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멜로가 현실을 품을 때

SBS 월화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클래식, 멜로 그리고 현실

SBS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현장 사진. SBS 제공 SBS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현장 사진. SBS 제공

SBS 월화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여러 맛이 공존하는 드라마다. 클래식이라는 소재가 가진 묵직한 맛에, 멜로드라마의 달달함과 신맛이 더해졌다. 그런데 더 깊게 들여다보면 그 맛의 기본 베이스는 현실이 만들어내는 씁쓸한 맛이다.

◆클래식, 가을, 멜로 조합은 옳다

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색으로 구분한다면 익어가는 갈색이 아닐까. 가을이라는 계절이 주는 멜랑콜리한 쓸쓸함과 스산함이 어딘지 아픈 멜로에 대한 욕망을 불러일으킨다면 거기 딱 어울리는 드라마가 바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다. 게다가 클래식이다. 가을에 더더욱 깊은 음으로 전해지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의 선율은 멜로드라마의 결을 더 촘촘하게 세워놓는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처음 접하는 시청자들은 극중 주인공인 박준영(김민재)이 어깨에 힘을 모두 빼고 한 음 한 음 쳐내는 듯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피아노 연주만으로도 가슴이 촉촉해진다. 실로 클래식과 가을 그리고 멜로의 조합은 옳다고 여겨지게 만드는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하필이면 '브람스'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당연히 그 유명한 슈만의 아내인 클라라를 옆에서 평생 바라보기만 했던 브람스의 애틋한 사랑을 떠올린다. 드라마는 실제로 도입부에 절친인 강민성(배다빈)이 좋아하기 때문에 옆에서 윤동윤(이유진)에게 말 한 마디 꺼내지 못하고 친구로서 지내온 채송아(박은빈)와, 마찬가지로 절친인 한현호(김성철)와 연인이 된 이정경(박지현)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기만 해왔던 박준영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채송아와 박준영은 그렇게 클라라를 옆에서 쳐다보기만 했던 브람스의 입장을 공유하면서, 그 공감대로 서로를 보기 시작한다. 물론 뒤늦게 윤동윤이 채송아를 좋아한다 고백하고, 이정경이 박준영에 대한 마음을 털어놓지만, 그건 모든 관계를 뒤틀어 놓는 일이 되었다. 결국 채송아와 박준영은 이렇게 뒤틀어진 관계들 속에서 입은 상처를 서로 위로해주며 가까워진다.

이 작품을 쓴 류보리 작가는 클래식을 실제로 전공한 인물로서 멜로와 클래식을 절묘하게 엮어낸다. 박준영이 치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는 사실상 이정경에 대한 그의 마음을 표현하는 곡으로 은유된다. '어린이의 정경'을 좋아해 이정경이라는 이름이 지어졌고, 바로 거기에 수록된 곡이 트로이메라이이기 때문이다. 브람스를 연주하지 않는 박준영이라는 캐릭터는 그 자체로 이정경을 옆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아픈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다. 이처럼 드라마는 클래식 음악이나 음악가들 그리고 악기 등을 통해 멜로가 가진 다양한 결들을 표현한다. 모든 회차의 부제로 연주 속도의 용어들이 사용되고, 실제로 해당 회차의 멜로가 담긴 내용들이 그 부제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건 이 작품이 얼마나 클래식과 멜로를 잘 엮어놓았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SBS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현장 사진. SBS 제공 SBS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현장 사진. SBS 제공

◆멜로에 드리워지는 현실의 그림자

그런데 이 엇갈린 관계들 속에 재능과 부를 가지고 태어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라는 현실적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현실적인 문제들에 휘둘리다 뒤늦게 바이올린이 좋아져 다니던 경영대를 포기하고 다시 시험을 치러 음대에 들어온 채송아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음대에서 '꼴찌'라는 꼬리표가 달린다. 오케스트라에서 몇 번 바이올린의 위치에 서게 되느냐 하는 건 순위에 의해 결정된다. 채송아가 처한 상황은 그래서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에 있어서도 스펙과 순위에 의해 가능과 불가능이 결정되는 현실을 드리운다. 그는 좋아하는 걸 하고 싶고 그래서 바이올린에 대한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지만 음대 교수들이나 클래식 관련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출발선이 다른' 채송아에게 포기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가난하거나 또는 재능이 특출 나지 않다고 '좋아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사회는 과연 건강한 사회라고 볼 수 있을까.

