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고리오 영감(Le Père Goriot, 오노레 드 발자크, 민음사, 1999)

고리오 영감의 비문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노라’

고리오 영감의 비문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노라'

고리오 영감(Le Père Goriot, 오노레 드 발자크, 민음사, 1999)

목련 목련

숨 가쁘게 읽은 흥분을 잠시 가라앉힌다. 마치 '고리오 영감'이라는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하다. 나는 아직도 깜깜해진 영화관에 앉아 있다. 심장은 뛰고 여러 가지 생각들이 튀어나온다. 죽어가는 고리오 영감은 불쌍했다. 그 곁에 두 딸은 없었다. 무엇이 고리오 영감을 저토록 비참하게 만들었을까. 왜 이 소설의 마지막 대사는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라는 라스티냐크의 말이었을까. 영화 '나이브스 아웃'(2019.12)의 '할런'도 고리오 영감과 닮았다. 부모의 끝없는 지원은 부모의 죽음 앞에서도 죽음 후에도 적나라한 그들의 모습을 드러낸다.

프랑스의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 1799~1850)는 1834년 12월부터 '파리 평론'에 '고리오 영감'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는 진한 커피를 엄청 마시면서 하루에 많을 때는 18시간, 평균적으로 12시간씩 글을 썼다. 고리오 영감을 집필하면서 '인물 재등장'의 기법을 사용하고,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모든 것을 소설을 통해 그려내려는 뜻을 품는다. 발자크 작품에는 그리스로마 신화나 호메로스 등 고대의 흔적이 없다. 그는 자신이 속한 당대와 그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눈길을 쏟았다. 발자크는 그 당시의 파리 사회를 자신의 언어로 그려냈다. 이런 점이 2020년을 사는 우리에게 19세기 소설을 읽고 공감하며, 할 말이 많아지게 하는 건 아닐까.

고리오 영감은 파리의 싸구려 하숙집 '보케르 집'에 살고 있다. 으젠 드 라스티냐크라는 이름의 학생도 하숙하고 있다. 고리오 영감은 제면업으로 큰돈을 벌었지만 두 딸의 행복을 위해 거액의 결혼 지참금을 지불하고 지금은 거의 무일푼 상태이다. 아버지를 창피하게 여기는 딸들을 위해 싸구려 하숙집에 살면서도 두 딸이 낭비한 돈을 메워 주고 있다. 학생 라스티냐크는 가난한 지방 귀족의 후계자로, 영화로운 생활을 꿈꾸는 야심가이다. 고리오 영감의 둘째 딸인 델핀 드 뉘싱겐 남작부인과 사귀게 된다. 고리오 영감은 무일푼이 되고, 딸들이 싸우는 것을 본 후 마음이 아픈 나머지 병으로 쓰러진다. 두 딸은 병문안조차 오지 않는다. 고리오 영감은 라스티냐크와 그의 친구의 간병을 받으며 딸들의 이름을 허망하게 부르기도 하고 저주와 축복의 말을 번갈아 내뱉기도 하다가 두 청년을 딸들로 착각한 채 숨을 거둔다.

산수유 산수유

죽기 직전, 그가 중얼거리던 말은 "아! 내가 만일 부자였고, 재산을 거머쥐고 있었고, 그것을 자식에게 주지 않았다면 딸년들은 여기에 와 있을 테지. 그 애들은 키스로 내 뺨을 핥을 거야!"(p368) '돈'은 자식들을 당장 여기로 불러올 수 있다. 집을 사주고 차를 사주고 더 많은 것을 사줄 때마다 자식들은 올 것이다. 그러나 그건 서글픈 일이다. 부모 자식 간에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랑하는 방법은 사람에 따라 각자 다른 법이요. 내 방법은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소. 그런데 왜 세상 사람들은 나에 대해 말이 많은지 모르겠소."(p162)안타깝다. 고리오 영감, 두 딸을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나요. 누군가 고리오 영감을 읽는다면 나보다 하고픈 말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아직 남은 할 말들은 나 자신에게 할 것이다. 나 또한 누군가의 부모이고 자식이므로.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나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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