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고독과 오독에 대한 에필로그/구석본 지음/시인동네 펴냄

고독과 오독에 대한...표지 고독과 오독에 대한...표지

구석본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고독과 오독에 대한 에필로그'를 출간했다.

구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그동안 시 쓰기보다 세상과 불화에 몰두했다. 그들의 질서 바깥에서 외로웠다. 그 불화와 외로움으로 두 종의 시전문지를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시 쓰기보다는 남의 시를 읽는 데 몰두했다. 여전히 외로웠다. 이제 내 시와 불화할 것이다. 그리고 외로워 할 것이다. 여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한다.

시인이 말하는 '불화'란 아마도 '껍데기가 아닌, 본질로 본질 바라보기'일 것이다. 이번 시집에 실린 작품 ' -새, 이름에는 날개가 없다' 가 시인의 그 마음을 잘 보여준다.

'하늘을 날고 있는 새는 이름으로 분별할 수 없다/ 높이 날면 날수록 그러하다// 까치 백로, 까마귀와 같은 새들은 빛깔과 몸으로 구분되어/ 지상에 앉아 있으면 각자의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 이름에 갇혀 날지 못한다// 까치, 백로, 까마귀들이 이름을 버릴 때/ 비로소 그들의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가 되는 것이다// 하늘 높이 나는 새는 이름이 없다, 한 마리 새일 뿐// 오늘도 나는 이름으로 밥을 먹고, 이름으로 전화를 받고/ 이름으로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쓸쓸하게 집으로 돌아온다/ 때로는 달빛 속을 홀로 걸으며/ 나의 이름으로 너를 부르며 눈물을 흘린다// 누군가로부터 이름이 불리는 동안 나는 날지 못한다/ 이름을 버리지 못한 나는, 대신 날개를 버린 것이다/ 날아오를 하늘을 버린 것이다// 지상의 새처럼 이름 속에 스스로 갇혀 버린 것이다/ 이름에는 날개가 없다.' -새, 이름에는 날개가 없다- 전문.

이름이 없다는 것은 '아무렇게나 불릴 수 있다' 거나 '호명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나아가 '존재 없음'이 될 수도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시인 김춘수의 '꽃'처럼 말이다.

구석본 시인 구석본 시인

청년 시절 구석본은 '이름'을 얻기 위해 애 썼을 것이다. 이름을 얻은 뒤에는 '그 이름'에 갇혀 오도 가도 못했을 것이다. 그 이름이 '꽃(김춘수 식 표현)'인줄 알았는데, '날개'를 친친 감고 있는 쇠사슬임을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알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여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시인의 말)"고 토로하는 것이리라.

구석본은 1975년에 등단했다. 근 45년 동안 낸 시집이 5권이라면 과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름'에 갇혀 비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구 시인은 '이름'을 버리고, 비상을 꿈꾼다. 자타에게 거부감 없이 통하던 '이름'을 버렸으니, 이제 혼돈 속에 '불화'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아마도 앞으로 구 시인의 날들은 '남의 시를 읽는 시간' 이 아니라 '자신의 시를 쓰는 시간'으로 채워질 것이다.

'누군가/ 그어놓은 점선에 갇혀/ 쇳물처럼/ 안으로만 안으로만 끓어오르던/ 그리움이/ 한 생이 다하여 저무는 순간/ 점선 바깥으로/ 왈칵 쏟아져/ 구천으로 흘러가고 있다// 오늘도/ 한 사람의 그리움이 붉은 점선을 그으며 흐르고 있다' -노을- 전문.

시인에게 연대기적 나이는 기준점이 아니다. 구석본은 여전히 청년이다. '그리워하고, 끓어오르니' 그의 피는 여전히 뜨겁다. 피가 뜨거운 사람은 용납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게 많은 법이다. 그래서 청년은 일기를 쓰거나 시를 쓴다.

시집 제목 '고독과 오독…'에 담긴 의미는 '고독을 사람의 의지로 처분할 수 없으며, 오독은 씌어진 텍스트가 아니라 내 마음의 소리'라고 보면 적당하겠다. 이번 시집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가 그러하다.

박동억 평론가는 시집 해설에서 "구석본 시인의 시는 완수이고, 심판이고, 살아있는 자가 닿을 수 있는 마지막 모습"이라며 "시인은 인간이 품는 고독이라는 욕망을 작동시키며, 외로움을 피하지 않고 맞서게 된다. 우리는 더 어두운 고독의 향연을 만나게 될 것이다. 에필로그의 형식으로 말이다."고 말한다. 시집은 모두 3부 59편의 작품으로 구성돼 있다. 132쪽, 9천원

 

▷ 구석본 시인

경북 칠곡에서 태어나 1975년 '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지상의 그리운 섬' '노을 앞에 서면 땅끝이 보인다' '쓸쓸함에 관해서' '추억론', 산문집 '시를 생각하는 마음' '시여, 다시 그리움으로' 등이 있다. 대한민국문학상, 대구문학상, 한국예총예술대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계간 '시인시대'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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