재능이 있다고 해도 가난한 이들은 좋아하던 음악이 생계를 위한 것이 되면서 더 이상 좋아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재능이 있고 콩쿠르에 나가 상을 타 유명해지기도 했지만 더 이상 피아노 연주를 좋아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박준영의 상황이 그렇다. 그는 가난해 경후재단의 지원을 받았고, 심지어 번번한 사업실패로 손을 내미는 부모들 역시 재단과 이정경의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듣고는 절망한다. 좋아서 연주하는 게 아니라 지원 받은 만큼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콩쿠르를 해왔고, 부모들에게 돈을 부쳐주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콘서트를 치렀다. 하지만 그럴수록 박준영은 피아노가 싫어질 수밖에 없었다.

좋아하지만 재능이 없거나 늦게 시작했다고 해서 포기를 권유받는 채송아나, 재능은 있지만 가난해 생계로 피아노를 치다보니 더 이상 피아노를 좋아할 수 없게 된 박준영. 도대체 무엇이 이 청춘들을 이렇게 만든 걸까. 달달한 멜로드라마로 여겼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이 지점에서 씁쓸한 현실을 끄집어낸다.

SBS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현장 사진. SBS 제공 SBS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현장 사진. SBS 제공

◆꿈도, 사랑도 좋아하는 대로 할 순 없을까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의 이면에 놓여있는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현실의 밑그림을 채송아와 박준영의 상황을 통해 끄집어낸 드라마는 여기서 한 차원 더 들어가 음대 교수들의 공공연한 비리 행위들까지 보여준다. 대학원을 가고픈 채송아 같은 학생들의 갈급함을 이용해 갖가지 허드렛일까지 시켜먹는 교수가 등장하고, 이 교수는 심지어 체임버를 꾸려 연주회에 단원들에게 티켓을 강매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실력은 없으면서 권력을 유지하고 누리려는 교수들의 행태는 음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심지어 박준영의 지도를 맡은 교수가 그의 연주를 자신의 이름으로 온라인에 올려놓고 이를 문제 삼자 적반하장격으로 증명할 수 있겠냐는 엄포를 놓기도 한다. 그토록 아름답게만 들리던 클래식에도 이런 아프고도 무거운 현실들이 드리워져 있다는 걸 드라마는 잔잔하지만 진중하게 끄집어내 놓는다.

물론 '음대의 비리'들까지 꺼내놓는 일은 멜로드라마라는 장르적 결과 불협화음을 만드는 면이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클래식을 통한 멜로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 꿈과 사회의 현실까지를 담아내려 한다는 점에서 이 불편함은 어느 정도 감수되는 면이 있다. 즉 드라마는 일관되게 묻고 있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좋아한다'는 건 어떤 의미이고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를.

채송아와 박준영을 통해 이 드라마가 꺼내놓은 소재는 두 가지다. 사랑과 꿈이 그것이다. 이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있고, 자신이 하는 악기와 그 연주를 좋아하고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제시하는 현실에서 그것들은 단지 '좋아한다'는 것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어떤 것이 된다. 좋아한다고 해도 그걸 실현시켜줄 수 있는 건 현실적 조건들이다. 그리고 아프게도 그 현실적 조건의 대부분은 '태생적인' 것들이다. 태어나면서 갖게 된 부와 부모 심지어 재능 같은 것들이 그가 앞으로 좋아하는 것들을 계속 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결정하게 되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밟고 있는 현실이라고 드라마는 얘기한다.

그저 채송아와 박준영이 사랑하게 해주면 안 될까. 아마도 이 드라마를 보는 분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그것이 허락되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이 깔려있다. 뭐든 태생을 눈치 볼 수밖에 없는 지금의 청춘들이 마주하게 된 부조리한 현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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