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재의 대구음악유사…동동 구리무

"낭감 사소, 낭감" 오전 10시쯤이면 어김없이 능금장수 영감이 우리 동네에 나타난다. 찌그러진 리어 커 판자 위에 능금들이 널려있다. 굵은 것, 작은 것, 벌레 먹은 것, 찌그러진 것. 어디 가서 저런 못난 능금을 떼어 오는 걸까? 저 걸 다 팔아도 몇 푼 안될 텐데 어떻게 먹고 사는 걸까? 이 의문이 오래 동안 내 머리 속에 남아 있었다. 우리 동네 '골목 외침'은 카운터 테너로 시작되고 이어서 '동동 구리무(크림)' 장수가 나타난다. 리어카에 커다란 항아리를 싣고 와서 둥둥 북을 울리면 동네 아낙들이 모여든다. 새 손님도 있고 빈 통 들고 리필을 하기 위해 모이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 좋은 주인은 커다란 주걱으로 크림 통 가득하게 채워주었다. 몽고 간장 파는 사람도 북소리와 함께 등장한다. 능금 , 크림, 간장 장수들은 매일 동네에 나타나는 정규직들이다.

비정기적 무리로는 호랑이고기 행상과 고래고기 파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목청을 호객의 도구로 삼는다. 한반도에서는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호랑이가 잡힌 뒤 멸종되었다고 하는데도 사육한 놈인지 우리 동네는 자주 호랑이 고기를 팔러 왔다. 호랑이 껍질 안에 마른 고기가 붙어 있는데 고질(固疾) 관절통, 신경통에는 최고의 명약이라고 했다. 고래고기는 "서울내기 다마내기 맛좋은 고래고기"라는 노래를 부르며 팔았는데 애들은 피난민 애들을 놀릴 때 이 노래를 많이 사용했다. 밤 외침의 주인공은 '영덕대기(영덕대게)' 사라는 우렁찬 목소리다. 잔뜩 군기 든 이 목소리는 찬 겨울밤의 한기(寒氣)를 더욱 돋운다. 대나무로 짠 크고 네모난 바구니에 찐 대게를 넣고 팔러 다닌다. 찹쌀떡 장수는 몇 년 더 지난 훗날 밤에 나타났다.

"콩나, 두바, 콩나, 두바" 종로 경찰서 앞 안국동 골목에 아침이면 작은 종을 흔들며 영감행상의 소리가 났다. 그 무렵 나는 아직 서울말 초보 시절이라 무슨 물건을 사라는 소리인지 알수가 없어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콩나물과 두부를 싣고 다니며 파는 행상이었다. 희한하게도 대구의 낭감장수 영감과 엇비슷한 높은 음정의 톤이다. 가끔 큰 징을 치며 "뚫어'하고 외치는 사나이도 나타났다. 어깨에는 대나무를 세로로 길게 쪼개 만든 얇은 작대기가 둘둘 말려있고 그 끝에는 헝겊 뭉치가 달려 있었다. 구들을 뚫는다고 했다. "되겠소, 되겠소"하고 다니는 행상도 있었다. 대학생이었던 나에게는 어떤 강단(剛斷) 있는 우국지사가 유신 정권을 이대로 둬도 되겠냐는 힐난(詰難)의 소리 같았다. 등에는 군인들의 "따불 백(Duffel Bag)"같이 생긴 긴 자루를 메고 다녔는데 그 속에 베게 속으로 쓸 재료들이 들어있다고 했다. 즉 "베게 속"사라는 구호였다. 서울번데기 장수는 '뻔뻔'을 외치며 장사를 하고 있었다. 서울의 밤 주전부리는 '찹쌀 떡, 메밀 묵'이었다. 작은 한반도인데도 골목의 노래가 대구와 서울이 이렇게 달랐다.

먹고살기 위한 장사꾼들의 호객 소리는 아코디언이나 색소폰을 불거나 혹은 노래를 부르는 약장수들의 정통 음악으로 부터 그들의 목소리를 악기 삼아 외마디의 단음의 창가(唱歌)를 부르는 사람까지 가지 가지였다. 심심풀이 땅콩이나 오징어를 파는 열차가 김천 역에 서면 "내 딸 사소, 내 딸"하며 딸기 장수 아낙네의 과일 든 바구니가 창문으로 들어 온다. 기차가 대구 역에 도착하면 스피커 소리가 크게 난다. "대구, 대구" 즉 "여기는 대구입니다"라는 말을 거두절미하고 외마디 단음만 외쳐대었다.

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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