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스토리텔링 문화공모전 수상작/ 단편소설 대상 '도깨비의 금강주(金剛酎)'

도깨비의 금강주 1회 도깨비의 금강주 1회

 

〈전문〉 경상북도와 울진군, 울진문화원, 매일신문이 울진의 문화콘텐츠 발굴을 위해 개최한 '울진 스토리텔링 문화공모전' 수상작(대상, 최우수상) 연재를 시작합니다. 수상작은 작품별로 4회씩 총 8회 매주 금요일 본지 지면에 게재됩니다.

 

대상-도깨비의 금강주(金剛酎) 〈1〉 박효정

초복이 지난 어느 그믐 밤, 은하수가 안개처럼 밤하늘을 수놓자 칠흑 같은 왕피천 골짜기에 새파란 불빛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움직일 때마다 하나 같이 꼬리를 살랑거리는 불들은 제자리에서 휘휘 돌기도 하고 위아래로 움직이기도 하고 깜박거리며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도깨비불이다. 그렇게 소란을 떨며 모인 대여섯 개의 도깨비불은 이내 일렬로 늘어서 긴 꼬리를 끌며 어디론가 이동해 간다. 왕피천 아홉 굽이 골짜기를 내려와 삼포리에 잠시 머물렀던 불빛들은 다시 망양을 지나 남쪽으로 바삐 방향을 바꾸었다. 불빛들이 향한 곳은 평해 월송정. 그곳에는 이미 수십 개의 도깨비불이 월송정 처마자락과 지붕 위를 돌고 있고 마룻바닥에는 사람형상을 한 몇몇의 도깨비들이 저마다 삐딱하게 앉아있었다.

"어~이 조서방 왔는가? 식구들을 다 데려왔구먼."

"엥, 에끼 이 못난 두방아. 내가 조씨 집안이랑 연 끊은 지가 언젠데 아직도 조서방인가?"

불빛이 월송정에 다다를 무렵, 정자에 않아있던 도깨비 하나가 벌떡 일어나 손짓하며 반기자 순식간에 불빛에서 사람형상으로 바뀐 건장한 남자 도깨비 하나가 껄껄거리며 인사를 받아친다.

"히히히 오랜만이네 친구. 그래 요즘은 어디에서 빌어먹는가?"

"응, 요즘. 요즘은 원남면 김씨 집에서 술 밥 좀 얻어먹고 있지."

"히히. 그럼 김서방이네, 김서방."

"그나저나 한 이백년 보고 살았으면 이젠 안 볼 때도 됐는데… 참~말로 우리 목숨이 말가죽보다 질기다 질겨. 히히."

대부분 도깨비는 사람이 쓰든 물건에 피나 정기가 묻어서 태어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물건을 귀물이라 부른다. 이렇게 태어난 도깨비들은 귀물에 그 흔적이 없어질 때까지,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백 년을 살게 된다. 그리고는 서로를 현재 살고 있는 모습으로 부른다.

"쫄매, 장대기, 이대감 너들은 언제 왔노?"

뒤늦게 도착한 김서방이 일일이 친구들의 이름을 부른다.

"언제오기는, 나는 해떨어지기 무섭게 왔지. 오랜만에 자네들하고 놀고 싶어서. 히히히."

쫄매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히히 쫄매야, 너는 아직 힘도 좋다. 이제 좀 있으면 아궁이에 불쏘시개로 들어갈 놈이. 빗자루 도깨비가 10년 넘게 사는 것은 처음 봤다, 처음 봤어. 히히."

후포항에 사는 장대기가 쫄매를 놀린다.

"엥, 에~이키 이놈! 울진장에서 제일 알뜰하다는 아낙이 쫄매집 아낙인데, 앞으로 이십년은 끄떡없다. 히히히." 쫄매가 유쾌하게 장대기의 말을 받아친다.

"그래, 우리 도깨비들 중에 제일 인물 좋고 말 잘하는 도깨비가 쫄매 아이가 귀물이 싱싱하니 아직 힘도 좋은 기라." 두방이 슬쩍 쫄매 편을 들어준다.

