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대구는 ‘사람을 기르는’ 도시다 / 서성희

서성희 대구영상미디어센터장

서성희 대구영상미디어센터장 서성희 대구영상미디어센터장

지난주 대구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규모가 큰 영화제작 지원 사업인 '대구다양성영화 제작지원 사업' 결과가 발표됐다. 지역 영화 창작자들의 희비가 엇갈린 가운데 축하와 격려, 위로가 오갔다. 특히 장편을 제작하려는 감독들에겐 생존이 걸린 치열한 몸부림이라 더 만감이 교차했다. 대구는 이미 단편영화 제작 수준이 전국 최고를 자랑한다. 대구는 이제 장편영화 제작이 활성화되도록 시스템을 강화하고 전환해야하는 시점에 와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와 맞닥뜨려 장편영화 제작 활성화의 발판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다행히 대구에는 지금 재능 있는 청년영화인들이 많이 모여들고 있어, 미래는 밝다. 밝은 미래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미래가 없는 도시는 지방 소멸이 일어난다. 지방 소멸은 공간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문화 자원과 공공 자원, 그리고 청년 소멸이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결과적으로 사람을 기르지 못한 도시는 '사람이 소멸하는' 지방 소멸이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대구는 아직 사람을 길러낼 기회가 남아있는 행복한 도시다.

영화 '집으로'는 사람을 어떻게 기르는지 나지막이 들려준다. 7살 꼬마 상우(유승호)는 엄마 손에 끌려 한 번도 본 적 없는 외할머니(김을분) 집에 맡겨진다. 상우는 추레한 데다 말조차 못 하는 난생 처음 보는 할머니에게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상우는 좀체 만족할 줄 모르지만, 할머니는 손으로 가슴에 원을 그리며 손자에게 거듭거듭 미안함을 전한다.

엄마가 떠나고 두메산골 외딴집에 손자와 할머니 두 사람만 달랑 남았을 때, 가장 곤란한 문제는 소통의 부재였다. 상우는 프라이드치킨을 말했는데, 할머니는 백숙을 끓인다. 둘 사이의 소통 부재는 "개구쟁이 일곱 살, 엄청 연상녀와 귀(?)막힌 동거를 시작한다"라는 영화 카피처럼, 대구와 영화 창작자의 기막힌 동거와 겹쳐 보인다. 상우처럼 청년 영화 창작자들은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대구가 왠지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진다. 반면에 문화예술 도시로 이름을 쌓아 올린 관록의 도시 대구는 영화라는 후발 분야를 기르는 게 맞는지 갈등도 되고, 검증되지 않은 청년들과의 동거가 조심스럽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은 영화영상 콘텐츠다. 이미지는 모든 것을 삼킨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기존의 문화예술도 영상 콘텐츠로 전환하는 방식을 시도하거나 연구 중이다. 한 개인도 21세기를 살아가면서 영상 분야를 완전히 외면하고 살 수는 없다. 대구는 지금이라도 영화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창작자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적극적이고 긴 동거에 들어갈 비전을 세워야 한다. '사람을 기르는 도시'라는 이미지는 재능 있는 사람을 더 많이 모여들게 하는 지표이다. 사람을 기르는 일은 도시를 살리는 시작이자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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