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MBC ‘안싸우면 다행이야’

20년지기 친구와 무인도에 떨어진다면
안정환-이영표 vs 박명수-하하…험난한 곳서 갈등 케미 발산

MBC '안싸우면 다행이야' 포스터. MBC 제공 MBC '안싸우면 다행이야' 포스터. MBC 제공

코로나19의 장기화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무인도라는 공간을 핫플레이스로 만들어버렸다. 대면 접촉을 최소화하면서도 천혜의 자연 속으로 들어가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무인도이기 때문이다. MBC '안싸우면 다행이야'는 무인도의 야생에서 찾는 관계의 묘미를 보여준다.

◆안정환과 이영표가 쏘아올린 작은 공

MBC '안싸우면 다행이야'는 파일럿 방송으로는 이례적으로 8%(닐슨 코리아)라는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끌어 모았다. 사실 기획 콘셉트만으로도 '안싸우면 다행이야'의 이런 결과는 어느 정도 예측된 것이었다. 물론 안정환은 이미 예능의 선수(?)가 된 지 오래지만, 그와 함께 과거 2002년 월드컵에서 이태리전 역전골을 만들어냈던 이영표가 출연한다는 소식은 이 조합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월드컵 이후 안정환은 MBC에서, 이영표는 KBS에서 각각 축구해설위원을 맡아 국제축구경기가 벌어질 때면 이들은 경쟁의 위치에 놓여 있었다. 게다가 두 사람의 해설 스타일은 그들의 다른 성격만큼 달라서 그것만으로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안정환이 해설위원으로서도 할 말은 하는 다소 직설적인 해설을 했다면, 이영표는 꼼꼼하게 전략과 선수를 분석해 내놓는 해설로 주목받았다. 그러니 예능 프로그램에 익숙해진 안정환이라고 해도 그와 성격이 상반된 이영표가 붙어 있는 '안싸우면 다행이야'는 색다른 조합으로 호기심을 잡아 끈다.

핵심은 한때 동고동락하며 국가대표를 이끌었고 해외에서도 활약하며 선후배로서 친한 그들이지만 이들이 무인도라는 다소 힘겨운 상황 속에 들어가게 된다는 점이다. 평시에 깍듯했던 선후배 관계의 평온함은 과연 이 달라진 환경 속에서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예상대로 이들은 힘든 상황에 드러나는 진면목으로 인해 서로 맞지 않아 툭탁대는 관계의 마찰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 부분은 '안싸우면 다행이야'가 가진 예능의 핵심이었다. 친해 보였던 사람들이 불을 피우거나 먹거리를 찾아 나서면서 생겨나는 갈등은 관찰자 시점으로 보면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뭐든 잘 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렇게 야외에 나와서 캠핑을 하거나 불을 피워 무언가를 해먹는 것 자체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이영표는 선배 안정환이 시키는 일들을 번번이 제대로 하지못해 결국 안정환이 모든 노동을 하게 만드는 묘한 '톰과 제리' 케미를 보여줬다. 힘든 일은 선배가 도맡아하게 되고, 그래서 한없이 투덜대는 안정환의 모습과, 마치 깐돌이처럼 뺀질뺀질 선배를 일 시키는 이영표의 모습이 만든 관계의 웃음은 의외로 컸다.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으로 프로그램은 정규행을 일찌감치 확정지었다.

MBC '안싸우면 다행이야' 방송화면 캡처 MBC '안싸우면 다행이야' 방송화면 캡처

◆무인도라는 비대면에 자연인의 일상 겹쳐

사실 '안싸우면 다행이야'가 탄생하게 된 건 코로나19의 여파와 무관하지 않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되고 있는 상황에 무인도는 예능의 성지로 떠올랐다. 공간 자체가 대면을 최소화할 수 있고, 게다가 사방을 둘러싼 바다와 자연환경을 오롯이 예능의 배경으로 가져올 수 있어서다. 무인도는 그 공간 전체를 그 곳에 들어간 이들의 앞마당으로 둘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안싸우면 다행이야'가 주목한 건 그러나 완전히 아무도 없는 무인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그 곳에 사는 한 사람의 자연인이 있는 무인도. 그래야 섬 생활에 익숙지 않은 안정환이나 이영표 같은 이들의 생존기가 다큐가 아닌 예능이 될 수 있어서다.

