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멋대로 그림읽기]전옥희 작 '時間과 膳物-침묵과 기다림'

세월의 흐름을 이러한 기호로 표현하고 싶었을 지도

전옥희 작 '時間과 膳物-침묵과 기다림' 486.6cm×130.3cm (2020년)

 

'타인유심(他人有心) 여촌탁지(予忖度之)'란 '다른 이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린다'는 의미로 맹자가 시경의 구절을 예로 들어 양혜왕을 설득하려는 장면에 나오는 말이다. 그림읽기에서 웬 공맹의 글귀가 뜬금없이 등장하냐 싶겠지만, 남의 마음을 읽어 소통하기란 상당한 내공이 필요한 일임을 강조하고 싶고,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사물을 생략·변형해 단순화하거나 느낀 것을 그린 추상화를 보고 해석해내기란 예삿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20세기 들면서 미술은 다양한 오브제의 실험적인 시도가 있었다. 그 중 한 조류가 '형태로 나타낼 수 없는 것을 표현하거나, 감정, 느낌, 생각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을 캔버스에 옮긴 추상표현주의로, 이는 사물의 단순화를 넘어 마음의 상(像)이나 무의식을 표현함으로써 자유로움을 넘어 자유분방한 조형언어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전옥희 작 '時間(시간)과 膳物(선물)-침묵과 기다림'도 역시 추상 표현주의적이다.

3개로 분할된 화면에 2/3는 블루, 나머지 1/3은 브라운 톤의 바탕색에 세모, 네모, 원, 원뿔형의 기호적인 조형요소가 배치돼 있다. 또 어떤 조형요소들은 드러나 있고 어떤 조형요소들은 숨겨진 채 그 희미한 선만 드러나 있기도 하다. 여기서 문제는 그림을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화가가 이러한 조형요소들을 통해 무엇을 나타내며 어떤 의미를 가지냐는 점이다.

사실 자연 속 사물을 비롯해 사랑, 분노, 기쁨, 슬픔 등 인간의 감정을 표시할 때 세모, 네모, 원 같은 기호나 하트 혹은 날카로운 선들의 표현은 비언어적 추상화(抽象化)의 프로토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옥희는 '時間과 膳物-침묵과 기다림'이란 작품을 통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하게 느껴지는 '시간', 즉 세월의 흐름을 이러한 기호로 당연히 표현하고 싶었을 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시간이라는 무한성과 배치되는 인간 삶의 유한성이라는 모순관계 속에서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성은 어쩌면 너무나 소중한 '선물'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단초로 형체도 없는 시간을 선물로 상정하고 캔버스를 삶의 단면 삼아 그때그때 일어나는 삶의 단상을 포개고 버무리는 작업이 바로 전옥희의 그림이다. 부제로 달라붙은 '침묵과 기다림'은 그리는 행위에 대한 공허감과 언젠가는 다가올 뜻밖의 행복을 향한 은유가 아닐까?

시간의 집적 속에 켜켜이 쌓인 삶의 파노라마를 그림으로 녹여낸 전옥희의 작품은 '삶의 서사'일 수도, '인생일기'일 수도 있는, 전적으로 자신의 삶을 반영한 쉼 없는 작업 행로의 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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