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대의 우리나라 고사성어] 만경유리(萬頃琉璃) 1605

임종대 (사)효창원 7위선열기념사업회 이사 임종대 (사)효창원 7위선열기념사업회 이사

'만경'은 만 이랑으로 아주 넓다는 의미고, '유리'는 유리처럼 끝없이 반반한 바다를 뜻한다. 바다는 예부터 신들의 영토로 상징되어 왔다. 그것은 하늘이 무한한 수직의 최정상으로 피안이듯이, 바다는 끝없는 수평의 최극단으로 피안이다.

윤선도(尹善道·1587~1671)는 문신이며 시인으로 호는 고산(孤山)이고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에서 '만경유리'라는 시문을 적고 있다.

고산은 18세에 진사 초시에 합격하고, 1628년 별시문과 초시에 장원하여 봉림대군(鳳林大君)과 인평대군(麟坪大君)의 사부(師父)가 되었다. 특명으로 한성부서윤이 되고 1633년(인조11) 중광문과에 급제, 1634년 강석기(姜碩期)의 모함으로 파직되어 해남으로 내려갔다. 이듬해 병자호란으로 왕이 항복하고 적과 화해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를 욕되게 생각하여 제주도로 가던 중 보길도(甫吉道)의 경치에 이끌려 정착하게 되었다.

1651년(효종2) 안정된 생활 속에서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어부가(漁夫歌)' 12장을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가 순한문(純漢文)을 간추려 전문 9수(首)로 개작했다. 이것을 고산이 후렴구만 참작하고 시상을 달리하여 춘사(春詞)·하사(夏詞)·추사(秋詞)·동사(冬詞) 10수(首)씩 40수를 순수 우리말 '어부사시사'를 지었다. 1657년 71세에 벼슬길에 올라 동부승지에 이르고, 서인 송시열과 맞서 유배되었다 풀려나 왕권확립을 위하다 1671년 85세로 별세했다.
제목 '만경유리'는 '어부사시사' 34수에 적시되어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간밤에 눈 갠 후에 경물이 달랐고 야/ 이어라 이어라/ 앞에는 '만경유리' 뒤에는 첩첩옥산/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선곈가 불곈가 인간이 아니로다.

위의 내용을 읽기 편하게 현대어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간밤에 눈 갠 뒤에 경치가 달라졌구나!/ 배 저어라 배 저어라/ '앞에는 유리처럼 잔잔한 넓은 바다'/ 뒤에는 겹겹이 둘러싸인 백옥 같은 산이로다./ 찌그 덩 찌그 덩 어여차./ 아, 여기가 신선이 사는 선경인가? 부처가 사는 정토인가? 인간 속세는 아니로다.

이 시는 비유법과 대구법을 적절히 구사하여 어부의 동작이 눈에 보이는 듯 선하다. 제일먼저 배를 띄우고, 닻을 올리고 돛을 펴고 노를 저으며 찌그덕, 찌그덕 소리에 맞춰 노래를 읊는다. 그리고 돌아와 배를 물가에 세우고, 배를 매어놓고 닻을 내리고 배를 뭍으로 붙여 놓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우리 고전시가에 '어부가'계열의 시가가 상당수 전해지고 있지만 고산의 '어부사시사'는 다른 작품에 비해 매우 시적 감각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예부터 바다 위에 띄운 배는 이별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기다림의 대상이기도 했다. 신라의 박재상의 부인이 치술령에서 동해를 바라보고 남편을 기다리다가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 이야기는 '만경유리' 위에 님을 그리는 염원과 희망의 상징이었다. '어부사시사'의 구송과 '산중신곡(山中新曲' 중에서 뽑은 '오우가(五友歌)'는 고산문학의 꽃이다.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 안에 있다는 말처럼 고산은 '만경유리'라는 언어를 통해 수직적 심미와 수평적 피안을 멋지게 읊고 있다.
(사)효창원 7위선열기념사업회 이사

관련기사

AD

문화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