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예술, 나의 삶]한국화가 권기철

 

한국화가 권기철이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로 팔조령 옛길 도로변에 자리한 2층 건물 화실 '일오처'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화가 권기철이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로 팔조령 옛길 도로변에 자리한 2층 건물 화실 '일오처'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권기철 작 '어이쿠' 권기철 작 '어이쿠'

 

"당신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 "나의 삶 자체입니다."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예술적 행위에 관심을 두고, 재주 또한 다재한 한국화가 권기철(56)에게 예술의 의미를 묻자 대뜸 돌아온 짤막한 대답이 어떤 긴 문장과 웅변보다 절실하게 다가온다.

만춘에서 초하로 흐르는 계절의 변화가 빚어낸 녹음이 눈부신 날.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로 팔조령 옛길 도로변에 자리한 2층 건물(430㎡)은 작가가 2년 전부터 '일오처'(逸逜處'편안하고 깨닫기 좋은 장소)란 이름을 붙여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화실이다. 바깥 환경은 나지막한 산을 병풍삼아 실개천이 흐르고 주변이 조용해 창작활동에 안성맞춤인 것 같고, 안은 벽면에 책과 다관, 턴테이블과 함께 작가의 작품들이 책꽂이처럼 보관돼 있다.

작가는 이곳에서 1993년 봉성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래 화업 35년째를 보내며 유일한 야외 취미인 테니스 외에는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권기철은 안동에서 나서 영주에서 초중고를 거치며 신문배달로 고학을 했고 경북대학교 예술대학(83학번)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5살 때부터 붓글씨를 익히며 먹과 친근해지면서 자연스럽게 한국화는 나의 삶이 됐고 지금까지 그림과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먹은 표현의 깊이와 조형영역이 무궁무진합니다. 한지의 삼투압 작용과 결합하면 제가 반을 그렸다면 먹이 나머지 반을 완성해준다고 할 수 있죠."

세장이 겹쳐진 삼합 한지를 주로 쓰는 작가는 한지의 인장력이 캔버스보다 월등하다고 말했다.

대학시절엔 주로 전통산수와 구상, 인물화를 그렸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뚜렷한 이유 없이 구상작업에 싫증을 느끼게 된다. 아마 그때가 2004년부터 2005년쯤으로 기억했다.

그 전에 그가 한 작업을 보면 구상과 추상이 섞인 작품들이 선보였으며 오브제에서 특이한 건 첼로 같은 현악기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영주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문학과 음악을 좋아했고 특히 음악은 그에게 많은 위로를 줬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는 작업을 하면서 음악을 듣는다. 음악은 그의 작업의 유일한 동반자인 셈이다.

"현악기도 선(線)의 악기지만 서예의 기본 또한 선입니다. 현의 선을 서예의 선으로 고저장단을 표현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권기철의 이러한 음악애호는 1998년부터 12년 동안 대구시립교향악단 포스터를 그리게 되는 계기가 된다. 대구시립교향악단이 한해 평균 20회 정도 연주회를 열었다고 치면 그는 연 20번의 포스터를 그렸던 것이다.

2000년대 중반에 들면 작가는 본격적으로 추상계열의 한국화에 몰두하게 된다. 이때부터 먹과 아크릴물감을 이용한 그의 작업은 먹과 함께 채색이 등장하며 여기에 유화가 섞기기도 한다. 먹의 삼투압 작용에 의한 무작위적 우연의 효과는 추상의 느낌과 맞물려 예술성을 극대화시켰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먹의 우연성을 발현시키려면 화폭이 넓어져야 하고 넓어진 화폭은 작가의 예술적 행위와 취향과도 찰떡궁합을 이루었다. 그의 작품 중 대작이 많은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내 그림은 몸 그림입니다. 온 몸을 이용해 먹의 선을 따라 화면 위를 쫓아가는 게 너무 좋습니다. 작업이 절정이 달하면 옷도 훌러덩 벗고 작업하기도 합니다."

서법에서 유래한 한 일(一)자의 다양한 변형이 조형언어의 기초가 되는 그의 먹 작업은 획을 긋는 행위와는 또 다르다. 그는 먹을 '친다'고 한다. 붓을 떠나 아예 먹통을 들고 화면 위에서 선을 뿌리면서 이뤄진다. 이렇게 작업한 결과는 '권기철만의 먹선'을 보여주는 데 그 먹선은 한쪽은 날카로운 반면에 다른 한 쪽은 먹의 '튕김 현상'으로 인해 예측불허의 조형언어를 창출하게 된다. 먹의 튕김은 권기철 먹 작업의 최고 장점이다.

그의 따르면 먹 튕김의 매력은 작위와 무작위의 조화이다. 우리네 삶이 계획대로 잘 되지 않는 것처럼 의도하지 못한 조형미가 화면에 나타나는 먹 작업은 작가로 하여금 커다란 재미를 가져다준다. '대구문화' '대구문화예술회관' '김광석 길'의 표지 글과 표지 석 글씨가 모두 그가 쓴 작품들이다. 그의 채색화도 서예적인 캘리그래피의 특징을 지니면서 화면에서 선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저의 작가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개인전은 2014년 대구보건대 인당미술관에서 열렸던 전시였죠. 이 전시에서 입체, 설치, 평면 작업을 맘껏 펼쳐 예술의 혼을 불사를 수 있었으며 200명에 달하는 인물화도 함께 선보였습니다."

한국화가 권기철은 15년 전부터 평면 작업 외에도 나무 조각에 입문했고 최근에 철 조각에 관심을 보이는 등 미술작업 전반에 걸친 장르에 도전하고 있으며, 창작의 에너지는 여행을 통해서 재충전한다. 그는 한때 원시의 원형이 잘 보존된 인도를 6번 찾기도 했다. 현재 대구예술발전소에서 입주 작가로 9월 전시가 예정돼 있다.

글 사진 우문기 기자 pody2@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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