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글날이 부끄러운 훈민정음 상주본 은닉

훈민정음 해례본은 조선 세종 28년(1446)에 창제 반포한 훈민정음과 함께 출간한 한문 해설서이다. 값을 따질 수 없는 겨레의 문화유산이다. 현존 해례본은 서울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간송본과 상주에서 발견된 상주본이 전부인데, 상주본의 학술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이다.

훈민정음 상주본 국민 반환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고교생들이 한글날을 맞아 상주의 배익기 씨를 찾았다. 4명의 학생 대표는 훈민정음 상주본을 가지고 있다는 배 씨에게 1천여 명의 상주본 반환 촉구 서명이 담긴 공개 요청서와 손편지 200여 통을 전달했다. 그러나 배 씨는 "학생들의 뜻을 잘 반영하겠다"면서도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앞세웠다.

색종이 등에 쓴 학생들의 손편지에는 '깨어난 상주본, 모두가 마주해야 합니다. 잃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지키겠습니다'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학생들은 "상주본을 공개하지 않는 배 씨가 한글 창제의 정신을 왜곡하고 역사를 역행하고 있는 것 같다"며 "상주본 반환 운동을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배 씨는 상주본은 본인 것으로 국가에 반환할 의사가 없다는 기존 입장을 거듭 밝혔다.

상주본은 취득 경위를 둘러싸고 소송전이 벌어졌으며, 화재로 훼손설이 나돌기도 했다.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배 씨가 1천억원의 보상을 요구하는 등 점입가경의 논란 속에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최근에는 배 씨가 애초 상주본을 훔쳤다는 증언이 거듭 나오면서 의혹을 가중시키고 있다. 현재 상주본의 소유권은 국가에 있다는 대법원의 판결까지 나온 상태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온 국민이 지키고 누려야 할 민족의 문화유산이다. 국보급 문화재를 볼모로 횡설수설과 좌충우돌을 반복하는 행태는 국민적 공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가에 반환 약속을 하고 적정한 보상을 협의하는 것이 옳다. 그것이 온갖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개인의 명예와 실리도 확보하는 길이다. 상주본이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은 역사에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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