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예술, 나의 삶]서양화가 양성훈

대구시 동구 파계로 고정마을에 자리한 서양화가 양성훈 작가가 자신의 화실에서 달항아리 그림을 그리고 있다. 대구시 동구 파계로 고정마을에 자리한 서양화가 양성훈 작가가 자신의 화실에서 달항아리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양성훈 작 양성훈 작

하얀 캔버스 위에 유백(乳白), 혹은 회백(灰白)의 달항아리가 덩그러니 있다. 아니 들어앉아 있다는 표현이 더 낫다. 캔버스의 틀을 보면 분명 그림인건만, 그림 속 달항아리는 그려진 게 아니라 달항아리 그 자체가 그냥 무심코 캔버스 안에 놓여 있는 것 같다. 새하얀 바탕에 또 새하얀 색의 백자 달항아리라니! 실재인 듯 그림인 듯 한 번 사로잡힌 시선은 좀체 떼기가 어렵다.

대구시 동구 파계로 고정마을에 가면 '畫家'(화가)가 새겨진 커다란 넓적 돌이 문패처럼 서있는 2층집은 서양화가 양성훈(53)이 10년째 주거를 겸한 화실(1층·180㎡)로 쓰고 있다. 초가을 볕이 따사로운 오후, 작가의 화실에 들면 수십 점의 도자기 그림이 벽면을 채우고 있다. 두 손에 꼭 들어오는 다완부터 호리병 모양의 청화자기 등 그림들은 그를 '달항아리 작가'로 불리게 할 만큼 손색이 없다.

양성훈은 대구 토박이로 계명대 미술대학 서양화과(88학번)를 나왔다.

"어릴 적부터 온갖 공책에 그림을 그리며 놀았고, 크레용이 부족하던 시절 짝꿍이 64색 크레용을 갖고 있는 걸 보고 제보다는 더 그림을 잘 그려야겠다고 맘먹었었고, 중학교 때 미술 선생님께서 그림을 잘 그린다는 칭찬을 듣고 미대진학을 결심, 지금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작가는 대학시절 배경은 추상으로 하고 화면 곳곳에 한 두 개의 작은 구상의 오브제를 넣은 그림에 몰두했고, 재료와 물성에 대한 관심도 많아 아크릴, 모래, 유화 등 여러 면에 거친 실험적 그림을 그렸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양성훈은 1997년 대구 동성로 제일모직 하티스트 4층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때 작품들은 천과 종이 캔버스에 다양한 색채를 이용한 추상화가 주류를 이뤘다.

"선친께서 제가 그림 그리는 걸 반대했습니다. 대학원을 다니며 첫 개인전을 준비했는데 선친이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개인전 도록을 보여드리기 위해 달려갔으나 결국 임종을 못했죠. 그토록 반대한 아들의 그림전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영전 앞에서 참 많이 울었더랬습니다." 작가는 이후에 더욱 그림에 정진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고 했다.

2000년대 들면서 그의 화풍에는 기하학적 도형이 소품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2002년 울산에서 열린 개인전 '기억-그리움'전에는 대형화면에 작은 새 한 마리나 의자 하나가 달랑 등장하는데 이를 본 많은 사람들이 '그림이 참 외롭게 보인다'고 평가했다.

"화가의 작업은 자신의 삶 속에서 나올 수밖에 없죠. 이 시기의 화면 배경은 저의 심상을 드러낸 것이고 그 속에 등장한 외로운 소품들은 사진을 찍어 그림으로 재현한 것들입니다."

한편 그 전 해인 2001년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연 개인전에서는 추상적 화면 한 가운데 감실형태의 또 다른 공간이 자리 잡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양성훈의 화풍에 배경이 사라지면서 옛 물건인 고서화, 그릇, 도자기 등이 등장한 시점은 어림잡아 2000년대 중반부터이다.

"2005년부터 2006년 사이 서울에서 2년 정도 작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국립고궁박물관 도자기전을 관람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좌우 대칭도 잘 안 된 백자 달항아리가 어떻게 사람에게 이런 감명을 줄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작가 자신도 늘 불완전함을 절실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나도 남들에게 그림을 통해 감동을 줄 수 있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에 이때부터 달항아리를 그려보게 됐다는 것이다.

양성훈은 2010년 서울 인사동 통인갤러리와 2011년 대구 동원화랑 개인전에서 백자 달항아리 작품을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선을 보였다.

달항아리 그림은 차라리 문양이 있으면 그리기가 쉽지만, 유회백색의 달항아리는 그 자체가 흰색 계열로 어느 시점이 완성된 시점인지는 작가 스스로도 쉽게 인지할 수 없는 특징이 있다. 아침저녁 자연광의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달항아리 그림은 늘 작가가 신경을 곤두세워 그때그때 달라진 색감이나 형태를 수정하고 덧칠해야 한다.

양성훈의 달항아리 그림은 우선 천 캔버스에 젯소(Gesso)를 칠하고 말리면서 시작된다. 젯소는 석고와 아교를 섞은 회화 재료로 헌 캔버스를 갱생하거나 새 화포의 애벌 처리로 바르는 흰 물감이다. 작가는 젯소를 칠한 캔버스를 다시 사포로 닦는 걸 10~20회 정도 작업한 후에야 백자 달항아리 형태를 뜨고 본격적인 유화작업을 하게 된다. 보통 유화는 두껍고 질감이 투박하지만 양성훈은 오일을 넉넉히 섞어 덧칠을 얇게, 여러 번 올리면서 형태를 잡아간다. 이런 기법 탓에 양성훈의 달항아리는 부분 수정이 안 되므로 그림이 작가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항아리 그림 전체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고 작가의 시력도 많이 안 좋아 지게 됐다.

"예술은 조각을 맞추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없는 조각은 스스로 상황을 통해 맞춰나가는 게 예술이죠. 그러다가 잊힌 조각이 우연히 들어맞았을 때 희열은 고맙기도 합니다."

올해로 양성훈은 모두 25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화가로서 30대와 40대를 지나면서 경제적 부담감과 뭔가 빨리 이루고 싶다는 욕망 탓에 어떤 해는 개인전을 4회나 열기도 했지만 그 결과는 건강 상실이었다. 이제 그는 매사 느긋함을 갖게 됐고 굳이 작가 스스로 화풍의 변화를 강요당하기보다는 작업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화풍의 변화도 온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원래 작가란 늘 현재에 머물기보다 미래를 향한 내면의 꿈틀거림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굳이 화풍 변화를 모색하지 않아도 열심히 하다보면 화풍이 자연스레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까? 최근 그의 달항아리는 유회백색이 아닌 온통 블랙이거나 핑크 혹은 연주색의 작품도 나왔고 언제나 하나였던 달항아리가 다수의 달항아리로 한 화면에 등장하고 있다.

'행도수궁처(行到水窮處·길 가다 물 머문 자리에) 좌간운기시(坐看雲起時·앉아서 구름 피어오른 걸 볼 때)'라 했다. 양성훈의 백자 달항아리는 어디서 머물러 어떻게 바뀌어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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