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독립운동 이은 '성주 4·2만세운동' 결의한 백세각, 100주년 맞아 재조명

성주군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오는 4월 2일 성주장날 성주만세 운동을 재현할 계획인 가운데 이 행사 홍보물에 독립운동가 김창숙 선생과 백세각이 등장했다. 성주군 제공 성주군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오는 4월 2일 성주장날 성주만세 운동을 재현할 계획인 가운데 이 행사 홍보물에 독립운동가 김창숙 선생과 백세각이 등장했다. 성주군 제공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19년 3월 초순 어느 날 성주군 초전면 고산리의 고색창연한 백세각. 송준필을 비롯한 야성송씨 충숙공파 문중과 그의 문인 수명은 얼마 전 있었던 3.1만세운동을 이어받아 4·2만세운동을 열 것을 결의했다. 이날은 성주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이들은 이곳에서 만세운동 때 뿌릴 독립선언서 3천 장을 복사했다.

3.1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아 3.1운동 및 파리장서 운동과 관련이 깊은 유서깊은 '백세각'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백세각은 3.1운동 당시 공산 송준필을 비롯한 문인들이 성주장날에 배포한 독립선언서 3천장을 복사한 곳이라고 전해진다. 또 경북유림단 파리장서 운동의 모의 장소로도 사용되고, 유림의 궐기를 독려하는 통고국내문을 제작·배포한 곳으로 독립운동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에 이곳은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163호로 지정돼 있다.

백세각은 조선 전기의 문신 야계(倻溪) 송희규(宋希奎)가 사헌부 집의(執義)로 있으면서 명종의 외삼촌인 영의정 윤원형(尹元衡)과 이기(李芑)를 탄핵하다가 귀양살이를 하고 돌아와 1561년(명종 16년)에 지은 제택(第宅)이다.

쇠못을 사용하지 않고 구멍을 뚫어 싸리로 얽었으며, 대패질을 하지 않고 자귀만으로 깎아 다듬어 만든 건물로 알려져 있다.

전체적으로 정침과 별당,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면에 일각 대문을 두고, 주위에 토석 담장을 돌려 영역을 한정하고 그 안의 다소 높은 기단 위에 백세각이 남남동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왼쪽 별곽에는 사당이 있으며 백세각 앞쪽 오른쪽에는 관리사가 각각 자리하고 있다.

정침의 평면은 정면 7칸, 측면 6칸의 '구'(口)자형이다. 정면 7칸 중 동쪽에서부터 헛방, 마구칸이 1칸씩 놓이고 다음이 중문칸이다. 중문칸 서쪽으로는 사랑방 2칸과 사랑대청 2칸을 두었고, 사랑방과 마루 앞쪽에는 툇마루가 놓여 있다. 사랑방 앞 쌍여닫이 세살창문에는 각각 고졸한 구조의 가운데 설주가 서 있다.

이 건물에는 이율곡(李栗谷), 한석봉(韓石峰), 채번암(蔡樊岩)의 친필이 각각 한 점씩 소장되어 있었으나, 한석봉의 친필은 1970년에 도난당했다. 별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대청과 전(田)자형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다.

성주군은 100년 전 4월 2일 일어났던 성주장날 만세운동의 100주년인 올해 4월 2일 당시 만세운동을 재현할 계획이다. 군은 이를 알리는 홍보물에 백세각을 배경으로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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