분과 밝은 해가 빛나는 글자 사이에 맑은 공기 널리 붓죠 시 – 조성연 '자작나무 훈민정음' - 당선소감 내겐 기쁜 소식을 듣고, 잠시 뒤에 갖는 버릇이 하나 있다. 이후에 나는 어디에 사용 될 수 있는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쓸 만한 걸 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이번 시니어작품 공모전에도 이순(耳順)의 세대가 그나마 감성의 나무를 심을 수 있는 곳이구나 싶어 응모를 했다. 당선 통지를 받고 나서 잠시 뒤에, 이 만년의 감성이 어디를 향해서 어떻게 전달되는 것일까. 그리고 어느 현실에 적용되는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는지도 궁금했다. 인공지능이 더 멋진 글을 쓰는 시대에 시니어의 감성과 정신이 어떻게 작품 세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 회의가 앞서는 투지를 느꼈다.뭐니뭐니해도 시니어 감성을 눈여겨보는 매일신문사에 경의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자칫 저녁의 그늘 속으로 사라져 가는 땅거미를 지면으로 불러내어 서쪽 하늘에 개밥바라기 반짝이게 독려하는 것 같다. 다시 불을 붙일 수 있는 불쏘시개를 모아 전등불 아끼는 부엌에 쌓는 것 같다. 어려운 시각을 맞춰 준 선자께 감사를 드리며 유월의 녹음 짙은 가로수 아래를 활기차게 걷는다.

2018-07-25 16:47:21

우옥자 씨

[2018 매일시니어 문학상] 시 당선작 - 우옥자 '천(千)의 손'

천(千)의 손 장갑만 파는 가게가 있다면 저마다 다른 설명서가 붙어있을까 뒤처리가 버거워질 땐 빨간 고무장갑을 낀다 기름 때 비린내 그의 타액 까지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는 쿨한 이별이라고 가끔 빼내기 어렵고 잘 찢긴다는 걸 주의하라고, 사각의 갑에 천 개의 손을 상비한 보살의 손, 크리넥스 뽑아 쓰듯 톡! 하고 비닐 손을 꺼내 나물을 조물거리다 홀랑 뒤집어 버린다 손가락 끝에 코팅된 눈이 반짝! 장미를 꺾을 땐 바닥이 단풍든 목장갑을, 달아오른 손을 잡을 땐 누군가는 가죽장갑을 추천한다 손뜨개 벙어리장갑이 눈덩이를 굴린다 아기를 안아 올린 산파의 피 묻은 장갑, 죽음을 닦는 장의사의 장갑, 추운 장날 마디 잘린 장갑을 끼고 지폐를 세던 장꾼들, 장갑만 끼면 알통과 근육이 솟는 공사판 남정네들, 삶아 빨아 걸어놓은 푸줏간의 목장갑들…그들은 모두 손의 전신 가장 오래된 戰士는 저기 바닥에 굳은 살 박히고 물때 낀, 슬픔조차 맛깔스런 맨손이라는 장갑을 낀 어머니 손 뜨거운 것 번쩍 들었다 귓불에 대고 호 불던 마지막까지도 벗지 못한 저승꽃 흐드러진 저 장갑이다 수상소감 제4회 시니어문학상에 당선된 것이 기쁘다. 내가 시니어라는 현재를 확인시켜주고, 그리고 응원해 주고, 나아가야 할 길을 확인해 주었다. 이제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詩를 쓰는 것뿐이라는 것을 다시 마음에 새기게 해주었다. 상을 만들어 주신 매일신문의 혜안과 깊은 뜻에 거듭 감사의 인사를 보내고 싶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지난날들을 이끌고 막 도착한 지금을 사는 것이 아닐까. 현재는 지난날의 끝에 매달린 나뭇잎이라는 생각이 든다. 싹을 내밀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그리고 넉넉하게 그늘을 드리운 나무를 보면 나이가 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시니어'는 슬프고 주눅이 드는 이름이 아니다. 뭔가 어수룩하거나 부족한, 나약한 것이 아니다. 빛나는 젊음이 숙성시킨 넉넉함과 그윽함과 신산함과 그 속에 담긴 맛깔스런 관조의 세계를 지니고 있다. 어느 시기나 나름의 특성이 있겠지만, 어느 시기도 갖지 못한 그 나이의 향기를 지니고 있다. 바로 이것이 삶으로서의 文學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문학소년 문학소녀 이었던 그 젊음이 숙성되어 晩年의 문학으로 피어날 것이기에 반려문학으로서, 그리고 삶의 진솔한 땀이 담긴 만년의 문학을 꽃 피우고 싶다

2018-07-25 16:32:48

여호진 씨

[2018 매일시니어 문학상] 시 당선작 - 여호진 '햇반의 온도'

햇반의 온도 어둠과 형광불빛이 통성명을 하는 늦은 저녁 식탁은 벼랑도 없는 사막을 펼쳐놓았다 창문 밖으로 사람들이 유령처럼 흘렀다 나의 취항이 끼어들 틈이 없는 완벽한 레시피 뜨거움 속에 없는 온기를 찾아, 돌아서면 허기가 부풀어 오른다 풍경을 밀어낸 편의점 뒤쪽에서 면벽하는 내일이 된 시간 몸을 있는 대로 구겨 넣은 가파른 등에 방부된 푸른 불빛이 그렁그렁 파문을 그린다 허기의 집은 텅빈 유곽처럼 밤과 함께 깊어진다 피가 따뜻해지는 골목이 있었다 자꾸만 거짓말이 되어가는 오늘의 온도 말고 집밥이라는 말을 따라 조팝꽃처럼 퍼지던 식구들 기억 속의 집은 너무 멀어 발목을 내놓은 채 갇혀버렸다 입김처럼 흩어지는 만개한 적막 온몸에 오돌토돌 열꽃을 피운다 제풀에 익은 꽃이 물집처럼 터지고 늘 공복인 그림자가 뜯겨나간 손톱으로 밤을 할퀴며 선회 한다 꾸역꾸역 나를 파먹고 있다 한 세계를 욱여넣고도 속일 수 없는 허기로 밀폐된 바깥이 너무 멀다 시 – 여호진 '햇반의 온도' - 당선소감 문득, 여고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백일장에서 입상하고 가슴 설렜던 그때 그 시간이 먼 길 돌아 당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찾아 왔습니다. 늦깎이로 시 공부를 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갈등과 방황으로 몇 번이고 접을까도 생각 했지만, 어느덧 詩는 내 삶의 중심이 되어 나를 이끌어가고 있었습니다. 올해도 벌써 하반기를 향해 달리고 있지만, 뜻 있는 한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가족이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같이 공부하며 힘이 된 문우들께도 고마움을 보냅니다. 길을 열어 주신 대구매일 신문사와 부족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2018-07-25 16: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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