"힘이 좋기는 작년에 나랑 씨름 붙어서 나한테 졌는데. 쫄매는 힘도 쫄매다 쫄매. 히히히."

이대감이 노치지 않고 나섰다.

"그래. 나는 울진 시장 쫄매집에 싸리 빗자루고 이대감 자네는 황소가 끄는 쟁기에 그 집 상머슴 정기가 닿았으니 내가 어찌 자내를 힘으로 이기겠는가? 그래 그 머슴 장가는 갔고?"

쫄매의 말에 우두머리 도깨비들은 물론, 작은 도깨비들까지 깔깔거리며 웃음을 참지 못한다.

대화에서 짐작하듯 쫄매는 싸리빗자루, 장대기는 후포항의 대나무장대, 이대감은 쟁기가 귀물이며 두방은 도끼, 김서방은 큰 항아리가 자신들의 귀물이다.

"그래, 요즘 너희들이 사는 마을은 어찌 돌아 가노?" 김서방이 물었다.

"아이고 말도 마라. 사방팔방 보리 흉년에 고깃배까지 매일 빈 배다. 거기다가 우리 고을에 괴질이 들었다카네."

"에이 염병할, 사람 세상 괴질이 도는 거 하고 도깨비하고 무슨 상관이고?"

쫄매의 말에 장대기가 퉁명스레 쏘아 붙인다.

"어허! 인정머리 없이, 그런 소리 마라. 그건 그렇고 김서방, 조가네 집은 왜? 한 몇 년은 잘 얻어먹겠더니." 두방이 김서방을 안부를 물었다.

"조씨? 히히히. 조씨 집안 삼대독자 아프다 해서 내 조금 조금씩 처방을 일러주며 땟거리 해결하고 있었건만 못된 무당을 만나 재산은 다 탕진하고 그놈의 마누라가 그만 내 정체까지 알아버린 기라."

"어잉? 그래서 어쨌노?"

두방이 깜짝 놀라 묻는다.

"우짜기는. 마침 병도 다 나아가고 마지막으로 술상이나 거하게 한번 얻어먹고 가려 했지."

"에헤~이, 그러다가 술상은 고사하고 말 피나 한 되 박 얻어 덮어쓰면 우짤라고."

귀물에 의존해 생겨나는 도깨비는 조심성이라고는 없고 항상 사람을 놀리고 놀래 키는 재미로 살아간다. 그리고 술과 고기, 떡을 좋아하는데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다는 소리를 할 줄 모른다. 그렇게 사람을 괴롭히고 속여 음식을 얻어먹다 결국 정체가 탄로나면 바로 모습을 감추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속은 것에 분하고 괘씸함을 느낀 사람들이 말의 피를 받아 도깨비에 뿌리면 그 순간 도깨비는 귀물의 흔적과 상관없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쯔쯔쯔, 두방아. 그러니 니가 아직 두방인기라. 아직도 북면다리 밑에 각설이하고 살제? 그래 가지고 언제 찌그러진 갓이라도 한번 써볼래?"

"아이고, 먼 소린지 모르겠다. 하던 말이나 계속해봐라."

김서방은 두방의 채근에 턱을 당기고 폼을 잡으며 말을 이어갔다. 다른 도깨비들도 모두 숨을 죽이며 김서방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내가 사랑채에 이렇게 떡하니 안아서 기다리고 있으니 조서방 마누라가 상을 들고 들어왔는데, 그날따라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린 거야. 그래서 내가 물었지 "내가 도깨빈 줄 알면서 오늘따라 어찌 이리 상이 푸짐 하오?" 하고 물으니, 그 여인이 말하기를(김서방이 개구진 표정으로 여인의 흉내를 내며 말한다) "저는 이미 오래전 선달님이 도깨비인줄 알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두려웠지만 조선 팔도 의원들도 모르겠다는 서방님의 병세가 선달님을 뵌 뒤로 날로 차도를 보이고 있으니 은인도 이런 은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찌 선달님이 도깨비로만 보이겠습니까?"하는 것이여. 그러더니 그동안 가진 전답 다 팔고 이게 마지막 밥상이라며 고맙고 미안하다고 팔을 이만큼, 이~만큼 이나 펼쳐 나한테 큰절을 하는 것이야. 자네 사람한테서 "선달님~"소리 들어봤는가? 그리고 절 받아봤는가? 그것도 큰절, 히히히."

