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녹나무의 파수꾼(히가시노 게이고/ 양윤옥 번역/ 소미미디어/ 2020)

내가 남길 것은 무엇인가?

보름달 상념. 배태만 보름달 상념. 배태만

녹나무의 파수꾼(히가시노 게이고/ 양윤옥 번역/ 소미미디어/ 2020)

 

독특한 제목과 저자의 명성에 이끌려 집어든 《녹나무의 파수꾼》 표지에 시선이 붙들리고 말았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게 되는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추리소설은 더더욱 그러하다. 저자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스토리 전개의 느닷없음과 예측의 빗나감을 적절히 활용하여 독자를 사로잡는 남다른 능력의 보유자인 듯하다. 글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찾아오는 의구심이 결국 작가의 치밀한 구성력에 의한 덫이라는 걸 아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온다. 사람 간의 의사소통은 주로 언어로 이루어진다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다가도 자신의 마음을 언어적 표현으로 전달하는 데 한계가 느껴질 때가 있다. 나의 오롯한 마음을 진정성 있게 전달하려면 비언어적 요소가 때로는 필요한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런 생각을 녹나무라는 신비로운 자연물을 이용해 이야기로 풀어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들도 한 번쯤 들어봤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쓴 저자다. 올해로 만 62세인 그는 오사카에서 태어났고 오사카 부립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후 엔지니어로 일하며 틈틈이 소설을 쓰기 시작해 마침내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런 이력이 우리 보통 독자들도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부푼 희망을 준다. 그는 작품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또 다른 희망을 준다. 사회문제를 다루는 추리소설을 쓰면서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거침입, 기물파손, 절도미수 혐의로 유치장에 수감된 나오이 레이토, 그 위기상황에서 그가 알지도 못하는 이모님이 보낸 변호사가 찾아와 느닷없는 제안을 한다. 감옥에 가지 않도록 해 줄 테니 그 대신 녹나무 파수꾼을 맡으라는 거였다. 그 나무는 지름이 5미터, 높이도 20미터가 넘고 옆구리에 거대한 구멍이 나있는데, 영험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다들 믿고 찾아온다. 녹나무 파수꾼을 맡은 첫날 밤에 중년의 사지 도시아키가 기념을 하려고 나타난다. 그를 몰래 뒤밟아 온 딸 유미와 레이토가 마주치고 둘이 의기투합하여 함께 유미 아버지의 비밀을 파헤치기로 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친척이 갑자기 내 인생에 뛰어들었다."(225쪽)

 

나무는 대표적인 식물로서 인간을 비롯한 동물처럼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그 대신에 한자리를 오래 지키며 세월을 이겨내는 특성이 있다. 몇백 년, 심지어 몇천 년의 세월을 오롯이 견뎌내어 신비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런 신비감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능력까지도 가지고 있다고 여기게도 했으리라. 오래된 나무에 복을 구하거나 소원을 비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유이다. 그런데 《녹나무의 파수꾼》에서는 나무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행동이 이런 상투적인 생각과는 다르다. 녹나무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녹나무에 소원을 비는 게 아니라 기념이라는 특이한 의식을 치른다. 레이토가 유심히 관찰한 결과, 기념은 주로 그믐날과 보름날 밤에 이루어지고 그 둘 간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인생의 종착점을 의식하고 자식들에게 이것저것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319쪽)

소설 속 곳곳에서 스마트폰, L사이즈 카페라테, 내비게이션과 같은 현대를 상징하는 단어와 녹나무 파수꾼, 기념과 같은 과거를 대표하는 단어가 함께 등장하여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헤매는 우리의 현재를 나타내는 듯하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앞선 세대에게는 자신의 모든 것이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떳떳하도록 살아가라는, 다음 세대에는 앞선 세대의 지혜에 온 마음을 열고 경청하라는 제안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세상을 떠난 후에 일방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살아있을 때 서로 소통하여 사랑을 확인하기를 덧붙여 권하고 싶다.

배태만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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