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문화예술회관 '2019 올해의 중견작가'전 열어

남학호작 '석심(생명)' 남학호작 '석심(생명)'
이기성 작 '불편한 진실' 설치작품 이기성 작 '불편한 진실' 설치작품
서옥순 작 'Tears 2019-1' 서옥순 작 'Tears 2019-1'

대구에서 활동하는 미술계 중견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해 볼 기회가 왔다.

대구문화예술회관(관장 최현묵)이 지역 중견작가들의 활동을 돕고 작가로서 재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2016년부터 시행해 온 '올해의 중견작가'전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는 40세 이상의 현역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을 추천'선정해 매년 5명씩 각자의 개인전 형식으로 열린다. 올해는 남학호 변미영 김종언 이기성 서옥순이 '2019 중견작가'로 뽑혔다.

이들은 50대 중후반으로 자신의 개성이 뚜렷하고 꾸준한 작품 발표로 예술세계를 구축해왔다.

이번 전시의 취지도 기존 공간보다 더 넓은 발표공간을 제시함으로써 작가의 새로운 시도와 자유로운 해석을 유도, 자기 발전과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제공하는데 있다. 따라서 이번 전시 역시 대부분 최근 제작한 신작을 중심으로 참신한 시도를 대거 선보이고 기존에 비해 대형화된 작품으로 공간과 어우러진 예술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전시기간은 11월 9일(토)까지이며 대구문화예술회관 6~10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문의 053)606-6136

 

◆남학호 '조약돌 시리즈'

'조약돌 화가'로 알려진 남학호 작가의 12번째 발표전이다. 그는 40여년은 줄곧 조약돌 그리기에 천착해왔다. 그의 조약돌 그림은 극사실적 묘사에 뿌리를 두면서도 대상을 재현하는 차원을 넘어 주관적 경험과 내적 세계의 표현을 통해 그림이 주는 울림 효과가 극대화에 이르고 있다. 특히 1,200호짜리 대형 조약돌 작품은 전시장의 바닥에도 그대로 데칼코마니처럼 비치면서 마치 어른거리는 맑은 물속에 있는 조약돌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킨다.

이번에 내놓은 작품들 또한 '석심(石心'생명'이라는 명제로 일관된 연작들로 극사실적 묘사를 통해 작가의 내면과 심상풍경을 암시적으로 표출해 감정이입과 그 생명력에 투사된 기법이 다채롭게 구사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그의 조약돌 그림에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화룡점정의 나비가 등장하고 있다. 나비는 작가에게 잊히지 않는 추억과 그리움의 은유인 셈이다. 돌은 나비를 품고 나비는 행복한 날갯짓을 통해 돌의 생명력과 함께한다. 작가는 돌에 추억, 그리움, 고독 등 마음을 담아 자신을 돌아보며, 나비는 그러한 조약돌 속에서 이상향을 향한 비상을 준비한다.

특히 자연 그대로의 돌을 재현해 그리기보다 흙도 묻고 모래도 묻은, 또는 한 면이 깨지기도 하거나 기형으로 마모된 돌을 세심하게 배치해 돌이 품고 있는 세월의 결을 드러내려고 노력한 작가의 필치와 색감의 조율은 예사의 예술의지가 아님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변미영 '산수 시리즈'

'산수에서 놀다, 산수를 즐기다'는 뜻의 '유산수'(遊山水)시리즈을 제작해온 변미영 작가는 작업을 통해 현실보다 이상을 노래하고 있다. 왕관을 쓴 새, 폭포와 계곡,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꽃과 같은 상징물을 대담한 색채구성과 질감으로 표현하고 있는 그의 작품은 신명이 넘쳐나고 있다.

민화풍의 도상에 만화적인 생략법이 두드러져 있고 화사하면서도 바랜 듯한 중간색조나 단색조의 작품 또한 모든 색이 다 들어 있다는 먹처럼 깊은 맛이 있다.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색채는 작가의 지난한 색채 겹침과 마모를 반복해 가는 과정이 집약된 결과물이며 관객으로 하여금 하나로 단정할 수 없는 색의 오묘한 깊이와 질감은 변미영만이 구사할 수 있는 캔버스 위의 놀이이다.

하지만 그 놀이라는 게 노동의 분량 또한 만만하지는 않다. 외견상 가냘픈 여류작가로 보이지만 화폭 앞에 선 그녀는 거인처럼 오랜 시간과 체력, 집중을 요구하는 '유산수'류의 작품을 그려오고 있지 않은가. 변미영을 보면 예술혼이라는 것은 체형과는 무관한 것 같다.

그래서일까. 변미영의 작품은 자기를 비움으로써 그때그때 걸맞은 작품이 충만하게 재탄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흔히 예술은 자기도취적일 수 있다. 하지만 작가의 '유산수'는 자아의 취향과 전략으로 가득 찬 억지의 '유산수'가 아니라 비우고 지워서 드러난 미지의 '무릉도원인 것이다.

