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왜 식민지 역사를 외면하나?…'역사 피로감'의 실체

[책]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이영채·한홍구 지음/창비 펴냄

지난해 12월 27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부산 출신 이옥선 할머니가 박근혜 정부가 체결한 한·일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합의 발표가 위헌임을 확인해 달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 선고 관련 뉴스를 시청한 후 발언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강일출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 할머니 29명과 유족 12명이 한국 정부의 위안부 합의 발표가 위헌임을 확인해 달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을 각하 결정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7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부산 출신 이옥선 할머니가 박근혜 정부가 체결한 한·일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합의 발표가 위헌임을 확인해 달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 선고 관련 뉴스를 시청한 후 발언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강일출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 할머니 29명과 유족 12명이 한국 정부의 위안부 합의 발표가 위헌임을 확인해 달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을 각하 결정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출판계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던 '반일 종족주의'에 정면으로 맞선 신간이 출시됐다.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은 '반일 종족주의' 수요 현상의 실체는 일본 우익세력이 주도하는 역사수정주의가 한국에 수출된 뒤 일본 자본에 의해 다시 역수입돼 일본 내 역사수정주의의 부활에 이용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이 책은 야스쿠니 신사, 전후 협정 등 일본 근현대사의 핵심주제를 파헤쳐 일본 우익세력의 왜곡된 주장을 드러내면서 일본 전체를 '악의 세력'으로 매도하기보다는 일본 내 양심세력과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왜 식민지 역사 외면하나?

책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 표지 책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 표지

일본 내에 팽배한 '역사 피로감'이라는 말은 주로 일본 우익세력의 입에서 나오지만, 일본인 다수의 정서를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전쟁이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일본인마저 '일본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이는 일본 정부가 한일 역사 문제 해결 과정에서 자국에 곤란한 사실은 숨기는 등 이중적인 여론 작업을 한 결과물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일본은 여러차례의 사죄 기회를 저버림으로써 역사를 반성할 기회마저 잃고 말았다. 도쿄재판,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1965년 한일기본조약 등 식민지배 사과와 배상이 이뤄질 수 있는 기회마다 일본은 매번 책임을 회피하면서 오히려 식민지배를 부정하는 논리를 펴고 '사죄할 일이 없다'고 굳게 믿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위안부 역사를 보편적 인권문제로 바라보지 않고 자국에게만 유리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일본 우익세력의 편협한 종족주의가 극명하게 드러내는 대목이다. 특히 '반일종족주의'는 위안부 문제와 식민지 시기의 경제발전에 대해 일본 극우세력의 입장을 베끼다시피 했다고 책은 지적하고 있다.

1일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왼쪽) 등 반일동상진실규명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태극기와 일장기를 들고서 수요집회 중단과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주장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일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왼쪽) 등 반일동상진실규명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태극기와 일장기를 들고서 수요집회 중단과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주장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돌아온 일본 극우세력

일본에서 다시금 극우세력이 패권을 장악한 것은 90년대 이후 이어진 긴 불황과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사태 등 재해의 결과라고 저자는 보고 있다. 대규모 재해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 일본에 '위대한 일본의 재건'을 주창한 아베 총리가 등장하면서 '강한 일본'을 동경하는 일본 국민들의 제국주의적 노스텔지어를 자극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진보적 사회운동은 명맥을 이어오고 있지만 보수를 대신할 새로운 사회 비전을 제시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사회당‧민주당 등 제도권의 야당 세력은 동일본 대지진을 거치며 해체하거나 군소 정당으로 전락했고, 안보투쟁 등 주요한 계기가 되었던 사건들에서 패배해온 역사도 대안세력을 더욱 위축시키고 말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정치적 대안을 갈망하는 일본 국민의 이성적이고 진보적인 선택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일본의 민주주의의 회복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저자는 전망하고 있다.

8일 서울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1421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한 참석자가 수요집회 28주년을 알리는 케이크를 들고 있다. 1992년 1월 8일 처음 열린 수요시위는 오늘로 28주년이 됐다. 연합뉴스 8일 서울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1421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한 참석자가 수요집회 28주년을 알리는 케이크를 들고 있다. 1992년 1월 8일 처음 열린 수요시위는 오늘로 28주년이 됐다. 연합뉴스

◆한일 관계 해답은? 결국 '연대'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던지고자 하는 질문은 결국 '오늘날의 한일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이다. 우리에게 남은 희망은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 시민세력과 연대를 맺는 것 뿐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우리가 잘 몰랐던 일본 사회의 내면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을 바탕으로 그들과 연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재일조선인 문제 등 우리에게도 중요한 문제가 일본 사회의 변화와 직결되어 있으며, 촛불혁명을 거친 한국 사회운동과 지역사회 운동에서 단단한 경험을 가진 일본 사회운동이 서로의 부족한 점을 충분히 보완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게 일본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잠시 고민해보자. '동반자' 혹은 '라이벌'과 같은 단편적인 단어로는 한일 관계를 정의하긴 힘들다. 다만 확실한 것은 우리가 일본을 포기한다면 미국·중국 등 강대국의 대립에 끼어 영원히 분단을 강요당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반목·갈등을 넘어선 협력·연대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다.

근대사 문제가 한일관계의 위기가 된 지금이야말로 오히려 양국 시민사회의 연대를 새롭고 공고하게 다질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88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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