파일럿 때 찾아간 황도에서 안정환과 이영표는 처음에는 무인도의 삶이 낯설어 힘들어하지만 차츰 그 곳에 사는 자연인의 시각에 맞춰져 간다. 그래서 낚싯대를 던지기만 하면 나오는 물고기나 그저 그물로 훑기만 하면 잡을 수 있는 전복과 성게는 안정환과 이영표의 고생담이 주는 웃음과 더불어 시청자들에게는 하나의 로망처럼 다가오게 만든다.

하지만 정규로 돌아온 '안싸우면 다행이야'에서 안정환과 이영표가 찾아간 제임스 오의 개인섬은 그 인물과 그 섬이 이미 타 프로그램에서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어 아쉬움을 남겼다. 이 프로그램에서 자연인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가장 먼저 MBN '나는 자연인이다'를 떠올리게 하는 아킬레스건이었지만, 무엇 때문인지 정규 방송 첫 장소로 꼽힌 제임스 오의 개인섬은 바로 그 프로그램에 소개됐던 곳이었다. 이후 MBC '생방송 오늘 저녁'은 물론이고,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EBS '한국기행' 등에도 나와 신선함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

이런 약점은 '안싸우면 다행이야'의 핵심이 자연인이 아닌 섬으로 들어가는 두 인물 사이의 케미라는 걸 다시금 상기시켰다. 자연인의 삶에 집중하면 여러모로 타 프로그램들과의 차별성을 찾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MBC '안싸우면 다행이야' 방송화면 캡처 MBC '안싸우면 다행이야' 방송화면 캡처

◆박명수와 하하 출연이 남긴 숙제

이런 약점을 파악했기 때문이었을까. '안싸우면 다행이야'는 안정환을 계속 이어가지 않고 박명수와 하하라는 새로운 인물군을 투입시켰다. 그리고 사실상 이 프로그램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는 안정환을 스튜디오에 출연시켜 이들의 영상물을 관전하며 하는 후토크에 참여시켰다. 두 차례 경험을 했던 안정환이 자신의 경험에 비춰 섬 생활을 마주한 박명수와 하하의 상황을 설명해주는 새로운 관전 포인트가 가능해졌다.

'무한도전'을 통해 오랜 친분을 유지해온 박명수와 하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건 마치 지금은 시즌 종영한 '무한도전'의 향수를 끄집어내는 면이 있어서다. 섬으로 들어가며 점점 굳어지는 두 사람의 표정과 섬에 들어가 돌이 가득한 해변을 걸으며 날카로워진 두 사람이 예상대로 툭탁대기 시작하며 그 갈등 케미가 본격화되었다. 여기에 카리스마 넘치는 자연인이 등장해 다소 퉁명스럽게 대하는 것으로 박명수와 하하를 긴장케 하는 대목도 웃음의 포인트였다. 낙지를 잡으라고 삽을 줬지만 하나씩 부러뜨려 먹는 두 사람이 자연인에게 눈치를 보는 장면은 전형적인 예능의 상황을 보여줬다.

하지만 박명수와 하하가 주는 웃음이 예능 베테랑답게 기대한 것을 보여주는 정도였다는 점은 이 아이템이 남긴 숙제가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자연인에 대한 궁금증이 아니라, 함께 섬에 들어가는 이들 사이의 관계가 핵심이라면 적어도 시청자들이 지금껏 보지 못한 그들의 다른 모습들이 포착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박명수와 하하는 오랜 세월 함께 예능을 해온 그 경험치들이 있어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이 더 많을 수밖에 없었다. 투덜대는 박명수와 만만찮게 깐족대는 하하의 케미는 무인도라는 날 것의 공간에 들어가서도 캐릭터 상황극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안싸우면 다행이야'는 코로나 시국에 맞춰진 비대면 예능으로서 괜찮은 기획이 아닐 수 없다. 무인도라는 섬을 배경 삼아, 평소 친하다 여겨졌던 이들이 그 험난한 곳에서 드러내는 진면목이 진정한 리얼리티를 보여줄 수 있어서다. 그러한 진면목이 만들어내는 갈등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서로 다른 점을 알아가고 맞춰가는 과정이 주는 재미와 의미가 충분히 가치 있게 느껴진다. 중요한 건 헌팅과 캐스팅이다. 어떤 자연인이 사는 곳을 정할 것인가와, 너무 쉽게 예측 가능한 조합이 아닌 색다른 조합의 인물들을 투입하는 것. '안싸우면 다행이야'가 이 숙제를 해결한다면 코로나 시국이 지난 후에도 꽤 괜찮은 예능 프로그램으로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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