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심사정(1707~1769) '딱따구리'

미술사 연구자

비단에 채색, 25×18㎝, 개인 소장 비단에 채색, 25×18㎝, 개인 소장

딱따구리 한 마리가 두발로 단단히 매화나무 등걸을 움켜쥐고 길고 뾰족한 부리로 나무를 쪼아대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우리나라 텃새인 큰오색딱따구리 수컷이 이렇게 생겼다고 한다. 한자로는 탁목조(啄木鳥)이다. 딱따구리의 동그란 머리와 볼록한 배가 선명한 빨강인데 색감이 맑고 청아하다. 홍매화의 짙고 옅은 분홍 꽃잎, 불투명 호분의 새하얀 꽃술, 꽃술 끝의 자잘한 점, 자주빛 꽃받침 등이 나무의 갈색과 어울려 화사하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아 심사정이 색채에 뛰어난 화가였음을 보여준다. 울퉁불퉁한 매화 등걸에 홍매가 한창 피었는데 꽃송이 하나, 꽃잎 두개가 낙화하는 중이다. 떨어지는 꽃잎에서 화무십일홍의 인생철학이 떠오르지만 사실은 딱따구리가 쪼아대서였을 것 같다.

현재(玄齋) 심사정은 고전풍 산수화 뿐 아니라 화훼와 초충 등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화조화도 잘 그렸다. 대부분 채색화이다. 정선을 제외하면 심사정 이전의 사족(士族) 출신 화가들 예를 들면 조속, 윤두서, 조영석 등은 수묵을 주로 다루었지만 심사정은 문인화의 영역에 색채를 들여 놓았다. 이후 김홍도, 신윤복 등 화원화가들이 담채화, 채색화로 현실감 있는 당대의 풍속을 문인화풍의 감상화로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심사정식의 색채 활용법을 계승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선이 진경산수에서, 심사정이 남종문인화에서 색채를 적극 활용한 것은 청나라에서 들어 온 컬러 화보(畵譜)의 영향이 컸다. 17세기 이후 중국에서는 목판인쇄기술이 발전해 색조의 변화가 실제 그림 같은 다색쇄 출판물이 많이 나왔다. 조선에서 활용된 대표적인 컬러 화보는 『십죽재서화보(十竹齋書畵譜)』(1627년)와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2집(1701년)이다. 화보는 명화 모음집이자 그림 교과서여서 이 신문물은 감상층과 제작층 모두에게 색채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색채 활용에 있어서도 선두 주자였던 겸재 정선과 현재 심사정에 대해 화가이자 미술사학자인 근원(近園) 김용준(1904-1967)은 「겸현(謙玄) 이재(二齋)와 삼재설(三齋說)에 대하여: 조선시대 회화의 중흥조(中興祖)」(『신천지』 1950년 6월)에서 이렇게 썼다.

 

대개 그 사(師)를 배우면 그 사(師)의 필기(筆技)가 어느 정도 배어드는 것이 범수(凡手)들 의 항례인데, 겸재를 배운 현재의 화법에 겸재적인 경향이 일호반사(一毫半絲)도 없다는 것은 실로 현재를 위하여 대행(大幸)한 일이요, 겸재를 위해서도 다행(多幸)한 일이다.

 

'딱따구리'가 정치학자이자 미술사학자인 동주(東洲) 이용희(1917-1997)선생이 애장하시던 그림이라는 사실도 의미 깊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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