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섭의 북한기행] 1. 가깝고도 먼 북녘 땅

여행자보험이 안 통하는 북한여행
북한에서 사진 함부로 찍다간 낭패

 

평양시 대동강변과 김일성 탄생 70돌을 기념해 조성된 주체사상탑. 평양시 대동강변과 김일성 탄생 70돌을 기념해 조성된 주체사상탑.

 

권용섭은 1958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40년 간 한국 산야를 그리며 국토기행을 해왔다. 독도화가라는 별칭을 가진 그는 2004년 미국으로 건너가 독도 그림으로 지구촌 20개국을 기행했다. 그가 다녀온 북녘땅 이야기를 남·북간 화해 분위기 속에 그의 수묵화와 함께 싣는다.

 

평양시 대동강변에서 주체사상탑과 평양시가지를 화폭에 담고있는 권용섭 화가. 평양시 대동강변에서 주체사상탑과 평양시가지를 화폭에 담고있는 권용섭 화가.

 

◆궁하면 통한다

방북신고를 한 L.A 총영사관에서 출발 3일을 앞두고 연락이 왔다. 여권이 1회용이어서 효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평양 방문 시도였다. 1만5천km의 유라시아를 달려 북한을 통과한다는 마라토너를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실은 젯밥에 관심이 컸다. 첫 방문에서 못다 본, 감질난 북한의 풍경과 만수대창작사를 스케치하려는 생각이 앞섰다.

총영사관의 연락을 받고서야 아차 싶었다. 지난번 출국 때 만기 여권을 쓰고 공항에서 받은 응급여권을 방치한 탓이었다. 경유지인 중국 비자도 받지 못해 절차가 복잡해졌다. 이미 북한 고려항공은 예약돼 있었다. 요행과 행운을 기대하며 모험을 강행했다.

베이징에 도착해 곧바로 북한대사관으로 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 령사부' 앞에 섰다. 하필 10월 10일이었다. '10월 10일 공산당 창건기념일'이라는 안내문과 함께 문이 닫혀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낭패였다.

이튿날 새벽같이 대사관으로 다시 달려갔다. 우리 일행이 입북 명단에 올라오지 않아 비자발급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유인 즉, 마라토너의 입북이 불허돼 우리까지 퇴짜를 맞은 것이었다. 내일자로 예약된 고려항공 일정과 평양 체류 일정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머리가 복잡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기지를 짜냈다. 방북 사유 변경 신청을 했다. 마라토너 응원차가 아닌, 북한의 비경을 퍼포먼스와 함께 그리는 문화활동을 하러 간다고 했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일정이었다. 돌아가더라도 언젠가는 갈 수 있으리라 마음을 다잡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렇게 빠를 줄이야. 다음 날 유엔북한대표부에서 방북이 승인됐다는 통보가 왔다.

여권 만기에, 복잡한 일정에, 중국 비자가 나오느니 마느니 했던 기억이 씻은 듯 사라졌다.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게 말끔하게 해결된 것이었다. 얼마나 들떴던지 함께 가기로 한 일행들보다 우리 부부가 먼저 공항에 도착했다.

누군가 나의 수묵 속사 퍼포먼스를 보고 '권화백 손은 보물'이라며 보험에 들라고 장난스레 말했다고 아내에게 전하니 아내는 "여행자보험을 들어볼까"라고 했다. 인천공항 안에 있는 보험사로 향했다.

"여행지가 어딥니까?"하는 질문에 대답을 망설이는 사이 직원이 재차 물어온다.

"어느 나라 가세요?"

"평양요."

직원이 고개를 들고 쳐다보며 다시 물어왔다. "네?"

"북한가요..."

"거...기...는 보험이 안 되는데요."

아내가 돌아와 내게 전했다. "평양은 보험이 안된대."

 

늘 그렇듯 우리의 기행은 하늘만 믿고 가는데 이번에도 스릴있는 여행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자꾸 다니면 길이 나겠지. 앞으로 북한 여행이 봇물처럼 터질 것이라 믿고 평양 길을 미리 밟아보자는 사명감도 함께 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지

"야! 거 태양산 찍은 거 아냐!"

깜짝 놀란 아내가 뒤로 돌아보며 "산이 어딨어?"라고 했다.

평양 '로동신문사' 앞에서 생긴 일이다. 우리 부부는 평양 한복판에 있는 '해방산호텔'에 투숙하고 있었다. 숙소 창문 바로 옆에 신문사 정문이 훤하게 비쳐 보였다. 정문 위에는 김일성 부자 사진이 있었는데 사진에만 집중되는 환한 조명이 신묘했다. 겨울아침 김일성 부자 사진을 비추는 조명을 보며 눈을 떴다.

잊히지 않는 광경을 담고싶었다. 호텔에서 나가 신문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아내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졌다. 우리와는 몇 걸음 떨어져 있던, 차에 앉아 있던 어르신께 촬영을 부탁했다. 어르신은 왠지 망설였다. 나는 재촉했다.

 

"아저씨 빨리요."

어르신이 서툴게 두어 컷을 찍는 순간 어디선가 갑자기 검은 옷을 입은 젊은이가 고함을 쳤다.

"야! 거 태양산 찍은 거 아냐!"

그러자 어르신은 황급히 사진을 지우자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어르신이 찍은 사진 하나를 지웠다.

"내래 두 번 찍었는데요."

어르신의 자백에 두 번째 사진까지 지우고 나니 앞서 내가 찍은 사진이 화면에 떴다. 아내의 독사진이었다. 그것도 지우라는 어르신의 말을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이건 선생이 찍은게 아니고 내가 찍은 것이기 때문에 안 지울래요. 아저씨! 수령님은 반듯하게 잘 왔으니 일 없을겁네다."

북한에선 거리의 건물에 붙어 있는 '수령'의 초상화를 자르거나 훼손해 찍는 것은 큰 죄다. 그리고는 곧장 호텔로 들어와 현지 안내인에게 물었다.

"태양산이 뭐에요?"

"산? 상? 아! 위대하신 수령님이 활짝 웃고 계시는 모습을 '태양상'이라고 하디요. 무슨 일이라도?"

안내인의 말에 나는 "아-니-요" 하면서 도망치듯 숙소로 돌아왔다. 김일성 부자의 사진 쪽으로 카메라만 돌려도 어디선가 나타나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기행 내내 긴장을 풀 수 없는 게 사진 촬영이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지켜야하듯 북한에는 북한식 법이 있다. 저들이 극도로 신경쓰는 카메라보다는 붓을 들고 설치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나는 일찍이 터득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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