"그래 자네는 그러고 어찌 했는가?"

두방이 물었다.

"어쩌긴 어째. 일단 차린 밥상 다 먹고 술상까지 거하게 먹었지."

"에잉~ 참 야속하다 야속해, 그깟 병 좀 고쳐주었다고 양심도 없이 가난한 선비집안을 그리 훑어 먹듯 등쳐먹을 수 있는가?"

두방이 실망했다는 듯 핀잔을 준다.

"어허 말조심하시게. 내가 그렇게 염치없는 도깨비라면 자네들하고 뭐가 다르겠나?"

김서방은 목에 한끝 힘을 주더니 이내 어깨를 덩실덩실 거리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누가 나쁜 도깨비 봤는가. 누가 사악한 도깨비 봤는가. 알고 보면 겁 많고 성질 급해 복을 못 봤을 뿐. 도깨비는 선하면 복을 준다네. 어질면 친구한다네. 아프면 의원만 약 주는가. 우리도 아픈 이 약 줄 수 있다네. 모르면 선비에게만 묻는가. 지혜는 선비보다 도깨비가 한 수 위라네. 세상사람 걱정 중에 돈 걱정 많지만 제물이야 도깨비만큼 가진 자 누가 있는가. 도둑놈에게 도둑질한 돈, 투전판에서 장난친 돈, 탐관오리 급박주고 뺏은 돈, 돈, 돈. 사람 세상 착하고 필요한 돈보다 나쁜 돈이 더 넘친다네. 도깨비는 이돈 다 모아도 쓸 곳 없으니. 어질고 선한 내 친구여 웃으시오. 웃고 또 웃으시오. 금은보화 도깨비는 쓸 곳이 없으니 친구에게 다 주고 가겠소. 싹싹 긁어 다 퍼 주고 가겠소."

김서방의 노래 한 자락이 채 끝나기도 전 흥을 주체하지 못한 도깨비들의 일대 연회가 시작되었다. 불들이 몇 모여 순식간에 커다란 불탑이 되고, 작은 불빛 수십 개가 주위를 빙빙 돌며 흥을 돋우기 시작한다. 불빛 아래에서는 또 수십의 도깨비들이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춤을 춘다. 김서방의 노래를 받아 두방이 흥을 이어간다.

"김서방, 김서방, 이 잘난 도깨비야. 두루마기 걸쳐 입고 갓은 삐뚤 하니, 잘난 사람행세만 하는 줄 알았더니 지혜는 선비요. 처세는 신선이로다. 어미 없이 생겨나고 시기 질투하는 심보가 없어 사주팔자 없는 줄 알았더니 사주는 없어도 도깨비 팔자는 있구나.

선하고 담대한 여인 청상을 면하게 하고 가난한 부엌에 분명 가마솥 가득가득 엽전을 채워주었으니 누가 김서방을 욕보이리오. 누가 도깨비를 욕하리오. 김서방이 사또놀이하면 두방은 이방하고, 12고개 골짜기마다 김서방이 집을 짓는다면 무쇠도끼 다 닳도록 두방이 도편수 하겠네. 삼일 살든 삼백년 살든 도깨비 일생 허하고 배고파도 도깨비 때문에 병 얻은 이 없고

도깨비 때문에 굶어 죽은 이 없으니 도깨비 팔자 그리 나쁜 팔자는 아니네."

두방의 노래가 끝나고 또다시 노래는 다른 도깨비들의 목소리로 이어져갔다. 어떤 도깨비는 단아한 여인의 모습으로, 또 어떤 도깨비는 스님, 양반, 상인, 백정 등의 모습으로 시시때때로 둔갑하며 깔깔거렸다. 저마다 살고 있는 이야기들을 하는 듯, 한여름 밤 도깨비들의 연회는 한 순간도 흥이 가실 줄 몰랐다.

관련기사

AD

문화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

기획 & 시리즈 기사

[매일TV] 협찬해주신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