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음악, 좋아하세요?/ 엄상준 지음/ 호밀밭 펴냄

"스타워즈 4편 클라이맥스, 승리 장면에 팡파르 빠진 것 아쉬워"… 사계절에 어울리는 음악·책 소개

엄상준 저 '음악, 좋아하세요?' 엄상준 저 '음악, 좋아하세요?'

"우리는 모두 호모 무지쿠스(Homo musicus, 음악적 인간)다."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아름다운 음악이 존재하고, 그만큼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도 다양하다. 음악은 삶의 '양념'처럼 인생 뒤편에 배경으로 존재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우리 몸과 마음을 지배하다시피 하는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다.

이 책은 '책과 음악'을 '인류 공동체로 들어가는 유일한 문'이라 얘기한다. 이 두 가지야말로 시공간을 넘어 우리를 보편성에 가 닿도록 돕는 것들이라는 이유다.

◆스타워즈 클라이맥스에 베토벤 '운명' 4악장을

21세기 들어 미국 양대 코믹스 기업 중 한 곳인 '마블'이 '아이언맨', '어벤져스' 시리즈 등으로 영화판을 흔들어 놨다. 이보다 앞선 20세기 최고의 SF 장르 영화를 꼽는다면 단연 '스타워즈'가 높은 선호를 받을 것이다.

특유의 테마 음악과 함께 "아주 먼 옛날 은하계 저편…"으로 시작하는 '스타워즈'는 조지 루카스 감독과 존 윌리엄스 음악 감독의 협업으로 서사와 시각 효과, 음악이 모두 찰떡 궁합을 이뤄낸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 영화다. 저자는 "감독 조지 루카스의 실력을 인정하지만 한 장면에 대해서만큼은 탐탁치 않다"고 지적한다.

'스타워즈 4편'(1977년 나온 시리즈 첫 번째 영화) 중 마지막 공중전에서, 주인공 루크가 탄 X-윙 전투기 계기판이 고장나자 삼라만상의 힘 '포스'에 의지해 임무를 완성하고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제국의 심장에 한방을 먹이는 이 장면에 (아주 작게 들릴 지도 모르지만) 음악이 없다.

시카고 심포니 시카고 심포니

저자는 "내가 존 윌리엄스 급의 음악 감독이었다면 (조지 루카스) 감독하고 싸워서라도 베토벤의 '교향곡 5번 C단조 OP.67' 4악장을 넣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클래식 곡이지만 도입부를 제외하면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곡 '운명' 말이다.

'운명'은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처럼 고난에서 환희로 이어지는 내러티브를 표현해, 베토벤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승리의 서사가 이 곡 4악장에서도 등장한다. 이처럼 끝에 한방을 숨겨 놓은 교향곡을 '피날레 교향곡'이라 하는데, 스타워즈의 해당 장면에 이런 팡파르 정도는 울려 줘야 한다는 것이다.

프리츠 라이너 지휘, 시카고 심포니 연주 '베토벤 운명 교향곡' 음반(1959) 프리츠 라이너 지휘, 시카고 심포니 연주 '베토벤 운명 교향곡' 음반(1959)

저자는 1959년 프리츠 라이너와 시카고 심포니가 연주한 '운명'을 자주 듣는다고 밝힌다. 프리츠 라이너는 1950년대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맡아 이를 미국 오케스트라 '빅5'에 올려 놓은, 타협을 모르는 독재자였다.

이 연주 3악장에서 금관과 더블베이스, 모든 저음역 악기들이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이어지는 4악장의 강력한 한방을 위해 잠시 머뭇거리는 '경과부'가 나온다. 마침내 4악장. 승리를 기원하는 금관의 황금빛 비행이 하강하는 현악기들과 함께 '시원하게 쏟아붓는다'. 마치 이렇게 말하듯. "포스가 함께 하길(May the Force be with you)."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에서 X-윙 계기판이 고장나자 주인공 루크가 포스를 이용,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모습. 영화 갈무리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에서 X-윙 계기판이 고장나자 주인공 루크가 포스를 이용,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모습. 영화 갈무리

◆삶에 대한 긍정적 시각, 음악·책과 사회 현상 엮어 보여줘

방송국 PD인 저자는 20대 시절 달세를 내는 여관방을 전전하며 살았다. 매일 아침 여관방 침대 위에 던져 놓은 책과 CD를 보며 출근했다. '책과 음악'이 있어 지루하거나 외롭지 않았다.

자신이 듣고 읽는 바흐와 셰익스피어를 슈바이처와 체 게바라, 스티브 잡스도 듣고 읽었으리라 생각하며 추운 겨울밤을 보냈다. 조선 시인 윤선도가 전남 해안에서 물·바위를 벗 삼아 '오우가'를 노래하고, 영화 '중경삼림'과 '캐스트 어웨이' 주인공이 각각 비누와 배구공 윌슨을 말동무 삼았듯.

머리가 희끗해진 지금도 저자는 스스로 '인류가 만들어 놓은 숨은 마을을 찾아다니는 여행객'이라 소개하며 좋은 책과 음악을 부지런히 찾아다니고 있다. 책은 지난 3년가량 중앙일보 일요판 '중앙선데이'에 연재한 칼럼 중 40여 편을 골라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어울리는 12곡 씩을 각각의 섹션으로 묶고, 지면에서 채 하지 못한 이야기를 더해 새로이 다듬어 엮은 것이다.

클래식, 국악, 대중가요 등 다양한 명곡을 소개하면서 그와 관련한 책 또는 문학, 일상의 단상, 세상의 이슈를 연관짓는다. 베토벤으로 시작해 모차르트, 바흐, 드보르작, 슈베르트, 쇼스타코비치, 황병기, 강도근, 윤종신, 이문세, 사이먼 앤 가펑클, 레드 제플린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소개하는 곡들의 스펙트럼만큼이나, 각 곡의 특징이나 작곡 배경, 가사 등을 소재삼아 세상과 현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도 넓고 깊다. 이런 이유로 책은 각 음악을 이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는 식견을 조금 더 넓혀 준다. 그 시야는 비판적인 듯하면서도 세상과 삶에 대한 긍정적 믿음을 품고 있다.

"모차르트의 짧은 도약을 들으며 세상의 누군가가, 내가 모르는 공간에서, 또 다른 도약을 꿈꾸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음이 짜릿하고 든든하다. 현실은 언제나 우리를 무겁게 만들지만 우리가 도약의 소망마저 빼앗긴다면 우리에겐 무엇이 남겠는가." 저자의 말이다. 424쪽, 2만2천원.

 

※ 엄상준은

사랑스러운 두 아들의 아빠이며 방송PD다. 생의 절반을 서울 및 인근에서, 나머지 절반은 바다가 보이는 도시 부산에서 살고 있다.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기자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나 일찍 그만두고 좋아하던 음악을 직업 삼고 싶어 라디오 PD가 되기로 결심, 1997년 여름 부산으로 내려왔다. 라디오에서 5년 간 일한 이후 TV 영화·쇼 프로그램 등을 제작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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