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런 괴랄한 눈 같으니…” - 스노볼 드라이브

스노볼 드라이브 / 조예은 지음 / 민음사

폭설로 온세상이 하얗게 눈에 덮혀 있다. 연합뉴스 폭설로 온세상이 하얗게 눈에 덮혀 있다. 연합뉴스
스노볼 드라이브 / 조예은 지음 / 민음사 스노볼 드라이브 / 조예은 지음 / 민음사

민음사가 이어가는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바통을 받은 31번째 작가로 조예은 작가가 등판했다. 기발하면서 괴기스러운, 요즘 말로 '괴랄한' 장면 묘사에 탁월했던 그다. 이번 작품에서도 작가는 꼼꼼하게 장면을 찍어낸다. 읽어갈수록 스틸컷 잔상이 강하게 남는 영화 같은 소설이다.

영화감독으로 치자면 조예은 작가는 재난영화 전문이다. 특히나 위기 상황에서 인간이 괴생물로 변해가는 과정에 공을 들이는 감독이다.

작가는 저주 같은 자연재해를 맞는 인간이 집단 멘붕에 빠지는 단계들을 넉넉히 표현한다. 난데없는 기시감이 몰려온다. 젤리를 먹은 이들의 온몸이 녹아 흘러내려 놀이공원을 핑크빛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그의 전작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에서 예고된 작가의 능력이다. '스노볼 드라이브'는 그 덕분에 이미지 변환이 빠른 소설이다. 영화로 즉시 각색해도 흡족하리만치 친절한 묘사다.

스노볼의 모습. 움직일수록 눈이 내리는 구조다. 스노볼의 모습. 움직일수록 눈이 내리는 구조다.

가상의 도시 백영시에 있는 백영중학교 동기 백모루와 이이월의 시선으로 소설은 진행된다. 이들은 중학교 졸업 이후 한동안 만나지 못한다. 모루, 이월 두 사람의 시선으로 각 장이 나뉘어 서술되는 게 애초부터 필수 장치였던 까닭이다.

소설에서 사건의 본격적 전개는 이들의 중학교 졸업 이후, 그러니까 고교생이 된 뒤 일어난 자연재해부터다. 그러나 문제의 자연재해는 이들이 중2 때인 2017년 6월 12일에 앞서 있었다. 초여름임에도 하늘에서 하얀 게 내리니 눈일 거라 여겼다. 착각이었다. 과학자들이 분석해 보니 수분을 흡수하는 조리김에 하나씩 들어있는, '먹지 마시오'라는 강력한 경고문이 쓰였음에도 자주 봐서 친숙한 흡습제, '실리카겔' 같은 게 온통 쌓인 것이었다. 짐작했겠지만 이상 기후, 그리고 지구 종말이 키워드다.

실리카겔 실리카겔

소설 전개상 위기는 필수다. 정체 모를 물질이 피부에 닿자 사람들은 가려워하며 고통스러워한다. 심지어 피부가 붉게 변하고 일부는 피를 토하기도 한다. 정체불명의 이 물질은 태우지 않으면 사라지지도 않았다. 흡습제가 몇날 며칠 내리 내리니 물이 말라갔다. 식수 부족 등 불편이 잇따랐다. 등교는 언감생심. 학교에 가고 싶다며 아이들이 아우성치던 지난해 우리의 모습과 겹친다.

작가는 소설 제목에서 쓰인 스노볼을 독자에게 미끼와 복선으로 쓰며 밀당을 시도한다. 스노볼의 복선은 일찌감치 작동한다. 모루의 이모가 실종 직전 갖고 있던 스노볼, 이월의 새엄마가 취미로 모으던 스노볼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온종일 눈이 내리는 갇힌 세계, 스노볼의 이미지를 문득 떠올린다면 소설 내용의 반쯤은 이해하고 읽는 셈이다.

코로나19 기원을 밝혀내기 위해 중국을 방문하고 있는 세계보건기구(WHO) 조사팀이 방호복을 입고 우한에 있는 허베이성 동물질병통제예방센터 내부에 모여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기원을 밝혀내기 위해 중국을 방문하고 있는 세계보건기구(WHO) 조사팀이 방호복을 입고 우한에 있는 허베이성 동물질병통제예방센터 내부에 모여 있다. 연합뉴스

나머지 반은 모루의 이모, 유진이 쥐고 있다. 이 소설의 실질적 제목은 '이모를 찾아서'에 가깝다. 추리소설적인 요소까지 바라서는 곤란하지만, 아쉽게도 이모의 행방을 추측하는 과정은 적잖이 생략됐다. 혹시, 속편이 나오는 건가 싶은 추측도 무리는 아니다.

한편 '스노볼 드라이브'에서 백영시는 원래 쓰레기 매립지가 있었다는 이유로 전국에 내린 눈을 모아 소각하는 특수 폐기물 매립지역이 된다. 소설 속 백영시민들도 전국의 모든 괴설(怪說과 怪雪)을 받아내야 했다. 방독면, 방호복을 갖추지 않고는 바깥으로 나갈 수조차 없었다. 마스크 착용이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얼마나 손쉬운 방역법인지 상대적 편이성을 간접체험하는 대목이다.

주인공들은 특수 폐기물 매립 센터에서 성인이 돼 재회하고, 모루의 이모 유진의 행방을 찾겠노라며 영화 '델마와 루이스' 같은 드라이브에 나선다. 열린 결말이라지만 해피엔딩에 가깝다. 236쪽.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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