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매일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소감 심사평

◇ 시 당선작품= 제목: 사과를 따는 일/ 권기선

나는 아버지 땅이 내 것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런 마음을 먹은 뒤부터 아버지 땅에 개가 한 마리 산다 깨진 타일조각 같은 송곳니는 바람을 들쑤신다 비옥한 땅은 질기고 촘촘한 가죽의 눈치를 살피다 장악되고, 과잉되다, 갈라진다 아버지는 땅을 방치하고, 나는 그것을 납치한다 깊은 목젖을 끌어올려 목줄을 뜯은 늙은 개가 간신히 사과 하나를 놓고 엎드렸다 세상 혼자 짊어지려던 남자는 무게를 견디다 어깨가 굽었다 힘은, 무기의 정차역 같았다 엎드린 개가 일어서지 못하고, 사과는 지하의 고요한 관棺을 기억해낸다

아버지 땅에 몰래 사과나무 한 그루 심은 날 그해 사과는 한 개도 달리지 않았다 아버지 땅이 내 땅 되던 날 나는 사과나무 아래 아버지를 묻었다 병 걸린,

아버지를 먹고 자란 사과나무

붉은,

사과 따는 일을

 

 

 

◇ 당선 소감/ 권기선

권기선 시 부문 당선인 권기선 시 부문 당선인

세상은 날마다 정치, 혐오, 차별을 말하기에, 오늘 나는 아버지를 말하기로 한다. 아버지의 노동은 나의 낭만과 같다. 나의 낭만은 아버지의 노동과 같다. "가방끈이 짧아 잘 알지 못하지만, 당선을 축하한다."라는 아버지의 말이 나는 아프다. 전화를 끊고 숨어서 울었다. 아버지를 닮아가는 불효자여서, 내가 배운 아픔과 고민과 질병이 아버지의 아픔과 고민과 질병 같아서.

지금부터는 죄를 짓기로 한다. 증오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오래전 아버지의 임금을 체불한 사람이다. 그가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 때문에 형은 노무사의 꿈을 꿨고 나는 현실의 한 부분에 눈을 떴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본 아버지의 아픔이 얼마만큼인지, 그는 알았으면 한다.

내 절망이 다른 이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라며 뼈저리게 살게 됐음을 나는 고백한다.

시를 놓지 못하는 내 죄 또한 영원하다.

 

▶약력

1993년 충북 음성 출생.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석사과정 재학

 

◇ 심사평

엄원태 시인 엄원태 시인

본심에 올라온 13명의 응모작 가운데 권기선, 장진주, 유진희, 조진희씨의 작품이 최종적으로 논의되었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대부분 일상적 고뇌와 가족이라는 관계에 몰두해 있었다. 고통의 세목은 분명하되 치열한 해석이 부족해 보였다. 그러나 내 발밑이 이 세계를 관통하는 입구이자 출구라고 믿는 절실함은 감지할 수 있었다.

장진주씨의 '의자'는 소박한 사유인 듯하지만 튼튼한 뼈대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 외의 시에서는 명확하지 않고 모호한 자기논리가 감지되었다. 유진희씨의 진지한 경쾌함은 무척 매력적이다. '루팡의 장미'는 수작이지만 다른 작품에서 약간의 편차가 느껴져 제외되었다. 조진희씨의 시에는 세련되지 않았지만 빛나는 문장이 드문드문 박혀 있다. 하지만 항상 전적으로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시의 세계가 있다. 마지막으로 시적 진술을 마무리하는 힘과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는 감각이 조금 부족한 것도 아쉬웠다.

조용미 시인 조용미 시인

권기선씨의 시에는 전복적 사유와 태도가 내재되어 있다. 이 세계를 관성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치열한 자기 인식이 배면에 깔려 있다. 무엇보다 시의 행간이 촘촘하고 다른 작품들도 헐렁한 부분이 없다. '사과를 따는 일'의 어조는 나지막하지만 단호하고 명료하다. 서툰 듯 자리잡은 쉼표도 그 역할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아버지를 먹고 자란" "사과를 따는 일"은 훼손된 세계를, 이 세계의 견고한 불안을 이어받는 것이기도 하지만 넘어서는 것이기도 하다.

당선자로 선정하기 전 잠시 고민했던 권기선씨에 대한 약간의 우려는 '나와 사람들 사이가 돌과 물처럼 놓일 때'와 '올해는 나아질 거예요'에서 보여준 긍정적 사유에서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시를 쓰는 나는 얼마든지 불행해질 수 있다"는, 패기 있고 가능성 있는 시인에 대한 기대로 기꺼이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정진을 기대한다.

심사위원=조용미(시인)·엄원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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