 

◆김종언 '밤의 설경에 빠지다'

구상화가인 김종언은 최근 몇 년간 줄기차게 설경(雪景)을 그리고 있다. 특히 밤이라는 시간의 경과를 그림으로써 독자적인 분야를 열어가고 있다. 그의 설경은 자연 풍경이라기보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따뜻한 삶의 풍경이다. 좁은 골목과 가파른 산동네의 계단, 삶의 고난과 애환이 담긴 곳을 찾아 그곳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러한 풍경을 작가는 직접 카메라를 들고 찾아다닌다.

작가의 그림은 특유의 잿빛 톤이 지배적이다. 절약된 팔레트가 바로 그의 주조색이 된다. 화면은 어둠 속에 가라앉은 사물들로부터, 눈이 덮여 반사하는 빛의 여명 속에 희미하게 드러나는 마을 전경을 무채색에 가깝게 그린 것이 화폭 전면을 차지하고 있다. 그 곳에서는 오로지 가로등 빛, 자동차의 서치라이트 조명 또는 동네 주택가 실내에서 새어나오는 빛 정도로 채색의 전 효과를 대신하고 있다.

그렇지만 화면 속 그 침잠하는 공간의 넓이와 깊이는 관객의 시선을 흡입할 듯 압도한다. 특히 화폭 전체를 장식하는 흰색 물감의 점들인 눈송이들은 원근법적 재현에 의한 공간적 깊이와 화면 표면 사이에서 회화적 충돌과 긴장을 일으키는 뜻밖의 반전을 유도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의 정서를 감싸 안고 포근함과 나아가 어떤 명랑함까지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김종언만의 회화적 표현의 솔직함 덕분이다.

 

◆이기성 '불편한 진실'

물질이 가진 본성을 탐구하고 물질의 본성을 드러내는 시도를 해온 이기성 작가는 최근까지 자성의 힘을 이용해 철가루들의 움직임을 표현한 작품을 선보여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불편한 진실'이라는 주제로 물질을 대면하면서 느끼는 물질의 본성과 이를 보는 사람과의 관계를 탐색하고 있다. 잘려진 나무뿌리와 200여벌의 옷 등 쓸모없는 물질을 다량 설치해 두고 작가의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한 채 관람객들에게 묵직한 물음을 던지고 소통을 시도한다.

쓸모없어 버려진 옷의 이미지는 바닥에 떠다니는 나무뿌리와 의미적으로 연결돼 있다. 전시장에 흩어진 나무뿌리들은 '삶의 터를 포기하고 유랑할 수밖에 없는 난민들'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 바로 이런 은유와 함께 결함 때문에 버려진 옷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절망과 위기에 내몰린 사람들의 흔적으로 읽혀진다. 하지만 관점을 바꿔서 난민을 '어떤 위기 때문에 원지 않게 다른 곳으로 내몰린 사람들'로 규정한다면 우리 모두는 난민이다.

반드시 정치나 종교적 난민이 아니더라도 무언가가 우리를 원치 않는 곳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무도 인식하지 못하지만 도처에 존재하는 이런 존재적 위기를 작가는 '불편한 진실'이라고 부르고 있다.

메타포 가득한 전시공간에서 이기성의 불편한 진실을 대한 관람객들의 표정이 궁금하다.

◆서옥순 '눈물의 의미'

서옥순 작가는 자신에게 솔직하게 자문자답하는 자화상의 변주와 변용으로 자기 작품을 진척시켜왔다. 올해 개인전도 눈물에서 착안한 설치 작품을 보여준다. '눈물에 대한 상념' 나아가 '눈물을 위한 상념'을 전개하고 있다.

작가는 절정의 감정이 표출되는 형태인 눈물을 모티프로 슬픔, 참회, 분노, 말할 수 없는 기쁨 등 자신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경험한 '눈물의 에피소드'를 추출, 자화상의 연장선상에서 작품화하고 있다.

서옥순은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과 삶의 서사 등이 얽혀 표출된 결과로서 눈물을 삶에 밀착된 소재인 천을 이용해 다양한 질감, 색깔, 집적된 형태로 의미와 깊을 드러내고자 하고 있다.

커다란 캔버스 천 위에 눈을 감은 작가의 커다란 자화상이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가볍게 흔들리면서, 또 벽에 걸린 채 똬리를 틀고 동심원을 만든 응축된 커다란 눈동자 조각이 가느다란 눈물 줄기를 통해 관객과 시선을 주고받으면서, 그 눈물은 나에게서 타자에게로 옮겨간다.

서옥순 작가에게 눈물이란 어찌 보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이며 작품은 그러한 생각의 또 다른 이미지화인 셈이다. 애잔한 번민과 갈등, 예술의 향한 청년기 좌절과 방황, 결혼과 유학 등이 겹쳐지면서 포기할 수 없었던 작가의 길은 다름 아닌 눈물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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